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헌신예배]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말씀 : 느12:27-30
제목 :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먼저 오늘 이렇게 성가대 헌신예배를 드리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오랫동안 성가대를 운영하고 있지 못하다가 오늘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성가대를 재조직하여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며 헌신을 다짐하는 예배를 드리게 됨을 무한감사 드립니다.
여러분, 찬양은 우리 기독교인의 삶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지으신 목적을 하나님을 찬양케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43:21절에 보면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해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매일 찬송만 부르게 하기 위해서 지으셨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 지으셨다는 것,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는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의 존재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존재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 그 인생은 진정으로 값지고 의미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원수들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힘과 뜻을 모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고 나서 낙성식을 거행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기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성벽 낙성식의 모습을 보면서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느혜미야는 성벽 중건의 낙성식을 찬양의 축제로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오늘 말씀에 있는대로 노래하는 자들과 악기를 다루는 자들을 전국에서 불러 모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면서 즐겁게 봉헌식을 행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가 이렇게 찬양을 중심으로 낙성식을 거행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겠습니까?
1.하나님께서는 찬양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좀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찬양케 하기 위하여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예를 들어 여러분이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로봇이 내가 의도한바대로 움직이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반대로 여러분이 의도한대로 그대로 움직이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그때 여러분의 마음이 흡족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찬양하는 삶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중의 하나는 역시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의 특징이 무엇이냐 찬양 잘하기로 유명하다는 것입니다. 찬양을 잘한다고 해서 단순히 노래 실력이 좋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기쁘나 슬프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언제나 찬양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느헤미야도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이 찬양을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아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앎으로 찬양의 낙성식을 거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장 지혜로운 믿음 생활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효자, 효녀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모의 마음을 알아 그 원하는 바를 해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님의 뜻과는 반대로 행동하면서 제깐에는 부모에게 효도한답시고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드린들 그것을 부모님이 어찌 기뻐하겠습니까?
부모는 자식과 함께 살고 싶은데 양로원에 보내 놓고 어쩌다 한번씩 찾아간다면 그것이 어찌 효도가 되겠습니까? 부모는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늘 싸움만 한다면 이것이 어찌 효도가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효도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그 원하시는 것을 해드리는 것이 곧 효도인 것입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약국을 경영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들겠습니까? 헌금은 얼마나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은 그 분에게 우선 집에서 약국에서나 늘 찬송을 하라고 했습니다. 손님이 와도 일부러 한번 들어보라는 듯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정말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선은 그 자신이 정말 기쁨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찬양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게 그의 심령속에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정말 늘 밝고 아름다운 가정이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 약사가 늘 그렇게 감사하며 기쁘게 찬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손님들도 훨씬 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업도 더욱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요, 일석이조요,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래서 또한 하나님이 찬양을 그토록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가정에서 찬양소리가 울려 퍼질 때 그 만큼 복된 가정이 없습니다. 물론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자신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그 모든 가족구성원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근심걱정이 물러가게 해 줍니다.
여러분께서도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며 열심히 찬송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성가대원들은 그중에서도 일부러 빼내어 찬양하기 위하여 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찬양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은혜와 기쁨을 선물하는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찬양하는 삶이 쉽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찬양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과 직책을 주셔서 찬양케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찬양하기 위하여 인간을 지으셨는데 그 중에서 또 빼내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으니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아멘하며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연습에 참여하시고 정말 감사와 감격과 기쁨속에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범사에 잘되어지고 기쁨과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족과 성도들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2.찬양의 회복이 진정한 영성의 회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가장 좋았을 때는 다윗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믿음이 가장 좋았을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성대한 찬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시대는 날마다 성전에서 성가대의 우렁찬 찬양 소리가 온 예루살렘에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삼하6:5에서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다윗이 행했던 찬양의 모습을 보십시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대상23:5 이하를 보십시다. 찬양하는 레위인들이 몇 명이라고 했습니까? 4,000명입니다. 25:1이하에 보면 그 중에서 악기를 다루는 자와 노래에 아주 익숙한 자의 수가 288인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찬양대의 규모입니다. 이들은 백성들이 내는 헌물로 생활하였으며 온 종일 성전에서 찬양을 준비하며 봉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시대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온 백성이 참여하였고, 거대한 성가대를 조직하여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찬양의 물결이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 시대로 들어가면서 점점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왕상 8:3-5절에 보면 솔로몬이 아름답고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고 법궤를 옮기는 장면이 있습니다. 법궤를 성전에 안치하면서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왕상8: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구절에서도 하나님께 큰 찬양을 드렸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또 왕상 8:62-64절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광경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낙성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14일동안 낙성식을 행하게 되는데 그때 화목제로 드린 제물은 소가 22,000마리이고 양이 무려 120,000마리나 합이 142,000마리나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거의 10,000마리의 제물을 잡아서 드렸던 것입니다. 하루에 만 마리면 한 시간에 거의 500마리의 소와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 광경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성대한 성전 낙성식에도 이상하리라 만치 찬양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던 것입니다.
또 왕하23장에는 이스라엘에서 다윗왕 다음으로 성군이라고 부르는 요시야 왕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의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우상을 멸하고 율법을 부활시켰던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찬양의 회복에 대한 내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 후로 이스라엘의 신앙은 점점 쇠하여져 갔고, 레위인들은 점점 성전을 떠나 농사를 짓거나 기타의 일을 하며 연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 본연의 임무를 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 생활의 비극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영적인 타락과 함께 찬양이 사라졌고, 동시에 찬양이 식어져 갔을 때 영적으로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찬양과 영성은 비례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은 찬양의 고백입니다. 기쁨이 없이는, 감사함이 없이는 찬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있고, 감격이 있고, 주님안에 있는 기쁨과 감사와 사랑이 있는 자에게는 찬양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하는 영혼이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며, 찬양하는 순간이 우리의 영혼이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 상태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습니까? 아주 간단히 측정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찬양입니다. 즉 내가 얼마나 찬양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은혜 받았을 때는 흥얼흥얼 찬양이 입에서 절로 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식었을 때는 찬양 대신 불평과 불만이 쌓였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아니 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만났는데 어떻게 찬양이 나온단 말입니까”.“목사님도 저와 같은 상황을 당한다면 그런 말씀을 못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합 3:17)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8)”고 고백한 하박국의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죽도록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찬송했던 바울과 실라와 같은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뻐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더더욱 충만히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찬송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설령 어려움이 있더라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라도 찬양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라도 찬양을 해야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거듭거듭 불순종하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를 우리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 크신 권능과 지혜로 우주를 운행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은 음악 이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고백입니다. 직장에서도, 길을 가다가도 찬송을 부르십시오. 기쁨이 밀물처럼 밀려 올 것입니다. 평안이 찾아 올것입니다. 여러분을 보는 사람마다 찬양의 입술에서 피어나는 향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것입니다.
잘 못해도 좋습니다. 음정 박자 가사 좀 틀리면 어떻습니까? 음정이나 박자나 가사를 잘 모르겠거든 작사 작곡을 해가면서라도 찬송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술이 좀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재능이 좀 없으면 어떻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함부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면 실력도 길러야 합니다. 되도록 많이 연습해서 기술적으로 훌륭해야 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좀 실력이 없어도 능력이 없어도 지혜가 부족하더라도 마음을 다해서 기쁨과 감격으로 그 은혜에 눈물 흘리며 찬송하는 그 찬송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 영혼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교가 있고,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그 마음에 믿음이 없고,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고, 신앙고백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가사 박자 음정이 좀 틀리더라도 그 은혜와 사랑과 긍휼하심을 깨닫고 감격과 기쁨과 은혜로 부른다면 그것이 진정한 신앙고백이요, 그것이 진정한 찬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무엇보다도 우리 성가대가 이와같이 귀한 찬양의 사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비록 좀 실력이 딸려도 능력이 좀 부족해도 때로는 바쁘고 힘이 들더라도 언제나 감격과 은혜속에 주님을 찬양하는 성가대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열심히 연습에 참여하고 마음으로 영혼으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받은 바 그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이 사역에 열심히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찬양을 좋아했던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는 성가대가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께서도 늘 찬양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 축복된 인생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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