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역사

(1) 선사시대: 민족의 유래   (2) 힌두-불교시대 (BC 1-14세기)  (3) 이슬람의 전래와 말라카왕국

(4) 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  (5) 네덜란드의 진출  (6) 영국의 진출과 식민화 과정

 (7) 일본 점령기 (1942-1945)  (8) 전후 영국의 복귀와 독립과정 (1945-1957)

 (9) 말라야 공산당의 준동과 비상사태 선포  (10) 말레이시아 연방 (Federation of Malaysia)의 탄생 

(11) 복합민족 사회의 형성과 1969년 인종폭동 사태
 

1. 선사시대: 민족의 유래

 

동남아는 현대의 중요한 4대 문명, 즉 중국, 인도, 이슬람 그리고 서구문명 등 모든 문화가 공존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지역이다. 이러한 문화적 패턴은 동남아의 고유전통에 다양성을 더해 주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이러한 유입문화는 토착생활에 접목되어지거나 또는 흡수되어서 동남아시아 특유의 문화적 다양성을 연출하였다.

 

동남아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이 지역에서는 BC 약 100만년전의 사람 두개골 (피테칸트로푸스)이 중부 자바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동남아 지역에 가장 먼저 정착한 사람들은 기원전 약 2만년전 빙하기 말에 이 지역에서 살았던 구석기 시대인들로 오늘날 필리핀의 네그리토스(Negritos)인과, 사라와크의 뻬난 (Penan), 사바의 룽우스(Rungus)족, 말레이 반도의 산간부족인 오스트라로이드 베도이드 (Australoid Veddoid) 또는 오랑 아슬리인들의 조상들이다. 이들은 키가 작고 곱슬머리로 짐승을 사냥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최초의 말레이인들이 북으로부터 말레이 반도 지역으로 이주한 것은 기원전 약 2500-1000년 사이의 신석기시대로 추정되는데 Proto-Malays라 불리우는 이들은 오늘날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그리고 버마인의 조상이 되었다. 이 당시의 민족이동은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이후 약 2-3세기에 걸쳐 또다른 일단의 말레이인들이 중국과 티벳으로부터 말레이 반도를 포함하여 동남아시아를 관통, 인도네시아 제도 등지로 퍼져나갔는데 이들 후기 말레이인(Deutro-Malays)은 이전의 이주민들보다 앞선 영농기술과 새로운 금속기술을 가져왔다. 이 청동기와 철기문화는 맨처음 청동기가 제조된 흔적이 발견된 베트남의 마을 이름을 따서 동선(Dongson) 문화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 예술형태는 중국의 것과 연관된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동선문화기가 시작되면서 동남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인도문화의 특징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중국과 인도문화가 전래하기까지 토착적인 동남아의 문화적 특징은 이미 구체화되어 있었다. 기술면에서 이들 주민은 논에 물을 댈 줄 알았고, 짐승을 길들였으며, 야금술을 터득했고, 계절풍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항해술을 익혔다. 사회적인 면에서는 모계중심의 전통에 따라 자손의 혈통과 상속을 책임지는 여성이 사회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촌락들을 이루었다. 오늘날의 말레이시아 원주민은 이들 프로토 말레이와 듀트로 말레이인의 후손, 오랑 아슬리 등을 통칭하여 부미뿌뜨라(Bumi Putera)라 칭하고 있다.

 

2. 힌두-불교시대 (BC 1 - 14세기)

 

말레이시아 지역에 있어서의 새로운 역사발전은 BC 1세기경 이 지역과 중국 및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와의 정규적 교역활동이 개시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말레이 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하여 해상무역의 교차로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세력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관심을 기울여서 힌두교와 불교, 이슬람이 서로 경쟁하였다. 이때 이 지역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였다. 동서교역이 활발하던 이 시기에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지역에서 일부 항구도시를 중심으로한 정치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지만 서기 7세기 이전까지는 이 지역에서 말레이족을 중심으로한 본격적인 정치세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가) 불교왕국 스리비자야의 등장

 

말레이족에 의한 본격적인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은 7세기부터로 중국의 역사기록과 이 지역에서 나오는 비문 등의 자료에 의하면, 수마트라 남부지역에서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무역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스리비자야 (Srivijaya)가 7세기에 가장 영향력있는 고대국가로 등장하였다. 스리비자야 왕국은 7세기 말부터 약 600년 동안 말라카 해협을 중심으로 전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 그리고 서부 쟈바와 서부 칼리만탄 일부에 걸쳐서 크게 발흥했던 불교왕국이었다. 전략요충인 순다와 말라카 해협을 지배한 스리비자야는 상업상의 우월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항구들을 건설하였으며 이곳을 지나는 무역선들로부터 통행세를 거두었다. 한편 스리비자야는 중국에 대해서는 조공을 바치면서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중국 문헌에 의하면 서기 670년 처음으로 당나라에 사절을 보냈으며 이같은 사절의 파견은 그후 76년간 계속되었다.

스리비자야는 대승불교 왕국이었다. 중국의 불교도 이칭 (Iching)이 672년 한 페르시아의 배를 타고 Palembang에 도착하였다. 그는 인도로 가기 전에 범어를 공부하기 위하여 6개월을 머무는 동안 스리비자야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에 의하면 스리비자야에는 천명의 대승불교 승려들이 있었다고 한다. 말레이 반도 북부의 Ligor에 775년 범어로 세워진 비문에는 대승불교 사원을 세운 스리비자야 왕을 찬양하는 글이 새겨져 있어 스리비자야가 불교왕국이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한편, 서기 750년경 대승불교는 자바에 나타난 사일렌드라 (Silendra) 왕조의 보호아래 한동안 중부 자바에 전파되었으나 곧 힌두교로 대체되고 말았다. 당시 열렬한 불교사찰 건설자인 사일렌드라 왕에 의해 772년 세워진 것이 Borobudur 사원이다. 보로부드르란 발음하기 힘든 부미삼바라부다하라 (Bhumisambarabhudhara)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 보살의 10계단 위에 선을 쌓은 산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산위에 만든 9단의 거대한 사리탑으로 둘레가 3마일이나 되는 원형 회랑과 4백개의 불상을 가지고 있다. 엷게 양각된 조각들은 신성한 대승불교의 경전내용과 세속 자바인들의 생활, 관습 등을 설명해주고 있다. 공격적 성향의 사일렌드라인들은 앙코르, 안남 등과 싸웠으며 850년경 결혼동맹을 통하여 스리비자야와 통합하였다.

 

(나) 스리비자야의 쇠퇴: 스리비자야는 11세기 초, 동남아시아 및 중국과의 무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남인도의 촐라(Chola)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게 되었다. 촐라국은 1011년 스리비자야 지배하에 있던 주요 무역항을 공격하였고 스리비자야의 가신국들도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이에 13세기 들어 스리비자야가 크게 쇠퇴하면서 당시까지 스리비자야의 영향권하에 있던 말레이 반도는 태국의 소승불교 왕국 영향권하로 편입되었으며 보르네오는 자바의 힌두왕국인 Majapahit에 의해 지배되었다. 스리비자야는 1377년 마자빠힛 왕국에 의해 멸망된다. 스리비자야는 끝까지 수마트라에 거점을 두었으며, 이때까지 말레이 반도에 거점을 둔 왕국은 없었다. 즉, 힌두-불교시대 (스리비자야 왕국부터 15세기 초 이슬람 왕국 설립전까지)의 대부분 기간동안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거주민들은 자바나 수마트라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다) 힌두-불교문화의 마자빠힛(Majapahit) 왕조

 

자바국가들 가운데 가장 큰 고대왕국인 Majapahit 왕국은 1294년부터 포르투갈이 향료섬에 들어온 1520년까지 2세기 이상 존속되었다. 마자빠힛 왕국은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 전 지역, 칼리만탄의 거의 대부분과 동부 쟈바에 걸쳐 거대한 속국을 거느린 대왕국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는 1330-1364년 사이 재임했던 가자마다(Gaja Mada) 재상으로 인도네시아 최초의 제국건설자로 일컬어진다. 그는 당시 하얌 울룩(Hayam Wuluk) 왕과 함께 해양 동남아의 대부분에 대해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당시 마자빠힛의 영토는 말레이 반도와 1377년 멸망한 스리비자야를 포함한 수마트라를 포함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이 죽은후 왕국이 분열하기 시작,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서히 영토가 줄고 국력이 약화되었다.

 

이때 새로운 정치와 종교세력들이 나타났다. 아유타야 (Ayuthia)는 남쪽으로 세력을 뻗어오고 중국인들은 교역권을 확대시키고 있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슬람의 출현이었다. 이후 오랜 기간동안에 걸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반도 지역은 이슬람 세력권으로 편입되었으며 마자빠힛 왕국은 힌두의 생활방식뿐만 아니라 교역권도 상실하게 되었다. 정치의 중심은 다시 말라카 해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마트라쪽이 아니라 말레이 반도의 서쪽 해안지역으로 향하게 되었다.


 

3. 이슬람의 전래와 말라카 왕국

 

이슬람인들은 인도에서 북부 수마트라를 경유해서 말라야에 왔다. 1292년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돌아가던 마르코폴로는 북부 수마트라에서 2개의 이슬람 공동체를 발견했다고 한다. 말라야 지역에 대한 이슬람의 영향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트렝가누(Trengganu) 강의 동북쪽 해안에서 발견된 돌조각에서이다. 아랍어로 새겨져 있는 이 돌은 1326년-1386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바섬 전체가 훗날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자바 지역에 광범한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말라카 왕국을 통해서였는데 말라카 왕국은 말레이 반도에 거주하는 말레이인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통일국가로서 15세기 중엽까지 말레이 반도의 대부분 소국가들과 수마트라 동부 연안의 전역을 그 세력권 하에 두었다.


 

(가) 말라카 왕국의 건설

 

스리비자야가 마자빠힛 왕국에 속국으로 전락한 후 스리비자야 왕국의 한 왕자였던 빠라메스와라 (Parameswara)가 빨렘방으로부터 말라카로 건너와서 1403년 이 지역을 근거지로 도시국가를 세웠다. 이를 계기로 말레이 반도에의 역사시대가 개시되는데 빠라메스와라의 이복동생인 무자파르 샤(Muzaffar Shah)는 이슬람을 국교화하여 서아시아 및 인도 방면의 부유한 이슬람 상인을 끌어들여 말라카 항의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한편 빠라메스와라는 말라카 해협을 경유하는 모든 선박이 말라카를 거쳐갈 수 있도록 동 지역을 국제 항구도시로 육성해 나갔다. 말라카국은 동서 해상교통로의 요충인 말라카 해협 중심지를 독점지배하고 말라카 항을 적극 활용하여 인도와 페르시아, 시리아를 거쳐 동 아프리카 연안과 지중해까지에 이르는 광대한 통상범위를 확보하였으며 이 무역망을 통하여 각종 생산품들을 세계 전역으로 교역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말라카는 세계통상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스리비자야의 유산을 계승하게 되었다. 말라카 왕국은 15, 16세기에 번영기를 맞았으며 당시 인근 지역을 직할지, 속령, 조공국으로 나누어 지배하였다. 초기부터 말라카 왕국의 주요 위협세력은 씨얌(Siam)족이었다. 그러나 말라카는 1405년 이래로 명나라의 보호를 받았고, 자주 명군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건국이래 말라카 왕국은 계속해서 각종 사절단을 북경에 보냈다.

 

말라카 왕국의 번영은 현명한 통치자들이 천연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하여 국제무역의 공동체를 창출해냄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말라카의 번영은 멀리 동방의 나라로부터 간접무역에 의해 수입되는 고급향료와 양질의 열대작물에 매료되어 있던 유럽열강들로 하여금 말라카와 직접 접촉에 나서도록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포르투갈의 식민통치자들은 이로써 말라카 왕국의 정복이 새로운 국제무역망을 창출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울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15세기 초반부터 서구열강은 앞을 다투어 커피, 차, 담배, 사탕수수 등 양질의 열대작물의 보고인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 제도를 정복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이곳의 각종 향료와 열대작물은 말라카 왕국이 장악하고 있던 아시아 무역망을 통해 서구의 여러나라로 흘러들어갔다.

 

향료는 유럽인들에게 대단히 필요한 상품이었다. 유럽에서는 겨울 동안 많은 수의 가축을 생존시킬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가축이 도살되었고 그 고기의 선도를 유지할 방법을 찾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 소금과 향료가 이용되었고, 수입한 향료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동북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정향과 후추였다. 오랫동안 맛없는 음식에 길들여져 온 유럽인들에게 말루꾸(Maluku) 군도에서 생산되는 정향과 육두구는 실로 훌륭한 향취와 음식의 맛을 일깨워 주었다. 더구나 정향과 육두구가 향료의 역할뿐만 아니라 탁월한 약재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유럽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육두구는 특히 두뇌를 강화시키고 기억을 명료하게 하며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동시에 몸을 따뜻하게 보해주는 다용도의 신비한 향료였다.

 

각종 향료와 양질의 열대작물은 초기에 아랍의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서 서구로 운반되었다. 일찍이 카이로에서 말루꾸까지 해로를 개척했던 이들은 말루꾸에서 정향과 육두구를 구입하고, 쟈바 서북부의 반땀(Bantam)에서 후추를 샀으며, 기타의 열대작물은 주로 이방인인 중개상들로부터 구입하는 절차를 거쳤다. 아랍상인들은 향료제도에서 사들인 향료와 열대작물을 지중해를 거쳐 베네치아까지 운반하였다. 무슬림들이 지배하고 있던 아시아 무역망을 손에 넣음으로써 막대한 동양의 부를 한꺼번에 장악할 목적으로 무력을 앞세운 포르투갈이 서구 열강중 가장 먼저 인도네시아 군도로 내도하게 된다.

 

(나) 이슬람 시대의 개막과 말라카의 쇠망

 

말라카 왕국은 이 지역에서 힌두-불교 시대의 막을 내리고 이슬람 시대의 시작을 가져왔다. 이슬람은 아랍 및 인도상인과의 교역과정에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말라카 왕국은 동남아시아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무역을 통해 말레이어를 상업용어로 각지에 전해 오늘날의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의 모태가 되도록 하였다. 이슬람교는 말라카로부터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말레이 소국가들로 전파되었고, 교역로를 따라 인도네시아 군도로까지 전해졌다. 이슬람교는 말레이인의 주요 종교로 자리잡으면서 그들의 생활양식과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러나 말라카 왕국은 말레이 술탄 상속체계의 미확립, 식량 등 생필품의 대 자바의존, 지배계급과 민중사이를 연결하는 완충계급 부재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1511년 포르투갈의 공격을 당함으로써 몰락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침공하여 말라카시를 점령하면서 말라야는 포르투갈과, 그때까지 말라카 왕국의 지배하에 있던 아체왕국, 부기스, 미낭까바우족의 활동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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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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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세기의 오스만  제국군

 

13세기 말 몽골에 위협을 피해 소아시아에 정착한 투르코만 족은 오스만 1세가 비잔틴 국경지대의 8개의 성과 에스키세히르, 예니세히르를 점령하면서 오스만 공국을 건국했다.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세르비아, 불가리아, 타타르 족의 침공, 대 카탈로니아 용병단의 반란으로 쇠약해진 비잔틴 제국을 약탈, 점령하면서 성장한 오스만 공국은 바야지드 1세(1389~1402년)가 1389년 세르비아 동맹국을 결정적으로 패배시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를 속국으로 만듦과 동시에 술탄 자리에 올라 제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전의 오스만의 군주들은 대공(Emir)의 칭호를 사용했다.) 이후 바야자드 1세 아래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헝가리와 부르고뉴의 연합군을 제압하고(1396년) 콘스탄티노플 코앞까지 진군했으나, 1402년 14만의 병력을 이끌고 서진해 온 몽골의 후예 티무르에게 바야자드 1세가 이끄는 8만 5천명의 오스만 투르크 군이 앙카라에서 패배하고, 이어 바야자드 1세가 티무르 군에 사로잡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혼란기에 빠져들었다.

1413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술탄이 된 마호멧 1세(1413~1421년)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재건했고 무라드 2세(1421~1451년)는 정복전쟁을 다시 재개해 1444년 코소보에서 그가 이끄는 5~6만 명의 오스만 군이 2만 4천명의 유럽연합군을 철저하게 패배시켜 콘스탄티노플을 고립시켰다. 정복자 메멧 2세(1451~1481년)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683년 비에나 공성전이 패배로 끝날 때까지 유럽의 최대위협세력으로 남는다.

전성기의 오스만 군대는 둔전병인 지방 기병대 시파히와 예나체리를 포함하는 술탄의 군대 카피쿨루 군단이 핵심을 이루었다. 이 외에 지원병인 아자프가 전쟁 중 보병으로 참전하고, 여러 속국에서 병력을 지원했다. 전통적인 오스만 투르크 군의 전술은 경기병인 아키닉스가 전초부대로써 정찰, 기습, 유인 등의 임무를 맡고, 아자프는 그 뒤에서 화살로 적군을 약화시키는 임무를, 예나체리는 중앙에 배치돼 참호와 목책, 낙타, 포병대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군의 중앙과 술탄을 보호하는 임무를, 지방 기병대인 시파히는 양쪽 날개에 배치돼 적군이 아군의 중앙으로 돌파를 시도하면 적군의 측면과 후방을 강습해 적군을 괴멸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술탄의 친위 기병대인 카푸쿨루 수바릴레이는 시파이의 뒤에 배치돼 필요하면 전장에 투입됐고, 타타르와 세르비아의 기병대를 진영 뒤에 숨겨 갑자기 적군을 기습하는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15~16세기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대부분의 전쟁에는 2만~4만 명의 전투병을, 대규모 원정에는 6~8만 명의 병력을 투입했고, 최대 16만 명 정도의 병력을 전쟁에 동원할 수 있었다.


1.술탄의 군대. 카피쿨루 군단:


원래 술탄의 노예로 이루어진 술탄의 친위대였던 카피쿨루는 보병대인 예나체리를 추가시켜 술탄의 군대로 편성되었다. 카피쿨루 군단은 술탄의 기병대인 카푸쿨루 수바릴레이(Qapukulu Suvarilei, 궁정 기병대)와 정예 보병대인 예나체리를 주력으로 하고, 귀족 및 지방 유력자의 자제들로 구성된 술탄의 호위기병대 무테페리카, 포병대와 공병대가 포함돼 있었다. 15세기 초반까지는 그리스도 교 출신의 전쟁포로들이 카피쿨루의 핵심을 이루었지만 1438년부터는 그리스도 교인의 자식들을 강제징집하는 데브시르메 제도가 정착됐다. 데브시르베 제도는 그리스도 교 40가구 중 1명의 아이를 강제 징집시켜 1년에 1000~3000명을 뽑았는데 주로 농촌지역의 그리스도 교 가정에서 8~15세의 아이들이 징집됐으며, 도시지역이나 해안가, 아들이 1명만 있는 가정, 유태인, 광부, 전략적 요충지의 주민 등은 강제 징집대상에서 제외됐다. 14~18세기 동안 술탄들은 지방군을 견제하기 위해서 점차 카피쿨루 군단의 병력을 늘였다. 메멧 2세(1451~1481년) 치하에서는 카피쿨루 군단 내의 예나체리 병력을 1만 2천명 선으로 늘리고(메멧 2세 초기에는 3000명의 카푸쿨루 슈발레이와 6000명의 예나체리가 존재) 술래이만 1세(1520~1566년)은 카피쿨루 군단의 병력을 4만 8천명으로 증가시켰다. 16세기 중반에 이르면 술탄은 광대해진 제국을 통제하기 위해 예나체리를 주요지역에 주둔시켰는데, 지방에 정착한 예나체리들은 술탄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신 그 지방의 유지들과 유착하게 되는 폐해를 낳게 된다.


가. 술탄의 엘리트 기병대. 카푸쿨루 수바릴레이(Qapukulu Suvarilei, 궁정기병대)

카푸쿨루 수바릴레이는 술탄의 친위 기병대로 중무장을 한 기병대였다. 카푸쿨루 수바릴레이는 술탄의 보병대인 예나체리 보다 군사적으로 더 중요한 위치를 담당했으며, 예나체리보다 높은 대우를 받았다.

강제 징집된 그리스도 교 아이들 중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시동(ic oglani)으로 뽑혀 토프카프 궁전에서 교육을 받게 하고 나머지는 시파히(지방 기병대)의 집으로 보내져 터키어와 이슬람교를 배우면서 예나체리로 키워졌다. 시동으로 뽑힌 아이들은 궁전학교에서 2~7년 동안 백인 환관장(Kapi Agasi)의 관할 하에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궁전학교에 들어온 시동은 먼저 이슬람교에 관해 배우고 교수(Hocas) 아래서 일반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재능에 따라서 정치, 종교, 혹은 군사에 대해 교육받았다. 이들은 터키어, 페르시아어, 아랍문학, 마상술, 창술, 궁술, 레슬링, 체육, 음악 등을 배웠다. 궁전학교에서는 시동들을 정직하고 충성스럽고, 예절이 바르며,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인재로 키웠다. 교육이 끝나면 시험을 쳐 시동들 중 가장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술탄의 궁전에 들어가 관리로써의 길을 걷고 나머지는 카푸쿨루 수바릴레이의 장교나 일반기병이 됐다.

카푸쿨루 수바릴레이는 6개의 연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가장 먼저 창설된 연대는 좌 용병연대(Ulufeciyan-i yesar), 우 용병연대(Ulifeciyan-i yemin), 좌 외인연대(Guerba-i yemin), 우 외인연대(Guerba-o yesar)로 이 4개의 연대가 궁정기병대의 핵심을 이루었다. 나머지 2개의 연대는 무사연대(silahtar), 와 종자연대(sipahi oglan)로 이들은 카푸쿨루 수바릴레이 내에서도 엘리트로 여겨지는 연대였다. 콘스탄티노플 점령 당시에는 2500명가량의 카푸쿨루 수바릴레이가 있었으나, 16세기 말에는 그 수가 6000명 남짓으로 늘어났다.
각 연대는 ‘케투다 예리’가 지휘했다. 카푸쿨루 수바릴레이에는 전장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 예나체리, 아랍인, 페르시아인, 쿠르드 이슬람교인 이 편입되기도 했다.


나. 예나체리:

술탄의 정예 보병대. 14세기 중반 무라드 1세가 오스만 투르크 최초의 정규보병대인 예나체리를 창설했다. 예나체리가 창설될 무렵에는 1000명 남짓의 예나체리가 있었으나, 점차 그 숫자가 늘어 15세기 중반에는 1만 여명 술래이만 1세(1520~1566년)치하에서는 2만 명의 예나체리가 있었다. 예나체리는 공성부대만이 철갑옷을 걸치고, 대부분은 갑옷을 입지 않았다. 15~16세기의 예나체리는 합성궁을 주 무장으로 애용했으나, 15세기 중반부터 총을 도입하기 시작해서 16세기 말에 이르면 대부분의 예나체리가 머스켓 총으로 무장했다. 예나체리는 거의 모든 무기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훈련받았으며, 서유럽의 집단사격전술과는 달리 예나체리는 개개인의 사격능력에 의존하는 전술을 썼다. 예나체리는 능숙한 사수로 이름이 높아서 달이 뜬 밤에도 총으로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강제 징집돼온 그리스도교 아이들 중 시동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외국인아이(Acemi Oglan)로 분류돼 예나체리로 키워졌다. 이들은 맨 처음 시파히의 가정이나, 귀족의 가정, 항구, 궁전주방에서 5~7년간 하인으로 일하면서 이슬람교와 터키어를 배우고, 기본적인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대부분은 훈련대(Acemi Oack)에 입대해 수학교육과 군사훈련을 받았다.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예나체리의 엘리트 사단인 보스탄시(Bostanci, 정원사)사단에 바로 입대하거나, 제독부에 입대했다. 혹은 지원부대인 병기부(Ortas Cebeci), 포병대(Topcu), 대포 수송대(Top Arabaci)에 편입되기도 했다. 16세기 말부터 예나체리의 아들이나 이슬람교 자유민 이 예나체리에 지원할 수 있게 되었고, 17세기 중반에는 그리스도교 아이들을 강제징집하는 데브시르메 제도가 붕괴됐다.

예나체리는 3개 사단 196개 연대로 편성돼 있었다. 예나체리의 주요 3개 사단은 세마아트(Cemaat, 집회)사단, 볼루크(boluk, )사단, 세그멘(Segmen, 사냥꾼)사단이었다. 세마아트 사단은 예나체리 사단 중 가장 규모가 큰 사단으로 101개의 연대로 구성되었는데, 술탄의 호위대인 왼손잡이 연대(Solak ortas)와 술탄의 70개의 영지와 이스탄불의 해안방어를 담당하는 엘리트 사단인 정원사 사단(Bostanci)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마아트 사단의 예나체리는 새로 점령한 지역에 주둔하기도 했다. 볼루크 사단은 예나체리 사단 중 두 번째로 큰 사단으로 61개의 연대로 구성돼 있었다. 볼루크 사단에는 예나체리 사령관의 호위대 및 이스탄불의 성문을 지키는 주둔군이 포함돼 있었다. 세그멘 사단은 34개의 연대로 구성돼 있었다.

예나체리 총사령관(Yeniceri Agas)은 예나체리 출신으로 궁전학교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 중에 선발됐다. 예나체리 총사령관의 권한은 막강해서 술탄이나 술탄이 임명한 전군 총사령관만이 예나체리 총사령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예나체리 총사령관 이외에 예나체리의 사령부에 속한 장군들은: 세마아트 사단 사령관(Kul Kahyast)과 세크멘 사단 사령관(Sekbanbasi), 이스탄불의 주둔군과 예나체리 훈련대를 관할하는 이스탄불 사령관(Istanbul Agasi), 수석 시종장(Ocak Imami), 재무장(Beythulmalci), 징집장(Muhzir Aga), 술탄의 궁전에서 예나체리 총사령관을 대표한 사령관대리(Kahya Yeri), 예나체리의 훈련을 총괄한 훈련대장(Talimhanecibasi), 예나체리의 처벌과 사형을 담당한 감옥소장(Azar Basi), 예나체리의 행정업무를 총괄한 서기관(Yeniceri Katibi) 등이 있었다.

예나체리의 기본부대 단위는 100~3000명으로 구성된 연대(Orta)로 코르바시(Corbaci, 국 만드는 사람)가 연대를 지휘하고, 아스시 우스타(Asci Usta, 주방장)가 부연대장을, 아스시(Asci, 요리사)여러 명이 아스시 우스타를 보조했다. 그 아래로는 하사관을 맡은 전령(Cavus)과 기수(Bayraktar)가 병사들을 지휘했다. 병사들은 경력에 따라서 3등급으로 나뉘었는데 신입병(Eskinci)이 가장 아래계급이고, 전공을 세운 병사는 고참병(Eskinci)으로 승진했다. 병사들 중 가장 높은 계급은 연금병(Oturak)으로 이 계급에 오르면 결혼이 허가되고, 민간인 직업을 병행할 수 있었다. 연금병은 대게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다. 포병대와 지원부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4세기 말 대포를 도입해, 메메드 1세와 무라드 2세 치하에서 상당한 규모의 포병대를 보유했다. 1440년에는 오스만 군도 서서히 야전포를 갖추기 시작했다. 오스만의 거대한 공성포는 142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15세기 중반에는 450kg 의 포탄을 1마일 가량 날릴 수 있는 대포가 등장했다. 15세기 중반의 오스만 군이 보유한 대포는 200~300문 정도였다. 15세기 중반의 공성포는 하루에 10발 정도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오스만의 포병대는 서유럽의 검은색 연기가 나는 화약보다 우수한 흰색 연기가 나는 화약을 사용했다. 오스만 군의 포병대는 공격하기 바로 전에 다수의 대포가 차례대로 대포를 쏘고, 대포를 장전할 때는 엄폐물 뒤에 숨어 자신을 보호했다. 그 다음에는 중간 크기의 대포가 적군의 요새를 약화시키고, 마지막으로 거대한 공성포가 적의 요새에 결정타를 가하는 방식으로 포격을 가했다. 오스만의 대포는 나무로 만든 지지대를 높이거나 낮추어서 대포의 사정거리를 조정했다. 17세기에 이르면 오스만 군은 포도탄(일종의 산탄)과 폭죽 등을 대포에 쓰기 시작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군의 포병은 대부분 중앙군 카피쿨루 군단에 속해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점령 이후 메멧 1세는 카피쿨루 군단의 포병대를 포병연대(topcu ocagi)와 대포의 수송임무를 맡는 수송연대(top arabacilari)로 나누었다. 1575년 카피쿨루 군단의 포병연대의 포수는 1000명 정도였고, 17세기 말에 이르면 포수의 숫자는 5000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포병대를 보조하는 부대는 구포부대 , 수류탄부대, 땅굴부대, 폭탄부대를 포함하고 있었던 야전공병연대(humbaracilar), 와 공성공병연대(lagimcilar)가 있었다. 이 중 야전공병연대는 구포(곡사포)와 유리나 쇠로 만든 폭탄, 유리나 청동으로 만든 수류탄을 주 무기로 사용했다. 공성공병연대는 군대 내의 노동자들을 통제했고, 공성 시에는 땅굴을 파고 폭약을 성벽이나 성문에 폭약을 설치하거나, 참호를 만드는 등의 임무를 맡았다.

이 밖에 카피쿨루 군단에 속한 지원부대는 병기부대(Cebecis), 물 배급부대(Saka), 장인부대(Karhane)가 있었다. 병기부대는 600여명의 기술자가 무기의 수리, 무기의 보급 등의 임무를 맡았다. 물 배급부대는 카피쿨루 군단의 의무병으로 전투 중 부상당한 병사를 후방으로 옮기거나, 부상자를 돌보는 일을 했다. 장인부대는 34개의 중대로 이루어진 기술자 부대로 검 제작공, 양털 제작자, 초장이, 화살 제작자, 포목상, 편자 제작공, 비단공, 약사, 구리 제작자, 주석 제작공, 빵 만드는 사람, 약사, 신발공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2.봉건기병 시파히: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봉건기병. 오스만 군에서는 봉건기병 시파히가 군의 주력병력이었다. 15~16세기에는 4만 명 안팎의 시파히가 전쟁에 참가했다. 시파히는 보통 중무장을 했으나, 중앙군의 기병대 카푸쿨루 수바릴레이에 비하면 가벼운 무장을 했다. 시파히는 보통 체인메일에 주요부분을 철판으로 덧댄 메일 플레이트 갑옷, 화살, 창, 방패, 칼 등으로 무장했고, 보조 무기로는 메이스를 애용했다. 서유럽의 기사처럼 영지 티마르(timar)가 내려져 기병으로써의 무장을 갖추게 했으나, 서유럽의 기사와는 달리 시파히에게는 자신의 영지에 제한된 권리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시파히는 자신의 땅을 직접 경작해야 했고, 자기 영지 주변의 주민들에게 돈을 주고 물건을 사야했으며, 국가에서는 시파히에게 봉급을 주지 않았다.

시파히는 소아시아 혹은 유럽지역에 정착했는데, 시파히가 하사받은 영지는 연간 수입 750에스퍼(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은화)에서 2만 에스퍼 사이의 영지를 가지고 있었다. 시파히는 영지에서 나오는 세금의 일부와 영지에서 나오는 농산물 중 5분의 1~3분의 1 정도를 받았다. 영지의 규모에 따라 각 시파히는 일정한 숫자의 기병을 데리고 참전해야 했는데 연간수입 1500~3000에스퍼(소아시아 지역) 혹은 6000 에스퍼 (유럽지방)이상의 영지를 가지고 있는 시파히는 잘 무장한 기병인 종자와 경무장을 한 노예기병 한 명씩을 거느리고 참전할 의무가 있었다. 부유한 영지를 가진 시파히는 15명의 기병을 이끌고 참전했고, 최대 50명의 기병을 이끌고 참전하는 시파히도 있었다.

전쟁에 참가하는 시파히는 1000명의 기병을 지휘하는 점호장(alay bey)밑에 편입됐다. 점호장은 시파히 중 가장 높은 계급으로 각 속주의 기병을 소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점호장 밑에는 기수(beyrak-dar)와 수위장(cavus) 점호장을 보좌했다. 한 속주에서는 보통 1000~3000명의 시파히를 소집할 수 있었는데 각 속주의 총독(sancak bey)은 휘하에 1~3명의 점호장을 거느리고 있었다. 총독은 20명 이상의 시파히로 구성된 친위대를 데리고 다녔으며, 속주의 행정업무와 군사를 총괄했다. 이와 더불어 총독은 각 주요도시에 경찰총장(subashis)을 임명했다. 경찰총장은 전시에는 100~수백명의 병력을 지휘했다. 100명을 지휘하는 사람은 중대장(ceri-bashi)로 주로 부유한 영지를 가진 시파히가 중대장을 맡았다. 중대장 아래로는 10명을 지휘하는 십장(ceri-surucus)이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시파히 10명 중 1명이 후방에 남아 세금징수를 하고 영지의 방어를 맡았다.


3. 속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속국들은 오스만 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초기인 14~15세기에는 오스만 군중 속국의 병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오스만 제국 의 속국 대부분은 주요도시가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당한 다음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했다.

속국 귀족의 자제들이나 터키 귀족의 자제들은 술탄의 호위 기병대인 무테페리카(Muteferrika)에 소속돼 오스만 제국식의 교육을 받으면서 인질의 역할을 했다. 발칸 반도의 여러 기독교 속국들은 그리스도 교 5~10가구에 1명의 기독교 중장보병 보이누크(voynuk)를 제공했다. 속국의 중장기병은 기독교 군주가 자신의 직할부대를 제공하거나, 오스만 제국에서 면세를 받거나 영지를 하사받은 이들이 중장기병으로 참전했다. 기독교 속국에서는 최대 5만 명의 병력차출이 가능했다.

크림 칸국의 타타르 족은 궁기병을 오스만 제국에 제공했다. 대부분의 타타르 부족민은 가난했기 때문에 대게 보병으로 참전했다. 타타르 족의 칸은 칸의 직할지에서 뽑은 20개 중대의 말탄 총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칸의 직할부대 이외에 타타르 족 귀족들의 병력이 타타르 군의 다수를 차지했다. 코사크 인은 4개의 바퀴가 달린 무거운 마차를 연결해 요새를 만들고 그 위에 가벼운 대포와 총병을 배치하는 야전요새를 애용했다. 코사크 인은 전투용 카누를 이용해서 우크라이나 의 강을 지배했다. 동부 소아시아의 쿠르드 족은 1514년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편입돼 기병을 제공했다.

중동의 속국들은 대부분 자국의 방위목적 이외에는 오스만 제국에 병력을 파견하지 않았다. 대부분 중동의 속국들은 반독립 상태를 유지해 소수의 예나체리를 제외하고는 오스만 제국군이 주둔하지 않았다.

속국은 또한 무기를 만드는 자원을 제공했다. 세르비아에서는 대포를 제작해 오스만 제국에 상납하고, 몰도비아, 트란실바니아, 왈라키아에서는 머스켓 총을 만드는 나무, 짐말, 주석, 초석, 밧줄등을 오스만 제국군에 상납했고, 쿠르드 족, 이라크, 레바논에서는 심지, 유황, 초석 등을 오스만 제국군에 상납했다.


4.비정규군:

오스만 군의 비정규군은 크게 보병 지원병인 아자브(azab, 젊은 남자), 적군 영토를 약탈하는 목적으로 쓰인 경기병 아킨지스(akinjis, 약탈자), 각 지방의 방위를 책임지는 각종 경비대 등으로 나뉘었다.

아자브는 전쟁기간 동안 보병으로 지원한 병사들로, 전쟁이 끝나면 언제든지 군대를 떠날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최대 4만 명의 아자브를 동원할 수 있었다. 아자브는 주로 활로 무장을 했고, 칼을 갖고 있거나 막대기로 무장한 아자브도 있었다. 아자브는 아군이 전투 진형을 짜기까지 화살로 적군을 묶어두는 임무를 맡았다. 원래 아자브는 전쟁중에만 봉급을 받았으나, 14세기말에는 항상 봉급을 받으면서 요새에 주둔하는 아자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6세기부터는 국경지방의 속주에 사는 모든 이슬람교인이 주둔군 아자브나 해군 아자브로 징집될 수 있었다. 베야지드 2세 치하에서 국경지방의 20~30가구의 주민들이 한 명의 아자브를 지원하는 제도가 정착됐다.

아킨지스는 원래 투르크 족의 전사 출신으로 이루어졌던 궁기병 부대로 1362년부터 국경지방의 주요 전략 요충지에 배치돼 적국의 영토를 약탈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쟁 중에 아킨지스는 본대보다 먼저 적군의 영토에 진출해 적국 영토의 약탈, 적군의 통신망 교란, 정찰, 주요도로 확보 의 임무를 맡았다. 평상시에는 적국의 약탈로부터 국경지방을 방위했다. 아킨지스는 점령이 어려운 산악지대에 투입되거나, 점령이 어려울 경우, 반란군이나 적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다. 아킨지스는 투르크의 족장들이 지휘했고, 아킨지스는 족장에게 봉급을 받거나, 약탈로 생계를 이어갔다. 오스만 제국은 최대 3만 명가량의 아킨지스를 동원할 수 있었다. 아킨지스는 10단위로 구성돼 있었고(10명, 100명, 1000명),보통 2마리의 말을 끌고 다녔다. 아킨지스는 창과 활, 세이버로 무장했다.

오스만 제국에는 아자브와 아킨지스 외에 각 지역을 방위하는 비정규군이 존재했다. 고눌루얀(gonulluyan, 지원병)은 각 지방에서 주요도로의 순찰과 요새의 방위를 맡은 지원병으로 기병과 보병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르톨로(martolo)는 발칸 반도에서 세금을 면제받으면서 지방군으로 주둔한 부대였다. 고눌루얀과 마르톨로는 대게 소규모로 수백명 이하의 병사들이 지방의 경비 군으로 활약했다. 마르콜로와 고눌루얀 중 일부분은 갑옷을 착용했으며, 창, 칼, 방패, 총 등의 무기로 무장했다.


5. 해군:

오스만의 해군은 동지중해의 사라센과 비잔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수백 년간 오스만은 이탈리아 및 서지중해 국가들과 비슷한 형태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스만 해군의 주요임무는 육군을 수송하고 가능하면 해안포격으로 육군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또한 오스만 해군은 제국의 방대한 해안선을 방어하고, 기독교 해적의 안식처였던 지중해 여러 섬을 장악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4세기 초반 카라시 공국과 다르나넬 공국을 점령하면서 비잔틴 제국 출신의 선원과 투르크 전사들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해군을 창설했다. 15세기 중반부터 오스만 제국은 동지중해에서 베네치아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해군을 건설했다. 1470년 오스만 해군은 92척의 겔리 선을 보유해 흑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15세기 말에 이르면 오스만 해군에 소속된 배는 500척에 육박했다. 1499~1502년 베네치아와의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은 60척의 3단 겔리 선, 30척의 푸스타에 선, 3척의 대형 겔리선, 2척의 대형 카락선, 18척의 소형범선, 보급선 127척에 총 선원 수 3만 7천명을 동원했다. 오스만이 베네치아와의 전쟁에 참가시킨 2척의 대형 카락은 1080톤에, 2층 갑판, 탑승인원 1000명의 대형선이었다.

오스만은 1421~1430년 경 해전에 대포를 도입해 15세기 베네치아 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배들이 그들의 배보다 더 낳은 대포로 무장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겔리 선은 대형포로 무장하고 소형 노선인 푸스타에 선은 다수의 소형포를 장착했다. 오스만 해군은 화약무기를 도입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함선으로 홍해와 아라비아 만, 인도양의 재해 권을 장악하고, 포루투갈와 에디오피아의 해군을 견제할 수 있었다. 1511년 오스만 제국은 홍해함대를 현대화했고, 1525년에는 수에즈에 1530년에는 아라비아 만의 바르사에 해군기지와 조선소를 건설했다. 이어 알제리와 튀니스를 합병해 오스만의 해군은 서유럽을 위협했다. 17세기에 이르면 오스만의 지중해 함대는 북 아프리카 함대, 이집트 함대, 에개해 함대가 포함돼 있었다.

오스만의 해군은 오스만의 해양 속주에서 지원했다. 겔리 선의 선원들은 그리스, 알바니아, 북아프리카, 달마티아, 터키 해안가에서 징병됐다. 겔리 선의 노 젓는 사람들은 전쟁포로나 범죄자가 주를 이루었다. 이외에도 범선을 전문으로 하는 선원들은 칼욘실러(kalyonciler, 갈레온 선원)라고 불렸다. 15세기의 오스만 해군은 선박 수에서 서유럽을 압도했고, 강력한 함선과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선원의 질이 서유럽보다 떨어졌다.

오스만 제국은 강에서 활약하는 함대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중 다뉴브 함대는 60~200척의 소형선을 보유하고 다뷰브 강에서 병력수송, 대포운반, 육군의 지원 등의 임무를 맡았다. 모라바 함대는 80~100척의 겔리선, 겔리엇, 보트로 기병과 보병을 수송했다. 300명의 상비군이 항상 모라바 함대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6. 전략, 전술:

오스만 제국은 많은 정복전쟁을 치루면서 점차 계획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수립해갔다. 전쟁은 그 전 해의 10월~11월에 계획을 시작해서 다음 해 8~9월에 전쟁을 시작했다. 군 사령부는 이전 전투의 기록과 옛 군인들의 목격담을 조사하고, 막대한 양의 보급품을 준비했다. 지방군의 동원령은 12월에 내려져 동원령을 받은 지방군은 이스탄불, 베오그라드, 코르틴 등의 도시에 집결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술탄의 깃발이나 재상의 깃발이 토프카피 궁전에 세워졌다. 진군로에 있는 도로와 다리는 수리되고 다리가 없는 강에는 다수의 거룻배를 띄워 다리를 대신했다. 오스만 군은 해질 때 행군을 시작해 정오에 야영지를 세웠다. 행군 중에는 먼저 경기병대가 정찰을 하고 중무장한 엘리트 기병대가 그 뒤를 따랐다. 기병대의 뒤로 보병대와 기술자 부대가 따르고 부대의 측면과 후위는 기병대가 보호했다.

오스만 군은 보병이 중앙을 방어하는 동안 기병이 적군의 측면이나 후방을 강습해 섬멸하는 방어적인 전술을 애용했다. 16세기 초 오스만 군은 경기병대가 적군을 아군의 보병대 앞으로 유인해 오면 아자프와 예나체리, 포병대가 적군을 사격하고 기병대가 적군의 측면을 돌파하는 전술을 썼다. 예나체리의 전술은 일단 적군을 사격하고 쐐기꼴의 진형을 이루어 적군에게 돌격하는 방식을 썼는데, 당시 예나체리의 돌격은 무적으로 알려졌다.

오스만 군은 전투마차를 야전요새로 애용했는데, 각 마차는 2마리의 노새가 끌고 각 마차에는 총병과 작은 대포가 배치됐다. 마차의 밑에는 탄약상자를 넣고 필요하면 마차 여러 대를 체인으로 연결해 야전요새를 만들 수 있었다.

오스만 군이 공성전을 치룰 때는 궁병과 총병이 성을 향해 사격을 가해 적군이 성 뒤에 숨게 함과 동시에 사다리 부대가 성벽으로 접근했다. 장기간의 공성전을 치룰 때는 깊은 참호를 파 계속 성벽 쪽으로 서서히 전진하고 30~100명의 지원자로 이루어진 각 공성부대가 제한된 임무(가령, 성문 밑에 폭약을 설치한다던가)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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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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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지역 베두윈(유목민)의 생활과 문화

 

우리가 중동하면 떠올리는 친근한 풍경은 양이나 염소를 몰며 사막을 오가는 유목민 무리의 모습이다. 현대에 들어와 그 비율이 감소하고는 있지만 유목은 전통적으로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삶의 방식이며 이 지역 문화의 모태였다. 건조한 사막 기후라는 자연 환경의 여건상 중동인들은 옛부터 유목을 생업의 하나로 삼아 왔으며 이에 따라 오늘날 그들, 특히 아랍인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은 유목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동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관찰은 국제정치·경제 등 각 방면에서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 지역 주민들의 의식구조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세기 동안 중동 사회는 세가지 유형의 공동체 즉 베두윈, 정착 농경민, 도시 주민으로 구분되어 왔다. 현재 이곳 주민의 50%가 농업에 종사하고, 45% 이상이 도시거주자이며 5% 미만이 유목민이다. 이들 세 부류의 생활방식에서 특히 베두윈이 도시 문명의 영향에 동화되지 않은 채 자체의 전통적인 생활형태를 지속해 왔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유목민들 중에는 매년 농업 종사자로 정착하거나 도시 직업을 구하는 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유목민들이 정착민으로 변화하는 과정에는 강력하게 중앙집권화된 정부의 성장과 서구 기술의 영향이 크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필연적인 삶의 방식에 따라 베두윈의 물질 문화는 빈약하다. 이들의 주요 재산은 자신이 기르는 동물과 거처인 천막에 불과하다. 천막 기둥의 수가 보여주는 천막의 크기는 그 소유자의 부와 사회적 지위의 표시가 된다. 그들은 빈번한 이동으로 인해 적은 양의 생활 필수품만을 갖고 다닌다. 의복 또한 거친 재료로 된 긴 겉옷이 주 복장이며 겨울에는 낙타털로 짠 천으로 만들어진 외투가 고작이다. 양이나 염소, 낙타, 말을 기르고 그 부산물인 우유, 버터, 치즈 및 양모를 팔아 생계를 해결한다. 특히 낙타는 젖과 고기, 의복과 천막 재료를 제공하고 운송 수단으로 매우 중요하다.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되고 수자원이 개발되기 이전에 사막은 유목민에게 근근히 생계를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부족만이 있었으며 보다 큰 규모의 정치 구조는 존립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대규모 사회는 행정·군사 및 비생산적인 부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잉여 식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부족이 감당하는 주요 임무는 구성원 개개인을 타집단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부족은 혈족 간의 단결을 강조하고 집단 유대와 상호 책임을 최상의 가치로 내세움으로써 유지되었다. 이러한 소규모 사회에서는 집단 의식이 우선시되며 개인은 집단의 도덕률을 준수하며 살아야 하는 부담을 져야 했다. 개인은 집단의 규율을 따르며 자신의 이익을 집단의 이익과 일치시킴으로써 집단이 개별 성원에게 제공하는 지원에 보답해야 했다. 따라서 유목 집단에서는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보다는 소속 부족에 대한 충성이 더욱 중요시 된다. 부족민은 자신들만의 법을 가지고 있으며 중앙정부의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들은 세금 납부나 의회법률의 인정, 군복무, 국경 준수를 거부하기도 한다.

 

오늘날 아랍세계에서 시골과 도시의 많은 주민들은 자신들의 근본이 베두윈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점은 많은 정착민들이 베두윈 기풍을 행동양식의 이상적인 귀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서구화에 탐닉한 일부 아랍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베두윈을 과거의 영광된 아랍 영웅시대의 계승자이며 살아있는 증인으로 우러러 보고 있다. 다마스커스를 비롯한 도시의 명문가에서는 자식을 한두해 동안 사막 유목민에게 보내 예절과 가치관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아랍 베두윈이 전통적으로 중시하는 대표적인 도덕적 가치는 환대에서 나타나는 관대함이다. 손님에 대한 환대는 가난한 베두윈들도 행하는 숭고한 덕목으로 오늘날에도 아랍 도시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인상적인 관습이다. 극진한 환대를 베푼 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위신을 높인다는 것 외에 잠재적인 고객과, 부족 분쟁시의 정치적 협력자를 확보하게 된다. 결국 환대는 궁극적으로 베두윈 최상의 목표인 집단 강화를 위해 활용된다. 환대의 관습은 사막이라는 절박한 환경에서 생겨났다. 사막에서 집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은 그 생명을 보전할 수가 없다. 사막이 그를 죽이든지 그와 마주치는 사람들 무리가 그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길잃은 개인을 맞아주고 보호하는 것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당연한 일이 되었다. 환대의 규율에 따라 도망자도 손님이 되며 주인은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그를 지켜주어야 한다. 이러한 환대의 관습은 오늘날 촌락과 도시 생활에서도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즉 결혼, 장례, 할례, 건물 완공, 라마단(이슬람교 금식의 달) 기간 등의 행사를 맞이해 주인은 주민들, 특히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물질을 베푸는 관대함의 관습은 전통적인 아랍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존재하며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아랍인들에게 남아있는 베두윈 문화의 잔재 중 대표적인 것은 그들의 육체노동에 대한 멸시에 가까운 기피의 태도이다. 오늘날까지 아랍 유목민들과 일반인들 중에는 농사나 기능직에 종사하는 것을 불명예스런 일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편안한 생활을 선호하며 근육을 사용하지 않는 일을 좋아하는 아랍인들의 성향은 아랍문화의 서구화 과정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집트 사회에서 육체노동의 낮은 위치는 계급 의식을 조장하고 협동과 대화, 발전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제기된 바도 있다. ‘인간은 이마의 땀을 흘리고서야 빵을 먹을 것’이라는, 성경 창세기에 반영된 중동 지역의 신화는 아랍 베두윈들의 노동관을 보여준다. 곧 그들에게 있어 노동은 신이 인간에 내린 징벌과 저주의 결과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기간 중 중동지역의 행위 규범에서 이상적인 것은 가능한 한 육체노동을 피하고, 요행이나 상업 활동에 의해 부를 얻는 것이었다. 중세 아랍의 생활과 가치관, 신앙 등을 반영한 아랍의 고전 『천일야화』에는 힘든 노동으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에게 닥치는 최악의 운명임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산재해 있다.

 

일부 학자들은 베두윈의 자유로운 삶과 용맹, 남성다움, 명예를 중시하는 그들의 가치관을 강조하며 그들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기술하기도 한다. 아랍 베두윈의 사회적 관습은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지켰던 관습과 매우 유사하고 베두윈의 언어는 가장 순수한 아랍어라는 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베두윈 사회가 위축되고 그 낭만적인 모습도 점차 사라져 가겠지만 베두윈 문화는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순수와 이상의 상징으로서 이 지역 주민들의 삶 속에서 계속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김능우·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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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경 아라비아반도는 비잔티움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세력다툼으로 전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파르티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로마와 파르티아,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그들을 대신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전쟁상태에 있었는데 이들 세력들 사이에서 아라비아 사막지대에 거주하던 아랍부족들은 양측간 중개무역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습니다. 당시 아라비아반도는 로마인들이나 페르시아인들로부터 별볼일 없는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이곳에는 로마인들의 눈으로 보기에 여전히 미개한 풍습들이 남아있었으며, 가증스러운 수백개의 우상을 세워놓고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메카는 많은 오아시스 도시들 가운데서 가장 큰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570년경에 예언자 무함마드(محمد = 마호메트)가 태어납니다. 그는 어린시절에 고아가되어 상인이었던 삼촌의 손으로 자라게 되는데, 이후 삼촌의 직업을 물려받아 상인이 된 그는 26세때 가게주인인 15세 연상의 카디자와 결혼해서 가족을 이룹니다. 그러다 40세 무렵 그는 영적인 명상을 위해 메카 외곽의 히라 동굴에 들어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번쩍거리는 광채와 함께 천사 가브리엘을 만나, 그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완전 딴사람이 되어 메카의 시민들에게 예언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이미 돈맛을 볼때로 본 메카 귀족들은 무함마드와 추종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으며, 박해에 이기다못한 그들은 622년,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피신합니다. 이를 히지라 (هجرة) 라고 부르며 이슬람력의 기원 원년으로 삼습니다. 무함마드는 스스로를 하느님(아랍어: 알라)이 보낸 최후의 예언자라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그의 사상이나 이슬람 경전 꾸란(القرآن)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나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과 일치합니다.

 

꾸란의 첫장인 개경장(Al-Fatiha - الفاتحة). 개경장에는 이슬람신앙의 핵심이 들어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 그 분은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분이며 /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도다 /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며 당신께만 구원을 청하노니 / 저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 그 길은 당신께서 축복하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은 자나 방황하는 자가 걷지 않은 길이나이다. / 
 

메디나에서 무함마드는 포교활동과 부족간의 분쟁조절, 그리스도교국인 에티오피아왕의 보호를 통해 세력을 이룹니다. 그는 메디나의 대표자가 되었으며 이윽고 메카와의 전투를 시작합니다. 624년 5월 17일, 메디나군과 메카군은 바드르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غزوة بدر) 이 전투에서 메카군은 무함마드 군의 일방적인 돌격에 큰 피해를 입어 전승에 의하면 '70명이 전사하고, 70명이 사로잡히는 큰 피해'를 입었다고 전합니다. - 이슬람학자들은 이는 메카 총전력의 15~16%정도로 추측합니다 - 바드르전투는 꾸란에도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대가 한심하리만큼 적은 병력을 갖고 있었을때 그대를 바드르에서 도왔다. 그 분은 그대가 감사해하는 것을 보고 그대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대가 믿음에 대해 말하였던것을 기억하라. "하느님께서 3000명의 천사를 보내어 그대들을 도와줘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그대가 굳건하게 믿음을 갖고, 올바르게 행한다면 적이 그대를 향해 빠른속도로 밀려 올지라도, 그대의 주님은 무시무시한 5000명의 천사를 보내어 그대를 도울것이다." - 이므란(가족장) 3:123~125

 

무함마드 시대 아랍인들은 동시대 비잔티움인이나 페르시아인에 비해 지극히 가벼운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위 그림은 무함마드시대 무슬림 전사들의 모습을 고증한 그림으로, 왼쪽부터 지휘관, 복합궁을 들고 있는 아랍인 궁사, 무슬림에게 우호적인 베두인 족장의 모습입니다. 이슬람하면 떠오르는 언월도는 아직 없었고, 체인메일을 착용한 경우가 일부 보이지만 돈이 많거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전사들만 국한되었습니다. 흥미있는 점은 그림 뒤의 낙타안장에 가죽으로 된 등자가 달려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아랍인들에게 등자가 알려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썩어서 남아있지 않는 가죽등자는 사용했을 법 합니다. 메카와 메디나 사이의 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뛰어난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동시에 많은 부족들과 연합한 무함마드에게 유리하게 돌아갔고 결국 630년 무함마드의 군대는 메카를 정복하고, 까바 신전에 모셔져 있던 수백개의 우상을 모조리 때려부수고 난 다음, "하느님 외의 신은 없다!" 를 선언합니다. 이 선언은 세계사의 구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으며, 새로운 문화권의 탄생을 선언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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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년, 예언자 무함마드는 메카를 정복하고 얼마 되지 않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이때 무슬림공동체는 아라비아반도 전체에 확대되어 있었지만 구심점을 잃은 무슬림공동체는 곧 분열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무함마드의 장인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인 아부 바크르(573 ~ 634.8.23 - ابو بكر الصديق)는 무슬림들에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합니다. "무함마드만이 사도는 아니며. 많은 사도들이 그 이전에 존재했다. 만일 그가 사망하거나 살해당했다면, 그대들은 발길을 돌려버릴 것인가? 누구든 그의 발꿈치를 돌린다 한들 하느님께 해를 끼치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감사해하는 이에게는 그분께서 즉시 상을 내려 보상하시리라." - 이므람 3:144

 

17세기에 필사된 화려한 장식을 한 <코란>의 모습. 코란은 아부 바크르의 시대에 최초로 수집되기 시작해서 우스만 시대에 완성되었는데, 이시기의 코란 필사본과 오늘날의 것을 비교해 봤을때 전혀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후 이슬람공동체는 그를 '공동체의 봉사자'(خليفة 할리파=칼리프)로 선출하고, 그를 중심으로 다시 단결하기 시작합니다. 아부 바크르 사후 이슬람공동체는 오마르, 우스만, 알리까지 3명의 할리파를 선출하게 되는데, 이 시대를 일컫어 '정통칼리프 시대'(632~661 - الخلفاء الراشدون)라고 부릅니다. 당시 중동의 구도를 비유하면, 두마리의 사자와 호랑이가 - 비잔티움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 피터지게 싸우다가 둘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데 갑자기 웬 하이애나가 - 이슬람제국 - 나타나 기지개 켜고 일어나는 형국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이애나는 사자와 호랑이를 모두 건드려 손쉽게 승리를 거둡니다. 위의 그림은 정통 칼리프시대의 이슬람군대의 모습으로, 1번 인물은 '후원자,지지자'라는 의미의 안사르 전사(الأنصار)이고, 2번 인물은 무슬림군대와 싸우던 페르시아 기마궁사의 모습인데, 그의 말에는 목재 등자가 달려있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유물은 없지만, 등자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어보입니다. 3번 인물은 북아프리카의 유목민족인 베르베르족 전사로 갑옷은 입지 않고 있으며 창과 투석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9세기경 필사본에 등장하는 비잔티움군대와 이슬람군대의 모습

 

아부 바크르가 이끄는 이슬람군대는 동시대 비잔티움군이나 페르시아군과 비교해 보았을때, 지극히 빈약한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군대는 거의 대부분이 말과 낙타를 탐으로써 그들의 적이 가지고 있지 않은 뛰어난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비잔티움군이나 페르시아군이나 사막지형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또한 양측군대가 대부분 전방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쪽의 방어는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아부 바크르의 군대는 이라크 남부를 통해 먼저 사산조 페르시아를 공격하고, 634년 유능한 족장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592~642 - خالد بن الوليد)의 군대가 비잔티움,페르시아 연합군을 피라즈에서 대파함에 따라 이라크 정복을 완료합니다. - 오마르의 통치시기인 651년에는 페르시아 제국 전체를 병합하기에 이릅니다. - 이윽고 말머리를 비잔티움제국으로 돌려 634년 9월에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키고, 637년 10월에는 알레포 전투에서의 승리를 통해 시리아 전체를 정복한 뒤, 이어서 654년에는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시칠리아까지 진출하기에 이릅니다.

 

이슬람제국의 무한확장 - 자주색 영역은 무함마드 시대의 영역, 짙은 핑크색 영역은 정통 칼리프시대에 확대된 영토이며 상아색으로 칠해진 영역은 우마이야 왕조시대에 확대된 영역을 나타낸다.

 

세례자 요한의 유골이 안치되어있고, 로마 교황으로써는 최초로 2001년 이슬람사원을 방문한것으로 유명한 시리아 우마이야 모스크의 모습. 715년에 현재 모습으로 완성되었지만 이곳은 그 이전부터 그리스도교도와 무슬림이 함께 공유하던 장소였다.

 

이집트를 정복한 무슬림들이 세운 군사도시 알 푸스타트(الفسطاط)의 유적. 이 도시는 한때 20만명이 거주했던 이집트의 수도였으나 1168년, 십자군의 침공을 우려한 파티마왕조의 재상 샤와르(شاور بن مجير السعدي)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슬람공동체가 그토록 빠른시기에 중동전역에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비잔티움과 페르시아가 긴 소모전으로 국력을 소모한 탓도 있지만, 비잔티움제국의 경우 이집트와 시리아 일대에 퍼져있던 아리우스파와 콥트교등 단성론파를 이단으로 여기며 탄압한 탓도 있었습니다. 단성론파 그리스도교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인정하는 삼위일체론과 예수의 신성성을 부정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비잔티움황제가 예수의 대리인임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에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교의 유일신 사상은 이들 단성론파가 주장하는 바와도 상통하는 바가 있었으며, 또한 무슬림들은 세금만 꼬박꼬박 내는 한 어떤 종교도 믿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으므로 오히려 그들의 정복을 환영하고 협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기의 민주주의적인 성격을 띄었던 이슬람공통체는 661년, 무와이야(602~680 - معاوية بن أبي سفيان) 가 쿠데타를 일으켜 마지막 정통칼리프 알리를 암살하고 우마이야 왕조를 개창함으로써 비잔티움제국과 같은 신성제국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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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전략4-코란의 주제(2)

 

종교는 무함맏과 꾸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사실상 종교에 대한 주제는 꾸란의 알파이며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수라26-28)...단지 알라 자신이 원하고 동의한 사람들을 위해 의도한 후에만 (그 중보가 유익이 있다.) 실제로 종말에 믿지 않은 사람들은 천사들을 부인들 이름(여성)으로 말할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다. 그들은 단지 속임과 추측을 따르는 자들일 뿐이다. 분명히 속임은 결코 진실을 대신할 수 없다.”수라 37:149-162 “이제 (무함맏 메카의 불신자들에게) 물어보라, 딸들(즉 그들의 꾸며낸 것에 따르면 천사들이 알라의 딸들인 것 같다<꾸란에 쓰여진 것>.)이 너희 창조자의 것이고, 아들들이 그들의 것이란 말이냐? 아니면 우리가 천사들을그들죄가되는경우에도딸삼아만들었단말이냐? 조심하라!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이기 때문에알라의 자녀(또는 딸들)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의심없이 거짓말쟁이들이다. (알라가) 아들들을 두고, 딸들을 선택할 것 같으냐! 어떻게 판단하느냐? 결국 기억 못하지 않느냐? 또는 너희들을 위해 (알라가 자녀를 둔 것에 대해) 어떤 분명한 증서가 있느냐? 그렇다. 만일 참으로 있다면 너희 책들을 가져와 보라 (이방인들이 알라와)함께 진들 (또는 천사들) 사이에 족보 (또는 어머니-자녀:모자지간 있다고 꾸밈) 만들었다. 그러나 진들 즉 천사들은 이제 만들어진 자인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알라는 그들의 속성보다 깨끗하다. 오직 알라의 단정한 사람들만 (변함없는 알라를 그 분에게 합당하지 않은 속성으로부터 깨끗하게 붙든다.) (오 메카족속들아!) 의심 없이 너희들도, 너희의 숭배하는 우상들도, (한 사람을 알라에게) 대항하여 음모를 꾸미는 자, 거짓말할 줄 아는 자 아니다……

 

위의 모든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함맏은 유일신을 주창하기 위하여 카바 신전의 모든 알라의 딸들과 아들들로 여겨졌던 우상들을 배격해야 했다. 그 천사들,즉 우상들이 알라의 중보자 역할을 했던 것도 분명하다. 꾸란에서 여러 번 언급된 알라의 아들들, 딸들이 부정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존재가 아랍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무함맏이 이슬람 이전의 아랍인들의 우상 숭배를 배격하고 알라를 유일신으로 추앙하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암시해 준다. 알라는 결코 혼자 존재하는 신이 아니었다.

 

이제 무함맏은 종교에 대한 체계들을 하나 하나 세워 나갔다. 무함맏이 만든 종교적인 체계는 철저하게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방한 것이다.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중요시하고 정의했다. 그러나 무함맏은 믿음에 대한 정의를 복종이라고 정의하였다. 복종은 이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복종하는 종교가 이슬람이고, 복종하는 자들이 신자들이며, 복종하는 자들이 낙원에 들어간다. 반대로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불신자들이며,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수라 49:14 “아랍인들이믿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오 무함맏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들은 믿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복종했습니다라고 말하라! (왜냐하면 아직도)너희가 믿음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만일 너희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에게 복종을 한다면, 그 분이 너희들에게 (행한 선한) 일들 중에서 하나도 적게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에 회개와 세례 의식이 있었던 것처럼, 알라에게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기 위해 몸을 정결하게 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심지어 이전의 아랍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더 완벽하다는 종교에 정결의식이 없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라 5:6무슬림들이 기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얼굴과 손을 팔꿈치까지 씻고, 머리를 물로 문지르고, 다리를 무릎까지 씻고,몸이 의식에 깨끗하지 않다면 목욕하라. 만일 아프거나 여행 중에 있거나 여자를 접촉했거나 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깨끗한 모래나 흙을 취해서 얼굴과 손에 문질러라 라고 지시한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할례를 행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는데, 무함맏은 이슬람 신앙의 기초가 없기 때문에 그 역사의 기초를 아브라함에게서 도용하고, 모세 오경에 예언된 그 선지자를 자신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할례와 제사 의식을 중요하게 여겨 그 의미는 전혀 모르면서도 표면적인 의식만 도용하여 사용하였다.

 

유대인들은 과거 성전이 있었던 방향을 향해 기도하는 습관이 있고, 기독교인들은 기도하는 습관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무함맏은 그들보다도 더 많고 엄격한 다섯번의 나머즈 시간을 정해 놓고, 다른 종교보다 형식적인 우위를 보이려고 경쟁하였다. 수라 98:1-5에서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책은 꾸란이고, 이슬람 종교가 올바른 길인데, 그 이유는 그들은 단지 유일한 알라에게, 그 분을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완전히 준수할 뿐만 아니라 구제를 준수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알라를 위해 종교를 지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하고 나머즈를 준수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슬람 종교는 알라 숭배, 성지순례, 금식, 나머즈 등과 같은 대부분의 아랍의 종교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추가로 구제, 아랍 방식의 정결의식, 세금, 결혼 및 이혼 절차에 대한 의식, 지하드 등과 같은 종교 규범을 추가시켰다.

 

무함맏이 이슬람 종교를 만들고 아랍의 우상숭배자들에게 선포했을 때, 소수의 가난하고 소외받았던 사람들을 제외한 아랍인들은 당연히 무함맏을 믿지 않았다. 수라11:26-31절까지 무함맏이 자기 종족 아랍인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들은 유일한 알라에게 예배하라! (만일 유일한 알라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숭배하면), 너희들의 위에 고통스러운 고난의 날이 (올 것을) 나는 두려워한다.’ 그 때 그의 종족 중에 있는 불신자 어떤 사람이 우리들은 너를 우리들과 똑 같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고, 너에게는 단지 우리 안에 있는 낮은 사람 <천한 사람들만> 생각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오 나의 종족이여, 소식을 주라! 만일 내가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문서를 소유한다면, 그리고 그분이 나에게 자기왕궁에서 은사-선지자직을 주었다면, 그러나 이것이 너희들에게 은밀하게 되었다면, 우리가 너희들을 너희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믿게 하도록) 강요해야 하느냐?…… 오 나의 종족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이것을 위해 소유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

 

무함맏은 선지자들에 대해 잘 모르는 아랍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여러 선지자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였다. 수라 26:40에서 모세와 마술사들 간의 대결도 종교적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만일 마술사들이 승리하게된다면, 우리가 그들을 따를 것이다라고말하고있다. 마술사가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어쨌든 마술사를 따를 수도 있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나중에 이들 마술사들은 모세에게 패배하여 알라를 믿고 무슬림들이 되었다. 따라서 모세도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이집트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수라40:26에서 이집트 왕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가 우상숭배를 옹호하는 자들의 대표, 즉 왕이었고, 무함맏을 두렵게 하고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을 예표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모세는 무함맏의 예표가 되는 듯이 이집트인들의 종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집트의 폭군에 의해 반대를 당하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무함맏은 이슬람 종교를 사람들에게 확증시키기 위해 모세의 종교가 곧 무함맏의 종교였으며, 마찬가지로 모든 선지자들의 종교가 무함맏의 종교 이슬람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무함맏이 과거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이용하자 아랍 우상 숭배자들은 선지자의 표적으로 기적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신의 말을 입증할 어떤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라 28:48-49 “이제 언젠가 그들에게 우리의 면전에서 진리의 (선지자가) 와서는 그들이 그에게도 (즉 무함맏에게도) 모세에게도 주어진 기적들이 주어진다면, (우리들이 그를 따랐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은 전에 모세에게 주어진 기적들에게도 불신자가 되지 않았느냐? 그들은 ‘(타우?과 꾸란이) 서로 서로를 이용하여 힘 있게 하는 두 마법사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두 책 중) 모두에게 불신자이다라고 말한다.”

 

무함맏이 아랍 우상숭배자들을 설득하려고 이용하였던 것은 주로 성경의 선지자들 이야기였지만, 그가 하는 여러 이야기들 중에는 아랍인들도 아는 여러 전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라 23:83 “이것은 단지 너희들의 이전에 있던전 설들이다.” 무함맏의 근거 없고 꿈을 꾸듯 횡설수설하는 소리들과 말도 되지 않는 전설들을 아랍인들이 믿을리가 없었다(수라 21:3-6).

 

무함맏이 과거의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슬람을 확증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의 말을 들을수록 반대는 커졌고, 무함맏을 거짓말쟁, 마술사, 귀신들린 자 등으로 취급하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라 52:29 “됐다. (오 무함맏), 너는 (사람들에게 꾸란 구절들을 가지고) 가르치라! 왜냐하면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점쟁이도, 미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은) ‘한 시인이다. 우리들은 그에게 재앙이 미치기를 기다린다라고 한다.”) 수라 23:70 “또는그에게는 (무함맏에게는) 귀신들린 것이 있다.’ 라고들 하느냐?” 마법에 가까운 무함맏의 말들은 대단히 많지만, 한 예를 들겠다. 수라73:17 “그렇다. 만일 너희들이 불신자들이 되면, (스스로 공포로) 아이들(의 머리카락들을 희어지게 하여) 노인들로 바꾸어 놓을 날(의 고난)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을 것인가!” 심지어는 무함맏은 자신이 미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맹세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수라 68:2 “연필과 (그와 함께 천사들이)쓰는 기록들에 맹세하건데, (오 무함맏)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미친 것이 아니다.”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을 따르는 사람들까지 함께 비난하였다. “너희들은 단지 한마술에 걸린,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을 따르고 있다라고 하였다(수라25:8). 수라 81장은 무함맏이 메카에서 초기에 암송했던 수라로서 왜 메카인들이 그를 미친 시인이라고 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다. 수라 81:1-25 “해가 둘둘 말려졌을때, 별들도 (자기 하늘들에서) 흘러내릴 때, 산들도 (자기 자리들에서 옮겨져) 돌아다닐 때, (뱃 속의 새끼가) 열 달 된 임심한 낙타들도 자유롭게 보내졌을 때, 맹수들도 (한 곳에) 모였을 때, 바다들이 (화덕처럼) 불어졌을 때 (그리고 물 대신에 불로 채워졌을 때), 영혼들이 (다시 육체들에) 짝지워졌을 때, 산채로 매장된 (각각의) 소녀에게 어떤 죄 때문에 죽었는지를 물었을 때, (행위를 기록한 책) 페이지가 열려졌을 때, 하늘이 (땅 위에서) 벗겨졌을 때, 지옥이 (불신자들을 위해) 타올라 흐를 때, 천국이 (경건한 자들에게) 가까워졌을 때, (바로 그 날에 각각의) 영혼이 (바로 그 날을 위해) 준비하여 온 것을 (즉 모든 선악을 행한 것을) 아노라! 충분하다. 나는(밤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자, (밤들도) 빨리 지나 (자기 둥지들’, 성벽들에) 숨어있는 자()들에게, 자기 어두움으로 오가는 저녁에게, 그리고 밝고 있는 새벽에 맹세를 하노라! 의심할 나위 없이 이 (꾸란은) 한 위대하고, 힘 있고, 아르쉬의 주인 (되는 알라)의 견해로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천사들 쪽에서) 복종하는 자, 신실한 사도의 (즉 자브러일 천사의 알라 편에서 온) 말씀이다!그리고 너희들의 주인인 (무함맏은) 미치지 않았다. 참으로 그 (자브러일을) 열려진 지평선에서 보았다. (무함맏은) 출저를 모르는 계시를 탐내는 자도 아니다. (그는 알라 편에서 자기에게 온 계시들을 망치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너희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 (꾸란은) 쫓겨난 사탄의 말이 아니다.” 수라 37:6-10 “참으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하늘을 별들로 장식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종류의 불순종하는 사탄과 귀신들로부터 보호했다. (귀신)들은 가장 높이 존재하는 자들을 (즉 천사들의 말들을) 언제든지 들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그들에게 모든 방향에서 (별들이) 던져진다. 그들을 위해서 (종말에) 끝없는 고난이 있다. 단지 어떤 때 (어떤 말을) 엿들은 자가 (즉 귀신이) 있다면, 그것도 날으는 별이 쫓아가서 따라잡을 것이다. (그리고 멸망시킬 것이다).” 수라 75:7-10 “그렇다. (본 소름끼치는 것들로부터) 눈을 감고, (하늘에 있는) 달도 잡힌 상태에서 해와 달이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 날에 그 사람이 ‘(이 재앙들로부터) 어디로 피난할 수 있느냐?’ 라고 할 것이다.” 본문에는 무함맏이 계시를 받을 때 얼마나 공포와 소름을 느끼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슬람 선교전략 4-코란의 주제3

 

당시 아랍 사람들은 무함맏의 꾸란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비난 하였다. 수라 25:4-5 그 당시의 사람들이 꾸란에 대해 비난한 내용이다.

 

불신자들 중 어떤 사람들이, ‘(이 꾸란은) 단지 (무함맏) 자신이 스스로 꾸며낸 거짓말이다. 그에게 이 (거짓말을 지어낼 때) 다른 어떤 종족 (특별히 책들의 종족)이 도와 주었다라고 모독하고 중상한다. 또 그들은 ‘(이것은) 이전에 있던 전설인데, (무함맏이) 그것들을 다시 고쳐 쓴 것이다. 그렇다. (이 전설들은 어떤 자들 편에서) 그에게 아침과 저녁에 읽혀져 주어진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난을 들으면서 무함맏을 따르던 자 중 일부도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하였다. 이럴 때 무함맏은 그들도 독한 말로 욕을 하였다. 수라 33”12-13 “그 때 외선자들과 마음에 상처 받은 (즉 확신이 약한) 어떤 자들이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우리들에게 오직 거짓 약속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많은 반대에 부딪히자 무함맏은 화가 났다. 무함맏은 자기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며,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저주하기 시작하였다. 수라 43:22-26 “아니다. 그들은 말했다. ‘당연히 우리는 조상들을 한 종족-종교 위에 있었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그러므로 우리<알라>는 당신<무함맏>보다 전에 어떤 마을과 도시에 어떤 증거자-선지자 보내지 않았다. 단지 그곳의 나타난 것들이 : ‘당연히 우리 조상들을 한 족속-종교 위에서 찾았고, 당연히 우리들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입니다라고 한다. (선지자가 그들에게) ‘만일 내가 너희들에게 너희 조상들을 찾은 종교에서 올바른 종교를 끌어낸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말할때 , 그들은 : ‘당연히 우리들은 너희들이 사도로 만들어 보낸 종교에 불신자들이다라고 말했다. 됐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보복을 받았다. 이제 그를 (자기 선지자들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자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라! 기억하라. 아브라함이 아버지에게 그리고 종족에게 말했었다. ‘당연히 나는 당신들을 숭배하는 우상들보다 정결하다.” 무함맏은 자기 동족들과 종교적인 문제로 다투게 될 때에도 자기 조상들이 섬겼던 잘못된 우상 숭배보다 올바른 종교를 끌어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아브라함에게 두어,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와 동족들이 섬겼던 우상 숭배에서 참 종교를 이끌어 낸 것과 같은 행위을 무함맏 자신이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랍 우상숭배자들의 비난 중에는 근거 없는 것들도 있었다.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무지막지하게 대한 것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랍인들의 우상 숭배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으며,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항상 지적되는 사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함맏은 단지 아랍인들에게서만 반대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았다. 무함맏이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축복 대신에, 서로에게 욕지거리와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던 지독한 말다툼으로 구성되어 있는 종교의 경전은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꾸란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무함맏이 자기의 반대자들에게 무섭게 쏟아부은 저주로 가득찬 책이다. 꾸란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진리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한 거짓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채운 책이다. 수라 32:13 “나는 지옥을(불신자) 귀신과 사람들의 모든 자로 채우는 자이다.” 이러한 소름끼치는 말을 마귀 이외에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과연 사랑의 하나님이 이러한 독한 저주를 퍼붓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무서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메카에서 무함맏의 종교는 거의 발전이 없었다. 도리어 많은 반대와 핍박을 받았고,심지어는 그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수라18:15,16“자우리 종족은 그 분 외에신들을’ ()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그 우상들이 신인 것에 대하여) 분명한 한 증서를 가져온다면. (결코 가져올 수 없다.) 그렇다. (어떠한 문서도 없이, 동료가 있다 라고 하여) 알라의 영광에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보다도 난폭한 자가 누가 있느냐? (젊은이들이여!) 너희들은 그들과 알라 외에 그들이 숭배하는 것들로부터 떠나서 거절했기 때문에, 이제 (유일한 너희의 창조주, 알라 자신에게 예배하기 위하여) 동굴에 피난처를 찾아가라! 너희 주가 너희에게 자기 은택을 크고 풍성하게 할 것이고, 너희들의 일들을 번성시킬 것이다.”

 

아랍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하고 반대하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지 않는 모든 아랍인들을 정죄하였으며, 점점 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를 품게 되었다. 수라 6:114 “(오무함맏,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말하라!) ‘나는 알라 외의 다른 것을 맹세하겠는가? 그 자신이 너희들에게 이 책 (꾸란을) 상세한 (즉 너희들이 논쟁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충분히 답변을 주는) 상태로 내려준 자이지 않느냐?’ 우리가 책을 준 사람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그의(꾸란이) 너희들의 창조주보다 진리로 내려진 것을 알 것이다.” 수라 11:17 “자 이제 창조주 편에서 온 분명한 증서를(즉 꾸란을) 소유한 사람이 (단지 이 세상의 유익들만을 찾는 사람들과 똑같겠는가?) 오히려(알라) 편에서 온 증거 (즉 가브리엘 천사가) 그의(무함맏의) 동료이고, 그보다 이전(즉 분명한 문서인 꾸란보다 이전에) 모세의 책(타우랏이) 있었다. 그것은(이스라엘을 위해 온) 인도자와(알라의) 호의이었다. , 그 자들이 (즉 분명한 증서를 소유한 자들이) 그것을(꾸란을) 믿게 될 것이다. (선지자에게 대항하여서는) 집단들 중에서 누구든지 그 꾸란에 불신자가 되면, 그에게 약속된 장소는 지옥이다.” 수라 21:7 “(오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도 (천사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사람들을 (즉 인간들을)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계시를 보낸 상태로 선지자로 삼았다. 그렇다. (오 메카 족속아) 만일 너희들이 모를지라도 (타우랏, 인질을 아는) 족속의 지식있는 자들에게 물어보라!”

 

수라 21:7은 알라도 무함맏처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할 것을 모르고 기대를 하였던 무지한 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알라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도 모르고 무함맏에게 말했던 것이다. 수라 29:46-47에서 볼 수 있듯이 무함맏은 그의 사역의 초기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라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쳤다. “(오 믿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친근한 책-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오직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토론하라! 단지 그들 중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과만 (날카로운 관계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너희들은 말하라! ‘우리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것에도 (꾸란도), 너희들에게 내려진 (타우랏과 인질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도, 너희들의 신도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복종을 한다.’ (오 무함맏, 우리는 너보다 전에 있었던 선지자들에게 책들을 내려 주었다.) 그러므로 너에게도 책, 즉 꾸란을 내려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책이 (즉 타우랏과 인질이) 주어진 자들은 그것을 (즉 꾸란을) 믿을 것이다.” 무함맏과 그의 신 알라와 오늘날의 무슬림들은 이 본문에 비추어 보았을 때, 끊임없이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외선을 행하고 있고, 또한 거짓말을 일삼아 왔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평화를 원하더라도 무슬림들은 결코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무함맏은 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옹호할 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과 책을 읽는 당시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 모두를 인정하여 주었다. 수라 3:52-54 “이제 언젠가 예수가 그들 (유대인들) 편에서 불신(신성모독)을 보고서, ‘알라의 (종교에 초대할 때) 누가 나에게 협력자가 될 것인가?’ 라고 말했다. 사도들이 우리가 알라의 종교에 협력하는 자들입니다. 알라를 믿었습니다. 오 예수여, 증거하소서, 우리는 알라에게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창조주여, 증거한 것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선지자를 따랐습니다. 충분합니다. 우리를 증거자들의 반열에 기록하소서!’ 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교묘하게 했다. 알라도 교묘하게 했다. 알라는 더 교묘하게 하는 자이다.” 수라 10장은 무함맏이 초기에 이스라엘 민족과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극도로 호의적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라 10:93-94 “의심없이 우리는 이스라엘을 빼어난 최종적인 곳에 장소를 정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다. 후에 그들이 지식(즉 모세오경)이 주어질 때까지 불일치(모순) 하지 않았다.…… (오 무함맏), 만일 우리가 너에게 밝힌 것들에서(즉 전에 종족들에 대해 밝힌 우리 구절들에서) 의심하게 된다면, 그럴 경우에 너보다 전에 있었던 책(즉 모세오경과 신약성경) 읽는 사람들로부터 물어보라! 분명히 너에게 창조주 편에서 진리인 꾸란이 왔다.” 수라 44:29-32 “그렇다. 그들에게 하늘도, 땅도 울지 않았고, 그들에게 기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 참으로 우리는 그들을 아는 상태에서 모든 세상들, 즉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였고, 선호하였다.” 비교적 초기의 메카 수라에 속하는 위의 44장에서 무함맏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동경심과 감정은 거의 눈물을 쏟을 직전이었다. 수라 45:16도 비슷한 내용이다. “참으로 우리는 이스라엘 (종족)에게 책, 즉 타우랏,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들을 정하고 깨끗한 것들에서 양식을 주었으며, 또한 그들을 모든 세상보다 높게 했다.”

 

그래서 무함맏은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자기가 만든 새로운 신과 종교가 서로 비슷하니 함께 숭배하자고 제안한다. 수라 3:64-65 “ ‘(오무함맏) 말하라! ‘오 친근한 책’ (즉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동일한 한 말씀에 일치하여 유일한 알라에게만 예배를 드리자! 그에게 어떤 것도 동료로 만들지 말자! 그리고 알라를 두자! 어떤 것들을 신으로 삼지 말자!’ 만일 그들이 (즉 친근한 책들 그 초대를)거절하면, 그 때는 너희들이 (오 신자들이여) ‘너희들은 증인이 되라! 우리는 무슬림들이다. 유일한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들이다라고 말하라! ”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먼저 무함맏은 자기가 유대-기독교 전통을 따르는, 즉 구약과 신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와서 그것을 확증하는 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무함맏은 우선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 모세의 종교, 노아의 종교이고, 무함맏은 그들의 종교에 꾸준히 머물러 있는 자라고 주장한다. 수라12:38,39 “나는<무함맏은> 나의 조상들의 길,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종족과 종교를 따른다. 우리를 위해서 알라에게 어떤 것을 동료로 만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 오 친구들이여, 흩어진 다양한 안개 신들이 더 좋은가 아니면 유일하고 승리자 알라가 더 좋으냐? 너희들은 그를 버려두고, 자기들과 조상들이 부른 이름들 -우상들에게만 예배하고 있다가장 올바른 종교는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한다.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과 조상들이 섬겼던 알라의 동료신들을 비난하고 있으며,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종교가 가장 올바른 이유는 알라에게 다른 동료가 없는 유일한 신이기 때문이며, 정통 아브라함의 종교를 따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함맏과 이슬람에게 있어서 자기의 아랍 조상들로부터 참된 이슬람 종교를 물려 받았다는 증거가 꾸란에는 전혀 없다. 무함맏에게 있어서 아랍인들은 조상 대대로 우상들을 섬긴 불신자들이었다. 무함맏이 자신의 선지자직의 정통성과 권위를 찾는 것은 자신의 조상들이 섬겼던 종교도 아니고, 결코 자신의 조상도 아닌 아브라함의 종교에 언제나 호소한다. 심지어 무함맏은 아브라함을 자기의 조상이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한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모세와 노아와 예수 등 모든 선지자들이 이슬람 종교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라고 선동한다. 수라 42:13 알라가 노아에게 명령한 것과 같은 동일한 종교를 너희를 위해 제정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종교를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즉 무함맏은 알라의 종교에 있어서 꾸준히 머물러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분할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한결같이 무함맏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무함맏은 자신이 과거의 다른 선지자들과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자라고 주장한다.수라 46:9 “(오무함맏) 말하라! ‘나는 선지자들 중에서 새롭운 자도, 첫번째도 아니다. (즉 나보다 이전에도 알라의 선지자들이 지나갔다. 왜 너희들은 나의 선지자들에게 놀라서 부정하려고 하느냐?) 나는(미래에) 자신에게도 너희들에게도 무엇이 이루어질지를 모른다. 나는 단지 자신에게 계시된 것을 따르는 자이다. 나는 단지 분명한 경고자이다.” 그러나 무함맏은 자기 자신이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하여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한 것, 즉 전혀 특별한 점이 없고, 첫번째도 아닐만큼 뛰어난 점도 없다고 소개한 것과는 달리, 신구약 성경의 모든 내용을 뒤엎어 놓을 만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을 저지를 존재가 되었다. 더군다나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의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자가 선지자들 중의 가장 위대한 지위를 찬탈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함맏은 자신이 성경에 자신이 예언되어 있으며, 자신은 성경의 선지자들의 전통을 있는 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무함맏은 선지자들과 예언이 중단되었던 역사를 이어주는 자라고 선포한다. 수라 5:19“오 친근한 책이여, 자 우리의 사도(무함맏)이 전에 선지자들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우리에게 어떤(천국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와 어떤(지옥의 고통을) 두렵게 하는 자가 오지 않았다.’ 라고 너희가 말하기 때문에 너희들에게(종교 법령들을) 선포하려고 왔다. 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와(지옥을) 두렵게 하는 자인 자가 왔다.” 본문은 성경 계시의 종결성에 대한 무함맏의 무지를 드러낸다. 신구약 성경이 종결된 이후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어떠한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무함맏은 바로 이러한 세월을 간격을 이어주는 최종적인 선지자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무함맏이 문맹이 아니었고, 계시록을 한 번만이라도 읽었다면, 이미 오래 전 성경에 선포된 무서운 저주를 자기에게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2:18-19“내가 이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19:19-21“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 도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그러나 이러한 무함맏의 제안이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처음부터 한결같이 거절되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이다. 수라 3:65-71에서는 유대-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절했을 때, 그가 상당히 실망했음을 보여준다. 수라 3:65 “오 친근한 책, 왜 아브라함에 대하여 (그는 우리의 종교에 있었다 라고 하여) 논쟁하느냐! 결국엔 타우랏도, 인질도 그 후에 주어진 것이 분명하지 않으냐? 도대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여) 너희들이 아는 것들 (모세와 예수 선지자들에)대하여 논쟁하고 있다. 이제 무엇 때문에 너희가 모르는 것 (아브라함이 어떤 종교에 있었는지)에 대하여 논쟁하려 하느냐? 알라는 알고 있고, 너희는 모른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오히려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경우에 (알라에게) 복종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상숭배자들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 더 가까이 있는 자는 그(의 길)을 따르는 자이다. 자 이 선지자 (무함맏)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알라는 겸손한 자들의 친구이다. 친근한 책 중 한 교파는 너희들을 (너희 참 종교로부터) 혼동시키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느끼지 못할 때에 단지 자기들만 혼동시킬 뿐이다.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증거자 되어 알라의 (타우랏에 있는 무함맏이 참 선지자인 것에 대한) 구절들을 부정하느냐? 오 친근한 책이여, 무엇 때문에 너희 자신들이 알면서도 진리를 거짓과 혼합시키고 진리를 가두느냐?”

 

위의 본문은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무함맏의 주장으로, 유대인들이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충분히 미친 사람이 지껄이는 헛소리이다라고 말했을 법한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인데, 아브라함이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었고,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 즉 무슬림이었다고 억지를 부린다.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장 가까이서 추종하는 자는 무함맏과 무슬림들이라고 주장한다. 도리어 무함맏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모른다고 비판하였다. 결국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그를 거짓 선지자로 판단하고 배척하였다.

 

이슬람 선교전략 4 - 코란의 주제(4)

 

무함맏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좋아했다가 그들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게 되었던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수라 구절이 있다. 수라 3:119 “(믿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그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너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함맏에게 유대-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펴서 읽어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함맏에게 성경 자체를 펴서 읽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무함맏은 자기의 거짓을 그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거부했다. 도리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읽어 주면 문맹이었던 무함맏은 그것을 자기식으로 교묘하게 바꾸어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수라 3:78 “그들중에는 (유대인들 중에는) 또 한 그룹이 있는데, 책에 (타우랏에) 있지 않은 것을 책에서라고 너희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타우랏) 책을 혀들을 감아서 (망치고 변질시켜서) 그들이 읽어준다. 그리고 알라의 앞에서 오지 않은(자기의 말들을) ‘알라의 앞에서 온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알라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무함맏은 구약과 신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유대-기독교인들이 읽어주는 성경 구절들이 기록된 그대로인지 꾸며서 읽은 것인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무함맏은 자기에게 굴복한 기독교인들로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얻기도 했으며, 다른 기독교인들로부터 성경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그것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무함맏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거부했을 때, 무함맏은 종교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너의 종교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말라라고 함으로써 기독교를 경고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위 알라의 종교인 이슬람과 유대인들의 종교와 기독교를 동일한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놓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극히 일부분의 이스라엘 종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모두 이슬람 종교를 반대한 우상숭배자들이었다고 한결같이 비난하고 있다.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수라 4:171 “오책이여, (예수를 신이라고 말함으로써) 너의 종교에 있는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마라! 알라 영광에 오직 진리의 말만 하라! 당연히 그 예수 그리스도 마리얌의 아들은 단지 알라의 선지자이고, 그의 마리얌에게 던진 말씀이고, 또한 그의 편에서 온 영일 뿐이다. 됐다. 알라와 그의 선지자들을 믿어라! ‘(주가) (즉 알라, 마리얌 그리고 이사 셋 모두 주님들이다)’ 라고 말하지 말라! ”

 

꾸란에서 무함맏은 종종 유대교와 기독교를 세상에서 권위 있는 종교들에 포함시키고 있고, 심지어는 기독교에서 이단시하고 있는 분파까지 무함맏에게 복종하는 경우에는 올바른 종교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수라 2:62 “당연히 믿는자 들이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과 (알라에게 믿음을 둔, 그러나 어떤 샤리아법을 준수하지 않는 종교적인 분파인) 사비교도들 (그들로부터) 어떤 자들 (전에 어떤 종교에 있었던 강한 믿음을 가지고, 유일한) 알라에게, 종말의 날을 믿는다면, 그리고 잘 준수한다면,그들에게 창조주의 앞에서 상급이 있고, 그들을 위해서 위험과 염려가 없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종교는 최고의 권위가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종교이다라고 자주 말한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서 아랍 족속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아브라함이 그들의 민족의 조상이고, 종교의 조상이라고 말한다(수라 2:124). 알라가 아브라함을 모든 민족들을 위한 이맘으로 만들었고, 그의 자손들도 이맘들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종교가 이슬람이었고, 그의 자녀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수라2:130-132)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함맏 당시의 책의 사람들, 즉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무함맏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수라 3:19).그래서 수라 4:171; 5:77 “오 책의 사람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어가지 말라!” 라고말한다. 이 말은 각각의 종교에 한계가 있다는 말로, 이슬람 이외의 다른 종교들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꾸란에서 무함맏은 자주 이슬람이 가장 좋은 종교, 가장 올바른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항상 한 종교를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여러 종교들을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꾸란의 종교적인 사상 때문에, 오늘날 수 많은 무슬림들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있소, 그런데 왜 당신들은 우리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소?’ 라고 질문한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존중한다.’ 라는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며, 모든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들, 즉 불교와 힌두교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종교를 인정한다고 하는 말인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이슬람이 절대 진리를 소유한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모순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된 종교들을 존중함으로써 자신들의 거짓들도 존중해 달라고 하는 간청을 하는 셈이다.

 

수라 5:19“오 책의 사람들이여! 자 우리의 사도가 너희 책들 중에서 감추어진 많은 것을 너희들에게 분명히 한 경우에, 많은 것들을 거절한 때에 왔다. 너희에게 알라로부터 빛과 분명한 책이 왔다. 알라는 모든 것들 위에 권세를 가지고 있다. 이 구절을 포함한 꾸란의 많은 구절에서 알라는 흔히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한다.그렇다고 이러한 인칭과 수가 꾸란 전권에서 일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1인칭 단수로, 아주 드물게는 3인칭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칭과 수에 관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유일한 신 알라에 관한 문제가 아랍 우상숭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처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그럼 유일신에 관한 무함맏과 유대인들-기독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사실 겉보기에는 유대인들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이나, 무함맏의 유일신에 대한 사상은 큰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인들이 무함맏을 믿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이유는 선지자들에 대한 무함맏의 꾸며낸 이야기들과 자기들이 익숙히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 사이에 존재했던 첨예한 차이점 때문이었다. 이에 첨가하여 기독교인들의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구속사적인 중요성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함맏은 당시의 아랍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던 우상 숭배자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반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수라 3:79에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이 소위 선지자라고 불렀던 예수를 하나님으로써 예배하는 것에 대해 무함맏에게 말했고, 무함맏은 자기가 새롭게 시작한 종교의 사상과 맞지 않기 때문에 거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을 위해 알라가 그에게 책, 지혜 그리고 선지자직을 준 후에, 사람들에게알라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예배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허용된 것이 아니다.”

 

결국 무함맏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부정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정죄하고 저주하였으며, 결국에는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수라 29:46 “(오겸손한<신자>자들이여), 너희들은 책들을 가지고 단지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대화하라! 오직 그들 중에서 억압-폭력을 사용하는 자들과만 (예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그리고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꾸란도, 너희들에게 주어진 모세오경과 신약성경도 믿는다. 우리들의 신(일라), 너희들의 신(일라)도 하나이고, 우리들은 그에게만 순종한다.’라고 말하라.” 초기에 반대에 부딪혔을 당시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태도는 차츰 노골적인 압력 행사로 악화되었다. 수라 9:29,30“알라와 말일을 믿지 않는, 알라와 그의 선지자가 부정하다고 한 것들을 부정하다고 알지 못하는, 진리 (즉 이슬람) 종교에 신뢰하지 않는 책들로 구성되는 어떤이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그들이 짓밟혀졌을 때 자기들 손으로 세금을 내기 전까지는 전쟁을 하라! 유대인들은 우자이르가 알라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알라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문서나 증거 없이) 그들의 입에 있는 말들이다.” 이 말은 분명히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된다. 만일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이 이슬람의 신과 동일하다면, 왜 이슬람은 억지로 유대-기독교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려고 그처럼 가혹한 정벌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수라 5:72-73에서 보는 것처럼, 무함맏과 꾸란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저주하고, 유대-기독교 역사를 송두리째 뒤엎고 왜곡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라 5:72-73 “알라가 마리얌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은 분명한 불신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 이스라엘이여, 나의 창조주와 너희 창조주가 되는 알라에게 종노릇하라!’ 라고 말했다. 당연히 누구든지 알라에게 쉬르크를 초래하면, 알라가 그에게 낙원을 부정하게<하람> 할 것이고, 그의 있을 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어떤 돕는 자도 있지 않을 것이다. ‘알라는 셋 (즉 알라, 마리얌, 이사) 중의 하나이다라고 하는 자들도 분명히 불신자들이다. 왜냐하면 유일한 알라 외에 어떤 신(일라)도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말하고 있는 말들을 멈추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들 중 불신자가 된 자들을 고통스러운 고난이 붙잡을 것이다.” 수라 3:67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알라에게 복종하는 자였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무슬림이었고, 그들의 종교는 이슬람이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무함맏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모두 무슬림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는 알라의 참된 종교, 이슬람이었다고 우긴다. 이렇게 주장해야 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함맏은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선지자라고 꾸란에서 여러 번 주장한다. 그는 자기가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끊임 없이 주장한다. 즉 무함맏 자신과 이슬람 종교의 역사성에 치명적인 결핍이 있는 것이다.인류의 역사가 수천년이 흐른 이후에, 7세기 초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슬람 종교에는 역사적인 기반과 배경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인류의 역사 시작부터 변함없이 존재했던 종교를 자기의 종교로 삼고, 그 역사적 전통을 가로채는 방법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모두 사실은 이슬람이었다라는 억지주장을 내세웠고, 아브라함의 생애를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옮겼으며, 모든 선지자들을 무슬림으로 만들었고, 자기는 가장 신실하게 이슬람 종교를 확증하는 최후의 선지자의 자리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이것에 반대하는 자들은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모두 불신자들이며, 우상숭배자들로 정죄되어야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한 후에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무슬림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길들을 막아놓았다. (알라에게 복종을 의미하는) 이슬람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알라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라 3:105 (종교적) 토론에 빠지는 사람처럼 되지 말라. 그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무함맏의 권위와 진실성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도 해서는 안된다. 무함맏은 이미 유대인들-그리스도인들과의 종교적 토론에서 자신의 거짓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종교적인 토론을 할수록 자기에게 불리할 뿐만 아니라, 이후 자기를 따르던 무슬림들도 종교적 토론을 하게 되면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는 어떤 대화도 용납치 않았고, 철저히 전쟁과 세금과 같은 압제를 통해서만 그들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명령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은 무슬림들이 참된 진리를 알고 싶어도 무함맏의 협박과 주변 사람들의 위협 때문에 그 의심을 감추고, 진리를 알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많은 두려운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무함맏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일관되게 협박과 공갈로 자기 종교에 붙어있도록 강요하였다. 수라 41:13 “그렇다. 만일 그들이 (즉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이 이 상세한 설명 뒤에도 유일한 알라를 믿지 않고) 거절하면, 그 경우에는 말하라! ‘나는 너희들을 정확히 옷-야벳-과 사묻-- (종족들을 내려친) 번개과 같은 한 번개, 즉 멸망이(임하는 것)을 경고한다.’”

무함맏의 모든 설교는 자비롭고 은혜로운 창조주, 유일한 알라만을 섬기고, 알라와 그가 보낸 사도 무함맏에게 복종하고, 알라와 무함맏의 종교인 이슬람을 따르라는 명령으로 함축된다. 꾸란의 다른 모든 내용은 이것을 확증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이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꾸란에도, 하디스에도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다. 이것이 이슬람 종교의 전부이다. 모세오경, 시편, 신약성경, 그리고 그들의 모든 내용들과 선지자들은 단지 알라가 유일한 참 신이며, 알라가 그의 사도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수라 61:11). 즉 무함맏은알라의 이름도, 모든 선지자들도, 천사들과 영적 존재들도 모두 자신이 많든 새로운 종교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이용하고 있다.

 

무함맏은 알라에게도 종교가 있고, 그것이 곧 이슬람이며, 따라서 이슬람은 창세전부터 있었다는 전설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슬람은 최후의 종교이며, 무함맏은 최후의 선지자이기 때문에 가장 위대하다는 논리적 모순을 과감하게 자행한다.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종교가 필요한데, 그것은 곧 유일한 신 알라에게 복종하는 이슬람이라고 가르친다. 천국은 종교적인 교훈이 가득찬 곳이다. 그리고 복종하는 자들은 곧 믿는 자들이며, 그들은 곧 무슬림이라고 가르친다. 무함맏이 말하는 종교와 무함맏의 조상들이 섬겼던 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함맏이 말하는 모든 종교 의식들은 아랍 우상 숭배자들로부터 온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함맏은 자기 종교의 정통성을 성경의 선지자들의 종교에서 찾는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는 어떤 종교를 고안해 내려고 노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경에서는 참되신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교제를 한 번도 종교라는 용어로 설명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어떤 종교가 종속되어 있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교리적 주제들 중에 유사한 것들이 대단히 많은 것은 무함맏과 유대-그리스도인들의 끊임 없는 논쟁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의견의 일치를 얻지 못했다. 성경을 읽을 줄 몰랐던 무함맏은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무함맏은 문맹으로서 한 번도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자기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대-그리스도이들은 단순히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연구하는 자들이었다. 무함맏의 거짓말들은 모든 선지자들의 삶과 믿음과 그들에게 주어졌던 약속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유대인-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벌거벗은 듯이 명백히 드러났다.그럴 때마다 무함맏은 억지로 꾸며낸 거짓말들로 그들을 공격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무슬림과 대화를 할 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슬람 선교전략 4 - 코란의 주제(5)

 

꾸란의 전체적인 종교적 주제와 맥락은 다음과 같다. 즉 꾸란의 전체 114 수라장들은 흔히 이슬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광범위한 삶의 모든 부분들을 다 다룬 것이 아니라 주로 이슬람 종교에 대해 다룬 것인데, 그것을 요약한다면 대단히 단순한 공식이 성립한다. 무함맏이 새롭게 고안해 낸 이슬람 종교와 그의 새로운 유일신 알라와 그의 새로운 움마 공동체인 무슬림들과 그들의 대표자로서 가장 중요한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와 같은 선지자들의 뒤를 따를 뿐만 아니라 그들을 확증하는 자이다. 꾸란에 나타나는 노아, , , 야벳,아브라함, , 요셉, 모세 등과 같은 선지자들은 많은 수라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했던 내용은 모두 이슬람 종교의 가르침을 전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또한 귀신들도 이슬람의 교리를 믿었고 다른 귀신들에게도 가르쳤다. 그 내용은 무함맏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들인데, ‘알라는 유일하고, 그에게는 어떠한 동료도 다른 신도 없다. 사람들은 선지자에게 복종하지 않고 그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했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였다. 그들은 나마즈를 완전하게 수행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종말의 날과 부활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 경고하였다.’ 선지자들이 증거했던 이슬람 종교는 알라의 종교이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종교이고, 이 종교를 믿고 따르며, 이 종교를 위해 싸우는 자는 낙원에 들어가고 이 종교를 믿고 따르지 않거나 이 종교를 배반하는 자들, 즉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교를 믿는 자들은 지옥에 들어가서 고통스러운 불속에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꾸란은 모두 114 수라로 구성되어 전체 부피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동일한 주제와 사건과 이야기들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으로서,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대단히 단순한 책에 불과하다. 무함맏이 가르쳤던 종교적인 의무들은 실제에 있어서 그렇게 대단한 내용들도, 진리들도 아니다. 꾸란에서 무함맏과 그의 신 알라가 가르치는 선행이나 도덕, 법에 관한 내용들과 그 의미들은 동서양 고금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철학자들의 가르침과 비교했을 때 훨씬 수준이 낮은 것들에 불과하고, 우상숭배 종교인 불교의 가르침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형편 없는 것들에 불과하다. 꾸란의 거의 모든 내용, 특히 선지자들을 이용해가며 했던 말들은 모두 그가 꾸며낸 거짓말들이며,그 나머지도 타락한 인간을 감화하여 변화시키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할 만한 특별한 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무함맏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거짓말쟁이로 취급하였던 것은 타당한 판단이었다.

 

이렇게 조잡한 이야기들이 전지전능하시고, 지혜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기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배후에 역사하는 어두움의 영,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영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실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 이슬람의 신앙에서 대부분의 것들이 아랍의 종교 전통에서 온 것들이며, 또한 지어낸 전설들에 불과하지만 진리의 조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그것이 진리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무슬림들을 거짓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뿐이다.

 

무함맏이 말한 것처럼, 과연 성경은 무함맏의 확증을 필요로 하는가? 오늘날 무슬림들이 전혀 읽지 않고 있는 성경의 내용은 꾸란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질서정연함과 심오한 진리들과 하나님의 성품으로 충만하다. 우주와 인류 역사의 시작, 죄의 시작,하나님의 구원 계획, 언약, 예언,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과 계시,인류 역사의 성격, 인간의 삶의 기준이 되는 공의로운 율법, 다양하고 구체적인 인간의 내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의 언약들과 예언들의 구체적인 성취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 약속된 성령을 받고 실제적으로 죄인이 변화되어 새로운 생명과 의롭고 거룩하며 성화되어 가는 삶을 체험하는 것, 무함맏이 결코 제공해 줄 수 없는 수 많은 선지자들의 믿음의 발자취와 예수님의 거룩한 삶의 모범 등 그 어떤 것을 무함맏과 그의 책 꾸란이 흉내낼 수 있겠는가?

 

무함맏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비난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또한 탁월하게 신비한 과정을 통해 매듭(또는 옹이)에 숨결을 불어넣는 마법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수라 113 “(무함맏) 말하라! : ‘나는 아침 창조자로부터 (나에게) 자신이 창조한 것들의 악한 것들로부터, 어둠에 빠진 밤의 악한 것으로부터, 마디들에 호흡을 불어넣는 (마술사)들의 악한 것들로부터, 그리고 질투하는 질투자의 악한 것으로부터 피난처 주기를 구하며 기도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무함맏이 아랍 이방인들의 악한 영적인 세계를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113 수라와 114 수라는 무함맏은 Mu'awwidbatayn로 알려진 어떤 특정한 악한 존재들(악령들)로부터 피할 피난처를 구하고 있다. 이 두 수라 뿐만 아니라 수라 7:200; 16:98; 41:36에서 무함맏은 무슬림들에게 사탄으로부터 피하도록, 수라 40:56에서는 꾸란에 대한 논쟁을 할 때, 사람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수라 72:6에서는 진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알라에게 피난처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는 어떤 진들이 무슬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수라 72:1-19에서 진들 중 어떤것이 꾸란을 듣고서 진리의 길로 들어섰고, 꾸란을 듣고 당장 믿었으며, 창조주에게 그 어떤 동료도 있지 않다고 말하여 무슬림이 되었다. 당연히 우리는 인스도, 진도 알라의 영광에 항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수라 72는 진들이 직접 1인칭이 되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10-19절까지는 완전히 진들이 진들의 세계와 그들의 일들과 알라에게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무함맏은 그가 죽인 사람들의 영이 그의 꿈 속에 나타나 그를 괴롭혔다. 알라가 창조한 것이 그에게는 악하게 보였고, 이를 두려워했다. 무함맏 자신이 밤에 두려움으로 떨었다. 매듭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는 여인들과 마술사를 두려워했다. 무함맏의 알라에 대한 두려움은 극에 달하였다는 사실을 위의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무함맏에 대한 당시 아랍인들의 평가가 꾸란에 나타난다.메카 사람들은 무함맏을 공포에 이끌려 부자연스럽게 행동했기 때문에 마주눈 (미친, 홀린)이라 했다(수라 37:36 - 미친자 시인; 44:14 - 미친 자). 수라 52:29 “됐다. (오 무함맏), 너는 (사람들에게 꾸란 구절들을 가지고) 가르치라! 왜냐하면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점쟁이도, 미친 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이 무함맏은) ‘한 시인이다. 우리들은 그에게 재앙이 미치기를 기다린다라고 한다.” 심지어는 무함맏은 자신이 미친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맹세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수라 68:2 “연필과 (그와 함께 천사들이) 쓰는 기록들에 맹세하건데, (오 무함맏) 너는 창조주의 호의로 미친 것이 아니다.” 수라 81장은 무함맏이 메카에서 초기에 암송했던 수라로서 왜 메카인들이 그를 미친 시인이라고 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암시를 주고 있다. 수라 81:1-25 “해가 둘둘 말려졌을 때, 별들도 (자기 하늘들에서) 흘러내릴 때, 산들도 (자기 자리들에서 옮겨져) 돌아다닐 때, (뱃 속의 새끼가) 열 달 된 임신한 낙타들도 자유롭게 보내졌을 때, 맹수들도 (한 곳에) 모였을 때, 바다들이 (화덕처럼) 불어졌을 때 (그리고 물 대신에 불로 채워졌을 때), 영혼들이 (다시 육체들에) 짝지워졌을 때, 산채로 매장된 (각각의) 소녀에게 어떤 죄 때문에 죽었는지를 물었을 때, (행위를 기록한 책) 페이지가 열려졌을 때, 하늘이 (땅 위에서) 벗겨졌을 때, 지옥이 (불신자들을 위해) 타올라 흐를 때,천국이 (경건한 자들에게) 가까워졌을 때, (바로 그 날에 각각의) 영혼이 (바로 그 날을 위해) 준비하여 온 것을 (즉 모든 선악을 행한 것을) 아노라! 충분하다. 나는 (밤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자, (밤들도) 빨리 지나 (자기 둥지들’ - 성벽들에) 숨어있는 자()들에게, 자기 어두움으로 오가는 저녁에게, 그리고 밝고 있는 새벽에 맹세를 하노라! 의심할 나위 없이 이 (꾸란은) 한 위대하고, 힘있고, 아르쉬의 주인 (되는 알라)의 견해로서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는, 그곳에서 (즉 하늘에서 천사들 쪽에서)복종하는 자, 신실한 사도의 (즉 자브러일 천사의 알라 편에서 온) 말씀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주인인 (무함맏은) 미치지 않았다. 참으로 그 (자브러일을) 열려진 지평선에서 보았다. (무함맏은) 출처를 모르는 계시를 탐내는 자도 아니다. (그는 알라 편에서 자기에게 온 계시들을 망치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너희들에게 전해 주었다.)그리고 이 (꾸란은) 쫓겨난 사탄의 말이 아니다.”

 

본문에서 사람들에게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고, 생명을 주는 어떤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대신 의미없이 중얼거렸던 시와 의미 없는 맹세와 무함맏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말과, 그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출처도 모르는 계시를 탐욕스럽게 갈망하는 자도 아니고, 꾸란이 사탄으로부터 오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말들만 있을 뿐이다. 그의 이웃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사히르(마술사)라고 했다(수라10:2) “불신자들은참으로, (즉 무함맏은) 대단한 마술사이다라고 한다”; 수라15:15“만일 우리-알라-가 그들에게 하늘에서 한 문을 열어 놓는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면, 그래도 당연히 그들-아랍인들-, ‘의심할 나위 없이, 우리들의 눈들을 묶어 놓았다. 우리들은 마법에 걸린 사람들이다라고 할 것이다.” ; 수라 38:4 “(메카우상숭배자들이) 그들에게 자기들로부터 (즉 인간 족속으로부터) 된 한 경고자? 선지자가 나온 것에 놀랐고, 그 불신자들이 말하기를, ‘이는 한 거짓 마법사이다. (그래서) 신들을 한 신으로 만들어 버렸느냐? 참으로 이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라고 했다.”). 수라 21:3-6“당연히 그것을조롱하여, 심령들이 전적으로 무지해진 상황에서 듣는다. 그리고 포악스러운 불신자들은 이 자 (즉 무함맏)은 너희와 비슷한 한 인간일 뿐이다. 너희가 보고 있는 상태에서 마술에 (속으려고) 하느냐?’ (라고 하여) 서로 속삭인다. (그 때 무함맏이) 말하기를 나의 창조주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말을 안다. 그는 듣는 자이며, 아는 자이다.’ ‘그러나 그들은(무함맏이 계시라고 주장하는 말들이) 조리없는 꿈들이다. (그 말들을) 아마도 그 자신이 지어내었다. 아마도 그는 한 시인이다. 그렇다. 그도 전에 보내진 선지자들이(초래시킨) 것과 같은 어떤 이적을 초래하게 하라!” 다른 사람들은 마슈르(마법에 걸린), 또는 미친자라고 했다(수라 17:47,48“우리는 그들이 너에게 (즉 너의 암송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을 때 무엇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지를, 그리고 이 핍박자들이 서로 속삭이며, ‘분명히 너희들은 마술에 걸린 자들이다. 정신이 나간 사람들을 따르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들을 아주 잘 알고 있노라. (오 무함맏) 그들은 네가 참으로 (마법에 걸린, 미친 자, 시인이라 하여) 어떤 예들을 드는 자들을, 됐다, 길을 잃고 () 길을 찾지 못하는 자들을 보라!” 다음 구절은 무함맏의 표현 자체에서 왜 아랍 우상숭배자들이 그를 마술사, 미친 자라고 했는지를 보여준다. 수라 17:50-51“말하라! ‘너희들은 돌이나 쇠붙이가 되라! 또는 너희 마음들에 (생명을 상상하는 것은) 아주 힘든 다른 어떤 존재가 되라! (모든 상태에서 알라가 너희들을 부활시킬 것이다)’ 아직 그들은 우리들을 누가 부활시킬 것이냐?’ 라고 말한다. ……수라 25:9; 44:13). 수라 18:40-41“분명히 나의 창조주가 나에게 너의 동산-또는 과수원보다 더 좋은 (한 동산을) 줄 것이다. (너의 동산에는) 하늘에서 벼락들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매우 부드러운 땅으로 변화될 것이다. 또는 그것의 물이 (땅 밑으로) 흡수되어 너는 그것을 찾아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카힌(점쟁이)라고 불렀다(수라 52:29; 69:38-42 “충분하다. 나는 너희들이 보는 것들에도, 너희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에도 멩세를 한다. (꾸란은) 의심 없이 위대한 선지자의 (알라 왕궁에서 오게 된) 말들이다! 그는 어떤 시인의 말이 아니다! 너희들은 (그 꾸란이 알라의 말인 것을) 아주 적은 사람만 믿는다! 그리고 어떤 점쟁이의 말도 아니다. 너희들은 아주 적은 사람만 교훈을 받아들인다.!” ). 또한 진의 인도를 받아 영감있고 리듬있는 시를 반복적으로 암송했기 때문에 샤이르(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수라 37:36; 52:30; 69:42).

 

무함맏은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극도로 미워하였으며, 결코 너그럽고 온유하게 용서해 주는 법이 없었다. 그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그의 마음 속에 항상 얼마나 악하고 저주스러운 가득찬 생각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수라 구절들이 수 없이 많다.

 

위와 같은 무함맏의 많은 헛된 맹세와 변명들과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시기와 미움과 저주로 가득찬 꾸란이 어떻게 죄로 인해 생명을 잃고 방황하는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변화시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할 수 있겠는가?

 

추종자들이 무함맏에게 가브리엘과 만났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자 그는 종 울리는 소리와 금속이 쿵쿵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가 계시를 받는 동안 추종자들은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붉어졌으며, 그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이고, 가끔은 무의식 상태에 있었음을 보았다. 이처럼 무함맏은 계시를 받는 동안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에 홀린 듯한 사람과 같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를 두려워했다.

 

이 밖에도 무함맏에 대해 무함맏 당시의 아랍인들이 비난했던 단어들은 거짓말쟁이”, “전설을 말하는 자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비난은 최근에 우리가 일부러 꾸며낸 것도, 우리가 이슬람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꾸란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꾸란 전체에 걸쳐 무함맏의 말들은 대체적으로 과장이 너무 심하고, 사소한 일에도 천국과 지옥을 운운할 정도로 언어에 경솔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이슬람 선교전략(4)-코란의 주제(6)

 

무함맏은 새로운 종교 이슬람의 고안자이다.

이슬람 종교는 무함맏 이전에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다. AD 600년 이전에 󰡐알라󰡑, 󰡐이슬람󰡑, 󰡐무슬림󰡑 이러한 단어들은 세상 그 어디에도, 그 어떤 문서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슬람 종교는 하심 계통의 꾸라이쉬 부족의 아둡라의 아들 무함맏에 의해 아라비아의 메카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무함맏은 40세가 되었을 때, 가브리엘이라고 주장하는 천사에 의해 알라에 관한 계시가 아닌, 알라의 뜻에 관한 계시를 시리즈로 받았다.

 

무함맏은 아담과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와 심지어는 예수까지 참 무슬림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무지한 자힐리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선지자들을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자기의 종교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 유일신 여호와가 있었다면, 무슬림들에게는 무함맏에 의해 유일신이 되어버린 알라가 있다. 무슬림이란 단어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을 모방하여 󰡐이슬람과 무슬림󰡑, 󰡐복종과 복종하는 자󰡑의 구조를 만든 것이다.

 

기독교에는 그리스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무함맏은 자기가 스스로 고안해 낸 이슬람 종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의 대상이라면, 무슬림들의 신앙의 대상은 알라이고, 이 알라는 그 이전의 그 어떤 신보다도 위대한 위치를 찬탈해 버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 이삭, 다윗의 후손으로 왔다면, 자신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혈통으로 왔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한 아브라함 ? 이스마엘 ? 무함맏 신화를 만들어 냈다. 유대인들에게는 토우랏과 자부르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이, 이제 무슬림들에게는 꾸란과 하디스가 경전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종교의 기준이 되었으며 세계관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면, 무슬림들은 무함맏을 모방하여 닮으려 한다. 사람들의 삶은 그들이 따르는 자를 닮게 마련이고, 실제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교회라면, 무슬림들을 위한 공동체는 움마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안에 있는 모든 영역을 무함맏과 그의 종교 이슬람은 모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꾸란에서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다.

 

수라 2:135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 되라! 올바른 교훈을 찾자!󰡑 라고 그들은 말한다. (즉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되라! 말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라! 라고 말한다. 너는 말하라! 오 무함맏이여!) 오직 우리는 참 길에서 떠나지 않은 자, 우상숭배자들이 되지 않은 아브라함의 종족에-그의 종교에 (따르고 있는 자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라고 해서 무함맏이 천재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상 무함맏은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었으며 전해지는 바로는 문맹이었으며, 꾸란을 읽어서 알 수 있듯이 말에는 모순이 많으며 거짓말쟁이였다. 그가 기록한 꾸란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이 꾸며낸 거짓말들이다.

 

무함맏은 수라 2:256에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고 말한다. 󰡒종교에 강요하여 들어가게 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사탄과 무함맏은 무슬림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그 길을 막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과 꾸란에 대해 그 어떠한 질문도 의문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함맏의 거짓말들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 주고, 어두움 가운데서 어두움의 영이 이끄는대로 무력하게 이끌려 가는 불쌍한 무슬림들을 구원해 내야 한다.

 

사실상 무슬림들도 꾸란의 가장 중요하고 전체적인 주제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무슬림들이 꾸란의 모든 내용을 알고 믿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무슬림들은 꾸란의 모든 수라들 중에서 개경장(첫번째 수라)와 이슬람 종교를 가르치고 기독교를 대적하기 위한 것과 같은 극히 일부분의 내용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슬람의 교리나 개경장과 같은 것은 이슬람 종교를 잘 포장해서 이슬람이 진정한 종교라고 선전하여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들에 불과하며, 그러한 것들은 꾸란의 전체의 내용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

 

사역자들은 이슬람을 포장한 것들에 지나치게 주목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러한 것들에 현혹되어서도 안된다. 포장된 겉모습 내면에 있는 이슬람의 진정한 모습은 이슬람의 배경이 되고 있는 역사와 이슬람의 기초가 되고 있는 꾸란의 진정한 주제에 관한 것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의 진정한 주제가 종교 토론에 불과한 것을 모른 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단순히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그리스도인 학자들이나 사역자들 조차도 이 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슬람을 다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우리는 무슬림들에게 꾸란의 진정한 주제가 하나님 자신과 그의 계획에 대한 계시나 인간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을 알며, 사랑하고, 찬양하게 하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맛보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꾸란의 허구성을 그들도 깨닫도록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들이나 맹목적인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두움에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꾸란의 내용은 지극히 무의미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알라에게서부터 주어진 것으로 믿고 살아간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과 비교하면서 설명해 주면 전도하는데에도, 양육하는데에도 대단히 큰 도움이 된다.

출처 : 바울선교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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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 1장과 파티하를 중심으로

1. 서론

 

이슬람 국가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슬람 사원에서 들려오는 매일 5회의 아잔(adhan: 기도에의 부름) 소리에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경건한 무슬림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기도시간마다 쉼 없이 사원을 찾는다. 그들과 더불어 오래 살아가면서 친구를 사귀고 교제를 나누면서 이들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거짓말, 절도, 부도덕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정작 이들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나누며 대화를 하면 할수록 복음과 예수에 대한 이들의 무지와 맹목적인 불신, 거부감, 세뇌에 가깝게 되풀이되는 꾸란과 모하메드 찬양, 원죄 개념의 부재에 따른 무딘 죄의식을 경험하게 된다.

 

이슬람교는 기독교 불교 힌두교와 더불어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이다. 전 세계 이슬람 국가 수는 약 58개국이며 인구는 약 13억이다. 이들 중 아랍어권은 23개 국 약 3억 정도이며, 비 아랍어권은 35개 국 약 10억 정도로 추산된다. 이슬람교는 610년 9월 무하마드가 첫 계시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무슬림들은 예언자 모하메드가 약20년 동안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 준 계시를 받아 꾸란을 완성했다고 믿는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을 무슬림이라 부른다. 무슬림은 꾸란과 하디스를 경전으로 믿으며,하루 다섯 번씩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린다. 무슬림들의 세계관, 사고 체계는 꾸란에 기초한다. 꾸란은 이들의 정치, 경제, 교육, 종교, 사회, 문화, 가정 등 모든 영역을 지배하며, 이슬람의 모든 사상을 담고 있다. 무슬림들은 알라, 천사, 예언자, 거룩한 경전(토라, 시편, 복음서, 꾸란), 최후 심판과 부활을 믿는다. 무슬림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을 신앙 근간으로 여긴다. 이슬람을 지탱하는 다섯 기둥들은 신앙 고백, 기도,구제, 금식, 순례이다. 이슬람의 첫째 기둥인 ‘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하마드는 알라의 예언자이다’ 라는 신조를 두세 증인과 더불어 아랍어로 암송하면 무슬림이 된다. 기도는 하루 5회 정해진 시간에 일련의 몸동작과 암송을 반복한다. 구제금으로 부자들은 수입의 2.5퍼센트(1/40)를 가난한 자들에게 기부한다. 매년 라마단 한 달 동안 전 세계 무슬림들은 해 뜨기 전부터 해질 때까지 금식한다. 메카 순례는 일생동안 한 번만 하면 효력을 발생한다.

 

무슬림들의 세계관, 정체성, 사고 체계는 크리스찬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무슬림들이 매일 드리는 예배, 기도, 꾸란의 가르침은 크리스찬의 예배, 기도, 성경의 가르침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이슬람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질문들이 본고의 출발점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무슬림 예배를 살펴보고, 꾸란 1장 파티하의 본문을 소개하고 주해를 한 후에 무슬림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서 파티하를 중심으로 무슬림들의 신론, 인간론, 구원론, 종말론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파티하를 어떻게 이슬람 선교에 적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언급한 후, 본고의 결론을 맺을 것이다.

 

2. 무슬림 예배

 


무슬림 예배는 이슬람의 다섯기둥들로 구성된다. 신앙 고백, 기도, 구제, 라마단, 성지순례. 결국 이들의 예배는 온 생애 동안 이루어지는 자신의 모든 삶으로 확장된다.이들의 예배를 좁은 의미로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면 매일 드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일정한 형식과 순서에 따라서 몸동작을 취하며 구절을 암송하며 드리는 기도가 곧 이들의 예배다. 이들의 기도 형식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암송되는 기도문이 꾸란1장 즉 파티하이다. 이들은 기도를 통해서 매일 적어도 17회씩 파티하를 암송한다.파티하는 이슬람 신앙의 모든 원리들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파티하는 짧은 일곱 절로 구성되는데, 이것이 전체 꾸란의 1/3에 해당한다고 할 만큼 중요하다. 이바다 이븐 사미트는 ‘파티하를 암송하지 않는 예배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3. 무슬림과 파티하

 

성경이 총1,189장으로 구성된 반면, 꾸란은 총 114장 6,616절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114장 중에서86장이 메카에서, 28장은 메디나에서 계시된 것으로 믿는다. 무슬림들은 꾸란이 ‘책들의 어머니’이며, 꾸란의 축어적 계시를 믿는다. 무슬림들은 또한 꾸란을 알라의 마지막 계시라고 믿는다.

 

꾸란 1장은 꾸란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있으며 개경장으로 불린다. 꾸란 1장을 아랍어로 ‘파티하’라고 부르며 개경장, 즉 문자적으로 ‘책(꾸란)을 여는 장’이란 의미이다. 파티하는 일곱 절, 29단어의 아주 짧은 장이지만, 무슬림들은 이슬람 사상의 진수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무슬림들은 매일 5회 기도 시간을 통해 최소한 17회씩 암송하고 있다. 곧 새벽 기도에서 2회, 해질녘 기도에서 3회 그리고 정오기도, 오후기도, 저녁기도에서 각각 4회씩 반복한다. 따라서 파티하는 무슬림들에게 이슬람 신앙의 전부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파티하는 알라의 성품과 속성을 말하며, 인간의 의무로 알라를 예배하며 바른 길로의 인도를 요청하고 있다. 파티하는 종종 기독교의 주기도문에 비유되지만, 주기도문과는 달리 윤리적인 요구나 실천을 요구하진 않는다.

 

파티하는 메카에서 계시된 7절로 자주 낭송되는 코란의 진수다. 꾸란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을 일곱 절’이라고 언급한다. 파티하는 이슬람의 기본 원리를 비롯하여,우주 만물의 운행 질서를 주관하는 알라에 대한 인간의 태도, 내세관, 경배와 구원의 유일한 대상인 알라, 인류가 걸어야 할 바른 길,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수여자인 알라의 속성, 알라의 노여움을 받았던 민족과 방황했던 민족에 대한 역사적 사건 등을 언급한다. 꾸란1장의 명칭은 ‘알 파티하’ 외에도 ‘책 중의 책’, ‘찬양’, ‘질병의 치료’, ‘무궁 무진한 지식의 창고’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모든 예배는 파티하가 제일 먼저 암송됨으로써 시작되고 예배의 효력이 발생한다.즉 파티하가 암송됨으로써 신앙의 문이 열린다는 의미에서 ‘개경 장’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본 장이 서두에 있지만 그것은 계시된 순서가 아니라 편집상의 순서일 뿐이다.

 

1) 파티하 본문과 구조

먼저 파티하의 본문을 우리말 번역, 영어 번역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⑴ 알라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God,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

the Compassionate, the Merciful

⑵ 찬양은 알라에게 있도다.

Praise be to God,

온 세계의 주

Lord of the Universe.

⑶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

The Compassionate, the Merciful,

⑷ 최후 심판 날의 주인

Sovereign of the Day of Judgement

⑸ 우리는 당신만을 예배하며

You alone we worship,

당신에게만 도움을 구합니다.

we turn for help.

⑹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Guide us to the straight path,

⑺ 당신께서 축복하신 자들의 길로

The path of those whom You have favoured,

당신의 분노를 초래하는 자들의 길이 아닌

Not of those who have incurred Your wrath,

길 잃어버린 자들의 길도 아닌

Nor of those who have gone astray.

 


파티하는 아래와 같이 기원, 고백, 간구의 3중 구조로 되어 있다.

① 기원 (1a-4절)

ⓐ 호칭 (1b)

ⓑ 찬양 (2a)

˙ 신의 섭리 (2b)

˙ 신의 자비 (3절)

˙ 신의 정의 (4절)

② 고백 (5절)

ⓐ 예배 (5a)

ⓑ 신의 도움 (5b)

③ 간구 (6-7절)

ⓐ 신의 안내 (6절)

ⓑ 세 그룹 (7절)

 

2) 파티하 주해

1a절의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는 무슬림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문처럼 선언되는 공식들이다. 사업상 거래를 시작할 때, 방문해서 집에 들어갈 때,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 부부관계를 시작할 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등 ‘비스밀라’ 는 반드시 선언해야 하는 무슬림들의 관행적인 공식 구절이다.

 

1절의 ‘비스밀라 알 라흐만 알 라힘’ (알라의 이름으로,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은 코란 114장 중 9장을 제외한 모든 장들 첫 머리에 후렴처럼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슬람의 상표처럼 여겨지는 어구들이다.

 

1b와 3절에서 두 번 반복되고 있는 ‘알 라흐만 알 라힘’ 즉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에서 알라의 자비와 긍휼은 꾸란에서 자주 언급되는 알라의 핵심 성품들이다. 일반적으로 비 무슬림들에겐 이슬람의 알라는 무섭고 이신론적이며 초월적인 존재로 이 세상 역사엔 무관심하고 인간들에게도 비인격적인 존재로 알려진 반면, 무슬림들에겐 알라의 자비가 최고의 핵심 덕목으로 믿어지고 있다.

2절의 ‘함둘릴라’는 1a절의 ‘비스밀라’처럼 자주 사용되는 관행 구절로. 크리스찬의‘할렐루야’에 해당되는 뜻이지만, 일상 생활에선 ‘Thank God’의 의미로 사용된다.온 세상의 주(2b), 자비롭고 긍휼하신 분(3절), 최후 심판날의 주인(4절)이기 때문에 알라에게 찬양을 돌림이 마땅하다.

 

5절에서 유일신 알라에 대한 예배를 고백하고, 6절에서 이슬람의 길을 바른길로 규정하며, 7절에서 알라의 축복을 받은 자들을 길 잃어버린 자들, 알라의 분노를 초래한 자들과 대비하고 있는데, 각각 무슬림들, 크리스찬들,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4. 무슬림 신학

 

1) 신론

이슬람의 신론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적 유일신론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단일(Unitarian) 유일신론(Oneness, Unity)이다. 꾸란 112장은 이슬람 신론의 핵심을 담고 있다.

알라의 이름으로, 자비롭고 긍휼하신분,

In the Name of god, the Compassionate, the Merciful

① 한 분 하나님이며,

God is on e,

② 영원한 하나님이다.

the Eternal God.

③ 그 분은 태어나지 않았고 낳지도 않았다.

He begot none, nor was He begotten.

④ 그 분과 같은 자가 없다.

None is equal to Him.

 

2) 인간론

이슬람의 인간 창조는 기독교의 창조론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창세기에서 인간은 흙으로 창조되었지만, 꾸란에서 인간은 흙 정액 자궁의 체세포 등으로 창조되었다고 언급한다. 꾸란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약한 존재로 지음받았고, 악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지만, 알라의 대리자로 묘사된다. 꾸란은 아담이 타락 후 회개했고, 알라는 그의 회개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원죄를 부정한다.

 

 

3) 구원론

무슬림들은 원죄를 부정하고,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한다. 꾸란에도 예수님의 출생과 생애, 기적이 등장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꾸란엔 성령도 언급되지 않는다. 무슬림들도 꾸란에 기록된 최후 심판을 믿지만, 구원의 방법이 기독교와 다르고 구원의 확신도 없다. 선행을 통해서 마지막까지 알라의 뜻에 따라 낙원에 갈 수 있을 뿐이다.

 

4) 종말론

이슬람의 종말론은 기독교의 종말론과 유사하다. 꾸란은 성경처럼 종말의 징조들,트럼펫 소리, 예수의 재림을 언급한다. 그러나 마흐디(Mahdi)라는 또 한 인물이 종말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최후 심판 때에, 책에 기록된대로 사람들의 선행과 악행이 저울에 달리게 된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도 유사하다. 다만 꾸란은 기독교의 천국(Heaven) 보다는 낙원(Paradise, Gardens)을 선호하며, 낙원의 보상 중에 숫 처녀의 시중등 물질적인 차원의 보상이 강조된다.

 

5. 이슬람 선교전략

 


이슬람 선교는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뿌림을 전제로 한다. 성령의 사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완악하고 강팍한 무슬림들의 영혼을 예수의 십자가 사랑과 성령의 기적 없이 그 누가 만질 수 있겠는가? 이슬람 선교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이슬람 지역에서 여러 다양한 사역들이 펼쳐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고아원, 장애인 센터 등 국가 시설들을 통한 긍휼과 구제 사역, 의료 사역, 개발 사역, 여행사, 섬유 직물, 학원, 태권도장 등의 비즈니스 사역, 교회개척 사역, 친구 삼기등 우정과 교제를 통한 개인전도, 제자 삼는 사역, 단기팀을 활용한 문서전도, 땅 밟기 사역, 중보기도 사역 등, 가능한 모든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 모든 사역들의 출발점은 무슬림들을 만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들과의 접촉점을 만드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학원, 클럽 등에서 동일한 관심사, 취미 등을 나누며 친구를 만들 수 있다. 파티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는 아주 탁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무슬림은 아니지만, 무슬림들을 이해하는 사람 혹은 무슬림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져서 그들에게 좋은 호감을 줄 수 있다. 파티하는 복음을 나눌 수 있는 우정의 친밀한 단계로 넘어가도록 돕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고, 이들과의 토론에서 이슬람 신앙의 오류를 잡아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이용할 수 있다.


6. 결론


이슬람은 분명히 강한 사탄의 요새이며 진지임에 틀림없지만, 반드시 성령의 권세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성일 뿐이다. 이슬람 영의 특징은 거짓과 불신과 음란과 분리와 두려움의 영으로 알려져 있지만, 성령과 보혈의 역사로 정결케 될 수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 영에 붙들린 불쌍한 영혼들로 우리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다(마 9:35-38).

 
 출처 :바울선교회지//다니엘 선교사(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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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의 영적전쟁(1)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화,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의 대화는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미 모든 무슬림들이 선지자로 추종하고 있는 무함맏과 그가 대화했던 무수히 많은 무함맏과 동시대의 아랍인들, 유대인 및 기독교인들 사이에 있었던 관계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꾸란에는 무함맏이 아랍인들과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과 논쟁했던 핵심적인 주제들과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꾸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진짜 유일신이 누구인가, 무함맏이 진짜 선지자인가 아니면 거짓말쟁이이며 가짜 선지자인가, 무함맏은 성경의 선지자들의 전통을 물려 받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참 종교는 어떤 종교인가에 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토론을 했던 당사자들 자신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무함맏 당시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꾸란에서 말하는 것처럼 책의 사람들이었다. 즉 그들은 항상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무함맏은 꾸란과 모든 무슬림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문맹이었다.

 

따라서 무함맏은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한 번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였던 타우랏, 자부르, 인질을 자기 눈으로 직접 읽은 적이 없었고,읽을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무함맏 당시에는 아직 성경이 아랍어로 번역되기 전이었다. 꾸란에는 성경에서 다루는 수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은 틀림 없지만,꾸란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읽어보고 성경과 대조해 보면 무함맏이 성경의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말한 것들은 거의 하나도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무함맏은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자기가 주워들은 선지자들과 성경 이야기들을 자기 멋대로 꾸며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무함맏이 꾸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바로 ‘무함맏 자신이 꾸란을 스스로 지어냈느냐 아니냐’에 관한 문제였다는 것을 꾸란을 한 번 만이라도 주의깊에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꾸란에서는 누가 거짓말쟁이가 되었을까? 성경을 항상 읽었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문맹이어서 그것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던 무함맏 앞에서는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성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이 항상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내용이 무엇이고,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상관없이 자기 식대로 우겨댔는데도, 모든 무슬림들은 오늘날까지도 성경을 직접 읽었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왜곡하여 무함맏에게 거짓말을 했고,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무함맏이 성경과 선지자들에 대해 진리를 말했다고 믿는다. 오늘날 이슬람 지역들이나 무슬림들이 사는 곳에서 우리가 무슬림들과 대화를 나눌 때 겪게 되는 문제가 정확히 이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거의 모든 무슬림들도 전혀 성경을 읽지도 않으면서 성경의 내용들을 자기 방식대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무슬림들은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하고자 할 때, 항상 근본적인 내용을 가지고 해답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주로 상황(context)이나 인물이나 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 유명한 어떤 학자가 무슬림이 되었다. 어떤 스타가 무슬림이 되었다. 무슬림의 인구가 세상에서 몇 퍼센티지이다. 한편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의 관점에서 신학적인 주제를 열심히 설명하려고 한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들과 대화를 하고, 그들에게 해답을 주려는 시도는 지나치게 기독교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무슬림들과 토론을 할 때 상황에 관한 문제를 놓고 서로 옳다고 주장하려 할 때에는 결코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논쟁은 끝없는 나락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문제의 발단이 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리이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누가 진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느냐에 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답변은 무슬림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신학적인 해명을 하는 식이다. 우리는 먼저 세상에 그 어떤 누구도 진리를 대변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어야 한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선언한다.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고 단지 선한 선생으로만 알았던 젊은이에게 “네가 왜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진리란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을 보여줄 수 있는 표준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된 사실이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 밖에 없음을 알려 주어야 한다.

 

만일 어떤 것이 항상 변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도, 믿고 의지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진리가 무엇이냐는 문제를 가지고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것은 무수히 많은 거짓에 속고 살아가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진리이냐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도록 도와야 한다. 즉 꾸란이 참된 진리이냐 아니냐, 성경이 참된 진리이냐 아니냐에 관한 문제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하고, 무슬림들의 관심도 이 문제에 집중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다행히 오늘날 우리는 문맹이었던 무함맏과는 달리 대부분 글을 읽을 줄 아는 무슬림들을 상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억지로 서로 자기 주장을 할 필요 없이 그 논쟁의 핵심이 되고 있는 꾸란과 성경을 읽어가면서 비교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감히 이슬람과 무슬림들의 근본이 되고 있는 꾸란을 성경과 대조해 가며 꾸란의 허구성을 송두리째 드러내어, 꾸란 자체를 통해 무슬림들을 거짓에서 진리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구원할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도전적인 방법을 나라에 따라서는 적용할 수 없는 지역도 있을 수 있겠지만, 성경과 꾸란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전도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국면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각국 각처에서 이슬람의 전면적인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꾸란의 허구성을 만방에 알려 사람들을 거짓 종교에 속지 않도록 미리 경계해야 할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다. 사실상 무슬림 선교에 있어서 토론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 만큼 토론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논쟁의 발단이 되고 있는 꾸란을 파헤치고 분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작업은 무슬림들의 세계관과 사고 구조를 깊이 있게 아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그들과 효과적으로 대화하는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내가 읽어본 대부분의 이슬람에 대한 책들은 이슬람의 허구성과 모순들을 드러내는 일에 조심하고 있다. 무슬림들을 가능한 한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 종교에 대한 비판에 대해 무슬림들의 반응을 고려해 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신학적인 주제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기독교와 거의 대부분의 주제들을 공유하는 이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속을 위험성이 있다. 비록 신학적인 주제들은 공통 분모를 갖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여기에는 심지어는 기독교인 선교사도 함정에 빠뜨리는 수 많은 사탄의 간계들이 존재한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혹자는 영적 전쟁을 단순히 불신자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어두운 영들의 세력과 신자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대립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로 작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이다. 절대로 영적인 전쟁에서 이와 같은 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불신자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어두움의 영들을 대적하는 것만으로는 불신자들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영적인 전쟁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와 사탄의 악과 불의의 통치, 천사들과 타락한 영들,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순복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순복치 않고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 사람들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와 영혼을 지배하는 두 세계라고 하는 매우 복잡하고 전면적인 전쟁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기독교인들은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의 세계관들과 부득이 하게 맞부딪히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 가고, 멸망해 가는 세상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이러한 영적인 싸움의 가장 큰 원인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세계관의 현저한 차이점 때문에 발생한다.

특히 이슬람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은 서로 유사한 점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 거의 하나도 닮은 것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언뜻 보기에 비슷하게 보이는 많은 신학적인 주제들도, 그 내용에 들어가보면 철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유사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탄의 음흉한 계략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이 신, 구약 성경과 그 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선지자들 또는 인물들을 언급할 때, 우리는 피상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들이 왜 그렇게 말하고, 어떠한 의미와 목적으로 선지자들과 성경의 말씀들을 인용하는 것인지를 잘 분석하고 있어야 한다.

 

무함맏은 왜, 어떠한 목적으로 꾸란에서 선지자들의 이름과 행적들을 거론하는가?

무함맏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선지자들을 어떻게 평가하였는가?

무함맏이 사용한 신학적인 용어들은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이슬람의 용어들이 우리의 용어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어떤 식으로 무함맏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는가?

왜 모든 무슬림들은 무함맏을 본받고 따르고 있는가? 이들이 근본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함맏이 다루고 있는 신학적인 주제들의 논리적인 상관성은 무엇인가?

이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효과적으로 복음 진리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이들의 배후에는 어떤 영적인 존재들이 역사하고 있는가? 등 많은 질문을 해 보고,관찰하고 연구해야 진짜 무슬림들의 필요를 볼 수 있고, 또한 채워줄 수 있다

 

우리는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들, 즉 성령, 그리스도(메시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말씀, 선지자의 사역과 역할, 죄, 정결과 부정함,회개, 믿음, 기도, 구원, 천국, 지옥, 종말, 심판 등 많은 단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슬림들의 생각과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면서도 의미를 전혀 다르게 사용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칫 잘못하면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단어들 때문에 그들이 이미 그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오해 때문에 그들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반대로 그 단어들이 사용되는 의미의 차이점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그 모든 단어들이 정말로 중요한 전도의 접촉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단순히 그러한 단어들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많은 복음의 핵심들을 전하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의 영적전쟁(2)

 

 

무슬림들이 말하는 선지자들에 관한 사상이나 사용하는 용어들의 의미와 차이점들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반대로 우리가 전하는 성경 이야기나 용어들이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이해가 되어지는 가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무슬림들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들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하나님의 형상은 어떠한 존재일까를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할 때, 또는 삼위일체에 대해 우리가 언급할 때,무슬림들의 마음속에는 무함맏과 꾸란이 계시하고 있는 단일신 알라와 그들이 강력하게 배척했던 메카의 다신교 우상들, 즉 다신교 사상을 우선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의 신을 상상할 때,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쉬르크, 즉 알라에게 동료를 초래시키는 이슬람의 가장 큰 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세 인격으로 존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을 그들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또는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하나님 외의 또 다른 신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하게 하는 원인은 하나는 우상숭배자들 때문이고, 하나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 자신을 영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육체적이고도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요한복음 1장과 창세기 1장, 그리고 잠언 8장, 시편의 메시야 예언들 중에 특히 2편과 89편 등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능력의 말씀이 왜 메시야로 세움을 받고, 왜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지어야 했는지, 왜 인자가 되셔야 했는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논리 능력과 설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성령의 조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영적인 전쟁은 세계관의 전쟁이다.

 

또 성령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 무슬림들은 가브리엘 천사나 무함맏과 같은 영적 존재나 꾸란과 같은 특별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언급하는 성령이 곧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구별하여 말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능력의 말씀을 인격적인 창조주로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그들은 인간의 말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단순한 의미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한다.

 

무함맏과 꾸란이 메시야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하였지만, 꾸란 어디에도 메시야의 의미와 성격 또는 사역에 대해 설명을 해 놓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언급할 때 무슬림들은 이것을 결코 육체적인 의미의 출생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부분, 즉 메시야가 하나님의 아들로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되어 세워지는 면을 시편을 통해 설명해 줄 수 있다. 동일하게 죄에 대해서 말할 때에 무슬림들은 죄의 심각성에 대해서 깊이있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죄의 심각성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담이 단 한 가지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존재와 영원한 낙원과 천국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설명해 줄 수 있으며, 또한 인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죄성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회개에 대해서 말하지만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회개, 단지 “회개한다” 라고 입과 마음으로 고백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그들에게 참된 회개란 자신의 타락한 본성대로 살아가는 삶 전체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율법적인 정결과 부정에 대해 저들이 언급할 때, 우리는 의와 불의, 거룩과 죄,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꾸란에 무함맏은 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전혀 지적하지도 않았다.

 

꾸란에서 알라는 아담이 회개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를 용서해 주었다. 꾸란에서 나오는 용서와 구원은 사실상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합법적인 근거나 절차가 거의 필요 없다.

 

천국을 정욕적이고 세속적으로 소망하는 저들의 소망이 거짓됨을 지적해 주고, 천사와 같은 거룩한 삶과 부활체로서의 영광스럽고도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영원토록 유지하는 영생에 대해 가르쳐 주어야 한다.

 

지옥을 말할 때 저들은 모든 사람들이 일단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헛된 소망을 버리도록, 지옥에서 천국으로 전혀 옮겨갈 수 없다는 무서운 사실을 경고해야 한다.

 

또한 인간의 헛된 노력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야 한다.이 외에도 구체적으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무슬림들이 동일하게 사용하는 것들이 대단히 많은 사실을 알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단어의 의미상의 차이에도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착각하도록 하게 하려는 사탄의 계략이 숨겨져 있다.

 

지금까지 나 자신도 무슬림들과 상당히 많은 부분을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가운데 대화를 많이 했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역자들을 살펴보아도 무슬림들의 세계관에 대해, 즉 그들의 세계관을 형성시키는 꾸란과 하디스와 기타 이슬람의 의식 및 신념들에 대해 일반적인 것 외에는 꽤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우리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이슬람의 다섯 기둥과 같은 것들을 주제로 삼아서 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그럴 경우 그들의 무엇을 변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기독교인 사역자들이 이슬람의 일반적인 교리들을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그것들을 사용하여 무슬림들을 진리로 인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상 이슬람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들이 체계적으로 세워 놓은 교리들이 아니라, 꾸란 자체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무슬림들의 교리들과 종교 의무들은 꾸란의 허구성을 감추기 위해 치장해 놓은 장식품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은 그런 것들을 알 필요는 있어도, 결코 다룰 필요가 없다.

 

꾸란을 연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흥미로운 작업이 아니다.

꾸란을 읽는 것은 심지어는 무슬림들에게도 어려운 중노동이다.

 

꾸란을 읽는데 가장 큰 어려운 점은 꾸란 자체 내에 있는 논리적인 모순들과 비약,무의미한 반복들, 심지어는 어두움의 영들의 세계에 대한 무수한 언급들 때문이다.

 

오늘날만 해도 수억의 인구가, 역사상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무슬림들이 자기들의 무지 때문에 지옥에 가고 있다면, 그들 모두가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뭐든 해야 한다.

 

따라서 꾸란 자체에 대한 연구는 지옥으로 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것들에 속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그들을 그 속에서부터 끌어내 구원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경고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위의 본문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자기 자신에게 적용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이 말씀은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이다.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인간의 구원과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작정,그리고 인간의 자유 의지와 의무와 책임 등에 관계된 것들이지만,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우치기 위하여 얼마나 다양하고 창조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모든 생명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구원과 멸망을 마치 우리들의 손에 모두 맡겨 놓으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볼 때, 우리의 사역이 얼마나 의미있고, 위대한 것인가를 알게 해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무슬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이 앓고 있는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슬람 지역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은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꾸란을 직접 읽어보고, 꾸란과 성경의 내용상 차이점들을 논리적으로 숙지하고 있으면 전도의 접촉점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무슬림들이 어떤 말을 어떤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히‘말도 안되는 엉뚱한 이야기, 비성경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고 간주해 버리고 만다면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복음 전도의 접촉점을 스스로 포기하고 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주로 형성하는 것으로는 꾸란, 하디스, 순나, 세속적인 가치관 등이다. 무슬림들이 지극히 종교적인 사람들인 것은 틀림없지만, 동시에 극도로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된다.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영적 전쟁이 치열한 장소는 각 사람의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는 자리이다. 세계관의 변화와 영적 전쟁 사이의 상관 관계를 별도의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영적 전쟁을 단지 기도와 성령의 능력의 대결만은 아니다. 그것들도 매우 중요하지만 더 심각한 영적 전쟁의 현장은 사람의 지식과 성품과 가치관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다.

 

(고후 10:3-6)“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세계관의 배후에는 그 세계관을 지배하고 형성시키는 보다 근본적인 영적인 세력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영적 세력은 추종자의 전인격, 즉 지, 정, 의 모두를 통제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과 유사하게,무슬림들도 전인적으로 어두움의 영들의 지배와 통치를 받고 살아간다.

 

이슬람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의 영적전쟁(3)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원하는 것처럼 무슬림들도 전인격적으로 자신들의 종교에 충실한다. 무슬림들도 나름대로 지적인 면 뿐만 아니라 의지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에서 그들을 어느 정도는 만족시켜 주는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사탄적인 종교나 이단 종파를 사람들이 왜 그토록 열정적으로 믿고 있는가 의아해 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도 매우 강렬한 그 무엇이 있다.

따라서 영적인 감동과 같은 것이 단지 기독교 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 영역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지만,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도 스스로는 매우 강렬한 영적인 현상을 체험하고 있다. 때로는 그러한 체험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보다 더 강력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매우 온유하고 친절하게 자기 백성들을 권면하시고 인도하시는 반면, 사탄은 매우 강력한 독재와 위협으로 자기 세력 안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을 때, 기도를 드릴 때, 찬양을 할 때, 기타 종교적인 일들이나 선행을 할 때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을 통한 감동을 자주 체험한다. 동일하게 무슬림들도 꾸란을 읽을 때, 사원에서 예배를 드릴 때, 종교적인 의무를 지키고, 선행을 할 때 악한 영으로부터 감동을 체험한다.

 

따라서 무슬림들이 아무런 영적인 감동도 없이 단순한 인간적 열심에 의해 그들의 종교에 깊이 심취해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체험들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동의 경험일 수 있지만, 근원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요일 4:1-6; 딤전 4:1), 때로는 대단히 강렬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자기 신념을 위해 생명도 아깝지 않게 희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비슷한 현상들을 사회 전반에서 많이 경험한다. 때로는 전혀 종교적이 아닌 심지어는 악한 일들 가운데서도 감동을 받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며, 이러한 광경은 스포츠 활동이나 영화와 같은 매스 미이디어나 독서, 테러리즘, 기타 열광주의에서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세계관으로 빠져 들어갈 때, 그들이 그 속으로 깊이 몰입되는 그럴듯한 계기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때로 이러한 감동은 무함맏에게서 알 수 있듯이, 또는 사탄 숭배자들에게서 알 수 있듯이 두려움과 공포를 동반한다.

 

이슬람 교리와 의식에 깊이 감동되어 있는 무슬림들을 구원하는 것은 덜 감동되어 있는 무슬림들을 구원해 내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 이슬람에 헌신되어 있는 무슬림을 구원하는 것은, 이슬람에 실망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이슬람 지역에서 무슬림들과 함께 살고 있다면 우리는 영적 전쟁의 최전방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단순히 지적인 논리 싸움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영적 싸움은 하나님과 마귀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아무리 강한 무슬림일지라도 하나님의 계시를 체험하고 능력을 체험하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고 불신자가 꿈에 예수님을 보고,그분의 음성을 듣고 기적을 체험했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과거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부정해 버리고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꿈의 계시나 치료나 귀신 축사를 통해 회개하고 기독교인이 된 사람일지라도 지식과 신념과 삶의 태도와 방식이 변화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며 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한 가지의 전도 방법만을 가지고 모든 무슬림들을 구원해 낼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전도 방법은 다른 방법에 비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무슬림들을 상대한다면, 우리는 무슬림들의 영적인 세계를 송두리째 파악하고 있어야 영적인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세계관의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통해 발생한다.

 

먼저 부정적인 측면은 자신이 기존에 옳다고 믿었던 것의 거짓됨을 발견하고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긍정적인 측면은 새로운 세계관이 전적으로 옳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무엇이 거짓인 줄 알게 되면 무엇이 진리인지도 쉽게 알 수 있게 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게 되면 무엇이 거짓인지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거짓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버리기를 원한다면,그들이 믿고 있는 신념이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를 그들보다 더 명확하게 알아서 그들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깨우쳐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꾸란이 거짓인 것을 발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결코 꾸란을 손에서 던져 버릴 수 없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면 적어도 꾸란의 어떠한 점이 잘못되었는지, 무함맏이 누구인지, 이슬람의 역사적, 종교적 배경은 어떠한 것인지 등 기본적인 상식들을 알고 있어야 하며 계속해서 그들을 연구해야 한다.

또한 복음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으로의 변화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경험이 없이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세계관의 변화에 있어서 긍정적인 측면이다. 즉 진리를 발견하게 되면 진리를 소유하기 위하여 거짓을 버릴 수 있게 된다.

 

설령 다양한 기적적인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계속 진리의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결과는 이단에 빠지든지 거의 성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진리의 말씀에 믿음의 뿌리를 넓고 깊고 강하게 내릴수록 그리스도를 더 많이 닮아가게 된다. 물론 이것은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배제하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슬림들이 꾸란과 이슬람의 거짓됨을 인정하지 않고 온전한 계시를 통해 참된 하나님과 만난 후 그 분께 돌아오는 결단이 없다면 결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격적으로 그리스도와 조우(만남)를 경험하고, 그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려는 열망에 가득차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며 살아가려는 거룩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초대해야 한다.

 

우리는 무슬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하게 이슬람 신념으로 세뇌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몸 속에는 이슬람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할 만큼 철저하게 이슬람 세계관으로 세뇌되어 있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과 말씀의 능력은 그 어떠한 것보다 위대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운명에 맡겨 살던 무슬림들은 하나님을 올바로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무슬림이 일단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운명에 맞서 싸우고,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사랑하며 충성하는 삶을 살도록 지도해야 한다.

무슬림 중에 혹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이전에 믿던 여러 선지자들 중의 하나로서 영접하는 수준이거나, 혹은 무함맏과 동일한 수준으로 놓기도 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시키는 기도를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한 사람을 완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일에 비하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체험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과정을 ‘해산의 고통’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해산의 고통은 단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일시적으로 체험한 사람이 전적으로 변화되기까지의 전 돌봄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끝임 없는 관심과 사랑과 모범과 기도와 가르침을 통해 한 사람이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서 가는 것을 보았을 때, 즉 완전한 성경의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한 사람을 해산했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이 영광스러운 해산의 기쁨인 것이다.

 

꾸란의 내용 전체를 다룬 이 글의 목적은 이슬람과 무슬림의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며, 또 그것을 통해 복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하는 접근방법을 스스로 발견해 나가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어두움 가운데서 살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빛을 볼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비진리의 어두움 가운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이 진리인지, 거짓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영적 소경으로서 어두움의 영이 이끄는 대로 이끌리며 살아간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대로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자기에게 없기 때문이다.심지어는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단순히 말해 주었을 때에도 일반적인 무슬림들은 그것이 단지 꾸란의 이야기로만 이해를 하지 실제적인 차이점을 구별해 내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무슬림들에게 선지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꾸란에 있는 내용들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성경과 꾸란의 차이점을 명료하게 드러내 주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고 많은 지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진리의 빛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 즉 세상의 빛으로 세움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참된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면, 다시 말해 참된 진리를 설명해 주면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흑암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인지에 대해 반응을 시작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이 믿고 있는 내용들이 거짓이고 어두움이라는 사실을 진리를 통해 조명해 주고 그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해 꾸란의 주제를 통해서 복음의 내용을 전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꾸란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사실상 꾸란에는 복음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꾸란은 복음의 핵심이 되는 내용들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꾸란을 이용하면 복음을 전할 접촉점이 많다.그 이유는 무슬림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관의 유사성 때문이다. 즉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을 모방한 옷을 입고 있는데, 우리는 그 진짜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꾸란과 성경을 동시에 사용해야 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꾸란과 성경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약성경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많은 무슬림들 가운데는 복음 자체를 듣고 싶어하고, 또 복음을 들으면 의외로 좋은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편 많은 무슬림들이 현지인 그리스도인이나 외국인 사역자들에게 꾸란에 대해 질문을 해 온다. 그런데 과거 무슬림이었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지라도 꾸란을 어떻게 사용할 줄 모르고,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답변을 해 주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처 : 바울선교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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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상식

1) 이슬람의 의미

이슬람(Al-Islam)은 아랍어로 신(알라)에 대한 "복종","순종"을 의미하며,

이슬람을 믿는 신자가 남성일 경우 "무슬림" 이라고 하고 여성일 경우는 "무슬리마" 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슬람을 회교(回敎)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중국을 통해 이슬람이 전해 지면서

회족들의 종교라는 의미에서 회교로 부르게 되었다.

 

 

2) 꾸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40세 되던해부터 사망하기까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계시를 받은

(알라)의 말씀으로 이슬람의 경전이다.

꾸란은 암송형태로 전해지다가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들에 의해 여러 곳에서 문자화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3대 칼리프 시대에 현재의 꾸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소각하였다.

(알라)의 말씀이 담긴 책이므로 무슬림들은 꾸란을 읽기 전에 몸을 청결히 해여 하며,

꾸란을 읽을 때에는 경건한 자세를 해야하며 음식을 먹거나 남과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꾸란을 읽지 않을 때는 경외의 의미에서 천으로 싸서 가장 높은 곳에 두어야 한다.

 

  

 

 

3) 모스크(Mosque)

에스파냐어 메스키타 및 프랑스어 모스케를 거쳐 영어로 변한 것임.

아랍어로 마스짇은 '이마에 땅에 대고 절하는 곳'을 뜻한다.

회랑(回廊)이 있고, 안뜰에는 청정(淸淨 :우드)의식을 행하는 샘물이나 수도가 있다.

건물 내부에는 메카의 방향(키브라)을 나타내는 벽감(壁龕 :마흐라브)과 설교자(키티브)

위한 단(:민바르)이 있다.

회랑 한쪽에는 1~6개의 탑(마나르)이 솟아 있고, 예배시각이 되면 예배당을 지키는 무아딘이

탑에 올라가 예배를 권유하는 '아잔'을 소리 높여 낭송하다.

 

 

 

 

4) 예배(쌀라)

메카(카바신전) 방향으로 하루 5번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새벽기도 2, 정오 및 오호, 밤은 4, 일몰은 3번의 절을 하며 기도한다.

- "파즈르(fajr)" : 동트기 전 기도

- "주흐르(dhuhr)" : 정오기도

- "아스르(asr)" : 오후 중반에서 해지기 사이 2-3시 경 드리는 기도

- "마그립(maghrib)" : 해진 직후 드리는 기도

- "이샤(isha)" : 잠자기 전에 드리는 기도

이슬람 기도의 주목적은 자기 정화에 있으며, 무슬림들은 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거치지 않고 직접 알라와 영적 교감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정오에는 무슬림 신도들이 모두 모스크에 모여 단체 예배를 드린다.

 

5) 청정 의식(우두)

이슬람은 몸과 마음의 청결을 중요시 하며, 신체와 정신의 청결은 꾸란에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신자들은 기도나 예배 전 이슬람식 간단한 세정(우두)을 한다.

기도 전에 몸을 깨끗이 씻는 의식은 타하라(Taharah)라고 하며, 남여 구역이 분리되어 있다.

- 씻는 순서는 손, , , 얼굴, , 머리, , 발 등이다.

- 물이 없을 경우에는 깨끗한 모래, , 자갈, 돌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6) 이슬람 염주

이슬람인도 신앙심 유지를 위해 염주(Tasbih)를 돌린다.(천주교, 불교와 유사)

알라의 99가지 이름을 따 99개의 염주로 되어 있으나 보통은 33개의 염주3개로 나누어 사용한다.

7) 이슬람 축제

Eid Al-Fitr (금식 종료 기념 명절)

- 이슬람의 금식월인 라마단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명절

Eid Al-Adha (희생제) : Haji(순례 기간)종료 시점에 시작 이 기간중에 무슬림들은

  선물 및 카드를 교환한다.

 

8) 초생달과 별

이슬람권 많은 나라들이 초생달과 별이 포함된 국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모스크 첨탑 장식에도

활용하고 있어 이슬람의 별과 달은 알라의 권능을 상징하는 증표이기도 한다.

이슬람의 가름침은 초생달과 별처럼 인간은 안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음.

이슬람에서의 초승달과 별의 유래

- 그러나 초승달과 별이 언제부터 이슬람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는지 유래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지금은 이스탄불)을 점령한 1453

당시 비잔틴 제국에 존재하던 초승달 및 별 상징을 오스만제국이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의 상징으로 정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고대 아람의 전통적으로 최고의 신인 달신에서 유래 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9) 이슬람 3대 성지

메카(선지자 무함마드의 출생지 - 카바신전 소재지)

메디나(최초의 이슬람 도시, 무함마드의 사망지)

알쿠드스(예루살렘, 무함마드의 승천한 장소)

 

10) 이슬람 복장

이슬람 여성의 hijab(머리를 덮는 베일)은 남성의 유혹을 예방하기 위한 것임.(쿠란 p352)

이슬람 여성들이 입는 검은 옷은 Abaya(아바야)라고 하며, 아프간에서는 부르카,

이란에서는 차도르라고 한다.

 

11) 이슬람과 예술

무함마드는 알라에 대한 믿음과 숭배가 유혹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사람이나 동물 그림을 못 그리게 한다. 대신에 기하하적인 다양한 서체 예술이 발달되었다.

음악도 인간은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금지시키고 있다.

 

12) 접대 예절

윗사람들을 매우 공경하고, 찾아오는 손님에 대해서는 극진하게 접대하는 것이 예의이며

미덕으로 간주하고 있다.

속담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집에는 천사도 찾아오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이는 인적이 드믄 사막의 생활환경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종교 예의상 공덕을 많이 쌓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13) 인사

"앗쌀라무 알라이쿰"(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하면

"오 알라이쿰 앗 쌀람"(당신에게도 평화가...)이리고 답한다.

그렇게 답해주지 않으면 인사 받은 사람은 평화만 받고 상대방은 나쁜것과 해가 되는 것을

가져도 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무슬림들은 상대방보다 인사를 길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므로 다소 짜증나더라도

계속 인사를 받아서 해주는 것이 훨씬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

무슬림들은 알라(하나님)외에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지 않고 악수로 대신한다.

보통 무슬림들은 악수 후 친밀한 사이에는 서로 포응을 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는 인사를 하며 오른손 등을 이마에 가져다 댄다.

이슬람 여성에게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미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

인사할 때 부인 또는 여성가족의 안부는 묻지 않는 것이 좋으며, 가족의 안부는 허용된다.

 

14) 좋은 행위 오른손 사용

무슬림들은 오른손을 악수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선물을 주고 받을 때 등

좋은 일을 할 때 사용하고, 왼손은 화장실에서 용변 후 씻을 때, 신발을 닦을 때,

그리고 코를 풀 때 사용한다.

물건을 주고 받을 때 악수를 할 때 왼손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큰 실례이다.

심지어 잘 때도 오른쪽으로 자야하며 왼쪽으로 자는 것도 가급적 피하고,

 

손톱을 자를 때 먼저 오른 손 , 왼 손, 오른 발, 왼 발, 순으로 깍으며, 칫솔질도 입안의 오른쪽부터

한다고 할 정도로 오른쪽 우선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 왼손은 사탄과 관련한 부정한 것으로 인식 된다.

 

15) 생리 현상과 관련된 예절

다른 사회와 달리 이슬람권에서는 식사 후에 트림을 하더라도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만

하면 예의를 벗어난 행위는 아니다.

재채기는 아무데서나 해도 상관없고 재채기를 한 사람에게

"yarhamuk allah"(may Allah have mercy n yu)라고 한다.

하품은 최대한 하지 않도록 하는데 이슬람에서는 하품 할 때 나는 소리 '아아-'

사탄이 자극해서 나는 소리라고 한다.

기도 시간에 방귀를 뀌면 알라가 기도 소리를 듣지 않고 다른 대로 간다고 하여 아주 싫어하므로

무슬림들 앞에서는 삼가야 한다.

 

16) 화장실

화장실에서 중요한 부분을 무슬림에게 보이는 것은 큰 실례이다.

무슬림들은 목욕이나, 수영할 때에도 허리로부터 무릎까지는 가리는데 이는 무함마드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수나,Sunnah)

무슬림들은 대소변 시 메카 방향으로 해서는 안되면, 용변을 보고 씻을 때 오른손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이슬람권의 공공화장실에는 화장지가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대부분의 경우 용변 후 물을 사용한다.

17) 손으로 상대방을 가리키는 것

무슬림 사회에서도 좋지 않은 예절로 평가된다.

간혹 무슬림들이 기분 좋을 때나 의견이 똑같을 때, 오른손 바닥을 내미는데

이럴 경우는 손바닥을 쳐주면 된다.

18) 신의 뜻으로(인샤알라)/알라의 덕분에(알 함두릴라)

우리가 무슬림들과 대화할 때, 무슬림들은 승낙 또는 약속의 표시로 '인샤알라"라고 하는데,

그 일이 이루어질지는 알라만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비무슬림들은 이러할 경우 불확실한 약속의 증표라고 간주하고 "인샤알라" 하지 말고 다른 식으로

확신의 말을 해 줄것을 요청하는 데, 진실한 무슬림들에게 이러한 요구는 종교의 대한 모욕감을

주는 매우 불쾌한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무슬림들은 대답이 애매하거나 불확실 할때 "인샬라"라고 답한다.

19) 식사 예절

식사전에 손을 씻고

먹거나 마시지 전에 Bismillah(알라의 이름으로)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사탄이 같이 음식을 먹게 된다고 한다)

초대를 받게 되어 식사할 경우 식사 전에 "비스밀라"

"알라 바라카트후"(알라의 이름으로, 알라의 축복이 당신에게)라고 말한다.

식사전에 음식이 반드시 식탁에 놓여 있어야 한다.

반드시 오른손으로 식사(사탄은 왼손으로 식사한다고 한다).

음식이 뜨겁다고 불어서는 안 된다.

손님이 떠날 경우 문까지 배웅하는 것이 좋다.

싫어하는 음식이 있더라도 표내지 않도록 한다.

선물을 줄 경우, 받는 것이 예의이며 주인의 요청이 없을 경우에는 나중에 뜯어 본다.

 

20) 메카(Mecca)의 중요성

무슬림들은 메카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 메카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은 곳으로 매년 이슬람 순례객들이

순례하는 이슬람의 성지이다.

 

메카 방향을 향해 기도(쌀라)를 하고, 메카의 중심에는 카바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 종교 생활과 예절, 생활 방식도 메카와 많은 연관이 있다.

 

불결한 것(예를 들어 잠자는 방향, 용변 볼 때)의 자세는 메카로 향해서는 안 된다.

 

21) 기타 예절

여성을 똑바로 주시해서는 안되며, 남성의 과도한 장식은 여성스럽게 보인다고 해서 금한다.

남편 외의 다른 사람들에 보이기 위한 여성의 과도한 장식은 금지되며, 여성은 주로 금, 은을

선호한다.

무슬림 여성들이 때때로 과도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혹자는 이혼 후의 생활을

대비하기 위해 현금 대신 저장 해 둔 것이라고도 한다.

어른앞에서 꼰 자세로 앉거나 발바닥을 상대방에게 보이는 행위, 침을 뱉는 행위 등은

모두 좋지 않은 행동으로 받아들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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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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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열린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제26회 영성포럼에서 이동주 박사님이 발표한 논문 '이슬람 대처' 전문을 몇 차례로 나눠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필자는 중동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여성들이 누리지 못하는 인권문제를 보았고, 방문자인 필자조차 조심하지 않으면 그러한 피해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현실적으로 한국인의 인구 감소와 무슬림들의 대거 유입, 그들의 자연적 인구 증가, 무슬림 남성들의 국내 장기체류를 위한 타끼야(위장) 전략적 결혼과 피해사례들, 타끼야 전략적 이슬람 미화선전을 그대로 믿고 안일하고 느긋하게 외래 종교의 급류 현상을 신경 쓰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볼 때마다, 필자는 크게 걱정한다.


이제 IS는 한국인 테러대상 20명을 지목하면서 공개적으로 '테러'와 '성전'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 이슬람화의 초기단계인 '평화 선전전략'을 벗어나려는 국내 무슬림들의 행동들, 그리고 관찰하면 바로 알 수 있는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의 각 처소의 고지를 점령해 올라오는 이미 드러난 사례들로 인해 우리는 긴장하고 있다.

이미 기독교 윤리관과 기독교 문화에 젖은 우리는 이슬람 문화도 그러한 공통적 세계관을 가진 것으로 전제하고 무슬림들을 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는 이슬람 테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간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무슬림들의 사명감은 알라가 명한 대로 전쟁 무기로 전 세계를 이슬람 화하는 것이다. "박해가 사라지고 종교가 온전히 하나님(알라)만의 것이 될 때가지 성전하라"(Sura 8:39). 이 구절의 각주에는 "피트나(fitnah 반란, 투쟁)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쉬르크)으로 지구상에 한 사람의 불신자도 존재하지 아니할 때까지 성전(지하드)해야 한다"고 해설돼 있다.


무슬림들의 테러는 이슬람교의 경전과 국법(샤리아)의 의미로 일종의 약한 "성전"(聖戰)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비무슬림들을 습격하고, 강탈하고, 강간하고, 살해해도, 이슬람 국가들 중 어디에도 테러리스트들을 검거하거나 처단하는 경우를 볼 수 없다.


우리는 종교 경전과 법률(샤리아)이 명하여 칼로 비무슬림들을 살해하고, 인질로 잡고, 고문하고, 탈취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는 이슬람교에서 합법일 뿐 아니라 경전이 말하는 알라의 뜻이다. "성전"은 무슬림들에게 세계 선교방법 중 가장 경전적이고 핵심적인 방법이다. 무슬림들은 테러도 성전으로 간주한다.


이슬람의 세계 선교 방법은 타끼야(위장, 거짓말)전략, 일부다처와 다산에 의한 무슬림 인구증가, 성전의 첫 단계로 평화적 접근선교인 '다와(dawa)', 이민선교, 교육선교, 교도소 선교, 석유선교, 문화선교, 인터넷선교, 미디어선교, 금전선교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슬람선교의 목적은 '세계의 이슬람화'라기보다는 '세계의 샤리아 지배'라고 정의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세계 이슬람화는 샤리아의 세계 지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슬람 '샤리아'는 세계 이슬람화의 도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슬람의 샤리아와 샤리아의 근간인 꾸란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는 이슬람에 대처하기도 어렵다.


세계 이슬람화는 1972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Jeddah)에 모인 30개국의 '이슬람 외무부장관 회의(Islamische Außenmisisterkonferenz)'로부터 개시된다. 이 '이슬람 외무부장관 회의'는 세계 무슬림의 정치와 종교를 한 덩어리로 묶고 단결시켜 스스로를 헌장국들(Charta-Staaten)로 표명했다.


이곳에서 결성된 '이슬람 회의(Islamische Konferenz =Motamar Islami)'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연합했고, 이 세계 이슬람교는 '이슬람 국왕회의 및 장관회의', '외무부장관 회의', '항구적인 이슬람 총무'를 세우기로 결정했으며, 대 반기독교적 전략을 함께 의논하였다. 이 이슬람회의의 초대 총무는 전 말레이시아 국무총리 퉁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이었다.


이 '이슬람 회의'에 속한 중요한 '세계이슬람 조직(Weltmoslemlinga =Rabita Al-Alam Al-Islami)'이 있다. 1974년 제2대 총무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자문 싸이드 하산 무함마드(Sayyid Hassan Muhammad Al Tuhamy)는 세계 무슬림 공동체를 강화하여 연대감을 가지고 서로 도울 것과, 다음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그것은 ①모든 나라에 이슬람지부를 설치하고 ②디아스포라 무슬림 신학대학을 세우며 ③전 아프리카를 이슬람대륙화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위와 같이 전 세계를 이슬람화 하자는 계획 하에 아시아를 이슬람화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우선 '한국을 이슬람화 하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시행해야 할 방법을 간파했다. 그것은 이슬람 교육선교이다.


한국의 교육적 열망을 알아챈 그들은 1970년대부터 치밀한 교육정책을 개발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지대학교, 그 밖의 지방 대학교들에 아랍어과와 이란어과, 터키어과 등을 설치하고 아랍어를 보급하며, 학과목으로 이슬람 문화사, 꾸란 연구, 중동정치학 등을 개설했다.


이들의 교육은 이슬람사원에서도 실시된다. 우리는 차세대의 주인공이 될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모스크들과 이슬람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이슬람의 차세대 교육을 무관심하게 방치한 서구와 미국의 이민 2세들이 받은 교육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슬람 노동자들뿐 아니라 이슬람 난민들을 맞이해야 하는 윤리도덕적 입장에 답해야 하고, 그들 중에 잠입해 들어오는 극단주의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대답해야 할 때가 됐다.


필자는 꾸란과 샤리아의 영향권 하에 있는 비무슬림들과 여성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필자에게 주어진 제목 '이슬람 대처'에 관해 연구하면서, 꾸란과 이슬람 샤리아가 어떻게 이슬람 국가를 이루어 가는지, 그리고 온 세계를 샤리아가 다스리는 세상이 되게 하려고 끊임없이 돌진해온 1,400년의 이슬람화 역사를 살폈다.


필자는 독일어로 번역된 시아파 이란의 샤리아를 접했고, 중동을 왕래하면서 품었던 이슬람의 정체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기 시작했으며, 노니 다르위시(Nonie Darwish)의 저서 <숨겨왔던 샤리아의 진실(4HIM, 2013)>에서 서술된 이집트의 샤피이(Shafi'i) 학파적 샤리아 치하의 비무슬림의 삶에 관한 진술을 통해, 샤리아의 지배 하에 처한 비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의 입장에 관해 더 많은 것들을 파악하게 됐다.


이슬람과 샤리아의 도전에 대해 무관심한 교회의 현재와, 사리아의 지배를 받고 사는 장래의 인류, 그들의 구원을 염려하는 필자로서는 노니 다르위시의 저서가 이슬람 대처를 위해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저서임을 발견했다.


필자의 연구는 무슬림들의 세계 이슬람화와 샤리아의 세계 지배 전략에 관한 관심으로 1. 무슬림 인구 확장, 2. 꾸란과 샤리아적인 세계선교, 3. 지하드 선교: 성전과 테러, 4. 이슬람 선교초기에 '평화의 종교'로 선전하는 이슬람의 타끼야 선교전략,  5. 이희수교수의 '교과서 바로잡기' 논문 내용의 진실성 고찰 6. 일부다처제와 다산에 의한 이슬람교 확장 등에 관해 연구했다.


이를 통해 이슬람의 한국 진입의 뜻이 무엇인지를 밝힘으로써 세계 무슬림들의 한국 이슬람화 정책을 간파하고, 한국교회가 이슬람의 도전에 대해 방관하는 상태에서 깨어나 기도하며, 한국인 모두에게 이슬람교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이슬람교가 한국에 더 견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의 논문은 이를 위한 경고 차원에 머문다.


우리는 한 믿음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이 주신 굉장한 특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이슬람이 우리의 후손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 우리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영원토록 통치하시기를 소원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띄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2-18)".


1. 무슬림 인구 확장


1999년 11월 12일 10면에 조선일보는 세계 무슬림 인구가 2025년 인류의 삼분의 일이 된다고 했다. '이슬람 바로 알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세계선교부 이슬람 대책위'에서 제작한 동영상 '국내 이슬람 확산 방지대책을 위한 안내,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 교회선교'에 의하면, 한국, 북미, 유럽의 인구증가율은 아래와 같다.


현재 유럽 무슬림 인구는 2,200만명이다. 앞으로 14년 후엔 유럽 어린이의 3분의 1이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다. 20년 후 무슬림 인구는 지금의 두 배가 되어 유럽 내 무슬림 인구는 1억 400만 명이나 될 것이다. 현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이미 가톨릭 신도 수를 능가 했다고 한다.


유럽을 포함한 무슬림 인구의 수적 증가로 이슬람은 세계 지배 종교가 된다. 리비아 국가 원수 무함마드 카다피가 "알라가 칼, 총, 정복, 전쟁 없이 유럽에서 승리할 것이다. 테러리스트나 자살폭탄 테러는 필요하지 않다. 20-30년 안에 5천만 명 이상의 인구의 힘으로 유럽을 무슬림 대륙으로 만들 것"이라고 역설한 바를 우리는 심각하게 듣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이슬람 확산 방지대책위'에서 주장하는 바에 의해면, 두 가정이 각각 1자녀씩 낳았을 때 자녀 세대의 인구 수는 2분의 1이 되고, 손자 세대 인구 수는 4분의 1이 된다. 1개 문화를 위한 최소 출산률은 2.11명이어야 하는데, 역사상 1.9명 이하의 출산율은 역전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 출산 자녀수가 1.3명이면 회복이 불가하고, 만일 회복하려 한다면 80년에서 10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위 '이슬람 확산 방지대책위'의 무슬림 출산인구 통계는 약 8명으로 제시되고, 헤럴드경제는 인구보건협회의 '2016 세계인구현황'에 대해 "전 세계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은 2.5명이었으며,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는 출산율이 7.5명인 니제르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2012년 세계 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이슬람협력기구에 속해 있는 57개국의 평균 출산율은 3.67명"이다.


필자는 이 통계가 일부다처제 가정의 무슬림 여성 한 명당 출산 숫자로 이해된다. 그러니 2025년에는 무슬림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30%에 달할 전망"이라고 집계되는 것은 사실일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유럽연합 31개국 출산율은 1.38명으로, 프랑스 1.8명, 영국 1.6명, 그리스·독일 1.3명, 이탈리아 1.2명, 스페인 1.1명에 불과하다. 무슬림들과 유럽연합의 출산 인구를 대비하면 8.1명이 된다. 현재 프랑스 남부에는 모스크가 교회보다 많고, 프랑스 20세 미만 인구의 3분의 1이 무슬림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니스, 마르세유, 파리의 무슬림 인구는 45%이다. 34년 후(2050년)에는 프랑스가 이슬람 국가가 된다고 한다.


미국의 출산율은 1.6명이다. 1970년 미국 내 무슬림 인구는 10만 명이었으나 현재는 900만명으로 약 약 100배 증가했다. '시카고이슬람전략회의'에서는 30년 후 미국의 무슬림 인구가 5천만 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캐나다의 출산율도 미국처럼 1.6명이고, 2001-2006까지 1,600만 명이 늘어났으며, 그 중에 1,200만 명은 이민자였다.


한국의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은 1.3명으로, 세계 평균인 2.5명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전 세계 국가 중 끝에서 4번째에 해당하는 출산율이다(헤럴드경제, 2016년 10월 20일). 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확실하게 인구회복 불가의 범주에 속해 있다.


무슬림의 자연적 숫자 증가로 이슬람이 세계 지배 종교가 된다는 것을 이제 그 누가 부정하겠는가? <계속>

 

 출처 : 크리스쳔투데이 /오피이언/칼럼 /[이동주 칼럼] 이슬람 대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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