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

 

이슬람은 예수를 중요한 인물로 여기긴 하지만 그의 신성(神性)에 대해서는 철저히 부인한다.

꾸란의 여러 구절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여러 선지자 중에 한 명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특히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무슬림이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예수에 대해 왜곡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은, 그들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구절과 이에 대한 이슬람 학자들의 해석을 보면 알 수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 하나님께서 그를 오르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꾸란 4:157-158).

 

 

꾸란의 한글 번역판인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에서는 위의 구절과 관련, 기독교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예수의 죽음과 대속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해를 달고 있다.

 

 

먼저 서로 다른 세 가지 견해로, 첫째 예수가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견해,

둘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살해되었다는 견해,

셋째 예수의 인성은 십자가를 졌고 신성은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견해 등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고 설명하긴 한다.

 

 

하지만 예수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던 주요 3년을 제외하면 그의 생애는 물론 그가 탄생해서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또한 성장 이후 그의 사생활은 너무나 신비에 싸여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 관하여는 더욱 그렇다정통 기독교 학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생을 마쳤으며, 장사 지낸지 3일 후에 상처 입은 그대로 일어나 주위를 걷다가 그의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은 후 그의 몸이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학파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살해되었다고 믿지 않고 있다. ‘바실리단학파는 예수 대신 어떤 누가 십자가에 살해되었다고 믿고 있다. 한편 마르시오니트 복음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것까지 부정하고 단지 그가 인간의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성 바르나바(바나바) 복음서는 예수 대신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살해 당한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꾸란에서도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살해되지도 아니했으며 또한 유대인에 의해서 살해된 것도 아니라고 제시하고 있다. 예수는 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근거로 들고 있는 바실리단학파는 일반적으로 영지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바실리데스가 만든 이단종파로부터 비롯된 학파이며, 마르시오니트 복음 역시 영지주의 외경으로 알려진다.

 

 

또한 바나바 복음서는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한 배교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14세기 이탈리아의 위조문서로 알려진다(기독교대백과사전 제4, 1982). 이슬람이 이처럼 정통 기독교에서 배척당한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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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수난설주장하는 이슬람 학자들

 

일부 이슬람 학자는 대체수난설을 주장한다. 이슬람 학자 알-바이다위(Al-Baidawi),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몰려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그가 예수를 하늘로 들어 올릴 것을 말씀하셨고, 그러자 예수는 제자들 중에 하나가 자원하여 예수 대신에 죽음을 당하였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무슬림 해석가들은 예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대신 죽이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에, 예수를 대신해서 가룟 유다 또는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갔던 사람이 대신해서 죽임을 당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슬림 역사학자 이븐 카디르(Ibn Kathir)안식일 저녁에 12명 혹은 17명의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예수는 그의 수난에 대하여 알고 있었으며, 그 제자들 중 지원하는 자로서 예수와 유사한 이가 예수를 대신하기로 계획하였고, 예수를 잡으러 온 유대인들은 이 제자를 데리고 가 그가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데리고 간 시각이 안식일 저녁이라 유대인들은 그를 식별하지 못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교리적으로 무슬림들은 자기 자신의 죄를 누군가 대신해서 용서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이슬람의 속죄론은 기독교와는 달리 죄지은 자 자신이 회개와 참회를 통하여 알라에게 용서를 구하고, 유일신 알라에게 귀의함으로써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중간자가 그들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를 한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슬림들에게 있어 예수의 죽음은 구원론적으로 일어날 필요가 없었으며, 신론이나 기독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일어나지 말아야 했으며, 따라서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가브리엘 천사를 말한다?

 

꾸란에는 하나님, 예수, 성령이 모두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무슬림에게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으로 오히려 삼신론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꾸란은 신의 유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삼위일체론을 배격하고 있다. 이슬람의 설립당시 아라비아반도에 충만했던 다신교 사상을 철저히 배격했던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따라서 꾸란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부정하며, 하나님의 본령(本靈)으로서의 성령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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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이 아니다

 

예수는 꾸란에 나오는 예언자들 가운데 특출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여섯 명의 위대한 예언자 중의 한 명이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 그중 마지막 세 명의 공통점은 책으로 기록된 율법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예언자로, 그리고 사도로, 복음을 받았는데, 이는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을 확증하는 것이다. 신의 허락으로 예수는 기적을 행하여 자신의 사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마리아에게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주님의 영혼이었노라.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 너희에게 복이 되리라. 실로 하나님은 단 한분이시니 그분에게는 아들이 있을 수 없노라. 천지의 삼라만상이 그분의 것이니 보호자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니라.”(꾸란 4:171)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로서 선지자일 뿐 이는 이전에 지나간 선지자들과 같음이라”(꾸란 5:75)

 

 

이처럼 꾸란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단지 창조된 인간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신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간음에서 탄생한 아들이라 말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일러 가로되 성서의 백성들이여, 너희 종교의 사실 외에는 과장하지 말며, 이전에 과오를 범한 무리의 공허한 욕구에 따르지 말라. 이들은 많은 것을 방황케 하였고 또한 스스로가 옳은 길에서 벗어났노라”(꾸란 5:77)

 

 

가브리엘이 숨을 불어넣어 예수를 창조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권능을 주어 성령으로 그를 보호케 하였노라”(꾸란 2:87), “하나님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예증을 주어 그를 성령으로 강하게 하였노라”(꾸란 2:253),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내가 내린 나의 은총을 기억하라. 내가 너를 성령으로 보호하여 네가 요람에서 그리고 성숙하여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노라. 내가 너에게 말씀과 지혜를 그리고 구약과 신약을 가르쳤노라”(꾸란 5:110)

 

 

꾸란은 예수의 삶이 성령이 함께 하는 삶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슬림 주석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누구와도 신성을 나누지 않는 신의 유일성을 해하지 않기 위해, 성령을 가브리엘 천사로 해석하고 있다.

 

 

꾸란에는 예수를 하나님의 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꾸란 4:171)이라고 부르는 구절이 있는데, 이에 대해 꾸란 해석에 있어 널리 인정받는 주석가, 라지(Razi, 1209)의 해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지는 다섯 가지 해석을 제시한다.

 

 

첫째, 사람들은 보통 극도로 순결하고 깨끗한 것을 말할 때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예수는 아버지가 없고,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숨을 불어넣어 창조되었으므로, 그는 순결하고 따라서 인 것이다. 예수가 가브리엘로부터 왔다는 것은 예수를 그만큼 존경하는 것이다. 둘째,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의 도구였고, 때로 꾸란은 이를 으로 기술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의 대사였기 때문에, 그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다. 셋째,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비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의 영으로 지칭된다. 넷째, 아랍어 에 대한 단어 루(ruh)’(breath)에 대한 단어 리(rih)는 매우 유사하다. 예수는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숨을 불어넣어 창조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라고 불린다. 다섯 째, 예수에게 의 자격을 준 것은 그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는 진실로 고귀하고, 거룩하며, 뛰어난 영들 가운데 한 분이기 때문이다.

 

 

라지의 해석 중, 첫째와 넷째를 보면 하나님이 보낸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숨을 불어넣어 예수를 창조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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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러므로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니라.』  (고전 3:7)
        

필자의 사무실 창가에는 소사나무와 소나무 분재가 있다. 수년 동안 물을 주며 햇빛을 골고루 받도록 화분을 돌려가며 키우고 있다. 봄과 여름에는 소사나무의 새로운 싹이 하루가 다르게 계속 나오며 가지가 길게 뻗고 굵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매일 물을 주게 되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한 상태에서 물을 주다 보니 나무의 변화를 관찰하지 못해서인지 물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해마다 겨울이 지나면 마른 가지들이 생겨나서 건강한 가지들의 성장을 위해 그것들을 자르게 된다. 그러자 분재의 모양은 처음보다 균형이 깨지고 덜 아름다워졌지만 이것이 때로는 좋은 교훈을 준다. 이따금 창밖을 내려다보면 보기 좋은 가로수들이 한 눈 가득 들어온다. 또 조금 눈을 들면 뒷산의 나무들도 한껏 다가온다. 분재를 바라볼 때 가로수들과 산의 나무들을 비교하곤 하는데, 필자가 나름대로 열심히 키우는 분재보다는 매일 돌보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빛과 비를 받고 자라는 나무들이 더 균형 있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셔서 그렇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좋은 교훈이 된다. 즉 우리의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쓸 만한 재목으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그들을 부모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인간적 방법으로 육성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드려 그분의 방법대로 자라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실 때 주님이 보시기에 균형 있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를 맡아 기르는 청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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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람의 아들 예수 /칼릴 지브란 지음 | 박영만 옮김 

 

 

서점에는 예수님에 대한 책은 수없이 많이 나왔고 지금도 계속 나오고 또 앞으로도 계속나올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책은 읽어도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성경은 여러번읽었지만 예수님의 탄생, 3년반공생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들은 내 작은믿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서 항상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싶은 목마름이 있었다. <사람의 아들예수>저자 칼란지브란은 진실한 기독교 인이라는 것은 이책을 읽으면서 알게되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예수> 의 역자의 고백이 더 놀라웠다. 3편의 원고를 놓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때 생소한파일 하나를 컴퓨터 를 켤때 바탕화면 아래쪽에서 발견하게되었는데 < 진리에목마른 자에게 고함> 이란 제목의 내용이였다고 한다. 역자는하나님의 뜻인줄 깨닫고 주저없이 세편역중 제일 먼저 < 사람의 아들 예수>를 번역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참으로 놀랍다. 이천년전에 예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이였다. 또한 이책은 그동안 카돌릭 입장에서 번역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역자가 개신교적입장에서 새롭게 번역 하는 수고가 있어서 읽는자들이 진리되신 예수님을 좀더 깊고 넓게 느낄수있는 계기가 될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성경속 인물들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고 설교도 많이 들었지만 이책을 보면서 예수님을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 생각들을 재구성하여서 성경에서 읽을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날수 있었던 것이 이책이 주는 감동이였던 것같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서 변하게되는 과정은 바로 이 시대를 향한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세지란 생각을 하게된다.

   

이책을 읽으면서 저자의신앙이 문장 구석구석에 보석같이 묻혀 있음을 발견하게된다. 예수님을 표현한 문장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하면서 내가 지금 예수님곁에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향기가 저를 사랑의 잔치에 초대했고p109> <그분의 생명수는 여러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머물러 지금도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찾아 모든 곳에 스미고 있습니다p137>

 

이책은 인간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고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알게해준다. <그분은 우리를 찾아온 생명의 숨길로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실체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 p17

 

그러나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이 거의 같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책속에서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시대에 사람들과 동일하다는 생각이든다. 아무리 예수님을 전해도 마음에 문을 전혀열지않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이 나와 무슨상관이 있냐고 반문하고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보이는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 칼란지브란은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달라고 아름다운 시로서 예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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