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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사 기독교의 수용과 성장

 

 

청일전쟁 이후 한국교회 들불처럼 성장

 

외래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전통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기독교의 수용(受容)은 아아(亞阿)제국의 다른 나라들과는 비견될 수 없는 특별한 경우였다. 기포드(Gifford)189691일자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본부에 보낸 서신에서 한국교회의 성장을 들판을 태워가는 들불(wildfire)’에 비유했다. 로이 쉬리어(Shearer) 또한 지역적 편차가 있었음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한국교회의 성장은 요원지화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것은 서양 선교사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고, 1910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IMC)에서도 한국교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비교할 수 없는 한국교회의 성장

 

개신교 선교사가 입국해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첫 10년간(18841894)고투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신자 증가율은 미미했다. 기독교에 대한 오해, 유가적(儒家的) 전통문화와의 갈등, 정치적 정황이 복음전도의 장애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도사라고 불린 노춘경(盧春京)의 세례(1886711) 이후 수세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886년 말, 수세자는 전국적으로 9명에 불과했으나 다음 해에는 25명으로 불어났다. 1888년에는 65, 1889년에는 100명에 달했다. 1890년 당시 11명의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해의 수세자는 장로교 119, 감리교 36명 등 155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895년부터 수적 성장이 현저해졌다. 1894년까지만 해도 신자는 불과 500명 전후로 추정되지만 1895년에는 746명으로 성장했다. 1895년에서 1896년 사이에는 2500여명으로, 18967년에는 3300여명으로 증가했다. 1900년에는 약 12000명으로, 1905년에는 26057, 1920년에는 92510, 1930년에는 125479명으로 성장했다. 민경배 교수는 1930년대 한국교회 신자가 38만명에 이르렀다고 분석한다. 물론 통계자료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국교회의 성장은 아아제국의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특별한 경우라는 점이다.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 선교사의 입국 이후 첫 10년간의 성장은 미미했으나 1895년 이후 급속한 성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세가 그 이후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낙준은 특히 1897년부터 1906년까지 성장이 뚜렷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있어 커다란 숙제는 왜 이때 갑작스런 성장이 나타났는가 하는 점이다.

 

청일전쟁, 그리고 기독교 수용

 

1895년 이후라는 말은 청일전쟁(18941895) 이후라는 의미인데, 이 전쟁이 기독교에 대한 인식 변화에 유효한 의미를 주었음을 알 수 있다. 1894725일에는 일본군이 남양만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 군함에 포격을 가함으로써 시작된 청일전쟁의 전장(戰場)은 우리나라였고, 우리의 주권을 침탈하려는 싸움이었다. 이때 조야(朝野)는 일본의 승리를 예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두 달이 못돼 일본이 승기를 잡았다. 816일 평양전투에서, 다음 날은 압록강 입구에서 청의 육군과 해군을 격파했다.

 

청의 패배와 일본의 승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곧 그 원인은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인식은 당시로서는 중대한 발견이었다. 조선의 조야는 이제 세계질서, 그리고 극동의 새로운 정세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점증하는 열강들의 야욕을 희미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민족적 자강(自强)을 이룰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서구와 손잡는 방법은 무엇인가? 당시로서는 기독교라는 통로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청일전쟁 이후 서양기술에 대한 인식과 기독교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런 것이었다. 소수의 엘리트 그룹의 기독교 영입론은 그 시대의 요청이었다.

 

기독교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

 

코리안 리포지토리(Korean Repository)에서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 가련한 조선인들은 고난과 불안의 와중에서 두 손을 뻗쳐 하나님을 찾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아직 미미한 서양종교로만 이해되던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일었고 청일전쟁이 끝난 1895년부터 신자 수는 급증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기독교는 서구문화의 도관(導管)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청일전쟁 이후 기독교에 대한 관심과 신자의 급증은 기독교를 통한 민족 자강의식의 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호주의 역사가 케네드 웰즈(K M Wells)자강 민족주의(self-reconstruction nationalism)’이라고 불렀다.

 

적어도 1895년 이후 1910년대의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기독교를 통해 민족적 자강을 이루는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또한 이런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1895108, 국모로 일컫던 명성왕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살해된 것은 단순히 한 여인의 죽음이 아니라 국가 변란을 시도한 사변이었다. 일본의 조선침탈 야욕을 선명하게 노출한 이 사건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였다. 이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의식은 서양문물에 대한 관심을 노출하였고, 고종은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기독교 집단 스스로 충군애국의 종교로 민족의 과제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교회성장은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고신대  이상규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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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목회연구] 복음전도와 제자도를 실천하는 교육목회

 

교육목회와 교회부흥
오늘날 교육목회는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느나 마땅히 지향해야 할 목표를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교육의 프로그램은 다양해졌으나 목표를 상실한 교육목회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신앙교육을 시행할 때 지녀야할 기본구조를 살펴보면 교육목회가 무엇을 긍극적으로 포함해야 하며 지향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1. 교육목회에서의 일차적인 목표인 복음전도의 실제
교회가 그리스도께 신앙서약을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전도의 관심을 갖는 것은 근본적 과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복음전도가 교회 천체의 사역이어야 하며 교회의 교육의 중요한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복음전도의 실체
1) 복음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라. 2)복음전도 대상을 정확히 이해하라 3)복음전도에 대한 책임을 져라. 4) 전한 복음 그대로 실철하라 5) 다양한 반응을 인정하라.
2.교육목회에서의 실제적 목표인 제자도 실제
최초의 신앙서약을 한 성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제자도로서 교육목회의 목적은 세계속에서 그리스도의 뜻과 가르침, 그리고 사랑 등의 가치들에 관하여 더 배우게 되는 것이다.
최근 제자도의 동향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교육목회에서 제자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를 향한 최초의 신앙서약을 함으로서 제자로서의 신분을 갖는 성도를 기본적 대상으로 한다. 둘째, 제자도는 신앙공동체에서 나오는 의무이며 과업이다. 셋째, 제자도는 전도와 선교를 성취함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복음전도의 실체
1)전한 복음을 지속적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라. 2)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복음에 반응함을 기억하라. 3)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전도하라. 4) 복음전도 대상자와 함께 하는 사람이 되라. 5) 강압적 분위기로 복음을 전하지 말라.
복음전도의 실체
3.결론 : 복음전도와 제자도를 통합한 교육목회를 실천하라
목회자들이 교육목회 사역에서 복음전도나 제자도를 실패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둘을 각각 독립적으로 시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복음전도와 제자도 그리고 그 교육방법들을 분리하여
교육목회사역을  계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은 복음전도를 위한 그룹과 제자도를 위한 그룹으로 성도들을 나누는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전도와 제자도의 통합적 차원에서 항상 교육목회를 계획하고 시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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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도


1.복음전도자들


복음전도자들은 직업적인 사역자들과 임명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육신하신 예수를 알았고 그의 부활후에 그로부터 명령을 받은 한 두명의 다른 사도들과 함께 교회에 의해서 보내어졌고 믿음의 은사를 받은 순회 전도자들에게 모두 적용되었다. 순회전도자들은 한장소에 오래 머물지 않고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을 입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고, 그래서 그들은 생활이나 메세지, 기독교인으로서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보증을 보여주었다. 또한 장로는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였는데 장로의 주된 사역은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므로 회원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발견하고 수행하도록 하는 일이며 주교는 복음전파와 성례전을 행하는 일이였다.

2.비공식적인 복음전도자들
초대교회 당시의 믿음은 비 공식적인 복음전도자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확산되었으며 특별히 노동자 계층에 전파되었다. 여인들의 탁월한 사역과 지속적인 헌신과 충성을 보게 된다. 예수를 따르던 많은 여인들, 오순절, 사도행전의 도르가, 루디아, 브리스길라. 밀림의네딸, 로마제국의 모미틸라의 질녀들이 복음전도자들로 전해지고 있다.

3.복음전도자들:그들의 삶은 어떠하였는가 ?
그들의 삶은 핍박을 당해도 양심을 깨끗하게 지키고, 그리스도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면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유지하였다. 또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는 인종, 성별,계층 그리고 교육의 장벽을 넘어섬으로써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코이노니아로 지칭되는 이단어는 세속적인 용법에 있어서 식사모임, 장례모임, 상인조직과 같이 공동활동을 일으키기 위한 조직된 비공식적 연합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로마인들의 생활에 잘알려졌기 때문에 로마법에 저촉되지 않았으므로 허용되었던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므로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이 되도록 노력을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기까지 출산의 고통을 치루었다. 그리스도와 만난 그들은 그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과 최고의 기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주는 이기쁨은 교회의 영원한 소유물이며 아무도 그들로 부커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약속을 믿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령께서 주신 기쁨으로 충만하여 고통속에서도 감옥에서도 순교하면서 기뻐하면서 찬양하였다. 핍박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선포하였다.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이것을 예수께서 가르친 죄에 대한 비타협정신이 초대교회에 깊게 뿌리박혔기 때무너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독교인으로서의 행위로 인하여 투옥되고, 산헤드린 공회앞에서 위험을 당할 때에도 소리를 지르거나 불평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료들과 함께 기도하고 부활의 주님을전파하였다.  그들이 메세지를 전파함에 있어서 역사는 능력으로 나타났다. 병고침과 귀신의 쫓아냄을 포함하여 기적을 행하였던 것이다.

결론)초대교회에 있어서 복음전도자들은 예수님이 메세지를 직접 들었고, 부활도 목격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도들과, 사도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사건을 목격한 많은초대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였다. 복음전파는 사실상 비공식적인 복음전도자들에 의해서 로마를 복음화 한 것이다. 복음전도자들의 삶은 깨끗하고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아 어떠한 고난과 압박속에서도 인내하고 능력을 보여주었다.

 전도방법
a.대중전도

1.회당설교 : 회당은 유대인들 사이에 복음전도를 위한 모판을 제공했다. 여기에 바로 기독교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회중이 있었다. 안디옥 회당에서의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대한 전도의 접근의 모델이였다.롤란드 알렌은 회당설교의 네가지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청중의 감수성에 대한 바울의 회유와 동정, 둘째는 바울은 어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진리를 선포하는데 용기를 보인다. 세째는 그의 청중들과 그들의 지력과 영적 필요성이다. 네째는 복음메세지의 진리와 능력안에서는 능력안에서는 주저하지 않는 확신이다.기독교 전도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설교자와 청중을 연합하는 공통의 기원과 공통의 신앙을 강조하면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종교는 새로운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그치이며 이스라엘의 역사의 열매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했다.

2.옥외설교 :회당에서 그리고 회당을 통해서 한 설교는 별도이지만 제자들은 옥회설교(open air preaching)에 있어서 그들 스승의 가르침을 따랐다. 즉흥적인 만남은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거나 모이는 사원지역이 효과적이였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예루살렘, 사마리아, 루스드라, 아덴등과 같은 곳에서 옥외설교를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유대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옥외설교는 결코 혁신적인 방법은 아니였다.
3.예언적 설교 :초대교회시절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 직접 직설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예언자들이 있었다. 예언은 어떤이들은 소유하고 어떤이들은 소유하지 못한 은사였다.  예언은 성령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는 조리있는 말이다. 초대교회 시절 예언은 사도직 다음으로 아주 귀하게 여겼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충동저거인 자극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고,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디다케는 이재능이 진심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경건한 생활이 중요함을 강조하기도했다.예언은 교회에서 계속되어졌다. 감독제도의 출현으로 예언이 쇠퇴하게 되었어도 예언적 기능을  주교들은 몰두하였다.

4.설교의 가치: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초대교인들은 설교를 하였다. 오리겐에 의해서 채택된 시편36편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우리는 설교자의 예를 볼수 있다. 설교는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도리어 실제적인 접근을 이루면서 행해졌다.

5.교훈적 전도:
기독교의 교훈과 철학을 가르치는 학자는 로마에서 져스틴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기전 철학강의를 하는 동안,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신앙에 관한 교훈을 하였다. 가르침과 전도의 이 혼합은 많은 지식인 층의 사람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이 방법은 지식인들로 부터 개종한 사람들로 부터사용되었느너데 이들은 안전하게 그리고 서서히 변증학을 썻으며 이들이 거물도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교도 하였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교훈적 전도는 에베소에 3년을 머물면서 전도를 하였던 사도바울과 같은 이에게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6.증언:메세지의 진리에 대한 개인적 증언은 기독교 증거의 절대 필요한 요소이다. 자신의 경험을 확신하고 증언했던 것이 이교세계를 전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증언은 2세기의 복음전도의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b.가정전도
가정의 편안한 분위기와 비격식성이 가정전도의 형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가정에서의 교회가 기독교신앙의 선파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가장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는 예루살렘의 마가라는 요한의 어머니가 소유하고 있는 집의 다락방에서 만났다는 사실이다.가정이  갖는 사회학적 중요성은 기독교 전진기지의 중심이 되었다. 가장은 개종으로 전가족을 기독교인이 되게 하였고, 개종한 부인의 거룩한 행동은 전 가족에게 감화를 주었다. 기독교 가장은 저녁 교제의 장소로, 성찬의 장소로, 철야기도와 예배와 교훈의 장소로 즉석 복음집회 장소로 그 가정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c.개인전도
예수 진리를 발견한 사람이 다른사람에게 그의 감명을 나누기 위해서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이 개인 전도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개인적인 만남, 방문을 통하여 전도의 기회를 활용하였던 것이다.

d. 문서전도

1.1세기의 변증서인 사복음서
예수에 관해 떠도는 이야기들과 이방인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데 사용된 문답식 단편들을 구성하려는 새로운 문학형태인 복음을 고안한 첫번째 사람이 마가였다. 그는 전기물을 쓰는 것이 아닐,예수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제자들이 그를 따른 증거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인것을 보여주기 위해 배열된 많은 증인들의 입술로부터 나온 증거로 쓰여진 신앙고백이었다. 마가복음은 철두철미하게 케리그마적이다. 요한은 예수와 그의 인격과 오신 목적을 '표적'을 선택함으로 강조하기를 원한다. 마태는 회개해서 신앙에 이르게 할 일차적인 호소보다는 오히려 신실한 가르침의 사역을 지지해 줄 자료를 주로 찿아 본다.

결론) 초대기독교인들이 세계를 복음화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들의 주무기로서 성경과 기도를 내세우며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사랑과 타오르는 열심과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순수한 우위에 근거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전도는 그들의 사명이였다.

 

 


 

 복음전도의 동기

1.감사의 태도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초대교인들의 생각은 신학적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그들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했거나 사회적인 공리적인 입장에서 한 것이 아니였다. 복음전도의 주요동기는 초대교인들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도 감사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의 보내심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목숨을 걸고 전파하였던 것이다. 초대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예수님의 사랑에 의해서 사로잡혔다. 그들의 삶을 이러한 사랑에 사로잡힘으로써 예수님을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복음전도의 사역은 하나님께 대한 자발적인 사랑의 헌신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의 복음전파의 설명을 하자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예수의 보내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인간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에 그 동기가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것이다.

2.책임감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두번째 요소는 항상 하나님앞에서의 그들의 고백을 따라서 사는 삶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들은 마지막날에 주님앞에서 부끄러움을 당치않기 위하여 진실하기로 결심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게 하는자가 되기를 힘쓰며, 주님앞에 섰을때 선악간에 그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보응을 받는다는 것이  사도바울의은 복음전도사역에 있어서 동기를 부여한 요소였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종에 대하여 보상을 베푸시지만 그러한 보상은 그리스도의 성품에 더욱 접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상은 은혜의 산물인데, 그것은 공로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초대기독고인들은 위대한 재판장이신 하나님앞에서의개인적인 책임감은 복음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 자신이 저주를 받을가능성에 대하여 두려워하였다. 기독교인의 봉사에 대한 동기로서의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바울이 제기한 문제의 미묘한 성격으로 볼때에 징계와 보상에 대한 교리는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니였다.

3.관심
복음화되지 아니한 인간의 상태에 대한 관심이 초대교회의 복음전도를 위한 숨겨진 원동력이였다. 사도바울서신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복음전도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초대교인들에 의해서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프로트렙티쿠스의 결론장에는 "나는 인간을 향한 사랑에 이끌리어 내가 하나님께로서 받은바 가장 큰 축복인 구원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의 이러한 독자들의 행복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도 켰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사도바울은 그자신이 에스겔이 그러했던 것 처럼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준비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귀를 기울이기를 거절하는 한 그들은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그들에게 경고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파수군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리스인의 삶의 유익성을 설명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론) 초대교회는 그들의  특징인 복음전도를 위한 열정을 불살랐는데 이것은  역사를 통하여  두드러진 현상이였다. 그들은 죽기도하고,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으며 공민권을 박탈당하기도 했고 재산이나 집이나 가족까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더구나 로마제국의 신에게 예배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죽음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와같은 정열과 비밀은 비천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전도에 있어서 책임감을 갖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역시 복음전도의 동기는 값없이 받았기에 값없이 준다는 것이고 사도바울과 같이 전하지 않으면 저주아래 있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사명에 의한 것이였다.


  전도전략
기독교 복음은 어느 곳에거주하든지간에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초대교인들은 그점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이점이 선교의 출발점이 되었다.하나님의 속성자체가 보편적 선교를 요구하신다.
1.지형   1세기에 지중해 연안의 문명화된 세계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효과적인 복음전파가 용이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볼수 있다.
로마제국의 자연적인 교통로를 따라 복음이 전파되었다. 기독교 확장은 지형적 요소가 전체전략에 있어서 중요하였다. 로마의 교두보는 모두 이용되어 복음이 주변국가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지형적인 요소는 기독교의 전도의 지역책략에 일익을 담당했다. 북음은 자연스런 교통로를 따라서 퍼져나갔던 것이다. 바울의 서신 운반은 교통로를 따랐고, 확실한 복음은 지리적 근접선과 도로망을 따라서 전파되었다.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주요한 전진로로서 로마제국의 길과 교역로를사용한 첫번째 사람들은 물론 아니다. 그들보다 먼저 유대인들이 이것들을 사용하였다. 기독교인들이 처음2세기동안 침투해 들어간 주요한 모든 지역에 유대인들이 그들보다 먼저 거기에 있었다는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다.
2.영향
1)사도바울의 목표
알렌은 그의 저서 "전도방법"에서 바울의 전도전략은 로마제국의 행정과 헬라문명과 유대영향과 상업요충지의  중심부를 선택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안에 대해 각각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지만 , 다른 면을 지적함으로써 현명하게 결론을 내린다. 그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고, 그가 멈추어야 하는 중심지가 아니라, 그가 시작해야 하는 중심지였으며, 생명을 고갈시켜야 하는 중심지가 아니라, 그곳으로부터 생명을 전파하는 중심지였다. 초대기독교인들이 세우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중심지였다.
2)사도바울의 선교전략
공동체의 지도자를 찿아가 복음을 전하는 정책을 바울은 취하면서 그들이 기독교인이 되면 그들을 통해 복음의 메세지가 더 넓게 퍼질 수 있도록 하였고, 사도바울의 전략은 도시중심적이었다. 에베소에서 했던 것 처럼 도시를 중심지로 삼고, 이처럼 도시를 선교전략의 중심지로 삼은 것은 로마의 방문으로 확실하게 결정되어 졌다. 또 동시에 지방적이며, 동시에 세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전체 구원 역사의 열렬한 도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세웠다. 이것은 전세계를 복음화하려는 바울의 비젼이였다.

3.종말론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가 초대교회의 복음전도에 있어서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초대교인들을 향한 설교는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선포와 만물의 마지막때에 있어서  외개와 믿음에 대한 도전으로 그절정에 이르렀다. 초대교회의 복음전도에 있어서 강력한 원동력은 종말론이였다. 종말론적인 기대는 복음전도를 위한 교회의 교리에 있어서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은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세기교회의 종말론적인 기대에 다양성속에는 구속하신 것들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깊은 확신이 있었다.

결론)사도바울은 도시중심적이며 동시에 개방적이며 헌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선교에 열정을 기울였다. 초대교회에 복음전도의 강력한 원동력은 역시 종말에 대한 소망이였다. 종말에 대한 잘못해석으로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종말에 대한 근본적인 확신에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종말론과 복음전도는 성령의 인격안에 떨어질 수 없이 연합되어 있으므로 지금도 온세계에 선교의 사역으로 계속되어지고 있다. 초대교회의 복음전도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역시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위에서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열정으로 싸여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킬수 있는 첫번째길이 복음전도이다. 이러한 것을 의무로 또 당연히 해야 할 일로 기억하고 산 초대교인들의 신앙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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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가 능력 있게 쓰임받은 20가지 이유

 

1. 가망성이 없었지만 은혜가 예비되어 있었다.
현재의 모습보다 내일의 변화된 모습을 예감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
무디가 능력의 도구로 쓰임받은 첫 번째 요인은  하나님의 은혜가 예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잘 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회심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2. 영적 비전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미래에 희망이 없다.
무엇보다 영적 비전을 발견하는 사람은  위대한 뜻을 이루는 축복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쓰신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3. 물질을 포기했던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물질보다 영적인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수입 자체보다 선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사용할 때 풍성한 은혜가 예비된다.
무디는 자신에 대해서는 매우 검소하였으나, 나눔의 삶을 풍성하게 살았다.


4. 성경 연구와 경건에 실질적인 투자를 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묵상과 기도로 경건의 연습에 몰두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을 가능성이 많다. 무디는 아침에 제일 먼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5.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았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높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깊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넓고 하나님의
사람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디의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6. 하나님의 은총으로 좋은 인물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사람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총이다.
복된 사람을 많이 만나도록 주님께 기도하라 또한 그런 사람을 원하기 전에 스스로가 복된
사람이 되어 주라.


7. 협력 가운데 충분한 신용과 능력을 쌓았다.
독불장군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반드시 협력자를 얻으라.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라.
그 위에 신용과 덕을 쌓으라. 무디는 인간 관계에서 상당한 신뢰를 쌓은 인물이었다.
무디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신임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그분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순수 복음에
입각한 연합을 위하여 진정 헌신하는 일꾼들을 찾으신다. 무디가 사역 가운데 절감한 부분은  
평신도 사역자가 매우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8. 겸손한 자세로 항상 배우려고 힘썼다.
겸손은 인간이 지녀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모든 사람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라.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할 줄도 알라. 무디는 자신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작은 은사, 작은 재능, 작은 지혜,  작은 수고일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작은 재능을 가졌을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배우며 개발하라.
하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겸손한 자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기를 기뻐하신다.
무디는 가족 앞에서든 동료 앞에서든 자신이 잘못을 했을 때는 즉시 용서를 구하였다.
비록 아버지지만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자녀들의 방으로 들어가 그들이 잠들기 전에 사과를 하였다.

그는 자신을 매일 성찰하며(자기대면)자신의 모습을 자주 성경앞에 비추어 점검해 나갔다.


9. 은사와 재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무디는 은사와 재능을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숨겨두지 아니하고 다섯 달란트 받은 종처럼
최선의 노력과 헌신을 다해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가진 은사와 지식과 재능이 얼마나 되느냐
보다 그것을 얼마나 선하게 적극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10. 그리스도의 심장, 즉 사랑을 소유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인물들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이다.
그는 분명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소유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


11. 복음 전도에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무디는 설교 중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강권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을 짓도록 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도 이와 같이 설교 후 이와같이 하고 있다. 무디의 열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열정이었으며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치는 열정이었다.
복음을 위해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무디의 열정을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사용하신 것이다.
충동 가운데 가장  희망이 있는 충동은 복음의 충동일 것이다. 복음에 충동을 받은 사람은 결국   
복음을 위해 살게 된다.


12. 기도의 사람이었다.
기도의 사람은 또 다른 기도의 사람을 낳는다. 기도의 사람은 맡겨진 사역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기도의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 있는 도구로 쓰임받는다. 그의 기도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13. 환난과 장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디는 어떤 분야든 진정한 영적 가치를 느끼고 열심, 열정,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목표를 성취해 나갔다. 그는 환난을 또 다른 기회로 삼았다.


14. 전폭적인 헌신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려고 하지 말라 한 가지 일에 전폭적으로 뛰어들라 전폭적인 헌신만이
자신의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그는 마치 고전 음악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또한 강력하게 이끌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15. 성령의 권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무디가 전도 사역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바로 성령의 임재 이다.
그는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성령의 임재 가운데 전해야한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권능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더 큰 일, 더 큰 능력을 구하는 자, 더 큰 능력을 지닌 자를 통해서 더 큰 일,

더 큰 뜻을 이루신다. 성령의  능력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열어 놓고 하나님의 능력을

전심으로 구하는 자에게 임한다.


16. 집회와 각 선교 활동을 철저히 준비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준비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준비 위에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도로 준비하는
자에게 더 놀라운 은혜를 예비하신다. 하나님은 준비된 도구를 사용하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도구인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무디는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도 무엇보다도 기도를 제일 중시했다.


17. 청중을 움직이는 설교를 했다.
누가 회중을 가장 잘 움직일 수 있는가 메시지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일 것이다.     
누가 회중을 가장 잘 변화시킬 수 있는가 성경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은 갑작스런 준비에 익숙한 설교자보다 평소에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묵상하며 준비해
둔 사람을 사용하신다.

 

사람들은 흔히 유창한  말이 사람들을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능력은 말씀 자체에서 온다. 무디는 다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할지라도 말씀
자체를 준비해 놓지 않으면 설교자로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디는 설교할 때 흥미로운 세상 이야기가 아닌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10:19) 


18. 최선을 다하는 달음박질이 있었다.
마라톤 경주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사람은 인내하며 전심 전력으로 달린 사람이다.
인생의 경주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사람은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는 사람이다. (딤후4:7,8)


19.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풍부한 인간성을 지녔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장점도 있기 마련이다.
그 장점을 개발하면서 그 위에 바다 같은 포용력을 갖춘다면 뛰어난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무디의 인간성은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무디의 장점 

① 영적인 지혜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②육체적인 건강을 받았다.
③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했다.
④탁월한 지도력과 특출한 지혜를 소유했다.  
⑤참신하고 독창적인 방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자였다.
⑥선교에 대한 열정이 강한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⑦그의 효심을 빼놓을 수 없다.


20. 신실한 믿음으로 복음 전도의 결심을 맺었다.
결실은 수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속한다.
진정한 평가는 하나님이 하신다. 단지 우리는 능력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무디의 비석에는 이런 성경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느니라”
출처 :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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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집회 /교회부흥을 위한 은혜의 시간 )

 

전도 방법 / 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1. 꿈꾸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바버라 케디(Barbara Cady)가 쓴  「차이를 만들어낸 200인의 얼굴」(Icons of the 20th Century)이 지난 해 여름 두 권으로 나왔습니다. 20세기에 분명한 차이(differences)를 만들어낸 그들의 공통점(共通點)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모두 꿈꾸는 자들입니다. 꿈을 위해 대가(代價)를 치른 사람들입니다. 이뤄지지 않은 꿈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꿈 때문에 실망하기도 하며, 너무 큰 꿈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꿈이 없다면 변화는 없습니다. 꿈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불신자 전도로 유명한 미국 오렌지카운티의 새들백 교회를 방문했을 때 비전에 대한 릭 워렌 목사의 이야기는 감동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전을 갖기 전 까지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목회자의 비전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꿈을 꾸어 줄 수 도 없습니다.

저는 꽤 큰 꿈을 가진 자 입니다”(Nothing happens until someone has the vision. A church never outgrows over the leaders. You cannot delegate. I'm a pretty big dreamer.”) 릭 워렌 목사의 꿈은 하나님의 인준을 받았고,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위해 꽤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21세기에 하나님께 더욱 크게 쓰임받으려는 우리 친교회의 꿈이 너무 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꿈을 이루기엔 너무나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무자비한 마귀가 들끓는 곳에서 일했고,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변화(變化)시켰습니다. 1

세기에 가장 강력한 변화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누가  세상을 변화시킬까요?

꿈꾸는 자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능히 우리들의 꿈인 복음전도와 제자훈련, 세계선교, 민족치유의 꿈을 이루도록 도우십니다. 

 

2.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열정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과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물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물론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고린도 전서 9장은 바울의 전도 전략(戰略), 열정(熱情), 정신(情神)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고전 9:24-27을 보십시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9:24-27).

  바울은 운동선수들의 헌신에 감탄했습니다. 선수들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모든 장애(障碍)가 되는 것을 버리고 포기합니다. 상을 타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김연아 선수는 하루 8시간을 연습했고, 개그맨들은 5분짜리 프로그램을 위해 일주일에 50시간씩 연습합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은 매일 15시간씩 연습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합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포기하고픈 유혹은 언제나 우리 모두의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중도포기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경주(競走)에서 돋보이는 사람들은 근성(根性)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영무’라는 악바리 축구선수가 늘 기억에 남고, 박지성 선수는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기관차’처럼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면서 기회를 만들어줌으로써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나이 든 선수들처럼 목회자들도 후반에 빨리 지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이 뛴 선수일수록 빨리 지치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인생경주에서 이기려면 끝까지 잘 뛰어야 합니다. 피로가 누적되고, 지치는 일들 속에서 끝까지 잘 뛴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 됩니다. 운동선수들은 전반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후반전에 강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끈기와 근성을 가졌습니까? 히브리서 12:1-3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근성 있는 믿음의 선수들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바울은 이 운동선수들의 근성(根性)을 자신의 영혼구원사역에 접목(椄木)시켰습니다. 바울의 정신은 챔피언이 되기 위해 권투선수가 링 안에서 펀치를 주고받으며 상대를 녹아웃을 시키려는 것과 같습니다. 허공을 치는 복싱은 안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장훈 선수는 이승엽에게 홈런에 욕심을 내라고 격려했습니다. 40개가 아닌 50개 이상을 쳐내라고 도전했습니다. 3관왕이 되라고 격려했습니다. 당당하게 꿈을 펼치라고 격려했습니다. 이승엽 선수는 자신의 슬럼프를 이기기 위해 매일 저녁 1천 번씩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는 2007년 봄 시즌을 맞기 위해 지난 해 보다 더 많은 훈련량을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바울의 어떤 점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

영혼구원과 제자훈련, 세계선교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죽기 살기로 뛰어든 헌신입니다.

하나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하는 거룩한 열정을 가슴에 불질러 주십시오!

  열정과 헌신을 불어넣은 것은 구령의 열정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이루려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죽도록 싸웠습니까? 무엇에 자신을 온전히 바쳤습니까? 고린도 전서 9:16-18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우리들이 설교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기도회를 인도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목회를 하며 정신적 혹은 육체적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우리들의 의무를 다 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무슨 상(償)을 바랄 것도 없습니다. 복음증거를 위해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목회적인 의무를 넘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복음전도의 거룩한 동기를 불어 넣어야만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직무태만(職務怠慢)입니다.

수해지역에서 골프를 친 정치인들이 당에서 제명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해가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권리와 자유를 희생했습니다. 바울은 먹고 마시는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바울은 결혼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고린도에서는 사례비 받는 것도 포기했습니다. 스스로 돈을 벌어가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유(自由)마저 반납했습니다. 종의 심정, 종의 대우를 받을지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기꺼이 종의 모습을 택했습니다. 고전 9:19을 보십시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하나님이 주신 영혼구원의 꿈을 이루려면 그 꿈에 다시 헌신(獻身)해야 합니다.

꿈이 이뤄지는 것은 자기희생(自己犧牲)에 달려있습니다.

얼마나 자신을 바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발작적인 희생이나 충동적인 헌신 가지곤 안 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내 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놓았습니다. 게으르고 무관심한 자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교회의 디딤돌이 되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희생이라는 씨앗을 많이 뿌려놓고 피를 많이 흘려야 우리들의 다음 세대가 거둘 열매가 많아집니다.

복음전도의 벽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0교회의 강점을 세상에 알리고, 후배들이 자랑스럽게 복음을 전하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아직도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3. 영혼구원을 위해서 죄짓는 것 빼고는 무엇이든지 합시다!

  바울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죄 짓는 것 빼고는 무엇이든지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이방인 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초문화사역자(cross cultural missionary)였습니다. 이것이 구령의 열정(熱情)입니다. 바울은 파선을 두 차례 경험했으나 다시 세번째 배를 타고 선교지로 나갔습니다. 바울은 파선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번 매를 맞아 고통을 겪었으나 매맞는 일이 두려워 복음전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양심의 채찍으로 맞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 속에 들어가 전도하기 위해 디모데에게 할례도 받게 했습니다. 영혼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번째 관심사입니다(마 28:18-20). 성령님이 오신 목적도 영혼구원입니다(행 1:8).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스가 사역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제 전부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전 영역을 주장하시게 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지난 해와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본위, 자기중심, 자기고집, 자아만족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우주의 중심, 만유의 중심, 교회의 중심, 사역의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의 삶에 변화가 왔습니다. 그는 항상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조차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서는 이렇게 달랍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렇습니다. 주어가 성령님입니다. 이전에는 베드로가 주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수동태입니다. 사도행전 15:28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베드로는 성령님의 동의하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과연 우리들을 몇 퍼센트나 소유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제 전부를 소유했습니다"라는 철저한 Lordship이 우리에게 일어나길 바랍니다.

  영국 국교의 억압과 핍박아래서도 요한 웨슬레의 열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노팅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노상강도를 만났습니다. 나는 그에게 전도했습니다.”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그의 구령의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설교하듯이 나는 다시는 전도할 수 없는 심정으로 설교합니다.”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짓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열정, 이런 정신,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꿈을 꿉시다! 교회들마다 부흥하는 꿈을! 교회들마다 성령님과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꿈을! 죄인들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꿈을, 구원받은 사람들이 성도로 세워지고 구령자로 변하는 꿈을 꿉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죄짓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합시다.

 

/함께 그리스도의 일꾼 된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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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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