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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사] 초기 교회의 역사

 

 


초기 교회의 역사

 

1). 로마에서의 바울과 베드로의 발자취

오순절 이후로 교회들이 세워지고 복음이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일대에서 로마의 전 영토로 신속하게 확산되었다. 예루살렘의 큰 박해로 인해 제자들이 각지로 흩어졌는데, 먼저는 시리아의 안디옥에 이르렀고 이어서 시리아, 길리기아, 아시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등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이탈리아의 로마에까지 이르렀다. 사도행전 18장은 아굴라와 부리스길라가 원래는 로마에 거했는데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의 박해로 인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거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일찍이 두 번 로마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62년에서 64년 사이에 유태인의 고소로 인한 것이었다(행 28:17-20). 그 기간에 그는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그리고 빌레몬서를 썼다. 자신을 위한 변호에서 승리를 거두고 석방된 뒤 바울은 다시 에베소와 마케도니아를 방문하였고(딤 전 1:3) 그곳에서 디모데전서를 썼다. 바울은 67년 네로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대대적으로 박해할 때 두 번째로 투옥되었고, 그곳에서 순교하였다. 순교하기 전에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썼다. 교회사에 있어서 바울은 진리 방면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가 쓴 열네 서신은 하나님의 뜻을 매우 안전하게 계시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는 그의 사역은 요한의 보수하는 사역과 베드로의 사람을 얻는 사역과 함께 신약의 3대 사역이다. 진리를 변호하고 신성한 계시를 전파하는 사역에 있어서 바울의 일생은 향기로운 전제와 같이 후세 사람들의 믿음의 일에 부어졌다. 그리하여 주님의 일이 더욱 힘차게 전진하게 되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도 일찍이 로마를 방문하였고 또한 바울과 거의 동일한 시기인 네로의 제위기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클레멘트, 오리게네스(Origenes), 이그나티우스 등과 같은 많은 초기의 교부들은 그들의 서신 가운데에서 이 일을 언급하고 있다.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는 더욱 분명하게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클라우디우스가 통치할 때 하나님의 인자와 은혜로운 안배로 위대하고도 능력 있는 사도 베드로가 로마 성으로 가도록 인도 받았고, 그는 그곳에서 용감하게 앞장서서 이 악한 무리들(사기꾼 시몬을 가리킴)을 대항하였다. 베드로는 신성한 군복으로 무장한 하나님의 존귀한 장군과 같았고 당시 동방에서 서방으로 놀라운 계시의 빛을 가득 가지고 온 사람이었다. 그는 빛과 유익한 교훈을 전했고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하였다."

 

 


2). 초기 교회의 신앙과 실행

초기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통 안에 견고히 머물며 지속적으로 이집 저집에서 떡을 떼며 기도하였다. 박해로 인해 믿는 이들은 대부분 소규모로 집에서 집회를 하였다. 바울이 교회에 쓴 서신에서 우리는 이미 "경륜', "분배" 등의 단어와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성화(聖化) 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후반기의 교부들의 저서에서 이러한 진리들에 언급이 점차 적어졌으며  심지어 사람들에게 잊히게 되었다.   초기 교회가 보편적으로 준행한 "12사도 유훈(遺訓)"에는 단지 생명을 얻는 길과 사망에 이르는 길, 그리고 침례, 금식, 만찬 등의 실행 상의 규례만을 기록하고 있고, 곳곳에서 그 당시 경건에 대한 가르침과 도덕을 중시한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12사도 유훈"의 제14장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주일에 여러분이 집회에서 떡을 떼고 축사할 때 여러분의 죄를 자백해야만 그 후에 여러분의 제물이 정결케 될 수 있다. 무릇 동반자와 다툰 자는 그들이 다시 화목하게 될 때까지 다른 이들과 집회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그러나 침례, 금식, 떡을 떼는 것등의 실행은 세부적인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의문과 형식에 치우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3).초기 교회의 내부적인 어려움

외부의 압력 이외에도 초기 교회는 이단의 해를 입었고 논쟁으로 인한 분열의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 두 방면은 교회의 생명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반드시 과거의 이단을 인식함으로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동시에 과거에 있었던 분열이 가져온 피해를 경계로 삼아 하나의 간증을 유지하는데 노력을 다해야 한다. 교회가 가장 초기에 직면한 이단은 에비오니즘(Ebionism)이다. "에비오니"의 원문의 뜻은 '빈궁'이라는 뜻이다. 교부 터틀리안(Tertullian)의 해석에 따르면 그들이 에비오니파로 불린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너무 빈궁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에비오니파에 있어서 주된 것은 유태인의 신앙이었는데, 그들은 기독교를 유태화 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였는데, 비록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였으나 그분이 육체가 되신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수복과 성결함으로 인해 그분을 아들로 인정하셨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이 단지 신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지 실제적으로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도세티즘(Docetism)은 에비오니파와 거의 동시에 출현하였다. 이 파는 물질세계가 악하다고 믿었기에 성결한 본체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물질에 속한 육체를 취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육신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가졌다. 그들은 성육신이 진정으로 발생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육신은 단지 하나의 환영(幻影)으로 사람들에게 일종의 환각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그분이 실제적으로 물질세계 가운데 출현한 것과 세상 사람들이 본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환영에 불과하며,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고통받은 이는 실제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단지 환영일 뿐이라고 여겼다. 사도 요한이 쓴 복음서와 서신서에서도 항상 이들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이들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이상의 두 이단보다 더 체계적이고 깊게 영향을 미친 것은 그노시스주의(Gnosticism, 영지주의)이다. 그노시스주의는 기본적으로 동방의 이원론과 신비 신앙 및 헬라 철학의 혼합체이며, 후에 다시 기독교의 외투를 걸친 것이다. 바울 시대에 고린도와 골로새 교회에는 이미 그노시스파가 출현하였다. 그노시스파는 주후 80년에서 150년 사이에 형성되었으며 마지막에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한 계파가 되었다.

교회가 그노시스파의 해를 처리하는 데 분주할 때 또 다른 극단주의가 출현하였다. 이 극단주의는 몬타누스주의(Montanism)이다. 몬타누스주의는 140년 경에 일어났는데, 성령의 능력과 선지자의 강론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예수님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끊임없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지자를 통해 인류에게 계시하고 있다고 여겼다. 성령의 실재성을 특별히 중시하였기에 그들은 스스로 완전한 성결의 생활을 살아야 된다고 요구하였는데, 그것은 거의 고행에 가까웠다. 그들은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항상 금식하였으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열렬히 기다렸고 또한 그들이 살아 있을 때 주님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단의 출현에 대응하기 위하여 교부들은 기독교의 기본 신앙을 체계적으로 표방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세하게 해석하였다. 이처럼 교회의 정통 신학은 점진적으로 형성되었고 성경의 정경(正經)도 동시에 확립되었다. 약 1세기의 발전을 거친 뒤 정통 신학은 주후 325년에 이전에 없었던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하였는데, 이는 바로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출현이었다. 그것은 가장 격렬한 신학 논쟁 가운데로 빠지게 하였고, 신학도 이로 인해 이성화되고 분석화되었으며 논쟁으로 가득한 색채를 띠게 되었다. 당시 교회는 이로 인해 분열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논쟁을 거치면서 그 정기는 크게 손상받았다. 아리우스(Arius, 256년~336년)는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는데, 그는 그리스도가 자존하시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성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전에는 근본적으로 존재하시지 않았다고 믿었다. 이러므로 성자와 성부의 본질은 차이가 있기에 신성한 삼일성의 진리는 이로 인해 동요되었다. 이 이단을 처리하기 위하여 교회는 이전에 없었던 큰 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회의는 325년에 니케아에서 거행되었다. 당시 적지 않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리우스를 지지하였으나, 결과는 정통 신앙이 승리를 거두었고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은 그 본질이 같고 동등하며 동일한 영광을 갖고 있다는 진리도 확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파가 가라앉자, 또 다른 풍파가 일어났다. 논쟁의 초점은 삼일성의 위격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로 이전되었다. 먼저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s)였는데, 이들은 *경교(景敎)의 선구자였다. 네스토리우스파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분별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누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인성을 단지 신성을 담는 용기로만 여기는 데 있었다. 교회는 회의에서 네스토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그들의 신성과 인성이 나누어질 수 없으며 또한 이 둘이 연합한 것임을 믿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리스도는 참된 하나님이시자 동시에 참된 사람이시다. 네스토리우스파가 불러일으킨 논쟁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에 대한 각종 논쟁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에는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신 후, 그분이 한 분이신가 두 분이신가, 단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사람이신가, 하나님과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가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이러한 논쟁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교회는 많은 정력과 시간을 쏟아부었고 수많은 회의를 소집하였으나 논쟁할수록 더 복잡해졌다. 451년에 교회는 칼케돈(Chalcedon)에서 회의를 소집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논쟁을 철저하게 해결하였다. 회의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절대적으로 진실된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는 오직 한 인격이며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성과 사람의 본성은 서로 함께 연합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 후에 정통 신앙은 더욱 분명한 표현을 얻게 되었고 또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져 논쟁이 비로소 끝나게 되었다.

4).초기 교회의 유명한 교부와 저서

이 시기의 교부들은 사도 후반기와 니케아 전반기의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사도 후반기의 비교적 유명한 교부들은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서머나의 폴리캅(Polycarp), 로마의 헤르마스(Hermas) 그리고 순교자 저스틴(Justin)을 들 수 있다. 니케아 전반기의 유명한 교부들은 이레니우스(Iranaeus), 터툴리안(Turtulian),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그리고 오리게네스(Origenes)을 들 수 있다. 로마의 클레멘트는 제3대 로마 감독을 역임하였는데, 일찍이 고린도인들에게 서신을 보내 그들 가운데에서 장로를 내쫓고 당파를 결성한 혼란을 책망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클레멘트 서신"이라고 칭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순교하러 가는 길에 일곱 서신을 써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높였고 믿는 이들이 자신들의 감독과 장로를 존중해 주기를 희망했다. 폴리캅은 일찍이 사도 요한의 제자였는데, 사도 시대와 니케아 전반기 사이에 있는 작가들 간의 중요한 교량이 되었다. 폴리캅은 견고하게 기독교를 보호한 사람으로 항상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당시 그노시스파의 이단인 마르키온(Marcion)과 논쟁을 벌였고,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86세의 고령으로 순교하였다. 로마의 헤르마스는 계시록의 형식으로 <헤르마스의 목자(The Shepherd of Hermas)>를 썼는데, 그 내용은 이상과 교훈 그리고 비유를 포함하면서 죄의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외에도 <바나바 서신(Catholic Epistle)>,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도들 서신>등이 널리 읽혔다. 폴리캅의 제자인 이레니우스는 로마 천주교회의 위대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이단에 반대하며(Against Heresies)>인데, 그는 여기에서 그노시스주의의 교훈에 반박하였으며 하나님의 삼일성에 관한 선구자가 되었다. 터툴리안은 북아프리카의 교부로 교리를 보호하는 수많은 작품들을 썼으며, 당시의 <아버지 하나님의 고난받음>이라는 이단에 반박하는유명한 <프락세아스에 반박하며(Against Praxeas)>라는 책은 삼일 하나님의 과점을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의 <인간론(De Anima)>은 성경 심리학에 관한 첫 번째 저서였다. 오리게네스는 교회 역사에 있어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신학자로서 그의 성경관과 삼일 하나님의 관점은 그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다. 오리게네스의 영혼론은 신비주의와 금욕주의의 영향을 받아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에, 543년 콘스탄티노풀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한국복음서원 교회사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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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역사 1장 장로회의 기원과 교회의 조직

Chapter 1

1장 장로회의 기원과 교회의 조직

장로교회란 무엇을 말하는가? 장로교회란 장로회 정치제도하에 유형 교회의 통일성을 이루는 교회 형태를 말한다. 이 제도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칼빈이나 낙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실은 구약성경에 이미 나타나 있는 제도였다.

1. 성경에 나타난 장로회의 기원

A. 구약에서의 사용: 구약에서는 장로라는 말이 백번 이상 사용되었다. 그 중 모세 오경에만 절반 이상이 사용되었는데 그 어의들을 보면 두 단어로 집약된다.

 

) 손윗사람, 형이란 뜻으로 원래는 큰, 위대한, 대단한, 등의 의미를 지닌 말로서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10:21, 27:42, 삼상18:17, 왕상2:22, 16:64, 61, 23:4

 

)연장자, 장로, 수염 있는 등의 뜻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말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한정적인 형용사로 쓰일 때 주로 젊은 자와 구별되는 늙은 사람을 지칭 할 때 사용되었다. (19:32, cf. 렘애 5:12). 이렇게 성경은 노인을 존중하며, 백발은 노인의 영화요 자녀들은 그의 면류관이라고 하였다(20:29, 17:6).

 

그러나 자켄이 실명사로 쓰일 때는 전문적인 용어로서 그 문맥에 따라 한 사람의 장로를 가리키기도 하며 또 장로회라는 지역통치기구를 지칭하기도 한다. 50:7, 시편 105:22, 삼하1 2:17, 22:4,7, 9:11 등에 나타난다.

 

모세 오경에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는 것을 목격한 증인들이었고(2:16,18:12,17:5-6). 광야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70인의 장로들을 데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일이 있는데(24:1-9) 이러한 현상들은 장로회란 바로 통치기구의 성격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증거인 것이다.

 

장로들은 바벨론 포로기간 중에서도 계속하여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29:1, 8:1, 14:1, 20:1). 또 포로 이후에도 장로의 권한은 여전히 존재하였다(10:8, 14). 그들의 역할은 회당에서도 존재하였고 신약시대 까지도 존재하고 있었다. 구약에서의 장로회제도는 민의(民意)를 수렴하는 의회제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원래의 장로직은 구약에서 종교적인 제사제도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고시행정과 관계있는 것으로 언제나 민의(民意)를 표현하는 자치 (또는 代議)기구의 대의원의 역할을 하였다. 이스라엘에서의 장로직의 존재와 그 영향은 자치성의 원리와 습성을 배양시켰던 것이다.

   

B. 신약에서는 70인역이 번역되면서 구약의 자켄을 πρεσβύτερος 번역하여 사용하였는데 그 의미는 손윗사람, 공직에 있는 사람, 영광을 얻을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신약에서 장로라는 말은 주로 교회와 연관되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교회직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여기서 장로 혹은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라는 말이 파생된 것이다. 장로의 기능을 의미하는 말은 έπίσκοπος라는 말로 이것은 감독하다또는 치리한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에서는 감독교회 (Episcopalian Church)라는 말이 나왔다.

 

2. 초대 교회의 시작과 조직

 

초기 기독교의 시작은 이미 앞장에서 살펴 본 것처럼 유대교회 배경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부터 유대인들이 대망하여 온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로부터 시작된 교회는 오순절 사건을 통하여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 우리는 예수의 사역의 시작과 더불어 기독교가 이방에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1)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관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초기 기독교의 출현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유대교로부터 기독교의 분리이다. 예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바른 해석과 아울러 불순종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였다. 무엇보다도 율법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라야 하며 또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초기 예수의 추종자들은 예수의 이러한 새로운 가르침을 유대교적인 틀 안에서 어디까지 수용해야 되는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였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의 교훈이 가장 훌륭한 유대교회의 진수와 다른 것이 아닌 윤리적 근본원리들로 받아들였고 또 예수 자신도 율법을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려 왔다고 선언하심으로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인 이 예수를 다른 유대인들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단순히 순교자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순종을 보이는 자에게 충만한 생명을 주시는 구속의 죽음이었고, 이 죽음을 통하여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해 주는 길을 연 것이다. 또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며 무릇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함을 전하는 것이다(cf. 3:16, 11:25-26). 그러므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종교적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가 다 하나인 것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기독교인들 사이의 다툼은 오순절 사건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오순절 사건은 해리보더가 그의 책 초대교회사에서 지적하고 있는 대로: 신약의 교회는 성전과 회당에서 모였던 엄밀한 이스라엘의 성전중심에서 벗어나 회중 중심의 색채를 띠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국수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국제적이고 우주적이어야 함을 보여주었으며, 설교자가 제사장을 대신하였고 강단은 제단을 대신하여 선포의 사역을 강하게 부각시킨 것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핍박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교회에 가해진 핍박이 예루살렘에 모인 많은 신자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이것이 복음의 확장을 꾀하게 된 것이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베드로는 욥바와 가이사랴지역에까지 갔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여전히 유대의식을 버리지 못하였고 또 이방교회를 자기들 수하에 두려고 했다.

 

이러한 예루살렘 교회의 태도는 결국 팔레스타인 안에서 기독교회의 쇠퇴를 가져왔다. 유대의식을 과감하게 떨쳐버리지 못한 그들의 모습은 복음의 능력을 제한시켰고 교회의 힘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단호히 선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6년경에 벌어진 독립운동과 같은 유대인들의 반란은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를 크게 갈라놓은 것이 되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기독교인들은 민족주의자들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게 되었고 따라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독립을 위한 반란에 가담해 주지 않은 기독교인들을 유대인 국수주의자들은 저주하였으며, 결국 이것이 기독교회와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갈라서게 된 원인이 되었다.

 

2) 초대 교회의 생활과 조직

 

오순절 사건 이후 초대교회의 생활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도들의 지도 하에 성장해갔다. 이 때는 어떤 특별한 조직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매일 늘어감에 따라 조직의 필요성이 교회 안에 부각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7명의 대표선출이다. 이들은 집사들이 아니었다. 후에 바울이 목회서신에서 교회 직분자들에 대한 자격을 논할 때 언급한 부분이 7명의 평신도 대표들이 한 역할과 유사한 것 때문에 대부분 집사라고 부르지만 스데반이나 빌립과 같은 사람은 집사로서 역할을 한 것보다 도리어 전도자로서 사역을 감당한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외적 성장에 따라 사도들의 명령과 인준에 의한 직분자 선출 문제는 오늘날 사도들이 없는 현실 교회에서는 사도들이 남겨놓은 신약 성경을 통해서 직분자 세우는 근거를 가져야 하며 반드시 주님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 선출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초창기의 예루살렘 교회에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움직여져 특별한 조직의 형태는 갖추지 않았으며 오직 7명의 대리인들을 선출하여 사도들이 감당해왔던 구제의 임무를 맡겼을 뿐이다.

 

그러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하는 사명을 망각하였기에 예루살렘교회에 일어난 핍박이 그들을 사방에 흩어지게 만들었고, 각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지교회에 필요한 직분자들을 임명하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 사도가 각 서신에서 언급한 직분자들을 고찰하면서 성경에 명시된 초대교회의 조직과 직분자들의 기능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3) 교회의 직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과 관련하여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교회의 직분(Office)이다. 직분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직임에 해당되는 기능(Function)’ 문제가 자연스럽게 대두된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여 유기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기능적인 차원을 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기능적인 측면에서 신약성경에 의거한 교회의 직분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개혁교회가 언급해온 직분은 크게 목사, 장로, 집사 세 가지이다. 사도는 초대교회의 특별직으로 보로 초대교회 이후로 교회의 항존직(桓存職)1)에 해당하는 장로와 집사직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1)장 로(presbyter or elder)

 

초대 교회에서의 장로직은 사도행전 11:30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예루살렘교회 형제들의 기근 문제로 말미암아 구호품을 전달하고자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에게 보냈다. 또 사도행전 14:23절 이하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에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 장로들을 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의 기록을 보면 예루살렘교회에서부터 장로직은 교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해당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장로직이 어떻게 하여 생기게 되었는가? 신약성경은 그 시작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처음부터 교회의 대표격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유대인 회당제도에 근거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유대인의 장로들은 회당에서 주로 행정적인 업무에 종사하였다. 따라서 신약교회가 설립된 이후 사도들의 설교사역을 통해서 제사장들을 비롯하여 허다한 무리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었는데(6:7) 그 중에는 회당에서 행정적인 업무들을 맡아보았던 장로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명칭이 신약에서 공직에 있는 자 손윗사람, 존귀한자의 뜻을 지닌 πρεσβύτερος이고 이들의 기능을 의미하는 말은 έπίσκοπος이다. 이 뜻은 감독한다또는 치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장로들은 감독들이었고 감독은 치리하는 일을 맡은 장로였다.

 

신약교회에서 장로를 말할 때 다음 다섯 가지 직무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장로는 하나님의 교회의 목자들이다(20:28, 벧전 5:2), 이 용어 사용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내 양을 치라"(21:15절 이하)명령하신 말씀에 그 근원을 둔다.

 

둘째, 장로는 감독자이다(20:28 cf. 1:1, 딤전 3:2).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를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셋째, 장로는 감독직과 더불어 치리자이다(딤전 3:5, 5:17, 벧전5:3, cf. 13:7), 그러므로 장로란 잘 다스리는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다.

 

넷째, 장로는 하나님의 청지기이다(1:7). 청지기직이란 하나님의 것을 위임받아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위의 세 가지 기능은 성도들을 돌보는 직책에 더 초점이 있다면 청지기직은 하나님의 자산을 잘 관리하는 임무에 더 강조점이 있다.

 

다섯째, 장로는 그의 직임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잘 가르치는 교사이며 권위자이다(딤전 3:2, 5:17, 1:9). 모든 장로는 잘 다스려야 하며 잘 가르쳐야 하되 모든 장로가 다 잘 가르치는 장로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목사와 장로라는 구분은 역할분담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직위적인 차원에서 이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목사와 장로는 다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위치에 서 있으며 단지 기능면에서만 서로 주된 업무가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초대교회에서 7명의 대표인들을 선출했을 때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까지 취급했었던 것처럼 목사는 잘 다스리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바울도 장로회에 대하여 언급하였다(딤전 4:14). 이렇게 장로들을 임명할 때 장로회에서 그들을 안수하여 세웠다. 안수행위는 신령한 은혜와 복을 내리며, 은사를 수여할 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cf. 9:18, 19:13, 6:5, 7:32, 8:23, 13:13, 8:17, 9:12, 17, 13:3, 19:6, 딤전 5:22). 초대교회의 7명의 대표들을 뽑을 때도 그들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함으로 확정지었다. 그들은 회중에 의하여 선출되었고, 사도들 앞에 세워졌을 때 사도들이 안수하였다. 사도행전 20:28에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엄숙히 장로직, 감독직에 대하여 말한 것을 보면 교회를 돌보고 감독하는 임무야말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장로들이 명심해야할 것은 그들 역시 대 목자장인 그리스도의 감독과 지도를 날마다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2) 집 사 (deacon)

 

집사라는 말은 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다(12:26, 13:4, 고전 3:5, 고후 6:4, 11 :23, 3:7, 살전 3:28, 딤전 4:6). 집사직은 διακονία 라는 추상명사에서 독특성을 찾는다. 이 단어는 집사로서 잘 섬기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딤전 3:10, 13). 교회의 처음 조직이 생긴 사도행전 6장에서 구제하는 일과 먹이는 일을 7명의 대표들을 통해서 집사란 용어를 사용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양들을 돌보는 일, 특히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는 일은 교회의 가장 중점 되는 사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15:25-26, 2:10), 자연스럽게 집사직이 교회 안에 형성된 것 같다. 따라서 바울은 장로직을 말하면서 집사의 의무를 말하기보다는 집사의 자격을 언급하였다. , 장로직과 집사직이 이미 초대교회에서 명확히 구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집사직의 자격은 무엇보다도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딤전 3:9)여야 했다.

   

3. 교회 정치 형태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교회조직이나 직분자들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움을 입은 자들이며, 주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자라야 회중들이 은사의 됨됨이와 신앙인격을 보고 선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우리는 현존하는 각 교파의 정치 제도를 살펴보려고 한다. 현존하는 각 종파의 정치형태는 교리적인 차이와 성경 해석적인 이견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서 크게 나누어 감독정치, 회중정치 또는 독립정치및 장로정치이다.

 

1) 감독정치

 

흑자는 교황정치와 감독정치를 구분하지만(장로교화사 오덕교저, pp. 14) 교황정치는 감독정치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감독정치란 대주교, 주교 사제, 부주교, 집사 등의 여러 직분자들에게 교회를 통솔하게 하는 권력기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통 로마 카톨릭과 성공회 등에서 유지하고 있는 정치제도이다. 다만 이 둘의 차이는 전자는 모든 권력이 교황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그가 지상의 모든 카톨릭교회를 통치하는 것이요 후자는 교회의 수장권이 군주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감독정치는 한 사람의 최고 통치권자 밑에 여러 계층의 직제에 의하여 움직이는 교회정치이다. 이러한 정치제도는 분명히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인본주의적 정치인 것이다. 교회의 모든 직분자는 위치상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며 다만 기능상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며 직분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운 자들이요 회중들의 선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 회중 정치 또는 독립 정치

 

독립정치를 지향하고 있는 회중교회의 정치인 회중정치는 교회의 계층구조에 대한 반발로 생긴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성경적인 교리나 가르침을 그들의 공식문서에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은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하며 회중에 의한 목사 청빙과 교회운영 및 지교회의 자율성을 최대한으로 내세운다. 이들은 성경에 나오는 장로회’(딤전 4:14)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외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일에 개교회의 결정이 최고의 결정이 최고의 결정이기 때문에 이것은 곧 개 교회의 무흠한 능력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것이다.

 

3) 장로 정치

 

이것은 지금까지 앞에서 직분자들을 다루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장로정치라고 본다. 장로정치제도는 교회와 교회 및 직분자들과 직분자들 사이에 계급구조를 인정치 않으며 회중교회의 정치의 자율과 평등사상을 수용하지만 모든 지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는 연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장로회주의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 정치형태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감독주의나 교황의 통치권에서처럼 교회가 성경을 판단하고 인정하는 원리가 아니라 성경에 의하여 교회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다스리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장로회주의는 개교회의 당회와 지교회의 연합을 이루는 노회, 일정 지역권의 노회를 의미하는 대회와 전국적인 총회로 나누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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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기의 기독교 

 

 교회사에서 2 세기는 박해(PERSECUTION)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손으로부터 박해의 파도는 쉬지 않고 교회를 때렸다.

I. 2 세기의 박해들

주님의 교회는 대환란의 시대에서 2세기로 들어갔다.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하여 성장했고 확장되었다. 이러한 현상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다.

1. 끊임없는 전파

믿는이들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진지하게 수행했다. 그들은 참된 신념을 가졌다.

 

2. 복음의 배타성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그들만이 진리를 선포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기독교는 "단지 또다른 종교"라고 믿지 않았다.

 

3. 회중 생활(congregational life)

이들 성도들은 복음을 살아냈다. 곧 그들이 선포한 바를 그대로 실행했다.

박해의 다른 효과는 박해가 교회를 순수하게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고문과 죽음의
위협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재고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renounce)". 이는 후에 교회에 몇 가지 문제점들을 야기시켰다.

98년부터 211년까지 Trajan, Hadrian, Antonius Pius, Marcus Aurelius, Commodus,
Septimus Severus 등의 6 황제에 의한 잔혹한 박해가 있었다.  

 

II. 2 세기의 타락들

사도들의 생애동안 심겨졌던 오류의 씨앗들이 이 기간동안 열매를 맺기 시작함

A. 교회 실행의 변화
주로 유대주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교회내에 수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1. 성직자주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계급화하는 것임 : 성직자 계급과 평신도 계급 ("kleros"는 '택한자들'을 의미함; "laos"는 '백성'을 의미함)신약은 감독의 직무가 교회내 지도권의 하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거만한 성직자들이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경고가 베드로 전서 5:3에 주어졌다.

신약의 가르침을 넘어선 목양자들의 특권(prestige), 권능(power), 및 권위(authority)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카리스마(charisma), 강한 개성(strong personality), 또는 "영웅 숭배"를 통하여 두드러지지 않게 발생하였다. 이러한 특성들은 인간적 본성에 흥미를 끄는 것이다. 이유가 어떠 하든지, 신약의 가르침에서 이탈한 이러한 특성은 구약에 호소함으로 (구약의 레위 성직자제도와 이에 수반되는 권능 및 특권의 올가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백성의 몸(body)과는 별개의 특별한 성직자제도의 개념 및 제도는 수반되는 개념인 희생물과 희생단과 함께 유대교와 이교를 기억나게하는 유사한 것들로 기독교의 교회 안으로 알아챌 수 없게 귀속되어 갔다" (Schaff P.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II. p. 60) 

이 변화는 2 세기에 발생하였으며, "믿는이의 성직자직분"이라는 신약 교리를 벗어난 것이다.
a. 이그나티우스 (117년) : 안티오크 교회의 감독. "감독과 장로와 집사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하는 자는 양심에서 순결하지 않다"
b. 로마의 클레멘트 (110년) : 그가 신약교회와 레위 성직자직분을 비교할 때, 처음으로 평신도(layman)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 같다.

 

2. 비속화(卑俗化)(Sophistication)

이러한 진리들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형상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복음의 단순성과 순결이 잊혀져 갔다. 더욱이 사람의 타락한 죄성인 상상력에 의해 이러한 보조 기구는 급격히 인간 고안품의 잡동사니로 타락해 갔다. 

"2세기 중간 또는 말기에 심각한 심볼의 형태가 그리스도인의 예술에서 시작되었음을
보게 된다...이러한 심볼의 근원은 종교적 진리의 상징을 가지려는 그리스도인의 본능적
욕망에서 발견되어짐에 틀림없다.." (Schaff P.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II. p. 60)
           

십자가 성호가 2 세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터튤리안은 "십자가 숭배"의 고소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방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기타 초기 기독교 심볼로는, 비둘기, 배, 닻, 등이 있다. "이들 심볼로부터는 단지
도상학적 표현의 측면에서 한 발자국의 진보가 있었을 뿐이다"고 샤프는 말한다
물고기 심볼은 2 세기 중반부터 유래되었는데, 그 근원지는 알렉산드리아로 여겨진다.

 

3. 성찬 중시주의(Sacramentalism)

2 세기 초에 중요성에서 주목할만한 변화가 보일 것이다. 실체(substance)와 상징(symbol) 간에 성경적 균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밥티스마의 규례가 크게 강조되었다.

 

a. 밥티스마의 부속물

먼저 규례에 의식(儀式)주의가 첨가되었다. 곧이어 다음 사항들이 뒤따랐다. 

(1) 도입부(Introduction)가 길어짐 - 교리문답
(2) 마귀 거절 설명서
(3) 신조(Creed)의 암송
(4) 삼중 잠김(Trine Immersion) - 간혹
(5) 형제의 입맞춤(Brotherly Kiss)
 

b. 밥트스마와 구원의 혼란
많은 교부들 가운데 켐벨주의와 유사한 견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의식에서 마술적인 것을 보지 않았지만, 밥티스마를 믿음의 행위로, 그래서 하나님의 원하는 은혜(saving grace)의 전달자로 보기 시작했다

 

(1) 순교자 저스틴 (100-165년)

(2) 헤르마스(Hermas) (115-140 년)

 

B. 기독교 교리의 변화

일세기에서 두번째 주요 이단이었던 그노시스주의는 2 세기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노시스주의는 창조의 하나님께서 피조물과 너무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얼마는 선하고 얼마는 악한 많은 중간 신들에 의해 우주를 다스린다고 가르쳤다.

III. 2 세기의 명사들

A. 저스틴(100-165 A.D.)
B. 이레니우스(115-200 A.D.)
C. 터튤리안(160-230 A.D.) 
       

IV. 2 세기의 발전

교회들에 의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짐으로 신약 정경이 형성됨. 2 세기 초에 발생하였다. 신약의 최종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사도시대에도 신약이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다(골 4:16)(살전 5:27)
(벧후 1:15, 3:1,2) * 딤전 5:18 과 마 10:10을 비교할 것  성경기록을 수집하고 편집한 곳 (4 곳)

팔레스타인 - 마태, 야고보, 히브리서
소아시아 - 요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모데전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서부터 계시록까지

그리이스 - 고린도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카전후서, 누가, 디도서
로마 - 마가, 사도행전, 로마서 

지리적인 분리 때문에 초기의 정경 수집은 완전하지 못했다.교부들의 글에서 신약성경의 정경화에 관한 많은 증거들이 제시되었다.

주로 전달과 유포의 어려움 때문에 몇 가지 책들에 대한 작은 논쟁이 있다. 412년 까지논쟁이 되었던 책으로는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요한 일서, 요한 이서이다 -
대체로 이단들을 정죄한 책들이다. 

 

 

 

V. 2 세기의 저항자 - (Monatanists)

몬타누스파의 출현. 대부분의 교회역사에서 몬타니스트들은 이단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들의 신조와 실행들을 주의깊게 연구하면 그들이 정통이였음이 밝혀진다.몬타니즘은 교회의 순결과 영성에서 조류를 거스리는 첫번째 일반 저항이다

 

A. 지도자
그들이 몬타니스트라 불리운 것은 몬타니우스라는 사람의 선포때문에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는 Cybele의 이교도 사제였으며 약 150 년에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B. 위치
몬타니즘은 소아시의 중앙 프리기아에 있는 Ardabau라 불리우는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사상은 신속하게 유럽과 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 몬타니즘은 177년에 로마와 프랑스의 리용에서도 발견되었다.

 

 C. 시작

몬타니우스는 150년에 그의 관심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 명의 여자 명사인 맥시밀라와 브리스가를 포함한 많은 추종자들을 모았다.

 

D. 몬타니스트 운동의 이유들
사도시대이후 곧 많은 교회들 가운데서 눈에 띄일만한 변화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그들 중 몇 가지로는,
 

1. 의식주의(儀式主義)화 경향        
2. 성직자 계급의 등장
3. 영성의 부족
4. 기율과 교회회원의 기준이 헤이 해지기 시작함

 

E. 몬타니스트의 사명
몬타니즘은 실제에 있어서 교회를 그들의 영적 단순성으로 회복시키려는, 신약의 기초로 돌이키려는 개혁운동이였다.
몬타니우스는 믿는이들과 교회의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크게 강조했다. 그리고 복음에는 성직자에게 아무런 특권이 없음을 표명했다. 그는 철학과 종교의 반대자였다.

 

F. 몬타니스트의 교리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 것과는 별개로 몬타니스트들은 다음과 같은 신조와 실행들을 지켰다.

1. 교회의 회원으로 거듭남을 강조함
2. 믿는이의 밥티스마

그들은 교제의 순결을 실행했으며, 제도권 교회에서 온 자들을 다시 밥티스마를 주었다. 그들은 오직 물에 잠그는 밥티스마를 베풀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2 세기에는
이 밥티스마 외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 없었다"

3. 삶의 거룩함

 "그들은 과학과 예술, 모든 세상적인 교육 또는 삶의 화려한 형태를 피하였는데 이는 그러한 것들이 이교주의에 속했기 때문이었다"(Christian Op. Cit. p. 42)그들은 재혼, 방종한 금식, 박해를 도피하는 것에 반대했다.

4. 교회 기강
"도덕적 죄에 대항하여 교회는 그 죄를 범한 자를 올바르게 배제함으로써 스스로를 지켜 나갔다. 왜냐하면 교회의 거룩함은 단순히 그 일원의 거룩함이기 때문이다(Christian Op. Cit. p. 43)"

5. 삼위일체 신학
6.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
몬타니스트들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성경기록들을 전수하였다. 

7. 전천년주의 종말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속히 다시 오셔서 땅 위에 그분의 천년왕국을 세우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이러한 전천년주의 견해는 또한 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몬타니스트들이 인기가 없었던 것이 전천년주의의 소멸에 기여했던 것 같다.

 

G. 몬타니즘에 대항한 변화
몬타누스파 교회들은 제도권 교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들에 관해 언급한 것들 중 많은 것들이 부당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최근의 역사가들은 몬타니즘의 대적자들 편을 들었으며, 그들에 대하여 몇 가지를 고소하였다.  

 

1. 가장 일반적인 고소
이는 몬타니스트들이 "고대의 Holy Roller (열광적인 종파의 신자)"라는 것이다.
몬타니우스가 위로자(Paraclete)이며,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의 계시를 초월하여 주장하였다고 고소했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절대적인 증거가 없는 것 같다. 몬타니스트 교회의 영성과 삶은 제도권 교회들의 형식주의 및 무감각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a. 루터교 역사가 모헤임은 몬타니우스가 자신을 위로자라고 불렀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의 역사서 번역자 맥클린은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몬타니우스가
자신을 스스로 성령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실수였다." (Church History. Mosheim, Volume I. p. 188) Armitage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몬타니우스는 자신을 성령과 동등시하였다고 고소를 당했는데, 이것은 단지 비방에 불과하였다"(Armitage, T. History of The Baptists. p. 175)

b. Jarrel은 "ecstasy"에 관한 터툴리안의 해설을 인용하면서 아마도 그가 다윗이 말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c. 터툴리안은, 이상(vision)과 초성경적 계시를 언급하면서 말하기를, "참으로 성경을 읽거나, 시편을 노래하거나, 강연을 하거나, 기도를 드리는 것들은 이상에 의해 지지를 받는 것들이다"라고 했다. 어떠한 비성경적인 것도 없다!!
 

d. 몬타누스파 교회들이 제도권 교회의 교리들을 수용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바이다. - 그들의 차이는 강조와 실행에 있다. 

2. 몬타누스파의 지나친 점들
비록 단호하게 입증되지 않을 지라도, 일부 몬타누스파 교회들이 다음과 같은 확실한 비성경적 실행들을 지켰을 가능성이 있다.

a. 여자의 임명
몇몇 교회들은 성령의 선물들이 모든 조건과 성에 차이가 없이 분배되었다는 그들의 신조로 인해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을 허용했다.

b. 삼중 밥티스마(Trine Immersion)일부 몇몇 몬타누스파 교회에서 실행되었다.
c. 목양자의 독신주의 - 아무런 규칙이나 또는 법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박해의 때에 실제적인 예방조치였다. (예 고전 7:26,29 와 8,9 절)
d. 엄격한 금욕주의
e. 엄격한 교회 기강

 

 H. 몬타니즘의 결과
1. 터툴리안은 몬타니스트 사상으로의 전환자로 알려졌다. 그는 이 가르침들을 잘 정리하는 것을 도왔으며, 그 결과 북 아프리카 지역(터튤리안파)에 유증으로 남겼는데, 후에 도나티즘으로 나타났다.

 

2. 이 운동에 대하여 수차례 공의회가 소집되었으며, 공식적으로 그들을 정죄하였다.
3. 이 운동의 영향은 노바티안파, 도나티우스파, 아르메니아와의 점촉, Paluician의
출현 등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역사가들 중에 몬타니스트를 옹호하는 역사가들이 있는데 그들 중 몇몇을 인용하면,

 

a. 초기 역사가인 W.R. 윌리암 박사는 "그들의 가르침에서 교리적 오류를 발견하기가
힘들다. 그들의 감정의 표현은, 훨씬 후 종교개혁시대에 많은 다른 교사들이 강조한
바와 같이, 은혜의 참된 경험은 믿는이의 삶에서 분명하다는 그들의 믿음에서 유래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b. 도너 박사는 그들의 운동에 대하여, 교회 지도자들을 교회 몸의 지배자로 세우려는
움직임(역자주:성직자계급주의)에 반대하는 민주적 반발이였다고 썼다.

c. Schaff-Herzog 종교 백과사전의 기고자인 몰러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몬타니즘은
기독교의 새로운 형태가 아니며 몬타니스트는 새로운 종파가 아니다. 오히려 몬타니즘은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가운데 안락하게 안주하려는 그 시대의 두드러진 경향에 대항한 단순히 고대 초기 교회의 반발이었다."  (Grimith, J. W. A Manual Of Church History: Vol. II. 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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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고대사(사도후 시대)


 

 

Ⅱ. 사도후 시대(100-313) / (콘스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1. 서 론

 


1) 시기-사도 요한이 죽은 후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까     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를 사도후시대(Post-Apostolic Age) 혹은 니케아 회의 이전시대       (Ante Niecene Age)라고 부른다.

 


2) 박해와 순교

 


(1) 네로(Nero) 황제부터 250년간 박해 받음-순교자의 시대

(2) 익나티오(안디옥), 폴리카르푸스(서머나), 유스티누스(로마철학자), 키프리아누스(칼타고)등      의 순교자가 나옴.

 


3) 카톨릭 교회(Catholic Church)

 


(1) 카톨릭(Catholic)은 <공동>, <보편>의 의미를 지님.

(2) 박해를 승리하기 위해 교회들이 단결함

(3) 사도 신경이 이 시대에 작성됨

 


4) 사상의 발달

 


(1) 온갖 박해 중에도 전도 활동 왕성-기독교의 생명력 입증

(2) 이 시대는 사상의 발효 시대이다.

(3) 헬라(그리이스) 철학, 동방 종교, 유대의 율법주의의 이입으로 사상적 혼란이 옴.

(4) 그노시스주의(Gnostism),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등 절출 조화의 사상이 형성

 


2. 기독교의 전파

 


1) 교회 확장의 중심지

 


(1) 예루사렘-유대 각지로

(2) 안디옥-수리아와 메소보다미아로

(3) 에베소-소아시아 각지로

(4) 빌립보, 데살로니가-마게도냐 지방

(5) 알렉산드리아-신학교 설립

(6) 고린도, 아덴-헬라 지방

(7) 로마-여러 지방에 선교

 


2) 성장의 성과를 거두게 된 요인

 


(1) 성령의 역사

(2) 신자들의 비상한 전도열

(3) 왕과 상류 계급의 입신(入信)

(4) 가난한 자와 어려운 자 구제

(5) 봉사와 상부상조

(6) 박해에 대한 인내

(7) 고상한 도덕적 생활

 

 

 

 


3. 박해

 


1) 원인

 


(1) 우연한 원인

①오해로 인해서 - 기독교인은 부도덕한 자들이다-동굴 속에 남녀가 모여 음행한다고 기독교    인은 불의한 자들이다-자식을 잡아 먹는다(성찬식을 보고)

②미신으로 인해서 - 기독교인 때문에 신이 노하여 천재 지변이 일어난다고

 


(2) 진정한 원인

①사상의 부조화 - 로마인은 국가 지상주의(國家至上主義), 기독교인은 신본주의(神本主義) 로마 제국은 영원하다고 생각하고, 기독교인은 끝이 있다고 생각함 / 가장 명령에 절대복종, 기독교인은 가장이 불신자이면 복종치 않음

②사회 생활의 부조화 -로마인은 오락, 사치를 죄로 여기지 않으나 기독교인은 죄로 여김 /이    교도들과 융화되지 못함을 보고 사회와 정부를 분해 개조하려는 행위로 봄

③로마의 정책 -황제 예배 강요(국가 통일 위해), 기독교인은 다신교 반대/ 비밀 결사를 취체    (비밀 집회는 딴 국가를 세우려는 정치적 음모로 봄) /기독교인은 군대 복무를 안하므로 박    해가 생김

 


2)박해의 방법

 


(1) 기독교와 절연 증거로 성경과 기물을 주어 버리거나 파괴하도록 함

(2) 사회에서 추방(직업 방해, 재산 몰수, 공직 박탈)

(3) 폭력 바오하(화형, 십자가형, 맹수와의 결투)

(4) 문서상 방해(교리적으로 박해)

(5) 기독교를 부인하면 과거 죄 사면

 


3) 박해의 결과

 


(1)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임을 확신

(2)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더 확신

(3) 신약 정경(Canon) 형성 촉진

(4) 진리를 세계에 알림

(5) 사도, 교부들의 순교로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임을 증명

(6) 교회와 국가의 구별을 명확히 함

 


4. 10대 박해

 

 


황제
 
이유
 
방법
 
발생사태
 

네로, Nero(54-68)
 
로마시 방화자
 
생일연 춧불대신 화형빛
 
베드로, 바울 순교
 

도미티아누스(81-96)
 
다른 국가 세운다고
 
재산 몰수, 살해  
 
카타콤 생활
 

트라야누스(97-117)
 
사회생활 부조화
 
황제상 앞에서 절하라
 
강요 죄인취급, 집회불허

이그나티우스 맹수에게
 

하드리아누스(117-138)
 
그리스도인 증오
 
국경일에 헌제케함
 
성묘에 여신단 세움
 

마리쿠스 아우렐리우스

(161-180)
 
질병, 흉년을 기독교때문으로 봄
 
고문, 리용교회 베일교회 심한 핍박
 
우스티누스,

풀리카르푸스 순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폭악, 무도한자로 봄
 
입교금지 측령
 
이레네우스 오리게네스 순교
 

막시미누스 (235-228)
 
지진 사고로
 
유형
 
두 감독 금광노예로
 

디키우스(24=251)
 
국력쇠약원인
 
재산 몰수 악형
 
오리게네스 중형
 

바벨리아누스(235-260)
 
병, 흉년 원인
 
재산몰수, 예배 금지
 
키프리아누스 순교
 

디오클리아누스(284-)
 
참소로 인해
 
교회 파괴, 처형
 
교회파괴 가다리우스 순교
 

 

 

 


5. 사상적 공격

 


1) 루키아누스(Lucianus of Samosada)

(1) 120년 수리아 출생, 200년 헬라 혹은 애굽에서 죽다. 에피쿠로스 학파 소속

(2) 기독교인의 생홀과 풍습을 비방

(3) 저서-<페레그리누스의 죽음> (De Morte Peregrim) 180년경 출간

 


<내 용>

165년 올림피아 경기 때 키니크 학자 페레그리누스(Peregrini)가 불속에 투신 자살한 상황을 알리는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①페레그리누스는 부모를 죽이고 간음한 자로 후에 예수 믿고 목사까지 되었다.

②악행이 탄로되어 투옥되었다. 그러나 성도들의 도움으로 출옥하다

③출옥후 우상의 제물을 먹다가 추방되어 키니크 학파에 가입

④명성을 내려다가 투신 자살한다

 


(4) 결과-오히려 더 잘 믿고 사랑하게 되었다.

 


2) 켈수서스(Celsus)

(1) 로마 혹은 알렉산드리아인이며 플라톤 학파에 속하면서 에피쿠로스 학설에 기우러짐

(2) 저서 <참말>로 기독교 공격. 여기에 대하여 알렉산드리아의 대 신학자 오리게네스가 <켈수스를 반박한다>는 책을 저술하여 반박함(오리게네스의 저서만 전해짐).

 


<내용>

켈수스는 이용할 수 있는 온갖 학설과 풍자 상식을 총동원하여 기독교를 공격하였다. 후세의 기독교 반대론자인 볼테르(Voltaire), 시트라우스가 사용한 말들이 켈수스의 저서에 나올 정도이다.

①그리스도의 신성 부인(동정녀 탄생 부인)

②천지 차조는 신화(헬라 신화보다 저금 우월하다)

③구약 부인(유대인만 사랑하였느냐)

④신의 계시가 있다고 하면 이는 신의 존엄을 저하시킨다.

⑤그리스도의 신성은 변화를 의미한다

⑥부활 신앙은 <벌레의 희망>과 같은 것이다.

⑦성경의 문장이 조잡하다.

 


3) 신 플라톤 학파(Neo-Platonism)

(1) 파생 원인

①기독교로 인하여 로마 재래 종교가 없어질까 하여 생김

②재래 철학 사상에 종교적 요소를 가미하여 신비 철학 구성에 성공

(2) 시조-암모니우스 삭카스(Ammonius Saccas, 243년에 죽다)

(3) 중요 학자

①플로티누스(Plotinus) ; 208년 애굽 출생. 269년 로마에서 죽다. 삭카스의 제자. / 페르시아                          원정에 종군, 동방 학문을 배움.

<학 설>

․내 안에 있는 하나님과 우주에 계신 하나님과의 조화에 도달하려고 힘쓰고 있다.

․우주 만상은 하나님의 출발로 이루어졌는데 3단계로 된다.

-마음(Spirit)

-영(Soul)

-물질(Body)

․사람이 하나님께 복귀하는 행정 덕(德)과 에로스(愛)로 엑시더스 현상에 이르러 하나님과 하나(合一)가 된다.

②포르피리우스(Porphyrius) ; 다신교의 옹호자로서 15권의 저서를 통해 기독교 공격

<학 설>

․신약과 구약의 모순을 밝혀내어 두 성경이 서로 같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사도끼리 분쟁했다.

․예수는 거짓말하였고 제자의 본이 되지 못하였다.

․제자의 사상이 일치되지 못함을 볼 때 그리스도의 신성 부인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교훈을 곡해하여 사족(蛇足)을 깨달았다

신 플라톤 학파가 철학으로서 종교를 대신하려는 시도는 실패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들의 실패 원인을 3가지로 지적하였다.

․교조(敎祖)가 없는 것

․어떻게 하면 축복과 평화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한 점

․사색하는 힘이 없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방법을 가지지 못한 점

 


6. 교부(敎父,Fathers)

 


1) 정의

(1) 사도들의 직계 제자

(2) 교리에 정통성을 가진 자

(3) 교리 발전에 역사적 중요 위치를 차지한 자

 


2) 구분

(1) 속(續)사도 교부(Apostolic Fathers)

(2) 변증가(Apologists)

(3) 헬라 교부(Greek Farthers)

(4) 라틴 교부(Latin Fathers)

 


7. 속(續)사도 교부(Apostoloc Fathers)

 


1) 이름과 저서가 같이 전해 오는 교부

 


(1) 로마의 클레멘스(Cemens of Rome)

①1세기말의 로마의 유명한 장로

②저서;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4분의 1을 구약 인용 / 질투말라, 겸손하라, 규칙지키          라 / 부활을 확신 / 감독, 집사 선거에 조심하라 /서로 사랑하라

 


         제2서신은 설교(2세기 후반 타인의 필적임)

 


(2) 이그나티우스(Ignatius)

①안디옥 감독으로 로마에서 맹수의 밥이 됨

②사상 ; 교회의 통일 / 감독의 권위/  순교자의 영광

③저서-로마로 호송 도중 7통의 서신 집필

       <에베소> <마그네시아>(Magnesia) <트라리아> <로마인에게>는 서머나에서 집필

       <빌라델비아> <서머나> <폴리카르푸스에게>는 드로아에서 집필

 


(3) 폴리카르푸스(Polycarp)

①서머나 교회 감독, 사도 요한의 제자, 이그나티우스의 친구

②55년에 순교

③저서<빌립보의 서신> ; 이그나티우스에 대한 친절 칭찬/ 바울 서신, 요한2서, 베드로서 인용

 

 

 

 


(4) 파피아스(Papias)

①브프리기아(브루기아) 감독으로 150년에 순교

②사도 요한의 제자인 듯

③저서 <주의 가르침의 설명> 5권 ; 사도와 사도의 제자에게 듣고 본 바를 기록 /유세비우스 교회사 속에 인용된 단편이 있음 / 천년왕국론

 


2) 저서만 전해지고 저자가 전해지지 않은 교부

 


(1) 헤르마스(Hermas)의 <목양자>(牧羊者), 롬16:14의 허마인듯

①미래 문학(未來文學)으로 천로 역정(天路歷程)과 비슷하다

②이신 득구(以信得救)보다 의무와 도덕을 강조

 


(2) <바나바서>

①히브리서와 비슷한 점이 많음

②성전 예배에 무식한 유대교를 반대하는 입장

 


(3) <디오그네투스에게 주는 편지>

①발신자, 수신자를 모름

②황제를 양해시키려는 변증서임

③내용 ; 기독교 예배와 생활의 진의 설명 /신자는 비국민인 근거가 없다 /박해는 신자들이 기           뻐한다 / 사상과 내용, 문장이 힘있고 풍부한 내용

 


(4) <12사도의 교훈>(Teaching of the Twelve Apostles Didache)

 


①신자의 생활과 습관을 교훈

②세례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제적 교훈 기록

③1873년 콘스탄티노플리스 성내의 살렘 수도원에서 발견되었고 1883년에 출판됨.

 


8. 교부들의 신학

 


1) 기독론(인성을 믿으나 신성을 더 강조)

 


(1) 클레멘스(Clemens of Rome)-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엄한 홀이다.

 


(2) 이그나티우스(Ignatius)

①그리스도는 신이요 우리의 하나님이다

②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났다.

 


(3) 헤르마스(Hermas)-선재설(先在設) 주장

 


2) 3․1신 교리(희미한 듯하나 삼위일체 교리를 믿은 듯)

 


(1) 이그나티우스 ①신자는 건축재(돌)  ②십자가는 끌어올리는 기계 비유 ③성령은 밧줄

(2) 클레멘스-사도들은 임명받고, 예수 부활로 확신을 얻고, 하나님 말씀에 견고히 되고, 성경      의 보증을 얻고, 하나님나라가 임한다는 복음을 듣고 나아갔다.

 


3) 속죄론-주께서 생명의 길을 보이시고자 피 흘리시고, 회개하여 죄사함 받는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죽으셨으므로 믿는 자들을 전능의 신께서 의롭게 하신다는 그 신앙으로 의를 얻는     다(의신득의 제창).

 


4) 천년설-재림이 멀리 않은 장래에 있다고 믿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천년간 이 땅에 왕 노릇 하신다고 설명하였다(재림천년왕국기대)

 


5) 이방과 구약 사상의 영향을 받아 윤리주의가 아직 농후하였다.

 


9. 변증가

 


1) 대표적 변증가들

 


(1) 유스티누스(Justinus)

①125년에 사마리아에서 출생, 166년에 죽다.

②신자된 동기-해변에서 산보할 때 노인이 나타나 구약을 주면서 이 책이 예수에 이르러 성취                되었다고 말하고 사라짐.

③저서; <대변증서> <소변증서><트리포(Trypho)와의 대화>

 


(2) 아리스티테스(Aristides, 아테네 사람)

①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글을 올려 기독교를 변증함(시내산에서 발견).

참 신의 성질을 설명 / 이교의 신화를 공격 / 기독신자의 풍성을 설명

 


(3) 콰드라투스(Guadratus)

①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변증서 제출-예수에게 병 고침받은 자 아직도 생존해 있다고 주장      (126년경)

 


(4) 타티아누스(Tatianus, 110-17)

①유스티누스의 제자로 로마에 거주

②저서 <헬라인에 대한 담론>, <디아텟사론(Diatessaron, 傳記라는 뜻)>

 


(5)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아테네 출생)

①저서 <기독교에 관한 사명>, <부활>에 관한 저서

 


(6) 멜리토(Melito)

①소아시아 사데 교회 감독

②헬라 신화 비판과 5,6종의 저서

 


(7) 라틴어 사용의 변증가들

①미누키우스 펠릭스(Minucius Gelix)-로마의 법률가, 저서<옥타비우스>

②아르노비우스(Arnobius)-다신교의 불합리성 공격

③락탄티우스(Lactantius)

저서 <하나님의 법칙> <완비된 변증론>

 


2) 변증의 정신과 내용

 


(1) 정신

①신자는 세계의 심령이다(심령이 육체에 충만한 것같이 세계 각처에 널리 있다. 그러나 세상    것이 아니다).

②육은 영을 미워하고 이것과 싸우기 좋아함은 영으로 말미암아 손해를 입어 그런 것이 아니    고 자기를 정욕대로 향락을 쫓아 내려가는 것을 금하는 까닭이다.

 


(2) 내용

①신자들이 불공평한 재판을 받는 억울한 형편을 변호

  기독교는 어떤 것인가? /  신자는 어떠한 생활을 하느냐를 설명하여 오해를 풀고 비난과 박    해를 없이 하려함

②비난의 요점과 변증

<비난>

․기독신자는 무신론자

․세상에 별다른 왕국을 세우려함

․부도덕한 자

․예수는 요술쟁이

 


<변증>

․이교도들이 우상 섬기는데 비해 신론자라 할 수 있겠으나 사실 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

․신자는 신앙을 위해 순교한다. 이것은 세상 왕국을 세우려는 것이 아님을 증명

․예수의 도덕적 교훈을 인용하여 도덕적 탁월함을 설명

․예수는 신이요 요술쟁이가 아니며 예언 성취자라고 함

 


10. 그리이스 교부

 

 

 

1) 소아시아의 신학자

 


이 시기는 대략 주후 170년경으로 변증가 시대의 끝으로 삼는다. 이들은 사도 요한의 계승자이며 성경 해석에 중점을 두고 이단에 대한 태도를 취하였다.

 


(1) 이레네우스(Irenaeus, 115-119경 출생)

①소아시아 신학자로 고올(Gaul) 지방 감독

②온유, 준수, 박학자

③리용(Lyon)시에 전도하여 전 시민이 거의 신자가 됨.

④그의 신학 ; 사도 이래의 전설을 존중하고 신앙의 표준을 존중함.

              신  관 - 신은 자유 의지로 창조한 유일신이다. /신의 피조물인 우주는 선하다.

              기독관 - 그리스도는 신이 자기를 표현한 로고스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아버                          지와 함께 계신다. /출생 방법은 모른다.

              성령관 - 성자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 포함되는 것이다 /성자에게 복속의 지                          위가 있다.

              특  색 -그리스도는 교사가 아니요 구주이다. 사람의 경험을 체험하면서 사람                         이 하나님께 드릴 충성을 한 몸에 지고 대신했다.

 


(2) 힙폴리투스(Hippolitus)

①이레네우스의 제자로 박학자

②로마 테베르(Tiber)강 하류 포르투스 로마누스가 임지라는 주장도 있다.

③사르지니아 섬에 추방당해 순교한 듯 하다

④1551년 티베르강 한 섬의 순교자 사당 자리에서 그의 이름이 세겨진 상(像)을 발견

  1842년 프랑스 학자 빌맹(Villemain)이 터어키 아소스산 수도원에서 그의 저서 <모든 이단을    배척함> (Against all Heresies)을 발견

 


2) 알렉산드리아 학파(Alexandrian School)

 


(1) 판테누스(Pantaenus)

①스토아(Stoics) 철학을 교육받은 자

②열심가로 인도에서 전도

 


(2) 클레멘스(Glavius Clemens)

①판테누스 문하에서 수학, 189년부터 12년간 신학 교수

②202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황제박해로 안디옥 피난, 저술과 강론으로 교회 봉사

③성격이 온순, 명상을 좋아함

④213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죽음

⑤저서  : <그리이스인에게 주는 권면(Exhortation to the Greek)>

          <교육자(Paedagogue)>

          <잡설(Stromata)>

 


(3) 오리게네스(Origenes)

<생애>

①185년 알렉산드리아 출생

②어릴 때 신앙독실, 총명, 부지런함.

③아버지는 202년 대박해시 순교, 모친과 6명의 자매 위해 필경과 학생 가르침.

④18세부터 클레멘스 후계로 신학 교수가 됨

⑤청년시에 수술하고 고자됨(천국위해)

⑥명성이 높아지자 시기하여 군인들이 감시하고 그 문하생 7명 사망

⑦211년부터 로마, 아라비아, 팔레스티나, 그리이스 등지로 전도 여행

⑧이단설 주장한다고 추방되어 가이샤라에서 신학교 교장이 됨

⑨244년 옥중에서 사망

⑩저서-6천권이라고 전해짐

<신학>

①기독교 진리를 철학으로 해석하고 조화시키려 함

②육신․정신․영이 있는 것처럼 성경에도 문의적․도의적․심령적 3종이 있다함

③父와 子는 하나이다. 동질이며 같은 인격이다.

④영혼 선재설(先在說) 주장

⑤내세관은 연옥설과 지옥유한설 주장

⑥우주관은 플라톤의 영향을 입어 Idea 세계와 물질 세계가 있음을 주장

⑦계시관은 성경을 온유적으로 해석

⑧구원관은 만인구원설 주장

<요약>  극기 생활(천국위해 고자, 청년 시절 금주)

         업적 많음(기독교 학자,. 변증가, 저술가)

 


(3) 알렉산드리아 신학과정

 


①과학, 기하학, 생리학, 천문학

②철학-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책 연구

③논리학 연구

④신학 연구

 


11. 라틴 교부

 


1) 테르톨리아누스(Tertullian) (62년 합동 강도사)

 


(1) 160년경 카르타고에서 아버지는 백부장, 어머니는 이교도인 가정에서 출생, 40세에 신자      가 됨

(2) 그의 신앙관

①시조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는 죄악론(罪惡論).

②영혼은 부모에게서 유전 받았다는 유전설을 취함

③죄도 유전 받은 고로 죄가 육체에 있지 않다고 주장

④그리스도의 사업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포괄했다.

⑤삼일신 사상(三一神思想) 차시자

⑥유아 세례 반대

<요약> ․삼위일체(三位一體)란 말 처음 사용  ․순종치 않으므로 신인불화론(神人不和論) 주장

 


2) 키프리아누스(Cyprian) (63년 통합 목사, 73년 합동 강도사)

(1) 200년에 칼타고의 부잣집에서 출생, 수사학, 문학, 법학 교사가 됨

(2) 248년 카르타고 교회 감독이 됨

(3) 250년 박해로 사막에 피난가서 서신으로 교회를 격려.

(4) 그의 교회론

①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

②교회를 버린 자는 외인(外人)이고, 속인(俗人)이며 적이다

③교회를 어머니라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수 없다

④노아 방주 밖의 사람이 멸망 받음같이 교회 밖의 사람은 멸망당함

⑤교회는 단일, 즉 카톨릭 교회 외에 다른 교회는 있을 수 없다.

⑥교회는 감독에 의해 세워졌으니 감독 없으면 교회도 없다

⑦분리한 교회나 이단자의 세례는 무효이다.

⑧교회 통일을 주장한 카톨릭 교회 사상의 시조

<요약> ․교회만이 구원이 있고 감독권을 높임. 교회를 방주 등으로 표현

        ․최초의 카톨릭 성직제도 계급 지도지

<교부들의 사상 비교표> 이 름 연 대 활 동 지 저 서 순 교

 

 


이름
 
연대
 
활동
 
저서
 
순교
 

클레멘스
 
92-101
 
로마감독,여러교회 화합에 힘씀
 
클레멘스 제2서 설교집
 
 
 

이그나티우스
 
125
 
안디옥 감독
 
7통의 서신
 
 
 

폴리가르푸스
 
155
 
서머나 감독
 
빌립보교회 송서
 
화형
 

파피아스
 
150
 
히에라폴리스감독
 
주의교훈설명집5책
 
순교
 

헤르마스
 
140
 
로마감독 비오의 제자
 
목양자, 말세 기적문학
 
 
 

유스티아누스
 
100-105
 
철학자. 철학적으로 서방 전도
 
대 변증서, 소 변증서 트리포와 대화
 
순교
 

타티아누스
 
110-172
 
로마거주
 
헬라인에대한 담론 예수전
 
 
 

이레네우스
 
115-202
 
폴리카르푸스 제자 갈리아 선교
 
라틴신학 공헌, “이단배척함”
 
순교
 

클레멘스
 
213
 
알렉산드리아계/ 안디옥 감독
 
그리스도인에게 권면 교육자

잡설 찬송가
 
박해받음
 

오리게네스
 
185-254
 
아라비아 전도, 가이사랴 신학교설립
 
헥사플라 교리상 변증적 저술
 
순교
 

터툴리아누스
 
160-240
 
북 아프리카 카타르 감독
 
변증론 이단금제 논문 다수
 
 
 

키프리아누스
 
200-258
 
카르타고 감독
 
교회일치 81서신, 교회규칙조직
 
순교
 

 

 

 


12. 이단과 분파들

 


1) 유대교적 이단(68년 합동 강도사)

 


(1) 에비온 파(Ebionites․가난한 자)

①바울 교리의 배척(마태 복음만 사용한 듯함)

②율법고수-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금식/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

③기독관(觀) ;. 동정녀 탄생 부인 /. 인성만 주장 /. 수세시 직분 받음을 거부/ . 예수가 하나                 님의 아들 됨

 


(2) 엘카이파(Elkesaites)

①예수는 아담이 다시 사람이 되어 나왔고 앞으로도 다시 육신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

②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금식한다

 


(3) 그노시스파(Gnosticism)

①말뜻(語意)-헬라어(지식․Gnosis)에서 나옴. 지식이란 신비적 초자연 지식이요 보통 지식이     아니다.

②당시 유행하는 점성술, 마술, 철학, 페르시아의 이원적 우주론(二元論 宇宙論)의 혼합체에 기    독교 교리를 혼합해서 일종의 종교 철학을 구성하려고 한 것이다.

③그들의 새 교리 ;. 구약에서 유대교적 오소를 거절할 것 /. 예수의 육체적 고난, 부활 등의     실재를 부인 /. 금욕과 방랑 생활을 시인

④그들이 해결하려는 문제

.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에 왜 죄가 있고 재해가 있느냐?

. 어떻게 하면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 신․구약의 관계에 관한 것

⑤여기에 대한 이들의 해명

. 신으로 유출된 아이온(Aeon-영원히 존재하는 자라는 뜻)이 신에게서 멀어져 최하급에 달함

. 구약 성경의 신은 하급신이다.

. 그리스도는 최고 아이온이며 가현(假現)하였다.

. 구원은 물질의 구속을 해탈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감이니 소수이다.

. 속죄는 지식을 통해 완수한다.

. 인류는 선악의 혼합으로 삼분(三分)할 수 있다.

․ 심령적 인간 /정신적 인간

 


2) 교회의 분파

 


(1) 몬타누스파(Montanism) (62년, 67년 합동 강도사)

①기원-156년 프리기아(브루기아)의 몬타누스에 의해 시작됨(테르툴리아누스 분파)

②교리-구교와 일치함(성경은 전부 정경)

③목적-원시 기독교의 부흥

. 신앙보다 지식을 강조하는 사상을 반대(그노시스주의 반대)

. 엄격한 규율을 실시(千年王國說)

. 교회의 계급 제도를 반대(만인 제사주의)

. 금식과 고행을 장려, 재혼 금지, 금욕주의

. 세례 후 범죄는 무서운 것이라고 강조

 


(2) 노바티아누스파(Novatianists)

①분파된 원인

. 데키우스황제 시대(249-251)에 박해로 변절자가 많았는데 이들이 다시 교회로 들어오려할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로 의견이 갈라졌다.

. 로마 교회와 동방 및 서방 감독들과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관대히 대함

. 노바티아누스는 엄중히 계율을 지키게 할 것을 강조

. 로마 감독들은 여러 차례 회합하고 노바티아누스를 파면하고 변절자들은 적당히 회개시키고    받아드리기로 결정

②이들의 주장

. 신앙을 배반한 치명적인 범죄자는 교회에서 받아드릴수 없다.

. 그외 중죄는 우상 숭배, 살인, 음란 등이다.

. 죄목-․분파주의자로 교회 질서 문란, 분열 조성  / 이단 주장

. 이 분파는 7세기에 가서 자취를 감춤

 


(3) 도나투스파(Donatism)

①파생 원인과 주장

. 박해시 성경을 버린 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강경론 때문

. 범죄한 자가 속한 교회는 하나님이 떠났으니 제명하라

. 범죄한 교사에게 받은 세례는 무효라고 주장

②분파 과정

. 카르타고에서는 두파로 분열되고 두 감독이 세워지고 북아프리카는 분란이 계속됨

.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처음에 이단으로 규정했다가 33년에는 태도가 변하여 신앙과 예배의     자유 법령을 공포하고 카톨릭교회에는 관용 정책을 쓰도록 권유함.

. 330년에는 270명의 감독이 이 파에 속함

 


③교리와 주장

. 엄격한 교회의 규칙과 교인의 순결을 주장

. 세속적인 교직자를 배격함

. 교회 일에 세속 사람의 간섭 불허

. 감독 정치를 채택

. 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

. 개인주의로서 편협, 완고, 광신 상태로 흘러감

 


3) 마니교

 


로마제국 동방에서 3세기에 일어난 종교로서 그노시스파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그 근원이 동방이며, 서방으로 흘러와서 기독교와 접촉하는 기독교적 요소를 흡수하였다.

 


(1) 교조 마니(Mani, 216-276)

①페르시아 귀족의 아들로 19-24세 때 계시를 받음

②인도와 중국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많은 신도를 얻음

③페르시아 궁정에서 우대했으나 반대자의 미움으로 십자가에 달려 가죽 벗겨 죽임을 당함

 


(2) 교리 / 페르시아의 이원론(二元論)을 근거로 이 세계는 광명과 흑암의 투쟁장이라고 함

①인류는 악마가 광명국(光明國)에 친입하므로 생겼다.

②그러므로 인생이 돌아갈 곳은 해탈이다

③해탈하기 위해서는 금욕 생활을 하여야 한다.

. 입의 봉인-육식, 망언을 말라

. 손의 봉인-모든 악한 일을 행치 말라

. 가슴의 봉인-정욕과 악한 생각을 말라

 


(3) 조직 : 마니-12사도-70감독-교사-학생

(4) 전파

메소포타미아, 수리아, 팔레스티나, 이집트, 북아프리카, 스페인 등지에서 13세기까지 계속되었다.

 


13. 성경과 신조(信條)

 


1) 성경

 


(1) 성경의 집성(集成)

①초기 주일 예배시에 예수의 언행록(言行錄)을 읽음

②160년 전후 사복음서 종합 집성

③마르키온은 사도 서신(바울의 10서신)을 경전의 일부로 함

④테르툴리아누스 시대에는 이미 신약의 집성이 완료됨

 


(2) 무라토리 단편

①1740년에 이탈리아의 역사가 무라토리(Muratori)가 밀라노의 도서관에서 발견하였다.

②4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의 13개 서신, 유다서, 요한2서와 요한 계시록

③2세기 반 경의 것으로 추정

 


(3) 페시토(Peshito)

①2세기 중엽 이전에 에뎃사에서 만들어진 시리아(수리아) 어역

②4복음, 사도행전, 바울의 13서신, 히브리서, 야고보, 베드로 후서, 요한 1서가 포함

③유다서, 베드로 전서, 요한2 3서가 추가됨

④이레네우스는 야고보, 유다서, 베드로 후서, 요한3서를 인용치 않음

⑤클레멘스는 빌레몬, 요한2 3서, 베드로 후서, 야고보서를 인용하지 않음

⑥테르툴리아누스는 야고보, 베드로 후서, 요한2 3서를 인용하지 않음.

 


<요약>

 


정경(Canon)에 대하여

*신구약 66권이 정경

*희랍어 '카논'은 <곧은 장대> <지팡이>라는 뜻

*성경에는 <규례> <분량>이라는 뜻으로 사용됨(갈6:13,15,16, 고전10:13,15,16)

*교회가 Canon을 정경이란 뜻으로 시작한 것은 이 말이 애초부터 사랑의 신앙 행위를 규정하   는 원리라는 관념을 갖고 사용함

*신약 성경도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까지 쓰여지고 교부들의 서적에도 이 관념을 갖고 사용함

*Canon은 <표준> <근본원리> <근본적인 원리를 기록한 책의 목록>을 뜻함

*결정 시기-동방 교회가 382년 로마 전체 회의에서 정경 목록 작성, 295년 칼타고 회의에서   27권과 그 목차가 확정됨

*결정 기준 ․역사적 기준:사도적 권위가 있는가?

           ․내적 기준:그 감화력이 사도들의 것과 동일한가?

 


2) 사도신경

(1) 12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신앙의 표준으로 작성하여 베드로가 로마에 가지고 갔다는 전설에      의하여 <사도신경>이라고 함.

(2) 당시 수세(水洗) 후보자의 신앙 고백으로서 오랫 동안 사용되어 왔다(오늘의 것과 같지 않      음).

(3) 아리우스 등 이단이 일어남으로 정통 교리를 표시할 만한 문자를 넣어 381년에 전문이 완      성된 듯하다(콘스타티 노폴리스 회의)

 

 

 

14. 교회 정치와 역원

 


1) 교회 정치

 


(1) 교회 주권

①대도시 교회로 집중-탁월한 지도자와 경제적 풍부함으로 인하여

②교회는 구원의 조직체-교회 외에는 구원이 없다함

③감독의 권위-감독 없이는 교회도 없다하여 정권을 장악

 


(2) 지방 대회

①도시를 중심하여 지방 대회가 열림

②4세기 경에는 카르타고, 알렉산드리아, 로마 안디옥, 갈라디아, 엘베리스(Elberis), 아를        (Arles)등지에서 회집

③의장은 대부분 대도시 감독이 되고 간혹 연장자가 됨

 


2) 역원

 


(1) 직제

①초기-감독, 장로

②3세기 중엽-감독 1명, 장로단, 집사국

③3세기 후반-(안수직)감독, 장로단, 집사(비집사단), 부집사, 시승, 악마 조복사, 독경사, 수위    등

 


(2) 자격

①심신이 건전하고 도덕심이 견고한 자

②자기 교회에서 피선된 자

③30세 이상 / 단, 병상에서 수세자, 관직자, 군직자, 재혼자, 노예, 스스로 된 불구자, 수세                  후 중범자는 될 수 없음.

 


(3) 임직

①감독-지방 교회 평신도에 의해 선출-3명의 인근 감독이 안수

②장로 집사-교회와 교직자에 의해 선출-감독이 안수

 


(4) 권한

①대감독-그 지방 전 감독을 지휘하고 안수례를 행하고 2년 1차 종교 회의를 소집하고 의장이            됨

②목사-하나님과 사람의 중재자로 군림

③감독-교회 정치의 수반, 행정 관리, 집례, 설교, 종교회의 참석

④장로-통상예배 관리, 안수례 행함, 신도 교육, 종교회에서 감독의 상담 역할

 


15. 예배와 예전(禮典)

 


1) 예배

 


(1) 예배 장소

①초기는 개인집, 셋집, 회당

②200년 후는 특별한 건물에서 예배

③회당은 평행사변형으로 본당과 목사의 자리인 강단으로 설비

 


(2) 예배 내용(주일 회집)

①찬송-시편과 성경중 이사야 6장, 눅1:46-2:29, 마21:9를 노래함

②성경 낭독-사도가 쓴 예수의 언행록, 선지자의 글

③설교-회장이 간단한 말로 즉석 설교, 후에는 준비하여 설교함

④기도-총기립함

⑤성찬식-떡, 포도주, 물을 가지고 회장이 나누어 줌. 결석자는 집사를 통해 보내줌

⑥헌금-회장이 보관하여 고아, 과부, 병자, 곤궁한 자를 구제한다.

 


2) 예전(禮典)

 


(1) 세례

①수세전-기도하고 자주 금식(2년간)

②문답시-사죄에 관한 원칙을 알게 하고 구하게 함

③세례식-세번 침례함

④수세 후-일주일간 목욕 안함

⑤축일, 부활절-50일간 흰 옷 입음

 


(2) 유아 세례

①찬성-이레네우스, 키프리아누스

  반대-테르툴리아누스

②라틴 교회는 전반적으로 시행

 


(3) 부활절

 


①동방-유대인의 유월절(니산월 14일)

②서방-춘분후 첫 만월 다음 주일

③이를 통일하기 위해 158년 폴리가르푸스가 로마에 가서 타협하려 하였으나 에베소 감독과     이레오가 반대

④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통일

 


(4) 렌트(Lent)

①부활절전 1주간(고난주간)근신

②40시간 무덤에 머문 시간 동안 금식

③40일간 렌트(대제)로 지킴

④전야 철야, 세례 베품

 


(5) 승천일과 오순절

①부활 후 40일째는 승천일

②부활 후 50일째는 오순절

 


(6) 주현절(主顯節)

성탄절이 없을 때 예수의 세례와 그 출현을 축하하는 날임

 


16. 생활과 풍속

 


1) 박애와 자선

 


(1) 박해가 심하므로 성도는 단결

(2) 로마 감독 우르바누스 1세(223-230)는 걸인 없음을 확인

(3) 시리아(수리아), 아라비아, 가바도기아까지 원조

(4) 카르타고 질병시에 시체를 처리하여 전염병을 방지

 


2) 정결한 생활

 


(1)결혼은 인정하나 독신 남녀는 존경

(2) 이혼 후 재혼하지 못하며 재혼자는 파문

(3) 교직자는 장립 후에 결혼을 피할 것

3) 은둔 생활과 금식(수, 금요일은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음)

4) 순교자와 수절자 숭배

5) 장례식

(1) 화장하지 않음

(2) 과도히 슬퍼하지 않음

(3) 복상기 상복은 일반과 같음

(4) 죽은 자의 일용 기구, 장식품은 묘문에 장식 Ⅲ. 니케아 회의 시대(313-590)

이 시대는 A.D.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즉위에서부터 590년 그레고리우스 1세의 즉위까지를 말한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604년 그레고리우스 1세가 죽은 때까지를 경계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는 라틴 교부의 마지막 사람이며 첫 교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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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중세사
 
중세사

 


1. 서 론

 


1) 기간 

   313-590(최초의 세계적인 회합인 니케아 회의가 있어으므로 이렇게 부름)


2) 교리 논쟁

   박해 중에는 신앙 뿐이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나면서 교리 문제가 등장하고 신학자들이 많     이 나왔으며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이다.


3) 세계 대회

   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 세계 대회가 소집되었고 근본 교리가 재정되었다.

   교회 정치 분야에는 암브로시우스, 설교가로는 크리소스토모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등이 유명하다.


4) 교권 증진

   정치력이 쇠해 갈수록 복음 운동이 일어났다. 교회 지도자의 세력이 점점 강대해졌고, 로마     교황 세력이 강대해져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관직까지 소유하였다.


5) 수도원의 발전

   관직을 지킬 수록 교회는 속화되었고 여기에 반작용으로 금욕주의, 둔세주의가 성행하여 수     도원이 생겼다.


2.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1) 콘스탄티누스 대제 약사

(1) 288년 나이사스에서 출생, 아버지는 서로마 황제 클로루스(독신자), 어머니는 헬레나          (Helena)

(2) 서방의 부제(副帝)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의 아들로 용맹하고 싸움 잘함

(3) 부왕 사망후 서방의 황제 입후보자가 6명이었으나 막센티우스(Maxentius)와 싸워 이김

(4) 동방의 황제 리키니우스의 누이를 황후로 삼고 두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      를 공인함

(5) 동방 황제가 이교를 도와줌으로 싸워서 로마 제국을 통일함

(6) 337년 65세때 유세비우스에게 세례받고, 오순절날 사망.


2) 입신(入信) 동기

(1) 막센티우스와 로마 근교 밀위아 다리에서 전쟁할 때 태양위에 십자가와 <이것으로 이기       라>는 글자를 모든 군사들이 봄

(2) 그날 밤 꿈에 예수가 나타나 십자가를 보이고 이것으로 기장을 삼으로 하므로 그대로 하여      승리함

(3) 믿은 후에도 죄인이라고 세례받지 않다가 죽음에 이르러 세례받음.


3) 업적

(1) 교회 보호

①외부적 감독이라 자칭하고 궁중에서 연설함

②유세비우스를 궁중에 들이고 우대함

③이단을 멸하고 교회 통일을 도모


(2) 법률 개정

①고래(古來) 풍속 개량/

. 십자가형 폐지/

. 검투 폐지 /

. 축첩 제도 엄벌, 이혼에 제한을 둠

. 여자에게 토지 이외의 소유권 인정/

. 죄인 이마에 화인(火印) 금함

②교회의 법률을 국가가 공인/

. 교인간의 쟁투에 대한 교직자의 판결은 법률상 유효 /

. 대의회(大議會) 결의는 국가의 법률이 됨 /

. 교회의 법률에 대한 불가침 /

. 사죄, 감형 요구권을 교직자에게 부여함

③기독교를 위한 특별 법령

. 주일 휴업(법정, 군대)

. 교직자는 세금과 병역 의무 면제

. 박해시 몰수한 재산 반환

. 교회 재산 관리법 제정, 기부금 제도 공인

. 타종교의 잔인성과 불결한 행동을 금함


(3) 천도(遷都)


①332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

②이유

. 야만인과 페르시아인 제어 목적

. 새로운 기독교 수도 형성 목적

. 자기이름을 후세에 남기려고


(4) 결정-왕위를 빼앗으려 한다고 처, 자, 조카까지 살해


(5) 후계자

①세 왕자에게 제국을 분할

. 장남-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 차남-콘스탄스(Constans)

. 삼남-콘스탄티우스(Constantius)

②차남은 형을 죽이고 동생과 함께 나라를 차지함

③차남은 10년 후 자객에게 암살당함

④천하는 삼남에게 통일됨


<요약>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업적

․우상 숭배 금지

․이교 전당을 몰수하여 교회에 줌

․관직은 기독교 신자라야 함

․크게 부패하기 전에 일대 반동이 일어남


3. 니케아(Nicaea) 회의


1) 시일과 소집자 / 325년 5-6월, 콘스탄티누스 황제

2) 소집 방법

(1) 각지 감독에게 안내장을 보냄

(2) 각 감독은 장로 2명, 수행원 3명의 대동을 허락함

(3) 관용 주차 편의를 보아주고 체재비는 국고에서 부담

3) 소집 동기

(1) 부활절 일자 문제(동방은 유월절을 지키고, 서방은 주일을 중시했다.)

(2) 아리우스(Arius)설 때문에 교회가 분열될까 염려하여

①아리우스(Arius)

. 리비아인(현, 트리포리)

. 루키아누스(Lucianus-312년경 죽음)에게 사사(루키아누스는 당대의 일류 학자로 성경 해석    에 통달하였음)

. 알렉산드리아 장로로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음

. 키가 크고, 몸은 약하나 말이 명쾌한 이론가

. 열정적이며 금욕 생활을 통해 추종자가 많음.

②아리우스의 학설(그리스도관)

.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다. 참 신이 아니고, 같은 성품, 동격(同格)도 아니며 오직 은혜를 주어    서 세계 창조의 중개가 그리스도의 본분이다.

. 악을 택하셨으면 악행할 수 있었다. 선행함으로 상급을 얻는다.

③사건의 발달

. 감독 알렉산드로스가 삼일신(三一神)의 현현을 가르칠 때 장로인 아리우스가 이를 공격함.

. 320년 알렉산드리아 지방 대회에서 아리우스와 그를 찬성하는 애굽 감독들을 파면함

. 그 세력이 점점 확대되고, 각지로 다니면서 반대 연설을 함. 당시 유명한 니코메디아 감독의  . 동방에는 아리우스 설이 유포됨

. 황제는 스페인 감독 호지우스(Hosius)로 조정케 했으나 성공치 못하므로 이 문제 해결을 위    하여 회의를 소집함.


4) 회 원


(1) 유세비우스는 250명, 아타나시우스는 318명으로 기록 (아마 계산한 시일이 다르므로 차이      가 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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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학/교회사

쯔빙글리의 67개 조항


나 쯔빙글리는 영감되어진 것(theopneustos:즉 하나님에 의해 감동되어진)으로 불리는 성경의 근본(ground)에 대해서, 훌륭한 도시 쮜리히에서 이러한 67개의 조항내지 의견을 설교해 왔음을 고백한다. 나는 성경을 통해 이 조항에 대한 변호와 증거를 제시한다. 만약 내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면, 나는 수정될 준비가 되어있으나, 그것 역시 오직 동일한 성경으로부터 뿐이다.


1. 복음이 교회의 견진성사(confirm!!ation of the church)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2. 복음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자신의 무죄하심으로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속하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셨다.


3.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있게 될 사람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구원의 길이시다.


4. 하나님께로 향하는 다른 길을 추구하거나 지시하는 자는 누구든지 영혼의 살인자이며 도둑이다.


5. 그래서 복음 외의 어떤 다른 가르침에, 복음에 부여하는 영예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을 부여하는 자들 모두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며 복음이 무엇인지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6. 이는 예수님만이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에 의해 약속되어지고 주어진 선구자(Pioneer)시며 대장(Captain)이시기 때문이다.


7. 그분은 영원한 구원자시며 그분의 몸인 모든 신자들의 머리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분 없이는 그 몸은 죽은 것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8. 이러한 것들을 통해, 첫째로 이 머리 안에 거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지체(members)이며 자녀이다. 이것이 교회이며 성도들의 공회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우주적 교회(ecclesia catholica)인 것이다.


9. 둘째로, 마치 몸의 일부가 머리의 지시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자는 어느 누구도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10. 몸의 일부가 머리없이 무언가-눈물을 흘리는 것, 상처를 입는 것, 자신에게 자해를 가하는 것-를 할 때처럼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머리되신 예수없이 교만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할 때, 저들은 감각을 잃고 자신을 공격하며 어리석은 율법으로 서로를 짐 지우게 된다.


11.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그들의 허식(pomp), 출판 승인(imperiousness), 사회적 지위, 직함 그리고 법으로 구성된, 소위 교회적 전승(ecclesiastical traditions)들은, 저들이 머리를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광기(madness)의 근원임을 안다.


12. 그래므로, 미쳐 날뛰지만(rage on) 그것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시대에, 이러한 사실에 주의가 기울여져 왔다. 저들은 영원히 발광하도록 허락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머리되신 분에게 귀를 기울여 듣도록 의식이 회복되어질 것이다.


13.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곳에서, 그들은 쉽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배우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께 인도되며, 그분께로 개종convert)할 것이다.

 

14.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나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설교되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 최대한의 근면함을 나타내야 한다.


15.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함을 얻고, 믿지 않음으로 저주를 받는다. 이는 명백하게 진리가 복음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16. 복음 안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가르침과 전승이 구원을 위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배운다.


로마교황과 저들이 따르는 바에 대한 주의에 대하여(Notice, Pope What follow!)


17.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라는 것이 자신들을 대제사장으로 받아 넘기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예와 권능을 반대하고 심지어 거절한다는 사실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미사에 대하여(Of the Mass)


18. 단번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신 그리스도가 모든 믿는 자들의 죄를 위하여 드려진, 영원히 지속되며 효과있는 희생제물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미사(Mass)가 희생제가 아니라 한 희생제의 기념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선하게 행하신 구속의 인(seal)치심이라고 결론짓는다.


성인들의 중재에 대해서(Intercession of the Saints)


19.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시다.


20.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신다. 이점에서, 지금부터 영원히 그분의 중보외에는 다른 어떤 중재도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21. 땅에서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짐을 확신하는 방식으로 기도한다.


선행에 대하여(Good Works)


22.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義)이시다. 그래서 행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한 선한 것이지만, 우리 자신들로 말미암는 행위가 되는 한 그것은 의롭지도 선하지도 않다.


성직자들의 부(富)에 대하여(How the Prosperity of the Clergy Should Be Christ)


23.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부와 호화로움을 책망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위해서 부를 축적한 자들은 그들이 자신의 탐욕과 사치를 위해 그분을 구실 삼을 때, 심각하게 그분을 중상하는 것이다.


음식을 금함에 대하여(Prohibition of Foods)


24.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행할 의무가 없다. 그들은 아무 때나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치즈와 빵에 대한 로마 교황의 교서는 로마주의자들의 협잡(froud)임을 배운다.


축제와 순례에 대하여(Of Festivals and Pilgrimages)


25. 절기와 장소가 그리스도에게 묶여 있는 것이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에 속박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으로 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절기와 장소에 속박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합법적인 자유를 강탈하는 것임을 우리는 배운다.


두건 달린 수도복과 뱃지와 그와 같은 것들에 대하여(Cowls, Badge, and the Like)


26. 위선보다 더욱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것은 없다. 이러한 점으로부터, 인간들에게 그것 자체로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커다란 위선이며 파렴치한 것임을 결론짓게 된다. 따라서 수도승들의 외투, 뱃지, 바지, 그리고 그와같은 것들은 더욱 위선적이며 파렴치 한 것이다.


성직계급과 당파에 대하여(Order and Sects)


27.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서로 그리스도의 형제들이며 이 땅에서 어느 누구도 신부(神父)(father)라고 불리워 질 수 없다. 하물며 성직계급(orders), 당파(sects), 도당(cliques),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은 더욱 그러하다.


성직자의 결혼에 대하여(The Marriage of Clergy)


28.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거나 금하시지 않은 모든 것은 (행함에 있어-역자주) 적절한(proper)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결혼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한 것임을 배운다.


거룩하지 않은 설교자는 반드시 부인을 얻는가 대해서 (The Impure Priest Should Take a Wife)


29. 그들이 하나님께서 순결을 위해 결혼제도를 주셨음을 이해하였지만 결혼을 통해서 자신들을 성결하게 지키기 않는다면,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인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순결을 위해 그들에게 결혼제도를 주셨다.


순결(독신(獨身)-역자 주)에 대한 맹세에 대하여(Vows of Purity)


30. 순결의 맹세를 행한 자들은 매우 미친 짓이며 유치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그러한 맹세를 행한 자들이 경건한 사람들을 음탕한 자들로 간주한다는 것을 우리는 배우게 된다.


출회에 대하여(fo Excommunication)


31. 어떤 개인이 성도를 출교시킬 수 없으나, 규칙에 따라서 교회-즉, 출회당할 개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무리들의 공회-가 감독으로 시행할 수 있다.


32. 출회당해야 하는 경우는 공적인 추문(public scandal)을 일으킨 사람의 경우에만 해당한다.

 

소유주 불명의 물품에 대하여(Of unclaimed Goods)


33. 소유주 불명의 물품의 경우 만약 그것이 정당한 소유주에게로 돌려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성전, 수도원, 수도승, 사제, 또는 수녀에게 주어질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권위자에 대하여(Of Authorities)


34. 소위 정신적 재능(spiritual estate)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영예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일은 정당화 될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세속 권위자에 대하여(Secural Authority from God)


35. 그러나 세속적 권위자는 정당한 권력을 마땅히 가질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위들에 의해 이러한 점이 지지된다.


36. 소위 정신적 재능을 가진 자들이 권리를 가지고 또는 그 권리의 보호를 위해서 주장하는 모든 것들은, 만약 저들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세속적인 권위자에게 합당한 것이다.


37. 이러한 권위자들에 대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38. 권위자들이 하나님과 상반되는 어떤 것들을 명령하지 않는 한에서 그러한 의무가 있다.


39. 그래서 모든 세속적 법률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conformed) 제정되어야 하는데, 이는 심지어 압제받는 자들이 불평하지 않더라도 권위자들은 저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40. 오직 이러한 세속 권위자들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키지 않고서 사람을 사형집행할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직 공적인 추문을 범한 자들에게만 시행되어야 하며 이는, 그 추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른 판결을 (이미 기록되어진 성경을 통해서-역자주)주시지 않은 조건 하에서이다.


41. 만약 세상 통치자들이 하나님께서 책임감을 부여하신 모사들과 참모들과 함께 합당하게 임무를 수행한다면 통치자들은 그들에게 육신적인 생계를 제공해 줄 의무가 있다.


42. 그러나 만약 통치자들이 불신앙적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원리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하나님에 의해 대치될 것이다.


43. 요지는 이것이다. 가장 최고의 그리고 최상의 세속 정부는 통치자가 하나님에 의해 지배받는 곳에 존재하며, 반대로 자신의 마음에 따라 다스리는 통치자가 있는 곳은 가장 사악하며 위태로운 정부이다.


기도에 대하여(Of Prayer)


44. 참된 예배자는 사람들 앞에서의 커다란 소란함(fuss)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자이다.


45. 위선자들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도록 행하며, 현세에 자신들의 상급을 받는다.


46. 따라서 교회에서 헌신함 없이, 그리고 오직 자신을 위한 찬양으로 노래하고 외치는 것은 인간으로부터의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이익을 얻기 위해 행해진다는 사실이 뒤따른다.


실족에 대하여(Of Offense)


47. 그리스도인을 실족시키거나 치욕스러움을 주기에 앞서 그리스도인은 육신적 죽음의 고통을 선택해야 한다.


48. 이유없이, 우둔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타인을) 실족시키는 사람은 무엇이 참으로 죄악이며 또한 무엇이 죄악이 아닌지를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49. 사제에게 합법적인 아내를 갖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며 오히려 내연의 처를 갖는 것이 허용되는 것보다 더욱 죄된 것은 없다. 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인가?


죄의 용서에 대하여(Of the Forgiveness of Sins)


50. 오직 하나님만이, 오직 그분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용서하신다.


51. 이러한 권세를 피조물에게 돌리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강탈하여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52. 그래서 죄악을 용서받기 위해서 사제나 이웃에게 고백을 행해서는 안되며 단지 상담(counsel)을 목적으로 할 수 있다.

 

53. (출회를 제외한) 보속(assigned work of satisfaction)은 인간 상담의 산물이며 그것으로 죄를 없이 할 수 없으며 그들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부과되어진 것들이다.


죄를 속죄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The Sorrow of Christ Atones For Sins)


54. 그리스도는 우리의 고난과 곤고함를 당하셨다.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한 고행의 사역을 (성도에게-역자주)부과하는 자는 누구나 그릇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보류된 용서에 대하여(Withholding of Forgiveness)


55. 참회하는 자에게 죄 용서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이나 베드로의 입장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며 악마적이다.


56. 돈 때문에 죄를 용서해주는 자는 누구든지 시몬과 발람의 동류들이며 사탄의 진정한 선지자이다.


연옥에 대하여(Of Purgatory)


57. 참된 성경은 연옥에 대해 아무 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58. 이미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59.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알도록 하시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알아내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된다.


60. 만약 죽은 자들과 상관이 있는 자가 죽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한다면 그것에 대해 나는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시간을 정하는 것(사망의 죄를 위해 7년동안 기도하는 것)과 (그로 인한-역자주) 이익을 위해서 그 일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인간적이 아니라 악마적인 것이다.

 

성직와 서품에 대하여(Of the Priesthood and Ordination)


61. 최근에 고안되어진(invented) 성직 임명의 종류에 관하여 성경은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6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 외에 어떠한 사제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는다.


63.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 영예가 주어져야 함을 성경은 요구하며 이는 저들에게 육체적인 생계가 주어져야 함을 말한다.


악한 행실을 다루는 것에 대하여(Of Dealing with Misdeed)


64. 자신의 악한 행실을 의식하고 있는 자들에게 뭔가를 위해 고통을 주는 것이 요구되어서는 안되며 평안이 죽을 수 있도록 허락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저들이 교회에 남기게 되는 재산들은 그리스도인의 방식대로 관리되어야 한다.


65.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자신들의 악한 행실을 깨닫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다루실 것이다. 따라서 만약,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여 그 일이 무시되어질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저들에게 신체적인 상해를 가해서는 안된다.


66. 모든 영적인 지도자들은 겸손해야 하며 자신들의 돈주머니보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높이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멸망받을 것이다. 그 예가 십자가 위에 있다.


67. 만약 어떤 이가 나와 더불어 세금, 십일조, 세례받지 못한 아이들, 또는 견진성사(confirm!!ation)에 대해 토론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 대한 답변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궤변과 인간적인 지혜로 논쟁하도록 하지 말며, 성경으로 그 판단자를 삼으라(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살아 숨쉰다). 그러므로 그대가 진리를 찾을 수 있으며, 또는 만약 진리를 이미 발견했다면, 그것을 붙들 수 있게 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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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회사 (Church_History_Beginning)


 사도시대 ~ 사도 후 시대의 교회
 종교 자유 시대의 교회: 5대 교회의 형성
 로마교회 (서방교회)의 발전
 중세 전기의 교회 (750∼1054년)
 중세 후기 교회 (1054∼1300년)
 종교개혁 전야(前夜)의 교회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
 가톨릭 교회의 쇄신
 근대교회
 현대교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 1962.10∼1965.12)
 
  여러분이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세계교회사를 알아야 할 것이며, 세계교회사를 공부하는 동안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관계, 가톨릭과 동방교회와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교회가 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교(기독교)이면서도 왜 여러 교파로 나누어지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발전사, 그중에서도 특히 가톨릭교회의 발전사를 살펴 세계교회사를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어느 정도 알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국에서 가톨릭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 왔는지도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에 수용될 당시 사회적, 정치적, 사상적 여건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이를 용감하게 받아 들이고, 또 전할 수 있었던 우리 조상들의 구도모습과 한국천주교회의 발전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찾아 얻은 진리에 대한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더욱더 적극적인 신앙자세를 가다듬고자 한다.

1. 사도시대~사도 후 시대의 교회
  가톨릭교회의 역사는 30년경 유다교의 축일인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군중 앞에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구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러한 복음을 듣고 받아들인 이들이 사도들을 중심으로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를 형성하였는데, 초창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유다교 예배에 참여하였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유다교 종파 중의 하나로 보았다. 그러나 초대교회 신자들은 자신들만의 예배, 즉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거행하면서 베드로를 대표로 하는 사도단과 그들을 보좌하는 이들로 공동체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세주로 고백하면서 그분의 기쁜 소식을 열심히 전하였으니,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 밖으로까지 전파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이들을 그리스도교인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유다인들을 중심으로 전파되던 그리스도교는 차츰 그리스인, 로마인들에게도 전파되었으며, 사도들과 성 바울로와 다른 여러 제자들의 열성적인 선교활동 덕분에 로마제국 안에 있는 큰 도시들 대부분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는 유다인들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외국인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날로 커져 갔다.
  이들 초기교회 공동체는 아직도 유다교의 전통을 어느 정도 따르면서도 나름대로의 교리와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사도들이 죽은 후, 2세기로 접어들면서 주교를 중심으로 하여 장로(사제)와 부제들이 보좌하는 지역공동체(교회)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들 공동체들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교리문제를 해결하면서 급속도로 로마제국 안에 퍼지게 되었다. 교회가 발전하면서 로마 황제들과 잦은 마찰이 있게 되면서 2세기부터 4세기 초에 걸친 대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를 낳게 되었다.
 
2. 종교 자유 시대의 교회: 5대 교회의 형성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하던 교회는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밀라노에서 내린 칙령에 의해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이후로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 황제들의 호의적인 도움을 받으며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29년에 포고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였고, 이러한 국교시대를 맞이하여 그리스도교는 여러 분야에 걸쳐서 발전하게 된다. 이때 많은 수도원이 창설되어 영성에 대한 도움을 주었으며, 공의회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조직으로 등장하였고 신앙생활의 활성화로 인하여 전례가 발전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밖의 교리 논쟁 등은 여러 공의회를 통하여 해결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정통 가톨릭 교리가 정립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당시 로마제국 안의 큰 도시들에 세워진 교회들은 훌륭한 주교들과 학자들의 영향으로 전례와 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주위의 작은 지방교회들은 이 큰 교회들로부터 전례와 신학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어느 일정한 지역 전체에 영향을 행사하는 큰 교회들이 생겨났으니, 이들 교회들을 총대주교좌(總大主敎座) 교회라고 불렀다. 5세기에 이들 총대주교좌 교회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 예루살렘에 있었다. 이들 교회들은 서로 협력하면서도 각자 서로 다른 역사를 걸어가면서 발전하였다. 로마를 제외한 다른 교회들로부터 파생된 교회를 우리는 현재 동방교회들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다.
 
3. 로마교회(서방교회)의 발전
  5세기 중반기는 로마의 국경지대에 게르만족이 이동하면서 로마제국을 멸망시키자 그리스도교 자체도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본래의 사명인 선교 열의를 잃지 않고 영국에 선교사를 파견함과 동시에, 프랑스와 독일 지역의 새 주인으로 등장한 게르만족을 개종시켰으니, 이로써 고대 그리스 문화권과 게르만 민족이 융합하여 새로운 중세문화를 탄생시켰고,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고유한 민족적 특성을 지니면서 같은 신앙 위에서 일치된 중세기 그리스도교의 기원이 된다.
 
4. 중세 전기의 교회(750∼1054년)
  게르만 민족의 이동과 프랑크 왕국과 교황청의 융합이라는 과도기(450∼750년)를 거치면서 시작되는 중세기(750∼1300년)는 시대적으로 양분(兩分)될 수 있다.
  중세 전기에는 프랑크 왕국을 중심으로 서구 그리스도교 제국이 창설되었고 종교적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 교세의 확장과 교황령(敎皇領)의 탄생 등, 외적 발전이 이룩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로부터 물질적인 혜택을 받은 반면에 황제의 내정간섭을 받아 교권이 약화되고 교회가 세속화 되었고,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밀착되었던 프랑크 제국이 정치적으로 붕괴됨으로써 교회의 권위와 교황의 권한이 쇠퇴하는 교회의 암흑기를 맞게 된다. 암흑기 동안에 그리스도교는 처음에 로마 귀족의 지배를 받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교회 내정간섭으로 자율성을 잃게 된다. 아울러 성화상 파괴 논쟁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신학적 충돌을 하였고, 교리 논쟁 이후로 서방 라틴교회와 동방 비잔틴교회는 각기 다른 노선으로 발전하게 된다.
(1) 성화상 파괴 논쟁   동방교회들 안에서 5∼7세기에 대중 신심으로 크게 유행하였던 성화상 공경이 신도들을 우상숭배로 빠지게 할 염려가 있다 하여 성화상들을 파괴하는 운동이 100여 년 동안(726∼843년) 지속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제국 안에서 교회박해, 폭력사태, 정치적 혼란 등 사회소요가 야기되었다. 성화상 공경을 찬성하는 서방교회(로마교회)와 이를 금지하는 동방교회 사이에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843년 콘스탄티노플 교회회의에서 성화상 공경을 부활시킴으로써 성화상 논쟁이 끝났다.
(2)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결별(1054년)   남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교회의 영향력 행사를 둘러싸고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와의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1054년 서로를 파문하는 가운데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으니, 이후 동·서방 교회는 1965년 서로의 파문을 철회하고 화해하기까지 결별상태에 있게 되었다.
 
 
5. 중세 후기 교회(1054∼1300년)
  중세 후기에는 클뤼니 수도단체의 개혁과 그레고리오7세의 교회쇄신으로 교회는 세속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권을 회복할 뿐 아니라 세속권을 지배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개혁운동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각성시켰고, 평신도의 영성강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는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운동과 청빈운동에서 나타난다. 십자군운동은, 이슬람교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지순례에 불편을 느끼고 있던 중,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1세가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서방교회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교황 우르바노2세는 1095년 두 차례의 종교회의에서 서방 그리스도교 국가에 이를 호소하였다. 이때 동방교회를 돕기 위한 염원과 이교도로부터 성지를 탈환하려는 열망은 국가란 장벽을 넘어 서구 세계를 단결시켰다. 이 십자군운동은 대중의 종교적 운동으로 시작되어 몇 세기 동안 8차례 (또는 4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십자군운동은 그리스도교적인 목적을 위하여 일어났지만 기사들의 모험심, 명예욕 등의 세속적 동기도 있었다. 그리고 기사들의 활력은 비그리스도교적인 광포로 나타나 십자군 운동을 중세의 한 잔인한 현상으로 변질시키기도 했다. 십자군운동으로 인해 기사 수도회가 탄생했으며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와의 접촉이 가능했고, 학문, 특히 스콜라 철학과 신학, 예술의 발달에 이바지 한 점 등이 그 긍정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6. 종교개혁 전야(前夜)의 교회
  14∼15세기(1300∼1500년)에 있어서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중앙집권의 정치체제 또는 지방분권화의 정치적 상황으로 단일성을 상실하였다. 또한 교회는 일련의 대사건 즉 교황청의 아비뇽 환도(遷都)와 대분규(大紛糾, 西歐의 大離敎)로 인한 교황권의 약화로 말미암아 공의회 우위사상의 흐름 속에서 이단 운동이 발생하여 혼란 속에 빠졌다.
  프랑스인들이 교황으로 뽑히면서 그들이 프랑스의 아비뇽에 머무는 70여 년 동안(1305∼1377년) 교회는 중심을 잃고 크게 흔들렸으며, 교회 개혁 또한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로마로 다시 천도한 이후에 교회는 큰 위기를 맞게 되는데, 그것은 세 명의 교황이 선출됨으로써 서로가 자신을 정통 교황이라고 주장하게 되고 이로써 교회 전체가 분열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콘스탄스공의회(1414∼1417년)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렸고, 이로써 분규는 끝났으나 그 후유증은 오래 남았으니, 영성의 쇠퇴, 신학의 퇴보, 교회 쇄신 작업의 실패로 교회는 날로 흔들려 갔다.
  한편 일반대중의 신심생활은 매우 활발하였으며 이는 수많은 성당의 건립, 자선활동, 신심서의 보급확대, 모국어 성서의 번역, 새로운 신심의 번창에서 볼 수 있다(묵주 기도, 십자가의 길, 성지순례 등). 그러나 이 시대의 신심은 개인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현세적 두려움을 피하고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치중하여 미신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교회 안에서는 비난과 함께 개혁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기에 이른 것이다.

7.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수사신부이며 성서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대사(大赦) 남용에 대해 항의하면서 대사 교리의 재정립을 제의하기 위해 그의 교구장과 동료, 교수, 신부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에는 유명한 95개 조항의 신학명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정통신앙의 뿌리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그리스도교 교계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개신교)로 분열시키는 종교개혁 시대를 열게 되었다. 여기서 마르틴 루터와 대사남용에 대하여 잠시 살펴 보자.
(1) 마르틴 루터   아우구스띠노회의 수사신부(修士神父)였던 루터는 대사(大赦) 남용에 충격을 받고, 그는 1517년 교회의 관습대로 그의 교구장과 독일의 대사 시행을 책임진 고위 성직자에게 항의하는 편지와 대사의 남용을 논박하는 신학명제인 '95개항 명제'를 작성하여 보냄으로써 대사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분열의 원인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개신교 기원을 루터의 종교개혁에 두고 있다면 그 시발점은 바로 이 대사논쟁(大赦論爭)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는 사목자로서 설교를 통해 대사 교리와 구원론을 설명하면서 대사 설교가들을 비판, 신자들에게 대사 남용의 위험을 경고하였다. 그에 의하면 우리 영혼은 원죄로 인하여 완전히 부패하여 그 어떤 착한 행위도 우리 의지로 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는 의로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功德)이 병풍과도 같이 인간의 죄를 덮어 주는 것이므로 오직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만 있다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고신극기(苦身克己), 종교계율의 엄수, 고해성사, 자선사업, 덕행 등이 구원의 조건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그리스도의 자비에 대한 신뢰만 필요하며, '우리를 구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수한 자비만이 우리를 구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성서만으로, 은총만으로, 신앙만으로 구원될 수 있다고 요약하였다.
(2) 대사논쟁(大赦論爭)   죄를 범한 죄인은 고해성사를 통하여 죄의 잘못을 용서받고 영원한 벌에서 벗어났지만 자기 죄로 인해 생긴 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죄의 벌은 고해신부가 부과하는 보속의 실천을 통해서 탕감될 수 있고, 현세에서 보속을 하지 못할 경우 연옥에서 보속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한다. 대사는 교황이나 주교들이 줄 수 있다.
  이러한 대사제도는 초대 교회 박해시대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교회의 보속 규정에 의하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자신의 죄를 보속하는 속죄기간을 거쳐야 그에 해당하는 벌을 사면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박해기간 동안에는 이러한 규정을 지키기가 힘들었고, 후에 신자들이 다시 교회에 들어오는 데 일종의 장애 요소로도 작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특별한 경우에 주교들은 속죄기간을 단축하여 주기도 하였는데, 이 속죄기간의 단축이 대사의 기원을 이룬다. 그후 속죄기간의 단축이 아니라 속죄를 사면하는 관습이 생겨났고, 이는 이른바 대사의 원형이 되었다. 그후 십자군운동이 일어나면서 대사는 십자군에 참가하는 자나 십자군을 위하여 재산을 기부하는 자에게 주어졌는데, 이 대사는 십자군운동이 끝난 후에도 일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기부하는 자에게도 주어졌다. 즉, 이는 중세말 소위 '대사 설교가'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대사를 남용하면서 소위 '면죄부(免罪符)'라고 알려진 증서를 발매하기에 이른 것인데, 이것이 바로 루터의 95개항의 '항의명제(抗議命題)'가 나온 원인이다. 1506년 성 베드로 성전을 개축할 때 막대한 돈이 필요했으므로 교황들은 전대사(죄의 벌을 전부 사해주는 것)를 반포하고 신도들에게 재정지원을 청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대사의 반포가 너무나 자주 있었고, 그외에 대사 선전자들 주변에는 흔히 탐욕이 뒤따랐다. 그들은 이 대사를 기회로 잡아 돈벌이에 이용하였고, 그 폐단이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거리가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대사는 교회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오용되어 설교가들은 모금의 성공을 위하여 대사의 효과를 과대하게 설명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죄의 용서와 죄벌 사이의 구분이 불투명해졌고 무지한 신자들은 대사와 구원을 혼동하여 대사 부여를 약속하는 고해성사표를 곧 천국 통행증으로 오해하였다. 신자들은 고해성사표에서 강조하는 대사를 얻기 위한 내적 정화를 등한시하여 돈이면 구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대사 교리가 중세 말기의 지배적인 견해였고 여기에 근거한 대사 시행과 대사 판매의 행위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공식적으로 이러한 과장된 교리를 밝힌 적이 없었다.
  이에 교회 안에서는 잘못된 대사 시행에 대해 개혁의 소리가 높았고, 대사에 대한 본래의 의미를 재확인하여 공식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루터가 대사 교리에 대한 토의를 제기하기 위해 '95개항 명제'를 공표한 사실은 자연스러운 사건이라고 하겠으나 교회 안에서의 개혁이 아니란 사실이 지극히 아쉬운 관점이라 하겠다. 이와같이 루터의 사상과 대사 논쟁은 결국 루터의 파문과 함께 그리스도교 세계가 양분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프로테스탄트에서는 독일의 루터 종교개혁을 위시하여 스위스에서는 쯔빙글린의 종교개혁과 칼빈의 종교개혁, 그리고 재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영국에서는 국교회(성공회)가 탄생하였다.
 
8. 가톨릭 교회의 쇄신
  가톨릭도 15세기 초부터 교회 쇄신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던  중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자극을 받아 교회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교회 쇄신을 바라는 사람들이 공의회의 개최를 요구함에 따라 1545년 트렌트에서 공의회(1545∼1563년)가 개최되었으니, 여기서 타락한 교회에 대해 반성하면서 신학과 교리를 재정리하고 교회 규율을 혁신하였다.
  이 공의회는 종교개혁으로 혼란스러워진 가톨릭 교의를 명백히 하였고 교회 개혁을 추진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 공의회 이후에 가톨릭 교회는 교황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교황청을 중심으로 지방교회와 수도원에서 교회 쇄신이 일어났다. 트렌트 공의회의 개혁정신은 선교활동에서도 나타났는데, 종교개혁 이전까지 유럽의 종교로 머물러 있던 가톨릭 교회는 리베리아 반도의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신대륙 탐험을 통해서 세계 선교에 나선다. 그리하여 이제 가톨릭 교회는 동서양에 걸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적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기에 들어서 유럽의 가톨릭 교회는 세계의 여러 나라로부터 정치, 종교, 사상에서 정면으로 도전을 받게 된다. 특히 국교회 사상과 가톨릭 정통 신학을 반대하는 이단 운동인 얀세니즘(Jansenism), 그리고 계몽주의 사상도 가톨릭 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9. 근대교회
  18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는 외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다. 그 영향을 받은 가톨릭 교회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지역에서 점점 그 권위를 상실하게 되었고 세속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과 세속화는 교회가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교황청과 지방교회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이에 교회는 반가톨릭 국가에서 단결하게 되었고 국가지상주의와 국교회 사상에 강력하게 도전하는 운동, 즉 교황지상주의(敎皇至上主義)가 세력을 넓혀가게 되었다. 이에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상처받은 교황 권위를 회복하였으며 가난해진 교회는 근로대중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반교회적 요소들에 대한 대처방안과 이에 따른 교회법의 개혁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1869년에서 1870년까지 열리게 되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신앙과 계시의 속성에 대한 헌장과, 이성과 신앙 및 교황의 무류성과 수위권에 대한 헌장을 반포하였다. 레오 13세(1878∼1903년)는 1891년 '가톨릭 사회주의 대헌장' 또는 '새로운 사태'라 불리는 회칙을 반포하여 근로대중을 위한 사회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 회칙은 널리 유포되기 시작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운동을 어느 정도 저지하고 그리스도교 노동조합을 창설, 발전시키며 가톨릭 정신이 구현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그리스도교적 정당을 탄생시켰다.

10. 현대교회(제2차 바티칸공의회 1962.10∼1965.12)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우선 성직자 중심의 교회체제에서 벗어나 평신도의 지위와 사명이 부각되었으며 '평신도 신학'이 정립되어 성직자와 평신도가 교회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그리스도 공동체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세기 가톨릭의 중요한 사건은 교황 요한23세(1958∼1963년 재위)가 소집하여 교황 바오로6세(1963∼1978년)가 마무리지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다. 바티칸 성베드로대성전에서 개최된 이 공의회는 화해와 쇄신을 통해 교회가 인류의 복지와 평화와 구원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교회로 되기 위한 공의회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급변하는 현대세계에 적응하는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는 동시에 다른 그리스도교와의 일치를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다. 또한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도 폭넓은 대화의 길을 모색,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래세계를 향한 일치와 희망으로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론 : 그리스도 교회는 초기 사도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세계 안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온 인류에게 희망을 제시하며 생활해 왔다. 이러한 교회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박해와 이단사상, 그리고 분열의 고통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좌절하거나 후퇴함이 없이 더욱더 성숙되어 하느님의 사명을 실현해 왔다. 이를 통해 교회는, 하느님이야말로 세상과 교회의 역사를 이끄시는 분임을 고백하며 더욱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이웃과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를 위하여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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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회사 [敎會史, church history]  개요

 

교회사는 교회이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넓은 의미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그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총망라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좁은 의미로 말한다면 기독교회의 역사와 교리적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써 시작된 기독교회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교리적 발전과정은 교리사라는 이름으로 따로 부르기도 한다. 


교회사는 교회의 기원과 어떻게 일어나고 성장했다가 또한 어떻게 쇠하게 되었는지를 연구하고 조명하는 학문이다. 또한 교회사는 기독교의 외적인 팽창과 축소, 선교와 박해의 역사, 교회행정과 기강의 유형적인 조직, 교리와 신학의 발달, 예배, 다양한 예배의식과 예식, 기도문, 성시(聖詩), 성가, 경건의 표시, 윤리, 자선단체의 활동 등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연구하고 정리하고 체계화 한다. 그러기에 교회사는 교회를 통한 하느님의 역사(役事)와 사탄의 세력과 그 영향력에 의하여 펼쳐진 투쟁의 기록이며, 이에 대한 교회의 발자취라 할 수 있다.


교회사는 일반 역사 구분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시대적으로 크게 구분하여 연구한다. 


첫째, 고대 교회사.

이 시기는 그레고리우스 1세(주후 590년)까지의 처음 6세기 동안을 말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시기가 포함된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과 십자가의 죽음과 승천, 그리고 사도들의 활동 시대

② 박해시대와 콘스탄티누스 1세와 니케아공의회(325)까지

③ 교회와 국가연합시대, 교리의 공식화와 전(全)교회 공의회가 있는 시대(590)


이 시대는 유대 땅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로마에 전해지고 나아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전세계화 되는 시대이다. 이 때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사도 바울이다. 


둘째, 중세 교회사.

이 시기는 초대 교회 그레고리우스 1세로부터 시작하여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난 때(주후 590-1517년)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를 세분화 하면 다음과 같다.

① 선교시대 : 그레고리우스 1세부터 그레고리우스 7세까지(590∼1050). 이 때 교회는 북유럽과 서유럽의 켈트족·슬라브족·튜튼족에가지 퍼져나갔다. 이때에 다른 한 편으로 이슬람종교가 일어났다. 그리고 기독교회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로 나뉘게 된다. 

② 그레고리우스 7세부터 보니파티우스(보니파시오) 8세까지(1050∼1294). 이 때 일어난 일들이 이슬람 제국에 의해 정복된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는 미명하에 일어난 십자군 원정, 탁발수도회(托鉢修道會)와 스콜라철학의 대두, 대학과 고딕 건축양식의 발생, 이단 종파의 발생과 이에 대한 종교재판이 성행 등이다.

③ 교황권의 쇠퇴와 종교개혁의 징조가 보인 보니파티우스 8세로부터 M.루터의 95개조 논제가 나오기까지(1294∼1517). 이 시기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은 교황의 아비뇽유수(幽囚), 교황의 분립, P. 콘스탄스의 등장, 바젤에서의 개혁회의 개최, J. 위클리프, J. 후스, G. 사보나롤라, 베셀 등의 활약,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에크하르트와 타울러의 등장, 르네상스의 싹틈, 인쇄술 발달, 신대륙 발견 등이다.


셋째, 현대 교회사.

이 시기는 중교개혁(주후 1517년)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종교개혁의 바람은 다양한 교회와 교단들을 탄생시켰고, 독일의 합리주의와 영국의 이신론(理神論) 등이 출현하면서 성경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신학의 대두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간에 갈등이 생긴 시대이기도 하다. 세분화 하면 다음과 같다.

① 종교개혁과 로마 가톨릭의 반동시대(1517∼1648),

② 비국교도와 주관적 신앙심과 투쟁한 스콜라철학의 논쟁적 고백주의 시대(1650∼1750), ③ 합리주의와 종교적 부흥과 교회연합 시대(1750∼현재) 


<부가적인 설명>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 자체가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지으시고 섭리해 오시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겨 있으며, 신약시대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신앙사상들과 철학사상들이 발전하면서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을 그러한 사조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사도시대에 전승된 신앙의 내용들과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때에 역대 주교의 목록이나 교회의 연대기가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교회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가 광범위한 사료의 수집검토 후, 325년까지의 『교회사』 10권을 로마황제사와 관련시켜서 상술하였고, 그의 뒤를 이어서 그리스어권이나 라틴어권에서 교회와 국가를 동시에 다루는 관점에서 연대사 작성과 같은 연구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참회록”를 쓴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저서 “신국”을 통해서 이 지상의 국가의 개념과 하나님의 나라(신국)의 개념을 대비하여 역사적으로 묘사하였다.


중세 이전에는 교회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는 통합적 시각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은 때여서 주로 개개의 민족, 수도원, 주교구 등의 연대사가 중심으로 연구되고 기록되었다.


11세기 이후에 이르러서 중교개혁이 이후에 개혁운동이 전교회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교회를 전체적으로 보는 통합적인 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교회 전체의 연대사가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프라이징의 오토가 『양국사』 8권을 쓰고, 중세적 교회관에서의 벗어나고자 헸던 15~16 세기의 인문주의자들은 교회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점에서 연구하여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프로테스탄트의 플라치우스 일리리쿠스(Matthias Flacius Illyricus, 1520~75)는 고대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 루터파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의도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당장 반발을 불러왔는데, 종교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가톨릭 교회에 속한 바로니우스(Caesar Baronius, 1538~1607)는 더 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근거로 연구해서 1198년까지 『교회연보』 12권을 발표함으로써 일리리쿠스의 견해를 반박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학술적 교회연보작성은 역사가들에게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17~18세기에는 예수회의 보란두스 학파나 베네딕도(베네딕트)회의 마우리니 학파 등에 의한 광범위한 연보가 작성되고, 수많은 교회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고대, 중세의 연대사(chronicler)가 연구하는 당사자들의 견해를 다소 첨삭한 것에 비해서, 16세기 이후의 연보작성자(annalist)들은 사실에 가능한 한 충실하려는 객관성을 중시했다. 마빌론(Jean Mabillon, 1632~1707) 등의 마우리니 학파에 의해 고문자학, 고문서학, 연대학도 창시되어 방대한 교회보관문서에 대한 조직적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이들 연구를 토대로 19세기 전반의 독일에는 튀빙겐 대학의 뮐러(Johann Adam Möhler, 1796~1838)를 중심으로 일종의 역사신학이나 교회론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교황청이 신스콜라학파를 지지하면서 위와 같은 연구사조들을 위험시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교회사에 대한 연구는 프로테스탄트 측에 이어져서 연구자의 주관적 관점에서의 교회사 해석이 20세기 전반까지 유행하였다.


20세기 중엽 이후에는 신학계의 새로운 동향과 병행해서 교회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현대에는 교회사 역시 일반 역사학과 완전히 동일한 연구방법을 따라 연구되고 있다. 즉 교회는 무엇인가를 경험적(a posteriori), 실증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학문적 노력을 말하며, 이것은 이전의 교리신학과는 대조적으로 또다른 차원에서 교회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일종의 역사신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은 단순히 교회사라고 부르기보다 역사신학이라고 불러서 이론신학의 한 분야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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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정치  장로교회사


장로 정치주의자들은

계급적인 구조가 교회를 구성할 수도 없으며

교회의 본질이 될 수도 없다고 믿는다.

 

교회 구조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섬기기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로교도들은

모든 교회의 구성원의 만인 제사장직에 근거하여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장로와 장로 사이,

 교회와 교회 사이의 평등을 강조한다.

   

장로교회는 이와 같이 회중교회의 정치의 자율과

평등 사상을 수용하지만,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는 연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점이 장로교회와 회중교회와의 차이점이다.

 

또한 회중교도처럼 교회와 정부 영역을 구분하지만,

두 기관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두 기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돕는 기관이며,

그 권위는 서로 동등하다고 본다.

  

장로교도는 교회의 연합을 강조하지만,

영국의 성공회 교인이나

로마 천주교도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성공회나 로마 천주교회는 교회의 전통에 초점을 맞추고

니케아 회의 이전의 교회가 어떤 정치를 취하였는가에

관심을 두지만,

 

장로교도들은

성경이 어떤 교회 정치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둔다.

  

교회가 성경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교회를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 오덕교 <장로교회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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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장로교회사 프로테스탄트교회사

 

은혜의 왕국인 지상 교회는 불완전하여

사람들의 의견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교회로 나누어져 왔다.

 

크게 서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중심의 서방 교회와

러시아와 동부 유럽 중심의 동방교회로 나눌 수 있고,

서방 교회 가운데는 로마의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는 로마 천주교회와

루터의 개혁 사상을 따라 시작된 기독교회로 분류할 수 있다.

 

 

16세기 이후 일어난 기독교회는 장로교회, 성결교회, 감리교회,

루터파, 침례교회, 성공회 등의 수많은 교파가 있다.

  

교회는 다 같이 한 하나님과 성경을 그들의 신앙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다양한 교파가 생겨난 이유는

각 교회가 주장하는 교리적인 차이에 근거하는 것이다.

  

같은 성경을 믿으면서도 교리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교회들이 가지는 신학적인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신학적인 전제의 차이는 다양한 신학 운동과

교회 정치 형태를 주장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로마 천주교회와 루터파 교회는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권위로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전통과 이성을 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침례교회나 장로교회는

인간의 이성이 불완전하므로 신앙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오직 성경만을 최종적인 신앙적인 권위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교회와 장로교회가 나누이게 되는 것은

성경을 보는 입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장로교회는 신약과 구약 계시의 통일성을 주장하면서

구약이 신약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보는 반면,

침례교도들은 구약이 신약 안에서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신약의 권위를 더 강조한다.

 

따라서 장로교도들은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를 같은 은혜 언약으로 보지만,

침례교회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신학적인 전제의 차이로 인하여 다양한 교회들이 존재하며,

그에 따라 다양한 교회 정치 형태가 주장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지상의 교회들이 취하고 있는 정치 형태를

교황 정치, 성공회나 감리교회에서 볼 수 있는 감독 정치,

형제단이나 침례 교회가 채택하는 회중 정치와

개혁교회들이 받아들이는 장로 정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chw

 

- 오덕교 <장로교회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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