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기도회 기도문 (수요기도회) Wednesday worship prayer   

 

 

 


사랑의 하나님, 날마다 주의 백성들에게 하늘의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이곳에 모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당신을 예배합니다.


하늘의 은혜와 영적인 풍성함으로 채워 주소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처음과 나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제 잘난 맛에 살지만 자기 힘으로 살수 없습니다.


죽기까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힘입어야 사는 존재인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늘 묵상하며 당신이 가신 사랑의 길을 늘 따르고 실천한ㄴ 우리가 되게 하소서.


주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소서. 우리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게으를 때도 있고,


주께서 내민 손을 차마 잡지 못할 만큼 저열한 본성의 노예로 살 때도 있습니다.


이런 내 자신으로 인해 절망에 빠질 때,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그분의 십자가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겸손한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낙담하고 실패 중에 절망하기 쉬우며, 성공 중에 우쭐하고 높아 질 때 자만하기 쉽습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를 잊는 오만함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해 주소서.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섬기고 주의 복음을 위해 싱]ㄴ실하게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 요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 아이들이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분명히 깨닫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찍 부터 자기의 사명을 깨닫고 공부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목적을 잃어버린 불쌍한 세대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비전의 세대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아이들이 주님의 손에만 붙들려서 세상의 현란한 문화에 눈멀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들을 악으로 인도하는 음란한 소리와 죄의 길로 이끄는 모든 악한것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 주소서.


그래서 이들이 날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도록 인도해 주소서.


어릴 때부터 세계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소명을 품고 세상을 변화시킬 큰 꿈을 가진 영향력 있는 리더들이


이 세대를 통해 배출되기 원합니다. 이 아이들의 꿈과 지경이 넓어져서 그들이 살면 살수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강단 위에 세우신 목사님을 능력의 장중에 붙들어 주셔서 영육간에 강건함을 주소서,


강단에서 달고 오묘한 말씀이 꿀과 같이 흘러내려 우리의 심령이 주 안에서 새롭게 도전받기 원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순정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이 시간 악한 마귀가 예배를 틈타지 않게 하사 신령과 진정으로 온전히 예배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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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이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있음을 얘기합니다. 성경의 시작은 시간의 시작 즉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만드셨음을 선언하며 시작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완벽했으며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는 어떠한 흠도 없었고, 어떠한 저주도 없었으며, 그 저주로 인한 죽음도 없었던 하나님 스스로 보시기에 아주 좋은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그 세상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과 교제 하셨습니다. 그 사람에게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교제가 가능했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에덴 동산과 이 세상의 모든 별들, 강과 바다, 동물들, 식물과 그 열매들은 인간을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골로새서 1:16>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히브리서 2:10a>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0>

인간은 이 세상의 왕이었고,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었지만,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실과만은 먹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실과를 먹을 때, 반드시 죽게 될 것을 경고 하셨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2 타락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살고 있을 때, 뱀 곧 사탄이 하와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못 먹게 하셨어?"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모든 나무의 열매를 다 못먹게 하셨는지를 물어봅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못먹게 하는 이유는 너희의 눈이 열려서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하나님처럼 될까봐 그러는거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이 땅에 왕이 되게 하셨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지만,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었고, 아담도 함께 먹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반란 이었습니다. 이 땅의 왕인 아담과 하와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 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삶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소유였던 그들의 삶을 그들이 훔쳤습니다.


 

범죄의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스스로의 수고로 살아남았어야 했으며, 생명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죽음이 그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처럼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 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5:2>
 

또한 이 세상 역시 인간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땅에 저주로 인해 모든 피조물들은 고통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죄로 인해 일어난 일 이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 3:17>

또 전체 창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로마서 8:22>

그 어떤 저주 보다도 끔찍한 저주는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가 된 것 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상 죄가 있는 우리들과 함께 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끊어졌고,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반역자가 되어 하나님과 완전히 등진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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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찬양예배 대표기도문 (September.Sunday night worship service)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들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함을 받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하신 백성으로 삼아 주시니 감사드리옵나이다.

또 저희에게 거룩한 주일을 허락하셔서 새벽부터 이 밤 시간까지

예배 드릴 수 있게 하시니 더욱 감사 드리옵나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그러나 저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졌고

믿음이 약하여 충성과 봉사를 다하지 못하였나이다.

이 시간 저희의 허물을 고백하고 회개 하오니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긍휼안에서 소망을 가지게 하시고

주님의 선하심 안에서 힘을 얻고 살아가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저희들의 가족중에 아직도 주님을 영접치못하고 죄악속에서 사는 형제 자매들 있사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오니

저희 성도들의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을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하시고

저희들의 가정이 구원의 방주가 되는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밤에 저희가 주님 앞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주장하시어서

이 지역을 저희들이 복음화 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저희 교회를 주님께서 세워주시고 지켜 주시며 부흥 발전케 하시오니 감사드리옵나이다.

더욱 주께서 축복하셔서 저희들의 교회가 주님의 큰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각기관도 더욱 축복하셔서 모든 기관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기관으로 세워 주옵소서.

 시간 말씀을 증거 하실 목사님께도 주의 놀라운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저희들을 신령한 말씀으로 인도하는데 조금도 부족함 없는 능력 있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세상은 밤과 같이 어둡고 험한 세상이오니 저희들이 어둠을 이기고 밝은 빛으로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예배를 주님께서 홀로 받아 주시고 저희들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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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성경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마가복음 16:15)입니다. 이는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 (사도행전4:12)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 분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그의 생애와 교훈은 누구보다도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세계는 그의 탄생으로 년도를 기록합니다. 그의 교훈은 인종, 문화, 국가의 장벽을 넘어 호소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누구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교훈을 구분에게서 발견했습니다.

아무도 예수처럼 사람을 가르친 일이 없습니다. 아무도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와 같은 사랑을 한 일이 없습니다. 세계사에  예수와 비길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그와 비교할 대상은 없습니다.

 

그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한번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이 대답은 모두 틀린 것 입니다. 예수는 계속하여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16:13-18을 보시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셨습니다. 그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신문을 받을 때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예수는 “네가 말하였느니라(네가 말한대로니라)”고 대답하셨다. 주님은 신성모독의 죄목으로 죽음의 형벌을 받아 마땅했다. 마태복음 26:63-68

예수님은 자주 자신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비유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긴다고 송사했다. 예수 외에 누가 감히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요한복음 5:21-23)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사도요한은 그이 복음서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1:1) 고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요한복음1:14)한 분이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신 정도 밖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한복음14:9)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군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로새서1:15-17)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로새서2:9), 그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는 성육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무엇을 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인간은 모두 공통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3:22,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3:10). 죄란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문제입니다.

죄를 지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6:23.)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음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브리서9:27). 아무도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자신의 선행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갈라디아2:16)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구원하셨나니”(디도서3:5). 그대가 스스로의 선행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면, 왜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셔야 했을까요?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2:21)” 라고 답합니다.

그대는 구주가 필요합니다. 당신을 위하여, 당신 대신 죽으신 예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5:6-8). 예수는 우리가 연약하고, 경건치 않고,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를 행위로 보이셨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오한1서4:10). 이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의 죄와 구원에 자신을 던지셨다.

십자가의 도는 사도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제목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린도전서15:3)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십자가는 전도의 절반이고, 부활이 있어야 완성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린도전서15:4).

예수는 요한복음10:17, 18에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한복음10:17,18). 아무도 이런 선언을 할 수 없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상과 동물을 쫓아 내실 때,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했습니다. 그들은 이 말이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것”을 몰랐습니다(요한복음2:19, 21). 나중에 그는 표적을 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땅 속에 있으리라”(마태복음12:39,40)라고 말씀하시며 이적을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사흘 후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리고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12제자에게와  그 후에 5백여 형제에게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린도전서15:5-8).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눈으로 본 증인들이다.

사도들은 이 도를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복음 전파가 금지되었지만, 그들은 사람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을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전하고 부활을 선포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친히 보았고, 개인적인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구언하는 그리스도의 지식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부활의 거짓 증인이라면, 죽음을 무릅쓰고 거짓을 전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전시할 수만 있다면, 부활을 전하는 입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예수의 시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나셨습니다. 그는 구주시고, “나는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으리라”(계시록1:18)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어찌하려는가

예수는 당신의 구주신가? 당신은 그를 아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메시지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로마서1:16)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전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 지진이 나고, 간수는 죄수들이 탈옥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처벌이 두려운 간수는 주의 종에게 나아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성경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고, 그들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답한다(사도행전16:31).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3:16). 예수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 말씀하신다(요한복음 6:47).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1:10-13).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단지 생각으로 동의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마치 죠지 와싱튼이나 어떤 역사적 인물을 믿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기본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인이라 시인합니다. 그들의 이론은 옳고, 교리적으로 맞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개인의 구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10:9,10)라고 말 합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적이 없다면, 오늘 그를 부르시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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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 예수가 빛이다   

  

마태복음 4장 12∼23절

이사야서의 전체적인 배경은 ‘흑암’과 ‘어둠’입니다. 이사야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흑암과 어둠은 절망을 의미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절망하는 존재’로 규정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실존하는 인간,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절망합니다.

‘믿음 없음’이 곧 절망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절망합니다. 절망은 곧 죄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흑암과 어둠은 믿음 없이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사야가 이들에게 비쳐올 것이라고 예언한 빛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가장 먼저 “빛이 있으라”(창1:3)고 하셨습니다. 그 빛으로 어둠을 밝히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을 보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 로고스(말씀)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빛이 비치는 곳마다 생명이 싹트게 하는 참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이 캄캄하고 공허하고 절망적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정치 지도자들이 미덥지 못하거나 범죄자들이 들끓어서인가요.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지 않아서인가요. 그런 것도 한몫하겠지만 근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에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밝기는 달라집니다. 흑암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빛이고 소망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고, 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여기서 ‘따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가르치셨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고 병들고 약한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께서 가는 곳마다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성난 군중이 됐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돌변한 이유는 십자가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것은 십자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 위에 뿌려졌습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잔인함은 흑암이라 말할 수 있으나 그들의 순교는 결코 흑암이 될 수 없습니다. 고난 속에 감춰진 십자가의 영광이며, 그 영광의 빛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강하게 비춥니다. 진정한 영성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순교한 이들의 삶 속에서 빛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빛을 발했던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주현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4:16)는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지어다.

김동진 목사 (맑은샘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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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명언]  나에게 믿음이 있다면, 내 안에 성령이 있는 것이다.

 

 네가 믿은대로 될지어다.         네가 선택하고 행한 그대로 될지어다.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다 알 수없기에 창조주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서 살아야한다.
 모르니까 하나님을 믿어야하고, 자신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믿어야하는 것이다.
 나는 내,앞길을 모른다. 설령, 알아도, 내가 어찌 할수없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탁해야한다. 
 자신이 없기에 싫어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자신없다고 싫어하지 말고 하나님과 협력해 나가보자.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헛방으로 끄치는 법은 없다.
 하나님이 내 일 때문에 나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신다. 내앞에서, 내옆에서, 내뒤에서.......  
 하나님이 나때문에 나보다 더 고뇌하신다. 내가 당신의 자녀로 살도록 해주기위해서.......
 결국은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나때문에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아직도 두려워하고, 싫어하고, 걱정한다면, 아직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않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하나님안에 있을가?  실제로 내가 하나님밖에 있을 수가 있을까? 
 사람은 문제가 없으면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문제때문에 발전해가는것이다. 그래서 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랑할 수있어야 두려움이 없어진다 . 두려움은 미움의 한 표현인것이다.
 따라서 이기적인 생각이 두려움의 원천이고, 두려움의 본질인 것이다.
 좁은 생각을 넓혀보려고하나님과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이기심은 작아지지 않는다.
 성령은 이세상에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하나님의 일꾼이고, 하나님의 수단이다.
 나에게 믿음이 있다면, 내 안에 성령이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만약이나 우연이라는 말은 없다. 결국 모두 다 하나님아버지의 뜻인 것이다.
 하나님말씀은 그대로 믿어라. 자기마음대로 취사선택하거나, 각색하거나, 해석하거나,  간주하지 말아야한다. 
 있을 수있는 현상을 바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의적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문제를 바로 알아가서 그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 구체적인 하나의 구원인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수준이 높아져가며 점점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모르실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못하실까? 하나님게서 무엇을 안하실까?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다시 풀고, 첫 단추부터 다시 잘 끼우면 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게시와 응답을 주시는 것은 확실하다.
 예수그리스도는 이땅을 방문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실하게 믿고 싶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내 믿음을 엉뚱한 데에다가 주지말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겠다.
 성령은 한 인생을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시며, 인류역사도 하나님나라로 인도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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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부활은 우리의 믿음

 

사도 바울은 본문 고린도전서 1512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것이 복된 소식이요, 듣는 자로 하여금 기뻐 뛰게 하는 요점이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말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육에 속한 사람들, 거듭나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고 또 어리석게 들릴 것입니다. 이 일은 바로 신령한 비밀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3~14). 육에 속한 사람들, 세상에 속한 이들,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1970여년, 거의 이천년 전에 일어난 일, 그 일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기쁜 일이라는 것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사람을 새롭게 하고 사람을 개선하고 사람을 개조하여 전혀 딴판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 그 자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개조하기 위한 여러 가지의 행동 양식과 법칙들을 만들어서 시행하곤 합니다. 요즈음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중에는 사람들을 개조하여 성공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책자들이 아주 인기리에 팔리고 있고, 그러한 행동개발을 위한 여러 원칙들을 제시한 책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들은 사람이 그냥 그대로는 못쓴다, 사람 그대로는 합당치 못하다, 많은 난제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이상적인 인간상(人間像)을 설정하여 놓고 거기에 이르기 위해 여러 가지의 정책과 실행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나갑니다.

동서양이나, 예나 지금이나를 막론하고 남들 보다 앞서 인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 인간의 난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종교가들이 있었습니다. 도덕가들이 있었습니다. 윤리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우리나라의 이퇴계나 이율곡 선생 같은 이 등은 그러한 면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인간의 난제를 개선하고 고치기 위해 사람 자체를 손대었습니다. 인간 자체, 인간성 자체, 인간의 윤리의식,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의식 등 자체를 개선시키려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노력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기여도 전혀 하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 나름대로의 영향을 끼쳐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과 정서에 효과를 낸 것만은 사실입니다. 또 사람이기에 그러한 시도를 하는 것이겠지요. 개나 원숭이가 그러한 시도를 하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그런 시도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문제가 교육이나 도덕성의 고양이나 종교성의 계발이나 어떤 극기 훈련이나 어떤 행동 규례들을 세워놓고 자기를 통제하는 것만으로 해결이 되는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문제의 근본은 인간 자체 내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에 있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과 그에 수반되는 인격적인 제반 문제는 인간 자체를 길들임으로써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간의 난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단순하게 사람이 마음을 잘못 쓰는 것, 행동이 야비하고 세련되지 못하고 교양적이지 못하고, 그래서 여러 가지의 우발적인 사고를 내어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못 쓰는 이들을 잘 쓰게 하고, 야비하고 세련되지 못한 이들을 세련되고 우아하게 다듬고, 교양적이지 못한 이들을 교양적으로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식으로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마음을 잘 쓰지 못하고 야비하고 세련되지 못하고 거칠고 교양적이지 못한 것은 하나의 증상(症狀)에 불과하지 그 근본은 아닙니다. 근본은 바로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만을 가지고 아무리 집중적이고 주밀하게 연구한다 해도 온전하게 설명이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인간은 제대로 설명이 되고, 인간의 난제들에 대한 원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그 인간 자체를 다루고 개선시키고 세련되게 연마하여 거기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인간상을 도출하여 내시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 집에서 아주 큰 무를 사왔습니다. 시커먼 흙이 묻고 싱싱하였습니다. 정말 보기 드물 정도로 탐스럽고 크고 퉁퉁하고 살이 많은 일등품 무였습니다. 굵은 부분은 직경 8, 9cm는 족히 될만하였고 무 길이도 약 20cm는 족히 되어 보였습니다. 지난 겨우내 아주 잘 보관한 무였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기대감이 가게 하는 무였습니다. 저는 옆에서 그 무를 손질하려는 것을 보면서 기대감에 찼습니다. 이제 흙을 털어내고 잘 씻고 칼을 대어 여러 쪽을 내면 아주 쓸모 있을 것 같았습니다. 칼을 대어 그 무의 속을 다 드러내게 잘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겉으로부터 약 1.5cm 정도의 깊이까지는 가락지 모양으로 싱싱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은 바람이 들어서 말 그대로 시꺼멓게 썩어 딱딱하게 덩어리져 있었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 무는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무가 가지고 있는 부패의 요소를 다 긁어내고 거기에 대신 새로운 생명의 풍성을 채워넣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능력이 전혀 없으니 버릴 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 자체가 그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근사하게 꾸미고 우아하고 세련되게 다듬어도 속이 부패하여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17: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그들에게 직접 손을 대어 변화시키고 개선시키는 방식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썩은 것 자체를 가지고 아무리 해도 생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썩은 것 자체에서 생명이 나오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하지 못한 일입니다. 죽은 것 자체에서 생명이 나오게 하지 않습니다. 물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썩어 문드러진 것을 살리게 하시기는 하십니다. 죽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사로의 썩은 몸 자체에서 생명을 뽑아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밖에서 그에게로 생명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점에서 분명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썩은 것 자체에서 생명을 찾아 내지 않으십니다. 죽은 것 자체를 가지고 생명을 창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인간 자체에 손을 대어 개선시켜 새롭게 하시는 방식을 취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개선시키려는 여러 가지의 행동법칙 자체만 가지고는 우리를 개선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도덕적 의지로 여러분을 개선시키고 더 착하게 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밖에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영혼 자체를 가루로 만들어서 새롭게 빚는 방식을 쓰지 않으시고, 우리는 내버려두고 대신 우리 인격 밖에서 먼저 그 일을 하셨습니다. 곧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 아니 우리 부모들이 서로 만나서 애정을 느끼고 결혼할 마음을 가지기 전에, 아니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의 증조부, 증조모가 태어나기 전에, 바다와 산과 별과 달과 해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곧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지으실 뜻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 세계 속에서 그 뜻을 성취하여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천년 전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죄로 죽은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어서 복음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사람으로 태어나셨고, 사셨고, 고난을 받아 죽으셨고, 장사지낸 바 되셨고, 다시 사셨다 라는 이것이 복음의 진수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때, 우리가 아직 태어나려면 아직도 1900여년 이상이 더 지나야 했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원한 화해를 위한 대가를 지불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고후 4:18).

우리가 알지 못하던 때에, 우리가 알지도 생각하지도 꿈꾸지도 못하던 때에 말입니다. 우리 인격 밖에서 말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때에 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안에서 저와 여러분을 새롭게 창조하고 계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나님께서 본래 죄로 부패하여 죽어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창출하고 계셨습니다.(5:24; 10:28~30).

그러니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저와 여러분의 문제, 곧 죄의 문제를 영원히 부수어 다시는 그 죄의 문제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내지 못하게 법정적인 조치를 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히 용서하실 공의롭고 정당한 근거를 마련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라고 사도는 말하였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죄가 왕노릇하는 옛 사람을 또한 죽여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라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옛 사람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을 새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죽이는 일만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넣어주시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살아나셔야 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 속에서 행하신 대속의 의미가 부활을 통해 확증되고 광포되고 사실적으로 입증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도 무색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다시 사시는 것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고, 우리 죄를 지신 것이니 죽음에 매여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의 과정을 통해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완전하게 만족하셨으니,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더 이상 죽으심에 묶어 놓으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마치 예전에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해 일년에 한 차례씩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 대신 죽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의 속죄소에 뿌리고 나온 것과 같습니다. 만일 그 제사가 열납이 되지 못하면 거기 들어간 제사장은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거기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위한 속죄희생의 피를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속죄일에 백성들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지성소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고 나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나오게 되면 환호하며 찬미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죄를 대신하는 염소의 피를 받으셨고 그 대제사장의 드리는 제사를 열납하시고 만족하셨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들어간 대제사장이 다시는 나오지 못하였다면 백성들은 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자기들의 죄에 대해 자기들에게 직접 물으실 터이니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지시고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그 증표로 당신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의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주님의 십자가의 피를 흡족하게 여기시고 우리 죄에 대한 공의의 요구를 만족하게 여기셨으면 반드시 우리의 대제사장은 다시 살아나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다시 부활하시지 않으시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우리 주님의 속죄사역이 완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되셨음을 광포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옛 생명의 체계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관계, 체계를 광포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살아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되어진 그 모든 효력을 믿음을 통해 각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저수지 공사를 하고 나서 그 밑에 있는 논에다 수로를 따라서 물을 나누어주기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그 효력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성령께서 오시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증거자들인 사도들을 감동하셨고 사도들의 증거를 따라서 믿게 하셨고, 그들이 또한 전도자들이 되어 다시 증거하였고, 그 증거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전도는 하나님께서 이미 아들 안에서 구원하여 놓으시고 당신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에게 그 효력을 누리고 차지하라고 알리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의 확실성은 우리의 믿음의 근거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부활의 역사적인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도 어떻게 부활하는 일이 있겠느냐고 믿지 않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정면으로 부인하였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하는 관점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이면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을 부인하는 행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그들 자신이 아직도 거듭나지 못하였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직 그리스도를 사도가 말하는 대로 믿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겠느냐, 썩은 자가 다시 살겠느냐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들의 심정 속에는 과학적으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는 물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식으로 말하는 이들은 그들의 과학적인 고상한 지식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자연질서에 속한 진리와 이치를 발견하여 세운 학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세계에 세운 진리와 이치에 속한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인 질서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일을 과학 운운하면서 따지는 것은 하나님의 행사의 깊이를 잘 모르고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계에 대해서만 아는 옅은 지식의 소유자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계의 다국면적인 방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물리적인, 우주 천체적인 질서가 있습니다. 심미적인 세계, 소리와 시각과 색조의 세계,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여 그 원리를 적용하여 예술이라는 것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에 세우신 질서가 있습니다. 나무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달고 맛있는 과실이 크게 열리는 것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과학적으로 열매를 낼 수 있습니까? 주어진 현상의 질서를 연구하고 관찰할 뿐인 것입니다. 사람의 인체의 신비에 대해 어떻게 안다는 말입니까? 영적인 원리, 하나님께서 당신과 사람 사이에 세우신 영적인 원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활이 없다고 하는 이들은 영적인 원리에 대해 무식한 자들입니다(고전 15:13~14).

복음의 진수는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데 그 핵심적인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가르친 것은 도덕적인 착함과 공로와 업적을 쌓아서 구원받는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 사실, 그것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바로 자기의 구주로서 그 일을 하셨다, 나를 위해 죽고 나를 위해 다시 살았다라고 믿는 사람에게 그 구속의 효력이 미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6:23).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이 없었다면, 그저 공자와 석가와 소크라테스나 어떤 성현의 말을 배우고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고취하여 자신을 세우려는 것이나 하등의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그 효력을 성령으로 말미암은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선의 개념이나 이상(理想)의 관념이나 높은 도덕, 또는 윤리 의식을 우리에게 고취시켜 우리를 도덕적으로 개선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께서 다시 사신 그 사실에 기초하여 그 사실의 효력을 누리며 산 소망을 가지고 참된 기쁨을 가질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얻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의 산 소망의 충분하고 완전한 근거를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이 없었다면 기독교의 모든 교훈, 아니 성경 전체는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케케묵은 골동품 서적의 가치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그 모든 행사에 대한 것은 거짓 것으로 드러날 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주님의 부활의 사실성과 필연성을 강력하게 역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고전 15:16~19).

모든 사도들은 모든 이들에게 바로 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증거하고 그 사실을 기초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역설하였습니다. 어느 사도도 그 사실을 빼놓고 자기의 강론을 시작하거나 진행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에 관한 모든 사실들의 증인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닐진대 자기들은 거짓 증인으로 발견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15:15).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터를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하심의 확실성 위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서 산 소망을 가진 자답게 죄와 세상과 마귀의 시험을 이기며, 성 삼위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주님께서 행하신 그 죽으심과 부활의 영광을 우리에게 항상 상기시키시고 그 속에서 늘 가르쳐주시고 양육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1:3~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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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구원하는 위대한 보혈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인을 구원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주님의 보혈은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하루는 어떤 목사가 죽어가고 있을 때 곁에 서 있던 사람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 거예요, 제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나라에 갈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목사님이라고 하셨거든요.” 이 말을 들은 그 목사는 한쪽 팔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며 거친 숨소리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죽어 가는 죄인에게 그런 헛소리를 하지 말게나.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에 의지해서만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라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들을 묵과하시거나 근거 없이 눈감아 주시지 않고 반드시 그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죄인은 자신의 죄 문제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히 9:27). 죄의 삯은 사망이고, 그 죄에 대한 형벌로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서 고통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막 9:48,49, 살후 1:8,9, 시 9:17, 계 20:14,1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해 죄 없는 하나님이자 인간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죄인들을 위한 구원 계획을 세우셨다(요 3:16, 롬 5:8,9). 구약 시대에는 동물들을 죄인들 대신 죽여 피를 흘림으로써 죄들을 용서받았지만, 이것으로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었다(히 10:4).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만이 인간들의 죄들을 단번에 제거할 수 있기에 이 피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어 마침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해 놓으셨다.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한글개역성경을 위시해서 변개된 성경들에는 “그의 보혈을 통하여”가 삭제되어 있다. 그래서 그 성경을 들고 신앙생활 하는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그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근거 없이 죄들을 덮어 주는 분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죄인들을 의롭게 하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흉악한 죄인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땅에 속한 죄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암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주님께서 그분의 성도들을 구속하신 근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이다(벧전 1:19). 성도들이 현재 지은 죄들을 씻을 수 있는 것도 주님의 보혈이다(요일 1:7).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이 위대한 보혈의 능력으로 인해 주님을 항상 찬양하고 그 피의 공로를 의지해 주님을 신실하게 섬겨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출처 : 말씀보전학회 http://www.biblemaster.co.kr

 

  

                                                                                                                          2015년 02월 02일
                                                                                                                            정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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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M 국제 선교회 / 유해석선교사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는 그 때! 주님이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날을 고대하며 각 나라와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지금, F.I.M.은 세계에서 가장 큰 미 전도종족 무슬림 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고자 모였습니다. 이 일은 주님께서 친히 행하시며 이루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사역에 도구가 되고자 하나님의 일꾼들이 모였습니다.
F.I.M.은 이렇듯 준비된 일꾼들을 우리와는 다른 문화,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인 무슬림들을 향하여 파송하고 있습니다.


  1. F.I.M.국제선교회는 “Fellowship for International Mission”의 약자로 무슬림 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들로 주님의 유업을 이어받은 그리스도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실천하는 한국에서 시작된 국제 선교 단체입니다.
  2. F.I.M.은 16억 명의 무슬림 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유럽, 미주 등 공간을 초월하여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는 일군을 발군, 교육하여 파송하는 국제 선교회입니다.
  3. F.I.M.은 한국교회가 복음의 마지막 장벽이라 할 수 있는 이슬람권을 바르게 이해하고 인식하여 무슬림 구원에 관심을 갖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와 협력하는 선교 운동입니다.
  4. F.I.M.은 퇴보하는 서구 선교단체와 교회를 격려하여 우리세대 세계선교가 주님의 지상 명령임을 알고 순종하는 선교 공동체입니다.
  5. F.I.M.은 복음주의적 성경관을 기초로 한 건전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하여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모든 분들과 함께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원하는 선교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호흡이 멈추는 날까지 무슬림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고자 기도하며, 계획, 모집, 교육, 그리고 파송하는 선교단체가 바로 F.I.M.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며 성령에 의해 세워져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조명 받아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씩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눈을 열어 멀리 보면 볼수록 주님의 목적은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이 땅에 편만하게 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도 분명합니다.
이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단 한 분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그러면 우리의 목적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오늘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못해 외치다 순교 당하는 순교자들, 이들이 무슬림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사랑하는 무슬림 영혼들을 주님께 회복시키는 것, 그리고 잊혀진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 이것이 F.I.M.의 설립 목적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

 

 

FIM국제선교회(대표 유해석)가 2015년 1월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대림동에 위치한 FIM선교센터에서 이슬람선교학교를 개강한다. 4일간 11개의 강의로 이루어진 인텐시브코스는 이슬람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함과 더불어 이슬람선교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1989년 국내 노동력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이주가 1990년대 이르러 본격화되었고, 체류 외국인의 10% 정도가 무슬림이다. 최소한 15만 명 이상의 이슬람권 출신 외국인이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한국인 무슬림 인구도 2009년에 7만1000명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무슬림 인구는 약 23만 명에 달한다. 

이슬람선교학교는 한국에서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해서 기독교인이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FIM국제선교회 대표 유해석 선교사는 “우리는 기독교의 진리를 고수함과 동시에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며 “복음 진리에 관심이 많아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부흥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이제 복음의 빚을 갚고자 무슬림들에게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교학교에서는 유해석 선교사를 비롯해 김성봉 목사(신반포중앙교회 담임), 이동주 교수(선교신학연구소 소장) 등 이슬람 관련 전문가들이 강사로 선다.

 

홈페이지 : http://fim.or.kr/ 

  • 150-823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2동 993-63(도림천로 21길 28)
  • 이메일 : seoulfim@hanmail.net
  • 전화 : 1599-5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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