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교사훈련  /교회학교 교사를 위한 학습방향 설정

 

 

기독교교육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독교를교육하는 것입니다. 국어와 수학처럼 기독교를 가르치는 것을 뜻합니다. 두 번째는 기독교의교육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교육이자 교회교육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기독교적교육입니다. 학습자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 자체를 기독교적 방향과 관점으로 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의 기독교인 만들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키우는 모든 교육적 행위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가지고 하는 교육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크로스커리큘럼(Cross curriculum)과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크로스커리큘럼은 일반 교과교육과정 속에서 어떤 범위나 경계를 넘어서거나 아우르는 교과과정을 뜻합니다. ‘기독교교육적교육과 크로스커리큘럼의 개념을 더하면 학습자가 복음을 받아들일 때, 교실에 앉아서 받아들이는 내용만이 아니라 가르침의 과정, 내용, 방법과 더불어 가르치는 사람의 삶과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빈들에서, 산에서, 다락방과 삶의 모든 자리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기적을 경험하게도 하시고, 죽을 위기에 처하게도 하시며, 칭송을 받는 자리, 비난과 실패자의 자리에도 두십니다. 때로는 부드럽게, 엄하게, 평온하게 말씀하시며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기독교교육적으로 크로스커리큘럼을 적용하여 제자들을 훈련시키셨고,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가신 후에도 제자들은 자신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냅니다.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회사원, 주부, 건축가, 정치인, 상인, 교사, 엔지니어 등등 많은 사람이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의 길은 자신이 중심이자 주인으로, 스스로가 높아지고 부유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욕심과 미움과 불법이 있고, 또한 양심적으로 산다고 해도 이 세상의 중심은 자기 자신입니다. 혹은 안락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싫고 미운 사람을 굳이 용서해야 할 필요도, 욕심의 절제와 죄에 대한 인내가 많이 필요한 길도 아닙니다. 그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란, 거룩한 길이라는 뜻으로 거룩한 삶으로 구별된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좁은 길입니다. 절제와 용서, 사랑과 화목, 이해와 용납, 나눔을 이루는 길입니다. 종종 스스로가 바보 같이 여겨지고,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억울함과 속상함도 자주 겪게 됩니다. 그러나 귀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보석처럼 빛나는 길이며, 삶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설교를 하며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종종 회의가 몰려옵니다. 과연 나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방법과 복음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을 대하고, 사역하고 있는가. 또한 아이들에게 진짜 예수님을, 예수님의 삶과 길을 전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을 하나의 액세서리로 취급하곤 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기독교인임을 강조하고, 불편하거나 불이익이 생길 때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척 쉽게 예수님을 떼어냅니다.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 하고, 기독교의 진짜 정신인 섬김과 낮아짐, 배려와 헌신, 십자가를 지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면 화도 납니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가, 사역자로서 제대로 살며 전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고개를 제대로 들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내 삶에 물건을 하나 더 구입하듯 액세서리 하나를 착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길과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이 옮겨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에 사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삶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들의 삶에는 아이스크림에 아주 진한 녹차를 넣으면 쌉싸름하고 달콤한 녹차 맛이 나듯, 예수님의 맛과 향기가 배어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며 은은하지만 깊게 사회와 이웃을 파고듭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성도의 삶을 사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고난과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지만 도우심이 있고, 슬픔이 있지만 위로가 있습니다. 또한 어렵지만 믿음으로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예수님의 삶이 있고, 그것을 도우시는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Cross.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마음과 삶을 관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향기와 빛, 맛을 내는 삶을 사시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셨듯이 복음을 살아냄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이되시길 응원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가는 날, 고된 여정으로 많이 찢기고 어려워 상처 입었을지라도 하나님의 환한 미소와 따뜻한 품에 안겨, 진짜 기쁨을 오래 오래 누릴 수 있으시길 소망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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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학교] 주일학교 운영 노하우

 

 

교회학교는 교회의 미래다.” 이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늘날 교회학교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직면해야 할 대단히 큰 어려움이다. 이 주제는 단순한 아이디어로 다뤄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교회가 가진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한 영역인 것이다.

 

교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겠지만, 결국은 좀 더 큰 틀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아래와 같은 주제로 문제를 진단해보고, 각각의 대안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이 주제는 총 5회로 연재된다.

 

단절의 문제

 

1. 담당 사역자의 사역 기간

 

겉으로보면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사역자 수급 시스템을 갖고 있다. 교단마다 차이가 있지만, 담임목사님의 경우에는 비교적 장기적으로 운영되지만, 부교역자들은 일정한 형식의 공고를 하거나 가까운 지인을 소개를 통해 전도사 등을 추천받고, 선정해서 일정기간 담당부서에서 사역하도록 하고 있다. 교회와 사역자가 잘 맞는 경우에는 오래 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목사 안수를 받거나 그 교회의 차기 사역자가 되는 경우가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 교회학교 담당 사역자들의 나이가 젊은 경우가 많고, 또 다양한 이유(여기서 다루기엔 무거운 주제이므로 생략.)로 인해 사역기간은 대개 2~3년 정도가 된다. 아니 훨씬 짧은 기간도 많다. 사역자의 사정이나 교회, 혹은 담임목회자와의 관계에서 언제든지 부교역자는 자리를 옮길 수 있다. 사실 제대로 된 계약서나 사역 조건이 명시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부담은 교사와 학생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다시 말하겠지만, 대개 교회 담임목사님은 교회학교 커리큘럼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담당 사역자가 바뀌거나 책임교사가 바뀌면 커리큘럼은 물론이거니와 교사교육 및 교회학교 시간표까지 모조리 바뀌는 경우도 많다. 만약 새로 온 책임자가 기존의 과정을 수용하고 시간을 내어 공부해서 함께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비교적 규모가 큰 교회들은 장기적인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중소형 교회의 경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교사들은 새로운 사역자가 오면 기존의 과정을 지키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또 급격히 바뀌는 시스템으로 인해 고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2. 담임 목사님이 직접 손대지 못하는 영역

 

만약 누군가 담임 목사님에게 목사님 교회 주일학교는 어떤 방법으로 운영되나요?”라고 물을 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주일학교를 구체적으로 챙기기에는 담임목사님의 사역은 그리 녹록치 않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어도 굳이 교회학교까지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교회학교 과정은 아이들의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결정하고, 그것은 담임 목회자와 교회의 장기적인 사역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이들은 자라서 교회의 일꾼이 되며, 그 교회의 얼굴이 된다. 단절되는, 그리고 일관성없는 교육과정은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어렵게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혼란스럽게 함과 동시에 교회 전체의 균일성과 질서를 어렵게 한다.

 

3. 장기적인 교회 교육 커리큘럼을 위하여

 

담임 목사님이 직접 교회학교 기본 커리큘럼을 제작한다면 어떨까? 유아부부터 고등부까지 적어도 15년 이상의 커리큘럼을 목사님의 사역적 기조에 따라 (물론 다양한 자료들을 참고하시겠지만) 정해진다면 어떨까? 물론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라는 질문부터 해야겠다.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각 부서에서 할 교육과정을 그 교회의 비전과 사역에 맞추어 정리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교단 공과교재를 중심으로 한다면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공과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 것인지, 그리고 교사들은 어떤 방법으로 교육할 것인지 정해진다면, 적어도 담당사역자가 바뀜으로 인한 갈등을 대폭 줄어들 것이다.

 

+ 중소형교회를 위한 몇가지 제안

 

1) 각 연령별 성경을 결정한다.

 

 

- 영아부 성경, 유아부 성경 등. 그리고 적어도 중학교까지는 쉬운말로된 성경을 읽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자기 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성경책은 그 교회안에서 공통적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 영아부 : 베이비바이블 (두란노) / 유아부 : 굿나잇바이블 (성서원) / 유년부 : 스토리텔러바이블 (두란노) / 초중등부 : 일러스트 쉬운성경)

 

사역자와 교사와 가정은 같은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다.

 

2) 각 부서별 커리큘럼을 결정한다.

 

 

- 교단 교재를 사용하면 좋겠지만, 혹시 원하지 않거나 여의치 않으면 적어도 3년을 주기로 돌아갈 수 있는 과정을 결정해야 한다. 만약 새로운 사역자가 오면 그 커리큘럼을 배우도록 교회가 안내해야 할 것이다. 만약 중등부가 어떤 기관의 성경교재를 사용하도록 결정했다면, 그것은 담임목사님과 교회의 주도아래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고수되어야 한다. 담임목사님은 그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함을 물론이거니와 그 과정을 새로운 사역자에게 교육할 필요도 있다.

 

3) 부서별 교사 훈련을 결정한다.

 

 

- 각 부서별 교사가 읽어야 하는 기초 도서, 초임교사가 받아야 할 기본 훈련, 연초나 분기별로 이루어지는 간단한 교사 교육 세미나, 교사 MT 등이 고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커리큘럼을 담임목사님이 결정해야 하고, 또 선임 교사는 신임 교사를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이 잘 자리가 잡히면 사실 새로운 사역자는 기존의 교회학교를 운영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지만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교사들만으로도 교회학교는 운영될 수 있다.

 

 

4) 담임목회자와 교사들의 정기적인 만남.

 

 

- 담임목사님과 교사들이 직접 만나 한달, 혹은 분기에 함께 식사를 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담당 사역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님이 큰 흐름을 읽고 있어야 하며, 이는 아이들의 부모님과 각 가정에게 피드백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해보면, 사역자가 바뀜으로인해 발생하는 단절의 문제는 담임목사님의 주도하에 구성되는 종합적인 사역 시스템 구축으로 예방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이 시스템의 구축은 담임목사님과 교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로 고민하고, 대화하며, 함께 결정해야 한다.

 

결국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교사이기 때문이다. 담임목회자가 기준을 잡아주고 그 위에 교사가 서로 의논하며 블럭을 쌓아주는 방식으로 결정된 방식이 5년을 지나 10년을 지지해준다면, 그리고 그 위에 담당 사역자가 계속해서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놓고 재해석해주고, 또 조금씩 교정해 나간다면, 교회학교의 안정성은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안정적인 교회학교는 교사에게도 큰 안정감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부여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교회학교 과정들은 참 좋은 교재들이 많다. 어떤 과정이든 자리가 잡히고 성실히 하면 그 열매는 하나님이 반드시 거두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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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믿음이냐 행함이냐

 

찬송 : ‘구주 예수 의지함이’ 542(340)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갈라디아서 216, 야고보서 217

 

말씀 : 아득한 옛 추억입니다. 교회학교 고등부 시절, ‘믿음이냐’ ‘행함이냐’ ‘바울이냐’ ‘야고보냐하는 주제를 놓고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섞어가며 밤늦도록 토론하던 일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믿음행함을 상호 대립 관계로 보고 양자택일을 강요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바울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으로 평가절하했습니다. 그의 독일어 성경 번역에서 야고보서는 유다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과 함께 정경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면 루터가 종교개혁의 근간으로 삼았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씀도 4복음서와 히브리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입장은 중세 가톨릭의 공로신학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그의 신학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 우리는 믿음행함’, 그리고 바울야고보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충적 관계임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이 상호 보충적 관계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선 바울은 선교사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선교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 얻는 믿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그의 목회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사랑의 행함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이 생각하고 있는 믿음과 행함이 야고보가 주장하고 있는 믿음과 행함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예수를 믿어 구원 얻는 믿음입니다(2;16). 반면 야고보가 주장하는 믿음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유일신관을 말합니다(2:19). 또한 바울이 부정하고 있는 행함은 구원을 위한 율법의 행위입니다(2:16).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신자의 삶이 아닙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구원을 얻기 위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인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 문제에서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랑의 행위는 무의미합니다. 또한 사랑의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공허합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온전한 믿음을 위해 상호 보충적 관계여야 합니다.

 

기도 : 거룩하신 주님, 믿음과 행함이 조화를 이루는 온전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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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자녀들을 성인으로 훈련시키기

 

한국 사회에서 성인으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19세 전후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성인으로 간주된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선거권을 갖게 되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어떨까? 놀라웁게도 한국 교회는 교회법상 15세부터 성인으로 간주한다. 입교식은 유아세례를 받은 이가 정식으로 교회의 정식 멤버로 등록되는 예식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법상으로는 한국 사회보다 훨씬 진보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실제 교회 생활 속에서 그들은 전혀 성인으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니 훈련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개혁교회에서 입교식은 "신앙 고백"(confession of faith)라고 불리운다. 원래 이 예식의 기원은 견신례(confirmation)에 있다. 동방교회는 이것을 "기름부음" (Chrismation)이라고 불렀고 대개의 경우 유아 세례 직후에 시행한 반면, 서방교회는 일정한 성인이 된 후에 교리문답의 과정을 거쳐 이 예식을 시행하였다. 서방교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개혁교회는 이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카톨릭에서 이 예식을 7가지 성례 중 하나로 보는 반면, 개혁 교회에서는 이 견해를 부정하였다.

 

개혁교회가 입교를 성례로 거부하였다고 해서 이 예식을 소홀이 생각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혁교회의 부모들은 아이가 성년이 되면(보통 고등학교 2학년) 입교를 위한 목사가 인도하는 교리문답 교육에 1주일에 한 번씩 참여시킨다. 교육이 끝나면 당회에서 심사하여 교인으로 받을 것을 결정하고 오는 주일날 예배 시간에 입교식을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한국교회와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 교회는 이것이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개혁교회에서는 철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좀 독특한 것은 입교식을 하는 시간에 목사는 당회에 제출된 개인의 신앙고백서를 읽는다는 것이었다. 그 속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 학생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져 있다. 그 학생들은 좌석 제일 앞에 앉는데 이어지는 성찬식에서 가장 먼저 포도주와 잔을 분배 받는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목사와 장로들이 가장 먼저 와서 온교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축하의 악수를 나눈다. 그들이 교회의 정식 회원이 되는 순간이다.

 

개혁교회에서 이렇게 입교식이 끝나면 정말로 교인이 된다. 그것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 학생들이 공동의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공동회의는 보통 주중 저녁에 실시되는데, 아버지(내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없으며 공동의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그 자리에 참석하게 한다. 보통 자녀들은 아버지 옆에 앉는다. 공동의회는 물론 매우 질서정연하게(decently) 이루어진다. 예를 하나들면, 공동의회는 회의실에서 실시되었는데, 1인용 의자가 8개씩(중간에 통로를 남기고) 배열되어 있었고,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착석을 하였다. 따라서 몇명이 참석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갓 입교한 학생들은 개혁교회의 정치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한 번은 노회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놀란 것 중의 하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시간 중 시간을 내어 방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학생들은 이 교단에서 운영하는 기독교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학생들은 자기 노트에 다음 시간에 발표할 내용을 메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보고 배움으로써 책임있는 성년이 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런 훈련들을 어려서부터 받아서 인지는 모르지만, 개혁교회의 고등학생들은 대부분의 경우 (덩치도 크지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정말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나는 한국교회의 정서와 큰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공동의회에 잘 참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겉으로는 참석하라고 광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참가하는 것을 막는 분위기이다. 솔직히 회의문화가 천박한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의 참석을 가급적 막는 분위기이고 이것은 아이들에게 교회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겨주게 된다.

 

우리가 이런 좋은 개혁교회의 전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른들의 뼈를 깎는 자성의 모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보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어른들은 (나의 세대도 마찬가지) 제대로 된 교회 정치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인간들은 원래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르면, 겸손히 성경과 교회의 전통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개혁교회를 참된 모습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자신들의 무식을 인정하고 성경에서 참된 개혁교회의 원리를 연구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연구하여 온 성도들이 함께 훈련을 받는 길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책임있는 성인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고 여기에 개혁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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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 교회를 섬기는 교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

 

 

교회라는 조직은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청지기들은 하나님이 주신 일터가 교회인 줄 믿고 그 맡겨 주신 교회에서 충성하여야 한다.

 

 충성을 하기 전에 먼저 교회가 어떠한 곳이며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무엇을 교회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무리, 회중, 교인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그러므로 A라는 교회가 교회당도 없이 어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청지기들은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무리, 즉 공동체라는 생각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데 있다.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예배입이다. 예배가 거룩하고 은혜가 충만하기 위해서 온 교회는 힘써야 한다. 예배를 통해서 교회의 생명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충성하는 청지기

 

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다.

주인이 관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충성이다. 충성하지 않는 청지기, 놀고먹는 청지기는 얼마나 보기 싫은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일꾼으로 세운 청지기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다.

 

 

우리는 충성을 하되 충성의 원칙을 몇 가지로 생각해 봐야 한다.

 

 

(1).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눅 19:17 "주인이 이르데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 하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달란트, 큰 직분을 맡기신다. 왜냐하면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을 맡겨도 충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젊은 청년이 위대한 선교사 로버트 모리손(R. Morrison) 박사를 돕기 위하여 중국에 가기를 원했다. 그 때 선교회에서는 청년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선교사로서는 적합지 않다. 모리손 박사의 일꾼으로 갈 생각이 있다면 우리는 당신을 보낼 수 있다.’ 라고 했다. 보통 청년 같으면 ‘선교사로 지원한 사람을 잡부 취급을 하다니, 선교회가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 라고 하면서 화를 내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청년은 ‘예, 좋습니다. 선교사의 자격이 못 된다면 심부름꾼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나무를 팰 수도 있고, 물도 기를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한 후 중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후에 중국 선교사 중 가장 뛰어난 이가 되었는데 그 분이 바로 `밀른(milne)박사인 것이다. 남이 칭찬하고 목사님이나 당회가 알아주면 열심히 충성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충성을 멈추는 자세는 사람을 위한 충성이다.

 

 

(2). 은혜라는 심정으로 충성해야 한다.

우리가 충성을 할 때에 가장 금해야 할 일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충성하는 것이다. 충성이나 헌금을 하는 것이 더 큰 복을 받기 위함이라면 그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를 갚으려는 사랑의 빚진 자세로 해야 한다. 그 때에 감격이 있고 새 힘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로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상급을 아끼지 않으실 것이다.

 

 

「채필근 목사의 예화집」이런 예화가 소개되고 있다.

어느 일꾼들이 이웃 동네에 있는 부잣집에 가서 며칠 품을 팔았다. 그리고 품삯을 다 받고 내일이면 떠나는 날 밤이 되었다.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부자 영감이 난데없이 모두를 깨우더니 한다는 소리가 ‘여보게들, 급히 쓸 일이 있으니 노끈 좀 꼬아 주게’ 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불평하기를 ‘아니, 인색한 영감 같으니, 모두에게 품삯을 다 준 다음에 이러 잡일을 시키다니’ 하면서 하는 둥 마는 둥 마지못해 노끈을 꼬았으나, 어느 일꾼은 정성껏 꼬았다. 다른 일꾼들은 ‘자네 이 집 사위가 되려고 그렇게 충성하는가?’ 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아침에 부자 영감이 큰 그릇에 엽전을 가득 담아 가지고 오더니 그 동안 너무나 수고했다고 하면서 각자 꼰 노끈에 엽전을 꾀어 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게을렀던 일꾼들은 가슴에 치며 후회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자기 일처럼 정성껏 노끈을 꼬았던 일꾼은 품삯보다 더 많은 액수의 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3). 성령의 은사를 따라 충성해야 한다.

롬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 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라는 몸을 주시고 각각 지체에게 성령을 따라 은사를 주셨다. 어느 분은 가르치는 은사를 어느 분은 예언의 은사를, 어느 분은 섬기는 은사를, 어느 분은 권위의 은사를, 어느 분은 다스리는 은사를, 어느 분은 긍휼의 은사를 주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직분자들은 자기의 능력이나 자기의 지혜로 하지 말고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다라 충성하여야 한다. 배드로와 제자들은 오순절날 성령을 받기 전에 열심히 충성한다고 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 에 돌아가실 때는 모든 제자들이 도망갔고 예수님의 수제자이던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비겁쟁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후에는 어떤 반대나 어떠한 박해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담대히 충성하는 자가 되었다.

 

행 4:18-21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했다.

 

 

성령을 따라 일하지 않고 인간의 열심으로나 인간의 주관대로 일하다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열매를 교회 앞에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갈 5:I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아무리 인품이 좋고 지식이 뛰어난 직분자 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 무디가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고 싶었으나 그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 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너무나 일하고 싶은 나머지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던 중,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기도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친구 집에 들어가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의 문이 터지더니 마침내 그에게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체험했다. 나중에는 그 불이 너무나 뜨거워서 그만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러한 무식한 무디를 세계적인 부흥사로 사용하사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도록 역사 하셨던 것이다.

 

(4). 섬기는 자세로 충성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 20:28에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 섬기려고 하는 자세를 가질 때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직분자들에게 권고하기를.

벧전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했다.

 

또한 예수님은 큰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권고하시기를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6)라 했다.

 

(5).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청지기들은 교회를 관리하고 여러 가지로 봉사할 일들이 주어진다. 주차장 관리, 안내와 헌금위원, 식당 봉사, 자모실 관리, 교회학교, 성가대, 청소와 정돈 등등의 일들이 제직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맡은 일에 봉사할 때 월권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분은 손, 어느 분은 발, 어느 분은 눈, 어느 분은 입이라는 지체의 역할을 다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손의 역할을 받은 사람은 손의 일만 잘하면 되지, 자기 일을 제대로 안하면서 발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간섭이나 비판하는 자세는 올바르지 못하다. 특히 성경에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그러한 강조를 많이 하고 있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 했다.

롬 12:6 에서도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 했다.

성령을 주신 분은 성령이시지, 교회도 당회도 아닙니다.

 

(6). 전도로 충성해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영혼구원이었다.

요 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는 것이니라”고 했다.

 

또한 승천하시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유언으로,

마 28:10-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고,

성령의 구원을 받는 목적도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하면서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

그래서 초대교인들은 전도하는 일에 힘썼다.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체인 우리도 전도하여 영혼 구원하는 것을 최대의 과업으로 알아야 마땅하다. 특히 우리 청지기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전도하는 일로 충성하여야 한다. 전도하지 않는 청지기들은 열매가 없는 포도나무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 기도로 충성해야 한다.

청지기들의 충성직 중에는 기도도 포함되어 있다. 깨어서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 할 의무가 있다. 교회의 일이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기도의 뒷받침이 안 될 때에는 사탄의 역사가 틈을 탈 수가 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많은 곳에서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롬 I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라 했고,

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라 했다.

 

 

나이가 연로하신 청지지들 중에는 나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지혜도 없으므로 충성하기가 힘들다고 낙심을 하곤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연로하신 청지기들일수록 기도의 충성자가 되어야 한다. 기도의 거룩한 손을 높이 들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출 i7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지나갈 때 아말렉 족속을 만나서 르비딤이라는 지역에서 전쟁을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진기한 장면이 나온다.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지팡이를 높이 들고 있고 여호수아의 군대는 전쟁터에서 싸우게 되는데 모세가 손을 들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이기고 모세가 팔에 힘이 없어 손을 내리면 여호수아 군대가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연로하신 청지기들은 모든 충성직을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저들을 위해 거룩한 손을 들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때 젊은 충성자들의 모든 사역들이 사탄들이 사탄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전투를 거두게 될 것이 분명하다.

 

청지기들이여, 맡은 자들의 구할 것은 충성이니, 예배와 맡은 일에 충성하라. 헌금과 전도로 충성하라. 무엇보다도 기도로 충성함으로 온 교회가 모든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8) 청지기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청지기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성경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도 청지기 사상입니다.

마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종들 가운데 주인의 집과 재산을 관리하도록 세운 자가 바로 청지기인 것이다.

 

청지기는 결코 주인이 아니다. 주인의 가정 업무와 사업과 재산을 위탁받아 주인의 뜻을 따라서 감독하고 주인의 대리자로서 관리하는 종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 또는 하나님의 사업과 재산을 맡아서 일하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들이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사상이다. (시 95:5)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고 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것들을 지금 우리에게 위탁하시고 관리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잘 관리한다는 것은 맡아서 간직한다는 아주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잘 활용하여 이득을 남긴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 25:14-30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주인은 먼 타국으로 떠나면서 세 종에게 각각 그 능력에 따라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도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나 두달란트를 맡은 자는 그 받은 것으로 바로 가서 장사하여 이득을 남기므로 주인으로부터 후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그냥 땅에 묻어 둔 채 보관만 하였다가 후에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는 책망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들, 특히 받은 직분을 잘 관리해야 하겠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께로 받은 모든 것을 간직한다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장사꾼이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는 것처럼 받은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더 많은 열매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막스 베버의 저서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의하면 서구 문명이 오늘날처럼 우뚝 서게 된 원동력이 기독교의 소명감에 따른 직업정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청지기 사명』을 다하기 위해 맡은 바 자기 직분을 다할 때, 기술과 자본이 축적되고 서구 자본주의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인들은 모든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줄 믿었다. 그래서 천직이라고 했다. 자기가 구두직공이든, 청소원이든, 상인이든, 학자나 의사이든 그 직업을 귀하게 여겼다. 결코 직업의 빈부격차를 따지지 않았다.

 

 

18세기 초 영국의 유명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우렌경이 성바울의 대성전을 건립하게 되었다. 한번은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에 크리스토퍼 우렌경은 평복을 입고 공사 현장을 혼자서 시찰하게 되었다.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중에 석수들이 일하는 곳으로 가서 한 석수에게 묻기를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하자, 그 석수는 아무런 표정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6자 길이 3자 폭의 돌기둥을 깎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렌경은 다른 석수에게 똑같이 질문하자, 그 석수는 아니꼽다는 눈초리로 힐끗 쳐다보더니 하는 말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하루종일 이 짓을 합니다.” 라고 투덜대었다. 우렌경은 또 다른 곳에 가서 어느 석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자, 그 석수는 웃는 낯으로 낮 모르는 신사를 바라보면서 “선생님, 보시는 대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우렌경의 지휘 밑에서 성바울의 성전을 짓는데 동참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아마, 이 석수는 우렌경은 할 수 있는 한까지 많은 일을 맡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졌든지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독교 정신에 어긋난다.또한 청지기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 반드시 결산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마 25:14-30 달란트 비유에 보면 "오래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라고 했다. 그 결과 다섯 달란트나 받은 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면서 칭찬과 아울러 배나 더 큰 직책을 받았으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라고 하면서 받은 그대로 내어 놓았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자를 책망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고 한 뒤에 옆에 있는 자들에게 명하기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아주 공정하신 분으로 청지기에게 맡기신 대로 반드시 결산하시는 분이다. 맡겨 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의 사역을 위해서 먹고 마시면서 책임을 게을리 한 자에게는 책망과 형벌을 반드시 주시는 분이시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 했다. 지금은 죄를 지어도 회개만 하면 용서받을 길이 잇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백보좌 심판대에 앉으시는 날은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직분자들은 다음 성경구절을 언제나 명심하여야 한다.

 

계 20:11-15 “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지금은 자다가 깰 때요.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마 24:44-51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직분자가 등장한다. 지혜로운 청지기와 어리석은 청지기이다. 여러분은 어떤 청지기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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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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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어려울 때를 많이 경험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느 것이 옳은 해석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경험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성경을 지나치게 상징이나 영적인 비유로 해석하는 사람을 보면서 의아스러움을 갖기도 하고,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벧후 1:20)고 하신 사도 베드로의 경고 말씀을 대하면서 긴장된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제 성경은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만일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성경 해석의 필요성
성경은 모국어로 성경을 듣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구원의 진리를 발견해내기에 충분한 책이다. 그러나 성경은 반드시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 사실들을 통해 설명되어질 수 있다.
1) 성경 자체가 성경이 해석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여러 곳에서 교훈하고 있다.
사도들께서는 성경의 의미가 바르게 해석되어야 할 것을 여러 차례 교훈하셨다. 사도 바울께서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할 것, 즉 성경의 의미를 잘 해석할 것을 교훈하신 것이나(딤후 2:15), 사도 베드로께서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고 하시면서 성경에는 알기 어려운 것들이 있으므로 잘못된 해석을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을 당부하신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교훈이 있기에 앞서, 친히 성경(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해석하여 가르치심으로서, 성경은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우리에게 몸소 본으로 보여주셨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6, 27)고 한 말씀이 이를 증거해준다. 빌립 집사께서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행 8:31)라고 말하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서의 말씀을 해석하여 예수를 가르치신 일이 있었다(행 8:35).
2) 사람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한계점이나 차이점들이 성경의 해석을 필요하게 만든다.
우리는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역사, 문화, 세계관 등에서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시대나 문화적인 배경이나 세계를 보는 눈(세계관 또는 철학)이 다른 시대에 기록된 성경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기에 예를 들어, 신부되는 성도들이 졸지 않고 깨어서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고 다시 오실 신랑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정확히 알려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식 문화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미혼인 사람에게 ‘언제 국수를 먹여 줄 것인갗하고 묻는 말을 할 때, 역사나 문화가 다른 외국 사람들은 그 말의 단어는 혹 이해를 한다고 해도 그 말 속에 담긴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것을 보아서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의 언어나 그 언어를 사용하는 표현방법에서도,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같은 말의 반복이나(예: 진실로 진실로), 비슷한 말의 반복(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대구적(對句的) 표현(예: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등 여러 가지 언어적 유희 등은 적절한 해석이 없이는 그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3) 성경에는 그 뜻이 서로 상충되는 듯하여 보이는 구절들이 있어, 성경 전체의 조화로운 이해를 위한 해석을 필요하게 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내용과 순서상의 차이, 예수님께서 ‘천국(하늘나라)’ 교훈을 하셨다는 마태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다는 누가복음 기록의 차이, 예수님께서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며”(요 5:31)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면서도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요 8:14)라고 하셨다는 요한복음 내용의 차이, 사도행전에서 세 차례 반복되고 있는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에서 발견되는 차이(행 9:3~18, 22:6~16, 26:12~18),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갈 3:24)는 말씀과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약 2:24)는 말씀의 차이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구절들은 얼핏 보아 서로 상충되는 듯해 보이기 때문에, 그 문맥이나 배경을 고려하여 성경 전체와 조화 되도록 해석되어야 할 필요를 생기게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방법과 기준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2. 성경 해석의 원리들
성경은 사도 베드로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자기 좋을 대로 아무렇게나(사사로이)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원리들이 사용되어진다.
1) 문법적 해석
글은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저자가 성경을 처음 기록할 때 단어와 구절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저자가 선택한 단어나 그 단어의 배열순서, 문법, 문맥, 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목적 등을 찾아내는 것은 성경 해석에 있어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일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저자의 성격, 경험, 교육수준 등을 아는 것이나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 본문은 오직 한가지의 의미만을 가진다는 사실에 유의하고, 한 본문에서 여러 가지 뜻을 찾아내려고 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 역사적 해석
대부분의 성경은 일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 살던 저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역시 일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저자나 그것을 받는 수신자(受信者)가 살고 있던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구약 예언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예언서들이 기록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고려해야 하고, 복음서나 신약 서신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역사나 전통 또는 초대교회 각 지역의 형편들을 고려해야 그 말씀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3) 신학적 해석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한 것이다(딤후 3:16).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한꺼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뜻이 점점 더 확실해지도록 점진적으로 주어졌다. 이 때문에 성경 66권은 각기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여러 책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부분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가 되도록 해석해야 한다. 한 구절 한 단어를 해석할 때도 성경 전체의 배경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인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혈통 등에 관한 말씀들은 성경 전체의 신학적 배경 속에서 해석해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4) 문학적 해석
성경에는 앞에서 말한 언어적 유희 이외에도 과장법, 반어법, 의인법, 직유법, 은유법, 완곡어법 등 매우 다양한 문학적 기교들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성경은 각각 그 문학적 기교를 고려하여 그에 적절한 해석을 해야 한다. 또 성경에는 영적인 진리를 실제적이나 비실제적인 경험들을 들어 설명하는 비유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셨다. 비유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그 문맥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요소를 찾아내서, 전체 의도나 목적에 합당한 한 가지의 교훈만을 찾아내는 해석을 해야 한다.
5) 상징적 해석
성경에는 예표나 상징이 자주 등장한다. 역사적인 실제 인물, 사실, 사건, 제도, 행위 등으로 미래에 있을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을 예표라고 한다. 그리고 미래에 있을 것과는 관계없이 저자가 물건, 숫자, 형태, 행위, 환상, 색깔 등을 통해서 자기가 의도한 뜻을 나타내려 하는 것을 상징이라고 한다. 예표나 상징의 해석은 성경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해석할 위험이 많다. 그러므로 상징적 해석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저자의 본 의도와는 달리, 편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인 해석을 하기 쉽다.
성경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그러나 성경을 사사로이 풀다가 그 뜻을 오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성경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석하여, 지나친 상징이나 영적인 해석을 늘어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려 할 때는, 먼저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의 감동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해석을 시도하기 전에,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문학적, 상징적 해석의 원리들이 적극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성경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서, 그것으로 신앙의 표준을 삼고 영혼의 풍성한 양식을 삼아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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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예수님의 지체가 된 사람들의 연합

 

 

교회는

예수님의 지체가 된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와 살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을 머리로 삼고

각각 손과 발 등으로

한 지체가 된 사람들입니다.

 

누구든 공동체 안에서는

판단할 수도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눈이 코를 판단할 수 없고,

손이 발을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 안에서 죄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교회이며

진정한 한 몸을 이룬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들을 품어서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공동체가되어야 합니다.


<조정민의 [왜 예수인가?] 중에서>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닌

사람의 생각을 하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향기가 아닌

사람의 냄새를 풍기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자기만 치장하고,

자기들끼리만 즐기는 모임이라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이웃을 사랑할 때

비로소,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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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설교 / 위대한 꿈과 소망을 갖자

 

(시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꿈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요, 이상을 갖는 다는 것이고, 비전을 지닌 다는 것이며,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을 때 활력소가 생기고 의욕이 솟구쳐 오릅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돈이 없는 자가 아니라 꿈이 없는 자입니다.

사람이 꿈을 잃으면 활기가 없습니다.

꿈이 있어야 높은 이상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분투노력하면서 사는 보람과 의미를 발견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와 함께 일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살이의 꿈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놀다 저녁에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내일이 뭔데" "캄캄한 밤이 지나고 밝은 날이 오는데 그게 내일이야"

또 메뚜기와 개구리가 함께 놀다가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내년에 만나자" "내년이 뭔데"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거야" 메뚜기는 개구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하루살이의 꿈이란 오직 이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는 꿈입니다. 즉 예쁜 여자와 결혼하고, 넓고 좋은 집에서 살고, 높은 지위를 얻고, 명예를 얻는 꿈 등입니다.

우리는 큰 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믿음을 크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생각을 크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큰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나르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현실로 이루어냈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의 통일을 꿈꾸었습니다.

징기스칸도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생각을 가졌을 때 세계가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보다 더 큰 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70, 80년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살다가 죽는 꿈이 아니라 영생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한 남자나 한 여자만을 죽도록 사랑하는 꿈보다 더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늙고, 죽습니다. 그러한 인간을 죽도록 사랑해 보아야 결국은 변하고 허무한 것으로 끝납니다. 그렇다고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로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은 참 사랑이요, 영원한 사랑이요 변하지 않는 영구불변의 사랑입니다.

저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어거스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주님 사랑만을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저버리고 세상이 썩어질 것, 사람이 만든 것, 허탄한 것들을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요,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소망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세적, 물질적, 육체적 소망들입니다. 그것들은 모든 다 풀의 꽃과 같이 쉽게 쇠잔해 지고 안개같이 사라져 버리고 바람과 같이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습니다.

요한 일서 3장 2절- 3절까지 읽어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임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에서 대통령의 아들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대통령은 기껏 5년 밖에 못합니다. 그 후에 감옥소에도 가고 욕도 먹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의 짧고 허탄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망을 가진 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주님께서 거룩하시고 깨끗한 것 같이 자기를 깨끗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더러운 돈의 노예가 되거나 음행의 더러운 것에서 우리를 지켜 깨끗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거지 옷을 입고 돼지를 치고 있는 그 아들에게 "당신은 누구의 아들이요?"라고 물었다면 탕자는 훌륭한 아버지의 이름을 댈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 재패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스탈린이나 히틀러,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이 세계를 재패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멸망의 어두움 속으로 물러갔습니다. 우리는 무력이 아니라 복음으로 전세계를 재패할 꿈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과 생명의 복음 들고 지구 땅끝까지 전파할 사명과 꿈을 가져야 합니다. 위대한 꿈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시련을 통과하고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꿈꾸는 자는 시련이라는 물을 먹고 자랍니다. 꿈꾸는 자였던 요셉은 이복형제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가고, 거짓 모함으로 옥에 갇히는 등 13년 동안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민족을 구원하는 꿈을 꾸었던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꿈꾸는 것은 쉬워도 꿈을 성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러한 꿈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은 꿈을 꾸게 하십니다.

꿈을 키워주시고 실현하게 하십니다. 상상력을 복돋워 주시고 미래를 향해 나가도록 이끄십니다. 요엘 2장 28절과 사도행전 2장 17절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절망만 기다릴 뿐입니다. 꿈을 가지고 기도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그런데 꿈을 가지되 막연한 꿈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옛날에 제가 여학생들에게 비전을 발표하라고 했더니 많은 여학생들이 현모양처를 이야기하더군요. 여러분은 막연한 현모양처되겠다고 하지말고 내가 어머니가 되면 구체적으로 자녀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고 남편에게는 어떻게 할 것이라는 계획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목사부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면 지금부터 목사님에게 가장 중요한 설교자료 들을 스크렙하고 모으고 정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또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면 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어떤 일을 추진하고 어떤 방법으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꿈을 키워나가자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첫째,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에 포도나무 비유에서 아버지는 농부요, 아들 예수님은 원둥치요, 우리는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가지가 원둥치에 붙어 있지 않고서는 과실을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원둥치에서 보내주는 양분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풍부한 자원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생활은 예수님에게 속한 것이요, 주 안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계획할 지라도 이루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꿈과 계획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진다 해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허탄한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진리 안에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세상의 지식과는 다릅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거짓이 없으며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는 확실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 하나님이 말씀이 있으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말씀이 계시면 복된 사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며 그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 질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다 어려운 처지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담대히 나와 큰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낙심, 좌절하지 말고 예수님께 나와 겸손히 구합시다. 여리고성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던 소경 바디메오도 지나가는 예수님을 붙잡고 간절히 부르짖어 눈이 떠지는 기적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소원을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집 진자들을 오늘도 찾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짐을 모두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37편 5-6절을 봉독합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님 재림의 꿈과 천국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다시 오십니다. 성령으로 오시는 것말고 실제로 오십니다. 여호와의 증인, 제 7일 안식일교 등 여러 이단 들이 몇 년 몇 월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예언했다가 모두 실망했지만 예수님은 언젠가는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는 영원한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하고 살아 남아있던 성도들은 홀 연히 변화되어 공증에서 주를 영접하게 됩니다. 그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해야 됩니다. 마치 아이들이 아빠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가 되면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광스러운 천국으로 데려가십니다. 그 곳에는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고 질병도, 죽음도 없는 곳입니다. 우리 성도의 진정한 위로와 소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골치 아픈 일이 많고, 괴로움이 많고 세상을 바라보면 암담한 일 뿐일지라도 우리는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소망, 전세계 복음화의 소망, 주님 재림과 천국의 소망, 이러한 소망을 가진 우리는 날마다 깨끗하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음행과 거짓과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죄와 정욕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꿈을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가수가 되더라도 복음가수가 되는 꿈을 가지고, 의사가 되는 꿈을 갖되 의료 선교사가 될 소망을 가지고, 선생님이 되는 꿈을 가지되 복음을 전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겠고 사업가가 되더라도 사업을 통해 번 돈을 하나님 사업 즉 세계 선교와 구제활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합니다. 비전이 없는 교회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촛대를 옮기십니다. 꿈과 비전이 없는 개인은 내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거를 한탄하지말고 큰 이상을 가지고 그 성취를 바라보며 열심히 기도합시다. 믿음과 기도로 꿈과 비전을 키워나갑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꿈과 비전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소망의 주님, 깨끗한 마음과 맑은 눈으로 세상을 옳고 곧게 바라보게 하여주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향해 전진하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꿈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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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수련회 프로그램 -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1. 우리는 하나
① 서로 어깨를 붙이고 원을 만들어 선다.
② 한 사람씩 손을 건너 양쪽으로 잡는다.
③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를 다 같이 외치며 뒤로 넘어간다.
④ 이 때 서로 손을 놓지 않으면 꽃처럼 활짝 펼쳐진 모습으로 되지만 한 사람이라도 서로 믿지 못하거나 동시에 실시하지 않으면 다 넘어지게 되어있다. 단 바닥이 돌로 되어있을 경우에는 다칠 위험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앉아서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진행해도 아주 재미있게 할 수 있다.

2. 소경 받아주기
① 원으로 서로 손을 잡고 원을 만든다.
② 한 사람을 선발하여 눈을 가리고 자리에서 5바퀴를 돌게 한 후 차렷 자세에서 그대로 뒤로 넘어가게 한다. 이 때 눈을 가린 사람은 절대 다리나 허리를 굽히지 말아야 하며 다른 조원들은 그 사람이 반정도 넘어갔을 때 그의 허리를 받쳐 주면 된다.
③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모든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한다.

3. 소경 던지기(눈 가리고 위로 던지기)
① 한 사람을 선발하여 눈을 가린 후 바닥에 눕게 한다. 조원들은 그를 높이 들고 공중으로 던진다.
② 이때 눈을 가린 사람은 두렵더라도 역시 차렷 자세로 있어야 한다.
③ 돌아가며 실시하되 느낌을 발표하게 한다.

4. 예수사랑
① 눈을 가린 채 앞으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이 앞을 향하게 한다. 사회자의 허락 없이는 말하거나 작은 신음소리도 웃음소리도 절대 내어서는 안 된다.
②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앞으로(예), 뒤로 돌아서(수), 오른쪽으로(사), 왼쪽으로(랑) 진행한다.
③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비켜 간다. 시간이 되어서 멈추라고 하면 다 제자리에 선다. ④ 가장 먼저 손을 잡은 사람과 손을 잡고 자리에 앉는다. 이때도 아직 눈을 뜨거나 말을 해서도 안 된다.
⑤ 서로에 대해 느끼는 시간을 갖는다. 예를 들어 손등 어루만지기, 얼굴 만지기, 머리카락 만지기, 그리고 난 후 눈을 뜨게 한다.
상대방 알아 맞추기를 실시할 수도 있다. 만일 안다고 손을 들면 그 사람만 남기고 모두 눈을 뜬다. 그리고 손든 사람에게 상대방의 이름을 말해보게 한다.
⑥ 여러 번을 반복하되 매번 만나는 사람을 기억해야 하며 그 사람과 5분간 대화를 하게 한다.
⑦ 대화내용은 상대방에 대한 모든 정보이며 사회자는 잠시 후 몇 팀을 불러내어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질문한다. 50% 이상 정답을 말하면 상점 10점을 주지만 틀리면 벌점 5점을 받게 된다.
⑧ 파트너에게 물을 수 있는 질문들: 가장 좋아하는 T.V프로, 배우자 상, 별명과 그 별명을 갖게 된 배경, 몸무게, 가족사항, 애인의 유무, 취미, 버릇 등등

5. 그 외 할 수 있는 것들
① 시나 시조로 자신이나 조별로 피알(장점)하기
② 이상향 만들기 : 남녀로 구별하여 수련회에 참가한 지체들 중에서 제일 닮고 싶거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찾아서 그림을 완성한 후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③ 나만의 비밀 : 전체 원을 만들어 자신에 대한 남이 모르는 사건이나 실수, 비밀 등을 2가지 말하게 한다. 이때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거기에 따른 벌칙을 받는다.

발취: 주안교회 홍종철목사 수련회 계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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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9가지 열매(하늘나라 찾아가기)

 

교회에서 하는 하늘나라 찾아가기

<목적>

금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하늘나라 찾아가기 프로그램을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가지고 준비하여 보았다. 어린이들이 성령의 9가지 코스를 지나면서 성도로서 지녀야 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간접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린이들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활동하며, 성경 말씀을 배우게 하고, 신앙의 길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게 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배우도록 한다.

<준비>

☞어린이들의 조 편성을 고학년 1/2과 저학년 1/2비율로 정해 준다.

☞교사들에게 정해진 코스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숙지 시킨 후에 그곳에서의 활동을 진행하게 한다.

☞각 코스마다 필요한 준비물을 준비한다.

☞어린이들이 마치고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간식과 면류관을 준비해 둔다.

☞어린이들이 모두 나가고 돌아올 때까지 교회를 아름답게 꾸민다.

<활동>

1. 화 평(단합)

1) 목적

(1) 어린이들이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의 친구들을 알게 한다.

(2) 교회는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함을 알게 한다.

(3) 함께 활동함으로 단합된 힘을 가질 수 있게 한다.

2) 준비물 :

조별로 성경 암호문, 코스확인 카드, 코스깃발,

3) 장소 :

교회 본당

4)준비된 상황

(1) “화평”코스 깃발을 설치해 둔다.

(2) 조별로 조 깃발을 만들 수 있게 깃봉과 천을 준비해 둔다.

(3) 성경 암호문을 준비하여 둔다.

5) 활동

(1) 어린이들에게 프로그램의 목적을 알게 하고 성실히 참여하여 하늘나라를 도착할 수 있도록 당부한다.

(2) 어린이들을 조별로 앉게 하고 조명, 조 구호, 조가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3) 준비된 조부터 나와서 발표를 하고, 발표를 끝난 조부터 성경 암호문을 주어서 풀게한다.

(4) 암호문을 풀고 온 조에게 다음 코스를 알려주고, 다음 코스까지 가는 동안 “하나님의 집”찬양을 크게 부르며 가게 한다.


2. 양 선(신뢰)

1) 목적

(1) 어린이들이 서로 신뢰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2) 함께 활동함으로 단합된 힘을 가질 수 있게 한다.

2) 준비물 :

코스깃발,

3) 장소 :

가까운 곳의 놀이터나 공터

4)준비된 상황

(1) “양선”코스 깃발을 설치해 둔다.

(2) 울타리를 만들어서 어린이들의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를 없앤다.

5) 활동

(1) 어린이들이 찬양을 부르며 오는지 확인한다.

(2) 어린이들이 오면 서로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해주는 말을 하게 한다.

(3) 둥그렇게 서서 한사람이 가운데 들어가서 눈을 감고 아무 곳이나 쓰러지게 한다.

(4) 어린이들 모두가 골고루 하게 하고 서로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5) 다음 코스를 알려주고 “즐거운 여름성경학교”를 찬양하며 다음코스로 가게 한다.


3. 온 유(회개)

1) 목적

(1) 개인적인 회개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2) 회개의 결과에 따른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을 느끼게 합니다.

(3) 진심으로 회개하게 합니다.

2) 준비물 :

코스깃발, 필기도구, 회개 질문 카드(어린이 수대로), 통나무 대형십자가, 찬양테이프

3) 장소 :

가까운 곳의 성도의 가정

4)준비된 상황

(1) “온유”코스 깃발을 현관에 설치해 둔다.

(2) 경건한 찬양을 틀어놓는다.

(3) 어린이들이 들어오면 거실 정면에 통나무로 만든 대형십자가를 세워 놓는다.

5) 활동

(1) 어린이들이 찬양을 부르며 오는지 확인한다.

(2) 어린이들이 오면 코스에 대한 목적을 설명해 준다.

(3) 회개 질문 카드와 필기도구를 나누어 주고 작성하게 한다.(진지하게 참가하게 한다.)

(4) 어린이들이 모두 작성이 끝났으면 함께 회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회개 질문 카드 예]

1. 내 이름은 무엇인가요?

2. 어느 교회를 다니나요?

3. 나는 살면서 잘못한 것이 얼마나 되나요?(10번, 100번,1000번, 셀 수 없이)

4. 잘못한 것을 어떻게 했나요?

5. 잘못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용서받았나요?

6.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요? (구체적으로 적어 보세요.-죄의 목록을 준비해 두었다가 조용히 불러 준다.)

7. 회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8.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는 기도문을 적어 보세요.

(5) 어린이들이 작성을 모두 하였으면 함께 회개 기도문을 적은 것을 크게 읽게 한다.

(6) 기도가 끝나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어야 천국에 가게 됨을 알려 준다.

(7) 다음 코스를 알려주고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입니다.”를 외치며 가게 한다.


4. 인 내(고난)

1) 목적

(1)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이기고 승리해야 함을 알게 해 준다.

(2)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한다.

(3)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함을 알게 한다.

2) 준비물 :

코스깃발, 통나무로 만든 대형십자가,

3) 장소 :

가까운 곳의 놀이터나 공터

4)준비된 상황

(1) “인내”코스 깃발을 놀이터 입구에 설치해 둔다.

(2) 대형 십자가를 옆에 기대어 둔다.

(3) 울타리를 만들어 놓아서 저해하는 요소가 없도록 한다.

5) 활동

(1) 어린이들이 탄식하며 오는지 확인한다.

(2) 어린이들이 오면 코스에 대한 목적을 설명해 준다.

(3) 개인별로 십자가를 메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걸어보게 한다.

(4) 모두 십자가를 메어 보았으면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힘든일도 있음을 알게 한다.(극기 훈련이 되지 않도록 한다.

(5) 다음 코스를 알려주고 가는 동안 전도지를 주어서 가정마다 꽂아놓고 가게 한다.

 


5. 절 제(유혹)

1) 목적

(1) 그리스도인은 유혹을 이기고 승리해야 함을 알게 해 준다.

(2) 유혹이 있을 때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알게 한다.

(3)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유혹에서 승리함을 알게 한다.

2) 준비물 :

코스깃발, 어린이들이 유혹 받을 수 있는 물건이나 음식, 컴퓨터,

3) 장소 :

가까운 곳의 성도의 가정

4)준비된 상황

(1) “절제”코스 깃발을 현관 입구에 설치해 둔다.

(2)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는다.

(3) 음식이나 컴퓨터 게임을 부팅 시켜 놓는다.

(4) 음식이나 유혹을 받는 물건들 앞에 “이것을 먹거나 놀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더욱 좋은 것을 잃게 됩니다.”라는 문구를 붙여놓는다.

5) 활동

(1) 어린이들이 전도지를 모두 배포했는지 확인한다.

(2) 어린이들에게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컴퓨터, 간식 먹기, 노래방)을 하게한다.

(3) 약 10분간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나면, 자신이 한일들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이야기하게 한다.

(4) 어린이들이 하지 않아야 할 활동을 한 어린이들과, 활동을 하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차별하여 더욱 좋은 간식을 준다.

(5)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유혹이 따라옴을 알려주고 그 유혹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승리해야 함을 알려 준다.

(6) 다음 코스를 알려주고 “예수 믿으세요”를 함께 외치며 가게 한다.

6. 사 랑(전도)

1) 목적

(1) 이 코스는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알게 한다.

(2)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은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임을 알게 한다.

(3)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전도와 선교에 있음을 알게 한다.

2) 준비물 :

코스깃발, 지역 지도, 모범기도문

3) 장소 :

가까운 곳의 놀이터나 공터

4)준비된 상황

(1) “사랑”코스 깃발을 입구에 설치해 둔다.

(2) 지역 지도를 세워놓는다.

5) 활동

(1) 어린이들이 “예수 믿으세요”를 함께 외치며 오는지 확인한다.

(2) 어린이들에게 우리 동네에 우상을 섬기는 곳이 얼마나 있는지 알려준다.

(3)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들도 사랑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을 알게 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4) 그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범 기도문을 만들어서 읽어보게 한다.

(5) 어린이들과 함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문을 가지고 통성으로 무릎 꿇고 기도한다.

(6) 어린이들에게 우상을 섬기는 장소에 가서 벽을 붙잡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있게 2인1조로 보내어서 기도하고 오게 한다.

(7) 기도하고 오면 다음 코스까지 가면서 조별로 어린이 한명씩을 전도해서 가게 한다.

 


7. 자 비(세족식)

1) 목적

(1) 이 코스는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이 이 세상을 섬기러 오신 분임을 알게 한다.

(2) 어린이들과 함께 서로를 섬길 수 있도록 한다.

(3) 세족식을 통해서 교사들의 사랑을 알게 한다.

2) 준비물 :

코스깃발, 세수 대야(약10개), 수건(어린이 수의 1/2), 흰 양말(어린이 수대로)

3) 장소 :

가까운 곳의 성도의 가정 마당

4)준비된 상황

(1) “자비”코스 깃발을 입구에 설치해 둔다.

(2) 교사가 어린이의 조원 수만큼 대기한다.

(3) 의자와 세수 대야를 준비해 놓는다.

(4)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놓는다.

5) 활동

(1) 어린이들이 전도해 왔는지 확인한다.

(2) 어린이들에게 주님이 이 세상에 섬기러 오심을 알려주고 함께 세족식을 진행한다.

(3) 진행자는 세족식 진행을 위해서 좋은 글들을 준비해 두었다가 세족식을 진행할 때 읽어 준다.

(4) 어린이들을 의자에 앉게 한다.

(5) 어린이들이 의자에 앉으면 교사들이 숨어서 대기하고 있다가 세수 대야에 물을 담아가지고 어린이들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앉는다.

(6) 어린이들의 무릎을 잡고 교사들은 머리를 어린이들 무릎사이에 넣고 어린이 영혼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다.

(7) 기도가 끝나면 교사들이 어린이들의 양말을 벗기고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세수 대야를 놓고 어린이들의 발을 뽀득 뽀득 씻긴다.

(8) 발을 다 씻겼으면 준비해 놓은 새 양말을 신겨주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9) 먼저 양말은 어린이 주머니에 넣어 주고 다음 코스로 보낸다.

(10) 다음코스가 어디인지 알려 주고 가는 동안 고학년이 저학년을 업고 가게 한다.

 


8. 충 성(세계 비전)

1) 목적

(1) 이 코스는 세계비전을 품게 하는 시간이다.

(2)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한다.

(3) 어린이들이 세계 비전을 품고 10/40 창문지역의 한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게 한다.

2) 준비물 :

코스깃발, 세계 지도, 10/40창문지역 상황, 10/40창문지역 제비뽑기(어린이 수대로), 만남의 전도지(어린이 수X2)

3) 장소 :

교회 마당

4)준비된 상황

(1) “충성”코스 깃발을 입구에 설치해 둔다.

(2) 세계지도와 10/40창문지역 상황을 세워 둔다.

5) 활동

(1) 고학년이 저학년을 업고 오는지 확인한다.

(2) 충성 코스임을 알려주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 준다.

(3) 10/40창문지역을 설명해 주고 우리가 선교해야할 지역이 있음을 알게 한다.

(4) 10/40창문지역의 도시를 제비뽑기해서 어린이들이 한 개의 도시를 위해서 헌신하게 한다.

(5) 함께 자기가 뽑은 도시와 시민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6)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곳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해야 함을 알려주고, 만남의 전도지를 가지고 전도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7) 다음 코스까지 가면서 만남의 전도지를 가지고 다른 친구에게 전도하고 가게 한다.


9. 희 락(하늘 나라)

1) 목적

(1) 이 코스는 어린이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는 곳이다.

(2) 하늘나라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임을 알게 한다.

2) 준비물 :

코스깃발, 강단 글씨(여기는 하늘나라), 면류관(어린이 수대로), 간식

3) 장소 :

교회 본당

4)준비된 상황

(1) “충성”코스 깃발을 입구에 설치해 둔다.

(2) 강단 글씨(여기는 하늘 나라)를 강단에 부착한다.

(3) 교회를 천국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4) 교회에 천사 두명과 반주자, 율동할 교사가 대기하였다가 어린이들이 들어오면 찬양율동을 하며 즐겁게 한다.

5) 활동

(1) 어린이들이 교회로 들어 올 때에 천사들은 간식과 면류관을 준비하였다가 어린이들에게 면류관을 쓰여 주고, 간식을 준다.

(2) 율동 교사는 어린이들과 게임과 율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3) 천국을 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과 겪어야 할 일들이 있음을 이야기 하고, 하늘나라를 가기 위해서 교회를 열심히 다녀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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