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주일예배설교 어버이의 사랑(삼하18:31-33)
말씀 : 삼하18:31~33
제목 : 어버이의 사랑
제법 오래전에 부모의 재산을 갈취하고 부모를 해외에 방치한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가 방송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딸만 둘이 있었는데 결혼해서 둘 다 캐나다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부모님에게 캐나다로 와서 함께 살자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하고 재산을 다 정리하고 정리한 돈을 캐나다에 있는 큰 딸에게 송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딸을 찾아도 딸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항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가까스로 공항경찰의 도움을 받아 큰 딸이 보내준 주소지를 찾아 가게 되었는데 딸이 적어준 주소지에는 딸은 없고 엉뚱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시 둘째 딸이 살고 있다는 주소지를 찾아갔는데 역시 둘째 달 부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을 찾았지만 끝내 딸을 찾지 못한 부부는 오갈 데 없는 국제미아가 되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한인교회의 도움을 받아 이 노부부는 교회에서 쪽방에서 지내며 교회에서 조금씩 도와주는 돈과 폐지와 깡통 등을 주워 조금씩 버는 돈으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이 부부만이 아니라 해외에 살면서 늙은 부모를 모시겠다는 말로 부모의 재산만 챙기고 연락을 끊어 버리는 사례가 상당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야말로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인생을 다 쏟아 부으며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은 못할망정 노후대책으로 남겨놓은 재산 마져 빼앗아 버리고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이런 파렴치한 인간들이 있다니 이건 정말 같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여러분, 오늘 어버이 주일인데요, 사실은 어버이 주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서글픈 일인지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평소에 잘하면 이런 날을 만들 필요가 없는데 잘 못하기 때문에 좀 잘해보자는 의미로 무슨 날, 무슨 날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안 그래요? 평소에 자녀들을 정말 귀하게 여기고 올바르게 양육한다면 어린이날을 굳이 만들 이유가 없지요. 평소에 부모님을 공경하고 바르게 섬기면 어버이날을 만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평소에 가정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가족 간에 진실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그러면 가정의 달을 일부러 만들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일부러 이런 날들을 만들어서라도 가정생활이나 신앙생활을 잘하며 바르게 아름답고 복되게 살아 보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어버이 주일을 지키면서 다시한번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할 때에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다시한번 되새기며 부모님을 바르게 섬김으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결국은 자신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으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도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부모는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오늘 말씀은 압살롬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 다윗이 통곡하고 있는 장면인데 이 말씀을 보면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게 됩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압살롬은 제일 잘생기고 영리하고 용기 있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왕이 되려는 야욕에 사로잡혀 눈이 뒤집혀 아버지를 쫓아내고 왕이 되기 위하여 4년 동안 몰래 군대를 훈련시키며,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 민심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게 되는데 다윗은 이미 민심이 압살롬에게 돌아간 것을 알고 급히 예루살렘에서 도망가게 됩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후환을 없애고 왕의 자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계속 아버지를 추격합니다. 세상에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고 하다니 이런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요? 결국 이 싸움에서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전쟁은 다윗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반역자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했으면 큰 잔치를 베풀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에게 포상도 하고 치하도 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럴 수가 없었죠. 왜냐하면 비록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려했던 천하의 몹쓸 자식이었지만 아들 압살롬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몹쓸 자식 압살롬의 죽음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말씀인 것입니다. 33절 같이 읽겠습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여러분, 다윗은 지금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면서 목놓아 울고 있는데 이 자식이 어떤 자식입니까?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 했던 천하에 불효막심하기 짝이 없는 몹쓸 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자식의 죽음 앞에서 차라리 자신이 대신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아무리 패역부도한 자식이라도 그래도 내 몸에서 나온 내 핏줄이요, 내 분신이기에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려했던 천하의 나쁜 자식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목 놓아 울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요 동시에 바로 이러한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인 것이지요. 자신은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도 자식만은 어떻게든 잘먹고 잘살게 해주려고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부모님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을 잊으면 안 되는 거지요. 이걸 잊는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우선적인 의무이며 도리이며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 부모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과 부모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렇게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총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부모는 자식의 불행을 자기 탓으로 여깁니다.
여러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한이 없어서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늘 부족하게 여기며 그래서 혹시 자식이 뭔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마치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 같아 마음 아파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다윗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는 압살롬이 그렇게 못된 자식이 된 것이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아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다윗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일생일대에 지울 수 없는 너무나 커다란 과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고의로 죽게 만듭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십니다. 그러자 다윗은 불행 중 다행으로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참회를 하게 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용서는 받지만 그 심각한 범죄에 대한 징계까지 면제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그를 용서하셔서 왕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지위는 유지하게 하시되 범죄에 대한 징계는 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하12:10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아 다윗의 집 안에서 혈육간의 죽고 죽이는 비참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말씀대로 큰 아들 암논이 압살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다가 도리어 자기가 죽임을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압살롬의 이런 패륜아적 행동이 자신의 범죄의 결과라고 여기고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가정에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며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통곡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모도 물론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죄 가운데 빠질 때도 많습니다.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잘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자식이 뭔가 좀 힘들어지고 잘못되고 엉뚱한 길로 가고 하면 다 나의 부족함과 무지와 허물과 죄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미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식은 설령 부모님이 부족하고 자식에게 잘못 할 때가 있다해도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는 아무리 부족하고 허물이 많아도 심지어 죄가운데 빠질때도 있고 혹시 자식에게 해준 것이 없어도 그래도 자식에게 만큼은 공경 받고 섬김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잘 났건 못났건, 인품이 훌륭하든 훌륭하지 못하든, 사회적 지위가 있든 없든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오,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래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우리를 양육해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부모인가와 관계없이 무조건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 귀한 생명을 주신 것만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또 비록 부족한 것이 많았다 할지라도 그래도 주어진 환경과 상황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 희생하며 우리를 양육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혹시 부모님이 부족한 것이 많아도, 혹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어도 생명주시고 이제껏 양육해 주신 그 한가지만으로라도 감사하며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결국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기 생명보다 사랑합니다. 그래서 압살롬의 반란 사건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 다윗의 관심은 온통 자기 아들 압살롬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군대장관 요압에게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요압이 이 말을 무시하고 압살롬을 죽이고 다윗의 군대가 승리하게 전령이 와서 승전보를 전합니다.
그러나 이때도 다윗의 관심의 초점은 전쟁에서의 승리보다는 압살롬의 안위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승전보를 전하러 온 사람에게 제밀 먼저 묻습니다. 오늘 32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은 승전보를 가지고 온 사람인데 다윗은 그에게 다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압살롬의 안부를 먼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천하의 몹쓸 불효자식이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에 나온 자기 생명과 같은 존재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면서 목놓아 울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어버이의 사랑과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의 풍조를 보면 안타깝게도 부모님께 대해 소홀히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설교를 하는 저도 사실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도 돌아보면 자녀에게나 아내에게나 부모님께나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20여년 전에 하나님 품으로 가시고 어머니는 올해 88세이신데 사실 저희 어머니는 그런대로 노년을 평안하게 지내고 계신 편입니다. 형님 내외분과 살고 계신데 형님 내외분도 살만 하시고 특히 제 둘째 여동생이 남편은 읍장이고 자기는 건강보험공단 차장으로 있어 살만하여 어머니께 용돈도 많이 드리고 딸 들 다섯이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서 자주 찾아뵈며 잘해 드려서 저의 어머님은 노년을 평안하게 보내시고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 멀리 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하다는 핑계로, 그리고 어머님이 별다른 걱정 없이 잘 지내고 계시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고 용돈도 제대로 드리지 못해서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저를 볼 때마다 내가 바보 같아서 아무 것도 못해 주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니까 더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물론 저의 부모님 뿐 아니라 모든 부모들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식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며 자식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하고 많은 것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이러한 당연한 가치관이 자꾸 퇴색해져 가는 것 같아 참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들이 자식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해 드리지 않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선거 때에 보면 어떤 돼먹지 못한 젊은이들이 무식한 꼰데들 때문에 나라가 제대로 안된다며 선거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4년전 국회의원 선거 때는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작자가 꼰데들은 방해만 되니까 투표하지 말라고 말했다가 된통 혼이 난적도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안 늙습니까? 제 혼자 태어나서 제 혼자 잘나서 제 혼자 공부하고 제 혼자 잘나서 나라 세웁니까? 모두가 우리 부모와 선조들의 덕분입니다. 물론 근본적으로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뛰고 날아도 하나님이 안 해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과 지혜와 힘과 능력과 은혜를 주시고 상황과 환경과 여건과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시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혼자하시지 않고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부모들의 수고와 헌신과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또 우리가 이렇게 부족함 없이 살게 된 것도 우리 부모님들이 못 먹고 못 입고 못 자면서 수고하신 덕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을 무시하지 말고 공경하고 받들어 모시고 대접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의 본분이고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롤 공경하고 잘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축복도 약속하신 것입니다. 출20:12절을 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당연하지 않습니까? 부모님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데 그리고 당신의 모든 것을 다바쳐 우리를 양육하셨는데 어찌 공경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알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인간의 본분을 다할 때에 어찌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어버이 주일을 보내며 다시 한번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길 때에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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