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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주일예배설교 찬양의 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제목 : 찬양의 힘

말씀 : 고후1:3-10

1.찬송은 영혼의 노래다.

서양의 속담에 ‘나에게 하나의 작은 노래를 만들게 하라. 그러면 나는 온 국민을 움직이리라.’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래가 인간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군대생활 할 때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하면서 고향의 봄을 부르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멀리 외국에 나가 있을 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하며 아리랑을 부르면 또 눈물이 난다. 그래서 우리 옛 어른 들은 한이 많아 늘 노래 불렀다. ‘한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나를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그러면서 한을 달래고 애수에 젖기도 하였다.

그렇다. 어쨌든 노래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가장 잘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쁠 때도 노래를 하고 슬플 때도 노래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빠질 때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기뻐하고 이별을 할 때는 이별의 노래를 부르면서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도 한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언가 일이 잘 풀리고 형통할 때는 감사의 찬송을 불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바다를 건넌 후에 감사의 찬송을 불렀다.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은총을 사무엘을 낳고 너무나 기뻐서 그를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을 찬송했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고대로 성령으로 예수님이 잉태된 것을 알고 역시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반대로 어렵고 힘들 때는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며 노래를 불렀다. 다윗은 원수에게 쫓길 때도 시를 지어 노래했고, 범죄하였을 때도 시를 지어 읊조리며 회개를 하였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찬송을 했다. 여호사밧은 국가적인 위기 때에도 찬송을 불렀다. 그러자 감옥문이 열리고 적군이 물러갔다. 그리고 죽을 것 같았던 그들은 살아나 승리했다.

그렇다. 찬송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신앙적 행위이다. 찬송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받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방법이다.

그래서 시33:1절에서는 말씀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믿음의 사람들은 마땅히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이 잘 될 때나 안될때나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을 믿고 영광의 찬송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형통하면 감사하여 찬송드리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며 호소하며 찬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믿음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위로를 맛보는 통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과 은혜와 선 앞에서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감사찬송하며 사시기 바란다. 어렵고 힘들때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하심을 바라며 호소하며 찬양하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찬양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찬양을 통해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기쁨과 위로를 더욱 충만하게 누리는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2.찬송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신다.(3-7절)

그렇다. 우리는 찬양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를 덧입게 된다. 오늘 3절 말씀 보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왜 찬송하느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찬송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과 은혜와 거룩함과 인자하심과 구원하심과 인도하심과 사랑하심과 뭐 말할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특별히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3~7절까지에서는 위로라는 말씀이 매절마다 반복해서 무려 열 번이나 나오고 있다. 왜 이렇게 위로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을까? 그것은 지금 고린도 교회 교우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린도는 항구도시이며 상업도시였다. 물질적으로 부요했으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였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살았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이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조롱과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는 가정과 직장에서 버림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힘든 상황에 있는 교인들에게 위로의 하나님을 전하면서 바울이 제일 먼저 한 말은 무엇인가? 오늘 말씀 3절을 보라. ‘찬송하리로다.’ 놀랍지 않는가? 지금 고린도 교회 교우들은 너무 힘들다. 먹고 살기도 힘들고,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업신여김 당하고 있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세상적으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그들에게 제일 먼저 하는 말씀이 뭐라고? 찬송하라는 거다.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하잖은가? 여러분, 힘들지요. 조금만 참으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위로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힘들어 죽겠는데 찬송하라는 거다. 왜?

이유는 바로 그 말씀 3절 안에 포함되어 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그 모든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넉넉히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너희의 그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진정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안 그런가? 정말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정말로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과연 무엇이 위로가 될까? 사람? 돈? 권력? 지식? 문명? 과학? 물론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다. 결코 그것들을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없다.

생각해보라.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식이나 과학이나 뭐 이런 것들이 늙고 병들고 세상 떠날 때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물론 세상에 사는 동안 그런 것들도 분명 위로도 되고 힘도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상 가장 결정적인 때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어떤 위로도 안된다.

금번에 일본에서 일어난 엄청난 참상을 보라. 과연 인류의 그 엄청난 문명이 우리에게 무슨 힘이 되겠는가? 어떻게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겠나? 우리가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하고 훈련하고 엄청난 문명을 쌓아 올린다해도 그런 것들이 결코 우리를 지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여기서도 위로와 소망이 되며 나아가 영원히 위로와 소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그 주님을 믿고 잘 될 때나 안될때나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한탄하고 좌절하고 원망하고 탄식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분명히 주님의 위로와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하신다. 승리케 하신다. 꼭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3.찬송하는 자에게 승리가 있다.

여러분, 그렇다. 세상에서도 그렇고 성경속에서도 그렇고 진정으로 승리한 자들은 다 고난의 순간을 이겨낸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사람치고 인생의 밤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이 좋다고 하는 분들을 가만히 보면 대개가 밤을 통과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기꺼이 고난 속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 말씀8,9절에서는 말씀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사도바울의 전도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3절에서는 ‘찬송하리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찬송하겠다. 찬송하라. 찬송해야 한다. 왜? 그래도 하나님이시니까. 그래도 주님이시니까. 결국은 승리케 하실 것이니까. 그래서 그는 실제로 죽음과 같은 고통속에서도 찬송했고 승리하지 않았는가? 맞아 죽게 되어도, 배고파도, 헐벗어도, 파선을 당해도 감옥에 갇혀도 기도하고 찬송했고 결국 그는 승리했던 것이다.

여러분, 그렇다. 분명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삶에도 고난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고난도 우리를 삼킬 수는 없다. 우리는 결코 버려지지 않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전능하신 하나님, 구세주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함께 하셔서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능력을 주신다. 그래서 승리하게 하시고 더 성숙하게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언제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원망과 불평은 더더구나 하지말고 기쁘면 기뻐서 감사찬양하고, 어렵고 힘들 때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위로하심을 바라며 호소의 찬송을 드리며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능력과 용기와 지혜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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