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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은혜의 세계에 거하라

 

 

 

오늘의 말씀
은혜의 세계에 거하라
엡 2:1-7 /골 2:6-7
 
성도는 은혜의 세계에 눈을 떠 삶 전체가 은혜의 세계로 이전해야 합니다. 은혜의 세계에 눈을 뜨지 못한 상태에서 들어오는 물질은 근심과 함께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은 근심을 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바뀌려면 은혜의 세계에 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둠이 우리의 삶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은혜의 세계를 여는 길은 자신의 주권의지가 깨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시면 절대 순종합니다. 반드시 죽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죽어도 안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나는 나를 못 이기기 때문에 강권적으로 주님이 개입하십니다. 죽고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이 십자가 복음으로 들려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믿으면 옛 사람(자기 뜻대로 살려고 하는 마귀 속성)이 죽게 됩니다. 복음이 믿어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복음을 믿으면 나를 통제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원하는 대로 순종할 때 어둠이 사라집니다. 자기고집과 주권의지가 깨어져야 변화됩니다. 내가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주님이 주인의 위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고집불통)은 마귀와 연합한 나, 내 뜻대로 사는 나, 입니다. 그러나 새 사람은 주님과 연합한 나, 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후회한다는 것은 마귀와 연합한 것이기 때문에 속은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면 주님이 주인 되어 다스림, 통치가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삶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런 삶이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삶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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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은혜의 세계에 거하는 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는 흑암의 세계(나 중심)에서 주님의 이끄심(존재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감)으로 은혜의 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거하려면 출생의 이전과 공간의 이전이 일어나야 합니다. 출생의 이전은 흑암의 세계에서 은혜의 세계로 이전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이미 하나님 나라에 태어난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를 체험해야 육신이 깨어지면 자연스럽게 승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성도는 천국에 가기 위해 마귀와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공간 이전으로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내 영은 이미 하늘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을 입은 우리는 세상에서 자유합니다. 보이는 것에서 자유합니다. 실체는 하나님 나라에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진리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 믿기 전 옛 사람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불순종(주권의지를 못 꺾음)의 자녀는 죽어도 자기 고집대로 삽니다. 십자가 복음에 눈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노의 자녀는 지옥에 가기로 작정된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3절)
 
그러나 구원 받은 후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랑으로 복음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4절)
 
깨닫고 믿어진 것으로 구원하십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5절)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지금 내 영은 그곳에 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6절)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땅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주님께 이 땅으로 파송 받은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세상의 것들을 다 두고 하늘로 본향으로 떠나야 합니다.
죽을 것 같았던 그 일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 꿈과 같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것만 현실입니다.
 
-삶의 양태-
 
우리의 소속,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성도는 하늘로부터 출장 온 것입니다. 주님께 파송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예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천상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지상사역과 천상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상 사역은 주님이 일하신 3년의 공생애이고, 천산사역은 주님이 하나님 보좌에서 구원 사역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몸이 없기 때문에 나를 통해 영으로 주님의 천상사역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 16:20)
주님의 천상사역에 동역하기 때문에 모든 능력과 축복을 주십니다. 말씀을 증언하십니다. 주님의 일은 순종하는 자를 통해 하십니다.
 
영적 세계는 꿈이 아닌 실체 입니다. 이 세상은 그림자 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집니다. 사자에게 찢기며 신앙을 지칠 수 있는 것은 영적 세계를 놓치지 않기 위함입니다. 축복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천상사역을 잘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것은 영적 세계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의 일이 될 때 주님이 함께 하시고 지켜주십니다.
 
나를 나타내는 삶에서 예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예수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예수를 닮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나타내는 삶을 살 때 제3자의 눈에 예수를 닮은 것으로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기적을 일으키자 신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나를 통해 예수가 나타날 뿐 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를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닮는 삶이 아니라 예수를 나타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닮으려고 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나타내는 삶은 내가 죽으면 됩니다. 꿈같은(허무한) 삶을 끝내고 영원한 실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림자의 세계에서 영원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늙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닳아서 죽는 것이 후회 없는 인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삶의 축복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율법에서 자유합니다.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공로나 평가에서 벗어나 얼마나 순종하는 가? 로 평가 됩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려는 것에서 자유하고 잘 하려는 것에서 자유합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살면 죄가 주장하지 못합니다.
 
과거로부터 자유합니다.
옛 사람(가난, 어둠, 병 듦)에서 새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제 출생이 달라진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이기 때문에 옛 사람으로부터 자유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환경에서 자유합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 사시므로 나의 환경은 예수입니다. 요셉은 옥에 갇혔으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요셉의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는 줄기가 환경입니다. 줄기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보이는 것에 자유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옥에 갇혔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줄기가 환경입니다. 줄기에 붙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염려 근심의 나쁜 환경은 거짓 자아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된 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자아라면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질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환경이므로 감옥에서도 찬송하였습니다. 갇혀 있으나 열려 있으나 오직 예수가 환경이기에 어떤 삶에서도 자유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삶입니다.
 
능력의 자유입니다.
내 속에 사시는 분은 능력의 주님이다. 내 능력은 제한되고 그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 1:28)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능력은 무한대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결과로부터 자유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고 근심,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내 문제는 내 주인이신 주님이 걱정할 일입니다.
 
‘다 이루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2000년 전에 이미 다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시공에 갇혀 미래에 이루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미 승리한 운동경기를 재방송으로 본다면 결과를 다 알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또한 믿음이 있다면 모든 결과를 미리 알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결과가 좌우 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통해 결과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 일을 위해 내가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나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주님이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필요한 자료가 있다면 주님께서 그 자료를 보게 하실 것이고,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냥 기다리면 됩니다. 대부분 빨리 응답받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그 일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좋은 결론을 빠르게 맺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주님이 진행하시고, 주님의 때에 이루기 때문에 그 문제로 인해 내가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잘 숙지한다면 사명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자신이 이루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며, 선교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병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나무의 원리를 생각하면, 주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우리를 통해 열매를 맺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오히려 내가 하려는 것이 율법이요, 마귀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주님의 도구가 되는가, 아니면 내가 주체가 되어 그 일을 이루고 있는가,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과정에서 주님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면 주님은 그것을 형통으로 보십니다.
 
요셉은 사명은 요셉이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며 이루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방법으로 그 일을 할 것인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나를 통해 주님이 드러나도록 내 생각과 내 의지를 꺾는 것입니다. 내 자아가 죽을 때 예수가 내 안에서 주인으로 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죽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세계에 거하려면 내 주권의지가 꺾여 주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흑암의 문을 열지 않게 됩니다.
 
은혜의 세계에 거하려면 어둠의 상자를 열지 말아야 합니다. 상자를 여는 순간 안개처럼 어둠이 나를 덮으면서 은혜의 세계는 사라지게 됩니다. 성도가 승리하는 비결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는 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삶이 은혜의 세계에 거하는 삶입니다. 이미 나는 죽었고, 지금의 이 상황에서 내가 죽겠다고 고백할 때 주님의 십자가로 넘겨집니다. 보이는 세상에 붙들리지 말고 영원한 은혜의 세계에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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