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금요철야예배설교] 하나님의 리듬에 장단 맞추라 Friday Night Sermon
하나님의 리듬에 장단 맞추라
본문 / 전도서 3:1~11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본문을 보면, ‘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때에 대한 개념을 바로 이해해야 멋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에 대한 감각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열심보다 때가 중요합니다. 열심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를 알아야 멋진 인생,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혜는 때와 항상 연결되어있습니다. 전도서의 여러 곳에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삶은 때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야 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때를 맞추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간 관리를 많이 말합니다. 시간 관리에 관한 책도 많습니다. 그런 책이 도움이 됩니다.
저도 시간 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시간 관리를 잘 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시간 관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자는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때에 대한 감각을 길러야 합니다.
때에 대한 감각은 24시간, 1주일 등 시간에 대한 개념보다 더 큰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때에 대한 감각을 가지려면, 시각(視覺)을 가져야 합니다.
농부는 밭을 갈고 밭에서 일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절감각을 갖는 것입니다. 계절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계절에 맞게 일해야 합니다. 무슨 계절인가도 알지 못한 채 열심히 일한다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봄에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여름에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가을에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겨울에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씨를 뿌릴 때와 거둘 때에 맞게 일하려면, 계절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계절에 맞는 행동 패턴이 있어야 하고, 계절에 맞게 스케줄(schedule)을 조정해야 합니다. 봄의 일상과 겨울의 일상은 전혀 다릅니다.
인생의 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별로 때에 대한 강조점이 다릅니다. 강약(强弱) 조절이 필요합니다.
성실하게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늘 성실하게 자기관리를 잘하지만, 인생 전체를 들여다보는 눈이 없으면, 나중에는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2장 5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일의 일기예보는 확인하면서 시대에 대한 분별력을 갖지 못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외식주의자들은 시대를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시간 관리를 잘하고, 종교적으로 활동을 많이 했을지는 모르지만, 시대에 대한 감각이 없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때를 전혀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므로 영적 기상도가 완전히 바뀌었는데, 외식주의자들은 일기(日氣)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니까 죽은 자가 살아나고, 눈 먼 자가 눈을 뜨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쫓겨나는 등 영적으로 거대한 폭풍이 불어 닥치는데, 외식주의자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천지의 기상은 잘 아는데, 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계속해서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영적 어두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에 눈이 가려져있었던 것입니다. 분별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으니까 때에 대한 감각이 없었습니다. 영적 흐름이 어떠하며, 영적으로 바람이 어떻게 불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열심히 제사 드리며 의식을 행하는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지 않으니 딴 짓만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솔로몬은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말했습니다. 농부도 그렇지만, 어부도 때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썰물의 때가 있고, 밀물의 때가 있습니다.
호주에 있을 때, 성도 중에 낚시를 좋아하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낚시 장비가 좋고, 낚시 기술이 훌륭해도 때를 맞추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끼가 아무리 좋아도, 물고기가 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때가 있다고 합니다. 물고기가 오는 시간이 있다고 합니다. 때를 맞추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때를 정확하게 맞추면, 낚싯대를 내리기만 하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때와 타이밍(timing)이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때에 대해 말씀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간에 있어서 핵심은 ‘하나님의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간 관리 안에는 이런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자기의 스케줄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타임 테이블(time table)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과 우리의 성실보다 하나님의 열심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행동보다 하나님의 행동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움직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움직이시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무엇을 하시려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殿)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그가 왕이 될 때까지의 하나님의 타임 테이블은 따로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충동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때를 따라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성령의 타임 테이블에 따라 종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중요한 곳에 세우셔서 거대한 바람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성령의 주도하심 속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려고 하는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유럽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마스터플랜(master plan)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아무리 가려고 해도 갈 수 없었습니다. 온갖 고생을 하고도 아무 열매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게 하시는 대로 가면,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표와 다른 시간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중요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가 꿈을 꿨지만, 현실은 꿈과 전혀 달랐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셉이 생각한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실이 반대로 가는 이유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진행될 때,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풍성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생활을 할 때, 시간에 대해 정확하게 생각하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시간을 미세하게 들여다보고 분석하면,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보면, 큰 덩어리의 시간 개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정확하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면, 큰 덩어리의 시간 개념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었으나,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며 자신을 생각해달라고 말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은 감옥에서 나간 후에 요셉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는 잊힌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했을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왕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죽을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힘든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때입니다. 일이 빨리 진행되어야 하는데,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다가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힘듭니다.
우리가 세워놓은 야심찬 프로젝트가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진전이 없습니다. 시간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때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흘러야 하는데, 1초도 흐르지 않고, 멈춘 것 같다고 느끼면, 숨이 막히는 듯합니다.
시련은 계속됩니다. 마치 터널 속을 지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순간, 미동조차 일어나지 않을 때,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런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가장 혹독한 시간이 찾아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어려운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약한 상태로 만드신 후에 일하십니다. 우리가 약해질 대로 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바로 직전이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우 약해져있을 때, 하나님의 때가 임박해있습니다.
임산부는 만삭이 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바로 누워 잘 수도 없고, 여러 모로 불편합니다.
그때가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그리고 위험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 직전입니다.
그때는 시간이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빨리 흘러서 아기가 빨리 태어났으면
좋겠는데, 하루가 길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임박하면, 그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하나님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기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때는 불확실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수중(手中)에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알지 못합니다. 예측할 수는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 대한 계획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 앞에 일어날 일을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개인의
삶에서 디테일(detail)한 것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신실하신 분이시고, 우리의 인생에 대해 우리보다 더 세심하게 아시고,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의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시고, 신실하게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이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기다리면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그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모험과는 다르지만, 모험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믿음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모험을 많이 시도합니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모험합니다. 모험하지 않으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의 CEO들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망하기 때문에, 새로운 결단을 하고, 모험을 해야 합니다.
믿음과 모험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믿음과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은 대상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도박이 되기도 하고, 믿음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험은 도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하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머리 좋은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다른 사람보다 크면, 그 사람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 좋은 사람들이 앞서 나아가는 것을 따라갑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믿음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숨죽여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때 잘못하면, 사고를 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는데, 섣불리 행동하다가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아닌데 행동하면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면, 용감해져야 합니다.
기다려야 하는 때에는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그때 나서면 안 됩니다. 그러나 때가 왔다면, 확신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엘리야를 보세요. 하나님의 때가 오기 전,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드러내실 때,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갈멜 산 정상에서 850대 1의 싸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었습니다.
숨어있어야 할 때에는 숨어있었지만, 하나님의 때가 왔을 때에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믿음으로 행동하는가에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때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왔다면, 대담해져야 합니다. 민첩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하나님의 때에 여러분의 삶을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기회는 더 이상 기회가 되지 않습니다. 기회는 기회를 알아보고, 기회에 반응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됩니다. 기회에 반응하지 않으면, 기회는 기회가 되지 않습니다. 기회는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때는 나와 상관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믿음이 강화되면, 때가 왔을 때에 두려움 없이 반응하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으면, 때가 와도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기회가 지나가버립니다.
에스더를 보세요.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라고 말했을 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라고 반응했습니다.
에스더는 때에 맞게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을 살렸습니다. 하루만 늦었어도 유대민족이 말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에스더는 때를 정확하게 맞춰 행동했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자칫하면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믿음으로 용기를 내고 나아갔을 때, 반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때가 오면, 몸을 사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몸을 던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놓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삶에 기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타이밍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허비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때에 맞게 반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때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모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다른 차이는 없습니다.
가슴 설레는 일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날 것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주저하면 안 됩니다. 기회를 잡으셔야 합니다.
본문 전도서 3장 1절에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감각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생활을 할수록 영적으로 날이 서야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영적 깨달음이 쌓일수록 우리 안에 영적으로 날이 서야 합니다. 영적으로 예민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징조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징조를 느낍니다. 영적 감각이 탁월하면, 징조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느낍니다.
징조는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도 있습니다. 영적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압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한가운데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 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셨습니다.
그런 때에는 시간이 무지하게 빨리 지나갑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어마어마한 일들이 지나갔는데,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한 시간을 가리켜 ‘크로노스(χρόνος)’라고 하지 않고, ‘카이로스(καιρός)’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때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시간, 하나님께서 관여하시는 특별한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시간이 오면, 시간이 매우 빨리 흐릅니다. 전운이 감돕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시간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면, 우리가 알지 못한 일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한국 역사 속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5천 년 한반도 역사 가운데 늘 시련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니 1907년 평양에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70년대에는 여의도광장에 2백만 명의 성도들이 모인 것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민족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변화가 일어났고 성장했습니다. 그로 인해 한국은 2만 7천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촉수를 곤두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자칫하면 유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한 박자라도 늦거나 앞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임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행동하면, 기회는 지나가버립니다.
서핑(surfing)을 하는 사람들은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어야 합니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물속에 빠집니다. 타이밍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도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파도를 타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위험천만한 일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정확하게 맞추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주신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때 믿음으로 반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을 써도 잘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때가 오면, 자신은 수고하는 것 같지 않은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오지 않았을 때는 밀물의 때에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 같습니다. 맞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습니다. 매우 힘듭니다. 열매는 없습니다. 될 듯 될 듯하다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힘을 쓰지 않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대세’라고 합니다.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기 때문입니다.
목회와 사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에 있을 때에는 모르는데, 하늘을 날 때에는 바람을 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모든 일이 그러합니다.
인생을 복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에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런데 기회를 기회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회를 기회로 알아보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준비되어있고, 실력을 갖추었다 해도 기회를 알아보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기회는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리 신호를 보낸 후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영적 감각을 길러야 합니다.
때에 대한 분별력을 갖는 것은 영적 활동에서 매우 핵심적인 것입니다. 영적 감각이 있으면, 하나님의 때가 온 것을 알아차립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지만, 만족하기보다는 내적으로 결핍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겠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서 만족하게 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길을 보여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느끼게 하십니다.
모든 바람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일으키십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면, 그곳에는 분명히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바람을 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때라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바람이 불기를 바랍니다. 그 바람에 여러분의 몸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실하게 사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늘 제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밧줄에 묶인 듯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밧줄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차원을 여시기 위해 바람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고, 우리의 몸을 맡길 때,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때를 영원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본문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구절은 전도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영원’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헛되고 헛되다고 말한 전도서 안에 ‘영원’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영원을 향해 맞추어져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을 향해 기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영원을 사모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면서 왜 허무함을 느낍니까? 전도서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전도서에 ‘헛되다’라는 말이 몇 번 나올까요? 총 29회 나옵니다.
지금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얼마 가지 않아 마음이 식어버립니다. 미용사가 머리를 마음대로 잘라버리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당장은 분노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되면, 매우 감격하고 행복해합니다. 그러나 며칠 가지 않아 그 마음이 식어버립니다.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새로운 말씀을 강조하는 것은 이단입니다. 새로운 지식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구입해도, 금방 또 다른 새로운 브랜드가 나옵니다.
잠언 31장 30절에 보면,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을 지금 시대에 맞게 바꾸어 말하면, “몸짱도 거짓되고, 얼짱도 헛되나, 영짱만 영원하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목마릅니까? 세상에는 새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새것이 없습니다. 대단한 것 같아 보여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많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데도 기도하러 나오시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대단한 분입니다. 없는 것이 없이 다 갖추었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기도하겠습니까.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권세도 있는데, 기도하러 나온 사람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쉽게 비밀을 터득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깊은 것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 비밀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기도하러 나올 수 없습니다.
돈만 많이 번 사람이라면, 돈을 원 없이 써본 후, 끝지점에서 허무함을 맛보기 전까지는 기도하러 나올 수 없습니다.
돈이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대개는 대가를 지불한 후에야 깨닫습니다. 대가를 지불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합니다.
돈이 있고 건강하다면, 나를 부르는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많고 잘 나갈 때에는 기도하러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좋아합니다.
돈 냄새를 풍기면, 사람들이 몰려와서 아첨하고 기분을 돋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마음껏 쓰게 할 것입니다.
돈이 바닥나기 전까지는 그 재미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돈이 바닥나고, 친구들이 떠나기 전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전도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져도, 허무하고 식상하고 지루해진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권력을 가지든, 돈을 끌어 모으든, 지식을 쌓든, 성적 쾌락에 빠지든 그것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결국 허무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것이 영원과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허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참된 목적을 찾아야 합니다. 영원한 목적과 빨리 연결시켜야 합니다.
영원한 목적을 찾으면, 삶의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그러면 삶에 불이 붙습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잠 1:7). 하나님을 경외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금방 나옵니다.
인생이 빙빙 돌지 않습니다. 방향 감각이 생기고, 시간 개념이 분명해집니다. 지금 자신의 나이에 맞게,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분명해집니다. 때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늦을수록 후회합니다. 믿음의 눈이 떠지고, 영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유치한 일에 매여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기회가 지나가고 난 후에 “이 몸, 주를 위해 불태우겠나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허무해집니다. ‘때’는 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놓치면 허무해집니다.
시편 1편에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시 1:3). 인생의 계절에 맞게 열매를 맺어야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것이 ‘철든 인생’입니다. 철든 인생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춤추는 인생입니다. 뒷북을 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때를 놓치면, 나중에는 아무리 힘쓰고 노력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계절을 보는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복된 인생을 살려면, 허무한 것에 굴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령의 이끄심에 민감한 삶을 살아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금방 알아차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새 길을 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박자에 따라 춤추는 인생을 사용하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일에만 빠져 살지 마세요. 부지런히 산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해 안테나를 뽑아 올려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매일 매일 타임 테이블을 체크하는 것도 좋습니다.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눈을 감고 잠잠히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바람을 느끼세요. 지금도 하나님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을 느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바람에 자신을 맡기세요.
지금도 영적 파동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지루한 일상의 리듬을 깨고, 하나님의 리듬 속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속으로 여러분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인도하시고, 분명한 목적에 따라 살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곳에는 강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 하나님의 강한 바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강한 바람을 일으키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목적으로 이끌어 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흐르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힘을 들이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우리가 힘쓰고 노력한 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단에 맞춰 춤추시기 바랍니다. 엉뚱한 곳에서 힘 빼지 마세요. 여러분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을 수 있는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세요. 하나님께서 부르신 인생은 결코 허무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겁고 신나고 부요한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파도를 타면, 꽉 찬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때에 반응하고 사는 사람들은 꽉 찬 인생을 살게 됩니다. 꽉 찬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때에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가버렸습니다.
허접한 인생이 아니라, 꽉 찬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파도를 타야 합니다. 하나님의 리듬에 맞춰 춤춰야 합니다.
나의 타임 테이블에 맞춰서 나의 열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파도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저는 사역자로서 늘 그것을 느낍니다. 내 힘으로는 별 짓을 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에 내가 덩달아 춤추며 ‘이것이 하나님의 때구나.’라고 느낍니다.
그때 기이하고 놀라운 일, 새로운 일을 경험합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는 역사를 맛보게 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아주 짧습니다. 후회함 없이 멋지게 살다가 주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전도서는 허무로 가득 차 있습니다. 허무로 가득한 가운데서 허무하지 않은 인생으로 우리를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에 반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우리의 방향을 정확하게 맞출 때, 우리의 인생은 날아오를 것입니다. 파도칠 것입니다. 춤출 것입니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위대한 역사가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날 것입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든지 다가오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기대 속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촉각을 곤두세우세요. 영적으로 예민해지시기 바랍니다. 민감하게 반응하세요.
지금 하나님께서 흔들고 계십니다. 지루하게 밋밋한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삶을 계속해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숨지는 날까지 하나님의 거대한 파도를 타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사용해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승부를 거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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