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제목 : 샬롬을 누립시다

말씀 : 대하14:1~7

 

1.부정적인 에너지를 추방합시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독특한 병 중에 화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화병은 불 화(火)자에 질병 병(病)자를 씁니다. 즉 가슴 속에 속에 불덩어리 같은 게 들어있는 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가슴속에 분노나 증오나 불평 등의 뭔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화병의 원인은 한마디로 억압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분노 증오심 불평불만 시기질투 등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쌍아둠으로써 마음속에 화덩어리가 뭉쳐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물론 살다보면 분노나 미움이나 불평불만이나 시기질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속된 말로 쎄가 빠지게 일해도 겨우 돈백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면서 시대가 하도 속되어 결혼도 조건을 보고 하는 시대라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 결혼조차하기 힘든 그런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부모가 능력이 있거나 혹은 머리가 뛰어나거나 재주가 좋아 억대 심지어는 몇 십억의 연봉을 받으며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리며 대접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그런 위치에 오르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겠지만 그래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마음에 불평불만 시기질투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경우든 원망이나 불평이나 분노나 증오나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를 마음에 담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나쁜 에너지로서 우리들의 삶에 너무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에너지가 우리 심령 속에 들어 있으면 자연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부정적이고 독하게 되고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오게 되고 공격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 심령이 황폐하게 되고 가족과 이웃에게도 상처와 고통을 주어 서로의 삶을 파괴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엡4:26,27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러니까 잠깐 분이 일어날 수는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분을 마음에 계속 품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틈타 그 분(憤)이 우리를 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5:16~18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혹시 힘들고 어렵고 심지어는 좀 억울한 일을 당한다해도 원망이나 불평이나 분노나 이런 나쁜 에너지를 마음에 품고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어렵고 힘들고 불공평하고 억울해도 실상은 우리가 받은 은혜가 더 크다는 것, 게다가 우리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직 믿음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먼저 여러분 자신이 생명의 기쁨과 평안을 마음껏 누리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그런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차피 죄와 무지 속에 있어서 불공평한 일도 있고 어려운 현실도 때로는 억울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천국에 가기까지는 그런 현실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부조리한 현실들이 없애고 평안을 누리려 하지 말고 그것을 뛰어넘어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완전한 생명이시며 진리이시며 선이시며 평안과 위로와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 들이면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말미암아 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불평불만이나 분노의 감정이 잘 일어나지도 않거니와 설령 일어난다해도 쉽게 이기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내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들임으로 주님이 나를 온전히 지배한다면 어떻게 불평불만 시기질투 미움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주님은 완전한 사랑과 기쁨과 은혜와 빛과 평안과 위로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주님이 내 이성과 생각과 감정을 완전히 사로잡으면 어떻게 우리 심령 속에서 미움과 원망과 증오와 불평불만과 시기와질투가 일어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물론 우리는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전혀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완전할 수만 있다면 완전하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완전치 못하기 때문에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일어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사로잡고 있지 않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적게 일어나고 또 내가 부족해서 일어난 그 부정적인 감정들도 사랑의 주님, 은혜의 주님, 위로의 주님, 능력의 주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인도하셔서 얼마든지 다스리며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미술대학교에서 ‘평안’을 주제로 그림경시대회가 열려 많은 학생들이 실력을 인정받고 상금도 타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실력을 동원해서 평안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주어진 시간이 지나고 심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두 학생의 그림이 최종결선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평안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한 학생의 그림은 정통적인 평화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양 옆과 뒤쪽은 푸르고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평평한 풀밭이 있는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수 앞 풀밭에는 온갖 종류의 꽃이 만발해 있고,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호숫가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다정하게 담화를 나누고 있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학생의 완전히 반대로 바닷가에 큰 바위 절벽에 엄청난 파도가 부딪쳐 사나운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바위 절벽에 있는 나무가 부러져 바다에 떠다니고 있는 사납고 험악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벽 사이의 바위틈에 갈매기 둥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바위틈 둥지에서 갈매기 새끼들이 엄마 품에 안겨 평안히 쉬고 있었습니다. 둥지 밖에는 사나운 바람과 험한 파도가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이 새끼들은 엄마 날개 밑에서 조금도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평안히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그림이 최우수작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그림은 평화롭기는 한데 너무나 이상적인 환경에 의존하는 평안으로 그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 깨질 평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그림은 그 험한 풍랑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누리는 평안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물론 외적인 평안 즉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누리는 평안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보다도 내적인 평안 즉 조건이 충족되지 못했어도 누리는 평안이 진짜 평안이고 더 중요하고 우리가 꼭 누려야 할 평안입니다. 물론 외적인 평안 즉 조건이 충족됨으로 누리는 평안도 당연히 필요하고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상황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언제라도 상황이 변하면 곧바로 사라져버릴 그런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여기에 보면 십년 동안 평안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평안은 전쟁이 없으므로 누리는 외적인 평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평안은 몇 년 동안 누렸다고 했습니까? 10년입니다. 왜 십년입니까? 십년 후에 외국군대가 침입하여 그 평안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 읽지는 않았지만 9절에 보면 10년 후에 구스 나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여 이 평화는 그만 물거품처럼 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즉 외적인 평안은 그 평안을 주는 외적인 조건이 사라지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외적인 조건은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므로 외적인 조건에서 오는 평안은 늘 불안한 평안이요 금방 사라질 평안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돈 때문에 평안한 사람은 돈이 없어지면 평안도 없어집니다. 건강 때문에 평안하면 건강이 사라지면 평안도 사라집니다. 높은 지위 때문에 누리는 평안은 지위가 사라지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돈과 명예와 권세와 건장을 지키려고 난리입니다. 왜요? 그런 것들로 평안을 누리려는 사람들은 그게 없으면 평안도 기쁨도 사라지니까요. 그래서 그것을 더 가지려고 난리를 치고 또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참 평화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평안과 기쁨과 은혜를 누리려면 외적인 평안보다 주님의 평안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진정하고 완전한 영원한 평안입니다. 주님은 모든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의 소망의 근원이십니다.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람을 잔잔케 하시고 성난 파도를 잠재우시고 모든 죄와 어둡고 칙칙하고 추하고 부정적인 것들을 쫓아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주님을 심령 속에 모셔 들이면 사탄에 속한 모든 어둠과 두려움과 분노와 원망과 불평을 쫓아냄으로 온전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14:27절에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보십시오. 내가 평안을 주겠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고 하십니다. 즉 세상이 주는 것은 잠시잠깐 뿐이요,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것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영원하고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근심걱정하지 말고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참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분명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은혜가 있고 소망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그렇게 완전한 생명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과 평안이신 예수님을 심령 속에 모셔 들이면 당연히 내 심령 속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지혜가 충만함으로 분노와 미움과 저주 원망 불평과 사나움 등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쫓아내고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충만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을 심령의 중심에 모셔 들이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주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심령 속에 모셔 들이고 주님 안에 있는 참 평안은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뭐 간단합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아야 주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으며 가까이하면 주님이 기쁨으로 내 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그러면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진정한 평안과 기쁨과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아사와 시대에 평안을 누리게 되었던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4절을 같이 읽습니다.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7절 후반절도 보겠습니다.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어떻게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찾고 명령을 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찾았다는 것은 ‘자주가다, 찾다, 구하다, 문의하다, 노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늘 하나님을 찾아가서 엎드려 기도하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고 구하며 주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심령 속에 임재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덧입게 되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적군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인도하셨고 그래서 그들이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나타난 것은 주로 외적인 평안을 의미하지만 외적인 평안이든 내적인 평안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심령 속에 임재하시면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내적인 것이든 외적인 것이든 세상의 것을 이기고 평안과 기쁨과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평강의 주님이십니다.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성난 파도를 명령하여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난 바람을 명령하여 잠재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심령속의 모든 두려움과 공포와 욕심과 독과 화를 제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만이 참 평안을 줄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이 만이 평안을 주실 수 있고 끝까지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그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사랑과 지혜와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그러면 그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서 외적인 것이든 내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 안에 진정한 평안과 위로와 기쁨이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며 세상의 다른 어떤 것들을 찾기보다 하나님을 열심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능력과 은혜와 평안을 충만하게 덧입어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기고 참된 평안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온전한 평안을 누리려면 먼저 주님을 찾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왜 하나님을 찾습니까? 물론 먼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주님의 생명과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덧입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열심히 찾아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얻었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진정 생명의 은혜와 능력과 평안이 넘치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찾아와서 말씀을 듣기만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그 찾아온 발걸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요, 4,5절의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나라가 평안했는데 어떻게 평안했습니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우상을 깨트리고 율법과 명령을 다 행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뭐 당연하지 않습니까? 생명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의 근원이신 하나님, 완전한 선과 진리와 의이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시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어찌 평안이 없겠습니까? 반대로 이런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탄의 조종을 따라 살아간다면 어찌 평안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은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소망이 있기에 분명히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그런 놀라운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허물 많고 미련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지만 우리 주님은 모든 마귀 사탄의 역사를 결박하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분 안에는 그 어떤 어둠도 깃들 수 없습니다. 마귀 사탄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이 득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오늘 말씀을 분명히 기억하며 진정한 생명과 평안과 위로와 기쁨은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권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여러분의 심령의 중심에 온전히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더욱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가까이와서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모셔들이고 찾고 가까이 하며 주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일상의 삶속에 온전히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죄와 무지와 왜곡된 가치관이 판을 치고, 그래서 불공평하고 힘들고 심지어 억울한 일을 만나기도 하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주님의 능력과 은혜와 지혜와 인도하심으로 그러한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이기고 하나님이 무한정으로 내려주시는 샬롬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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