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다.
“노 트를 한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 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 부터 적어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났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 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사 라졌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나 자신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된 손길을 맞잡기
위해 서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
남아메리카 주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읍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 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갔읍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이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읍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읍니다.""왜요?""찬물과 더운물울 마음대로 거저 쓸 수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에요.""왜요?""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그건 무엇입니까?""비누가 나오지 않으니까 불평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
같은 11.01초의 기록이건만 한 선수는 금메달을, 다른 한 선수는 은메달을 받게 되었다.
지난 오사카 세계육상경기대회 여자 100미터 결승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 길이 없어서 사진 판독까지 가는 접전 끝에 내려진 결과다.
기록은 불과 0.003초 차이! 눈을 깜빡하는 시간이 대략 0.02초라는데 이보다 6배나
짧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1000분의 3초 차이로 금메달과 은메달을 갈랐으니
선수들이 느낀 행운 또는 억울함을 어디 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비단 이번 경기의 결과뿐이겠는가.
우리가 치르는 입학시험의 합격여부나 입사시험의 당락처럼 우리네 인생은 참으로 우연 같은 시간차나
점수차로 삶과 죽음, 합격과 낙방, 금메달과 은메달 사이를 오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행운 또는 불행, 운수의 좋고 나쁨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인도하시는 창조주의 사랑의 손길로 믿고 좋은 일이든
혹은 나쁜 일이든 오직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여운학 (이슬비성경암송학교 교장)
.감사할 줄 아는 삶
불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불평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감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맑은 물이 나오는 것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빛
내 사랑하는 가족, 풍요로운 음식들...
이런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이란 얼마나 황량한요.
<가을이 되고 추석이 되어도 배고픈 사람아
너무 서러워 할 것은 없다.
저 추석 달만은 그대들 머리 위에서도
창창히 빛나고 있지 않는가> (이어령/차 한잔의 사색 中)
감사해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감사 꺼리만 생기고
불평만을 일삼는 투덜이에게는 불평거리만 생깁니다.
감사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유가리스티아>라고 하는데 명사적 의미로 는
<좋은 은혜,행복한 은혜>라고 하며, 동사로는 <숙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행복스러운 은혜를 잘 숙고하여 그 깊이를 깨닫는 일> 이 감사라는 일 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괴테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감사하는 마음은 곧 시들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수시로 변하며,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에야 나타나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환경과 조건에 제약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감사할 이유를 갖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곳곳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의 결핍
일곱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에 놀러간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이웃집 부인은 이 아이에게 사과를 하나 주었는데 아이는 '고맙습니다'는 인사도 없이 얼른 받았습니다.
“얘야”아이의 어머니가 무섭게 불렀습니다.“다른 분이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 되지?”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껍질을 벗겨주세요”라고 말하더랍니다.
타인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서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일곱 살 난 이 아이뿐이 아닙니다.
이 아이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타인이 베풀어준 친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침묵한 채
더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기만을 바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 않을 때는 원망하고 돌아섭니다.
사과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면 사과를 준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감사하지 않습니다.
많은 십대들이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가정 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타인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몇 번이나 깨워야 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학교에 등교할 때까지 끊임없이 부모님께 요구하고 더 많은 것을 챙겨주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타인이 자신을 위해 베푸는 친절에 대해서 '그까짓 것 가지고' 이렇게 말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이 매일 같이 베풀어주시는 작은 일에 대해서도
진정 감사할 줄 아는 자세가 우리들에겐 꼭 필요 합니다.
주님의 함께하시겠다는 약속
어느 심장병 환자의 고백
수술 받기 전 날 간호사가 나를 찾아왔다. 간호사는 상냥하게 나의 손을 잡고서
나에게 자기손을 꽉 잡아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내일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당신의 몸에서 심장이 분리되고
오직 기계의 도움에 의하여 생명이 유지될 것입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심장은 새롭게 연결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합니다.
그 다음 당신은 회복실로 옮겨질 것이고 그곳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의식은 깨어납니다.
의식이 깨어난 후에도 여섯시간 동안은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볼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나는 당신 곁에서 지금과 같이 손을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모든 위험을 일일히 점검하고 기록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완벽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음날 내 운명이 결정되는 수술이 진행되었고 이어서 담당 간호사가 말한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그때 나는 내 손을 붙들고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간호사의 손길을 확인하면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安堵感)과 위로(慰勞)를 얻었고 아울러 삶에 대한 확신을 지닐 수 있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순간에 그녀가 내 손을 붙들고 내 모든 문제 하나하나
처치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와 함께하는 그 순간이 내게 얼마나 가치있고 포근한 것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고 고백했다.
예수님이 이땅을 떠나실때 우리에게 약속하시바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원문에 의하면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그뜻은 [우리 옆에 와 계시는 분]이라고 한다.
아울러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약속하시기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와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고 바로 내 곁에 오셔서
내 손을 꼬옥 붙잡고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다윗은 그와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남다른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렵고 힘든 역경(逆境)중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와 삶의 용기를 받았던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외면(外面)하고 살때에 우리는 절망하고 불안해 하며 사는 것이다.
작은 일과 큰 일
우리는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비록 고난과 시련 중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는 하나님의 섭리의 흐름을 따르는 지혜로운 처사이다.
신앙의 안목으로 볼 때 징계도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이며 시험도 더 좋은 상급 을 위한 예비 단계이다.
감사하는 마음에 비례하여 삶의 영역은 비옥해지 며 큰 문제도 작게 되고 작은 봉사도 크게 흠향된다.
모든 문제는 신앙 안 에서 해답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 문제의 정답이다.
무슨 문제든지 해답을 모르면 크게 보이고 해답을 알면 작게 보인다.
신앙은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한 어린이가 집안에서 물 그릇을 나르다가 마루에서 넘어졌다.
온 마루는 물로 흥건하였다. 남편된 사람은 버럭 화를 내면서 큰 일을 저질렀다고 소리 쳤다.
그때 믿는 아내가 “오늘 마침 마루를 닦으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며칠 동안 닦지 않은 마루를 지금 닦으라는 것이에요”하였다.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구척 장군 골리앗을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났다.
백성들은 겁을 먹고 “때려 눕히기에는 너무 크다”고 하자 다윗은“ 내 물맷돌이 빗나가기는 너무 크다”했다.
같은 문제를 보고도 크게 보는 시각과 작게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
홍해 강변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다 죽겠다고 아우성이었지만 믿음의 사람 모세는 잠잠히
우리가 여호와의 큰 구원을 보리라 하였다(출 14:13).
올챙이의 교훈
3학년이 된 둘째가 자연 시간에 올챙이 알을 구해서 개구리가 되는 과 정을 관찰해야 한다고
해서 교사인 친구가 봄나들이를 갔다가 알을 구해 보내주었다.
실내에 두고 4-7일 사이에 투명한 막 속의 점에 불과 하던 알이 꼼지락거리더니
작은 꼬리가 나고 둘러싸인 막을 먹이로 해서 힘을 얻어 헤엄을 치는 아기 올챙이가 되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관찰 일기를 써야 하는 둘째뿐 아니라 온 가족이 시간나는 대로 들여다보며 어린 날,
시골에서는 흔히 보았던 올챙이를 보석을 보듯이 신기해하며 자연의 향취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점점 커가면서 먹이 를 뭘 주어야 할지 잘 몰라 밥알을 조금 주었더니
더워오는 날씨 탓에 금새 물이 썩어 올챙이가 죽어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몇 마리는 살아 남았기에 온도를 적당히 맞춘 맑은 물을 준비해두고 옮겨주려 하자
나의 의도를 모르는 올챙이가 얼마나 도망을 다니는지 쉽게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환경이 나를 좀먹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죽음에 이를 것을 아시고 물갈 이를 하여
나를 살리시려는, 시련 뒤에 숨겨진 그 큰 은혜를 볼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숨고, 반항하고,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시라고 내 뜻대로의 기도를 드리며
주께서 펴신 도움의 손길을 더디게 하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 가를 돌아 보게 되었다.
내가 미물인 올챙이를 위해서 쏟는 관심이나 정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는 그 인자하심을 가슴 가득히 담아 충만함 중에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한부 인생으로
안양 어떤 교회에 용모가 아름다운 한 처녀의 신앙 간증입니다.
그녀 는 소풍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같은 반 친구가 갑자기 길에 쓰러지 게 되자
그 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다가 그만 그 자신도 얼굴에 핏기 가 가시면서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내렸는데 그는 선천적으로 심장의 고동이 점점 약화되어서
죽게되는 보기드문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와 있던 스칸디나비아의 의사팀은 그 학생의 병을 보고서 심장을 계속 뛰게 하는
조절기능 장치를 심장에 부착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위험한 수술을 받아 본 경험이 없어서 의사들은 책을 펴 놓고 연구하면서
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들은 너는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3년마다 수술을 하고 기계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오기를 33살인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그 가정의 재산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머지않아 또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모두 내어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일순간에 고동장치가 멎어서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생명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기 때문에
그 마음에 주님이 살아계시니 그저 기쁘고 감사한 것뿐이라고 한 눈물어린 고백을 읽게 될 때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고장난 심장에 전기장치를 달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교회학교에서 어린 생명들을 위해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그분의 마음에 참된 천국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즈노의 하나님
일본에 미즈노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즈노씨는 세상에서 참 혹한 불구자인 것입니다.
전신이 해삼처럼 퍼져서 수족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며 물론
글도 쓸 수 없습니 다. 그가 의사를 발표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은 눈을 반짝이는 것뿐입니다.
그가 작품으로 발표한 시는 그의 형수의 헌신적인 협조에서 이뤄 진 것입니다.
그가 시를 쓸 때에는 그의 형수가 일본어 50자표를 걸어 두고 막대기로 한 자씩 짚어 내려가다가
미즈노 씨가 원하는 글자가 짚히면 그의 눈이 유난히 반짝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수는 그 글 자를 백지에 써 두고, 또 짚어 내려가다가 다음 글자를 쓰는 식으로 미즈노 씨의
마음에 있는 시가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 한 수를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두 사람의 인내가 필요한 것이며,
그 시가 바로 일본 문단의 걸작이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며, NHK가 특집으로 보도한 것입니다.
미즈노씨의 시집에‘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미즈노 같은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해도 부족할 터인데 말입니다.
파스칼은“사람은 같은 사건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같은 조건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그 조건에서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미즈노 씨가 체 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세상의 어떤 환경 속에서 든
오직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민감성(감사)
만약 나에게 모래가 담긴 접시를 주면서 그 안에 철이 들어있다고 한다면,
나는 먼저 눈으로 찾다가 다시 서투른 손으로 찾을 것이다. 그러나 철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이때 자석을 가지고 모래 속을 찾아보면, 자력에 의해 보이지 않는 미세한 철가루가 붙기 시작한다.
서투른 손으로 찾는 것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자비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자석으로 철을 찾듯이 매일, 매 시간마다 하늘의 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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