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사 [敎會史, church history]  개요

 

교회사는 교회이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넓은 의미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그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총망라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좁은 의미로 말한다면 기독교회의 역사와 교리적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써 시작된 기독교회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교리적 발전과정은 교리사라는 이름으로 따로 부르기도 한다. 


교회사는 교회의 기원과 어떻게 일어나고 성장했다가 또한 어떻게 쇠하게 되었는지를 연구하고 조명하는 학문이다. 또한 교회사는 기독교의 외적인 팽창과 축소, 선교와 박해의 역사, 교회행정과 기강의 유형적인 조직, 교리와 신학의 발달, 예배, 다양한 예배의식과 예식, 기도문, 성시(聖詩), 성가, 경건의 표시, 윤리, 자선단체의 활동 등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연구하고 정리하고 체계화 한다. 그러기에 교회사는 교회를 통한 하느님의 역사(役事)와 사탄의 세력과 그 영향력에 의하여 펼쳐진 투쟁의 기록이며, 이에 대한 교회의 발자취라 할 수 있다.


교회사는 일반 역사 구분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시대적으로 크게 구분하여 연구한다. 


첫째, 고대 교회사.

이 시기는 그레고리우스 1세(주후 590년)까지의 처음 6세기 동안을 말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시기가 포함된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과 십자가의 죽음과 승천, 그리고 사도들의 활동 시대

② 박해시대와 콘스탄티누스 1세와 니케아공의회(325)까지

③ 교회와 국가연합시대, 교리의 공식화와 전(全)교회 공의회가 있는 시대(590)


이 시대는 유대 땅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로마에 전해지고 나아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전세계화 되는 시대이다. 이 때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사도 바울이다. 


둘째, 중세 교회사.

이 시기는 초대 교회 그레고리우스 1세로부터 시작하여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난 때(주후 590-1517년)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를 세분화 하면 다음과 같다.

① 선교시대 : 그레고리우스 1세부터 그레고리우스 7세까지(590∼1050). 이 때 교회는 북유럽과 서유럽의 켈트족·슬라브족·튜튼족에가지 퍼져나갔다. 이때에 다른 한 편으로 이슬람종교가 일어났다. 그리고 기독교회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로 나뉘게 된다. 

② 그레고리우스 7세부터 보니파티우스(보니파시오) 8세까지(1050∼1294). 이 때 일어난 일들이 이슬람 제국에 의해 정복된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는 미명하에 일어난 십자군 원정, 탁발수도회(托鉢修道會)와 스콜라철학의 대두, 대학과 고딕 건축양식의 발생, 이단 종파의 발생과 이에 대한 종교재판이 성행 등이다.

③ 교황권의 쇠퇴와 종교개혁의 징조가 보인 보니파티우스 8세로부터 M.루터의 95개조 논제가 나오기까지(1294∼1517). 이 시기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은 교황의 아비뇽유수(幽囚), 교황의 분립, P. 콘스탄스의 등장, 바젤에서의 개혁회의 개최, J. 위클리프, J. 후스, G. 사보나롤라, 베셀 등의 활약,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에크하르트와 타울러의 등장, 르네상스의 싹틈, 인쇄술 발달, 신대륙 발견 등이다.


셋째, 현대 교회사.

이 시기는 중교개혁(주후 1517년)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종교개혁의 바람은 다양한 교회와 교단들을 탄생시켰고, 독일의 합리주의와 영국의 이신론(理神論) 등이 출현하면서 성경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신학의 대두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간에 갈등이 생긴 시대이기도 하다. 세분화 하면 다음과 같다.

① 종교개혁과 로마 가톨릭의 반동시대(1517∼1648),

② 비국교도와 주관적 신앙심과 투쟁한 스콜라철학의 논쟁적 고백주의 시대(1650∼1750), ③ 합리주의와 종교적 부흥과 교회연합 시대(1750∼현재) 


<부가적인 설명>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 자체가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지으시고 섭리해 오시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겨 있으며, 신약시대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신앙사상들과 철학사상들이 발전하면서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을 그러한 사조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사도시대에 전승된 신앙의 내용들과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때에 역대 주교의 목록이나 교회의 연대기가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교회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가 광범위한 사료의 수집검토 후, 325년까지의 『교회사』 10권을 로마황제사와 관련시켜서 상술하였고, 그의 뒤를 이어서 그리스어권이나 라틴어권에서 교회와 국가를 동시에 다루는 관점에서 연대사 작성과 같은 연구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참회록”를 쓴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저서 “신국”을 통해서 이 지상의 국가의 개념과 하나님의 나라(신국)의 개념을 대비하여 역사적으로 묘사하였다.


중세 이전에는 교회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는 통합적 시각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은 때여서 주로 개개의 민족, 수도원, 주교구 등의 연대사가 중심으로 연구되고 기록되었다.


11세기 이후에 이르러서 중교개혁이 이후에 개혁운동이 전교회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교회를 전체적으로 보는 통합적인 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교회 전체의 연대사가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프라이징의 오토가 『양국사』 8권을 쓰고, 중세적 교회관에서의 벗어나고자 헸던 15~16 세기의 인문주의자들은 교회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점에서 연구하여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프로테스탄트의 플라치우스 일리리쿠스(Matthias Flacius Illyricus, 1520~75)는 고대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 루터파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의도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당장 반발을 불러왔는데, 종교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가톨릭 교회에 속한 바로니우스(Caesar Baronius, 1538~1607)는 더 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근거로 연구해서 1198년까지 『교회연보』 12권을 발표함으로써 일리리쿠스의 견해를 반박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학술적 교회연보작성은 역사가들에게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17~18세기에는 예수회의 보란두스 학파나 베네딕도(베네딕트)회의 마우리니 학파 등에 의한 광범위한 연보가 작성되고, 수많은 교회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고대, 중세의 연대사(chronicler)가 연구하는 당사자들의 견해를 다소 첨삭한 것에 비해서, 16세기 이후의 연보작성자(annalist)들은 사실에 가능한 한 충실하려는 객관성을 중시했다. 마빌론(Jean Mabillon, 1632~1707) 등의 마우리니 학파에 의해 고문자학, 고문서학, 연대학도 창시되어 방대한 교회보관문서에 대한 조직적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이들 연구를 토대로 19세기 전반의 독일에는 튀빙겐 대학의 뮐러(Johann Adam Möhler, 1796~1838)를 중심으로 일종의 역사신학이나 교회론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교황청이 신스콜라학파를 지지하면서 위와 같은 연구사조들을 위험시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교회사에 대한 연구는 프로테스탄트 측에 이어져서 연구자의 주관적 관점에서의 교회사 해석이 20세기 전반까지 유행하였다.


20세기 중엽 이후에는 신학계의 새로운 동향과 병행해서 교회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현대에는 교회사 역시 일반 역사학과 완전히 동일한 연구방법을 따라 연구되고 있다. 즉 교회는 무엇인가를 경험적(a posteriori), 실증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학문적 노력을 말하며, 이것은 이전의 교리신학과는 대조적으로 또다른 차원에서 교회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일종의 역사신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은 단순히 교회사라고 부르기보다 역사신학이라고 불러서 이론신학의 한 분야가 되고 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