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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하던 사람 (The person who talked to God face to face)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기와의 교제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단지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만 교제를 허락하시고 자격을 주신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누리는 이 영적인 그룹에 속했다. 그는 한 번 이상을 산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며 사십 일을 지냈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과 친밀한 삶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완전을 향한“ 긴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보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빚으시는 손길 아래서 그의 성품이 변화되어 간 것을 더듬어 볼 때, 그를 영적인 거인으로 만든 것은 바로 그의 믿음이었다.

그의 생애는 사십 년간씩 세 시기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사십 년-애굽 궁전에서 왕자로 지냄

 

-혈통

많은 사람들이 위대해진 비결을 찾아 보면 그들의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있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므람과 요게벳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그 후에 모세를 다루실 수 있게 하였다. 참으로, 이 두 노예의 믿음은 세계 역사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히 11:23).

그들의 믿음은 왕의 진노를 무릅쓰게 했고, 그들의 사랑은 왕의 잔인한 명령을 교묘히 피하는 방법을 궁리해 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에 영광을 주시고 그들의 사랑에 보답해 주셨다. 그 결과로 모세는 경건한 가정과 히브리종교의 혜택을 받았고, 이것은 후에 그가 애굽에서 교육받은 데서 오는 해로운 요소를 중화시키는 것 이상의 작용을 했다. 그 가정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배웠다. 그의 부모로부터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배웠다. 거룩한 환경과 주변의 경건한 분위기는 그의 성격 발달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그들로부터 두려움이 없는 용기를 배웠다. 그들의 믿음은 왕의 진노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었다. 부모의 용기가 아들 속에 도덕적인 용기를 낳았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히 11:27). 믿음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그의 어린 시절은 하나님의 통치적인 섭리에 대한 놀랄 만한 본보기를 보여 준다. 그를 삼켜 버릴 바로 그 강이 그를 죽음에서 건졌다. 그를 구해 준 사람은 얄궂게도 바로 바로왕의 딸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지혜로 아들이 안전히 보호를 받게 되었다.그녀는 온 세상의 소망이 갈대상자 속에서 나일 강을 떠내려 가고 있다고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혈통을 통치하신다.

 


-환경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훈련장을 사치스럽고 육욕에 빠지기 쉬운 바로의 궁전으로 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삶의 환경을 지배하시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기계는 다름 아닌 영혼을 부드럽게 구부리기 위한 것.

푹신한 침대와 풍성한 음식이 광야에서의 험란한 방랑 생활을 위해 이상적인 훈련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며, 도덕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음모로 가득 차 있는 궁전은 경건한 인격 계발에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훈련시키실 때에, 언제나 그를 고립시키고 격리시키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강인한 성품을 계발시키시기 위해 그에게 유혹과 환란의 강풍(强風)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고립이라기보다는 분리의 방법이다. 우리가 만일 종교적인 훈련을 위해 그를 보낸다면 영적으로 조금치도 유익한 영향을 받을 수 없는 궁전으로 그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도구가 될 사람을 훈련시키신 곳은 바로 궁중생활의 시련의 불 속에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환경을 통치하신다.

 


-교육

기이하게도, 바로의 명령이 모세가 애굽의 옥스포드 또는 하버드에서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스데반이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모세가 받은 교육과 훈련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 7:22).

학자로는, 그는 애굽의 과학과 지혜에 통달하게 되었다. 정치가로서는, 그는 독특한 웅변 능력을 갖고 있었다. 군인으로서는, 그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요세푸스(Josephus)는 이야기한다. 전설에 의하면 애굽 군대가 그의 지휘 아래 대단한 승리를 여러 번 얻었다고 한다. 이 전설이 근거가 있다면, 그의 조직력과 큰무리를 다루는 기술이 설명되어진다. 그의 군사 훈련 가운데는 훈련, 인내와 빠른 결정 등이 그의 교과 과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애굽의 궁정은 바로에게 항복한 시리아의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온 속국의 왕자들을 위해 관례상 교육 시설을 제공했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교육은 매우 진보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교육을 통해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놀라운 지적능력과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남김없이 하나님께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하실 수 있다. 지혜로운 자 가운데 택함 받은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으나, 세상은 모세와 바울에게 굉장한 빚을 지고 있다.

미국 최고 재판소의 배석 판사인 브류어(Hon. D. J. Brewer)씨는 모세를 입법자로 보며 다음과 같이 썼다.

“시내산 꼭대기에서 여호와의 손에서 십계명을 받은 그는 어떤 면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독특한 민족의 법전이 되어 온 법 체계를 만드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 법전은 오늘날 놀랄 만한 문명 사회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모세를 인류의 가장 위대한 입법자 옆에 나란히 둔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육을 통치하신다.

 


-포기

사람은 자기의 출생과 환경을 선택할 수 없으나, 자기의 이력을 택하는 일에 있어서는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조만간에 사람은 두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인생의 분수령에 도달하게 된다-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부합한 것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남은 생애를 하나님이 없는 비참함 가운데에서 지내게 된다.

모세는 그가 장성하여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판단내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히브리서 11장에 요약되어 있으며, 이 부분을 “위대한 거절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great refusal)이라고 불러왔다. 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그의 백성의 곤경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이기적으로 바로의 딸의 아들로서의 특권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아니면 노예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할 것인가? 화려함과 권세와 영광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난과 낮은 신분과 오명을 택할 것인가? 그는 죄의 쾌락이 가장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며, 저울추는 그가 자기 백성의 지도자가 되는 것의 반대쪽으로 무겁게 기울어져 있을 나이였다. 세상 권세와 영화의 유혹은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히는 현실이었다. 영원한 것의 가망성과 보상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믿음이 아니고는 만져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중대한 결정의 요소가 네 개의 명사로 표현되어 있다. 「고려」(esteeming/히11:24-28) 이 말은 “계산함, 이것과 저것을 저울로 재어 봄“의 뜻이다. 모세는 조심스럽게 상황의 이해, 득실을 재어 보았다. 그의 선택은 성급하고 황급한 결정이 아닌 침착하고 신중한 선택이었다. 만일 그가 현재의 생활을 포기한다면 그의 빛나는 미래는 풍전등화격이 되고 황폐한 미래가 있게 될 것이다.

그의 “여김“은 「선택」(choosing)하고 「거절」(refusing/히 11:24, 25)하는 데로 나아갔다. 그가 위대한 거절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의 믿음이었다. 그가 바로 궁전에서의 그의 지위를 포기하고, 오늘날 우리도 조금 알 수 있는 애굽의 보화와 쾌락에 등을 돌리는 것은 외적으로 볼 때 그에게 전혀 유익이 없고 모든 것을 잃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선택을 통하여 자신이 이스라엘의 고난과 소망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는 세계 역사상 가장 장엄하고 획기적인 “거절“을 했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믿음의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버림」(forsaking/히 11:27)을 가능하게 했다. 애굽의 부와 쾌락과 영화와 권세를 버리고 빈곤과 고난과 노예 상태와 경멸당하는 것과 정처없이 방황하는 것을 택했다. 대단한 포기였으나 영광스러운 믿음의 승리였다. 그는 애굽의 번쩍거리는 세상 영화와 메시야에 대한 쇠함이 없는 영광을 견주어 보고, 결코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하였다.

고통받는 동포들에 대한 새로운 동정심이 그의 마음에 용솟음쳐서 그는 그들의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일격을 가했다(출 2:11, 12).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인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의분이 끓어 올라 애굽 사람을 죽여 황급히 모래에 묻었다. 그러나 그의 동포들은 그가 지도자가 되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고 모세는 당황하게 된다. 그가 실패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믿음의 행동과는 거리가 먼, 충동적인 격분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영적인 목적은 육신적인 방법으로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배워야 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좌우로 살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중재는 미성숙한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을 향해 너무 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학교에서 더 배워야 할 과정이 있었다. 그는 아직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는“(히 11:34) 사람들 중에 끼지 못했다. 어쨌든, 그를 그의 생애의 두 번째 기간으로 안내한 것은 바로 이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행동이었다.

 

두 번째 사십 년-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서

 

궁전에서 보낸 세월들은 그로 하여금 지적인 훈련에 있어서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기회를 제공했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두 번째 교육의 장이 시작되어야만 했다. 고독은 종종 위대한 사람을 만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모세의 광야에서의 시간들은 그의 영혼을 단련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다했다. 그가 애굽의 대학에서 배운 과정은 그가 상류 가운데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켰다. 광야의 대학에서 배운 과정은 그가 구원자가 될 노예 국가로 자신을 낮출수 있도록 자격을 갖추게 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성화되고 실패를 통해 겸손케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도구를 준비시키시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신다.

그분의 훈련 방법은 완벽하다. 온 세상을 위한 법을 제정하게 될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리든지 간에 광범위하고도 풍부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기를 연구해 보면, 보통 도덕적인 결단이 내려진 후에는 정해진 사역이 시작되기 전에 은둔의 기간 또는 때로는 거절당하는 기간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열 두 살 때에 그분이 소명받으신 것(눅 2:42)을 말씀하신 후 공생애가 시작되기까지는 거의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었다. 바울은 하나님과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고독한 가운데 수 년을 보냈다(갈 1:18).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질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훈련 기간 동안 연단 받으면서 안달을 하거나 지름길을 택하려고 애를 써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다.그것은 불가피하게도 막다른 골목인 것이 입증될 것이다.

광야 기간의 시험이 북경의 왕 밍따오(Wang Ming-tao)박사에게 왔다.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그가 만일 타협하지 않는다면 중공에서 투옥되어 고난을 받게 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기를 소원했었는데, 하나님의 부르심과 훈련으로 그것이 좌절됐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고 외국에 나가 훈련을 계속 받아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훈련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몇 달 후 하나님께서는 나를 집에 가두시고 마루를 쓸고 밥을 짓고 설거지하고 옷을 수선하는 등의 집안 허드렛 일을 하게 하셨다. 처음에 나는 불행을 느끼며 나를 이와 같이 대하시는 그분께 불평했었다. 그러나 조금 뒤에 나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비천한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삼 년이 지난 뒤나는 이런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나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야망뿐만 아니라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포부까지도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말단의 지위도 원치 않았다. 대신에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평생동안 비천한 가사 일만 돌보라고 하시더라도 기꺼이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의 모든 헛된 소망과 야심을 포기했다. 이 일들을 회상해 볼 때, 듣기에는 어렵지 않게 들리지만, 그 당시 그것은 많은 눈물과 투쟁과 어마어마한 희생의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이러한 호된 시련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문을 열어 주셨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사역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서, 나는 그 엄격한 훈련이 없었더라면 높은 명성에 대한 욕심과 대단한 직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사역이 내게 위험한 것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왕 밍따오 박사는 성경의 각 책에 대한 주석을 출판하기도 했다.

 

 


-소명

광야에 있으면서(출 3:1), 모세는 가장 깊은 교훈을 배웠다. 그때까지 그는 행동가였었지만 이 훈련 기간 동안 그는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 「무엇을 하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시골 생활이 어떤 이상한 현상에 의해 중단되게 된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된다. 모세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기이한 광경을 보려고 그 곳으로 가 보았다. 그가 다시 한 번 인생의 분수령에 서 있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한 채, 삶의 위기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 타지 않고 빛을 내는 떨기나무의 광경(출 3:2)은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다. 들어서 알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경험에 의한 지식이 된 것은 바로 이곳에서였다. “보잘 것 없었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잡아 채신“ 곳이 바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였다.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조용히 명상하는 가운데 보낸 세월들이 그를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시켜 온 것이었다. 불타는 떨기나무의 상징은 명백하다. 불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의 상징으로 자주 나타난다. 이 평범한 떨기 나무가 그것을 밝혀주는 불꽃으로 비상한 것이 되었다. 나무 자체는 좋지 않은 나무였지만, 하나님의 임재의 불에 변화되고 빛을 내어 아름답게 되었다.

모세는 그의 과거가 많은 특권을 가졌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평범한 떨기나무에 불과하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에게 어떤 위대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결과이어야 했다. 떨기나무가 주변의 많은 나무들과 다르게 된 것은 나무의 특성 때문이 아니었고 그 안에서 빛나는 불꽃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필수적인 자격이 신을 벗고 얼굴을 가리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우리 중 대부분이 신을 벗고 겸손히 예배하기보다는 우리의 신을 신은 채 바쁘게 활동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의식하여 얼굴을 가리우기보다는 세상의 주목을 받기 위해 얼굴을 드는 경향이 훨씬 더 많다. 이것들이 모세가 광야에서 배웠던 가장 중요한 교훈들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불타오른

한 사람의 생애를 보며,

하나님의 능력을 느꼈노라.

연약한 흙으로 빚어진 인간 그릇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것을 보았노라.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나 큰 소리로 외쳤노라.

나의 아버지시여,

나에게 불타오르는 삶의 축복을 주시어

당신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옵소서.

 


모세는 그가 40년 동안 회피해 오던 부르심을 분명하게 들었다. 그가 그렇게 황급히 도망쳐 온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르셨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모세는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교훈을 너무나 철저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어려워했다. 이전에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던 애굽의 왕자가 일을 하기에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변명하는 대화를 깊이 다룬 내용이 뒤이어 나온다. 그는 위신(출3:11), 메시지(출 3:13), 권위(출 4:1), 웅변술(출 4:10), 특별한 순응력(출 4:13), 성공(출 5:23) 등이 부족했다. 이보다 더 감동을 주는 부적격의 이유를 열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의식에서 나온 이러한 주저는 매우 겸손하고 경건하게 들린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얻는 대신에, 하나님의 노를 샀다(출 4:14). 하나님의 종이 자신이 부적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책임을 회피할 때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노를 사게 된다. 안심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14)]과 자신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으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으로 모세는 모든 신령한 자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했다. 이전에, 그는 너무 성급하고 빨랐었다. 이제 그는 너무 느리고 주저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축복하시고자 하시는 그의 계획이 그의 종의 변덕과 기분에 방해받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종들은 기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움직이며 신속하게 순종해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나님의 대변자로 세우시고 연약한 아론을 임명하셨는데 아론이 후에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세 번째 사십 년-지도자와 입법자로서 광야에서

 

그의 시험의 기간은 끝이 났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해방자로 나타났다. 그가 최고의 업적을 이룬 것이 팔십 세가 넘어서였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한다. 스포트라이트가 젊은이들에게 비쳐질 때에,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결실과 중요한 사역이 아직도 미래에 남아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은 나이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이 되고 격려가 된다. 연륜과 숨겨진 훈련이 성숙한 판단과 다른 이들과 쉽사리 공감을 하게 되는 유익을 낳는다.

-지도력

지도자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만이 지도력을 구사할 때 치루어야 하는 대가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 모세에게는 백성들의 문제를 판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해석해 주는 힘든 일이 주어졌다.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섰는지라“(출 18:13).

이것은 그의 모든 신경을 소모하며 심지어는 그의 육체의 여력을 모두 짜내는 것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사람이 남을 구해 주면서 동시에 자신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언제나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지도력만큼 큰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은 없다.여자가 믿음으로 주님의 겉옷 가를 만졌을 때 주님의 능력이 그녀에게 미쳤다(마9:20).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와서 모세로 하여금 그러한 끊임없는 노동의 결과를 직면하게 해 주었다.

“그대가...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 18:18).

이드로의 충고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셨을 텐데 모세가 그 충고를 따랐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충고도 또한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라는 사실을 믿고, 그 충고에 따라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위임하고 그 일을 수행할 수있도록 그들을 훈련시키는 최고의 지도력을 구사한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뒤에는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종종 하나님께서 맡기셨다기보다는 사람에 의해 떠맡겨진 무거운 짐과 책임을 맡고 있어서, 결국은 몸과 신경이 그 압박을 견뎌낼 수 없게된다. 그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개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대로 되는 것을 허락하신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다면, 그들의 기독교신앙이 그 결과를 면제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지도력을 구사할 때 치루어야 하는 대가를 더 명백히 알고 있는 이드로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일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이것을 명하셨다면 그대가 할 수 있으리라“(출18:23/사역).

이것이 이드로의 확신이었다. 다른 이들이 우리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떠맡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심지어 그들이 우리보다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일을 양도해야만 한다. 이것은 완전주의자에게 어려운 시험이다. 모세는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나, 만일 그가 계속 했더라면 오래 가지 않아서 그는 단지 기억 속의 인물로 되었을지 모른다. 진정한 선교사들에게 시험이 되는 일 중에 하나가 기꺼이 책임을 본토의 그리스도인에게 양도하고, 그들이 시련과 실수를 통해 경험을 얻는 동안 도울 준비를 하고 곁에 지켜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책임을 발전시킬 때 우리 동료들은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훈련하고 사용하게 된다.

 


-시험들

모세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받았던 많은 시험들 중에서, 다섯 가지를 선택했다.

 

첫째, 타협에 대한 시험이었다.

그것은 허락을 받기 위해 조건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타협하여 우리의 기준을 낮추는 것을 허락할 때 그것은 언제나 후퇴를 가져오게 된다. 모세와 바로와의 논쟁은 타협으로 이끄는 점차적인 유혹에 대한 고전적인 본보기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그러나 애굽을 떠나지는 말라“(출 8:25).

이것이 왕의 첫 번째 제안이었다. 현대에도 이와 비슷한 제안이 있다.

“종교를 무시하지는 말라. 하지만 좁아져서 세상을 아주 끊어버릴 필요는 없다.“

다음에 그가 제한한 것은 “너희가 희생을 드리기 위해 애굽에서 나갈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출 8:28)는 것이었다.

 

둘째, 다음에는 육친의 정에 대한 시험이었다.

“너희 남정만 가고 여자와 어린 것들은 남겨 두라“(출 10:11).

“가야만 한다면 가라. 그러나 너무 지나쳐서 가족들로 하여금 너의 유행에 뒤떨어진 기준을 따르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세상적인 출세를 방해하지 말라.“

그의 마지막 시도는 욕심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출 10:24).

“너의 종교적인 확신이 너의 사업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

분명한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모세는 이 도전들을 간파했다. 양과 소떼들을 두고 떠난다면 그들은 빈털털이가 된 것이며, 하나님께 희생으로 드릴 것이 없게 된다. 그의 답변은 명쾌하고 단호했다.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나이다“(출 10:26).

 

셋째, 홍해에 이르렀을 때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시험에 부딪혔다.한편으로는 건널 수 없는 바알스본 지역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통과하기가 불가능한 모래 사막이 있었다. 그들 앞에는 건널 수 없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고, 뒤에는 무적의 바로 군대가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철저하게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택한 사람에게 보기 드문 경험은 아니다.

이 예기치 못했던, 좌절이 되는 경험으로 백성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출 14:11).

그들이 불평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는 그 날 놀라운 명령을 내리는데, 이것은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에게는 단지 환상처럼 보였다(출14:13). 두려워 할 모든 이유가 있는 때에 “두려워 말라“고 하였다.

“가만히 있을지니라.“

바로가 급하게 그들을 뒤따라 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모세는 불가능한 상황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합격하였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그 성공이 영광스럽게 입증되었다. 그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그들은 하나님의 근원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자기에게로 밀착시켜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보여 주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중국에서 사역하면서 많은 불가능한 상황들에 직면했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하나님을 위해 착수하는 위대한 사역의 대부분에는 불가능한 단계, 어려운 단계, 성취되는 단계의 세 단계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넷째, 모세도 야심의 시험을 당했었다.

모세가 시내산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빠지자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가 그들을 향해 불타올랐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10).

이미 그들의 불신앙과 불평이 모세에게 쓰라린 시련인 것이 증명이 되었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전진을 위한 놀라운 기회를 제시하고 계셨다.

제안을 하신 분이 다름아닌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시험은 더욱 어려웠다. 모세의 답변에서 그의 사심이 없는 고귀한 성품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의 행복에 있었다. 대담하고 집요하게 하나님을 붙잡고 배교한 나라에 대한 심판을 돌리기 위해 중보 기도를 했다. 하나님의 “나대로 하게 하라“는 기도에 있어서 모세의 능력에 대한 대단한 칭찬이었다.

 

다섯째, 질투에 대한 시험이었다.

성이 난 여호수아가 말했다.

“엘닷과 메닷이 예언하더이다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민 11:28).

모세가 자기를 보좌하기 위해서 택했던 사람 중에 두 사람이 갑자기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하들은 그가 모세의 대권을 침해하고 그의 권위에 도전한 것에 대해 시기했다. 그러나 모세의 너그러운 성품에는 질투나 시기가 자리를 잡을 곳이 없었다. 그는 이 일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었다. 모세는 말한다.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과 교제를 갖고 있는 영적 지도자는 그의 위신이나 대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매우 온유한“ 모세는 사소한 사리 사욕의 편견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 시험들을 통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인 대단한 도덕적인 힘과 영적인 힘과 진실한 인간성을 입증했다.

 

비극과 승리

 

그가 신실하고 이타적으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는 어둡고 슬프게 끝이 났다. 그가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은 얼핏 생각할 때 가벼운 실패에 대해 너무 엄중한 형벌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건을 분석해 볼 때 그것은 그렇게 사소한 실패가 아닌 것이 나타난다.

그의 실패는 불신앙에서 나온 것이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민 20:12).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못 나타냈다. 그의 불신앙은 불순종을 가져와서 “그는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다“(시 106:33). 마음은 언제나 입술로 나타난다. 그의 행동은 자기 절제의 부족에서 온 결과였다.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며 두 번 치라“고 하시지 않고 “명하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행동은 그의 불신앙을 표현해 준다. 명백하고 분명한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들의 죄를 더 엄중하게 다루시는데, 특히 그들의 공적인 행동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될 때에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되리라는 사실에 몹시 실망한 모세는 하나님께 그 말씀을 돌이켜 주실 것을 세 번 간구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 3:25, 26)는 것이었다. 죄는 용서받았으나 죄에 대한 벌은 그대로 남았다.

다행스럽게도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끝은 영광스러운 결과가 되며 깊은 절망은 기쁜 운명으로 끝이 난다. 가나안의 변화 산상에서, 잠시 예수님의 권세와 영광이 드러났을 때,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엘리야였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모세였다. 그러면 그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했다“(눅 9:31).

그들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죄의 노예된 데서 해방시키셔서 구속받은 무리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거룩한 구속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받았다.

모세는 마음에 소원하던 것을 받았다.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오직 잠시 동안이었고 그는 장차 올 영광을 미리 맛보게 되었다.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으며, 그것도 다름아닌 영광의 주님과 함께 들어갔다.

전에는 밟아 보지도 못했던 산 위에서

영광에 둘러싸여

우리의 생명을 구해 주실 주님의 고난에 대해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아들과 더불어 이야기했네.

우리 모두의 경험에는 모세의 경험과 같은 의미가 없는가? 우리의 가장 큰 소망과 포부가 늘 이 세상에서 성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저건너에는 성취의 땅이 있다.항상 이 세상에서 온전한 상급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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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바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

 

늘 기도하기를 피하여 왔던 내가

열심히 그리고 두려워하며 구했소

나의 모든 배반과 그 수치를 가르쳐 주시고,

오-사랑하시는 분이시여,

나 때문에 입은 상처를 내게 보이소서!

오-당신은 용서하시나이다.

그러나 당신의 모든 사하심으로

내 결백을 다시 새롭게 할 수는 없나이다!

오-그리스도여! 당신은 나를 위하여 죽으셔서

내 죄를 사하셨으나

고통을 제하신 것은 아니옵니다.

오-당신들에게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면!

오-나는 내가 본 것만을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내가 본 그것을 당신이 볼 수 있도록.

오-주님,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실패도 주저도 아니하렵니다.

그것을 구하고, 열망하기만 하렵니다.

제단 숯불을 내 입술 위에 얹으사,

나를 변케 하소서.

속히, 그리고 영원히-

내게 기도한 이상의 깨우침을 주셔서,

갸날픈 나의 노력에 은혜를 더하사

매여 있는 영혼들에게 오늘 오순절을 허락하소서.

-마이어스(F. W. H. Meyers)

 

어느 견지에서 보든지 간에, 사도 바울을 날카롭게 분석하면 할수록 그의 모습은 점점 더 위대하게 나타난다. 선택된 하나님의 그릇(행 9:15)으로서, 바울의 생애는 무한한 솜씨와 지혜로 이루어졌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로 비유한다면 중국의 북경에서 맹자와 공자를 인용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영국으로 치자면, 기가 막힌 신학을 논하며 옥스포드에서 그것을 강의할 수 있는 사람, 러시아에서는 소련 과학 학술회(Soviet Academy of Science)에서 자기 주장을 옹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바울은 그 당대에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토저(A. W. Tozer) 박사는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며, 세계 사상 가장 그 이력이 놀라운 사람이다.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라. 나는 그가 한 분야에서 이룬 업적을 생각해 볼때, 어떻게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게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는가에 대해 기이하게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한 분야 이상 전공할 수 없으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흡수할 정도의 위대한 인물로 보인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모두 뛰어난 것이었다. 로마 감옥에서 처형될 때까지 그는 그러했다.

교회에 대해 가장 공격적이고 강력한 적이며 가장 가혹한 박해자인 그를 택하여 그가 파괴하려고 하던 교회의 가장 위대한 사도, 심오한 신학자, 설득력있는 변론가, 지칠 줄 모르는 선교사로 바꾸어 놓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배경

 

그의 부모는 베냐민 족속으로서, 유명한 조상 사울왕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그는 아버지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에 바울루스(Paulus)라는 이름이 덧붙여졌다. 훌륭한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의 부친은 매우 엄격하게 율법의 모든 의식을 지키고자 했으며, 그를 바리새인의 훌륭한 전통에 따라 세심하게 그를 훈련시키고자 했다(빌 3:4-8). 그 가정은 다소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보아 매우 유복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거의 전 세계적인 언어인 헬라어 외에도, 팔레스타인의 아람어도 사용했다. 훌륭한 집안의 다른 소년들처럼,바울도 알리시안(Alician) 염소의 털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배웠다. 바울은 다소의 시민권을 상속받았다.

약 15세쯤 되었을 때에 그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게 되었다. 그는 주도적인 학문의 도시였던 고향 다소에서 이미 학문적 분위기에 젖어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위대한 일곱 명의 율법 박사 중 한 사람인 가말리엘(행 22:3) 문하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그 위대한 랍비 가말리엘은 담대히 “율법의 미“라고 불리우는 사람으로, 고매한 인격과 박식한 학문으로 유명했다. 그에게서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율법의 엄한 규율에 따라 교육을“ 받았다(행 22:5).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접근할 수 있었으며 또 신임을 받았던 것을 볼 때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는 산헤드린 회원이었고 순교자들을 정죄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그의 예리한 정신력은 학문에서 동료들을 능가하게 했다. 그는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던 자“(갈 1:14)였다고 간증했다.

그의 서신 중에 나타난 자서전적인 이야기에서 바울은 개종 이전의 자신을 매우 자기 확신적이며 내세를 믿고 청결한 생활과 율법을 준수하고 존경할 만하고, 하나님 앞에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결코 탕자였던 일이 없으며, 정죄함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 평가할 수 있었으며, 자기 의무를 이행하는 데 실패한 일이 없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지나친 열심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역사의 페이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도말해버리고자 한 노력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이와 같이 회심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완전성을 굳게 믿고 있었고 그의 신앙이 타당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한 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복잡다단한 사람이었다. 사도들은 각기 어떤 한가지 뛰어난 장점이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있었다. 그는 아마도 교회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극단주의자였고, 안드레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런데 바울은 그 두 가지르 다 가지고 있었다. 즉 베드로처럼 모험주의자이면서 안드레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는 원칙에 있어서는 보수주의적이었으나 방법에 있어서는 급진적이었다. 원칙이 걸려 있을 때에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으나(갈 2:5), 방법론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전 9:22).

 

회심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회심을 교회사상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보시고 성령의 영감에 의해 그 사건을 세 번이나 상세하게 보충적인 이야기를 기록하게 하셨다. 이 획기적인 사건에 대해 가장 완벽하게 연구한 사람 중의 하나는 리틀톤(Lyttelton)경인데, 그는 의회의 의원으로서 영국의 모든 정치적 토론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내각에서 재무성 장관을 지냈던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가이기도 했다.

그와 그의 친구인 변호사 길버트 웨스트(Gilbert West)는 성경은 사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사기를 폭로하기로 결심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리틀톤경은 바울의 회심을, 웨스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택하여 비판하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완전한 편견에서 각자가 맡은 분야에 접근하였다. 그러나 긴 세월에 걸친 연구 결과, 그들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뒤집어 엎으려는 그 노력을 통해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멜도(F. J. Meldau)는 말하기를 그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사기를 폭로하게 된 것이 아니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에 서로를 축하했다고 이야기한다. 리틀톤은 그가 펴낸 논문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울의 회심과 사도직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기독교신앙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을 충분히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그의 논문이 굉장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사무엘 죤스톤(Samuel Johnston)박사는 그것은 “불신앙이 그럴 듯한 답변을 날조하는 것이 불가능한“ 논문이라고 단언하였다.리틀톤경은 그 경우에 있어서 모든 가능성을 남김없이 연구하여 네 가지 명제를 세웠다.

바울은 거짓인 것을 알고 또한 그것을 말하는 사기꾼이거나,

너무 과열된 상상으로 인한 열광자이거나,

다른 사람의 사기에 속았거나,

그가 선포하는 회심의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따라서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인 경우다.

성경의 기록을 가지고 그는 바울이 사기꾼이 아님을 논증하였다. 어떤 동기가 이 새로운 종파를 몹시도 증오하는 다메섹 도상에 있던 그를 돌이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였던 것일까? 동기는 없었다. 거기에는 분명히 부와 명예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 그는 권력도 추구하지 않았다. 그의 생애에는 자기 추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동기는 다른 열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서신을 보면 가장 엄격한 도덕성이 숨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증오와 멸시와 박해를 받게 되는 일이었다. 과연 그는 자신이 사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기뻐하며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것을 감수하였겠는가?

그것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무익한 사기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리틀톤은 그 이론을 자체적으로 모순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울이 아그립바왕에게 자신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가 진실인 것을 알지 않느냐고 호소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행 26:16).

“이것은 매우 뚜렷한 증거이다. 그 사실이 유명하다는 것과 재판석에 앉아 자기를 재판하고 있는 왕을 향하여 담대하게 자기 증인이 될 것을 부탁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한 증거이다.“

만일 회심에 대한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라면 아나니아가 어떻게 다메섹에 있는 자기의 적을 만나러 갈 수 있었겠는가? 이와 같은 논증을 거쳐, 리틀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바울은 사기꾼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회심에 대해 꾸며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심과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적인 헌신 후에 아라비아에서의 격리 기간이 뒤따라왔다(갈 1:17).

 


고든(S. D. Gordon)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좋은 교육을 받기를 열망하신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모든 사람은 다 아라비아나 대학에서 광야의 훈련이라는 과정을 밟았다. 요셉과 모세, 엘리야, 밥티스마 요한, 바울, 번연, 모리슨, 져드슨,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 자신도 육신으로 계시는 동안 그러하셨다. 이들은 우수한 졸업자 중에 몇 명일 뿐이다. 그러나 등록금이 매우 비싸고, 그 과정이 극히 어려우며, 훈련은 너무 엄격하므로 많은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탈락하고 만다. 그 현저한 결과는 넓은 시야와 강한 담력과 예리한 시각과 통찰력 등이다. 철저한 하나님 신뢰와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것과 어린 아이같은 단순함, 따뜻한 동정심과 깊은 겸손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가장 최고의 것은 인내로서, 이것은 가장 진귀한 특성으로, 가장 하나님을 닮는 것이요, 가장 어렵고 긴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훈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을 만난지 3년 만에 거룩한 성으로 가서(갈 1:8), 베드로와 처음 교제를 갖고, 랍비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고자 애를 썼으나, 그 희망은 쓰디쓴 좌절로 돌아가고 말았다(행 22:17-20). 그 다음 몇 해 동안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명확치가 않다. 그는 분명히 시리아와 길리기아에서 수 년을 설교하며 지냈을 것이다(갈 1:21). 이러한 복음 사업을 위한 준비 기간은 안디옥교회에서의 일 년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끝난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한다(행 11:25, 26/13:1-4).

 

특성

 

바울을 복합적인 사람으로 만든 몇 가지 특성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성실성/ 구약의 명령인 “너는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실(완전)하라“(신 18:13)는 말씀은 바울 안에서 명료하게 예증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에도, 그리고 나중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박해를 받을 때에도 똑같이 성실하였다. 그가 슬프게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가 의식적으로 불성실한 일은 없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고전 4:4).

성실은 자기를 드러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열심/ 그는 그가 착수한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였다. 그는 예절의 모든 열심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았다. 이제는 성령님에 의해 새로운 통로로 인도되어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의 범주에 들어왔다. 빌립보서 3장 16절에 나오는 “핍박“(persecute)이라는 말은 빌립보서 3장 14절의 “좇아 가노라“와 같은 말이다.

결단/ 야전 사령관인 몽고메리(Montgomery) 경의 지도자로서의 필수적인 자질 일곱중의 하나가 분명한 결단력이다. 이것은 확실히 이 사도의 뛰어난 특징이었다. 예수님 앞에 완전히 엎드려질 때에도, 그는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질문을 하였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진심으로 하는 이 질문 가운데 그는 이미 절대적인 순종과 충성을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의 단호한 성품은 망설이는 것을 몰랐다. 임무를 알면 바로 행했다.

겸손/ 바울은 위대한 회개에서 나오는 겸손으로 살았고, 그 겸손은 점점 깊어갔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전 15:9).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그러나 캠벨 모간이 말한 것처럼, 거짓 겸손이 없는 것보다 더 분명한 겸손의 증거는 없다. 그의 사도직과 사역에 대해 도전받았을 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특권과 업적을 자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도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후 12:11).

그는 모순된 자신을 보이지 않았다.용기/ 그는 놀라울 정도로 헬라인들이 높이 평가하는 이상적인 마음의 균형을 드러내주었다. 위험을 찾거나 무모하게 거기 뛰어들지 않은 반면에, 주님의 일이 걸려 있기만 하면 한 순간도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위기와 위험과 반대로부터 조그마한 움추림도 없었다. 그의 도덕적 용기는 육체적 용기와 조화를 이루었다. 그의 서신들은 그가 얼마나 충성스럽게 인사 문제와 교회의 어려움을 가지고, 어지러운 상황 가운데서 두려움없이 온유하게 처리했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훈계나 책망을 해서 자신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피하려고 일들을 태만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는 아니었다(고전 2:3/고후 7:5). 그러나 그는 두려움에서 일어나 승리하는 법을 배웠다.

너그러움/ 좁고 답답한 사람 사울에서 가장 아량이 많고 관대한 사람 바울로 바뀐 변화는 회심의 기적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내재하심은 그의 마음을 넓혔을 뿐아니라 그의 마음을 크게 하고 시야를 확대시켜 주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 사랑의 넓이를 점점 더 많이 반사시켰다. 다른 이의 성공에 대한 그의 순수한 기쁨이 그가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그는 도량있고 인내심이 있다고 해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타협하지 않았으며, 위대한 베드로가 관계되어 있을 때조차도 그러했다(갈 2:11).

독립심/ 독립심은 소년에게는 파괴를 가져오나 훈련되고 성장한 사람에게는 위대한 자산이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3, 4).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그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 깊이 고려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이와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여 함이라“(고후 8:21).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갈 1:10)라고 묻지만 또한 이렇게 말한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되“(고전 10:33).

이 말들은 서로 모순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기에게 청지기 직분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았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기독교 사역의 독소인 개인주의와 무책임한 독립을 벗어날 수있었다. 그의 독립에 있어서 바울은 다른 이들의 양심적인 거리낌을 조심스럽게 존중하였던 것이다(고후 4:2).

친밀함/ 바울은 비이기적인 우정의 천재였다. 많은 다른 위대한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고립된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을 사로잡고 열정적인 사랑과 충성을 받는 독특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와 디모데와의 우정은 나이 든 사람과 청년사이의 우정의 모범이 된다. 사랑받는 의원 누가와의 우정은 비슷한 나이와 취향의 사람들끼리의 우정의 좋은 예가 된다. 그는 사교적인 사람이었으며 친구들과 떨어져 있을 때는 철저하게 외로움을 느낀 사람이었다. 요한 마가에 대한 문제로 바나바와 결렬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불일치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가 「발작」(paroxysm)이란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언제나 바나바를 충심으로 생각하였으며, 그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그를 칭찬하였다. 그들 서로의 사랑이 시험을 이겨냈다. 이러한 우정의 역량이 바울이 그리스도인 지도자를 재생산해 낸 능력의 주요한 요인이었다.

감사/ 그의 서신은 자기가 받은 친절과 베풀어 준 호의에 대한 뜨거운 감사가 숨쉬고 있다. 그는 결코 “감사“ 편지를 쓰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칭찬에 후했으며 동정심이 많고 행동은 사려깊었다. 그의 서신의 어조를 볼 때, 세월이 지나갈수록 이러한 자질들이 점점더 두드러져 갔다.

형제 자매의 사랑을 얻었으니

빠른 세상에서나, 땅 속에 묻혀서나,

보라,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흠없는 하나님의 가족, 주님께서도 나를 기다리시네.

영혼에 대한 열정/ 마이어스(F. W. H. Meyers)는 그의 위대한 시에서 바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위대한 영혼에 대한 부담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설교자

 

종종 전할 말씀이 내게 임하면

환상은 떠나가고 진실이 드러나네.

사막이나 무리나 성읍이나 강이나

밝은 낙원의 공기 속에 녹아들고

영혼처럼 나는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도다.

정복자가 되어야 할 묶인 자들, 왕이 되어야 할 노예들을

공허한 경이 속에 그들의 한 가지 소망을 들으며,

슬프게 보이는 것들에만 만족하고 있는.

견딜 수 없는 갈망의 용솟음 속에

트럼펫 소리처럼 내 전신을 흔들고

오-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구원을 위해 죽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위해 죽으리.

그들 모두를 위해 바쳐져서!

 


만일 설교를 그 결과에 따라 평가한다면, 바울이야말로 설교자의 왕이었다. 그는 디모데에게 한 그의 말에 대한 바로 그 본보기였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그의 설교는 공공 강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웅변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말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고전 2:1).

그는 호언장담을 하거나 자기 확신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그는 세상의 궤변에 의지하지 않았다.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고전 2:4).

그는 오직 성령만 의지하였고 “성령과 그의 능력의 나타남“으로 설교하였다.그의 설교 방법은 경우에 따라 다양했다.

때로는 논쟁적이기도 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느니라“(행 9:22).

그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여 그들의 이성을 만족시켰다. 그는 늘 사색과 기도로 분명한 확신을 얻었고 어떤 논쟁도 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지적인 겁장이가 아니었고, 그의 신앙에 대한 도전에 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나 지당하다고 믿었으므로, 그것을 증명하였다.

-아덴에서: “회당에서는... 날마다... 변론하니“(행 17:17).

-고린도에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행 17:4).

그러나 그는 단지 이기기 위해서 논쟁을 좋아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사람이나 청중을 잃는 희생을 치루어 가면서까지 논쟁을 이기지 않았다. 참으로, 그는 많은 반대자들을 감동시켰으며, 아덴에서는 몇몇 철학자들까지 감동시켰다.

동시에 그의 설교는 설득력이 있었으며, 간청과 호소가 넘쳤다.

그는 단지 사실과 논쟁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앎으로 사람을 권하노니“(고후 5:11).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 18:4).

다가올 심판에 대한 믿음이 그의 호소에 긴박감을 더해 주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한없이 좋으시기만 한 분이 아니었고, 죄를 묵인하실 수 없으시며 온세계에서 죄를 말살시키셔야만 하는 분이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오도록 설득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또 어떤 때는 그의 설교는 교훈적이어서, 청중들의 특별한 욕구를 채워 주었다.

그는 설교가인 동시에 교사였다. 그는 3년 동안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쳤던 것이다(행 19:9). 그는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살면서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행 18:11) 지냈었다. 사람들은 텅빈 머리로는 믿을 수도 자랄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관해 조직적으로 가르치는 데 투신했다. 그는 종종 가르침의 결론을 내리면서 질문을 던지는 교육 방법을 사용하였다.그의 다양한 접근 방법에서 그의 융통성을 볼 수 있다.

고정된 방법이 없었다. 그는 청중에 따라 메시지를 적절하게 전했다. 그는 로마통치자들이나, 헬라 선생들이나, 아시아의 관원이나 히브리 율법사들에게나 능숙하게 전했다. 그는 회당의 유대인들에게나, 아크로폴리스의 헬라 철학자나 루스드라의 이교도 군중이나 베스도 앞에서 법정의 회의 때에나 자신을 쉽게 적응시켰다.

그의 설교의 어조는 그의 말을 가장 잘 전달하는 것이었다.

“내가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행 20:31)은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흔치 않은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눈물없는 기독교 신앙의 저주“라는 이름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계의 신학 체계가 그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주님께서 아직 미발달의 형태로 주신 진리를 하나님의 영감 아래서, 체계적인 신학과 철학과, “모든 기독교 운동에 답하는“ 윤리로 발전시켰다.

 

기도의 사람

 

기도만큼 그 사람의 영적 생활의 질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은 없다. 그의 서신 가운데 나타나는 꾸밈이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바울의 기도에 우리는 감사해야만 한다. 곳곳에서 기도가 그의 영적 생활에 보조적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이었던 것이 명백하게 나타난다. 놀라운 사실은 바울은 어느 곳에서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기도가 없는 심령 때문에 슬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기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실패 때문에 자신을 책망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기도의 확신을 빼앗아가는 정죄감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어떤 형식적인 형태를 따르지는 않았으나 결코 흐트러지거나부주의하지도 않았다.

그는 어디에서도 기도의 정당성을 설명하거나 옹호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를 그리스도인의 타고난 태도요, 영적 생활의 정상적인 표현으로 생각했다. 그의 기도는 때로는 조용하고 명상적이었고, 때로는 타오르는 열정으로 하늘까지 불타 올랐다. 그의 기도는 감사로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가 그의 서신 가운데서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그의 설교보다는 기도에서였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기도는 “계속 되풀이된다“는 의미에서 끊이지 않았다.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롬 1:9/고전 1:4/엡 1:15, 16/골 1:3/살전 1:3).

이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에게는 모든 일이 찬양과 기도의 제목이었다. 또 그것은 사심이 없었다. 그의 기도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에 관한 것이었다. 중보 기도는 그의 영적 경험의 활력소였다. 회심자들과 그가 세운 교회를 위한 그의 기도는 모든 세대의 본이 된다. 그 기도들은 그가 그들의 성장과 발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지 나타내 준다. 골로새서 2장 1절에서 3절까지의 그의 기도의 간구는 새신자들과 새로이 세워진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요약하고 있다.

그의 기도는 꿈꾸는 몽상이 아닌, 분투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 특성을 가장 생생하고 강한 모습의 언어로 사용하여 그리고 있으며, 사람이 일상적인 노동을 하듯 지칠 때까지 수고하면서, 상을 얻기 위하여 경기장에서 다투는 운동 선수처럼, 생명을 걸고 싸우는 군사처럼 가장 꾸밈없이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응답을 크게 확신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응답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이 그의 기세를 조금도 꺾지 못했다. 끊임없이 초자연의 영역에 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기도하면서,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중재를 기대했다. 기도가 부적당한 환경이란 없었다.

어쨌든 바울은 자족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열망하였다. 그는 교회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할것을 권면했다. 그는 새로 회심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요청하고 있다(살전 5:25).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후 1:11).

그는 자기를 위한 그들의 기도를 예의상 추가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자기 사역에 결정적인 요소로 보았다.

“이것이 너희 간구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빌 1:9).

그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엡 6:19), 전도할 문이 열리도록(골 4:3), 또 구원을 위하여(갈 1:4) 기도해 주기를 바랬다.

바울의 기도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으며, 그 정신은 겸손하고 경건하며, 형식면에서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으며, 표현에 있어서는 열렬하고 확신에 가득차 있다.

다음 장에서는 선교사의 본으로서의 바울을 다루고자 한다.

 

 

 

 

바울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

 

바울이 갖고 있었던 로마 시민권은 오늘날 기독교 선교사들이 선교 사업 가운데 겪는 두 가지 어려움을 면제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치외법권이 없었다. 그리고 외국 땅이 없었다. 바울이 가는 곳은 어디나 그의 정부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가서 외국의 사법권에 순종해야 하는 외국인으로 일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 제국의 어디에서나 자유로웠다. 그가 빌립보나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호소했을 때, 그는 외국 나라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사역은 실제적으로는 모두 다 국내 선교 사역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선교 사역은 자기 나라 국기 아래서 이루어졌다.

두 번째로는, 바울은 자기 문화권으로 갔다는 점이다. 그가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그와 거리가 없었다. 기독교는 19세기 동안 동서를 멀리 떼어 놓았다. 확실히 동서는 서로 떨어져 있고 선교사들은 다양한 습관, 생활방식, 소비 규모, 사상, 전통에 있어서 큰 간격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우리들처럼 그런 간격을 뛰어 넘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기와 똑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많은 집단들에게 동료 시민으로 갔다. 하나로 통일된 제국 안에서는 오늘날의 선교사들이 직면하는 문제점들, 즉 자립 문제, 선교사와 자국 교회와의 관계, 선교자금의 사용 등의 문제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시민 선교사는 이러한 문제가 아닌 그들 자체의 어려움을 안고 사역을 하였다.

-스피어(R. E. Speer)

 


이 그러하며, 그의 모습은 2,000년간 점점 더 높이 우뚝 세워지고 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그의 선교적 열심의 뿌리가 되는 원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이론도 있다.

맥기퍼트(McGiffert)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회심 전부터 바울은 랍비뿐만 아니라 선교사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것은 자기생애를 참된 의를 전파하는 데 헌신하기 위해서였으며, 의가 발전되는 것을 막는 모든 것과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율법을 실천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모든 것을 타도하기 위해서였다“(행 22:3/빌 3:5-6).

그의 회심은 이러한 선교적 열정을 없애기보다는 그 열정을 더욱 강화시키고 그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첫 번째 기독교 선교사인 바울의 가르침과 모범은 모든 세대를 위한 성공적인 사역의 원리를 세워 놓았다. 그는 세상의 어느 선교사보다도 하나님의 패턴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의 이익을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되고 독특한 자질을 갖추고 있던 그리스도의 도구였다. 다른 선교사들은 한 대륙에 복음의 문을 열어 놓았으나, 바울은 온 세상에 열어 놓았다.

 

소명

 

그의 소명은 매우 독특하고 분명한 것이어서 잘못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이에 대해 증거하였다.

“주께서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행 22:21).

이 악명높은 핍박자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맞아 들인다는 것이 아나니아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두려운 일이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16).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가 평생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받아야 할 훈련에 대해 덧붙여 말씀하셨다.

그의 소명이 그를 선교사로 만든 것이 아닌 반면에, 소명은 그의 선교적 열정의 방향을 명확하게 해 주었다. 그는 이제 바리새인의 선교사가 아닌 그리스도의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충성은 율법이 아닌 자기를 사로잡으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바쳐졌다. 점차적으로 그는 이 부르심이 자기 삶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목적이 아니라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의 절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점진적인 계획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행 13:46/ 18:6/ 22:18-21/ 26:16-18).

 

훈련

 

바울은 종교적, 지적으로 우월한 독특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가장 쓸모있게 사용받기 위해서는, 그 영혼의 열심이 꺼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 불타오르는 영혼이 단련을 받아야만 했다. 이것을 위해 물러나 고독한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의 생애에 변혁이 급작스럽고 완벽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의 사고를 재조정하고 신학을 정립할 시간이 필요했다.

스피어(Robert E. Speer)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역은 스릴이 있는 것이었으나 그는 새로운 사역 가운데 즉시 뛰어들지 않았다. 그는 물러나 오랫동안 조용히 묵상 가운데 있었다. 핍박의 뜨거운 흥분이 그가 냉정을 잃도록 하지는 못했고, 그는 지혜롭고 고요한 하나님의 영에 인도되어 물러가 내적인 준비를 하였다. 따라서 그가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에는 남의 것을 빌려온 것이 아닌, 독창적이고, 하나님께 받은 신선한 자기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영적 학교에서의 이 특별 훈련은 아라비아에서 지낸 3년 내지는 그 이상의 기간이었다(갈 1:17-18). 무한히 한적한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복음을 가지고 나갈 자기 사자를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다. 선교사 후보자들에게는 항상 그들의 조급한 열정에는 지루한 예비 훈련을 단축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러나 초기의 훈련을 충성스럽게 받을 때에 더 큰 기회에의 엄숙한 위임을 위해 준비가 될 수 있다. 바울은 사역을 위해 더 넓은 지역으로 떠나기에 앞서 자기 고향 다소에 가서 자신이 사역자임을 입증했다(행 11:25).

 

야망

 

바울이 영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불가능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사정없이 자신을 몰아치는 일들이 있었다. 그는 중생하기 전의 야망과는 정반대가 되는 이 새로운 야심에 대해 세 번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의 그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 그리스도인들을 근절시키고 교회의 영향력을 뿌리뽑으려는 것이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며“(행 9:1).

이 야심은 그가 하늘의 환상에 사로잡히기까지, 새로운 정복지로 그를 몰아 넣었다.

그의 야심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야심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의 왕국의 발전속에서 새로운 중심을 찾았다. 바울은 항상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힘을 다하여 새로운 목표를 향해 분투하였다. 이제 그는 자기가 근절시키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영적 축복을 가져다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라“(롬 1:11)고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의 야심의 특징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어떠한 고난이나 사역도 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그는 이 야심을 갖고 충성스럽게 사역하였다.

그의 야심은 행동면에서 볼 때 냉정하고 근면하고 자립적이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살전 4:11, 12).

그는 항상 자기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였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바라는 것이 생업의 의무를 면제해 주거나 부적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훈계하였다. 그는 경건한 게으름뱅이가 될 시간이 없었다.

그의 야심을 업적면에서 여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5:20, 21).

바울은 예민한 영적 폐쇄 공포증으로 고통받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는 전진을 향한 만족할 줄 모르는 정열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울타리 안에 있고자 하지 않았다. 그가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 22:21)하신 부르심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럴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임무에 충실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국경선을 모르는 세계 시민으로서 끝없는 비젼을 가지고 나라들을 넘나들었다. 필요를 채워주어야겠다는 것이 그에게는 억제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고린도로, 로마로, 스페인(서바나)으로 가장 멀리 있는 로마 제국의 경계와 알려진 세계를 다 돌아다녔다.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서바나로 가리라“(롬 15:24, 28).

이것은 다른데서와 마찬가지로 오늘 세대의 교회에 대한 본이 된다. 오늘날의 교회는 마땅히 모든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 복음을 전할 야심을 가져야 한다. 이 세상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케 하는 것만큼 고상한 목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와 유사한 야심이 모든 위대한 선교사의 상상과 마음을 불태워 왔다.

 


무언가 숨겨져 있다. 가서 그것을 찾으라.

멀리 가서 찾아 보라.

무엇인가 잃어 버려진 그 먼 곳에 가서.

잃어버린 바 되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라!

하나님 보시기에 자기 백성이 준비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감추어 놓으셨으나

그 때에 주께서 나를 전파자로 택하셨고

나는 그것을 찾았노라.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것이라.

-키플링(Kipling)

 


바울의 야심은 본질적으로 헌신적인 것이었으며 그리스도 중심이었다. 그는 그 자신이 사욕이 없는 사랑에 대한 그의 가르침에 대한 가장 좋은 실례였다. 바울의 전통을 따라서 헨리 마틴(Henry Martyn)은 “탐욕이나 야심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과 하나님의 세계를 위해 온전한 번제로 드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자신을 불태우기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동기

 

이러한 불타오르는 야심은 오직 가장 강력한 동기에 의해 점화될 수 있었는데, 바울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그의 선교적 노력을 자극시켰던 요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가장 강한 요소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끄는 힘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다메섹 도상에서 그의 반항적인 마음을 깨뜨려 사로잡으셨던 사랑이 그가 육체밖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그 때까지 그를 사로잡으셨다. 바로 이것이 그로 비할데 없는 수고와 고난을 감당하도록 용기를 북돋우었다.

그리고 또한 피할 수 없는 의무감도 있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바울은 자기가 발견한 것을 나누고자 하는 진정한 선교적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모두를 포용하는 의무감이 모든 인종적인 장애와 문화적 차이를 뛰어 넘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목적 안에 포함이 되며 모두가 구원을 받을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느꼈다. 사회적 지위, 부와 빈곤, 문명이 그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는 그의 빚을 갚아야만 했다.

 

유리한 입장

 

헬라 도시에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유대인으로서, 바울은 세계 선교사로서 독특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로마인의 실용성, 헬라인의 융통성, 히브리인의 강인성 등 세 민족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로마 시민권은 오늘날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당하는 압력을 면제시켜 주었다. 로마시민에게는 외국땅 같은 것이 없었다. 치외법권이라는 곤란한 문제가 결코 제기되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의 나라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제국은 모두 같은 문화권이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는 없었다. 기록되어 있는 세번의 경우에 그는 자기의 로마 시민권에 대해 하나님을 송축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행 16:37/25:10/27:24).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바울은 유대인의 복잡한 입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들을 그들의 경전을 가지고 논박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행 22:3)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율법 지식과 학문을 논란할 수 없었다. 그는 또한 그 당시의 철학 체계에도 능통하였기 때문에 그 추종자들을 그들의 이론에 근거하여 논박할 수 있었다.

그가 소년 시절에 배운 장막을 만드는 일이 생계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교회들에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롭게 권면하고 책망까지도 할 수 있었다. 즉 종종 재정 원조에서 오게 되는 부담이 없었던 것이다.

 

불리한 조건들

 

이러한 장점들이 그의 선교 사역에 크게 도움이 되었던 반면에, 바울은 몇 가지 심한 핸디캡으로 괴로워하였다. 그는 자신과 때로는 동역자들을 위해, 종종 밤낮으로 일해야 했다. 놀라운 일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가 효과적인 선교 사역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주 설교할 마땅한 장소조차도 없었다. 말썽꾸러기로 회당에서 바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는 동역자들의 배반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바나바, 후메내오, 빌레도, 부겔로, 허모게네 등의 일이다. 쓰디쓴 경험을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느니라“(딤후 1:15).

그는 그를 따라다니며 사역을 방해하려고 하는 거짓 선생들과 율법가들의 괴롭힘을 당했다. 그들은 그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그의 사도직에 도전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택하심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방어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그의 회심자들이 항상 견고했던 것은 아니었다. 육체적인 고난은 일상적인 경험처럼 보였다. 지치고 고통을 당하고 배고프고 목마르며 춥고 벌거벗으며 매를 맞고 옥에 갇히며 돌에 맞고 배가 파선을 당하며 땅에서와 바다에서 위험을 당하는 것은 선교사로서의 체험의 한 부분이었다(고후 11:23-28).

이러한 곤경과 고난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본보기가 된다. 그는 수동적으로 그것들을 견디어 낸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것들을 사랑하였다(고후 11:30). 그는 그것들을 순전한 악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겸손케 하는 도구로 여겼다(고후 12:7). 그것들은 그에게 은혜의 통로였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제거하시기보다는, 그것들을 슬기롭게 견디어 내기에 충분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고후 12:9). 그것들조차도 자랑과 기쁨의 제목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인도하심

 

그가 회심하는 즉시, 하나님의 선교 사역으로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역은 그가 안디옥 교회에서 여러 해 동안 사역을 한 후에야 시작되었다. 그 교회는 여러 인종의 지도자가 있는 세계주의적인 교회였다. 지도자들이 기도하고 금식하는 동안 성령께서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 13:2).

바울은 자기가 받은 부르심이 그가 협력하고 있는 교회에 확인되고, 그들이 그 부르심을 확인해 줄 때까지 선교 사역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3).

교회 지도자들의 협조적인 지도자 또한 바울이 받은 개인적인 인도하심을 확인시켜 주었다. 안디옥 교회는 이와 같이 다른 교회들이 다투어 따를만한 좋은 본을 보여 주었다. 선교사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그가 협력하고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인준을 받는다는 것은 교회와 선교사 모두에게 대단한 의미를 주는 것이다.

바울이 교회가 파송한 자기보다 더 경험이 많은 동역자와 함께 얼마동안 동역했다는 것은 의미깊은 일이다. 제 1차 전도 여행 때뿐만 아니라 제 2차 전도 여행 때에도 얼마동안 함께 동역했다. 위로의 아들인 바나바, 선배 선교사 밑에서 함께 일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의심할 바 없이 이 경건한 사람은 이 훈련 기간 동안 바울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그의 후배가 급속히 성장하여 마침내는 팀의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 바나바가 그를 질투하였다는 흔적을 찾아 볼 수있다.

마게도니아에서 소명받은 경험(행 16:6-10)은 최초의 선교적 소명을 받은 예가 아니고, 이미 최초의 소명에 응답한 사람을 특정한 사역의 분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사역의 시기와 장소를 선택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아시아와 비두니아에는 나중에 말씀이 전파되었다. 이 시기에는 메시지가 서방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이었다. 유럽은 추수를 위해 무르익어 있었던 것이다. 영적으로 민감한 바울은 성령의 막으심에 순종하여, 자기 뜻대로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드로아에 머물러 기도 가운데 그의 동료 사역자와 함께 의논하며 하나님의 지리적인 뜻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먼 미래의 결과가 그의 순종에 달려 있었다.

바울이 지상 명령(마 28:19-20)에 순종한 후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 이것이 그를 인도해 주는 유일한 한 가지 요소였다. 그는 첫 번째 임무를 끝마치고 아직 복음에 접한 일이 없는 광대한 지역을 향해 나아갔다. 환상을 본 후에도 그는 동료들과 함께 그가 받은 인도하심을 점검해 보았으며 그 때의 모두는 성령의 역사로 한 마음이 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

 

이와 같이 그는 마게도니아로 출발하기 전에, 그 환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며 성령의 증거가 있으며, 형제들에게 동의를 받으며, 그의 판단에도 인정이 가는가를 확신하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이렇게 재확인하였기 때문에 그는 대적당하거나 채찍맞아 등에 피를 흘리며 빌립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방법

 

바울이 마게도니아 사람의 부름에 응답하여 유럽에 들어갔을 때, 이 세상을 포위하게 될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 그가 택하였던 방법들은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 그 이후 수 세기 동안 비슷한 결과를 맺어 왔다.

사도 행전은 최초의 선교 입문서로 선교의 역사와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사도행전에는 전형적인 설교의 장면과 사건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모든 세대를 위한 선교 사역의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 주고 있다. 실패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서 원리와 방법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세계 복음화에 흔히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논평이다. 이 책은 의미깊게도 평균 한 세대인 30년 간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새 시대 여명기에 불쌍할 정도로 약한 일군의 남녀들을 통해 그들의 일생 동안 어떠한 일들이 성취될 수 있었는가를 하나님께서 보여 주고 계시다. 이 영감된 기록과 오늘날의 선교 현실을 비교해 볼 때, 놀랍게도 모든 종족가운데 부딪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전면적인 전략에 그의 책략을 택했다. 그의 행동을 살펴 볼 때 그는 점차적으로 대도시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문화와 관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도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장 유력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계속적인 교회 성장을 확보했다. 그는 신자 각자가 자신을 복음 전파의 중심으로 생각할 것을 기대하였다. 그는 집중적인 개인 전도와 더불어 멀리 순회하며 복음 전도에 힘썼으며, 언제나 새 지역이 주님의 주권 하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롬 15:19, 20). 그는 그리스도 이전에 세계를 저주했던 세 가지가 그리스도안에서 제하여졌다는 것을 전파했다(갈 3:28). 복음은 모든 종족과 계급,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위한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전 9:22)는 말은 결코 헛된 자랑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복음 전파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비젼은 그 자신이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도구가 되어 세운 교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일을 성취시키시는 데 있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그는 진리에 응답하는 남자와 여자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신앙 고백 위에, 그는 단순하고 융통성있는 조직을 가지고 있는 자립 공동 사회를 세웠다(행 14:23/ 딛 1:5). 그는 복음의 씨만 뿌리고 떠나 버리는 것에 만족치 않고, 복음의 가치를 들고 나갈 영구적인 기관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목표를 위해 아직은 초기 상태인 하나님의 진리를 조심스레 소개했다. 일단 이 교회들이 세워지면, 그는 개인적인 편지를 보내거나, 돌아가서 방문을 하거나, 동료 사역자를 보내어 그들의 증거를 도움으로써 계속적인 교제를 유지해 나갔다. 그의 생명이 그들의 생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한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다.

“너희가 주 안에서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살전 3:8).

그의 사랑의 열정이 이와 같았다.

그는 죄의 보편성과 그에 대한 십자가의 충족성에 관한 보편적인 복음을 전했다(롬 1:3-5/3:29-30/5:7-8). 그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절대적인 주인이 되신다는 것과 그가 확실히 세상을 승리하실 것이라는 것을 역설하였다(고전 1:24/빌 2:9-11).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회심한 직후에 그들에게 준 그의 폭넓은 교훈은 인상적이다. 그가 불과 한 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 동안 함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가 다룬 교리의 기초는 놀라고도 남음이 있다.

바울은 자기가 세운 교회들의 행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자기보다 자질이 덜 갖추어진 사람들에게 책임을 위임하는 데 대가였다. 다른 이들을 훈련시켜 그들에게 일을 맡기곤 했다. 그의 동료 사역자들은 종종 다른 민족, 다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들이 기꺼이 돕고자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그러한 기대가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가 되었다. 그는 장래성있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을 책임감있는 위치에 세웠다(행 16:1-4/엡 6:21-22/빌 4:3).

그의 깊은 우정은 동료 사역자들을 그에게 묶어 놓았고, 그가 도울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들은 그들의 젊음과 경험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들을 용기있게 직시할 수 있었다. 그는 재정적인 동기를 주지 않았고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후원을 받지 않은 반면에, 후한 대접은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이러한 유리한 위치에서 그는 자유롭게 희생적인 헌금을 강하게 권면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회심자들에게 자신의 것과 같은 기준을 세웠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며, 얼마나 훌륭한 선교사인가! 파라(Farrar) 학장은 바울의 자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다.

바울은 베드로처럼 정력적이고 요한처럼 명상적이었다. 바울, 그는 이기심이 전혀없는 영웅, 바울, 종교적 자유의 위대한 옹호자, 바울, 크리소스톰(Chrysostom)보다 더 위대한 설교자, 사비에르(Xavier)보다 더 위대한 선교사, 루터(Luther)보다 더 위대한 개혁자이며,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보다 더 위대한 신학자, 바울, 그는 이방인을 위한 영감받은 사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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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Hanna, ?~?)

 

은혜란 뜻.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살았던 레위 사람 엘가나의 두 아내 중 한 사람. 사무엘의 어머니(삼상 1-2, 대상 6:1, 27). 엘가나의 다른 아내 브닌나는 자녀가 있었으나 한나는 오랫동안 불임으로 번민하였고, 그 일로 브닌나에게서 괴롭힘을 당했다(삼상 1:5-6). 그러다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실로에 올라갔을 때,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들을 주시면 그를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스라엘의 대선지자요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을 얻게 되었다. 한나는 사무엘을 젖 떼기까지 기다렸다가 서원대로 성막의 대제사장 엘리에게 맡겨 평생 하나님께 바쳤다(삼상 1:28).

 

이때 한나가 부른 찬양(삼상 2:1-10)은 신약에서 마리아의 찬가(1:46-55)와 함께 유명한데,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과 넘치는 은혜, 절대적인 주권과 메시아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구속사적으로도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로 평가되고 있다. 그 후, 한나는 사무엘 외에도 세 아들과 두 딸을 낳는 복을 받았다(삼상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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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 회복의 미래를 꿈꾼 사람, 요엘

 

요엘은 전체 3장 73절이라는 짧은 길이의 메시지를 전하고 사라진 이스라엘의 선지자다. 비록 선포한 메시지의 길이는 짧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포괄적으로 전망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요엘 선지자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언급한 자료가 요엘 본문 이외에는 없기에 본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가장 분명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1장 1절에 ‘브두엘의 아들 요엘’로 소개된다. ‘브두엘’이 ‘성실하신 하나님’ 혹은 ‘성실한 성품으로 설득하시는 하나님’을 뜻한다면, 요엘은 경건한 집안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본문에서 제사 및 절기와 관련된 소재들(소제, 전제, 제사장, 성전, 낭실, 제단, 성회 등)을 많이 언급한다는 점에서 그가 제사장 가문의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엘은 누구보다도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전에 대한 신학적이고 실제적인 의미인 ‘하나님의 임재’(욜 3:17, 21)를 선포하는 자로서 딱 맞는 인물인 셈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라는 이름의 뜻에 걸맞게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사람이다.

요엘은 이스라엘의 문제를 뿌리부터 바라보는 시야를 갖고 있었다. 그는 요엘 2장 3절에서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라고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문제가 창세기 2장과 3장이 말하는 창조와 타락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즉 요엘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범죄와 관련된 것임을 알았고, 그것을 선포하려고 했던 것이다.

요엘은 또한 새로운 시대가 어떻게 오는지를 내다본 인물이다. 베드로는 신약의 교회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로 시작하는 요엘 2장 28~32절의 말씀을 인용한다.


즉 초대 교회 사도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성령 강림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이해한 것이다. 요엘은 구약시대를 살면서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실 새 시대를 미리 전망한 인물이다.

더 나아가 요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완성까지 내다본 인물로 보인다. 하나님 안에서 회복될 미래를 꿈꾸면서 그는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욜 3:18)라고 예언한다.

단 포도주(암 9:13)와 젖(사 55:1)이 흘러넘친다는 표현은 요엘의 예언 속에 있었던 과거의 에덴동산에 대비해 미래에 새로워질 낙원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또한 성전에서 솟아나는 샘도 에덴동산의 강들을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다(겔 47:1~12). 이어서 요엘은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욜 3:20~21)라며 자신의 예언을 모두 마무리한다.

 

지금까지 살핀 요엘 선지자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전망을 보다 넓게 가져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 영원한 회복에 대한 꿈을 단단히 배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요엘이 어떻게 이와 같은 전망을 갖게 되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대답으로는 그가 선포한 말씀 가운데서 크게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의 반응 곧 ‘참된 회개’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진심 곧 ‘극진한 사랑’이다.

참된 회개란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욜 2:12). 이것을 요엘은 회개하는 자의 모습으로, 흔히 등장하는 옷을 찢는 행위에 빗대어 마음을 찢어야 한다고 도전한다(욜 2:13). 또한 하나님의 진심은 은혜, 자비, 인애에 근거한 극진히 사랑이다(욜 2:13, 18).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엘이라는 인물을 통해 적어도 이 두 가지를 배우기 원하시고 도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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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탐구 - 오직 예수만 드러내고 사라진 인물, 세례 요한

 

복음서는 의당 예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초점은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복음서들은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해 각각 차별화된 특징이나 강조점을 띠고 있지만, 모든 복음서는 초반에 세례 요한을 다루면서 예수님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가운데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을 가장 빠르게 등장시킨다.

복음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세례 요한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중 마가복음은 사실상 세례 요한을 언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루고 있어 이번 달에는 세례 요한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경건한 부모·불임 가정에서의 출생

먼저, 세례 요한의 출생부터 살펴보자. 그는 제사장 가문의 경건한 부모 곧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서 태어났다. 이들 부부는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다(눅 1:6). 대단한 믿음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임의 절망스럽고 아픈 문제를 안고 있었고, 그러한 상황은 나이 들어 늙기까지 지속됐다.

임신이 불가능한 부부에게서 세례 요한이 태어났다. 요한은 육신적으로는 경건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불임의 절망을 넘어 하나님께서 초월적 능력을 행하심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의 출생에서 우리는 ‘출생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진리도 꼭 배워야 하지만, 믿음의 성장에는 절망적인 현실이 함께할 수 있다는 진리도 분명히 배워야 한다. 그것도 나이 들어 점점 늙어 가는 상황에서도 예외가 없음을 말이다.

 

메시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

우리는 세례 요한의 등장을 구속사의 맥락으로도 봐야 한다. 그의 등장은 오래전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아 비전과 믿음의 기대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성취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특히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것을 자신의 사역으로 삼았다. 특히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거침없이 선포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그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라는 섬뜩한 표현을 쓰면서 “독사의 자식들아…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선포했고,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경고했다(눅 3:7~9).

요한은 또 헤롯 왕의 악행에 대해 책망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이 일로 결국 순교에 이른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소명을 물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소명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이라는 진리를 붙잡게 된다.

 

예수를 드러내고 사라진 인물

한편, 복음서들은 세례 요한에 대해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이해했는데, 이것은 무엇보다 그의 요단 강 근처에서의 회개와 세례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곧 요한은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회개의 필연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자신은 ‘뒤에 오시는 이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는 고백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자로서의 요한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물론 그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일을 기다리오리이까”(마 11:3)라고 예수님께 질문한 것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흔들리는 모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 오직 한 분만을 드러내고 사라진 인물로서 우리에게 각인되기에 충분하다.

마가복음 묵상을 통해 우리 모두 세례 요한처럼 예수만을 드러내는 제자의 길, 섬김의 삶을 향해 한 걸음 더 기쁘게 옮겨가기를 기대한다. 노예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시대 속에 스스로 종으로 오셔서 마침내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만이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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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 잊혀진 이름이지만 빛나는 믿음의 사람 수로보니게 여인

 

이번 달 본문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가운데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로보니게 여인(막 7:24~30)을 탐구하고자 한다. 수로보니게는 팔레스타인 땅 북쪽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일컫는 말로서 수리아와 베니게의 합성어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지역의 해안 도시 두로 지방에 가셨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기를 간구했고, 이 간구대로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 주셨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놀랄 일이지만, 예수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그녀의 등장은 더욱 놀랍다. 여자요, 귀신 들린 딸의 어머니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으며, 심지어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이 되었다.

무명의 여인 등장

우선 그녀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그녀는 무명이다. 성경에 이름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런 내용 없이 단지 이름만 소개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적잖이 충격적이라는 점에서 무명의 여인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 묵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녀는 어쩌면 당시 사회의 통념상 무시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인정되는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인생의 오랜 세월 동안 무시 받는 신분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름이 잊혀 갔을 수도 있겠다.

바리새인과 무명의 여인의 믿음

한편 마가복음 6~9장의 문맥을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 이야기는 바리새인의 불신앙과 교만한 태도의 이야기들(막 7:1~23, 8:10~13) 사이에 위치한다. 이와 같은 구조를 통해 마가는 이 여인의 이야기를 훨씬 도드라지도록 만들고 싶었던 게 분명해 보이며, 이 때문에 독자들은 당시 배경 속에서 최고의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이름 없는 이방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빛나는지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초라하고 불쌍하다 여겨지던 모습 속에서 믿음의 힘을 목도한다. 곧 당시 최고의 사람들이라 자타가 인정하던 바리새인과 가장 낮은 사람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귀신 들린 딸의 어머니인 무명의 여인의 믿음이 역전되는, 마치 반역과도 같은 현장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며,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도전이다.

하나님은 믿음, 오직 믿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분이다. 그러면 이름조차 잊힌 슬픔을 넘어 아픔의 여인이었을 수로보니게 여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한 믿음은 어떤 것인가? 이는 예수님과 여인 사이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여인이 자신의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기를 간구하자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답하셨다. 얼마나 치욕스러운 말인가! 하지만 여인은 오히려 자신이 이방인이요, 개로 비유되는 존재요, 상에서 떡 먹을 자격이 없는 자라는 자기 이해를 충분히 받아들인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죄인임을 인정한 수로보니게 여인

자신이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믿음의 진수가 보인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막 7:15~16)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존재론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무명하고 슬픈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난다.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는 겸손의 여인을 통해 우리는 복음을 만난다. 그리고 개들도 오직 주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먹어야 한다며, 주님에게만 매달리는 여인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복음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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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 겸손과 눈물의 사람, 바울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는 지난 1월호에 이어 다시 사도 바울을 만난다. 그는 한때 온 힘을 다해 나사렛 예수와 그를 믿는 자들을 박해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길이라고 믿었었다(행 8:3, 9:1~2, 참조 요 16:2).

 

 

하지만 무지와 오해에서 출발한 왜곡된 열심의 사람이었던 바울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5) 하는 음성과 더불어 나타나신 주님을 만난 이후, 예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리에도 기꺼이 나아가는 사람으로 바뀐다. 에베소교회가 그 증거물 가운데 하나이고, 에베소서가 그 증거문서다.

 

 

에베소교회와 바울의 관계는 참으로 특별하다. 에베소라는 도시 자체가 당시 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였을 뿐 아니라(그랜트 오스본은 『에베소서 주석』 13p에서 “로마를 제외하고 에베소는 바울이 방문한 도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라고 기록),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행 19:27) 아데미 신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만큼 에베소에서 바울의 사역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사역적으로 보면, 바울에게 에베소는 세 번의 전도여행 중 두 번이나 방문한 곳일 뿐만 아니라(행 18:19~21, 19:1) 2~3년 동안 지속된 그 유명한 두란노 서원 강론이 있었던 곳이다(행 19:9~10). 또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해서 치유와 축사(逐邪)가 일어나 급기야는 마술사들이 은 오만이나 되는 분량의 책을 불사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 반면, 에베소 온 시민의 분노와 핍박에 직면했던 곳이기도 하다(행 19:11~41).

 

 

신학적으로 보면, 성령에 대해 가르쳤고(행 19:2~6) 하나님 나라를 강론했으며(행 19:8)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기도 했다(행 19:12). 이처럼 중요한 진리들이 드러난 곳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에베소서를 통해 다음의 두 가지의 내용을 나누고 싶다. 첫째, 에베소교회 사역에는 바울의 눈물과 겸손 그리고 인내가 흥건하게 배어 있다는 점이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지도자들과 이별할 때가 되었을 때 그곳에서의 사역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18~20).

 

 

바울은 눈물의 사역자였고, 겸손과 인내의 사역자였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여러분도 아는 바니”라는 말처럼 공개된 것이었고 에베소 지도자들이 다 아는 것이었다. 바울의 이와 같은 인물됨에서 우리는 사역자의 자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둘째, 눈물과 인내와 핍박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얼마나 복음에 집중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에베소서의 구조를 본문 내용을 따라 1~3장과 4~5장으로 나눌 때, 1~3장의 주제를 ‘두 기도’와 ‘하나의 십자가 복음’을 설명하는 구조로 볼 수 있다. 즉, 1장 15~23절의 첫 번째 기도와 3장 14~21절의 두 번째 기도,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2장 1절~3장 13절에서 십자가의 복음과 그 복음을 드러내는 일꾼으로 바울 자신을 언급해 결국 복음이 중심에서 빛나도록 하는 구조다.

 

 

물론 바울의 기도 역시 십자가를 통해 증명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을 간구하는 것이어서 그가 얼마나 복음에 집중하고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한편, 바울은 그리 길지 않은 이 편지에서 자신이 갇혀 있음을 세 번이나 언급할 만큼(엡 3:1, 4:1, 6:20) 고난 가운데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 그 어느 교회보다 잘 이해해 줄 곳이 바로 에베소교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호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양 오직 십자가 복음에 집중하고, 복음이 가져오는 삶에 집중한다.

 

 

에베소서를 통해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와 성정이 같은 그를 통해 복음이 중심 되는 삶을 향해 세상이 흥분할 발걸음을 또 한 걸음 내딛는 도전을 받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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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 다윗, 결정권을 늘 하나님께 드린 인물

 

 

 그리스도인으로서 꿈에서라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들었던 “내 마음에 합한(맞는-개역개정) 사람이라”(행 13:22, 참조 삼상 13:14, 16:7)는 말이다. 다윗은 성경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일생으로서 가장 자세하게 그려지고, 가장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기록된 인물이다. 이와 같은 특징만으로도 다윗이 그만큼 큰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다윗의 신앙 단층들을 한 겹씩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다시 보게 된다.

 

그러나 사무엘하 본문을 찬찬히 읽다 보면 우리는 도무지 위대하다고 할 수 없는 다윗의 모습도 만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충신 우리아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을 비롯해(11장), 아들 암논이 딸 다말을 강제로 취한 다음 미워하고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13장),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맨발로 몸을 피해야 했으며(15장), 압살롬의 죽음 앞에 슬픔에 젖는 모습(18~19장) 등이 그렇다. 이런 이야기들은 솔직히 좀 생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다윗의 그러한 모습이 수치스럽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물론 다윗에 대한 진솔한 기록은 그의 삶 전체를 뿌리째 휩쓸고 지나감으로써 정서적이고 영적인 내면세계의 동요까지 고스란히 보여 주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영적 거울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윗이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요,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요, 메시아의 모형으로 우뚝 설 수 있을 만한 인물인가? 다윗과 대조되는 불순종의 인물 사울과 비교할 때, 더 큰 악을 저지르고 더 큰 고통과 절망과 수치를 겪었다고 할 수 있는 다윗이 왜 위대한 인물로,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역사 가운데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윗이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왕이지만 ‘왕이 아니기’를 끝까지 붙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삶의 최고 결정권을 하나님께 드렸다. 다윗의 행동을 제한하고 이끌어갔던 기준은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 앞에서도 단 하나의 이유, 즉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셨다’(삼상 24:6, 26:9, 16; 삼하 1:14)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자신의 믿음을 보여 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기는 했지만 진짜 왕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자신은 하나님의 종일뿐임을 고백했고, 그 고백대로 살았다. 블레셋이나 아말렉과의 전투를 앞두고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먼저 ‘여호와께 묻는다’(삼상 23:2, 30:8; 삼하 2:1, 5:19, 23, 참조 삼상 22:10~15). 만일 어떤 사람이 결정을 하기에 앞서 누군가에게 물어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보다 권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 주었다.

 

결국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인간적인 차원에서 착하다거나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왕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라는 진리를 따라 자신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결정권을 늘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 모두 사무엘서가 가르치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은혜를 간구한다. 

- 날마다 솟는 샘물 박삼열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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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 다니엘, 적진에서도 기도와 말씀이 답임을 외치다


 

다니엘은 한마디로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다. 그것도 적진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기도와 말씀의 신앙을 외친 인물이다. 기도와 말씀, 이 두 가지는 사도들이 결정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방향(행 6:4)인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신앙생활의 두 기둥이다. 이 때문에 다니엘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하다.


다니엘, 기도의 사람

 

다니엘은 유다의 왕족 혹은 귀족 출신이었고(1:3),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지혜와 통찰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또한 지식에 통달하고 학문에 익숙해 왕궁에서 일할 만한 자였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학문인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배웠고, 왕궁에서 훈련을 받았다(1:4~5). 결과는 괄목할 만했다. 바벨론 제국의 최고 인재들보다 10배나 뛰어났다(1:18~20). 이쯤 되면 얼마든지 기도에 그렇게 목숨 걸지 않을 법도 하다.

 

하지만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조국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이 멸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고(1:1~2), 자신은 적국 바벨론의 포로가 된 현실(1:4)이 다니엘로 하여금 기도밖에는 할 것이 없는 인물로 준비시켰는지도 모른다.

 

한번은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이 꾼 꿈을 알아내지 못하는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다니엘은 이 일을 친구들에게 알려 기도하게 하고, 자신도 하나님께 엎드린다(2:12~18). 그리고 밤에 환상으로 임한 하나님의 대답을 듣는다.

 

다니엘에게 닥친 위기의 정점은 다리오 왕 시절 고관들이 일치단결해 빈틈없이 꾸민 계략이었다. 그는 사자 굴에 던져졌다. 그런데 이 덫이 놓이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기도였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6:10~12). 하지만 이 결정적 위기는 계략을 꾸민 자들이 사자의 밥이 됨으로써 극적이지만 필연적 반전으로 끝이 난다.

 

더 나아가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마음 깊은 번민이었고(4:19, 7:28), 아픔이었으며(8:27), 동족의 죄로 인한 회개요 금식이요 슬픔이었다(9:3~20, 10:2~3). 기도가 만만한 게 아님을 단번에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주의할 것은 그 기도가 자기 자신을 드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믿는 믿음의 반응으로서의 기도라는 점이다. 최고의 석학 다니엘이 자신의 대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반복해 고백한 것이나(2:28, 30), 사자 굴에서 살아 나온 다니엘에 대해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단 6:23)고 덧붙인 것을 보면 그렇다.

 

다니엘, 말씀의 사람

 

다니엘에게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가 철저히 말씀의 사람이 되려고 했다는 점이다. 다니엘은 철두철미하게 하나님께 의논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야 움직였다.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의 삶을 형성하는 근거요 이유가 됐다는 것이다(1:17). 이처럼 말씀의 사람은 반드시 기도와 함께 가는 것이다.

 

게다가 구약 시대에 환상이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시는 특별계시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다니엘이 본 환상들은 결국 그가 말씀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그가 환상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니엘은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다(9:2).

 

다니엘의 회개와 금식과 슬픔의 기도는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남’ 때문이었다(9:5). 이같이 율법을 소홀히 한 백성들의 죄를 다니엘은 더욱 사실적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고,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해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함’이라고 애통해 한다(9:10~11, 14).

 

다니엘은 말씀에 철저한 인물이었고, 기도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킨 인물이었다. 환상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계시였다. 이런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기도와 말씀의 세계를 새롭게 열어가기를 간구한다.

 

- 날마다 솟는 샘물 박삼열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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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 디모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됐는가?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없는 신약의 교회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위대한 사도 바울과 함께했던 여러 동역자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충분히 그는 사역을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가운데 디모데는 단연 앞선 동역자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볼 때 바울의 사역에 디모데가 없었다면 신약의 교회는 세워질 수 없었다. 바울의 사역에, 또 초대 교회가 세워지는 데 있어 꼭 필요했던 인물인 디모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달에 묵상하는 디모데전·후서를 중심으로 디모데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디모데, 성경을 만나다

 

바울에게 ‘아들’로 불리는(딤전 1:2, 18; 딤후 1:2, 2:1; 참조 고전 4:17) 디모데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16장이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루스드라에 갔을 때, 거기서 ‘디모데라 하는 제자’(행 16:1)를 만났다. 이것이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의 등장에 대한 첫 기록이다. 첫 기록에서 그를 ‘제자’라고 호칭한 것은 의아할 정도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이 본문에서 디모데에 관해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기록을 보는데, 그것은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행 16:2)라는 것이다. ‘제자’라는 호칭에 이어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자’로 기록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디모데는 과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릴 수 있었을까?

 

첫 번째는 그가 성경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흔적을 디모데후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에게 영향을 받았다. 바울은 디모데후서의 중심 메시지이자 모든 사역자에게 매우 중요한 지침인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는 말씀으로 디모데에게 교훈한다. 영적 부담이 큰 이 도전을 바울은 디모데가 어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믿음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디모데가 받은 영향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구약’이다. 구약성경이 디모데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갖도록 할 뿐 아니라 제자요, 칭찬받는 자로 변하도록 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라고 쓴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디모데가 ‘제자’요, ‘칭찬받는 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디모데, 바울을 만나다

 

두 번째는 그가 사도 바울을 만났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 부른 곳이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들린 루스드라였는데, 이때 이미 디모데는 ‘제자’로 불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디모데는 언제 제자가 됐을까?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기록한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바울이 루스드라를 방문해 복음을 전한다. 이때 제자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디모데도 그 가운데 있었음이 틀림없다.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행 14:21~22). 그러므로 디모데가 ‘제자’요, ‘칭찬받는 자’가 됐던 것은 바울을 만나 그를 통해 복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디모데전·후서에서 디모데에게 십자가 복음을 반복해 강조할 수 있었고(딤전 1:3~20, 2:5, 6:3; 딤후 1:10, 2:8~13 등), ‘내게 들은 바’ 혹은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딤후 1:13~14), 곧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도전할 수 있었다. 이 도전을 받아들여 디모데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딤후 2:3)로 섰던 것이다.

 

우리는 디모데를 통해 말씀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영적 지도자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발견한다. 복음은 반드시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 된 믿음의 사람을 통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 교회는 바울과 디모데처럼 복음을 받고 전하는 일꾼들을 통해 세워지고 이어진다. 디모데전·후서를 묵상하는 동안 성경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일어날 뿐 아니라, 복음을 모르는 또 다른 사람이 제자 되도록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 날마다 솟는 샘물 박삼열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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