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주일 오후찬양예배설교 September Sunday night worship


제목 : 본이 되는 믿음

말씀 : 살전1:2-8

1.감사가 나오는 교회

여러분, 데살로니가교회는 정말 아름답고 복되고 바람직한 교회였다. 얼마나 복된 교회인지 그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는 교회였다. 오늘 2절을 보라.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여러분, 보십시오. 이 교회를 생각 할 때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다. 물론 교회가 세워진 것이 감사요. 그곳에 성도들이 있다는 그 자체가 감사이다. 그런데 데살로니가교회는 단순히 그런 이유로 감사한 것이 아니라 생각할 때에 특별히 더 감사가 나오는 교회였다. 그 이유가 뒤에 쭉 나오는데 3절에서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라고 하였고, 6절에서는 많은 환난 속에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를 본받은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고, 7절에서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라고 하였으며, 8절에서는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교회라고 하였다.

여러분, 얼마나 복된 모습인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 많은 환난 속에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를 본받은 교회, 그래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 그래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교회. 정말 부럽기도 하고 너무나 감사하고 복된 교회 아닌가?

여러분,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에게 감사와 기쁨을 주는 자녀, 부부간에 서로 감사와 기쁨을 주는 부부, 주님께 기쁨을 주는 성도, 성도와 성도 간에 서로 감사과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대로 가정이나 학교나 교회나 마을이나 국가에서 근심 걱정거리가 된다며 근심 걱정하게 만든 본인이나 근심 걱정하는 사람이나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어찌 하든지 주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주님을 본받아 삶으로 먼저 자신이 행복하고 주님과 가족과 이웃과 교회에 기쁨과 감사가 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란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감사거리가 된 이유는?

2.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은 교회.

오늘 6절을 보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여기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 인내 가운데 든든히 서 있어서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그게 뭐냐?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은 말씀 그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로서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평안하고 형통하고 좋은 시절이 아니라 많은 환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시 말해 비록 상황은 많이 어려웠지만 그 환경과 상황과 처지나 혹은 세상의 가치관이나 자신의 욕망이나 지식이나 경험이나 생각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감동감화하심을 따라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그대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게 중요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상황과 환경이나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여 말씀그대로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유일한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오직 유일한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인 주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에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3.주님과 사도를 본받은 교회.

앞에서 보았던 6절을 보면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한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았으니 그 말씀을 주신 주님을 본받는 것도 당연하고, 또 우리보다 먼저 주님을 본받아 살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는 것도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씀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잘나고 대단한 사람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혹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류의 유일한 참 빛이시며 생명이시며 진리이신 주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겸손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주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분들을 가까이 하며 그런 분들의 삶의 모습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잖은가? 거기 생명과 은혜와 소망과 축복이 있는데 왜 엉뚱하게 다른 것을 따라 살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 자꾸 세상을 따라가려고 한다. 세상에서 잘나고 똑똑하고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들을 본받으려고 한다. 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받아 살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장난이다. 속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기 바란다. 세상 사람들을 본받지 말고 오직 주님을 본받으며,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본받으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은총을 누리며 믿음의 아름다운 모습을 세상 속에 보여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란다.

4.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와 같이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주님과 성도들을 본받았을 때 결국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운데 든든히 서는 교회가 되었다. 이것도 당연하잖은가? 말씀 위에 서서 주님을 본받으며 살아가는데 어찌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든든히 서지 않겠는가?

그러면 믿음의 역사가 무엇인가? 역사는 일, 행위라는 뜻으로 한마디로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 그래서 뭔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 사랑의 수고란 말그대로 사랑과 기쁨과 은혜로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겼다는 것. 소망의 인내란 힘들고 어려워도 소망으로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다는 뜻이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주님을 믿는다면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을 믿으니까, 그 안에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영광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그 믿음을 따라 살아가면 분명히 주님의 능력과 지혜와 은혜로서 복음의 역사도 일어나고 평안과 기쁨와 소망 속에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 되니까.

사랑의 수고도 당연하다. 사랑한다면 수고가 있게 마련이지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를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마땅히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하고, 그럴 때 주님도 나도 사랑을 받는 대상도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그 역사도 이루어가는 것이다.

물론 소망의 인내도 동일하다.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회는 만사형통해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환난과 핍박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소망,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한 소망 때문에 그것을 넉넉히 이기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이루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주님께 대한 믿음과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을 지키고, 사랑으로 주님과 교회와 성도를 서로 섬기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은혜와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맛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5.믿는 자의 본이 된 교회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예수님을 본받고 사도들을 본받을 어떻게 되었는가? 7절을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그러니까 그들이 그렇게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주님을 본받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았을 때 그들 자신도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는가?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결정되지 않겠는가? 주님을 바라보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결국 신실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변해 가지 않겠는가?

여러분,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믿는 자에게도 본을 보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본을 보여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특히 제직들 특히 중직들은 더욱 그래야 한다. 예배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기도와 찬송의 본을 보여야 한다. 아름다운 말과 행실에 본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아 신앙생활을 저렇게 하는 거구나. 믿는 사람들은 저렇게 살아야하는구나 하는 마음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장로도 그렇게 하던데, 권사도 이렇게 하던데, 집사도 그렇던데 하면서 나쁜 본을 보이면 안된다. 물론 본을 받는 사람들도 좋은 것을 본받아야지 나쁜 것을 보면서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면 안 되겠지만....

그리고 여러분, 우리는 특별히 믿지 않는 자들에게 더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니까요. 너무나 영광스럽고 거룩하시고 사랑과 선과 의와 진실만이 충만하신 하나님의 자녀이니까요.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거룩하고 진실하고 의롭고 선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그런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빛나게 해야 한다. 마5:16절을 보십시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본받아 거룩하고 진실하고 선하고 의롭게 살아감으로 우리 자신이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고 나아가 믿는 사람들에게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좋은 본이 되어 저들도 주님 품으로 온전히 인도하여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6.믿음의 소문이 퍼진 교회

여러분,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나아가서 그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자 믿음의 아름다운 소문을 퍼트리는 멋진 교회가 되었다.

여러분, 소문이 중요하다. 때로는 헛소문이 많아서 소문을 잘 분별해서 들어야 하지만 그러나 좋은 소문은 정말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음식점이 아무리 대대적인 홍보를 해도 맛이 없고 청결하지 못하다는 소문이 나면 얼마 못가서 문 닫아야 한다. 그러나 청결하고 맛이 있다는 소문나면 그야말로 대박이 된다.

교회도 좋은 소문이 나야한다. 사랑의 소문이 나야 한다. 교회는 정직하고 깨끗하고 거룩하다는 소문이 나야 한다. 화목하고 아름다운 소문이 나야 한다. 교회에 다니면 새 사람이 된다는 소문도 나야 한다. 교회에 다니면 행복하고 감사하고 기쁨이 온다는 소문도 나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싸우고 헐뜯고 미워한다더라. 교회에 다녀봤자 별거 없다더라. 교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싸우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한다더라. 이런 소문이 나면 교회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렇게 믿음의 아름다운 소문이 퍼트리지 못하고 도리어 좋지 않는 소문을 퍼트릴 때가 많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억울한 소리를 들을 때도 많은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러나 교회가 부족해서 그런 일도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더욱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오직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자. 오직 주님과 거룩한 성도들을 본받자. 그래서 세상에 본이 되어 빛을 비추. 믿음의 아름다운 소문을 퍼트리는 성도와 교회가 되자. 그리하여 이번 가을에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 기쁨으로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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