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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의 의무

 

 


말씀:고린도전서 7:1-7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전서 7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6:12-20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몸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피로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령의 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6:19-20). 우리는 이 시간에 그 삶의 원리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보고자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 사도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론에서 살펴봤습니다만 고린도전서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1-6장 말씀으로 글로에의 집 사람들의 보고를 통해서 제기된 고린도교회 내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1-6장 말씀을 통해서 그 문제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1-4장에서는 고린도교회 내의 분열과 사도 바울의 사역에 대한 오해에 대한 답변을, 5장에서는 근친상간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들에 대한 답변을, 그리고 6장에서는 세상 법정에서 다른 성도들을 송사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을 살펴봤습니다.

 


둘째는, 7-15장 말씀으로 고린도교회의 대표자들에게서 온 편지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변입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7장에서는 혼인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변이고, 8-10장에서는 우상의 제물과 관련된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답변을, 그리고 11-14장은 공공 기도 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와 무질서한 만찬 문제와 성령의 은사의 활용과 예배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그리고 1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육체의 부활에 관한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입니다.

 


오늘 우리는 7:1-7절 말씀을 통해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의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이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당시 고린도 지역은 헬라철학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헬라철학의 대표적인 영향이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고귀하다고 보는 영지주의입니다. 이런 생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거의 같은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나라도 선비를 높게 쳐주고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겨왔습니다. 물질보다 정신적인 세계는 신의 세계에 가깝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영향으로 두 가지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질은 더러운 것이기에 떨쳐버려야 할 짐으로 보고 금욕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반응은 육체는 더럽고 아무 것도 아니기에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며 방탕과 쾌락으로 자기 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고린도교회 안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다 있는 것입니다. 음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 금욕주의로 나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첫번째 질문으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인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가 쓴 말에 대하여는’라는 말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질문을 보고 그에 대해서 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한 바울 사도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말은 모두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7장에서 바울 사도의 전체적인 논지는 지금 있는 그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17-23절을 보면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 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 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부르심을 입은 그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구별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관습과 전통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목숨을 거는 할례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으로 있으나 주인으로 있으나 그것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부르시는 분과 함께 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7장 말씀에서 바울 사도의 결론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결론은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보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함이 좋으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앞에서 본 대로 전부 독신으로 지내라는 말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그대로 지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 말씀에 보면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느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 받은 각각의 은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독신으로 지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결혼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혼에 대하여 엄청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인륜지대사로 여겨서 아주 성대하게 결혼식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왜 결혼하는가를 음행의 연고라고 합니다. 2절을 보면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에 자존심이 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결혼을 꼭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지 못해서 하는 것처럼 말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창설하신 것은 성적 욕구만을 해결하고자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창세기에서 공부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결혼제도를 창설하신 것은 구속사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입니까? 8-9절을 보면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혼인 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권면하기를 자신처럼 혼인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고 합니다.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이 이런 정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한다고 하면 우리가 무슨 짐승같이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고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짐승보다 더 못한 것이 타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소도 그 주인을 알고 나귀도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가 아비로서 길러낸 내 자식, 곧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고 한탄한 것입니다(사 1:2-3).

 


그러면 정말 결혼이 정욕이 불타서 절제가 되지 아니하여서만 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에베소서 5:22-33절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통해서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결혼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비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비밀을 결혼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왜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는 결혼을 말하면서 음행의 연고로 결혼하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미 우리가 고린도전서 6:15-18절에서 본 대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음행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거룩한 성전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음행을 한다는 것은 자기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자기의 몸이라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며,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성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우리의 것으로 여기며 사는 모든 부분에 다 해당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 모습 중에 하나가 바로 결혼과 부부관계를 통해서 어떻게 자기 몸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사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한다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6:17절에서 본 것처럼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하신 것은 결혼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가 신랑과 신부가 되는 것으로 에베소서에서는 보았습니다(엡 5:22-33). 그러므로 결혼하여 부부생활을 하는 것은 내 몸이 내 몸이 아님을 확인시켜 나가는 하나님의 작업인 것입니다. 물론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다루시지만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몸을 주님께서는 결혼을 통하여 다루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보면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남편이나 아내나 간에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요구하는데 아내가 거부하지 못하며, 아내가 요구하는데 남편이 거부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성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결혼 생활 전반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부는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네가 누구의 몸이냐 하는 것입니다. 곧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한 몸으로 산다는 것을 통해서 처절하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남편들이 직장생활에 얼마나 힘이 듭니까?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때려치우고 싶지만 처자식을 생각해서 참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우리 몸을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다보면 유혹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아내를 생각하고 남편을 생각하기에 즉 자기 몸이 아니기에 절제하는 것입니다. 혹시 나는 전혀 그런 유혹이 없다는 분이나, 또는 유혹을 이길 수 있다는 분은 아직도 자기의 이상형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거나 또는 자기가 너무 못생겼기에 그런 것이라고 보아야지 다른 사람보다 자기는 더 나은 인품이나 신앙 때문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온갖 스캔들이 발표될 때 그런 일들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이길만한 힘들이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의 성격이나 기호로 인하여 성적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습의 유혹들은 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까지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지금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자기 몸을 관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하였든지, 하지 않았든지 간에 우리 주님께서 관리에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욕주의도 아니고, 쾌락주의도 아닙니다. 내 몸을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알고 살도록 부부 사이에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부부 사이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서로가 동등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를 마땅히 하여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무를 마땅히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5절 말씀에서 서로 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얼마간 분방할 수는 있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합방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마귀가 틈을 탈까봐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생활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행복을 위한 결혼생활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자기의 몸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남편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고 기선을 빼앗기는 것도 아닙니다. 둘 다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님을 알고 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7절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나의 남편과 아내와 자녀들을 주신 것은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부 관계가 막히면 기도가 막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늘 경험하지 않습니까? 또 우리는 함께 유업을 받을 자임을 알아 서로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 이런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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