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주요 특징

 

데르위쉬 the Dervishes

데르위쉬란 "문 앞에 오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걸식 행각을 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신비체험에 열중했다. 이들은 12세기 이후 조직을 형성했다.

 

카다리야 Qadariya

바그다드에서 아브드--카디르 알-질라니 Abd-al-Qadir al-Jilani(1077-1166)가 조직했다. 동쪽으로는 자바, 서쪽으로는 알제리까지 영향을 끼쳤다.

 

Rifaiya(Howling Derrishes)

12세기 후반 아마드 알-리파이 Ahmad al-Rifai가 조직했다.

Maulawiya(Whirling Dervishes)

Jalal al-Din Rumi의 추종자들이 조직했다. 의식을 행할 때 시와 음악도 사용했다.

 

극단적 고행을 하는 데르위쉬도 있었고, 평신도도 단체에 수용했다.

 

성인숭배

무슬림 초기 문헌의 왈리 wali (복수는 waliya)"감정상으로 가까운" 사람을 지칭했고, 종교적 문맥에서는 '알라의 친구'를 의미했다. 수피들에게 왈리는 성인, 즉 알라에게 지핀 사람을 의미한다. 성인은 예언자와는 다르다. 왈리는 알라와의 합일 체험 후 몸소 알라를 보여준 사람이며, 기적 karamat를 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관념은 쿠란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슬림은 무슬림 성인의 묘지를 방문하여 선물 바치고, 기도하며, 축복 barakah를 빈다. 성인의 묘지는 대개 모스크 주변에 있다. 죽은 성인 숭배는 쿠란에 위배되지만 법학자들 대부분은 이런 행위를 묵인하며 스스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는 이슬람 공동체의 의견 ijma가 설득력을 갖는 것을 의미하며, 성인숭배 풍습은 이슬람 이전의 원시적 관념과 뒤섞여 있었다. 한편 지방 신령들이 성인들 속에 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특정한 경우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전문화(불임, 시험, 미친 경우 등등)되었고, 성인의 묘는 주로 샘이나 동굴, 고목 근처에 위치한다. 무슬림들은 그 입구나 주위의 나뭇가지나 창살에 맹세의 천이나, 제물들을 갖다 바친다. 특히 북아프리카는 과거의 풍습과 관련하여 성인숭배가 매우 활발하다. 인도에서는 유서 깊은 힌두교 성소가 무슬림 영묘로 둔갑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인의 묘소 근처에서 행해지는 행위는 주술에 가갑다. 쉐이크의 주 업무 중 하나가 부적 만드는 일이다. 이와 함께 유품 숭배도 성행했다. 예언자의 머리카락은 영험이 있다 하여 선망의 대상이었다. 수년 전 카슈미르 지방의 스리나가에서 있었던 예언자의 머리카락 도난 사건은 심각한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언자나 알라의 발자국도 신성시되었다.

 

무슬림의 축제와 절기

 

축제

라마단 금식 기간 마지막에 거행하는 소축제 Id al Fitr와 대축제(희생의 축제) Id al-Adha가 있다.

절기

무하람 Muharram은 신년 초에 행하는 것으로 카르발라의 야간 전투에서 죽은 알-후세인과 그의 아들을 추모하는 절기이다. 그리고 예언자의 출생을 기념하는 마울리드 안-나비 Mawlid an-Nabi, 예언자의 밤 여행을 기념하는 라일랏 알-미라즈 Lailat al-Moraj가 있다.

 

현대의 이슬람

보수주의와 복고주의

 

18세기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Wahhabi 운동

   

사우디 가의 지원으로 일어난 복고주의로 초기 한발리 학파와 14세기 이븐 타이미야 Ibn Taymiya의 반수피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이 운동은 이븐 아브드 알-와하브 Ibn Abd al-Wahhab가 창시했다. 그는 무함메드와 쿠란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고, 무함메드 사후 메디나 공동체에서 결정된 사항만 제외하고 ijma를 통해 결정된 모든 수정적 요소를 거부했다. 수피주의를 혐오했으며, 부족간 갈등을 저주하고, ,담배를 금지했으며, 무슬림의 평등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무덤이나 모스크 예배의식에서 수피의 요소를 배격했고 성인숭배도 다신교로 간주하여 배격했다. 집과 의복을 간소화했고, 농담, 음악, 금 장식등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장기 같은 게임도 금지시켰다. 와하비 운동은 북아프리카,인도,동부인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수피

개인적 종교체험,직관,성인숭배의식과 같은 특유의 종교의식을 계속 전파했고, 이란,터어키에서 왕성하다.

 

예언자운동과 혼합주의

 

아마디야 Ahmadiya

 

인도에서 미르자 굴람 아마드 Mirza Ghulam Ahmad of Qadiyan(1908 사망)가 창시했다. 그는 19세기 말 마흐디로 자처했는데, 성서를 읽은 후 자신이 재림주라고 생각하고 1904년에는 크리슈나의 화신이라고 선언했다. 평화주의이면서 열렬한 선교를 했지만 여러 분파로 나누었다. 그중 Qasiyani 지파는 의도적 혼합주의를 표방했다.

 

바하이 Bahai

 

쉬아파의 미르자 알리 무함메드 Mirza Ali Muhammad1844년 자신이 무슬림들을 위한 ""이라 선포하고, 자신을 바브-우드-Bab-ud-Din(신앙의 문)이라고 하여, 그의 추종자들은 Babis라 불림, 그는 후에 자기보다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 개혁운동을 완성시킬 것이라고 주장, 1850년 사회질서를 해친다는 죄명으로 처형당했다.

 

그의 추종자 Bahaullah(알라의 영광)가 자신이 바브가 말한 사람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신의 통일성과 모든 예언이 근본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견해를 지녀 종교통합을 주장했다. 인류는 신 아래 하나이며 모든 사람이 바하이교를 신봉하면 신을 통해 인류는 통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급진적 예언자 운동으로는 미국의 흑인 무슬림 운동 the Nation of Islam이 있다.

 

이상의 이슬람 이야기는

 

이슬람이 종교적 신념의 복합체가 아니라 삶의 양식이며, 예술, 철학, 문학을 포함한 포괄적인 문화복합체임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J.B Noss, 윤이흠 역, [세계종교사]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