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대한 또 하나의 생각

 

주여 오늘도 한 말씀에 깨달음을 주소서


매주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수도 없이 드렸지만 그 예배중에 하나님께서 받을 만한

예배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본다.

솔직히 하나님께 예배한다기 보다는 설교 들으러 간적이 더 많았고

좋아하는 찬양을 부르고 오는 것이 하나님께 예배 잘한것으로 착각하고

오늘 날 까지 신앙생활을 하였던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설교자가 누구냐에 따라 교회에 가고 안가고 싶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예배 시간이 빨리 끝이 나기를 기다린적은 그 얼마던가?

기도 시간에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 드리지 못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기도가 끝나기를 무아지경 속에서 보낸 적은 얼마나 많았던가?

 

나의 마음을 드려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도 주일 성수 했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안위를 받을 때가 거의 다 였던것 같다.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녀가 철이 들어 제 몫을 해내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내 나이 이제 환갑인데 신앙적인 철이 덜 들어 내 몫을 제대로 하기는 커녕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 같다.

 

오늘 주일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는것이 주님마음을 헤아려 드리며

제몫을  다하는 참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하고 묵상하며 기도를 드리던 중에

떠오른 생각 일곱가지를 적어 본다.

 

 

실천하는 예배

 

1.매일 마음 중심에서 울어나오는 한곡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 찬양하기

2.매일 주님의 이름으로 한가지씩 선한 일을 실천하기

3.습관적인 죄를 매일 한가지씩 멀리 하고 회개하기

4.한 번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가까이 하기

5.하루에 한가지씩 감사하고 기도를 통하여 교제하기

6.화 안내고 거룩한 언어 사용하기

7.말씀을 하루에 한가지씩 실천하기

  

마음과 함께 드리지 못하는 예배는 거짓 예배요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중심에 기도가 아닌 형식적인 기도는 절에서 염불하는 것과 같다.

실천하지 않는 예배는 모래성을 쌓는 예배다.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예배는 쓰레기요

가인이 드렸던 예배다.

 

참된 예배자는 이 예배가 하나님 받으실 만하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님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중심을 드려야 한다.

참된 예배자는 자신을  살피고 정결하게 한 후에 정결한 마음으로 주께 나가는 자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불경건한 일이며 부정하고

하나님을 뵈올 자격이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온 몸과 마음을 드려 헌신하는 예배다.

 

그러기에 예배는 준비하는 것이다.

마음을 준비하고 예물을 준비하고 찬양과 기도를 준비하고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는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예배(禮拜)에 대한 이해

 

1. 예배의 시초(始初)

 

에덴 동산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와 만남이 자유로웠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두려워 숨게 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이처럼 교제의 단절을 가져온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가 성막과 성전에서 가시적으로 제사를 통하여 만나주시는 제사 사건으로 표현되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는 타락한 인간을 만나주시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구약에서 제사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기 위한 제도로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장과 희생물을 통하여 예배하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직접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 만남이며 대화라고 할 수 있다

 

 2. 예배의 어원(語原)

 

 1) 샤하(히) : ‘엎드려 절하다, 구부리다, 굴복하다’을 뜻을 갖고 있다(출4:31).

 2) 아바드(히) : ’봉사, 수고, 섬김’이란 뜻을 갖고 있다(창2:5,15:출3:16:민1:51:사19:21)

 3) 프로스쿠네오(헬) : ‘존경의 표시로 다른 사람 앞에 엎드리는 것’을 말한다(마18:26,14:33:요4:22-25)

 4) 레이투르기아(헬) : ‘국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 또는 ‘교회의 예배’를 말한다(행 13:2).

 5) Worship(영) : ‘가치 있는 대상에 대한 인정’ 또는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자에 대한 찬미’ 등의 뜻을 지닌다.

 6) Service(영) : '하나님의 백성 된 자의 의무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7) Liturgy(영) : 공적인 일을 의미하고, 라틴어에서 파생된 ‘Cult’란 말은 "숭배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최상의 존경심과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시29:2).

 

3. 예배(禮拜, worship)의 정의(定義)

 

신자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말씀에 응답함으로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생각에 관심과 마음의 사랑을 주님께 집중함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것이다.

즉 최고의 가치, 사랑, 헌신을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것이다(요14:6;딤전2:5;요4:21-24).

 

4. 예배의 대상(對象)

 

하나님(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5. 예배의 목적(目的)

 

인간이 살아가는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면,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표현하는 행위'(시29:2,96:8)라고 할 수 있다.

 

6. 예배의 중요성(重要性)

 

 1)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영광을 받기 위하심)이기 때문이다(사43:7;고전10:31;롬1:18-23;엡1:3-6).

 2)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출3:12,20:3-6)

 3)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요4:23).

 4)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롬12:1)

 5)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온전히 보존하여 주시기 때문이다(살전5:23;시16:8,9)

 6)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요4:23).

 7) 구원받은 자의 의무이다(살후2:13,3:2).

 
7. 예배의 구조(構造)

 

 1) 내적인 마음의 태도(경외, 존경, 경탄)와 객관적인 행위인 외적인 행동(엎드림, 섬김, 절함)의 결합이다.

 2) 계시(하나님의 초청, 성경봉독, 설교, 축도)와 응답(찬송, 기도, 헌금)으로 대별된다.

 3) <부르시고-만나고-파송 한다>는 구조이다.

     첫째, 부르시고

     -> '하나님의 초청'이다.

           이것은 예배의 시작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시작하신다는 의미이다.

     둘째, 만나고

     -> '말씀 속에서 만남'이다. 

          설교를 통하여 우리와대화하시고, 우리는 그 말씀으로 살아갈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셋째, 파송한다

     -> '세상으로의 파송과 복 주심'이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대하며 새로워진 사람들에게  사명을 맡기며 세상으로 파송한다.

 
8. 예배의 요소(要素)

 

 1) 고정적 요소 : 말씀, 기도, 찬송, 성찬, 헌금

 2) 유동적 요소 : 주기도문, 사도신경, 교독문, 광고, 친교

 3) 상향적 요소 : 찬송, 기도, 헌금

 4) 하향적 요소 : 성경봉독, 성찬, 설교

 

9.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

 

* "너희는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받지아니할 것이요"(암5:22).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1:11,12).

*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렘6:20).

 

 

10.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쁨보다 나으니"(삼상15:22).

*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21:3).

*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21:3).

* "여호와께서 내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히11:4).

 

 

11. 참다운 예배

 

*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잠16:6)

*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전 5:1).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 하나님께서 희생제물 보다 우선하여 하나님을 아는(믿음, 말씀 순종, 의와 공평, 공의, 인자와 진리, 신령과 진정,

    산 제사) 예배를 기뻐하신다고 요약할 수 있다.

 

 

12. 예배의 기본(基本)

 

 1)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의 대상은 인간이나 사물이 아니라 참  하나님 한 분이기 때문이다(마4:10;요5:23;고후13:13).

 2) 예배는 무엇보다도 기독론에 근거해야 한다.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게 계시해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3) 예배는 성령론에 근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  얻는 감동과 변화는 모두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예배는 교회론과 깊이 연결되어 표현되어야 한다.

     교회는 언약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배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5)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한다(요4:23-24).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찬송하고, 부르고, 신뢰하고,

     섬겨야 한다(롬1:20;행17:24;시119:68;렘10:7;시31:23;18:3;롬10:12;시62:8;수24:14;막12:33).

  (1) 기도는 합법적인 것을 위해서 해야 한다(요일5:14).

  (2) 기도는 살아있거나 장차 살아갈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서 해야한다(딤전2:1-2;요17:20;삼하7:29;룻4:12).

  (3) 소리 내어 기도한다면 잘 알려진 언어로 해야 한다(고전14:14).

  (4) 경건한 두려움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행15:21;계1:3).

  (5) 강도(講道)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침이니 크게 주의하여 행하여야 한다(딤후4:2)

  (6) 이해와 믿음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양심적으로 들어야 한다(약1:22;행10:33;마13:19;히4:2;사66:2).

  (7) 마음에 감사함으로 찬송시를 노래한다(골3:16;엡5:19;약5:13).

  (8) 성례를 바르게 시행하고, 합당하게 받는다( 마28:19;고전11:23-29;행2:42).

 6)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주일을 구별하여야 한다(계1:10;출20:8,10;마5:17-18;창2:2-3;고전16:1-2;행20:7).

 

13. 예배의 금기(禁忌)

 

 1) 천사나 성인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에게 예배해서는 안된다(골2:18;계19:10;롬1:25).

 2) 오직 그리스도 외에 어떤 다른 이의 중보를 통해서도 예배할 수 없다(요14:6;딤전2:5;엡2:18;골3:17).

 3) 어떤 보이는 표현물이나 성경에서 규정하지 않은 어떤 다른 방식을 따라 예배 받으시지 않으신다

    (신12:32마15:9;행17:25;마4:9-10;신15:1-20;출20:4-6).

 4) 죽은 자를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 된다(삼하12:21-23;눅16:25-26;계14:13).

 5)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다고 알려진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 된다(요일5:16).

 

출처 : 바른신학 바른신앙 http://cafe.daum.net/correcttheology/1EvS/1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기독교에서의 예배학(禮拜學), 예배(禮拜)란 무엇인가?

 

Ⅰ.서언(序言)

예배란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경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예배라는 말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신약 용어는 ‘프로스쿠네오’인데 이것은 “~에게 키스하다, 손에 키스하다, 절하다, 엎드리다”라는 뜻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배라는 개념은 사람이 존경, 경외감을 갖고 최상의 존재 앞에 엎드려 절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기독교적 맥락에서 하나님께 적용한다. 우리2는 하나님 앞에 절하며 또 하나님께 최상의 성품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며, 존경과 경의를 표하면서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요한복음 4:20~24절은 예배에 대한 연구의 시금석이다. 이 본문은 사마리아 여인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간의 대화인데 ‘예배’라는 말이 본문에서 여덟 번 나타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여기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으려고 교회에 간다. 그런데 음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위해, 또는 설교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위해, 또는 축복을 얻기 위해 교회에 간다면 그것은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음악과 설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교회에 가는데 그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드림으로써 행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드리기 위하여 가야 한다. 본질적으로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존경과 경의를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함께 모이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드릴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자신, 우리의 마음의 태도 및 우리의 소유물을 드리는 것을 포함한다.

 

본 레포트의 목적은 먼저 예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둘째로, 실상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셋째, 그렇지 않다면 예배를 어떻게 드릴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배의 중요성”, “예배의 근원”, “예배의 대상”, “예배의 영역”, “예배의 본질”, “예배의 결과”, “예배를 위한 준비”, “예배의 장애물” 등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Ⅱ.예배의 중요성

 

Ⅱ-1.성경은 예배로 가득차 있다.

예배가 중요한 첫째 이유는 성경이 예배에 대해 매우 자주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수백 번 거듭해서 예배라는 주제를 강조한다. 그 가운데 예배의우선권을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하여 성경의 몇 가지 구절을 살펴보고자 한다.

 

1.구약의 구절들

 

1) 제1계명의 강조(출20장)

하나님의 몇몇 표준, 원리 및 지침을 계명, 법규, 법령, 법률 및 신조의 형 태로 말씀하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애굽기 20장 2~6절까지의 제 1계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제 1계명은 하나님을,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라 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 성막의 설립(출25장)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에 우선을 두고, 예배하는 데 집중하기를 원하셔서 예배를 행할 장소를 설립하신다. 그것이 성막인데 하나님께서 이 예배의 장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모든 수치, 기 준, 설비를 논하는데 7장(총243절)을 할애하신 점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우 주를 비롯한 삼라만상의 창조를 묘사하는 데는 불과 31절만이 할애 되었을 뿐이다.

 

성소에는 지성소가 있었고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는데, 이 언약궤 맨 위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로 피를 뿌리 는 속죄소가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곳은 바로 속죄소인데, 출애 굽기 25장 22절을 보면 예배가 가장 우선적이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3) 성막주위의 진지(민1:52~2:2)

광야 방랑생활 40년 동안 매번 이스라엘 자손이 진지를 세우기 위해 멈춰 설 때마다, 제사장들은 성막에 가까이 있어야 했다. 제사장들 주위에는 레 위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열 두 지파가 바깥 쪽의 원을 이루었다. 제사장들 은 예배를 맡고 있었고, 다른 레위인들은 성막을 돌보는 봉사를 맡고 있었 다. 이것은 우선권이 예배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입증하여 준다.

 

4) 스랍의 예(사6:1~2)

이사야 6:1~2에서 날개 중 네 개가 예배와 관련이 있고, 두 개만이 봉사 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각각의 스랍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가렸으며, 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때문에 그의 발을 가렸다. 이는 천사들에게 있어서도 예배가 우선적이었음 을 나타내고 있다.

 

 

5)시편 기자의 권고(시편95:6~7상)

시편95:6~7절 상에서는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 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예배할 것을 권고하는 많은 시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시5:7; 29:2; 45:11; 66:4; 86:9; 96:9; 99:5,9; 132:7; 138:2)

 

2.신약의구절들

 

 

1) 로마서12:1~2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11장에 걸쳐 그리스도인과 그의 모든 유익을 정의 하는 교리를 논한 다음에, 로마서12장1~2절을 통하여 예배에 관해 논하 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받으실만한 영적 예 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산 제사로 몸을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런데 그것은 육체적 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것은 영적 예배의 행위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그의 위대한 자비 때문에 영적 예배의 행 위로 그에게 우리 자신을 드릴 것을 요구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께 참되고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2) 베드로전서 2장5절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장에서 구속적 은혜의 기사들을 담고 있다. 그 리고 2장 2~3절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갓난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제 구원 받은자로서 베드로전서 2:5절에서 말한다.

 

 

하나님은 손으로 만든 집에 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산 돌로 만든 집에서 사신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영적인 제사를 드려야 한다. 받으실만하고, 참되고, 영적인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 서 하나님의 변혁시키는 사역을 기초로 하여 드려진다.

 

그러므로 예배가 중요한 첫째 이유는 성경이 예배로 가득 차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예배가 중요한 둘째 이유는 운명이 예배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Ⅱ-2. 영생은 예배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배는 생활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생활의 핵이다. 받으실만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영생에 들어간다. 시간과 영원이 예배의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1.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

1) 거짓 신들의 예배세상의 물질적인 신이나(욥기31:24~28), 하늘의 초자연적인 신들(신명기 4:14~19)에 대해 예배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되고 그들 자 신이 창조한 우상들에게 예배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받지 않으 신다.

 

2) 잘못된 형태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하나님을 형상으로, 물질적인 표현으로, 우상으로, 또는 자신의 사고의 결 과 및 산물인 어떤 것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3) 자기 방식대로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예배활동을 개인적 정의에 따라 격하시키는 것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제 멋대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몇 명의 성경적 인물을 예로들면 “나답과 아비 후(레10:1~2)”, “사울”(삼상13:8~14절상), “웃사”(삼하6:1~9), “바리새인 들”(마15:1~9; 마23:23~28)등이 있는데 예배는 분명히 성경의 규정에 따라 드려져야만 한다.

 

4) 그릇된 태도로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우리 마음의 태도가 옳지 못하면 그 예배도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즉, 거짓 신을 예배하거나,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예배하지도 않고 우리 자신이 고안한 방법대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올바른 태도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다. 이에 대한 관련 성경 구절을 보면 “말라기1:6~14; 3:13~15; 4:1~6”, “아모스5:21~27”, “호 세아6:4~7”, “이사야서 1:11~20”, “마가복음 7:6”등이 있다.

 

4.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

1) 참된 예배자들의 모습받으실만한 참된 예배자들은 “깨끗한 손”(하나님께 복종하며 청결히 하는 자)과 “청결한 마음”(동기와 욕구가 올바른 자)을 갖고 참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이다. 시편 24편 3~6절은 참된 받으실만한 예배자에 대해 매우 중요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2) 참된 예배자들의 산출

구원의 목적은 참된 예배이며, 복음서와 바울 서신의 기록은 사람들이 예 배할 목적으로 구속받는 다는 사실을 지지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을 예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

 

 

3) 참된 예배자들의 자세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서 구원받았다. 히브리서12:28절을 보면 “섬기다”라 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헬라어 동사인 ‘라트레우오’로서 “예배하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의 나라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받으실만하게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우리를 예배하는 자들로 만드 신 하나님께 은혜롭게 반응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받으실만한 예배는 구원의 결과이므로 우리는 받으실만하게 예배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 예배를 확장시키고 그것의 충만함에 따라 사는 것은 그의 몸을 영적인 예배의 행위로 -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 기꺼이 드리는 신자의 순종하는 태도에 의 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을 적절하게 예배하지 않는다면 염려스런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다.

 

 

4) 참된 예배자들의 개인적인 특성매일의 삶 가운데서 참되고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① 동료그리스도인들에게 지혜롭게 행하고(로마서14:28) ②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 도께로 인도하며(로마서15:16) ③ 필요를 따라 물질을 드리고(빌립보서 4:18) ④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며(에베소서 5:8~10) ⑤ 의의 열매로 충만하고(빌립보서1:11) ⑥ 경건하고 단정하며(디모데전서2:3) ⑦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히브리서13:15~16)하여야 한다.

 

 

5) 참된 예배자들이 모이는 목적

우리의 예배가 생활 방식이 되어야 할지라도 우리는 또한 매 주 공동 예배 에 참석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주일에 드리는 예배가 나머지 육일 동안 예배하도록 고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하여 세상 가운데서 나눔과 의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예배드릴 목적으로 함께 모일 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행하도록 격려 받는다. 성도들의 교제 가운데, 의인들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 시는 그 백성 가운데 우리는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과 선행 을 하도록 격려받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에 그 격려가 우리의 영혼에 영향을 끼칠 때, 우리는 “선을 행하고 나눠주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히 13:16). 그리고 다시 그 모임에 돌아올 때 우리는 계속적인 감사의 마음 을 갖고 충만하게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Ⅱ-3. 영원과 구속사가 예배에 의해 묘사된다

예배는 영원과 구속사의 주된 주제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1.창조전의 역사

사람이 창조되기 전 영원한 과거에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사들이 존재했는데, 느헤미야9:6절과 욥기38:4~7절 까지를 보면 그 영원한 과거에도 예배가 진행 되었음을 알 수 있다.

 

 

2.타락 전의 역사

아담과 이브가 창조되었을 때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경배했다. 그러나 이 브가 사단을 예배하기로 결정하고, 아담이 이브를 예배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중단 했을 때, 그들은 타락했다.

 

3.타락 후의 역사

1) 가인과 아벨

아벨은 받으실만한 제물을 드렸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아들여지지 못하여 사람 사이의 최초의 분열이 일어났다.(창세기4:5)

 

 

2) 족장들

족장들이 올바르게 하나님께 예배했을 때는 축복을 받았지만, 그릇되이 예 배했을 때에는 징벌을 받았다.

 

 

3) 이스라엘 국가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후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내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세대가 죽고 말았다(민14:22~23). 또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예배받기 원하셨던 대로 예배하여 축복을 받았으나 결국 올바르지 않게 예 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전세계에 흩어 버리셨다.

 

 

4)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예루살렘에 가셔서 예배 처소에 들어가 그 처소를 정결케 하셨다(요2:13~17). 또한 예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들을 부르셨다(요한복음4:23~24). 이와같이 예배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로 구 속사의 중심 주제였다.

 

 

4.현재의 역사

교회가 생겨날 당시 그것은 예배하는 자들의 모임이었다. 빌립보서 3:3은 성경에 나온 예배에 대한 위대한 진술들 중의 하나로서 교회에 대한 정의를 잘 내려주고 있다. 교회는 독특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교회는 영으로 하나님 을 예배하며, 그리스도로 자랑하는 것을 그 구성으로 한다.

 

5.미래의 역사

역사가 그리스도 재림의 영광 가운데 완성될 때, 그것은 예배에서 절정을 이 룬다. 왜냐하면 예배는 천국과 영광의 주제이기 때문이다.(계시록4:10~11; 계 시록 5:14; 계시록 11:15~17; 계시록 14:6~7; 계시록 15:4; 계시록 19:4; 계시 록 19:10; 계시록 22:8~9)

 

6.그리스도께서 예배를 명하셨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예배를 명하셨다(마4:10하). 이 말씀은 창조된 모 든 것에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Ⅲ.예배의 근원(基礎)

구원의 목표는 예배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속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예배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15에서 결국 예배를 낳기 위하여 모든 노력이 기울여짐을 말씀하고 있다.

 

 

받으실만한 예배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주님은 누가복음 19:10절에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을 요한복음 4:23절하와 연관시키면,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예배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통하여 예배하는 자들이 된다.

 

Ⅲ-1.그리스도의 죽음(시편22:22~27)

시편 22:1~21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분명하게 예언하는 묘사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무엇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는가에 대한 답은 22절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시편22편은 구속의 목표가 예배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구원이 예배의 기초라는 것이다.

 

 

Ⅲ-2.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린 이유(출20:22~2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고백(출19:7~8)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믿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기초하거나 그들의 자기 의(義)에 기초해서는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출20:1~17에서 십계명을 주신 후에 출22:22~26을 통하여 은혜로운 규정을 주신 것이다.

 

출22:22~26에 나타난 은혜로운 규정은 예배의 기초로서 제단과 그 위에 놓을 수 있는 제물들을 설정하셨으며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제사로 궁극적인 교제를 가능하도록 만드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참된 예배자들을 찾으실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만날 때, 우리의 죄가 처리되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깨끗하게 되며, 또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자가 된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에 의해 가능하게 된 구원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근원이다.

 

 

Ⅲ-3.이사야의 예언(사66:22~23)

이사야서는 놀랄만한 방법으로 구속사를 한 눈에 훑는다. 이사야서의 초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위대한 미래 - 메시야의 도래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 - 로 옮아간다. 52장과 53장에서는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하는 고난받는 종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는 66장에서 는 그 이유가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영원한 예배자들을 낳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천년왕국을 넘어 영원한 상태로 나아간다.

 

Ⅲ-4.한 회심한 죄인의 반응(고전14:23~25)

고전 14:23~25는 어떤 사람이 회심에 이르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바울식 표현이다. 진실로 어떤 사람의 마음을 열기를 원한다면 방언으로 말하지 말고,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고, 그리고 그로 인해 그가 죄를 깨닫고 책망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가 죄를 선고 받고, 책망을 받고, 깨달으면, 그의 반응은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로 나타날 것이다. 구원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예배이다. 이와 같이 구원은 예배의 근원 또는 기초가 된다.

 

 

Ⅳ.예배의 대상

예배의 대상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배의 대상이 두 가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은 영으로서의 하나님과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다.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데 이는 그분의 본질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본질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참된 예배의 기본적인 것이다.

 

Ⅳ-1.영이신 하나님(하나님의 본성)

 

1.하나님의 영성

요한복음4:24절상은 헬라어로 ‘영’이라고 읽는다. 영과 하나님이 용해되어 동등한 것으로 만든다. 즉, 하나님은 하나의 영광스러운 영이신 하나님이시 다.

 

1) 하나님은 형상으로 전락될 수 없다.

이사야서40:18~26의 말씀을 보면 영으로서의 하나님의 본질적인 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가운데 18, 19, 25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암시하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 어떤 형상과도 비길 수 없으며 세상에 서 가장 중요하고 강한 자도 하나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또는 신학적 관점에서 또는 성경적 관점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자칫 하나님을 형상으로 전락시 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으로서 예배되어야만 한다.

 

 

2) 하나님은 한 장소에 제한되실 수 없다하나님은 한 장소에 제한되는 우상이 아니시다(예레미야 23:23~24).

하나님은 특별한 장소 또는 시간에 제한 받으실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시간에 특별한 정소에만 계시다고 생각 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시간과 공간을 충만하게 채우신다.

 

2.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게 예배를 받으셔야만 한다 하나님의 거 룩하심은 “하나님의 독특한 타자성” 또는 “인간 피조물과 하나님의 상이성” 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나님은 흠이 없으시며, 오류가 없으시며, 죄가 없으 시며, 실수가 없으시며, 또 완전히 의로우시며 전적으로 거룩하시다. 그러므 로 참된 예배를 위한 기본적인 이해는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선의의 노력과 또 하나님을 거룩하게 존중하지 않으며 진행 되는 - 그러므로 잘못된 - 많은 예배들이 있다. 많은 멋진 노래가 불려지고, 멋진 감정들이 느껴지며, 멋진 생각들이 떠오르고, 또 멋진 정서들이 표현되 고 있다. 구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라는 관점에서 그런 것이 아니기에 이 러한 “멋진”것들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정서 활동에 불과할 뿐이다.

 

 

하나님은 거룩하게 예배를 받으셔야 한다. 그러므로 이에 당연히 수반되 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이해로 경건한 두려움의 반응을 낳는다는 것이다.

 

1) 경건한 두려움의 반응

시편 96:2~9까지의 말씀을 보면 모든 예배와 찬양후에, 9절에서 핵심 진 술에 이르는데 여기에 예배의 태도 또는 관점이 있다. 결국 거룩하심은 두 려움과 분리되어 이해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매우 거룩한 존재 이심을 인식하게되면 자신이 매우 부정적인 존재임도 분명히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룩한 경외감을 낳는다. 왜냐하면 거룩한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피조물에 대해 거룩한 반응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 정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압도적인 부정함을 느끼 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함과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개념이 단지 구약의 개념일 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히브리서 12:28절 하~29, 이사야서 6:1~8, 디모데후서 2:22등과 같은 성경 말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2) 감사의 반응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을 주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 하심이 우리에게 감사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에 따라 보 응하시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는 이러한 하 나님의 자비조차도 우리에게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롬2:4).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을 보여주 셨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해 개의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롬6:23). 즉 우리가 죄를 지닌 채로 하나님의 임재 가 운데로 달려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죄에 대해 의로운 분노를 발 하실 날이 온다. 하나님은 충분히 그렇게 행동할 권리를 갖고 계신다. 우리 는 은혜와 자비에만 익숙해져서 하나님이 의로운 것을 행하실 때 그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종종 “어떻게 하나님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실 수가 있는 가?”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삶이 어렵게 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실 수가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생각이 반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죄에 가득찬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실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성경 곳곳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공의로 인한 저주와 사망의 사건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께 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부정함에 대 하여 거룩한 방법을 행동하셨던 것이고 또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께 약속했던 어떤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을 때 왜 우리가 죽지 않았나? 하는 은혜와 자비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부당하신 분이 아니라 자비로운 분이시다. 그러므로 때때 로 하나님께서 의로운 것을 행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생각나게 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기 위하여 그것 을 예 또는 표지로 행하신다(고전10:5~12).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부당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침해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자비로우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요, 초점인 것이다.

 

Ⅳ-2.아버지이신 하나님(하나님의 본질적인 관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한복음 4장에 나타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관련하여 아버지라는 용어를 볼 때, 사람들은 즉시 하나님을 자신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이 “광대하시고, 편재하시고, 영원한 영으로서 뿐만 아니라 또한 친밀하시고, 사랑하시고, 개인적인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되시고 또 우리가 그의 자녀라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요한복음 4장에서 토론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도 아니고, 또 예수님께서 강조하고 계신 강조점도 아니다. 그 강조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하나님의 삼위일체 칭호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다. 그분은 하나이신 세 인격 즉, 삼위일체 (三位一體, TRINITY)이시다. 이 삼위일체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이 여기서 “아버지”로 불리워 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자녀로서 우리를 우선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내에서 하나님의 본질적인 관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자의 아버지시다. 그리고 성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 므로 우리가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모든 인류의 아버지(자 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를 모호하게 예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예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칭호와 별개로 예배되실 수 없다.

 

1) 예수님께서 “아버지”라는 말을 사용하신 의미

신약에서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논의될 때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 리스도의 아버지를 나타낸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언급하셨을 때 예수님이 그의 신성, 하나님과의 동등성을 진술하고 계신 것이다.(요한복음 5:17~18; 요한복음10:29~33; 요한복음 17:1~5; 마태복음 11:27; 요한복음14:6~11)

 

 

2) “아버지”란 용어에 대한 사도들의 이해

서신서(書信書) 전체에 걸쳐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에 배되고 동일시 된다.(에베소서1:3상; 에배소서1:17상; 고린도후서 1:3; 빌립보서2:9~11; 로마서 15:6; 베드로전서 1:3상; 요한 2서 3절)

 

 

2.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예배

1) 아들에 대한 예배

요한복음 5:23은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동등성에 대한 논리적 결론을 내 려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에배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아 들을 예배하여야 한다. 이는 아들의 이름으로 나아오지 않으면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예배할 수 없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연합가운데 정의 되며, 초대교회 내에서 나타났고, 요한복음 20:38에서 사도 도마에 의해서 선언 되었다.

 

 

2) 성령에 대한 예배

성령님을 예배하라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성경 아무데에도 없다. 하지만 모든 에배는 성령의 권능 가운데 고무된다. 우리에게 하나님 의 임재 가운데 나아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시다(롬8:15; 갈4:6).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님의 권 능과 임재 가운데서 이다. 그는 에배의 중요한 부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실재를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삼위일체적으로 성령님은 아들과 아버 지와 동등하시기 때문에 그 또한 예배를 받으셔야 한다.

 

그러면 요한복음 4:20~24에 따르면 예배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영이신 하나님이다. 어떤 모호하고둥둥 떠다니는 정의되지 않은 영이 아니라 아버지이신 하나님이다. 누구의 아버지이신가?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신가?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다. 하나님과 본질에 있어 하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할 때, 우리의 마음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게 되는 것은 매우 적절하고 소중한 것이다.

 

 

Ⅴ.예배의 영역(場所)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분명히 성전, 성막 그리고 매우 특별한 지리적 장소에서 예배했다. 이 때문에 요한복음 4:20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본래 그녀는 예배드려야 하는 곳이 어디냐고 묻고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21절에서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라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말로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이 곧 모두 제거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장소도 예베 처소가 되지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Ⅴ-1.옛 언약의 상징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는 더 이상 그리심 산이나 예루살렘에서 드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성막이나 성전 또는 의식 및 희생 제도의 중요성을 부인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셨던 모든 상징, 표상 및 그림들을 부인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모든 상징들이 사라지고 물질적인 성전, 제물 및 제사장들이 필요하지 않게 될 때가 노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자 살아있는 성전과 살아있는 제사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신 제물은 단 하나의 완전한, 최종적인, 영구적인 - 모든 다른 제사들을 종식하는 - 제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징에는 잘못된 것은 없었지만 그것들은 그저 상징일 뿐이었고 하나님은 결코 성막이나 성전에 제한되거나 한정되실 수 없는 분이시기에 상징은 마음의 자극제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새 언약에서 상징들은 실제가 되었고 또 외적인 것으로부터 내적인 것으로 옮아갔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셨을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어떤 사람이든 지성소로 곧바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막15:38)

 

- 그렇다면 이와 같이 前制度가 끝나고, 성전이 있지 않다면 그리고 특별한 물질적 건물이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예배를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다음에 있다.

 

Ⅴ-2.새 언약의 실재

1.우리의 개인적 몸인 성전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은 성령의 살아있는 성전들이다. 이는 사도 바울도 고 린도전서 6:19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해변에서, 산에 서, 시골에서 또는 당신의 거실에서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또한 길을 따라 운전하면서, 나무 아래 앉아서, 숲 가운데를 걸으며, 베 란다에 앉아 별들을 바라보면서, 아침에 신선한 꽃 내음을 맡으면서 하나님 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그러면 이로인해 내가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라는 의 문이 생기게 될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맞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교회에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차 원을 분명히 살펴보아야 한다.

 

2.우리의 집단적 모임의 성전

오늘날에는 예배 처소 - 하나님께서 독특하게 그분의 백성을 만나는 건물 - 가 있다. 이를 성경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매우 생생한 용어로 묘사하고 있다. 그 리고 그는 그들을 연결되지 않은 개인적 성전들로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권속에 속해 있어 공동 시민권에 의 해 연결되어 있고 또 가족으로 공동 혈연에 의해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 라 건물로서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에배소서2:19~22). 하나님은 특별한 건물을 갖고 계신다. 그것은 구속된 성도들의 가시적이 고 살아있는 모임이다. 함께 모일 때에 우리는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구성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개인적 성전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집 단적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의 거대한 성전인 것이다.

 

2)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는 우리를 “산 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함께 모일 때 하나님께서 독특한 방법으로 그 자신을 나타내시는 예배 처소를 구성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그 자신을 나타내실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해 우리에 게 움직이시기 때문이다(베드로전서2:5)

 

3)바울은 고린도후서 6:16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 가운 데서 움직이신다고 밝히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 하다고 권면하고 있다(고린도전서 3:9; 3:16~17)

 

4)우리가 함께 모여야 하는 이유는 놀랄만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가 하나 님의 살아있는 성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로 만들어진 성전이 아니 라 살아있는 육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히브리서10:24~25). 우리는 어떤 장소에서나 하나님을 에배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혼자서 예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구속된 백성의 모임 가운데서 예배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집단적인 모임이 필요한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산 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구속된 백성의 임재 가운데 있을 때 오는 자극과 확인,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성취하시는(우리가 혼자있을 때는 성취하실 수 없는) 독특하고 놀라운 사역에 대해 반드시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주일 하나님을 에배하는 장소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Ⅵ.예배의 본질(本質)

 

Ⅵ-1.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에서 벗어난 것들

 

1.사마리아인의 예배(진리없는 신령)

요한복음 4:22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 을 예배하고”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오경만을 하나님 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식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몇몇 진리들을 알 만큼은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구원 의 계시를 전부 알 정도로 충분한 지식은 없었다.

 

사마리아인들이 드리는 예배는 적절한 지식이 없는 열광적인 예배였다. 그 들이 드리는 예배는 정열적이고, 열광적이고, 흥분되어 있었고, 충성된 것이 었지만 그들에게는 올바른 내용이 없었다. 즉, 그들은 신령으로 예배했지만 진리로 예배하지는 않았다.

 

 

2.유대인들의 예배(신령없는 진리)

요한복음 4: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유대인)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유대인들의 태도는 사마리아인들과 정반대이다. 그들은 구약의 39권 모두를 받아들이며 구원의 가르침에 대한 전체계시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있었다. 그러 나 그들에게는 신령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차갑고 율법적이며 위선적이었고(마태복음6:1~8), 예배 동작을 모두 행했으나 그 안에 그들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들의 예 배는 생명이 없는 것이었고 그들은 진리는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은 비어 있었다.

 

Ⅵ-2.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1.신령으로 드리는 예배

1) 의미

신령으로 드리는 에배는 인간의 영 - 속 사람을 뜻한다. 우리는 안에서부 터 밖으로 에배를 드려야 한다. 그것은 적절한 장소, 적절한 시간, 적절한 말과 적절한 태도, 적절한 의복, 적절한 형식, 적절한 행동, 적절한 음악, 적절한 분위기 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부 - 영혼에 무엇이 있는가 의 문제이다. 바울과 다윗은 심령과 내부로부터의 예배 그리고 회개하는 예배와 마음 속이 찬양으로 가득차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로마서1:9; 시편103:1; 시편51:15~17)

 

 

2) 방법

어떻게 하면 신령으로 예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찬양으로 가득차서 우리 입이 열려질 때 찬양이 쏟아져 나오게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냉 랭한 마음, 즉 지루하며 무관심한 마음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몇 가지 원리를 제시해 보면

 

 

(1) 성령께 사로잡힘

성령께 사로잡히는 것(고린도전서2:11; 고린도전서12:3)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신령으로 예배드릴 수 있으려면 그 전에 성령께서 거기 계셔 그것을 고무해야 한다. 즉, 성령께서 예배를 북돋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구원 받은 것이다. 일단 구원을 받으 면,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향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촉구하고, 찌르 며, 밀어부치고, 가르치며, 우리를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마음에 거하신다. 그것이 성령님의 사역이다.

 

 

(2) 하나님께 생각을 집중함

예배는 하나님의 진리에 의해 새로워진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 다. 하나님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는 것은 예배를 시작하는 방아쇠가 된다. 즉, 온 마음을 한 가지 주제인 하나님께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 다. 효과적인 예배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은 온 마음을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해 묵상 할 수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묵상함

묵상은 지식에 기초하는 것인데 만일 어떤 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 한다면 생각할 주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순 수하며, 가장 참되고, 가장 멋지고 복된 묵상은 발견에 기초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우리의 모든 사 고과정을 완전히 사로잡을 때까지 그 진리를 묵상하라는 것이다. 이러 한 묵상이 진정한 예배를 하도록 한다.

 

 

(4)나누이지 않는 마음

우리 심령을 예배에 집중시키려 애쓸 때, 한 가지 주된 방해거리가 나 타날 것이다. 그것은 자아(自我)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예배는 방해를 받는다. 우리에게는 종종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어서, 발견이나 기도, 묵상, 예배 등을 위한 시간이 없다. 또한 나누이지 않는 마음을 갖기도 어렵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계획, 우리의 행동, 우리의 필요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自我)는 항상 예배를 방해한다. 우리가 자아를 완전히 제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데에 빠져들 때까지는 진정 하나님을 자유롭게 에배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진정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기에는 너무 게으르다 는 사실로 귀착되어진다. 찬양이 고정되고, 견고하며 하나님의 기사에 집중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필요, 이익, 축복 등 보다 항상 하나님을 위에 모시고 그분을 우선해야 한다.(시편86:5~ 11; 요일2:27; 요한복음16:13; 시편108:1~3; 시편112:7~8; 시 편57:7~11)

  

⑤ 열리고 회개하는 심령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접근할 때, 우리는 열리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다 가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탐조등을 켜서 당신께서 한구석에서 발견 한 것들을 드러내어 주소서”라고 기꺼이 말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만일 예배하는 것이 어렵고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면 분명 그 사람의 삶에는 오랫동안 간과되어졌고 하나님 만 알고 계시는 영역들이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그러한 영역들을 찾아 그것을 보여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그런 후에 상 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기꺼이 그 죄들을 고백하고 그 죄를 처리하여 야 한다(시편139:23~24; 사6:6~7)

 

2. 진리로 드리는 예배

모든 예배는 진리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느낀 감 정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세워진 반응이다. 만일 우리가 진리로 예배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가운데 예배드 려야 한다. 우리가 참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려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계시하신 곳은 그분의 말씀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한복음17:17;시편119:142,160)

 

1) 먼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피조 세계와 양심 속에서 드러내셨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명백하게 자신을 게시하셨다. 우리가 진리로 예 배하려면 우리는 성경에서 규정된대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만이 창조와 양심의 하나님에 대해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 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분의 계시와 떨어져서 예배를 받으실 수 없다(로마 서1:18~19,25)

 

2) 모든 예배는 반드시 진리에 근거해야 한다(시편 47:7)

예배는 단지 손을 모아쥐고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아니면 아무 의미나 내용 없는 황홀경에 빠진 경험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심지어 좋은 감정도 아니다. 물론 감정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예배는 말씀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드리는 찬양의 표현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 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이해가 없이는 참된 예배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임은 어떤 모임이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 - 하나 님을 예배할 수 없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령으로 또 진리에 따라 예배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3) 예배에 있어 모든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결코 속 임수로 성경을 오용해서는 않될 것이며 또 우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부정직하여서도 안된다. 우리는 오직 진리 가운데로 행하여야 한다.(고린도후서4:2)

 

4) 초대교회 교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 것은 사도들의 저술과 가르침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였 다. 그것은 진리의 실체로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것에 대해 예배드렸다 (사도행전2:42)

 

5)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가르쳤다(디모데전서4:13)

 

6) 초대교회가 예배드릴 때 그들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이용했으며 찬양과 감사의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우리 의 찬양이 규정되며, 우리의 예배는 신적 기준에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골 로새서3:16~17)

 

7) 무지(無知)한 가운데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사도행전17:23)

 

예배의 특성은 찬양과 기도, 노래, 헌금 그리고 생활 가운데서 우리 속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항상 그분의 계시된 진리에 기초하고 있다. 교회가 항상 그렇게 되도록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감상 적이고 광신적이며,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두편의 한 가 운데가 조화를 이루는 지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받으셔야하기 때문이다.

 

 

Ⅶ.예배의 결과(結果)

 

Ⅶ-1.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시편50:23). 우리 삶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레위기10:3)

 

Ⅶ-2.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하게 된다

예배하는 교회는 정결한 교회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때 거기에는 우리의 죄됨에 대한 인식과 그 죄됨을 포기하려는 기꺼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거기에는 깨끗하고 정결하게 되려는 불타는 열망이 있다(시편24:3~4).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죄에 더욱 더 압도되어 다윗과 같이 이렇게 외치게 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시편139:23~24절상)

 

교회에 있어서 성찬식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우리의 죄된 모습에 직면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사실상 바로 이 때문에 초대교회는 그토록 자주 성찬식을 행했던 것이다. 참된 예배가 드려지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하게 된다.

 

 

Ⅶ-3.교회가 세움을 받는다

초대교회가 예배를 드렸을때 그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칭송 또한 받은 것을 알게 된다(사도행전2:47). 그리고 그들은 성읍을 완전히 그들의 교리로 가득차게 했다(사도행전5:28)

 

예배하는 교회는 쌓아 올려지는 교회 - 즉 세움받은 교회이다.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고자 함께 모일 때 우리는 세워지고, 강해지며, 변화되어 진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예배가 거룩한 기대와 함께 시작하는 것처럼, 그것은 거룩한 기대로 끝을 맺는다. 예배의 결과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하게 되며, 교회가 세움받는 것이다.

 

Ⅶ-4.안 믿는 자들이 구원 받는다

예배하는 공동체의 심오한 증거는 어떤 단독적인 설교가 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예배하는 사람들은 안믿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고린도전서 14:23~25)

 

예배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리스도인이 깨끗하게 되며 교회의 품성이 높아지고 잃어버린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Ⅷ.예배를 위한 준비(準備)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갈 때, 문제는 성가대나 설교가 얼마나 잘 준비되었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준비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의 한 구절인 히브리서 10:22절 말씀이 성경전체에서 예배에 대한 가장 위대한 최종 변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Ⅷ-1.부르심

“…나아가자…”

이는 예배에 대한 부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라, 지금은 예배할 때이다. 하나님께로 향해서 가까이 나가자”

 

 

Ⅷ-2.점검표

1) 진지함

“…참마음…”

우리는 진정으로 진지한가? 우리의 마음은 모아져 있고 온 마음을 다해 예 배를 드리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2) 충성됨

"…온전한 믿음으로…”

우리가 더 이상 노력이나 의식의 체계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 에서 온전한 믿음을 갖고 나온다고 하는 충분한 확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는 것이 충성을 의미한다.

 

3) 겸손함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악한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겸손과 무가치함을 위식하게 된다. 주 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죄로부터 우리를 뿌려서 깨끗하게 하셨다는 사실 외에는 하나님 임재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깨끗함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이것은 십자가에서 우리 마음을 씻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날마다 씻는 것이다. 예배할 수 있기 전에 우리는 고백을 통하여 생활 가운데 짓는 죄 를 처리해야 한다. 비록 우리 마음은 십자가에서 깨끗하게 되었지만 우리 의 발은 여전히 이 세상의 먼지를 묻히고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고백해야 한다.

 

 

Ⅸ.예배의 장애물(障碍物)들

 

Ⅸ-1.회개의 예배

만일 우리의 삶속에 죄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죄를 고백해야 한다. 사무엘상 12장을 보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후, 또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죽은 후의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모든 일 후에 20절을 보면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회개의 예배이다.

 

다윗은 비극적인 상황 - 자신의 어린 아기를 잃음 - 한 가운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예배했다. 이는 그 자신이 마땅히 받을 것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회개의 예배란 징벌의 와중에서마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죄를 고백하며, “나는 마땅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를 결코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하나님께 회개하는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내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진솔한 회개가 없는 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방해하는 첫번쩨 장애물이다.

 

Ⅸ-2.받아들임의 예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가져오신 환경들 중 일부를 받아드릴 수 없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한다. 그러한 환경들은 그들을 비통하게 만들고 결국 예배를 드릴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욥’을 보면서 분명한 받아들임의 예배를 배울 수 있다(욥기1:20~22). 또한 ‘죠지 뮬러’의 말을 상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죽는 날이 왔다. 인간의 칭찬과 인간의 비난에 대해 죽는 날, 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대해 죽는 날이 왔다.” ‘욥’ 역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하고 있다.

 

받아들임의 예배는 우리의 상황 - 지위, 경력, 노력, 배우자, 자녀 - 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내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사랑하는 자를 잃는 것, 자녀를 잃는 것, 직업을 잃는 것, 질병의 고통 등)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저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허락하신 모든 것을 받아 들일 수 없는 마음이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두번째 장애물이다.

 

Ⅸ-3.헌신의 예배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으로 자기 아들을 이삭을 데리고 간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의 생명을 기꺼이 취하면서 여전히 그것을 예배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창세기22:4~5). 이것은 그 댓가가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을 예배에 헌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그러므로 헌신적인 마음과 정신이 없는 우리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X.結言(맺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에배의 정의와 중요성, 근원, 대상, 영역, 본질, 결과, 준비, 장애물등을 살펴 보았다. 본 결론에서는 참된 예배를 위한 자기 점검을 위에 기술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매번 예배 드릴 때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진지한가? 나의 마음은 모아져 있는가? 내 온 마음은 하나님께 바쳐져 있는가? 나는 그분께 집중하고 있는가? 나는 발견과 묵상을 통해 그분의 말씀 안에서 그분을 봄으로써 갈급한 마음으로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려 하고 있는가? 이것이 오직 믿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고 분명히 믿는가? 나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피흘리신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내 삶에 있는 모든 죄를 처리하고 깨끗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조금만 성의를 갖고 성경을 펴서 히브리서 10:22를 읽고 점검표대로 살펴 보면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예배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진지한가? 나는 새 언약이라는 진리에 전념하는가? 나는 그리스도가 다 이루신 사역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권리를 평가하고 있는가? 나는 순수한가? 나의 삶에 있는 죄를 처리해 왔는가? 이렇게 해나간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4:8절상)고 말할 수 있게될 것이고 이를 근간으로 참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參考文獻

1.죤 맥아더(한화룡 옮김) , 참된 예배, 도서출판 두란노, 2000

2.벧엘 성경 편찬위원회, 벧엘 성경, (주) 종로서적출판, 1997

 

3. 기타 논문자료 다수
 출처 : http://kcm.kr/dic_view.php?nid=41213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이슬람 문화의 특징 (무슬림의 5주 6신)

 

이슬람은 생활 종교입니다. 그것은 114장에 이르는 경전인 꾸란(코란)의 내용이 천지 창조와 인간의 창조, 이후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에 대한 내용과 인간 생활 전반에 걸친 가르침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신자의 생활은 이슬람의 기본을 이루는 '오주, 육신' (五柱 六信)을 믿고 지키는 것이 기 기본을 이루는데

이는 다섯가지 의무와 여섯 가지 믿음으로 반드시 지켜야합니다.

 

오주는

1.신앙 선언

2.예배

3.희사 (구빈세)

4.단식

5.성지순례입니다.

 

신앙선언은 이슬람 신자가 될 때 "하나님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맏은 그 사도임을 증언합니다."라는 내용을 증인들 앞에서 선언하는 것으로 이를 통하여 무슬림(이슬람 신자)가 됩니다.

 

예배는 하루 다섯 차례 (새벽, 정오, 오후, 일몰, ) 정해진 시간에 메카를 향하여 간단한 형식으로 깨끗한 장소 어디서나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 전에는 반드시 몸을 깨끗이 씼어야하며 이를 '우두'라고합니다.

 

우두를 하지 않은 예배는 무효입니다.

자기 수입의 40분의 1 (생활에 필요한 최소 경비를 뺀 수악금의 1/40)을 반드시 가난한 사람에게 전해야합니다.

 

단식은 이슬람력 (음력의 일종)으로 매년 9월인 '라마단'달에 매일 새벽 예배로부터 저녁 예배까지 즉, 해가 떠있는 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단식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저녁 예배 후에는 허기를 면할 정도의 소량의 식사를 허용합니다.

 

절약된 음식과 물자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단식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더욱 굳게한답니다.

 

성지 순례는 일생에 한번 순수한 자기 비용으로 메카를 순례해야합니다.

순례는 이슬람력 12월인 둘-핫즈에 순례 기간 중해야 합니다.

 

육신은

1.하나님

2.천사들

3.경전들

4.사도와 예언자들

5.정명(定命)

6.최후 심판일을 믿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유일신으로 천지를 창조하고 우주를 운영하는 절대자입니다.

 

둘째, 천사들이라함은 하나님을 보좌하고 인간을 돕는 성스러운 존재이나 이성을 갖지 못하며 하나님의 명을 충실히 따를 뿐입니다. 인간 보다 한단계 아래의 피조물입니다. 천사의 존재와 그 기능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셋째, 경전들은 태초 이래 유일신이 인간에게 전한 말씀들을 모두 일컫는데 이 중에는 구약, 신약, 꾸란(코란)이 모두 포함됩니다. 다만 이슬람에서는 꾸란을 절대적인 경전으로 믿고 다른 경전들에 대해서는 계시의 사실과 그것을 전한 예언자들의 존재를 믿지만 구약이나 신약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꾸란 이전의 경전들이 인간의 편의에 의해 선별되어짐으로 변형되었고 그러므로 꾸란이 완벽한 형태의 경정으로 다시 전해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꾸란에는 구약과 신약의 내용들 중 많은 부분이 언급되어 있기도 합니다.

 

넷째, 사도와 예언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로 신의 말씀과 예언을 인류에게 전했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다섯째 정명은 절대신이 인간에게 정한 원칙과 주어진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 많은 경전과 예언들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고 인류와 우주의 모든 일들이 절대 유일신의 뜻에 따라 운영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여섯째, 최후 심판일이 언젠가 오고 인간의 선악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나누어진다는 것으로 일면 기독교의 최후 심판일과 개념은 같지만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관계로 예수를 통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개인의 신앙의 정도와 선악을 얼마나 행했는지에 따라 구원과 징벌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설교  : 박 한 응목사                        
본  문 : 로마서 12 : 1 - 3
제  목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Series 1)
찬  송 : 213, 214, 321, 325, 327, 539

        할렐루야!!
        오늘도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만한 은혜를 내려주시려고 오늘 거룩한 날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사를 충만하게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예>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그 교회의 권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저, 목사님 긴히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 예, 어려워 마시고 말씀하십시오’ 라고 대답을 하자 그 권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저 목사님, 저 아무래도 권사를 못하겠습니다.’
        ‘아니 권사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까지 잘 해오셨잖습니까?’
        ‘일도 많고 너무 바쁘고 해서 집사하고 바꿔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권사는 못하고 집사는 할 수 있습니까?’
        ‘네 가만히 보니까 집사는 심방도 하지 않고, 또 하는 일도 별로 없고, 이름만 가지고 있어도 되잖습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하기야 우리 교인들 중에는 권사라고 해도 심방 한 번 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속장이라고 해도 속회 심방 한번 하지 않는 속장도 있습니다.
        집사, 권사라고 해도 새벽기도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십일조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달에 감사헌금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안 한다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죽으면 따라서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주님 심판대 앞에 가 보아야 합니다. 주님 심판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의 불신앙적인 행동이 나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따라 행하여 함께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이와 같은 불신앙적인 신앙생활이 남에게 믿음의 상처를 준다거나 실족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8: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잘못하는 사람을 본받으려고 하십니까? 기왕이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을 본받아야 합니다. 도둑놈 따라가면 결국 도둑놈 됩니다. 노름꾼 따라다니면 결국 노름꾼 됩니다. 게으름뱅이를 따라가면 결국 게으름뱅이가 됩니다.
       민수기 16:3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가데스바네아에서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더불어 당을 조직하고 모세를 반역하였습니다. 이때 고라를 추종하는 사람이 250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그의 가족들을 땅을 갈라서 생매장을 시켰고 추종하던 250명은 제단에서 불이 나와 모두 타죽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공존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함께 자라지 않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반드시 가라지를 먼저 묶어 지옥 불에 던져 태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3:29-30)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또한 마지막 때가 되면 악한 사람은 더 악해지고 선한 사람은 더 선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세가 가까울수록 믿음 있는 사람은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믿음 없는 사람은 자꾸만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집니다.
        (계22:10-12)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 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뿐만이 아니라 말세에는 사람들이 완악 하여져서 바른 교훈이나 바른 말 듣기를 싫어한다고 하였습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래서 신앙으로 말씀으로 권면을 하여도 듣지 않습니다.
        주일성수를 하여야 하늘의 신령한 영적 축복을 받는다고 하여도,
        새벽기도를 하여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동행하여 주시며 만사를 형통케 하시는 축복을 받는다고 하여도,
        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물질의 축복을 받고 황충을 금하며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는다고 아무리 설교를 하여도 마이동풍이고 권면을 하여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집사, 권사, 속장은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부르기 좋으라고 붙여준 이름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에서 받은 직분은 그 직분이 어떤 것이든 간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신 직분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멘>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런데도 그 직분에 충성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에 반드시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겔16:5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 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지금까지 쌓여만 가던 모든 죄악은 모두 아침 안개의 사라짐같이 빽빽한 구름이 물러감같이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흘리신 보혈로 씻음 받아 거듭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방법론이 제기되겠습니다만 저는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예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사랑이요 은혜이며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아 멘!>
        만약에 우리에게 예배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허락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선교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다. 그래서 오늘과 다음 주일까지 예배에 대한 말씀으로
        오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
        오늘 저녁예배에는 “예배를 바로 드려야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다음 주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지 말자”
        그리고 다음 주일 저녁예배에는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이렇게 시리즈로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아멘!>
        우리 ○○교회 성도들은 기왕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1.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건축케 하신 후에 성소에서 만나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 주시는 곳은 성전입니다.
        출30:6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날 것이라” 고 하셨고 왕상 9:3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시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광야가 아닙니다. 세상이 아닙니다. 골방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안방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교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1) 하나님과 만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삭개오는 예수님을 한 번 보기만 하여도 평생소원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였지만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오시고 그로 인하여 그의 온 가정이 구원받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②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는 죽어가면서도 메시아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영혼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③요한복음 4장 5절 이하의 기록된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은 남편을 다섯씩이나 거느린 한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을 받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으며 그리스도를 온 성에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④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일곱 귀신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나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어 일평생 주님을 섬기는 생활로 변화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무덤에 장사지낸 지 삼일 째 되는 날 아침 일찍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2) 하나님과 만나고 예수님과 만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출15:26) 고 말씀 하셨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고치셨습니다.
       ② 여리고성의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③ 열 명의 문둥이를 고치셨습니다.
       ④ 거라사 지방의 군대 마귀 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모두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만나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는 곧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병 고침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는 줄로 믿습니다.<아 멘!>

(3) 하나님을 만날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 창21:14절 이하에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쫓겨난 하갈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가지고 온 물과 떡이 모두 떨어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죽어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방성대곡하여 울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샘물을 주시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② 요한복음 6장의 말씀에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아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께서 5병2어를 가지시고 저들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병2어를 가지고 남자 장정만 5천명을 먹였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의 역사입니다. 바로 한 소년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③ 왕상 17:8절 이하의 말씀에는 사르밧의 한 과부가 선지자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그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요구를 듣고 순종하였을 때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자연적인 기적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2. 예배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 시간입니다.

        (사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분배받아 집을 나간 아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허랑 방탕하여 허비한 후에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서 아사 상태에까지 되었습니다. 이때 그 아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이 집을 떠난 후로 아버지는 그 아들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서 그 아들을 얼싸 안았습니다.
        아들이 생각하기엔 아버지가 도무지 용서해 줄 것 같지 않아서 아들은 고사하고 그저 품꾼으로라도 받아만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생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는 아들의 지난 모든 일을 묻지도 않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아들로서의 모든 권한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고,
        또 기억치도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렘31:34)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할렐루야!!

 

3. 예배는 하나님과 화목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였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수 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롬5:8-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복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고 하셨고
        (욥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만이 할 수 있습니다.

 

4. 예배는 우리의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적 생명을 공급받는 귀한 시간입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식물들까지도 성장할 수 있는 양식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영적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오직 귀한 시간이 바로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 시간이야 말로 얼마나 귀한 시간인 것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예배를 소홀히 하는 성도가 있어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 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분을 내시며 저들을 책망하여 내쫓으셨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영적으로 기갈이 들으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 갈급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항상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이 시간마다 순간마다 주시는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하나님은 항상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107:9)
         (사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
         그런데 문제는 기름진 것이 눈앞에 있는데 먹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심과 두려움과 세상의 재리와 염려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가 되었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나님의 주시는 신령한 영의 양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22;1-14절 말씀에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혼인 잔치를 베푼 왕이 종들을 불러 청한 사람을 모셔오라고 하였지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절하고 사양을 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청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무슨 이유를 대면서 거절하고 사양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심령 상태는 지금 아사(餓死) 상태인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말세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암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 하여 피곤하리라”
        이와 같은 마지막 말세가 가까이 다가오는 이때에 오늘 예배드리는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은혜를 사모하고 간구하여 항상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5.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1) 신령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요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면 오히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2) 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산 예배는 피 흘림이 있는 예배입니다.
        피 흘림이 있는 예배는 희생과 헌신과 감사가 있는 예배를 말합니다.
        희생이 없고 감사가 없고 제물이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단 쌓는 곳에 강림하셨고, 제물 있는 곳에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또 제물 있는 곳에서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9: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3) 새롭게 변화된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를 받는 것” 은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것으로써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세상 것을 다 끊어버리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성령이 역사 하시고 거듭남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며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옷도 아무렇게나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또 지각이나 하고, 와서는 졸기나 한다면 이런 예배를 진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여 부르짖고 찾아서 만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신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렘29:12-14)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막혔던 모든 문제들이 열려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구원의 문이 열려지고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모든 질병도 깨끗하게 고침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아무쪼록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총과 축복을 충만히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무슬림의 여섯 가지 믿음

   

이슬람(Islam)은 아랍어 동사 ‘aslama’(복종하다, 몸을 맡기다)를 어근으로 하는, 신의 뜻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다. 그리고 무슬림(muslim)은 신에게 복종하는 자를 의미한다. 즉 인간이 신에게 복종하고 신의 뜻에 따를 때 인간의 몸과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종교가 바로 이슬람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아 기록한 꾸란이라는 경전과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책인 하디스를 믿음과 삶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무슬림의 신학체계를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6()5()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믿음의 영역을 규정하는 여섯 가지 믿음과 실천의 영역을 규정하는 다섯 가지 규범을 말한다. 이번 회에서는 무슬림의 여섯 가지 믿음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다.

 

 

여섯 가지 믿음은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믿는 자들이여 알라와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에게 계시된 성서와 너희 이전에 계시된 성서를 믿어라 했거늘 알라와 천사들과 성서들과 선지자들과 내세를 부정하는 자 있다면 그는 크게 방황하리라”(꾸란 4:136) 이 구절에 나와 있는 알라, 천사, 성서, 선지자, 내세 등 다섯 가지에 이슬람의 다수 정통파인 수니파의 경우 정명론(定命論)을 추가한다. 반면 시아파는 정명론 대신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첫째, 알라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 무슬림들은 스스로를 무와히둔’(muwahhidun, 유일신교도라는 의미)이라고 자부한다. “라 일리하 일라 알라라는 문구처럼 알라 이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생각한다. “알라와 더불어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분 외에는 신이 없나니 그분을 제외한 모든 만물은 멸망하고 심판하심도 그분이시니 너희 모두는 그분께로 돌아가니라”(꾸란 28:88) 무슬림에게 알라는 모든 존재의 기초이며, 가장 현명하고, 공정하고, 자비로운 신이며, 무소부재, 전지전능한 신이며, 죽음과 삶과 부활을 결정하는 신이다. 이 같은 알라의 속성은99가지 이름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교리는 신성에 관한 어떤 복수의 개념도 허용되지 않아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도 부인하고 있다.

 

 

둘째, 신의 조력자요 사자로서의 천사들에 대한 믿음= 천사는 빛으로 만들어졌고, 죽지 않으며, ()이 없고, 알라와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존재다. 천사들은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그중 이블리스(Iblis)만이 불순종하였고, 사탄이 되어서 쫓겨났다. 꾸란에는 가브리엘, 미가엘, 하루트(Harut), 마루트(Marut) 등의 천사들이 등장한다. 천사보다 아래 등급으로 인간과 유사하지만 보이지 않는 진(jinn)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셋째, 신이 계시한 경전들에 대한 믿음= 모세의 오경(토라, Torah), 다윗의 시편(자브르, Zabur), 예수의 복음서(인질, Injil), 그리고 꾸란을 신적인 말씀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이슬람 이전의 백성들, 즉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근원적인 말씀을 변질시켰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시 계시된 꾸란은 다른 경전들을 보완하고 확증시켜준,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신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넷째, 예언자들에 대한 믿음= 알라는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와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예언자들을 보냈다. 예언자들 가운데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를 특별한 예언자로 보는데, 특히 무함마드를 최후의 예언자로 믿는다(꾸란 33:40). 무함마드 이후에는 어떤 예언자도 없으며 그가 계시 받은 꾸란이 최후로 완성된 알라의 경전이라고 믿는다.

 

 

다섯째, 내세와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 무슬림의 최후의 날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 유대교의 최후의 심판과 유사하다. 꾸란 811-14절은 마태복음 24장과도 매우 흡사하다.

 

 

여섯째, 신이 내려준 운명에 대한 믿음= 이 정명론은 이슬람 교리 중 가장 논쟁이 많은 부분으로 꾸란 7178절을 근거로 하고 있다. “알라가 인도하사 그는 바른 길에 있는 자요 그분께서 방황케하사 그들은 잃은 자들이라.”

 

 

이상 알아 본 것처럼 이슬람의 여섯 가지 믿음은 기독교의 성경을 인용하여 변개하거나 또 다른 내용을 추가하여 자신들의 교리로 믿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슬람 실천의 다섯 기둥강력한 율법의 종교 

 

이슬람은 강력한 율법의 종교다. 이슬람의 율법은 샤리아라 부르는데,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무슬림의 모든 삶에 있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중에서도 무슬림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의무로 규정된 다섯 가지 실천항목들이 있다. 무슬림의 5대 의무라 하여 이를 이슬람의 다섯 가지 기둥이라 부른다.

 

 

신앙고백(샤하다, Shahadah)

 

라 일라하 일라라, 무함마드 라술룰라알라 이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다라는 이 고백은 신의 유일성과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메시지의 진실성을 확신하는 신앙의 기본적 선언이다. 처음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샤하다를 고백함으로써 무슬림이 될 수 있다. 무슬림은 이 고백문을 예배나 기도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되뇐다 

 

다섯 번의 예배(쌀라트, Salat)

 

무슬림은 매일 다섯 번의 예배를 드리는데 이를 쌀라트라 한다. 예배시간은 일출, 정오, 오후, 일몰, 밤예배가 있다. 예배 참석자들은 물로 손발과 얼굴을 깨끗이 씻고 참석해야 하며, 기도의 방향은 전 세계 어디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한다. 이는 14억의 무슬림들이 매일 다섯 차례 메카의 카바신전을 향해 동심원을 그리는 것이다.

 

 

예배는 한 번의 반절과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는 두 번의 온절을 한 다음 첫 자세로 돌아오는 행동을 예배마다 정해진 수대로 반복하면 된다 

 

단식(싸움, Saum)

 

이슬람력으로 9월은 라마단달이라고 하는데, 한 달 동안 무슬림들은 새벽부터 일몰까지 음식, 음료, 흡연 그리고 성행위뿐만 아니라 사악한 의도들과 욕구들을 삼간다. 무슬림들은 이를 통해 사랑과 진실 그리고 헌신을 가르치고, 건전한 사회적 양심, 인내, 욕심 없는 마음과 정신력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라마단 기간 중 무슬림의 밤은 다른 달보다 더욱 활동적이고 상업적이다. 낮에 먹지 못한 것을 한꺼번에 먹고 흥겨운 교제를 나누느라 음식점 매출액이 1년 중 가장 많다. 라마단 기간이 끝나고 3일 간은 단식을 마치는 것을 축하하는 이드 알 피트르라는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구빈종교세(자카트, Zakat)

 

무슬림들은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종교적인 의무와 속죄의 의미로 한 해 동안의 순수 저축액의 2.5퍼센트를 매년 구빈종교세로 지불한다. 현재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자발적으로 양심에 따라 종교세를 사원에 납부하는 추세다 

 

성지순례(핫즈, Hajj)

 

무함마드의 출생지로서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를 순례하는 것은 무슬림들이 평생에 한 번은 해야 하는 의무다. 과거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성지순례가 평생의 소원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매년 200만 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메카를 찾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매년 공식적으로 참가자를 5년 마다 제한하고 있을 정도다. 이슬람력 12월은 성지순례의 달로 거대한 인파가 몰린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