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을 위해 서로 협력하라


한인이 많이 모여 사는 미국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어느 유대인이 생선가게를 하는데, 그 옆에 한국 사람이 생선가게를 열었다. 그러면 유대인이 깜짝 놀란다. ‘어이쿠, 큰일 났구나! 저 사람들은 진짜 부지런한데… 새벽부터 일하니까 손님 다 뺏기겠구나.’


유대인은 걱정이 태산 같아진다. 그런데 그 옆에 또 다른 한국 사람이 생선 가게를 열었다. 그러면 유대인은 ‘이제 됐다!’고 생각한다. 왠지 아는가? 한국인끼리 서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자기네들이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고 경쟁하고 질투하다가 결국에는 둘 다 망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둘만 모이면 싸우고, 셋이 모이면 망한다고 한다.


어떤 외국 외교관이 주한 대사로 있다가 한국을 떠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똑같은 여건 아래에서는 모든 일본 사람이 모든 한국인을 도저히 당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세 사람의 일본인이 세 사람의 한국인과 맞설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즉, 일대일로 대하면 한국인이 일본인을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인 세 사람이 한 덩어리로 뭉칠 때에는 한국인이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세 사람만 모이면 스스로 방해꾼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한 팀이다. 행복한 교회는 사역자들이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함으로써 복음의 진보를 이루어간다. 한 팀끼리 갈라져서야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한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스스로 지치거나 자폭하게 된다면 사탄만 기뻐할 것이다. 교회는 어둠의 영들과 영적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교회 안에 하나 된 힘을 비축해야 한다.

출처 : - 김병태, 『행복한 교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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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힘


1800년대 초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세관에서 일하던 30대의 한 청년이 무능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됩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실직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면서 자기는 인생의 실패자라고 말합니다.


소피아라는 이름의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에게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원하셨던 그 일,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하셔야 할 때랍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뭘 먹고 사느냐고 남편이 말하자 아내는 남편에게 “제가 1년 정도의 생활비는 그동안에 푼푼히 저축해 두었습니다. 적어도 1년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1년 내에 시장성 있는 작품을 발표할 수가 있을까?” 하고 자신에게 반문하는 그에게 아내는 “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라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무릎 꿇어 기도합니다.


그해 그는 『두 번 들려준 이야기』(Twice-Told Tales)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이어서 그는 10년간의 칩거 끝에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청교도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걸작, 『주홍글씨』를 발표하게 됩니다.


이것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me)이라는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실패가 인생의 새로운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호손으로 하여금 실패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그와 그의 아내가 가진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 이동원, 『지금은 다르게 살 때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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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고 기뻐하는가


우리 교회는 신년 첫 주일 예배 때마다 말씀카드를 뽑습니다. 카드를 뽑은 후의 반응을 보면 가지각색입니다. 누구는 얼굴이 사색이 되고, 또 누구는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말씀카드를 손에 들고 부르르 떨며 곧 쓰러질 것 같이 휘청거리는 형제에게 다가가 카드를 뺏어 읽어 봤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부르르 떨 만한가요? 순금같이 되어 나오려면 먼저 불구덩이부터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니 순금이 된다는 기쁨보다는 뜨거운 불 시험을 당할 생각에 고통이 먼저 찾아옵니다.


그런데 옆의 자매는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는 말씀을 뽑았기 때문입니다. 로또라도 맞은 듯이 기뻐합니다.


어떻습니까? 당신의 모습인가요? 툭 까놓고 말해서 왜 좋아합니까? ‘능력’과 ‘모든 것’ 때문 아닙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단련이 없을까요? 불 시험은 간단히 생략입니까?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를 모르는 이방인들의 인생 목적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입니다. 값비싼 것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그들의 자랑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뭐가 다른지 아십니까? ‘먼저’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앞에 ‘먼저’가 있습니다. 그 먼저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먼저’가 뭔지 몰라서 내가 먹을 것, 내가 마실 것, 내가 입을 것을 먼저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믿는 자라면 먼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십시오. 이것이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을 구별 지을 것입니다.

출처 : - 김남국, 『사랑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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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고 기뻐하는가

 

우리 교회는 신년 첫 주일 예배 때마다 말씀카드를 뽑습니다. 카드를 뽑은 후의 반응을 보면 가지각색입니다. 누구는 얼굴이 사색이 되고, 또 누구는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말씀카드를 손에 들고 부르르 떨며 곧 쓰러질 것 같이 휘청거리는 형제에게 다가가 카드를 뺏어 읽어 봤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부르르 떨 만한가요? 순금같이 되어 나오려면 먼저 불구덩이부터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니 순금이 된다는 기쁨보다는 뜨거운 불 시험을 당할 생각에 고통이 먼저 찾아옵니다.

 

그런데 옆의 자매는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는 말씀을 뽑았기 때문입니다. 로또라도 맞은 듯이 기뻐합니다.


어떻습니까? 당신의 모습인가요? 툭 까놓고 말해서 왜 좋아합니까? ‘능력’과 ‘모든 것’ 때문 아닙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단련이 없을까요? 불 시험은 간단히 생략입니까?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를 모르는 이방인들의 인생 목적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입니다. 값비싼 것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그들의 자랑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뭐가 다른지 아십니까? ‘먼저’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앞에 ‘먼저’가 있습니다. 그 먼저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먼저’가 뭔지 몰라서 내가 먹을 것, 내가 마실 것, 내가 입을 것을 먼저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믿는 자라면 먼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십시오. 이것이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을 구별 지을 것입니다.

출처 : - 김남국, 『사랑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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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유전자(DNA)

 

해바라기 씨앗을 심으면, 해를 향해 얼굴을 돌리며 피어나는 해바라기를 보게 된다. 예수를 믿으면 그의 안에 심긴 말씀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간이 되어간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그의 심령 안에 심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는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것은 영적으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더욱더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욱더 당신은 그 말씀의 길을 따라 가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길이기 때문이다.


다른 길은 없다. 다른 길은 당신을 진정 당신으로 꽃피우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도마뱀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마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사람 ‘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마치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 ‘처럼’이 ‘진짜’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받은 당신에게는 그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를 담은 말씀-DNA가 심겨 있기 때문이다. 그날에 그분이 완성하겠지만, 당신은 오늘도 마치 말씀대로 완성될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에 심긴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한다. 모든 더러운 것을 버리라.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라. 당신과 맞지 않는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당신은 그렇게 될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말씀을 듣고 잊어버릴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 말씀은 당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당신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빚어낼 때까지, 당신 속에서 당신을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이다. 그분의 뜻이요 섭리이다. 그분의 구원과 재창조의 능력의 말씀이시다. 모든 감사함과 온유함과 순복함으로, 당신 안에 심긴 말씀을 받아들이라. 

 

출처 : - 채영삼, 『지붕 없는 교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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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움켜쥐고 계십니까


동연이가 두 살 때 함께 장난감 가게에 간 일이 있다. 동연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버즈(만화 <토이 스토리>에 나오는 캐릭터) 장난감을 두 팔로 꼭 움켜쥔 채 가게를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장난감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계산대에 올려 바코드 판독기를 통과시켜야 했다.


그래서 점원이 동연이의 팔에서 장난감을 넘겨받으려고 했을 때, 동연이는 울며 장난감을 꼭 쥔 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장난감이 진정한 자기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잠시 계산대에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선물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내려놓기 전에는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없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인 우리는 내려놓으면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움켜쥐려 하고, 결국 그렇게 잡고 있는 한 그것은 진정한 우리 것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움켜쥔 것이 우리를 옥죄게 된다.


그날 결국 동연이는 장난감을 안은 채로 계산대 위에 올라가야 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없다.


한번은 돌을 갓 넘은 서연이가 막 선물을 받은 새 옷을 더러운 손으로 움켜쥐려고 했다. 아내는 서연이의 손을 잠시 멈추게 해야 했다. 서연이가 막 울었지만, 우리는 우는 아이를 먼저 세면대로 데려가 씻겼다. 그리고 난 후에야 서연이가 원하는 새 옷을 입혀줄 수 있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이러한 씻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것을 이해하기까지 나에게는 미국 유학과 몽골 선교의 광야 생활이 필요했다.

출처 : - 이용규, 『내려놓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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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지 않아요

  

“저 은진이랑 아주 친한 내과 3년 차인데요.”

“은진이 여기 병실에 없는데요.”

“예?”

“저, 은진이가 어제 저녁 엑스파이어(expire: 사망)했거든요.”

“……”

 

아팠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순간 전신에 힘이 쭉 빠졌다. 이대로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나는 핸들을 꺾어 은진이 빈소가 있다는 안양으로 향했다. 은진이를 돌봤던 후배에게도 연락을 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함께 안양 장례식장을 찾았다.

 

빈소는 단출했다. 은진이의 모습이 영정사진으로 어색하게 걸려 있었다. 뜻밖의 손님을 맞은 슬픈 얼굴의 은진이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나도 은진이로 인해 가슴이 저미는 슬픔 가운데 있었기에, 말이 아닌 마음을 가지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은진이 어머니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이제 막 배운 신앙으로 소화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가족을 더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동생까지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하나님께서 은진이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셨다는 은진이 어머니 말씀은 슬픔을 잊기 위해 둘러대는 말이 아니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주님의 주권을 조금씩 인정하는 하나님 자녀의 모습이었다.

 

자리를 뜨기 전, 내 마음에 가장 궁금하던 것을 은진이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은진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던가요?”

 

“은진이요?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편안하게 갔어요. 엄마한테 이렇게 말하면서요. ‘엄마, 나 두렵지 않아요. 두렵지가 않아.’”

 

그 이야기를 듣는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은진이는 열 살짜리 아이였지만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것을 이미 알았던 것이다. 주님의 온전한 사랑 속에 있는 이 아이를 사망조차 어쩔 수 없었으리라. 은진이의 마지막 한 마디는 슬픔에 잠겨 빈소를 방문한 우리 두 사람에게 기쁨으로 돌아가게 할 힘을 주었다.

출처 : - 안수현, 『그 청년 바보의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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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첫 시간이 인생의 행복을


세계적인 치즈 제조업자 가운데 ‘크레프트’라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 그는 치즈를 마차에 싣고 팔았다. 그러다가 트럭에 싣고 팔게 되었고, 나중에는 치즈 공장을 세웠으며, 치즈 제조업자로 대성하여 결국 ‘치즈 왕’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그토록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네, 저는 매일 새벽 치즈를 팔러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습니다. 또한 치즈를 만들기 전에도 항상 기도를 합니다. 날마다 그렇게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고 모든 일에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어느 아버지가 외지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에게 꼭 필요한 부탁을 하나 하련다. 그것이 뭐냐 하면 결코 아침기도를 무시하거나 짧게 하거나 급하게 마치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라. 급한 기도는 실패를 가져온다. 기도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네 삶의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란다.”


우리는 하루의 첫 시간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매일 첫 시간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사람은 날마다 행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루 첫 시간에 드리는 기도는 하늘의 종을 울리게 하는, 종각의 밧줄이기 때문이다.


“아침 시간은 황금을 싣고 온다”라는 영국 속담도 있다. 하루의 새벽은 하루의 미래이며, 한 달의 새벽은 1년의 미래이고, 1년의 새벽은 10년의 미래라는 것을 기억하라.

 

출처 : - 최대복, 『새벽에 목숨을 걸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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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예수의 제자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각기 다른 모양의 십자가를 지고 가지만, 목적지는 같다. 목적지가 같은 만큼 우리에게는 많은 길동무가 있다. 같은 모습으로 닮아 가는 형제자매들이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예수님을 보고, 우리가 스칠 때 예수님의 향기를 맡는다. 우리는 작은 예수다.


예수님은 복 있는 자가 되려면 마음을 비우고, 슬퍼할 줄 알며, 온유하며, 남을 불쌍히 여기며, 마음이 깨끗하고, 화평케 하며, 의를 위해 굶주리고 목말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5:3~12). 예수님을 닮기를 사모하는 사람은 날마다 이 교훈의 거울에 자기를 비춰 보면서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우리의 이미지는 너무 참담하다. 그들의 눈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성경을 들고 있다고 해서 우리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예수님을 닮아 가야 하는 거룩한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너무 비현실적인 목표야. 이대로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데….’ 하는 등의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예수님을 닮는 우리의 목표를 마치 응접실에 걸어 놓은 액자처럼 쳐다만 보며 신앙생활을 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예수님의 복 있는 사람의 조건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예수님의 제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부름 받은 제자는 땅에서부터 예수님을 닮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오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세의 구원을 외치는 자는 많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고 외치는 자는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이러한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흠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오를 정상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그 정상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고 흉내라도 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26).
 

출 처  옥한흠,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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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순종할 때 참사랑이 보입니다 
  
  

자기를 낳으신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아버지에게 순종한다. 순종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이 또한 온 세상 어느 집안에서도 다 통하는 진리다. 순종하지 않으면서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 거짓말이다.

 

순종과 사랑은 나눌 수가 없다. 아버지를 정말 사랑한다면 순종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순종하지 않으면서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버지를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찬물에 손 한 번 담그지 않고 귀하게 자란 한 처녀가 가문 좋은 집으로 시집을 갔다. 가문이 좋고 대대로 전통 있는 집안이라면 새로 맞은 식구를 그 집안사람으로 만들고자 시집살이를 더 호되게 시키는 경우가 많다. 집안 체통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무리 귀하게 자란 처녀라도 일단 그런 집안에 시집을 가면 새벽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집안일을 한다. 처음에는 많이 고되고 힘이 들더라도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콧노래를 불러 가면서 일을 한다. 어떤 때는 그 어려운 시부모에게 생글생글 아양을 떨기도 한다. 옆에서 보면 고된 시집살이가 전혀 힘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바로 그 집안 식구가 다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을 사랑하고 시부모님을 사랑하고 시댁 식구들을 사랑하며 한 식구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때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가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한다면, 누구도 자기 집안을 망치려 드는 사람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는다. 사랑하는 한 가족이라면 가정을 깨뜨리려는 사람을 생명을 걸고 막을 것이며 대적할 것이다.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가족을 지킬 것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바로 사랑과 순종이다. 사랑으로, 믿음으로, 순종으로 하나 된 가정은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출 처
  옥한흠, 『자기를 버려야 사랑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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