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수탉의 물 먹는 모습

 

수탉이 물을 먹을 때 보면 그릇 속의 물을 주둥이로 물어 고개를 젖힌 뒤 삼킨다.

이런 닭의 물먹는 모습을 보던 한 인도주의자가

"저렇게 고개를 내렸다 올렸다 하려면 굉징히 힘들꺼야" 하면서 혀를 찼다.

그러자 옆에서 듣던 현실주의자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다 먹고 살자면 할 수 없죠.

목을 안 들면 그나마 한 방울이라도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습니까?"라고 했다.

이럴때 같이 있던 한 그리스도인이 "두 분 말씀이 맞군요. 하지만

저 수탉은 한 모금 물을 마실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감사는 생활 속에 삶은 더 풍성해진다.

 

 남편과 두 아들의 순교

 

19466월 공산주의자들은 일제하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 주영진 전도사를 잡아 갔다.

이때 주기철 목사님의 부인되시는 오정모 집사님은 다음과 같은 감사 기도를 드렸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을제물로 받으시더니 또 그 아들까지 받으시려 합니까.

한없는 영광을 주시니감사합니다.

어린 종에게 담대한 마음 주시사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것이었다.

참된 신앙인의 감사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잘 보여 준다

 

입으로 가는 화가

 

김준호씨는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에 진학하여 공부하다가 군에입대했다.

복무 19개월이되던 10월 어느날 부대에서 관물대 위에 올라가 물건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땅바닥에 떨어져 크게 다쳤다. 척추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추를 크게 다쳐 전신마비 환자가 된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신체장애를 탓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받은 바 은혜를 감사하며 생활한다.

첫째는 내가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기때문에 주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둘째는, 군대에서 다쳤기 때문에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셋째는 원호병원에 입원하는 중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것을 감사한다.

아내는 그때 병원의 실습생이었다.

넷째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구필화가 (입으로 그리는 화가)가 된 것이 감사하다.

그는 지금 인당이라는 화명으로 붓을 입에 물고 글씨나 그림을 그리고있다.

1981년도에는 세종문화회관 전시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감사하는 고통

 

일본의 하라사끼 목사의 부인이 43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폐암말기의 고통은 병으로 받는 고통 중에서 제일 괴로운 고통이다.

그 분은 자기의 생명이 며칠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준비를 했다.

일기를 썼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이루로라"라는 암호를 사용했는데,

의식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입으로 말을 못하니까 손에다가 "이루로라"라고 쓰고 죽었다고 한다.

그 분의 일기장에는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다는 말 뿐이었다.

어제보다 고통이 덜했던 것을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믿고 기뻐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했다.

아이들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을 감사했고, 더욱 신앙생활에 정진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행복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가난한 노인의 감사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명화 가운데 "은혜"라는 80이 넘은 듯한 백발의 노인이 성경책과 돋보기 안경,

그리고 한 덩어리 빵과 콩죽한 그릇을 앞에 놓고 손을 모아 정성스럽게 기도 드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 있다.

이와 비슷한 일본의명화 가운데 북해도의 한 과부와 서너명의 자녀들이 식탁에 앉아 기도하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이는 실제로 있었던 것들을 화폭에 옮긴 것입니다.

그기도는 가난하고 궁핍한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므로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임이분명할 것이다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

 

공항에서 한 아이가 불안해 하는 태도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비행기 탑승을기다리고 있던 한 여행자가 가지고 있던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어머니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 어머니는 또 한번 타일렀다.

그래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여행자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자 아이의 어머니는

"감사의 말을 배운다면 이 아이가 더 훌륭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라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우리에게 감사의 말을 강요하는 국법은 없으며 또한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의 단순한 삶은 더 풍성한 삶으로 인도될 것이다.

 

자연에 대한 감사

 

미국 태생의 유명한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감사하여 다음과 같은 노래를 썼다.

"우리 눈 앞에 피는 아름다운 꽃들과

향기롭고도 고운 연한 풀들과 새들의 노래와

별들의 역사와 그 밖의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주신 하늘 아버지께 우리는 감사를 그립니다.

맑은 시내와 푸른 하늘과 높은 가지들 밑에

놀기 좋은 그늘과 신선한 공기와 서늘한 바람과

아름다운 꽃피는 나무들을 주신 하늘 아버지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세계, 아름다운 구속자, 그리

고 그를 통하여 참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감사의 무게만을 심고 거두었다.

 

어느 교회에 한약방을 하는 장로가 있었다.

하지만 장로이면서도 주일예배만 마치면 낚시하러 가는데 정신을 쏟는 그런 사람이었다.

믿는 그의 부인이 낚시를 만류하여도 듣질 않았다.

어느 주일 오후 장로는 낚시터에서 큰 고기를 낚아 솟고, 그것을 들고 입이 벌어져라 웃으며

집에 온 장로는 튀김을 해 먹자고 했다. 부인이 그것을 받아들여 놓고 튀김기름을

불에 올려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잠자던 아기가 깨어나 문을 열고 기어 나오다가 그만 기름 그릇에

빠져 죽어 버렸다.

자기의 죄로 어린 아들을 잃은 장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변하더니

돈을 벌러 재료 값만 빼고는 모두 교회에 갖다 드렸다.

어떤 겨울 독감이 유행하던 때 장로댁에서 약 2첩만 지어 먹으면 감쪽같이 낫는다

는 소문을 듣고 한약방에는 손님이 끊일 사이가 없게 되었고 금새 돈 방석에 앉게 되었다.

감사하므로 하는 일에 하나님은 갚아 주신다.

 

 보호받는 작은 새

 

마르틴 루터는 어느날 저녁 작은 새 한마리가 나무가지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작은 새는 이미 저녁 먹이를 마치고 자려는 중인데 참으로 저의 잠자리는 안전하구나!

저는 내일 아침에 먹을 것에 대하여서도 걱정하는것이 없고 내일밤 잠자리에 대하여서도 아무 염려가 없구나!

저는 다윗처럼 전능하신 자의 보호 아래 그 몸을 맡기고 아무 염려없이 작은 가지에서 자는 것으로 만족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모욕하는 작은새가 아닌가"고 하였다는 것이다.

루터는 작은 새 한마리를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새를 보호하시듯 자녀들을 또한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고 한다.

   

조삼모사

 

중국의 철학적인 장자의 글에 조삼모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숭이들을 후련시키는 조련사가

원숭이들에게 밤은 주되 아침에 3, 저녁에 4개를 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원숭이들이 크게 화를 내고 불평을 하므로 조

련사가 다시 말하기를 그러면 아침에 4,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원숭이들이 만족하여 좋다고 하였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조련사로 생각하고 원숭이들을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인생의 어리석음을 잘 알 수 있다.

왜냐하면 3이든 4든 그 순서야 어떠하든지

감사할 일임에도 인간들은 원숭이처럼 화를 내고 불평불만을 터뜨리기때문이다.

일상생활의 아주 사소한 일들에서 감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서로 감사의 생활을 권면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가 생활의 일부분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슈바이처 박사의 고백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는 그의 불란서인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감사의 생애를 고백했다.

[자네가 이 편지의 회신을 또 받기전에 아마도 난 죽을 것 같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슬퍼하지 말게나.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축복받은 자로 생각하고 싶네. 불쌍한 사람들을 섬기는 사업에 60여년간을 헌신할 수 있었고

오늘 90세의 노구를 이끄는 이 순간까지 계속할 수 있음을 과거나 현재나 변함 없이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의 섭리이신 줄을 확신하고 나의 진심을 다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싶다네] 라고 하였단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를 끝마치는 최후의 그 순간까지도 평화로운 상태에서 자신을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한다.

우리도 지금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삶은 주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으로 더욱 풍성해 질 수 있다.

 

감사는 못할진대 이런 자만은 되지 말자

 

* 감사는 못할진대 이런 자만은 되지 말자 *

1. 두루 다니며 한담하며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20:19)

2. 횃불을 둘러 띤 자 (50:11)

3. 어정거리며 돌아다니는 자 (2:36)

4. 타락한 딸 (31:22)

5. 둘러싸고 괴롭히는 자 (7:2)

6.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민족 (10:3)

7. 게으르고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드는 자(딤전5:13)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범사에 감사

 

한국기독교계에 부흥사로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이성봉 목사는

다음과 같은 감사를 한 일이 있다.

"나는 나의 밑천을 영으로 치고 사니까

가난뱅이가 될 것 같으나 도리어 부자가 되었다.

놀라지 말라! 내 자본이 얼마인가 하면 12억환이다.

이 말은 실없고 허황한 말 같으나 가장 진실한 말이요 사실이다.

? 내가 쓰고 있는 이 몸을 물자를 드려서 기른다고 하면

독일 같은 과학이 발달된 나라에서도 2억환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 내 몸 하나만 하여도 2억환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 내 몸 하나만 하여도 2억환짜리가 되고

또 내가 19세되던 해에 2억환 짜리 아내를 한 사람 맞았으니

그것만 해도 벌써4억환이 되지 않았는가?

그다음으로 사랑하는 딸이 사형제니 12억환 재산가가 아닌가?

나는 집에들어 가면서 막대기를 휘둘러도 하나 거칠것 없지만 그러나 12억환 자본가이다.

그러다가 만일 또 하나님이 데려 가신대도 내게 손해볼것은 하나도없다.

? 밑져야 본전이니까 나는 이러한 인생관을 가지고살기 때문에 내생애는 항상 평안하다"

영국 트렌취 감독의 말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고 나면,

우리에게 중얼거리거나 원망할 시간이 어디있느냐고 한바 있듯

우리에게 주신 각양 은혜를 생각할 때는 모든 것이 다 감사조건 뿐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버리라. (살전 5:16:22)

 

감격스런 감사

 

이런 이야기가 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는 표현을 해야 한다.

어느 교회에 성도 하나가 자기의 독자 아들이 죽은 것을 감사하는데

"내 아들이 죄 안 짓고 깨끗하게 신앙 생활하다 주님 품에 갔으니 감사하고,

내 마음을 아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하고,

이제는 하늘나라를 향한 마음이 더욱 강렬해졌으니

감사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라고 하였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감사인가?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서만 생기는 것이다.

 

하늘의 두 천사

 

서양에 이런 전설이 있다.

어떤 날 하늘의 두 천사가 각각 바구니를 하나씩 가지고 세상에 내려왔다.

한 천사는 성도들 중에 자기의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를 걷우어 바구니에 담고

또 다른 한 천사는 찬송과 감사의 기도를 걷우어 바구니에 담기 위한 것이다.

그런 중 소원의 기도를 걷우는 천사의 바구니에는 세상을 다 돌지 못했는데

벌써 차고 넘치는 것이나 찬송과 감사의 기도는 세상을 다 돌아서도 바구니에 차지 못했다고 한다.

 

도심에 나온 농부의 식사

 

독실하게 예수를 믿는 농부 한 사람이 어느 날 큰 도시에 나왔다.

점심 때가 되어서 어느 큰 식당으로 들어갔더니,

건너편에는 한 떼의 젊은이들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얼마 후 농부의 식사가 나오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젊은이들은 이 영감을 곯려 주기로 마음 먹고 그 중 하나가 큰 소리로 불렀다.

"이봐요, 시골 양반, 당신네들이 사는 동네에서 누구나 그렇게 하는거요?"

이 말을 들은 시골 영감이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다.

"아니, 다 그러는 것은 아니야, 돼지들은 그렇지 않네."

 

휘발유가 없었기에

 

어떤 부인이 [차에 휘발유가 떨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인은 덧붙였다.

[차에 휘발유가 거의 떨어졌을 때 저는 투덜거렸죠.

왜 이 근방엔 주유소가 없을까하고 말이죠]

의아하게 생각한 주위 사람들이 [그런데 어떻게 감사한일이 생겼죠?]라고 물었고

이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젯밤 우리는 차를 도둑맞았었요.

런데 휘발유가 바닥나 있었기에 이 도둑은 30M쯤 끌고 가다 차를 그냥 두고 가버렸지요.

만일 휘발유가 많았어봐요. 차를 어떻게 찾았었겠어요]

우리에게 건강이나 행복, 평안이나 인간교제가 바닥날 때가 있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자.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

 

 항상 감사

 

스펄젼은 40세 이후부터 관절염의 일종인 통풍 때문에 몹시 시달린 사람이다.

지금까지 아스피린이나 혹은 마취제가 발달해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 통증을 고스란히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통풍 때문에 기동을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데

믿음좋은 그의 교회 신자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이렇게물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 통풍으로 몹시 아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이에 스펄젼이 대답하기를 ", 감사하려고무척 애를 씁니다.

이 병이 나은 후에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감사하고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신자는 조용하지만 그러나 무게있는 말로 이렇게 스펄젼 목사에게 충고했습니다.

"목사님, 지금 몸이 아플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있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그 아픈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그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 말에 스펄젼은 참으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신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료원 : 생명의 삶

 

은총받은 생활(감사가 없는자의 생활)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어본 것이다.

처음 예수는 한 주정꾼을 만난다.

그는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다.

예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일으켜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오."

그다음 예수는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받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는 여자에게 말한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 갔오?"

창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으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했오."

그 후 예수는 한 불량자가 정신없이 이웃과 매질을 하고 있는 장면에 부딪힌다.

예수는 그에게 묻는다.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오?" 불량자는 예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구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오?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 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단편은 은총을 은총으로 살려, 빛을 내지 못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창녀에게서 구원되거나 소경이 눈을 뜨는 이상의 큰 은혜를 우리는 입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모른다. 감사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이 되는 새로운 생활로 자기를 전환시킬 때

비로소 살 아나는 것이다. 자료원 : 생명의 삶

 

최후의 한 마디

 

어떠한 환경과 악조건 아래서도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한 감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의 상황이 닥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써

인생의 한 단락을 아름답게 매듭 지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독일의 한 중년 기독교인이 대학병원의 수술실에서 혀()의 암 때문에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마취 주사를 손에 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지막으로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글로 쓸 수는 있겠지만 혀를 사용하는 언어는 이것이 최후이기 때문이었다.

간호원, 조수, 견습의사들을 비롯하여 둘러 선 모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심각했다.

잠시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흘렀다. 저마다 만일 내가 이 환자라면, 만일나에게

한 마디 언어 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누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 생각했다.

드디어 두 줄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환자의 입이 움직였다.

그는 같은 말을 세 번 되풀이 함으로써 최후의 한 마디를 남겼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자료원 : 생명의 삶

 

 

 감사하는 마음(감사)

 

영국 트렌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 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꼭 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되지 않는 것이다 (17:11-19)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이다. (14:1-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나를 믿지 않겠느냐] (14:11).

 

감사의 조건

 

식인종들의 세계로 몸을 던진 어느 선교사는 자신의 몸을 주를 위하여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기도와 훈련 끝에 타오르는 선교의 꿈을 안고 식인종들이 우글거리는 남아프리카로 향한다.

남아프리카에 도착한 선교사 부부의 각오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루는 그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식인종들이 그들을 잡아먹고자 모여서 이들의 집에 쳐들어 온 것이 아닌가!

이 때 이 선교사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것이니

내가 직접 나의 살을 잘라서 주자는 마음으로 그들의 추장에게 갈을 달라하여 자신의 왼쪽 허벅지를 잘라서 주었다.

이 때 그들이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누구이길래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느냐는 의아심을 갖고 자신들끼리 의논을

하다가 과연 남다른데가 있구나 하고 추장부터 와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더라는 것이었다. ...

다행이도 선교사가 잘라준 다리는 고무다리였다는 것을 모르는 그들을 선교사는 구원 시켰고

또한 하나님께서 감사하기를 교통사고로 인하여 죽기까지 결심한 나를 이렇게 살리고

고무다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눈물을.....

 

에디슨의 감사

 

미국 오하이오주 밀런 (Miilan)이 낳은 에디슨(Edison, Thomas Alva)은무선전신기,

활동사진기, 축음기, 백열전구 외에도 수많은 기계를발명하여인류 세계에 크게 공헌한 대발명가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발명하기전 그의 젊은 날에 귀머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불행에 처하여서 조금도 낙심치 않고 분발분투했다.

그리하여 그는 인류문화에 크게 공헌한 위대한 과학자가 된 것이다.

아니, 그는 도리어 불행을 불행으로 생각지 않고 그 불행을 유익되게 이용했다.

그리고 그는 그 불행을 도리어 감사했다. "참으로 내가 귀머거리가됨을 감사하는 것은 연구에 몰두할 때

잡음이 들리지 않아서 많은 도움이된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모든 것을 감사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감사치 않을 것이 없는 것이며,

그런 사람에게는 또한 모든 것이 감사할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5:18- )

 

감사의 조건

 

랍비 한 사람이 나귀등에 닭 한마리와 천막 그리고 등불을 싣고 길을가고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려면 한참은 더 가야 할텐데 이미 날이어두워 길가에서 유숙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민가는 한참 떨어진 것 같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커다란나무 밑에 천막을 치고서 자리를 잡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성경을 읽고자 등불을 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바람이 불어와 등잔불을 꺼버리고 말았다.

그는 성경을 덮고 기도를 하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천막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에 눈이 부셔잠을 깬 랍비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날마다 꼬끼오 소리로 나를 깨워 주던 닭이 어찌 오늘은?'

정신을차리고 밖으로 나간 랍비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나무에 묶어 두었던닭과 나귀는 맹수에 찢겨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여행중이라 지치고 피곤한 자신에게 왜 이런 변고가 생겼는지, 은근히 하나님이 원망스럽기까지했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 생각하니이젠 화가 났다.

그때 그는 한 가지 사실을깨달았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닭과 나귀가 참혹하게 찢겨 주는 그때에 자신은 곤히 잠을 잤으며,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다.

그는 털썩 주저 앉았다.

"내가 살아 있구나 내가 살아 있어 하나님은 내게서 닭과 나귀를 앗아간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 살겨주신 것이었구나!

하마터면 난 감사해야할 하나님께 원망을 늘어놓고 불평을 할 뻔했구나. 난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게야. 노아처럼."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손양원 목사의 감사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 (1:21)

여수 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나서 손양원 목사님의 아들형제가 공산당원에게 학살을 당했다.

그래서 두아들의 장례식을 하게 되었다. 물론 여러사람들이 목사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했다.

러나 그때 손목사님은 장례식에 나와서 여덟가지로 감사를 했다.

한 집안에 순교자 하나만 나도 감사한 일인데 둘이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구약에 보면 맏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는데 나는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고 어린 것들의 피가 앞으로 교회의 종자가 되게 되었으니..

등으로 감사했다 감사는 믿음의 척도이다

 

 범사에 감사함(감사)

 

장사를 한 여자 성도가 목사를 찾아와 가계가 안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것보다도 더 힘든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장사가 안 되도록 하는가 하며 비웃는 것이라고 했다.

그 여성도는 십일조나 헌금 등을 빠짐없이 했고 주일성수도 착실히 한다고 했다.

목사는 그녀를 앞에 두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장사가 안되고 사람들이 비웃으니 감사합니다."

여성도는 의아한 듯 목사를 보더니 혹시 기도를 잘못한 것 아닌가로 물었다.

그러자 목사는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니 돌아가서 감사기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던 그녀가 몇 일 후에 얼음판에서 미끄러졌다며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나타났다.

그때도 목사는 "주님, 팔이 부러졌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했고

그녀는 목사에게 이제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것이 저주의 기도라서 팔 부러진 것을 감사하면 다음 번에는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시무룩해져서 돌아갔다. 얼마 있다가 지난번 보다 훨씬 나빠진 얼굴로 와서는 가게를 팔았다고 했다.

이번에도 목사는 감사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때 가게를 치우고 업종을 바꿔 다른 장사를 시작했던

그녀가 하루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목사를 찾아왔는데 그녀의 얘기인 즉 장사가 더 잘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전에 자신이 하던 그 점포자리가 도시계획에 걸려 헐리게 되었다고 했다.

정부에서 보상금을 주지만 점포 값에 비하면 형편없을 것이었지만

그녀는 일찍 점포를 팔았기에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 예기를 하고 그제사 그녀는 감사의 기도를 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했노라고 했다.

 

. 인생에 대해 감사하는 것(인생)

 

죽음에 진지하게 직면하는 것은 당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수 년간 매우 비만했던 고등학교 선생님을 기억한다.

그는 심한 심장마비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후 그는 생활 양식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먹는 습관도 바꾸었다. 그래서 과도한 체중을 줄였다. 그는 새 사람처럼 보였고 그렇게 행동했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당신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다.

당신 이 죽음의 심각성과 그 결말을 깨닫는다면 매일 당신이 마지막 살듯이 살아갈 것이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길 원한다면

우선 죽음에 대해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감옥의 차이

 

감옥과 수도원의 생활은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단지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랍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환경은 비슷합니다만 감 옥에서는 대개 불평만이 가득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하루가 지나간답 니다.

사랑과 함께 감사하는 생활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최대 덕목입니다.

 

감사의 태도

 

멕시코의 일부 지역에서는 온천과 냉천이 나란히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현상 때문에 그 지역의 아낙네들은 빨래를 냇가로 가지고 와서 온천에다

옷을 삶은 다음 냉천에다 헹구곤 한다. 이 광경을 자세히 지켜보던 어느 관광객이 멕시코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어머니인 자연은 매우 관대해서 냉천과 온천을 자유롭게 사용할 정도로 많은 물을 공급해주고 있군요"

멕시코 친구가 대답했다.

그렇지도 않다네. 비누가 없다고 사람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감사하는 마음

 

어느 여름날의 한 낮이었다.

두 사람의 행인이 나무 한 그루없어 잠시 쉬어갈 그늘이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금방이라도 더위에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걷고 있는데

마침 가지가 무성한 커다란 나무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 나무아래는 과연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그 나무 그늘로 달려 들어갔다.

숨이 막힐 것 같던 가슴이 열리고 이마의 땀방울이 식어가자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 여보게 나무란 원래 대부분 어디엔가 쓸모가 있는 법인데 여기 이 오리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네 정말이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진 게 이 나무라더군"

그러자 한 사람이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절말 그렇군,정말 쓸모 없는 나무야 "

이 두 행인은 그 오리나무 때문에 금새 쓰러질 듯한 무더위를 시원하게 피했건만

그 은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핍박중에도 감사

 

공산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어떤 목사님이 끌려갔다.

공산당원들이 고문을 하면 할수록 이 목사님은 감사합니다만 연발하는 것이었다.

화가난 두목은 무엇이 감사하냐고 묻자 "예수 이름으로 매를 맞고 핍박을 받으면

하늘에 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감사하다."고 대답을 하자, 감옥에 가두도록 했다

목사님은 더욱 기뻐했다. 조용한 골방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니 더 감사할 뿐이라 했다.

두목은 죽이라고명령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예수를 믿다가 순교한

것은 더욱 큰 영광요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니 더욱 감사하다고 했다.

이 때 그들은 때리지도, 옥에 가두지도, 죽이지도못하고 결국 돌려 보냈다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는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는 감사하는 생활이 중요하다.

 

진정한 감사

 

진정한 감사는 댓가를 기대하며 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감사가 참 감사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해 무우를 심었더니 어찌나 잘되었는지 거의 사람 몸만한 무우를 뽑게 되었다.

농부는 그 고을을 잘 다스려 주고 있는 원

님의 선정 탓이라 생각하고 그 무우를 원님께 가져다 바쳤다

원님은 이 농부의 고마워하는 생각을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하다고 하속을 불러 물어보니

최근 큰 황소 한 마리가 들어온 것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원님은 이 황소를 농부에게 주었다.

이 소문이 온 동리에 퍼지자 이를 배아파 하는 악한 농부가 무우를 바치고 황소를 얻었으니

황소를 바치면 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원님께 황소를 바쳤다.

원님은 고맙다고 하면서 관가에 들어온 것중에 귀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다 주라 했는데

이는 지난번에 들어 온 무우였다.

 

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징계에 대한 감사, 성숙)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는 몸의 크기로만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어른의 행세를 할 때 사람들은 곧잘 "저게언제나 철이 들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성숙한 인격 - 한 마디로설명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옛날, 홀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열심히 키우고 가르쳤습니다.

잘못이 드러나면 언제나 종아리를 걷어 회초리로때리며 가르치고 키웠습니다.

장성하여 과거를 치루고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은 아버지가 되었는데도,

어머니는 자식이 잘못하면 종아리를 걷게 하고 회초리를 드시는 것입니다.

종아리를 맞고 있던 아들이 어깨를 들먹거리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민망해진어머니가 "매가 아파서 우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울고 있던 아들이 "그전처럼 매가 아프지를 않습니다.

어머니 기력이 쇠해지셨는데 앞으로 제가 잘못할 때 어머니 안계시면 누가 이렇게 가르쳐 주겠습니까?

그게 서러워 웁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어린이가 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인격, 특히 징계를 받으면서 감사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어른이지요.

"내 아들아 여호와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3:11 - 12)

 

 잊지말아야 할 감사

 

인류 조상인 처음 사람 아담은 빵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했는지 모른다.

먼저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 그것이 잘 자라게 가꾸어서 거두어 들인 후 갈아서 가루로

빻은 후 반죽을 해서 다시 굽는 등 보통 15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빵집에 가서 돈만 내면 먹고 싶은 여러 종류의 빵을 사 먹을 수 있다.

이렇게 15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도록 되어진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맨처음 단 한 사람의 인간은 자기가 걸칠 옷을 만들기 위하여 대단히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양을 키워 붙잡아서 털을 깍고, 짜서 꿰매는 등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양복점에 가서 돈만 내면 마음에 드는 양복을 살 수 있다. 혼자서 해야 할 일을 힘들여

많은 사람이 대신 하므로 옷을 입을 수 있음을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빵속에서 나온 은화

 

독일에 대기근이 있었을 때 한 부자가 가난한 아이들을 모으고 빵을 나누어 주었다.

"이 자루 속에는 너희들이 하나씩 가져갈 빵이 들어 있으니 꼭 한개씩만 가져가고

내일 또 오면 빵을 주마." 아이들은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자루에 달려들어 서로

큰 빵을 골라들고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갔다.

그레첸이란 소녀는 가만히 서 있다가 마지막 남은 제일 작은 빵을 집어들고

"할아버지 감사합니다."하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도 어제와 같이 아이들은 빵을 집어들고 집으로 가기 바빴다.

그레첸은 맨 나중에 남은 제일 작은 빵을 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나누어 먹으려고 빵을 쪼개보니 그속에 50센트 은화가 6개 들어 있었다.

그레첸이 노인에게 빵속에 들어 있던 은화를 가지고 갔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하 는 것이었다.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사람에게 상으로 준다."

 

더욱 많은 것으로 감사하면

 

스펄젼 목사는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말했다.

소경 웰리암 문은 자기와 같은 소경들을 위하여

점자를 발명하고 오백여 방언을 이용하여

수백만의 소경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는 소경이 되어 갖게 된 재능에 대해 당신께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금 그 재능을 투자하게 하사 주님께서 오실 때에

소유물의 높은 이자까지 붙여서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감사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다.

노 트를 한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 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 부터 적어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났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 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사 라졌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나 자신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된 손길을 맞잡기

위해 서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

 

남아메리카 주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읍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 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갔읍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이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읍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읍니다.""왜요?""찬물과 더운물울 마음대로 거저 쓸 수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에요.""왜요?""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그건 무엇입니까?""비누가 나오지 않으니까 불평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

 

같은 11.01초의 기록이건만 한 선수는 금메달을, 다른 한 선수는 은메달을 받게 되었다.

지난 오사카 세계육상경기대회 여자 100미터 결승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 길이 없어서 사진 판독까지 가는 접전 끝에 내려진 결과다.

기록은 불과 0.003초 차이! 눈을 깜빡하는 시간이 대략 0.02초라는데 이보다 6배나

짧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1000분의 3초 차이로 금메달과 은메달을 갈랐으니

선수들이 느낀 행운 또는 억울함을 어디 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비단 이번 경기의 결과뿐이겠는가.

우리가 치르는 입학시험의 합격여부나 입사시험의 당락처럼 우리네 인생은 참으로 우연 같은 시간차나

점수차로 삶과 죽음, 합격과 낙방, 금메달과 은메달 사이를 오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행운 또는 불행, 운수의 좋고 나쁨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인도하시는 창조주의 사랑의 손길로 믿고 좋은 일이든

혹은 나쁜 일이든 오직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여운학 (이슬비성경암송학교 교장)

 

.감사할 줄 아는 삶

 

불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불평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감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맑은 물이 나오는 것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빛

내 사랑하는 가족, 풍요로운 음식들...

이런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이란 얼마나 황량한요.

<가을이 되고 추석이 되어도 배고픈 사람아

너무 서러워 할 것은 없다.

저 추석 달만은 그대들 머리 위에서도

창창히 빛나고 있지 않는가> (이어령/차 한잔의 사색 )

 

감사해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감사 꺼리만 생기고

불평만을 일삼는 투덜이에게는 불평거리만 생깁니다.

감사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유가리스티아>라고 하는데 명사적 의미로 는

<좋은 은혜,행복한 은혜>라고 하며, 동사로는 <숙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행복스러운 은혜를 잘 숙고하여 그 깊이를 깨닫는 일> 이 감사라는 일 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괴테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감사하는 마음은 곧 시들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수시로 변하며,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에야 나타나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환경과 조건에 제약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감사할 이유를 갖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곳곳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의 결핍

 

일곱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에 놀러간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이웃집 부인은 이 아이에게 사과를 하나 주었는데 아이는 '고맙습니다'는 인사도 없이 얼른 받았습니다.

얘야아이의 어머니가 무섭게 불렀습니다.“다른 분이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 되지?”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껍질을 벗겨주세요라고 말하더랍니다.

타인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서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일곱 살 난 이 아이뿐이 아닙니다.

이 아이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타인이 베풀어준 친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침묵한 채

더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기만을 바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 않을 때는 원망하고 돌아섭니다.

사과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면 사과를 준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감사하지 않습니다.

많은 십대들이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가정 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타인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몇 번이나 깨워야 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학교에 등교할 때까지 끊임없이 부모님께 요구하고 더 많은 것을 챙겨주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타인이 자신을 위해 베푸는 친절에 대해서 '그까짓 것 가지고' 이렇게 말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이 매일 같이 베풀어주시는 작은 일에 대해서도

진정 감사할 줄 아는 자세가 우리들에겐 꼭 필요 합니다.

 

 주님의 함께하시겠다는 약속

 

어느 심장병 환자의 고백

수술 받기 전 날 간호사가 나를 찾아왔다. 간호사는 상냥하게 나의 손을 잡고서

나에게 자기손을 꽉 잡아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내일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당신의 몸에서 심장이 분리되고

오직 기계의 도움에 의하여 생명이 유지될 것입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심장은 새롭게 연결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합니다.

그 다음 당신은 회복실로 옮겨질 것이고 그곳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의식은 깨어납니다.

의식이 깨어난 후에도 여섯시간 동안은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볼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나는 당신 곁에서 지금과 같이 손을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모든 위험을 일일히 점검하고 기록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완벽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음날 내 운명이 결정되는 수술이 진행되었고 이어서 담당 간호사가 말한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그때 나는 내 손을 붙들고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간호사의 손길을 확인하면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安堵感)과 위로(慰勞)를 얻었고 아울러 삶에 대한 확신을 지닐 수 있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순간에 그녀가 내 손을 붙들고 내 모든 문제 하나하나

처치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와 함께하는 그 순간이 내게 얼마나 가치있고 포근한 것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고 고백했다.

예수님이 이땅을 떠나실때 우리에게 약속하시바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원문에 의하면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그뜻은 [우리 옆에 와 계시는 분]이라고 한다.

아울러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약속하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와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고 바로 내 곁에 오셔서

내 손을 꼬옥 붙잡고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다윗은 그와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남다른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렵고 힘든 역경(逆境)중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와 삶의 용기를 받았던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외면(外面)하고 살때에 우리는 절망하고 불안해 하며 사는 것이다.

 

작은 일과 큰 일

 

우리는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비록 고난과 시련 중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는 하나님의 섭리의 흐름을 따르는 지혜로운 처사이다.

신앙의 안목으로 볼 때 징계도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이며 시험도 더 좋은 상급 을 위한 예비 단계이다.

감사하는 마음에 비례하여 삶의 영역은 비옥해지 며 큰 문제도 작게 되고 작은 봉사도 크게 흠향된다.

모든 문제는 신앙 안 에서 해답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 문제의 정답이다.

무슨 문제든지 해답을 모르면 크게 보이고 해답을 알면 작게 보인다.

신앙은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한 어린이가 집안에서 물 그릇을 나르다가 마루에서 넘어졌다.

온 마루는 물로 흥건하였다. 남편된 사람은 버럭 화를 내면서 큰 일을 저질렀다고 소리 쳤다.

그때 믿는 아내가 오늘 마침 마루를 닦으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며칠 동안 닦지 않은 마루를 지금 닦으라는 것이에요하였다.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구척 장군 골리앗을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났다.

백성들은 겁을 먹고 때려 눕히기에는 너무 크다고 하자 다윗은내 물맷돌이 빗나가기는 너무 크다했다.

같은 문제를 보고도 크게 보는 시각과 작게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

홍해 강변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다 죽겠다고 아우성이었지만 믿음의 사람 모세는 잠잠히

우리가 여호와의 큰 구원을 보리라 하였다(14:13).

 

 올챙이의 교훈

 

3학년이 된 둘째가 자연 시간에 올챙이 알을 구해서 개구리가 되는 과 정을 관찰해야 한다고

해서 교사인 친구가 봄나들이를 갔다가 알을 구해 보내주었다.

실내에 두고 4-7일 사이에 투명한 막 속의 점에 불과 하던 알이 꼼지락거리더니

작은 꼬리가 나고 둘러싸인 막을 먹이로 해서 힘을 얻어 헤엄을 치는 아기 올챙이가 되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관찰 일기를 써야 하는 둘째뿐 아니라 온 가족이 시간나는 대로 들여다보며 어린 날,

시골에서는 흔히 보았던 올챙이를 보석을 보듯이 신기해하며 자연의 향취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점점 커가면서 먹이 를 뭘 주어야 할지 잘 몰라 밥알을 조금 주었더니

더워오는 날씨 탓에 금새 물이 썩어 올챙이가 죽어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몇 마리는 살아 남았기에 온도를 적당히 맞춘 맑은 물을 준비해두고 옮겨주려 하자

나의 의도를 모르는 올챙이가 얼마나 도망을 다니는지 쉽게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환경이 나를 좀먹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죽음에 이를 것을 아시고 물갈 이를 하여

나를 살리시려는, 시련 뒤에 숨겨진 그 큰 은혜를 볼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숨고, 반항하고,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시라고 내 뜻대로의 기도를 드리며

주께서 펴신 도움의 손길을 더디게 하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 가를 돌아 보게 되었다.

내가 미물인 올챙이를 위해서 쏟는 관심이나 정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는 그 인자하심을 가슴 가득히 담아 충만함 중에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한부 인생으로

 

안양 어떤 교회에 용모가 아름다운 한 처녀의 신앙 간증입니다.

그녀 는 소풍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같은 반 친구가 갑자기 길에 쓰러지 게 되자

그 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다가 그만 그 자신도 얼굴에 핏기 가 가시면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내렸는데 그는 선천적으로 심장의 고동이 점점 약화되어서

죽게되는 보기드문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와 있던 스칸디나비아의 의사팀은 그 학생의 병을 보고서 심장을 계속 뛰게 하는

조절기능 장치를 심장에 부착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위험한 수술을 받아 본 경험이 없어서 의사들은 책을 펴 놓고 연구하면서

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들은 너는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3년마다 수술을 하고 기계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오기를 33살인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그 가정의 재산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머지않아 또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모두 내어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일순간에 고동장치가 멎어서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생명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기 때문에

그 마음에 주님이 살아계시니 그저 기쁘고 감사한 것뿐이라고 한 눈물어린 고백을 읽게 될 때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장난 심장에 전기장치를 달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교회학교에서 어린 생명들을 위해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그분의 마음에 참된 천국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즈노의 하나님

 

일본에 미즈노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즈노씨는 세상에서 참 혹한 불구자인 것입니다.

전신이 해삼처럼 퍼져서 수족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며 물론

글도 쓸 수 없습니 다. 그가 의사를 발표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은 눈을 반짝이는 것뿐입니다.

그가 작품으로 발표한 시는 그의 형수의 헌신적인 협조에서 이뤄 진 것입니다.

그가 시를 쓸 때에는 그의 형수가 일본어 50자표를 걸어 두고 막대기로 한 자씩 짚어 내려가다가

미즈노 씨가 원하는 글자가 짚히면 그의 눈이 유난히 반짝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수는 그 글 자를 백지에 써 두고, 또 짚어 내려가다가 다음 글자를 쓰는 식으로 미즈노 씨의

마음에 있는 시가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 한 수를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두 사람의 인내가 필요한 것이며,

그 시가 바로 일본 문단의 걸작이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며, NHK가 특집으로 보도한 것입니다.

미즈노씨의 시집에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미즈노 같은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해도 부족할 터인데 말입니다.

파스칼은사람은 같은 사건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같은 조건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그 조건에서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미즈노 씨가 체 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세상의 어떤 환경 속에서 든

오직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민감성(감사)

 

만약 나에게 모래가 담긴 접시를 주면서 그 안에 철이 들어있다고 한다면,

나는 먼저 눈으로 찾다가 다시 서투른 손으로 찾을 것이다. 그러나 철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이때 자석을 가지고 모래 속을 찾아보면, 자력에 의해 보이지 않는 미세한 철가루가 붙기 시작한다.

서투른 손으로 찾는 것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자비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자석으로 철을 찾듯이 매일, 매 시간마다 하늘의 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헬렌켈러의 감사

 

[3일동안만 본다면] 이라는책을 보면 헬렌켈러의 이러한 글이 있다.

"만약 내가 이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직전에 꼭 3일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싶다.

다음날 이른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날에는 일찍 큰 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싸인이 반작거리는 거리, 쇼 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게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밀턴경의 감사

 

실락원의 작가 밀턴은 소경이 된 수에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였다.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이렇게 감사를 드렸다.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그가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풍성한 영감을 얻으므로 실락원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

-김영진, 뛰는자가 아름답다. P.278

 

 감사 주일의 유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옥한흠

 

 

 어떤 부자(父子)의 이야기

 

어느 날 아버지와 아들이 말을 타고 숲 속의 길을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몇 십 마일을 간 다음에 드디어 부자는 반갑게 만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 때 아들이 아버지께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참 우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요."

이 말에 아버지는 궁금해서 까닭을 물었습니다.

아들이 하는 말이 "제가 지금 아버지를 찾으러 오는 도중에

나무 뿌리에 걸려 말이 세 번이나 쓰러졌어요.

그런데 저는 한군데도 다친 데가 없어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한지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그래, 참 감사할 일이구나. 그런데 나도 하나 감사하자구나.

내가 너를 찾아오는 도중에 내 말은 한 번도 나무 뿌리에 걸려서

쓰러진 적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참 우리 하나님 감사하구나."

우리는 이 부자의 대화를 통해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이 시대를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한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 시대이다.

 

십대 성 매매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용돈을 쉽게 구할 수 있기에 그런 짓을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부잣집 아이들처럼 좋은 옷, 좋은 상품 사고 싶어서란다.

그 아이들의 입에는 도무지 감사라는 단어는 없었다.

하기야 어른들도 마찬가지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마음 속에 감사부터 회복하면 어떨까 싶다.

소아 암 병동에 심방 갔다가 돌아오면서 요즘은 학군 정도가 아니라

학원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는 기사를 보면서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다 빠져버린 핼쑥한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오늘도 두 다리 멀쩡하게 딛고 씩씩하게 돌아오는 우리아이를 바라보면서 감사하지 않는가?

다녀오리라는 말을 남기고 간 남편이 매일 수십 건씩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주인공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이 감사하지 않는가?

감사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을 찐데, 행복하자고 사는 것인데 꼭 그렇게까지 악을 쓰며 살아야만 하는가 싶다.

작은 것에 감사, 있는 것에 감사. 이것이 행복의 시작일 것이다

 

강도의 감사

 

방정환 선생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그가 밤이 늦도록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창문이 열리더니 복면을 한 강도가

불쑥 들어와 시퍼런 칼을 들이밀며 말했습니다.

꼼짝 말고 손들어!”

그러자 방 선생이 말했습니다.

아니, 꼼짝 않고 어떻게 손을 든단 말이요?”

강도가 주춤하며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럼, 손들고 꼼짝 말어.

그리고 더 이상 잔소리말고 돈이나 내놔. 그렇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방 선생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일어나 책상 서랍을 열고 390원을 내놓았습니다.

옛날 돈 390원이면 큰돈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이것이 전부이니 가지고 가시오.”

주인이 태연하게 돈을 주자 도둑이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얼른 도망가려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방 선생이 소리를 쳤습니다.

여보시오. 돈을 주었으면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할 것 아니오?”

깜짝 놀란 이 강도가 가슴을 쓰다듬으며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래 고맙다. ○○!”

얼마 후 날이 밝았습니다.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 보니까 강도와 순경이 찾아왔습니다.

순경이 찾아왔습니다. 순경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간밤에 많이 놀라셨지요?

이 사람이 선생님 댁에서 강도질을 했다고 하기에 확인을 하러 왔습니다. 맞지요?”

이 때 방 선생이 차분히 말했습니다.

, 이 사람 말이오? 어젯밤에 우리 집에 왔었죠.

그런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기에 사정이 딱해 보여서 내가 390원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고 갔는데요.”

순경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 사람이 분명히 선생님 댁에서 돈을 훔쳤다고 자백을 했는데요?”

하며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래도 방 선생은 태연히 말했습니다.

아니, 이 사람, 그렇게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내가 돈을 주니까 인사까지 하지 않았소?

돈을 훔쳐 가는 도둑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법이 어디 있소?”

순경은 할 수 없이 강도를 풀어 주었습니다.

순경이 돌아가자 강도는 방 선생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선생님, 용서해 주십시오. 세상에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방 선생은 강도의 등을 두드리면서

일어나시오. 사람이 어렵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오?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마시오하고 타일렀습니다.

그러자 강도가 방 선생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소원이 있습니다.

선생님 곁에서 평생 선생님을 섬기며 살게 해주십시오.”

그 후 강도는 죽을 때까지 방정환 선생 곁에서 집안 일을 도우며 살았다고 합니다.

 

선비의 감사

 

김동인의 사초집을 보면 고려 말년인 1430년 경 과거에 급제하여 세종대왕 때에는

우의정을 지낸 바 있는 유 관이란 사람은 그의 생활이 청빈하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

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그가 청빈한 생활을 하였던지 우의정을 지내기 전까지만 해도 자기 집 하나도

변변한 것을 갖지 못하고 동대문 밖, 그것도 울타리와 대문도 없는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제때 지붕을 덮지 못하여 군데군데 하늘이 보일 만큼

구멍이 뚫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새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유 관은 조금도 불평하는 일이 없이 매사에 감사하였다.

5,6월 장마철이 되어 비는 매일같이 내리고 방 안에는 편히 누울 곳도 없이

빗방울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유 관 부부는 비가 새지 않는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 앉으며 비를 피하다가 나중에는 너무도 많은 비가 쏟아지므로 우산을 받쳐들고 마주

앉아서야 겨우 비를 피하게 되었다.

한참이나 소동을 벌인 후 기가 막혀 화가 나있는 아내에게 유 관은 위로하여 말하기를,

"여보! 그래도 우리는 우산이 있으니 이와 같이 심한 비를 피할 수라도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처럼 우산도 없는 집이야 지금 이 비에 오죽이나 하겠오. 그러니 감사하십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불행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끝내 성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S. 존슨이란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하는 마음은 높은 교양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서 저속한 인간에게서는 이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하였고,

프랑스 혁명사를 집필하여 그 이름을 전 세계에 떨친 영국의 역사가이며 평론가인 칼라일은,

"나는 암흑을 사랑하고 암흑 속에서 살았으며 죄인들의 괴수로 빛을 미워하고 경건한 생활을 비웃었으나

하나님은 나에게 풍성한 자비를 베푸셨으므로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노라."고 하였던 것이다.

 

감사기도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장군은 1648년 의회군을 이끌고 왕당파를 물리친 후 공화국을 세웠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치가였으며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경건한 신앙을 생활에 실천하려고 노력하던 청교도였다.

그는 식사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 사람들 중에는 먹을 것이 있어도 식욕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또한 식욕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먹을 것과 식욕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

 

일본에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이질이라는 질병으로 뇌성마비를 얻어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눈꺼풀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된 사람,우찌무라 겐죠가 있다.

그의 몸은 머리만 크게 발달하고 나머지는 어린아이의 것 그대로인 채 흐느적거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몰골이다.

그에게는 어머니 한 분 밖에는 없었는데 어머니가 성경책을 머리맡에 펴두고 머리를 받혀놓고

나면 돌아오기까지 그 장 만을 보아야 하는 불편 때문에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어느 날 고린도전서 12장을 읽어 내려가던 중이었다. 주님이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하신 말씀을 자기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바울은 자기처럼 눈에 박힌 가시를 제해 주시기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한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도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눈꺼풀을 이용해서 자판을 집어 갈때 윙크하는 방식으로 복음적인 시를 지어 두 편을 발표하였다.

뒤늦게 책과 방송을 통하여 완악한 일본인을 회개시키는 사도로 쓰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선택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변모되기 까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먼 길을 마다않고

자신을 회개시키려 찾아온 목사님 덕분이었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회고적인 시 괴롭지 않았더라면이다.

 

만일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산소의 값은

 

미국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워싱톤의 경우에 교통사고로 심각한 상처를입는 경우가 아주 많다.

가령 산소통을 설치해 놓고 인공호흡을 시키는 경우도 꽤 많은데 물론 보험이 그 경비를

처리하지만 산소통의 산소값이 꽤비싸다.

84시간 동안 일초도 쉬지 않고 산소를 계속 공급하는데 산소값이 960달러나 된다.

그렇다면 사고를 당하지 않은 우리들은 매일 960달러 어치의 산소를 무료로 매고 있는 셈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무사고자인 우리들은 매일 960불씩을 벌고 있는 셈이다.

사실 우리들이 일생 동안들이 마시는 산소값만 해도 실로 엄청난 값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전기 값을 한번 따져 본일이 있는가 ?

우리 교회의 전기값은 1년에 약4만불 가량 나오는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쓰고 있는

[햇빛] 값을 전기 요금 전도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하나님께서 [햇빛고지서]를 보내신다면 1년에 얼마나 내야할까?

그 반대로우리나라 한국전력공사에서 1년분의 전기값을 면제해 준다면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삔은 빛(Light)으로 뿐만 아니라 햇볕으로서 열(온도,Heat)까지 적당히 주고

자외선까지 주어서 우리 인간들 동.식물의 성장및 생존에 얼마나 유익하도록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더욱 많은 것으로 감사하면

 

소경 웰리암 문은 자기와 같은 소경들을 위하여 점자를 발명하고 오백여 방언을 이용하여

수백만의 소경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는 소경이 되어 갖게 된 재능에 대해 당신께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금 그 재능을 투자하게 하사 주님께서 오실 때에 소유물의 높은 이자까지 붙여서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감사의 명언

 

1) 감사는 결코 졸업이 없는 과정이다. - 발레리 앤더스 -

2)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위대한 미덕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근원이 된다. - 키케로 -

3)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 - 죤밀러 -

4)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구원받은 모든 죄인들은 감사할 이유를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 빌립 E.하워드 -

5) 그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든지 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마귀를 물리치는 확실한 방법이다.

- 스피로스 J.히아테스 -

6)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는 거두시 나,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허락하신다. - 토마스 아 켐피스 -

7) 베품에는 세 종류가 있다. 아까와 하며 베푸는 것, 의무적으로 베푸는 것, 감사함으로 베푸 는 것이다.

- 로버트 N. 로덴 메이어 -

8) 우리는 눈물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눈물은 우리의 눈을 하나님의 비젼을 위해 준비시키기 때문이다.

- 윌리암 A.워드 -

 

두 벌의 안경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테오도르 루우즈벧트가 암살자의 총알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았는가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통령은 항상 두 벌의 안경, 즉 가까운 곳을 보기 위한 것과 멀리 보는데 사용하는 것을 지니고 다녔다.

그러데 그가 마지막 큰 정치 선전을 위해 밀워키 시에서 연설을 하고있을 때 '쉬렌크'라는 남자가 대통령를 향해 쏘았다.

루우즈벧트는 다친 몸을 가누고 끝까지 연설을 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의사가 그의 몸을 검사했을 때 그는 대통령의 조끼 안에 있던 강철 안경집이

들어온 총알을 튕겨내어 빗나가게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애기를 들은 대통령은 "그것 정말 놀라운 일이야?"하며 조심스럽게 구부러진 안경집을 조사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두 벌의 안경집,

그것도 쇠로 된 케이스에 담은 무거운 안경은 귀찮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그것을 사용하셨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

 

세계적인 신학자요 설교가인 메튜 헨리가 어느날 밤 강도를 만났다.

귀가중이던 그를 덮친 강도는 피가 철철 흐르도록 구타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아 갔다.

집으로 돌아온 신학자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내가 강도당한 입장인 것을 감사합니다.

돈을 빼앗겼으나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나를 괴롭힌 그 강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옵소서

 

말 끝마다 감사

 

원래 기독교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땡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땡큐'(Thank)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그것을 소중히 한다는 의미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혓바닥에게 '감사합니다'는 말을 버릇들이기 전엔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자녀를 하나나 둘만 낳다보니, 과보호 속에서 유아독존, 자기중심, 이기심으로

살아온 아이들이 도무지 '감사'라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얼마나 한국사람들이 감사 할 줄 모르는가 하면,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면

유 땡큐' 한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감사를 할 줄 모르니까 외국인들이

'너 대신 감사'하고 감사를 대신 해준다는 것이지요. 흐미 부끄럽고 챙피해라...

원래 기독교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땡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원래 기독교인들은 감사의 사람들입니다.

누구 탓하기 전에 기독교인들부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말을 입에 답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용우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마음이 유쾌해집니다.

감사하면 몸이 가벼워집니다.

감사하면 은혜가 흘러 들어옵니다.

감사하면 적절한 환경이 조성됩니다.

감사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감사하면 돈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사랑과 능력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건강해집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하면 무조건 좋습니다. 좋아요. 최용우

 

좋은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피고 새 울어야 될 3월에 한파가 몰아치고 흰눈이 펑펑 오는 날

오돌오돌 떨면서 학교에 갔다 온 밝은이가 저녁식탁에서 대표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밝은이의 기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좋은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는 말이 꼭 들어갑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고, 추우면 추워서 좋고,

더우면 더워서 좋고... 오늘이라는 하루가 나에게 주어졌다는 그 자체가 좋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간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짧은 삶을 살면서 이왕이면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고 재미있게 웃으면서

살아야되지 않겠습니까?

돈 타령은 그만 하십시오. 행복하게 사는데 돈이 일정 부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돈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을 창조적이고 긍정적이고 밝고 깨끗하고 순수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밝은 빛이 마음에 가득 차게 되고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행복한 삶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요. 최용우

 

감사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건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편히 잘 수 있는 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 없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물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질이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사가 없는 부부들을 생각합니다.

지진 없는 나라에 살아서 감사합니다. 지진이 일어난 나라를 생각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깨진 가정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믿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감사는 언제나 생각과 짝하여 함께 서 있을 때

마치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처럼 넘어지지 않습니다. 최용우

 

감사합니다.

 

공자님은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상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타인의 실패를 기뻐하는 자

둘째:윗사람을 헐뜯는 자 앞에서는 맞장구치고 뒤에서는 욕하는 자

셋째:용기는 있으나 예의가 없는 자

넷째: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 곧 감사할줄 모르는 자

인데 그중에서 가장 싫은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자 하고 했습니다.

`감사'는 기계와 같아서 자주 하면 할수록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기계에

기름을 치듯 오늘부터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20번 이상 해 보십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될 것 입니다.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에게도

`감사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에서..

감사 합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신앙의 균형

 

독일 라이프치히의 양대 명물이 있다. 촛불기도회로 독일 통일의 초석을 이룬 니콜라이 교회와 성 토마스 교회다.

 

전자가 교회의 역사 참여를 보여준 대표적인 증거라면, 후자는 교회 영성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유명한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생애 마지막까지 26년 동안 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겸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140여 편의 칸타타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내놓은 곳이다. 바하의 무덤도 교회 본당에 있을 정도다. 교회음악의 산실이다.

 

라이프치히에는 균형이 있다. 두 교회는 기독교 복음 선교의 양축을 대변한다. 봉사와 예배, 참여와 영성, 일과 기도,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 '세상 속으로''하늘을 향하여', '사이''넘어서' . 라이프치히를 찾는 이들에게 두 교회는 최고의 신앙 학습 장소다. 한국 땅에서도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염려는 잘못된 믿음

 

강도가 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몇 년째 잠을 편히 못 자는 여성이 있었다. 조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한밤중에 곤히 자는 남편을 깨우는 통에 남편도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드디어 어느 날 밤, 자다가 집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정말로 강도가 들어와 있었다. 그 남편은 강도를 향해 말했다. "안녕하시오. 만나서 반갑소. 위층에 올라가 내 아내를 좀 만나주시오. 10년째 당신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다오."

 

염려는 말썽이 생기기도 전에 말썽이 생길 거라고 믿는 잘못된 믿음이다. 사람들의 염려는 한도 끝도 없다. 예수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날에 필요한 만큼의 힘을 주신다. 궂은 날이 올까, 맑은 오늘부터 미리 염려하지 말라. 만일 궂은 날이 오더라도 비는 피하면 되는 것이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희망광장

 

지난 4년 동안 출근한 광화문 사거리의 감리회관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한눈에 보는 전광판과 같은 곳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사무실에서 바라다보이는 청와대를 향해 한번쯤 두 손을 높이 든다. 그곳이 안정되어야 나라가 평안하리라는 마음에서 축복을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태평로라는 길 이름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광화문 광장은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승리의 함성이 울리던 곳이고, 우리 사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촛불을 들고 탄원하던 곳이며, 국가의 경사가 있을때 온 국민이 모여들던 곳이다. 나는 우리 감리교회의 본부가 있는 너른 마당을 '희망광장'으로 선포한 일이 있다. 우리의 앞마당이 희망의 산실이 되어 시민의 광장, 평화의 광장, 세계의 광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제 내일부터 이곳에 출근할 일이 없다. 그러나 여기 희망광장으로부터 상생의 함성, 희망의 함성이 울려퍼지길 늘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맘 놓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축복의 사명'은 죽는 날까지 감당할 것이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종교개혁은 진행형

 

역사는 기억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샘이다. 사건들을 기록한 역사도 있지만, 사건의 흐름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의 역사가 있다. 전자는 기억하고 파악하는 것으로 족할지 모르지만, 후자는 오늘의 삶 속으로 가져와 소화하고 생수처럼 마시고 힘을 얻어 결단하고 행동하는 밑거름이 되게 한다.

 

종교개혁 사건은 역사적 유물도, 박물관의 전시물도 아니다. 종교개혁은 이어져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중세 기독교의 기독교답지 못한 타락과 허물이 종교개혁의 현장이었다. 개혁을 외치며 개혁의 분신으로 자처하며 태어난 '개신교'가 어느새 개혁의 대상이 된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외부의 개혁 요구에 자기방어로 맞서기보다는 하나님이 준엄하게 명하시는 '항상 개혁하는'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개혁하는 교회를 먼저 선택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총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분열 50참회의 기도

 

지난 24일 저녁 7시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단지 내 컨벤션홀. 장로교 4개 교단 목사, 장로 4000여명과 현지 성도 1000여명이 연합 예배를 드렸다. 교단 간 연합뿐만 아니라 장로교단 분열 50년을 참회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은혜롭게 예배가 진행되던 가운데 사회자가 즉흥적인 제안을 했다. 4개 교단 교단장과 임원을 비롯한 연합기관 지도자, 교계 지도자 100여명을 단상에 올라오게 한 것이다. 단상에 올라온 사람들의 죄가 누구보다 크다며 무릎을 꿇을 것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무릎을 꿇은 100여명의 교계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연합 예배 장소를 뜨거운 참회의 장소로 바꾸었다. 이들은 신사참배와 교단 분열의 죄를 회개하기도 했다. 장로교 4개 교단의 참회가 갈라진 한국교회를 하나로 묶는 부흥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은 바로 이 같은 마음을 찢는 참회에서 시작됐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마음의 원칙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말합니다. "얘야, 사람 안에는 늑대 두 마리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악한 놈이야. 그놈은 화를 잘 내고 늘 싸우기를 좋아하고 용서할 줄 모른단다. 다른 한 늑대는 착한 놈이지. 이 착한 늑대는 매우 친절하고 사랑스럽단다. 이 두 마리의 늑대가 네 안에도 있단다."

 

깜짝 놀란 손자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할아버지께 묻습니다. "할아버지, 그럼 내 안에 있는 늑대 두 마리가 싸우면 어떤 늑대가 이기죠?"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그야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지."

 

사람의 마음에 어떠한 생각과 언어를 입력하는가가 마음의 습관을 결정하고 그 마음의 습관이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은혜받는 비결

 

옛날 집에서는 마당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부엌 물통에 채워넣곤 했다. 한 양동이가 불평을 늘어놨다. "아무리 물을 퍼 담으면 뭐 해. 열 걸음도 못 가 물통에 부어버리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러자 다른 양동이가 입을 열었다. "참 이상하다. 나는 열 걸음만 옮기면 다시 가득 채워지는데." 삶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짧은 예화다.

 

똑같은 인생을 사는데 한쪽은 탄식과 불평만 늘어놓고 산다. 손에 가득 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하늘에 쌓은 것이 아니면 모두 헛되고 헛되다. 반면 감사와 기쁨으로 삶을 채우는 사람들도 있다. 주님은 그들에게 더욱 풍성한 은혜를 베푸신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것을 모두 다 주셨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붓고 살자. 열 걸음도 안 되어 채워주신다(4:24).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하나님의 음성 듣기

 

빗길에 미끄러지던 트럭이 한 주택을 들이받았다. 구조대와 앰뷸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건현장에 도착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목격됐다. 야단법석인 와중에도 방에서 한 여성이 잠을 자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다른 방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자, 그 여성이 벌떡 깨어 일어나더라는 것이다.

 

우리의 청각은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들려오는 소리를 감지하는 일반적인 기능 외에, 듣고 싶은 소리만을 선별해서 듣는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다.

 

듣기로 결심했다면 아무리 세미한 음성일지라도 듣고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듣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제아무리 청천벽력과 같은 큰 소리일지라도 결코 들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음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굳게 건 빗장 때문이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교회의 타락

 

요즘 교회에 대한 시비가 많다. 엄격해진 잣대는 교회에 대한 기대와 책임 때문이다. 교회가 가난할 때는 우호적이지만 힘이 있어 보이는 지금 더 이상 양해받을 여지가 없어 보인다. 많은 교회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교회는 마치 부자처럼 인식되고 있다.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했다. "초대교회에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교회는 금으로 기둥을 만들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하나님의 집을 지었다. 은과 금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 많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잃었다."

 

교회의 타락은 거룩함보다 물질이 평가의 기준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연약함보다 힘을 숭상하고, 가난보다 부유함을 선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홀히 여기게 된 까닭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2:5)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광풍을 잠재우는 리더

 

바울이 로마로 압송될 때 탔던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다.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바울은 일어나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외쳤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로마까지 안전하게 인도될 거라는 확신을 얻었던 것이다. 바울은 도망가려는 사공들을 제지했고, 사람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며 거듭 구원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 또한 바울을 믿고 따르며 안심하고 음식을 받아 먹었다. 결국 바울의 확신처럼 모두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세계적 경제 위기라는 광풍을 만났다. 이러한 때일수록 바울처럼 위기를 돌파해나갈 지도자와 지도자를 향한 국민들의 신뢰가 필요하다. 위기 속에서도 살 길을 찾아 희망을 제시하는 지도자와 그를 믿어주는 구성원들이 있는 공동체는 망하지 않음을 광풍을 만난 바울과 배에 탄 사람들을 보며 배워야 하겠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마음의 재벌

얼마 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수 션과 탤런트 정혜영 부부의 아름다운 기부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결혼 후 매일 1만원씩 모아 결혼 일주년이 되던 날에 365만원을 노숙인들에게 기부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며 섬겼다. 첫 동반 광고 수입도 전액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내놓았다고 한다. 현재 100명의 해외 빈곤 아동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매달 한 어린이당 35000원씩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기부를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재벌이라 돈이 많아서 그러겠지'하고 생각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 부부는 아직 자기 집도 없고 미래를 위해 적금도 든 게 없다고 한다.

 

방송 진행자의 말처럼 "재벌은 재벌이되 마음의 재벌"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 흉흉한 소식들로 마음이 점점 얼어붙어가는 요즈음, 따뜻한 남풍같이 느껴지는 '마음의 재벌'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불안이 쌓아올린 유산

 

인류 역사상 유명한 건축물들은 불안 해소를 위해 세워진 경우가 많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죽음에 대한 불안해소를 위해 세워졌다. 만리장성은 황제의 정치적 불안해소를 위해 세워진 건축물이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도 흩어짐에 대한 불안해소를 위해 쌓기 시작한 탑이다. 내 주변에 누군가가 모여 있어야 하고, 무언가를 모아 놔야 안심할 수 있는 인간의 뿌리 깊은 불안 때문이다.

 

흩어짐은 두렵다. 외롭고, 불안하며,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강해질수록 모아 놓은 것을 지키기 위한 성벽도 비례해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마음의 현상이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제대로 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다. 무언가 쌓아 놓을 생각 대신 하나님과 화평 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삼 세번의 미덕

 

 

한국인들은 수많은 숫자 가운데 특히 ''자를 좋아한다. 작심삼일, 삼천리, 삼척동자, 3부작, 삼총사, 삼종지도, 3등칸, 일일이 여삼추 등. 삼은 통합과 균형을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한다. 석 삼, , 세 번째란 수가 주는 안정감은 마치 세 개의 다리를 지닌 솥발의 균형을 연상시킨다. 압축된 요점을 손쉽게, 간단히 전달할 때도 세 가지로 요약하길 즐겨한다. 3대 과제, 3대 지표, 3대 정신, 3D 산업, 3S의 삶의 방식, 21세기 3F 특징들이 좋은 보기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형제가 잘못했을 경우에 일곱 번을 용서하면 되겠느냐"고 했다. 당시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했고, 외경 집회서에도 두 번까지 관용을 베풀도록 한 점으로 미루어 베드로의 물음은 파격적이다. 그런데 언감생심,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고 하셨다. 우리 속담에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도 세 번쯤 참아주는 '삼 세 번의 미덕'이 필요한 시절이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이름값

 

최근 교황청에서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여호와)'를 공식 예전이나 공공예배에서 함부로 쓰지 말도록 지침을 내렸다. 대신 '주님'이라는 표현을 쓸 방침이라고 한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이름이 없다.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나는 나다"라고 하신 뜻을 히브리어로 모음 없이 자음으로만 쓴 게 'YHWH'인데 이것을 각국어로 조금씩 달리 발음하다 보니 우리말로 '여호와'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그런 발음조차 삼가며 "아도나이(주님)"라고 부르고, 헬라어로 쓰인 신약에서는 "키리오스(주님)"라고 일컫는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고, 자기 정당화를 위해 신의 이름을 도용하거나 예배의 주인을 도구로 삼는 것은 큰 죄악이다.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실명으로 대고 하나님과 이웃들 앞에 값을 매기게 하자. 차명과 가명을 버리고 진실하고 투명하게 '나는 나'임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화이부동

 

가정이든 나라든 구성원간에 갈등이 팽배한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반면 서로를 존중하고 화합하는 모습은 성숙한 가정, 선진국의 조건이 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있다. 남과 화합은 하지만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진리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취할 태도 중 하나가 바로 이 화이부동적 삶의 자세이다. 진리를 만난 사람은 결코 유아독존적인 자세에 머물러 있지 않다. 포용과 관용으로 상대방을 품는 여유와 깊이가 풍겨난다.

 

이번주 서울 성북동에서는 필자가 섬기는 교회와 길상사, 성북동성당이 연합으로 이웃돕기 바자회를 개최한다. 서로 다르지만 사랑으로 함께할 수 있는 봉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마음을 품고 온 교우들이 참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것으로 기대하며 지역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기도하고 있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탐욕의 무덤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공급을 경험하며 기적과 더불어 살았다. 하늘양식 만나를 매일 아침 공급받았고 반석에서 터져나온 생수를 마셨다. 하지만 그들은 만족하며 감사하기보다 고기를 요구했다. 더 나아가 과거의 애굽 종살이를 미화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광야의 메추라기를 몰아주었지만 결국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도 전에" 그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욕심을 내었던 자들이 그 광야에서 장사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장소를 '기브롯 핫다아와', 즉 탐욕의 무덤이라 칭하게 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넉넉한 자들이 작은 것을 탐하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는 말씀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빈곤 퇴치는 사명

 

세계경제가 향후 몇 년 동안 지금보다 악화될 것이라는 보도가 연일 이어진다. 미국 집값의 거품 피해가 당사자들을 넘어서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의식주 문제(25:3738)로 더 고통을 받게될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세계빈곤퇴치의 날이다.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는 가난한 이웃을 돕는 천사의 손을 의미하는 '화이트 밴드 감기' 모임이 열린다. 국민 소득의 0.7%를 가난한 나라에 원조하자는 세계적인 합의가 있지만, 우리나라 원조수준은 0.06%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양 손을 만드신 이유는 한 손으로는 열심히 벌고, 다른 손으로는 열심히 베풀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넘치는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모든 착한 일도 넘치도록 해야 할 때이다(고후 9:8).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하나님이 쓰시는 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매스컴에 소개된 적이 있다. 정말 흉측하게 생겼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겨진 이유를 듣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루 10시간 이상씩 연습으로 발레신발 150여 켤레를 닳아 떨어뜨린 연습벌레의 발이었다. 연습과 공연 때면 그녀의 발가락은 갈라지고, 물집 잡히고, 곪는단다. 그렇게 흘러내린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2짜리 생수병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뭐가 이토록 그녀를 발레에 미치게 만들었을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발 모양이 따로 있다. 먹거나 희생 제물로 쓸 수 있는 정결한 짐승을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발의 모양에 있었다(11). 굽이 갈라진 발이었다. 그것은 자기중심의 삶과 구분된 헌신의 발을 뜻한다. 여호와 앞에 갈라진 발. 갈라지고 물집 잡히도록 전적으로 헌신하며 뛰어다니는 열정이 만든 발. 그런 발을 필요로 하신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인생의 진화

 

인간은 갓난아기 때 단맛을 먼저 알고, 짠맛, 신맛을 배운 후에야 비로소 쓴맛을 배운다고 한다. 독성이 있는 물질에 들어있는 쓴맛을 가장 늦게 배우는 이치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가장 늦게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는 셈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잇값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기의 책임의식보다 남의 탓을 하는 사람에게 잘 드러난다. 그들은 자기 마음에 불평이 쌓일 때 그것을 남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에 기쁨과 평화, 희망이 사라졌다고 해서 남을 탓하는 것은 유치한 태도이다.

 

옛 말에 화복동문(禍福同門)이라고 했다. 화와 복은 모두 자신이 불러들인다는 말이다. 사실 내게 쌓이는 불평과 불만은 바로 내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기 안에 뿌린 사랑의 결실 때문에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인생은 나이가 들수록 진화한다. "믿음은 살아 있고 배우는 공동체 속에서 영속된다."(알브레히트 쉔헤르)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위기와 신앙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세계 금융시장의 산실이다. 철옹성 같고, 무소불위의 금권을 자랑하던 현대판 레비아탄(악마, 또는 괴물)이 휘청거린다. 거대 강국인 미국이 7000억달러의 금융구제안을 내놔도 정상을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야단법석이다.

 

뉴욕의 금융위기 강풍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한국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하지만 강풍을 가라앉힐 만한 묘약이 안 보인다. 구제금융 금액이 적어서도 아니고, 돈이 없거나 물건이 없어서도 아니다. 심리적 불확실성 때문이다. 신뢰의 부족 또는 불신 탓이다. 다시 말해 신뢰의 상실이 가장 큰 문제다.

 

삶의 진정한 행복은 몸과 영혼을 맡길 수 있는 신뢰의 힘에서 나온다. 인간세계 가운데 역사하시면서 동시에 역사를 초월해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신앙만이 살길이다. 하나님을 진실로 찾고, 구하고, 그 문을 두드리면 된다. 지체할 필요가 없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하나님의 경제

 

성경은 물질을 배척하지 않는다. 대신 그 물질을 다루는 사람의 자세를 중요시 여긴다. 하나님 대신 물질을 의지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물질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성경은 '어리석은 부자'라고 정의한다(12:20). 모든 재화(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청지기일 뿐이다. 제 아무리 그럴 듯해 보이고, 잘나가는 듯해도 주인을 속일 수 있는 청지기는 아무도 없는 법이다.

 

월가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철옹성은 주저앉았다. 그들을 향한 세계인들의 '믿음' 역시 무너졌다. 분수를 넘어선 부()의 독점과 대다수 사람들의 가난과 굶주림을 외면한 월가와 자유방임주의 경제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다. 이제는 모래 위에 집을 쌓는 허사를 버리고 진실과 신용의 반석 위에 새 집을 지어야 할 때다. 3의 길을 모색할 때인 것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작고 사소한 죄

 

빈 건물의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연이어 옆 유리창도 깨진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그 건물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인근에 범죄가 속출하면서 일대가 무법천지로 변하게 된다. 이것을 소위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라 한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발표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작은 무질서를 가볍게 여기다 보면 더 심각한 범죄가 생겨난다는 것, 사소한 실수를 제때 고치지 않으면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면의 사소한 죄를 가볍게 여기다보면 큰 죄를 불러오게 된다. 이 원리는 미시적으로 대인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거시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통용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5:9)는 성경의 경고에 귀기울여야 할 것 같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천하보다 귀한 생명

 

인간의 생명이 언제 시작되느냐를 두고 수정란, 배아줄기 세포 생성, 인간 형체 형성, 출산 이후라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다. 하나님의 것인 생명을 나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제 마음대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는 한 인간의 생명을 세상 천하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소중하게 여기셨다(8:36). 내 생명이든, 남의 생명이든 죽여선 안된다. 생명은 일단 훼손되면 인간 능력으로는 회복시키거나 대체하거나 돌이킬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기 연예인의 자살로 지난 주간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직도 세상은 테러와의 전쟁, 범죄에 의한 죽음이 여전하다. 빛도 못보고 죽는 낙태아 때문에 안타깝고, 세계 사형폐지의 날(1010)인 오늘도 사형수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생명이 공학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평화의 세상이 오기를 기원한다(10:10).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감사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감사다. 감사는 한 마디로 '과분한 마음'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을 자신의 투자나 능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고백에서 감사의 정신은 출발한다. 그러기에 갑작스러운 횡재나 행운은 감사의 요건이 못된다. 오히려 감사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간 이들에게 적절한 덕목이다.

 

성숙한 영적 열매는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운동선수는 연습량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고 기능공은 훈련의 반복에 따라 성취 여부가 결정되듯, 그리스도인의 감사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행복에 겨울 때보다 시험과 어려움 속에서 더 잘 연단된다. 그러기에 감사는 자기 자신의 고마움으로 그칠 수 없다. 내 가정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향해 그 기쁨을 나누는 것이 감사다.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만족할 수 있는 길

 

6·25 직후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70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현재는 거의 2만달러로 300배 가까이 잘 살게 됐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300배의 만족을 느끼며, 마음이 풍요로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300배의 풍요는 있어도, 오히려 마음은 더 빈곤해진 것 같다.

 

자살로 죽는 인구가 교통사고로 죽는 인구보다 더 많다는 통계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다. 자기가 필요한 정도를 적당 선에서 정해놓지 않으면 우리의 소유욕은 끝이 없이 자란다고 한다. 많이 벌어 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비천과 풍부는 절대적으로 내가 정한 기준에 달려 있다. 고무줄같이 늘어나는 가변적인 기준이 문제다. 채워서 만족하려 들지 말라. 나만의 기준을 빨리 정하는 게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강대일 목사 (안양성결교회)

 

죽음의 죽음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고 부활을 만들어내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켜 '죽음을 죽이고' 이긴 것이라고 했다. 십자가와 부활은 '죽음을 죽인' 사건이다. 따라서 '죽음의 죽음'은 강력한 부활의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은 뒤 약속받은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교두보일 뿐이다. 다시 말해 죽음은 이 땅의 생명과 하늘의 생명을 연결하는 다리다. 그 다리는 안전해야 한다. 이 땅에서 복되게 사는 웰빙(well-being)과 함께 하늘 생명을 향한 복된 죽음(well-dying)이 값진 삶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불안이다. 요즘에는 우울증으로 통한다. 불안이나 우울증은 홀로 살면서 걸리는 질병이 아니다. 함께 살지만 잘못 살기에 생긴다. 우울증을 죽일 수 있는 약은 기쁨의 상생이다. 신앙은 상생의 복음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우리도 함께하는 복음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생명사랑 밤길 걷기 운동

 

2006년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헝가리에 이어 세계 2위 자살국이 됐다. 한해 1688명이 자살을 한다니 하루 28, 51분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이 같은 높은 자살률은 이제 자살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섰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자살은 우리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풀어야 하는 공동체적 과제가 된 것이다. 심각한 자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없다면 한국 사회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는 영원히 잊혀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1010일 저녁 7시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리는 생명사랑 밤길 걷기 운동은 좋은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밤길을 걸으며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인생의 밤길을 헤치고 희망의 새아침을 맞는 생생한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캠페인과 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펼쳐져 자살 예방과 함께 생명존중의 문화가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거룩한 투쟁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톱스타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감당했어야 할 삶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펴져가고 있는 자살 문화에 분개를 느낀다. 심리사회적으로나 경제사회적 요인으로 자살의 증가를 분석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려는, 생명 경시의 배후에 역사하는 악한 영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공동체는 자살 문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거룩한 투쟁을 해야 한다. 지치고 힘든 영혼들이 마실 수 있는 생명의 맑은 샘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흘려보내는 신성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36:9)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구세군 선교 100

 

120여년 전, '영혼을 찾아 세상으로 가라. 그것도 가장 악한 사람에게 가라'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구원에 대한 열정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이 뜨거운 마음은 영국 전역에 부흥회와 전도집회를 불러 일으켰고, 빈민가의 고통받는 자들을 섬기는 데로 향했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구세군(Salvation Army)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구세군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자선냄비'부터 떠올린다. 그래서 구세군을 복지기관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교회 수보다 구세군 산하 사회봉사기관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구세군은 교회다. 진정으로 건강한 교회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고 고백하며 부흥과 봉사라는 두 바퀴로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다(딤후 2:3). 우리의 신앙을 풍성하게 만들어 온 구세군대한본영의 100주년을 축하한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안전이라는 미신

 

인생에서 위험은 어디에든지 있다. 만일 살면서 어떠한 위험도 당하고 싶지 않다면 다음의 것을 꼭 지켜라.

자동차를 타지 마라-사망 사고 원인의 20%나 된다. 비행기나 기차나 배로 여행하지 마라-모든 사고의 16%를 차지한다. 거리를 걸어다니지 마라-모든 사고의 15%가 거리에서 일어난다. 집에 있지 마라-모든 사고의 17%가 집에 있는 중에 발생한다. 인생에서 안전한 장소는 아무데도 없고 위험 부담이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안전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신이다. 위험을 피하는 것이 감수하는 것보다 안전하지 않다. 인생은 대담하게 모험을 하든지, 아무것도 아니든지 둘 중 하나다." 당신의 지금 목표가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는 것인가? 만약 있다면, 그 다음은 걱정하지 마라. 그냥 움직여라. 나머지는 주님께서 책임지신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출처 ; 국민일보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교회의 의미

 

리처드 하버슨은 이런 말을 했다. "맨 처음 교회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친밀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관계를 가졌다. 이 관계는 그들과 그들 주변의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 다음 교회는 그리스로 건너가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나중에 교회는 로마로 넘어가 하나의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 교회는 유럽으로 퍼져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나의 기업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교회를, 그러나 너무나 적은 친교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한국 땅에 온 교회의 의미는 무엇일까. 철학, 제도, 문화, 기업. 이 모든 것도, 그 중의 하나도 아니다. 세상은 바뀌고, 환경도 변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는 대원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실한 청지기, 타자를 위한 존재, 희망의 공동체, 구원의 방주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신경하 전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본회퍼의 회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회퍼는 전쟁에 미친 히틀러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친 운전사가 차를 마구 몰며 사람들을 치어 죽이고 있습니다. 자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아니면 차에 올라타 그 미친 운전사를 끌어내려야 합니까?" 그는 이 유명한 비유를 암살 기도의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는 체포되어 39세의 젊은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가 죽기 전 히틀러가 하늘의 심판대에서 절규하는 꿈을 꾸었다. "세상에 있는 동안 이런 심판에 대하여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어요. 너무 가혹합니다." 꿈에서 깬 본회퍼는 가슴을 치며 회개했다고 한다. 히틀러를 제거하려고 한 것보다 복음을 전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둠을 이기는 수단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밝히는 것이다. 자아실현, 가정 행복, 그리고 사회정의까지도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예수 복음을 나누는 것이 우리 인류의 마지막 남은 소망이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담대한 믿음으로

 

 

환란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병에 걸리거나 돈 때문에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가족이 아프거나 사고로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유명한 설교가이자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목사는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나치가 패망하기 1주일 전에 사형장으로 끌려 갔다. 그때 그는 교도관에게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누구나 겪는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인 죽음의 순간을 또 다른 삶의 시작으로 바라보는 담대한 믿음이 아닌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이 세상 어떤 위기보다 주님의 능력이 더 많고, 어떤 고통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우리 삶을 위협할지라도 죽음조차 이기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이 절실한 때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고쳐 쓰시는 하나님 

 

물론 하나님은 사람의 장점을 이용하실 것이다. 키 큰 사람을 키 작은 사람보다 운동선수에 더 많이 사용하실 것이다. 건강한 사람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귀하게 쓰실 것이다. IQ가 높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장점이 불행거리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의 죽음도 결국 그의 수려한 용모와 자랑스러운 긴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삼손의 실패도 결국 그 힘 때문이었다. 겸손하게 여기지 않으면 장점만큼 큰 단점도 없다. 장점은 겸손할 때에만 장점이지, 때로는 엄청난 단점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고쳐 쓰는 즐거움을 아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히려 우리의 약점에 있다. 겸손한 병든 사람을 고쳐서 쓰신다. 겸손한 지혜 없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셔서 사용하신다. 겸손한 실패자를 재기시켜서 사용하신다.

강대일 목사(안양성결교회) 

 

진달래 화음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일부다. 우리의 땅 영변은 진달래 대신 '핵시설' 뉴스가 오르내리는 진원지가 돼버렸다. 죽음의 핵무기 대신 온 겨레가 소망하는 생명의 꽃이 다시 심겨질 날을 기대해본다.

 

'영변에 약산 빈달배기 참꽃 한 보뎅이 따더 내재는 질라루 훌훌 뿌레 줄기래요(강원도)'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가득 토당 가고정헌 질에 지져밟고 정이 살페 가시우야(제주도)'

 

'거시기 약산에 참꽃 허벌라게 따다가 마리시롱 가는 질 가상에 뿌려줄라니께(전라도)'

 

'영변에 약산 참꽃 한거덕 따다 니 가는 길에 뿌려주꾸마(경상도).'

 

정겨운 사투리 버전 속에 진달래의 희망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남북 강산에 피어나는 날은 언제쯤일까. 하늘은 스스로 꿈꾸는 자를 돕는다. 그 꿈은 우리 모두를 위한 평화의 꿈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오바마와 창조원칙

 

흑인 소녀 브라운은 1마일이나 떨어진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학교로 옮기려다가 피부색 때문에 거절당했다. 1954517일은 그로 인한 소송에서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날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색깔들 중에 흰색이 검은색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64년에는 흑인의 참정권을 보장한 민권법이 제정됐다. 이후에도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인종에 대한 편견은 사라져 갔고, 마침내 2008114,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예수 안에서 하나다(3:28). 인종과 신분, 성별에 관계없이 하나님 안에서 똑같이 존중받는 것이 창조원칙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창조원칙을 회복하는 쪽으로 끊임없이 역사를 바꾸어 가신다. 역사의 무대에서 쓰임받는 사람들은 이러한 창조원칙 회복에 가담하는 자들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선교사의 다짐

 

최근 중앙아시아 K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집을 방문했다. 그 집 화장실 벽에 붙여놓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에게 가라/그들 가운데 살라/그들로부터 배워라/그들을 사랑하라/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서 시작하라/그들이 갖고 있는 것들 위에 세우라/그러나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그들의 일이 성취되었을 때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힘으로 이 일을 해냈다'고 말하게 한다."(중국의 시)

 

이 글은 그 선교사의 다짐이었고 결단이었다. 그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땅으로 갔다.

 

그는 살벌한 위협과 방해 가운데서도 전도했고 그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믿음 공동체를 세웠다. 그리고 그들이 이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아낌없이 넘겼다. 오늘도 땅끝에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교사들을 축복한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남북 기독인의 기도

 

 

반세기 전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을까. 남북 그리스도인 400명이 평양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날을. 지난 4일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평양에서 있었다. 평양 봉수교회 담임목사가 사회를 보고 남한교단 총회장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북한 측이 준비한 포도주와 남한에서 가져온 빵으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하는 성찬식도 갖는 감격을 누렸다. 북한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성가대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며 한마음이 됐다.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남북 관계가 많이 경색돼 있다. 하지만 남북 그리스도인들의 간절한 기도가 헛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끊임없는 기도는 평화와 통일을 가져오리라 확신한다. 낙심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18:18).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수치를 굴려 버려라

 

 

습관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의 90%가 습관이란다. 10%의 시간만 내 의지로 통제 가능하고, 나머지는 무의식적 습관에 따라 산다는 것이다. 습관이라는 무서운 리모컨에 의해서 우리 모두는 조종당하고 있는 셈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도 습관적인 노예근성을 제거하는 데만 40년이란 긴 시간을 소비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던 이 근성을 해결하지 못하면 새 땅에서의 성공적인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에서의 첫 정복전쟁을 치르기 전에 이스라엘이 했던 집단행동은 바로 할례였다(5). 전술을 논하고 무기를 가다듬는 식의 전쟁 준비가 아닌,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는 성결의식이었다. 인생을 바꾸려면, 의도적으로 일상습관을 바꾸기 시작해야 한다. '성결'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강대일 목사(안양 성결교회)

 

유대인과 돈 

 

유대인은 재물을 모으는 일에 천부적이다. 유대인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유대인 아이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돈이 뭐예요?"

 

아버지는 "잘 봐라"하면서 유리 조각을 집어 창문 앞에 놓았다. 아이는 유리를 통해서 길이며 행인이며 마차를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아버지는 "이제 돈을 잘 봐라"하더니 "유리 조각 대신 돈을 여기에 놓겠다. 은화 때문에 거리 풍경은 하나도 안 보이고 돈만 보이지"라고 말했다.

 

돈 앞에서 다른 것은 하나도 볼 수 없다. 오직 돈만 보인다. 돈을 모으려는 사람들은 돈에 눈이 머는 경우가 많다. 돈에 눈이 멀게 되면 세상의 장님이 된다. 돈 빼고는 잃는 것이 너무 많다. 그 치명적인 흠으로 부터 벗어 나려면 돈 버는 것과 나눠갖는 것에 두루 눈을 돌려야 한다.

신경하 전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금강 알프스

 

알프스는 세계의 명산이다. 그 위용과 수려한 자태가 세계인의 심신을 빨아들인다. 우리 땅에도 알프스 못지않은 산이 있다. 바로 금강산이다. 남북의 인적 교류가 가장 먼저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알프스 못지않게 아름답다.

 

한때 금강산 자락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하늘나라의 축복을 염원하며 기도하던 '금강산기독교수양관'이 있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인도로 200여명이 모여 밤새워 기도의 불꽃을 모았던 장소였다. 근방에는 현재 남북이산가족이 한자리에 만나 손을 맞잡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만남의 집이 세워지고 있다.

 

남북의 신앙인들도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을 품기 바란다. 평화와 자유를 위해, 나아가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복음화를 위해 함께 두 손을 모으는 기도의 집이 들어서는 날을. 그러기 위해서는 중단된 금강산 관광이 하루빨리 재개되어야겠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회복되는 경제원리

 

몇몇 경제 대국들이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경제를 제창했다.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시장은 인류의 도구가 아니라 인류를 좌우하는 중심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무한 자유를 한손에 거머쥔 거대한 시장이 중병에 걸리게 되자 세계인들도 모두 죽게 되었다. 이 세계시장이라는 병든 우상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치유받은 중풍 병자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중풍에 걸려 스스로 이동조차 할 수 없었던 환자가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려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다.

 

중풍병처럼 위기에 빠진 세계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려준 친구들처럼 세계의 모든 나라가 협력해서 새로운 경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만 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경제원리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 길만이 인류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위기 속 희망

   

평생 심혈을 기울여 가꿔온 교회를 멋지게 제자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신 목사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함께했던 소수의 젊은 목사들에 대해 "안쓰럽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당신이 목회할 때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장 무드에 있었고, 성도들이 순수하고 마음이 부드러워 목회자를 믿고 잘 따랐다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지금은 성장이 멈췄고 오히려 고속 성장 이후 여러 문제들이 드러난 상태라 성도들이 더 이상 순수하게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해야 하니 젊은 목회자들이 "안쓰럽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이 위기가 기회라 하셨다. 진실한 목회자들을 통해 교회가 정화되고 새롭게 일하실 하나님의 희망을 본다는 것이다.

 

당면한 위기 가운데서도 주님의 주 되심을 철저히 인정하고 말씀으로 생기를 얻어 마른 뼈가 살아나는 기적(37:110)을 맛봐야 할 것이다 

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침례교회)

 

평화 지키기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일본헌법 9조 중)

 

일본 헌법은 9조에 전쟁 포기와 군사력 보유 금지를 규정해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승전국인 미국이 일본에 대해 전쟁과 평화 파괴의 책임을 물어 이 조항을 헌법에 포함시키고 군정을 마쳤다. 일본의 대외 침략 기도를 억제하고 동북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보유, 국가교전권까지 포기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일본 내부에서는 군국주의 경향이 짙어지면서 이 조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의 교회들은 개정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도쿄를 중심으로 평화헌법 개정 반대 기도회와 모임을 갖고 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5:9).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출처 : 국민일보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