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선교전략 / 이슬람교 중앙회


2020년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선교전략

 

한국 이슬람화 선교전략은 50주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의 선교활동은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Korea Islamic foundation KIF)를 중심으로 이슬람교 중앙회(Korea Muslim Federation; KMF)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전략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소재한 중앙성원 본부와 산하 부산, 전주, 광주, 안양, 파주, 부평, 제주 등 전국 7개 도시의 지회들과 60여 개의 임시성원을 통해 추진되고 있다.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단계별 한국진출 전략은 다양한 부문에서 전개되고 있다. 첫째는 이주 근로자로 위장하는 선교전략, 둘째는 유학생으로 위장하는 학원 선교전략, 셋째는 주요 전략 도시에 이슬람사원 건축을 통한 지성원 확산전략, 넷째는 이슬람문화센터의 설립과 이슬람문화 행사를 통한 간접 포교전략, 다섯째는 이슬람 대학과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 설립 등 교육기관을 통한 선교전략, 여섯째는 한국기업 및 금융기관에 대한 투자 등의 경제협력을 통한 포교전략 등을 들 수가 있다.

 

1) 이주근로자들을 통한 이슬람화 선교전략


우리나라에 일자리를 찾아 입국한 무슬림 이주근로자들의 숫자는 10만이 넘는다. 이슬람 전문가들은 이 중에 1만3,000-만 명 정도가 이슬람의 포교를 위해 입국한 잘 훈련된 이슬람 선교사라고 보고 있다. 2006년에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입국한 인원이 300명이 넘는다는 인도네시아 출신 목회자의 증언도 있었다. 우려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로현장이 안전지대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의 1차 포교대상자는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친구가 되어 주고 도움을 주면서 그들을 이슬람으로 인도하고 있다. 일단 세력이 구축되면 친구로 삼은 한국인을 다음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확대한다.


이슬람권에서 온 이주근로자들이 합법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체류 동안 교회에 출석하여 그들의 어려움을 교회에 상담하면 최대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음을 이용하고 있다.


교회가 무슬림들을 교회로 받아드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을 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이들을 분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무슬림을 사랑하는 소그룹의 LMF(Love Muslims Fellowship)모임을 두어 이들을 말씀으로 훈련하고 사랑으로 섬긴다. 크리스천 기업주나 직장인들은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직장 신우회를 결성, 이들을 섬기도록 한다.

특히 무슬림 개종자와의 결혼 상담 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거짓 개종자에게 속아 결혼하고, 고통을 당하거나 결국 자녀들 때문에 무슬림이 되는 불행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2) 유학생을 통한 학원 이슬람화 전략


서울대에는 현재 수백 명이 넘는 이슬람권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석·박사과정의 학생들이다. 그들이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우수 두뇌집단인 서울대 학생을 목표로 하는 학원이슬람화 전략에 착수하였다. 지난 4월에 ‘서울대무슬림회(SNU Muslim Society)’라는 이름으로 영국에서 무슬림 강사를 초청하여 ‘인생의 목적’이라는 특강을 위한 모임을 가지고 학생들과 그 가족들을 초청한 것이다. 그들 50명과 외부에서 온 300명이 모였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슬람문화연구, 이슬람역사연구, 코란 스터디, 아랍어 동아리 등 다양한 전략들이 나올 것이다. 이들 중에는 ‘선교사’라는 명함을 자랑스럽게 내미는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현재 그들의 예배에 200-400명이나 되는 무슬림들이 참석하고 있는데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학내 무슬림 선교사들이 외부세력들과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우선전파 대상은 외국유학생들이다. 어느 정도 세력이 구축이 되면 다음 전략으로 한국학생들에게 포교한다는 것이다.


사우디의 ‘킹 압둘라 종합대학’에서 서울대 교수들에게 거액의 연구비를 제안하고 있다. 그들에게 10년간 지원할 수 있는 10억 달러의 기금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제 학문적 교류 측면에서 유익한 이런 제안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또 파키스탄에서 한국 내 20여개 대학에 약 1,000명의 유학생을 보낼 것이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국비 장학생들이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이슬람지역의 유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하는 일이 진행될 것이다. 지금 지방대학교에서는 학생 수가 줄어 운영난을 겪고 있는데 해결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는 앞으로 한국의 대학교 이슬람화를 위한 전략적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학원에서도 무슬림사랑모임(LMF) 활동을 통해 이슬람화를 저지하는 연합된 노력이 서울대학교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슬람화를 위한 매스컴 홍보전략

 


이슬람은 특히 한국의 매스컴을 통한 홍보 전략에 힘을 쏟아왔다. 2005년도 이슬람 13부작의 특집을 방송하였다. 1시간짜리를 13회에 걸쳐 방영하여 이슬람에 대한 호감을 갖도록 하는 대대적인 선전 효과를 거두었다.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투자였던 것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후에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호감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후속 특집들이 KBS와 MBC에 의해 각각 방영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가장 최근에 SBS가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이라는 4회 특집이다. 이 특집의 의도는 예수를 신화적 존재로 오도하고 기독교를 폄훼하여 이슬람교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천만 기독교인을 분노케 한 이번 특집이 기독교인이었던 담당 PD가 무슬림으로 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거액의 중동자금이 지원되었다는 후문이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고도의 이슬람 홍보 전략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의 대담하고 적극적인 공세에 놀랄 수밖에 없다.

 

중점 홍보전략 I: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주장

 


첫째로 그들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홍보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이란 단어가 평화라는 의미의 ‘쌀럼’에서 왔다고 주장하면서 이슬람교가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평화가 아니라 ‘복종’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이다. 영국의 한 이슬람전문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코란에서 단 한 구절이라도 평화를 말하는 구절을 찾아볼 수 있는가?” 코란의 내용 중 평화와 반대되는 뜻의 구절이 500-700구절이 넘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결코 평화의 종교라 말할 수 없다.

 

중점 홍보전략 II:알라는 우리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는 주장

 


둘째로 그들은 유일신 알라는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알라는 하나님과 전혀 다른 신이다. 이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교회, 이슬람과 그 정체에 대한 교육 필요

 


이슬람은 이단 중의 이단이다. 2020년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하고, 2080년도까지 세계를 이슬람화하겠다는 엄청난 이단종교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이슬람이 기독교를 와해시키고 우리의 안방을 점령하려고 몰려오고 있는데도 무방비 상태다. 이제는 저들의 전략을 알고 대비해야 한다.

 


교단마다 이슬람대책위원회를 두고 연구하면서 이들의 이슬람화 선교활동을 추적, 감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이슬람전문가들 양성하기 위해 적극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이슬람화를 위해 암약하고 있는 이슬람 선교사들을 찾아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말씀과 뜨거운 사랑으로 그들의 심령을 녹아지게 해야 한다. 저들이 속고 있는 적그리스도의 영인 알라 대신에 참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슬람에서 외치는 “동방에서 이슬람의 횃불을 밝히는 한국!”(쿠웨이트 알아라비 2007 4월호)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동방에서 이슬람을 위한 사랑의 횃불을 밝히는 한국!”이라는 구호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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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전략-터키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교회가 탄생된 곳도 있다

 

들어가는 말 

미국을 중심으로 여러 서방국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되기 전 많은 세인들의 생각 가운데 '이슬람' 하면 다만 '코란과 칼' 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9.11 무역센터 자살 테러 이후 '코란과 칼' 이라는 이슬람에 대한 선입견 속에서 이제 이슬람은 곧 ‘테러 집단’ 이라는 생각으로 세상 사람들의 생각 속에 새롭게 자리 잡은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라크 공격이후 서방 국가들은 이제 이라크 공격을 통해 자국이 무엇을 잃었으며, 무엇을 얻었는가에 대하여 나름대로 계산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특별히 이슬람국가 안에서도 온건파와 강경파간의 보이지 않는 부딪힘과 그리고 엇갈린 주장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한 예를 들면 지난 3월 중순 터키를 방문한 요르단 국왕 압둘라 왕은 이제는 온건한 이슬람주의자들이 일어나 이슬람 강경파들에 향해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느냐? 코란에는 테러와 관련된 내용들이 없지 않느냐? 라는 목소리를 내야 된다’ 라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 여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던 한 세미나에서 ‘진정한 이슬람은 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라고 주장을 했다.(2004년 3월 18일 터키 휴리엣트 신문서 발췌) 

이처럼 이슬람 국가 안에서도 이제는 그들이 안고 있는 테러 집단이라는 오명을 씻고 새로운 이미지를 위한 노력을 시도하는 것도 사실이다. 

본인이 사역하고 있는 터키는 전체 국민 98%가 이슬람을 신봉하는 이슬람 국가 중 하나이며, 과거엔 오스만 제국을 건설했던 자부심을 안고 언젠가는 다시 한 번 이러한 꿈을 실현해 보겠다는 욕망과 ‘아타튜르크’ 초대 대통령 및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이어가는 군인들의 ‘케말주의’, 그리고 유럽이 접해있는 이유로 인해 유럽 문명 속에 세속적인 문화와 케말주의와 그리고 종교와 정치를 일원화 해보려는 일부 강경 이슬람주의자들이 서로 혼합되어 흘러가는 국가임을 먼저 밝힌다. 

이 논고를 쓰기 전 본인은 이슬람을 위한 전략가도 아니며 또한 이슬람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님을 미리 밝히고 다만 중동권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한 사역자의 시각으로 특히 비 아랍권인 터키를 중심으로 이슬람에 대한 선교전략을 논할까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白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의 전쟁에서 백 번 다 승리할 수 있다’라는 중국 병법가(兵法家) 손자의 모공 편에 나오는 병법 중에 한 방법이다. 

성경에서도 민수기 13장과 여호수아 2장에서 모세와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말씀에 준하여 모세는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고, 또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여리고 성을 공격 하기 전,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 그곳의 상황을 파악한 사례가 성경에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서도 여호와의 도우심 속에서 먼저 상대방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하기에 비아랍권인 터키의 최근 상황을 먼저 나누기를 원하다.

 

1. 터키 사역자 및 선교활동 변화 비교도 

(1) 연도별 성도 및 선교사 숫자 비교 (2003년도 선교사 통계에서 단기 90명을 제외한 것임) 

연도별 1961년 1971년 1981년 1994년 1998년 2003년 

선교사 수 2명 20명 50명 400명 600명 988명 

현지인 신자수 2명 20명 50명 400명 1121명 2000명 

위 도표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1998년을 기준하여 2003년도까지 선교사의 숫자 및 성도숫자가 급성장하고 있다. 또한 아직 사역자들의 대다수가 대 도시에 거주하고는 있으나 기타 지역 즉 동쪽 및 작은 도시로도 이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글로벌 시대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정보화 발달로 인한 모든 기술과 지식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졌으며 생활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유럽 공동체 가입을 추구하는 가운데 서구 문화 및 생활습관을 닮아가려는 생활방식 속에서 나타나는 유럽화 현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개인주의, 인권 옹호, 타종교에 대한 터키인의 이해력이 증가하였다. 

끝으로 비아랍권인 터키 현지인들을 택하여 아랍권 무슬림을 향하시는 마지막 시대의 성령의 증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터키 현지인 사역자가 98년도 25명에서 2003년도 47명으로 53%가 성장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효율적인 선교 전략 및 접근 방법 


본인은 앞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슬람 선교 전략가도 아니고 또한 학자도 아니므로 일반적인 상황은 접어두고, 다만 사역자로써의 실질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좀 더 효율적인 전략에 대해서 7년 전 바울 선교사 중동지부 대회에서 먼저 밝혔다. 

그 당시 발표한 효율적인 전도 방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가족 중심의 전도: 터키는 철저한 가족 및 장자 중심의 사회이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가장이 변화가 되면 그 가족의 변화는 어느 나라보다 용이하다. 접촉점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가족 중심의 모임 및 프로그램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가족 캠프, 부부 및 가족 세미나 등등) 

2) 알레비를 통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 터키 국민의 15-20%가 알레비에 속한다.(시아파) 이들은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으며 일반 회교사원에는 참여치 않는 가운데 가정에서 스스로 예배를 드리며, 보이지 않는 사회적 불평등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현재 터키 내에서 개종한 현지 신자들 중에 대략 80%가 알레비에 속한 자들이다. 

우선 이들을 향한 선교전략을 통해 사회적 보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들을 통한 이웃과 친척을 향한 선교전략도 필요한 것 같다. (참조: 알레비란 시아파의 한 분파로써 모하메드의 사위이며 4대 칼리프였던 ‘알리’의 추종자들이다. 이들은 코란 보다는 ‘알리’의 가르침을 더 중요시 여기며, 통치권의 계승문제로 인하여 ‘알리’가 사원에서 칼로 피살당한 이후 이들은 잠이(회교사원)에 참석치 않는다.) 

우리들은 먼저 왜 이토록 이슬람권에서는 가족을 중요시 여기는가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필 파샬’ 이 지은 ’무슬림 전도의 새로운 방향‘이라는 책에서 ’할레블리언‘의 주장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가족은 큰 집 하나에 살거나 아니면 여러 집이 붙어서 산다. 수입과 지출은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나누지만 제일 웃어른이 담당한다. 재산도 대가족에게 공통으로 소유된다. 서구의 핵가족 특성과 달리, 대가족은 더 많은 안정감이 있고 결속감이 있다.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나 몸에 병이 들 때 혹은 누가 죽을 때, 주변에 돌봐줄 가족이 있다. 대가족은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거나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할 때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도와준다” 

또한 그는 새로운 전략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도 지적하고 있다. 


“모임의 구성원이 여성들, 아이들, 학생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무슬림전도가 성공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다. 무슬림 남성이 전도 활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신자들은 주변의 친구들이나 친척들 중 여러 명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올 때까지는 신앙을 공개적으로 나누는 것에 있어서 신중하도록 해야만 한다. 신자를 기존에 속해 있던 공동체에서 빼내는 ‘축출작업’을 멈추어야 한다. 신자들은 자신이 속한 문화에 남아 있어야 한다” 


무슬림 가정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남성위주의 선교전략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주장에 적극 동의하며 좀 더 나아가 남성위주뿐만 아니라 가족 중심의 전도 활동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터키는 청장년을 중심으로 한 전도활동과 개종이 활발하며, 본인이 섬기고 있는 가정교회도 가족중심으로 75.8%가 나오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24.2%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무엇보다도 가족중심적인 복음 전도 활동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주장을 보충하기 위한 한 예를 들자면 본인이 사역하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C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어느 날 이름도 모르는 한 사람으로부터 그 마을 A라는 중년이 성경을 받으면서 일이 시작된다. 

A라는 중년은 받은 성경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서랍 한 구석에 놓는다. 얼마의 기간이 지난 어느 날 그 중년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이것, 저것을 찾다가 문득 과거 자신이 받았던 성경을 다시 보게 된다. 그는 다만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손에 쥔 성경을 읽기 시작한다. 

성경을 읽어나가면서 그는 그 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영접하며, 끝내는 자신이 안고 있는 새로운 삶 속에서의 기쁨을 먼저 가족과 나누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온 가족이 믿고 그 다음엔 가까운 곳에 함께 사는 친척들에게 전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많은 핍박과 조롱과 감시가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일 것이었다. 그러나 함께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 가족들의 격려 속에 복음 전도는 계속되고, 이젠 마을의 대부분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매주 예배를 드리는 마을로 바뀌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자생적으로 교회가 탄생된 곳도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먼저 성령의 역사와 증거가 있었으며, 그리고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소외받고 있는 종교집단인 알레비라는 이슬람 한 종파를 믿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리고 가족 중 장년, 즉 어른이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에 대항하는 여러 가지 반대도 적었으며, 그리고 이웃이 여러 모습으로 핍박을 할 당시에도 가족 구성원끼리 서로 격려하는 믿음의 나눔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족은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있어서 큰 자산과 같다. 이것은 이슬람사회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얼마 전 터키를 방문하여 세미나를 주최한 ‘정민영’ 사역자도 이슬람권에서 교회개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잇다. 


“이슬람은 공동체가 강한 종교이고, 우리의 일은 제자를 삼는 것 그리고 양육하는 것이다. 교회로 모이면 이슬람권에서 박해 당할 때 공동체적으로 서로 도울 수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전도사역은 서로 돕고 세워줄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종족, 환경)이 주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좀 더 쉽게 결단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본인은 이슬람권에서의 좀 더 나은 선교 전략 가운데 하나로 가족을 위한 복음 전도 활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인 전도 방식보다는 단체의 전도 방식을 이용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족 중심의 전도 활동을 긍정적으로 이끌고 나가기 위해선 여러 가지 갖추고 준비되어질 사항들이 있다. 

 

1. 가족중심적인 행사 


무슬림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족중심으로 복음 전도 활동을 위해서는 필요한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족중심적인 행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에 따른 예로는 부부세미나, 가족 체육대회, 가족 오락 프로그램, 가족 식사초대, 가족이 함께 영화 관람 등등 가족이 함께 동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져야 하며 그에 따른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라는 격언이 있듯이 사역자들은 우선 주변의 이웃들과 무엇보다도 가깝게 지내야 될 필요가 있다. 그들로부터의 최소한의 신뢰를 얻어야 될 것이다. 자신이 인정하는 친구들에게는 어떠한 것도 아낌없이 주고 보살피는 이들의 풍습과 신앙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역자들은 우선 가족 중심의 믿음을 그리고 친구로써의 믿음을 심는 것이 이슬람권에서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빠른 선교 전략일 것이다. 우리들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것을 주님은 성육신 삶을 통해서 먼저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실천하셨다. 


2. 사회 고위층을 향한 전략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간 시절에, 그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들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벨론의 여러 총리와 방백들의 음모로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통해 다리오 왕 자신이 바벨론 온 땅과 백성들에게 다니엘이 믿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라는 조서를 내리는 것처럼 (단6:16-27) 이슬람권의 사회 고위층이 자신의 믿음을 나누는 일은 그 어느 것보다 여파와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물론 다른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같이 느끼는 일이지만 특별히 수직적인 생활 방식에 익숙해 있는 이슬람권에서의 고위층의 한 마디는 매우 영향을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가족적인 고위층 접근을 통한 선교전략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사역자 가족에게도 좀더 여유로운 생활과 문화 생활 등이 필요할 것이다. 


3. 성령의 역사와 증거가 있는 사역적인 전략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능력이 나타나고 많은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특별히 이슬람권에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한 선교전략도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아직까지 무속적인 신앙이 혼합되어있는 가운데 무술적인 행위와 점, 그리고 이상한 현상 같은 것에 매우 중요점을 두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증거와 함께 복음 증거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근본으로 하는 믿음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와 증거 전략이 필요하다. 

본인이 사역하고 있는 도시에서도 몇 년 전 유럽 모국가에서 젊은이들이 와서 많은 능력을 행하며 교회를 이루어 나갔다. 그들은 몇 달도 안돼, 상상할 수 없이, 몇 백 명씩 모이는 가운데, 다른 모든 가정교회들이 주춤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능력에만 치중하고 말씀에는 소홀히 한 결과, 지금은 아무도 없고 교회마저 문 닫고 이곳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근본으로 하며 함께 병행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것이다. 

‘한 걸음에 모든 것을 다 이루겠다‘라는 생각은 이슬람권에서의 가장 커다란 실패의 원인이다. 인내하며 그들 편에서 바라다보고 참아주며 격려하며 사랑으로 하나 하나 열매를 맺어 나가는 것이 가장 느린 길인 것 같지만, 바로 이것이 이슬람권에서의 가장 빠른 길이며 가장 안전한 선교전략일 것이다. 

결론 


성경 말씀 가운데 살전1:5절에서 "내가 여러분 가운데 어떻게 살았는가를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라며 바울은 부모처럼 함께 살면서 섬겼음을 밝히고 있고, 이어서 바울 사도는 6절에서 “주를 본받는 자”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무슬림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성경 빌4:9절에서 “나를 본 것처럼, 나처럼 하라”는 말씀처럼 무슬림들에게 사역자 자신에게 나타나는 열매와 삶의 본을 권유하며 그리고 추천하며 하늘의 복을 함께 나누는데 있어서 초청이 필요하다. 

바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 및 지도자들을 보고 자신들도 그렇게 했다. 

사역자가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본이 되는 삶을 사는 신자들을 만드는 것이 사역자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취할 첫 원리인 동시에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전략은 바로 “성경대로 행하자” 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행하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선교사들이 다른 접근에 대해 더 관심 갖는 것을 우리들은 자주 보게 된다. 우리들은 좀 더 나은 선교 전략을 위해서, 그리고 선교 열풍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뒤돌아볼 여유가 필요하며, 한국교회에서도 중동지역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에 대한 인식이 무엇보다도 바뀌어야 되는 가운데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보다도 중동에 있는 사역자들에 대한 관심과 격려와 후원이 더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모습처럼 한국교회가 빠른 열매와 유행적인 선교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리고 어렵다는 이유로 인해 중동을 향한 선교 관심자들이 중동을 계속 회피한다면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어려운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 나라 완성에 지연을 초래하게 되며 이것에 대한 책임도 우리들 각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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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 선교 전략(3) 이슬람권의 실질적 선교전략


1. 중보기도 기도는 선교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이다.

이슬람권을 향하여 계획을 세우는 것과 기도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기도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선교 사역은 영적 전쟁이다. 이 전제 없는 선교사역은 단순한 개념전달이나 사랑의 행위를 실천하는데 그치기 쉽다. “우 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 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16년 전에 작은 방송국을 설립하여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에이 드(가명)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방송을 시작한 후 7년 동안 단 한 통의 응답 편지도 받 지 못했다. 7년 후에 상황이 진전되어 1년에 7-8통의 편지가 왔다. 그런데 1995년 1월 놀 라운 일이 발생했다. 한 달에 수백 통씩 편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편지 발신자는 대부분 탈레반(아프가니스탄 강경 회교도)이였다. 같은 양을 발송했는데 왜 차이가 나는가? 얼마 후에 알려진 사실은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한 교회가 1995년 1월부터 에이드(가명)와 그의 사역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적으로 그와 그의 사 역을 위해 기도했다.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건을 변화시킨다. 중보기도는 모슬렘들을 변화시키리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중요한 것이다. 현대 선교학자들이 새삼스럽 게 재발견한 것은 선교사의 영적 자질이 선교 사역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사역의 결실을 맺는 선교사들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2.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전략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방법으로써 이슬람권에서 열매 맺고 있는 사역가운데 하나이다. 1960년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인들이 모슬렘이 필요할 때 도와주었다. 1970년 인도네시아 종교 조사에 의하면, 200여만 명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다. 대표적인 선교사는 사무엘 즈 웨머(Samuel Zwemer)로서 사람의 인품이 ‘복음을 전하는 다리’ 라고 믿었다. 예수님은 갈 릴리 생활을 통해서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셨다. 기독교인들이 혹은 선교사들이 이슬람권 생 활속에서 빛 가운데 살 때 그 삶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이 모델은 아주 성 경적이어서 복음주의자들이 널리 쓰고 있다.

 

3. 교회 설립

 마28:19~20절에 주님의 지상 명령의 목적이 제시되어 있다.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치라 는 목적은 제자 삼는데 있다. 신약 성경에는 제자라는 말이 260회 사용되어지는데 제자란 예수님을 구주로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서 교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 고 성숙한 교회가 되어 자립하고 또 다른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다. 이슬람권 선교가 지역 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선교가 교회설립과 지도자 훈련이 중요한 수단이 되지 않 고, 단순히 현지인들의 문화수준을 높이며 문명화(civilization) 자체가 기독교화 (christianization)라는 전제로 선교할 때, 인재를 양성하여 사회발전이나 수준을 높이는데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실패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경우 40%의 선교 방향이 모두 문 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선교는 문명화가 아니다. 영혼을 구원하여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 그 교회 형태가 가정 교회든, 지하교회든, 지상 위에 세워진 교회이든 상황화를 통한 모슬렘사원이 교회가 되든 상관없이 교회설립에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한다.

 

 

4. 도시를 중심으로 한 장기적인 전진기지 확보 전략

사도 바울은 대도시 중심적인 선교전략을 실행하였으며 대도시에서 시골로 분사선 방식의 선교를 하였다고 로버트 스피어는 그의 일곱가지 바울의 선교전략에서 논하고 있다. 도시는 인간이 처음시작 할 때부터 존재했었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 지금 만큼 도시가 중요한 시 대가 없었다. 하비콕스라는 미래 역사가는 ”21세기는 세계가 거대한 도시가 되어버린 세기” 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다소 과장된 얘기라 해도 통계에 의하면 2010년까지는 세계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한다고 한다. 2010년에는 인구 천만이상의 초대형 거대도시들이 28개정 도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데, 그 중에 25개가 제3세계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급속도로 증가 하는 이슬람 성장속도를 볼 때 이슬람권에서의 도시 선교 전략은 조직적으로 개발되어야 한 다.

 

5. 성경 배포 및 말씀 전파 사역

 가능하다면 모든 모슬렘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경을 - 7 - 배포하는 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많은 모슬렘들이 궁금해하고 있으며 읽고 싶어한다. 코란 에는 자주 성서의 백성들이란 말이 등장하는데, 성경을 읽는 기독교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각 언어로 만들어진 복음테이프 또한 좋은 복음전파의 수단이 된다. 소책자나 예수님에 대 한 비디오테이프는 이슬람권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특히 필자가 사역했던 아랍지 역의 사람들은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을 좋아하며,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비디오를 가까운 친 구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영접한 모슬렘 친구도 있었다.

 

6. 방송 매체를 통한 사역

오늘날에 있어서 이슬람권에서 열매를 많이 맺는 사역가운데 하나는 방송매체를 통한 선 교 전략이다. 방송은 마치 전쟁에 있어서 대공사격과도 같은 것이다. 국경을 초월해서 선교 할 수 있으며 선교사가 직접 들어가서 살기 어려운 사하라 사막 같은 곳에서도 위력을 발휘 하고 있다. 중보기도에서도 언급했듯이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강경 모슬렘 국가에서도 라디 오 방송은 계속 전파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슬람권에서도 약간의 경제적인 여유 만 있으면 위성안테나를 설치할 수 있다. 세계의 많은 방송이 잡히는데 그 중에 기독교 방 송도 잡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이든 TV방송이든 영세한 상황이 문제이다. 방송매체를 통한 사역에 한국교회가 후원을 한다면 놀라운 일들이 이슬람권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인공위성을 통한 전략도 연구되어져야 한다.

 

 

7. 모슬렘 상황화를 통한 선교전략

 이는 복음을 전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기존의 방법이 모슬렘 선교에 장애가 된다고 보고, 복음의 핵심이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슬람문화를 상황화시켜 복음을 전하는 다리로 삼 는 것인데, 이 모델은 방글라데시아에서 필 파샬(Phil Parshall)등에 의해서 열매를 거두었으 며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그리고 중동 몇 개 나라에서 시험 중에 있다. 필 파샬은 6가지 생활방식과 18가지 예배방식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선교사가 그 지역 사람들과 유사한 복 장을 하고 남자는 턱수염을 기르며 모슬렘식 식생활을 하고 사람중심의 시간개념을 가지며, 또한 개종자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은 피한다. 이러한 간소한 생활을 통해서 그 종족 사 람처럼 사는 성육신 적 모델을 보이며, 그 종족 집단에 헌신되어 그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 여 그들과 결속되어야 한다. 물론 깊이 들어가면 예배 방식 등 쓰는 용어에도 상황화가 되 어야한다. 모슬렘 선교를 하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의 문화 속에서 거듭나지 않은 채 조국에 서의 생활 방식과 수준만을 요구하며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는 선교사들에게는 큰 도전이 되 고 있다. 상황화 선교전략은 복음주의 적 신학을 공부하고 이슬람권에서 경험 있는 선교사 들에 의하여 주도되어야 한다. 복음의 본질이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연구와 체계 적인 성경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8. 힘의 충돌(power encounter)을 통한 선교방법

 힘의 충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 선포될 때,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 며 어두움의 노예로 삼았던 세력이 도전을 받아 무너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초기 복 음 확장사에 있어서 전도부인으로 활동했던 분들이 무당종교에 젖어있던 부인들 가운데서 경험했던 악령 추방(exorcism)의 경우들이다. 오늘날 이슬람세계에서는 정통모슬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매일의 삶 속에서 민속 이슬 람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슬람 하면 모두 똑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민속이슬람을 사랑하는 모슬렘이 상당히 많다. 또한 이슬람 신비주의자들 또한 이슬 람권 세계에 많게는 1/2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런 민속 모슬렘들과 여성들에게 복음은 상당히 수용적 이였다.

 

9. 전문직 사역을 통한 전략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슬람권에서 목사 비자는 자국인 선교사 등 극히 제한되어있어 선 교사 비자로는 출입국조차 어려운 곳이 많다. 가능성 있는 전문사역을 나열해 보면, 모든 나라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애쓴다. 이슬 람국가들 대부분이 가난한 나라들이 많기 때문에 관광 사업으로 수입을 올리고 싶어한다. 관광사업을 하다보면 보다 넓은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 호텔, 모텔, 게스트 하우스 등을 운 영할 수 있다. 기술을 가지고 입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자하는 국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10. 단기 기도 팀과 단기 선교 팀을 통한 전략

한국에 있으면서도 이슬람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이슬람권에 가 서 그 땅을 밟으며 기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1997년 1월에 독일의 한 중보 기도 모임 이 십자군들의 죄를 회개하는 모임으로 전개되었다. 1206년 첫번째 십자군이 갔던 그 길을 따라 가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6,7주 후에 터키에 도착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현 지언어로 십자군의 죄를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적어 놓았는데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 뉴스 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 후에 놀라운 결과가 있었다. 그들이 유럽의 모슬렘 사원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들은 단지 그 길을 따라가며 속죄의 기도를 했 는데 그들이 가는 곳마다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매년 10월에 전세계 기도팀등이 10/40창 문을 위해 기도한다. 단기 선교팀이 이슬람권에서 부흥하는 곳의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또한 단기 선교팀을 통해서 성경배포로 사역 가능한 지역들이 있다. 다만 잘 준비 된 리더들과 현지 선교사들에 의해서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잘못하면 그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1. 전통적 방법으로 사회 복지원과 학교, 유아원, 의료기관, 그리고 유치원을 통한 선교 전략이 있다. 이러한 모델은 이슬람권에서 정부가 통제를 강화하고 있어서 상당히 제한적이다. 유치원 사역은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상당히 각광을 받고 있다. 의료사업 또한 가능한 사역이다.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원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단기적 의료 사업은 장기적 의료 사업을 위해 많은 단서를 제공해준다.

 

12. 컴퓨터를 통한 인터넷 선교 전략

이슬람권에서 교육받은 지식층에 해당하는 전략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전략화해야 할 과제 이다. 컴퓨터는 방송 매체보다 더욱 개인적이며 질의와 응답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현 대의 선교전략이다. 비록 한국교회에서도 사이버 교회가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지만 시대는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이슬람 선교는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한 예로 1999년 2월 아랍 에미레이트의 수도 두바이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집회가 있 었는데 1만 5천여 명이 참석해서 주최측도 놀라워했다. 그 곳에 참석했던 젊은이들이 대부분 인터넷 광고를 보고 참석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선교의 가능성을 확인해 준 사건 인 것이다. T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 선교사는 ‘신약성경’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했는데 많 은 모슬렘들이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며 매주 약 1500명의 모슬렘들이 상담을 원하고 있다.

 

13. 한인 교회를 통한 선교전략

한인 교회는 현재에도 각 지역에서 이슬람권을 향한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감당하고 있 다. 한인 교회는 대부분 자국민 선교로써 이슬람권에서도 큰 문제없이 설립할 수 있는 장점 이 있다. 물론 해외 동포를 상대로 선교하고 있으나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 따라 모슬렘 선 교의 큰 부분을 담당할 수 있다.

 

14. 태권도 사역, 침 시술소등 그 지역의 상황과 그 주민의 필요에 맞는 선교 전략이 이루 어져야한다. 태권도는 올림픽 공식종목으로 인정되어 더 많은 나라에서 태권도 지도자를 요청하고 있 다. 아프리카나 중동 사람들은 쿵푸, 가라대와 함께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집트만 해도 30만 명의 태권도 인구가 있는데 이들 모두가 다 할 수 있으면 한국인으로부터 배우 기를 희망하지만, 정부 파송 사범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수지침은 가난한 모슬렘들에게 각 광을 받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 한국인이 가능성 있는 사역들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 이슬람권 어디나 한국의 경제발전은 좋은 모델이 되고 있기에 한국어 학과를 개설하는 대학들이 늘어가고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요청되고 있다. 물론 소수의 제한적인 인원이지만 그 사역의 필요성이 이슬람권에서 증대되고 있다.


이슬람 선교의 가능성


 무엇보다도 기쁜 소식은 최근에 모슬렘들이 지난 몇 백년에 걸친 개종자 보다 많은 숫자 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가리아 남부지역의 터어키 언어를 쓰는 모슬렘 배경을 가진 짚시들이 2만여명 주님께 돌아왔다. 사하라 사막에는 투아헤그라는 종족이 있 는데 이 종족은 모슬렘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북부 아프리카의 카빌레라는 언어를 쓰는 모슬렘들이 있는데 요즘 민족주의가 번창하고 있는 가운데 자신들 이 아랍인도 모슬렘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지난 10년간 이상한 일이 이 종족사이 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종족중 30%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꿈꾸기 시작하였고 그것 을 이야기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약2만 명의 기독교인이 이 가운 데 있다.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옹이 이란정부를 집권했을 때, 약 일만 오천명의 기독교 인이 이란에 있었는데 지금은 약 2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곳 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권 선교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힘든 것이 사실이 다. 1265년부터 1315년까지 50년간 이슬람권 투사였던 이슬람선교의 개척자 Raymond Lally(스페인 1215-1315)는 사랑과 기도와 눈물로 모슬렘들의 개종을 위해 80세의 노구를 끌고 헌신하였으나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모슬렘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 다. 난감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 시대 우리들의 관심은 이슬람권이어야 한다고 믿 는다.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 21세기에 이슬람교의 돌파구가 생기리라 본다. 어떤 경로를 통 해 이루어질지는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전쟁을 통해서 아니면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서 혹은 계속되는 이슬람 근본 주의자들로 인한 이슬람에 대한 회의를 통해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구 소련의 붕괴를 누가 예상했던가? 그러나 하루만에 공산주의가 무너졌듯이 이슬람도 하 나님의 주권에 의해 무너지리라 확신한다. 다만 그때를 바라보며 역사를 준비해야 할 사람 들이 필요한 것이다. 시편 2편 7절과 8절에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 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내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라.”란 이 약속의 말씀을 나는 믿는다.

 

유해석 목사 총신대학교 졸업, 총회신학교 졸업, 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파송 선교사, 현 F.I.M.국제선교회 대표로서 영국본부 사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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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도


1.복음전도자들


복음전도자들은 직업적인 사역자들과 임명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육신하신 예수를 알았고 그의 부활후에 그로부터 명령을 받은 한 두명의 다른 사도들과 함께 교회에 의해서 보내어졌고 믿음의 은사를 받은 순회 전도자들에게 모두 적용되었다. 순회전도자들은 한장소에 오래 머물지 않고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을 입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고, 그래서 그들은 생활이나 메세지, 기독교인으로서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보증을 보여주었다. 또한 장로는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였는데 장로의 주된 사역은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므로 회원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발견하고 수행하도록 하는 일이며 주교는 복음전파와 성례전을 행하는 일이였다.

2.비공식적인 복음전도자들
초대교회 당시의 믿음은 비 공식적인 복음전도자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확산되었으며 특별히 노동자 계층에 전파되었다. 여인들의 탁월한 사역과 지속적인 헌신과 충성을 보게 된다. 예수를 따르던 많은 여인들, 오순절, 사도행전의 도르가, 루디아, 브리스길라. 밀림의네딸, 로마제국의 모미틸라의 질녀들이 복음전도자들로 전해지고 있다.

3.복음전도자들:그들의 삶은 어떠하였는가 ?
그들의 삶은 핍박을 당해도 양심을 깨끗하게 지키고, 그리스도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면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유지하였다. 또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는 인종, 성별,계층 그리고 교육의 장벽을 넘어섬으로써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코이노니아로 지칭되는 이단어는 세속적인 용법에 있어서 식사모임, 장례모임, 상인조직과 같이 공동활동을 일으키기 위한 조직된 비공식적 연합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로마인들의 생활에 잘알려졌기 때문에 로마법에 저촉되지 않았으므로 허용되었던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므로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이 되도록 노력을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기까지 출산의 고통을 치루었다. 그리스도와 만난 그들은 그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과 최고의 기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주는 이기쁨은 교회의 영원한 소유물이며 아무도 그들로 부커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약속을 믿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령께서 주신 기쁨으로 충만하여 고통속에서도 감옥에서도 순교하면서 기뻐하면서 찬양하였다. 핍박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선포하였다.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이것을 예수께서 가르친 죄에 대한 비타협정신이 초대교회에 깊게 뿌리박혔기 때무너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독교인으로서의 행위로 인하여 투옥되고, 산헤드린 공회앞에서 위험을 당할 때에도 소리를 지르거나 불평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료들과 함께 기도하고 부활의 주님을전파하였다.  그들이 메세지를 전파함에 있어서 역사는 능력으로 나타났다. 병고침과 귀신의 쫓아냄을 포함하여 기적을 행하였던 것이다.

결론)초대교회에 있어서 복음전도자들은 예수님이 메세지를 직접 들었고, 부활도 목격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도들과, 사도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사건을 목격한 많은초대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였다. 복음전파는 사실상 비공식적인 복음전도자들에 의해서 로마를 복음화 한 것이다. 복음전도자들의 삶은 깨끗하고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아 어떠한 고난과 압박속에서도 인내하고 능력을 보여주었다.

 전도방법
a.대중전도

1.회당설교 : 회당은 유대인들 사이에 복음전도를 위한 모판을 제공했다. 여기에 바로 기독교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회중이 있었다. 안디옥 회당에서의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대한 전도의 접근의 모델이였다.롤란드 알렌은 회당설교의 네가지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청중의 감수성에 대한 바울의 회유와 동정, 둘째는 바울은 어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진리를 선포하는데 용기를 보인다. 세째는 그의 청중들과 그들의 지력과 영적 필요성이다. 네째는 복음메세지의 진리와 능력안에서는 능력안에서는 주저하지 않는 확신이다.기독교 전도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설교자와 청중을 연합하는 공통의 기원과 공통의 신앙을 강조하면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종교는 새로운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그치이며 이스라엘의 역사의 열매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했다.

2.옥외설교 :회당에서 그리고 회당을 통해서 한 설교는 별도이지만 제자들은 옥회설교(open air preaching)에 있어서 그들 스승의 가르침을 따랐다. 즉흥적인 만남은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거나 모이는 사원지역이 효과적이였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예루살렘, 사마리아, 루스드라, 아덴등과 같은 곳에서 옥외설교를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유대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옥외설교는 결코 혁신적인 방법은 아니였다.
3.예언적 설교 :초대교회시절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 직접 직설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예언자들이 있었다. 예언은 어떤이들은 소유하고 어떤이들은 소유하지 못한 은사였다.  예언은 성령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는 조리있는 말이다. 초대교회 시절 예언은 사도직 다음으로 아주 귀하게 여겼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충동저거인 자극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고,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디다케는 이재능이 진심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경건한 생활이 중요함을 강조하기도했다.예언은 교회에서 계속되어졌다. 감독제도의 출현으로 예언이 쇠퇴하게 되었어도 예언적 기능을  주교들은 몰두하였다.

4.설교의 가치: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초대교인들은 설교를 하였다. 오리겐에 의해서 채택된 시편36편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우리는 설교자의 예를 볼수 있다. 설교는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도리어 실제적인 접근을 이루면서 행해졌다.

5.교훈적 전도:
기독교의 교훈과 철학을 가르치는 학자는 로마에서 져스틴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기전 철학강의를 하는 동안,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신앙에 관한 교훈을 하였다. 가르침과 전도의 이 혼합은 많은 지식인 층의 사람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이 방법은 지식인들로 부터 개종한 사람들로 부터사용되었느너데 이들은 안전하게 그리고 서서히 변증학을 썻으며 이들이 거물도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교도 하였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교훈적 전도는 에베소에 3년을 머물면서 전도를 하였던 사도바울과 같은 이에게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6.증언:메세지의 진리에 대한 개인적 증언은 기독교 증거의 절대 필요한 요소이다. 자신의 경험을 확신하고 증언했던 것이 이교세계를 전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증언은 2세기의 복음전도의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b.가정전도
가정의 편안한 분위기와 비격식성이 가정전도의 형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가정에서의 교회가 기독교신앙의 선파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가장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는 예루살렘의 마가라는 요한의 어머니가 소유하고 있는 집의 다락방에서 만났다는 사실이다.가정이  갖는 사회학적 중요성은 기독교 전진기지의 중심이 되었다. 가장은 개종으로 전가족을 기독교인이 되게 하였고, 개종한 부인의 거룩한 행동은 전 가족에게 감화를 주었다. 기독교 가장은 저녁 교제의 장소로, 성찬의 장소로, 철야기도와 예배와 교훈의 장소로 즉석 복음집회 장소로 그 가정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c.개인전도
예수 진리를 발견한 사람이 다른사람에게 그의 감명을 나누기 위해서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이 개인 전도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개인적인 만남, 방문을 통하여 전도의 기회를 활용하였던 것이다.

d. 문서전도

1.1세기의 변증서인 사복음서
예수에 관해 떠도는 이야기들과 이방인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데 사용된 문답식 단편들을 구성하려는 새로운 문학형태인 복음을 고안한 첫번째 사람이 마가였다. 그는 전기물을 쓰는 것이 아닐,예수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제자들이 그를 따른 증거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인것을 보여주기 위해 배열된 많은 증인들의 입술로부터 나온 증거로 쓰여진 신앙고백이었다. 마가복음은 철두철미하게 케리그마적이다. 요한은 예수와 그의 인격과 오신 목적을 '표적'을 선택함으로 강조하기를 원한다. 마태는 회개해서 신앙에 이르게 할 일차적인 호소보다는 오히려 신실한 가르침의 사역을 지지해 줄 자료를 주로 찿아 본다.

결론) 초대기독교인들이 세계를 복음화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들의 주무기로서 성경과 기도를 내세우며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사랑과 타오르는 열심과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순수한 우위에 근거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전도는 그들의 사명이였다.

 

 


 

 복음전도의 동기

1.감사의 태도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초대교인들의 생각은 신학적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그들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했거나 사회적인 공리적인 입장에서 한 것이 아니였다. 복음전도의 주요동기는 초대교인들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도 감사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의 보내심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목숨을 걸고 전파하였던 것이다. 초대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예수님의 사랑에 의해서 사로잡혔다. 그들의 삶을 이러한 사랑에 사로잡힘으로써 예수님을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복음전도의 사역은 하나님께 대한 자발적인 사랑의 헌신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의 복음전파의 설명을 하자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예수의 보내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인간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에 그 동기가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것이다.

2.책임감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두번째 요소는 항상 하나님앞에서의 그들의 고백을 따라서 사는 삶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들은 마지막날에 주님앞에서 부끄러움을 당치않기 위하여 진실하기로 결심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게 하는자가 되기를 힘쓰며, 주님앞에 섰을때 선악간에 그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보응을 받는다는 것이  사도바울의은 복음전도사역에 있어서 동기를 부여한 요소였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종에 대하여 보상을 베푸시지만 그러한 보상은 그리스도의 성품에 더욱 접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상은 은혜의 산물인데, 그것은 공로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초대기독고인들은 위대한 재판장이신 하나님앞에서의개인적인 책임감은 복음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 자신이 저주를 받을가능성에 대하여 두려워하였다. 기독교인의 봉사에 대한 동기로서의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바울이 제기한 문제의 미묘한 성격으로 볼때에 징계와 보상에 대한 교리는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니였다.

3.관심
복음화되지 아니한 인간의 상태에 대한 관심이 초대교회의 복음전도를 위한 숨겨진 원동력이였다. 사도바울서신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복음전도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초대교인들에 의해서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프로트렙티쿠스의 결론장에는 "나는 인간을 향한 사랑에 이끌리어 내가 하나님께로서 받은바 가장 큰 축복인 구원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의 이러한 독자들의 행복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도 켰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사도바울은 그자신이 에스겔이 그러했던 것 처럼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준비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귀를 기울이기를 거절하는 한 그들은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그들에게 경고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파수군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리스인의 삶의 유익성을 설명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론) 초대교회는 그들의  특징인 복음전도를 위한 열정을 불살랐는데 이것은  역사를 통하여  두드러진 현상이였다. 그들은 죽기도하고,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으며 공민권을 박탈당하기도 했고 재산이나 집이나 가족까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더구나 로마제국의 신에게 예배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죽음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와같은 정열과 비밀은 비천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전도에 있어서 책임감을 갖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역시 복음전도의 동기는 값없이 받았기에 값없이 준다는 것이고 사도바울과 같이 전하지 않으면 저주아래 있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사명에 의한 것이였다.


  전도전략
기독교 복음은 어느 곳에거주하든지간에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초대교인들은 그점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이점이 선교의 출발점이 되었다.하나님의 속성자체가 보편적 선교를 요구하신다.
1.지형   1세기에 지중해 연안의 문명화된 세계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효과적인 복음전파가 용이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볼수 있다.
로마제국의 자연적인 교통로를 따라 복음이 전파되었다. 기독교 확장은 지형적 요소가 전체전략에 있어서 중요하였다. 로마의 교두보는 모두 이용되어 복음이 주변국가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지형적인 요소는 기독교의 전도의 지역책략에 일익을 담당했다. 북음은 자연스런 교통로를 따라서 퍼져나갔던 것이다. 바울의 서신 운반은 교통로를 따랐고, 확실한 복음은 지리적 근접선과 도로망을 따라서 전파되었다.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주요한 전진로로서 로마제국의 길과 교역로를사용한 첫번째 사람들은 물론 아니다. 그들보다 먼저 유대인들이 이것들을 사용하였다. 기독교인들이 처음2세기동안 침투해 들어간 주요한 모든 지역에 유대인들이 그들보다 먼저 거기에 있었다는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다.
2.영향
1)사도바울의 목표
알렌은 그의 저서 "전도방법"에서 바울의 전도전략은 로마제국의 행정과 헬라문명과 유대영향과 상업요충지의  중심부를 선택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안에 대해 각각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지만 , 다른 면을 지적함으로써 현명하게 결론을 내린다. 그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고, 그가 멈추어야 하는 중심지가 아니라, 그가 시작해야 하는 중심지였으며, 생명을 고갈시켜야 하는 중심지가 아니라, 그곳으로부터 생명을 전파하는 중심지였다. 초대기독교인들이 세우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중심지였다.
2)사도바울의 선교전략
공동체의 지도자를 찿아가 복음을 전하는 정책을 바울은 취하면서 그들이 기독교인이 되면 그들을 통해 복음의 메세지가 더 넓게 퍼질 수 있도록 하였고, 사도바울의 전략은 도시중심적이었다. 에베소에서 했던 것 처럼 도시를 중심지로 삼고, 이처럼 도시를 선교전략의 중심지로 삼은 것은 로마의 방문으로 확실하게 결정되어 졌다. 또 동시에 지방적이며, 동시에 세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전체 구원 역사의 열렬한 도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세웠다. 이것은 전세계를 복음화하려는 바울의 비젼이였다.

3.종말론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가 초대교회의 복음전도에 있어서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초대교인들을 향한 설교는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선포와 만물의 마지막때에 있어서  외개와 믿음에 대한 도전으로 그절정에 이르렀다. 초대교회의 복음전도에 있어서 강력한 원동력은 종말론이였다. 종말론적인 기대는 복음전도를 위한 교회의 교리에 있어서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은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세기교회의 종말론적인 기대에 다양성속에는 구속하신 것들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깊은 확신이 있었다.

결론)사도바울은 도시중심적이며 동시에 개방적이며 헌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선교에 열정을 기울였다. 초대교회에 복음전도의 강력한 원동력은 역시 종말에 대한 소망이였다. 종말에 대한 잘못해석으로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종말에 대한 근본적인 확신에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종말론과 복음전도는 성령의 인격안에 떨어질 수 없이 연합되어 있으므로 지금도 온세계에 선교의 사역으로 계속되어지고 있다. 초대교회의 복음전도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역시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위에서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열정으로 싸여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킬수 있는 첫번째길이 복음전도이다. 이러한 것을 의무로 또 당연히 해야 할 일로 기억하고 산 초대교인들의 신앙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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