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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는 고대 아랍 다신교도의 달신이었는가?

 

 

역사적 증거들과 편향되지 않은 논리와 잘 정리된 참고문헌들과 모든 가능한 상황적 판단들은 (a) 알라라는 신의 명칭이 이슬람 도래 훨씬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b) 이슬람 이전 이교도들이 그들의 최고의 신(달신)으로 알라를 숭배하였다는 것을 아주 잘 입증할 수 있다. 알라의 이름은 이슬람 이전 아랍에 존재하였다. 고대 아랍에서 알라는 최고의 신/신격(달신)으로 여겨졌고 아랍 다신교도들은 이슬람 도래 이전에 알라를 숭배하였다.

 

아래의 타당한 몇 가지 질문들과 해답들을 검토해보자:

이슬람 도래 이전 시대에 아랍 다신교도들이 360개의 신들을 숭배하였는가? 맞다.

아랍 다신교도들이 태양과 달과 별들을 숭배하였는가? 맞다.

아랍족들이 달신을 위한 사원들을 건축하였는가? 맞다.

다른 아랍 부족들이 달신에게 다른 명칭들/호칭들을 수여하였는가? 맞다.

그 명칭들/호칭들의 일부분은 무엇이었는가? Sin, Hubul, Ilumquh, Al-ilah 였다.

“al-ilah”(신)라는 호칭이 달신으로 사용되었는가? 맞다.

“알라(Allah)"라는 단어가 “al-ilah”에서 유래되었는가? 맞다.

다신교도의 “알라”가 만신전에서 가장 높은 신이었는가? 맞다.

그가 카바 신전에서 숭배되었는가? 맞다.

알라가 메카인들의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였는가? 맞다.

그들이 카바 신전의 꼭대기에 Hubul의 조상을 설치하였는가? 맞다.

그 당시에 Hubul이 달신으로 여겨졌는가? 맞다.

그러므로 카바 신전이 “달신의 전”이었는가? 맞다.

결국에는 달신의 명칭으로 “알라”라는 명칭이 Hubul이라는 명칭을 대체하였는가? 맞다.

그들이 카바 신전을 “알라의 전”으로 호칭하였는가? 맞다.

알-라트, 알-우짜, 마나트가 “알라의 딸들”로 호칭되었는가? 맞다.

유세프 알리는 라트, 우짜, 마나트가 “하나님[알라]의 딸들”로 알려져 있었다고 설명한다. (Yusuf Ali fn. 5096, pg. 1445)

꾸란은 한 부분에서 무슬림들에게 알-라트, 알-우짜, 마나트를 숭배하라고 말하였는가? 맞다. 꾸란 53:19-20

이러한 구절들이 현재의 꾸란에서 “폐기”되었는가? 맞다.

그 구절들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악마의 계시”

달신의 여러 가지 이름들(Sin, Hubul, llumquh, Al-ilah)은 다양한 다신교도 아랍 부족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다신교도의 신 SIN은 달신의 명칭이었다.

 

실제적으로 알라가 누구인가?

 

이슬람 신학자들(Mullahs, Maulana, Moulavis, etc.) 또는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르면 알라는 우주 안에 모든 것을 창조한 존재가 알라라는 진실을 알려주면서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의 천사를 통하여 (어느 날 갑자기?)선지자 무함마드에게 자신에 관하여 말하였거나 소개하였던 창조주 또는 최고의 신이다. 놀랍게도 꾸란은 실제로 누가 알라였고 알라와 다신교도들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에 관하여 “알라”라는 단어를 결코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99%의 무슬림들이 알라라는 명칭이 가브리엘이 그 진실(?)을 히라 Parvat(산)의 동굴에서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알려주고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주었을 당시에 생겨났거나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진실이 계시되기 전에 다신교도 아랍족들은 완전히 무지하여서 다양한 꼭두각시 여신들을 숭배하였고 그 다신교도들은 매우 사악한 사람들이었다고 믿는다. 나는 어느 이슬람 성직자들도 그 진실을 우리에게 말하여 주지 않았고 그들이 “알라”가 사실은 다신교 아라비아에서 이미 존재하였던 신이라는 이 분명한 진실을 믿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놀라운 위선 아닌가?

 

“알라”라는 명칭이 다신교도들에 의하여 그들의 주요한 신/신격으로 이미 사용되었다는 것을 제시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다:

 

(A) 그들이 무지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슬람 도래 이전 시대에 아랍족의 종교적 배경은 다신교적이며 근본적으로 정령신앙적 이었다. 달, 태양, 별들, 행성들, 동물들, 우물들, 나무들, 돌들, 동굴들, 샘들 그리고 다른 자연물을 통하여 인간은 신에게 교제할 수 있었다. 메카에서 “알라”는 신들 가운데 우두머리였으며 무함마드의 부족인 꾸라이시족의 특별한 신이었다. 알라에게 딸이 셋 있었고 알-우짜(비너스)는 그 중에서 가장 존중되었고 인신제사를 좋아하였고 마나트는 운명의 여신이었고 알-라트는 식물의 여신이었다. 알라의 이 세 딸들(그들에 관한 구절이 꾸란에 있다)이 모든 것들 위에 가장 힘이 세다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그들의 숭배자들을 위한 그들의 중보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B) 아랍인들은 자녀들에게 압둘라(알라의 종)와 같은 이름들을 지어주는 관습이 있었다. 명백한 증거는 무함마드의 아버지의 이름이 “압둘라”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리적인 유추는 이슬람 도래 이전 아랍에 “알라”가 없었다면 아라비아에 압둘라 또는 알라의 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C) 오늘날에도 무슬림뿐 만아니라 모든 다른 비-무슬림을 포함한 전 아랍 세계(유대인, 기독교인, 사비아교인, 바하이교인, 무신론자 등)에서 아랍인들은 놀라움 또는 불행/슬픔의 표현으로서 “야 알라(Ya Allah)"라고 말한다.

 

(D) Albert Hourani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는 이슬람 호칭은 이미 지역 신들 가운데 하나에 대하여 사용되었던 ”알라“인데 이 호칭은 지금 아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된다(A history Of Arab people by Albert Hourani, 1991, page-16,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USA).

 

역사는 우리에게 카바 신전 주변에 알라의 존재에 관한 두 가지 이론을 말해준다: (1) 다신교도들은 360개의 우상들 가운데 가장 큰 우상을 “알라”라고 부르고 그를 가장 최고의/우월한 신으로 간주하였거나 (2) 다신교 아랍족들이 카바신전 안에서 360개의 우상들을 숭배하였고 그들은 그 우상들이 보이지 않으며 전능하고 전지하며 절대로 알 수 없는 “알라”라고 부르는 유일하며 가장 힘이 센 으뜸 신의 완전한 지배 안에 있는 다른 작은 신들이라고 간주하였다.

 

힌두교와 놀라운 유사성들:

 

인도의 힌두교는 위의 두 번째 다신교 신앙과 아주 유사하다. 힌두교도들이 많은 다른 여신들을 숭배하지만 그들이 “Nirakar”라고 부르는 유일한 최고의 보이지 않는 신 “Bhagaban”(일부는 그를 “Ischhaar”로 부른다)에 대한 예외 없는 믿음을 가진다. 그러나 모든 힌두교인들은 그와 함께 다른 수 많은 신들을 숭배한다. 이 Bhagaban은 모든 다른 신들의 주군으로 간주된다. 일부 똑똑한 선지자가 힌두교인들에게 다른 여신들을 숭배하지 말고 이슬람처럼 유일신 종교를 만들어 Bhagaban만을 그들의 유일한 신으로 숭배하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것이 이슬람과 같이 다른 종교가 될 수 있을까?

 

다음은 “알라”가 아랍 다신교도들의 달신이었다는 것을 제시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다.

 

(A) 꾸란에는 알라가 달, 태양, 별들, 행성들, 밤, 바람 따위들과 같은 이름을 들어 여러 차례 맹세하는 적어도 12개 이상의 구절들이 있다. 왜 창조주 알라(?)가 자기 피조물들을 들어 맹세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보통 우리는 우리 보다 훨씬 우월한 것의 이름을 들어서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거나 우리의 (우리 보다 나이가 많고 우월하다고 여겨지는)아버지의 이름을 들어서 맹세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보다 못한 것의 이름을 들어 맹세하지 않는다. 여기 꾸란에서 알라가 달 또는 별들을 들어 맹세하는 모양새는 알라가 이러한 것들이 자신보다 우월하게 여겼다는 힌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꾸란에서 누가 실제로 알라로 행세하였는가에 관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꾸란 74장 32절 “달을 두고 맹세하사”에서 왜 꾸란이 달을 두고 맹세하는지 이유에 대한 설명에서 유세프 알리는 “달은 무지의 시대에 신으로 숭배되었다”(fn. 5798, pg. 1644)고 주석한다. 아마도 알라의 이 맹세는 다신교 관습에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달을 숭배하였던 평상적이고/문화적인 습관에 기인한 것이었다.

 

(B) 유세프 알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Page-1921-1623 of his English Translation of Holy Quran):

 

“달 숭배는 다양한 형태로 널리 인기 있었다.......쌍둥이 형제 자매 Apollo와 Diana는 태양과 달을 나타낸다. ....인도의 베다 종교에서 달신은 Soma였고 행성들의 주군이며...... 달은 고대 인도에서 남성 신이었다. 달은 고대 셈족 종교에서도 남성 신이었고 달에 해당하는 아랍어 단어 ‘qamar’는 남성형이고 반대로 태양에 해당하는 아랍어 단어 ‘shams’는 여성형이다. 아랍 다신교도들은 분명히 태양을 여신으로 달을 남신으로 보았다.

 

카바 안에서 그리고 메카 주변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다신교 신들은 라트, 우짜, 마나트였다. .....카바 안에 다신교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360개 우상들은 부정확한 태양력의 360일을 나타낸다. 이것은 동시대에 우리 선지자와 같이 꾸라이시족에게 알려진 대로 실제적인 근대적 다신교 숭배였다.“

 

(C) 이슬람에서 달의 영향

 

누가 무슬림의 삶에서 지고한 달의 영향을 부인할 수 있는가? 이슬람에서 달은 가장 거룩한 행성으로 여겨졌고 모든 이슬람 의식과 축제를 인도하는 빛이다. 라마단과 라마단 공휴일 날짜에 관한 반박과 논쟁은 아주 보통이며 분명히 그것은 만성적인 문제이고 달이 이 문제의 중심이다. 초생달과 별들은 많은 무슬림 국가들의 국기에서 상징적 표식이고 그것은 모스크위에, 무슬림 묘지 안에, 그 밖의 곳에서 볼 수 있다.

아라비아에 이슬람을 수립하기 위해서 다신교도들과 타협한 선지자 무함마드:

 

선지자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다신교 아랍족들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다신교의 많은 의식을 이슬람으로 받아들이는 교묘한 술책을 사용하였다. 무함마드는 그의 종교에 관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아부 서피안과 같은 다신교 지도자들과 많은 정치적인 협정을 했고 이슬람에 많은 다신교 의식들을 통합하기로 동의하였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다신교도들에게 가장 큰 하나님 “알라”만을 숭배하고 카바 신전에 있는 모든 다른 신들과 여신들의 우상들을 파괴하도록 요구하였다. 하나님의 유일성을 수립하기 위하여 그는 그들에게 여러 차례 알라에 대하여 어떠한 경쟁자도 만들지 말라고 요구하였다(이것이 꾸란에서 알라에 대하여 어떠한 경쟁자도 만들지 말라고 요구하는 수 백 개의 구절들을 볼 수 있는 이유이다). 결국 무함마드는 다신교도들이 모든 우상들을 파괴하도록 확신(물론 힘으로)시킬 수 있었고 그 대가로 (아마도)알라의 명칭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명칭으로 가장 유명한 다신교도 부족들의 여신들의 “명칭”들을 가지기로 동의하였고 그로인하여 이슬람은 알라에 관한 99개의 명칭들을 가지고 있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다신교도들이 아직 메카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 이 다신교도들의 의식에 참여할 것을 명령하였다.(유세프 알리 fn. 214, pg. 78를 보라). .....“[다신교도의] 순례 전체가 이슬람에 접목되었다....” (유세프 알리 fn. 223, pg. 80를 보라). (꾸란 2:200의) Tafsir에서 유세프 알리는 “다신교도 시대에 순례 후에 순례자들은 집단으로 모였고 거기서 조상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순례의식 전부가 이슬람에 접목되었으므로 이 순례의식의 뒷풀이도 마찬가지로 이슬람에 접목되었다. 순례자들은 순례가 끝난 다음에 이틀 또는 사흘을 묵는 것이 권장되었지만 그들은 그 날들을 기도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하여야 한다.(#223 of Shane’nazul by Maoulana Yousuf Ali, page-81)

 

이슬람에서 (오늘날) 알라의 이름으로 헌신적인 무슬림들에 의하여 수행되는 많은 의식들이 이슬람 이전에 존재하였던 다신교도들의 숭배행위와 연결되어있다. 일 년에 한번 카바 신전 순례, 라마단 금식, 카바 신전 주위를 7번 달리는 것, 검은 돌에 입 맞추는 것, 머리를 면도하는 것, 동물희생제사, 두 언덕을 달려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 마귀에게 돌을 던지는 것, 코로 물을 들이마시고 내보내는 것, 메카를 향하여 하루에 몇 차례 기도하는 것, 기부금을 내는 것, 금요일 기도회 같은 다신교도의 관습들은 오늘날 무슬림들에 의하여 엄격하게 지켜진다. 아무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며 오늘날 무슬림들의 성지순례에 관한 이상의 모든 의식들은 이슬람 도래 이전에 분명히 존재하였다. 다신교도들의 의식들 대부분을 새로운 종교 이슬람에 통합시키므로 무함마드는 성공적으로 다신교도 위기를 줄였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아주 그럴듯한 것이며 다신교도들의 마음을 정복하여 그들의 도덕성과 이슬람을 반대하는 세력의 대규모 몰락을 초래하였다는 것은 아마도 가장 중요하고 획기적인 시도들 가운데 하나였다.

 

메카의 중심 사원은 다신교도의 카바(알라의 전이라고 호칭된다)였으며 석조 구조물인 정육면체인데 여러 차례의 재건축을 하면서 아직도 존재한다. 한 쪽에 검은 돌이 박혀있는데 아마도 운석 같으며 그것에 입 맞추는 것이 지금 무슬림 순례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메카에 있는 검은 돌을 가지고 있는 사원 카바는 이슬람 도래 이전에 다신교 우상 숭배에 사용되었고 그 당시에 알라의 전이라고 호칭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아랍족들이 숭배하였던 신의 이름은 만신전의 신-Ali-ilah 신, 가장 높은 신, 모든 것의 생명 또는 운명을 미리 결정하는 자-최고의 신 “알라”였다.

 

우리는 꾸라이시의 여러 부족들에게 매우 신성시 여겨졌던 검은 돌의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 어느 날 이 신성한 돌이 다른 장소로 옮겨질 필요가 생겼을 때 여러 부족들 가운데 누가 이 신성한 돌을 운반할 것인가에 관하여 다툼이 생겼다. 그때에 가장 똑똑하고 의로운 소년 무함마드가(당시에는 선지자가 아니었다) 이 중대한 문제에 해결책을 생각해내었다. 그(무함마드)는 커다란 천위에 이 신성한 돌을 올려놓고 각 부족에서 한 명의 대표자가 나와서 이 천을 잡고 그 돌을 운반하라고 말하였다. 검은 돌이 이슬람이 생겨나기 오래 전에 존재하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말 하였을 뿐이다.

 

요약하면 이슬람이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개량된 다신교일 뿐이라는 것이 모든 이용 가능한 상황적 증거들과 분별력으로 진실하게 논리적으로 증명이 된다. 나는 이 모든 유일신 종교들이 적든 많든 유사한 기원들을 가진다고 믿는다. 유일신 종교에 관한 이 생각이 새롭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유일신 사고는 고대 파라오 왕들,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왕(3000 B.C.), 알렉산더 대제 (300 B.C.)에 의하여 선포되었다. 다른 점들은 이 왕들이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숭배되어야 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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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교 아닌 기독교 이단’ 경계하되 긍휼 대상으로 이해
 불링거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는 교활하고 위선적 …
꾸란은 고대 교회 모든 이단의 거짓을 모은 것에 불과” 질타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종교개혁은 유럽사회가 로마 가톨릭교회 중심의 중세적 질서체제에서 근대적 민족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한편 이 시기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을 향한 군사적 팽창과 영토 확장이 최고조로 달했던 순간이었다. 종교개혁의 여파로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고조되던 16~17세기는 오스만 제국에게 유럽으로 영토확장을 위한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종교개혁 직후인 1520년 오스만 군대는 헝가리를 침공하여 중부유럽을 장악했고, 여세를 몰아서 1529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오스트리아 빈까지 포위했다. 오스만 군대의 빈 공략은 유럽 전체가 공포에 휩싸일 정도로 가공할만한 사건이었다. 또한 이 무렵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떤 시기보다 고조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심지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기독교인들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이슬람의 유럽 점령이 가시화 된 것뿐만 아니라 이슬람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종교개혁자들 중에서 이슬람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루터, 칼빈, 쯔빙글리, 불링거와 같은 신학자들이 있었지만 가장 이슬람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이슬람 책을 저술하였던 신학자는 불링거(Johann Heinrich Bullinger, 1504~1575)였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로서 40년 이상 교회를 효과적으로 이끈 탁월한 지도자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신학자요, 설교자요, 상담가였다.

1.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이해

 

첫째, 불링거의 저서 <터키>(Der Tuergg)를 통해 본 이슬람

불링거는 1567년에 <터키>(Der Tuergg)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여기에서 터키란 당시 오스만 터키라는 의미와 함께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은 내용상 ‘이슬람’이라고 써도 무방하다. 이 책은 이슬람에 관한 불링거의 가장 중요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의 표지에 요한계시록 9장 16절과 17절을 실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 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그는 그 시대에 터키인들이 유럽으로 물밀 듯이 쇄도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루터처럼 어떤 종말적인 분위기를 느꼈음에 틀림없다. 책의 첫 장의 제목이 ‘이슬람의 신앙과 거짓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하여’이다. 그 책의 첫 문장을 “터키인들의 신앙은 무함마드의 신앙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바로 이어진 문장에서 그는 무함마드를 교활하고(listig), 비열하고(dueckisch), 위선적(glychssnerisch)이라고 특징지었다. 이 책의 둘째 장의 제목은 ‘기독교 신앙만이 참된 신앙이며 그렇게 남아 있다’인데, 첫 문장이 “한 마디로 하나의 오래되고 참되고 거룩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신앙이 세상의 시작부터 있었는데”라고 하여 기독교 신앙의 진리성을 천명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무슬림의 신앙과 삶에 대한 전형적인 비판이다. 특별히 불링거는 디모데전서 4장과 골로새서 2장을 인용하면서 무함마드와 그와 같은 교훈들을 심지어 ‘사탄의 교훈’(tuefeles leeren)이라고까지 불렀다.

 

둘째,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

불링거는 이슬람을 타종교가 아닌 기독교 이단으로 보았다. 그가 1566년에 펴낸 것으로 여겨지는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에서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고백하면서 이슬람의 가르침을 ‘잘못된 가르침’(Irrlehren)이라고 하였으며 이슬람교도들을 가리켜 이단자라고 칭하였다.

뿐만 아니라 꾸란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삼위일체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특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유일한 중보자로서의 존재도 부정하는 이단이라고 생각했다. 이슬람의 이단성을 처음 연구한 사람은 현재의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살았던 비잔틴 신학자 요한네스(Johannes)였다. 그는 무함마드가 죽은 지 약 20년 후에 태어났다. 만수르(Mansour)의 명문가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이슬람군주 무아위야 1세(Muawiyah1, 602~680) 아래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무아위야 1세의 뒤를 이은 왕이 기독교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자 요한네스는 예루살렘 근처의 마르사바(Mar Saba)수도원에 은신하여 이슬람을 연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저술인 <지식의 근원> ‘제2부 이단에 관하여’ 에서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 이유는 “무함마드가 이단이였던 아리우스파 수도사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이슬람이 시작되었으며, 꾸란에서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며, 영으로 언급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단이다”라고 하였다. 불링거는 요한네스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셋째, 불링거의 꾸란에 대한 이해

불링거에게 꾸란은 고대 교회의 모든 이단들의 거짓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 꾸란의 기원을 하나님이 아니라 무함마드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더불어 꾸란에 담겨있는 이단적인 요소들을 지적하였다. 무함마드가 신에게 받았다고 하는 계시와 비전(Vision) 역시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꾸란은 이단 사제의 도움과 완고한 유대인과 잘못된 기독교인의 조언이 섞였으며 아리안(Arians), 마케도니안(Macedonians), 네스토리안(Nestorians)과 같은 이단들에 의하여 부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꾸란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유일한 중보자 되심도 부인한다. 이같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부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기독교 신앙의 주된 교리의 부인한다. 불링거는 금식, 기도, 구제, 알라와 이슬람을 위하여 싸우다 죽음으로서 모든 죄에서 해방된다는 교리를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무함마드에게 묻는다. 또한 영생, 예배, 결혼 등에 대한 꾸란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았다.

 

넷째, 이슬람 지배 아래서 기독교인의 태도

불링거는 1551년 헝가리의 이슬람 정권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헝가리 기독교 지도자들의 편지에 대하여 1551년 6월에 선명하고 원론적인 답신을 보냈다. 성경의 신자들이 사도시대에 우상을 숭배하는 로마제국 아래서도 살았으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의 통치 아래서 바벨론 포로가 된 상태에서도 살았다. 이러한 신뢰 속에서 불링거는 헝가리 신자들에게 예레미야의 가르침을 근거로(렘 29:7) 평안 중에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무슬림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특별히 불링거는 헝가리와 동유럽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우리 모두의 죄악과 관련된 것임을 밝혔다.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의) 회초리를 벌었다.” 불링거는 헝가리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이슬람 종교로 인한 고통을 탓하기 전에 그들 자신들을 먼저 살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링거는 헝가리 교인들에게 핍박이 올지라도 하나님이 금지하신 이슬람의 신앙과 의식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불링거 역시 루터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침략을 하나님의 징계로 보았고, 이와 관련하여 헝가리 기독교인의 회개와 경건회복이 요청된다는 것을 편지에 언급하였다.

 

2. 불링거가 주는 교훈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견해를 다루면서 우리에게 주는 두 가지의 교훈이 있다. 하나는 분별의 척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기독교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많은 부분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이슬람에서 유일신에 대한 고백은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대한 고백은 없다. 또한 우리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은 대속의 은혜인데, 예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대속이 없고 공덕에 의한 구원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기독교의 구원 진리를 심각하게 왜곡한 점에 있어서는 당연히 경계의 대상이다. 우리 시대에 그들이 아무리 미사여구의 평화의 말로 접근해 올지라도 그들의 정체를 바로 알고 경계해야 한다. 또 하나는 이슬람에 대하여 경계할 것은 경계하되 그들 역시 선교의 대상으로 여기며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불링거는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자들의 믿음과 삶에 대하여 보다 긍정적인 암시를 제공한다 즉 무슬림 또한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란 점에 있어서 긍휼의 여지는 있다. 특히 이 점은 불링거에게 있어서 돋보이는 점이다.

 

3. 이슬람에 대한 불링거의 적용

종교개혁 당시와 같이 다시 한번 21세기 거대한 종교로 우뚝 선 이슬람은 국제사회를 공포와 위협으로 압박하며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한국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구체화된 친 이슬람정책으로 인하여 작년 한 해 동안 이슬람 관광객 1백만 명이 우리나라를 다녀갔으며 할랄 시장의 확대 등 정부는 이슬람 인구를 맞이할 준비로 분주한 듯하다. 이슬람은 더 이상 중동의 종교가 아니다. 전 세계 이슬람 인구의 3분의 2가 아시아에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슬람 인구가 많은 나라는 국민의 80%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약 1억9000만) 두 번째, 인구의 96%가 무슬림인 파키스탄(약 1억7000만) 그리고 인구의 89%가 무슬림인 방글라데시(약 1억5000만) 등이다. 이 나라 이외에도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스탄 등 5개국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인력 송출국 속에 포함되어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 이슬람 인구도 성장하고 있다. 1956년 208명이었던 한국 이슬람인구는 1970년 3700명, 2009년에는 9만1000명으로 성장하였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이슬람의 도전 앞에 이슬람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에 따라서 더 이상 이슬람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밀려오는 이슬람의 도전 앞에 한국교회는 응전을 준비해야 한다. 이슬람이 세상을 뒤흔든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이해 위에서 세상을 보고, 교회의 역할을 권고했다. 지금 세대에도 동일한 눈을 가진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전진되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이슬람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이슬람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며, 이슬람을 무조건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루터나 칼빈, 불링거처럼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무슬림도 십자가의 능력으로 전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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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 선교 전략 (1)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종교가 있다면 이슬람교이다. 1990년 Abd Al-masih가 쓴 “World Muslim Population Growth 1990-2000"에 의하면 전세계 모슬렘의 숫자는 12억을 넘어섰다. 지난 50여 년간 기독교가 47%의 성장을 보였고, 불교가 63%, 힌 두교가 117%의 성장을 보였는데 이슬람교는 500%의 성장을 해왔다. 인구는 세계인구의 5 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5년에는 전 세계인구의 3분의1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도처에서 이슬람 인구가 확산되고있는 요인을 정립해 보면 가장 큰 원인은 인구증가 율에 따른 것이다. 모슬렘들은 일부 다처제로서 산아제한을 하지 않는다. 둘째는 열성과 실 천적 신앙이다. 모슬렘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계율이 현실과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계율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그들의 열성은 라마단 금식 기간에 잘 나타난 다. 모든 모슬렘들이 100% 금식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기간에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약 1개월간 금식한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첨단 과학의 시대에 어려운 일이 지만 지켜가고 있다. 셋째는 오일 달러로 인한 경제성장이다. 이슬람은 전 세계에 걸쳐 오 일이라는 경제무기를 가지고 엄청난 오일 달러를 투입하여 제 3세계의 급증하는 인구증가 에 교세확장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들로 결성된 ‘77개국 경제 그룹’과 ‘이슬람 경 제 협력기구(E.O.C)’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넷째는 오늘날 교회가 자유주의 신 학의 영향으로 인하여 힘을 잃어가고 있고 랄프윈터가 지적한대로 “극심한 소홀”로 무관심 과 방관 속에서 교회는 그들의 확장추이를 지켜보는 것에 연연하였으며 이슬람의 성장에 적 극 대응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슬람 인구를 대륙별로 보면 아프리카에 2억3백만 명, 아시아에 8억9천8백만 명, 미국․ 유럽․호주 등지에 2천2백만 명이 분포되어 있다. 이슬람은 전세계에 걸쳐 다양하고 광범위 하게 퍼져있고 동부와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선 계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현재 중앙 아 시아 내에도 이슬람이 급증하고 있다. 구 소련의 공산주의 붕괴와 함께 칼 마르크스의 사상 을 모하메드가 대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Ⅰ. 우리는 왜 이슬람권에 선교사를 보내고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첫째, 모슬렘은 그동안 그들에게 대한 편견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에게 소외되어 왔다. 오 늘날 교회는 모슬렘에 대해 보편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서구교회의 영향이 한국에 서도 그대로 전달된 것 같다. 모슬렘은 마치 전도가 불가능한 사람들로 오해되어 왔고, 모 슬렘에 대해서 배우는 것조차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모슬렘 하면 정치적 편견으로 인해 오 - 2 - 사마 빈 라덴나 호메이니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연상하게 되었고 이들에 대한 막연 한 두려움과 무관심은 그들을 방치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마치 모슬렘들은 직접 혹은 간접적 으로 기독교의 적이며 이스라엘과 싸우는 데만 관심 있는 집단으로 왜곡되어 왔다. 우리는 강대상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다고 강론하지만 그들에게 복 음을 전한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모슬렘들은 역사 속에서 왜곡되어 왔고 우 리 또한 서구인들의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모슬렘은 세계에서 가장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전세계 선교사의 2%만 이 이슬람권에서 사역하고있다. 그렇다고 2%가 모두 모슬렘을 대상으로 선교하고있는 것은 아니다. 이 중에는 자국인 선교하는 이들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바벨탑 이후에 70종족 이 였던 세계인종은 오늘날 24,000종족이 되었다. 1980년에는 약 16,750개의 미전도 종족이 복음을 듣지 못했으나 2000년 통계에는 약 8,000 종족이 복음을 듣지 못하였다. 그런데 약 8,000개의 종족 중에 모슬렘이 4,000개의 종족으로써 모슬렘은 가장 전도가 미치지 않은 곳이다.

 

셋째, 이슬람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이다. 미국에서 이슬람은 1970년에 130만 명에서 1990년에 6백만 명 이상으로 성장해왔다. 유럽에서는 1970년 4백2십6만 명 에서 1990년 7백5십2만 명으로 성장했고, 구 소련에서는 1970년 3천4백만에서 1990년 5 천3백만으로 성장해 왔다. 1940년에 약2억이었던 전세계 모슬렘은 오일 파동의 여파를 지 나 1977년 5억 3천만이더니 1990년에 10억3천만에서 이제 12억을 넘어서고 있다. 이슬람 은 AD 7세기에 시작되었으나 전 세계 종족과 문화에 퍼졌으며 본래의 기독교 영토를 정복 하였다. 오늘날도 이슬람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이기에 모슬렘을 전도해야 한다.

 

 넷째, 한때 성장했던 기독교 영토를 정복한 세계 유일의 종교이다. 모하메드가 이슬람을 시작하기전까지 중동과 북 아프리카는 미국이 지난 2세기동안 기독교 국가였던 것 이상으 로 기독교 국가였다. 교부시대에는 5개의 신학센터가 그곳에 있었고 로마만 유럽에 있었다. 기독교 교리를 포함한 모든 중요한 회의는 중동에서 있었고 이교도에 대한 반박에 승리했던 사람들도 중동의 주교들과 학자들이였다. 중동은 기독교 도서관과 모든 종류의 성경 및 신 학관련 작품들로 가득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이슬람 국가가 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된다. 당시에는 검으로써 이슬람이 개종의 수확을 거뒀으나 그것만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의 미온적인 선교자세와 물질지향의 반복음주의적인 태도가 지배하고 있 었기 때문에 이슬람의 위협에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한때 성장했던 기독교 국가 를 지배하고 정복한 유일의 종교가 이슬람이기 때문에 모슬렘을 전도해야한다.

 

 다섯째, 비기독교로서 전투적 선교적 사고를 가진 세계 유일의 종교이다. 이슬람은 전세 계를 이슬람화 하는데 궁극적인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모든 가능한 수단은 모든 모슬렘들이 사용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만 해도 2천명 이상의 이슬람 지도자를 양성시키는 이슬람 신학교가 5개나 되며 공식적으로 세워진 모스크만 해도 1천8 백 개이며 3천 개의 코란학교가 세워져 있다. 미국에는 1,209개의 모스크가 있고 독일에는 70개의 사원과 2204개의 기도처가 있으며 30개의 모스크가 건축 중이다. 사실상, 모든 모스크는 어느 정도 훈련센터이다. 모슬렘은 비 이슬람국가에서 정치적으로 크게 활동하고 있다. 더욱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해서 정부의 힘을 얻으려고 하며 본질적으 로는 영적인 것이다. 이슬람은 해 아래 모든 나라가 이슬람 국가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전 투적인 자세로 이슬람을 전파할 것이다. 기독교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이다. 그러 나 이것은 모든 교파 즉 구교, 정교, 복음주의 교회를 모두 합한 숫자인 것이다. 만일 나눈다고 하면 이슬람이 가장 크다. 그러므로 최대의 지상명령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어 디에서나 이슬람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모슬렘에 대해서 교회가 책임이 있다. 모슬렘은 안타깝게도 교회 역사에서 항상 왜곡 되어 왔다. 구 교회는 200년 이상 십자군 전쟁 때 모슬렘들을 박해하였으며,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이교도들을 거룩한 땅에서 씻어내고 모슬렘을 인 자는 천국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십자군의 구호였다. 이것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마5:44)’는 것과 얼마나 상반 된 논리인가! 그리스정교는 공산주의 이전 러시아의 모슬렘을 심하게 박해했다. 많은 모스 크와 모슬렘 가정을 불태웠다. 오늘날 세르비아 정교회는 민족 척결이라는 미명 아래 보스 니아 모슬렘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일들을 지금도 자행하고 있다. 얼마나 비극적인가! 편애 없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거리가 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슬람은 교회 가 선교사명을 망각한 채 교리적 논쟁만 일삼던 시대전의 암흑기에 태어난 사생아다. 이슬 람이 시작 될 당시 중동은 많은 우상들로 가득 찼으며 동서 로마가 분열되어 종교적 분쟁이 가속화되었다. 이슬람의 창시자 모함메드는 유일신을 찾고자 갈망했던 젊은이였다. 그가 기 독교를 접했던 흔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문제는 당시 교회가 초대교회의 뜨거웠던 신 앙과 사명을 망각한 채 신앙적 타락에 있던 시대에 그는 진정한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일곱째,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것이다. 주님이 인류의 모든 사람 들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 그 속엔 모슬렘도 포함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 오셔 서 죽으시고 사랑하시며 그들이 예수님을 알기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모든 종족에 게 복음을 가지고 들어가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당시에 천대 받던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들에게 그의 사랑을 보이셨다. 그의 제자들조차 그를 이해 하지 못했을 때 그는 제자들을 향해 “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양식이 있 느니라(요 4:32).” 그리고 나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실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 히 이루는 것이니라(요 4:34 )”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주님의 일의 완성을 위해서 모든 종족 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들을 기다리고 계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슬람권으로 선교사를 보내며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유해석 목사 총신대학교 졸업, 총회신학교 졸업, 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파송 선교사, 현 F.I.M.국제선교회 대표로서 영국본부 사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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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

 

 

기독교와 이슬람은 그 뿌리가 같은가?

 

전혀 다릅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근본부터가 다른 종교 입니다.

 

무슬림의 홍보자료에 의하면 "기독교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근본적으로 같다"라고 말합니다.

전적으로 거짓입니다.

 

대한민국 많은 사람이 '이슬람과 기독교는 엄연히 다르지만, 그 뿌리는 같은 하나님으로 부터 나왔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무함마드가 정치적 권력과 군사적 힘이 미비하던 초기에 기독교와 유대교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했던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경전인 꾸란에서도 알라가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나와 있고 이슬람에서 유포하는 홍보용 자료에는 언제나 알라와 하나님이 근본적으로 같은 뿌리라고 주장하며 접근하고 있으므로 주의를 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슬람에서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아브라함의 종교'입니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이슬람의 신 '알라(Allah)'는 아브라함이 섬기던 그 하나님이며 기독교와 유대인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기독교와 유대인이 아브라함의 종교를 타락시키고 경전으로 내려 중 ~~~

성경을 변질 시켰기 때문에 무함마드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경전 원본을 보내어 아브라함 종교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이슬람이다. 라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인물과 꾸란의 인물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아브라함(Abraham)과 꾸란의 이브라힘(Ibrahim)이 과연 같은 인물일까요?

 

우선 성경의 아브라함은 아버지 이름 데라(창11:31~32)인데 꾸란의 이브라힘의 아버지 이름은 아자르(Azra)입니다.

 

아버지가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

이었는데 99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 바꾸어 주신 것 입니다.(창17:5)

 

꾸란의 이브라힘은 젊었을 때부터 이브라힘 이라고 불리던 사람입니다.

성경의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의 손에 의하여 불속에 던져진 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이방인들이 그를 불속에 던진 것을 알라께서 구해 주셨다고 합니다(꾸란21:68~69)

 

꾸란의 여러 주석들에 보면 그를 태워 죽이려던 이방인은 앗수르 왕 니므롯의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간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메카에서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Kaaba)신전을 건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꾸란2:125~127)

 

이슬람의 제2의 경전이라고 불리는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이브라힘은

이스마엘에게 이혼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전혀 이런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결국 내용상의 차이는 성경의 아브라함(Abraham)과 꾸란의 이브라힘(Ibrahim)은 동일인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글의 출처는 이슬람국가에서 나고 자란

하워드신 목사님의 글을 옮긴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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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인터넷상에 있었던 내용입니다.(참고하시고 직접 한글코란을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슬람의 13 교리'라는 것인데 이것을 그대로 믿으면

이슬람은 반인륜적이고 폭력적인 종교라고 생각하게 된다.

오랫동안 중동지역의 선교사로 사역했던 김동문 선교사는

최근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에서 코란에는

런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며 해당 구절을 소개하면서 조목 조목 반박했다.

아래는 김동문 선교사가 <뉴스앤조이>에 올린 글이다. <편집자 주>

 

 

1. 사춘기 시작 안 한 여자 아이를 강간, 결혼 그리고 이혼해도 된다?

 

제시한 본문과 이 주장 사이에 어떤 상관성도 없습니다. 1번 그림(사진)은 코란 암송 대회 장면인데, 이것을 어린아이와 결혼하는 장면으로 서술한 경우입니다.

 

(코란 65:4) 생리 기간이 끝나 버린 여성이라도 너희가 의심할 경우는, 그녀들을 위해 정해진 기간은 석 달이며, 생리에 이르지 아니한 여성도 마찬가지라. 또한 임신한 여성의 기간은 출산할 때까지로, 알라를 두려워한 자 알라는 그의 일을 편하게 하여 주시니라.

 

이 본문에서 말하는 기간은, 이혼 또는 재결합을 위하여 검증이 필요한 기간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인의 임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기간을 뜻합니다. 이 본문을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은 여자 아이를 강간하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2. 다른 사람을 성 노예와 노동 노예로 만들어도 된다?

 

(코란 4:3) 만일 너희들이 여자 고아들을 공정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면, 너희의 선택으로 여성과 결혼하라. 두 번 또는 세 번, 네 번도 좋으니라. 그러나 너희들이 그녀들을 공평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면, 다만 한 여인이나 네가 소유한 포로 (또는 종) 가운데서 하라. 그것이 너희들이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막아 주고, 더 적합할 것이다.

 

(코란 4:24) 이미 결혼한 여성과도 금지되나, 너희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것은 제외라. 이것은 알라의 명령이다. 이외에는 너희를 위해 허락이 되었다. 간음이 아닌 합법적 결혼을 원할 경우, 지참금을 지불해야 된다. 너희가 그들과 결혼함으로서 욕망을 추구했다면, 그녀들에게 지참금을 줄 것이다. 그 의무가 행해진 후에는, 쌍방의 합의에 의한 것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죄악이 아니다. 진실로 알라는 만사형통하심이다.

 

(코란 5:89) 알라는 너희 언약보다는 너희의 의도와 마음을 계산하신다. 그의 속죄로써 열 명의 불쌍한 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라. 이는 너희 가족들이 먹는 음식이다. 또한 그들에게 입을 옷을 주고 노예를 해방시켜 주는 것도 된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삼 일간 단식을 하라. 그것이 내가 언약한 속죄이다. 그러나 너희 언약은 지켜야 한다. 이것이 너희에게 계시한 알라의 말씀이니, 너희는 감사하라.

 

(코란 33:50) 예언자여, 진실로 알라가 너에게 허용하였나니, 네가 이미 지참금을 지불한 부인들은 알라께서 전쟁의 포로로써 너에게 부여한 자들로, 너의 오른손이 소유하고 있는 이들과, 삼촌의 딸들과, 고모의 딸들과, 외삼촌의 딸들과, 이주하여 온 외숙모의 딸들과, 예언자에게 스스로를 의탁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진 여성들과 예언자가 결혼하고자 원할 경우, 너에게는 허용된다. 그렇지만, 다른 믿는 사람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알라는 그들의 부인들과 그들 오른손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관하여 믿는 자들에게 의무화한 것도 알고 있다. 이는 너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함이니 진실로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다.

 

(코란 58:3) 그러나 지하르 형태로 아내와 이혼한 자가 그들이 말한 것을 취소할 때, 그들은 그녀와 동침하기 전에 한명의 노예를 해방시키라. 너희가 충고를 들었거늘 진실로 알라는 너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코란 70:30) 그러나 아내들과 그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자들은 허락된 것이되

 

코란 58:3'지하르' 형태의 이혼은, 이슬람 이전 아랍 사회의 악습이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은 나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말하며 아내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이혼하는 관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른손이 소유한 것'이라는 표현은, '전쟁 포로'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전쟁 포로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공동체에게 속한 것이었습니다.

 

3. 노예와 아내는 때려도 된다?

 

(코란 4:34)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알라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 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다.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 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도다.

 

코란 안에는 당시 고대 중근동의 일반적인 관행처럼, 남존여비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이 본문에는 그런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여성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여성이 순결 또는 정조를 훼손하였다고 간주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노예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4. 강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4명의 무슬림 남성이 필요하다?

 

(코란 24:4) 순결한 여성들을 중상하는 자들이 네 명의 증인을 내세우지 못할 경우, 그들에게 여든 대의 채찍형을 가하되, 그들의 증언도 수락해서는 아니 되나니, 이들은 사악한 죄인들이다.

 

5.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이슬람으로 안 바꾸면, 그들을 죽이든지 세금을 내게 한다?

 

(코란 9:29)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책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하고 그들 스스로 초라함을 느낄 때까지 그들을 죽이라.

 

13가지 주장 가운데 그나마 이 5번째 명제가 사실에 근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조차, 전쟁 상황에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무함마드 당시,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의 개종을 목적으로 전쟁이 수행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6. 무슬림이 아닌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든지, 손과 발을 절단시켜라?

 

(코란 8:12) 너의 주께서 천사들에게 말씀으로 영감하여 나는 너희와 함께 있으니, 신앙인들에게 확신을 줄 것이며, 내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리니 그들의 목을 치고 그들의 각 손가락을 쳐라.

 

(코란 47:4) 너희가 (*전쟁에서) 불신자를 만났을 때, 그들의 목을 쳐라(*죽이라). 너희가 완전히 그들을 제압했을 때는 그들을 포로로 취하고, 그 후에 은혜로써 석방을 하든지, 아니면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그들을 보석금을 받고 풀어주도록 하라. 그렇게 하라. 너희에게 명령이 있었다. 알라께서 원하셨다면, 그들에게 고통을 내렸을 것이다. 그분은 너희를 다른 자들에 비유하여 시험하고자 하심이다. 그러나 알라의 길에서 살해된 자 있다면, 그분은 그의 행위가 결코 손실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본문에서 "목을 쳐라", "손가락을 쳐라"는 말은 "죽이라", "완전히 굴복시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전쟁 중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위 코란 본문에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는 문장은 없습니다.

 

7. 무슬림이 아닌 사람을 죽이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상으로 받는다?

 

(코란 9:111) 알라는 믿는 자 가운데서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재산을 사시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라를 위해 성전하고 투쟁하며 또 순교하리니, 그것은 모세오경과 인질과 코란에 약속된 것이다. 알라보다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 누구이냐 너희가 알라와 성약한 것에 기뻐하라. 그것이 영광된 승리라.

 

언급한 코란 본문은 위와 같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코란 본문 어디에도 이 같은 언급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일부 과격 무슬림 선동가들이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코란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8. 이슬람을 떠나는 사람은 죽여라?

 

(코란 2:217) 그들(*쿠라이시 부족들)은 성스러운 달 동안에 (*벌어진) 살생에 관하여 너(*무함마드)에게 물을 것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 기간에 살생은 죄악이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알라의 길을 방해하고, 알라와 하람 사원에 가까이 있는 것을 방해하는 것과, 그곳으로부터 그의 주민들을 추방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며, 교사하고 박해하는 것은 살생보다 더 나쁜 죄악이다. 그들(*쿠라이시 부족들)은 너희가 너희의 종교(*이슬람)를 배반할 때까지 너희들에 대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 중에 믿음의 배반자가 되어 죽는다면, 그들은 현세와 내세에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불지옥의 거주자가 되어 그곳에서 영원히 거할 것이다.

 

(코란 4:89) 그들이 그랬듯이, 너희도 불신자가 되기를 원하며, 너희가 그들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 너희는 그들이 알라를 위해 떠날 때까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친구로 택하지 말라. 그럼에도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다. 그들 중의 어느 누구도 친구나 후원자로 삼지 말라.

 

코란 4장 본문의 배경은, 625년 우흐드 전투입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위선자, 불신자는 탈영병 무리를 일컫는 것이었습니다.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라는 말이 오해될 수 있지만, 이것은 전쟁 중의 탈영병이 저항하는 경우에 살해할 것을 명령한 내용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위선자나 불신자를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9. 무슬림이 아닌 사람은 목을 배어 죽이라?

 

(코란 47:4) 너희가 전쟁에서 불신자를 만났을 때, 그들의 목들을 쳐라. 너희가 완전히 그들을 제압했을 때 그들을 포로로 취하고, 그 후 은혜로써 석방을 하든지 아니면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그들을 보상금으로 속죄하여 주라. 그렇게 하라. 너희에게 명령이 있었다. 알라께서 원하셨다면, 그들에게 고통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너희로 하여금 성전하도록 하였으니, 이로 하여 너희를 다른 자들에 비유하여 시험코자 하심이다. 그러나 알라의 길에서 살해된 자 있다면, 그분은 그의 행위가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이 구절은 위에서 설명했습니다.

 

10. 알라를 위해 죽이고 순교하라?

 

(코란 9:5) (*전쟁이)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하라. 그리고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이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 주라. 진실로 알라는 관대하시고 자비로운 분이시다.

 

이 본문은, 631년경 전쟁과 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울 때의 경우도 아니며, 도시에서의 조항도 아닙니다. 본문에는 알라를 위해 불신자, 타종교인을 죽이라는 명령도, 알라를 위해 순교하라는 명령도 나오지 않습니다.

 

11.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을 위협하라?

 

(코란 8:12) 너의 주께서 천사들에게 말씀으로 영감하여 나는 너희와 함께 있으니, 신앙인들에게 확신을 줄 것이며, 내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리니, 그들의 목을 치고 그들의 각 손가락을 쳐라.

 

(코란 8:60) "군대와 말로써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에 대항할 준비를 하라" 하셨다. 그것으로 알라의 적과 너희들의 적들과 그들 외의 다른 위선자들을 두렵게 하라. 너희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알라는 그들을 아신다. 너희가 알라를 위해 바친 하찮은 것이라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위 본문은, 624년 바르드 전투에서의 승전을 배경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다른 위선자들'은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일부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12.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의 것들을 훔쳐라?

 

이 부분은 '코란 8'이라도 되어 있을 뿐, 인용 출처도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13. 이슬람을 강화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라?

 

(코란 3:26) 말하라. "권능의 왕이신 알라여 당신은 당신의 뜻대로 권능을 주시기도 하고 권능을 빼앗기도 하시며 또 영광과 천함을 주시나니 당신의 손 안에 모든 영광이 있나이다. 진실로 당신은 모든 일에 전지전능하시도다

출처 : 뉴스앤조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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