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알라는 고대 아랍 다신교도의 달신이었는가?

 

 

역사적 증거들과 편향되지 않은 논리와 잘 정리된 참고문헌들과 모든 가능한 상황적 판단들은 (a) 알라라는 신의 명칭이 이슬람 도래 훨씬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b) 이슬람 이전 이교도들이 그들의 최고의 신(달신)으로 알라를 숭배하였다는 것을 아주 잘 입증할 수 있다. 알라의 이름은 이슬람 이전 아랍에 존재하였다. 고대 아랍에서 알라는 최고의 신/신격(달신)으로 여겨졌고 아랍 다신교도들은 이슬람 도래 이전에 알라를 숭배하였다.

 

아래의 타당한 몇 가지 질문들과 해답들을 검토해보자:

이슬람 도래 이전 시대에 아랍 다신교도들이 360개의 신들을 숭배하였는가? 맞다.

아랍 다신교도들이 태양과 달과 별들을 숭배하였는가? 맞다.

아랍족들이 달신을 위한 사원들을 건축하였는가? 맞다.

다른 아랍 부족들이 달신에게 다른 명칭들/호칭들을 수여하였는가? 맞다.

그 명칭들/호칭들의 일부분은 무엇이었는가? Sin, Hubul, Ilumquh, Al-ilah 였다.

“al-ilah”(신)라는 호칭이 달신으로 사용되었는가? 맞다.

“알라(Allah)"라는 단어가 “al-ilah”에서 유래되었는가? 맞다.

다신교도의 “알라”가 만신전에서 가장 높은 신이었는가? 맞다.

그가 카바 신전에서 숭배되었는가? 맞다.

알라가 메카인들의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였는가? 맞다.

그들이 카바 신전의 꼭대기에 Hubul의 조상을 설치하였는가? 맞다.

그 당시에 Hubul이 달신으로 여겨졌는가? 맞다.

그러므로 카바 신전이 “달신의 전”이었는가? 맞다.

결국에는 달신의 명칭으로 “알라”라는 명칭이 Hubul이라는 명칭을 대체하였는가? 맞다.

그들이 카바 신전을 “알라의 전”으로 호칭하였는가? 맞다.

알-라트, 알-우짜, 마나트가 “알라의 딸들”로 호칭되었는가? 맞다.

유세프 알리는 라트, 우짜, 마나트가 “하나님[알라]의 딸들”로 알려져 있었다고 설명한다. (Yusuf Ali fn. 5096, pg. 1445)

꾸란은 한 부분에서 무슬림들에게 알-라트, 알-우짜, 마나트를 숭배하라고 말하였는가? 맞다. 꾸란 53:19-20

이러한 구절들이 현재의 꾸란에서 “폐기”되었는가? 맞다.

그 구절들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악마의 계시”

달신의 여러 가지 이름들(Sin, Hubul, llumquh, Al-ilah)은 다양한 다신교도 아랍 부족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다신교도의 신 SIN은 달신의 명칭이었다.

 

실제적으로 알라가 누구인가?

 

이슬람 신학자들(Mullahs, Maulana, Moulavis, etc.) 또는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르면 알라는 우주 안에 모든 것을 창조한 존재가 알라라는 진실을 알려주면서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의 천사를 통하여 (어느 날 갑자기?)선지자 무함마드에게 자신에 관하여 말하였거나 소개하였던 창조주 또는 최고의 신이다. 놀랍게도 꾸란은 실제로 누가 알라였고 알라와 다신교도들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에 관하여 “알라”라는 단어를 결코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99%의 무슬림들이 알라라는 명칭이 가브리엘이 그 진실(?)을 히라 Parvat(산)의 동굴에서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알려주고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주었을 당시에 생겨났거나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진실이 계시되기 전에 다신교도 아랍족들은 완전히 무지하여서 다양한 꼭두각시 여신들을 숭배하였고 그 다신교도들은 매우 사악한 사람들이었다고 믿는다. 나는 어느 이슬람 성직자들도 그 진실을 우리에게 말하여 주지 않았고 그들이 “알라”가 사실은 다신교 아라비아에서 이미 존재하였던 신이라는 이 분명한 진실을 믿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놀라운 위선 아닌가?

 

“알라”라는 명칭이 다신교도들에 의하여 그들의 주요한 신/신격으로 이미 사용되었다는 것을 제시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다:

 

(A) 그들이 무지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슬람 도래 이전 시대에 아랍족의 종교적 배경은 다신교적이며 근본적으로 정령신앙적 이었다. 달, 태양, 별들, 행성들, 동물들, 우물들, 나무들, 돌들, 동굴들, 샘들 그리고 다른 자연물을 통하여 인간은 신에게 교제할 수 있었다. 메카에서 “알라”는 신들 가운데 우두머리였으며 무함마드의 부족인 꾸라이시족의 특별한 신이었다. 알라에게 딸이 셋 있었고 알-우짜(비너스)는 그 중에서 가장 존중되었고 인신제사를 좋아하였고 마나트는 운명의 여신이었고 알-라트는 식물의 여신이었다. 알라의 이 세 딸들(그들에 관한 구절이 꾸란에 있다)이 모든 것들 위에 가장 힘이 세다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그들의 숭배자들을 위한 그들의 중보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B) 아랍인들은 자녀들에게 압둘라(알라의 종)와 같은 이름들을 지어주는 관습이 있었다. 명백한 증거는 무함마드의 아버지의 이름이 “압둘라”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리적인 유추는 이슬람 도래 이전 아랍에 “알라”가 없었다면 아라비아에 압둘라 또는 알라의 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C) 오늘날에도 무슬림뿐 만아니라 모든 다른 비-무슬림을 포함한 전 아랍 세계(유대인, 기독교인, 사비아교인, 바하이교인, 무신론자 등)에서 아랍인들은 놀라움 또는 불행/슬픔의 표현으로서 “야 알라(Ya Allah)"라고 말한다.

 

(D) Albert Hourani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는 이슬람 호칭은 이미 지역 신들 가운데 하나에 대하여 사용되었던 ”알라“인데 이 호칭은 지금 아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된다(A history Of Arab people by Albert Hourani, 1991, page-16,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USA).

 

역사는 우리에게 카바 신전 주변에 알라의 존재에 관한 두 가지 이론을 말해준다: (1) 다신교도들은 360개의 우상들 가운데 가장 큰 우상을 “알라”라고 부르고 그를 가장 최고의/우월한 신으로 간주하였거나 (2) 다신교 아랍족들이 카바신전 안에서 360개의 우상들을 숭배하였고 그들은 그 우상들이 보이지 않으며 전능하고 전지하며 절대로 알 수 없는 “알라”라고 부르는 유일하며 가장 힘이 센 으뜸 신의 완전한 지배 안에 있는 다른 작은 신들이라고 간주하였다.

 

힌두교와 놀라운 유사성들:

 

인도의 힌두교는 위의 두 번째 다신교 신앙과 아주 유사하다. 힌두교도들이 많은 다른 여신들을 숭배하지만 그들이 “Nirakar”라고 부르는 유일한 최고의 보이지 않는 신 “Bhagaban”(일부는 그를 “Ischhaar”로 부른다)에 대한 예외 없는 믿음을 가진다. 그러나 모든 힌두교인들은 그와 함께 다른 수 많은 신들을 숭배한다. 이 Bhagaban은 모든 다른 신들의 주군으로 간주된다. 일부 똑똑한 선지자가 힌두교인들에게 다른 여신들을 숭배하지 말고 이슬람처럼 유일신 종교를 만들어 Bhagaban만을 그들의 유일한 신으로 숭배하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것이 이슬람과 같이 다른 종교가 될 수 있을까?

 

다음은 “알라”가 아랍 다신교도들의 달신이었다는 것을 제시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다.

 

(A) 꾸란에는 알라가 달, 태양, 별들, 행성들, 밤, 바람 따위들과 같은 이름을 들어 여러 차례 맹세하는 적어도 12개 이상의 구절들이 있다. 왜 창조주 알라(?)가 자기 피조물들을 들어 맹세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보통 우리는 우리 보다 훨씬 우월한 것의 이름을 들어서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거나 우리의 (우리 보다 나이가 많고 우월하다고 여겨지는)아버지의 이름을 들어서 맹세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보다 못한 것의 이름을 들어 맹세하지 않는다. 여기 꾸란에서 알라가 달 또는 별들을 들어 맹세하는 모양새는 알라가 이러한 것들이 자신보다 우월하게 여겼다는 힌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꾸란에서 누가 실제로 알라로 행세하였는가에 관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꾸란 74장 32절 “달을 두고 맹세하사”에서 왜 꾸란이 달을 두고 맹세하는지 이유에 대한 설명에서 유세프 알리는 “달은 무지의 시대에 신으로 숭배되었다”(fn. 5798, pg. 1644)고 주석한다. 아마도 알라의 이 맹세는 다신교 관습에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달을 숭배하였던 평상적이고/문화적인 습관에 기인한 것이었다.

 

(B) 유세프 알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Page-1921-1623 of his English Translation of Holy Quran):

 

“달 숭배는 다양한 형태로 널리 인기 있었다.......쌍둥이 형제 자매 Apollo와 Diana는 태양과 달을 나타낸다. ....인도의 베다 종교에서 달신은 Soma였고 행성들의 주군이며...... 달은 고대 인도에서 남성 신이었다. 달은 고대 셈족 종교에서도 남성 신이었고 달에 해당하는 아랍어 단어 ‘qamar’는 남성형이고 반대로 태양에 해당하는 아랍어 단어 ‘shams’는 여성형이다. 아랍 다신교도들은 분명히 태양을 여신으로 달을 남신으로 보았다.

 

카바 안에서 그리고 메카 주변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다신교 신들은 라트, 우짜, 마나트였다. .....카바 안에 다신교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360개 우상들은 부정확한 태양력의 360일을 나타낸다. 이것은 동시대에 우리 선지자와 같이 꾸라이시족에게 알려진 대로 실제적인 근대적 다신교 숭배였다.“

 

(C) 이슬람에서 달의 영향

 

누가 무슬림의 삶에서 지고한 달의 영향을 부인할 수 있는가? 이슬람에서 달은 가장 거룩한 행성으로 여겨졌고 모든 이슬람 의식과 축제를 인도하는 빛이다. 라마단과 라마단 공휴일 날짜에 관한 반박과 논쟁은 아주 보통이며 분명히 그것은 만성적인 문제이고 달이 이 문제의 중심이다. 초생달과 별들은 많은 무슬림 국가들의 국기에서 상징적 표식이고 그것은 모스크위에, 무슬림 묘지 안에, 그 밖의 곳에서 볼 수 있다.

아라비아에 이슬람을 수립하기 위해서 다신교도들과 타협한 선지자 무함마드:

 

선지자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다신교 아랍족들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다신교의 많은 의식을 이슬람으로 받아들이는 교묘한 술책을 사용하였다. 무함마드는 그의 종교에 관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아부 서피안과 같은 다신교 지도자들과 많은 정치적인 협정을 했고 이슬람에 많은 다신교 의식들을 통합하기로 동의하였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다신교도들에게 가장 큰 하나님 “알라”만을 숭배하고 카바 신전에 있는 모든 다른 신들과 여신들의 우상들을 파괴하도록 요구하였다. 하나님의 유일성을 수립하기 위하여 그는 그들에게 여러 차례 알라에 대하여 어떠한 경쟁자도 만들지 말라고 요구하였다(이것이 꾸란에서 알라에 대하여 어떠한 경쟁자도 만들지 말라고 요구하는 수 백 개의 구절들을 볼 수 있는 이유이다). 결국 무함마드는 다신교도들이 모든 우상들을 파괴하도록 확신(물론 힘으로)시킬 수 있었고 그 대가로 (아마도)알라의 명칭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명칭으로 가장 유명한 다신교도 부족들의 여신들의 “명칭”들을 가지기로 동의하였고 그로인하여 이슬람은 알라에 관한 99개의 명칭들을 가지고 있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다신교도들이 아직 메카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 이 다신교도들의 의식에 참여할 것을 명령하였다.(유세프 알리 fn. 214, pg. 78를 보라). .....“[다신교도의] 순례 전체가 이슬람에 접목되었다....” (유세프 알리 fn. 223, pg. 80를 보라). (꾸란 2:200의) Tafsir에서 유세프 알리는 “다신교도 시대에 순례 후에 순례자들은 집단으로 모였고 거기서 조상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순례의식 전부가 이슬람에 접목되었으므로 이 순례의식의 뒷풀이도 마찬가지로 이슬람에 접목되었다. 순례자들은 순례가 끝난 다음에 이틀 또는 사흘을 묵는 것이 권장되었지만 그들은 그 날들을 기도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하여야 한다.(#223 of Shane’nazul by Maoulana Yousuf Ali, page-81)

 

이슬람에서 (오늘날) 알라의 이름으로 헌신적인 무슬림들에 의하여 수행되는 많은 의식들이 이슬람 이전에 존재하였던 다신교도들의 숭배행위와 연결되어있다. 일 년에 한번 카바 신전 순례, 라마단 금식, 카바 신전 주위를 7번 달리는 것, 검은 돌에 입 맞추는 것, 머리를 면도하는 것, 동물희생제사, 두 언덕을 달려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 마귀에게 돌을 던지는 것, 코로 물을 들이마시고 내보내는 것, 메카를 향하여 하루에 몇 차례 기도하는 것, 기부금을 내는 것, 금요일 기도회 같은 다신교도의 관습들은 오늘날 무슬림들에 의하여 엄격하게 지켜진다. 아무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며 오늘날 무슬림들의 성지순례에 관한 이상의 모든 의식들은 이슬람 도래 이전에 분명히 존재하였다. 다신교도들의 의식들 대부분을 새로운 종교 이슬람에 통합시키므로 무함마드는 성공적으로 다신교도 위기를 줄였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아주 그럴듯한 것이며 다신교도들의 마음을 정복하여 그들의 도덕성과 이슬람을 반대하는 세력의 대규모 몰락을 초래하였다는 것은 아마도 가장 중요하고 획기적인 시도들 가운데 하나였다.

 

메카의 중심 사원은 다신교도의 카바(알라의 전이라고 호칭된다)였으며 석조 구조물인 정육면체인데 여러 차례의 재건축을 하면서 아직도 존재한다. 한 쪽에 검은 돌이 박혀있는데 아마도 운석 같으며 그것에 입 맞추는 것이 지금 무슬림 순례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메카에 있는 검은 돌을 가지고 있는 사원 카바는 이슬람 도래 이전에 다신교 우상 숭배에 사용되었고 그 당시에 알라의 전이라고 호칭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아랍족들이 숭배하였던 신의 이름은 만신전의 신-Ali-ilah 신, 가장 높은 신, 모든 것의 생명 또는 운명을 미리 결정하는 자-최고의 신 “알라”였다.

 

우리는 꾸라이시의 여러 부족들에게 매우 신성시 여겨졌던 검은 돌의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 어느 날 이 신성한 돌이 다른 장소로 옮겨질 필요가 생겼을 때 여러 부족들 가운데 누가 이 신성한 돌을 운반할 것인가에 관하여 다툼이 생겼다. 그때에 가장 똑똑하고 의로운 소년 무함마드가(당시에는 선지자가 아니었다) 이 중대한 문제에 해결책을 생각해내었다. 그(무함마드)는 커다란 천위에 이 신성한 돌을 올려놓고 각 부족에서 한 명의 대표자가 나와서 이 천을 잡고 그 돌을 운반하라고 말하였다. 검은 돌이 이슬람이 생겨나기 오래 전에 존재하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말 하였을 뿐이다.

 

요약하면 이슬람이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개량된 다신교일 뿐이라는 것이 모든 이용 가능한 상황적 증거들과 분별력으로 진실하게 논리적으로 증명이 된다. 나는 이 모든 유일신 종교들이 적든 많든 유사한 기원들을 가진다고 믿는다. 유일신 종교에 관한 이 생각이 새롭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유일신 사고는 고대 파라오 왕들,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왕(3000 B.C.), 알렉산더 대제 (300 B.C.)에 의하여 선포되었다. 다른 점들은 이 왕들이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숭배되어야 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이슬람의 한국 침투전략

 
1955년, 한국에 이슬람이 들어온 것은 6.25 동란 때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던 연합군에 합류해 한국 땅을 밟은 터키 군대에 의해서였다. 이슬람이 한국 땅에 발을 붙인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이슬람 쪽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에 무슬림 숫자가 현재 15만 명이라고 한다. 그들은 한국을 무슬림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서울 한남동에 있는 이슬람 중앙 성원을 비롯해서 부산, 전주, 인천, 광주, 안양, 파주, 부평, 등지에 대규모 성원을 건축하고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4개의 이슬람 센터와 50여개의 이슬람 예배처소가 있다.

 

                                    ( 한국에 있는 이태원 이슬람 사원 )


한국 정부의 이슬람 지원

 

한국정부는 일체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도  대부분 엄청난 석유를 생산해 내는 중동의 이슬람국가들에게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때는 한국 이슬람 중앙 성원을 짓는데 한남동의 시유지 1,500평을 희사했다. 그리고 잠시 대통령직을 감당했던 최규하 대통령은 80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를 공식 방문했을 때 한국에 이슬람 대학을 건립하는데 적극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2개월 뒤 한국 정부의 이름으로 용인에 있는 국유지 43만 평방미터(약 13만평)를 이슬람 대학 부지로 헌납했다. 한국의 이슬람은 규모는 작지만 산유국들의 막강한 외교력을 배경으로 다른 종교에서는 꿈도 못 꾸는 일들인 국유지를 무료로 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의 선교전략

 

아랍국가들은 외국어 교육 붐이 일고 있는 한국의 현상을 잘 이용하여 산유국들의 장점을 선전하며 아랍어를 가르치고자 한다.  아랍어는 코란의 언어이기 때문에 아랍어를 배우려면 자연히 이슬람 강의를 들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들은 선생과 제자사이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선교전략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 2002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아랍어를 제 2 외국어로 선택 할 수 있도록 한국의 교육법이 바뀌었다. 물론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무슬림들이 얼마나 노력 했는지는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지금은 아랍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슬림 남성들이 한국 여성들과 결혼해서 자녀들을 낳으면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중고등학교에 진학 할 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한국의 교육법에 주어진 혜택을 누리게 해 달라며 강력하게 아랍어 선생 채용을 주장할 것이다.

 

언론사와 매스컴 이용


 

이들은 매스컴의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언론사 종교 담당 기자단을 초청하여 특별 강연을 2006년 한국 이슬람 선교위원회 사업계획으로 잡았다. 또한 이들은 2004년에 한국의 교육방송(EBS)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이슬람 13부작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이슬람국가 15개국을 순회하면서 촬영 편집한 동영상을 13회에 걸쳐 방송 했다. 이것은 국민의 교육세를 받아 운영하는 공영방송을 이용하여 이슬람이라는 특정 종교를 홍보하는 멋진(?) 작품이었다. 이 이슬람 13부작은 2005년에 방송 프로듀서 작품상을 받기도했다.

 

역사를 가르치는 중 고교 교사들을 초청하여 이슬람을 교육


 

1989년 9월 제1회 이슬람 역사 바로 잡기의 일환으로 서울 지역 중 고교 역사 담당 교사들을 초청하여 이슬람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그 후 해마다 1-2회씩 이러한 행사들을 하고 있다. 2006년에도 두 번 중고교 교사들을 초청하여 이슬람 강연회를 가졌으며 8월 2일에는 이화여대 부설 중등교육원 공통사회 부전공 연수교사 37명이 서울 이슬람 중앙 성원을 방문하여 황의갑 박사(한국이슬람교 중앙회 사무총장)의 ‘이슬람 문화 이해’라는 주제강의를 1시간여에 걸쳐 듣고 질의응답시간을 갖는 등 이슬람 문화 이해를 돕기 위한  자리를 가졌다.

 

주한 이슬람 공관장 자문 위원회


 

1998년 4월 27일 주한 이슬람 공관장 자문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는 한국에 있는 이슬람 국가의 대사들로 구성되는 모임인데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이슬람을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고 공관장으로서 그들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의논하여 한국의 이슬람화를 지원하는 모임이다.

 


한국을 이렇게 이슬람화 할 것이다.

 

그럼 그들이 어떻게 한국을 이슬람화하려 하는가? 2005년도에 발간된 한국 이슬람 연맹에서 출판한 한국이슬람 50년사에 이들이 발표한 미래의 선교계획이라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1) 마스지드 건립


 

이슬람 사원을 아랍어로 마스지드라고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서울 중앙 성원을 비롯해 9개의 이슬람 성원이 있으며 4개의 이슬람 센터와 50여개의 임시 예배소가 있고 국내외 약 15만 명의 무슬림들이 예배와 종교적 의무를 실천하고 있다. 매년 늘어나고 있는 무슬림들을 위한 새로운 성원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 국제 이슬람 학교 설립


 

무슬림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한 교육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영어로 가르치는 초등학교 유치원 및 어린이집을 만들어 어려서부터 이슬람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오일 달러를 받아서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다른 유치원들의 거의 절반 값으로 이런 학교들을 운영한다면 많은 한국인 엄마들이 자녀들을 그 곳으로 보내고 싶어 할 것이다.

 

3) 이슬람 문화센터 건립


 

이슬람 문화센터를 다와센터(Da’wah Center)라고 부른다. 이는 선교센터라는 말이다. 한국 이슬람 전래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종교 사회 문화를 알리고 교류할 선교 및 문화 공간을 가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슬람 문화센터를 서울에 개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거기서는 많은 이슬람국가들의 언어교육부터 시작하여 상설 이슬람 교리강좌 등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이슬람을 뿌리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4) 꾸란 번역 위원회


 

지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꾸란들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여 이해가 어렵고 내용상의 오류가 많은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새로운 꾸란을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서 매주 토요일에 꾸란 번역위원들의 정기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비정기적으로 연구 토론 모임을 가지고 있다.

 

5) 이슬람 대학 건립


 

1970년대 말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사업이다. 1977년에 쿠웨이트 사업가 쉐이크 압둘라 알리 알무타와가 한국 이슬람 중앙회를 방문하여 제안한 이슬람 대학 설립 계획은 1980년 7월 최규하 대통령이 이슬람 대학부지 43만 평방미터를 기증함으로 구체화 되어 지금 추진 중에 있다.

아마 이 대학이 건립되면 완공식에 이슬람국가 원수들 혹은 장관들이나 왕자들이 참석하여 각종 특혜와 전액 장학금, 진학에 따른 학위 보장 및 취업보장들을 약속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머리 좋은 수재들이 밀려들어갈 것이다.

한국 이슬람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고급 무슬림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이들은 삽시간에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 예상 된다.

 


천년 사원 이집트 카이로의 옛 시가지에 자리한 알아즈하르 사원.

서기 971년 파티마 왕조가 건립한 이 사원을 모태로 태어난

알아즈하르대학은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이슬람 전통에 바탕한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으로 꼽힌다.

 

6) 이슬람 관련 서적 출판 위원회


 

지금까지 많은 이슬람 서적들이 나와 있다. 이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책들과 인쇄물들을 만들어 홍보하고자 한다. 그들이 이렇게 문서 선교에 힘쓰는 이유는 한국에는 문맹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에 대한 자료들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면 누구든지 읽어서 스스로 터득한다는 것이다.

 

7) 한국 여성들과 결혼 및 출산 전략

 


이슬람권에서 한국에 근로자로 들어 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불법체류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취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는 아내가 한국인이고 남편이 외국인이면 남편에게 체류허가를 발급해 준다. 그동안 불법체류를 한 사람일지라도 합법 체류자의 자격을 얻게 된다.

무슬림권의 결혼제도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일부 다처제도이다. 그래서 자기 나라에서 결혼을 하고 가족들이 있는 사람도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서 또 한 사람의 부인을 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자녀들을 낳아서 무슬림들의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느린 방법인 것 같지만 이미 유럽은 이 방법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중동 전문가 버나드 루이스 교수는 “이번 세기가 끝날 때면 유럽에선 무슬림이 비(非)무슬림을 추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의 10% 정도인 600만 명의 무슬림이 있지만 신생아 4명 중의 한명은 무슬림 자녀라고 하니 25%의 신생아들이 무슬림이라는 말이다. 이대로 가면 유럽의 무슬림 숫자는 2025년에 이르면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며 독일은 이대로 가면 2041년에 무슬림 인구가 독일 원주민들 숫자를 추월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출산 전략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언젠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기자가 쓴 칼럼에 [한국은 곧 이슬람 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을 이슬람화 하면 동남아와 극동을 이슬람화 하기에 쉬울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이슬람 국가가 되기에 적합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나라다. 

한국의 정부는 다른 모든 종교보다 이슬람에 특혜를 주고 있다. 어떤 이슬람 국가에도 선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없지만 한국에는 완벽한 종교의 자유가 있다. 아무도 이슬람의 선교를 방해할 자가 없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은 범사에 종교성이 많아서 어떤 이단들도 쉽게 발을 붙일 수가 있다. 특히 이슬람에서는 자녀 교육문제를 파고들어 교육법을 바꾸어 놓았고 중고등학교 교과서 편찬위원회에 이슬람 박사를 집어넣어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이슬람에 대한 혐오스런 부분들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준비가 완료된 상태라 할 수 있다. 이제 이슬람 대학이 건립되면 본격적으로 드러내 놓고 공격적 선교로 나올 것이 빤하다.

기독교의 복음의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거짓 영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합심기도하며 철저한 선교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장재언) 
 
출처 http://blog.cgntv.net/blog/blog_main.asp?no=613234&id=pem0205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타종교 아닌 기독교 이단’ 경계하되 긍휼 대상으로 이해
 불링거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는 교활하고 위선적 …
꾸란은 고대 교회 모든 이단의 거짓을 모은 것에 불과” 질타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종교개혁은 유럽사회가 로마 가톨릭교회 중심의 중세적 질서체제에서 근대적 민족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편 이 시기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을 향한 군사적 팽창과 영토 확장이 최고조로 달했던 순간이었다. 종교개혁의 여파로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고조되던 16~17세기는 오스만 제국에게 유럽으로 영토확장을 위한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종교개혁 직후인 1520년 오스만 군대는 헝가리를 침공하여 중부유럽을 장악했고, 여세를 몰아서 1529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오스트리아 빈까지 포위했다. 오스만 군대의 빈 공략은 유럽 전체가 공포에 휩싸일 정도로 가공할만한 사건이었다. 또한 이 무렵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떤 시기보다 고조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심지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기독교인들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이슬람의 유럽 점령이 가시화 된 것뿐만 아니라 이슬람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종교개혁자들 중에서 이슬람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루터, 칼빈, 쯔빙글리, 불링거와 같은 신학자들이 있었지만 가장 이슬람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이슬람 책을 저술하였던 신학자는 불링거(Johann Heinrich Bullinger, 1504~1575)였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로서 40년 이상 교회를 효과적으로 이끈 탁월한 지도자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신학자요, 설교자요, 상담가였다.

1.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이해

 

첫째, 불링거의 저서 <터키>(Der Tuergg)를 통해 본 이슬람

불링거는 1567년에 <터키>(Der Tuergg)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여기에서 터키란 당시 오스만 터키라는 의미와 함께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은 내용상 ‘이슬람’이라고 써도 무방하다. 이 책은 이슬람에 관한 불링거의 가장 중요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의 표지에 요한계시록 9장 16절과 17절을 실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 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그는 그 시대에 터키인들이 유럽으로 물밀 듯이 쇄도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루터처럼 어떤 종말적인 분위기를 느꼈음에 틀림없다. 책의 첫 장의 제목이 ‘이슬람의 신앙과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하여’이다. 그 책의 첫 문장을 “터키인들의 신앙은 무함마드의 신앙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바로 이어진 문장에서 그는 무함마드를 교활하고(listig), 비열하고(dueckisch), 위선적(glychssnerisch)이라고 특징지었다. 이 책의 둘째 장의 제목은 ‘기독교 신앙만이 참된 신앙이며 그렇게 남아 있다’인데, 첫 문장이 “한 마디로 하나의 오래되고 참되고 거룩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신앙이 세상의 시작부터 있었는데”라고 하여 기독교 신앙의 진리성을 천명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무슬림의 신앙과 삶에 대한 전형적인 비판이다. 특별히 불링거는 디모데전서 4장과 골로새서 2장을 인용하면서 무함마드와 그와 같은 교훈들을 심지어 ‘사탄의 교훈’(tuefeles leeren)이라고까지 불렀다.

 

둘째,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

불링거는 이슬람을 타종교가 아닌 기독교 이단으로 보았다. 그가 1566년에 펴낸 것으로 여겨지는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에서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면서 이슬람의 가르침을 ‘잘못된 가르침’(Irrlehren)이라고 하였으며 이슬람교도들을 가리켜 이단자라고 칭하였다.

뿐만 아니라 꾸란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삼위일체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특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유일한 중보자로서의 존재도 부정하는 이단이라고 생각했다. 이슬람의 이단성을 처음 연구한 사람은 현재의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살았던 비잔틴 신학자 요한네스(Johannes)였다. 그는 무함마드가 죽은 지 약 20년 후에 태어났다. 만수르(Mansour)의 명문가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이슬람군주 무아위야 1세(Muawiyah1, 602~680) 아래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무아위야 1세의 뒤를 이은 왕이 기독교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자 요한네스는 예루살렘 근처의 마르사바(Mar Saba)수도원에 은신하여 이슬람을 연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저술인 <지식의 근원> ‘제2부 이단에 관하여’ 에서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 이유는 “무함마드가 이단이였던 아리우스파 수도사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이슬람이 시작되었으며, 꾸란에서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며, 영으로 언급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단이다”라고 하였다. 불링거는 요한네스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셋째, 불링거의 꾸란에 대한 이해

불링거에게 꾸란은 고대 교회의 모든 이단들의 거짓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 꾸란의 기원을 하나님이 아니라 무함마드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더불어 꾸란에 담겨있는 이단적인 요소들을 지적하였다. 무함마드가 신에게 받았다고 하는 계시와 비전(Vision) 역시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꾸란은 이단 사제의 도움과 완고한 유대인과 잘못된 기독교인의 조언이 섞였으며 아리안(Arians), 마케도니안(Macedonians), 네스토리안(Nestorians)과 같은 이단들에 의하여 부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꾸란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유일한 중보자 되심도 부인한다. 이같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부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기독교 신앙의 주된 교리의 부인한다. 불링거는 금식, 기도, 구제, 알라와 이슬람을 위하여 싸우다 죽음으로서 모든 죄에서 해방된다는 교리를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무함마드에게 묻는다. 또한 영생, 예배, 결혼 등에 대한 꾸란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았다.

 

넷째, 이슬람 지배 아래서 기독교인의 태도

불링거는 1551년 헝가리의 이슬람 정권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헝가리 기독교 지도자들의 편지에 대하여 1551년 6월에 선명하고 원론적인 답신을 보냈다. 성경의 신자들이 사도시대에 우상을 숭배하는 로마제국 아래서도 살았으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의 통치 아래서 바벨론 포로가 된 상태에서도 살았다. 이러한 신뢰 속에서 불링거는 헝가리 신자들에게 예레미야의 가르침을 근거로(렘 29:7) 평안 중에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무슬림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특별히 불링거는 헝가리와 동유럽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우리 모두의 죄악과 관련된 것임을 밝혔다.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의) 회초리를 벌었다.” 불링거는 헝가리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슬람 종교로 인한 고통을 탓하기 전에 그들 자신들을 먼저 살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링거는 헝가리 교인들에게 핍박이 올지라도 하나님이 금지하신 이슬람의 신앙과 의식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불링거 역시 루터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침략을 하나님의 징계로 보았고, 이와 관련하여 헝가리 기독교인의 회개와 경건회복이 요청된다는 것을 편지에 언급하였다.

 

2. 불링거가 주는 교훈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견해를 다루면서 우리에게 주는 두 가지의 교훈이 있다. 하나는 분별의 척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기독교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많은 부분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이슬람에서 유일신에 대한 고백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대한 고백은 없다. 또한 우리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은 대속의 은혜인데, 예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대속이 없고 공덕에 의한 구원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기독교의 구원 진리를 심각하게 왜곡한 점에 있어서는 당연히 경계의 대상이다. 우리 시대에 그들이 아무리 미사여구의 평화의 말로 접근해 올지라도 그들의 정체를 바로 알고 경계해야 한다. 또 하나는 이슬람에 대하여 경계할 것은 경계하되 그들 역시 선교의 대상으로 여기며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불링거는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자들의 믿음과 삶에 대하여 보다 긍정적인 암시를 제공한다 즉 무슬림 또한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란 점에 있어서 긍휼의 여지는 있다. 특히 이 점은 불링거에게 있어서 돋보이는 점이다.

 

3.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적용

종교개혁 당시와 같이 다시 한번 21세기 거대한 종교로 우뚝 선 이슬람은 국제사회를 공포와 위협으로 압박하며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한국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구체화된 친 이슬람정책으로 인하여 작년 한 해 동안 이슬람 관광객 1백만 명이 우리나라를 다녀갔으며 할랄 시장의 확대 등 정부는 이슬람 인구를 맞이할 준비로 분주한 듯하다. 이슬람은 더 이상 중동의 종교가 아니다. 전 세계 이슬람 인구의 3분의 2가 아시아에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슬람 인구가 많은 나라는 국민의 80%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약 1억9000만) 두 번째, 인구의 96%가 무슬림인 파키스탄(약 1억7000만) 그리고 인구의 89%가 무슬림인 방글라데시(약 1억5000만) 등이다. 이 나라 이외에도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스탄 등 5개국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인력 송출국 속에 포함되어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 이슬람 인구도 성장하고 있다. 1956년 208명이었던 한국 이슬람인구는 1970년 3700명, 2009년에는 9만1000명으로 성장하였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이슬람의 도전 앞에 이슬람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에 따라서 더 이상 이슬람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밀려오는 이슬람의 도전 앞에 한국교회는 응전을 준비해야 한다. 이슬람이 세상을 뒤흔든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이해 위에서 세상을 보고, 교회의 역할을 권고했다. 지금 세대에도 동일한 눈을 가진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전진되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이슬람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이슬람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며, 이슬람을 무조건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루터나 칼빈, 불링거처럼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무슬림도 십자가의 능력으로 전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이슬람교, 기독교와 차이점은

 

 


이슬람, 기독교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며 차이점은 무엇인가를 알아봅니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무함마드가 단독으로 22년 간 받았다고 하는 계시로서 기독교 신약성서의 약 4/5에 해당하는 분량이며, 성경의 많은 각색된 이야기들과 움마를 위한 규범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꾸란에 있는 많은 성경의 내용들이 성경의 내용과 다르게 기술되어 있기는 하지만 예수에 대한 언급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며 가장 위대한 예언자들 중의 하나로 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이 대립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슬람이 예수에 대하여 굉장한 존경을 갖고 관대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에 도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물론이고 부활사건을 부인한다. 그러기 때문에 대속의 원리가 이슬람에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 말미암아 두 종교는 평화의 종교보다는 폭력의 종교 모습을 띠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두 종교 간 대립의 결정적 요인이기는 하지만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유일신교의 근원을 볼 때 왜 같은 하나님을 두고 서로가 싸우는가 하고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혼란은 결국 예수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믿음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고, 이 문제가 해결 되지 않음으로써 이슬람권 선교에 나섰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슬람을 더 알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이 이슬람의 도전에 직면한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과 그 성경이 지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에 혹은 누구에 대해서’ 아는 것과 ‘무엇 혹은 누구를’ 아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슬람에 대해서 알되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 바라며 두 종교의 유사점이 무엇이고 다른 점이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자.

우선적으로 보면 두 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사상은 시간에 대한 것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창조 신앙으로서 세상의 처음과 종말사상을 지니고 있다. 창조의 과정이 다르게 기술되어 있기는 하지만 직선적 시간 개념이나, 시간을 비롯한 모든 것의 주관자가 창조주라는 사상은 인간의 죽음과 부활 심판과 연결되며, 유일신 사상에 근거한다.

유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와 이슬람이 유일신 종교로서 모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그 뿌리의 공통성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고대 근동 지방의 다신론적 상황에서 아브라함의 소명은 유일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 방법이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그는 만물의 주권자시라는 것이 유일신 종교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이다.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통로가 될 것임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기독인들은 믿는다. 바로 이것이 세 개의 유일신교가 대립하는 이유가 된다.

유대교는 아직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본질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거부한다. 따라서 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유일신 사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다신론자 혹은 불신자라고 비난한다. 유일신(타위드라) 사상은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며 모든 교리와 사상의 근거가 되는데, 무슬림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했다면 이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슬람에서 알라(기독교 하나님과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표기하겠다)는 완전한 초월자이며 아무도 그를 알 수 없다. 알라와 인간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다(무슬림들 이름 중에 압둘라는 ‘알라의 종’이라는 뜻이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종의 행위에 따라 상과 벌이 주어지는 관계이다. 그런데 기독인들은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른다. 절대 초월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 예수 그리스도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고 그의 상속자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관계인가?

무함마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알라를 예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슬림들의 행위는 알라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행위이든 정당화된다. 심지어 인간은 알라를 위해 죽고 죽일 수 있다고까지 한다. 필자는 어떤 무슬림 학자가 ‘이슬람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죽고,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정확한 지적이다. 알라의 영광이라는 명분으로 죽고 죽임을 서슴지 않는 극단적 무슬림들을 보라. 이런 알라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본래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사 인간을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히 비교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랑의 차이를 알면 기독인으로서 이슬람을 대할 때 어찌 흔들림이 있겠는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런 이해와 더불어 결정적으로 두 종교 간에 다른 점은 죄와 구원관이다. 이것은 인간이해와 관련된 문제이다. 아담의 선악과 사건을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실수로 이해한다. 이런 실수는 죄가 아니고 인간의 연약성 때문이므로 인간이 실수를 하지 않도록 알라는 인생 가이드북의 결정판인 꾸란을 보냈고, 꾸란이 지시하는 대로 지키기만 하면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원죄를 찾아볼 수 없고 원죄를 없애줄 대속의 개념도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기 죄는 자기가 선행으로 갚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은 행위의 종교가 되는 것이고 무슬림들이 다섯 가지 실천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슬람은 전적 타자(他者)에 의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구원관과는 완전히 다른, 자력 구원의 개념을 함의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아담의 불순종을 원죄로 이해한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없이는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인간 안에 있는 자기 내재적인 죄성을 보고자 하는 가난한 심령이 아니면 이해 할 수 없는 대속의 원리다.

이슬람 지역의 사람들은 누구나 무슬림으로 태어나서 그들이 전수한 신앙 외의 다른 것을 생각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모로코의 여성 정치 사회학자 파티마 메르니씨는 이슬람 세계의 가부장적 역사와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 자신이 무슬림인 것은 이슬람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지 자신의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한바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근본적인 비판, 즉 꾸란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신성모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서 자기정체성의 문제는 비단 메르니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자신의 인격적인 결단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움마 내에서 이슬람을 따르고 있지만, 고넬료 처럼 갈급한 심령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없이는 궁극적 평안을 어떤 종교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 선교에 대응하여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슬람의 선교전략으로 인해 과거 기독교지역이었던 서구유럽지역이 이슬람화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인구의 10% 이상이 무슬림이고, 러시아와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도 무슬림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그러면 그 사회에서 이슬람법 적용이 요구될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도 기독교의 안전지대가 더 이상 아니다. 소위 일류학교 캠퍼스마다 무슬림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은 향후 이슬람 학교에서 중요한 지식 인적 자원으로 사용되기 위해 준비 내지는 완료한 상태이다. 무슬림들이 자기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선교하는 것을 방해할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일은 적어도 막아야 하지 않은가? 이슬람으로 기독교인들이 개종하는 이유는 대부분 교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인데, 만약 기독인이 바른 신앙관을 갖고 있다면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본 두 종교가 비슷한 점을 든다면 바른 기독교신앙관이 없는 이들은 쉽게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 신앙이나 유일신관은 이슬람교 전파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한 한국 무슬림 학자들이나 무슬림들이 한때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성공시대의 영웅주의적 교회 교육을 중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성경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무슬림들에게 아름답고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인 기독교 공동체를 보여줌으로써 그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질문하게 해야 한다.

 

 

은혜스런 찬양과 설교를 원하시면
유튜브 미션스쿨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션스쿨 바로가기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서울에서 만나는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이태원의 이슬람사원(한국이슬람교중앙회)

 

 

파란하늘빛과 눈부신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태원 이슬람사원의 좌측면이 몽환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파란하늘과 뭉게구름이 어우러진, 그러나 햇살이 무척 뜨거웠던 오늘 27일, 전부터 가보려고 찜해 두었던 이태원의 이슬람사원을 답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인상깊은 장면을 목도했다.

수화로 아기에게 이야기하는 한 젊은 엄마의 모습.

아기는 엄마의 수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루종일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아기가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얼마나 심심할까.

또 아기에게 자신의 사랑을 말로써 적극 전달할 수 없는 이 젊은 엄마는 얼마나 답답할까.

 

 

그러나 수화를 하는 사람들은 말할 수 없기에 오히려 눈빛과 몸짓에 절실한 마음이 더 깊이깊이 담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기도 점점 크면서 엄마의 뜻을 알 수 있겠지.

그나저나 외국어, 신조어 등은 도대체 수화로 어떻게 표현할까.

또 점자책은 어떤 체계로 이루어져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 온전한 신체를 가진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정말 행복한 인간이로구나.

 

이슬람사원을 찾고 나서 일단 나무 아래 벤치에서 좀 쉬웠다가 찍기에 나섰다.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오니 햇살이 정수리에 들이부어졌다.

길 중간중간에 있는 지도판을 보고서도 약간 헷갈려서 헛걸음 좀 쳤다가 '삘'을 받아 소방서 옆길로 들어서니 곧 해답을 찾았다.

골목길에 있는 곳은 찾기가 애매해 답사 초보시절에는 정말 온 동네를 다 휘젓고 다니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 오래 헤매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원숙미?

 

가는길에 무슬림마트, 서점, 옷가게, 식료품점을 지났다. 평일이라 그런지 골목이 한산하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이슬람사원의 독특한 정문. 그런데 앞에 너저분한 전기줄들이 늘어져 있어 약간 성소聖所의 위엄을 흐트러 트리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파란 문양 디자인이 쿨한 느낌을 주었다.

하기야 성과 속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일 테니 이런 모습이 크게 볼썽사나울 것도 없다.

정문에서 쑥 들어간 가운데 흰 벽이 가로막고 그 양 옆으로는 각각 계단과 포장길로 나뉘어 있어 비밀스런 느낌이 들었다.

벽에는 아랍어로 길게 쓰여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위엄어린 말씀이겠지.

'알라(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

 

계단으로 올라서니 이슬람사원의 좌측면 모습이 보였다.

하얀 벽면이 파란하늘 아래 눈부시게(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빛나고 있다. 오, 지중해풍 느낌인데?

땡볕바닥에 카펫들을 말리고 있었는데 똑바로 펴서 널어놓지 않고 그냥 대충 팽개쳐 놓은 듯.

그런데 이렇게 놔야 햇볕과 바람이 뜬 사이로 잘 들어 살균소독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주부 9단 마이 마더의 지혜다.

뭐든지 반듯반듯한 게 다는 아닌 것이다.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로 세워진 이곳은 1976년에 건립되고 1991년에 증축한 한국 최초의 이슬람사원으로 정식명칭은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이다.

한국정부에서는 부지를 내어주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국가들이 건립 및 증축 비용 전액을 내어 세운 뜻깊은 재한 이슬람교 총본산이다.

 

마침내 마주한 사원의 정면. 터키나 이란의 장엄하고 화려한 모스크들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지만 이곳이 한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그리고 한국정부와 이슬람 국가들의 합작으로 지어진 이슬람사원이라고 생각하면 꽤 뜻깊다.

중동으로 많은 근로자들이 파견되던 박통 시절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듯도 하다.

중동에서의 건설사업을 따내기 위해서는 현지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주소는 용산구 한남2동이지만 흔히 이태원 사원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이곳.

이 사원은 단순히 이슬람사원이 아니라 가장 공신력있는 이슬람문화연구소이자 한국 내 무슬림들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쉼터이다.

김선일 사건 때 폭파 위협을 받기도 했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중동, 아랍, 이슬람은 같은 성질로 파악되기 쉽지만 틀렸다.

중동이란 영토욕에 눈이 먼 구미열강들이 임의로 붙여놓은 지역구분으로 사실 동양이란 구분만큼이나 오리엔탈리즘적인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아랍이나 서남아시아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아직까지도 국경, 민족, 종교 문제로 내전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슬람이 과격한 종교여서가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들이 남긴 비극적 유산 탓이다.

 

 

 

사원 기둥 사이로 보는 오늘의 날씨

 

풍부다채로운 문화와 인종만큼이나 아프리카, 아시아는 많은 자원도 가진 나라들이었다.

탐험가라는 자들은 말이 좋지 사실 새로운 땅(자기네들 입장에서)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대박을 터트리려는 환상을 품은 한탕주의자들에 불과했다.

이들의 '발견'을 토대로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마귀 같은 탐욕을 부려 잘 살아가고 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이 멋대로 쪼개지고 인적, 물적 자원이 마구잡이로 약탈당하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지고 분쟁이란 지뢰가 묻어졌다.

 

현재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게 참담한 고통을 당하는 까닭도 그 배후에는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묵인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조지 부시라는 무지막지한 자의 무지막지한 비리행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다큐멘터리 같은 어느 영화를 통해서도 전세계에 폭로된 바 있다.

 

아랍 국가들의 이런 비통한 역사적 사정을 모르고 무작정 이들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본다면 우리는 한국인도 아니다.

일제가 조선을 잔악하게 유린한 것도 제국주의의 단꿈에 빠져 있던 구미열강들의 아주 좋은 시범사례 덕택이다.

우리가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갈 때 죽음을 무릅쓴 고종황제와 칙사들의 애원을 외면하고 일제의 손을 들어준 이들이 누구인가.

그걸 생각할 때 우리는 아랍 국가들에게 동질감을 느껴야 한다. 미국 눈치를 보느라고 싸잡아서 아랍 국가들을 멸시하고 경계해서는 안된다. 그러다가 정말 큰 코 다칠 수 있다.

 

 

 

 

성상이 없이 오직 특이한 제단만 있는 예배실(남성만 출입 가능)과 그 내부의 벽 장식 타일. 나는 이런 파르스름한 문양이 정말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아랍 국가들만 이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전세계 16억명 이상의 신도를 가진 이슬람교는 아랍권에서는 18%, 비아랍권에서는 82%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이슬람은?이라는 책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가까운, 발리섬으로 유명한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로 전국민의 약 90%인 2억명 이상이 이슬람 신도라고 한다.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을 통해 보듯이 우리는 아랍권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영혼까지 무슬림인 아랍권 국가에 선교하러 간 것도 참 밉살스런 행태지만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가 탈레반이 설치는 곳인 것을 모르고 갔다고 하면 귀신이 방귀를 뀌겠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갔으면서, 그리고 한국정부의 위신을 말할 수 없이 추락시켰으면서 지금와서 또 무슨 몰상식한 짓들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국내에 이슬람세계 전문가와 아랍어에 능통한 인재들이 극히 드물어 여러모로 큰 고초를 겪었다는 사실은 한국이 미국만 알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랍 국가들과의 교류는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이슬람문명은 유럽문명이 암흑의 중세에 갇혀 있을 때 찬란한 과학기술과 기록문화를 꽃피워 르네상스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중국과 조선의 천문학(역법, 관측기구), 의학의 발달에도 막대한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고려 때는 황도 개경에 이슬람사원이 있었고 조선 초에만 해도 세종이 공식석상에서 사신 자격으로 참여한 이슬람 성직자가 꾸란(코란)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다고 할 정도였다고.

지금은 원유의 70% 이상을 아랍 국가들에서 들여오는데다 아직도 아랍 국가들에 따낼 가치가 큰 많은 사업권이 있다고 한다.

한국과 아랍 국가들간의 우호친선 관계는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함을 통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말로만 듣던 꾸란을 직접 보는 귀한 기회.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니 눈이 핑~돌았다.

우리는 한국인임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

경전의 표지도 역시 이슬람스럽게 화려하다.

 

 현란 그 자체

 

이 자리에는 한국이슬람을 이끄는 정신적인 지도자 이맘(천주교의 대주교급?)이 앉을 것 같다.

 

 

원리가 정말 궁금한 이 제단. 반드시 메카 방향이라고 한다.

 

장식문양타일만으로도 이렇게 화려하고도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곳도 소박하지만 쿠폴라(돔)이 있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엄숙하고 성스런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출처 보았노라 느꼈노라 썼노라|게낭파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어떻게 탄생했나?

 

 

이슬람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꾸란(Quran)1)은 천상(天上)에 원본(原本)이 있으며 무함마드(Muhammad, 571?-632, 이슬람교 시조)에게 계시된 완벽한 경전이라고 주장한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또 꾸란으로 신구약성경의 진위(眞僞, 참과 거짓)를 구별하는 기준을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신구약성경은 여러 사람이 천 오백여 년 동안 쓴 것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많지만 꾸란은 알라(Allah, 이슬람의 하나님)가 무함마드2) 한 사람에게 계시한 것이기 때문에 혼돈과 오류가 없고, 무함마드가 처음 계시를 받은 때부터 지금까지 일점일획도 변치 않고 원본이 그대로 보존돼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점에 의심을 품으면 거룩한 꾸란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하며 꾸란이 변질되었다거나 한 구절이나 한 단어라도 추가되거나 삭제되었다고 말하는 자체가 알라(Allah)의 저주를 자초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믿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모순이 이슬람의 가르침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슬람 학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슬람의 확장을 위해 그리고 이슬람권에서의 자신의 영향력과 신분 유지를 위해 또 사실을 말했을 경우 직면하게 될 핍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맘 부카리(Bukhari)3)나 이맘 무슬림(Muslim)3)이 수집한 하디스(Hadith, 무함마드의 언행 집)4)는 이슬람교에서 공식적인 경전은 아니지만 꾸란 경전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꾸란 보다 더한 권위가 부여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의 교리를 설명할 때 제일 먼저 무슬림들이 의무적으로 행해야 할 다섯 기둥에 대해서 가르친다. 그러나 꾸란에는 이 다섯 가지 의무를 모아 놓은 곳이 없다. 이는 이맘 부카리가 편집한 하디스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교리나 가르침에서 문제점을 제기할 때 어떤 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하여 말하기 보다는 꾸란과 이맘 부카리 혹은 이맘 무슬림의 하디스의 내용을 인용하여 반증한다면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서는 하디스에 비교적 많은 자료가 있다. 그런데 그 자료들은 지금 우리가 주변에서 듣고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제일 먼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무함마드는 신(神)으로부터 책을 받은 일도 없고, 그가 죽을 때까지 꾸란을 책으로 만든 일도 없고, 후대 무슬림들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책으로 묶어 만들라고 명령한 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꾸란에는 알라(Allah)가 무함마드에게 책(꾸란)을 내려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꾸란은 알라가 무함마드에게 성경의 모체가 되는 책을 내려주셨다고 말한다. “그대에게 그 책을 계시하신 분은 알라이시며 그 안에는 근본의 말씀이 있어 성경의 모체가 되고…”(꾸란 3:7) “그분의 종(무함마드)에게 그 책(꾸란)을 계시한 알라께 찬미를 드리나니 그 안에는 일점의 왜곡됨도 없노라.”(꾸란 18:1) 이 두 구절 외에도 꾸란에는 여러 곳에서 알라는 무함마드에게 책(al-kitab, the Book)을 내려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슬람의 꾸란이라는 경전은 주후 632년 무함마드가 죽을 때까지 없었다. 즉 이슬람의 역사와 하디스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죽을 때까지 꾸란을 책의 형태로 만든 일이 없었다. 다만 그가 간헐적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암송하는 소리를 들었던 제자들이 그 내용을 나뭇잎이나 돌 등에 새겨놓고 암기하기도 했던 것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꾸란의 내용을 암기하던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게 되어 무함마드의 계시가 소멸될 위기에 놓이게 되자 우마르(Umar)의 제안에 이슬람의 첫 칼리프 아부 바크르(Abu Bakr, 573-634)가 그것들을 모으게 하였고, 1차 수집한 것을 우마르의 딸 하프사에게 맡겼다가 결국 3대 칼리프 우트만(Uthman, 577-656)의 명에 의해서 하프사가 가지고 있는 것과 흩어져 있던 꾸란의 구절들을 수집하여 종합 편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외에는 어떤 종류의 완본이든지 조각 본이든지 모두 불태우도록 명령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10)

 

 

초기 무슬림들은 꾸란을 책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부카리의 하디스에 의하면 무함마드가 죽은 후 전쟁터에서 꾸란을 암송하던 사람들이 죽고 전쟁이 더 심해져 꾸란 암송 자들이 다 죽어버리면 꾸란 자체가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그 구절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묶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주저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 명하지 않았던 일을 그의 허락 없이 행한다는 것은 그것이 비록 자기들이 볼 때는 좋은 일이지만 알라가 나중에 그 일을 어떻게 심판하실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일이라는 확신이 들자 아부 바크르는 자이드 빈 타비트(Zaid bin Thabit, ?-665)에게 명하여 꾸란의 조각들을 모으라고 명했던 것이었다. 아부 바크르의 이 같은 명령을 받은 타비트는 산을 옮기라는 명령보다 더 어려운 명령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했다고 한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09)

무함마드는 자기가 계시 받았다고 말했던 꾸란 구절들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무함마드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낭송해 준 구절들을 나중에 망각하고 잊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낭송하는 것을 듣고 생각났다고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다음의 하디스 구절이 그 증거다. “메신저(무함마드)께서는 사원에서 낭송 자가 꾸란을 낭송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는 내가 잊었던 그것을 생각나게 했으니 나는 알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Sahih al Bukhari:Volume 6, Book 61, Number 562) 꾸란의 구절을 망각하는데 대한 계시는 꾸란 자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취소하거나 망각케 한 어떤 계시의 구절이 있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낫거나 비슷한 것을 가지고 온다. 알라(Allah)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너희는 모르느냐?”(꾸란 2:106, 힐럴리 역)

 


꾸란을 낭송하는 방법은 원래 여러 가지였다. “알라의 메신저(무함마드)께서 가브리엘 천사가 내게 꾸란을 어떤 식으로 낭송해 주기에 내가 다른 식으로 낭송해달라고 계속 부탁을 했더니 결국은 7가지 방법으로 낭송해 주셨다.”고 말했다.(Sahih al Bukhari-Volume 6, Book 61, Number 513) 꾸란은 원래 다양한 방법으로 낭송할 수 있도록 계시되었다고 이슬람의 제 2경전이라고 하는 부카리의 하디스에게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무함마드는 가브리엘 천사가 내려준 꾸란을 그대로 받은 것이 아니라 무함마드의 요청에 의해서 가브리엘 천사가 낭송하는 방법을 7가지로 다시 계시해 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무슬림들은 7세기에 무함마드가 낭송하던 한 가지 억양과 발음과 악센트로 낭송해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의미도 모르는 아랍어로 꾸란을 낭송하게 하는 것일까?

우트만 꾸란의 편집이 완료되었을 때 꾸라이시 족들이 교정을 보았다. 우트만은 3명의 꾸라이시 사람들에게 “자이드 빈 타비트의 꾸란 중 어느 부분이라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꾸라이시 방언으로 기록하라. 왜냐하면 꾸란은 그들의 방언으로 계시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07)

꾸란을 수집할 때 실수로 빠뜨렸던 구절들이 있었다.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 꾸란을 가장 잘 외우고 있었던 4사람이 있었다. 무함마드는 사람들에게 압둘라 빈 마수드, 쌀림, 무아드, 우바이 빈 카압 이 네 사람에게 꾸란을 배우라고 명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21)

그러나 무함마드 사후 초대 칼리프를 역임했던 아부 바크르는 자이드 빈 타비트에게 꾸란을 모으라고 명령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09) 타비트는 실수로 꾸란의 한 구절을 빠뜨렸다고 고백하고는 나중에 무함마드가 낭송하던 것을 들었던 생각이 나서 그 구절을 찾아 나섰다가 결국은 쿠자이마 빈 타비트 알 안싸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구절은 꾸란 쑤라 타우바(9:128~129)였다고 기록되어 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10)

계시된 꾸란 구절이 즉시 수정된 경우도 있다. 꾸란 4:95에 “무슬림 중 알라를 위해서 전쟁에 나가 싸우는 자들과 집에 앉아 있는 자는 동등하지 않다.”는 구절이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었다고 하여 자이드가 기록하려는데 그 때 아므르 빈 움막툼(Amr bin Um Maktum)이라는 소경이 무함마드 뒤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오 알라의 메신저여 나 같은 소경에 대한 당신의 명령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다음과 같은 계시가 다시 내려왔다는 것이다. “무슬림 중 알라를 위해서 전쟁에 나가 싸우는 자들과 불구자도 아닌데 집에 앉아 있는 자는 동등하지 않다.”(꾸란4:95)(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12)

 

 

꾸란에는 사탄에게 받은 계시도 있다. 무함마드가 소속되어 있던 메카의 꾸라이시 족이 섬기던 신 알라(Allah)에게는 세 딸 신(神)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라트, 우짜, 마나트였다. 그들에 대한 꾸란이 계시되었는데 “너희는 라트, 우짜, 마나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느냐? 저들은 하늘 높이 나는 학과 같아서 그들의 중재는 알라께서 열납하시느니라”(꾸란53:19~23)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알라의 단일신론을 주장하면서 딸 신들을 인정하는 것은 교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계시를 취소하는 새로운 계시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계시는 지금 꾸란에 있는 것처럼 세 딸들의 권위를 부인한다.(꾸란 53:19~23) 그러자 사람들이 왜 알라의 계시가 바뀌었냐고 물었을 때 “그 구절은 사탄이 내 혀에 넣어준 것이었기 때문에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에 의해서 취소되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Al Tabari Hadith Book6 No. 107)

그와 같은 것을 보편화시키면서 인정하는 구절도 있다. “그대 이전에 우리가 보낸 선지자나 예언자들이 계시를 낭송할 때 사탄이 거짓을 그 속에 섞어 넣지 않은 자는 없다. 그러나 알라께서는 사탄이 섞은 것을 취소하시고 자신의 계시를 세우셨다. 알라는 모든 것을 아시고 지혜로우시다.”(꾸란 22:52 힐럴리 역)

꾸란에서 사라진 구절도 있다. “알라의 말씀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때 그 계시함이 무엇인가는 알라만 아심이라. 이에 그들이 그대는 위조자라고 말하나 그들 대다수는 알지 못하더라.”(꾸란 16:101 최영길 역) 대체라는 말은 하나를 취소하고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말인데 하늘에 원본이 있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이 같은 꾸란에 대해 미화 된 홍보용 자료들이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꾸란은 사실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부터 수시로 취소 또는 첨가되기도 하며 대체되기도 하는 변화를 거듭해 왔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책으로 묶을 생각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 꾸란의 구절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는 계시가 분명히 꾸란에 있었고 무함마드도 투석(投石) 형(刑)을 집행했고 그의 후계자들인 칼리프들도 투석 형을 알라의 명령으로 알고 집행했는데 지금은 꾸란에 그 구절이 없다는 것을 보더라도 양심 있는 무슬림 학자들이라면 꾸란이 하늘에 원본이 있었던 것이 그대로 책으로 계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쓴 이 /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출처 / 기독일보 2010.9.15.

1) The Quran is the central religious text of Islam, which Muslims believe to be a revelation from God. It is widely regarded by Muslims as the finest piece of literature in the Arabic language . Quranic chapters are called suras and verses, ayahs.
 2) Muhammad Prophet is considered in Islam to be the greatest messenger and prophet sent by God to guide humanity to the right way. Born: Mecca, Saudi Arabia, Died: June 8, 632 AD, Medina, Saudi Arabia, Full name: Abū al-Qāsim Muḥammad ibn ʿ Abd Allāh ibn ʿAbd al-Muṭṭalib ibn Hāshim, Buried: Green Dome, Medina, Saudi Arabia, Spouse: Maymunah bint al-Harith (m. 629 AD–632 AD)
 3) 이맘 부카리(Bukhari) : 하디스를 수집한 유명한 이슬람 학자로는 이맘 부카리, 이맘 무슬 림 등이 있다.
4) Hadith are collections of the reports claiming to quote what the prophet Muhammad said verbatim on any matter. The term comes from the Arabic meaning “report”, “account” or “narrative”. Wikipedia 하디스(아랍어: حديث نبوي)는 무함마드가 말하고(Qaul), 행동하고(Fi’ul), 다른 사람의 행위를 묵인한(Taqreer) 내용을 기록한 책이며 꾸란(코란), 이 즈마, 끼야쓰와 함께 샤리아(sharia law, 이슬람법)의 4대 원천이다. 무슬림은 알라의 말씀인 꾸란과 더불어 하디스에 기록된 무함마드의 언행(순나)에 따라 행동함을 삶의 기반으로 한다. 종교의 시조의 말을 담은 종교적인 어록인 것이다

 

은혜스런 찬양과 설교를 원하시면
유튜브 미션스쿨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션스쿨 바로가기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예수관에 대한 비교연구

(- 이슬람적 관점을 통한 고찰 -) 

 

남옥정 / 조선대학교 강사

Ⅰ.서론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는 세계종교사에서 포괄적이고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양 종교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교리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에 관한 것이다. 이슬람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엄격한 유일신 사상이다. 그리고 신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크리스트교에서 예수는 요컨데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무슬림은 믿을 수 없는 부분이다. 신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으며 무슬림은 예수를 신이 아닌 가장 훌륭한 예언자들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양 종교간의 예수에 관한 견해의 차이가 있다. 즉, 예수를 신으로 보느냐, 아니면 단지 예언자로서만 인정하느냐의 교리적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논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는 현대 역사에서 왜 대립구조를 갖게 되었는가? 양 종교는 갈등과 대립의 관계일 수 밖에 없는가, 아니면 화해와 화합도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에 논자는 이슬람과 크리스트교의 첨예한 견해차이들 중 하나인 예수의 지위와 성격에 관한 비교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양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그의 지위에 대한 인식은 양 종교의 교리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슬람교에 관한 인식은 크리스트교에 비해 매우 빈약한 형편이다. 그에 비례하여 크리스도교인과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이슬람교에 관한 편견이나 선입관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에서 5명 중 1명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고, 이슬람교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어떤 점으로든지 이슬람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이 논문을 통해 세계 3대 종교에 속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한 부분에 관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예수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하여 양 종교간의 갈등과 대립의 관계의 시발점을 찾아 양 종교의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예수에 관한 비교 연구는 꾸란과 성서에 근거하여 수행할 것이다. 예수에 관한 꾸란과 성서의 언급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 마리아에 대한 서약, 예수의 탄생, 예수의 기적들, 예수의 신성의 임무, 예수와 십자가, 예수와 신성, 예수와 삼위일체설이다2).

 

Ⅱ.예수 이전의 예언자들에 관한 고찰

예수의 비교연구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을 살펴보고 예수의 혈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으로부터 아랍인과 이스라엘인, 그리고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분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자식이 아니고, 이삭만이 유일한 독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오류로 인하여 이 사실을 주장하기는 힘든 듯 하다. 신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시험에 들게 한 장면에서 꾸란과 성서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그 일 후에 신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부르시되......(중략)......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아브라함이 가로되, '여기 있습니다.'하니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이제야 신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장 1-12절)

구약성서에 언급된 이삭의 희생 이야기에서 이렇듯 독자라는 대목이 여러 번 나왔다. 이 사실을 이슬람적 시각으로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즉,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었으며, 설사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장남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신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구원의 위대한 언약을 받게 될 '네 씨'에 속하지 못하였으며,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삭의 중요성에 비추어 이스마엘은 인간의 생식본능이라는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개념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어 구원의 이야기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삭은 유일한 독자로 묘사되어 희생명령을 통한 예언적 임무를 부여 받았으며, 이 독자의 개념은 신약성서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독생자의 개념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3).

반면, 꾸란에 나타난 내용은 극히 대조적이다.

"아들의 나이가 그와 함께 일할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가 말하길 '내 아들아, 너를 제단에 올리라는 명령을 내가 꿈에서 보았노라. 너의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구나,' 라고 하니 아들이 말하길 '아버지 당신께서 명령받은 대로 하옵소서. 신이 인내하는 종을 원하신다면 당신께서 저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였더라. 그 둘이서 신께 순종하고 그는 그로 하여금 이마를 숙이도록 하였을 때, 신은 그를 불러 '아브라함아, 그대는 이미 그 꿈을 수행하였노라. 신은 이렇듯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내리니라.' 실로 이것은 분명한 하나의 시험이었으니, 신은 훌륭한 희생으로 그를 대신하였노라." (꾸란 37장 102-107절)

꾸란에 따르면 이 일이 있은 뒤, 아브라함의 이삭의 잉태계시를 받는다.

꾸란과 성서에 나온 희생이야기를 살펴본 바 꾸란의 시각으로 볼 때, 성서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에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은 86세(창세기 16:16)였고, 이삭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은 100세(창세기 21:5)였다. 따라서 이스마엘이 이삭의 손위임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3세나 손위였으며 이스마엘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이삭을 독자라 부르기는 어렵다. 오히려 독자란 언급은 이스마엘에게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주장이다4).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브라함은 성서에서 주장하듯 이삭을 독자만으로 볼 수 없고, 이스마엘을 장남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로 신은 그대에게 계시하였거늘 이는 노아나 그 이후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것과 같으며 도한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후손과 예수와 아이욥과 유누스와 하룬과 솔로몬에게 계시한 것과 같으며, 다원에게 시편을 내린 것과도 같으니라."

(꾸란 4장 163절)

아브라함은 신의 예언자임을 계시 받았는데, 그의 후손들, 즉, 이삭뿐 아니라 이스마엘, 또한 이삭의 아들인 야곱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그의 후손들에게 내린 계시와 같다는 것이다. 이는 아랍인과 이스라엘인, 즉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신이 다르지 않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겠다. 성서와 꾸란 구절이 대립된 양상을 띄는 부분도 있지만, 그 대립의 바탕에는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즉, 유일신론을 가진 아브라함의 가계라는 근본이 깔려있다. 이와 같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동일한 신을 믿으며, 그들의 선조는 동일 인물이었다는 근본 생각을 바탕으로 예수에 관한 비교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Ⅲ.예수에 관한 성서와 꾸란의 언급

 

첫째, 예수에 관한 꾸란의 언급은 마리아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꾸란 이므란의 장에는 마리아의 탄생이 언급되어 있다. (꾸란 3:35-365))

이므란가에서 태어난 마리아는 신의 특별한 보호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신은 사가랴에게 그녀를 돌보도록 하였다. 마리아는 신에게 선택되는 행운을 얻어 모든 여성들 가운데 최고라는 극찬받는 위치를 얻었다. 꾸란에서 다른 여성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고 시바의 여왕도 이름없이 여왕으로만 기록되었는데, 마리아만 이름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이븐 마르얌(Ibn maryam), 즉, '마리아의 아들'이란 칭호로 나오며, 단독으로 나올 때는 거의 아무런 역할과 위치가 없다6). 성서와 마찬가지로 꾸란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잉태계시를 받는다. 또한, 마리아의 장에는 더욱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다른 여인들과 차별되며, 꾸란은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둘째, 예수탄생의 이야기에 관해 꾸란과 성서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 예수탄생 이전에 사가랴와 요한의 탄생이 언급되어 있다. 꾸란에서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아랍어로는 Zakariy?)는 마리아의 성장을 보살핀 신앙심이 깊은 제사장이었다. 꾸란에서는 요한과 사가라, 그리고 마리아를 늘 함께 언급하고 있다.

2. 사가라는 노인이며, 그의 아내는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돌봄으로서 세례요한을 얻었다. 그 예증으로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다.

3.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예언받는 것은 사가랴와 그의 아내가 요한을 잉태한 후이다.

4. 예수의 탄생장소는 성서는 배들레헴의 사관의 구유이며, 꾸란은 종려나무 숲으로 기록되어 있다. 압둘라 유수프 알리는 이곳이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6마일쯤 떨어진 베들레헴이라고 풀이한다.

5. 꾸란에는 마리아가 출산의 고통을 겪었음이 기록되어 있는 반면 성서에는 출산의 고통에 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꾸란과 성서 모두 위의 언급을 통해 예수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났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양 종교에서 예수의 해석을 달리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트교에서 예수의 탄생은 인간의 혈육관계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신으로부터 나온 독특한 아들 개념을 말한다. 하지만 예수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신의 아들임을 철저히 부정하고 오직 알라 외에는 신은 없으며, 예수는 신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는 반박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복음서의 상당 부분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기적을 행하고 공식적,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보냈던 해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신약성서는 우리가 '기적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 단어로 묘사하였다. Wonders, signs, mighty works, works 이 여기에 해당한다7).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기적은 치료사의 예수로서 돌보시는 신을 보여주며, 자연현상의 기적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이 신의 일을 행한다는 것을 가르치며, 기적을 통하여 자신을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꾸란에서 기적에 해당하는 단어는 아야(?yah)이다. 이 용어는 신의 증거 또는 신성의 메시지란 의미 중 하나로 일반화되었다. 아야의 의미는 기적, 또는 꾸란의 구절을 의미한다. 신성한 메시지와 그것의 증거를 가리키기 위해 똑같은 단어를 채택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신성한 메시지 그 자체가 기적을 증명하는 으뜸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꾸란은 무슬림들에게 예언자의 가장 위대한 기적으로 간주된다8). 성서와 마찬가지로, 꾸란에는 예수의 기적이 언급되어 있으며, 꾸란 3장과 5장의 내용에 따르면 꾸란은 예수의 기적을 인정한다. 하지만 예수의 기적을 인정하는 것은 크리스트교의 예수의 기적과는 다르다.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예수의 기적은 돌보시는 신을 보여준다고 하였다9). 이는 신을 대신하는 예수의 기적행위가 아닌, 예수의 기적 자체가 신과 동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말하는 예수가 행한 기적은 단지 신과 예언자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의미로 한정된다.

 

넷째, 성서와 꾸란의 예수의 임무는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하며 신에게 귀의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꾸란에는 예수가 예언자일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도래를 예언한 구절이 있다. (꾸란 61장 6절) 이 구절을 통해 무함마드의 정통성과 더 나아가 예수와 무함마드는 예언자적인 동등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함마드에 대한 계시가 아랍어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그가 이 계시를 바탕으로 신의 율법을 실행했다는 점일 것이다10).

 

다섯째, 꾸란에서 예수와 십자가의 문제를 논할 때 최대의 쟁점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했는가, 아니면 살아있었는가의 문제이다. 크리스트교에서 십자가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아담이래 모든 사람들의 죄를 그가 짊어졌다는 의미이며, 이는 예수의 부활과 함께 그의 신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대리자적 속죄 죽음'의 의미로 간주된다11). 무슬림들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꾸란은 예수의 십자가 못 박힘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마리아의 아들이며 신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다12)."

위 구절은 이슬람교 기독론의 핵심이다. 바로 여기에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슬람교의 모든 종파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한다. 이슬람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교리인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일부 무슬림 현대 학자들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죽음 사건과 반대되지 않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시도는 전체 무슬림들의 믿음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역사적으로 이슬람교는 공식적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교리를 전면 부정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의 이해 관계에서 매우 민감한 부분이며, 이슬람교의 예수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결정적 단서이다13).

 

여섯째,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한 주장과 함께 예수의 신성에 관한 주장도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상호 대립하는 부분이다. 꾸란 112장에 의하면 알라는 낳지도 낳으시지도 않았음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며 선지자일뿐이며 그는 이전에 등장한 선지자들과 동일한 자격과 의미를 지닌다. 이는 크리스트교의 삼위일체설과 관련된 사항이다. 성서 자체에는 '삼위일체(Trinities, Trinity)'라는 말이 없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개념은 성서적 구속사에서 기초적이고 지배적인 사상으로 발전되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개념의 문제는 역사적 기독교의 실제적 관심사이기도 했다14).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에 의하면 "삼위일체는 하나이고 유일하신 참 주님이시다. 그리고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인 동시에 동일한 본체에서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바로 말하며, 믿으며,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15)." 이 말에 크리스트교인들의 무슬림에 대한 신의 유일성에 대한 주장의 핵심이 들어있다. 하지만, 꾸란은 삼위일체의 개념을 부정하며 오직 한 분의 신만을 인정한다. 삼위일체의 개념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는 무슬림의 유일신관을 부정하는 개념이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꾸란에는 신은 성자와 성부를 두지 않았음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성서의 백성들아! 너희 종교에 지나치지 말고 신께 진리만을 말하라.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 예수는 신의 예언자이니, 그 분께서 마리아에게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영혼을 보내셨다. 그러니 신과 그 분의 예언자들을 믿고 '셋'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치라. 너희에게 이로울 것이다. 신은 진정 한 분이시다. 아들이 있다니, 그 분께 영광이 있으라!" (꾸란 4장 171절)

크리스트교인들은 무슬림들이 예수가 육체적 의미의 신의 아들로서 오해함으로써 이와 같은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지적한다. 또한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파울루사르라힙(Paulusar-R?hib)은 13세기 시돈의 수도승이었는데 그는 『크리스트교 교리의 설명』에서 유일신 믿음에 관하여 말했다. 그가 언급한 내용은 삼격 안에 하나의 본질인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신은 삼격이지만 신이 이성(성자)과 생명(성신)을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유일신이라는 것이다. 즉, 유일신 안에 상격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의 아들은 육체생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불가사의한 방법을 통하여 탄생한다는 것이다. 위의 주장에 대해 무슬림인 알 까라피(al-Qar?f?)는 "고약한 질문에 대한 뛰어난 대답"이라고 말하며, 이에 대해 한 줄 한 줄 논박하였다. 그의 반박은 크리스트교에 대한 이슬람식 반론이 되었다. 알 까라피는 말하길 "크리스트교인들은 꾸란의 각 장 도입부분에서 읽혀지는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신의 이름으로'란 구절을 인용하여 그들의 삼위일체론을 뒷받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이격을 만들었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되었다. 하지만 꾸란속에서 그와 같은 것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꾸란은 신의 유일성을 강조 한다. 복음서라 불리는 크리스트교의 성서는 신의 계시를 왜곡했다."

알 까라피의 반론은 지나치게 간략화 된 듯 하다. 하지만 그의 반론은 삼위일체론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입증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16).

 

Ⅳ.결론

본 논문은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선조는 동일하며, 그들은 동일한 신에게 동일한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출발하였다. 만약 이에 대한 양 종교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예수에 관한 양 종교의 주장을 비교하여 절충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위와 같이 꾸란과 성서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예수관을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기적적으로 태어났고, 복음을 전파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예수의 지위에 관한 미묘한 입장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꾸란 속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수에 관련된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교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꾸란은 예수를 적대시하지 않고 예언자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슬람은 예수가 신으로부터 복음서를 부여받고 이를 백성들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17). 이와 같은 사실은 이슬람교가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종교라는 것을 말해주는 실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에 발생한 이슬람교 극단주의자들의 불상파괴 소식은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도 역시 대부분의 이슬람교 신자들은 꾸란을 잘못 이해한 극단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도 이슬람교가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 종교다원화시대를 맞이하여, 양 종교간에는 얼마든지 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서로 대립되는 부분에 관한 관용적인 학문적 고찰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예수관의 비교는 양 종교간의 우월성을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 양 종교간의 이해와 절충을 이끌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각 주1) 이 논문은 2000년 9월 29일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연구소 제6회 초청강연회 겸 한국아랍어ㆍ아랍문학회 추계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그 내용을 수정ㆍ보완한 것임.

2) 황병하, "코란 속의 예수와 성서 속의 무함마드에 대한 비교연구" 『한국이슬람학회 논총 창간호』, 1990, p. 23.

3) 황병하, Ibid, pp. 15-16.

4) Ibid., pp.9-10.

5) F. E. Peters,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Princeton University Press, New Jersey, 1990), p. 117

6) 전재옥, 『무슬림은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 서울: 예명 커뮤니케이션,1995. pp.27-28.

7) 마이클 하퍼(Michael Harper), 『예수의 치유』 고재봉 역, (서울: 요단 출판사, 1988), p.163.

8) Maulana  Al?, The Religion of Islam, (Printed India by Jainendra Prakash Jain at Shri Jainendra Press. New Delhi, 1994), p. 181.

9)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예수에 관한 12가지 질문』유선명 역, (서울: 주식회사 흥성사, 1996), p. 69.

10) 김용선, 『코란의 이해』 (서울 : 민음사, 1990), p. 48.

11) 성종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장신논단, 장로회신학대학 출판부』, 1990, p. 238.

12) 꾸란 4장 157-158절

13) 전재옥, op. cit., pp. 43-44.

14) 한국종교연구회, 『세계종교사입문』, (서울: 청년사, 1991), pp. 493-494.

15) Battenhouse, R, W, A Companion to the Study of St. Augustine, p. 38.

16) Hans K?ng et al, Christianity and the World Religion, (Doubleday, New York, 1986), pp. 113-114.

17) 황병하, 『아랍ㆍ이슬람문화』(조선대학교 출판부, 2001), p.193.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이슬람 가족공동체 이해를 통한 선교전략 / 움마 다르 일부다처제 수피즘

 


장훈태-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선교학


들어가는 말


2001년 9월 11일 테러 사건 이후 지구촌 사람들은 이슬람1)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관심과 함께 이슬람 관련 방송, 학술세미나,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왜 이런 현상들이 갑자기 일어나는 것일까라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라민 샤네 교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가장 큰 차이중의 하나는 기독교는 성경을 현지어로 번역하지만 이슬람은 꾸란을 현지어로 절대로 번역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아랍권의 종교적 근본주의가 세계 각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사회의 도덕성이나 사회 참여에 대한 프로그램 또는 마인드보다는 개인적인 신앙차원 즉 종교적 사유화에 더 집중되어 있다. 반면 이슬람은 교회와 국가를 구분하지 않고 양자를 통합시키는 사고 체계를 갖고 있다2)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하거나 이해기 부족하여 혼돈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한 오해가 있다.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기독교의 또 하나의 형태라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슬람 신앙을 알라와 신자의 개인적인 관계로 보고 있는데 이것이 이슬람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다. 우리는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종교의 창시자이자 첫 번째 이슬람 국가의 건국인 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본다.3) 정치와 종교의 일치를 통해 그들은 또 하나의 집단을 이루며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스리랑카의 이슬람이다. 스리랑카 무슬림들은 가톨릭계의 중 · 고등학교를 인수한 후 무슬림 학교로 변경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4) 이들은 하나의 종족집단을 형성하여 기독교와 대항하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 선교사들이나 외국 인권단체의 보고를 통하여 우리는 계속 이슬람 국가에서 일어나는 기독교 신자들이 당하는 박해소식을 보면 알 수 있다.5) 이슬람은 종교의 다원화를 거부하고 종교가정치, 사회의 모든 분야를 독점하려고 한다. 이슬람은 영혼구원을 위한 종교 본질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강제적이라도 이슬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사회의 종교적 비관용성은 날로 더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이 관용의 종교라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 전호진 박사는 ‘이슬람 원리주의는 자기들 나름대로는 할말이 있을지 모르나 합리성과 정당성을 상실한 극단의 논리이다. 특히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이슬람을 정치 이데올로기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슬람 사회도 이슬람을 이데올로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6) 이런 지적과 함께 이슬람의 가족제도에 대한 일반적인 특징과 이슬람 공동체의 복음전달, 장애요인과 가능성에 대한 진단을 통하여 복음 전달의 접촉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Ⅰ 이슬람의 가족제도


1.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Ummah)


이슬람은 전 세계 인구 63억의 21%에 해당하는 13억의 무슬림을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7) 최근 들어 무슬림의 성장속도는 어느 종교보다 빠르다. 이슬람은 96%로 가장 높고, 힌두교는 63%, 기독교는 55.6%이다.8) 특히 무슬림은 서부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에 걸쳐 살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무슬림 성장은 대단했으며, 1900년도에는 12.3%에서 2000년은 21.1%로 성장했다. 이는 대부분 높은 출생률과 이주로 인한 성장이다. 서부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미국에서는 개종으로 인한 성장률이 가장 높은 추세이다. 이처럼 급성장 하는 이슬람의 원동력은 무엇이며, 이들의 집단적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바로 이슬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A. D 622년 메디나(Medina: al-Madina, 도시)9)로 피신하면서 기본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마호메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메디나에 살고 있던 정주자로서 그들을 지원한 안사르(Ansar)와 메카에서 온 자신의 추종자인 ‘무하지룬’(Muhajirun)의 형제를 맺게 함으로10) 한 집안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ummah; 대가족)의11) 주요한 기원이 되었으며 ‘이슬람 형제애’를 이룩하는 기초가 되었다. 메디나의 무슬림 공동체는 단순한 공동체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국가이며, 그 후의 사건의 경과로 인해서 제국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 이슬람 공동체 형성의 또 하나의 원인은 무함마드가 죽기전에 행한 마지막 설교에서 ‘이슬람의 형제애’를 역설하였다고 한다.


이슬람의 잠언에서도 한 무슬림이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무슬림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이란의 혁명가였던 호메이니는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후 "우리 이슬람은 다른 정부와 다른 지역에 거주할 지라도 한 가족이다"라고 선언하므로 이란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이슬람은 무슬림을 형제애로 묶어주는 공동체를 움마라고 하고 이를 알라 신이 세운 거룩한 기구로 믿는다. 이슬람 사회에서 움마의 구속력과 기본적인 특징은 가정이라는 숭고한 체제 속에서 길러지고 북돋아지는 경건성과 도덕적 행위이다. 이러한 배경을 보면서 가족 구성원들과 그에 딸린 식구들의 권한, 의무, 특권과 관련된 분명하고 상세한 훈계와 지시 사항들이 꾸란과 하디스(hadith) 문서에서 발견된다. 더욱이, 가정 생활의 실질적인 모델은 우리가 사랑하는 선지자의 삶의 형태로 주어진다. 무슬림에서 움마는 사회의 기본단위로서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로서 가정은 상호적인 의무가 있다. 개인은 그 자체로 중요치 않고, 사회적인 존재로서 중요하다.12)


이러한 배경에서 무함마드가 형제애와 평등사상을 강조하게 된 원인은 메카에서 13년 동안 신의 계시를 전달받으면서 활동했던 시기를 메카시대라고 한다. 미신을 타파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해야 한다는 유일신 유신론 사상13)의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 메카에서 그의 주된 임무였다면 메디나에서는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인하여 야기된 부족간의 갈등을 치료하고 메카 아주자와 메디나 후원자 및 유대인들 간의 서로 다른 정치적, 종교적 목적을 융화시켜 하나의 공동체(ummah) 즉 이슬람 신앙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그의 메디나 사명이었다. 그래서 그는 먼저 형제애 사상을 고취14)시켰다. 이슬람에서 형제애 혹은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한 핏줄을 이어받은 것을 강조할 뿐 아니라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 모두가 신의 아들이며 딸이라는 것을 내세워 신 앞에서는 인간 모두가 똑같다는 평등사상을 펼쳐 나간다. 그러나 이슬람의 형제애 혹은 평등사상을 보게 되면 남성 중심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스크 사원을 출입하는 것이나 집안에서의 활동을 보면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 허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구별되어 있다.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에서 여성의 위치는 상당히 위축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15) 최근 들어 여성 해방운동가들에 의해 무슬림 여성의 활동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꾸란에 나타난 움마는, 먼저 윤리적 공동체로서 신자들이 선행을 서로 격려하고, 악덕을 미워하며 배제하는 곳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움마는 단순히 신자들이 모이는 종교 공동체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움마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가 되 철저한 신정국가(theocracy)일 뿐 아니라 순수한 종교와 순수한 정치의 분리가 불가능하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분리가 없다.16) 따라서 움마라는 이슬람의 공동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정교분리는 상상할 수 없다. 종교와 국가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연합체이며, 이것이 후에 이슬람이 확산되는데 중요한 모체가 되었다.17) 실질적으로 이슬람 사회에서 국가는 신정(神政)일 뿐 아니라 국가를 통치하는 왕이나 대통령은 살아있는 신과도 같다고 믿는다. 이슬람 국가에서 알라, 왕, 국가는 삼위일체일 뿐 아니라 이를 비판하거나 파괴하는 자는 처벌을 받게 될 만큼 종교와 국가는 연합체이고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에서 움마는 대가족일 뿐 아니라 일차적인 집단(움마)인 것이다.18)

 

2. 무슬림 가족과 일반적 특징


독실한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의 제도나 관습은 성스러운 율법으로 성립된 종교적인 정치체제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그 주권의 원천은 신이며 주권자인 칼리프이다. 즉 칼리프의 일차적인 임무는 이슬람을 지탱하고 전파하는데 있다. 그 율법은 신에 의해서 계시된 성스러운 법률이고 공인된 해석자들에 의해서 확충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이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단지 신앙과 의식과 종교적인 행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형사적인 문제는 물론 가족제도와 다른 사회에서는 세속적인 권력에 의해서 처리되어야 할 것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무슬림의 가족 혹은 이슬람의 넓은 집단 사회 가운데 그 기초가 되는 공동체인 가족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가 다른 문명사회와 비교해 볼 때 나름대로 특이한 가족제도와 관습을 가지고 있는데, 무슬림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제도들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19) 무슬림 가족은 율법의 기초아래 새로운 가정,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조직, 새로운 교리로서 가족을 이끌어간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무슬림은 상호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는 가족 공동체를 이루며 이를 중심으로 하여 활동한다. 그러면서도 가정내부에는 평등한 가족관계가 아닌 전향적인 평등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가정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무슬림의 가정은 때로는 무미건조해 보일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삶은 은은한 사랑이 배여 있는데 이는 공동체적인 삶의 패턴이 이를 증명하는데, 특히 무슬림들의 주거형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무슬림의 주거 형태의 표본은 다르(dar)라고 불리는 가옥이다. ‘다르’는 크든 작든 대부분의 가옥은 중앙에 위치란 마당, 경우에 따라서는 돔으로 덮인 마당과 연결된 방들을 보게 된다. 혹은 건물(bayt)들로 구성되기도 한다. 가옥들은 그 규모, 방들의 숫자, 분수나 멋지게 꾸민 수도시설, 스투코로 된 조각이나 회화, 기타 개인적인 용도의 시설물의 유무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20) 필자가 무슬림 가정을 방문했을 때 가옥의 구조가 지역이나 국기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보았지만 대부분의 가옥 구조는 비슷했다. 아프리카수단의 경우는 커다란 대지 위에 마당은 중앙에 위치하고 침실과 주방은 별도로 되어 있었다. 이집트의 경우는 시골을 제외하고 도시는 3층집으로 되어 있으면서 남성과 여성의 응접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개방화된 이슬람 지역(마그레브지역)에서는 공동체 중심으로 중앙에 거실이 있어 모두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었다. 집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싸롱을 중심으로 한 긴 의자는 침대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생활이 편리하고, 가족 공동체간의 결속력을 갖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시부모를 모시는 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며, 부모가 귀찮아 자녀를 괄시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대가족으로 한 집에서 함께 거주하며 음식을 나눌 뿐 아니라 명예와 수치까지도 함께 공유한다.

 

1) 결속력이 강한 무슬림 가정


앞에서 무슬림 가정은21) 공동체를 중심으로 성립되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서구사회의 가정이 선진화가 되어 개인적이면서 핵가족화 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무슬림 가정은 결코 개인적이 아닌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족공동체의 핵심은 남성 중심이면서 장남의 권위가 매우 높다.22) 무슬림 가족회의에서 의사결정이나 중요한 사항들은 장남의 의사가 상당히 반영된다. 물론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그 가정의 중심 역할을 한다. 한 가정 안에서 가족구성원의 행위나 결정이 독립적일 수 없으며 단절된 ‘너와 나’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무슬림 가정에서 남자가 분가할 경우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무슬림 가족 공동체로부터 분가한 형제들은 서구사회에 비하여 여전히 깊은 가족적 공동체와 유대관계를 갖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대개 독립을 한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 사이는 그렇지 않다. 부모와 자녀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신분상 위치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 울타리 안에 있다. 한 예로 자식이 이슬람 율법이나 종교적인 행위에 있어 범법을 행하였을 경우 부모가 모든 것을 책임을 져야 한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책임이 언제나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 준다.

 


2) 무슬림 가정에서 부모의 절대적 권위


무슬림 가정에서 부모는 모든 것에 대한 권위가 존중된다. 무슬림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대한 일종의 소유권을 가진다. 무슬림의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가혹한 학대를 가해도 다른 사람이 옆에서 간섭을 할 수 없다. 무슬림 사회에게 아동학대라는 용어를 찾기란 어렵다.


만약 자녀가 사회적 신분이나 명예가 있게 되면 전적으로 부모의 공덕으로 돌려진다. 자녀가 잘못하면 그것도 부모의 절대적인 책임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녀가 많은 부(富)를 가지게 되면 그것도 부모의 부와 다를 바가 없다. 그만큼 부모의 권위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절대적인 권위만큼 평온하거나 안정적이지는 못한 것이 무슬림가정의 단점이다. 무슬림 가정에서 아버지의 지배적인 태도 때문에 아내와 자녀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자유를 찾고자 하여 속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덧붙인다면 아내들은 이 부분에서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23) 그래서 아내나 자녀들이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무엇을 말하더라도 다시 그녀의 남편에게 옮겨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한 여인이 외적으로 사소한 말로 한 가정에 파문을 일으키거나 당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경우 이혼24)까지 초래한다. 이 같은 환경으로 인해 여성들은 부당한 취급과 법적인 구제책이 없는 결혼 생활에서 종종 정서적인 생존을 위해 교묘한 방법이나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기독교인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따르며 존경할 것을 권면한다.(엡 5:22-33).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순종에 대한 모델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르면서 순종"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사라가 원하는 대로 하갈을 아내로 취하기도 했고 또 그녀를 내쫓기도 했다. 아내들의 이슬람적인 순종과 성경적인 순종은 비교할 수 없다. 이슬람적 순종은 외적이고 그만큼 쉽게 할 수 있지만, 곧 모욕과 증오감, 복수심과 기만을 낳기도 한다. 반면에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마음에서 스스로 받아들이고 신뢰와 존경을 주며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충실함을 소중히 여긴다. 아무튼 무슬림 사회에서 부모의 권위나 남편의 권위는 절대적이지만 반대로 모순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무슬림 사회의 생활이 성경적인 토대 위에서 기초되었을때 부부관계, 자식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려내게 되며, 이는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된다.


3) 무슬림 가족 공동체의 명예심


이슬람 사회에 있어서 한 가정의 명예와 가족 구성원인 개인의 명예는 동일하게 여겨진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의 명예는 그 가족의 명예가 되고, 한 사람의 수치는 곧 바로 전체 가족에게 영향을 미친다. 가족 중에 하나가 명예를 더럽혔으면 그는 가정에서 추방되기도 하며 다른 누군가 자기 가족 중 한 사람을 욕되게 한다면 가족 전체 명예를 더럽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단순히 한 가족의 문제일 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친족 전체의 문제로까지 비화된다. 그만큼 가족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 사회의 가족의 역할로서 먼저 여성의 위치가 분명하고 투명해야 한다. 여성은 정숙함, 정절, 성적 부도덕이 있어서는 안 된다(수라 33:59; 수라 24:2-10; 24:21-16; 27-33; 수라 4:24). 여성들은 결혼에 있어서도 꾸란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먼저 신앙이 있는 배우자 선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수라 60:10; 수라 2:221; 4:25), 특정 결혼에 대한 금기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결혼의 금기 사항으로 근친상간이 있다(수라 4:22-27).


4) 무슬림 가정에서 모성(母性)의 중요성


무슬림 사회의 일반적인 상황은 어린이 교육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무슬림가정은 일부다처제이기 때문에 누가 아버지인가를 어린이에게 밝힌다. 입양에 관한 조항은 있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모성의 중요성은 더 강조된다.25) 무슬림들은 자녀를 낳고 기르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뜻을 가진 ‘낙원이 어머니의 발에 있다는 것을 잊어 왔다. 여성 및 무슬림 사회 전체는 이슬람이 성공적인 어머니 상이 무슬림의 종교적 완전성으로 본다는 사실을 망각해 왔다. 유아부터 성인초기의 기간동안 그들이 필요로 할 때 그들 곁에 있어주며 그들을 양육할 때 표현되는 어머니의 애정과 관심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치될 수 없다’는 것이다.26) Schleifer에 의하면, "무슬림 어머니들은 알라와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해 왔을 뿐 아니라 지식을 쌓는 등의 다른 활동들을 성공적으로 추구해 왔다. 무슬림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학자, 상인, 공예인, 심지어 비상시에는 군인으로서 활동하는 것은 이슬람의 견지에 상반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샤리아’(Sharia)의 관점에서 이러한 활동들은 의무로서 모든 여인들에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것들이다. 여성의 기본적인 역할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모성은 여성이 이생에서 존경받을 수 있고, 궁극적으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27)


무슬림 사회에서 모성의 중요성은 어린이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질서 정연하게 양육 받은 아이들은 몇 가지를 기억하며 일생을 살아야 한다. 어린이는 먼저 ‘너희를 낳아준 자궁을 공경하라’(수라 4:1)는 교육을 받는다. 둘째, 다른 어린이에게 축복하라(수라 16:72). 셋째, 부모를 공경하고, 노인을 보살피라(수라 17:23-24). 넷째, 부모에게 감사하라(수라 31:14). 다섯째, 부모에 대한 친절, 어머니는 그를 낳았다는 것(수라 46:15)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 사회에서 모성은 어린이의 성장과 무슬림 공동체의 정체성과 책임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한 가정의 집단성, 돌봄 집단에 소속하고자 하는 문화적 욕구에 기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의 사회생활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방식의 집단성을 수행하는 의미를 배운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이슬람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니지만 족장시대를 거쳐 한 가정의 공동체내의 역할로 인해 강화되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슬람 사회의 모성(母性)의 중요성이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이상과 현실은 항상 별개의 것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매춘 어린이 범죄(형제가 자매를 죽이는 행위), 근친상간, 남색, 여성할례, 여성의 동성연애, 가족 구성원과 여성 세계의 이기심 등이 부정적인 면이다.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가족간의 화목, 환대, 사람과의 관계, 행사들의 중요성 강조, 가정의 가치, 어린이와 노안을 돌보는 일 등은 어느 가정보다 강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5) 이슬람 사회의 일부다처제


이슬람에서 무함마드는 일부다처제를 인정한다.28) 사회는 제각기 시대적 상황에 따라 불가피하게 또는 남성의 분별없는 성욕으로 일부다처제가 행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국가들은 법률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꾸란을 실정법의 모체로 삼고 있는 이슬람권에서는 예외가 되고 있다. 물론 꾸란도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수한 환경과 조건하에서는 일부다처가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29) 그들은 일부다처제의 뿌리를 아브라함에서 찾는다.30) 이런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무슬림 남자들은 네 명까지의 아내를 둘 수 있다. 이슬람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게 된 것은 첫째, 이슬람 초기에 전쟁의 결과로 인해 양산된 전쟁과부와 고아 특히 자립적인 삶이 어려운 여성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둘째, 아내의 불치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불가능할 경우이다. 셋째, 가족의 대(代)를 잇고 자신의 이름과 가문을 영속화하기 위해서이다. 한 남성이 네 명의 아내를 두었을 경우 부양할 재정적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도 특수한 환경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31)


그리고 부인들에 대한 남편의 공정성을 보면, 첫째, 각 부인 소유의 독립가옥을.마련하여 주고, 둘째, 각 부인마다 남자의 낮 시간과 밤 시간을 균등하게 분배하고,셋째, 아침이 되면 각 부인을 찾아가 낮 동안 남편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일이다.32) 그리고 남편은 네 명의 아내 가운데 어느 하나를 편애하지 말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네 명의 아내를 항상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그리고 아내들은 상호간 협력하고 질투하지 말아야 하며 서로 다투거나 질투하게 되면 그것은 이혼 사유가 된다.


아무튼 이슬람 사회에서 한 남성이 네 명의 아내를 둘 수 있다는 것은 남녀간의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슬람 역사 1400년 동안 ‘동등하게’라는 말의 의미를 한 남자가 모든 아내를 물질적인 면에서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것으로 가르쳐 왔다. 만약 그가 한 여자에게 반지나 드레스를 주면 다른 여자에게도 같은 품질의 반지나 드레스를 주어야 한다.33) 동등하게라는 논리에 대해서 이 정순 박사는 부인들 사이의 동등함을 말하는 것이며, 한 남자가 네 명의 부인을 둘 수 있는 것은 남녀의 차별이지 동등이 아니라34)고 지적한다. 오늘날 일부다처제를 법적으로 금하는 나라는 마그레브의 튀니지와 소아시아의 터키이다. 일부다처제를 지키는 나라는 모로코, 레바논, 요르단, 수단 등이다. 국가법에 의해 승인에 의해 일부다처제를 실행하는 나라는 시리아, 이란, 소말리아, 파키스탄, 인도35)등이다.

 


6) 남녀차별과 서구의 문제


우리의 삶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너무나 순진하다 못해 무신경적이라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자신을 남녀로 구별하여 관계하지 않지만 동양에서의 세계관은 남녀가 구분되어 있다. 이들은 항상 자신이 남자인가 여자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동양 여인이 한 남자와 대화를 한다고 보면 곤란하다. 한 여성이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남자와 대화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적절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여성이라는 것에 큰 신경을 쓰면서 유혹을 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동양의 여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따라서 남녀간의 차별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슬람 학자 알리 다쉬티에 의하면,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사회에서는 여자는 독립적인 인격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남자의 소유물이었으며, 여자에 대한 어떠한 가혹스런 대우도 허용된 풍속이었다고 한다. 꾸란 4:34에 ‘남자들은 여자의 관리자이며‥ 반항적인 여자라고 생각되는 자들을 충고하고, 또 여자를 침실로 데려가 때리라고 가르친다’. 꾸란 4:38에 ‘남자는 여자의 보호자’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 역시 남녀의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슬람법에서는 상속에서도 남녀간의 차이가 있음을 언급한다. 남녀간의 상속액 배분 비율은 2대1의 기준이 보통이다.36)


따라서 이슬람에서 남녀 차별은 여자가 얌전한 체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 성별이 중요하고 힘을 가졌는지 실증하는 것이 된다. 남녀 차별은 가문의 명예와 평판이 매우 밀접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정은 가족들의 이성 관계를 제한하고 조정하며 통제한다. 이는 남성의 권력을 기초로 해서 아랍인들이 여성을 성 차별하는 기반이 되도록 한다.37) 그 이유는 남녀간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잠재력이 있는 힘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남녀간의 차별은 꾸란에서 전반적으로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나타내고 있어 그 영향이 오늘날 전 이슬람 세계에 미치고 있다.

 

7) 무슬림 가정에서 여성의 보호


이슬람 사회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일부다처제를 개인의 욕구나 성적인 만족을 위한 것보다는 사회복지 개념으로 해석한다. 꾸란 4:3에 "···한 여성이거나 너희 오른 손이 소유한 것이거늘 그것이···적합한 것이라" 이 구절은 고아의 복지를 위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결혼에 대한 규칙을 소개하고 있다. 이 결혼 준칙의 선포한 역사적 배경은 「우후드」 전투시기 이후부터라고 본다. 이 전투에서 무슬림 병사들의 사상자가 발생함으로 무슬림 공동체내에는 많은 고아들과 과부들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들에 대한 대우는 최선을 다해서 돌보아야 하고 인간의 박애정신과 평등원칙에 의하여 다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38)


예로, 모로코에서 한 젊은 남자는 이슬람의 다섯 기둥을 실행하기 위해 메카에 두 번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슬람 준칙을 지키기 위해 메카를 순례한 것이다. 무슬림 법에는 여성은 혼사서 자유롭게 메카를 순례하지 못하며, 항상 남자 친척의 남성이나 인도자의 안내가 있어야만 순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여성은 남성의 보호가 있어야만 활동할 수 있다. 무슬림 여성이 남성과 동행하거나 여행을 할 수 있다. 해도 여성은 베일(veil)을 착용하고 떠나야 한다. 이슬람 공동체에서 베일은 여성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의상이다. 이는 여성으로 하여금 유혹하는 행동, 꾸밈새, 여성의 정숙함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착용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예속이 아닌 보호로 간주된다. 오늘날 무슬림 여성해방운동가들에 의해 베일에 대한 규정을 법적으로 폐지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얼마 전 터키의 일부 여성들은 베일을 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현재 이슬람의 변화이며 여성해방운동가들의 주장을 허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은 베일은 남성들로부터 보호하는 방패일 뿐 아니라 남성에게는 여성에 대한 유혹을 방어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39)


그러나 꾸란에서 제시하는 여성에 대한 좋은 의도의 규칙이나 방법이 있다. 해도여성에 대한 우대정책은 매우 부정적이다. 실질적으로 이슬람 지역에서 고아원이나 여성을 위한 복지시설은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한 남자에게 고아들과 여성을 관리하도록 허락한 것은 이슬람 전통문학 즉 자힐리야 문화가 그들의 세계관과 문화 안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불이익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는 꾸란 4:3에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보다 적합한 것이라"고 했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결혼한 여성의 불이익이 내용상에 담겨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 여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성불능이거나 심한 질병으로 성생활을 할 수 없어 이혼을 할 경우 그 부인은 보호해 줄 보호자를 잃게 된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질병에 걸린 부인을 보호하면서 다른 여성을 맞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슬림 사회의 법이나 준칙을 볼 때 꾸란은 대체적으로 여성들에 대해 부정적이다.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곳, 여성의 권리가 허용되지 않는 곳이 무슬림 가정의 특성이다.

 

Ⅱ. 이슬람 가족제도에 따른 복음 전달


무슬림의 한 구성원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데 많은 장애물로 이슬람 근본주의와 전통적인 교리, 자할리야의 문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 남성 중심의 결혼과 권위 등이 있다. 그들이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인한 어려움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 감정적, 신학적, 역사적, 문화적인 이유들로 인해 기독교에 대해 뿌리 깊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아프리카 식민주의 시절에 제국주의적인 선교로 인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 기독교인의 이중적인 삶의 모습, 빛과 소금의 역할로 생활화되지 않은 모습들이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가져온 동기였다. 실제적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기독교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들은 대화를 거부하거나 외면해 버리는 현실은 과거 서구선교사들과 잘못된 선교정책, 탄압에 의한 것임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들도 있지만 더 실제적인 장애요소는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가족공동체, 국가, 지역 공동체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는다.


1. 무슬림 전통주의적 제도로 인한 복음 전달의 장애요인


오늘의 교회는 선교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사고방식과 세계관이 만연해 있다. 선교라는 단어의 의미는 재정의 되고 희석되어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의미로 다가온다. 오늘날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것만이 선교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교는 복음적인 측면과 사회적 측면 사이에 항상 균형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떤 측면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우리는 쉽게 발견하게 된다. 과거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NGO 활동을 통한 기아대책, 지뢰희생자, 고아 입양 문제를 위해 선교하고 모금하는 것, 성경학교를 세우고 선교사를 후원하는 것, 라디오를 통한 복음전파를 위해 모금하는 것이 선교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한 영혼을 사랑하고 그들을 향한 헌신으로 사역하는 선교사와 교회개척, 선교현장의 교역자들을 돕는 선교 헌금을 모금하는 일은 그렇게도 힘이 든다. 그 이유는 교회와 교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선교의 정의에 대한 혼란과 뒤범벅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이같은 혼돈은 선교가 우월하다는 생각, 선교는 오래 전에 끝이 났다는 사고가 지배적일 때 일차적인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 중국에서는 ‘교회가 신자 한사람을 얻을 때마다 나라는 국민 한 사람을 잃는다’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로 아시아의 그리도인들 중에는 신앙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족들과 고통스럽게 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었다.40) 또한 북아프리카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을 경우경찰의 계속적인 검문과 미행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41) 동아프리카의 경우 그리스도를 신앙으로 전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여자의 경우는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고 남자의 경우는 여자로부터 버림을 받았다.42) 그만큼 신앙의 자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슬람 사회에서는 다른 종교의 회심의 자유보다는 박해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세계 이슬람 국가들은 타종교 국가를 대상으로 이슬람을 전파하면서 자국 내에서 기독교를 선교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슬람은 평화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이를 위해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슬람국가에서 기독교인이 무슬림을 향해 ‘당신은 종교의 자유를 믿는가’라고 질문을 하면 물론 믿는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당신의 아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한다면 허용하겠는가’라고 질문하면 ‘나는 그의 목을 자를 것입니다’라는 대답43)을 보면, 기독교인에 대한 이해나 회심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무슬림임을 알 수 있다.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들은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죽음과 같다. 무슬림 공동체에서 개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종교적, 가족적, 사회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슬람법은 전통적 사회의 종교적 관습, 법률적인 제도, 경제적 적용제도가 배교자로부터 재산이나 생명을 빼앗는 것도 합법적으로 간주한다. 무슬림들은 작은 공동체 안에 한 사람이라도 배교하게 되면 직장에서의 퇴출과 취업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배교는 단순히 개종한다는 말로 쉽게 표현하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공동체 곧 작은 공동체인 가족들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복잡한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적으로 모로코에서 한 자녀가 기독교로 개종을 했는데 그 여파는 아버지와 그 형제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공동체에 연관되어 고통을 받기도 했다. 어떤 한 사람이 이슬람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는 엄청난 희생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처럼 이슬람에서 개종하는 사람은 이슬람 공동체로부터의 소외, 부모, 남편, 아내 등으로부터 심한 핍박, 고통, 추방, 불이익 등의 온갖 불이익을 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 회심하는 사람들이 비록 실제적인 숫자와는 여전히 적지만 어느 때보다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슬람권에서 영적인 필요를 점점 더 느끼고 있고 그들을 위한 기도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이슬람 지역의 형제, 자매들은 기독교의 영적인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성육신, 영생, 구원, 죄 용서 등에 대한 용어들은 이슬람에서 듣지 못한 것들이라 매우 관심이 높다.


샤네 교수는 이슬람권 선교의 가장 장애물 중 또 하나는 바로 정치적 문제라고 지적한다.44) 이슬람 사회에서는 정치적인 배경이나 기반 없는 종교를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 선교사들은 정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현지에서 정치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흐려지고 혼동스럽게 된다.


패트릭 존스톤(Patrick Johnstone)은 이슬람 선교장애 요인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감정적, 신학적, 역사적, 문화적 이유들이라’고45)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실제적인 요소는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국가와 가족으로부터의 강한 압박과 추방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슬람 사회에서 기독교 근본진리를 믿고 신앙생활하기란 그만큼 힘이 든다. 따라서 무슬림 전통주의적 제도에서는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의 장애가 발생하게 되어 선교의 장애가 된다.

 

2. 무슬림 가족 공동체 따른 선교전략


1) 기독교선교 메시지의 사회적 공적 영역에서의 효과


우리는 이슬람권 선교를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복음의 접촉점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슬람 사역의 어려움이 계속된다면 기독교 선교 메시지가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효과적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만 되는 것인가의 문제가 남게 된다.


이슬람 지역의 선교사역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분명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종교가 정치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종교와 정치는 상호 교차하며 정치 공동체와 도덕적 공동체에 의해 상호 중첩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종교가 정치를 인준하고 영향을 미쳐야지 정치가 종교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에 의해 인준 받는 정치는 정치적 행위가 기독교 신앙과 신실함의 핵심인 정직성과 책임성의 표준에 도달해야 함을 지도자들이 주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구속하신 하나님 앞에서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인간 공동체내에서 상호간 책임을 져야 한다.


2) 복음전달의 효과적인 기회


종교는 인간의 연약함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여 보고자 하는 인간실존의 한계에 대한 몸부림이며, 인간 존재 의미에 대한 회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실현의 방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인간론이 사람의 자력 구원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철학적이면서 이데올로기적이다.


무슬림들이 알라에 대하여 경배하거나 꾸란을 낭송할 때, 알리에 대하여 순종할 때 마음에 평안히 오고 사회전반에 걸쳐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종교이상의 이슬람교는 단순히 종교 이상의 총체적인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의 주장처럼 이슬람은 신앙의 차원을 넘어선 삶 그 자체이다.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들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무슬림들이 이러한 삶에 만족하며, 알라에 대한 순종과 행위가 일치하는가에 대하여 묻는다면 회의적이다. 필자는 무슬림들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의문점을 갖는다.


하나는 그들이 신봉하고 믿는 알라에 대한 신앙이 진실하고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둘째는 강압적이고, 준칙에 의존하고, 불평등적인 신앙 규범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가? 셋째, 이슬람은 신앙이라고 보기보다는 정치적이라는 점이 더 강하다는 점이다. 넷째, 어떻게 종교가 삶의 일부가 된 무슬림들의 영혼을 악령이 지배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무슬림들의 일상적인 삶이 꾸란에서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신앙 행위에 대한 것이라면 무슬림들의 영은 대부분 샤머니즘으로 불리는 악한 영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46)


이슬람의 무속 신앙적인 요인은 신비주의에 속하는 수피즘과 관련이 있다. 수피는 원래 이슬람의 세속적이며 비금욕적인 성격에 반대하면서 출발했다. 이슬람의 창시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는 극에 달했고, 이미 독신주의에 대한 비난과 영적인 기능을 가진 성직자 제도의 부재 등에 기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생명의 위치에 대한 예비적인 타협 등은 중동 지역의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종교로 이해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 지도자들 가운데 이슬람에 헌신적인 정신을 그들의 일상생활에 바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에게 이슬람은 단순한 외적 의례들의 집합이 아닌 영적인 훈련이었다.47) 수피주의자의 핵심은 수도원적이거나 아니면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이동하면서 꾸란이나 종교적인 경전을 암송하는 것으로 만남을 가졌고, 이러한 암송은 예배의식 성격을 띄어 일종의 춤과 반복적인 리듬 그리고 경전의 암송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수피지도자들을 신봉할 뿐 아니라 최고의 영적 지도자로 섬기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슬람은 다양한 신앙양태를 가졌음에도 과거나 현재에도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이슬람은 기독교의 가장 무서운 상대가 되어 복음에 대해 너무나 강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슬람 내에 복음의 능력이 강력하게 나타날 것을 믿을 만한 증거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이슬람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복음전달의 좋은 기회가 된다.48) 최근 이슬람의 과격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행위는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가져다주었다. 파키스탄, 알제리, 이집트, 수단, 아프가니스탄, 이란, 유고슬라비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에서 발생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방화와 테러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지하드’(Jihad)라는 명분을 내세워 야만적이고 환멸을 안겨주는 행동을 보여줌으로 많은 무슬림들이 이슬람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의 극단적인 이슬람 신봉자들은 교회와 민간인을 향해 약탈을 감행했고, 자바섬에 위치한 교회들을 파괴하기도 했다. 한 교회의 목사 부부가 교회 건물 안에서 이방 신에게 희생 제물로 드려지는 일도 발생했다. 순교자 부부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죽었지만 그 결과 범죄자 가운데 한 명이 회심하여 믿음을 갖게 되었다.49)


둘째, 이슬람 지역을 향한 중보 기도가 더욱더 강하게 실행되고 있다. 최근 『모로코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라는 소책자는 마그레브에 속한 한 국가를 향한 52주중보기도 책자이다.50) 예수 그리스도에게 철저히 회심을 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예수의 초자연적인 계시를 통해서 또는 부인할 수 없는 기적적인 치료를 통해서 신앙을 갖게 되었다. 최근 이슬람 지역에서 개인, 가정들 그리고 한 지역 사회가 예수께 돌아오고 있다. 기도는 선교의 돌파구가 되는 도구이다.


셋째, 이슬람국가의 도시화가 복음 전달의 접촉점이 된다. 도시들은 다민족적, 다인종적, 다언어적, 다종교적이다. 이 도시들은 지구촌의 변화를 만드는 곳이며, 권력의 중심지들이다. 도시들이 움직일 때 전세계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1)


도시화는 도전적인 장소이다. 도시들은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차이들로 가득할 뿐 아니라 대립하는 세계관, 가치 체계, 생활양식들이 도시 중심지에 밀접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 동일한 장소들이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을 총체적으로 황폐화시키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세력들을 발산한다. 도시들은 많은 종류의 문제들이 발생하여 매일 다투는 전쟁터와 같다. 이런 측면에서 20세기의 선교 개척지는 시골과 같은 지역으로 이식되었지만 이제는 도시를 미래의 개척지라고 생각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0세기까지는 기독교가 시골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21세기의 기독교는 도시에 중심을 잡고 사역해야 할 것이다.


도시로의 인구 이동은 이슬람 공동체의 영향력과 동일한 대가족 공동체의 영향력에서 좀더 떨어진 환경에 머물게 되기 때문에 무슬림들에게는 복음을 접하기에 훨씬 열린 환경이 된다. 그러므로 이슬람 지역에 대한 선교 전략이나 사역을 계획하는 자들은 도시의 실정을 수용해야 한다. 도시 성장의 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구속 목적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다. 이 엄청난 사람들의 군집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역사에 있어 가장 큰 복음화의 기회들 중 하나를 교회에 제공하게 하신다. 대도시에 밀어닥친 여러 인종들, 족속들, 다양한 인간 집단들은 지역적으로 과거의 어느 때보다 더 접근하기 용이하다. 경우에 따라서 새로운 도시 거주자들이 겪는 변화의 과정들은 그들로 하여금 더 복음을 잘 받아들이게 하기도 한다. 또한 도시화에 따라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사회 문제인 가난, 질병, 마약, 매춘, 범죄, 청소년의 일탈행위 등이 도시 한가운데 방치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전도 종족 집단(Unreached People Group)을52) 향한 복음 전달과 도시선교의 기회가 된다.


따라서 세계의 도시화는 선교의 구조로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종말론적 구조로도 보아야 한다. 우리 시대의 하나님께서는 지구의 사람들을 서로 더 밀접하게 접촉시키고, 더 많이 서로 영향을 끼치고 의존하여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들을 통해 결정적인 활동을 하고 계신다.53) 이 활동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속의 목적을 역사에 진척시킨다. 우리 시대의 표적은 이슬람권 도시이다. 도시를 향한 전 세계적인 이주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선교의 가장 위대한 무대를 설치하시고 최후의 시간을 위한 무대를 준비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3) 무슬림 선교를 위한 상황화


최근 상황화에 대해 기술한 서적들이 많이 있다.54) 그래서 무슬림을 위해 사역하고자 하는 이들은 숙독하여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전략과 개념을 가지고 사역을 추진할 수 있을까를 타진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이런 사역을 위해서는 복음을 상황화하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양한 생각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자신들의 문화 가운데 있는 무슬림에게 나아가기 위해 완전히 무슬림 스타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55) 이러한 접근 방법은 무슬림들과 동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슬림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될 수 있는 서구인과는 다르게 가족과 공동체와 연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복음을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전해 주려는 타문화 사역자 그룹이 있다. 이들은 문화적으로 현지문화에 장애가 되는 것은 말씀을 전할 때 반드시 제거해야 된다는 것이다. 만약 복음이 전달된다면 현지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셋째, 상황화에 있어서 우리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다른 문화, 언어그룹, 종교적 공동체에 완전히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무슬림 선교를 위한 상황아 사역에 있어서 상황화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에 있어 조심해야 한다. 성경에는 상황화에 대한 두 개의 중요한 모델이 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이다. 선교학자들은 예수께서 인간과 동일화하신 행위를 묘사할 때 성육신 사역(Incarnational Ministry)을 사용한다. 예수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을 살았고 죄를 짓지 않으셨다. 죄의 구속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죄의 굴레 속으로 구태여 들어가실 필요는 없으셨다. 따라서 예수는 유대사회에서 사회적 위치가 낮은 자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가 존중받는다고 생각하는 인간들과 문제화 삼으신 것을 본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회심자 사이의 통합을 위하여 무척 노력했다. 바울 자신은 이방인 도시에 살았고 나름대로 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타문화의 말씀 전달자로서 유대인, 이방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달했다.


그렇다면 이슬람 문화에서 그들을 회심케 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성을 개발하는 일이다. 관계성에 대한 가치는 복음을 전하는 지도자에게 또한 유익을 가져다준다. 둘째는 무슬림에서 회심한 자들이 겪게 되는 최대의 갈등은 가장 가까운 공동체와 결별하고 고립되어 개인주의적인 서구식 삶의 스타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기독교 지도자들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만일 무슬림 회심자들을 위한 기독교 공동체가 없다면 그들은 갈등을 겪게 되고 결국은 되돌아서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먼저 우리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이슬람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의 영에 눌리지 않아야 한다. 무슬림을 우리의 적 사단의 종으로 보아서는 결코 안된다. 우리의 적은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종으로 만든 이슬람의 영이지 무슬림이 아니다. 그리고 무슬림은 우리의 증오와 미움의 대상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유업으로 나눌 형제로 보아야 한다. 콜린 채프만이말한 것처럼 무슬림들을 대할 때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56)

 

나오는 말


이슬람 역사 1400년 동안은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상대일 뿐 아니라 가장 거대하고 견고한 공동체를 바탕으로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아랍 지도자 무암마르 가디프는 남아프리카의 이슬람화를 위해 후원을 하고 있다. 이 움직임은 아프리카에서 경제, 문학, 정치적인 연합체를 이루고자하는 이슬람 부흥운동 중의 하나이다.57) 이슬람은 아랍어를 대륙의 주된 공용어로 내걸고, 이슬람 공동체를 통한 세계각국에 무역의 기회를 증진시키려 할 뿐 아니라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개종자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새로운 모스국, 이슬람 학교와 대학들이 전 세계에 세워지고 있다.


이제 전 세계는 이슬람의 도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을 보일 때가 되었다. 특히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여러 문제 중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신학적인 부분이 아니라 문화적이 부분으로서 이슬람 공동체(Ummah)의 독특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에 작은 공동체인 가족에 대한 부분은 이슬람 선교전략에 중요한 부분이 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슬람의 가족공동체 이해를 통하여 북음의 접촉점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 가능성을 통하여 이슬람 선교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전략들을 활용한다면 이슬람 선교를 위한 모델이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한 가능성으로 먼저 개종자를 돕는 일이다. 회심자가 두 얼굴을 갖는 것이 어쩌면 거의 불가피하고 처음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회심자가 집에서 자신이 발견한 것을 그룹 사람들에게 말하면 위험성이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런 영적 미숙함에 있는 자들을 살아남도록 도와주고, 언제나 만나서 도울 준비, 성경 공부를 통하여 꾸란의 차이를 설명하고 신앙고백을 하고 따르도록 돕는다.


마지막으로 무슬림을 위해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하도록 기도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기도는 복음전도의 기본이 된다. 기도 없는 선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적 전쟁에 있어 승리하고 사랑이 있는 행함을 보여줄 때 무슬림 선교는 가능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공일주, 『이싸냐 예수냐?』 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1997

박순종,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무슬림과 이슬람교에 대한 인식조사" 『세계선교』 1999년봄·여름호/통권35호

이광호, 『세계선교의 새로운 과제』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1998.

이정순, 『무슬림 여성과 베일』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전호진, 『이슬람, 종교인가? 이데올로기인가?』 서울: SFC출판부, 2002.

전호진, 『종교다원주의와 타종교 선교전략』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7.

조희선, "아랍·이슬람 여성에 관한 고찰"-종교적 당위성과 현실- 『선교-문화연구』 2001년제 5·6호 천안: 천안대학교 선교-문학연구소

최영길, 『이슬람의 이해』 서울: 도서출판 신지평, 1999.

함태경, "이란 선교역사와 교회현황" 『국민일보 선교편』 2002년 7월 23일.

로렌드 뮬러, 『모슬렘 선교를 위한 TOOLS』 임하나 역 서울: WEC출판부, 2002.

봅쇼 그랜, 『마침내 드러나다』 이숙희역 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1995.

리스틴 말루히, 『미니스커트, 어머니 그리고 모슬렘』 예수 전도단 역 서울: 예수 전도단, 1998.

로버트 슈라이터, 『신학의 토착화』 황애경 역 서울: 가톨릭출판사, 1991.

존 엘더, 『무슬림을 향한 성경적 접근』 KTM 편집부 역 서울: 도서출판 펴내기, 1992.

핸드릭 크래머, 『기독교 선교와 타종교』 최정만 역 서울: 기독교 문서선교회, 1995.

Greenway, Rogers S. "세계도시화와 선교교욱" 장훈태역 『선교신학의 21세기 동향』 서울; 이례서원, 2000.

Johnstone, Patrick. The Church Bigger than you think, 이창규,·유병국역 서울: WEC 출판부, 1999.

Lewis, Bernard 『이슬람 1400년』 김호동 역 서울: 까치글방, 2001.

Latifa, 『빼앗긴 얼굴』 최은희 역 서울: 이례, 2002.

Smith, Donna P. & Andreas Maurer, 『무슬림을 위한 기독교 전도』(Souh Afica: MERCSA, 1988.

Ati, Hammudah Abd al. The Family structure in Islam(USA: American Trust Publications, 1977.

Cppper, Anne.Ishamal My Brother(London: STL Books, 1988

Maurer, Andreas Islam mission seminar(Intercultural Leadership Institute, 2002)

Mohamad, Mahathir Islam & The Muslim Ummah, Hashim Makaruddin: Malaysia, 2000.

Patrick Johnstone & Jason Mandryk, Operation World, Carlisle: Paternoster,2001.

Speiser, E. A. The Anchor Bible: Genesis, New York: Doubleday, 1964.

Affan Seljuq, "The Muslim World League Journal", Jan/Feb, 1991

 

 


각 주1 이슬람(Islam)이라는 말은 무슬림들에게는 신에 대해서 신자가 ‘항복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한다. 그 분사형인 무슬림(Muslim)은 그러한 항복의 행위를 취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무슬림은 어느 다른 존재가 아닌 ‘오로지’신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이며, 따라서 다신주의자가 아닌 유일신주의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 라민 샤네 교수는 예일대학교에 소속되어 있다. 2002년 8월 6일 ‘이슬람 선교를 위한 해법’이란 주제로 홍영기 교수와 대담한 것을 재인용하였다.

3 Bernard Lewis, 『이슬람 1400년』 김호동 억(서울: 까치글방, 2001), 18.

4 필자가 스리랑카 북부지역을 방문했을 때 미션계의 고등학교가 무슬림화 된 곳을 목격했으며, 가톨릭이나 기독교계의 교사들을 추방하고 대신 무슬림 교사로 채용한다는 소식을 접한바 있다(2002.7_8 스리랑카 북부지역 리서치)

5 오픈도어(opendoors) 선교회가 발행하는 기도소식지에 의하면,‘박해받는 교회와 성도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는 도표가 있다. 기독교 박해 1순위로 사우디아라비아로서 이슬람의 종주국이며, 전세계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선두기지이다. 다음으로 북한, 라오스, 투르크메니스탄, 중국, 베트남, 이란, 몰디브, 남부수단, 코모로제도 등이다.

6 전호진, 『이슬람, 종교인가?』(서울: SFC출판부, 2002), 9. 저자는 본고에서 이슬람을 하나의 종교로 보기보다는 이데올로기로 보고 있다.

7 Patrick Johnstone & Jason Mandryk, Operation World(Carlisle: Paternoster, 2001), 2; 49.

8 이 정순, 『무슬림 여성과 베일』(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17 재인용

9 메디나는 새로운 신앙과 신도들의 중심지가 되는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메디나에서의 계시들은 무슬림 공동체 안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관련된 법적 정치적인 사항들을 포함하는 곳이기도 하다. Bernard Lewis, 『이슬람 1400년』 16.

10 이광호, 『세계선교의 새로운 과제』(서울: 예영컴퓨니케이션, 1998), 173.

11 움마와 관련된 것으로 Mahathir Mohamad, Islam & The Muslim ummah, (Hashim Makarnddin: Ma1aysia, 2000), 51-62를 참고하라. 핸드릭 크래머, 『기독교 선교와 타종교』 최정만 역(서울: 기독교 문서선교회, 1995), 244.

12 Affan Seljuq, "The Muslim World League Journa1",/Feb, 1991을 참조함.

13 무함마드가 주장하는 메카에서 유일신론, 유신론 사상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꾸란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으로 그의 신성과(수라 5:19) 십자가 죽음(수라 4:157)에 대한 이중적 부인을 하고 있다.·예수에 대한 긍정적 측면은 예수에 대한 나머지 모든 것들을 언급할 뿐이다. 그리고 예수의 성육신을 부정한다.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때 처녀였다(마 1:18-25; 눅 1:26-35). 그러나 꾸란에 보면 무슬림들은 예수님의 기적적인 수태를 받아들인다(수라 3:45-47; 19:21; 21:91)또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꾸란 에 그 이름이 언급된 유일한 여성이라는 것인데, 꾸란은 거기에 대한 참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왜 임의적인가(수라 3:59)? 다만 마리아는 위대한 여인으로 칭송을 받을 뿐이다.

14 최영길, 『이슬람의 이해』 (서울: 도서출판 신지평,1999), 58-9.

15 Latifa, 『빼앗긴 얼굴』 최은희 역(서울: 이례, 2002)을 참고하기 바란다. 1996년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에게 권위, 인권이란 찾아 볼 수 없다. 라티파는 탈레반의 광신적인 신앙이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희선, "아랍·이슬람 여성에 관한 고찰"-종교적 당위성과 현실- 『선교-문화연구』 2001년 제5·6호(천암: 천안대학교 선교-문화연구소), 51이하를 참조 바란다.

16 전호진, 『종교다원주의와 타종교 선교전략』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7), 293.

17 Ibid., 158-60.

18 봅쇼 그랜, 『마침내 드러나다』 이숙희 역(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1995), 174.

19 이광호, 『세계선교의 새로운 과제』 185-90.

20 Bernard Lewis, 『이슬람 1400년』 136.

21 Affan Seliuq, "The Muslim World League Journal’’, Jan/Feb,1991을 참고하라. 무슬림 가정의 제도는 이슬람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가정은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 그 구성원들을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사회의 기본 단위이다.

22 꾸란 2:228에 의하면 ‘남자는 여자보다 상위(上位)에 있고 또 위력(偉力)하여 여자의 보호가 된다’(꾸란 4:34)는 것을 보아 남성 우월주의가 존재하고 있음을 본다. 이슬람에서 여성의위치는 언제나 차별적이다. 상속 액에서도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예배의 참석에서도 구별되어 참여한다. 꾸란 4:34에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서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으로 남성을 따를것이며 남성이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 줄 것이라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니라. 『성 꾸란』 최영길 역, (사우디아라비아 파하드 국왕성꾸란 출판청)을 참고바람.

23 크리스틴 말루히, 『미니스커티, 어머니 그리고 모슬렘』 예수 전도단 역(서울: 예수 전도단, 1998), 114 재인용.

24 이슬람 사회에서 이혼은 아주 단순하다. 남편이 아내를 향해 ‘나는 너와 이혼한다’라는 말을 세 번만 되풀이하면 어떤 설명이나 이유 없이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꾸란 65;1,2).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꾸란 2:229절을 보면 된다. ‘화해를 통한 두 번의 이혼은 허락되나 그 후의 두 당사자는 동등한 조건으로 재결합을 하든지 이혼을 해야되며 너희가 그녀들에게 주었던 지참금을 되돌려 가져오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하나…’라고 되어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이혼에 대한 것도 다양하다. 먼저 수라 2:226-242에 나타난 것을 보면, 4개월간의 격리의 시간을 가진 뒤 이혼을 할 수 있다. 수라 4:19-21에는 그들의 뜻에 반하여 여성을 재산으로 삼는 것은 금지하고 있으며, 수라4:127-131에는 과부와 고아들을 도울 것을 명하고 있다. 수라 33:49에는 동침하기 전에 이혼하려 할 때에는 ‘이다트’기간(3개월)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라 58:1-4에는 오래된 이교도들의 이혼제도를 배척하기도 한다.

25 Donna p. Smith, & Andreas Maurer, 『무슬림을 위한 기독교 전도』(South Africa: MeRCSA,1998), 114-265.; Scheifer, Motherhood in Islam 88.; Andreas Maurer, Islam mission seminar (Intercultural Leadership Institute, 2002), 6

26 Andreas Maurer, Islam mission seminar, 7.

27 Ibid.

28 꾸란 4:3에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정하게 대처하여 줄 수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좋은 여성과 결혼하라 두 번 또는 세 번 또는 네 번도 좋으니라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것보다 적합한 것이라".

29 최영길,『이슬람의 이해』 214.

30 이광호, 『세계선교의 새로운 과제』 164.

31 Hammudah Abd al Ati, The Family Structure in Islam(USA: American Trust Publications, 1977), 50-145.

32 최영길, 『이슬람의 이해』 216.

33 존 엘더, 『무슬림을 향한 성경적 접근』 KTM 편집부 역(서울: 도서출판 펴내기, 1992), 86-87.

34 이 정순, 『무슬림 여성과 베일』 34.

35 Ibid.

36 전호진,.『종교다원주의와 타종교 선교전략』 299.; 꾸란 4:11; 남자에게는 여자의 두 배에 달하는 몫이 차려지느니라…둘 이상의 여자가 있을 경우는 유산의 3분의 2를 취하고 여자 하나만 있을 때는 절반을 얻게 되느니라’

37 크리스틴 말루히, 『미니스커트, 어머니 그리고 모슬렘』 59-60.

38 『성 꾸란 』 최영길 역, 130.

39 Anne Cppper, Ishamal My Brother(London: STL Books, I988), 30.; 이정순, 『무슬림 여성과 베일』 36.

40 로버트 슈라이터, 『신학의 토착화』 황애경 역(서울: 가톨릭출판사, 1991), 67.

41 필자가 북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했을 때 기독교인이 무슬림과 대화를 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소환된 것을 보았다.

42 Ibid., 69.

43 전호진, 『종교다원주의 타종교 선교전략』 296.

44 라민 샤네 교수는 예일대학교에 소속되어 있다. 2002년 8월 6일 ‘이슬람 선교를 위한해법’이란 주제로 홍영기 교수와 대담한 것을 재인용.

45 Patrick Johnstone, The Church Bigger than you think, 이창규, 유병국역(서울: WEC출판부, 1999), 192.

46 박순종,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무슬림과 이슬람교에 대한 인식조사" 『세계선교』 1999

년 봄·여름호/ 통권35호, 115-16.

47 Ibid.,117에서 재인용.

48 최근 이란은 이슬람 혁명 후 개종 변화가 꿈틀대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염원 외면한 정치에 이슬람교도 의문, 회의가 싹트고 있다. 정부는 기독교 성장에 제동을 걸고 있지만 비밀 가정교회로 복음활동은 지속되고 있다. 수십만 명의 잠재된 개종인구에 비해 사역자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함태경, "이란 선교역사와 교회현황" 『국민일보 선교편』 2002년 7월 23일.

49 Patrick Johnstone, The Churuh Bigger than you think, 193.

50 이 책자는 순니 이슬람 신봉자들이 99%나 되는 모로코를 향한 기도책자이다. 모로코 신자들과 모로코에 복음을 전하고자 사역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로 시작된 것이 바로 ‘Arise Shine Morocco’(ASM)이다. 이는 모로코와 미전도 종족 그룹, 그리고 모로코 교회들을 위한 기도의 필요성을 전 세계 교회에 알리고 기도를 집중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51 Rogers S. Greenway, "세계도시화와 선교교육" 장훈태역 『선교신학의 21세기 동향』(서울; 이례서원, 2000), 512.

52 E. A. Speiser, The Anchor Bible: Genesis(New York: Doubleday, 1964), 86.

53 Rogers S. Greenway, "세계도시화와 선교교육" 514.

54 정흥호, 『상황화 신학』 서울: 로고스, 1998,: 베반스, 스티브. 『상황화신학』. 최형근 역. 서울: 죠이선교회, 2002.: 부스웰, 제임스 "상황화:이론과 전통, 그 방법."『신학과 선교』, 데이비드J. 헤셀그레이브 편, 93-126. 서울: 엠마오, 1986.;서창원, 『제3세계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Stephen. Bevans, "Models of Contextual Theologies." Missiology 13, no. 2(April1985); shoki Coe, "Contextualization." InMission Trends No. 3: Third World Theologies, ed. Geraid H. Anderson and T.F. Stransky, 19-24.New york; paulist press, 1976.; bruce C.E.F.leming, Contextualization of Theology: An Evangelical Assessment.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1980.; Dean S. Gillilrinand, "Principles od the Christian Approach ot an African-Based Islamic Society.: Missiology ;Heideman, Eugene S. "Syncretism, Contextualization, Orthodoxy, and Heresy." Missiology 25, no. I(January 1997): David J.Hesselgrave, and Edward Rommen. Contextualization: Meangs, Methods, and Models. Grand Rapids:Baker Book house, 1989.; Kato, Byang. "The gospl, Cultural Contextualization, and Religious Syncretism." In Let the Earth Hear His Voice, ed. Douglas, J.D. Minneapolis: World Wide Publications, 1975.; Bruce. Nicholls, Contextualization: A theology of Gospel and Culture. Downers Grove: Inter-Varsiry Press, 1979.; Robert J. Schreiter, Constructing Local Theologies. Maryknoll: Orbis books, 1985.

55 로렌드 뮬러, 『모슬렘 선교를 위한 TOOLS』 임하나 역(서울: WEC출판부, 2002), 77.

56 공일주, 『이싸냐 예수냐?』(서울: 죠이선교회출판부, 1997), 169-70.

57 1995년 10월 22일 요한네스 버그의 ‘선이 타임수’에 게재된 내용임.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성경에서 바라본 꾸란의 오류와 모순들(2)

 

1. 성경의 변형들

 

1) 남자 갓난아이를 죽이라는 파라오의 칙령: 꾸란은 이스라엘의 남자 갓난아이를 죽이라는 파라오의 명령이 모세의 사역 도중 내려졌다고 말한다. “파라오 백성들의 우두머리들이 말하더라 폐하(파라오)는 모세와 그의 백성들이 지상에 해악을 퍼트려 폐하와 폐하의 신들을 우롱하도록 둘 것입니까?’라고 말하니 그(파라오)가 대답하였더라. ‘그들의 아이가 남아이거든 우리는 살해하여 단지 그들의 여자만 살아남게 하여 그들을 지배할 것이니라”(꾸란 7:127) 그러나 성경은 이 명령이 모세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려진 것이라고 말한다(1:16; 2:1-2).

 

2)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 꾸란은 하나님이 이집트에 내리신 재앙들에 대해서도 성경과 다르게 말한다. 첫째, 10가지 재앙 중 일부만을 언급하고 있다. 둘째, 언급된 일부의 재앙들마저 성경과는 다른 순서로 등장한다. 셋째, 성경에 없는 재앙인 홍수를 언급하고 있다. 아랍어 타와판”(tawafan)은 문자 그대로 홍수를 의미하며, 다른 어떤 뜻도 담고 있지 않다.

 

3) 모세가 내리친 바위와 열두 개의 우물들: 꾸란은 모세가 돌을 치자 열두 개의 우물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이는 열두 지파와 상응하는 수의 우물이었다(꾸란 2:60; 7:160). 그러나 엘림에서 있었던 일을 호렙에서 있었던 일과 섞어 놓은 것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먼저 엘림에서 묵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12개의 우물과 70그루의 야자나무를 발견했다(16:1). 그리고 그들은 신광야에 도착할 때까지 여정을 계속했다. 그곳은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곳이었다(16:1). 그들은 르비딤에 도착할 때까지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그들은 물이 필요했다(17:1). 그들은 목이 말랐고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 모세가 바위를 쳤을 때, 그 바위는 물을 뿜어냈다(17:5-6). 열두 개의 우물은 엘림에 있었고, 바위에서 물이 솟아난 것은 호렙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4) 언약의 궤: 꾸란은 언약궤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다(꾸란 2:248). 먼저 꾸란에는 언약궤 안에 사키나”(Sakinah)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사키나라는 뜻의 아랍어와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그러나 이 아랍어 단어는 히브리어 쉐키나”(Shekinah)를 그대로 음역한 것일 뿐이다. “쉐키나”(Shekinah)는 언약궤 위에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 영광의 임재를 일컫는 단어이다. 두 번째로 꾸란은 언약궤가 모세와 아론의 가족들의 유품들도 담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에 의하면 언약궤는 십계명이 적혀 있는 두 개의 돌판을 담고 있었다(왕상 8:9). 또한 히브리서 94절을 보면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셋째로 꾸란은 언약궤가 천사들에 의해 운반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성경의 내용과 다르다.

 

3. 꾸란 안에서 모순되는 내용들

 

1) 사람이 어떤 물질에서 창조되었나?: 꾸란은 사람이 어떤 물질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하여 모순이 있다. “알라는 흙에서 너희를 창조하사 정액에서 너희를 재창조하셨으니”(꾸란 35:11) 어떻게 알라가 인간을 먼저 흙으로 만든 후에 정액으로 다시 만든단 말인가? 이 내용은 다음과 같이 변한다: “우리(알라)가 인간을 창조하사 검고 묽은 진흙으로 만드셨고”(꾸란 15:26) 그런데 다른 구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알라)는 그들을 진흙으로부터 창조하였느니라”(꾸란 37:11) 그런데 진흙에서 추가된 다른 구절에는 그분(알라)은 도기를 만들듯 인간을 흙에서 창조하였으며”(꾸란 55:14). 인간이 한 방울의 정액 또는 응혈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있다(꾸란 16:4). “또한 인간이 물로 만들어졌다.”(꾸란 25:45) 그렇다면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정액으로만 만들어졌는가? 흙으로 만든 다음에 다시 정액을 혼합해서 만들었나? 진흙으로 만들었는가? 아니면 묽은 진흙으로 만들었는가? 아니면 물로 만들어졌는가? 이에 대한 혼란이 꾸란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2) 이집트의 파라오는 바다에서 익사했나, 아니면 살았나?: 꾸란은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바다로 간 파라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다. 어떤 구절들에서는 파라오가 그의 군대와 함께 수장당했다고 말한다(꾸란 17:103; 28:40; 2:50). 반면 어느 한 구절에서는 이상하게도 파라오가 알라에 의해 살았으며, 다른 이들에게 알라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 우리(알라)가 너를 구해 줌으로써 네 이후에 오는 자들에게 예증이 되도록 함이라”(꾸란 10:92) 그러나 사실상 꾸란에 기록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3) 꾸란은 아랍어로만 기록되어 있는가?: 꾸란에는 꾸란이 순수한 아랍어로만 기록되었다고 돼 있다. “한 인간이 그를 가르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우리(알라)는 알고 있나니 그들은 외래인이 그(무함마드)를 가르친 것이라 하더라 그러나 이것은 순수한 아랍어이라”(꾸란 16:103) “우리(알라)는 꾸란을 아랍어로 계시하나니”(꾸란 12:2)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란은 많은 비()아랍어를 담고 있다(꾸란 16:103; 12:2; 41:44). 여러 예를 들 수 있다: “파라오”(Pharaoh) 이집트어; “아담, 이브”(Adam and Eve) 아카드어; “아브라함”(Abraham) 시리아어; “하루트(Haroot), 마르트(Marroot), 시라트(Sirat), 후르 안인(Huwariyeen), (Jinn), 피르다우스(Firdawa)”모두 페르시아어; “히버(Heber), 투라트(Turat), 게한님(Gehannim)” 모두 히브리어; “인질”(Injeel) 그리스어 등, 아랍어가 아닌 외래어가 이 외에도 꾸란 안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유해석 선교사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성경에서 바라본 꾸란의 오류와 모순들

 
꾸란(Quran)은 이슬람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경전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을 알라가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계시라고 믿는다. 알라가 천사 ‘지브릴’(Gabriel)을 통해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23년 동안(A.D. 610-632) 한 구절 한 구절씩 계시해 준 내용이라는 것이다.

 

꾸란은 모두 114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무함마드가 처음 이슬람을 시작했던 메카(Mecca)에서 받은 계시(A.D. 610-622)와 메디나(Medina)로 이주한 이후에 받은 메디나 계시(A.D. 622-632)로 나뉜다. 꾸란에 사용된 언어는 아랍어다. 따라서 이슬람에서는 반드시 아랍어로 기록된 것만을 꾸란이라고 한다. 다른 언어로 된 꾸란은 아무리 완벽한 번역이라도 계시 언어인 아랍어가 아니기 때문에 ‘꾸란 해설서’라고 한다. 이러한 꾸란의 내용 가운데 기독교 입장에서 역사적인 오류와 성경이 변형된 내용들과 모순이 발견된다. 여기서 그 내용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역사적인 오류들

 

1) 파라오 궁전에 있던 하만: 꾸란에는 하만(Haman)이 모세가 있을 당시 파라오의 친구로서 이집트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때 파라오가 말하길 족장들이여 나 외에는 너희를 위한 어떤 신도 내가 아는 바 없나니 하만아 진흙으로 벽돌을 구워 내가 모세의 신을 볼 수 있도록 높은 궁전을 짓도록 하라 실로 나(파라오)는 그(모세)가 거짓말하는 자라 생각하니라”(꾸란 28:38) 모세와 하만이 함께 있는 모습은 꾸란의 다른 구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때 파라오가 말하였더라 하만이여! 내게 높은 궁전을 지어다오 내가 길과 방법을 얻고자 함이라”(꾸란 40:36) 그러나 성경에서 하만은 메데(Media)와 파사(Persia)의 아하수에로 왕의 대신이다(에 3:1-2). 꾸란은 그를 천 년이나 앞서 이집트의 파라오의 대신으로 만들어서, 출애굽의 이야기와 에스더의 이야기를 혼합시켰다.

 

2) 모세 때의 사마리아인들이 있었는가?: 꾸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 있을 때 사마리아인들의 제안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인이 그들에게 송아지 한 마리를 형상화하니 소의 울음소리 같더라 그리고 말하길 이것이 너희들의 신이며 모세의 신이었으나 그(모세)가 잊었도다”(꾸란 20:88)라며 두 번(꾸란 20:95)이나 모세와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송아지를 만든 것은 아론이다(출 34:1-6). 또한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때 존재하지 않았다.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침공(B.C. 722)을 받아서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이스라엘에 남아서 아시리아인(Assyria)들과의 통혼함으로써 생겨난 자손들이다. 즉 사마리아인들은 모세가 죽고 5-7세기 이후에나 이스라엘에 등장했다. 참고로 사마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다.

 

3) 메카에 대한 아부라하(Abraha)의 공격은 어떻게 중단되었나?: 무함마드가 태어난 A.D. 570년을 이슬람에서는 ‘코끼리의 해’라고 부른다. 아브라하(Abraha) 장군이 메카를 침공하여 카바를 파괴하려고 결단한 해이기도 하다. 이 내용은 6세기 초 예멘의 힘야르트 왕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자, 홍해 건너 아비시니아(Abyssinia, 현재 에티오피아) 기독교 왕국에서 아브라하(Abraha) 장군을 보내서 예멘을 정복한다. 그는 또한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메카를 침공했다가, 알라가 카바신전을 지키기 위하여 수천 마리의 새들로 하여금 그의 군대 머리 위에 구운 진흙으로 된 돌을 떨어뜨리게 해서 많은 군인들이 죽었다고 한다. 그 내용이 꾸란에 기록되어 있다. “그대 주님께서 코끼리의 무리를 어떻게 하셨는지 그 소식이 이르지 아니했느뇨? 그들의 음모를 파멸시켜 버리지 아니했는가? 알라는 그들에게 새 떼를 보내어 모레와 흙으로 된 돌멩이를 던지셨나니 그들을 다 갉아먹어 버린 마른 잎과도 같았더라”(꾸란 105:1-5) 그러나 역사적인 자료들에 따르면, 아브라하 군대는 천연두로 추정되는 전염병으로 인해 후퇴한 것이었다.

 

4) 무함마드 때에 있었던 알악사(Al-Aqsa) 모스크: 무함마드는 “밤하늘의 여행”(Night Journey)에서 지브릴 천사가 자신을 예루살렘에 있던 알악사(Al-Aqsa) 모스크로 데려갔고, 그곳을 본 후에 승천하여 칠층천을 방문하고 돌아 왔다고 한다 “그분(알라)의 종을 밤에 하람 모스크에서 알악사 모스크로 여행케 한 그분께 영광이 있으소서”(꾸란 17:1). 그러나 알악사 모스크는 무함마드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알악사 모스크는 십자군에 의해 교회로 처음 지어졌으며, A.D. 1187년 무슬림 지도자 살라딘(Saladin, 1137-1193)이 예루살렘 수복 후 모스크로 바꾼 건물이었다. 또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라는 황금돔 모스크는 A.D. 691년이 되어서야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A.D. 632년 무함마드가 죽고 나서 59년 후다.

/유해석 선교사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