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Sunday night worship
말씀 : 마11:7~12
제목 : 천국을 침노합시다.
1.가장 위대한 선지자 세례 요한
오늘 말씀에 보면 세례 요한에 대한 더 할 수 없는 칭찬이 나타나 있다. 11절 상반절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인간 세상에서 세례 요한보다 위대한 선지자는 없다는 말씀이다. 얼마나 대단한 칭찬인가?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예수님께 이런 칭찬을 들었으니 얼마나 영광인가? 어떻게 이렇게 예수님께 최고의 칭찬을 받았을까?
첫 번째 이유는 세례 요한은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사명을 감당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7절에 보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라고 예수님이 말씀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란 세상 조류에 따라 이리 저리 변하는 모습을 말한다. 상황과 환경과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과 태도가 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세상에 물결에 휩쓸려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끝까지 회개를 외쳤다. 욕을 먹어도 핍박을 당해도 말씀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심지어는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빼앗은 것에 대하여 책망하였다. 그래서 결국 순교를 당했다.
두 번째는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절에 보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고 하셨다. 세례요한은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옷이란 비단옷과 같이 화려한 권세와 부요를 상징한다. 당시에 헤롯 임금이나 사두개인 제사장들은 화려한 의복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마3:4) 즉 세례요한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세상의 부귀영화에도 연연하지 않고 오직 주님이 주신 사역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 극찬을 받는 선지자가 되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세례 요한은 직접적으로 메시야 길을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길을 직접 예비한 선지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도 위대한 선지자라는 것이다. 물론 구약 선지자들이나 다른 위대한 신앙인들도 메시야에 대해 예언했고, 온갖 우상숭배와 도덕적으로 타락한 세상에 대하여 경고하며 그것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 주님은 세례 요한을 이런 모든 선지자들보다도 뛰어난 선지자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의 길을 직접 예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대면했고, 심지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하며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어주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흥해야 하고 자신은 쇠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제자들도 예수님께로 보냈다. 그래서 요한은 극찬을 받았던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는가? 이보다 더 위대한 모습이 어디 있는가? 예수님을 직접 소개하는 일. 예수님께로 직접 인도하는 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일, 이보다 위대한 일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사순절을 맞이하여 전도를 하는 것도 그렇다.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귀한 일은 없다. 큰 일은 없다. 시급한 일도 없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을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심지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롬9:3절이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설마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다는 뜻일까? 그만큼 가족과 친척을 구원하는 것이 간절히 원하는 바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풍조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지도 말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도 말고, 오직 어찌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 일에 힘씀으로 여기서도 생명의 기쁨과 가치를 누리며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고 큰 상급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2.천국을 침노하라
세례요한을 극찬하신 다음에 그러므로 우리도 그런 모습으로 천국을 이루어 가야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12절을 보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하신다. 물론 천국은 결코 침략을 당하지 않는다. 인간도 마귀도 그 누구도 천국을 침략해서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마디로 천국을 차지하기 위하여, 혹은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하여 정보도 수집하고, 군비도 확충하고, 군량미도 확보하며 최신식 무기도 준비하고 병사들도 강하게 훈련시키는 것처럼 우리도 천국을 얻고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차지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공략하라는 것이다. 말씀을 열심히 묵상하여 천국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그 능력으로 마귀의 도전을 물리치고, 천국을 향해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한다. 또한 세상의 무사안일과도 싸우며 적극적으로 천성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세례요한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천국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공격적으로 천국을 이루어가는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저돌적이었는지 마3:7,8절을 보라.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장악하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선생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으며 너희들이 성전을 지킨다해도, 너희들이 율법선생으로 율법을 가르친다해도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열정과 적극성이 세상의 어떤 조류에도 휩쓸리지 아니하고, 세상의 어떤 협박이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천국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2:14~17절을 보자.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성전에 대한, 하나님께 대한 열정으로 그들을 꾸짖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마23장에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닫고 너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들어가게 하는구나.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하시면서 신랄하게 책망을 하신 후에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마23:33절이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런 하나님께 대한 열정, 적극성이 결국 그들의 눈에 가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것이다. 바로 그런 열정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열심을 내야한다. 세상에서 일하는 것의 반만 열심을 내어도 신앙생활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먹고사는 일을 위해서는 죽자사자 일하면서 천국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자녀교육에는 죽어라고 투자하면서 영혼의 생명의 위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세상에서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있으면 열일 젖혀 놓고 쫓아가면서 예배드리는 일이나 교회 일을 하는데는 그렇지 못하다. 자녀를 위해서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낼 수 있지만 교회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도 천국을 위하여 열심을 내야 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더 기쁜 일인가? 무엇이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인가? 무엇이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인가? 무엇이 더 행복하고 평안하고 영원토록 진정한 기쁨과 만족과 위로와 소망을 누릴 수 있는 일인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 적극적인 신앙인이 되자. 예배드리는 일과 말씀 듣는 일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자. 특별히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더욱 열심을 내자. 그래서 우선은 내가 천국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자. 동시에 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하자. 그렇게 생명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역사를 이루어가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 큰 칭찬과 상급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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