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 찬양예배설교
제목 : 가장 큰 능력
말씀 : 요20:24-31
1.가장 큰 능력은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가장 큰 능력이고 무기이고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다. 그렇다고 기도하면 산도 옮겨질 것이라는 믿음, 믿기만하면 죽은 자도 살아나고, 바닷물로 갈라질 것이라는 믿음 등의 뭔가 대단한 능력을 일으킬만한 믿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믿음도 포함되지만 믿음이 능력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 있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고, 은혜와 진리와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을 말한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먼저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지옥의 권세를 이긴다. 일단은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이다. 세상의 다른 무엇이 이런 능력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궁극적인 구원만을 가지고 믿음이 가장 큰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삶에 생명력과 기쁨과 은혜와 사랑을 준다. 근심 걱정 염려 불평 불만 낙심 절망 한탄욕심과 미움과 시기를 이기게 한다. 그래서 그야말로 생명의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가장 큰 능력인 것이다.
안 그런가? 이보다 큰 능력이 어딨나? 지옥의 권세 깨트리고 천국가는 능력이 세상의 다른 어디에 있겠나? 또 세상에서도 우리가 무엇으로 이런 생명의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겠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날 것이다.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평안을 주겠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주님을 믿는 자는 이런 은혜를 분명히 누리게 된다. 분명히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이기게 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희망과 소망을 찾을 수 있다. 많이 갖지 못했어도 얼마든지 감사와 기쁨으로 살 수 있다. 우리는 비록 약하고 부족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4:13절에서 말씀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또 고후6:10절에서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모든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가운데 주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으로 세상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주님 안에 있는 그 놀라운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2.무지와 불신가운데 있는 제자들(24,25)
그렇다. 믿음이 관건이다. 믿는 자는 반드시 승리한다. 상황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 다만 자신만 주님의 은총을 누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힘있게 사명을 감당함으로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영광의 도구가 된다. 그래서 믿음을 늘 강조하셨고, 부활 후에도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주님께서 부활 하신 후에 곧바로 승천하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신 것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며 믿음을 강화시켜 주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힘있게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여러 번 목격하기 전에는 아주 연약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눅24:11절에 보면 사도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였다. 또 마28:17절에 보면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또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19절에 보면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굳게 닫고 숨어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오늘 25절 말씀이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그러니까 앞서 도마가 없는 사이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셨었는데 이 사실을 도마에게 말하자 그는 절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예수님이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 것이라고 그 만큼 말씀하셨는데... 또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셨는지 보았는데... 그만큼 천국에 대하여 영광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게다가 방금은 열명의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고, 그 제자들이 모두 방금 예수님이 다녀가셨다고 말을 하는데 어떻게 손의 못자국을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고, 창으로 찔린 그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아야 믿겠다고 하는가?
여기서 무엇을 생각하가? 철저하게 굳어져 버린 인생의 모습.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알지 못하는 인생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걸 경계해야 한다. 정말 주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한다. 정말로 철저하게 깨져야 한다. 그 알량한 이성 경험 논리를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력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우리의 그 작은 모든 이성과 생각과 논리를 내려놓고 오직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따름으로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3.진정한 믿음(26~29)
그러나 다행히도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면서 점차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을 회복하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제자들은 주님 안에 있는 그 부활의 생명을 믿어 의심치 않고 사명을 감당하여 결국 복음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도마도 마찬가지다. 도마가 없을 때에 오셨던 부활의 주님께서 그 후 여드레가 지나서 이번에는 도마가 있는 자리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신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그때서야 비로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신앙 고백을 한다.(28절) 그때 주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9절) 그렇다고 보고 믿는 자는 복이 없다는 말씀은 아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며 그러기에 그들이 더 복되다는 말씀이다. 즉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보지 못하고 믿는 마음이야말로 순수한 마음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이다. 물론 보고 믿는 것만해도 다행은 다행이지만 그건 어쩌면 온전치 못한 믿음이다. 안 그런가? 부모가 자녀에게 약속을 했는데 손에 쥐어 주지 않으면 안 믿겠다고 하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러나 부모님이 약속을 했을 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는다면 얼마나 갓난아이와 같이 순전한 믿음인가?
그렇다. 우리는 이런 순수한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정말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가? 주님께 믿지 못할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신가? 주님은 부활의 주님이 아니신가? 주님은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시지 않았는가? 당신께서 친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마땅히 이런 주님을 믿어야 하고 믿었으면 믿고 따라가야 하지 않는가? 그럴 때 얼마나 생명과 감사와 기쁨과 능력과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자신의 그 무지, 경험, 이성, 고집 이런 정말 별거 아닌 것들 다 내려놓고 진정으로 갓난 아기같은 순전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약속된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자.
4.성경의 기록목적(30,31절)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31절을 보라.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의 기록목적이 뭐냐? 예수님 믿게 하는 것, 그러면 왜 예수님 믿게 하려고 하느냐,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렇다. 성경의 목적은 이것이다. 예수님을 알게 하는 것. 믿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목적이며,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며, 이것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는 목적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목적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한 구원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 그 안에 생명이 있음을 믿는 것, 그것을 믿었으면 그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그게 교회생활이다. 이거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고상한 무슨 소리를 해도 헛일이다. 교회는 철학을 가르치는 곳도 아니고, 무슨 봉사단체도 아니고, 개화기관도 아니다. 그런 것은 주변적인 것이다. 핵심은 언제나 믿음이다. 히11:6의 말씀을 보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이 시간 더욱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셔 들이자. 정말 나 자신은 생각이나 경험이나 이성이나 지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고 그 주님을 온전히 모셔들여 그 안에서 새생명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아가자.
'추천설교 > 주일오후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 첫주일오후설교 September Sunday night worship (0) | 2017.09.02 |
---|---|
[주일오후설교] 예수님의 사역 Sunday Night Service (0) | 2017.08.31 |
주일오후찬양예배설교 / 하나님의 영광 Sunday Night Service (0) | 2017.08.26 |
주일오후예배설교/ 서로 덕을 세우라 (살전5:9-11) (0) | 2017.08.20 |
[주일찬양예배설교] 말씀과 삶 Sunday evening Service (0) | 2017.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