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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라마단 기간 안내 5월6일~6월03일

 

 

 

아랍어로 '더운 달'을 뜻한다. 천사 가브리엘(Gabriel)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로 여겨,
이슬람교도는 이 기간 일출에서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하고, 날마다 5번의 기도를 드린다. 여행자·병자·임신부 등은 면제되지만 대신 이후에 별도로 수일간 금식해야 한다.
이러한 습관은 유대교의 금식일(1월 10일) 규정을 본떠 제정한 것인데, 624년 바두르의 전승(戰勝)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달로 바꾸어 정하였다.


신자에게 부여된 무슬림의 5가지 의무 가운데 하나이며, '라마단'이라는 용어 자체가 금식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뿐만 아니라 담배, 물, 성관계도 금지된다.
 
중동지역과 기타 이슬람국가 여행시 알아야 할 점!

라마다 기간 동안 두바이 사막투어시 벨리댄스가 제외되오니 참조 부탁드립니다.
레스토랑의 경우 대부분 문을 닫긴 하지만 호텔 및 일부 식당은 영업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저희 현지직원의 안내에 따르시면 됩니다.
 

몰디브의 경우 관광객들의 식사는 전혀 문제없으며
다만 현지인들의 경우 저녁 7시 일몰 후 식사를 하기 때문에
한 낮에 한국식 인사로 식사했느냐고 물어보면 좀 어색해 질 수도 있습니다.
 
라마단은 매년 기간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슬람교는 이슬람력을 사용하는데 윤달이 없어
라마단이 매년 빨라진다고 합니다. 특정 기간이 되면 전문가들이 달을 관측하고 최고 종교
지도자가 라마단의 시작일을 공표합니다.
 
택시도 현지 운전자들이 이 기간에는 쉬기 때문에 잡기 힘든 기간입니다.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저렴한 식당들이 문을 닫기때문에
서양식이나 중국계 식당을 이용하시는게 더 편리할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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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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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교 아닌 기독교 이단’ 경계하되 긍휼 대상으로 이해
 불링거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는 교활하고 위선적 …
꾸란은 고대 교회 모든 이단의 거짓을 모은 것에 불과” 질타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종교개혁은 유럽사회가 로마 가톨릭교회 중심의 중세적 질서체제에서 근대적 민족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편 이 시기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을 향한 군사적 팽창과 영토 확장이 최고조로 달했던 순간이었다. 종교개혁의 여파로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고조되던 16~17세기는 오스만 제국에게 유럽으로 영토확장을 위한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종교개혁 직후인 1520년 오스만 군대는 헝가리를 침공하여 중부유럽을 장악했고, 여세를 몰아서 1529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오스트리아 빈까지 포위했다. 오스만 군대의 빈 공략은 유럽 전체가 공포에 휩싸일 정도로 가공할만한 사건이었다. 또한 이 무렵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떤 시기보다 고조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심지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기독교인들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이슬람의 유럽 점령이 가시화 된 것뿐만 아니라 이슬람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종교개혁자들 중에서 이슬람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루터, 칼빈, 쯔빙글리, 불링거와 같은 신학자들이 있었지만 가장 이슬람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이슬람 책을 저술하였던 신학자는 불링거(Johann Heinrich Bullinger, 1504~1575)였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로서 40년 이상 교회를 효과적으로 이끈 탁월한 지도자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신학자요, 설교자요, 상담가였다.

1.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이해

 

첫째, 불링거의 저서 <터키>(Der Tuergg)를 통해 본 이슬람

불링거는 1567년에 <터키>(Der Tuergg)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여기에서 터키란 당시 오스만 터키라는 의미와 함께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은 내용상 ‘이슬람’이라고 써도 무방하다. 이 책은 이슬람에 관한 불링거의 가장 중요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의 표지에 요한계시록 9장 16절과 17절을 실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 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그는 그 시대에 터키인들이 유럽으로 물밀 듯이 쇄도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루터처럼 어떤 종말적인 분위기를 느꼈음에 틀림없다. 책의 첫 장의 제목이 ‘이슬람의 신앙과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하여’이다. 그 책의 첫 문장을 “터키인들의 신앙은 무함마드의 신앙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바로 이어진 문장에서 그는 무함마드를 교활하고(listig), 비열하고(dueckisch), 위선적(glychssnerisch)이라고 특징지었다. 이 책의 둘째 장의 제목은 ‘기독교 신앙만이 참된 신앙이며 그렇게 남아 있다’인데, 첫 문장이 “한 마디로 하나의 오래되고 참되고 거룩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신앙이 세상의 시작부터 있었는데”라고 하여 기독교 신앙의 진리성을 천명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무슬림의 신앙과 삶에 대한 전형적인 비판이다. 특별히 불링거는 디모데전서 4장과 골로새서 2장을 인용하면서 무함마드와 그와 같은 교훈들을 심지어 ‘사탄의 교훈’(tuefeles leeren)이라고까지 불렀다.

 

둘째,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

불링거는 이슬람을 타종교가 아닌 기독교 이단으로 보았다. 그가 1566년에 펴낸 것으로 여겨지는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에서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면서 이슬람의 가르침을 ‘잘못된 가르침’(Irrlehren)이라고 하였으며 이슬람교도들을 가리켜 이단자라고 칭하였다.

뿐만 아니라 꾸란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삼위일체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특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유일한 중보자로서의 존재도 부정하는 이단이라고 생각했다. 이슬람의 이단성을 처음 연구한 사람은 현재의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살았던 비잔틴 신학자 요한네스(Johannes)였다. 그는 무함마드가 죽은 지 약 20년 후에 태어났다. 만수르(Mansour)의 명문가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이슬람군주 무아위야 1세(Muawiyah1, 602~680) 아래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무아위야 1세의 뒤를 이은 왕이 기독교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자 요한네스는 예루살렘 근처의 마르사바(Mar Saba)수도원에 은신하여 이슬람을 연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저술인 <지식의 근원> ‘제2부 이단에 관하여’ 에서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 이유는 “무함마드가 이단이였던 아리우스파 수도사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이슬람이 시작되었으며, 꾸란에서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며, 영으로 언급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단이다”라고 하였다. 불링거는 요한네스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셋째, 불링거의 꾸란에 대한 이해

불링거에게 꾸란은 고대 교회의 모든 이단들의 거짓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 꾸란의 기원을 하나님이 아니라 무함마드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더불어 꾸란에 담겨있는 이단적인 요소들을 지적하였다. 무함마드가 신에게 받았다고 하는 계시와 비전(Vision) 역시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꾸란은 이단 사제의 도움과 완고한 유대인과 잘못된 기독교인의 조언이 섞였으며 아리안(Arians), 마케도니안(Macedonians), 네스토리안(Nestorians)과 같은 이단들에 의하여 부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꾸란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유일한 중보자 되심도 부인한다. 이같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부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기독교 신앙의 주된 교리의 부인한다. 불링거는 금식, 기도, 구제, 알라와 이슬람을 위하여 싸우다 죽음으로서 모든 죄에서 해방된다는 교리를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무함마드에게 묻는다. 또한 영생, 예배, 결혼 등에 대한 꾸란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았다.

 

넷째, 이슬람 지배 아래서 기독교인의 태도

불링거는 1551년 헝가리의 이슬람 정권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헝가리 기독교 지도자들의 편지에 대하여 1551년 6월에 선명하고 원론적인 답신을 보냈다. 성경의 신자들이 사도시대에 우상을 숭배하는 로마제국 아래서도 살았으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의 통치 아래서 바벨론 포로가 된 상태에서도 살았다. 이러한 신뢰 속에서 불링거는 헝가리 신자들에게 예레미야의 가르침을 근거로(렘 29:7) 평안 중에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무슬림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특별히 불링거는 헝가리와 동유럽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우리 모두의 죄악과 관련된 것임을 밝혔다.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의) 회초리를 벌었다.” 불링거는 헝가리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슬람 종교로 인한 고통을 탓하기 전에 그들 자신들을 먼저 살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링거는 헝가리 교인들에게 핍박이 올지라도 하나님이 금지하신 이슬람의 신앙과 의식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불링거 역시 루터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침략을 하나님의 징계로 보았고, 이와 관련하여 헝가리 기독교인의 회개와 경건회복이 요청된다는 것을 편지에 언급하였다.

 

2. 불링거가 주는 교훈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견해를 다루면서 우리에게 주는 두 가지의 교훈이 있다. 하나는 분별의 척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기독교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많은 부분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이슬람에서 유일신에 대한 고백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대한 고백은 없다. 또한 우리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은 대속의 은혜인데, 예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대속이 없고 공덕에 의한 구원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기독교의 구원 진리를 심각하게 왜곡한 점에 있어서는 당연히 경계의 대상이다. 우리 시대에 그들이 아무리 미사여구의 평화의 말로 접근해 올지라도 그들의 정체를 바로 알고 경계해야 한다. 또 하나는 이슬람에 대하여 경계할 것은 경계하되 그들 역시 선교의 대상으로 여기며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불링거는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자들의 믿음과 삶에 대하여 보다 긍정적인 암시를 제공한다 즉 무슬림 또한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란 점에 있어서 긍휼의 여지는 있다. 특히 이 점은 불링거에게 있어서 돋보이는 점이다.

 

3.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적용

종교개혁 당시와 같이 다시 한번 21세기 거대한 종교로 우뚝 선 이슬람은 국제사회를 공포와 위협으로 압박하며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한국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구체화된 친 이슬람정책으로 인하여 작년 한 해 동안 이슬람 관광객 1백만 명이 우리나라를 다녀갔으며 할랄 시장의 확대 등 정부는 이슬람 인구를 맞이할 준비로 분주한 듯하다. 이슬람은 더 이상 중동의 종교가 아니다. 전 세계 이슬람 인구의 3분의 2가 아시아에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슬람 인구가 많은 나라는 국민의 80%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약 1억9000만) 두 번째, 인구의 96%가 무슬림인 파키스탄(약 1억7000만) 그리고 인구의 89%가 무슬림인 방글라데시(약 1억5000만) 등이다. 이 나라 이외에도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스탄 등 5개국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인력 송출국 속에 포함되어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 이슬람 인구도 성장하고 있다. 1956년 208명이었던 한국 이슬람인구는 1970년 3700명, 2009년에는 9만1000명으로 성장하였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이슬람의 도전 앞에 이슬람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에 따라서 더 이상 이슬람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밀려오는 이슬람의 도전 앞에 한국교회는 응전을 준비해야 한다. 이슬람이 세상을 뒤흔든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이해 위에서 세상을 보고, 교회의 역할을 권고했다. 지금 세대에도 동일한 눈을 가진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전진되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이슬람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이슬람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며, 이슬람을 무조건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루터나 칼빈, 불링거처럼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무슬림도 십자가의 능력으로 전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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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기도만이 이슬람과 영적전쟁서 승리하게 한다”
루터, 기독교 타락이 이슬람이라는 징계 불러왔다고 판단 …
칼이 아닌 개혁이 진정한 무기임을 강조했다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현재 기독교 안에 이슬람을 바라보는 네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혐오적으로 나타나는 이슬람포비아(Islam phobia) 입장이다. 이슬람포비아라는 말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으나 실제로는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 이후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둘째는 무슬림들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이슬람권 안에서 현지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그대로 따르면서 은밀하게 마음 안에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내부자 운동(Inside Movement)적 시각이다. 셋째, 다원주의(pluralism)적 입장이다. 두 종교가 서로 공존하기 위하여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통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똑같은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개혁주의적(reformism)입장이다. 이는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떠나서 기존의 기독교로 들어오라고 초청하는 입장이다. 이슬람은 진화론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개혁주의적 입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슬람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불편한 관계의 역사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A.D. 570년에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쿠라이쉬(Quraish) 부족의 하심가문에서 태어났다. 이슬람에 의하면 그가 나이 40이 되었을 때, 메카에서 2마일 떨어진 히라산 동굴에서 계시를 받고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쿠라이시 부족의 신(神)이었던 ‘알라’만을 섬기라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였다. 무함마드는 70여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그 가운데 직접 군대를 지휘한 것도 27차례나 된다. 무함마드는 칼을 들고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했다. A.D. 632년 무함마드는 62세로 메디나에서 고열과 폐렴으로 죽었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이후에 그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무슬림 세계는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서 비잔틴 기독교 제국을 정복해 나갔다. 10년 후 이슬람 군대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후 70년 동안 서쪽으로 진군하여 북부 아프리카 전체를 정복했다. 그리고 15세기까지 이슬람 군대는 이베리아 반도와 남부 이탈리아, 그리고 남부 프랑스와 지중해 서부를 점령했다.

 

오스만과 터키의 술탄 메멧 2세(Mehmet II, 재위 1452~1481) 때인 1453년에 고대 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됨으로, 비잔틴 제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메멧 2세는 여세를 몰아 발칸 반도 안으로 유럽의 중심부를 향해 터키 제국의 경계를 넓혀 나갔다. 1475년에는 크림반도(the Crimea)를 탈취하였다. 나아가 1500년에는 알바니아(Albania)를, 1512년에는 몰다비아(Moldavia)를, 1516년에는 루마니아(Romania)를, 1517년에는 몬테네그로(Montenegro)를 복속시켰다. 1517년은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34살의 나이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때다. 1529년 비엔나에서 그 걸음을 멈추게 되기까지, 이들은 계속하여 유럽 중앙으로 전진해 들어왔던 것이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이슬람 군대인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이 종교개혁의 다양한 배경을 형성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슬람에 대한 루터의 저서들

마르틴 루터가 이슬람에 대하여 최초로 언급한 것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그 다음 해인 1518년에 쓴 <사면의 능력에 대한 논쟁의 해답들>(Resolutione Disputationum de Indulgentiarum virtute)이다. 또한 서신 등을 통하여 이슬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이슬람에 대하여 써서 출판한 작품은 1529년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전쟁에 대하여>(Vom Kriege wider die Turken) 이었다. 그 후 루터는 터키군대의 움직임을 전해듣고, 또 하나의 작품을 출판하게 되는데,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군대설교>(Heerpredigt wider den Turken)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기도에 관한 훈계>(Vermahung zum Gebet wider den Turken). 이 작품을 총 세 번(1539년, 1541년, 1543년)을 썼다.

 

이와 함께 1530년 출판된 책 <터키의 의식과 윤리에 대한 책>(Libellus de ritu etmoribus Turcorum)의 서론을 썼다. 또 기억할 만한 것은 루터가 1542년에 편집 번역한 작품인데, 이 책은 1300년 경에 도미니칸 수도사인 리콜도(Riccoldo de Monte Croce)가 쓴 <꾸란에 대한 반박>(Confutatio Alcorani)이다. 본래 루터는 이 책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나, 그가 꾸란의 라틴어 번역본을 읽은 후에 이 책을 긍정적으로 보았으며 그 후에 루터는 이 책을 편집하여 번역하였다. 또한 1530년 헝가리의 게오르기우스(Georgius)가 출판한 <무슬림의 의식과 도덕에 대한 책>에서 루터는 ‘경건한 독자에게’(Lectori pio)라는 서문을 썼다. 이 책은 도미니크 수도사인 게오르기우스가 1480년 터키에 사로잡혀서 오랜 기간동안 노예로 있으면서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책이다. 루터는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책으로 여겼다. 이슬람에 대한 또 다른 작품의 서문이 있는데 1542년에 아랍어에 능통했던 취리히의 신학자 테오도르 비블리안더(Theodor Bibliander)가 독일어로 번역한 꾸란의 서문이다. 루터는 1543년 초에 나온 이 책의 서문을 썼다. 다양한 루터의 글을 통하여 루터가 이슬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슬람에 대한 루터의 이해

첫째, 루터는 이슬람의 침략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반대하고 있다. 유럽을 정복하려는 이슬람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루터가 반대한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난 기독교인들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슬람 군대를 보낸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슬람을 하나님의 채찍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루터는 이슬람을 향해 칼을 들고 벌이는 전쟁은 하나님에 대항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여기에서 루터는 ‘이슬람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통하여 이들을 징계하시고,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했듯이, 기독교의 타락이 이슬람이라는 징계를 불러 왔다고 본 것이다.

 

둘째, 루터는 이슬람과의 외적인 전쟁보다는 먼저 내부의 적(敵)인 ‘기독교인들의 부패와 타락’을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외부의 적인 이슬람보다 내부의 적인 교황청이 더욱 악하다는 것이다. 교황청의 사기꾼들이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이슬람 군대와 싸우도록 부추기는 것을 비판하면서, 이슬람 군대보다 내부적인 부패와 거짓과의 싸움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즉, 기독교인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회개가 이슬람보다 더 시급한 문제라고 루터는 보았던 것이다.

 

셋째, 루터는 이슬람과의 전쟁은 영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오스만 터키 이슬람 군대와의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사탄과의 전쟁이라고 확신하였다. 루터는 이슬람의 신(神)을 사탄으로 보았고, 이 영적인 전쟁은 기독교인들이 회개와 기도를 통해서만 승리를 거둘 수 있으며, ‘기독교인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슬람이라는 채찍을 빼앗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루터는 기독교인들이 회개와 기도로써 이슬람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넷째, 루터는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敵)으로 인식하였다. 1529년 이슬람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를 포위한 소식을 들으면서, 루터는 임박한 종말을 의식하며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터키인에 대항하는 군대 설교>에서 루터는 말세에 예언된 두 폭군을 교황과 이슬람으로 해석하고, 다니엘서 7장의 4번째이자 마지막 짐승을 로마 제국으로, 열 뿔을 제국 내의 나라들로, 그리고 뿔들 사이에 있는 ‘작은 뿔’을 이슬람으로 이해하였다. 교황을 “위선의 가면을 쓰고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적그리스도”로, 이슬람을 “선하고 정결한 덕목을 지닌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계략을 가진 적그리스도”로 이해했다.

종교개혁 당시의 이슬람 군대의 침략은 온 유럽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족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루터는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신학적, 정치적 눈을 가지고 교회와 세속권력이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조언한다.

 

이 조언은 지금의 한국교회에게도 유용하다.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는 루터의 조언에 따라서 내부적으로 말씀과 거룩을 따르며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싸움은 루터의 견해처럼 영적인 전쟁이다. 따라서 회개와 인내가 그 모습이 되어야 한다. 만일 힘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교회가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세속정부의 영역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역할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혼돈될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사랑의 모습으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가 발전하고 융성했던 곳들이 이슬람으로 대체된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가 변질되고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이슬람이 몰려왔고, 그에 대항할 만한 능력을 상실한 채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는 그 주권을 이슬람에게 내어 주고 말았다. 중동이 그랬고, 유럽이 그 길을 가고 있다. 우리 곁에 이슬람이 다가오고 있다. 이 중요한 시기에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다시 개혁을 논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이슬람으로 인하여 종교개혁을 가속화시켰던 마르틴 루터의 말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내 말은 이슬람에 대항하여 싸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자비로우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더 개선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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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기독교와 차이점은

 

 


이슬람, 기독교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며 차이점은 무엇인가를 알아봅니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무함마드가 단독으로 22년 간 받았다고 하는 계시로서 기독교 신약성서의 약 4/5에 해당하는 분량이며, 성경의 많은 각색된 이야기들과 움마를 위한 규범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꾸란에 있는 많은 성경의 내용들이 성경의 내용과 다르게 기술되어 있기는 하지만 예수에 대한 언급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며 가장 위대한 예언자들 중의 하나로 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이 대립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슬람이 예수에 대하여 굉장한 존경을 갖고 관대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에 도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물론이고 부활사건을 부인한다. 그러기 때문에 대속의 원리가 이슬람에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 말미암아 두 종교는 평화의 종교보다는 폭력의 종교 모습을 띠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두 종교 간 대립의 결정적 요인이기는 하지만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유일신교의 근원을 볼 때 왜 같은 하나님을 두고 서로가 싸우는가 하고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혼란은 결국 예수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믿음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고, 이 문제가 해결 되지 않음으로써 이슬람권 선교에 나섰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슬람을 더 알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이 이슬람의 도전에 직면한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과 그 성경이 지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에 혹은 누구에 대해서’ 아는 것과 ‘무엇 혹은 누구를’ 아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슬람에 대해서 알되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 바라며 두 종교의 유사점이 무엇이고 다른 점이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자.

우선적으로 보면 두 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사상은 시간에 대한 것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창조 신앙으로서 세상의 처음과 종말사상을 지니고 있다. 창조의 과정이 다르게 기술되어 있기는 하지만 직선적 시간 개념이나, 시간을 비롯한 모든 것의 주관자가 창조주라는 사상은 인간의 죽음과 부활 심판과 연결되며, 유일신 사상에 근거한다.

유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와 이슬람이 유일신 종교로서 모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그 뿌리의 공통성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고대 근동 지방의 다신론적 상황에서 아브라함의 소명은 유일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 방법이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그는 만물의 주권자시라는 것이 유일신 종교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이다.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통로가 될 것임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기독인들은 믿는다. 바로 이것이 세 개의 유일신교가 대립하는 이유가 된다.

유대교는 아직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본질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거부한다. 따라서 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유일신 사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다신론자 혹은 불신자라고 비난한다. 유일신(타위드라) 사상은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며 모든 교리와 사상의 근거가 되는데, 무슬림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했다면 이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슬람에서 알라(기독교 하나님과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표기하겠다)는 완전한 초월자이며 아무도 그를 알 수 없다. 알라와 인간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다(무슬림들 이름 중에 압둘라는 ‘알라의 종’이라는 뜻이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종의 행위에 따라 상과 벌이 주어지는 관계이다. 그런데 기독인들은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른다. 절대 초월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 예수 그리스도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고 그의 상속자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관계인가?

무함마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알라를 예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슬림들의 행위는 알라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행위이든 정당화된다. 심지어 인간은 알라를 위해 죽고 죽일 수 있다고까지 한다. 필자는 어떤 무슬림 학자가 ‘이슬람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죽고,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정확한 지적이다. 알라의 영광이라는 명분으로 죽고 죽임을 서슴지 않는 극단적 무슬림들을 보라. 이런 알라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본래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사 인간을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히 비교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랑의 차이를 알면 기독인으로서 이슬람을 대할 때 어찌 흔들림이 있겠는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런 이해와 더불어 결정적으로 두 종교 간에 다른 점은 죄와 구원관이다. 이것은 인간이해와 관련된 문제이다. 아담의 선악과 사건을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실수로 이해한다. 이런 실수는 죄가 아니고 인간의 연약성 때문이므로 인간이 실수를 하지 않도록 알라는 인생 가이드북의 결정판인 꾸란을 보냈고, 꾸란이 지시하는 대로 지키기만 하면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원죄를 찾아볼 수 없고 원죄를 없애줄 대속의 개념도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기 죄는 자기가 선행으로 갚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은 행위의 종교가 되는 것이고 무슬림들이 다섯 가지 실천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슬람은 전적 타자(他者)에 의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구원관과는 완전히 다른, 자력 구원의 개념을 함의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아담의 불순종을 원죄로 이해한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없이는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인간 안에 있는 자기 내재적인 죄성을 보고자 하는 가난한 심령이 아니면 이해 할 수 없는 대속의 원리다.

이슬람 지역의 사람들은 누구나 무슬림으로 태어나서 그들이 전수한 신앙 외의 다른 것을 생각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모로코의 여성 정치 사회학자 파티마 메르니씨는 이슬람 세계의 가부장적 역사와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 자신이 무슬림인 것은 이슬람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지 자신의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한바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근본적인 비판, 즉 꾸란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신성모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서 자기정체성의 문제는 비단 메르니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자신의 인격적인 결단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움마 내에서 이슬람을 따르고 있지만, 고넬료 처럼 갈급한 심령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없이는 궁극적 평안을 어떤 종교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 선교에 대응하여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슬람의 선교전략으로 인해 과거 기독교지역이었던 서구유럽지역이 이슬람화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인구의 10% 이상이 무슬림이고, 러시아와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도 무슬림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그러면 그 사회에서 이슬람법 적용이 요구될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도 기독교의 안전지대가 더 이상 아니다. 소위 일류학교 캠퍼스마다 무슬림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은 향후 이슬람 학교에서 중요한 지식 인적 자원으로 사용되기 위해 준비 내지는 완료한 상태이다. 무슬림들이 자기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선교하는 것을 방해할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일은 적어도 막아야 하지 않은가? 이슬람으로 기독교인들이 개종하는 이유는 대부분 교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인데, 만약 기독인이 바른 신앙관을 갖고 있다면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본 두 종교가 비슷한 점을 든다면 바른 기독교신앙관이 없는 이들은 쉽게 이슬람으로 개종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 신앙이나 유일신관은 이슬람교 전파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한 한국 무슬림 학자들이나 무슬림들이 한때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성공시대의 영웅주의적 교회 교육을 중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성경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무슬림들에게 아름답고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인 기독교 공동체를 보여줌으로써 그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질문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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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교도와의 대립과 이슬람교의 확립

 


메카 후기 메디나 초기 이슬람 법은 유태교도나 기독교 및 다른 일신교도에 대해 종교상의 관용을 베풀었다. 모하메드는 자기에게 계시된 것이 자기 이전의 일신교 예언자들에게 내려진 계시를 확인하는 것이라 믿어, 유태교도를 계시받은 경전의 백성으로 생각, 그 신앙을 유지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일신교도들도 자신을 예언자로 인정해 줄 것으로 예상한 결과이다. 메디나로 이주한 모하메드는 처음 유태교도와 맺은 협약인 <메디나 헌장>으로 유태교와 이슬람공동체인 움마의 공존을 인정했다.


또 유태교의 제도를 채택하여 메디나 초기시대엔 이슬람 교도가 예루살렘을 향해 예배토록 하고, 유태교의 1월 10일(속죄일) 단식일의 종교행사도 받아들인다. 또 예배일이 금요일인 것도 유태교의 안식일(토요일) 준비와 상통된다. 이런식의 친유태교 정책은 모슬렘의 계전 백성의 여자와의 결혼을 허용하고 (여자의 경우 비이슬람교와의 결혼은 금지됨) 그들이 먹는 음식도 먹을 수 있게 허용한다.


이런식으로 모하메드는 유태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유태교는 정치적으로는 이에 동의한 흔적이 있으나 종교적 문제에선 거부했다. 유태교의 반대는 모하메드의 유일신 사상 때문이 아니라, 그가 참으로 신의 계시를 받은 존재인가, 예언자인가 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성서해석 결과 그를 인정치 않으려 한데 있다.


결국 메디나 이주후 2년째인 624년 유태인이 모하메드를 그들의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계통의 한 예언자로 인정치 않자, 모하메드는 그때까지 예루살렘을 향하던 예배방향을 메카의 카바로 향하게 하고, 바드르 전투 후엔 1월10일 행하던 단식을 대신해 라마단(9월)달에 1개월간 단식을 실시케 한다. -라마단 단식은 아바다드(종교적 의무 행위)의 하나로 그달에는 일출에서 일몰까지 모든 음식의 섭취를 금한다.


이렇게 유태교로부터 거부를 받게되자 모하메드는 유태교에 반격을 가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세운 카바신전으로 예배방향을 바꾼 것은 이슬람교를 아랍의 전통위에 확립시켜 세계적 종교를 이룩하려는 것이고, 유태교와의 결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 카바를 향함은 아랍 다신교의 신전으로서가 아닌, 알라의 집으로서의 카바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바드르 전투 후 카바신전의 건설자로서의 예언자 아브라함의 의의가 코란에 강조되어 계시되는데 내용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신전을 건설하고 이를 알라께 봉납했고 그자손(아랍인) 가운데 한사도가 나오길 간청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하메드가 일어난 것이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수 있게 만든다.


아브라함은 유태교도 기독교도 아닌 하니프-순수한 종교의 신도, 순수한 일신교도-이며 그의 신앙은 이슬람이었고 모하메드의 가르침도 아브라함이 믿는 일신교의 부활이라 여기며, 코란은 그 계시가 모세나 예수의 가르침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의 뜻은 신에대한 절대복종이란 아랍어에서 나왔는데 이 어휘가 코란에 처음 나타난 것은 바드르 전투 이후의 일로, 유태교와의 대립이 시작되면서이다.


순수한 아브라함의 종교복원으로서의 이슬람이란 성격은 모하메드의 구약성서에 관한 역사적 객관적 지식에서 도출되었다고는 볼수없다. 대신 코란은 유태교와 기독교가 본래 옳은 성전을 잘못해석하고, 그 일부를 조작하거나, 감추었다고 비난함으로써 유태교의 성서의 전통적 해석에 의거한 비난을 다른차원에서 되받아쳤다.


카바신전을 알라의 집으로 간주하고 아브라함을 그 건설자로 여기는 것은 당시 메카와 그 주변 주민의 일반적 통념이었다. 모하메드는 이런 통념을 이용하여 이슬람교를 아랍의 민족감정과 민족적 전통위에 정착시키는데 성공하여 이슬람에 의한 아랍 민족의 통합과 모하메드 자신에대한 쿠라이쉬 부족의 적의를 약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슬람에 애니미즘의 요소를 남겼다는 오해와, 8세기 중엽까지 이슬람을 아랍 민족종교로 곡해하게한 중요원인이 되었다.


7.한다꾸(참호) 전투와 모하메드의 말년

 


627년 3월 쿠라이쉬 부족은 우후드전투에서 일단 바드르 전투의 복수를 했지만 모하메드와 그 움마를 지상에서 말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약 7천 5백명의 부족연합군으로 메디나 대 포위작전을 행한다. 이에 대응하여 모하메드는 약 3천명 정도의 군사를 모집 메디나의 적의 공격에 노출되는 모든 곳에 참호를 팠다.- 한다꾸 전투


연합군은 2주나 포위를 했으나 참호를 못넘고 메카로 돌아간다. 쿠라이쉬 부족은 모든 재력을 원정에 소비하였으나 포위작전의 실패로 그 위신을 상실하고, 메카와 메디나의 균형은 메디나로 기울게된다.


모하메드는 연합군이 철수하자 곧 유태교도인 꾸라이자 부족을 처형하고 628년엔 1천 4백명의 이슬람교도를 이끌고 카바신전 순례에 나섰다. 쿠라이쉬 부족은 2백명의 기병대로 이를 저지하려했다. 결국 후다이비야에서 향후 10년간의 휴전과 다음해의 메카순례를 약속함으로 둘은 타협을 한다.-후다이비야 조약


모하메드는 주위 여러부족을 제압하거나 우호관계를 수립하는 한편 유태교도를 메디나로부터 완전 추방한다. 그후 630년 1월 일만 대군을 이끌고 메카에 진격하여 전의를 잃은 쿠라이쉬 부족으로부터 항복을 얻는다. 무혈입성한 이슬람군은 카바신전의 우상과 메카시내의 모든 우상을 파괴하여 이교(異敎)의 시대를 종식시킨다.

아랍의 유력한 쿠라이쉬 부족을 정복한 소문이 퍼지자 많은 부족이 메디나에 사절을 보내 맹약을 맺고 이슬람교를 수용한다.


630년 모하메드는 3만 대군을 인솔하여 타부끄 원정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슬람의 북방정책의 일환으로서, 이슬람교의 위용과시가 목적이었다고 추정된다. 그후 632년 모하메드는 순례를 마치고 수개월후 세상을 뜬다.- 이별의 순례라 한다.-코란에 순례에 대한 규정은 자세히 나오지 않으나 이때의 선례로서 순례양식이 답습되고 있다.

 

 이슬람의 종파를 중심으로 재정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슬람이 모두 같은 신조와 의례를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순니이슬람에는 4개의 법학파가 있으며 또 정치적으로 보아도 세사람의 칼리파가 동시에 존재하여 수백년간을 대치해 온 일도 있었다. 따라서 이슬람이라는 건물 속에는 수많은 주거용 아파트가 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슬림 가운데도 청교도, 개혁주의자, 신비주의자, 원리주의자(fundamentalist) 및 광적 신자 등이 있는 것이다. 세계의 큰 종교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도 일반 평신도들이 갖는 정통적인 중심개념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순니 무슬림이라고 부르고 전 세계 무슬림의 8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20% 미만의 소수파 가운데에도 16%의 시아 무슬림, 그리고 나머지 다른 종파들이 있다.


1. 순니 무슬림

 


역사적으로 보면 순니들은 무슬림공동체 즉 움마의 순나(sunnah 관행)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다. 순나란 꾸란, 하디스 및 예언자와 정통칼리파들의 선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들은 자신만이 정통무슬림이라 자처하면서 그들의 꾸란과 순나해설 또 그들의 종교적 입장과 행위가 이슬람의 주류가 되어 왔다고 본다. 4대 법학파 (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의 추종자는 이슬람전통의 주류에 속하는 순니라고 믿는다.

이슬람 정통파는 상당한 정도의 견해 차이를 모두 그들의 교리에 포용해 왔지만 이슬람 역사의 초기에 그들도 순니 공동체에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신학적인 문제점이 발생했다. 너무나 이단적이고 이질적인 분파들이 나타나 이슬람 역사속의 정치적, 종교적 및 사회경제적인 흐름을 조화 내지 융합시키려는 세력을 비난하고 나섰다.


2. 카리즈(카와리즈)파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25년째 되던 해에 칼리파 우스만이 살해당하자 예언자의 사촌이며 사위인 알리가 그 뒤를 이었다. 그가 살해범의 체포에 주저하자 우스만의 6촌인 다마스커스 총독 무아위야가 아랍의 씨족 전통에 따라 복수를 외치며 반기를 들어 무슬림끼리의 내란에 돌입했다. 이 제1차 내란 중에 무아위야의 평화협상 제의에 직면한 알리파는 주전파와 협상파로 갈라졌다. 이러한 분열에서 전열을 가다듬기 어려운 알리가 부득이 협상에 응하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주전파는 절대신 알라만이 중재를 할 수 있고 인간은 현 상황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알리의 진영을 떠나니 이것이 이슬람 역사상 최초의 종파 카리즈파(탈퇴자)이다. 후대에 카리즈파의 주장은 이것을 더욱 선명하게 요약하였다. 즉 마음을 달래는 것은 혀가 아니고 바로 행동에 있다고 주장했다. 카리즈파는 전투적인 청교도요 행동주의자여서 법을 그들의 손으로 집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지하드(jihad 성전)를 여섯번째 󰡐신앙의 기둥󰡑으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그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무슬림을 살해할 정도였다. 알리 자신도 이들에 의해서 661년에 살해당했다.


카리즈파는 메카의 부족 꾸라이쉬의 자손만이 칼리파가 될 수 있다는 순니파의 전통적 견해를 비난하고 무슬림이면 누구나 칼리파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여기서 고려되어야 할 점은 독실성이어서 심지어 건강하고 총명한 흑인노예도 칼리파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만민 평등주의적 입장과 아랍귀족층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베드윈과 비아랍계 무슬림 가운데 상당한 추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카리즈파는 우마위야조의 초기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으나 후에 무정부적인 그들의 태도 때문에 분파작용이 일어나 저절로 약화되었다.


이 파의 추종자는 오늘날까지 미미하게 존속하고 있다. 알제리와 튀니지의 베르베르 지역,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및 아라비아반도의 오만에 그 추종자를 볼 수 있다. 카리즈파의 맹신적인 청교도 정신만 아직까지 순니무슬림 속에 남아, 18세기에 이르러 아라비아반도에서 와하비(Wahhabi) 운동의 발생 동기가 되어 오늘날 사우디 왕가의 모태가 되었다.

 

3. 시아(쉬아)파

 


칼리파를 알리의 가문에 되돌려주려는 운동으로써 시작된 시아이슬람은 곧 독특하고 구별되는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물론 이 운동의 생성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재구성하기는 아직까지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알리의 자손을 제거하려는 우마위야조(661-750)와 압바시야조(750-1258)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다. 시아파는 우마위야조의 창시자 무아위야가 알리와 파띠마의 장남인 하싼(Hasan)을 독살시켰다고 믿는 반면에, 순니들은 그가 자연사를 했다고 주장한다.

 


하싼의 동생 후세인(Husayn)이 680년에 이라크의 쿠파 근처의 도시 카르발라(Karbala)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그의 부상은 치명적이었고 갈증에 목말라 했으나 그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고 결국 그의 목을 잘랐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제삿날인 이슬람력의 정월(Muharram) 10일은 시아파의 중요한 종교적 공휴일이다. 이 날은 단식종료절과 희생제 때의 평화로운 명절행사와는 달리 신자들은 길거리에 나와 행렬을 지어서 후세인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려고 자위행위를 하기가 예사다. 시아파 전승에 따르면 후세인의 아들과 손자도 독살당했으며 그 후 몇 세대나 이 박해가 계속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시아파의 핵심은 이러한 정치적 책략의 희생자들을 반신격화된 순교자로 만드는 데 있었다. 이러한 변형은 중근동의 전통종교로 자리 잡아온 영지주의적(gnostic) 또는 이원론적 가르침의 영향 아래 일어난 것은 명백하다. 영지사상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신에 관한 지식󰡑을 뜻하는 영지(靈知)에서 왔으며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과정을 뜻하는 영지사상은 종종 일종의 마술에 참여하여 그 마술로 신을 알게 되고,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인다는 것이다. 서기 2,3세기 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신플라톤학파는 플라톤의 관념철학을 영지주의적 색깔로 바꿔 놓았다. 영지주의는 또한 인간에게 신-구약성서나 꾸란과 같은 위대한 예언서의 구절에서 자구적인 의미를 넘어 깊숙히 파고들어 그 속의 비밀스러운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게 한다고 약속했다.


이원론적 형상은 모든 유일신적 종교에 나타나 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천국의 완벽성과 인간사회의 부패상을 대조하고 있으며 또 페르시야의 사산조(226-641) 시대에 유행한 조로아스터교(Zoroasterianism)와 마니교(Manichaeism) - 둘다 그 창시자의 이름에서 유래 - 에서는 선과 악, 빛과 어둠 및 불과 흙이라는 양극의 관점에서 우주를 해석하여 이 양극적인 두 힘이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으려 다투고 있다고 보았다.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에서 여러가지 신앙으로써 시아파는 혼합적신앙(syncretistic faith)이 되었다. 즉 이슬람이 아닌 외적요소에서 빌린 것을 새로운 합(synthesis)으로 융화시켜 나타난 구심적 인물이 알리, 후세인 및 그들의 자손들이라는 믿음이다. 그들은 이맘이라고 불리워졌는데 그 의미는 순니에서 집단예배인도자를 지칭하는 이맘보다 훨씬 격이 높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19세기의 한 시아파 신학자는 그 속성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꼭 믿어야 할 점은 이맘들은 모두 창세기에 빛에서 창조되었고 신이 주는 은총과 지식은 모두 그들을 통하여 오는 것이며 그들을 통하여 우주는 생동하고 그 존재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를 제외하고는 모든 관점에서 가장 탁월한 존재여서 비록 인간적 욕구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모든 예언자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흠없이 완벽하여 크든 작든 그들 상호간에는 대등하여 덕, 지식 및 능력을 타고 난 것이다. 그들은 출생 때 이미 보통 인간처럼 태어난 것이 아니고 예언자처럼 할례되어 태어난 것이다.󰡓


이맘은 믿는 자들에게 꾸란구절의 비교적(秘敎的)인 속의미를 밝혀주어 그들을 어둠에서 광명으로, 타락에서 은총으로 이끄는 것이다. 시아파가 이맘에게는 완전무결성이 있다고 믿는 것은 순니파가 칼리파에게 기대하는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시아파는 이슬람 속에 신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의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이것은 무함마드의 엄격한 유일신보다 기독교적인 예언자는 동시에 이맘이어서 이 세상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이맘은 신의 명증(明證)으로 항상 존재한다고 본다.

 


시아파는 메카와 메디나의 성지순례에 못지않게 이맘들의 무덤 또는 그 친척과 심지어 그 옹호자의 무덤에까지 순례하는 것이다. 특별히 신성시하는 곳은 카르발라에 있는 후세인의 무덤인데 수많은 시아파들이 이곳에 묻혀지기를 원하여 그 소원을 성취하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이 도시는 죽은 이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우리와 같은 비무슬림세계 사람에게 비치는 시아이슬람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신앙 즉 죽음, 순교 및 슬픔에 휩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한쪽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쪽에는 <숨은 이맘>인 구세주의 사상이 들어 있어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아무슬림은 열두 이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즉 알리, 후세인 및 그의 자손이 계승하여 12번째 이맘에 까지 이른다. 제 12대 이맘은 어린 나이에 압바시야조의 당시 수도인 이라크의 사마라시에 볼모로 잡혀가 그곳에서 873년(일설 878년)에 사라졌다. 그는 지상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결코 죽은 것은 아니어서 <숨은 이맘>으로써 오랜 은둔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언젠가 지상에 마흐디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중세 시아무슬림들은 마흐디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그의 이름과 출생을 이미 절대신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알려 주었으며 그의 임무는 현세가 억압과 불의에 충만해 있는 것처럼 정의와 공정으로 군림하도록 할 것이며 그때 예배로 이끄는 부름은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들릴 것이고 종교는 완전히 신의 것이 되어서 신의 찬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제12대 이맘) 올바르게 인도된 마흐디이며 그에 관해서는 예언자께서 이미 언급하신 것처럼 그가 이 세상에 다시 그 모습을 나타낼 때에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도 지상에 내려와서 그의 뒤에 서서 경배 올릴 것이다.󰡓


시아이슬람에 대한 그후 역사기록에는 이상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인물들이 스스로 <숨은 이맘>인 마흐디로 자처하면서 등장하였다. 시아파는 순니파의 박해에 짓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 즉 시아파임이 드러날 경우 자신과 가족의 생명 또는 재산에 손실을 입을 부득이한 처지에 놓일 때 순니파 또는 다른 파의 소속으로 자신을 위장할 수 있다. 이것을 타끼야(taqiyah)라 부른다. 대부분의 시아파는 이것을 교의로 삼고 있다.

이처럼 시아파의 특징은 이맘의 무결점성, 이맘의 부활, 타끼야(믿음의 가장), 마흐디 사상을 들 수 있다.


4. 열두 이맘파와 자이드파

 


시아파의 85%를 이루고 있는 열두 이맘파(약칭 이맘)는 오늘날 무슬림세계의 중요한 소수파를 형성하고 있다. 이란에서 열두 이맘파 시아이슬람은 16세기 이후 국교가 되어 국민의 90% 이상이 믿게되어 절대다수를 이루었고, 이라크에서는 인구의 과반수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 순니파무슬림에 비하여 열등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 분위기가 꿈틀거리고 있다. 레바논은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서 박해받는 종파의 피난처로써의 기능을 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30% 이상의 인구가 이 분파에 속하나 그들의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빈곤층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파키스탄과 인도에서도 열두 이맘파시아는 전체 무슬림인구의 10%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로코의 왕가는 8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칼리파 알리의 자손이나 국민의 지배적 법체계는 순니파의 4대 법학파의 하나인 말리키이다.

 


시아무슬림 모두가 열두 이맘파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자이드파는 열두 이맘 가운데 후세인의 아들로 끝나는 제4대 이맘까지만 인정한다. 그 이름은 후세인의 손자 자이드(Zayd)에서 유래했다. 즉 자이드를 포함한 다섯 이맘에게만 마술적 능력을 인정한다하여 다섯 이맘파라고도 부른다. 그는 할아버지처럼 반란을 일으키다가 이라크에서 전사했다. 자이드파의 교리는 알리 이후 모든 칼리파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순니와 구별될 게 거의 없다. 비록 이맘파 즉 칼리파는 하싼이나 후세인의 자손 가운데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들의 이맘은 완전무결성이나 인간과 신 사이의 중재적 기능을 지녔다고 보지 않아 단순히 왕이나 최고 종교지도자에 불과하다. 9세기말경부터 최근까지 자이드파는 남부아라비아의 예멘지방을 지배했으나 그 인구의 다수는 순니무슬림으로 남아 있다. 자이드파의 이맘이 예멘을 1000년이나 지배했으나 1962년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쫓겨나가고 이 나라는 공화국이 되었다.

 


5. 이스마일파와 암살단파


자이드파와는 대칭을 이루는 시아분파 가운데 가장 많이 논쟁의 여지가 있고 또 매력적인 것이 이스마일파 즉 일곱 이맘파이다. 그들은 열두 이맘파가 제6대 이맘 자아르 알 싸디끄(765죽음)의 장남인 이스마일이 술을 마신다고 비난하여 그의 동생 무사(799년 죽음)를 제7대 이맘으로 모신데 반대하고 이스마일을 옹립한데서 비롯한다. 이스마일파는 이스마일의 자손만이 <숨은 이맘>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이스마일의 계승권을 옹호하기 위해 끈질긴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시아파를 통합적 교의로 이끌었다. 특히 영지주의적 의례에서 이원론적인 사항을 많이 도입했다. 이스마일파는 글자 그대로를 믿는 대중에게는 초보적 신조만을 포교했으나 무함마드가 받는 계시의 표면적 의미 속을 뚫고 들어가 진정한 내적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정밀한 해석을 통해 포교했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스마일파는 압바시야 칼리파를 반대해서 격렬한 선전투쟁을 진전시켜 이 칼리파들을 타도하려 했다. 한때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기도 했다. 이스마일이 사망한 후 100년경인 9세기 말에 그들은 압바시야조가 점차 쇠약해가는 틈을 이용하여 이라크에서 농민과 도시노동자의 불만을 선동하여 맹렬한 선교투쟁을 벌였다. 이스마일파와 당시 연합한 세력은 전투적인 까르마트(Carmathian, 그 지도자 Qarmat에서 그 이름이유래)였다. 이 파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나서 아라비아반도를 휩쓸었다. 심지어 메카순례객들을 공격했고 더구나 929년에는 메카도 점령했다. 놀랍게도 까르마트파는 카아바의 신성한 <검은 돌>을 빼내어 수백리 밖에 팽개치기도 했다.

 


이스마일파의 또 다른 분파는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족과 베르베르족 사이의 만성적 긴장상태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았다. 909년에 <숨은 이맘>을 은신처에서 데려와 마흐디로 선언하니 곧 파띠마조(909-1171)의 초대 칼리파 우바이둘라 알 마흐디(909-934)이다. 튀니지의 시실리섬에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969년에 그들은 이집트를 정복하고 옛 수도 푸스타트 근처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그 이름을 까이라(al-Qahirah 승리자)라 하니 곧 오늘날의 카이로의 시작이다.

 


이곳으로 제국의 수도를 옮기니 곧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에서 이 칼리파조는 커다란 도서관을 운영했고 아즈하르(al-Azhar)성원을 건립했다. 이 성원은 곧 신학의 배움터가 되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자랑하고 있다. 이 칼리파조는 11세기 초에 그 국력이 전성기에 이르러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도 병합하니 이라크의 압바시야조는 그 그늘에 들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11세기말에 내분이 일어났고 더구나 셀죽 터키의 침입과 십자가원정과 같은 외환도들이 닥쳐 파띠마조의 국력은 쇠잔했다. 그후 파띠마조는 점차 수그러들어 카이로 근교에만 그 권위가 미치다가 1171년에 아이유브조의 살라 알 딘(1138-1193)이 카이로를 점령하여 이 조를 멸망시킨 뒤 이스마일파를 억압하고 순니이슬람을 다시 이집트와 시리아의 국교로 회복시켰다.

 


그러나 이스마일파는 파띠마조의 종말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파에 속하는 한 페르시아인 지도자는 11세기 말에 파띠마조와 결별을 선언하고 카스피아해 남쪽에 있는 산속에 그 추종자와 함께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 그들의 이름은 암살단파(Assassin 이 명칭은 대마초를 뜻하는 아랍어단어 al-hashishin 에서 유래하여 십자군을 통하여 유럽 각국어로 들어감.)로 알려졌다. 그들은 대마초를 복용함으로써 천당의 쾌락을 미리 맛보게 되고 임무수행에 있어서는 초인간적 용기를 갖게 된다고 보았다.


현대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대마초를 복용했다는 비난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치적 살인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으로 증명했다. 암살은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의례적 행동이어서 가해자는 항상 단검을 사용하였고 도피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으며 암살대상자는 대체로 고위직의 인사였다. 최초의 희생자는 셀죽조의 술탄 말리크샤(1072-1092)의 재상으로 유명한 니잠 알 물크(1091 죽음)였다. 암살단파는 셀죽조가 12세기에 들어와 쇠약해지는 틈을 이용하여 페르시아의 변방지역과 서부 시리아의 산악지역에 새로운 요새를 만들었다. 십자군이 두려워한 것은 시리아의 암살단파와 그 우두머리인 󰡐산속의 쉐이크(sheikh al-jabal)󰡑였다.

 


암살단파가 테러행위를 무기로 삼은 것은 극단적 소수파의 저항전술로 이해된다. 그들의 최종목적은 그들이 옹립하고 있는 <숨은 이맘>의 통치체제를 전영역에 확립하는 것이다. 그 전제조건은 순니이슬람을 파괴하는데 있었다. 페르시아에 있었던 암살단파의 쉐이크는 <숨은 이맘>의 지시를 받아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숨은 이맘>은 쉐이크에게 이슬람의 다섯 기둥과 이슬람성법을 멀리 할 것을 지시했으므로 모든 사람은 새로운 계시를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라마단의 단식 기간중에 행한 큰 행사에서 신자들은 메카에 등을 돌린 채 예배를 올리고 오후에는 또 특별히 마련된 연회에 참석했다.

 


암살단파가 기대한 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순니이슬람은 쓰러지지 않았고 <숨은 이맘>은 그 자신의 통치영역을 확립하지 못했던 것이다. 13세기에 들어와 암살단파 내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마침 페르시아를 침입한 몽고군에 의해서 그곳의 암살단파는 섬멸되었고 시리아의 암살단파도 아이유브조의 살라 알 딘을 계승한 이집트와 시리아의 맘룩조(노예왕조 1250-1517)에 의해서 제거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이 파의 추종자는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도망한 자칭 한 이맘의 지도아래 19세기와 20세기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근원은 모호한 편이다. 이들은 그 지도자를 페르시아 왕가의 칭호인 아가 칸(Agha khan)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암살을 자행하지 않으며 주로 사업에 종사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서 다른 무슬림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6. 알라위파(󰡐Alawis)와 드루즈파(Druzes)

 


이스마일파 선교활동의 영향으로 다른 유사한 종파가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류의 종파는 비이슬람적 요소를 너무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종종 다른 종교로까지 분류된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알라위파와 드루즈파이다. 알라위파(Alawis,알리의 숭배자들)는 시아파의 알리에 대한 숭배를 극단화시켜 그를 신격화했고 또 이스마일파의 대중을 위한 단순한 신앙과 정밀한 종교의례의 이분법을 더욱 극단화시킨 것이다. 이 파는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Muhammad ibn Nusayr)가 9세기 말에 창시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에서 일명 누사이리파라고도 한다. 알라위파는 고대중근동의 여러 이교도적 의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예로는 성스런 나무숲을 숭배하고 기독교의 의례도 받아들여 심지어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도 축하하는 것이다. 그들은 영혼의 전생을 믿어서 영혼이 지상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일곱 번의 화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알라위파의 주된 주거지는 시리아이며 그곳 총인구의 약 1%를 점유하고 있다. 주로 시리아 해안지역에 있는 자발 알라위지역에 집결되어 살고 있다. 터키에서는 알레비라고 한다. 그들은 오랜 기간 박해당해 온 소수파여서 씨족의 결집, 불만 및 반란이 그들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제2차대전 후 시리아 육군사관학교가 모든 시리아인에게 문호개방을 했을 때 알라위파의 청년들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거 입학했다. 1971년에 이들 가운데서 장군으로 승진한 하피즈 알 아사드가 첫 알라위파로 비순니무슬림 가운데서는 시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알라위파의 믿음에 영향을 받은 터키계 부족의 종파는 키질바쉬(Kizilbashi, 붉은 두건을 쓴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드루즈파의 기원은 11세기의 이스마일파 포교자였던 다라지(Darazi)에게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추종자는 파띠마조의 칼리파 하킴(Hakim)을 <숨은 이맘> 이라고 주장했다. 괴짜이었던 칼리파는 1021년의 어느 날 저녁 카이로 근처에서 사라졌는데,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드루즈파는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키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남부레바논의 산악지대에 그 피난처를 발견했고 후에는 남부시리아의 고원지대인 자발 드루즈지역에서 그 주거를 찾아냈다. 그들은 비밀 엄수라는 물신숭배를 가졌는데 심지어 그 추종자들에게도 그들의 성서를 감추고 또 새로운 개종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추종자의 배교행위까지 허용한는 것이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고 그들 통치자의 종교 주로 순니이슬람과 레바논의 기독교 종파인 마론파(Maron)의 추종자인 것처럼 가장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가 서방세계에 알려진 것은 1830년대였는데 그때 레바논의 통치권이 오스만 터키에서 무함마드 알리의 이집트에게 몇년간 넘어갔으므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서구학자들이 그들의 성서를 연구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드루즈파는 그들이 일신론자인 것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칼리파 하킴을 일종의 신의 화신인 우주적 존재의 현시로써 간주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들은 그들의 <숨은 이맘>과 절대신 사이의 일치성보다 이스마일파의 이스마일이나 시아파의 알리와의 일치성보다 더 완벽하다고 주장한다. 드루즈파의 교의와 종교적 관행의 자세한 내역을 보면 무슬림의 기준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드루즈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금지되어 있고 여성들의 지위는 남성들과 대등하게 취급되고 영혼이 전생한다는 믿음은 널리 보급되어 있다.

 


드루즈파는 비록 순례(Hajj)시기에 축제를 열고 있지만 금식이나 메카순례는 하지 않는다. 그들의 집단예배는 금요일 정오에 열리지 않고 목요일 저녁에 열리며 그 장소도 중심지역의 성원에서가 아니고 산간의 작은 사당에서 여는 것이다. 드루즈공동체는 두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덜 비밀스러운 정기 주간예배에만 참석하는 무식자층이고, 다른 한 계층은 현자들로서흰 터반을 머리에 두르고 금욕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드루즈파는 아무리 비천한 가문에 태어나도 현자가 될 수 있으나 현재 일부 지주 가문만 이 공동체의 사회적, 정치적 지도층이 되고 있다. 이 공동체의 봉건적 사회구조와 비밀엄수전통으로 비교적 안전하고 또 산악생활의 습성으로 드루즈파는 수세기 이상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늘날 드루즈파의 신자수는 약 25만 가량으로 추산되며 주로 레바논과 시리아에 살고 있다. 또 극소수는 이스라엘 통치 아래 있는 하이파(Haifa)근처의 마을과 골란고원에 살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통치하에서 아랍인보다 더 당국에 잘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바비파(Babis)와 바하이

 


인간의 내면적 생활을 비교적으로 파고드는 이스마일파의 교리와 <숨은 이맘>사상에 대한 시아파의 믿음은 근대에 들어와서도 이슬람의 이단적 분파조성에 산모 구실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세기 중반경에 이란에서 나타난 바비파이다. 이란 중남부의 도시 쉬라즈에서 설득력있는 신학자가 나타나 스스로를 <밥>(아랍어로 문이란 뜻이며 진리의 관문으로도 상징됨)이라고 자처했는데 1000년 전에 시아파 이맘의 이름 높은 제자에게도 이 명칭이 사용된 적이 있었다.

 


마침 1844년은 이슬람력에 의하면 12번째 이맘이 873년 사마라에서 사라진지 천년이 되는 즈음이어서 <밥>의 교의에는 영지주의적 요소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와 숫자 19의 신성성(神聖性)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밥>의 달력에 따르면 일년은 19개월이며 매달은 19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이란에서 <밥>의 교의는 수많은 개종자를 획득하여 타락된 기존정권의 붕괴와 함께 열두 이맘파 시아의 국교적 지위마저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정부의 <밥>운동에 대한 진압은 가혹하여 <밥>을 1850년에 사형시키고 그 추종자를 대량 학살했다.


그러나 <밥>의 사상은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대부분의 추종자들은 그의 제자 바하울라(Bahaullah, 알라의 광채)를 지도자로 삼았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교의를 펼치기 시작했다. 즉 구약성서의 예언자 아담,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다른 지도자들 즉 조로아스터, 예수 및 무함마드 등으로 이루어지는 낡은 예언자의 순환기는 <밥>과 함께 끝났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바하울라의 추종자인 바하이(Bahai)들은 그들의 신앙만이 진실로 보편적이어서 낡은 예언자적 종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부처와 공자도 존경하여 그들의 가르침도 포괄하였다고 주장했다. 바하이들은 <밥>의 달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매달(19일)마다 집단예배를 올리고 무슬림의 라마단달 금식처럼 한달(19일)간의 금식을 행하며 또 하루에 3번씩 몸을 깨끗이 씻은 후 예배를 올린다. 즉 무슬림의 그것과 유사한 반면에 더욱 간결화시킨 감이 있다.

 


바하이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폭넓은 관용성과 사회개선에 참여하려는 강력한 책임의식이다. 기이하게도 시아파의 초대 이맘 알리의 말을 인용하여 사회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사적인 문제는 인간사(human sphere)에 속하나, 사회적 관심사는 모두 신에게 속한다. 바하이들의 <사회적 관심사>라는 말 속에 여성의 평등권, 교육의 기회균등화 및 국제평화의 달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바하이는 평화주의자요, 양심적인 거부자 및 절대금주론자이며 육식보다는 채식을 또 금연을 더 선호한다.


역대 이란정부는 <밥>의 추종자를 박해한 것처럼 바하이들을 국민단합에 유해한 번역자로 보고 무자비할 정도로 박해하였다. 또 1979년 이슬람혁명 후에도 박해의 고삐는 늦추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많은 바하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숨기거나 일부는 이민을 떠나고 있어서 이란 내에서의 그 수를 어림잡기는 힘드나 대체로 50만에서 10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들의 국제적 본부는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으며 아크레의 근교인 카르멜(Carmel) 산에는 밥의 거대한 무덤이 있으며 바하울라는 망명생활을 하다 1960년대에 죽었다. 오늘날 전세계에 138개의 바하이공동체가 있으며 미국에는 바하울라의 아들이 선교에 나서고 있어서 시카고 근처 윌메트(Wilmette)에는 웅장한 바하이성원을 두고 있다. 한국에도 지식층을 중심으로 건물을 빌려 상당수의 바하이 추종자들끼리 모이고 있다.

 


무함마드가 7세기에 이슬람을 포교할 때의 주장과 바하이들이 20세기에 그들의 신앙을 선교할 때의 공통된 주장은 중근동에서 옜날부터 영혼의 진리임을 자처하고 나온 수많은 종교의 계승자라는 점이다. 이러한 모방성 때문에 무슬림들은 바하이들을 단순한 이단자로서 뿐만 아니라 이슬람과는 전혀 관계없는 거짓종교로서 규탄한다. 그렇지만 바하이교는 이슬람역사상 정통파와 이단파의 갈등과 마찰 속에서 다듬어진 요소가 그 발생의 계기가 된 점은 사실이다. 이러한 요소 가운데 <밥>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것은 수피(굂fi) 사상으로 알려진 신비주의적 믿음과 그 관행의 결합관계이다. 수피주의는 이슬람역사에 있어서 오히려 시아 사상보다 더 큰 비중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에는 바하이파 추종자가 2만 5천명이다. 이상과 같은 이슬람의 종파가 주로 산재하는 곳을 살펴보면 와하비파(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자이드파(예멘), 시아파(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 알라위파(시리아, 터키), 드루즈파(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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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Islam) / 믿음의 다섯가지 항목

 

이슬람교(Islam)의 창시자는 아라비아에서 태어난 모함메드 (Mohammed, 570-632)로서 , 오늘날 세계적으로 40여 개국 이상의 나라에 약 45천 만명 이상이나 되는 신자를 가지고 있는 세계 제 2의 종교이다. "이슬람(Islam)"이란 단어는 명사로, 아랍어의 '복종하 다. 항복하다' 혹은 '자신을 맡기다'(to submit, surrender or commit oneself)는 동사로부터 형성된 말이다. "모슬림 (Muslim)" 이란 단어는 위에서 언급한 같은 동사에서 나온 또 다른 명사인데, 뜻 은 '복종하는 사람' (the·one who submits)이다. 서양에서는 이슬 람교를 흔히 창시자의 이름에 의.하여 "모하메드교"라고 부르기도 하 며, 동양에서는 그 종교를 동방으로 전파한 회흘 민족의 이름을 붙여 서 "회회교(回回敎)"라고도 부른다.

 

이슬람교의 가르침(The Teachings of Islam)

 

이슬람교의 가르침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ale (imam)과 실행 혹은 의무[practice or duty(din)]로 나눌 수 있 다. 노만 앤더슨 경(Sir Norman Anderson, 1976, p. 78)의 이슬 람의 가르침에 대한 기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슬람의 믿음과 실행은 두 개의 큰 가지인 모슬림의 학문과 신학 그 리고 법체계(jurisprudence)에 의해서 다스려 지고 있다 모슬림의 신학 을 보통 "타우히도(Tawhid)"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의 중심적인 교리는 신격의 단일화(the unity of the Godhcad)를 의미히는 것으 로. 보든 사람이 믿을 것을 정의하고. 그들의 율법(Shari'a)은 믿는 자가 행할 모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슬람에게 성직 (priesthood)이 나 성례전(sacraments)은 없다. 철학적 신비에 의해서 자신들을 위 해 이슬람을 다시 해석했다고 하는 "슈피스(Sufis)"를 제외하고, 이슬 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신학과 율법을 충분히 배웠다고 인정되는 자 들에 의해서 오직 권고와 가르침으로 받을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오늘날 어떤 체계에서는 그들의 율법인(The 1.aw) "샤리아(Shari'a)"를 가르치고 있다. 그들의 율법 안에는 인간 생활 에 포함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범죄를 금하는 것으로부터 이 쑤시개(toothpick)의 사용에까지 , 그리고 국가의 조직으로부티 가족 생활, 즉 부부 관계(sacred intimacies)에 이르기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그 율법에 대하여 "모든 일, 즉 인간과 신의 지식이요" (the science of all things, human and divine)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행동은 무엇이 의무이고 명령인가, 무엇이 칭찬할 만하고 권 장할 만한가, 무엇이 허락된 것이고 합법적인가, 무엇을 싫어하고 비 난받는가, 그리고 무엇이 금지 되었는지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가 르침은 주로 수니 이슬람(Sunni Islam) 교도들이 진리로 믿고 따르 는 것들이다.

 

믿음의 다섯 가지 항목(Five Articles of Faith)

 

이슬람교에서 믿는 다섯 가지 중요한 항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슬람교는 믿는 유일한 하나님의 이름은 "알라(Allah)"이다. 그들이 믿는 알라는 전지 전능하며 심판의 주권자이다. 그러나 알라는 인격적 인 하나님이 아니며 (not a personal God) , 모든 것에 사람보 다 위에 있어 인간이 인격적으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이다. 이러한 이 슬람교의 교리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인 "알라"를 그의 피조물들과 다 르게 만든다. 이슬람교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인 알라의 본성이 사랑이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본성은 거의 무시된 것을 의미하고. 알라가 최고로 정의롭다고 하지만 그의 사랑을 파기하는(Overrule love) 결 과를 가져온다, 이슬람교에서 알라에 대하여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비 나 은혜가 아니고 심판이며 힘이다. 이슬람교가 믿는 알라는 선과 악 의 근원이고 그의 뜻은 최고의 권위이다.

 

둘째, 이슬람교는 천사(Angels)의 존재를 중요하게 가르친다. 천 사들을 선도하는 가브리엘(Gabriel) 천사가 모하메드에게 나타나 코 란의 계시들을 전했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모하메드에게 알라의 계시 를 전달하는 도구였다 그들이 말하는 "알 사이한(Al Shaytan)"은 마귀 (devil)로서 타락한 천사이거나 혹은 "(Jinn)"과 같은 것이다. "(Jinn)"은 천사와 인간 사이에 창조된 피조물로 선이나 혹은 악 둘 중의 어느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천사는 인간처럼 성 관계나 먹 는 것과 같은 몸의 기능들을 행할 수 없는 것들로 빛으로서 창조되었 다. 모든 천사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가브리엘이나 혹 은 지브릴(Gabriel or Jibril)은 계시의 전달자였다. 천사는 남자이 거나 여자이며 또한 두 기록의 천사들이 있다. 하나는 선한 행동을 기 록하고, 빠른 하나는 나쁜 행동을 기록하는 천사라고 이슬람교는 믿는 다.

 

셋째, 이슬람교는 모세의 율법(Torah), 다원의 시편(Zabin) 그 리고 예수의 복음서(Injil)와 코란(Qur'an)을 영감을 받은 책으로 믿 는다. 그러나 처음의 세 권은 유대인과그리스도인들에 의go 더러워졌 다고 생각하며.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근래에 마지막을 준 말이 코란 으로서 이것이 다른 모든 것들을 능가한다고 믿는다.

 

넷째, 이슬람교가 믿는 알라는 수세기 동안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했 다고 한다. 고들이 믿는 위대한 선지자들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 세, 예수 그리고 모하메드이다. 그러나 알라의 모든 메신저들보다 모 하메드가 마지막이며 가장 위대한 선지자라고 주장한다.

 

다섯째, 이슬람교가 생각하는 종말은 부활과 심판의 때이다. 알라 와 모하메드를 믿고 순종하며 따른 자들은 이슬람교의 천국에 들어간 다. 그곳은 기장의 장소인 낙원(Paradise)이다. 그러나 알라와 모하 베드를 믿지 않고 반대한 자들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라 믿는 다.

 

마지막으로 위의 다섯 가지의 교리에 대부분 속해 있는 것으로, 이 것을 하나의 항목으로 간주하든지 않든지 간에, 이 항목 안에 이슬람 교의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 이는 신의 규례와 키스메르 안에서의 신 앙으로. 운명의 교리를 말한다(the belief in God's decrees or Kismer, the doctrine of fate), 이 교리는 대단히 엄격한 예정론 의 견해로서 모든 선한 것이나 악한 것들은 신의 뜻으로 진행한다는 것 이다. 이러한 운명론(fatalism)은 모슬림 문화에서 지급도 하나의 중 요한 역할을 한다

 

 

 

믿음의 다섯 가지 요점(Five Pillars of Faith)

 

이슬람의 다섯 개 중요한 신조(beliefs)나 교리(doctrine) 외에, 또한 믿음의 다섯 가지 요점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이슬람교에는 신경(Kalima)이 있다. 이슬람의 신경에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으며, 모하메드가 알라의 선지자이다'(There is no God but Allah, and Muhammad is the Prophet of Allah)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모슬림 신앙의 기본 원리이다. 모슬림 교도가 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공중 알에서 큰 소리로 말해야 하고 신실한 모슬림 교도는 이 사실을 계속 반복하여 말한다.

 

둘째, 이슬람교에는 읜식으로서 행하는 기도(Salat)가 있다. 기도 는 경건한 모슬림에게 신앙 생활의 중심이다. 모슬림의 기도는 "해가 뜰 때, 정오. 정오가 지난 한 낮, 해진 후, 그리고 취침 전, 이렇게 하 루에 다섯 번의 기도를 실행한다. 모슬림은 메카의 카아아바 (Ka'aba in Mecca)를 향하여 처음에는 수라하(surah), 그리고 다음은 코란에 있는 것을 아랍어로 암송하며 기도한다. "하디쓰 (Hadith)" (book of tradition)를 펼치면서 섰다가 무릎을 꿇으며 . 두 손을 바닥에 대고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는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 하면서 기도한다"(Boa, Kenneth, p 53). 카아아바(Ka'aba)에 관하여 , 모하메드 피크홀(Muhammad M. Pickthall)은 다음과 같 이 말했다. "메카의 사람들은 이스마엘을 통한 아브라함의 혈통이라 주장하고, 전통 또한 그들의 성전(temple)에 대하여 말하는데, 카아 아바(Ka'aba)는 한 하나님에게 예배를 위해서 아브라함에 의해 세워 졌다. 그들은 이것을 아직도 알라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예 배에 있어 가장 크게 방해가 되는 젓은 그곳에 알라의 딸들이라 불리는 많은 우상들과 중재자들이다"(Pickthall, p. ix) .

 

셋째. 이슬람교는 자선(Zakat)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하메드는 그 자신이 고아로서 자랐기 때문에 빈궁한 자를 돕는 일을 강하게 원했 다. 자선물은 일반적으로 자원해서 기부되어야 하지만 모슬림은 그들 의 수입의 사분의 일을 빈곤한 자에게 주도록 법으로 요구하고 있다. 고들의 생산물이나 가축 등에 대한 규정도 있으며, 자유로운 뜻에 의 해서 돕는 일을 실행하도록 되어 있다. 도움을 받는 자는 돕는 자에게 구원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도움을 받은 자는 자기를 도와준 자에게 조금도 빚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도와주는 자는 돕는 것이 자기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 을 도을 수 있는 것이 자기에게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신실한 모슬림은 거룩한 달인 라마단(Ramadan)에 왜가 뜰 때부터 해가질 때까지 매일 금식(Ramadan)한다 금식은 자신을 조 정하고, 신과 빈곤의 정체성(identity)을 가지고 헌신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많은 모슬림들은 라마단(Ramadan) 동안 하루에 두 번의 식사만 하는데 해 뜨기 전과 해가 진 후에 한다.

 

다섯째, 성지 참배(Hajiji)는 모든 모슬림에게 그들의 일생 동안 최 소한 한번은 실행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지 순례는 심히 어 려운 것으로서 어떤 자들은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을 보내 기도 한다. 이 성지 순례는 모슬림들이 구원을 얻는데 하나의 필수 불 가결한 부분이다. 이것은 의식과 의례(ceremonies and rituals)의 하나로(a set), 순례자들이 카아아바(Ka'aba) 사당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서 행하는 일이다. 모슬림은 그들이 알라에게 예배하는데 방해 가 되는 카아아바에 있던 우상들은 모하메드가 망명(Hijira, exile) 후 능력 있는 자가 되어 다시 메카에 돌아온 후에 파괴되었다고 믿는 다. 순례하는 모슬림이 성도(holy city)로부터 6 마일 가량 떨어 졌을 때, 순례자는 이흐람(ihram)의 상태에 들어가는데. 이 때 순례자는 기도를 하고 그의 평상복을 벗어버리고 이음매가 없는 두 개의 덮게 옷 을 입으며 거의 맨발로 면도질이나 머리나 손톱을 깍지 않고 성도를 향 한파.

 

순례자가 모슬림 사원을 방문했을 때 기본적으로 행하는 것은. 검은 돌(al-Hajar)에 입 맞추고, 세 번은 달려가고 네 번은 천천히 이렇게 일곱 번 카아아바(Ka'aba)의 주위를 돈다. 이렇게 신성한 돌을 방문 하는 것을 마왕 이브라힘(Maqam Ibrahim)이라 부르고. 사파 (Safa) 산과 마르와(Marwa) 산 사이를 일곱 번 달리며, 아라파트 (Arafat) 산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설교를 듣고 무즈달리파 (Muzdalifa)에서 밤을 지내며, 미나(Mina)의 세 기둥에서 돌을 던 지고 이흐람(Ihram)의 마지막 날에 희생을 드리는데 이것이 회생의 이드이다('Idal-Adha) (Encyclopedia Britannica, p. 664).

 

이러한 모슬림의 성지 순례는 이슬람교의 신항을 높고 견고하게 만 든다. 그들에게는 다섯 기둥과 연관이 있는 여섯 번째 종교적 의무가 있으며, 이것은 지하드(Jihad)인 성전(the Holy War)을 말한다. 이 의무는 정당한 상황 즉 이슬람교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에 남자가 부름을 받았을 때나 혹은 그들의 종교를 방어할 때이다. 만약 전쟁에 나간 자가 지하드(Jihad)인 성전(the Holy War)에서 죽는다면 그 는 낙원에서 영생이 보장된다고 모슬림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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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율법(Shari'a of fslam)

  

이슬람교의 율법인 "샤리아(Shari'a)"는 모든 이슬람의 문화에 있 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율법의 구조는 일반적인 법(common law)이라기 보다는 시민법 (civil law)으로써, 이는 영국이나 미국에 서 실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이슬람교의 중심적인 교리가 강조되고 있는 샤리아(Shari'a)를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슬람교의 중심적이고 근본적인 개념이 포함돼 있는 "샤리아"의 문자적인 뜻은 "물의 장소에로의 길"(path to the watering place)이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적으로 적응되는 뜻은 신 에 의해서 명령된 명백한 것이나 혹은 암시적인 것으로서 생활의 모든 방법을 뜻한다. 이 단어 "샤리아(Shari'a)"는 코란(Koran)에 사용 된 용어인데 , 코란은 다른 종교에도 다른 샤리아를 가지고 있지만 모 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샤리아(Shari'a)"를 가지고 있다고 주 장한다. 샤리아는 모슬림 교사들에 의하여 형식화된 것으로써, 그 개 념은 신앙의 교리로 실행적인 것과 법에 대한 것이다 (Encyclopaedia Britannica, 5.v. "Islam" p. 664). 그러나 이러 한 법과신학을 위시한 논쟁과 샤리아(Shari'a)의 네 겹에 대한구분 은 이슬람교의 수니(Sunni)와 쉬이테(Shi'ice)파로 나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하여 알프레드 구일라움(Guillaume, Alfred, p. 103)이 설명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수니 파와 쉬이테 파의 다른점들은 이론적 견지에서. 그들의 법 안에 서 최고의 권위에 대한 쉬이테의 개념은 수니파의 개념과는 전연 다르지 만 그들이 실행하는 것들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Shi'its) 네 개 의 학파(school)와 이즈마(iima)리를 부인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히든임암(Hedden Imam, 저자주: 수니파에 의해서 이슬람법과신학 혹은 기도를 인도하는 권위를 가진 한 모슬림으로 인정된 자)" 만이 오 직 신자가 무엇을 행하고 믿을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신뢰하는 학자들은 "이즈티하드(ijtihad)"의 능력을 아직 연습하거나 혹은 그들 개인의 의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수니파는 이 미 수 천년 전이나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Qur'an)

   

이슬람교의 기본적인 교리는 코란(Qur'an)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케네쓰 보아(Boa. Kenneth, p, 52)는 코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란(Koran)은 이슬람교일 권위 있는 경전이다 신약 성경의 5분의 4정도의 분량으로서, 114(surahs)으로 되어 있다 상당 부분은 모 하메드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으며 . 나머지 부분은 모하메드가 죽은 후 에 그가 살아 생전에 한 말들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기록이 된 것이다(Boa. p 52)

   

코란은 수년에 걸쳐 이슬람교의 창시자 모하메드가 한 말들을 모아 편집한 것과 그의 초기 제자들에 의해서 다시 편집된 것이다. 이것들 의 의미를 "하디쓰(Hadith)", '전통(tradition) '이라고 하며. 이 전통의 말들을 "수나(Sunna)", '풍습(custom)'이라고 한다. "하 디쓰(Haddith)"는 코란을 보충하는데, 이것은 마치 유대교 (Judaism)에서의 율법을 "탈무드(Talmud)"가 보충해 주는 것과 같 은 것이다.

   

이슬람교에 있어서 코란(Qur'an)은 모슬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이다. 코란은 그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경전으로서, 신앙에 잔한 모든 일과 그들이 실행해야 하는 일을 안내한다. 코란은 인간을 위한 하나 님의 말씀으로서 모하메드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은 이에 더하여 모세의 "토라트"(Torat), 선지자들의 책들인 "슈후프"(Suhuf), 다 원의 시편인 "자부르"(Zabur), 그리고 예수의 복음인 "인질"(Injil) 이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 코란은 어떤 계시된 책들보다 탁월한 것으 로서 오직 코란만이 정통성을 가진 책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다른 책들 은 오염되었기 때문에 거의 인정할 수 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 교는 기독교의 신약 성경을 예수의 복음, "인질"(injil)로 간주하지 않으며, 그것은 예수의 말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 다른 사람의 말이라 고 주장한다 이슬람은 예수의 본래 말들은 오염되었으며 또한 많은 부분은 잃어 버렸다고 믿는다. 오직 코란만이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은 모하메드와 코란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코란은 114 수라하(surahs), 114 (chapters)으로 되어 있는데, 장의 길이에 따라 긴 장으로부터 짧은 장의 순서로 편집이 되어 있다. 이슬람은 코란이 아랍어로 계시되고 쓰여졌다고 믿는다. '하나님에 의해서 계시되었기 때문에, 모슬림들은 코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코란을 다른 언 어로 번역할 권위가 연다는 것이다. 만약 누구든지 다른 언어로 번역 된 코란을 읽는데 친숙한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에게 동정적이어 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랍어가 풍부한 언어인 만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본에 가깝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단순히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유효하다는 것으로 평가되어 야 한다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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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기본교리

 

1.이슬람교의 6

 

A. 유일신이자 창조주 알라(Allah)를 믿는다.

 

·알라의 출처와 의미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하나님은 과연 같은가?

 

무슬림들의 주장 "그 성서의 백성들을 인도함에 가장좋은 방법으로 인도하되 논쟁하지말라. 그러나 그들중에 사악함으로 대적하는 자가 있 다면 일러 가로되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너희에게 계시된것을 믿느니 라. 우리의 하나님과 너희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그분 께 순종함이라" (코란 29:46)

 

·6일 동안의 창조 "실로 주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신후 권좌 에 오르신 하나님이시라. 그 분은 밤을 두어 낮을 가리고 또 서둘러 밤 을 쫓으며 태양과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어 그분의 권능아래 두셨느니 라. 창조하시고 자비하심이 그분이 아니뇨"(코란 7:54)

 

"흙으로 부터 너희들을 창조하신후 한 운명을 주신 분이 그분이시거 늘 또 하나의 운명이 그분께 있느니라"(코란 6:2)

 

·예배의 특징

 

자비하시고 관대하신 알라의 이름으로

 

코란의 개경장(fatha)

 

"자비하시고 관대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그 분은 자애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도다.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오며 당신에게만 구원을 구하나니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은 당신 께서 축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지 않는 자나 방황하는 자들 이 걷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이옵니다"(코란 1:1-7)

 

·삼위일체의 해석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네가 백성에게 말하여 하나님을 제 외하고 너(예 수)와 너의 어머니를 경배하라고 하였는냐? 하시니 영광 을 받으소서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렇게 할 권리도 없나 이다. 제가 그렇게 하였다면 당신께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코란 5:119)

 

콜리리디안파 기독교에서 숭배하는 마리아를 봄.

 

삼신론(tritheism)은 코란에서 철저히 배척됨.

 

·알라의 속성들 : 99개의 이름들이 코란에 언급

 

B. 예언자들 (prophet, nabi)

 

·창조주 알라의 말씀을 인류에게 설명하고 해석하는 임무만을 받은 인간 들 아담, 노 아, 아브라함, 이슬마엘,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아론, , 요나, 엘리야, 다윗, 솔로몬, 엘리사, 스가랴, 요한, 예수, 무함마드 등

 

·이슬람만의 예언자 : 후드, 살리흐, 루끄만, 둘 가르나인, 에베소의 일곱 잠자는 자 들

 

·124,000명중 28명이 코란에 기록

 

·라술(rasul, messenger) : 창조주의 말씀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엄무외에 그 복음을 인류에게 전달하여 가르치는 것과 인도하는 임무까지 부여받 은 선택된 자들 : 모세, 다윗왕, 예수, 무함마드

 

·무함마드는 예언자및 선지자들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믿으며 예언자 및 선지자들의 행적을 지켜야 한다는 것임 - 인류의 지도자로서 알라의 선 택을 받은 훌륭한 인간들 임으로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보 편적인 견해

 

C. 성서들 (scriptures, kutub)

 

성경

 

·코란은 성경을 재확인하는 것 "하나님은 그대에게 계시를 내렸고 이를 예증하시었도다. 또한 모세에게 율법을 예수에게 복음을 내려 인류의 지침으로 하셨으며 정과 부의 지표로 하셨으니" (코란 3:23)

 

"우리가 그대에게 계시한 것에 대해 그대가 의심한다면 그대 이전에 성서를 읽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실로 그대의 주님으로부터 진리가 그대에게 이르렀나니 의심 하는 자가 되지말라" (코란 10: 94) 유대교 경전, 기독교인들은 신약성경에 기초해 심판 받을 것을 명시 "우리가 구약을 내리사 복음과 빛이 그안에 있음이니라. 그리하여 이슬람을 믿는 예언자들은 그것으로 판결하였으며 율법학자들과 유대학자들도 그들의 성서에의 함이라" (코란 5:47)

 

"그리고 신약의 백성들로 하여금 알라께서 계시한 대로 판결케하라 했 으니 알라께서 계시한 대로 판결치 아니한자 그들은 죄인이니라"(코 란 5:50)

 

·무슬림들도 기독교의 경전을 믿도록 요구됨 "무함마드여! 우리는 알라 를 믿고 우리에게 내려진 계시와 아브라함, 이삭, 이스마엘, 야곱과 그 자손들에게 내려진 율법 을 믿으며 주님으로부터 모세와 예수와 예언자 들에게 내려진 율법을 믿으며" (코란 3:84)

 

·무슬림들도 기독교의 경전(, 구약)을 보전했고 알라의 말씀은 영원불 멸함을 주장 "우리는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로 하여금 구약 이전에 계시 된 것을 확증하면서 그들 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했느니라. 또한 신약을 계시하여 구약 이전에 계시된 것을 확증하면서 그안에 복음과 광명을 주었으니 이는 복음이요 정의에 사는 자들의 교훈이라"(코란 5:49)

 

·"우리는 그대에게 그 이전에 계시된 것을 확증하고 증언하여 성서를 계 시하나니" (코란 5:51)

 

·코란은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왜곡된 경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

 

- 경전을 숨김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이삭, 야곱과 그의 후손들 이 유대인 또는 기독교인들이라 말하느뇨? 일러 가로되 너희들이 알 라보다 더 잘 아느뇨? 알라로 부터 계시받은 증언을 숨기는 자보다 더 사악한 자가 누구뇨?"(코란 2:140) "그 성서의 백성들은 그들의 자손들을 알고 있듯이 그(무함마드)를 알고 있으면서 실로 그들이 알 고 있는 그 사실을 숨기도 있도다"(코란 2:146)

 

- 경전을 고침 "너희들은 그들(우대인들)이 너희와 더불어 믿음을 같이 하기를 바라느뇨? 그들의 무리가 알라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면서도 그 말씀을 왜곡하고 있도다" (코란 2:75)

 

- 무슬림들에게 판매키 위해 거짓 경전들을 썼음 "그들 손으로 성서를 써서 이것은 알라로부터 온 것이니 값싸게 사소서 라고 말하는 그들 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며 그 것을 쓴 그들의 손에 또 재앙이 올 것이 며 그로서 금전을 모으는 자들에게 또 한 큰 재앙이 있을 것이라"(코 란 2:79)

 

코란

 

·전통적인 무슬림들의 관점

 

- 즉시 쓰여진 계시

 

천사 가브리엘이 매년 검사 및 비교했음.

 

책의 형태는 아니라도 무함마드의 사후 즉시 고정된 내용

 

·칼리프 아부 바크르 (A.D. 632-634)하에 쓰여짐. 칼리프 우스만 (A.D.644-656)이 하프사의 사본을 표준으로 택하고 나머지는 불살라 소 각시킴. 일부는 쓰여졌고, 일부는 암송되어 구전됨. 그러나 A.D.634에 많은 하피즈들이 죽음

 

·계시의 신빙성 주장

 

"실로 이것이 영광의 코란으로 보호된 곳에 보관된 것이라"(코란 85:21-22)

 

"일러 가로되 가브리엘 천사의 적은 알라의 적이라 말하여라. 알라는 천사를 통하여 그대에게 알라의 의지에 따라 코란을 계시하셨나니...." (코란 2:97)

 

"어떤말씀도 폐기되지 안니하며 망각케 하지 아니하되 보다 나은 혹은 그와 동등한 말씀으로 대체하시나니 알라의 전지전능하심을 너희는 모 르느뇨?"(코란 2:106)

 

다른 성서들

 

이슬람 이전의 다른 선지자들의 경전을 받아들임 "알라께서 예언자들과 성약을 맺으사 성서와 주셨도다. 그런다음 한 선지자가 진리와 함께 너 희들에게 오나니 그를 믿고 그를 도울지어다" (코란 3:81)

 

모세의 토라, 다윗왕의 시편(Zabur), 예수의 복음(Injil)

 

읽혀지지 않고 사라진 경전 "명령을 이행한 아브라함의 성서(suhuf)에서 도 알지 못하였단 말이뇨?"(코란 53:36)

 

출처들(source)

 

·유대교와 기독교

 

·초기에 계시된 내용은 당시의 아랍 점장이들의 구전 형태를 취함.

 

·동화 이야기(코란 18:8-26) : 에베소의 잠자는 7인의 이야기

 

바나바의 복음(The Gospel of Barnabas)

 

·통용 : 영어 - 1973년 초판이후 여러번 출판. 불어 - 1977, 아랍어 - 1907 이후 여러차례, 우르드어 - 1916, 1974, 인도네시아어 - 1970, 이란 어 등으로 출판

 

·내용 :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았다. 예수는 무함마드의 출현을 예언했다. 복음서는 예수에게 주어졌 으나 애당초 예수에게 주어진 성서와는 다르다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에게 빛나는 거울과 같은 한 권의 책을 주었는데 그것은 예수의 마음을 꿰뚫고 내려왔다"(바나바 복음 10)

 

본래 예수에게 주어진 복음이 신약성경으로 대체 되었다.

 

·전체적인 특징 : 가르치는 내용이 신약 성경과 상반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 사로잡혀 불경스러운 교리를 전파하고 있다. 즉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고 하나님에 의해 영원히 명령된 할례 를 거부하고 불결한 고기들을 먹으며.... 그 중에 바울도 속하는지라" (서문)

 

"다른 자들은 예수가 정말로 죽고 다시 살아났다고 믿는다. 그 중에 바 울도 속하느니라"(바나바 복음 223)

 

D. 천사들

 

·천사는 빛으로 창조된 가장 고귀한 피조물중의 하나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할뿐 거역하지 않는 속성을 부여받음.

 

·인간이 알수 없는 임무를 부여받음 : 양식, 풍우, 선과 악을 주관, 천국 과 지옥을 담당, 심판과 부활의 날을 담당.

 

·가브리엘 :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모든 천사들을 주관하고 모세나 예 수, 무함마드에게 창조주의 계시를 전함.

 

이드완 - 천국의 문을 지킴

 

말리카 - 지옥의 문을 담당.

 

라킵 - 인간의 오른쪽 어깨에서 선행의 업보를 기록

 

아띠드 - 인간의 왼쪽 어깨에서 악행을 기록

 

문카르 - 인간이 죽어서 무덤에 오게 되면 죽기전의 그 인간의 종교 에 대하여 질문 및 결과에 따라 두들겨 팸

 

나키르 - 창조주를 안믿고 선행을 실천하지 못한 인간에게 고통을 줌

 

우즈라엘 - 죽음 담당, 인간의 생명을 앗아감

 

이스라필 - 심판의 날에 나팔을 가지고 와서 두번 나팔을 부는데 첫번 째 나팔을 불때는 그때까지의 모든 인간이 죽게 되며 두번 째 나팔을 불때는 아담부터 시작해서 죽었던 모든 인간이 일어나 창조주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를 담당함.

 

천사들의 기능

 

- 인간은 평생동안 악령이나 마귀 또는 사탄의 행악으로부터 보호받음. 이것은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천사들이 보호하기 때문, 인간의 시력 으로는 못봄.

 

- 따우히드 (창조주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유일신 사상)를 가장 순수하게 보호하면서 쉬르크(창조주 하나님에게 어떠한 다른 것을 동격으로 비 유하는 다신론)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줌.

 

- 천사들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종복임으로 인간들을 천사들을 숭배하거 나 신성화 해서는 안됨.

 

- 알라는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날에 천사로 하여금 아담에게 허리 구부 려 인사를 하도록 했고 아담에게 천사들보다 많은 지식과 지혜를 주 었고 지산을 관리하는 대리권을 주심, 인간은 천사보다 더 높은 위치 에 있음. 이때 아담에게 경배하기를 거부해서 쫓겨난 천사가 이블리 스, 즉 사탄임.

 

E. 심판과 부활

 

·인간의 은 현세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후에도 계속해서 생이 지속

 

·현세의 생은 유한적이고 사후의 생은 영원하며 이 생명은 창조주의 심 판을 통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과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주께서 소멸할 어느날(yawm al-qiyama)이 심판날이며, 창조주는 모든 피조물들을 자기앞에 모이게 하니 이날은 부활의 날 (yawm al-bahth)이라 하며, 살아난 인간들은 모 두가 창조주의 심판앞에 서게 되니 이때 인간이 현세에서 행하였던 선 과악이 증감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제시되매, 창조주는 인간이 실천한 선과 악의 결과를 비유하시니 선행이 많은 자에게는 관용이 베풀어 질 것이요, 악행이 많은 자는 그에 대한 형벌이 있을 것이며, 용서를 받는 자는 곧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요, 벌을 받는 자는 지옥으로 들어감.

 

·부활의 날에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무덤에서 부활한 육체에 영혼이 들 어오면 다시 생명을 부여받고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동시에 승천함. 이 사실을 부정 내지 의심하는 자들은 모두 불신자(카피르, kafir)로서 지옥 의 불에 떨어짐. 사후의 생명을 부인하는 것은 심판주로서의 창조주의 권위에 대한 도전임.

 

F. 알라의 법칙과 정명사상

 

·인간의 현세 생활을 영위하고 규정하며 제한하는 창조주의 법칙에 대한 완전한 순종과 어떤 특정한 기간에 특정한 방법에 의하여 어떤 물체를 창조하는 알라의 창조를 믿는것

 

·세상의 창조, 일어나는 모든 행운과 불행도 창조주의 뜻이고 창조주가 기록하여 두지 아니했던 것은 인간에게 절대 발생하지 않으므로 창조주 를 믿는 자들은 알라께 의지해야함.

 

·우주의 운행질서도 모두 창조주의 권능안에 있으며 인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탄생하여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임종할 것인가는 알라의 뜻에 따 라 행하여 짐으로 알라외에는 창조되는 시간과 임종하는 시간을 아무도 알수가 없음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인간이 선택하여 행하는 모든 행위까지도 창조주 알라께서 알기 전에는 발생치 않음.

 

이슬람교의 5(Five Pillars of Islam)

 

A. 신앙고백 (confession of faith)(Shah da)

 

·"알라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다."

 

·발음 : La - il - la - la - il - lal - lah wa

 

Mu - ham - ma - dur - ra - su - lul - lah

 

·사용 : 출생, 사망, 기도에의 부름, 하루 5회씩의 기도, 근무중의 찬송

 

수피교단에서는 반복 외침속에 신접(trance) - 신비주의

 

·증거 : 나는 증거한다 (I bear witness that )

 

·의미

 

-"알라외에는 신이 없고":다신교의 배척, 중재자의 존재를 철저히 배척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다":

 

무함마드의 신분 - 이슬람교를 다른 일신교들과 구별지음

 

무함마드의 기능 - 무엇인가 구원의 메세지를 인간에게 전해주려는 알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중재자

 

   

 

 

B.기 도 (Prayer, Sal t)

 

기도를 행하기 전의 전제조건들

 

·규정된 세정의식 :

 

 

1) 손을 씻음 2) 입안을 헹굼 3) 코안을 씻음 4) 얼굴을 씻음 5) 팔뚝을 씻음 6) 물묻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기 7) 귀를 씻음

 

8) 발을 씻음

 

 

청결은 신앙의 근본이요, 청결하지 않은 기도는 수락되지 않으며, 청결 은 신앙생활의 절반이다.

 

·내적 청결 : 죄악으로 부터 마음과 양심을 정화하는 것. 실수로 인한 죄악에 대해서 진실되게 회개하고 타인을 의심치 아니하고 증오하거 나 시기하지 아니하며 유혹하지 아니하는것. 거만하지 아니하고 남을 안 속이는 것등

 

·외적 청결 : 인간의 신체중에서 노출되어 더러워지기 쉬운 부분을 깨끗 한 물로써 깨끗하게 하는 행위를 말하며 우두(wud ')라고 함. 물이 없는경우 우두 대신 행하는 행위를 '따얌뭄'이라고 함.

 

·기도장소는 모든 불결한 것을 제거해야 함

 

·몸과 복장은 깨끗하고 청결해야 함

 

·얼굴은 반드시 메카(Mecca)를 향해야 함

 

·기도는 규율을 지키는 근엄한 태도로 하되 잡담, 웃음, 놀기, 먹는것 등 이 있으면 기도의 효력이 상실됨

   

하루 다섯차례의 기도

   

파즈르 (아침) 2

 

주흐르 (정오) 4

 

아스루 (오후 4시경) 4

 

아그립 (해질무렵) 3

 

이샤 (저녁) 4

 

17번 반복

 

A.D 619년 무함마드가 하늘로 7층의 하늘중 마지막 7층에서 아브 라함을 만난 후,천사를 통하여 기도 방법과 하루 5차례의 기도 수행 명령을 전달 받음.

 

금요예배 (juma)

 

·금요예배는 코란과 하디스에 의해 의무화

 

·금요예배는 노예,여성,소년,환자를 제외한 남성,자유인,성인,건강한 자 및 거주민을 포함한 모든 무슬림에게 의무

 

"가장 훌륭한 날이 금요일이라. 그날 태양이 떠 올랐고 그날 아담이 창조 되었고 그날 그가 천국 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그날 그곳으로 부터 추방되었으니 그날 심판이 일어나리라"

 

·반드시 성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

 

·반드시 이맘의 설교가 있어야 함.

   

·예배를 알려주는 무엣진(Muezzin)의 아잔(az n)을 들은 사람(반경 4.5Km이 내)은 의무로 행함

 

·금요일날 공동예배의 기도는 반드시 알라가 응답해 준다고 믿음(하디스 에 의하면 평상시의 기도보다 27배의 응답 효과가 있다고 함.)

 

기도의 순서 (아침기도)

 

1) 서서 Mecca를 향해 양손을 귀에 대고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라 고 외침

 

2) 조용히 al-Fatiha(개경장)을 암송한다

 

3)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외친 후 "주님 찬미 받으소서"를 머리 숙인채 세번 반복함

 

4) 선채 "알라는 자기를 찬미하는 자의 말을 들으신다"라고 외침

 

5)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외친 후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가장 높으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 세번 외침

 

6)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외친 후 상체를 들고 무릎을 꿇는 다

 

7) 다시 절을 한채 "가장 높으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를 세번 외침

 

8)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외친 후 조용히 al-Fatiha(개경장)을 암송한다

 

9)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외친 후 "주님 찬미 받으소서"를 머리를 숙인채 세번 반복함

 

10) 선채 "알라는 자기를 찬미하는 자의 말을 들으신다"라고 외침

 

11)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외친 후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절 을 하고 "가장 높으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를 세번 외침

 

12)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외친 후 상체를 들고 무릎을 꿇는 다.

 

13) 다시 절을 한채 "가장 높으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를 세번 외침

 

14) 상체를 들고 무릎을 꿇은 후 외친다

 

"알라여! 우리의 인사와 헌납과 시주와 기도를 받아 주소서. ! 예언자여! 그대위에 알라의 자비와 축복이 있을지어다. 알라의 평화가 우리와 알라께 충실히 예배드리는 모든 자들위에 함께 할 지어다. 나는 알라외에는 신이 없음을 증거한다. 알라는 유일하 시고 어떤 동등한 것도 가질 수 없다. 나는 무함마드가 알라의 종이고 사도임을 증거한다"

 

15) 무릎을 꿇고 머리를 우측으로 향하여 "알라의 평화와 자비가 당 신들과 함께 하시기를"이라 외침

 

하루에 5회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행하는 가운데, 모슬렘은 알라를 향 해 34회 절을 하고 다음의 귀절을 암송한다.

 

·알라는 가장 위대 하시다 68

 

·가장 높으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 102

 

·주님 찬미 받으소서 51

 

·알라는 자기를 찬미하는 자의 말을 들으신다 17

 

·al-F tiha(개경장) 17

 

·이슬람의 신앙고백 (14) 5

 

·모든 이슬람들에게 평화를 기원 5

 

C. 희사 (almsgiving, zak t) - 구제

 

·수입의 2.5%(1/40)을 희사. 가난한 자를 도움

 

zak t - 의무로 내야 하는 희사

 

sad qa- 자발적으로 내는 희사(히브리어로 tsedeg : 정의를 뜻하나 랍비 들에 의해 '희사'로 사용됨)

 

·"실로 '사다까'는 가난한자, 불쌍한자, 노예, 채무인자, 하나님의 길에 있는 자, 그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것이니" (9:60)

 

·비공개로 비밀히 행하라

 

"그들의 재산을 바치되 타인에게 보이려 함이니 이들은 하나님과 내세 를 믿지 아니하고 사탄을 친구로 하나니 가증한 친구이로다" (4:38)

 

·알라의 보상

 

"친척과 필요로 하는 자와 여행자에게 자선을 베풀라.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 그리하매 그들은 번 영하느니라. 타인의 재산으로 이익을 증가시킨 것은 하나님 곁에서는 아무런 증가도 될수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기 위하여 '자카트'로 이익을 증가함은 여러배의 보상을 받게 되니라" (30:38-39)

 

D. 금 식 (fasting, sawm)

 

발전

 

: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이주한후(A.D.622, 히즈라) 유대인의 속죄일 단식을 봄.

 

이듬해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악화 되었을때 계시가 옴.

 

"정하여진 날에 단식을 행하면 되나" (2:184)

 

- 유대인들 처럼 24시간 내내 단식하다 10일으로 연장 변경

 

"인류의 복음인 코란과 그 복음의 설명과 기준이 내려진 달이 라마단달 이거늘 단식을 실천하라 하셨도다" (2:185)

 

- 10일 동안에서 한달 내내로 연장 변경

 

기능

 

·지옥의 문이 닫히고 천국의 문이 열림(기도가 평상시 보다 30배 효력 가짐) - 유대인들의 속죄일(욤 키푸르) 단식처럼 죄사함에 주된 목적을 둠.

 

실천

 

·몸에 들어가는 모든것 삼가:음식, 음료수, 담배, , 부부관계, 주사 등

 

·단식의 시작과 끝 : '까디'가 본 새로운 달이 뜰때부터 - 대포나 총 혹 은 깃발로 알림

 

·단식이 면제 되는자 : 어린아이들(13세 미만), 노약자들, 여행자, 임신부, 모유가 필요한 어머니, 병자

 

·단식 달의 마지막 10일간은 모스크에 감. 특히 27일째되는 날은 기도하 고 코란 암송

   

 

단식으로 간주되지 않는자

 

·정신 이상자

 

·정신적 성년이 되지 아니한자

 

·잠에서 깨어나지 아니한자

 

·여성이 생리기간 내지 출혈할 경우

 

·단식중에 부모나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 그 후계자가 채우지 못한 날수 만큼 대신 단식을 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부채는 지불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요"

 

E. 순례와 희생제물 (pilgrimage, hajj)

 

실천

 

: 모든 무슬림들은 일생에 한번은 메카를 방문

 

·성지 메카의 카바신전 "믿는 자들이여! 실로 불신자들은 불결하나니 그 들로 하여금 그해 이후 '하람' 성원에 접근하지 않도록 하리니 " (9:28)

 

·"우리는 그대에게 아랍어로 된 코란을 계시하니 이로 인하여 그대가 '어머니 도시' 주민들과 그 주변의 모든 백성들에게 경고하고 일부는 천국에 있게 될 것이요" (42:7)

 

·아브라함과의 연관 : Mina, 메카교외

 

·하나님의 집 : Bayt All h

 

순례의 과정

 

·카바신전 주위를 7번 돈다

 

·사파와 마르와 언덕 사이를 7번 왕복  

 

·Dh al-hijja달의 9일째날 : 메카에서 25Km 떨어진 아라파트산에 모든

 

순례객들이 모여 정오에서 해질때까지 기도,코란암송,설교듣는다. 죄용 서 간구

 

·같은날 밤 Muzdalifa에 모여 잠을 잔다

 

·10일째날 메카에서 6-7Km 떨어진 Mina에 모여 이틀을 보냄. Mina에 도 착 즉시 Satan을 상징하는 돌에 투석,악마추방의식을 행하고, 번제물(순 양)을 도살한다

 

·11,12일째 날에 계속 돌 7개씩을 투석,악마를 쫓는다. Mecca에 돌아와 Kaba 주위를 다시 7번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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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예수관에 대한 비교연구

(- 이슬람적 관점을 통한 고찰 -) 

 

남옥정 / 조선대학교 강사

Ⅰ.서론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는 세계종교사에서 포괄적이고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양 종교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교리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에 관한 것이다. 이슬람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엄격한 유일신 사상이다. 그리고 신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크리스트교에서 예수는 요컨데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무슬림은 믿을 수 없는 부분이다. 신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으며 무슬림은 예수를 신이 아닌 가장 훌륭한 예언자들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양 종교간의 예수에 관한 견해의 차이가 있다. 즉, 예수를 신으로 보느냐, 아니면 단지 예언자로서만 인정하느냐의 교리적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논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는 현대 역사에서 왜 대립구조를 갖게 되었는가? 양 종교는 갈등과 대립의 관계일 수 밖에 없는가, 아니면 화해와 화합도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에 논자는 이슬람과 크리스트교의 첨예한 견해차이들 중 하나인 예수의 지위와 성격에 관한 비교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양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그의 지위에 대한 인식은 양 종교의 교리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슬람교에 관한 인식은 크리스트교에 비해 매우 빈약한 형편이다. 그에 비례하여 크리스도교인과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이슬람교에 관한 편견이나 선입관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에서 5명 중 1명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고, 이슬람교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어떤 점으로든지 이슬람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이 논문을 통해 세계 3대 종교에 속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한 부분에 관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예수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하여 양 종교간의 갈등과 대립의 관계의 시발점을 찾아 양 종교의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예수에 관한 비교 연구는 꾸란과 성서에 근거하여 수행할 것이다. 예수에 관한 꾸란과 성서의 언급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 마리아에 대한 서약, 예수의 탄생, 예수의 기적들, 예수의 신성의 임무, 예수와 십자가, 예수와 신성, 예수와 삼위일체설이다2).

 

Ⅱ.예수 이전의 예언자들에 관한 고찰

예수의 비교연구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을 살펴보고 예수의 혈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으로부터 아랍인과 이스라엘인, 그리고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분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는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자식이 아니고, 이삭만이 유일한 독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오류로 인하여 이 사실을 주장하기는 힘든 듯 하다. 신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시험에 들게 한 장면에서 꾸란과 성서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그 일 후에 신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부르시되......(중략)......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아브라함이 가로되, '여기 있습니다.'하니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이제야 신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장 1-12절)

구약성서에 언급된 이삭의 희생 이야기에서 이렇듯 독자라는 대목이 여러 번 나왔다. 이 사실을 이슬람적 시각으로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즉,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었으며, 설사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장남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신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구원의 위대한 언약을 받게 될 '네 씨'에 속하지 못하였으며,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삭의 중요성에 비추어 이스마엘은 인간의 생식본능이라는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개념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어 구원의 이야기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삭은 유일한 독자로 묘사되어 희생명령을 통한 예언적 임무를 부여 받았으며, 이 독자의 개념은 신약성서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독생자의 개념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3).

반면, 꾸란에 나타난 내용은 극히 대조적이다.

"아들의 나이가 그와 함께 일할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가 말하길 '내 아들아, 너를 제단에 올리라는 명령을 내가 꿈에서 보았노라. 너의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구나,' 라고 하니 아들이 말하길 '아버지 당신께서 명령받은 대로 하옵소서. 신이 인내하는 종을 원하신다면 당신께서 저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였더라. 그 둘이서 신께 순종하고 그는 그로 하여금 이마를 숙이도록 하였을 때, 신은 그를 불러 '아브라함아, 그대는 이미 그 꿈을 수행하였노라. 신은 이렇듯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내리니라.' 실로 이것은 분명한 하나의 시험이었으니, 신은 훌륭한 희생으로 그를 대신하였노라." (꾸란 37장 102-107절)

꾸란에 따르면 이 일이 있은 뒤, 아브라함의 이삭의 잉태계시를 받는다.

꾸란과 성서에 나온 희생이야기를 살펴본 바 꾸란의 시각으로 볼 때, 성서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에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은 86세(창세기 16:16)였고, 이삭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은 100세(창세기 21:5)였다. 따라서 이스마엘이 이삭의 손위임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3세나 손위였으며 이스마엘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이삭을 독자라 부르기는 어렵다. 오히려 독자란 언급은 이스마엘에게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주장이다4).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브라함은 성서에서 주장하듯 이삭을 독자만으로 볼 수 없고, 이스마엘을 장남으로 두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로 신은 그대에게 계시하였거늘 이는 노아나 그 이후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것과 같으며 도한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후손과 예수와 아이욥과 유누스와 하룬과 솔로몬에게 계시한 것과 같으며, 다원에게 시편을 내린 것과도 같으니라."

(꾸란 4장 163절)

아브라함은 신의 예언자임을 계시 받았는데, 그의 후손들, 즉, 이삭뿐 아니라 이스마엘, 또한 이삭의 아들인 야곱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그의 후손들에게 내린 계시와 같다는 것이다. 이는 아랍인과 이스라엘인, 즉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신이 다르지 않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겠다. 성서와 꾸란 구절이 대립된 양상을 띄는 부분도 있지만, 그 대립의 바탕에는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즉, 유일신론을 가진 아브라함의 가계라는 근본이 깔려있다. 이와 같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동일한 신을 믿으며, 그들의 선조는 동일 인물이었다는 근본 생각을 바탕으로 예수에 관한 비교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Ⅲ.예수에 관한 성서와 꾸란의 언급

 

첫째, 예수에 관한 꾸란의 언급은 마리아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꾸란 이므란의 장에는 마리아의 탄생이 언급되어 있다. (꾸란 3:35-365))

이므란가에서 태어난 마리아는 신의 특별한 보호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신은 사가랴에게 그녀를 돌보도록 하였다. 마리아는 신에게 선택되는 행운을 얻어 모든 여성들 가운데 최고라는 극찬받는 위치를 얻었다. 꾸란에서 다른 여성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고 시바의 여왕도 이름없이 여왕으로만 기록되었는데, 마리아만 이름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이븐 마르얌(Ibn maryam), 즉, '마리아의 아들'이란 칭호로 나오며, 단독으로 나올 때는 거의 아무런 역할과 위치가 없다6). 성서와 마찬가지로 꾸란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잉태계시를 받는다. 또한, 마리아의 장에는 더욱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다른 여인들과 차별되며, 꾸란은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둘째, 예수탄생의 이야기에 관해 꾸란과 성서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 예수탄생 이전에 사가랴와 요한의 탄생이 언급되어 있다. 꾸란에서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아랍어로는 Zakariy?)는 마리아의 성장을 보살핀 신앙심이 깊은 제사장이었다. 꾸란에서는 요한과 사가라, 그리고 마리아를 늘 함께 언급하고 있다.

2. 사가라는 노인이며, 그의 아내는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돌봄으로서 세례요한을 얻었다. 그 예증으로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다.

3.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예언받는 것은 사가랴와 그의 아내가 요한을 잉태한 후이다.

4. 예수의 탄생장소는 성서는 배들레헴의 사관의 구유이며, 꾸란은 종려나무 숲으로 기록되어 있다. 압둘라 유수프 알리는 이곳이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6마일쯤 떨어진 베들레헴이라고 풀이한다.

5. 꾸란에는 마리아가 출산의 고통을 겪었음이 기록되어 있는 반면 성서에는 출산의 고통에 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꾸란과 성서 모두 위의 언급을 통해 예수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났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양 종교에서 예수의 해석을 달리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트교에서 예수의 탄생은 인간의 혈육관계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신으로부터 나온 독특한 아들 개념을 말한다. 하지만 예수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신의 아들임을 철저히 부정하고 오직 알라 외에는 신은 없으며, 예수는 신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는 반박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복음서의 상당 부분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기적을 행하고 공식적,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보냈던 해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신약성서는 우리가 '기적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 단어로 묘사하였다. Wonders, signs, mighty works, works 이 여기에 해당한다7).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기적은 치료사의 예수로서 돌보시는 신을 보여주며, 자연현상의 기적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이 신의 일을 행한다는 것을 가르치며, 기적을 통하여 자신을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꾸란에서 기적에 해당하는 단어는 아야(?yah)이다. 이 용어는 신의 증거 또는 신성의 메시지란 의미 중 하나로 일반화되었다. 아야의 의미는 기적, 또는 꾸란의 구절을 의미한다. 신성한 메시지와 그것의 증거를 가리키기 위해 똑같은 단어를 채택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신성한 메시지 그 자체가 기적을 증명하는 으뜸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꾸란은 무슬림들에게 예언자의 가장 위대한 기적으로 간주된다8). 성서와 마찬가지로, 꾸란에는 예수의 기적이 언급되어 있으며, 꾸란 3장과 5장의 내용에 따르면 꾸란은 예수의 기적을 인정한다. 하지만 예수의 기적을 인정하는 것은 크리스트교의 예수의 기적과는 다르다.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예수의 기적은 돌보시는 신을 보여준다고 하였다9). 이는 신을 대신하는 예수의 기적행위가 아닌, 예수의 기적 자체가 신과 동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말하는 예수가 행한 기적은 단지 신과 예언자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의미로 한정된다.

 

넷째, 성서와 꾸란의 예수의 임무는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하며 신에게 귀의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꾸란에는 예수가 예언자일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도래를 예언한 구절이 있다. (꾸란 61장 6절) 이 구절을 통해 무함마드의 정통성과 더 나아가 예수와 무함마드는 예언자적인 동등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함마드에 대한 계시가 아랍어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그가 이 계시를 바탕으로 신의 율법을 실행했다는 점일 것이다10).

 

다섯째, 꾸란에서 예수와 십자가의 문제를 논할 때 최대의 쟁점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했는가, 아니면 살아있었는가의 문제이다. 크리스트교에서 십자가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아담이래 모든 사람들의 죄를 그가 짊어졌다는 의미이며, 이는 예수의 부활과 함께 그의 신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대리자적 속죄 죽음'의 의미로 간주된다11). 무슬림들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꾸란은 예수의 십자가 못 박힘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마리아의 아들이며 신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다12)."

위 구절은 이슬람교 기독론의 핵심이다. 바로 여기에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슬람교의 모든 종파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한다. 이슬람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교리인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일부 무슬림 현대 학자들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죽음 사건과 반대되지 않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시도는 전체 무슬림들의 믿음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역사적으로 이슬람교는 공식적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교리를 전면 부정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의 이해 관계에서 매우 민감한 부분이며, 이슬람교의 예수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결정적 단서이다13).

 

여섯째,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한 주장과 함께 예수의 신성에 관한 주장도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상호 대립하는 부분이다. 꾸란 112장에 의하면 알라는 낳지도 낳으시지도 않았음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며 선지자일뿐이며 그는 이전에 등장한 선지자들과 동일한 자격과 의미를 지닌다. 이는 크리스트교의 삼위일체설과 관련된 사항이다. 성서 자체에는 '삼위일체(Trinities, Trinity)'라는 말이 없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개념은 성서적 구속사에서 기초적이고 지배적인 사상으로 발전되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개념의 문제는 역사적 기독교의 실제적 관심사이기도 했다14).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에 의하면 "삼위일체는 하나이고 유일하신 참 주님이시다. 그리고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인 동시에 동일한 본체에서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바로 말하며, 믿으며,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15)." 이 말에 크리스트교인들의 무슬림에 대한 신의 유일성에 대한 주장의 핵심이 들어있다. 하지만, 꾸란은 삼위일체의 개념을 부정하며 오직 한 분의 신만을 인정한다. 삼위일체의 개념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는 무슬림의 유일신관을 부정하는 개념이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꾸란에는 신은 성자와 성부를 두지 않았음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성서의 백성들아! 너희 종교에 지나치지 말고 신께 진리만을 말하라.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 예수는 신의 예언자이니, 그 분께서 마리아에게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영혼을 보내셨다. 그러니 신과 그 분의 예언자들을 믿고 '셋'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치라. 너희에게 이로울 것이다. 신은 진정 한 분이시다. 아들이 있다니, 그 분께 영광이 있으라!" (꾸란 4장 171절)

크리스트교인들은 무슬림들이 예수가 육체적 의미의 신의 아들로서 오해함으로써 이와 같은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지적한다. 또한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파울루사르라힙(Paulusar-R?hib)은 13세기 시돈의 수도승이었는데 그는 『크리스트교 교리의 설명』에서 유일신 믿음에 관하여 말했다. 그가 언급한 내용은 삼격 안에 하나의 본질인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신은 삼격이지만 신이 이성(성자)과 생명(성신)을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유일신이라는 것이다. 즉, 유일신 안에 상격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의 아들은 육체생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불가사의한 방법을 통하여 탄생한다는 것이다. 위의 주장에 대해 무슬림인 알 까라피(al-Qar?f?)는 "고약한 질문에 대한 뛰어난 대답"이라고 말하며, 이에 대해 한 줄 한 줄 논박하였다. 그의 반박은 크리스트교에 대한 이슬람식 반론이 되었다. 알 까라피는 말하길 "크리스트교인들은 꾸란의 각 장 도입부분에서 읽혀지는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신의 이름으로'란 구절을 인용하여 그들의 삼위일체론을 뒷받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이격을 만들었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되었다. 하지만 꾸란속에서 그와 같은 것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꾸란은 신의 유일성을 강조 한다. 복음서라 불리는 크리스트교의 성서는 신의 계시를 왜곡했다."

알 까라피의 반론은 지나치게 간략화 된 듯 하다. 하지만 그의 반론은 삼위일체론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입증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16).

 

Ⅳ.결론

본 논문은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선조는 동일하며, 그들은 동일한 신에게 동일한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출발하였다. 만약 이에 대한 양 종교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예수에 관한 양 종교의 주장을 비교하여 절충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위와 같이 꾸란과 성서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예수관을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기적적으로 태어났고, 복음을 전파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예수의 지위에 관한 미묘한 입장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꾸란 속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수에 관련된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교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꾸란은 예수를 적대시하지 않고 예언자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슬람은 예수가 신으로부터 복음서를 부여받고 이를 백성들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17). 이와 같은 사실은 이슬람교가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종교라는 것을 말해주는 실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에 발생한 이슬람교 극단주의자들의 불상파괴 소식은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도 역시 대부분의 이슬람교 신자들은 꾸란을 잘못 이해한 극단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도 이슬람교가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 종교다원화시대를 맞이하여, 양 종교간에는 얼마든지 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서로 대립되는 부분에 관한 관용적인 학문적 고찰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예수관의 비교는 양 종교간의 우월성을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 양 종교간의 이해와 절충을 이끌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각 주1) 이 논문은 2000년 9월 29일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연구소 제6회 초청강연회 겸 한국아랍어ㆍ아랍문학회 추계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그 내용을 수정ㆍ보완한 것임.

2) 황병하, "코란 속의 예수와 성서 속의 무함마드에 대한 비교연구" 『한국이슬람학회 논총 창간호』, 1990, p. 23.

3) 황병하, Ibid, pp. 15-16.

4) Ibid., pp.9-10.

5) F. E. Peters,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Princeton University Press, New Jersey, 1990), p. 117

6) 전재옥, 『무슬림은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 서울: 예명 커뮤니케이션,1995. pp.27-28.

7) 마이클 하퍼(Michael Harper), 『예수의 치유』 고재봉 역, (서울: 요단 출판사, 1988), p.163.

8) Maulana  Al?, The Religion of Islam, (Printed India by Jainendra Prakash Jain at Shri Jainendra Press. New Delhi, 1994), p. 181.

9)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예수에 관한 12가지 질문』유선명 역, (서울: 주식회사 흥성사, 1996), p. 69.

10) 김용선, 『코란의 이해』 (서울 : 민음사, 1990), p. 48.

11) 성종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장신논단, 장로회신학대학 출판부』, 1990, p. 238.

12) 꾸란 4장 157-158절

13) 전재옥, op. cit., pp. 43-44.

14) 한국종교연구회, 『세계종교사입문』, (서울: 청년사, 1991), pp. 493-494.

15) Battenhouse, R, W, A Companion to the Study of St. Augustine, p. 38.

16) Hans K?ng et al, Christianity and the World Religion, (Doubleday, New York, 1986), pp. 113-114.

17) 황병하, 『아랍ㆍ이슬람문화』(조선대학교 출판부, 2001),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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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 선교 전략(2) 이슬람권 선교를 위한 제안

 

1.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모슬렘과 이슬람은 어떻게 다른가? 이슬람은 종교이며 모슬렘은 이슬람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믿는 이슬람 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이슬람에 대해서 배우는 것조차 꺼려해서는 그들에 게 복음을 전할 길이 없다. 이슬람권에서 사역하며 복음전도 하는데 직접 영향이 있는 방법 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이다. 예수님이 12살때 회당에서 대화하셨는데 대화는 그들을 진정 으로 이해하고, 나누기 위함이다. 무엇을 얘기하는지 들어야하고, 대화가 수단이 되어 그들 에게 복음을 나누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슬람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이러한 지식이 없이 대화 할 경우 그들로부터 일방적인 설득만 당하게 된다. 대부분의 모슬렘들은 아주 적은 이슬람에 대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깊은 이 해는 복음 전하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결국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그들 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이슬람세계에 대한 균형 잡힌 안목이 필요하다.


2. 코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코란을 터부시하며 코란에 대한 지식 없이 이슬람권 선교를 계획 한다. 코란은 성경에 대해 긍정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 많이 있으며, 특히 예수님에 대해서 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코란을 안다면 그에 대한 지식은 코란과 성경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코란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며 오히려 성경과 비 슷하다(코란, 수라19:16~21). 코란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쓰고 있다. 코란 어느 곳에도 예수님외에 메시야 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코란, 수라3:45). 이 한 구절 뿐 아니라 여러 구절이 있다. 또한 코란은 복음서를 인정할 뿐 아니라 그 신빙성까지 증거하고 있다(코란, 수라5:71).

 


또한 코란은 주님의 재림을 분명히 얘기하고 있다. “실로 예수의 재림은 심판이 다가옴을 예시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일러 가로되 그 시간에 대하여 의심치 말고…(코란, 수라43:61)” 예수님은 죄없음 뿐 아니라 심판자로서 나타난다.(코란, 수라19:71) 무수한 코 란의 구절들은 복음을 전하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이란인 개종자는 영 국 신학교에서 성경과 코란을 배웠는데 “왜 모슬렘들이 코란을 읽지 않느냐?” 는 필자의 질 문에 “만일 모슬렘들이 코란을 제대로 읽는다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기독교인이 된 한 사람의 의견이기는 하지만 코란을 안다는 것이 이슬람 선교에 얼마 나 도움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3. 이슬람권 선교는 반드시 팀 사역과 연합사역 이여야 한다.

 


 성경은 단독적인 사역을 지지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써 각 지체를 관장하며, 지체는 상호 유기적으로 은사에 연관되어, 머리되신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연결되 어 있는 것이다. 모든 선교가 그러하겠지만 이슬람권 선교는 분명히 서로 연합하여 각자의 은사를 인정하며 팀을 이루어야만 한다. 선교지에서의 상호간에 비방 중상하면서 용서할 줄 모르는 약육강식의 경쟁체제는 아무리 합리적인 변명이 있다하더라도 성경적인 기준과는 상 반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탁월한 선교사였다. 그는 최초로 파송 될 때부터 동역자와 팀 사 역을 하였다. 교회 역사의 중요한 인물인 그레고리가 로마의 주교로 임명되고 영국 선교 운 동이 시작되는데 그는 AD 596년 어거스틴을 지도자로 하여 40여명의 팀이 처음으로 영국 켈트족으로 파송되어 많은 열매를 맺었다. 팀 사역은 1793년 근대 선교 아버지로 불리우는 월리웜 케리의 삶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선교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세람포스 삼총사(Serampore Trio)라고 불리는 마쉬먼(J.Marshman)과 워드(W.Ward)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철저히 팀 사역의 모범을 보였다. 이슬람권 선교는 같은 교단이나 선교단체 뿐 만 아니라 서로 다른 단체와도 연합사역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 사역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좋은 팀은 팀 전략가, 중보 기도자, 잘 섬기는 사람, 행정가와 좋 은 일꾼들이 있어야 한다. 협력하는 팀이 아닌 개인에게 이슬람선교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 다.

 

4. 개인 전도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슬람권에 접근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방법은 그 지역과 성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서 부 아프리카와 모리타니야에서부터 필리핀 남부까지 골고루 퍼져있는 모슬렘들은 그 조직이 다양한 만큼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나 우정전도를 통한 일대일 전도 방법은 어느 곳에나 적용되는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슬람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 중심 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예수님이 밤에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수가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했듯이, 예수님 당시 와 같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개인전도의 경험이 없으면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만 할 뿐 활용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개인전도 경험은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큰 도움 이 된다. 복음에 대한 반론과 자세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개인 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 복음의 능력은 곧 십자가이며 그 십자가가 곧 선교의 동기고 출발점이여야 한다. 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찿을때 우리의 선교와 삶이 승리하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 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라고 부탁한 것처럼 이슬람권에는 잘 정비된 프로젝트와 거창한 계획보다 개인전도를 필요로 하고 있고 그 개인전도는 여전히 모 슬렘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유해석 목사 총신대학교 졸업, 총회신학교 졸업, 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파송 선교사, 현 F.I.M.국제선교회 대표로서 영국본부 사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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