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가 살린 어느 간첩 (눈물의 기도는 응답된다 )
6.25 전쟁이 치열하던 1950 년 어느 날, 38 선을 넘어 남하하던 민간 복장을 한 인민군 첩자들이 미군 첩보 부대 요원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결국 유엔군 사령부로부터 이들 첩자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는데 이 간첩들을 처형하기 직전에 유엔군의 한 장교가 한국군 통역 장교에게 이 간첩들 중에 혹시 교회에 나가는 자가 있는지 알아보게 했다.
그랬더니 교회에 다닌다면 살려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십여 명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그러자 한국군 통역 장교가 다시 유엔군 장교에게 잠시 귓속말을 하고 나서 “너희들이 정말 교회에 나갔다면 찬송가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찬송을 정확하게 한 곡이라도 부르는 자만 옆으로 나오라” 고 했다.
그러나 간첩들은 아무도 찬송을 부르지 못했고 결국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 나서 살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했다.
그런데 이들 중에 한 간첩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오더니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찬송가 363 장이었다.
1절이 끝나자 그는 다시 2 절을 불렀다. 2 절이 끝나자 이 간첩은 또 3 절을 불렀고 4 절을 부를 때는 울기 시작했다.
결국 이 인민군 간첩은 찬송 때문에 그야 말로 생사의 갈림 길에서 혼자만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재차 집중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이 사람은 교회 문턱도 밟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교회 나가는 사람을 극심하게 핍박을 했던 사람이었다.
내용인즉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부인이 자기에게 시집을 와서 남편 몰래 열심히 교회를 다니다가 결국 어느 날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다.
불 같은 성격의 남편은 부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창피를 준다면서 온 동네 골목으로 끌고 다녔다.
그러나 주일이 되어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면 부인은 남편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교회로 달려갔다.
이러한 핍박 속에서 부인은 결코 중단 없이 10년 동안 교회를 다녔으며, 남편을 위한 기도도 열심히 하면서 부인의 신앙은 나날이 성숙해졌다.
부인은 부엌에서 밥을 지을 때나 설거지를 할 때나 밭에 나가 일을 할 때나 이 찬송을 항상 불렀다.
그리고 주일 날 남편이 핍박을 하게 되면 마치 분이라도 푸는 기분으로 이 찬송을 더 큰 음성으로 불렀다.
그 때 마다 남편은 “이 천치 같은 여자야, 10년간 교회를 다니면서 노래라고 겨우 그것 하나 밖에 못 배웠느냐!”고 약을 올린다.
그러면 부인은 “내가 찬송만 배우기 위해서 교회 가는 게 아니요. 내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는지 아시오?
하나님께서 언젠가 내 기도를 들어 주셔서 당신을 목사로 만들지도 모르지요.”
남편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 X 이 이제는 실성을 했네.~ 뭐! 내가 목사가 된다고? 별 희한한 소리까지 다 하네.” 하고 버럭버럭 화를 내고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남편은 이 한 가지 찬송만 10년간을 매일 같이 듣다보니 1절에서 4절까지 가사 전부를 저절로 외우게 되었고, 박자까지도 훤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인은 그래도 자기 남편을 살리기 위해 옷가지와 양식을 준비해서 남편에게 빨리 피난 대열에 끼어 남쪽으로 가라고 재촉을 했다.
부인은 형편을 봐서 아이들 데리고 곧 뒤따라가겠다고 하면서 머뭇거리고 있는 남편을 억지로 밀었다.
남편은 그날따라 부인과 딸의 처량한 모습을 몇 번이나 뒤돌아보면서 남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피난길에 오른 그 남편은 인민군 첩자들과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고, 드디어 총살 직전에 그야 말로 죽음의 일보 직전에 자기가 그렇게도 핍박했던 부인이 불렀던 찬송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찬송가 4절을 부를 때 자신도 모르게 설움에 복받쳐 울었던 것이다.
부인 덕에 남쪽으로 넘어 온 이 사람은 회개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는 목사 안수를 받은 다음 날, 군 당국의 협조를 얻어 휴전선 철책 선을 찾아갔다.
거기서부터 도보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자신의 고향 마을을 바라보면서 그는 철책 선을 붙잡고 한없이 울었다.
“여보~ 당신은 10년 세월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핍박만 받으며 살았지요.
교회 갔다 올 때마다 나는 당신의 머리채를 잡고, 그 연약한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지! 온갖 욕설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당신은 말 한 마디 대꾸도 없이 그저 바보 같이 찬송만 불렀지요.
그 때 당신의 그 찬송이 내 생명을 구해 주었다오. 그리고 당신이 기도 한대로 나는 목사가 되었소.
그런데 이제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요! 딸아이는 얼마나 컸는지...
당신은 지금도 혼자 살고 있는지요. 그리고 오늘도 나를 생각하며 부엌에서 그 찬송을 부르고 있는지요.”……
밥 짓는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향 마을을 멀리 바라보면서, 휴전선의 철책 선을 붙잡고 그 목사님은 한 없이 한없이 울었답니다.
우리의 삶이 시련에 부딪칠 때 찬송과 기도를 쉬지 말자. 우리 하나님은 눈물이 변하여 찬송이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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