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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인도의 최상위 랭킹 대학인 푸네대학 총장이며 국제적 경제학자로 인정받는 나렌드라 자다브는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 불가촉천민은 존재 자체가 수치가 된다는 최하층 계급이다. 그들은 자신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항상 작은 빗자루를 갖고 다녀야 하고 공동우물에서 물도 마실 수 없다.

 

힌두교는 불가촉천민은 전생에 악한 짓을 한 자들이기에 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수천년 동안 종교화되어 내려오는 운명론의 결박은 천 겹 쇠사슬처럼 인도인을 묶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결박에 저항했다. ‘나는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 그것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치욕과 모욕 속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과정은 너무나 힘들고 위험했다. 하지만 그는 해냈고 그 결과, 그는 세계를 놀라게 한 인물이 됐다. 국제금융의 전문가로 인도의 미래를 이끌 차기 대통령으로 지목받고 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이 무한한데 벽이 높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빌 1:20)’는 사도 바울의 외침을 들으며 문제를 뚫어 보라. 역사가 만들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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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은혜의 세계에 거하라

 

 

 

오늘의 말씀
은혜의 세계에 거하라
엡 2:1-7 /골 2:6-7
 
성도는 은혜의 세계에 눈을 떠 삶 전체가 은혜의 세계로 이전해야 합니다. 은혜의 세계에 눈을 뜨지 못한 상태에서 들어오는 물질은 근심과 함께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은 근심을 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바뀌려면 은혜의 세계에 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둠이 우리의 삶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은혜의 세계를 여는 길은 자신의 주권의지가 깨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시면 절대 순종합니다. 반드시 죽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죽어도 안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나는 나를 못 이기기 때문에 강권적으로 주님이 개입하십니다. 죽고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이 십자가 복음으로 들려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믿으면 옛 사람(자기 뜻대로 살려고 하는 마귀 속성)이 죽게 됩니다. 복음이 믿어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복음을 믿으면 나를 통제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원하는 대로 순종할 때 어둠이 사라집니다. 자기고집과 주권의지가 깨어져야 변화됩니다. 내가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주님이 주인의 위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고집불통)은 마귀와 연합한 나, 내 뜻대로 사는 나, 입니다. 그러나 새 사람은 주님과 연합한 나, 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후회한다는 것은 마귀와 연합한 것이기 때문에 속은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면 주님이 주인 되어 다스림, 통치가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삶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런 삶이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삶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
오늘은 은혜의 세계에 거하는 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는 흑암의 세계(나 중심)에서 주님의 이끄심(존재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감)으로 은혜의 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거하려면 출생의 이전과 공간의 이전이 일어나야 합니다. 출생의 이전은 흑암의 세계에서 은혜의 세계로 이전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이미 하나님 나라에 태어난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를 체험해야 육신이 깨어지면 자연스럽게 승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성도는 천국에 가기 위해 마귀와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공간 이전으로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내 영은 이미 하늘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을 입은 우리는 세상에서 자유합니다. 보이는 것에서 자유합니다. 실체는 하나님 나라에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진리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 믿기 전 옛 사람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불순종(주권의지를 못 꺾음)의 자녀는 죽어도 자기 고집대로 삽니다. 십자가 복음에 눈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노의 자녀는 지옥에 가기로 작정된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3절)
 
그러나 구원 받은 후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랑으로 복음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4절)
 
깨닫고 믿어진 것으로 구원하십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5절)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지금 내 영은 그곳에 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6절)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땅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주님께 이 땅으로 파송 받은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세상의 것들을 다 두고 하늘로 본향으로 떠나야 합니다.
죽을 것 같았던 그 일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 꿈과 같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것만 현실입니다.
 
-삶의 양태-
 
우리의 소속,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성도는 하늘로부터 출장 온 것입니다. 주님께 파송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예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천상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지상사역과 천상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상 사역은 주님이 일하신 3년의 공생애이고, 천산사역은 주님이 하나님 보좌에서 구원 사역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몸이 없기 때문에 나를 통해 영으로 주님의 천상사역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 16:20)
주님의 천상사역에 동역하기 때문에 모든 능력과 축복을 주십니다. 말씀을 증언하십니다. 주님의 일은 순종하는 자를 통해 하십니다.
 
영적 세계는 꿈이 아닌 실체 입니다. 이 세상은 그림자 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집니다. 사자에게 찢기며 신앙을 지칠 수 있는 것은 영적 세계를 놓치지 않기 위함입니다. 축복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천상사역을 잘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것은 영적 세계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의 일이 될 때 주님이 함께 하시고 지켜주십니다.
 
나를 나타내는 삶에서 예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예수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예수를 닮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나타내는 삶을 살 때 제3자의 눈에 예수를 닮은 것으로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기적을 일으키자 신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나를 통해 예수가 나타날 뿐 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를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닮는 삶이 아니라 예수를 나타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닮으려고 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나타내는 삶은 내가 죽으면 됩니다. 꿈같은(허무한) 삶을 끝내고 영원한 실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림자의 세계에서 영원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닳아서 죽는 것이 후회 없는 인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삶의 축복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율법에서 자유합니다.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공로나 평가에서 벗어나 얼마나 순종하는 가? 로 평가 됩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려는 것에서 자유하고 잘 하려는 것에서 자유합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살면 죄가 주장하지 못합니다.
 
과거로부터 자유합니다.
옛 사람(가난, 어둠, 병 듦)에서 새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제 출생이 달라진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이기 때문에 옛 사람으로부터 자유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환경에서 자유합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 사시므로 나의 환경은 예수입니다. 요셉은 옥에 갇혔으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요셉의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는 줄기가 환경입니다. 줄기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보이는 것에 자유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옥에 갇혔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줄기가 환경입니다. 줄기에 붙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염려 근심의 나쁜 환경은 거짓 자아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된 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자아라면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질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환경이므로 감옥에서도 찬송하였습니다. 갇혀 있으나 열려 있으나 오직 예수가 환경이기에 어떤 삶에서도 자유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삶입니다.
 
능력의 자유입니다.
내 속에 사시는 분은 능력의 주님이다. 내 능력은 제한되고 그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 1:28)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능력은 무한대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결과로부터 자유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고 근심,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내 문제는 내 주인이신 주님이 걱정할 일입니다.
 
‘다 이루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2000년 전에 이미 다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시공에 갇혀 미래에 이루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미 승리한 운동경기를 재방송으로 본다면 결과를 다 알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또한 믿음이 있다면 모든 결과를 미리 알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결과가 좌우 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통해 결과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 일을 위해 내가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나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주님이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필요한 자료가 있다면 주님께서 그 자료를 보게 하실 것이고,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냥 기다리면 됩니다. 대부분 빨리 응답받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그 일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좋은 결론을 빠르게 맺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주님이 진행하시고, 주님의 때에 이루기 때문에 그 문제로 인해 내가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잘 숙지한다면 사명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자신이 이루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며, 선교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병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의 원리를 생각하면, 주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우리를 통해 열매를 맺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오히려 내가 하려는 것이 율법이요, 마귀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주님의 도구가 되는가, 아니면 내가 주체가 되어 그 일을 이루고 있는가,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과정에서 주님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면 주님은 그것을 형통으로 보십니다.
 
요셉은 사명은 요셉이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며 이루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방법으로 그 일을 할 것인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나를 통해 주님이 드러나도록 내 생각과 내 의지를 꺾는 것입니다. 내 자아가 죽을 때 예수가 내 안에서 주인으로 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죽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세계에 거하려면 내 주권의지가 꺾여 주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흑암의 문을 열지 않게 됩니다.
 
은혜의 세계에 거하려면 어둠의 상자를 열지 말아야 합니다. 상자를 여는 순간 안개처럼 어둠이 나를 덮으면서 은혜의 세계는 사라지게 됩니다. 성도가 승리하는 비결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는 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삶이 은혜의 세계에 거하는 삶입니다. 이미 나는 죽었고, 지금의 이 상황에서 내가 죽겠다고 고백할 때 주님의 십자가로 넘겨집니다. 보이는 세상에 붙들리지 말고 영원한 은혜의 세계에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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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인생의 등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의 낙헌제를 받으시고 주의 규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불빛이 하나도 없는 캄캄한 길을 걸어본 사람은 한줄기 빛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압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인생길도 캄캄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성도들이 거짓과 악이 횡행하고, 공의를 분별할 줄 모르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바른 길을 찾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 빛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걸음걸음을 인도하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굳은 믿음으로 그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기로 마음을 확정하였습니다. 사실, 시인이 걸어온 인생길과 신앙의 여정에는 평안하고 즐거운 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도, 그 순종에 대한 커다란 보상이 오기는커녕, 오히려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주님이 보이신 빛을 쫓아 나갔지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원수들의 조롱과 올무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인에게 인생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기 위한 여정일 뿐이었고, 그랬기에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인생의 등이요, 빛입니다. 하지만 그 빛을 통해 너무 먼 곳을 바라보려고 하다가는 곡 넘어지고 맙니다. 캄캄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어두운 밤 등으로 발을 비추며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빛으로 한 걸음 앞을 비추고, 그 비추인 곳에 발을 옮겨놓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어떤 큰일을 할까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는 오늘 살아갈 이 하루를 온전히 주님께 드리겠다는 결심으로, 하루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아주 작은 일들에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말씀의 비추임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입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아져야 우리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대로 인생의 걸음을 옮겨놓는 사람들을 막다른 골목이나 위험한 낭떠러지 앞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며 살기 원했던 인생을 뜻하지 않은 낭패에 부딪히게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말씀의 빛을 따라, 순종함으로 걸어가는 인생에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아름다운 삶이 보장됩니다.

 

말씀의 빛이 없는 사람들의 인생은 캄캄한 어둠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련하게 행하고, 이리저리 부딪치며, 옳음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불행한 목적지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도 진리의 빛에 힘입어 하나님의 인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진리의 빛을 쫓아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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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다툼을 일으키는자

 

 


(목)12         다툼을 일으키는자
               찬송 150장 (통135장)   말씀 : 잠 26;17-21
오늘의 말씀
17.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18.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19.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1.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是非)를 일으키느니라  

 나의 발견(제목):  
 본문 요약 : 본문은 쓸데없이 말이 많은 것에 대한 교훈으로서 말 많은 자는 결국 아무런 유익도 없는 싸움만 일으키게 된다고 말한다.


 본문 살펴보기 :  지혜자는 본문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를 분쟁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분쟁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불과 같은 분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소멸시키고 인간의 관계와 가정, 그리고 국가나 세계를 악화일로로 몰아넣게 하는 이 분쟁의 문제는 실로 우리들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1. 다툼을 일으키는 자는 어디를 가나 수다스러운 말쟁이입니다. 그는 도저히 말이라고 할 수 없는 헛된 말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퍼뜨리는 자입니다. 그가 다니면서 하는 말은 꼭 분쟁의 화근이 되어 금세 이웃을 불화하게 만듭니다. 교묘한 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헐뜯고 남의 은밀한 비밀을 누설시키며, 이간질하여 이웃에 관계를 허물어뜨립니다. 그는 마치 불화를 심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이리저리 다니며 설쳐댑니다. 성도들은 생활처소에서 이러한 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2. 다툼을 일으키는 자는 또 남의 일에 끼어들어 간섭하기를 즐겨 합니다. 남의 일에 섣불리 간섭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본문은 이에 대해서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17 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툼을 일으키는 자는 아무런 신중한 생각도 없이 마치 그가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처럼 간섭하지만 그 일은 오히려 더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되고 자신도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이러한 자리에 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3.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19 절). 다툼을 일으키는 자는 이웃을 이간질하고 남의 일에 간섭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웃을 해치고 또 속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으로서 가장 못할 짓은 자기 이웃을 해치고 속이는 일입니다.
나의 이해(본문요약) :

 

◐은혜의 나눔 - 어떤 청년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그가 주위를 한번 휘 둘러 보았을 때 'POISON'(독약)이라는 푯말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독이 온 몸에 퍼지게 되면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는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의사는 껄껄 웃으며 'POISON'이 영어로는 독약이란 말이지만 불어로는 '낚시 금지'라는 뜻으로 프랑스 사람들이 폭포에서 낚시하는 바람에 그런 푯말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청년은 갑자기 배 아픈 것이 싹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적용 - 주변의 친구들 중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에게 잘 전해 주는 자가 있다면 자기에게 나쁜 말을 한 사람보다 전해 주는 그 사람을 더 조심해야 한다. 설령 그가 전하는 말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전하는 이유는 괜한 싸움을 일으키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적용) ;


 오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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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29              예수그리스도의 지혜
                     찬송521장(통253장)   말씀 : 잠 23;9-21
오늘의 말씀
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18.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9.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正路)로 인도할지니라  20.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나의 발견(제목) :
본문 요약 - 본문은 계속해서 경건한 생활을 위한 몇 가지를 교훈한다. 즉 어리석고 사악한 일을 피하되 지혜를 좇아 정도로만 행하라는 것이다.

분문 살펴보기 -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는 대개 세 가지의 지주로 세워진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지주는 율법이요, 둘째는 예언이며, 셋째가 지혜라고 하겠습니다. 본문에는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 바로 셋째 지주에 해당하는 지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도로 인도할지니라.'(19 절). 참 지혜는 인생살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고,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추구해야 될 주된 관심사입니다. 지혜는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해주고 영혼을 아름답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능히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에 부합되게 하고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따라 살게 하여 마침내는 천국에 이르도록 해줍니다.
 
  1. 지혜에는 두 종류의 지혜가 있는데, 즉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세상의 일을 이해하고 신령한 일, 즉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참되고도 하늘에 속한 지혜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지혜입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 자신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고 메시야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를 인격화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라는 말을 대치해 사용하여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제일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잠 4:7-9). 이것이 바로 잠언의 교훈이요, 바울의 교훈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 자체이시오, 모든 지혜의 근원이시며, 지혜의 본질이십니다.

  3.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의 지혜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지혜를 무시한다면 무식한 자가 되어 복음 이해와 복음을 전하는 데 지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지혜에 우리의 운명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이해 (본문요약):


  
은혜의 나눔 - 1512년에 윗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봉직하던 '마틴 루터'가 교황과 의논할 일이 생겨 로마로 가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로마교회가 지상에서 가장 훌륭하며 교황이야말로 완전히 성결하신 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에 도착하면서 그는 교회의 부패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가 스스로를 죄인이며 반역자라고 생각하면서 신성 계단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며 올라가고 있을 때 그의 뇌리 속에 성경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 1:17). 결국 이 말씀이 종교 개혁의 불을 당긴 것이었다.
적용 -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라면 성경의 권위를 인정할 뿐 아니라 성경의 원리대로 자신의 생활을 수정해 나가야만 한다. 이런 삶이 없다면 누가 그의 신앙을 믿어줄 수 있겠는가?
 나에게 주시는 말씀(적용) ;


오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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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지혜로운 말씀 > 2018년 6월 26일 화요일

 

 

 

(화)26             지혜로운 말씀
                    찬송227장 (통363장)   말씀 : 잠 22;17-22
오늘의 말씀
17.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18.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19. 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20.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기록하여  21.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나의 발견(제목) :
본문 요약 -  본문은  '지혜자의 잠언'의 서론부로서 잠언의 목적 및 올바른 사용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분문 살펴보기 - 솔로몬은 자기가 말하는 교훈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지혜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17 절에서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라고 권면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곧 그의 교훈은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본문의 내용에서 특별히 우리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이 인간에게 어떠한 유익함이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지혜로운 말씀의 가치
  1) 말씀의 가치를 아는 자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말씀의 가치를 가르쳐 주어 깨닫게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현대인은 그 사고방식이 합리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2) 말씀이 마음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비록 들었으나 그 말씀이 자기의 마음을 주장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마음속에 새겨져야 합니다

  2. 지혜로운 말씀과 바른 인격
  인간이 지녀야 할 바른 인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솔로몬은 말하기를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두 가지의 아름다운 인격 형성의 바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둘 때 바르고 아름다운 인격이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입술로 전해질 때 인격은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3. 지혜로운 말씀과 바른 신앙
  1) 여호와를 의뢰하도록 합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철학이나 과학이나 도덕들은 인간 중심적이므로 하나님을 외면하도록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늘 여호와를 의뢰하도록 만듭니다.  2) 확고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라는 말은 인간의 논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으로 믿음을 갖게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의뢰해야 합니다.
나의 이해 (본문요약):

 

은혜의 나눔 - 새마을 시청각 선교회 회장인 김철한 씨는 본래 유명한 토지 브로우커로서 한국에 있는 모든 땅을 사고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일이 들통나서 20년의 구형을 받았다. 그런 중에 그는 예수를 믿게 되었다. 하루는 그가 금식하며 밤새워 기도하는데 '검사가 아는 것 이외에도 네 죄가 많은데 그것을 전부 고백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그 뒤 그는 생각나는 모든 죄를 적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죄수들은 '여보게, 이미 알려진 죄만으로도 몇 년 형을 받을지 모르는데 알려지지 않은 죄까지 알리려 하다니 미치지 않았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죄를 적어 재판장에게 알렸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단 3년 형만을 언도받은 것이다.
적용 - 주님께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실 때마다 강조하신 것은 '이를 행하라'는 점이었다. 오늘날도 진리를 듣고 깨달았을 때 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데까지 진보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적용) ;


오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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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23    지혜로운자와 어리석은자

 


찬송210장(통245장)   말씀 : 잠 21;20-31
오늘의 말씀
20. 지혜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버리느니라  21. 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22.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하느니라  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25.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 함이니라  .................................

나의 발견(제목) :
본문 요약 - 본문은 경건한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피해야 할 것들과 힘써야 할 것들을 열거한다. 그리고 모든 지혜와 인간의 강구보다 더 의지할 바는 여호와이심을 강조한다.

분문 살펴보기 - 지혜로운 자의 삶은 화려하지 않으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외적으로 강해 보이지 않으나 내적인 강함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삶은 그 반대입니다. 외적인 화려함은 있으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어딘가 추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매우 강한 것 같으나 허한 구석이 많이 보입니다. 이제 이러한 사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지혜로운 성도의 삶
  1) 규모 있는 생활을 합니다.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20 절). 지혜로운 성도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그의 삶이 규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획을 세우고 지출을 절제합니다.  2) 의와 인자를 구하는 삶을 삽니다.  '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느니라'(21 절).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으며, 매일 행하는 것이 죄뿐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3) 강한 자를 물리칩니다.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하느니라'(22 절).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와 온유함으로 약한 자들을 감싸고 상처받은 자들을 위로하지만 세상의 강한 자들에게는 그의 강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4) 말을 아끼는 삶을 삽니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란에서 보전하느니라'(23 절). 지혜로운 자는 결코 많은 말이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2. 어리석은 자의 삶
  1) 소비적인 삶을 삽니다.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20 절). 어리석은 자는 미래를 조망하는 눈을 가지지 못합니다.  2) 교만한 삶을 삽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 하여 망명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24 절). 어리석은 사람의 또 하나의 특징은 교만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3) 게으른 삶을 삽니다.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25 절). 어리석은 자는 세상에 있는 쾌락은 혼자 다 즐기려고 하면서도 일은 하지 않습니다.
나의 이해 (본문요약):

 

은혜의 나눔
미국의 어느 지방에 사는 한 소년이 철도 연변으로 통학하고 있었다. 하루는 소년이 학교로 가고 있는데 지난밤에 내린 폭우로 철도가 끊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간을 보니 곧 기차가 지나갈 시간이었다. 결국 다급해진 소년은 자기 넓적다리의 동맥을 칼로 찔러 피가 나게 한 뒤 벗은 셔츠를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는 기차가 달려오는 쪽을 향해 셔츠를 흔들며 '스톱!'하고 외쳐댔다. 기차는 이내 멈추고 기관사와 승객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내려왔을 때 이미 소년은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들은 소년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고 후에는 소년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적용 - 교회의 일을 하는 성도들은 크게 두 부류에 속한 것이다. 즉 스스로 자청하여 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남의 이목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자들인데 두 부류의 차이점을 전자에 속한 자는 봉사하면 할수록 감사와 기쁨이 생기는 반면 후자에 속한 자는 피로와 불만에 늘 싸여 있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적용) ;

오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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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듣는 게 아니라 먹는 것이다."
 
(마4:4)"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하시니"
 
오늘날 세상(사람)들은 먹는 문제에 무척 관심이 많다!
 
건강을 위해서 좋은 건강식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식탐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마구 먹어 건강을 해치는 사람들도 있다!
 
영적인 문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의 건강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무교병]을 먹어야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6:48-51)"내가 곧 생명의 떡 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러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생명의 능력이
그리스도인들의 영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속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울 때 거룩한 삶에서 원하는 모든 선한 것들이 만들어 집니다.
 
주님 말씀하신다.
(마12:35)"선한 사람은 그 쌓는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는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시길 원합니다.
 
주님 말씀하신다.
(요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골3:16-17)"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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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죄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히2;3

 

오늘날 믿는 자들은 "은혜 아래" 있기 떄문에  "율법 아래" 에서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룻 많이 받은 자들에게는 더 많이 요구할 것이다(눅12;48).


사도시대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말씀을 받았으며,


"표적과 기사" 와 놀라운 기적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준 은사들을 통해 그말씀의 능력이 분명하게 입증된 것을 보았다(히2;4).


히브리서 2장 4절에서 '표적과 기사" 는 말씀의 능력을 입증하는 기적들로서,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들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을가지고 있다.


그렇기 떄문에 사도시대의 기적들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필요없다.


이제 하나님은 말씀을 사용하셔서 성령을 통해 진리를 증거하실 뿐이다.


성령도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적인 은사들을 주셔서


교회에서 각종 섬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고전12;1-11).


나는 "믿는 자들의 죄" 에 대한 설교를 자주 하는 어떤목사에 얽힌


예화를 자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날 교회 성도 중 한 사람이 그 목사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목사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죄는 비그리스도인들의 죄에 비하면


그 차원이 다르다는 거잖아요"  그때 목사가 대답했다."예, 그리스도인들의 죄는


죄질이 더 나빠요!"

 

묵상해보기;

그리스도인들이 짓는 죄가 비그리스도인들이 짓는 죄보다 더 죄질이 나쁘다는데 동의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말씀으로 채우는 하루/워렌 W. 위어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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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드리는 것

 

이제는 하던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고후8;11

 

내가 교회에서 목회를 했을 때, 교회 헌금을 두고 이런저런 용도에 써야


한다는여러가지 주장들이 많았다.


나는 정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절박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를 돈에 집착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조언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로 인해 비웃음을 당한 적도 있었으며, 위협을 받은 적도 있엇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흔들리지 않았으며


계획된 예산 이상으로 헌금을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마음에 원하는 바" 와 "실제로 행하는 것" 을 혼돈하기 쉽다.


그 이유는 이 두 가지가 항상 함께 하기 떄문이다.


만약 "마음에 원하는바" 가 변함없이 항상 꾸준하고


또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마음에 원하는 바" 는


반드시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고후8;11;빌2;12-13참조).


바울은 "마음에 원하는 바" 와 "실제로 행하는 것" 이 동일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이 그렇지 않기 떄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베푸는 것이 은혜로 말미암는 다면 우리는 더욱 자원함으로 베풀 것이다.


하나님은 "손으로 드리는 것" 을 보지 않고 "마음으로 드리는 것" 을 보신다.


만약 마음이 더 내기를 원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이


그 마음을 헤아려주실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그만큼 못 따라가는데 손으로만 많이 낸다면 하나님의 손이


아무리 대단한 것들을 바쳤더라도 그 마음 만큼만 헤아려 주실 것이다.

 

묵상해보기;

자원함으로 드렸던 떄와 불평함으로드렸던 떄를 떠올려보라.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말씀으로 채우는 하루/워렌 W. 위어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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