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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연히 이런 동영상을 보았다 

설교 이상으로 지옥을 잘 설명해 주는듯 했으며

예수를 믿지 않고 지옥으로 가게 된다면 

분명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기때문이다.

동영상을 올려주신 유튜브 [라이프TV]에 감사드린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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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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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리 기독론  /  그리스도의 이름

 

 

 

1.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 그분의 속성을 잘 나타내 주듯이, 그리스도의 여러 이름들도 그분의 속성과 사역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준다.
 

1. 예수(Jesus)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이름 ‘여호수아’( [ v h y )의 헬라어 표기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탄생 전에 주어진 이름이며(눅 1:30,31), 그분의 사역 목적이 인간의 구원임을 분명히 보여준다(마 1:21). 따라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솔 하여 가나안 원주민을 무찌르고 약속의 땅에 정착시킨 여호수아의 사역은 예수께서 택한 자들을 사단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만드는 일을 예표했었던 것이다.
 

2. 그리스도(Christ)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 있는 구약의 ‘메시야’( h y c m )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핼라어 표현이다(요 4:25,26). 구약 시대에 기름 부음을 받았던 세 가지 직분 곧 선지자(왕상 19:16)와 왕(삼상 10:1), 그리고 제사장(출 29:7-9)은 완전한 메시야 곧 그리스도의 사역적 예표였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신약의 그리스도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어떠한 사역의 담당자이신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한편 여기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삼상 16:13).
 

3. 인자(Son of Man)
 

그리스도의 비하(卑下)와 승귀(昇貴) 신분에 대하여 동시에 강조한다. 즉 재림주로서의 세상을 심판하실 분의 위엄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단 7:13,14; 마 16:27,28; 24:30; 26:64).
 
 

4.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양은 가지셨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으신 특수한 존재임을 암시한다(눅 1:35), 그러나 여기서 ‘아들’은 성부에 대한 성자의 열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하기 때문이다(요 5:18).
 

5. 주(Load)
 

당시 황제에게 적용되었던 명칭이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주’(主)로 고백하는 한 개인과 이 세상에 대한 주권자 혹은 통치자이심을 분명히 보여준다(고전 12:3; 빌 2:11).
 

6. 말씀(Word)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기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셨으며 천지 창조와 계시의 주체이셨음을 보여준다(요 1:1-5; 14:9; 히 1:2).
 

7. 그밖의 이름
 

‘임마누엘’(마 1:23), ‘독생자’(요 3:16), ‘만왕의 왕’(딤전 6:15), ‘다윗의 자손’(마 1:1), 목자장’(벧전 5:4), ‘알파와 오메가’(계 1:17,18) 등의 명칭은 그분의 하나님되심과 성육신하심 및 역사의 주체이심과 구원자이심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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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혈과 육에 속하여 소망없던 저희를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믿음생활이 널리 전파되도록
  예수 십자가 사랑을 본받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작은 일 하나에도 마음과 힘을 합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행하므로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저희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려
  거룩한 성도의 삶으로 보존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말씀이 모든 면에서 앞서는
  지혜로운 성도의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범사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지난 반년동안도 믿음으로 인도하사
  생명이신 예수 안에 살게 하심을
  감사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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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복음 메시지(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

 

 

 

 

사람은 3번 산다고 합니다
한번은 엄마 뱃속에서 사는 270일입니다.

또 한번은 뱃속에서 나와서 100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죽어서 영원히 삽니다.

영원히 사는 사후 세상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천국 문으로 가는 길이 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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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련 예화모음]


♠ 왜 기도 하는가?
죤스라는 학자는 "사람은 왜 기도하는가?" 하는 질문은 마치 뻐꾸기는 왜 우는가? 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또 독수리는 왜 끝없이 창공을 치솟아 오르는가? 하는 질문과 다를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뻐꾸기는 울도록 지음을 받았고 독수리는 높이 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기도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기도를 요구합니다. 기도 없이는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 극한 환경이 만드는 {最高}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료는 꽃이나 열매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 고래 기름에서 추출한 것이다. 그런데 보통 고래 기름에서 향료가 나오는게 아니라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나온 물질이 향기로운 향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엠비기스}라고 한다.
병든 소에서 우황이 나와 해열, 진정, 강심제로 쓰인다. 로미산 정상 부근에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수목 한계선}이 있는데 거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겨우 웅크리고 있는 나무가 가장 공명이 잘되는 바이올린 재료가 된다. 고난은 인생을 값지게 한다.

♠ 하나님을 아는 방법
하나님을 자연 속에서 찾아보면 그의 존재와 그의 지혜와 능력을 엿볼 수 있고, 역사 속에서 찾아보면 도덕적 통치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으며, 인간의 마음 속에서 찾아 보는 사람도 하나님의 인격성과 도덕성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추적이 낳은 잡다한 종교와 철학등이 고장난 라디오의 잡음처럼 혼란 스럽다. 하나님이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역사와 예언자를 통해서 자신을 직접 계시했고 예수는 그 성경 주체요. 성육신이다. 예수를 보고 아는 것이 하나님을 보고 아는 것이다.(요14:7-10).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없다.
※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 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14:7)

♠ 절대변수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만능의 기계 컴퓨터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폴로13호의 고장 확율은 100만분의 1이였다. 그러나 고장났다. 괄호 안의 수자가 전부 플러스일지라도 괄호 밖의 수자가 마이너스일때 괄호 안의 수자는 마이너스로 변해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게산에 넣지 않으면 실패한다. 아무리 보약을 먹어도 하나님의 시한은 못 막는다.무에서 유를 만들고 쓰례기더미 속에서 장미를 피게 하며.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는 하나님의 절대 변수는 컴퓨터의 초인적 게산도 무로 만든다. 모세의 마른 지팡이 하나로 애굽을 이기게 하신 절대변수이다.

♠ 요한복음과 믿음
요한복음은 믿음과 영생의 책이다.
믿음이란 말이 98회 사용되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받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믿음으로 배에서 생수가 터지듯 성령을 받는다 (요7:38) 믿음으로 부활에참여하고(요11:26) 믿음으로 빛 가운데 거하며(요12:46) 믿음으로 예수의 큰일을 행한다(요14:12) 요한 서신에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했으며(요일5:4) 바울은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갈3:2, 3:4) 믿음으로 악마를 이겼다(엡6:16) 히브리서 기자는 신.구약 성도의 모든 덕은 믿음의 열매라고 말하고 있다(히11장)

♠ 예수의 제자된 표식
1.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생활(눅14:27) 십자가는 자원해서 지는 것이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자기 삶을 내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중생으로 출발한다.
2. 말씀 안에 거하는 생활(요8:31) 성경 속에 거주하고 성경을 먹고 마시며 사는 순종 생활
3. 열매 맺는 생활(요15:8) 열매에는 두가지가 있다. 성령의 열매, 즉 품성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이다.
4. 사랑(요13:34)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 이 벳지를 달지 않은 크리스찬은 가짜이다.

♠ 유일의 길. 질리. 생명
범죄 이전의 아담은 ①하나님과 통했고 ②하나님을 아버지 알듯 알았고 ③죽음과 죄를 모르는 생명을 소유했었다. 그러나 범죄 후 ㉮ 하나님과의 대하는 단절되고 ㉯하나님 아는 일에는 무지하고 ㉰죄와 생명과와 차단된 가인족이 되었다 아담은 3중 상실을 했다. ⓐ하나님과의 교통 상실 ⓑ하나님 지식 상실 ⓒ생명상실
예수님은 3중 회복을 해 주셨다 ㉠그의 십자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회복 ㉡말씀이 육신되고 하나님이 사람 되신 분 하나님께 대한 최선 최후의 계시이며 진리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중생과 영생을 주신다. 그 유일성은 내 생명의 수보다 유일하다.

♠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라
죽어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그곳에서 나오라"하자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왔다(요11:44)
우리가 처해 있는 곳은 어디인가? 어느 무덤 속에 자고 있는가 살펴보자. 회의의 무덤인가? 큰 죄의 무덤인가? 세상 허욕과 근심의 무덤인가? 일 속에 공부 속에 파묻혀 못 나오는 무덤인가? 무슨 시험의 무덤인가?
무덤에 있는 자들아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을 듣자, 아무개여. 네 무덤에서 나오라, 지금 그대가 처해 있는 무덤에서 나오라.

1."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테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49:15-16)
2."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사43:1)
3."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2-39)"

♠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세가지가 부정되고 있다. "①하나님의 자녀는 유전이나 혈통으로 출생 될 수 없다 베드로의 자녀일지라도 예수를 개인적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못된다 ②종교 감정적 흥분과 황홀과 도취감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태어날 수 없다 ③종교적 의지와 노력과 성실을 다하고 고행과 금욕 수도생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돌은 아무리 닦아도 돌이고 아무리 좋은 소도 사람은 아니며 아무리 성자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못된다. 그것이 종(種)의 원리이다.

♠ 그리스도의 향기
주님과 우리 사이를 표현하는 여러 비유와 상징이 있다. 포도나무와 가지, 양과 목자, 스승과 제자, 친구, 신랑과 신부, 몸과 지체 그리고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요, 대사요, 향기라는 표현을 썼다.
중은 중냄새, 장사꾼은 돈냄새, 정치가는 정치냄새, 도둑은 도둑냄새가 있다. 사냥개는 사람마다 다른 냄새를 추적한다. 우리에게는 예수 믿는 냄새가 나야 한다. 이광수의 소설 {사랑}속의 순옥은 자기 피가 향기롭기를 원했다. 머지 않아 과학자는 마음의 냄새를 재는 기기를 만들것이다. 내 표정 속에, 피속에, 꿈속에, 무의식속에, 죽음속에 예수의 향기를 풍기길 바랍니다.

♠ 신앙과 미신
하나님의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 불신이라면 사실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는 것이 미신이다. 따라서 참 사실을 참 사실대로 믿는 것이 참 신앙이다.
인간을 신앙의 면에서 세 가지로 분류한다면 무신(無信), 미신(迷信), 진신(眞信)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말을 바꾸면 사실은 하나인데 안 믿거나 잘 못 믿거나 옳게 믿거나 셋 중 하나인 셈이다.
더 생각해 보면 못 믿거나 바로 믿는 양자 택일인 것 같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둘 중 하나이지 제 3의 입장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진리가 인간의 무지와 미지 속에 잘못 믿어져 왔던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까지 전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천동설을 믿었다. 불신자의 미지(未知)와 무지(無知) 속에서 예수가 못 믿어지고 있다. 사실을 안다면 안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 생명 로고스
태초에 말씀[예수(로고스 )]이 계시니라. 이 예수는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그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니(요1:1) 만물이 예수를 말미암고 예수를 위하여 창조 되었으며 예수 안에서 존립한다(골1:16-17)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모든 무릎이 그에게 굻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빌2:11)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에게 주고(마28:18) 그 안에서 통일되게 하신다(엡1:10)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 인생의 毒을 다스리는 믿음
어느 시골에 아름다운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갑자기 주위에 독초가 돋아 나기 시작하더니 물고기가 죽었고 가축들도 그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연못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보자고 말해 동네 사람들이 버드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자 버드나무가 자라면서 독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양분을 다 빼앗아 그 독초는 죽었고 곧 물이 맑아져 물고기가 살고 가축들도 다시 그 물을 마셨습니다. 때로는 인생에 독소가 돋아날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심겨지면 모든 독기가 사라집니다.(김선도칼럼)

♠ 1%의 영감이 없이는…
에디슨은 성고으이 비결을 묻자 {99%의 노력과 1%으 영감 덕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우수한 머리만 믿지 말고 땀흘려 노력하라는 권면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1%의 영감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그 영감이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 짓는데에 1%의 비중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그 1%가 채워지지 않으면 99%가 송두리째 무위로 돌아가야 함을 알아야 한다. 비율로는 1%에 지나지 않지만 그 중요성은 99%의 노력보다 오히려 더할지도 모른다. 1%의 영감.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고 역활이다. 하늘과의 통로를 열지 않으면 1%의 영감은 주어지지 않는다. 기도로, 뜨거운 기도로, 그 통로를 열자.

♠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 9절에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장소를 몰라서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부르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피해서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아담을 하나님이 찾아 내셨다. 찾기는 찾았는데 속이 병들고 찢겨 있고, 하나님의 형사이 죽어 있고 인격이 죽어 있고, 영혼이 죽어 있고, 마음과 정신이 병들어 있었다. 이것도 답답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하신다. 약속을 지켜야 할 네가 어디 있느냐? 인격적인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네 본래의 모습이 어디 있느냐? 양심적인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부르시고 계신다.

♠ 내가 문을 열자
예수님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성화 있는데 성화를 본 사람이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 물었다. 이 그림에 문이 있는데 이 문을 밖에서 열 수 있는 고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화가가 말하기를 "이 문은 밖에서 열 수 있는 고리가 없으므로 안에서 열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음의 문은 밖에서는 열 수가 없다. 안에서 부터 내가 열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지금 이 순간 내가 안으로 부터 마음 문을 열고 은혜와 축복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
설익고 건방진 공대 4학년생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대는 모는 것을 아는가?" 했더니 조금은 안다고 했다. "10퍼센트를 아는가?" 했더니 100만 분의 1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그대가 모르는 99퍼센트 속에 하나님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않는가?" 했더니 그 다음에는 존재하는지 않는지 그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그 모르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했더니 그것도 모르겠다고 했다."그럼 그 모르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했더니 그것도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전 공간과 시간, 그리고 모든 존재를 다 뒤져 볼 수 없다. 하나님을 철학 속에서, 비종교 속에서, 역사 속에서, 이 성과 양심 속에서, 실험관 속에서, 자연 속에서 찾아봐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면 하나님을 안다. 그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다.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내게 오신 분이다. 그 밖에 하나님을 알 길이 없다(요14:9)

♠선(先)믿음, 후(後)지식
선생이나 부모나 선배들이 일러 준 것을 처음에는 덮어 놓고 믿고 해 본 결과 실효를 알게 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길을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 물어서 가는데 일고 가는 것이 아니고 믿고 간다. 결혼도 믿음으로 하는 것이지 뿌리째 송두리째 어찌 사람을 다 알고 하는가. 약을 알고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음식도 믿고 먹지 어찌 다 일일이 실험해 보고 먹는가. 진실하고 존경할 만한 분들이 열심히 권해서 해보면 그대로 되는 일이 많다. 인삼 같은 것은 효과를 본 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증거 때문에 먹는다. 예수 믿는 것도 수천년 동안 너무도 존경스럽고 진실한 분들이 너무도 열심히 죽으면서까지, 그렇게 많은 분들이 권해서 믿어보면 과연 사실인 것을 후에 알 수 있다.

♠ 가나안 도착
가나안은 광야를 지나서 전쟁을 치르고 요단강을 건너야 도착하게 된다. 천국은 세상을 지나고 영적인 싸움(선한싸움)을 치르고 죽음의 강을 건너서 도착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출애굽 여정은 기독교인들의 신앙 생활의 여정과도 같다. 창조는 혼돈에서 질서를 말하며 출애굽의 여정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세상에서 천국으로, 죄에서 의로, 지옥에서 천국으로의 여정이다.

♠ 어리석은 자의 정의(正義)
"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14:1)" 성경의 가장 어리 석은 자는 하나님 없이 사는 자이다. 성경의 제 1악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신앙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케에르 케고르는 "악의 반대는 선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했다. 이와 반대로 성경이 가르치는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이다(잠1:7).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교육 만큼 인간에게 참 사는 지혜를 알게 해 주는 교육은 없다. 무신론적 지성은 빛나는 악덕이고 백야(白夜)처럼 어둡다.

♠ 헌신의 뜻
한 대학생이 목사에게 와서 예수님께 헌신한다는 뜻을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생각 끝에 백지 한 장을 가져오게 해서 그 대학생에게 내밀면서 "예수님전 백지 위임장"이라고 쓴 후 주소와 성명과 날짜를 쓰고 지장을 누르게 했다. 주님은 그 위임장에 무슨 말이나 쓸 수 있도록 위임하는 것이다.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부호 미망인의 외동 딸이 있었다. 귀국 때는 한아름 진귀한 선물을 사다 주었다. 이번에는 국제 전화가 왔다 "네 생일에 무슨 선물 사다 줄까?" "엄마, 선물은 싫어 다 그만둬" "그럼 무얼 원하니?" "엄마가 필요해 엄마 자신이" 헬라의 어느 왕이 궁의 보석, 토지, 건물, 의복 모두를 나누어주었다. 한 궁녀만은 원하는 것이 없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왕이 물었더니 "나는 임금님 자신을 원합니다"했다. 왕은 그녀를 왕비로 택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헌금 드리고 찬양을 드린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나 자신을 원하시고 나는 주님 자신을 원한다.

♠ 성령이 알게 하신 지식
아무리 완전한 지식도 인간의 지식에는 그림자가 있고 반대 이론이 50%는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가르쳐 준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이 내 죄와 죽음에서 나를 구속하셨다는 지식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의 부활이 내 부활이라는 사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고 그가 나를 죽도록 사랑하신다는 사실, 주님이 다시 오시고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은 천지가 없어지고 내가 열 번 죽어도 절대 확신하는 성령이 내 영에게 가르쳐 준 지식이다.

♠예수의 살과 피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를 믿어 그와 연합하여 그의 가지(요15장)가 되고 그의 신부가 되고 그가 성령으로 내 속에 대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리스천은 먹고사는 양식이 다르다. 세상 떡 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 떡, 생명수인 예수를 먹고산다. 예수가 문자 속에 성육신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성경이 성령으로 신자의 의식과 생활 속에 혈육화 될 때 예수는 내 속에 사시게 된다. ①음식은 생명의 최우선 필수 요소이다. ②음식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필요하다 ③음식은 날마다 필요한 것이다. ④음식의 질이 건강과 성장을 좌우한다.
성경 속의 예수를 주야로 묵상하며 거기에다 뿌리를 박고 그 속에 살며(요8:31) 내 의식을 예수 의식으로 바꾸며 그를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다.

♠ 필요한 기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일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죄를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기도해야 한다. 주의 복음이 전파 되는 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기도해야 한다. 갈바를 알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위해서 중요한 문제를 앞에 두고 바른 결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더 큰 믿음을 얻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에 고마움을 느낄 때 감사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 천국과 은혜의식
세상은 공작이 날개를 과시하듯 경쟁과 과시와 비교하는 데에 온갖 삶의 정력을 소모하고 있다. 미모, 가문, 소유, 권력, 예술, 웅변, 노래, 학력, 의복, 체력 등을 겨루어 1등하고 스타가 되고 인기를 얻기 위해 싸우고 죽이기까지 한다. 패자와 승자가 생기고, 등수와 우열이 생기고,빈부와 상하와 온갖 차등이 생긴다. 어린이 세계에도 있고, 실업인 세계 체육인, 예술인, 인기 직업인, 정치인, 학계, 심지어 종교계까지 라이벌은 없는 곳이 없고, 시기, 질투, 중상, 모략 없는 세계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천국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은혜로 성화 되었고 성령의 은사로 봉사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했고, 주시는 힘으로 순교했기 때문에 자랑하고 뽐낼 것이 하나도 없다. 자기 실력으로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은혜 의식은 겸손과 감사와 찬송과 영광만을 주님께 드리고 싶은 것이다. 거기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발붙일 곳이 없다.

♠ 반 예수 판결에 대한 사형
"일요일 오전 천하의 교회의 종소리를 듣는다, 저것은 모두 1900년 전 로마의 사형수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 니체의 말이다. 니체는 거짓말쟁이다. 예수 부활의 증인과 증거만큼 강력한 증언은 일찍이 역사상 없었다. 2000년전 예루살렘의 종교 법정{산헤드린}과 빌라도는 대표된 로마 제국의 정치 법정과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죽이라고 아우성치던 민중 세력은 합세해서 예수를 사형했다 니체 족은 살신(殺神)을 선언하고 사르트르 족은 예수를 살신보다 더 냉혹하게 묵살(默殺)했다. 분노한 민중은 K.K.K단이나 공산당 같은 테러리스트 바라바를 등장시키기 위해 예수를 말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예수를 부활시켰다. 예수 부활 사실은 인류의 총의(總意)로도 지울 수 없고, 천하가 없어져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 부활은 과거와 미래의 반 예수 판결 전수(全數)에 대한 사형인 동시에 예수의 권위에 대한 최종적인 확증인 것이다.

♠ 어리석은 부자의 4무(四無)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부지런하고 영리하며 출세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물질적 성공 외에 지위나 학문, 예술과 스포츠와 기술과 명성등 스타격인 인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행복했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네 가지 안 가진 것이 있다.
① 하나님이 그의 의식 속에 없었다. ②내세가 없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③ 영혼을 위한 대비가 없었다. 참 생명은 인간의 영인데 껍데기 가짜 생명만을 생각했다. ④ 이웃이 없었다. 내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내 영혼을 구하려는 노력과 내 이웃을 도우려는 노력도 하나이다. 그것이 내세를 위한 준비이다(눅12:20-21)

♠ 바로 말해라.
크리스마스의 상징처럼 눈에 띄는 풍경은 산타클로스와 징글벨 상가세일, 캠페인일 것이다. 거기에다 각종 파티와 교회가 벌이는 사랑과 구제 행사에 으레 신, 구교 대표들과 국가 대표들까지 인도와 박애의 굵직한 메시지가 성명서처럼 발표된다. 아무튼 예수의 성탄이 인류 역사의 A.D 와 B.C의 분수령인 만큼 인류의 성탄절이 된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 사단이 발명한 전술 가운데 독특한 것은 연막 전술이다. 예수님을 산타클로스화 시켰다. 예수님은 병자와 가난한자 눌리고 고통받는 자의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몽매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을 깨우치는 계몽과 개과천선시키는 산타클로스나 석가나, 해방자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복음의 부산물일 뿐이다. 말을 바로 해야 한다. 예수는 죄값으로 죽은 사람들을 구속해서 영생을 주러 오셨다(요3:16, 사53장) 그것이 성탄의 핵심 진리이고 복음이다. 자기 죽음으로 죽음을 죽여서 영생 얻게 하려 오신 것이 성탄의 참된 의미이다.

♠ 예수 안에 산다는 것
어린아이는 내 살 길은 엄마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배가 고파도 엄마 생각, 몸이 아파도 엄마 생각, 신기한 것을 봐도 엄마를 찾고 잘 때도 엄마 손을 붙잡고 엄마 품에서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듭니다. 크리스천과 주님의 관계도 사랑과 생명의 관계이며 인격적인 신비의 관계이며 영과 영의 관계이다 내주(內住)생활이란 양이 목자를 의존하고, 아기가 부모를 의존하듯, 나무가 태양과 공기와 대지에 뿌리를 박고, 의존해 살듯, 제자가 스승을 믿고, 노아가 방주에서 주만 의지하고, 출애굽의 이스라엘이 주만 믿고 살듯이 그렇게 사는 것이다. 95년도도 주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중, 고등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사랑함으로 배우는 사랑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를 아는 지식이 자라고 성도가 성화(聖化) 되기 위해서는 죄를 이기는 것과 성령 안에서 사랑의 생활이 익어야 한다. 대설교가이고 대 신학자일지라도 사랑이 성숙하지 못하고 사랑의 열매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며(고전13장) 신유의 은사가 있고 삼층 천을 갔다 왔을지라도 사랑이 떫은 감 같으면 껍데기 신자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을 얻는가? 사랑은 첫째로, 성령 충만의 열매이다. 고로 지속적인 성령 충만의 비결을 배우고, 둘째로, 사랑은 사랑함으로써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은 말함으로 배우고, 노래는 노래함으로 배우고, 일은 일함으로 배우듯이 사랑은 행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써만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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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 예수가 빛이다   

  

마태복음 4장 12∼23절

이사야서의 전체적인 배경은 ‘흑암’과 ‘어둠’입니다. 이사야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흑암과 어둠은 절망을 의미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절망하는 존재’로 규정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실존하는 인간,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절망합니다.

‘믿음 없음’이 곧 절망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절망합니다. 절망은 곧 죄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흑암과 어둠은 믿음 없이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사야가 이들에게 비쳐올 것이라고 예언한 빛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가장 먼저 “빛이 있으라”(창1:3)고 하셨습니다. 그 빛으로 어둠을 밝히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을 보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그 로고스(말씀)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빛이 비치는 곳마다 생명이 싹트게 하는 참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이 캄캄하고 공허하고 절망적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정치 지도자들이 미덥지 못하거나 범죄자들이 들끓어서인가요.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지 않아서인가요. 그런 것도 한몫하겠지만 근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에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밝기는 달라집니다. 흑암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빛이고 소망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고, 부름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여기서 ‘따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가르치셨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고 병들고 약한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께서 가는 곳마다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성난 군중이 됐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돌변한 이유는 십자가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것은 십자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 위에 뿌려졌습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잔인함은 흑암이라 말할 수 있으나 그들의 순교는 결코 흑암이 될 수 없습니다. 고난 속에 감춰진 십자가의 영광이며, 그 영광의 빛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강하게 비춥니다. 진정한 영성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순교한 이들의 삶 속에서 빛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빛을 발했던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주현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4:16)는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지어다.

김동진 목사 (맑은샘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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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28 : 10 - 22

제 목 : 2017년에 드릴 서원 기도

찬 양 : 552, 338, 368, 384, 539, 550.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은혜를 사모하여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우리들은 2017년의 한 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참으로 우리들을 우울하게 하는 일들이 많았던 한해였습니다. 2017년의 새해가 밝았지만 뭐 그리 시원하게 느껴질 만한 소식은 없고 오히려 우리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새해에도 경제가 회복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정치는 날이 갈수록 더욱 혼탁해 지고 있습니다.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금년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대기권 오염으로 인한 엘니뇨현상으로 인하여 금년에는 더 많은 기상 이변과 재난이 겹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기상 이변으로 인하여 남극과 북극의 빙산들이 녹아서 남태평양의 나라들은 바닷물의 해수면이 올라가 해마다 수만 명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잃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울한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재기의 몸부림을 치면서 새롭게 출발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역력히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한 국가경제와 날마다 올라가기만 하는 온갖 물가고, 그리고 농사는 점점 어려워져만 가는 농촌 문제들이 웬지 모르게 우리들의 신앙과 믿음까지도 위축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때일수록 우리들은 더욱 신앙과 믿음으로 무장을 하여서 어떤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굳건한 반석 위에 설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야곱이 부친 이삭을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챈 후 형 에서의 진노를 피하여 하란 땅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도중 루스 광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지시에 따라서 에서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눈이 어두운 부친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늦게 이 사실을 안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리브가는 재빨리 야곱을 불러서 외삼촌의 집으로 피신을 시킵니다. 그러나 외삼촌이 사는 하란 땅은 야곱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는 길입니다. 게다가 하란 땅은 하루 이틀에 갈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이와 같은 길을 가던 야곱은 루스 광야에서 하룻밤을 노숙(露宿)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밤은 참으로 춥고 외롭고 두려운 밤입니다. 돌을 베고 누워서 하늘을 보니 캄캄한 밤하늘에는 마치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 별빛만이 반짝이고 사방은 고요한데 이따금씩 먹이를 찾는 야행성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뜨리고 들려옵니다. 추위와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잠을 청해 보지만 쉽사리 잠이 오질 않습니다.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 납니다. 이 시간 쯤 모든 가족들은 따뜻한 잠자리에서 잠을 잘 텐데 왜 자신만이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지 후회도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형편이 이 야곱의 형편과 같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평안과 안식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데 자신만이 아무도 없는 쓸쓸한 광야에서 추위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2017년을, 아니 우리의 일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갈 길이 보이지 않고 막막하기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들이여!

루스 광야의 야곱을 찾아와 만나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을 찾아와 만나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추위에 떨던 몸이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할렐루야!!

자신이 누운 바로 앞에서 하늘 보좌까지 사닥다리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천군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꼭대기 하늘 보좌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서서 말씀을 하시는 모습도 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에게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본문 13-14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본문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즉시 일어나 베고 누웠던 돌을 세워 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전 이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야곱이 루스 광야에서 돌단을 쌓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 기도를 통하여 2017년의 한 해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서 금년 한해를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승리의 날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먼저 야곱의 형편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나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야곱은 지금까지 속이고 빼앗는 간교한 생활을 하여왔습니다. 

야곱이 아비 집을 떠나 하란으로 갈 때의 나이가 77세였습니다. 야곱은 그 나이가 되도록 항상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여 왔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나서 불과 1분 차이 때문에 장자가 되지 못하고 장자의 기업을 얻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하여 항상 불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기진맥진하여 돌아오는 형 에서를 속이고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장자권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부친 이삭이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형 에서를 불러서 맛있는 요리를 부탁하고 그 요리를 먹은 후에 축복하리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 리브가와 결탁을 하여 부친을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챈 것입니다. 참으로 간교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2) 야곱은 지금 쫓기고 있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아비의 마지막 축복까지 빼앗긴 것을 알고 그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지금 어쩔 수 없이 쫓기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야곱이 잠들려고 누워있는 루스 광야는 참으로 험한 광야입니다. 육식성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울부짖고 있으며 땅에는 전갈과 같은 독충들이 있습니다. 죽은 시체를 찾아 맴도는 독수리들도 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외로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렇게 밤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루스 광야에서 돌을 베고 누워서 떨고 있는 야곱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여러 가지의 걱정과 근심에 떨고 있습니다. 금년 한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날로 어려워 가는 농촌 사정과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는 물가고와 애써 농사를 지어도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만년 적자 농사를 지어야 하는 실정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진정한 우리의 위로가 되시고 소망이 되어 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피폐하고 병들어 버리고 외국 농산물들이 물밀 듯 들어와 경쟁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물가는 매년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데 쌀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농가도 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하여 경쟁력 있고 소망이 있는 농가만 지원을 해 주고 그렇지 못한 농가는 지원도 해 주지 않고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농촌의 인구는 지금보다 반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을 때에 진정으로 우리의 위로가 되시며 소망이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인줄로 믿습니다. 예수 안에 참 평화가 있고, 예수 안에 소망이 있고, 예수 안에 평안이 있고, 예수 안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2. 이와 같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고난당할 때에 내게 가장 가까이 찾아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멘>

 

6:50절 말씀에는 제자들이 배를 저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서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실 때에 제자들이 이를 보고 유령이라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시고 바람과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 40년의 세월 끝에 요단강 건너편까지 왔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가시고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5-6)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또 이사야 41:10절 말씀에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후에 3일 만에 부활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숨어 있는 골방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신,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오르지 하나님만이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의 참된 평안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이 예수 안에서 참된 평안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찬송가 412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 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3.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은 즉시 하나님께 돌단을 쌓고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은 즉시 일어나 베고 누웠던 돌을 세워 단을 쌓고 기름 한 병을 부어 드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야곱의 드린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1) 야곱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16-17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야곱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자기만이 홀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낙심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외로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광야에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야곱은 새 힘이 솟았습니다.

야곱과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졸지도 않으시며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21:3-6)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곱은 너무나 감사하여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고 누웠던 돌을 세우고 그 돌에 기름을 붓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8:16-19)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다 같이 찬송가 3384절을 부르겠습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2) 야곱은 서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드린 서원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야곱은 자신의 가는 길에서 지켜 주시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본문 20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본문 21절 말씀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하나님의 전을 세울 것을 서원 하였습니다.

본문 21-22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것을 약속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22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이와 같은 야곱의 기도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도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야곱 때에는 하나님의 성전은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그 누구도 십일조를 드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조부 되는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돌아와 노획한 물건 중에서 십일조를 구분하여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드렸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때에 십일조 드릴 것을 약속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17년이 시작되었습니다. 152주일 중에 오늘이 첫 주일입니다. 첫 주일을 맞이한 우리들은 야곱과 같이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믿음과 신앙의 잠재력이 있는 야곱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믿음 있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믿음을 통하여 역사를 일으키시며,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축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4. 그러면 오늘의 우리들은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마치 야곱과 같이 사람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고 배신하고 불순종하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쫓김을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광야와도 같이 거칠고 황량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주시고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2) 광야와 같은 험한 이 세상에서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인생, 그리고 지나간 2016년은 루스 광야에 영원히 묻어버리고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과 믿음이 바로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이 벧엘이 되어야 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하나님의 집에서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아 멘>

  

(3) 그리고 야곱과 같이 돌단을 쌓아야 합니다.

 

 

돌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단에 불을 내리셨고 제물 위에 불로 응답을 하셨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단 쌓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며 예배를 소홀히 하게 되면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7년도에는 우리 모두 다 같이 제단 쌓는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를 폐하는 어떤 이들의 악한 습관에 유혹되지 말고(10:25) 항상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는(12:11)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4) 야곱과 같이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우리가 감사를 드리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을 하기로 말하면 모든 만사가 불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은혜 안에서 지켜주신 것 모두가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무슨 서원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 “하나님의 전이 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2012년에는 우리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의 전이 되도록 힘쓰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생각과 악한 습관 때문에 더럽혀진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서 늘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게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도록 서원의 기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야곱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것을 하나님께 서원하여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또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어도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도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사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서원하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되 반드시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신다고 하셨습니다.

(3:11-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야곱은 이와 같이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서원 기도를 마치고 다시 길을 갑니다. 야곱은 이제는 자신이 생깁니다. 담대해 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 예배를 드린 후에는 담대하십시오. 그리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으십시오.

야곱은 그 후 하란 땅의 외삼촌 라반을 찾아서 그의 집에서 2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하나님은 항상 야곱과 동행하여 주셨고,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20년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큰 무리를 이끌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32:10)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2017년의 첫 날, 첫 주일을 맞이하여 이 시간 우리가 앞으로 1년 동안을 어떻게 살아갈 것과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을 하나님께 서원하고 약속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심과 같이 여러분을 축복하실 줄로 분명히 믿습니다.<아 멘>

모든 사람들이 금년에는 더욱 살기가 어려운 해가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상 18장에 보면 이스라엘 나라에 3년 반 동안 가뭄과 기근이 들었어도 물 두멍에 물이 마르지 않고, 밀가루 항아리에 밀가루가 가득히 차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를 공궤 하여 축복을 받은 사르밧의 과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하다면 무엇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환경과 여건이 좋은 때에 신앙생활 잘하는 것보다 모든 환경과 여건이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의 믿음이 더욱 값진 것입니다.

이제 2017년도를 맞이하여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야곱의 길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이 분명코 여러분의 앞날을 형통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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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과 기독교의 가르침의 차이점>

구분

이슬람(무슬림)

기독교(크리스챤)

1. 믿음의 대상

유일신 알라(Allah) - 절대 자존하며 인간과 그 어떤 언약도 맺지 않음,

기독교의 하나님과 완전히 다른 신

삼위일체 하나님(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2. 구원에 이르는 길

(1) 선행과 알라에 대한 충성도

(2) 성전(Jihad)를 통해 죽어야 함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

3. 경전의 성격

가브리엘의 계시를 무함마드가 

구술함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4. 경전의 지위

무함마드를 통해 단 23년 동안 

주어진 알라의 메시지

유일무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진리

5. 선지자의 자리매김

독점적 지위를 갖는 선지자(Prophet) 이면서 단순한

 메신져로서의 무함마드

구원의 유일한 길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6. 삼위일체에 대한 시각

알라, 예수, 마리암

(Maryam 혹은 Marium)

성부, 성자, 성령

6. 죄에 대하여

알라의 징벌을 피할 수 없는 요소. 회개의 개념은 단순한 실책에 대한 용서, 알라의 자비를 구하는데 초점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입음

7. 천국관의 차이

여자는 갈 수 없음. 선행이 무거울 때, 알라의 가르침에 성실했을 때, 성전(Jihad)를 통해 알라와 무함마드를 위해 죽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했을 때

8. 신 앞에서의 사람의 지위

종(Servant). 언제나 신의 자비를 

구해야 하는 종속적 존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림

9. 생활에서의 신앙

외식적이고 드러내는 경건생활

인격적 변화는 관심 사항 아님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중심이 됨

10. 남녀의 지위

여자는 남자에게 속하는 종속물이자 소유물. 성적인 유희의 대상임

동등한 영적 지위를 누림

11. 신으로부터의 

사랑의 성격

조건적 물질적 자애로움

(알라-주인, 인간-종)

무조건적 영적 사랑

(독생자의 보혈로 인간을 구원)

12. 축복에 대하여

조건부 축복, 알라의 일방적 권위에 불과함

축복의 언약을 지키시는 거룩한 영

13. 사람에 대한 섭리하심의 정의

종에 대한 주인의 심판과 권세, 인간에 대한 절대적 권위 강조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인내하시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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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기독교 비교

믿는 대상

기독교

이슬람

신은 하나의 신으로 통합되는 셋이다 . 이 한 명의 신은 소위 삼위일체라 불린다 .

삼위일체의 각 신들은 모두 동등하며 똑같이 영원하고 같은 존재다 .<o:p></o:p>

이러한 이유로 이 교리는 하나의 신비로써 설명된다 .

신은 오직 한 분이며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하며 기초적인 단어다 . 그 분은 자식이나 부모가 없으며 어느 것과도 동등하지 않으시다 . 이슬람에서 신은 알라 , 자비로우신 분 등  99 가지의 이름으로 불려진다 . 

예수

삼위일체의 두 번째 신으로 삼위 일체의 첫 번째 신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모든 면에서 완전한 신이다 .

신의 사도 중 한 명으로 매우 높이 평가된다 . 

성령

삼위일체의 세 번째 신으로 모든 면에서 완전한 신이다 . 

천사 가브리엘을 가리킨다 .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정결하고 신앙심 깊은 여인으로 모든 면에서 완전한 전지전능한 신인 예수를 낳았다 . 

정결하고 신앙심 깊은 여인으로 세상의 모든 여성 중에서 선택되어 신의 명으로 아버지 없는 의로운 선지자 예수를 낳았다 . 

말씀

신의 일부분이지만 또한 완전한 신으로 신의 아들인 예수가 되었다 .

신의 말씀  '있어라 '는 마리아가 남성의 개입 없이 예수를 낳게 한다 .

예수 이전의 예언자들

모두 존경하며 믿는다 .

모두 존경하며 믿는다 . 

성경

100% 모두 신의 오점 없는 말씀으로 여겨진다 . 

무슬림들은 모세에게 계시된 토라 , 다윗에게 계시된 자부르 , 예수에게 계시된 인질 ,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꾸란을 비롯하여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모든 성서의 존재를 믿는다 . 그러나 꾸란을 제외한 모든 성서들은 인간의 손으로 수정되었으며 성경은 오직 꾸란에 의해 확증되는 부분만 옳다고 믿는다 . 꾸란의 절과 확연히 상반되는 내용들은 인간의 손으로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

무함마드

다양한 믿음이 산재한다 . 어떤 이들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거짓 메시아라고 믿는다 .

전 인류에게 보내진 신의 마지막 사도다 . 그 분이 신의 첫 계시를 받기 전에는 진실되며 신뢰받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 그 분은 모든 생명체에 신의 자비로써 보내졌다 . 

꾸란

성경의 복사본이라는 믿음에서 무함마드가 쓴 책이라는 것까지 다양한 믿음이 산재한다 . 또 어떤 이는 무함마드와 공모한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작품으로 믿기도 한다 . 

신이 인류에게 계시하신 마지막 성서다 . 꾸란은 신으로부터 보호받아 인간의 개입으로 수정되지 않은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 꾸란의 문학적 위치는 어느곳에서도 그 비등함을 찾을 수 없다 . 오늘날까지 아랍어로 쓰인 어떤 위대한 작품이라 해도 꾸란에 견줄 수 없다 . 꾸란은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의 지도서로써 심판의 날까지 인간의 개입으로부터 안전히 보호될 것이다 . 

예수의 메시지

신에 의해 보내진 예수는 아담의 죄로부터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 . 그의 희생 없이는 전 인류가 아담의 죄로 파멸되는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 그의 십자가 죽음 이후 인류에게 남겨진 것은 선행 없는 믿음이다 .

예수는 신에 의해 유대인에게 보내진 한 명의 사도이며 모세의 순수한 참종교를 회복시키고 고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규범의 일부를 경감시켜 주고자 했다 . 예수는 유대인에게 믿음 뿐만 아니라 선행도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 

예수가 

죽은 자를 

살리고 장님과 나병환자를 치료한 것

모두 믿는다 . 예수는 이 기적들 모두를 행했다 . 신의 아들이며 또한 동시에 완벽한 신이며 신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

모두 믿는다 . 이 기적들은 신의 뜻으로 행해졌다 . 마치 모세나 노아 , 고대의 다른 예언자들이 신의 뜻에 의해 기적을 행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

십자가 죽음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넘겨졌다 . 유대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그의 몸에 상처를 내고 굴욕을 주며 십자가에 못박았다 . 예수는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었다 .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학대당하고 살해되지 않았다 . 단지 사람들에게 그런 것처럼 보이게 꾸며졌을 뿐이다 . 신은 예수를 그 분 가까이로 승천시켜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구제했다 .  

예수의재림

현재 예수는 세기말 무렵에 도래할 것이라 기대된다 . 

예수는 죽지 않고 신에 의해 승천했다 . 그는 심판의 날 직전 지구에 내려와 거짓 메시아를 없애고 평화와 정의를 설립할 것이다 . 예수는 돼지를 죽이고 십자가를 부수며 전 인류를 이슬람으로 초대할 것이다 . 

원죄

전 인류는 아담의 죄를 안고 태어난다 . 오직 신의 죄 없는 자손의 죽음만이 원죄를 제거할 수 있다 . 단 하루만을 살았던 사람이라도 깨끗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 오직 예수의 죽음에 대한 믿음과 세례만이 원죄의 운명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 . 

원죄 따위는 없다 . 인류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 인간이 불신하여 신의 자비를 거절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천국으로 가도록 운명지어졌다 . 인간의 죄가 하늘의 높은 곳을 전부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 해도 신은 쉽게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 . 신에게 있어 용서의 문제는 매우 간단한 것이다 . 신은 우리가 보고 듣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고 그 이상의 일들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 신은 피조물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기 좋아하며 가장 사소한 선행에도 커다란 보상을 주신다 . 신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을 갖고 선행을 해야 한다 . 

아담의 회개

아담의 죄는 너무나 큰 것으로 신은 단순하게 그 죄를 용서해주시지 않았다 . 아담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히려 죄없는 순수한 신인 예수의 피를 필요로 했다 . 

아담은 그의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회개했다 . 주여 저희가 저희 스스로를 욕되게 하였나이다 당신께서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지 아니 하시고 저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아니 한다면 저희는 잃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o:p></o:p>

신은 아담을 용서해주셨다 .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면 모두 임종 시까지 용서의 문이 열려있다 . 인간과 신 사이에는 어떤 중재자도 있을 수 없다 . 사람들이 신에게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마지막 시간이 오기 전에 악행을 멀리한다면 신은 그들을 용서하신다 .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만큼 신이 좋아하시는 것은 없다 .  

구원의길

물려받은 아담의 죄에 대한 예수의 보혈의 피를 믿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 . 오직 믿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

신을 믿고 그 분의 사도들을 믿고 그 분의 명에 순종한다면 신은 사람들이 행하는 조그마한 선행을 몇 배로 늘려주시며 악행을 지워 주신다 . 심판의 날까지 신의 자비는 사람들의 선행이 악행을 압도하도록 이끌어 주시며 천국과 기쁨으로 이르는 길을 열어 주신다 . 천국은 상상을 뛰어 넘는 훌륭한 곳으로 영원히 그 곳에서 거주하게 된다 . 천국에서는 더 이상의 선행은 필요 없고 오직 보상만이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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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에게 꾸란은성경 이상의 경전

  

이슬람에 대한 이해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의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그동안 여러 꾸란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이슬람의 몇 가지 교리를 설명한 바 있는데 꾸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필요한 경우

성경과 비교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

   

꾸란의 구성= 꾸란은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들을 모두 모아 놓은 것으로 총 114장이며, 각 장은 수라(sura)라고 불린다. 이 수라들은 길이에 따라 다소 길이가 긴 것의 순으로 분류되었다. 꾸란에서는 연대기적으로는 먼저 계시되었을지라도 길이가 짧은 수라들은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1장인 개경장은 길이가 짧지만 예외적으로 맨 처음에 위치하고 있다.

꾸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수라라고 하디스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개경장이 꾸란 전체를 요약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종종 암송한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온 우주의 주님이신 알라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그분은 자애로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도다.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오며 당신에게만 구원을 하나니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은 당신께서 축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지 않는 자나 방황하는 자들이 걷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이옵니다”(꾸란 개경장 1:1-7)

 

무엇이 계시되었는가= 꾸란은 4가지의 경전을 인정하고 있다. 모세를 통해 계시된 것으로 인정하는 토라’(구약의 모세5), 다윗을 통해 계시된 것으로 여기는 시편’, 그리고 예수를 통해 계시된 것으로서 토라를 확증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복음’, 마지막으로 무함마드에 의해 계시되었으며 이전의 경전들보다 그 권위가 크다고 믿는 꾸란이 그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무함마드는 이슬람의 뿌리를 성경에 두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라와 시편, 복음서를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꾸란에서는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에 대해 경전의 백성들이라고 일컫고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꾸란을 최후의 계시이자 최고 권위의 경전으로 명명했다.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성경은 꾸란의 등장을 위한 중간과정의 경전으로 격하돼 버렸다.

 

  또한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무슬림에게 있어 무함마드는 신이 아닌 예언자에 불과하다는 것과 예수도 무함마드 이전의 예언자 중의 한 명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예수의 신성이 무시되고 있는 대목이다.

 

 

어떻게 계시되었는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과 가르침을 기록한 책인 하디스에 의하면

꾸란은 무함마드가 40세가량이었던 610년경에,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계시된 것으로 수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하지만 꾸란은 성경에 비해 역사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성경의 계시는 1,000년 이상 동안 이루어진 것인 반면, 꾸란은 23년 간 계시된 것들이다. 따라서 꾸란의 예언 중에서는 계시의 기간 동안 성취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계시 받은 자들의 수도 다르다. 꾸란은 무함마드 한 사람에게 계시된 반면, 성경의 계시는 여러 사람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한 이유로 꾸란이 성경보다 문학적 통일성은 뛰어나다. 그러나 성경이 다수의 저자에 의해 쓰였음에도 내용이 일치한다는 점은 훨씬 더 강한 설득력을 주고 있다.

 

어떻게 전승되었는가= 꾸란은 아랍어로 계시되었고 그 뛰어난 문학성이 신적 특성을 나타내는 주된 증거로 제시되기 때문에 꾸란의 아랍어는 알라의 계시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따라서 꾸란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번역본들은 알라의 말씀이 아니라 거룩한 책에 대한 의역이나 주석으로 받아들여진다.

 

 꾸란은 무함마드가 온 인류를 위한 예언자이고 이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꾸란이 아랍어로 되어 있어야만 알라의 말씀이고,

아랍어를 하는 무슬림들만이 알라의 말씀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모순을 드러낸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꾸란의 계시는 본질적으로 알라의 뜻과 인간이 따를 길을 보여주는, 책으로 된 율법이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약하고 무지한 창조물이다. 그래서 신의 명령을 어겼을 때, 방황을 멈추게 하고 올바른 길로 돌려세워 줄 법이 필요하다.

 

 

꾸란의 교육은 무슬림들이 선행을 통해 심판의 날을 준비하도록 격려한다. 꾸란의 관점에서 계시의 마지막 목적은 사람들을 이슬람으로 이끌어서, 창조자에게 복종하고 그를 숭배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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