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제목 : 어느 부자 청년의 번민

말씀 : 막10:17-22

 

1.어리석은 선택

여러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어떤 때는 너무너무 똑똑하고 잘나고 멋있는데 어떤 때는 정말 어리석고 바보 같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착하고 대견스럽고 훌륭한데 또 어떤 때는 정말 무지하고 추하고 심지어 악할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어리석고 바보 같은 것은 하나님과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런 건 없다고 하고 자기 힘과 돈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교회나 절이나 사원이나 아무데나 다니면 좋은 데 간다고 하며 나름대로 종교생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종교고 뭐고 그냥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게 천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참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아니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합니까? 자기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아니 다 똑같은 죄인이요 무지한 자요 어리석은 자인데 그걸 가르쳐 줄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아니며 죽어서 확인이라도 해 봤습니까? 아니 진짜 그렇잖아요?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는 인간이 그래서 이 세상의 일도 만분의 일, 억분의 일도 모르면서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과 창조와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알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한계 속에 있는 존재로 본질적으로나 일상생활에서나 무지하고 어리석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런 근원적인 문제들은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릅니다. 아니 근원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펼쳐져있는 현상적인 문제들도 아는 것은 쥐꼬리만큼도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알고도 때로는 몰라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도 그랬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청년은 인간적으로는 돈과 명예도 있었고 인격적으로도 상당히 멋있고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마19:20절에서는 이 사람을 청년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눅18:18절에는 관원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22절에는 재물이 많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17절에 보면 이 청년은 예수님이 자기 마을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 앞에 무릎 꿇고 영생의 길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부자였고, 관원이었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영생의 길을 물을 만큼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진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참 여러모로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부자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윤리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있었고 진리에 대한 관심도 컸던 사람이었지만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만 영생의 길을 포기하고 근심하며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다고요? 부자라서...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긴 한데 돈을 다 포기하라고 하니까 너무 아까워서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예수님 말씀을 거역하려니 너무 괴롭고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슬퍼하며 근심하다가 결국은 돈에 져서 근심에 쌓여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무지하고 어리석고 연약한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는 나름대로는 정말 멋있고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그만 돈에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이요 그래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우리가 이렇게 무지하고 허물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며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결코 내 생각이나 경험이나 이성을 좇아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함으로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잘 달려가 진정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복된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청년은 왜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2.예수님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청년의 결정적인 잘못은 예수님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17절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러분, 보세요.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참 괜찮은 청년 아닙니까? 예수님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선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거기다가 영생에 대한 관심과 갈망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의 결정적인 오류는 예수님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줄 알지 못했고,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결국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의 길을 버리고 세상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청년은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주님이 아닌 선한 선생 정도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의 잘못된 시각을 고쳐 주시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8절을 같이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여러분, 그러면 예수님이 선하시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이 선하시지 않다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은 아무도 선한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예수님을 선한 사람으로 아니까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나를 선한 사람으로 알고 찾아왔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 정도가 선한 선생에게서 영생의 길을 찾으려고 하는 그 시도부터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히 선하시고 그 분만이 영생의 길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선한 선생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진정한 선한목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나를 바르게 알고 나를 믿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영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청년에게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존경받으실 만한 인류의 스승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무지에 의한 커다란 오해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성인 즉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인간은 아무리 위대해도 완전한 선한 선생이 될 수도 없고, 더더구나 인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구세주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위대하고 선하고 아름답고 멋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우리는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의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미련함과 한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시오, 완전하게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완전하고 영원한 스승이시며 구원의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 청년처럼 자신의 그 알량한 생각과 경험과 이성을 가지고 예수님께 대하여 제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버리고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의 죄와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고 내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온전히 엎드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고 그 예수님 말씀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온전히 해방되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것은 물론 지금 여기서도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영생의 길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이 부자청년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오류는 영생의 길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여 선한 행위로 영생을 얻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17절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보세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즉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얼마나 선을 행해야 구원을 받느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18절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은 완전히 선할 수 없으므로 어떤 선한 행동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서 계속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정말 선을 행하여 구원을 받으려 한다면 이런 계명들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참 괜찮은 청년이었는데 또 어리석고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여러분, 참 맹랑하지 않습니까? ‘다 지켰습니다.’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상대적으로 남보다 좀 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 지켰다고 말한 것은 상대적으로는 꽤나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아왔을지 모르지만 그가 얼마나 무지 속에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1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를 사랑하사.... 나름대로 선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무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깨닫게 하시려고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네가 정말로 완전히 선하게 살아왔다고 여기느냐? 그렇다면 네가 정말 완전히 선한 존재라는 것을 네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을 통해 입증해 볼 수 있겠니? 네가 정말로 온전히 선하다고 여기고 또 나를 선한 선생으로 안다면 나의 말을 100% 따를 수 있겠니? 그렇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거라. 그러면 내가 인정해 주리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 자신만만했던 사람은 그만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맙니다. 근심과 고민에 쌓이고 맙니다. 그리고는 힘없이 돌아서서 예수님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인간의 선과 의와 똒똑함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무지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제 아무리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모두가 약하고 어둡고 죄가운데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제 아무리 똑똑하다고 여겨도 무지한 존재요, 제아무리 선해도 악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함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따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돈이나 선이나 권세나 지식이나 철학으로도 안되고 백년 천년 만년 도를 닦아도 안되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 모든 자만심, 지식, 경험, 이성 다 버리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부족함, 어리석음, 죄됨, 모두 고백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만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길임을 믿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함으로 주님의 은혜를 덧입어 구원받고 여기서도 진정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물질에 인생의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청년의 또 다른 오류는 물질을 진리보다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하고, 가장 절실한 것인지 그걸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보았던 22절 다시 봅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참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영생과 진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고, 겸손히 무릎 꿇고 진리의 길을 물었고, 계명을 모두 지켰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청년이 네가 그렇게 완벽하게 계명을 지켰다면 네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모든 재물인데, 그러면 난 뭐 먹고 살라고, 무슨 재미로 살라고 하면서 가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정말로 예수님은 그 청년이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정작 자신은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했다가 망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초라하고 흉하고 궁핍하게 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말도 안되는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칼을 들어 아들을 죽여 번제로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십니다. 아니, 쟤가 정말로 아들을 잡아 제사를 드리려는 거야. 저런 순진한 녀석. 얘야, 안된다. 그만 두어라. 칼을 멈춰라. 깜짝 놀라서 아브라함을 가까스로 말리고 옆에 양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더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청년이 정말 예수님을 진정으로 메시아로 영접하고 그 말씀대로 재산을 다 팔려고 했다면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을 말렸거나 아니면 다 주게 하신 다음에 더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청년의 재산을 다 파느냐 안 파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청년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얼마나 순종하느냐,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 그게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예수님도 우선순위도 제대로 몰라 그만 낭패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예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우선순위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바르게 알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 때에 진정 생명의 은혜가 넘치고 참된 자유인이 됩니다. 평강과 위로와 소망이 넘쳐나 이 땅에서 누려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받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다 잘나고 똑똑하고 선한 것처럼 여기면서 예수님도, 인생의 우선순위도 몰라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들조차도 이런 우선순위를 혼동하고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고, 세상 즐거움을 더 중요시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을 더 중요시하고 그것을 좇아가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보 같은 일입니다. 그건 결코 생명의 길이 아닙니다. 결코 거기에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안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오직 말씀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 거기에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단순히 위대한 성인이 아닌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고 알고 바르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 주님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오로지 우리 주님과 그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가치와 목표와 방향을 우선순위로 삼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도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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