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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이것은 고쳐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백성들이 받은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예전의 행위는 인간위주로 진행할 수 없고 반드시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 위주로 드려야 한다. 찬양예배, 새벽기도회, 가정예배 등과는 달리 예전의 절차와 행위를 요구하는 공적인 예배(formal service)인 주일예배는 깊이 있는 형식을 통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1. 예배의 자세 
개신교는 예배 시 말씀만을 강조하며 자세에 대한 것을 외면해 왔다. 예배의 자세는 초대교회부터 갖추어야 할 자세들을 철저히 강조해 왔다. 

1) 예배 시 예배자는 내 육신의 편안함보다 하나님 앞에 경건한 자세로 공경하고 경배하는 몸가짐이어야 한다. 이것은 예배하는 대상(하나님)에 대한 기초적 상식이다. 초대교회와 몇 세기 전까지의 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예배를 드렸다. 한국 개신교는 유난히도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다. 봉헌도 앉아서 하고, 성찬도 앉아서 받고, 영광송(송영)마저도 앉아서 하는 교회도 있다. 일어선 자세는 존경의 표시이며, 무릎 꿇는 자세는 경배, 기원, 애달픈 심정표현의 표시다. 앉아만 있는 자세는 예배자의 예배 참여가 결여되고 때론 졸음까지 유발해 예배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된다. 앉아만 드리는 예배는 인간편의만을 위한 너무 고급스런 발상으로 예배자들의 합당한 자세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송영-교독-신앙고백-주기도문 송을 서서 드림은 물론, 봉헌은 나아가서 드리고, 성찬도 나아가서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예배형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고에서 나오는 자세와 함께 회중들의 보다 능동적인 참여형식의 예배 형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2) 성단은 교회 내에서도 어느 곳보다 성스럽고 존엄한 곳이다. 예배순서를 맡아 성단에 앉아 있는 예배인도자, 설교자, 대표기도자는 성단의 존엄함이 실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발과 손을 벌리고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거나 심지어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안 된다. 발과 손을 모으고 겸손한 자세로 앉아야 함이 옳을 것이다. 성경에는 "높아지려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2. 드림의 예배 
현재의 주일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인간이 받기 위한 예배에 치중되어 있다. 내용으로 볼 때나 시간으로 볼 때나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내용'은 거의 없고, '인간이 받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을 위한 드림의 예배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받음의 예배인 것이다. 이것은 예배의 목적과 본질을 뒤집는 중대사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은 우선 하나님께 경배와 감사와 찬양과 봉헌과 참회를 드리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 나서 내려주시는 말씀과 성례와 축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일예배는 드림중심으로 속히 바뀌어야 한다. 


3. 성만찬 
우리 개신교의 예배형식은 한국선교초기의 시대환경 때문에 간략화 된 온전치 못한 예배형태가 계속 이어져 고착화된 것이다. 한국선교초기 목사의 수가 매우 적고, 평신도가 예배를 인도했던 시대의 불합당한 예배의 방법이 고착, 전래된 것이다. 얼마 전 또는 지금까지도 많은 신학대학에 예배학을 전공한 교수가 없어 기 배출된 목회자들도 위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선교사들이 임시적으로 행했던 예배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예배는 속히 온전한 예배로 회복해야 한다. 관행으로 생각 없이 지속하는 것은 사고가 어리거나 미개할 때 있는 일인 것이다. 예수님께선 예배에 관해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이(성만찬)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초대교회는 예배 시 매번 성만찬을 행했으며, 서구의 구교와 신교 모두가 옛적부터 지금까지 주일예배 시 성만찬을 이행하고 있다.(단, 북미의 개척시대 때만 제대로 행치 못함) 종교개혁가인 루터, 칼빈, 요한 웨슬레도 성만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은 성만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1년에 한두 번 성만찬에 참여하도록 한 관례는 분명히 악마의 농간이다. 주님이 제정하신 성만찬은 적어도 크리스천들이 매주 한 번은 참여할 수 있도록 거행해야 한다." 우리 한국의 개신교는 하루 빨리 매주 성만찬을 회복해야 하며 형식적인 성만찬이 아니라 예수님(성령님)을 만나는 감격스럽고 은혜스런 성만찬으로 바뀌어야 한다. 

4. 대표기도 
1) 주일예배 시 회중을 대신해 장로, 안수집사 또는 권사가 기도를 한다. 대표기도의 내용은 영광과 감사와 공의로운 기도가 주된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표기도 내용은 기도의 목적과는 달리 "주시옵소서"로 일관하고 있다. "주시옵소서"로 가득 찬 기도는 이 땅에 일찍이 뿌리내린 토속종교와 불교의 기도내용과도 같은 것으로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기도자를 위한 기도인 것이다. 대표기도 시 "주시옵소서"는 절제해야 한다. 

2)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목사, 장로를 "'목사님, 장로님"으로 칭해선 안 된다. '주의 종, 목사, 장로'로 칭해야 한다. 우리의 언어에서, 더 높으신 분 앞에서 높으신 분을 칭할 땐 '님'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어법인 것이다. 

3) 성령도 성령님으로 칭해야 한다.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은 삼위일체 동격이심으로 '성령께서'가 아니라 '성령님께서'로 칭해야 한다. 

4) 대표기도자는 말씀의 대언자가 아니므로 기도가 끝나면 순수한 평신도로서 회중석으로 내려와 설교를 경청하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5. 찬 양 
1) "찬송 드리겠습니다."와 "찬송 부르겠습니다."는 구분해야 한다. 찬송가의 내용분류에서 "송영, 예수 그리스도" 부분은 하나님,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사로 되어 있고, 그 외의 다른 찬송은 거의 모두가 우리가 은혜받기 위한 가사로 되어 있다. 우리가 은혜받기 위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찬송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인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은 "찬송 드리겠습니다."로, 우리가 은혜받기 위한 찬송은 "찬송 부르겠습니다."로 구분해야 한다. 

2) 찬양대의 노래나 특송자의 노래는 주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한 것이지 예배하는 인간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대의 노래와 특송자의 노래가 끝났을 때 우리에게 은혜로웠다할지라도 박수를 치는 것은 노래하는 사람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는 박수가 됨으로 삼가야 한다. 

3) 특송을 하는 사람이 회중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관습은 독창발표회에서 유래된 것이다. 특송은 하나님께 아름다운 찬송을 드리는 또 다른 봉헌과 같은 것이므로 특송자는 회중에게 인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4) 찬양대가 찬양을 하고 있는 동안 찬양대 정면에서 목사가 마주 바라보고 서 있는 자세는 목사가 찬양대의 찬양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찬양대원들도 목사와 눈이 마주칠 때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찬양대를 마주보고 서 있기 보다는 찬양대의 찬양을 받아달라는 기도와 설교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5) 찬양대 찬양은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사내용으로 된 곡으로 선곡해야 한다. 우리의 귀에 듣기 좋은 곡이라도 하나님께 영광돌림이 아닌 곡은 선곡되어선 안 된다. 

6) 주일예배의 준비찬송은 예배 시 정성이 모아지고 은혜로운 예배가 되도록 예배자의 마음에 와 닿는 은혜로운 찬송(복음성가 등)을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며, 예배 시의 찬송은 하나님 찬양을 위한 찬송을 중심으로 불러 무분별한 찬송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7) '성가대'는 '찬양대'로 불러야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찬양받기를 원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가대는 본래 찬양대로 불리웠던 것인데 한 출판사가 흑인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면서 표제를 성가곡집으로 하면서부터 성가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가대가 아니라 찬양대로 부르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6.목사의 가운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중요한 예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요 예식엔 예식에 맞는 특별한 복식을 갖추었는데 이것은 특별한 예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 출28:3에는 예배를 집례하는 성직자가 일상의 복장을 입은 그대로 성단에 오르는 것을 금한 적이 있다. 한국 개신교의 많은 목회자는 성의로서 '박사가운'이나 이와 유사한 가운을 사용하고 있는데 권위를 표시하는 박사가운과 성의인 목사가운은 구분되어 사용해야 한다. 주일예배 시 목사의 가운은 박사의 가운이 아닌 성직자가운을 입어야 하며, 교회력에 따른 색깔의 성직자가운을 입는 것이 보다 합당할 것이다. 

7. 헌 금 
헌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응답의 행위이며, 성도들의 의무행위다. 성경말씀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고, 구약에는 희생제물을 드리며 사람의 이름을 밝힌 곳이 없다. 봉헌자의 이름, 명목, 사연을 기록하는 것은 우리주변의 불교, 무속신앙의 시주행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헌금봉투에 헌금자의 이름과 기록된 사연을 예배 시 공표하는 것을 본 외국의 예배신학자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영수증의 성격으로 주보에 헌금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무방하나 예배 시 공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또한 헌금을 드릴 때는 앉아서 헌금바구니에 헌금을 넣는 것보다는 나아가서 드리고, 봉투에 넣어서 드리는 것이 높으신 분(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예의일 것이다. 

8.예배의 시작 
개신교의 예배는 유독 "다같이 묵도함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로 시작하는데 이 묵상기도 순서는 기독교예배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순서이다. 이 땅의 많은 종교행위에선 묵념을 일상화했는데 여기서 유래했다고 생각되며, 한편으론 예배 시작 전의 소란스런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선교사들이 만든 순서라고 생각된다. 선교사들이 선교시 이 땅의 옛 시대 환경에 맞도록 만든 것을 진리인양 고수하려는 보수성은 때론 비성서적인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다같이 묵도함…"는 "이제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모두어 하나님께 예배드리겠습니다."로 예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출처: 정장복 교수의 저서 「그것은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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