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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를 위한 기도문 (성령의 능력으로 건강한 믿음생활을)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하여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

아이가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샘 곁에 심긴 나무처럼 푸르게 자라고 아름답게 꽃을 피워 가지가 담을 넘고 가지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자신의 생애와 가족을 복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큰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 아이에게 내려서

하나님께 사랑받고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대대로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룰 수 있게 하옵소서.


이 아이가 아브라함처럼 새로운 역사를 열고 많은 사람에게 복 받는 길을 여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많은 사람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복된가문을 이루며 나날이 번성하고 잘되는 복을 받게 하옵소서.

아이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임하게 하시고, 아이를 대적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상대하여 주옵소서.


성경에 기록된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솔로몬에게 하신 좋은 약속들을

아이에게도 상속해 주셔서 평강을 이루어 주옵소서.


아이에 대한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이의 산성이시며 방패이시며 목자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힘이시고 소망이시며 회복자 되심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치유자되시고 공급자이시며 구원자 되심을 믿습니다.

아이에게 주신 귀한 약속들이 이루어 질 것을 믿습니다.


아이 내면 세계를 충실하고 강건하게 하사,

내면의 영적 질서가 잘 잡혀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안에서 밖으로 삶을 경영하는 믿음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의 말씀으로 날마다 새롭게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건강한 믿음생활을 하게 하시고,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하옵소서.


주여 아이가 자신이 하는 일에 복을 달라고 기도하기 보다 복 받을 일을 많이 하게 하시고

자신을 위해 복을 쌓기 보다 받은 복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 되게 하소서.


아이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알고, 항상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 가정이 형통하고 화목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실 것을 믿으며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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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자료모음  모세를 따라 살았던 여호수아처럼 

 

 

 
•찬송 1장 (통 1장) 찬송듣기

 
•성경 여호수아 12:1~12:24 성경감추기
•1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를 차지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 시혼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이라 그가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경계 얍복 강까지이며
•3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이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쪽으로 비스가 산기슭까지이며
•4 옥은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주하던 바산의 왕이라
•5 그가 다스리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경계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경계에 접한 곳이라
•6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7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쪽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쳐서 멸한 그 땅의 왕들은 이러하니라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구분에 따라 소유로 주었으니
•8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네겝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라)
•9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10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문 왕이요
•11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12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13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14 하나는 호르마 왕이죠 하나는 아랏 왕이요
•15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16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17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18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릿사론 왕이요
•19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20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22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모두 서른한 왕이었더라

 
•성경 길라잡이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6절): 모세의 사역이 강조된 부분이다. 모세의 지도로 정복한 땅이 두 지파 반에게 분배된다. 이런 모습은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가 따라야 할 모범이 된다.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구분에 따라 소유로 주었으니(7절): 여호수아가 모세의 모범을 따라 정복한 땅을 분배했음을 보여준다.


•묵상과 삶

모세가 요단 서편을 정복하고 분배한 내용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내용이 순차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모세를 통해 시작되었던 땅을 정복하고 분배하는 일이 여호수아를 통해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와 여호수아의 업적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온 땅에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권세를 심판하시고 제압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이 세상 가운데 허락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루도록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모세를 따라 하나님께 순종했던 여호수아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언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우리들은, 이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냈던 여호수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구원을 증언하는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앞에 놓여있는 삶의 자리 가운데 도사리고 있던 세상 권세들을 몰아내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질서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처럼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죄로 말미암아 세상이 겪고 있는 고통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일상에서 몰아내야 할 죄와 사망의 질서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로 대적해야 할 세상 왕들의 목록을 작성해봅시다.

 
•1.5.3 묵상질문
 153 묵상질문

•1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들을 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5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입니까?
•3 -

 
•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새로운 정체성과 비전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우리 삶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의 질서를 몰아내고, 십자가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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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성경 넌센스 퀴즈 문제 모음

 

 


신앙인 중에서도 기독교인만 풀수있다는

어려운 성경 넌센스 퀴즈 문제 모음입니다

교회에서 모임있을 때 분위기 업!! 용으로

도움이 되실겁니다 ~

몇문제나 맞추실지 한번 풀어보세요~


어려운 성경 넌센스 퀴즈 문제 모음

 

- 벌 중에서 가장 무서운 벌은? 천벌

-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것 중 제일 큰 것은? 낙타

 

 

- 하나님이 노아에게 주신 개 이름은? 무지개

- 꽃 백송이를 모아서 만 든 꽃은? 백합꽃

- 교회의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것은? 피뢰침

- 출전한 선수 모두가 기도를 드리고 시작하는 운동 경기는? 합기도

- 신약과 구약 사이에 있는 것은? 과

- 나면서부터 배를 탄 사람은? 모세

- 성경 인물 중 수학을 제일 못하는 사람은? 모세

- 성경 인물중 최고의 예언가는? 미리암

- 최초의 동물원은? 노아의 방주


- 최초로 수술대에 오른사람은? 아담

- 성경 인물중 늘 자신을 봐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바라바

- 아기 낳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하는 성경은? 에베소서

- 인류 최초로 하늘을 날은 사람은? 에녹

- 인류 최초로 기구를 통해 하늘을 날은 사람은? 엘리야

 


- 돌아온 탕자를 제일 싫어한 것은? 살진 송아지

- 신구약은 모두 66권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모두 몇자 일까요? 2자

- 성경중 제일 짧은 성경은 시편 117편입니다

그렇다면 제일 두꺼운 장은 어디일까요? 겉장

행복한 시간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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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하던 사람 (The person who talked to God face to face)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기와의 교제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단지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만 교제를 허락하시고 자격을 주신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누리는 이 영적인 그룹에 속했다. 그는 한 번 이상을 산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며 사십 일을 지냈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과 친밀한 삶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완전을 향한“ 긴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보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빚으시는 손길 아래서 그의 성품이 변화되어 간 것을 더듬어 볼 때, 그를 영적인 거인으로 만든 것은 바로 그의 믿음이었다.

그의 생애는 사십 년간씩 세 시기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사십 년-애굽 궁전에서 왕자로 지냄

 

-혈통

많은 사람들이 위대해진 비결을 찾아 보면 그들의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있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므람과 요게벳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그 후에 모세를 다루실 수 있게 하였다. 참으로, 이 두 노예의 믿음은 세계 역사의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히 11:23).

그들의 믿음은 왕의 진노를 무릅쓰게 했고, 그들의 사랑은 왕의 잔인한 명령을 교묘히 피하는 방법을 궁리해 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에 영광을 주시고 그들의 사랑에 보답해 주셨다. 그 결과로 모세는 경건한 가정과 히브리종교의 혜택을 받았고, 이것은 후에 그가 애굽에서 교육받은 데서 오는 해로운 요소를 중화시키는 것 이상의 작용을 했다. 그 가정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배웠다. 그의 부모로부터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배웠다. 거룩한 환경과 주변의 경건한 분위기는 그의 성격 발달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그들로부터 두려움이 없는 용기를 배웠다. 그들의 믿음은 왕의 진노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었다. 부모의 용기가 아들 속에 도덕적인 용기를 낳았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히 11:27). 믿음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그의 어린 시절은 하나님의 통치적인 섭리에 대한 놀랄 만한 본보기를 보여 준다. 그를 삼켜 버릴 바로 그 강이 그를 죽음에서 건졌다. 그를 구해 준 사람은 얄궂게도 바로 바로왕의 딸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지혜로 아들이 안전히 보호를 받게 되었다.그녀는 온 세상의 소망이 갈대상자 속에서 나일 강을 떠내려 가고 있다고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혈통을 통치하신다.

 


-환경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훈련장을 사치스럽고 육욕에 빠지기 쉬운 바로의 궁전으로 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삶의 환경을 지배하시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기계는 다름 아닌 영혼을 부드럽게 구부리기 위한 것.

푹신한 침대와 풍성한 음식이 광야에서의 험란한 방랑 생활을 위해 이상적인 훈련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며, 도덕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음모로 가득 차 있는 궁전은 경건한 인격 계발에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훈련시키실 때에, 언제나 그를 고립시키고 격리시키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강인한 성품을 계발시키시기 위해 그에게 유혹과 환란의 강풍(强風)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고립이라기보다는 분리의 방법이다. 우리가 만일 종교적인 훈련을 위해 그를 보낸다면 영적으로 조금치도 유익한 영향을 받을 수 없는 궁전으로 그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도구가 될 사람을 훈련시키신 곳은 바로 궁중생활의 시련의 불 속에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환경을 통치하신다.

 


-교육

기이하게도, 바로의 명령이 모세가 애굽의 옥스포드 또는 하버드에서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스데반이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모세가 받은 교육과 훈련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 7:22).

학자로는, 그는 애굽의 과학과 지혜에 통달하게 되었다. 정치가로서는, 그는 독특한 웅변 능력을 갖고 있었다. 군인으로서는, 그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요세푸스(Josephus)는 이야기한다. 전설에 의하면 애굽 군대가 그의 지휘 아래 대단한 승리를 여러 번 얻었다고 한다. 이 전설이 근거가 있다면, 그의 조직력과 큰무리를 다루는 기술이 설명되어진다. 그의 군사 훈련 가운데는 훈련, 인내와 빠른 결정 등이 그의 교과 과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애굽의 궁정은 바로에게 항복한 시리아의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온 속국의 왕자들을 위해 관례상 교육 시설을 제공했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교육은 매우 진보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교육을 통해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놀라운 지적능력과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남김없이 하나님께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하실 수 있다. 지혜로운 자 가운데 택함 받은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으나, 세상은 모세와 바울에게 굉장한 빚을 지고 있다.

미국 최고 재판소의 배석 판사인 브류어(Hon. D. J. Brewer)씨는 모세를 입법자로 보며 다음과 같이 썼다.

“시내산 꼭대기에서 여호와의 손에서 십계명을 받은 그는 어떤 면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독특한 민족의 법전이 되어 온 법 체계를 만드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 법전은 오늘날 놀랄 만한 문명 사회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모세를 인류의 가장 위대한 입법자 옆에 나란히 둔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육을 통치하신다.

 


-포기

사람은 자기의 출생과 환경을 선택할 수 없으나, 자기의 이력을 택하는 일에 있어서는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조만간에 사람은 두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인생의 분수령에 도달하게 된다-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부합한 것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남은 생애를 하나님이 없는 비참함 가운데에서 지내게 된다.

모세는 그가 장성하여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판단내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히브리서 11장에 요약되어 있으며, 이 부분을 “위대한 거절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great refusal)이라고 불러왔다. 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그의 백성의 곤경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이기적으로 바로의 딸의 아들로서의 특권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아니면 노예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과 함께 할 것인가? 화려함과 권세와 영광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난과 낮은 신분과 오명을 택할 것인가? 그는 죄의 쾌락이 가장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며, 저울추는 그가 자기 백성의 지도자가 되는 것의 반대쪽으로 무겁게 기울어져 있을 나이였다. 세상 권세와 영화의 유혹은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히는 현실이었다. 영원한 것의 가망성과 보상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믿음이 아니고는 만져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중대한 결정의 요소가 네 개의 명사로 표현되어 있다. 「고려」(esteeming/히11:24-28) 이 말은 “계산함, 이것과 저것을 저울로 재어 봄“의 뜻이다. 모세는 조심스럽게 상황의 이해, 득실을 재어 보았다. 그의 선택은 성급하고 황급한 결정이 아닌 침착하고 신중한 선택이었다. 만일 그가 현재의 생활을 포기한다면 그의 빛나는 미래는 풍전등화격이 되고 황폐한 미래가 있게 될 것이다.

그의 “여김“은 「선택」(choosing)하고 「거절」(refusing/히 11:24, 25)하는 데로 나아갔다. 그가 위대한 거절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의 믿음이었다. 그가 바로 궁전에서의 그의 지위를 포기하고, 오늘날 우리도 조금 알 수 있는 애굽의 보화와 쾌락에 등을 돌리는 것은 외적으로 볼 때 그에게 전혀 유익이 없고 모든 것을 잃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선택을 통하여 자신이 이스라엘의 고난과 소망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는 세계 역사상 가장 장엄하고 획기적인 “거절“을 했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믿음의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버림」(forsaking/히 11:27)을 가능하게 했다. 애굽의 부와 쾌락과 영화와 권세를 버리고 빈곤과 고난과 노예 상태와 경멸당하는 것과 정처없이 방황하는 것을 택했다. 대단한 포기였으나 영광스러운 믿음의 승리였다. 그는 애굽의 번쩍거리는 세상 영화와 메시야에 대한 쇠함이 없는 영광을 견주어 보고, 결코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하였다.

고통받는 동포들에 대한 새로운 동정심이 그의 마음에 용솟음쳐서 그는 그들의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일격을 가했다(출 2:11, 12).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인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의분이 끓어 올라 애굽 사람을 죽여 황급히 모래에 묻었다. 그러나 그의 동포들은 그가 지도자가 되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고 모세는 당황하게 된다. 그가 실패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믿음의 행동과는 거리가 먼, 충동적인 격분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영적인 목적은 육신적인 방법으로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배워야 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좌우로 살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중재는 미성숙한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을 향해 너무 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학교에서 더 배워야 할 과정이 있었다. 그는 아직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는“(히 11:34) 사람들 중에 끼지 못했다. 어쨌든, 그를 그의 생애의 두 번째 기간으로 안내한 것은 바로 이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행동이었다.

 

두 번째 사십 년-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서

 

궁전에서 보낸 세월들은 그로 하여금 지적인 훈련에 있어서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기회를 제공했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두 번째 교육의 장이 시작되어야만 했다. 고독은 종종 위대한 사람을 만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모세의 광야에서의 시간들은 그의 영혼을 단련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다했다. 그가 애굽의 대학에서 배운 과정은 그가 상류 가운데서 일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켰다. 광야의 대학에서 배운 과정은 그가 구원자가 될 노예 국가로 자신을 낮출수 있도록 자격을 갖추게 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성화되고 실패를 통해 겸손케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도구를 준비시키시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신다.

그분의 훈련 방법은 완벽하다. 온 세상을 위한 법을 제정하게 될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리든지 간에 광범위하고도 풍부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기를 연구해 보면, 보통 도덕적인 결단이 내려진 후에는 정해진 사역이 시작되기 전에 은둔의 기간 또는 때로는 거절당하는 기간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열 두 살 때에 그분이 소명받으신 것(눅 2:42)을 말씀하신 후 공생애가 시작되기까지는 거의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었다. 바울은 하나님과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고독한 가운데 수 년을 보냈다(갈 1:18).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질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훈련 기간 동안 연단 받으면서 안달을 하거나 지름길을 택하려고 애를 써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다.그것은 불가피하게도 막다른 골목인 것이 입증될 것이다.

광야 기간의 시험이 북경의 왕 밍따오(Wang Ming-tao)박사에게 왔다.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그가 만일 타협하지 않는다면 중공에서 투옥되어 고난을 받게 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기를 소원했었는데, 하나님의 부르심과 훈련으로 그것이 좌절됐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고 외국에 나가 훈련을 계속 받아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훈련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몇 달 후 하나님께서는 나를 집에 가두시고 마루를 쓸고 밥을 짓고 설거지하고 옷을 수선하는 등의 집안 허드렛 일을 하게 하셨다. 처음에 나는 불행을 느끼며 나를 이와 같이 대하시는 그분께 불평했었다. 그러나 조금 뒤에 나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비천한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삼 년이 지난 뒤나는 이런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나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야망뿐만 아니라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포부까지도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말단의 지위도 원치 않았다. 대신에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평생동안 비천한 가사 일만 돌보라고 하시더라도 기꺼이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의 모든 헛된 소망과 야심을 포기했다. 이 일들을 회상해 볼 때, 듣기에는 어렵지 않게 들리지만, 그 당시 그것은 많은 눈물과 투쟁과 어마어마한 희생의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이러한 호된 시련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문을 열어 주셨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사역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서, 나는 그 엄격한 훈련이 없었더라면 높은 명성에 대한 욕심과 대단한 직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사역이 내게 위험한 것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왕 밍따오 박사는 성경의 각 책에 대한 주석을 출판하기도 했다.

 

 


-소명

광야에 있으면서(출 3:1), 모세는 가장 깊은 교훈을 배웠다. 그때까지 그는 행동가였었지만 이 훈련 기간 동안 그는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 「무엇을 하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시골 생활이 어떤 이상한 현상에 의해 중단되게 된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된다. 모세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기이한 광경을 보려고 그 곳으로 가 보았다. 그가 다시 한 번 인생의 분수령에 서 있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한 채, 삶의 위기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 타지 않고 빛을 내는 떨기나무의 광경(출 3:2)은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다. 들어서 알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경험에 의한 지식이 된 것은 바로 이곳에서였다. “보잘 것 없었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잡아 채신“ 곳이 바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였다.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조용히 명상하는 가운데 보낸 세월들이 그를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시켜 온 것이었다. 불타는 떨기나무의 상징은 명백하다. 불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의 상징으로 자주 나타난다. 이 평범한 떨기 나무가 그것을 밝혀주는 불꽃으로 비상한 것이 되었다. 나무 자체는 좋지 않은 나무였지만, 하나님의 임재의 불에 변화되고 빛을 내어 아름답게 되었다.

모세는 그의 과거가 많은 특권을 가졌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평범한 떨기나무에 불과하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에게 어떤 위대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결과이어야 했다. 떨기나무가 주변의 많은 나무들과 다르게 된 것은 나무의 특성 때문이 아니었고 그 안에서 빛나는 불꽃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필수적인 자격이 신을 벗고 얼굴을 가리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우리 중 대부분이 신을 벗고 겸손히 예배하기보다는 우리의 신을 신은 채 바쁘게 활동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의식하여 얼굴을 가리우기보다는 세상의 주목을 받기 위해 얼굴을 드는 경향이 훨씬 더 많다. 이것들이 모세가 광야에서 배웠던 가장 중요한 교훈들이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불타오른

한 사람의 생애를 보며,

하나님의 능력을 느꼈노라.

연약한 흙으로 빚어진 인간 그릇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것을 보았노라.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나 큰 소리로 외쳤노라.

나의 아버지시여,

나에게 불타오르는 삶의 축복을 주시어

당신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옵소서.

 


모세는 그가 40년 동안 회피해 오던 부르심을 분명하게 들었다. 그가 그렇게 황급히 도망쳐 온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르셨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모세는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교훈을 너무나 철저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어려워했다. 이전에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던 애굽의 왕자가 일을 하기에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변명하는 대화를 깊이 다룬 내용이 뒤이어 나온다. 그는 위신(출3:11), 메시지(출 3:13), 권위(출 4:1), 웅변술(출 4:10), 특별한 순응력(출 4:13), 성공(출 5:23) 등이 부족했다. 이보다 더 감동을 주는 부적격의 이유를 열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의식에서 나온 이러한 주저는 매우 겸손하고 경건하게 들린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얻는 대신에, 하나님의 노를 샀다(출 4:14). 하나님의 종이 자신이 부적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책임을 회피할 때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노를 사게 된다. 안심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14)]과 자신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으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으로 모세는 모든 신령한 자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했다. 이전에, 그는 너무 성급하고 빨랐었다. 이제 그는 너무 느리고 주저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축복하시고자 하시는 그의 계획이 그의 종의 변덕과 기분에 방해받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종들은 기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움직이며 신속하게 순종해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나님의 대변자로 세우시고 연약한 아론을 임명하셨는데 아론이 후에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세 번째 사십 년-지도자와 입법자로서 광야에서

 

그의 시험의 기간은 끝이 났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해방자로 나타났다. 그가 최고의 업적을 이룬 것이 팔십 세가 넘어서였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한다. 스포트라이트가 젊은이들에게 비쳐질 때에,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결실과 중요한 사역이 아직도 미래에 남아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은 나이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이 되고 격려가 된다. 연륜과 숨겨진 훈련이 성숙한 판단과 다른 이들과 쉽사리 공감을 하게 되는 유익을 낳는다.

-지도력

지도자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만이 지도력을 구사할 때 치루어야 하는 대가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 모세에게는 백성들의 문제를 판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해석해 주는 힘든 일이 주어졌다.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섰는지라“(출 18:13).

이것은 그의 모든 신경을 소모하며 심지어는 그의 육체의 여력을 모두 짜내는 것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사람이 남을 구해 주면서 동시에 자신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언제나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지도력만큼 큰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은 없다.여자가 믿음으로 주님의 겉옷 가를 만졌을 때 주님의 능력이 그녀에게 미쳤다(마9:20).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와서 모세로 하여금 그러한 끊임없는 노동의 결과를 직면하게 해 주었다.

“그대가...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 18:18).

이드로의 충고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셨을 텐데 모세가 그 충고를 따랐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충고도 또한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라는 사실을 믿고, 그 충고에 따라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위임하고 그 일을 수행할 수있도록 그들을 훈련시키는 최고의 지도력을 구사한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뒤에는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종종 하나님께서 맡기셨다기보다는 사람에 의해 떠맡겨진 무거운 짐과 책임을 맡고 있어서, 결국은 몸과 신경이 그 압박을 견뎌낼 수 없게된다. 그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개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대로 되는 것을 허락하신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다면, 그들의 기독교신앙이 그 결과를 면제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지도력을 구사할 때 치루어야 하는 대가를 더 명백히 알고 있는 이드로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일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이것을 명하셨다면 그대가 할 수 있으리라“(출18:23/사역).

이것이 이드로의 확신이었다. 다른 이들이 우리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떠맡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심지어 그들이 우리보다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일을 양도해야만 한다. 이것은 완전주의자에게 어려운 시험이다. 모세는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나, 만일 그가 계속 했더라면 오래 가지 않아서 그는 단지 기억 속의 인물로 되었을지 모른다. 진정한 선교사들에게 시험이 되는 일 중에 하나가 기꺼이 책임을 본토의 그리스도인에게 양도하고, 그들이 시련과 실수를 통해 경험을 얻는 동안 도울 준비를 하고 곁에 지켜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책임을 발전시킬 때 우리 동료들은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훈련하고 사용하게 된다.

 


-시험들

모세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받았던 많은 시험들 중에서, 다섯 가지를 선택했다.

 

첫째, 타협에 대한 시험이었다.

그것은 허락을 받기 위해 조건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타협하여 우리의 기준을 낮추는 것을 허락할 때 그것은 언제나 후퇴를 가져오게 된다. 모세와 바로와의 논쟁은 타협으로 이끄는 점차적인 유혹에 대한 고전적인 본보기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그러나 애굽을 떠나지는 말라“(출 8:25).

이것이 왕의 첫 번째 제안이었다. 현대에도 이와 비슷한 제안이 있다.

“종교를 무시하지는 말라. 하지만 좁아져서 세상을 아주 끊어버릴 필요는 없다.“

다음에 그가 제한한 것은 “너희가 희생을 드리기 위해 애굽에서 나갈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출 8:28)는 것이었다.

 

둘째, 다음에는 육친의 정에 대한 시험이었다.

“너희 남정만 가고 여자와 어린 것들은 남겨 두라“(출 10:11).

“가야만 한다면 가라. 그러나 너무 지나쳐서 가족들로 하여금 너의 유행에 뒤떨어진 기준을 따르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세상적인 출세를 방해하지 말라.“

그의 마지막 시도는 욕심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출 10:24).

“너의 종교적인 확신이 너의 사업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

분명한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모세는 이 도전들을 간파했다. 양과 소떼들을 두고 떠난다면 그들은 빈털털이가 된 것이며, 하나님께 희생으로 드릴 것이 없게 된다. 그의 답변은 명쾌하고 단호했다.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나이다“(출 10:26).

 

셋째, 홍해에 이르렀을 때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시험에 부딪혔다.한편으로는 건널 수 없는 바알스본 지역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통과하기가 불가능한 모래 사막이 있었다. 그들 앞에는 건널 수 없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고, 뒤에는 무적의 바로 군대가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철저하게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택한 사람에게 보기 드문 경험은 아니다.

이 예기치 못했던, 좌절이 되는 경험으로 백성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출 14:11).

그들이 불평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는 그 날 놀라운 명령을 내리는데, 이것은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에게는 단지 환상처럼 보였다(출14:13). 두려워 할 모든 이유가 있는 때에 “두려워 말라“고 하였다.

“가만히 있을지니라.“

바로가 급하게 그들을 뒤따라 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모세는 불가능한 상황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합격하였고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그 성공이 영광스럽게 입증되었다. 그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그들은 하나님의 근원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자기에게로 밀착시켜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보여 주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중국에서 사역하면서 많은 불가능한 상황들에 직면했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하나님을 위해 착수하는 위대한 사역의 대부분에는 불가능한 단계, 어려운 단계, 성취되는 단계의 세 단계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넷째, 모세도 야심의 시험을 당했었다.

모세가 시내산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빠지자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가 그들을 향해 불타올랐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10).

이미 그들의 불신앙과 불평이 모세에게 쓰라린 시련인 것이 증명이 되었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전진을 위한 놀라운 기회를 제시하고 계셨다.

제안을 하신 분이 다름아닌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시험은 더욱 어려웠다. 모세의 답변에서 그의 사심이 없는 고귀한 성품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의 행복에 있었다. 대담하고 집요하게 하나님을 붙잡고 배교한 나라에 대한 심판을 돌리기 위해 중보 기도를 했다. 하나님의 “나대로 하게 하라“는 기도에 있어서 모세의 능력에 대한 대단한 칭찬이었다.

 

다섯째, 질투에 대한 시험이었다.

성이 난 여호수아가 말했다.

“엘닷과 메닷이 예언하더이다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민 11:28).

모세가 자기를 보좌하기 위해서 택했던 사람 중에 두 사람이 갑자기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하들은 그가 모세의 대권을 침해하고 그의 권위에 도전한 것에 대해 시기했다. 그러나 모세의 너그러운 성품에는 질투나 시기가 자리를 잡을 곳이 없었다. 그는 이 일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었다. 모세는 말한다.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과 교제를 갖고 있는 영적 지도자는 그의 위신이나 대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매우 온유한“ 모세는 사소한 사리 사욕의 편견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 시험들을 통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인 대단한 도덕적인 힘과 영적인 힘과 진실한 인간성을 입증했다.

 

비극과 승리

 

그가 신실하고 이타적으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는 어둡고 슬프게 끝이 났다. 그가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은 얼핏 생각할 때 가벼운 실패에 대해 너무 엄중한 형벌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건을 분석해 볼 때 그것은 그렇게 사소한 실패가 아닌 것이 나타난다.

그의 실패는 불신앙에서 나온 것이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민 20:12).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못 나타냈다. 그의 불신앙은 불순종을 가져와서 “그는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다“(시 106:33). 마음은 언제나 입술로 나타난다. 그의 행동은 자기 절제의 부족에서 온 결과였다.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며 두 번 치라“고 하시지 않고 “명하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행동은 그의 불신앙을 표현해 준다. 명백하고 분명한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들의 죄를 더 엄중하게 다루시는데, 특히 그들의 공적인 행동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될 때에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게 되리라는 사실에 몹시 실망한 모세는 하나님께 그 말씀을 돌이켜 주실 것을 세 번 간구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 3:25, 26)는 것이었다. 죄는 용서받았으나 죄에 대한 벌은 그대로 남았다.

다행스럽게도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끝은 영광스러운 결과가 되며 깊은 절망은 기쁜 운명으로 끝이 난다. 가나안의 변화 산상에서, 잠시 예수님의 권세와 영광이 드러났을 때,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엘리야였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모세였다. 그러면 그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했다“(눅 9:31).

그들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죄의 노예된 데서 해방시키셔서 구속받은 무리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거룩한 구속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받았다.

모세는 마음에 소원하던 것을 받았다.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오직 잠시 동안이었고 그는 장차 올 영광을 미리 맛보게 되었다.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으며, 그것도 다름아닌 영광의 주님과 함께 들어갔다.

전에는 밟아 보지도 못했던 산 위에서

영광에 둘러싸여

우리의 생명을 구해 주실 주님의 고난에 대해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아들과 더불어 이야기했네.

우리 모두의 경험에는 모세의 경험과 같은 의미가 없는가? 우리의 가장 큰 소망과 포부가 늘 이 세상에서 성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저건너에는 성취의 땅이 있다.항상 이 세상에서 온전한 상급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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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바라본 꾸란의 오류와 모순들

 
꾸란(Quran)은 이슬람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경전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을 알라가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계시라고 믿는다. 알라가 천사 ‘지브릴’(Gabriel)을 통해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23년 동안(A.D. 610-632) 한 구절 한 구절씩 계시해 준 내용이라는 것이다.

 

꾸란은 모두 114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무함마드가 처음 이슬람을 시작했던 메카(Mecca)에서 받은 계시(A.D. 610-622)와 메디나(Medina)로 이주한 이후에 받은 메디나 계시(A.D. 622-632)로 나뉜다. 꾸란에 사용된 언어는 아랍어다. 따라서 이슬람에서는 반드시 아랍어로 기록된 것만을 꾸란이라고 한다. 다른 언어로 된 꾸란은 아무리 완벽한 번역이라도 계시 언어인 아랍어가 아니기 때문에 ‘꾸란 해설서’라고 한다. 이러한 꾸란의 내용 가운데 기독교 입장에서 역사적인 오류와 성경이 변형된 내용들과 모순이 발견된다. 여기서 그 내용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역사적인 오류들

 

1) 파라오 궁전에 있던 하만: 꾸란에는 하만(Haman)이 모세가 있을 당시 파라오의 친구로서 이집트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때 파라오가 말하길 족장들이여 나 외에는 너희를 위한 어떤 신도 내가 아는 바 없나니 하만아 진흙으로 벽돌을 구워 내가 모세의 신을 볼 수 있도록 높은 궁전을 짓도록 하라 실로 나(파라오)는 그(모세)가 거짓말하는 자라 생각하니라”(꾸란 28:38) 모세와 하만이 함께 있는 모습은 꾸란의 다른 구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때 파라오가 말하였더라 하만이여! 내게 높은 궁전을 지어다오 내가 길과 방법을 얻고자 함이라”(꾸란 40:36) 그러나 성경에서 하만은 메데(Media)와 파사(Persia)의 아하수에로 왕의 대신이다(에 3:1-2). 꾸란은 그를 천 년이나 앞서 이집트의 파라오의 대신으로 만들어서, 출애굽의 이야기와 에스더의 이야기를 혼합시켰다.

 

2) 모세 때의 사마리아인들이 있었는가?: 꾸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 있을 때 사마리아인들의 제안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인이 그들에게 송아지 한 마리를 형상화하니 소의 울음소리 같더라 그리고 말하길 이것이 너희들의 신이며 모세의 신이었으나 그(모세)가 잊었도다”(꾸란 20:88)라며 두 번(꾸란 20:95)이나 모세와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송아지를 만든 것은 아론이다(출 34:1-6). 또한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때 존재하지 않았다.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침공(B.C. 722)을 받아서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이스라엘에 남아서 아시리아인(Assyria)들과의 통혼함으로써 생겨난 자손들이다. 즉 사마리아인들은 모세가 죽고 5-7세기 이후에나 이스라엘에 등장했다. 참고로 사마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다.

 

3) 메카에 대한 아부라하(Abraha)의 공격은 어떻게 중단되었나?: 무함마드가 태어난 A.D. 570년을 이슬람에서는 ‘코끼리의 해’라고 부른다. 아브라하(Abraha) 장군이 메카를 침공하여 카바를 파괴하려고 결단한 해이기도 하다. 이 내용은 6세기 초 예멘의 힘야르트 왕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자, 홍해 건너 아비시니아(Abyssinia, 현재 에티오피아) 기독교 왕국에서 아브라하(Abraha) 장군을 보내서 예멘을 정복한다. 그는 또한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메카를 침공했다가, 알라가 카바신전을 지키기 위하여 수천 마리의 새들로 하여금 그의 군대 머리 위에 구운 진흙으로 된 돌을 떨어뜨리게 해서 많은 군인들이 죽었다고 한다. 그 내용이 꾸란에 기록되어 있다. “그대 주님께서 코끼리의 무리를 어떻게 하셨는지 그 소식이 이르지 아니했느뇨? 그들의 음모를 파멸시켜 버리지 아니했는가? 알라는 그들에게 새 떼를 보내어 모레와 흙으로 된 돌멩이를 던지셨나니 그들을 다 갉아먹어 버린 마른 잎과도 같았더라”(꾸란 105:1-5) 그러나 역사적인 자료들에 따르면, 아브라하 군대는 천연두로 추정되는 전염병으로 인해 후퇴한 것이었다.

 

4) 무함마드 때에 있었던 알악사(Al-Aqsa) 모스크: 무함마드는 “밤하늘의 여행”(Night Journey)에서 지브릴 천사가 자신을 예루살렘에 있던 알악사(Al-Aqsa) 모스크로 데려갔고, 그곳을 본 후에 승천하여 칠층천을 방문하고 돌아 왔다고 한다 “그분(알라)의 종을 밤에 하람 모스크에서 알악사 모스크로 여행케 한 그분께 영광이 있으소서”(꾸란 17:1). 그러나 알악사 모스크는 무함마드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알악사 모스크는 십자군에 의해 교회로 처음 지어졌으며, A.D. 1187년 무슬림 지도자 살라딘(Saladin, 1137-1193)이 예루살렘 수복 후 모스크로 바꾼 건물이었다. 또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라는 황금돔 모스크는 A.D. 691년이 되어서야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A.D. 632년 무함마드가 죽고 나서 59년 후다.

/유해석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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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지도자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쟈스민(튀니지국화) 시민 혁명에 의해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1월 14일에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고, 1981년부터 장기집권을 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분노하는 군중들에 의해 하야를 했다(2.11). 쿠데타(1969)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은 권좌를 수호하기 위해 다국적군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지키고 보호해야 할 국민의 인권을 짓밟고, 고귀한 생명을 학살하고 있다. 그는 권력에 중독이 된 사람이다. 중독은 나쁜 습관을 자신의 마음대로 멈출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독자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기쁨보다 외부에서 오는 거짓된 괘락을 추구하게 된다. 카다피는 에고라는 거짓된 자아를 마음의 권좌에서 몰아내고 진정한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때에 평화를 추구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이웃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쟈스민의 영향을 받은 예멘과 시리아의 시위대는 독재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형제와 이웃의 주검을 보면서도 겁 없이 중동의 시민 혁명에 불을 붙이고 있다. 오랜 독재 정치로 인해 파생된 부정부패, 고물가 그리고 고실업과 같은 민생 문제들이 시민의 분노로 표출된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정부와 대화를 원했다. 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는 대화가 있는 사회다. 대화가 있는 사회는 개방된 사회이며,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사회다. 대화가 있는 사회는 작은 불빛을 모아 큰 불빛을 만들어 낸다. 대화는 분산되어 있는 힘과 지혜를 모으고 그 사회를 윤택하게 만드는 활력소가 된다. 그런 사회에서 지배자가 지도자로 변하게 된다. 지배자와 지도자는 엄연히 다르다. 지배자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모질게 짓밟지만, 지도자는 추종하는 자를 인정하고, 세워주며, 함께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도모하는 자다.

 

고대 이집트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란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지배자였다.

그는 이집트의 모든 학술을 다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한(행7:22) 사람이 되었고, 차기 왕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가 나이 40이 되었을 때에 자기 민족을 돌아볼 마음이 있어서 히브리 민족이 노역을 하는 현장에 나갔다가

자기 동족을 때리는 이집트인을 처 죽이고 모래에 숨겼다(출2:12).

모세가 사람을 처 죽인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자만과 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중에 지배자(왕자)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적들이 모세를 죽이려고 했고, 그는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되었다.

 

누가 작은 사건(왕자의살인)을 확대 해석하였으며, 모세로 하여금 왕궁에 머물 수 없게 만들었는가?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훈련시키고 다듬기 위해 광야로 몰아가신 것이다.

모세는 40년 동안 장인의 양떼를 치면서 이집트에서 학습된 지배자의 자아를 철저하게 내려놓았다.

그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고, 지도자의 소명을 받았다.

모세의 실패가 하나님의 성공(언약성취)이며, 광야의 고통이 지도자의 기회가 된 것이다.

 

미국의 2차 영적 대 각성을 주도했던 디엘 무디(D.L.Moody) 목사님은

그의 설교에서 모세의 전반40년 생활(왕궁)을 I am somebody, 중반40년 생활(광야)을 I am nobody,

그리고 후반40년 생활(지도자)을 I am God's body 로 표현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는 거짓된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을 받는 자다.

표증학적인 측면에서, 모세의 실체(신18:15)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동질성을 가진 대화적 존재로 오셨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지도자의 삶을 사셨다.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 40일 금식기도를 하며(신9:25),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그 백성의 용서를 구했듯이(출32:32),

예수님은 사역을 위해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고(마4:2),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치유의 사역을 하시다가

마지막에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의 대속을 이루셨다.

그리고 3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평화의 왕, 만왕의 왕이 되셨다.

믿는 자에게 용서와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중동 아프리카의 지배자들이 독재자의 옷을 벗고, 국민과 대화하는 지도자로 거듭나서 시위대의 분노를 다독이고,

민주사회의 초석을 놓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중동 아프리카인의 염원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출처 : 조완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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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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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28 : 10 - 22

제 목 : 2017년에 드릴 서원 기도

찬 양 : 552, 338, 368, 384, 539, 550.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은혜를 사모하여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우리들은 2017년의 한 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참으로 우리들을 우울하게 하는 일들이 많았던 한해였습니다. 2017년의 새해가 밝았지만 뭐 그리 시원하게 느껴질 만한 소식은 없고 오히려 우리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새해에도 경제가 회복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정치는 날이 갈수록 더욱 혼탁해 지고 있습니다.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금년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대기권 오염으로 인한 엘니뇨현상으로 인하여 금년에는 더 많은 기상 이변과 재난이 겹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기상 이변으로 인하여 남극과 북극의 빙산들이 녹아서 남태평양의 나라들은 바닷물의 해수면이 올라가 해마다 수만 명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잃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울한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재기의 몸부림을 치면서 새롭게 출발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역력히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한 국가경제와 날마다 올라가기만 하는 온갖 물가고, 그리고 농사는 점점 어려워져만 가는 농촌 문제들이 웬지 모르게 우리들의 신앙과 믿음까지도 위축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때일수록 우리들은 더욱 신앙과 믿음으로 무장을 하여서 어떤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굳건한 반석 위에 설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야곱이 부친 이삭을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챈 후 형 에서의 진노를 피하여 하란 땅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도중 루스 광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지시에 따라서 에서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눈이 어두운 부친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늦게 이 사실을 안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리브가는 재빨리 야곱을 불러서 외삼촌의 집으로 피신을 시킵니다. 그러나 외삼촌이 사는 하란 땅은 야곱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는 길입니다. 게다가 하란 땅은 하루 이틀에 갈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이와 같은 길을 가던 야곱은 루스 광야에서 하룻밤을 노숙(露宿)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밤은 참으로 춥고 외롭고 두려운 밤입니다. 돌을 베고 누워서 하늘을 보니 캄캄한 밤하늘에는 마치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 별빛만이 반짝이고 사방은 고요한데 이따금씩 먹이를 찾는 야행성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뜨리고 들려옵니다. 추위와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잠을 청해 보지만 쉽사리 잠이 오질 않습니다.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 납니다. 이 시간 쯤 모든 가족들은 따뜻한 잠자리에서 잠을 잘 텐데 왜 자신만이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지 후회도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형편이 이 야곱의 형편과 같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평안과 안식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데 자신만이 아무도 없는 쓸쓸한 광야에서 추위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2017년을, 아니 우리의 일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갈 길이 보이지 않고 막막하기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들이여!

루스 광야의 야곱을 찾아와 만나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을 찾아와 만나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추위에 떨던 몸이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할렐루야!!

자신이 누운 바로 앞에서 하늘 보좌까지 사닥다리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천군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꼭대기 하늘 보좌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서서 말씀을 하시는 모습도 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에게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본문 13-14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본문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즉시 일어나 베고 누웠던 돌을 세워 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전 이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야곱이 루스 광야에서 돌단을 쌓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 기도를 통하여 2017년의 한 해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서 금년 한해를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승리의 날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먼저 야곱의 형편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나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야곱은 지금까지 속이고 빼앗는 간교한 생활을 하여왔습니다. 

야곱이 아비 집을 떠나 하란으로 갈 때의 나이가 77세였습니다. 야곱은 그 나이가 되도록 항상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여 왔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나서 불과 1분 차이 때문에 장자가 되지 못하고 장자의 기업을 얻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하여 항상 불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기진맥진하여 돌아오는 형 에서를 속이고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권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부친 이삭이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형 에서를 불러서 맛있는 요리를 부탁하고 그 요리를 먹은 후에 축복하리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 리브가와 결탁을 하여 부친을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챈 것입니다. 참으로 간교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2) 야곱은 지금 쫓기고 있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아비의 마지막 축복까지 빼앗긴 것을 알고 그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지금 어쩔 수 없이 쫓기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야곱이 잠들려고 누워있는 루스 광야는 참으로 험한 광야입니다. 육식성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울부짖고 있으며 땅에는 전갈과 같은 독충들이 있습니다. 죽은 시체를 찾아 맴도는 독수리들도 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외로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렇게 밤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루스 광야에서 돌을 베고 누워서 떨고 있는 야곱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여러 가지의 걱정과 근심에 떨고 있습니다. 금년 한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날로 어려워 가는 농촌 사정과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는 물가고와 애써 농사를 지어도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만년 적자 농사를 지어야 하는 실정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진정한 우리의 위로가 되시고 소망이 되어 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피폐하고 병들어 버리고 외국 농산물들이 물밀 듯 들어와 경쟁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물가는 매년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데 쌀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농가도 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하여 경쟁력 있고 소망이 있는 농가만 지원을 해 주고 그렇지 못한 농가는 지원도 해 주지 않고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농촌의 인구는 지금보다 반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진정으로 우리의 위로가 되시며 소망이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인줄로 믿습니다. 예수 안에 참 평화가 있고, 예수 안에 소망이 있고, 예수 안에 평안이 있고, 예수 안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2. 이와 같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고난당할 때에 내게 가장 가까이 찾아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멘>

 

6:50절 말씀에는 제자들이 배를 저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서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실 때에 제자들이 이를 보고 유령이라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시고 바람과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 40년의 세월 끝에 요단강 건너편까지 왔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가시고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5-6)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또 이사야 41:10절 말씀에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후에 3일 만에 부활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숨어 있는 골방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신,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오르지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의 참된 평안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이 예수 안에서 참된 평안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찬송가 412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 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3.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은 즉시 하나님께 돌단을 쌓고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은 즉시 일어나 베고 누웠던 돌을 세워 단을 쌓고 기름 한 병을 부어 드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야곱의 드린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1) 야곱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16-17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야곱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자기만이 홀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낙심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외로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광야에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야곱은 새 힘이 솟았습니다.

야곱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졸지도 않으시며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21:3-6)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곱은 너무나 감사하여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고 누웠던 돌을 세우고 그 돌에 기름을 붓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8:16-19)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다 같이 찬송가 3384절을 부르겠습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2) 야곱은 서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드린 서원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야곱은 자신의 가는 길에서 지켜 주시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본문 20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본문 21절 말씀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하나님의 전을 세울 것을 서원 하였습니다.

본문 21-22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것을 약속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22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와 같은 야곱의 기도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도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야곱 때에는 하나님의 성전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그 누구도 십일조를 드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조부 되는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돌아와 노획한 물건 중에서 십일조를 구분하여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드렸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때에 십일조 드릴 것을 약속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17년이 시작되었습니다. 152주일 중에 오늘이 첫 주일입니다. 첫 주일을 맞이한 우리들은 야곱과 같이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믿음과 신앙의 잠재력이 있는 야곱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믿음 있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믿음을 통하여 역사를 일으키시며,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축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4. 그러면 오늘의 우리들은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마치 야곱과 같이 사람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고 배신하고 불순종하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쫓김을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광야와도 같이 거칠고 황량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주시고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2) 광야와 같은 험한 이 세상에서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인생, 그리고 지나간 2016년은 루스 광야에 영원히 묻어버리고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과 믿음이 바로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이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하나님의 집에서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아 멘>

  

(3) 그리고 야곱과 같이 돌단을 쌓아야 합니다.

 

 

돌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단에 불을 내리셨고 제물 위에 불로 응답을 하셨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단 쌓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며 예배를 소홀히 하게 되면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7년도에는 우리 모두 다 같이 제단 쌓는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를 폐하는 어떤 이들의 악한 습관에 유혹되지 말고(10:25) 항상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는(12:11)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4) 야곱과 같이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우리가 감사를 드리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을 하기로 말하면 모든 만사가 불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은혜 안에서 지켜주신 것 모두가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무슨 서원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 “하나님의 전이 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2012년에는 우리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의 전이 되도록 힘쓰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생각과 악한 습관 때문에 더럽혀진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서 늘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게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도록 서원의 기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야곱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것을 하나님께 서원하여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또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어도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도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사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서원하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되 반드시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신다고 하셨습니다.

(3:11-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야곱은 이와 같이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서원 기도를 마치고 다시 길을 갑니다. 야곱은 이제는 자신이 생깁니다. 담대해 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 예배를 드린 후에는 담대하십시오. 그리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으십시오.

야곱은 그 후 하란 땅의 외삼촌 라반을 찾아서 그의 집에서 2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하나님은 항상 야곱과 동행하여 주셨고,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20년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큰 무리를 이끌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32:10)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2017년의 첫 날, 첫 주일을 맞이하여 이 시간 우리가 앞으로 1년 동안을 어떻게 살아갈 것과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을 하나님께 서원하고 약속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심과 같이 여러분을 축복하실 줄로 분명히 믿습니다.<아 멘>

모든 사람들이 금년에는 더욱 살기가 어려운 해가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상 18장에 보면 이스라엘 나라에 3년 반 동안 가뭄과 기근이 들었어도 물 두멍에 물이 마르지 않고, 밀가루 항아리에 밀가루가 가득히 차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를 공궤 하여 축복을 받은 사르밧의 과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하다면 무엇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환경과 여건이 좋은 때에 신앙생활 잘하는 것보다 모든 환경과 여건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의 믿음이 더욱 값진 것입니다.

이제 2017년도를 맞이하여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야곱의 길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이 분명코 여러분의 앞날을 형통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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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받으려면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라,


지금부터 100여년전 1903년 미국 필라델피아주 웨스터에서

어너 자비스라는 어머니가 주일학교 교사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유난히도 아이들을 사랑했던 그 분이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로 떠난 후 그의 딸 안나가 어머님을 그리며 묘소에 어머니가 좋아 하시던 케네이션을 심었습니다.

어머님의 추모식 모임에는 어머님을 그리며 흰케네이션을 가슴에 달랐습니다.

그 이야기가 계속 펴져서 마침네 1924년 미국에서 5월 2째 주를 어머니 날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불은 카네이션을 어머님이 돌아가신 분은 흰카네이션을 달고 기념행사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정해서 기념했왔습니다.

저도 어릴 때 흰색과 불은 색 카네이션을 만들어서 달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1974년 왜 어머니날만 있느냐 해서 어버이 날로 이름을 바꾸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준 돌 판에 새겨준 10계명이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10계명 중 1-4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계명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하는 것을 종합을 하면 하나님을 사랑입니다.

5-10계명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계명인데 이것도 종합하면 서로사랑 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처음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곧 하나님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최우선순위가 바로 부모님 공경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자도 불효가 대죄로 3천개의 형벌 중에 제일 큰 죄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만

하나님은 더 강조를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서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인간 사회에서 최고를 옳은 일이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첫 번째 계명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버이날 자녀가 해 드리고 싶은 것 1위는 선물 2위는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다

3위 용돈을 좀 많이 드리고 싶다 라고 대답을 했는데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받고 싶은 선물 1위가 자식들이 좀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

2위는 마음 좀 편했으면 좋겠다.

3위가 용돈 좀 많이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잠언 30: 17절에는 아비를 조롱하고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 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막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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