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말씀 : 수14:6-12
제목 : 멋있는 인생
1.내면이 멋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멋있는 게 뭡니까? 보통은 멋있다 그러면 겉모양을 생각하죠. 저 사람 멋있다. 아름답다. 그러면 인물도 좋고 허우대도 멀쩡하고 세련되고 그러면 보통 멋있다. 아름답다 그러죠. 물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도 있듯이 기왕이면 외모도 멋있고 아름다운 것이 좋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누구나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 못나고 추한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정말 멋있고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은 외면이 아름답고 멋있는 것보다는 내면이 아름답고 멋있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설령 겉보기에는 썩 아름답고 멋있고 세상적으로 내 놓을 만한 것이 없어도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은 뭔가 모르게 그 사람에게서 향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반면에 설령 높은 지위와 학식이 있고 멋있게 생겼어도 내면이 추하거나 악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삶속에서 악취가 나게 마련 인 것입니다.
사실 뭐 당연한 거죠. 여러분, 우리 삶의 모습들이 무엇에 의하여 결정됩니까? 물론 내면 즉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지요. 안 그래요? 우리 마음속에 올바르고 고상하고 깨끗하고 의롭고 선한 것들이 들어있다면 당연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반면에 왜곡되고 추하고 거짓되고 악한 것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면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눅6:45절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말씀그대로 마음속에 선이 쌓여 있으면 선한 행동이 나오고, 악이 쌓여 있으면 악한 행동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또 삼상16:7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은 외모 권력 능력 돈 조건 등의 외적인 조건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마음이 얼마나 진실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성결하고 사랑과 은혜가 많으냐 그걸 본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게 선이니까요. 그게 인간의 생명을 아름답게 하는 거니까요. 그게 우리를 아름답고 평화롭고 복되게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물론 기왕이면 외적인 것도 아름답고 넉넉하고 멋있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어찌하든지 먼저 여러분의 심령을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선과 진리로 채우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향기가 있고 아름다움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쳐나는 아름답고 복되고 멋진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대접받기보다 역할에 충실했던 사람
오늘 본문에는 바로 이런 귀하고 훌륭하고 아름답고 멋있는 분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갈렙이라는 분인데 오늘 말씀에 보면 이 분이 얼마나 멋있고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이분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40년동안 힘든 생활을 보내고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도착하여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꿈에도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도착하여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누구나 기왕이면 좋은 위치에 많은 면적을 분배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혹은 우리 지파는 출애굽과 광야생활에서 이렇게 충성하며 공적을 세웠다며 은근히 자신을 내세우며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갈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12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여러분, 보세요. 갈렙은 어떤 땅을 달라고 합니까? 헤브론 산지입니다. 게다가 그 땅에는 누가 있다고 했습니까? 아낙 자손 즉 거인 족속들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리고 견고한 성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고많은 땅 중에 하필 그 땅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넓은 들판에 초지가 형성되어 있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꽃들이 만발하고 그래서 농사를 짓거나 목축하기에 좋은 땅이 아니라 반대로 산지에 그것도 거인들이 살고 있고 견고한 성읍이 있어 정복하기도 힘든 땅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갈렙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45년전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이 각 지파별로 한명씩 열 두명의 정탐꾼을 보낼 때에 유다지파의 대표자로 선발되어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40일 동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를 할 때에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이 그 땅 거민이 워낙 강하고 성읍도 튼튼해서 그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할 때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그들이 비록 강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외쳤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수인 열 명의 정탐꾼의 이야기를 듣고 원망하고 불평하여 결국 출애굽 1세대의 사람들은 다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외쳤던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만 살아남아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즉 갈렙으로 말할 것 같으면 출애굽 1세대 중 여호수아와 함께 딱 두 명 밖에 살아있지 않은 이스라엘의 어른 중에 어른이요, 원로중의 원로요, 이스라엘 역사의 산 증인이요, 이스라엘의 영적 정신적인 지주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만하면 이제는 대접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나이로 보나 공로로 보나 지위로 보나 무엇으로 보아도 이제는 좋은 땅을 분배받아 좀 편히 쉴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까? 오랫동안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하며 공적을 남기며 이스라엘을 이끌어왔던 원로중의 원로이니 백성들이 미리 알아서 대접을 해 줄만한 위치에 있고, 그럴만한 충분한 권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갈렙은 오히려 산지를 내게 달라...... 거기 비록 아낙 자손이 거하고 있지만 그까짓 것 문제될게 없다... 비록 그 성읍은 크고 강하고, 내 나이 85세로 비록 늙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나는 충분히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 그러니 거인이 거하고 있는 그 땅, 크고 견고한 성읍이 있는 그 땅을 내게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물론 일차적으로는 믿음 때문이었고 동시에 그는 자신이 뭔가 한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그 자체가 축복이요 감사거리였고 영광을 돌릴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안 그래요?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마음과 힘과 능력과 지혜와 여건과 상황과 환경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닙니까? 정말 내가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마을에서나 국가에서나 뭔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은혜요 기쁨이요 영광입니까?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까?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초라한 인생입니까? 아니 얼마나 무가치한 인생입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마을이나 국가를 위해 무언가 기여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건 너무나 큰 축복이요, 감사거리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뭔가 좀 했다고 내세울 일이 무엇입니까? 대접받으려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오히려 감사한 것 뿐이요, 영광스러운 것 뿐이지요.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무언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정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었던 게 복이요 은혜요 귀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내세우거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더욱 감사와 기쁨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귀히 쓰임받는 복되고 아름답고 멋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85세나 된 어른의 대단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갈렙은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가운데 오직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정말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역사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찍이 45년전 다른 열 명의 정탐꾼들이 한결같이 이 땅 사람들은 거인이요, 성읍은 요새라서 우리는 도저히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했을 때에 ‘무슨 말이냐, 이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비록 강할지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외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45년의 세월이 지나 나이가 85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 85세이면 이젠 패기도 용기도 도전심도 다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하며 편히 쉬며 대접받으며 살고 싶어할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지금도 여전히 젊은이와 같은 아니 젊은이보다 나은 믿음과 용기와 도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로중의 원로요, 어른 중의 어른인 그가 ‘나는 산악지대이든, 거인이 거하든, 견고한 성읍이 있든 관계없다. 그 땅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땅이니 내가 가서 점령하겠노라고, 그러면 그 땅은 반드시 내 땅이 될 것이라.’며 헤브론 산지를 요구한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85세의 노인이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요? 물론 그건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 말씀은 신1:36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들은 우리 밥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그 땅은 우리 땅’라는 긍정적인 보고를 했을 때 그 믿음대로 내가 그 땅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렙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곳이 산지이든, 아낙자손이 있든, 성읍이 강하든 내가 가서 취할테니까 나에게 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당연히 이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완전한 능력과 사랑과 지혜와 권세와 선과 의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은 완전한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입니다. 오직 거기에 생명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오직 그 말씀을 믿고 주님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그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은혜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거기 생명이 있고 은혜가 있고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말씀따라 살기보다는 자기 생각과 경험과 지식과 이성대로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우리 인생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잘나고 똑똑하고 위대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도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때로는 정말 대단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은 얼마나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 속에 있는지 모릅니다. 아는 게 많은 것 같지만 실상은 쥐꼬리 만큼도 안됩니다. 모르는 것이 천배만배 더 많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지만 못하는 만배 억배 더 많습니다. 우주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선과 진리와 의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생각과 지식과 경험만을 믿고 살아간다며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고 무모한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 안 그래요? 모르고 할 수 없는 것이 천배만배억배 더 많은데 어찌 자기 지식과 경험을 따라 살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가지고서야 어찌 진정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가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인간의 경험과 논리와 지식과 환경과 이해관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유일한 전능자이시여 전지하시고 완전한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진리와 선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약속을 믿고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다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순수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갈렙에게서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성실함입니다. 오늘 7절을 보세요.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여기서 ‘내 마음에 성실한대로’라는 말씀은 그 어떤 가식이나 꾸밈이나 과장이나 거짓 없이 오직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내가 확신하는 그대로 보고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나안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 땅은 우리 땅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보고는 전혀 과장도 아니요, 허풍도 아니요, 꾸밈도 아니고, 아부의 말도 아니고 마음에 있는 사실 그대로, 확신한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내게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너무나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땅은 우리 땅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전혀 의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과 믿음은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믿음입니다. 주님은 완전히 신뢰할 만하고, 주님의 약속은 100% 진짜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순도가 100%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100%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정말로 갓난아기가 엄마를 100%신뢰하고 죽으나 사나 엄마 손잡고 따라가듯 주님의 손을 잡고 졸졸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갈렙은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진실로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인 신뢰속에서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85세가 된 지금까지 변치 않는 성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순수하고 성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의 권리나 대접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땅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땅으로 들어가 결국 견고한 성읍을 무너뜨리고 거인들을 물리치고 그 산지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살다가 마침내의 아름다운 인생을 마감하고 할렐루야 찬양하며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갔습니다.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한 그의 삶에는 얼마나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넘쳤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귀한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과 성실함으로 주의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언가 한 일이 있다면 자신의 권리나 공로나 업적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은혜요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가정이든 교회이든 사회이든 어느 곳에 있든지 믿음과 감사와 기쁨으로 충성스럽게 역할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과 은혜 가운데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남에게도 생명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복된 아름답고 멋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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