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 생기 넘치는 인생 (Sunday Sermon)
말씀 : 창2:4~7
제목 : 생기 넘치는 인생
1.생기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생기가 넘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말이나 행동에 활력이 있고, 생동감이 있고, 얼굴이 밝아야 하고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걸어 갈 때에도 활기가 넘쳐야 하고, 찬송도 좀 힘차게 기쁨에 넘친 모습으로 부르고, 예배를 드릴 때도 감격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할 사람들입니다. 계22:5절을 보십시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보세요. 우리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왕노릇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만 왕노릇하고 지금 여기서는 거지 노릇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만 왕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벧전2: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보세요. 우리가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왕같은 제사장이 뭡니까? 제사장은 제사장인데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왜 제사장입니까?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거룩한 모습으로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사장이기도 합니다.
그럼 왜 왕입니까? 일단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왕인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인 우리는 왕자이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로서 세상의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를 비롯한 모든 어둠의 세력들과 상황과 환경과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왕같은 제사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생명의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시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를 좀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더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무엇이냐, 너의 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이기느니라하면서 큰소리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빌4:13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보십시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힘센 장수라도 내가 힘이 없어 못 당하면 그 장수보다 힘이 열배나 강한 장수를 데려오면 이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내 편이시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감사와 기쁨으로 활기차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힘차게 감사하며 기뻐하며 씩씩하게 용감하게 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까? 좀 힘들어도 까짓것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느냐하면서 당당히 맞서 싸우며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어느 부모가 자녀가 조금 힘들다고 죽을상을 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근심 걱정 탄식하며 세상 다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한숨이나 푹푹 내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자녀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러나 자녀가 좀 힘들어도 당당히 맞서 싸우며 활기차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놓이고 대견스럽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써 하나님의 백성,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시민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더욱 활기차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뭔가 마음과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어도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미 이겼고, 또 이후로 다가올 모든 어둠의 세력들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며 활기차고 용감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생기를 충만하게 공급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활기찬 삶을 살려면 생명의 에너지를 충만하게 공급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뭔가를 이기려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뭔가를 힘차게 움직이게 하려면 그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우리 앞에 있는 벽을 무너뜨리려면 그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있든지 장비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또 자동차가 힘차게 움직이려면 기계적 성능도 좋아야 하지만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기름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인생도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평강과 위로와 소망 가운데 힘차게 달려가려면 그렇게 달려가게 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허우대만 좋다고 벽을 무너뜨리고 힘차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벽을 무너뜨리고 힘차게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육체에 힘을 주는 양질의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들이 육체에 공급이 되고 일부는 산소와 만나 산화작용을 일으키면서 신체 각 부분에 에너지를 공급함으로 비로소 몸에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앞에 놓여져 있는 벽을 무너뜨리고 힘차게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올바르게 깨끗하게 아름답게 진실하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올바르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신적인 양식을 충분하게 계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윤리적 도덕적 철학적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올바르고 진실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것들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계속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올바른 인격형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아야 비로소 올바른 인격을 갖추어 어려움도 이겨내고 선과 진리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태를 보면 이런 올바른 인격에 필요한 에너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죽어라고 부자 되고 높아지고 편하게 쉽게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기술만 공급합니다.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맨 날 공부 잘해라. 1등해라. 높아져라. 돈 많이 벌어라. 이런 따위 들입니다. 그래서 고작 한다는 인사가 부자 되라는 것입니다. 그게 최고의 축복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라고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가지고 노는데 게임들이 대부분 싸우고 죽이고 빼앗고 정복하고 높아지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것들입니다. 그렇게 늘 폭력적 선정적 이기적 배타적 물질적 에너지만 공급되니까 사람들이 결국 폭력적 선정적 이기적 배타적 물질적 성향이 강한 인생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뉴스에 보니까 열일곱살배기 소년이 스물한살날 친누나를 칼로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는데 이 소년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을 주로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그날도 4시간동안 폭력적 게임을 한 후에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런 폭력적 에너지만 잔뜩 공급받으니까 인성이 마비되고 아름답게 사랑하며 성실하게 진실하게 살게 하는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고 폭력적 부정적 반항적 에너지가 자꾸 축적되고 그런 부정적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자율신경이 제 기능을 잘 못하게 되니까 그런 끔찍한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정말 우리 생명을 아름답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참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귀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영적으로는 더더구나 그렇습니다. 자연인은 그러지 않아도 죄로 말미암아 영성이 거의 죽어있기 때문에 영혼에게 생명을 주고 올바르고 진실하게 아름답게 거룩하게 감사와 기쁨으로 생명력이 넘치게 하는 에너지를 듬뿍 공급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에너지가 뭡니까? 그게 바로 오늘 7절에서 말씀하는 생기입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만들 때에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물론 흙으로 만든 육체는 생명도 기쁨도 감격도 능력도 없는 그냥 흙덩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생명력 없는 흙덩이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되었습니까?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생기가 뭡니까? 영적 육체적 정신적 생명력을 가지고 살게 하는 생명의 기운입니다. 그러면 생령은 뭡니까? 살아있는 영혼, 즉 생명과 기쁨과 감격과 은혜와 사랑 속에서 뭔가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영혼인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기 즉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사랑과 축복과 희망과 소망을 마음껏 누리며 살게 하는 그 생명의 기운이 우리가 가운데 들어올 때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고 그 생기가 충만해 지면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생들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이 생명의 에너지를 거의 상실함으로 하나님께서 본래 주셨던 생명의 은총이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끝내 이것을 회복하지 못하는 인생은 영원한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죄과를 도말하시고 나아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으로서 사기(死氣) 즉 죽음의 기운을 제거하고 생기(生氣) 즉 생명의 기운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고 따르는 자들은 생기가 다시금 우리 영혼 속에 들어옴으로 진정하고 영원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믿고 그 생기를 받았다고 하는 우리들조차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도리어 축 처져서 살 때가 많습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살지 못하고 도리어 근심 걱정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지 못하고 도리어 미워할 때가 많습니다. 선과 진리와 의를 향하여 가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에 질질 끌려 다니며 심지어 악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거룩하고 의롭고 고귀한 삶을 살지 못하고 도리어 추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건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생기를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충만하게 공급받아야 하는데 겨우 목숨을 부지할 만큼만 받아 그나마 다행으로 죽지는 않았는데 생명의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육신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육신이 계속해서 왕성하게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밥을 먹어야 하는데 한번 먹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육신을 힘 있게 움직이게 하는 생명의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영양가 높은 음식을 공급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또 식물도 잘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영혼도 그런 것입니다. 영혼이 생명을 유지하고 왕성하게 움직여서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주님이 주시는 생기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충만하게 공급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혼에 생기가 있고 힘차게 움직이고 그래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생기를 계속해서 공급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예배생활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신앙적 행위가 먼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요, 나아가서는 우리 영혼이 정말 생기 있게 풍성하게 아름답게 힘차게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는 영적인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일이요, 생명의 산소를 공급해 주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시1:1,2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래서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신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 영혼에 양질의 양식을 공급할 때에 죽어있는 영혼들이 살아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기로 가득차고 그러면 그 생명의 에너지가 우리 속에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솟아나게 하여 생명력이 넘치게 나아가 선과 진리와 의를 향하게 힘차게 나아가게 함으로 생명의 풍성하게 맺게 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심령 속에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데 어찌 그 삶이 힘차게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심령가운데 생명과 기쁨과 감사와 평강과 소망의 기운이 넘치는데 어찌 그 삶이 활기차지 않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생명과 진리와 선의 에너지가 넘치는데 어찌 선과 진리와 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지 않겠으며, 선과 진리와 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때에 어찌 생명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그러한 생명의 에너지를 풍성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 교회에 열심히 나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생활에 힘쓸 때에 생기가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생기의 통로를 막고 있는 찌꺼기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우리는 생기가 충만한 곳을 가까이해야 하는데 그때에 한가지 더 유념해야 할 것은 생기가 흘러들어오는 통로를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기를 받는데 방해가 되는 찌꺼기 같은 것들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생기가 넘치는 곳을 찾아와도 그 생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가 좁아져 있거나 막혀 있으면 어떻게 생기를 충만하게 받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심장이 아무리 힘차게 펌프질을 해서 피를 내보내도 혈관에 진득진득한 것이 달라붙어 있어서 혈관이 좁아졌거나 막혀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수지에 아무리 물이 가득해도 수로가 막혀 있으면 어떻게 논에 물을 대겠습니까?
영적으로도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아무리 생기가 가득해도, 그래서 그 하나님 안에 있는 생기를 공급해 주는 교회를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우리 영혼에 생기를 공급하는 통로가 좁아져 있거나 막혀 있으면 생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거나 두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기가 조금 밖에 들어오지 못하면 근근이 생명을 유지한다해도 감사와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요, 만약 완전히 막혀 있다면 그 영혼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생기가 우리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찌꺼기들을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찌꺼기가 뭡니까? 그건 다름 아니라 이 죄와 무지와 어둠 속에 있는 세상에 살면서 굳어진 왜곡되고 잘못된 생각들과 가치관과 경험과 지식과 인본주의와 물질주의와 이기주의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왜곡된 가치관으로 말미암아 우리 심령 속에 자리잡고 있는 시기나 질투나 거짓이나 분노나 염려나 이기심이나 이런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생기의 통로를 막아버리는 찌꺼기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생기가 영혼 속으로 들어오는 통로를 좁게 만들거나 막아버림으로 생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생기를 충만하게 받으려면 그 생기를 받을 수 있는 교회를 열심히 찾는 것과 더불어 그러한 모든 왜곡된 경험과 지식과 이성과 욕심과 악과 미움과 그 밖의 모든 왜곡된 가치관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6:24절에서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고, 엡4:22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죄와 무지와 어둠과 한계 속에 있는 존재인지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존전에 열심히 찾아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찾아 나오되 내 생각 이성 경험 지식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주님의 생기가 충만하게 영혼 속에 흘러들어옴으로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은혜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기고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생기 넘치는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이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기쁨과 은혜가운데 살게 하심에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이다.
그러하오나 주님이시여, 저희가 아직도 믿음이 부족하여 주님께서 주신 그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나이다. 오, 주님이시여,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진실로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주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생기의 통로를 막고 있는 모든 인간중심적인 생각들, 물질만능주의적인 사고들, 그로 인한 모든 욕심과 시기와 질투와 모든 어두운 모습들을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섬김과 겸손의 삶으로 생명의 통로가 활짝 열려 하나님의 생기를 충만하게 덧입어 온전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이 땅 모든 이들에게 그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사랑과 소망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축 도) 이제는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운을 막고 있는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주님의 생기를 충만하게 덧입어 주님의 그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며 그 생명의 기쁨을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과 저들의 가정과 저들의 경영하는 모는 일들 위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인도 교통 역사 충만케 하시는 은사가 이제로 영원까지 함께 하시옵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봉헌기도) 영화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아름다운 계절, 이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을 우리에게 주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은총을 덧입어 이 생명과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시오니 영광과 존귀를 돌리나이다.
오 주님이시여,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며 적은 예물 드리나이다. 주님의 그 은혜와 사랑과 인도하심에 감격하여 믿음으로 예물 드리는 손길 위에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것 거룩히 구별하여 십일조 예물 드리는 손길위에 더욱 축복하셔서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더욱 풍성하고 강건한 은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고백하며 감사예물 드리는 손길에도 복을 주셔서 더욱 감사와 은혜가 가득한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예물을 통하여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더욱 힘 있게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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