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Sunday night worship
제목 : 진정한 승리자
말씀 : 딤후2:7-13
딤후2장에서 사도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병사)라고 말씀한다.(3,4절) 왜냐하면 세상은 영적인 전쟁 터이기 때문이다. 안 그런가? 마귀사탄이 얼마나 교활하게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가? 얼마나 무리를 넘어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가? 그래서 벧전5:8절에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엡6:12절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전신갑부를 입으라고 하신다.
그렇다. 세상은 치열한 영적 전쟁터이다. 사탄마귀가 끈질기게 우리를 공격한다. 때로는 사납고 포악하게 때로는 교활하게 때로는 달콤하게 다가와 유혹하여 넘어 뜨리려고 한다.
그래서 앞 부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운데 강하라, 말씀을 가르치라, 승리하려면 예수의 은혜로 강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받으라, 주님을 기쁘게 하라, 법(말씀)대로 살라고 하셨다. 왜? 그래야 우리가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어 사탄마귀의 흉계와 거짓을 간파하여 물리치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런 것들과 싸워 이김을 우리 자신이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계속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의 삶의 태도에 대하여 말씀한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에 주님의 은총을 덧입어 더욱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우뚝 서서 모든 마귀사탄의 역사와 흉계와 도전을 물리치고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자.
1.말씀을 묵상하여 총명을 얻으라.
딤후2:6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내가 말하는 것이란 앞의 말씀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1~6절의 말씀들이다. 예수의 은혜로 강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님과 함께 고난에 참여하고,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라. 그러면 주께서 총명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총명이란 물론 진리를 아는 것이다. 바르게 알고 깨닫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을 따라 살게 된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면 고난이 와도 이긴다. 세상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러면 평안을 누리고 기쁨과 자유를 누린다.
과연 무엇이 총명인지, 총명을 어떻게 얻는 지 기억하라. 물론 말씀이다. 거기에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희망이 있다. 그러므로 언제 어느 때나 말씀을 묵상하며 심비에 새기고 그 말씀을 잣대와 등불과 희망과 소망과 힘으로 삼고 그 말씀을 의지하여 주님과 동행하라. 그리하여 그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서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그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자.
2.예수님을 기억하라.
딤후2: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은혜의 길을 잘 달려가 승리하려면 예수님을 생각하라. 예수님을 생각하되 십자가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라. 그러면 무엇을 따라 가야 할지 알리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리라. 진정 진리가 무엇인지 알리라. 능력을 받으리라.
무엇이 생명인가? 무엇이 은혜인가? 어디에 영광이 있나? 어디에 기쁨이 있나? 무엇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인가? 무엇이 소망인가? 무엇이 영생복락을 가져다 주나? 무엇이 진정 영광스러운 삶인가? 물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셨다. 우리도 거기에 동참해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야 한다. 오직 거기에 생명과 구원과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다. 지금 여기서도 진정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선과 진리와 의 가운데 살아간다. 그래서 참된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된다. 세상의 모든 환경과 상황을 이기게 된다. 사탄의 역사를 분별하고 물리치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방법을 따르며 주님과 동행함으로 생명의 은총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3.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
딤후2: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말씀으로 인하여 숱한 고난을 받았다. 주의 복음을 증거 하다가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다. 그것도 순교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말씀이 막힌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너무나 엄청난 장벽이 앞을 가로막아 답답할 때도 있었다. 조바심이 날 때도 있었다. 걱정과 염려가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낙심과 절망과 원망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중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어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도리어 죽음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는 더욱 힘있게 이루어져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독교역사는 고난 시에 도리어 생명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났다. 때로는 위축되는 듯이 보여도 때로는 심지어 배교자도 생기기도 해도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런 환난과 핍박을 통해 생명의 역사는 더욱 힘있게 이루어져 왔다.
반면에 잘먹고 잘살고 평안하고 안전하고 걱정과 염려가 없을 때 기독교역사는 도리어 퇴보했다. 서양교회가 그렇고 우리나라 교회가 그렇다. 어렵고 힘들 때 도리어 하나님 앞에 간절히 무릎 꿇었다. 우리의 무능을 인정하게 되었다. 의지할 곳은 하나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엎드려 도우심을 구했다. 주님 앞에 매달렸고 힘들고 어려워도 오히려 더 봉사했고 오히려 더 열정을 가졌다. 그럴 때 교회는 힘과 능력과 은혜가 있었다. 거룩한 삶이 있었다. 그래서 비록 힘들지만 그들은 생명력있는 신앙생활을 유지했고,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왔다.
그런데 잘먹고 잘살고 여유가 생기고 그러니까 도리어 나태해졌다. 평안해 지니까 아쉬운 게 없어졌다. 등 따뜻하고 배불러지니까 슬슬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것이 좋았고, 재미있는 게 많아졌다. 세상에서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 졌다. 좋은 세상이라며 세상으로 자꾸만 나갔다. 그래서 하나님과 도리어 멀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결코 우리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난이 우리를 주님 앞에 묶어두는 끈과도 같다는 것을 기억하며 고난에 동참하라. 그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기억하며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라. 원망하지 말라. 도리어 고난 가운데 더욱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계기로 삼으라. 그래서 주님 안에 있는 은헤의 풍성함을 마음껏 누리라.
4.고난은 영광을 가져다 준다.
딤후2:10~12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바울은 고난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말씀을 결코 막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서 어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역사를 위하여 달려갔다. 왜? 자신이 영광의 나라를 누리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그 영광에 참여하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저들이 영원한 형벌 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복음의 역사에 진력했다.
그래서 10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11절에서는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라고 하였다. 또 12절에서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즉 그의 복음의 사역에는 정말 많은 고난들이 있었지만 죽어가는 영혼들을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하여, 주와 함께 죽으면 주와 함께 살아 영원한 영광을 차지할 것을 믿었기에, 참고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달려가면 주와 함께 왕노릇 할 것을 알았기에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 힘차게 달려갔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말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고난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 생각과 뜻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역사로 된다. 우리는 다만 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때로 바라보며 열심히 씨를 뿌리고 가꾸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1절 말씀처럼 죽어야 한다. 내 자아가 죽고 내 가치관과 목표와 목적과 삶의 양식과 우선순위와 방법과 경험이 죽고 주님의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다시 살게 된다. 영광을 누리게 된다. 죽지 않으면 다시 살지 못한다. 영광도 누리지 못한다. 죽지 않으면 거듭난 것이 아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새것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죽으면 다시 산다. 주님의 것이 된다. 주님과 동행하게 된다. 그러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여러분, 다시 산다는 것,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냥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다시 사는 것이다. 왕노릇 한다고 무슨 권력을 휘두르고 명령을 내리고 복종시키고 그런 왕노릇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완전한 영광을 누리는 상태를 말한다. 그 어떤 악의 세력이나 어둠의 세력이 근접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왕도 누릴 수 없고 어떤 백만장자라도 누릴 수 없고 어떤 지식인이라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까짓 세상의 왕이나 부귀영화나 권세 따위는 새발의 피도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까짓 세상 명예와 부귀영화 따위는 배설물로 여기고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 수고했던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런 은혜를 누리자.
5.주님의 약속은 완전하다.
딤후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미쁘다는 것은 완전히 믿을만하다. 신뢰할만하다는 뜻이다. 즉 우리는 신뢰할만하지 못하지만 주님은 완전히 신뢰할만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주님은 항상 미쁘시다. 주님을 결코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다. 자기를 부인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메시야로서의 정체성은 물론 자기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자신의 말씀과 약속과 행동에 대하여 완전히 책임을 지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황이 불리하면 오리발을 내밀기도 하고, 아니면 능력이 없어 못하기도 하지만 주님은 절대로 딴 소리도 안하시고 능력이 없어 못하지도 않으신다. 약속을 100% 완전히 지키시는 능력자이시고 신실하신 분이시다.
그렇다. 주님의 나라는 너무나 확실하다. 주님의 약속은 100%이루어진다. 주님의 재림도 천국도 완전하게 이루신다. 영광의 나라도, 영광의 면류관도 완전히 100% 다 이루신다. 세상이 쪼개지고 박살나도 주님의 약속은 변개치 않는다. 아니 도리어 세상이 박살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온전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감사하라. 기뻐하라. 우리에게 이 놀라운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를 알지 못하는 죽어가는 저 많은 영혼들을 주님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더욱 기도하고 힘쓰자. 그런 진리를 위한 삶을 살려면 고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광의 고난임을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참여하자. 그러기 위해 더욱 주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거듭난 자아로 살아가자. 그래서 주께 영광돌리고 주님의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그 역사를 이루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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