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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삶] 주일 낮 예배 대표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일 새 아침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거룩한 주일에 드리는 우리의 정성과 예배와 기도를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은 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사하여 주옵소서! ?

 

우리가 병들고 허약하면 마음마저 약하게 되오니 강하게 붙들어 주옵소서.

우울하고 약한 우리 마음에 오셔서 기쁨을 주시고 힘이 되어 주옵소서!

우리 마음에 새 생명을 주셔서 우리 영혼이 되살아나서 우리 생활 속에

사랑과 기쁨과 찬송이 넘치게 하옵소서!

 

교회를 각 지역에 세우신 것은 그 지역의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로

삼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명을 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고,

이 지역을 덮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가난과 굶주림에 떨고 있는 분들과 몸이 아파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속히 응답히사 모든 질병에서 완쾌되게 하시고

돈 문제의 고통에서 속히 벗어나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에 속히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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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지역 / 구역 배 도문

 

 


우리 삶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의 장막안에 거하며 주와 함께 동행하는 자들 되게 하옵소서.

세상과 타엽하고 세상을 쫓는 자들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붙잡고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주를 향한 사랑을 회복하고 끝까지 지켜 나가게 하옵소서.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주님 주시는 지혜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의 시선을 주께 두고, 주의 뜻에 따라 겸손하게 믿음의 걸음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가 겸손하고, 온유하고, 오래참으며, 사랑으로 용남함을 가지고 하나되기에 힘써

부르심에 합당한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들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주님 말씀안에서 자제 되어지도록 주여 함께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주의 자녀 삼아 주시고, 구속하사 주 믿게 하신 한없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허물 덮어주시고 중한 죄를 사하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늘 기뻐함으로 감사 찬송드리는 우리의 삶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형편 아시고 때에 따라, 처한 상황에 맞게 은혜를 더하시고 보호하시는 섭리하심이 그 얼마나 큰지요.

주의 사랑이 크고 놀라움에 주를 찬양하며 경배하는 우리 되게 하옵소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며,

사랑있는 예배, 섬김, 구제를 나누는 자들 되도록 우리 마음에 풍성한 은혜를 더하여 주시길 소망합니다.

 

예배 드리는 이 시간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하사,

주께 영광 돌리며 감사와 찬양 드리는 귀하고 복된 시간 되도록 주여 함께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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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성장을 위한 단계별 조건

 

 


1. 승리하는 목회의 조건은 성경말씀과 목회 Tools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씀은 신약과 구약을 말하며, Tools은 전도 ---> 정착 ---> 양육/훈련 ---> 사역의 단계를 거쳐서 교인들을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system은 대그룹인 전체 예배와 소그룹 모임을 통해 이루어진다.

 

2.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교인들의 "가치 전환"을 가져와야 승리하는 목회를 할 수 있다. 세상적 가치관에서 신앙적 가치관으로 전환되도록 목회를 해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난다. 가치관이 바뀌면 아들의 권위(sonship)와 왕권(kingship)이 회복된다.

 

3. 가치 전환이 된 신자들을 통해 재생산(Reproduction)을 할 수 있는 신자를 기르는 system을 구축해야 한다.

4. 첫 단계인 전도는 전하는 자의 언어와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도된 자를 전도자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하고, 양육하여 사역을 감당하는 단계에 이르도록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5. 두번째 단계인 정착을 위한 grouping에만 중점을 두어서 안된다. 100% 정착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정착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른 교인들과의 관계 맺기이다.

 

6. 세번째 단계인 양육에만 중점을 두면 머리만 커지고 열매가 없어진다. 성도들의 마음의 밭을 기경해야 한다. 교인들을 양육할 교육과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교인들의 가치관과 제자로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7. 네번째 단계인 사역에만 집중하면 "신병훈련소"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전락한다. 사역은 예배 사역과 소그룹 사역, 지역섬김 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새신자에게 사역을 맡기면 빨리 정착하게 된다. 새신자는 다른 교인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원하며 그 조직 내에서 역할을 하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를 원한다. 사역의 목적은 재생산할 수 있는 교인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8. 대그룹 예배는 일방적인 예배이다. 소그룹 예배는 쌍방이다. 이 예배를 통해 성도들이 '은혜'를 받게 된다. 교인들이 은혜를 받게 되면 모든 일에 헌신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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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대해서 
 

 

 

 

예배

'예배'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 '아바드'는 '봉사', '섬김'이란 뜻으로, 영어의 service와 유사한 개념이다. 또 '솨하'는 '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으로, '숭배', '순종', '섬김'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는 '프로스'(~에게)와 '퀴네오'(입맞추다)의 합성어로, 원래는 종이 주인에게 문안할 때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조아리며 발에 입맞추는 것을 가리켰다. 또 '라트레이아'는 '(종으로서) 섬기다'(마4:10)는 뜻을, '레이투르기아'는 예전으로서의 의식(ritual)을 뜻하는 단어이다(행13:2).

한편, 영어로 예배를 나타내는 'worship'은 원래 앵글로색슨어인 'weothscipe'에서 유래한 것으로 'weprth'(worth, '가치')와 'scipe'(ship, '신분')의 합성어인데, '존경과 존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이며,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임을 알 수 있다. 즉,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경외심이 수반된 엄숙한 행위임을 보여 준다(요4:20).

결국 예배란,
① 유일한 예배 대상인 하나님을 의식하며
② 전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경외심을 가지고 경배하고,
③ 하나님의 높으심과 그 은총을 찬양하며,
④ 섬기는 거룩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또한, ⑤ 예배는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가 그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감사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를 찬양하고 기쁘시게 하는 행위'이며,
⑥ '중생한 신자가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 신앙고백, 뜻과 정성이 담긴 헌신과 감사의 예물을 통해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며,
⑦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배하고 섬기며 봉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요4:20; 행16:14; 빌3:13).
또, ⑧ 성경은 '전 인격과 온 삶을 통한 산 예배'를 강조하고 있다(롬12:1).

이상에서 보듯이, 예배의 대상은 거룩하시고 영존하시며 오직 한 분이시고 인격적이시며 영이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대상이시다(출20:3; 신4:35, 39; 사44:6-23; 고전8:4).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소부재하신 분이므로 신자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으나 특별히 성별된 장소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주의 날에 함께 모여 공동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한편, 개혁신학에서는 이 '예배'를 '찬송', '기도', '말씀', '헌상', '성례전'과 더불어 여섯 가지 은혜의 방도 중에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를 구분하는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개혁교회(개신교)에서 예배는, 신자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매우 중요한 의식 중에 하나로 간주한다.

예배는, 정기적으로 혹은 비정기적으로 행해지며, 가정 예배 또는 기도 모임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성직자들의 인도 아래 교회에서 시행된다. 평신도들이 예배를 이끄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만, 교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설교, 축도 등은 목사 등 공식적으로 설교와 축도의 권한이 주어진 성직자가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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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삽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삽시다
본문 : 롬 12:1~2
찬송 : 327장

예배라고 하면 우리는 공적인 예배만을 생각한다. 이것은 예배에 대한 정의가 바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배란 두 가지의 의미를 포함한다. 좁은 의미의 예배로 교회에서 모여 드리는 예배이다. 또 하나는 넓은 의미의 예배로 각자의 삶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이다. 즉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예배이다. 한 쪽으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좁은 의미의 예배만을 강조한다. 이는 문제 있는 신앙, 신앙과 삶의 부조화를 낳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합당하게 여기시는 예배가 아니다. 예배에 성공하려면 이 두 가지 예배를 동시에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너희 몸을 산제물(예배)로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몸이 산제물이 될 수 있을까?
 
첫째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즉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지 말고, 말씀을 삶의 법칙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가 점점 세상을 본받고 따라가고 있다. 세상과 구별됨이 거의 없다. 한국교회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 그 안에서 무슨 신선한 영적인 생수를 낼 수 있겠는가?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통한 예배이다.
 
둘째로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한다. 자꾸 이 세대를 본받고, 쫓아 살아가는 근본 이유는 마음이다. 마음이 바라보는 것에 우리의 손발이 움직이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 보다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찌 말씀이 들어오겠으며, 세상 것을 뿌리치며 살 수 있겠는가? 세상에 이끌려 살지 않으려면 우리 마음을 세상 보다 더 즐거운 것들로 채우면 된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그 마음이 풍성케 되도록 우리를 돕는다. 성령님을 늘 의지하고 그분을 환영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찾아가는 삶은 우리에게 천국의 기쁨을 소유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우리의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물은 하나님의 법도와 계명을 지켜 행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삶을 통해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며, 그들을 통해 축복을 펼쳐 나가신다.
 
<오늘의 기도>
예배를 회복하게 하소서. 삶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호목사 /용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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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예배 인도  기도

 

 


1. 시작 하는 기도

(성경구절 읽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

 

 헛어 졌던 사랑하는 성도들이 멀리서 가까이서 주님의 전으로 달려 나오게 하셔서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가 복된 예배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받아 주시옵시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소원을 응답받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서는 주님을 모르시는 분은 예수님을 만나는 결단의 시간과 성도들에게는 새 힘과 용기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또한 드림을 통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인식하게 하옵시고,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밝은 마음 친밀한 교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의 예배가 아벨의 산제사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모습과  솔로몬의 일천번제와 같이 하나님께 응답받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며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 설교 말씀전 기도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 운준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는데 오늘 그런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잘 막힌 못과 같이 우리 심령에 심겨져서 잎나고 꽂이 피어서 60배 100배의 결심이 맺게 하옵소서.  오늘 이곳에 구원받지 못 한자가 있으면 구원해 주시고  연약함과 방황함하는 분이 있다면  치유해 주셔서  믿음에 생활에 새로운 출발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옵나이다.  아멘

 


3. 헌금 기도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주님  오늘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드림으로 복 된자가  된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뿐만아니라 오늘도 시간을 드려 예배하며  몸을 드려 헌신하고, 재능을 드려 봉사하고, 물질를 드려 헌금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헌금을 드림은 우선순위가 확정되었으며 땀과 감사의 표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드린 한분한분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특별히 감사의 예물을 드린  00분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고 기도응답과 평강과 가정의 행복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그리지 못한 분까지 기억하시고 같은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4. 끝기도(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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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예배를 향하여

 

개혁주의 예배관 / 개혁주의를 말하다

이성호 교수

 

1. 서론: 예배의 대상이신 삼위 하나님

예배의 현장에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예배를 드리는 그의 백성이 존재한다. 둘 중에 누가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온전한 예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늘날 예배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예배를 받는 분에 대한 논의는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마치 예배를 받는 분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배를 받는 분에 대한 논의가 없으니 예배학이 하나의 인간학이 되어 버린다. 예배학이 범주 상 신학에 속한다면 예배의 주된 관심사도 예배를 받는 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예배와 나쁜 예배를 나누는 기준도 내가 얼마나 예배 속에서 은혜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나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는가?”가 되어야 한다. 또한 예배학에 있어서 핵심 질문도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릴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예배를 받으시는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를 거짓 종교와 구분 짓는 핵심교리이다. 이 교리가 이해하기 힘든 교리라고 해서 아예 제쳐 놓아서는 안 된다. 비록 이해하고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체험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예배는 그것을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이다. 예배의 부름 속에서 삼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당신이 베푸신 잔치로 초대하시고, 우리는 송영을 통하여 그 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 삼위 하나님은 설교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분에게 찬송과 기도로 응답한다; 삼위 하나님은 성찬 속에서 굶주리고 배고픈 우리의 영혼에게 참된 양식과 음료를 주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 양식을 받아 먹는다; 삼위 하나님은 축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는 아멘으로 화답한다. 예배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예배는 왕이신 삼위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함께 누리는 언약적 친교(covenantal communion)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신학과 예배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된 목적에 대해서 질문한다. 여기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고신교회의 진정한 고백이라면 예배는 교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위치한다. 참된 예배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소교리문답이 가장 첫 질문에서 예배가 신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교회에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교리문답은 교리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교리 혹은 신학은 예배를 위해서 존재한다.

 

신학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예배가 신학이고, 신학이 예배라고 할 수 있다. 신학을 테오로기아(theologia)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theos)’(logos)’의 합성어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혹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로 번역될 수 있다. 신학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예배야 말로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예배 속에서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들은 백성이 하나님께 기도와 찬송으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신학은 이성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예배는 경험적 혹은 체험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신학적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보다 분명하고 풍성한 이해를 가지고 예배에 임하게 되고, 그 예배의 결과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신학에 대하여 보다 굳건한 확신을 얻게 된다.

 

예배가 본질적으로 체험적이기 때문에 올바른 신학적 작업이 없다면 원래의 순수성에서 벗어날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 이것은 성경 자체가 그렇게 증거하고 있고, 교회 역사 속에서도 입증되어 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의 늪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였으며, 신약 이후의 교회에서도 순수한 예배 속에 세속적인 누룩이 항상 침투해 들어 왔다. 중세 로마 교회가 교리적으로 타락했을 때, 문제는 교리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만약 교리 자체만이 신*구교 사이에 문제였다면 종교개혁은 단지 교리의 개혁으로 끝났을 것이고 교회의 분열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개혁파 교회가 출현하게 된 결정적이 이유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고 싶은 거룩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이전의 예배 형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예배가 교회에서 드려지게 되었고, 참 성도는 그 예배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3. ‘오직 성경과 예배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과 개신교의 근본적인 교리의 차이를 이신칭의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성찬에서 찾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그룹의 본질적인 차이는 권위에 관한 것이 분명해졌다. 개신교의 교리가 맞는지 아니면 로마교회의 교리가 맞는지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최종 권위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사소한 교리적 문제도 해결될 수가 없었다. 두 그룹이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 최종 권위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 두 그룹은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으나 카톨릭은 성경의 충분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인정하였다. 반대로 개신교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충분하며, 모든 종교적 논쟁에 있어서 최종적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데, 언뜻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원리 때문에 두 교회가 결국 분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오직 성경은 특별히 예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개혁교회는 이전에 전통의 이름으로 관습화되어 왔던 예전들을 비평적으로 검토하여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거나 부족한 것이 있으면 철저하게 개혁을 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개혁교회의 예배는 철저하게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예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개혁교회의 예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성경에 충실한 예배라고 할 수 있겠다. 개혁교회의 역사는 바로 이 예배를 교회 안에 올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한 긴 투쟁의 역사였다.

 

4. 규범적 원칙(Regulative Principle): 개혁교회 예배원리의 독특성

 

오직 성경의 원칙을 교회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특히 이것은 예배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였다. 개신교 교회가 모두 오직 성경의 원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각 교파들 사이에 예배는 다양성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루터파와 개혁파의 예배가 다르고, 개혁파와 재세례파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 이 말은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을 각 교파마다 달리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터파의 경우 성경의 명시적인 가르침과 충돌하지 않는 한 성경이 허용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 결과 루터파는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하는 로마교회의 화체설은 거부하였지만 로마 교회의 성만찬 예식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편 재세례파의 경우에는 성경이 직접적으로 명령한 것만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성경에서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가르침이 없는 유아세례는 예배에 있어서 거부되었다. 반면, 개혁파는 성경이 명시적으로 명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성경의 전체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고,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추론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필연적이고 선하다면 성경의 가르침으로 인정하였다. 유아세례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 특히 언약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예배에 대한 논쟁은 영국교회에서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영국교회의 교권주의자들은 예배의 일치는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영국교회는 영국 안의 모든 교회들이 따라야 할 공동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작성하였다. 이름과 달리 이 책 속에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예배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예배 형식에 관한 세세한 규정을 담고 있는데 영국교회의 머리라고 불린 영국 왕들은 모든 영국교회 회원들이 이 책의 규정에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엄하게 명하였다.

 

공동기도서는 내용에 있어서 로마교회의 반성경적 혹은 비성경적 예배를 배척하였고, 심지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대륙의 개혁교회의 영향을 많이 반영하기도 하였지만, 보다 더 철저하게 예배가 개혁되기를 원하였던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이들은 청교도라고 불렸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공동기도서의 가장 큰 문제는 개 교회의 자유가 박탈당하였다는 사실에 있었다. 청교도는 성경이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만이 신자의 양심을 구속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은 개 교회의 자유에 맡겨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규범적 원칙이라고 하는데,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모토가 예배의 영역에 적용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성직자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는 성경에서 침묵하고 있는 비본질적인 영역(아디아포라)이기 때문에 청교도들은 각 교회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각 교회에 주신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영국교회 지도자들은 각 교회에 그와 같은 자유가 주어지게 되면 교회의 가시적 일치가 상실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에 성경과 명백히 상충하지 않는 한 비본질적인 문제는 교회의 지도자, 보다 구체적으로 주교회의에 의해 결정되어 통일성 있게 실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예배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에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을 하였고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예배모범에서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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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을 위한 말씀 / 행복의 비결 /성경적가정생활

 

 가정그 행복의 비결

 

19:112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6)

 

카네기의 인생론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환경을 바꿔라. 그래도 안 되면 관계를 바꿔라. 그래도 안되면 나를 바꿔라.” 인생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요인은 바로 내게 있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가정,그 행복의 비결 역시 내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된 가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확실한 믿음에서 출발하십시오(6). 부부는 우연히 눈이 맞아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지금의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나의 천생연분임을 믿고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이혼에 관하여 질문을 받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전통이나 시대의 문화로 답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문제를 풀어주십니다(5). 가정에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서적 가정생활을 위해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정기적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복된 가정은 부부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가정 안에 성소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마치 쉼표와 같아서 우리의 인생과 가정에 쉼과 안식을 줍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부부와 자녀들의 심령에 부어주시는 쉼과 평안,이해와 용서,사랑과 순종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난센스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17장이나 빽빽이 쓴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냈습니다. 봉투에는 이런 경고문이 쓰여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편지를 읽는 자는 죽을 것임.” 하지만 편지를 받은 사람은 호기심에 편지를 읽고 맙니다. 그런데 정말 편지를 다 읽자마자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왜일까요? 17장이나 되는 글에 쉼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깨닫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사업에,그리고 가정에 쉼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쉼표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헉헉거리다가는 곧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예배야말로 우리 가정의 쉼터요,안식입니다. 예배드리는 자에게 안식,평안,강건,자유,승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된 인생,복된 가정을 위해 환경을 바꾸십시오. 안 되면 관계를 바꾸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자신을 바꾸십시오. 무엇보다 인생의 쉼표,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십시오. 가정의 행복은 사랑의 테크닉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27:1,2).

 

기도: 주님,우리의 가정이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확신하고 무슨 일이든 성경에서 해답을 찾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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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수요저녁설교 (September,Wednesday Worship Sermon)

제목/절대기쁨을 누리는 방법

성경/빌1:15-18

 

● 신앙생활 하다보면 늘 즐겁고, 늘 기쁘고, 늘 은혜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교회 안에서 상처를 입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을 하느냐 마느냐 고민하기도 하고, 심하면 교회를 떠나야 하느냐 마느냐 갈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상처의 대부분이 사람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고 은혜를 받고 봉사하면 문제 될 것이 없는데, 그런 일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것도 같이 신앙생활하며 예배 하는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신앙에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의 평정심을 잊지 않고 기쁨을 누리며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본문을 통해서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오늘 본문 속에서 바울이 어떤 상황 속에 놓인 것을 알게 됩니까? 15절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바울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사람들의 반응과 바울을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바울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 했겠습니까?

 

▶ 바울을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16절에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은 사람임을 기억하고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욱더 애정을 갖고 바울이 하던 복음 사역에 더욱 열심을 냅니다.

 

▶ 반면에 바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17절에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힘으로 바울의 명성이 크게 손상되고 위축되었다고 생각하고 이 틈을 타서 자신들의 명성과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복음 사역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바울과 같은 상황 속에 놓인다면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하고, 이들로 인해서 마음이 많이 언짢을 겁니다. 왜냐하면 나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나를 넘어서는 지지를 받기 위해 애를 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울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도 그런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 열심히 순순하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입니다.

 

▶ 선배 목사님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부교역자를 선택할 때는 설교를 못하는 사람을 선택하라고 말씀합니다. 부교역자가 담임목사님보다 설교를 잘하면 성도들이 담임목사님 보다 부교역자를 더 좋아하고 따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혹여 교회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 부교역자를 따라 교회를 나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그런 마음으로 부교역자를 선택했을 때 마음 불편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쓰이고, 눈에 거슬릴 것입니다. 혹여 집사님들이랑 모여 웃으며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부교역자는 미운털이 박히게 됩니다. 그 속에서 기쁨이 있겠습니까? 어렵습니다.

지금 바울이 그런 상황입니다. 자신의 입지는 좁아지고,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사람들이 이 일을 틈타 복음 전파 사역에 열심을 냅니다. 그 속에서 바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18절 말씀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바울은 자신을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하던, 혹은 자신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하던 복음에 대해서 열심을 품고 전파하는 일에 대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복음 사역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 사역을 중단하지 말라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사람들 때문에 기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떤 이유로든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은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성도들을 시험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중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배를 중단하게 만들고, 기도를 중단하게 만들고, 헌신을 중단하게 만들고, 주일성수를 중단하게 만들고, 십일조를 중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들과 핑계 거리를 만들어서 지금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역을 중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이유들이 합당할 수 있습니다. 아파서 못한다, 바빠서 못한다, 멀어서 못한다. 없어서 못한다. 그러나 중단하게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의 기쁨은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역을 중단하면 안됩니다.

 

▶ 느헤미야서를 보면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때에 반대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성벽 재건을 방해합니다. 회유를 하기도 하고, 조롱을 하기도 하고, 협박을 하기도 하고,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벽 재건을 중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일을 하면서 끝까지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느4:17)

 

▶ 고린도전서15:6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오백여형제가 있었음을 말씀합니다. 누가복음24:49에서는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하시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정작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무리는 120명입니다. 나머지 380명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은 기도하며 기다리면서 마귀의 숫한 공격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것, 기다리는 것을 중단했을 것입니다. 중단하므로 그들은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경험할 수가 없었습니다.

 

각자 모양은 다르지만 중단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고 말씀합니다. 중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보면 반드시 열매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2. 복음에만 집중하라

 

더불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사람들 때문에 기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복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자존심도 있고, 우리의 체면도 있고, 우리의 이익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복음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내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고, 우리의 어떤 유익들을 구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만 집중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절대기쁨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 18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놓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한 사도 바울의 모습 속에서 먼저는 “복음을 전파 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정과 욕심을 내려놓고 “복음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바울과 같이 “복음에만 집중하여 복음전파 사역을 끝까지 감당”하므로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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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십계명

 

1. 예배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최고의 축복이다 예배 시간보다 귀중한 것이 없으므로 절대 빠지지 말라.(시73:27-28)

2. 예배시간 20분전에 교회에 와서 앞자리부터 의자 안쪽으로 먼저 온 성도순으로 앉아 예배를 정성된 마음으로 드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려라.(요4:24)

3. 먼저와서 기도하고 주보를 보고 중요한 부분은 표시하고 성경본문을 찾아 읽고 믿음으로 예배를 기다리라.(잠15:8)

4. 성령충만 받기 위해 마음 문 열고 찬양 인도자에 따라 찬송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불러 라.(행13:18)

5. 창조적인 예배가 되기 위하여 믿음 안에서 긴장하고 어린 아이들이 예배를 방해하지 않도록 잘 훈련시켜라.(행13:8-12)

6. 예배는 전쟁인 동시에 축제이다. 그러므로 절대 졸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정성껏 드리라. (행20:8-10)

7. 예배는 생명이요 응답이다.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롭게 말씀을 사모하고 고백하는 믿음으로 아멘하라.(호8:6)

8. 신령과 진정된 예배가 되도록 철저히 준비하며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도록 말씀을 들으며 은혜스럽게 아멘으로 크게 화답하라.(고후1:20)

9. 불신자와 세신자에게 매력적인 예배가 되게하며 주님을 사모하게 하고 예배를 생활화 하도록 하라.(시84:10)

10. 통성기도는 믿음으로 손을 들고 크게 부르짖어 간절히 하며 받은 은혜 감사하여 준비된 예물을 봉투에 담아 정성껏 드리고 축복과 승리로 예배를 장식하라.(대상2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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