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역사와 그 발전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예배는 )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예배는 오늘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추구할수록 요청되는 것은 예배의 본질과 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역사를 아는 자가 힘이 있다는 말은 예배의 분야에도 적용된다. 오늘 교회의 예배는 수천년을 말없이 흐르고 있는 강물처럼, 교회의 시작에서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굽이굽이 흘러오고 있다. 그러기에 예배연구를 위해서 한 부분을 파편처럼 떼어내어 연구할 수는 없다. 예배의 역사와 그 발전을 고찰하는 것은 오늘 예배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계획과 변화를 위해서는 필요하다.

여기서는 오늘 예배갱신을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예배의 역사를 고찰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교회의 예배의 갱신을 위해서 필요한 예배역사 중에서 중요한 특징만을 언급할 것이다. 또한 단순한 예배의 형태를 지닌 한국교회에 호소력있는 초대 기독교 공동체 예배와 청교도 예배에 보다 중점을 둔다. 예배의 역사와 발전을 고찰하기에 앞서, 연구의 의의를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것이다.

첫째, 오늘 교회 예배의 형태와 요소가 지닌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세 로마천주교의 복잡하고 신비로운 예전에서 표현되는 예전적 행동들의 의미를 회중은 물론, 집례하는 사제들까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배운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에 대해 칼빈은 강하게 거부감을 갖고 비판한다. 예배적 행위는 이해되지 않을 때 미신적인 행위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예배형식이 비교적 간단함으로 그와같은 일이 잦지는 않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몇차례의 성례전연구세미나을 인도하면서 확신하게 되는 것은 성례전에 대한 신학적, 예전적, 역사적 이해를 깊이 하는 만큼, 성례전을 통해 얻는 은혜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둘째, 예배의 역사와 발전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는 잊혀져 있으나 역사 속에서 표현된 예배의 유산들을 찾아낼수 있다. 한 때, 역사적, 문화적 이유 때문에 생략되거나 축소된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것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성경봉독은 초대교회의 경우에 가장 중요한 예배요소였다. 설교는 성경본문을 위해 봉사, 즉, 해설과 적용하는 것이었다. 성경본문을 낭독하는 시간이나 차지하는 위치에서 오늘 개혁교회의 말씀중심의 예배에서는 오히려 퇴보한 면이 있다. 설교를 위해 봉사하는 위치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셋째, 예배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예배의 변화의 패턴을 고찰함으로 예배의 갱신의 원리를 삼을 수 있다. 시대, 문화와 장소가 바뀜에 따라 그에 맞게 예배의 형태가 변할 때, 변하지 않았던 원칙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한정된 지면에 방대한 그리스도예배의 역사를 다 담을 수 없다. 예배역사연구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도전을 준다면 이 글의 목적을 다하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예배발전의 개요


개신교예배는 개혁자들의 신학과 예전으로 부터 시작하여 교단마다 강조점을 달리하며 발전해나갔는데, 한가지 공통된 특징은 다양성이다. 지역마다 시대에 따라 예배의 형태가 다르게 표현되었고, 개신교회는 서로 크게 대립하지 않고 이러한 다양성을 수용해 왔다. 이러한 개신교예배는 성서의 초대기독교공동체의 예배와 초기 교부들에 의해 유지되었던 예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독교 예배의 역사와 발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전통과 개혁의 변증법적 변형이다. 기독교 예배는 시대마다 전통적인 예전에 예속되려는 성향과 그것으로부터 자유하려는 개혁적 시도가 긴장 또는 갈등구조를 유지하며 변천되어왔다.


1. 초대기독교

초대 기독교의 예배에는 일정한 형식과 자유가 어우러져 있었던 것 같다. 천국복음의 전파와 종말론적 사건이 전개되는 제자공동체에는 황무지를 개간할 때와 같은 자유함이 있었다. 한편으론 유대교의 회당예배와 불가분리관계에서 그 형식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다. 분명한 것은 초기 기독교예배는 유대교의 하나님 예배와 동일한 기초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초대기독교예배에 전통에의 예속과 새로운 세계를 여는 자유로움의 특성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스카 쿨만이 지적한 것처럼 초대기독교예배는 비록 예배의 내용에 있어서는 유대적 전통에 예속되지 않았지만, 형식에 있어서 유대교 예배의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예배의 구조는 물론이고 각 요소들도 직접 간접으로 유대적 표현을 따랐다. 그러나 초대공동체 예배의 특징은 그들의 자유로운 영적표현에 있다. 그들의 자유로운 예수의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유대적 전통들을 새롭게 해석한 예수의 종말론적 선언과 행위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러한 자유를 유대교가 허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히 원시기독교예배는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훼르디난드 한이 지적한 원시기독교 예배가 유대교 예배로부터 나와 새로운 형식을 요구한 것은 종말론적인 하나님 행위의 현재적인 현실성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원시공동체의 본질적인 세가지 요소는 예수의 활동과 죽음, 예수의 부활과 현재, 임재, 그리고 성령의 활동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이 유대교 예배와 함께할 수 없는 상이점이라는 것을 들었다. 초대기독교예배는 이 세가지 본질적 요소의 상관 관계를 통해 잘 이해된다. 즉, 부활의 증인들은 예수의 활동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며, 성령의 강림과 활동을 통하여 보증을 얻었으며, 바로 여기에서 공동체의식이 성취된 것이다. 이런 초대공동체의 특이성은 유대교예배의 전통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 주었으며, 이후의 예배의 역사 속에서 변증법적 변형을 이루어가는 중심적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초대기독교예배가 유대교의 예배에서 분리되어가는 과정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대기독교공동체의 형성과 발전과 함께 고찰해야 한다. 한(Hahn)은 초대기독교공동체를 다음과 같이 네부류, 즉 아람어를 사용한 기독교 공동체, 헬레니즘저 유대인 기독교공동체, 이방인기독교공동체, 속 사도시대의 예배로 나누어 이 공동체들의 예배와 유대교의 예배의 상관관계를 역사적으로 기술한다. 먼저, 아람어를 사용한 기독교공동체예배는 사도행전 2-5장의 누가의 진술에서 알려졌는데, 유대교예배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는 면들을 보여준다.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보인 곳에는 내가 그들과 함께 있겠다"(마 18:20)는 말씀은 유대교적 예배이해를 거부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유대교 예배에 필요한 소수 열 사람이 포기되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의 물세례는 예수의 세례로, 유월절 식사는 성만찬으로, 마라나타기도, 구원소식의 선교설교등은 기독교공동체의 독특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아멘, 할렐루야, 기도형식등 유대교예배적 표현들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성전과 율법의 경우 중심적 위치에서만 벗어났을 뿐, 이 공동체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 성전과 회당은 선포와 선교의 장소였다. 후에 주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 공동체의 독자적 지배력을 인수한 이후에는 강화가 되어 엄격한 율법준수, 유대적 제의 질서에의 충실등 편협한 유대인 기독교가 형성되었다.

그 다음, 스데반, 빌립, 바나바를 중심으로 예루살렘과의 연대를 유지하며 안디옥에서 발전했던 헬리니즘적 유대인기독교공동체는 사도행전6장1-6절의 기사에서 히브리적 유대인기독 공동체와 확실히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유대교 예배에 있어서 더욱 확실히 분리시키고 있다. 헬라어구약을 사용하고,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도 예수의 의도를 더욱 철저히 받아들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공동체에서 유대적 제의적 표상들을 종말을 선언함과 동시에 기독론적이고 교회론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율법과 성전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리스도인 각자의 삶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셋째, 초기 이방인 기독교 공동체에는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예배의 본질적 요소를 수용한 채, 성령의 활발한 활동이 포함되었다. 이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보여주는 예배의 설명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데, 사도적 교훈에 포함할 수 있는 교훈(디다케), 계시, 지식이 있고, 아멘이나 방언, 마라나타의 기도의 요소, 찬미가 있다. 여기에 다른 곳에서 성렁의 은사로 분류한 예언, 방언, 통역의 요소들도 언급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내부적으로는 무질서와 분열, 그리고 공동체의 폐쇄성이고, 밖으로는 주위 세계의 이교적인 사상의 위협이였다. 이것을 간파한 바울은 한편으론 질서와 통일성, 공동체의 덕, 예배의 이해성을 강조하였고, 다른 한편으론 유대주의에 대해서처럼 혼합주의적이고 금욕주의적인 노력들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저항하였다.

마지막으로 속 사도시대(60년초부터 1세기말)의 예배는 요한계시록 히브리서, 야고보서, 목회서신,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에서 간접적인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이 시대는 은사적인 형태가 전례적인 공식문과 공동체의 직분적 질서에 의식적으로 결부딤으로써 부분적으로 약화되는데, 따라서 유대적 제의개념들이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시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의 경우에 종말론적 기독론적 메시지를 유대묵시문화적 표상자료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계시록4, 5장의 천상예배를 보라] 히브리서 역시 제의적인 진술로 가득차 있다.[7:1-10:18] 야고보서에는 아람어를 사용한 유대인 기독교에서 수용된 장로제도가 전제되어 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정체성을 전통적인 제의적 술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벧전2:5,9] 이 시대는 목회서신에서 처럼, 문서와 교훈이 나타나고, 전례적인 공식문과 공동체적 질서가 구체화되는데, 따라서 예배의 살아있는 은사적인 형태는 의식문에 흡수되어 약화되었다.


2. 교부시대와 중세시대

콘스탄틴대제의 회심이전까지 기독교예배는 사적예배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회심은 예배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사회관습을 수용하여 시민을 위한 예배를 꾀한 것이었다. 바실리카식 건물, 예복, 행렬, 촛불, 향등이 들어왔고, 세례와 성찬의 예전적 구조가 이때 고정되었다. 이 시대의 교회는 이후 시대의 예전의 기초를 이루는 왕성한 예배의 발전를 이룸과 동시에 그만큼 초대교회의 종말론적을 기대가 희미해져갔다. 중세에 이르러 예전의 복잡함과 화려함은 극치에 달하지만, 이미 오신 주님과 그의 재림에 대한 기대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맥스웰은 라틴예전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자국어로 진행하는 프론(Prone)이란 부분 이외에는 라틴어를 사용하므로 회중의 참여를 약화시켰으며 예배를 불건전한 신비적 분위기로 빠져들게 했다. 이런 신비감 조성에는 예배의식의 정교하고 복잡함이 가세하였다. 시편송이 줄고 수준높고 기교적인 음악이 늘어갔고, 회중들을 의식 진행과 연결해주던 부제의 역활도 집례자의 단순한 보조자 정도로 약화되었다. 무엇보다도 미사 횟수가 경건의 잣대처럼 되어 미사의 횟수가 증가 했고, 사적 미사로의 길을 터 주었다. 미사는 회중에 의해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적 미사처럼 회중을 위해서 드려졌다. 본당이외에 부속건물을 둔 것이나 동방교회와는 달리 교회 안에 여러 개의 제단을 둔 것이 이를 반영한다.


3. 동방교회

동방교회 예배는 상징적인 행위들로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재현해 보이며, 따라서 길고 반복되는 것이 많다. 폴 버기스(Paul Verghese)는 동방교회 예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무엇보다도 자국어(vernacular)사용의 권장인데, 이는 서방교회와의 큰 차이점이 된다. 서방 로마캐톨릭교회는 라틴어를 그들의 예전의 유일한 언어로 제2바티칸 공의회까지 사용했던데 비해 동방교회는 성경과 예식서(the Divine Liturgy)는 회중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 초기때부터의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회중의 참여(Congregational participation)다. 무엇보다도 이 예전에서의 부제(deacon)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사제들이 성소막 안에서 예전을 집행하는 동안 제단에 서서 회중에게 중보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인도한다. 넷째, 사제 혼자 성찬 집례를 허용하지 않는다. 적어도 세사람, 즉 사제와 집사와 회중의 대표하는 한사람이 있어야 한다. 에디오피아 동방교회는 두명의 사제와 세명의 집사가 성찬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 인원이다. 사제들은 매일 성찬을 할 필요가 없었고 함께 나눌 회중이 있을 때에만 성찬을 행했다. 다섯째, 성령임재기도(epiklesis)인데, 서방 로마예전에서는 성찬제정어 전에 하는 봉헌기도중에 드려지는데 비해, 동방교회는 성찬제정어 후에 드리기 때문에 성물이 성별되는 시점을 놓고 서방교회와 논쟁이 있었다. 여섯째는 성상(icon)과 성소막(iconostasis), 예배신학적인 면에서는 예배의 신학적 풍부성,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대한 철저한 인식, 화려한 詩語에 담긴 신실한 경건성, 기도문의 성경중심성, 예전적 색깔, 소리, 움직임등의 구체적인 예전 형태와 행위, 예전형태의 다양성이란 특징을 보여준다.


4. 종교개혁당시의 예배

중세의 예배의 관심은 성례전의 형태와 성물에 있었던데 반해, 종교개혁자의 관심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각 예전의 단순한 행위 하나 하나에 있었다. 성례전은 약화되고 개신교예배의 특징이 된 교육적 예배는 더욱 강화되어갔다. 자국어, 인쇄된 서적, 긴 설교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또 한가지 개신교예배의 특징이라면 예배구조에서 찬송에 독립적인 가치를 부여한 것이겠다.

죤 바클리(John Barkley)는 개혁교회의 세가지 특징을 말하기를, 첫째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경배와 감사, 겸손과 회개, 하나님 말씀을 들음, 다른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와 회중 자신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있다. 둘째, 예배는 항상 공동체적이므로 비록 혼자 기도할 때일지라도 다른 그리스도인 그리고 교회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셋째, 예배는 공동체적이므로, 내향적인 동시에 외향적인 성격이 있고 따라서 침묵과 말씀, 음악과 예배적 행동, 촛불과 색깔등을 사용한다.

단순성을 강조한 칼빈은 그의 예전적 모델을 교황제도에 앞선 고대교회였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결합된 원리를 찾으려고 노렸했다. 그에게 성경에서 벗어난 것은 주제넘은 것이고, 배은망덕한 것이며, 불경건이고 지독한 불충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보다 성경에 충실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인간의 고안물을 최소한도로 첨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너무 개성적인 예배는 인간의 잘못된 상상력의 산물을 숭배하는" 자들을 경계했고 그 대안으로 예전적인 예배를 지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외부형식이 영적예배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왜냐하면 정교한 의식적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예배자가 자신들을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성경적 권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이다.

쥬리히예배서(The Zurich liturgy, 1535)를 만든 쯔빙글리는 많은 말이나 교훈, 의식적인 순서보다는 단순성과 고요함을 선호했는데, 기념설로 알려진 그의 성만찬 신학의 특징은 그리스도에 대한 관상(contemplation), 친교(fellowship), 감사, 도덕적 열정이다. 특히 상상력이 고갈되거나 마음이 혼란함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두가지 관상의 주제를 주었는데, 하나는 성찬의 성물로, 이들은 매우 빨리 효과적으로 예배자의 마음을 자극해서 깊은 명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다른 한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중끼리 이야기하는 것처럼 회중들에게 읽어준다. 이러한 관상은 성찬을 통해 성물자체의 깊은 의미, 즉 갈보리에서 보여진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실히 의심없이 마치 현장에서 눈으로 보듯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죤 낙스는 그의 예배서(The Form of Prayers)에서 후에 개혁교회의 특징이 될 여러 요소들을 강조했다. 즉, 성령의 영감에 의해 집례자 자신의 기도들을 작성하고, 공동체적 행위를 위해 성경을 자국어로 모든이에 들려지도록 큰 소리로 읽혀졌다. 설교를 위한 단순한 예복만을 남겨두므로 목사와 평신도의 간격을 좁히고, 예배인도는 칼빈이 목회했던 스트라스부르그나 제네바에서처럼 성찬상이 아니라 강대상에서 했다.

로버트 웨버(Robert Webber)는 종교개혁자들의 예배의 일치점은 첫째,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반복으로 행하는 중세미사를 거부하였다. 둘째는 화체설거부, 셋째는 말씀의 회복으로 말씀과 성례전 사이 균형을 꾀하였고 말씀과 성례전의 이중구조를 주장했다. 그러나 쯔빙글리의 말씀우선순위와 성례전 1년 4회 주장이 장로교회 뿐 아니라 영국청교도, 침례교도, 장로교도, 회중교회의 표준이 되었다. 개혁자들은 자국어사용에 대해서도 일치했다. 반면에 개혁자들 사이에 차이점도 있었다.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통의 수용정도에 대한 불일치가 심각했다. 루터교와 성공회는 대부분 받아들였으나, 쯔빙글리파와 재세례파는 완전히 거부했고, 개혁교회는 중간 입장이었다.


5. 청교도예배

종교개혁 이후에 근대에 이르기까지 개신교회에 가장 큰 예배적 전통과 특징은 청교도예배에서 나타난다. 한국교회는 특히 청교도 신앙을 초대기독교신앙의 모델로 보고 지향해 오고 있기에 그들의 예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교도의 예배목표는 교회의 전통적인 인습이나 인간의 고안물로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정당성을 갖는 규례만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예배는 엄격한 성경적인 기초, 언약의 강조,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에 대한 표현과 평신도에 대한 격려를 담고 있었다. 그 예배는 철저한 성경중심, 성찬은 물론 찬송과 기도와 교회건축에 있어서 단순한 예전, 설교와 기도에 있어서 탈원고적 성향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중에 특기할 만한 것은 철저한 성경중심이었다는 점이다. 설교를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여겼는데 이런 설교중심의 예배는 강대의 중앙에 놓인 강단의 위치에서 나타난다. 설교의 시간은 한시간에서 두시간까지 걸리기도 했는데, 이 때 설교에서 오늘날의 매스미디아와 시민교육의 역활도 담당했다. 말씀의 묵상후에 회중의 형편을 충분히 반영한 친밀하고 자연스런 즉석기도, 검은 가운이나 높은 강단도 말씀에 대한 강조점을 반영한 것이다.

그들의 설교의 특징은 연속설교에 구절마다 해석하였다. 18세기 이전에는 설교자가 기도와 설교에 모두 즉흥적이기를 기대했고, 18세기초에는 설교메모에 매달리지만 않는다면 설교메모를 사용할 수 있었다. 주기도문은 로마카톨릭이나 영국 국교회처럼 매주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모범이라고 생각했다. 교회음악에 대해서는 최초의 청교도들이 교회성가대에 대해 회중들의 찬양특권을 빼앗는다는 부정적인 견해와는 달리 많은 개혁과 진전이 있었고 성가대들을 배출하는 음악학교들이 설립되었다. 성찬은 목사의 관심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월 1회 또는 격월로 집행되었다. 성찬받기 전에 회개와 믿음을 요구했고 앉는 자세로 받은 것을 강조했는데, 이는 무릎꿇음의 우상숭배적 위함을 피하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종말론적 특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초기 청교도 예배의 형태와 순서는 단순했지만, 내용은 길었다. 매 주일 오전 9시에 대예배를 오후2시에 오후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마다 3시간에서 3시간 반정도 걸렸다. 예배시간이 긴 이유는 긴기도때문이다. 개회 기도도 15분이나 길었지만 설교 후의 기도는 설교만큼 길어서 한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오후 예배도 마찬가지여서, 회중들은 주일의 6시간 이상을 예배시간으로 보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예배들에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일주일의 삶의 절정으로 여겼다는 것은 청교도들이 예배를 통해 성화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진지한 자세를 잘 나타내준다.

이러한 청교도 예배는 영어 언어권 세계에서 성장해온, 장로교회, 개혁교회, 회중교회, 그리스도의 제자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유니테리언 교파들에게 지배적인 형식이 되었고 한국교회의 신앙형태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비예전적 예배

침례교 예배에서는 의식문을 철저히 거부했는데, 심지어 성경의 직접적인 사용도 배제하였다. 설교하려고 본문봉독후에 성경이나 원고를 보지 않고 몇 편의 설교를 한다. 즉석기도를 하고 시편을 암송하여 부른다. 성찬은 쯔빙글리의 전통을 따라 매월 또는 분기별로 하지만, 칼빈주의적 권징을 더 엄격하게-예를 들면 수찬정지- 실행하기도 한다. 회중교회(Congregation Church) 예배는 보다 칼빈주의와 청교도 예배의 영향을 받았는데 예전적인 기도를 거부하고, 웨스트민스터 예배지침서를 비성서적인 것으로 반대한다.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는 스코틀랜드 장로였던 알렉산더 캠벨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철폐하고, 사도신경은 비성서적으로 보고, 믿음을 고백하면 바로 침례를 행하고, 매주일 성찬을 주장하였다. 오순절교회예배는 특별한 체험과 황홀함이 성령의 임재라고 확신하는데, 늘 성령의 은사를 구한다. 이는 회개의 체험이나 성령세례와 관계되는데, 대부분 치유를 목표로 한다. 그들의 예배의 특징은 자발성인데, 기도와 간증과 고백과 찬송에서 잘 나타난다. 신오순절교회(Neo-Pentecostal church)예배에서는 오순절교회처럼 직접적인 성령의 역사를 믿지만, 오순절교회와는 달리 은사중심으로 흐르지 않는다. 퀘이커 교도들은 성령의 임재를 내적인 조명으로 말하며, 은사와 특권에 있어서 남녀가 평등이다. 내적인 계시를 받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수적이고 외적인 요소인 말씀까지도 성령의 체험을 위해서는 이차적이된다. 성찬의 제정어는 영적인 실체를 말하는 것이고, 세례의 말씀도 성령의 세례로만 이해한다.


7. 현대개신교 예배

20세기 초에 결성된 캐나다 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of Canada)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1925년에 장로교회, 감리교회, 회중교회가 합쳐서 한 교단을 이루고, 예배의식을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와 감독교회, 성공회의 예배의식, 감리교와 회중교회로 부터 가져왔다. 이런 예배의식은 융통성이 있었다. 찬송도 생략할 수 있고, 사도신경도 필수적은 아니다. 성서일과와 함께 기도문들이 제공되는데, 고전적인 기도문-크리소스톰의 예전, 성공회의 공동기도서, 칼빈의 기도등-에서 취하여 짧게 변형시켰다. 성만찬은 매월 또는 년 4회 집례된다.
 
개신교회예배의 발전 가능성.


지금까지 초대기독교공동체의 예배로부터 중세, 개혁교회, 청교도, 근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예배의 역사연구로부터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역동성 회복을 위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1. 거룩성을 유지하는 예배.

그리스도교 예배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성은 중심적 위치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의식적인 예배속에서 더욱 강조되어온 경향이었으나,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와 구속사건에 대한 기억을 회상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했고, 그 후 역사적인 교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회상을 예전 속에 정확히 표현하려는데 집중하는 나머지 지나치게 의식화된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과 회상은 예전적 틀 속에 정형화될 수는 없다. 회중들의 속에서 현재의 사건으로 재현될 때, 그리스도의 현존을 인식하게 되고, 거기에 참된 거룩성을 경험하게 된다.


2. 회중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예배.

예배에서 회중은 하나님의 은총의 수혜자의 위치에 있다. 회중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서 예배에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수적 사랑으로 회중을 부르시고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내리신다. 그런 의미에서 회중은 수혜자요,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자로서 회중이 경계해야할 것은 예배에서의 수동성(pasivisity)이다. 먼저, 수동성에 대한 극복으로 예배순서에 회중들의 참여를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회중들의 참여는 초대교회에서 회중들이 예언이나 통역을 하는 모습에서, 또한 초기 동방교회의 부제의 능동적인 역활에서 발견되는데, 오늘 현대교회에서도 회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성경봉독순서를 담당한다든지, 중보기도의 한 주제를 맡아 기도하든지, 세례식 때에 수세자에게 간증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등이다. 그런데, 수동성은 이처럼 예배순서의 진행에 직접 참여함으로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진정한 응답을 하는가에 관한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수동성의 위험은 회중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 순서의 대부분을 진행하는 집례자라하더라도 은총에 대한 진지한 참여가 없고 습관적으로 진행한다면, 수동성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보아야한다. 에릭슨(Craig D. Erickson)은 회중들의 지적이며 동적인 참여(participation)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회중이 참여할 수 있는 패턴을 정리해보면, 중보기도나 찬송 또는 평화의 교환에 즉석참여(spontaneous involvement), 고백이나 들음, 나눔에서의 침묵의 패턴(silent e engagement)등이다. 수직적인 참여는 수평적인 코이노니아를 가능하게 한다.


3. 세계를 위한 행동이 있는 예배.

훼르디난드 한(Hahn)은 술어적 진단을 통해서 초기예배의 성격을 요약하면서, 예배적 집회와 세상 안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봉사 사이를 따로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예수께서 그 당시의 聖과 俗의 개념을 허무시고, 俗을 향해 열려진 공동체를 설립한 것을 연상하게 한다. 기독교예배는 밖을 향해 열려진 공동체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속사도시대예배에서 나타난 회중의 제사장직(priesthood)은 회중들이 세상의 구속을 위한 제사장임을 강조함으로 열린예배로서의 그리스도교예배의 성격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나가는 말

그리스도교예배의 역사는 시대마다 전통과 개혁의 변증법적 변형을 보여왔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회중에게 전통적인 예전은 귀한 유산으로 평가되기도하고 때로는 무의미한 형식으로 비판되어왔다. 따라서 그것으로부터 자유하려는 개혁적 시도가 긴장 또는 갈등구조를 유지하며 변천되어왔다. 여기에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의 신앙에 부합한 예전의 발굴을 위한 성실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개혁해가는 교회의 정신이 요청되는 때다. 이제, 데이비드 뉴만의 외침은 더욱 호소력이 있게 들린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향하게 하고 거기에서 능력있는 증인으로 서게하는 갱신된 예배의 열매는 교회 안의 기존의 고정된 틀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정신의 돌출을 허용하지 않고는 맺히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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