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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설교]시련을 축복으로     

 

 

 

 

로마서 5:3∼4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시련을 통해 성장하여 성공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련으로 인해 인생이 무너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후자에 속합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 해방의 주역으로서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도전한 결과 51세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훌륭하게 그 일을 감당해냈습니다.

 

성경에도 시련을 통해 성장한 요셉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이런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며, 애굽에서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 등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어려운 환경들을 이겨냈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환경에 굴하지 않고 소망을 붙들었던 결과입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겸손하게 나를 낮추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시련의 원인이 깨달아지며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유다를 다스리던 여호사밧 왕은 암몬과 모압과 세일 왕이 연합하여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절대 빈곤 상태의 기도는 더 겸손하고 간절하며 마음과 생각에 온통 하나님께 드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사밧 왕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무기와 군사가 없는 가운데서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기도는 존귀한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음은 시련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하시는데, 이는 시련이 바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면 밭이 귀한 것처럼 시련이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시련은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련은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련은 축복을 받는 과정입니다. 한결같이 변하지 말고 어려움이 있을수록 하나님의 백성 된 본 자리로 돌아와 굳건히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는 주인공이 되어야겠습니다.

최성은 전주새벽을여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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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Today's preaching ] 주님과의 아침식사

 

 

 

요한복음 21장 15∼19절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최종 시험 과목은 ‘항복’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윗, 사도 바울 등 하나님의 용사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항복의 날’을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배반하고 도망갔던 베드로가 순교자의 반열에 설 수 있었던 것도 항복의 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 베드로는 결정적인 배신을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날 밤, 3년 전 주님을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3년 전에 하던 바로 그 일을 그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고기 잡는 일입니다. 그는 밤새 수고하였지만 빈 배였습니다. 하지만 새벽에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만선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 후 주님은 먼저 호숫가에 내려가셔서 떡과 생선을 굽고 계셨습니다. 그때 배에서 내린 베드로는 주님께 다가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생선이 필요했다기보다 주님께 다가올 명분을 제공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생선을 가지러 간 베드로는 생선을 세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또다시 베드로에게 다가가십니다. “와서 아침 먹어라.” 짤막한 주님의 식사 초청입니다.

식사를 끝내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세 번 사랑한다고 대답합니다. 원어 성서에는 주님께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아가페(헌신적인 사랑)’로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두 번 다 ‘필리아(친구의 사랑 혹은 우정)’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아가페’로 묻는 주님께 ‘필리아’의 사랑 고백은 거절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세 번째 질문에서는 주님이 단어를 바꾸십니다. ‘필리아’로 말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세 번째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필리아!’ 그런데 베드로의 세 번째 대답은 ‘노’가 아닌 ‘예스’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정답을 맞힌 것이 아니라 주님이 베드로의 정답에 맞는 문제를 내신 겁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두 번씩이나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결정적인 주님의 방문은 두 번이지만 매일매일, 숨 쉬는 순간마다 방문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베드로에게 순교를 암시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젊어서는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누군가가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은 원치 아니하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베드로를 항복하게 했습니까.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다시 찾아오시고, 먼저 찾아오셔서 다가설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해주십니다. 아침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베드로의 눈높이에 맞추어 ‘필리아’의 사랑으로 질문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알고 실천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무장된 사람은 속사람이 강건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인격의 깊이와 넓이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작은 사랑의 고백을 쓰시기에 우리의 큰 일도 작은 일이 됩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는 응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작은 사랑 고백을 사용하십니다.

안성우 목사 (로고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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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교회의 사명( The mission of the church)

 

 

 


사무엘상 4장 19∼22절

오늘 본문은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로 진입하던 역사적 전환기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제사장 엘리와 두 아들이 이스라엘을 이끌다 가문이 몰락하고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참담한 상황입니다.

 

한 가문이나 한 시대의 흥망성쇠는 어느 민족에서나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 평범한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의 사람인 성경 기자는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적 시각으로 보고 해석합니다. 이 익명의 선지자는 제사장 엘리 가문의 몰락 이유를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광이 그 가문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이스라엘의 패망 원인도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민족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교훈합니다(21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죄를 범했고, 엘리는 이런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나머지 책망과 교훈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 앞에서 오만하게 행동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탐욕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제사를 멸시하고 제사장을 돕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일을 저지르며 하나님을 멸시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2장 17, 22, 30절). 또 세상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을 전하고 보여주는 사명을 외면했습니다.

이 시대를 기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3장 1절). 엘리 가문은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오늘의 교회, 곧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중히 여기며 신앙생활과 사명을 감당해야 할지를 교훈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광과 자랑은 예산이 많은 것이나 교인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크고 웅장한 건물이나 편리한 시설, 좋은 교육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교회의 영광과 자랑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계신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 사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예배하며,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바르게 전하고, 하나님의 이상 곧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가치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의가 실현되는 평화의 세상을 위해 목회하고 선교하는 교회 상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줘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물질과 인적 자원과 세상 권세까지 가진 막강한 조직과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과 온유와 관용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세상에 구현하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을 우리는 개인을 위해, 교회만을 위해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굶주리고 가난한 형제와 나누라고 주신 물질의 축복을 내 말을 듣고 내 편이 되어야만 준다고 형제의 자존심을 짓밟지는 않습니까?

하늘의 영광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전으로 오시지 않고 순례자의 도상에, 말구유에, 가장 작은 자로, 약한 자로, 낮은 자로 오셨습니다. 그 뜻을 받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강원구 목사(서울 효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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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후회 없는 부르심

로마서 11장 29∼32절
 
모든 사람은 살면서 후회합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며 괴로워합니다. 믿었던 사람이 약속을 저버릴 때 왜 저런 사람을 만났을까 후회합니다. 인생은 크고 작은 후회의 연속입니다. 믿음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약한 우리 인생을 바라보는 주님의 심정을 생각해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실망스러우실까.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여전히 교만하고 순종하지 않는 우리의 행동에 얼마나 후회하실까. 그러나 이는 인간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결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후회하고 실망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부르신 데 대해선 후회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우리를 보고 후회하지 않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른 건 무엇을 바라고 기대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긍휼하심으로 은총을 베풀기 위함입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아는 주님이 우리를 측은히 여기고 사랑으로 안아주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긍휼하심으로 주님은 사역하셨습니다. 소외당하고 죄인 취급 받던 사람에게 자유를 주심으로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연약한 인생에 베푸신 하나님의 가장 큰 긍휼이요 구원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구할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주께서 우리 인생을 바라볼 때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유대인도 오늘날 자신들의 은사를 선용하지 못합니다. 다투며 미워하고 불순종하는 우리도 주님 보시기에는 그저 불쌍히 여김을 받을 대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은 연약한 우리 인생이 다 알 수 없고 그 긍휼하심의 깊이도 다 알지 못합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긍휼의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통해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의를 드러냄으로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태도를 불순종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은 곧 불신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주님은 그 불순종과 불신앙마저도 구원의 기회로 삼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연약한 우리를 부르고 은사를 주십니다. 우리는 은총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으로 인해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불순종과 불신앙을 정당화하고 주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지 마십시오.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남을 비난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참된 신앙과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님을 본받아 긍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 불순종과 불신앙이 판친다 해도 흔들리지 말고 긍휼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모든 지각에 뛰어난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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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설교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데살로니가후서 1장 3∼5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 때 세상에만 속한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선택이 가능합니다. 이는 세상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삶입니다(마 16:18).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빛이 되는 삶입니다(벧전 2:9).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는 삶입니다(고전 1:18).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오직 이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 모두를 축복의 자리로 초청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세상의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뻤고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통치가 그들에게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먼저 이들의 믿음이 발전한 것에 감사했습니다(3절). 많은 사람들이 박해와 환난의 시기는 믿음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속단합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어려움을 통해 믿음의 성장을 이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는 세상에서 직면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현혹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삶을 보호하시고 마침내 가장 선한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에게 연단의 시기는 역설적으로 절망이 아닌 믿음이 자라는 절호의 찬스가 됩니다.

다음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서로 풍성하게 사랑하는 것을 감사히 여겼습니다(3절). 많은 이들이 사랑은 평화의 때에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값싼 사랑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값진 사랑은 어려운 시기에 등장합니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플 때 깊은 가족애가 생겨나고, 나라가 외세 침략을 당할 때 백성들의 깊은 애국심이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박해와 환난은 서로 더 풍성한 사랑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됐습니다.

바울은 끝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다른 교인들의 자랑이 되는 것에 감사했습니다(4절). 바울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서 세상을 능히 이기고 있는 열매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는 세상에 발을 딛고 살되 자신의 시민권이 우선적으로 하늘에 속했다는 것을 알고 사는 사람들입니다(빌 3:20). 그래서 세상보다 하늘의 법을 따릅니다. 눈앞의 이익보다 그 나라의 영광을, 불의가 아닌 정의를, 받기보다 주기를 기뻐합니다. 정욕이 아닌 성령이 인도하는 삶을 누리며 세상의 자랑이 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의 삶은 오늘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요청됩니다. 500년 전 10월 마지막 주간, 마르틴 루터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를 외치며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각자 소명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의 정체성을 굳건히 붙잡을 때입니다. 신자는 결코 세상에 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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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와 죽음의 정보자 -옥한흠 목사 -




(요한복음 14장 9절-17절)

9.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오늘의 설교(미션스쿨)

허무와 죽음의 정보자 -옥한흠 목사 -



오늘의 추천 찬양 (미션스쿨)

은혜의 찬양 / 십자가의 전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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