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독교 초등학교 세우기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기독교 교육에 대한 논의는 첫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특히 기독교 대학 설립 동역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학문 연구회는 그 논의를 대부분 기독교 대학에 집중시켰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각해 보자. 초, 중, 고에 대한 교육 없이 대학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마찬가지로 기독교 초, 중, 고에 대한 기독교 교육은 기초조차 놓여지지 않았는데, 기독대학의 설립을 논의하는 것이 타당할까? 설사 그 학교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학교가 기독교 대학으로써 오래 견딜 수 있을까? 단적으로 말한다면, 미국에서 기독교 대학이 그나마 성공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바로 전국에 무수히 산재해 있는 기독교 초, 중, 고등학교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신대학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상황을 보고 판단해 보았을 때, 지금의 어려움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고 난 이후라고 본다. 우리는 이제 보다 미래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고신대학이 급변하는 교육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우리가 고신대를 진정으로 기독교학교로 남기기 위해서는 전교단적으로 기독교 초등학교 설립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 그 시골에는 피아노가 있는 곳이 학교와 교회 단 두곳이었다. 교회는 학교 보다 훨씬 재미있고 즐거운 곳이었다. 대학 1학년 때 농활 시절만해도 시골에서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하면 많은 아이들이 자동적으로 몰려 들었다. 하지만 4학년 쯤 되었을 때는 시골에서조차 학원이나 학교의 보충수업 때문에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금은 더 하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현대의 컴퓨터, 비디오, 그리고 텔레비젼은 아이들을 마음을 전적으로 사로잡고 있고 그들의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결국 그 어린이들을 다시 "재미없는" 교회당으로 되돌리는 것은 교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기독교학교를 세워서 교회와 학교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즉, 학교에서도 이들이 지속적으로 성경을 배우고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도덕을 배움으로 세속적인 사회와 문화에 물들지 않도록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현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이곳에서의 실제적 경험과 교육 전문가와의 토론 속에서 내린 결론은 부모들의 조금의 관심 그리고 믿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금의 관심이라고 말한 것은 한국의 평균 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한 관심보다 조금 높은 것을 말한다. 즉,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많은 사 교육비를 지출하는 데 그 정도의 관심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교육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라고 말한 것은 적어도 기독교 교육을 위해서는 세속적 관심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믿음의 결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자녀만 잘 키우면 된다는 생각에서 우리 모두 아이들 잘키우자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일류 대학을 들어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실 것이다는 믿음도 필요하다(하나님께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키우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필요하다).
기독교 학교에 대한 편견
1.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교육법 때문에 기독교 초등학교가 어렵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교육법은 많이 고쳐져야 하지만, 그때 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우리들의 결단만 있다면, 한국의 교육법은 기독교 교육을 위해서 아주 좋은 법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에는 검정고시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굳이 학교에 보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기독교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학벌과 지연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패거리" 문화에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앞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정말 믿음의 문제이다. 결국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기독교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2. 학교가 클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학교라고 하면, 보통 1000명은 넘는 학교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작을 수록 좋은 것이다. 나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는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있는 데 총원이 60명 미만이다. 1-3학년이 같이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교육에 큰 지장은 없다. 아마 이정도의 규모이면, 한국에서 왠만한 교회 (200-300명)는 얼마든지 기독교 학교를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재정문제
재정문제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확실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재정문제는 학교의 규모와 직결된다. 학교가 100명 미만이라면 그렇게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예산의 상당부분은 교사들의 인건비가 될 것이다. 이것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1) 은퇴하신 선생님을 교장선생님으로 초빙: 신실하신 교사들 중에 은퇴하고 나서도 교사로 섬기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것이다. 더구나 한국 교육에서 정말 기독교 교육을 꿈꾸었지만 현실에 적용시키지 못한 분들이라면 이런 초빙에 기꺼이 응하리라 생각한다. 이 분들은 연금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굳이 많은 월급을 주지 않아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2) 교육 선교사 초빙. 이곳 미국의 개혁교회에 요청하면, 기독교 교사들을 선교사로 파송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기독 초등학교 운영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이들의 조언은 매우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어린이들에게 최고 수준의 영어 교육까지 시킬 수 있다.
3) 보조 교사들의 활용. 요즘 대분분의 어머니들은 적어도 대학 교육을 다 받았을 것이다. 그들 중에 교육에 관심이 있고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면, 보조 교사로 봉사시켜서 교사들의 수업 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4) 위탁교육: 요즘 교회라면 성도 중에 피아노와 같은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1명 정도는 될 것이다. 악기 교육은 그들에게 저렴하게 위탁 교육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공원이나 체육관, 수영장에 가서 아이들에게 체육 교육을 시킬 수도 있고 컴퓨터는 학원에서 위탁 교육을 시킬 수도 있다.
5) 유산 남기지 않기: 기독교 학교의 재정은 수업료와 교회의 지원이 될 것이다. 교회에 교육관이 있다면, 장소만 지원하는 것으로 기독교 교육에 큰 지원이 될 것이다. 가장 큰 금액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은 기부금과 유산의 기증이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가에 따라 달려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특히 성도가 세상을 떠날 때 적용되는 말씀일 것이다. 이곳 개혁교회에는 적지않은 재정이 유산을 통해서 조달되고 있다. 기독교 교육은 특히 물질에 대해서 성도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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