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 잊혀진 이름이지만 빛나는 믿음의 사람 수로보니게 여인

 

이번 달 본문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가운데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로보니게 여인(막 7:24~30)을 탐구하고자 한다. 수로보니게는 팔레스타인 땅 북쪽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일컫는 말로서 수리아와 베니게의 합성어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지역의 해안 도시 두로 지방에 가셨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기를 간구했고, 이 간구대로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 주셨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놀랄 일이지만, 예수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그녀의 등장은 더욱 놀랍다. 여자요, 귀신 들린 딸의 어머니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으며, 심지어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이 되었다.

무명의 여인 등장

우선 그녀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그녀는 무명이다. 성경에 이름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런 내용 없이 단지 이름만 소개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적잖이 충격적이라는 점에서 무명의 여인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 묵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녀는 어쩌면 당시 사회의 통념상 무시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인정되는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인생의 오랜 세월 동안 무시 받는 신분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름이 잊혀 갔을 수도 있겠다.

바리새인과 무명의 여인의 믿음

한편 마가복음 6~9장의 문맥을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 이야기는 바리새인의 불신앙과 교만한 태도의 이야기들(막 7:1~23, 8:10~13) 사이에 위치한다. 이와 같은 구조를 통해 마가는 이 여인의 이야기를 훨씬 도드라지도록 만들고 싶었던 게 분명해 보이며, 이 때문에 독자들은 당시 배경 속에서 최고의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이름 없는 이방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빛나는지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초라하고 불쌍하다 여겨지던 모습 속에서 믿음의 힘을 목도한다. 곧 당시 최고의 사람들이라 자타가 인정하던 바리새인과 가장 낮은 사람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귀신 들린 딸의 어머니인 무명의 여인의 믿음이 역전되는, 마치 반역과도 같은 현장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며,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도전이다.

하나님은 믿음, 오직 믿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분이다. 그러면 이름조차 잊힌 슬픔을 넘어 아픔의 여인이었을 수로보니게 여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한 믿음은 어떤 것인가? 이는 예수님과 여인 사이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여인이 자신의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기를 간구하자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답하셨다. 얼마나 치욕스러운 말인가! 하지만 여인은 오히려 자신이 이방인이요, 개로 비유되는 존재요, 상에서 떡 먹을 자격이 없는 자라는 자기 이해를 충분히 받아들인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죄인임을 인정한 수로보니게 여인

자신이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믿음의 진수가 보인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막 7:15~16)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존재론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무명하고 슬픈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난다.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는 겸손의 여인을 통해 우리는 복음을 만난다. 그리고 개들도 오직 주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먹어야 한다며, 주님에게만 매달리는 여인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복음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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