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 찬양예배설교
제목 : 산 소망

말씀 : 벧전1:3~5

 

1.예수님만이 우리의 완전한 산 소망이십니다.

어느 분이 ‘인생은 B로 시작하여 D로 끝난다. 그런데 중간에 C가 있어서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B는 birth 곧 출생입니다. D는 death 곧 죽음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C가 있어서 소망이 있는데 여기서 C는 Choice ‘선택’, Change ‘변화’, Chance ‘기회’, Challenge ‘도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말입니다. 태어나서 결국 죽는다. 그러나 그렇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를 꾀하고 기회를 활용하고 도전하는 삶을 통하여 뭔가 인생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한가지 빠진 게 있지요. 그게 뭡니까? 진짜 C가 빠진 것입니다. 바로 Christ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아무리 올바른 선택을 하고, 바람직한 변화를 꾀하고, 기회를 잘 활용하고, 상황과 환경에 절망하지 않고 도전을 해서 좋은 결과를 창출해도 Christ가 없으면 말짱 꽝인 것입니다.

안 그래요? 물론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그런 삶도 분명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그런 것들을 통하여 뭔가 기쁨과 만족과 가치를 누리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빠지면 어떻게 됩니까? 물거품이 되잖아요. 그냥 물거품만 되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고통만이 남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롬8:24절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소망은 물론 세상의 소망입니다.

물론 그것도 소망은 소망입니다. 사실 그런 소망도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다.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가을에 풍성한 결실이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 월급도 잘 나오고 인정도 받고 승진도 하게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장사를 하면 결국은 성공할 것이다. 등등 이런 소망도 소망이고 이런 소망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소망이 없으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이런 소망이 없으면 무슨 일할 의욕이 있겠습니까? 이런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야 일이 잘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진짜 영원한 완전한 소망은 못 된다는 뜻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세상의 소망은 영원할 수도 없고 전인격적인 소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올바른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 세상적으로 성공해도 그것이 영혼의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줄 수 없고 더구나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소망만 가지고 살면 영원한 고통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소망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과 마귀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생복락을 주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지금 여기서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나 진정한 소망과 기쁨과 위로와 행복을 영원토록 온전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진정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지금 여기서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나 참된 생명과 기쁨과 평안을 온전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떻게 산소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까?

2.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맨 마지막 부분에 보면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산소망이 뭡니까? 말 그대로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다시 말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소망입니다. 진짜 생명을 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고, 참된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주는 소망입니다. 전인격을 살리고 전 인격에 기쁨과 은혜를 주는 소망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의 소망도 소망은 소망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유익하고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생명의 은총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산소망은 아닙니다. 우리 전인격을 살리지 못합니다. 전인격에 생명의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영원하지는 더더구나 못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엄격히 말하면 죽은 소망입니다. 결국은 없어질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산 소망을 가져야 하는데 그 산 소망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그 산 소망을 알지도 못하고 얻을 수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끝내 세상의 죽은 소망 가운데 살다가 허무 속에 죽고 결국 둘째 사망 곧 영원한 형벌 가운데 처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거듭나지 않은 영혼은 어떤 상태입니까? 죄와 무지 가운데 있습니다. 마귀사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영혼이 완전히 어두워져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영의 세계에 대해서 고작 안다는 것이 귀신이 어떻고, 죽은 영혼이 어떻고 떠들어 대거나 혹은 온갖 우상을 섬기고 나무에 빌고 온갖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고, 나무를 깎거나 돌을 다듬어 섬기고 합니다.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저는 새해가 되면 그 추운 날씨에 그 밀려 터지는 동해바다로 가서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해에게 비는 사람들,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태양은 가스덩어리입니다. 불타는 가스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어서 거기에다 빕니까? 그러면 나름대로는 다 잘났다고 하는데 이런 짓을 합니까? 죄와 무지 속에 있어서 그렇지요.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그렇지요.

그럼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사람이 만든 그 어떤 지식이나 문명이나 과학으로도 안됩니다. 과학 문명이 지금보다 천배 만배 더 발달하여 달과 화성에 관광지를 만들어 이웃 나라에 다녀오듯 왕래할 수 있는 시대가 와도 죄와 무지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귀사탄의 권세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면 전능자이신 하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만이 죄와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 3절 말씀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것이 거듭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죄가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일단 죄를 죽였으면 이제는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고 부활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안 그래요? 죄가 죽고 죄에서 용서되었어도 다시 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단 죽어야 하고 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생명을 얻어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새생명을 얻은 자로서 영원한 산 소망 가운데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죽고 부활의 생명을 덧입어 산소망을 가진 자라는 것을 기억하며 소망가운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정말 우리의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우리 옛 자아를 십자가에 온전히 못박음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의 삶의 모습을 버리고, 인간의 그 알량한 지식과 경험과 이성과 고집도 벗어던지고 오직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산소망을 주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소망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영원한 기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산 소망이신 또 다른 이유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견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의 기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보십시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즉 천국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굉장한 일입니까? 세상의 아무리 좋고 대단한 것이라도 다 썩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인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업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기업은 단순히 영원하기만 한 기업이 아닙니다. 너무나 완벽하고 온전하고 영광스러운 기업입니다. 그 어떤 아픔도 고통도 슬픔도 괴로움도 근심도 걱정도 상처도 심지어는 죽음조차 없는 영광의 나라입니다. 오로지 100% 완전한 영광과 기쁨과 감사와 은혜와 사랑이 넘칠 뿐입니다. 내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 성은 황금성입니다. 온갖 보석들로 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에서는 다달이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거는 뭐 우리가 어떻게 말로는 다 표현할 없는 너무나 영광스럽고 아름다고 평화롭고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그곳이 우리의 기업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드려도 별로 실감을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한 천억짜리 복권이 당첨되어 내일모레 천억원을 탄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럼 지금부터 얼마나 흥분되고 마음이 설레겠습니까? 여러분, 이게 잘못된 게 아닙니다. 돈도 사실 좋은 것입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많으면 구제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아름답게 건축할 수 있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나라도 지킬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많은 것도 해 줄 수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잘못 사용해서 돈 때문에 하나님도 사람도 제대로 못 섬기고 돈 때문에 싸우고 헐뜯고 거짓을 행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휘둘러서 문제지 돈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좋다해도 천국만 하겠습니까? 전 우주의 모든 재산을 가진다해도 천국과 은총을 누리겠습니까? 1/100. 1/10,000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산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영적으로 완전한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내일이 설날입니다. 설날이 되면 왜 좋습니까? 그건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 사랑과 기쁨과 은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도 하고 선물도 주고받으며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으며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나중에 어디서 누구를 만나 교제하며 사랑과 은혜를 나누게 됩니까? 주님입니다. 그리고 성화된 성도들입니다. 그것도 이 추하고 악하고 아픔과 고통과 미움과 걱정과 근심이 있는 세상이 아니라 저 영광스러운 천국에서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기쁨과 은혜를 누린다고해도 거기에는 완전한 기쁨도 사랑도 평안도 위로도 없습니다. 만나기 전에는 설레고 또 만나면 좋긴 하지만 또 걱정 근심이 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있고 그리고 곧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만남과 교제와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완벽합니다. 영원합니다. 그 어떤 어둠의 그림자도 없는 완벽하고 영원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사랑과 평안과 위로만이 넘쳐날 뿐입니다. 그러니 이 부족하고 허물 많고 죄 많고 고통 많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것도 기쁘고 감사할 진대 하물며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만이 가득한 나라, 그 어떤 근심 걱정 아픔 슬픔 미움 시기 갈등 없는 나라,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날 때에야 그 기쁨과 행복과 감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설명절을 보내면서 오랜만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 마음껏 사랑과 기쁨과 은혜를 나누면서 지금 여기서 주신 은혜와 사랑에도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되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나 인간적인 교제나 이런 것들이 온전한 기쁨와 평안과 위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 안에 영원한 생명의 기쁨과 은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혜가 가득한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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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설교
제목 : 그리스도의 군사

말씀 : 딤후2:1-6

 

우리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생명의 능력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귀사탄이 끊임없이 도전하고 유혹하고 시기하고 비난하며 덤벼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강력하게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비열하게 때로는 고상하게 때로는 교묘하게 우리를 속이고 넘어뜨리려고 한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언제 당하는지도 모르게 당한다. 자칫 잘못하면 속임수에 넘어가 도리어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교묘한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당했던 것처럼. 그리고 세상이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비진리가 혹은 거짓이 진리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심지어 교회를 다니면서도 여기에 속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분별력을 기르고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사탄에게 속지 않고 물리치고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은혜를 충만하게 받아야 한다.(1절)

딤후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우리가 모든 어둠의 세력을 이기려면 강해야 한다. 강하지 않으면 진다. 군인이 체력이나 정신이나 사기가 약해지면 진다. 그러므로 우리도 강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해야 한다. 그래야 마귀가 덤벼들어도 끄떡 않고 이긴다.

그러면 어떻게 강해지는가? 물론 많지만 일단 주님의 은혜로 충만해야 한다. 주님의 은혜란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모든 선물들을 말한다. 믿음, 구원, 감사, 사랑, 기쁨, 능력, 지혜, 선과 진리와 의 등...... 이 은혜를 받으면 천국에 대한 확신과 믿음, 소망을 갖게 된다. 유혹을 분별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상황 환경 고난도 이기게 된다. 그래서 사명감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를 덧입자. 더욱 충만한 은혜를 받자. 성령의 능력을 덧입자. 그러기 위해 깨어 기도하자. 그래서 주의 은혜를 덧입고 주의 능력을 덧입어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모든 유혹과 도전을 물리치고 힘차게 달려가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쓰자.

2.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2절)

딤후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자신이 먼저 말씀위에 서서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쳐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말씀은 천국을 알게 된다. 인생의 갈길을 알게 한다. 선과 진리를 알게 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거짓되고 왜곡되고 잘못된 가치관 속에 있는 풍조와 양식과 습관과 모든 삶의 모습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말씀 위에 굳게 서면 능력도 얻게 된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확신과 소망과 위로와 힘을 줌으로 올바른 분별력을 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혹과 도전과 고난과 조롱과 시기와 질투와 욕심을 이기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행20:32절에서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러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천국과 진리의 길도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마귀에게 속기 십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은혜받았다고 하면서 말씀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산다고 말한다. 그럴 수는 없다. 모든 은혜와 능력과 지식과 판단은 반드시 말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면 설령 능력이 나타나도 사탄의 역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무장하라. 말씀을 묵상하라. 말씀을 잣대로 삼으라.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를 지킨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붙든다. 힘을 주고 능력을 준다. 마귀 사탄을 물리친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3.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3절)

딤후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그렇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필연적으로 고난이 있다. 왜냐하면 세상이 진리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자연적인 세상은 결코 예수님께 대하여 호의적이지 않다. 물론 예수님을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하기도 하지만 오염되고 왜곡된 이성대로 자신들이 원하고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찾는데 그친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도리어 예수님의 오신 참뜻을 왜곡시킨다. 십자가와 부활과 주되심을 거부하고 꾸며낸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기독교를 핍박하고 조롱하고 대적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결국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필연적으로 고난이 따른다. 고난을 피한다는 것은 결국 십자가의 길을 회피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진리를 향해, 생명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향해 달려가려면 영적,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고난 즉 희생과 수고와 섬김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빌1: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무장하여 올바른 분별력과 능력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환경이나 상황을 이기고 유혹과 핍박을 물리치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자.

4.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딤후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군사는 그를 모집한 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세움을 받았다. 그러므로 군사는 그 모집한 자의 뜻에 절대 순복해야 한다. 그래서 군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며 훈련받으며 적들을 물리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도 동일하다. 주님은 먼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부르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세우셨다. 그래서 세상 속으로 가서 마귀사탄과 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말씀 훈련, 기도훈련, 전도훈련도 해야 한다. 동시에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영광이나 즐거움 보다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오직 선과 진리와 의를 향해 가야 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

그것이 바른 길이요 진리의 길이 인생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가는 길이요 동시에 우리 자신도 진정한 생명의 은혜와 능력과 자유가운데 살게 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을 택하며 주님의 나라 이루어가고 주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는 삶이 되자.

5.법대로 경기해야 함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그렇다. 모든 경기자는 법대로 해야 한다. 운동경기도 법대로 해야 한다. 시험도 법대로 치러야 한다. 인생도 법대로 살아야 한다. 신앙생활도 법대로 해야 한다. 물론 인생 최상위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법을 제정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또한 법을 주셨다. 그 법대로 살아갈 때에 가장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고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넘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법대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7:21절에서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물론 이 말씀이 100%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법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고 그것을 최대한 따라가야 한다. 그럴 때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그 역사를 이루다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성공자가 된다.

오늘부터 사순절 집중전도. 오늘은 주님께 영광 돌리고 안식도 취하는 날. 그러므로 오후에 좀 편히 쉬면 좋은데 전도를 나가려니 솔직히 나도 좀 힘들다. 그러나 이 일은 사순절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길.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주님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생명이 역사를 이루어가는 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일.

그러므로 좀 힘들지만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생명의 은총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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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제목 : 올라가는 인생

말씀 : 사40:27-31

 

1.올라가는 인생이 됩시다.

여러분, 기왕이면 올라가고 자라고 전진하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무슨 범죄율이나 빈곤계수나 지니계수(불평등계수)나 이혼율이나 이런 부정적인 것들은 올라가면 안 되고 내려 가야되지만 대부분 일반적인 것들은 올라가고 자라고 발전하고 향상되는 게 좋습니다. 몸도 자라고, 인격도 높아지고, 지식이나 문화나 과학 수준도 향상되고, 기왕이면 월급이나 사회적 지위나 명예도 올라가고 수확량이나 매출액이나 경제지표나 국민소득도 올라가는 게 좋습니다.

또 인생에서도 올라갈 때가 좋습니다. 30대 이전에는 올라가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40대를 넘어서면 벌써 내려가는 인생이 시작됩니다. 힘도 기력도 기억력도 의지도 능력도 자꾸 약해집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여하간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실제로 참으로 영원히 좋은 것은 저 높은 곳에 있습니다. 저 높은 곳에 주님이 계시고 영광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의 삶도 올라가는 것이 좋지만 더더구나 진짜 완전히 영원히 좋은 것은 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땅에 것에 얽매어 죽자 사자 땅의 것과 씨름하지 말고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표와 시선을 저 영광의 나라를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온갖 좋은 은혜들을 충만히 누리다가 마침내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기쁨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3:1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를 바라보라고요? 위를.... 왜요? 그리스도께서 계시니까요. 그 안에 영원한 생명, 영원한 기쁨, 완전한 행복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 본문 31절에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라. 왜요?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거기에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인정하고 주를 앙모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심으로 독수리처럼 힘차게 저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올라감으로 주님 안에 있는 그 풍성한 생명의 은총과 기쁨과 평안을 마음껏 누리는 인생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왕이면 땅에서도 생활수준도 올라가고, 행복지수도 올라가고, 건강지수도 올라가고, 명예도 올라가고 인격도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진짜로 온전히 우리에게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땅의 것을 생각하며 땅의 것을 바라보며 살지 말고 진짜로 높은 곳, 진짜로 우리에게 온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을 주시는 주님이 계신 곳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그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그곳을 향하여 올라간다면 생각도 좀 높은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것도 좀 고상하게 하고, 뜻도 좀 높은 곳에 두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분명 여러분의 삶이 정말 아름답고 고상하고 높고 고귀한 삶이 될 것입니다.

사32:8절을 보세요.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니까 거기에 어울리게 존귀한 생각과 존귀한 계획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맨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하면서 땅에 것만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찌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당연히 우리 인생은 존귀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에서도 올라가는 삶을 살되 무엇보다도 믿음이 올라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생각과 목표와 방향과 이상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올라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더욱 주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덧입어 생명의 은혜가 풍성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고 존중받는 존귀하고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올라가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문제는 그런 줄 알면서도 그게 그렇게 잘 안 된다는 것이지요. 올라가야지 올라가야지 하면서 나름대로 애도 써 보지만 그러나 또 다시 미끄러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론 우리가 다 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몸도 마음도 믿음도 의지도 약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마귀사탄은 어찌 하든지 우리를 붙들고 늘어져 높은 곳으로 못 올라가게 하고 지옥의 구렁 속으로 끌어내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자꾸만 낮은 곳으로 천한 곳으로 세상 속으로 향락 속으로 더러운 곳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미끄러질 때가 많고 올라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됩니다. 나는 약하고 무능하고 무지하여 내 능력과 지혜로는 잘 안 되지만 주님은 완전한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계시기에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심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갓난아기가 쌀 한 포대를 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천하장사에게는 그까짓 쌀 한 포대 드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갓난아기는 조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도 무서워 벌벌 떱니다. 그러나 천하장사는 그까짓 고양이 한 마리쯤이야 한 주먹거리도 안됩니다.

우리 인생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무지와 연약함과 추함과 어리석음 속에 있어서 마귀의 조그마한 공격에도 넘어지고 쓰러지기 쉽습니다. 세상의 조그마한 고난에도 낙담하고 절망하고 괴로워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시면 그 따위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능력과 사랑과 지혜와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감히 주님 앞에 대들 장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27말씀을 보십시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무슨 말씀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내가 가는 길을 모르고 계시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데 하나님이 아시면 왜 도와 주시지 않느냐는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 송사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니라.’ 내가 이렇게 억울한 일을 만났는데 왜 하나님께서 날 변호해 주시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공의로써 내 이 억울함을 풀어주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혼자 실망하고 한탄하고 원망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를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능력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 무한하신 사랑으로 은혜를 베풀어 넉넉히 이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28절을 보십시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에 대하여 들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지혜로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결코 피곤치 않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어찌 너의 형편을 모르겠느냐? 어찌 너를 돕지 못하겠느냐? 어찌 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시겠느냐? 그런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라.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라. 그분을 인정하고 그 앞에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게 힘과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주시고 너를 도우셔서 너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만물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고 운행하시고 통치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오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까지 당하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 능력과 지혜와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얼마든지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겸손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하나님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받아 주시고 안아 주십니다. 위로하시고 능력주시고 은혜 주셔서 이기게 하십니다.

오늘 29,30절을 보십시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은 어떤 형편에 있는 사람이라도 능히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천하 없는 장사라도 결국 쓰러지고 넘어지지만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주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결코 넘어지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혹 인생길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공연히 혼자서 속단하거나 끙끙 앓거나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고 그 모든 우리의 상황을 아시는 주님, 우리를 넉넉히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소연하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혼자 걱정하고 염려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원망하지 말고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며 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사랑과 능력과 은혜가 충만하신 주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인도하실 것입니다.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힘차게 믿음의 날개 짓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일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믿음의 날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새에게 날개를 달아주신 것은 힘차게 창공을 향해 날아올라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먹잇감도 구하고 맹수로부터 안전을 도모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타조나 닭이나 오리나 펭귄이나 이런 것들은 새는 새인데 제대로 날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날개 짓을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저 높은 하늘을 훨훨 날지 않고 그저 땅에 안주하며 땅에서 먹잇감을 구하며 날개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날개가 힘이 없어지고 퇴화되어 날지 못하게 되었고 혹시 좀 난다고 해도 겨우 몇 미터 날다가 추락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새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엄청난 날개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귀한 육체와 지혜와 이성과 감성과 영성을 주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물론 열심히 도구로 활용하여 자신의 생명을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하여 열심히 날개 짓을 할 때에 영과 육과 혼이 멋지게 발달하여 풍성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점점 퇴화됩니다. 더구나 좋은 것들을 나쁜 일에, 죄된 일에 부정적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기는커녕 도리어 그것들로 인하여 자신도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겪으며 남에게도 상처와 고통을 주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날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열심히 날개 짓을 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열심히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근육이 발달하고 뼈가 튼튼해지고 균형 잡힌 몸매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지적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하고 아름다운 인격체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날개 짓을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믿음의 날개를 힘차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밝아지고 아름다워지고 강건하게 되고 생명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의 날개 짓이 뭡니까? 믿음의 날개 짓이 무엇입니까? 먼저 말씀과 기도와 찬송에 힘쓰는 삶입니다. 열심히 말씀을 듣고 심비에 새기고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열심히 찬양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내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런 풍성한 영성을 가지고 주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날개 짓을 열심히 하면 생명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날개가 더욱 힘이 넘쳐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훨훨 날아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 것에 얽매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험한 풍파가 몰려와도 거기에 휩쓸려 다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31절을 보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라. 그러면 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독수리가 힘차게 날개 짓하며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듯이 너희 영혼도 힘차게 저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솟구쳐 오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과 환경과 조건 속에서 저 높은 곳에서 유유히 비행하며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은총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바라보며 가까이하면 어찌 그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덧입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능력과 사랑과 은혜와 지혜를 덧입으면 세상의 이기지 못할 것일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찌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삶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와 무지속에 있습니다. 능력도 지혜도 사랑도 의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상처받고 고통 받을 때가 많습니다. 자꾸만 진짜 생명의 은총을 주지 못하는 세상의 것을 바라보고 따라가며 실망하고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확실히 전지전능하시며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온 인류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주님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맛보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더 이상 땅엣 것만 바라보며 세상의 것에 얽매어 사는 인생이 아니라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힘차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전도와 섬김이라는 믿음의 날개 짓을 더욱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과 지혜로 독수리처럼 힘차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감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과 어려운 것들을 넉넉히 이기고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그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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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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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제목 : 어느 부자 청년의 번민

말씀 : 막10:17-22

 

1.어리석은 선택

여러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어떤 때는 너무너무 똑똑하고 잘나고 멋있는데 어떤 때는 정말 어리석고 바보 같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착하고 대견스럽고 훌륭한데 또 어떤 때는 정말 무지하고 추하고 심지어 악할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어리석고 바보 같은 것은 하나님과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런 건 없다고 하고 자기 힘과 돈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교회나 절이나 사원이나 아무데나 다니면 좋은 데 간다고 하며 나름대로 종교생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종교고 뭐고 그냥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게 천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참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아니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합니까? 자기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아니 다 똑같은 죄인이요 무지한 자요 어리석은 자인데 그걸 가르쳐 줄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아니며 죽어서 확인이라도 해 봤습니까? 아니 진짜 그렇잖아요?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는 인간이 그래서 이 세상의 일도 만분의 일, 억분의 일도 모르면서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과 창조와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알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한계 속에 있는 존재로 본질적으로나 일상생활에서나 무지하고 어리석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런 근원적인 문제들은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릅니다. 아니 근원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펼쳐져있는 현상적인 문제들도 아는 것은 쥐꼬리만큼도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알고도 때로는 몰라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도 그랬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청년은 인간적으로는 돈과 명예도 있었고 인격적으로도 상당히 멋있고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마19:20절에서는 이 사람을 청년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눅18:18절에는 관원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22절에는 재물이 많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17절에 보면 이 청년은 예수님이 자기 마을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 앞에 무릎 꿇고 영생의 길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부자였고, 관원이었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영생의 길을 물을 만큼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진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참 여러모로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부자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윤리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있었고 진리에 대한 관심도 컸던 사람이었지만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만 영생의 길을 포기하고 근심하며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다고요? 부자라서...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긴 한데 돈을 다 포기하라고 하니까 너무 아까워서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예수님 말씀을 거역하려니 너무 괴롭고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슬퍼하며 근심하다가 결국은 돈에 져서 근심에 쌓여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무지하고 어리석고 연약한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는 나름대로는 정말 멋있고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그만 돈에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이요 그래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우리가 이렇게 무지하고 허물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며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결코 내 생각이나 경험이나 이성을 좇아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함으로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잘 달려가 진정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복된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청년은 왜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2.예수님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청년의 결정적인 잘못은 예수님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17절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러분, 보세요.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참 괜찮은 청년 아닙니까? 예수님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선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거기다가 영생에 대한 관심과 갈망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의 결정적인 오류는 예수님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줄 알지 못했고,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결국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의 길을 버리고 세상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청년은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주님이 아닌 선한 선생 정도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의 잘못된 시각을 고쳐 주시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8절을 같이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여러분, 그러면 예수님이 선하시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이 선하시지 않다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은 아무도 선한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예수님을 선한 사람으로 아니까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나를 선한 사람으로 알고 찾아왔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 정도가 선한 선생에게서 영생의 길을 찾으려고 하는 그 시도부터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히 선하시고 그 분만이 영생의 길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선한 선생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진정한 선한목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나를 바르게 알고 나를 믿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영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청년에게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존경받으실 만한 인류의 스승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무지에 의한 커다란 오해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성인 즉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인간은 아무리 위대해도 완전한 선한 선생이 될 수도 없고, 더더구나 인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구세주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위대하고 선하고 아름답고 멋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우리는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의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미련함과 한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시오, 완전하게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완전하고 영원한 스승이시며 구원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 청년처럼 자신의 그 알량한 생각과 경험과 이성을 가지고 예수님께 대하여 제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버리고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의 죄와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고 내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온전히 엎드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고 그 예수님 말씀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온전히 해방되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것은 물론 지금 여기서도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영생의 길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이 부자청년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오류는 영생의 길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여 선한 행위로 영생을 얻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17절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보세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즉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얼마나 선을 행해야 구원을 받느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18절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은 완전히 선할 수 없으므로 어떤 선한 행동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서 계속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정말 선을 행하여 구원을 받으려 한다면 이런 계명들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참 괜찮은 청년이었는데 또 어리석고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여러분, 참 맹랑하지 않습니까? ‘다 지켰습니다.’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상대적으로 남보다 좀 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 지켰다고 말한 것은 상대적으로는 꽤나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아왔을지 모르지만 그가 얼마나 무지 속에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1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를 사랑하사.... 나름대로 선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무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깨닫게 하시려고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네가 정말로 완전히 선하게 살아왔다고 여기느냐? 그렇다면 네가 정말 완전히 선한 존재라는 것을 네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을 통해 입증해 볼 수 있겠니? 네가 정말로 온전히 선하다고 여기고 또 나를 선한 선생으로 안다면 나의 말을 100% 따를 수 있겠니? 그렇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거라. 그러면 내가 인정해 주리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 자신만만했던 사람은 그만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맙니다. 근심과 고민에 쌓이고 맙니다. 그리고는 힘없이 돌아서서 예수님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인간의 선과 의와 똒똑함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무지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제 아무리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모두가 약하고 어둡고 죄가운데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제 아무리 똑똑하다고 여겨도 무지한 존재요, 제아무리 선해도 악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함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따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돈이나 선이나 권세나 지식이나 철학으로도 안되고 백년 천년 만년 도를 닦아도 안되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 모든 자만심, 지식, 경험, 이성 다 버리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부족함, 어리석음, 죄됨, 모두 고백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만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길임을 믿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함으로 주님의 은혜를 덧입어 구원받고 여기서도 진정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물질에 인생의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청년의 또 다른 오류는 물질을 진리보다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하고, 가장 절실한 것인지 그걸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보았던 22절 다시 봅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참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영생과 진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고, 겸손히 무릎 꿇고 진리의 길을 물었고, 계명을 모두 지켰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청년이 네가 그렇게 완벽하게 계명을 지켰다면 네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모든 재물인데, 그러면 난 뭐 먹고 살라고, 무슨 재미로 살라고 하면서 가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정말로 예수님은 그 청년이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정작 자신은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했다가 망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초라하고 흉하고 궁핍하게 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말도 안되는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칼을 들어 아들을 죽여 번제로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십니다. 아니, 쟤가 정말로 아들을 잡아 제사를 드리려는 거야. 저런 순진한 녀석. 얘야, 안된다. 그만 두어라. 칼을 멈춰라. 깜짝 놀라서 아브라함을 가까스로 말리고 옆에 양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더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청년이 정말 예수님을 진정으로 메시아로 영접하고 그 말씀대로 재산을 다 팔려고 했다면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을 말렸거나 아니면 다 주게 하신 다음에 더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청년의 재산을 다 파느냐 안 파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청년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얼마나 순종하느냐,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 그게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예수님도 우선순위도 제대로 몰라 그만 낭패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예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우선순위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바르게 알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 때에 진정 생명의 은혜가 넘치고 참된 자유인이 됩니다. 평강과 위로와 소망이 넘쳐나 이 땅에서 누려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받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다 잘나고 똑똑하고 선한 것처럼 여기면서 예수님도, 인생의 우선순위도 몰라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들조차도 이런 우선순위를 혼동하고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고, 세상 즐거움을 더 중요시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을 더 중요시하고 그것을 좇아가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보 같은 일입니다. 그건 결코 생명의 길이 아닙니다. 결코 거기에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안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오직 말씀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 거기에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단순히 위대한 성인이 아닌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고 알고 바르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 주님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오로지 우리 주님과 그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가치와 목표와 방향을 우선순위로 삼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도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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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제 목 : 인생의 완전한 주인

말 씀 : 눅11:21-26

 

1.인간은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요즘에 보면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상황이나 환경이나 외모나 조건이나 이런 것들에 신경 쓰거나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인생을 자신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생각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게 되고 그래서 발전성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 주도적인 자세는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삶의 자세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한도 내에서만 적용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의 분수를 모르고 진짜로 자기가 자기 인생의 완벽한 주인이라고 착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이는 정말 치명적인 착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자기가 자기 인생의 완전한 주인이라고 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나나마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되는 거지요. 안 그래요? 우리가 다 죄인이요 무지한 자요 어리석은 자요 한계가 있는 데 자기가 주인이라며 자기 생각과 이성과 지식을 따라 살아간다면 어떻게 오류에 빠지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도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해야 되는데 하면서 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고,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또 생명은 어떻습니까? 시간은 어떻습니까? 돈은 어떻습니까? 맘대로 할 수 있습니까?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생명도 시간도 돈도 건강도 자식도 권세도 명예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지금이라도 거두어가시면 속된 말로 찍소리 못하고 반납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자꾸만 자기가 진짜 인생 주인행세를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모습은 부분적으로는 분명히 긍정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훨씬 강합니다. 즉 인본주의, 개인이기주의에 빠져 누가 뭐라 건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이지요. 왜 남의 눈치나 심지어 하나님의 눈치도 안보고 선 진리 의 거룩 이런 것들도 신경 안 쓰고 그저 나 좋은 대로 나 편한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 내 돈, 내 시간 하면서 마음대로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남에게 기쁨을 주며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기쁨과 만족과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건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인생이 사탄의 달콤한 속삭임에 속아 자기 분수를 모르고 사탄의 술수와 모함과 유혹에 놀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주인처럼 여기고 있지만 실상은 사탄을 주인으로 섬기며 거기에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로 치달아 가면 멸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깨어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며 정신을 차리고 이런 왜곡된 가치관을 배격하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올바른 주인의식을 가지고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거야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야 올바른 분별력과 능력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사탄의 유혹과 도전과 속임수에 속지도 않고 능력 있게 물리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귀사탄이 우습게 여기고 얼씬 거리지도 못하고 또 설령 덤벼든다 해도 즉각 깨닫고 주님의 능력으로 물리치고 하나님 안에서 능동적이고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선과 진리와 의를 향하여 달려가면서 정말 능력 있고 생명력 넘치는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0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들을 행하시는 것은 물론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시는 일이고, 이런 일이 세상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귀에 속한 모든 유혹이나 핍박이나 더럽고 추한 것들을 얼마든지 물리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론 하나님의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고 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세상의 왜곡된 물결을 따라가지 말고 오직 우리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심령 속에 모셔 들이고 온전히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시험과 도전과 환경과 상황과 어둡고 칙칙하고 추한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생명의 능력과 은혜와 기쁨이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사탄의 모든 지배 속에서 온갖 왜곡된 가치관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며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그 역사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심령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심령 속에서 사탄이 좋아하는 것들을 씻어버리고 사탄이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들, 반대로 말하며 예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것들로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물러가고, 성령님이 기쁘시게 우리 심령 속에 거하심으로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똥파리가 어디에 꼬입니까? 똥이 있는 곳입니다. 벌은 어디로 날아갑니까? 꿀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어디에 거하기를 좋아합니까? 깨끗하고 아름답고 향내 나는 심령입니다. 마귀는 어디가 좋다고 얼씨구나하고 들어와서 서식합니까? 더럽고 추한 심령입니다. 마귀는 우리 심령 속에 악하고 추하고 속되고 거짓되고 음란한 것들을 자꾸 집어넣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그런 것들이 들어 있으면 얼씨구나 네가 내 친구로다 하면서 좋다고 그 심령 속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심령 속에 믿음과 선과 의와 거룩함 등의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들로 채워져 있으면 성령님이 기쁘시게 거하시게 되고 그러면 마귀는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인데요, 오늘 말씀은 소위 빈집의 비유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귀신에게 제압당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회에 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추했는지 깨닫고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심령이 깨끗해지자 귀신은 그곳이 살만한 곳이 못되어 이 사람에게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자기가 좋아하는 곳을 찾아봤지만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다시 이 사람에게 와 보았더니 깨끗이 수리가 되어 있긴 한데 주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귀신은 이 영혼을 완전히 제압하고 유린하여 거기 거하기 위하여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악한 귀신 일곱의 지배로 돌아가 전보다 더 형편없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빈집의 비유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영혼을 청소했기 때문에 귀신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25절 보세요.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 말씀은 귀신이 쫓겨났기 때문에 수리가 되었다는 말씀임과 동시에 청소를 하였기 때문에 귀신이 나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서 집은 인간의 심령입니다. 심령이 청소되었다는 것은 물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더럽고 추하고 악하고 음란한 것들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이 살만한 곳이 못되니까 나가게 되었고 귀신이 나가니 그 심령이 더욱 깨끗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자꾸 귀신 귀신 그러니까 혹시 오해할까봐 말씀드리는데 여기서 말하는 귀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영혼은 한번 죽으면 낙원과 음부로 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낙원과 음부에서도 서로 왕래할 수 없고 이 세상과도 왕래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의 귀신은 죽은 자의 영혼이 아니라 마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하여튼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이 집을 수리했을 때 귀신이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 속의 온갖 더럽고 추하고 속된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이 들어오셔야 깨끗해지지만 성령이 들어오시게 하려면 우리가 얼마나 죄와 무지와 추함 가운데 있는지 인정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 죄를 고백하고 완전치는 못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히 못한 것들을 심령 속에서 스스로 추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귀가 서식할 공간을 해체시키고 반대로 우리 심령의 공간을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선과 의와 거룩한 것들로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는 도망가고 성령님이 기쁘시게 거함으로 은혜 충만한 삶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약4:7,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성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도망하고 하나님이 가까이해주심으로 은혜가 충만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어찌 하든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꾸만 우리 심령을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진리와 선과 의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심령 속에 더럽고 추한 것들이나 원망이나 분노나 증오나 욕심들이나 마귀에 속한 것들이 자리 잡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께 속한 믿음과 선과 진리와 의와 거룩함으로 충만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귀가 쫓겨나고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기쁨이 가득한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3.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깨끗하게 한 다음에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건 뭐냐 주님을 우리의 새 주인으로 온전히 모시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람은 약간의 은혜를 받고 심령을 좀 깨끗이 함으로 귀신이 나가긴 했는데 그리고 나서 주님을 온전히 새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갔던 귀신이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그 영혼을 무참히 짓밟고 유린해서 전보다 더 형편없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 정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심령을 깨끗이 청소를 했으면 다음에는 반드시 예수님을 완전히 새 주인으로 모셔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러운 마귀사탄이 다시 침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웬만큼 청소를 하긴 했는데 완전한 능력자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지 않으면 자칫하면 또 마귀의 밥이 되기 싶다는 것입니다. 마귀란 놈은 얼마나 집요한지 쫓겨나가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끊임없이 찾아와 때로는 유혹하고, 때로는 조롱하고, 때로는 핍박을 합니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그대로 덮쳐 우리 영혼을 유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나름대로 마음을 청소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영위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완전한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말씀도 묵상한다해도 정말로 예수님을 온전한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으면 언제든 허점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아니 사실은 온전히 예수님을 모셔 들이지 않으면 그건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에 불과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기는 다니는데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능력과 생명과 감격과 기쁨도 맛보지 못하고 다니니까 사단의 표적이 되어 집요하게 유혹하고 사납게 대들면 그만 사단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람에게 명령하시고, 마귀에 호통을 치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고 그 분을 주인으로 섬기면 감히 마귀사탄이 얼씬 거리지 못합니다. 혹시 얼씬거리면서 수작을 건다해도 즉시 깨닫고 사탄아 물러가라 호령하면 쫓겨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21,22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인 것입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여기서 강한 자는 사탄이고, 더 강한 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사탄도 나름대로 힘이 있어서 세상을 어느 정도 지배하고 마치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 강한 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탄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면 사탄은 꼼짝없이 자신이 지배하던 것들을 예수님께 내어 드려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 영혼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모든 추한 것들을 몰아내고 그 다음에는 정말 온전히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들이기 바랍니다. 이미 모셔들인 분들은 절대로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생각, 내 이성, 내 가치관을 따라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지 말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주님의 지시를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감히 마귀 나부랭이가 우리를 우습게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도리어 우리를 보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속에 있는 예수님을 보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의 능력과 은혜가 넘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런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심령을 깨끗이 하고 주님을 온전히 나의 주인으로 모셨으면 이제는 그 말씀을 따라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해서 더욱 생명의 은혜와 능력과 기쁨이 넘쳐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한마디로 우리가 정말 예수님 편에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꾼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안다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안다면,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한지를 안다면,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안다면 생명의 역사에 어떻게 참여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사랑하는 영혼을 사랑한다면, 한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주님이 그 영혼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안다면, 그 일이 얼마나 귀하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않다면 어떻게 복음의 역사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러한 복음의 역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물론 우선은 자신이 먼저 생명의 능력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게다가 복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는 것이요,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수수방관하는 일이요,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의 힘을 빼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고의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고 헤치지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반대한 것이나 헤친 것과 진배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안다면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길이요, 동시에 우리의 신앙을 더욱 활기차게 하고, 생명력이 있게 하고,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교회를 섬기고 전도하고 하면 얼마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겠습니까? 얼마나 영성이 풍성해지겠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이 넘치겠습니까? 또한 그러한 왕성한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힘차게 이루어져 가겠습니까? 그리고 함께 수고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힘과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더욱 말씀과 기도와 찬양생활에 힘씀으로 우리 심령 속에서 주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것들을 깨끗이 씻어내고 주님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셔 들임으로 진정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주님의 거룩한 생명의 역사에 참여함으로 주님의 생명의 역사를 힘차게 이루어 가며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총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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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예식  

유아세례 예식문 

세례의 교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회중 여러분,
 거룩한 세례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와 우리의 자녀는 죄악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로 씻는 의식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예식에서 우리의 영혼의 불결함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우리의 정결함과 구원을 우리 밖에서 구하여야 합니다. 

 

둘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인(印)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가 성부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맺어 주심을 선언하시고 인을 쳐 주십니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자녀와 상속자로 삼아 주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내려 주시고 모든 악은 피하게 하여 주시거나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도록 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성자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서 정결케 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시켜 주심을 약속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로부터 해방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신 하나님께서는 이 성례로써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肢體)로 만들어 주실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신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것을 실제로 누리게 하셔서 죄 사함을 얻고 매일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택함 받은 무리 가운데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모든 언약은 약속과 의무라는 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셋째,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새롭게 순종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는 순종할 의무를 짊어집니다. 즉 우리는 이 한 분 하나님, 곧 성부․성자․성신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하며, 그분을 신뢰하고,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버리고 우리의 옛 본성을 죽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죄에 빠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며, 그냥 죄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세례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인이고 온전히 신뢰할 만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의 근거
 비록 우리의 자녀들이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 때문에 이들을 세례에서 배제시켜서는 안 됩니다. 마치 그들이 알지 못하면서도 아담이 받은 정죄에 참여한 것처럼, 그들이 알지 못하여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또한 우리와 우리의 자녀에게도 내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동일한 말씀으로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9)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옛 언약 아래에서는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풀 것을 명령하셨는데, 이것은 언약의 인이고 믿음의 의에 대한 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손을 얹어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새 언약 아래에서는 할례 대신에 세례를 제정하여 주셨으므로 어린아이들도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언약의 상속자로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함을 따라서 부모는 그들의 세례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 알도록 가르쳐 줄 의무가 있습니다.

 

세례 전의 기도
 이 성례를 거행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우리의 믿음이 굳세어지고 교회가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제 주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고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의로우신 심판 가운데 믿지 않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으나 믿는 노아와 그의 가족은 주님의 크신 자비로 구원하여 주시고 보존하여 주셨나이다. 주님께서는 강퍅한 바로와 그의 백성은 홍해에 수장(水葬)시키셨으나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곳을 마른 땅으로 걸어 나오게 하심으로써 이미 세례를 예표(豫表)하여 주셨나이다.
 이제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의지하여 기도하오니, 주님의 이 자녀를 은혜로 하감(下鑑)하시사 주님의 성신으로 사랑하시는 아드님 그리스도께 접붙여 주시기를 간구하옵나이다. 이 아이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함께 장사되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아이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에 매일 자기의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가게 하여 주시며 참된 믿음과 굳은 소망과 열렬한 사랑으로 그리스도께 붙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삶은 계속되는 죽음일 뿐이지만 이 아이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에서 위로를 받고 이 세상을 하직하게 하여 주시며, 마지막 날에 주님의 아드심이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두려움이 없이 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성부와 성신과 더불어 한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살아 계시고 영원히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부모에게 하는 서약 문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부모 여러분,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을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인을 치려고 제정하신 것임을 그대들은 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성례를 그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며 습관적으로나 미신적으로 행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대들이 그러한 뜻에서 세례를 원하고 있음을 명백히 하려고 이제 몇 가지 질문을 하니 신실하게 대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의 아이들이, 비록 죄악 중에 잉태되고 출생하여서 모든 비참함을 겪고 심지어 영원한 심판까지 받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으며, 따라서 교회의 회원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하십니까?
 둘째, 그대들은 사도신경에 요약되어 있고 여기에 있는 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구약과 신약의 교훈이 구원을 위한 참되고 완전한 교훈이라고 고백하십니까?
 셋째, 그대들은 부모로서 이 아이가 성장함을 따라서 그대들의 힘을 다하여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이 자녀를 교육하고 교육받게 하며, 또한 친히 사람의 본분을 이 아이에게 보이기를 힘쓰며,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약속하십니까?

 그대들은 이 모든 말씀대로 서약하시겠습니까?
 대답: 예, 그대로 서약합니다. (부모가 함께 대답한다.)

 

세례
 예수 믿는 자의 아이 ○○○을(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베풉니다.

 

감사 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와 우리 자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의 성신으로 주님의 독생자의 지체로 삼아 주시고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심을 감사하고 찬송하옵나이다. 또한 이 사실을 세례를 통하여 인을 쳐 주시고 확정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해 비옵나니, 이 아이를 주님의 성신으로 계속 다스려 주셔서 이 아이가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양육을 받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이로 하여금 주님께서 이 아이와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신 아버지와 같은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깨닫고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이로 하여금 우리의 유일한 선생이시요 왕이시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서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시고, 죄와 마귀와 그의 모든 통치에 대항하여서 용감하게 싸우고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아이로 하여금 아버님과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님, 곧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만을 영원히 찬양하고 높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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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가정예배

 
전통적인 제사는 고인에게 드리는 것이요, 추모식은 고인을 추모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대상과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멀지 않은 날 하나님 앞에서야 될 것임을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절하는 것은 금합니다. 추모식에는 조상을 추모하는 계기에 모인 가족들과의 친교가 중요시되어야 합니다. 고인을 기념하는 뜻에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면 더욱 좋겠습니다.

 

【 예배순서 】

◎ 개 식 사 ------------------ 맡은이 지금부터 먼저 가신 조상들을 생각하며 추모예배를 하겠습니다. ◎ 신앙고백 ---------------------------------------------- 다같이

◎ 찬 송 ---------------------534장----------------------------- 다같이

◎ 기 도 ------------------------------------------------------- 다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금 고인들을 추모하면서 온 가족과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고인들이 과거에 살아 있을 때에 행한 모든 일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여 주시고, 그 분들이 하시고자 했으나 하지 못한 것을 자손들로 하여금 성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영생이 있다고 말씀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두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가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고인의 모범적인 신앙을 되새기게 하여 주시고 온 가정에 축복과 위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낭독 ------------------ 시 25:12-14 ----------------------- 다같이

◎ 말씀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는 복 ---------------- 맡은이

본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여호와께서 어떤 대우를 하시는가를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도 여호와를 경외하여 복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택할 길을 아는 복(12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택할 길을 가르치신다고 했습니다. 택할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선택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택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그 생의 도상에서 바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데 그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요, 고백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받는 복은 하나님께서 그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어떤 길을 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런 복을 우리 모두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복(13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누리는 복은 복중의 또 하나는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외적 부요나, 세상적 형통으로 오는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그 심령에 있는 자가 누리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영혼이 평안을 누리는 복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언약 속에 사는 복(14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복은 하나님께서 친밀히 대하시고 그 증거로 그에게 언약을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당신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이 일을 숨기지 않고 그 택하신 자들에게 이 언약을 계시로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언약 속에 사는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 기 도 ------------------------------------------------------- 맡은이

오늘 말씀을 통하여 환란 풍파와 질고가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며, 고인이 원하는 길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일평생 믿음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주님이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 송 ---------------------559장----------------------------- 다같이

◎ 주기도문 ---------------------------------------------------- 다같이

"예배후 준비된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며 친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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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예배  성찬식예배절차 성찬식예순서

 

성찬식의모범

      성 만 찬  예 배 순 서 

 

    * 한 곳은 일어선다.
     11시
   1.전  주(묵상기도) -------------------------------------------------- 반 주 자
* 2.입 례 송  ------------------------ 1 3 장 ------------------------- 다 같 이
                   담임목사, 부목사를 비롯한 예배 위원들과 성가대원들이
                   예배당 입구에서부터 행진하여 강단으로 나아간다.
* 3.인   사
        목 사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회 중 : 목사님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 4.예배에의 부름 ----------------------------------------------------- 집 례 자
              (인사를 하고 종을 치면 모두 눈을 감고 부름의 말씀을 듣는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시 100:1-2)


* 5. 찬  송 -------------------------- 2 7 장 ------------------------- 다 같 이
* 6. 죄의 고백 ------------(다함께 고개를 숙인채 기도한다)------------- 다 같 이 
         오늘도 우리의 삶가운데 함께 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
        2,000년전 갈보리 언덕위 십자가에서 당신의 두 손과 발에 못을 박는
        그 둔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당신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였건만 우리는 우리의 온맘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였나이다. 우리가 지은죄가 너무나 크고 무거우오니
        하나님이시여 용서하여 주옵시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께 날마다 영광 돌려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옵소서. 아멘.


* 7. 용서의 선언  ----------------------------------------------------- 집 례 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 8. 사 도 신 경 ------------------------------------------------------ 다 같 이
* 9. 성 시 교 독 -------------------- 54 성 례 식 --------------------- 다 같 이 
  10. 찬       송 ------------------------ 4 5 3 ----------------------- 다 같 이
  11. 대 표 기 도 ------------------------------------------------------ 맡 은 이
*12. 구약말씀 봉독 ------------------- 시 23: 1 - 6 ----------------- 남자 집 사   
*13. 신약말씀 봉독 --------------------요 5 : 19 - 29 --------------- 여자 집 사 
  14. 찬       양 ------------------------------------------------------ 성 가 대 
  15. 설       교 ------------------푸른 초장에 대한 그리움 ------------ 설 교 자 
  16. 기       도 ------------------------------------------------------ 설 교 자
  17. 주 기 도 문 ------------------------------------------------------ 다 같 이
  18. 성찬 찬송과 봉헌 ------------------------------------------------- 다 같 이
                 찬송가 3장을 회중들이 모두 일어나서 부르면서 장로들이 강단에
                 미리 준비된 상의 상보를 걷는다.
 
성만찬의 예전
  19. 처 음 기 원 ----------------------------------------------------- 집 례 자
       목 사 :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가 언제나 주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하옵소서.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회 중 :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죄를 고백합니다.
               주님, 주님을 바르게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지 못한 것 용서 하옵소서.
   20. 권 면 ---------------------------------------------------------- 집 례 자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성찬은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과 사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우리로 악한 죄를 이기게 하시고
          모든 고난에서 더욱 굳세게 하사,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책임을 감당케 하며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게 하시고 마음의 평안함과 영생의 소망을 확실하게 하
          여 무한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베푼 상을 통하여 그리스도 앞
          으로 나갑시다.
   21. 성경봉독및 간구 ----------- 고전 11 :23-29 ---------------------- 집 례 자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그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독생자를
           보내시어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주께서 온몽으로 온세상의 죄를 사하시고
           완전하고 거룩하신 희생 죄물이 되사 우리의 고통을 대신하여 죽으심을 기념
           하는 성례를 세우시고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예식을 행하라고 분부하셨나이
           다.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간구하옵나니 우리으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으로
           이 떡과 잔을 축복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이 세우신 성례대로 이루게 하
           여 주시옵소서. 이제 부족한 저희들이 주님의 보혈을 기념하여 영생의 떡과
           구원의 잔을 받고자 하오니 생명과 은총을 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주님의
           베푸신 상에 같이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2. 성 찬 ------------------------------------------------------------- 위  원
            1. 떡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의 말씀을 성취하옵소서.
               (고린도전서 11:23-25)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시고(집례
               목사는 전병을 눈 높이 위에까지 높이 쳐들어 회중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한다)감사 드리신 다음에 떼시며(집례목사는 전병을 쪼갯 성반위에
               올려 놓는다)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습니다. 찢기신 몸을 기념하며 주의
               떡에 참여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합시다.
                 ‘이것은 나의 몸이라. 너희를 위하여 준 것이니 행하여 나를 기념하
               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세우신 이 성찬을 베풀고 우리도 떡을
               떼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을 분별하게 하시고 우리들이 나누     
               는 이 떡이 영생의 떡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
               니다. 아멘.
                (목사가 받고 교인에게 나눈 후 빠진 자의 유무를 확인하고 장로들에게
                 나누어 준다.)
            2. 잔
              식후에 주께서 잔을 가지사 축사하신 후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운 새 언약
             이니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위하여 흘림이라 하시었습니다. 우리가 이 잔
             을 받을때 합당하게 믿음으로 언약의 축복이 새로와지기를 바랍니다. 기도
             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저희가 주의 잔을 나누어 가지려 합니다. 흘리신
             보혈이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하옵소서. 주의 사랑 본받아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의 잔이 언제나 넘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
             다. 아멘.
               (목사가 받고 교인에게 나눈 후 빠진 자 유무를 확인하고 장로들에게
                 나누어 준다.)
    23. 감사와 축복의 기도 --------------------------------------------- 집 례 자      
                오 ! 하나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세례로 하나가 되게 하시고
               이 성만찬에서 기쁨으로 충만케 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주께서
               우리들을 위해 흘리신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들을 살려 주셔서 영생의 소망을 갖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살
               아 계셔서 세상 끝날까지 성령과 함께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예수님 이
               름으로 기도합니다.  
* 24. 찬      송 --------------------- 3 5 1 -------------------------- 다 같 이
* 25. 파송의 말씀
          목 사 :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으로 선교와 봉사를 위해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회 중 : 주여!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 26. 축      도 ------------------------------------------------------ 집 례 자     
   29. 후      주 ------------------------------------------------------ 반 주 자


    * 성찬 준비
         성찬예식은 당회가 작정하고 적어도 1주일 전에 회중에게 알려서 마음에
        준비를 시켜야 한다.
    * 성찬후 처리
         성찬에 쓰고 남은 떡과 포도즙은 목사의 책임하에 신중히 처리하되
        가급적 땅에 묻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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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가정예배 

 잠언 16:16-19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


2017년 설날입니다. 큰 바다에서 항해할 때에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위치, 목적지, 항해 코스입니다. 지도를 보고 나침반을 사용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는 위급한 순간에도 배가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나라나, 가정이나, 개인에게 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항로를 벗어나지 않고 영적인 파선을 면할 수 있을까요?
 

첫째, 지혜를 가지고 삽시다. 

 

사람들은 돈이면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잠언의 많은 부분을 기록한 솔로몬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물질을 구하지 않고,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에 연연해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살도록 합시다. 이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올해는 성경을 듣고 읽고 말씀을 따라 한 절이라도 실천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이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

 
둘째, 정직하게 삽시다. 

 

군자는 누가보아도 당당하고 떳떳한 길로 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나라를 보면 온갖 거짓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회장, 장관, 실장 등 국민이 보는 앞에서 진실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떳떳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보아도 당당하고 떳떳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악을 떠나고 정직한 사람에게는 대로가 열립니다.


셋째, 겸손하게 삽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사람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그것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겸손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겸손한 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우리가 스스로 겸손해지기는 어렵습니다. 늘 기도하므로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성령 충만한 삶을 사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2017년 한 해 우리가 지혜를 가지고 정직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많은 사랑과 많은 복 받는 가정되기를 바랍니다.


* 찬송/ 28, 577, 559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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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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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설교] Sunday night worship
말씀 : 마11:7~12

제목 : 천국을 침노합시다.

 

1.가장 위대한 선지자 세례 요한

오늘 말씀에 보면 세례 요한에 대한 더 할 수 없는 칭찬이 나타나 있다. 11절 상반절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인간 세상에서 세례 요한보다 위대한 선지자는 없다는 말씀이다. 얼마나 대단한 칭찬인가?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예수님께 이런 칭찬을 들었으니 얼마나 영광인가? 어떻게 이렇게 예수님께 최고의 칭찬을 받았을까?

첫 번째 이유는 세례 요한은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사명을 감당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7절에 보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라고 예수님이 말씀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란 세상 조류에 따라 이리 저리 변하는 모습을 말한다. 상황과 환경과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과 태도가 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세상에 물결에 휩쓸려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끝까지 회개를 외쳤다. 욕을 먹어도 핍박을 당해도 말씀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심지어는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빼앗은 것에 대하여 책망하였다. 그래서 결국 순교를 당했다.

두 번째는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절에 보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고 하셨다. 세례요한은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옷이란 비단옷과 같이 화려한 권세와 부요를 상징한다. 당시에 헤롯 임금이나 사두개인 제사장들은 화려한 의복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마3:4) 즉 세례요한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세상의 부귀영화에도 연연하지 않고 오직 주님이 주신 사역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 극찬을 받는 선지자가 되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세례 요한은 직접적으로 메시야 길을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길을 직접 예비한 선지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도 위대한 선지자라는 것이다. 물론 구약 선지자들이나 다른 위대한 신앙인들도 메시야에 대해 예언했고, 온갖 우상숭배와 도덕적으로 타락한 세상에 대하여 경고하며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 주님은 세례 요한을 이런 모든 선지자들보다도 뛰어난 선지자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의 길을 직접 예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대면했고, 심지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하며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어주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흥해야 하고 자신은 쇠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제자들도 예수님께로 보냈다. 그래서 요한은 극찬을 받았던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는가? 이보다 더 위대한 모습이 어디 있는가? 예수님을 직접 소개하는 일. 예수님께로 직접 인도하는 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일, 이보다 위대한 일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사순절을 맞이하여 전도를 하는 것도 그렇다.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귀한 일은 없다. 큰 일은 없다. 시급한 일도 없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을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심지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롬9:3절이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설마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다는 뜻일까? 그만큼 가족과 친척을 구원하는 것이 간절히 원하는 바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풍조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지도 말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도 말고, 오직 어찌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 일에 힘씀으로 여기서도 생명의 기쁨과 가치를 누리며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고 큰 상급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2.천국을 침노하라

세례요한을 극찬하신 다음에 그러므로 우리도 그런 모습으로 천국을 이루어 가야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12절을 보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하신다. 물론 천국은 결코 침략을 당하지 않는다. 인간도 마귀도 그 누구도 천국을 침략해서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마디로 천국을 차지하기 위하여, 혹은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하여 정보도 수집하고, 군비도 확충하고, 군량미도 확보하며 최신식 무기도 준비하고 병사들도 강하게 훈련시키는 것처럼 우리도 천국을 얻고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차지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공략하라는 것이다. 말씀을 열심히 묵상하여 천국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그 능력으로 마귀의 도전을 물리치고, 천국을 향해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한다. 또한 세상의 무사안일과도 싸우며 적극적으로 천성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세례요한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천국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공격적으로 천국을 이루어가는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저돌적이었는지 마3:7,8절을 보라.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장악하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선생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으며 너희들이 성전을 지킨다해도, 너희들이 율법선생으로 율법을 가르친다해도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열정과 적극성이 세상의 어떤 조류에도 휩쓸리지 아니하고, 세상의 어떤 협박이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천국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2:14~17절을 보자.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성전에 대한, 하나님께 대한 열정으로 그들을 꾸짖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마23장에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닫고 너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들어가게 하는구나.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하시면서 신랄하게 책망을 하신 후에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마23:33절이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런 하나님께 대한 열정, 적극성이 결국 그들의 눈에 가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것이다. 바로 그런 열정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열심을 내야한다. 세상에서 일하는 것의 반만 열심을 내어도 신앙생활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먹고사는 일을 위해서는 죽자사자 일하면서 천국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자녀교육에는 죽어라고 투자하면서 영혼의 생명의 위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세상에서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있으면 열일 젖혀 놓고 쫓아가면서 예배드리는 일이나 교회 일을 하는데는 그렇지 못하다. 자녀를 위해서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낼 수 있지만 교회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도 천국을 위하여 열심을 내야 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더 기쁜 일인가? 무엇이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인가? 무엇이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인가? 무엇이 더 행복하고 평안하고 영원토록 진정한 기쁨과 만족과 위로와 소망을 누릴 수 있는 일인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 적극적인 신앙인이 되자. 예배드리는 일과 말씀 듣는 일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자. 특별히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더욱 열심을 내자. 그래서 우선은 내가 천국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자. 동시에 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하자. 그렇게 생명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역사를 이루어가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 큰 칭찬과 상급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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