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헌신예배] 헌신의 은혜

 

 

 

 

제목 : 헌신의 은혜

말씀 : 고후8:1~9

1.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제법 오래전에 경기도 의정부의 미군 부대 옆에 작은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교회는 교인이라야 약30여 명 남짓하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두 분 장로님을 중심으로 교인들이 두 패로 갈려 분쟁이 생겨 서로 헐뜯고 이간질하며 싸움만 교회는 잘 돌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예배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종을 치는 사람이 없어 목사님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꼬마 아들에게 종을 좀 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예하고 달려가 종을 치고는 막 달려오다가 그만 과속으로 달려오던 미군 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것도 모르고 시간이 되어 강대상에 올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는데 조금 있으려니까 뭔가 웅성웅성하더니 교인들이 빨리 예배를 마치고 내려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끝까지 예배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왔고 그때서야 아들이 차에 치어 죽은 사실을 알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고현장에는 경찰과 미군 장성이 와 있었고 아들은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있었습니다. 이를 본 사모님은 졸도하여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미군 장성이 다른 부관들과 함께 와서 목사님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운전병의 실수로 이런 일이 일어난 점 진정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목사님, 무엇이든 목사님께서 해 달라는 대로 정성을 다해 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장군님, 바쁘신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내 아들은 하나님께서 뭔가 뜻이 계셔서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제게 아무것도 안 해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운전병도 너무 책망하거나 징계하지 마십시오.”

이에 미군 장군이 너무나 감격하여 세상에! 이렇게 귀한 주의 종이 있다니 하면서 재삼재사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부대로 돌아가서는 참모들과 목사님에게 어떻게 해 드리면 좋을지를 의논했습니다. 그러자 참모들이 그 목사님의 교회가 너무 초라하니 좀 더 크게 새로 지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결국 전적으로 미군이 부담하여 넓은 부지를 구입하고 초라한 교회는 헐어버리고 크고 멋진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배당 건축되고 봉헌식을 드리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장로님이 목사님에게 예배당 열쇠를 드리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열쇠를 가지고 강단으로 올라가다가 그만 중간에 멈추어서더니 그 자리에 서서 울면서 올라오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어서 올라오시라고 하자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감히 강단에 올라 갈 자격도 없고, 목사님께 열쇠를 드릴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장로로서 허물어져 가는 성전을 건축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기는커녕 싸움만 했는데 어떻게 올라가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를 대신하여 목사님의 아들이 희생 제물이 되어 교회가 세워졌는데 제가 어떻게 이 열쇠를 목사님께 드리겠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내려가서 장로님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그러자 그만 온 교회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다음에 목사님이 장로님의 손을 잡고 올라와서 열쇠를 봉헌하여 헌당식을 마치게 되었고 이후로 교회는 온 교우들이 하나가 되어 교회를 섬김으로 아름답게 부흥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아들이 사고로 죽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야말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목사님은 생명은 하나님께 달렸으니 아들이 죽은 것도 분명의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어진 일로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그 아들을 통하여 성도들을 깨닫게 하여 교회를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뜻대로 되어 목사님의 아들이 희생제물이 되어 교회를 살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것이니 주님 뜻대로 사용하시옵소서 하면서 주님께 맡기며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그럴 때 우리 자신도 생명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6:19,20절을 보십시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래서 롬14:8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이제 내가 살아도’라는 복음성가도 있지 않습니까? 함께 불러 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신앙의 고백가운데 살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 어차피 사라질 것을 주님을 위해서 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영광입니까? 어차피 무엇인가에게 바쳐져야 할 것들, 주님의 생명의 역사에 바쳐진다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이런 마음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2.주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힘껏 주님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게도냐 교회는 그들도 너무나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들 자신과 그들에게 주신 물질도 힘껏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오늘2,3절을 보겠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여러분, 보십시오. 그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이 있었고 극심한 가난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힘에 지나도록 연보를 하였습니다.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환난의 많은 시련가운데서 넘치는 기쁨이 있었다. 극심한 가난이 도리어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환난의 많은 시련 속에서도 기쁨이 넘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극심한 가난이 도리어 풍성한 연보를 할 수 있습니까?

우선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므로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며 적은대로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비록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천배만배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그래도 주님이 주신 은혜가 더 크고 나아가서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은총은 그것을 얼마든지 덮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고 천한 곳까지 오셨습니다. 침뱉음과 뺨맞음과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로마 병정들이 휘두른 채찍에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모와 멸시와 천대와 고통과 아픔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여 영광의 나라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어찌 헌신하고 충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 한 권사님이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권사로서 잘 한 일이 무엇인지 말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권사님은 ‘하나님, 저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고 뒷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믿음 안에서 자라나서 다 결혼하고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래 그것도 귀한 일이다. 그런데 자녀를 위한 헌신은 누구나 다 하는 일이 아니냐? 그보다 나를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인지 말해봐라.

그러자 권사님은 ‘저는 주일 예배도 드리고, 십일조도 드리고, 교회 청소도 하고 점식식사 준비도 하고 설거지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것도 잘 한 일이구나. 그런데 그것도 권사가 아니라 일반성도라도 다 해야 할 일이 아니냐? 그런 것 말고 나를 위해 네가 특별히 한 일을 말해 보거라.’ 그러자 권사님이 유구무언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섭섭하구나. 나는 네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다. 심지어 내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했고 앞으로 네가 와서 살 천국 집도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도 너는 나를 위해서 별로 한 일이 없나 보구나. 너무 섭섭하구나.’

여러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비록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그래도 주신 은혜가 천배만배 큽니다. 게다가 주님은 심지어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2:20절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 게다가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다. 이 큰 은혜를 받았으니 어찌 그 분을 위해서 살지 않겠느냐 그런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이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힘있게 이루어가고, 주의 은혜가 더욱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헌신하는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헌신과 봉사하고 충성하라고 하신 것은 결코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 고귀한 역사에 참여할 때에 죽어가는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또한 그렇게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한 역사에 참여한 심령들에게는 은혜를 주고 기쁨을 주고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요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9절을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오직 영광과 찬양만을 받으시게 합당하신 분이지만 우리를 위하여 비천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까지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난하게 되고,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것은 그렇게 비참하게 끝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하여 인류를 살리고, 부활을 통하여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로서 더욱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망권세를 깨트리고 부활승천하셔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은 힘들고 지치고 초라한 모습으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그런 귀한 사역을 통하여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케 함으로써 부요케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만 부요케되고 우리는 어렵고 힘들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도 감사와 기쁨과 자부심과 보람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또한 그런 귀한 사역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복을 주십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의 상급은 물론 지금 여기서도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마19:29절을 보십시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물론 무조건 전토를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에 영생을 누리는 것은 물론 이 땅에서도 여러 배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평안북도 정주에 백사겸이라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그 마을에 선교사가 들어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이 분은 열심히 교회 일에 충성을 다하며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예배당을 짓게 되었는데 온 성도들이 함께 나와 벽돌을 찍고 땀을 흘리며 일했지만 그래도 건축비가 부족하여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사겸성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땅 1000평을 모두 팔아서 건축비로 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가 완공되었고 백사겸 성도는 땅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교회 사찰로 임명되어 겨우 생활비를 받아 연명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님이 백성도의 신실함을 보고 그의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간 아들은 파커대학과 프린스톤신학교와 대학원을 거쳐 예일대 철학박사, 파커대학 신학박사, 스프링필더대학 인문학박사, 디포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여 연세대교수, 서울대 교수, 연세대총장을 거쳐 제2대 문교부장관을 지내고 정부에서 대한민국무궁화 훈장을 받고 하나님의 부르신 후에는 국립묘지 애국지사의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백낙준 박사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신실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며 자신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책임져 주시고 백배천배로 갚아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심은 우리가 생명의 은총을 누릴 뿐 아니라 이 역사에 참여함으로 생명의 역사를 이루려 하심입니다. 그 생명의 역사는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귀하고 귀한 사역입니다. 그래서 그 귀한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귀히 여기시고 그래서 큰 상급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여전도회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우리 몸과 마음과 시간가 물질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며 살아갈 때에 이 땅에 주님의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주님의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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