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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신년 첫주일예배 대표기도[신년기도문]Pray for New Year 2018

 

 

 

시간의 주인되시며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 하신 아버지 하나님

부족한 저희들에게 새해 첫 주님의 날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심을 감사와 찬양과 영광 올립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주님께서 보호하여 주셔서 오늘 이렇게 새로운 결심과

각오로 주님 전에 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 새날을 맞아 벅찬 감격으로 주님 전에 나왔지만,

여전히 저희의 심령이 성결치 못함을 고백합니다.

이제것 성결한 삶을 살기에 게을렀던 저희을 용서하여주시옵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님의 영광을 대할 수있도록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허락하시는 2018년 한해는 늘 새로움으로 거듭나는 한해가 되게하여 주시옵고!

저희들 뿐만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의 성도들이

겸손히,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한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땅이 주님 뜻안에서 자유하게 하여 주시옵고,

나라의 모든 위정자들이 말씀 안에서 주님의 공의로

선정을 배푸는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지난날 교회와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지 못한 것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게을렀던 잘못들을

다시는 범치않는 한 해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새해를 맞이하여 귀한 직분자들이 맏은 소임에 충성을 다하게 하시옵시고

주님의 희생의 사역이 있었기에 일꾼으로 부름받게 된 것을 항상 생각하여

교만과 나태함으로 주님영광 가리는 일이 없도록 언행을 지켜 주시옵소서
 

특별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애 쓰시는

목사님과 교역자분들을 성령으로 붙드시사,양무리를 보살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영육간에 강건함을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미래를 열어 주시고 올해의 첫 걸음을 주님께 향하게 하여주신 은혜를 감사 드리며

우리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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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주일날 교회에 나가던 구집사가 천원짜리 몇장만 주머니에 넣고 지갑은 서랍에 빼놓았다.

 

남편 : 친구만날 땐 챙기는 지갑을 교회갈 땐 두고 가네?

 

구집사 : 지갑을 갖고 가면 헌금할 때 부르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찬송 부를 때 너무 괴롭다구요.

 

남편 : 쯧쯧. 예수님도 당신 기도 소리 듣고 괴로울까봐 응답 주머니 하늘에 묶어 놓고 오시면 어쩌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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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십계명

 

1. 예배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최고의 축복이다 예배 시간보다 귀중한 것이 없으므로 절대 빠지지 말라.(시73:27-28)

2. 예배시간 20분전에 교회에 와서 앞자리부터 의자 안쪽으로 먼저 온 성도순으로 앉아 예배를 정성된 마음으로 드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려라.(요4:24)

3. 먼저와서 기도하고 주보를 보고 중요한 부분은 표시하고 성경본문을 찾아 읽고 믿음으로 예배를 기다리라.(잠15:8)

4. 성령충만 받기 위해 마음 문 열고 찬양 인도자에 따라 찬송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불러 라.(행13:18)

5. 창조적인 예배가 되기 위하여 믿음 안에서 긴장하고 어린 아이들이 예배를 방해하지 않도록 잘 훈련시켜라.(행13:8-12)

6. 예배는 전쟁인 동시에 축제이다. 그러므로 절대 졸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정성껏 드리라. (행20:8-10)

7. 예배는 생명이요 응답이다.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롭게 말씀을 사모하고 고백하는 믿음으로 아멘하라.(호8:6)

8. 신령과 진정된 예배가 되도록 철저히 준비하며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도록 말씀을 들으며 은혜스럽게 아멘으로 크게 화답하라.(고후1:20)

9. 불신자와 세신자에게 매력적인 예배가 되게하며 주님을 사모하게 하고 예배를 생활화 하도록 하라.(시84:10)

10. 통성기도는 믿음으로 손을 들고 크게 부르짖어 간절히 하며 받은 은혜 감사하여 준비된 예물을 봉투에 담아 정성껏 드리고 축복과 승리로 예배를 장식하라.(대상2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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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앞에서는 ‘그 나라’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신약한글성경에 나타나는 교회라는 단어


교회라는 단어가 신약 한글개역성경에 110번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복음서에는 마태복음에만 2번 나오고 있다. 사도행전에 20번, 로마서에 5번, 고린도전서에 20번, 고린도후서에 9번, 갈라디아서에 3번, 에베소서에 10번, 빌립보서에 2번, 골로새서에 5번, 살전에 2번, 살후에도 2번, 딤전 3번, 빌몬 1번, 히브리서 2번, 약 1번, 벧전 1번, 요삼 3번, 계시록에 19번이 기록되어 나오고 있다.


2. 복음서 중에 처음으로 ‘교회’라는 용어


이중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교회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마태복음 16장에서 하셨다. 이때 교회라는 말씀의 배경으로 시몬 베드로에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처음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복음서 중에 마태복음서에만 나오는 교회라는 단어인데 두 번째는 교회 안에 죄 문제가 있을 때 교회에 말하고 라고 했다. 여기서 ’교회에 말’하고 라는 의미는 건물이 아니고 전통적으로 율법에 속한 유대교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3.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물론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사역자들이나 일반 신자들이 표현하는 교회라는 단어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건물에 대해서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면 건물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한곳도 없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 에베소, 골로새, 데살로니가 등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교회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고유명사인 지역명을 따서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신앙지도자를 새워 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바울이나 초대 교회 일곱 집사들 중에 빌립이나 혹은 디모데나 빌레몬 등 사역자로 지역에서 사역하였다는 것을 알 수있다. 예를 들어 에배소 지역에 흩어져 있는 모든 성도들을 교회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도 어느 도시 어느 지역에 흩어진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 교회라고 생각지 않는다. 어느 어는 교회라는 간판을 말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어느 교회 누구에게 세례 받고 누구에게 신앙의 지도를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라는 구조는 건물을 말한 것이 아니고 복음을 받은 성도들을 가리켜서 성전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것을 바울을 고린도교서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즉 성전에 대한 개념이 전혀 다른 것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했다. 


4. 교회는 성도들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래에 더 구체적으로 성전인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을 구분해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역자들과 신자들은 건물을 성전이라는 용어를 생각 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회당’이라는 용어와 같이 현대어로 교회당, 혹은 예배당으로 가르치고 생각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사역자들에게 있지 않은가? 수십 년 전에는 예배당, 혹은 교회당이라는 간판을 보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당(堂)‘이라는 글자가 빠지고 건물을 교회라고 부르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결코 성경적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교회라는 원어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름 받은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하도록 가르치고 있지만 일반 사회인들이 보는 것은 건물이 교회라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거룩한 무리들이 모인 것이 교회다.

 

분명히 교회(church)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셔서 이전과는 달리 구별된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그 근거를 둔 구원의 공동체를 말한다. 그리고 개역성경에 교회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ekklesia)로 ‘부름받아 나온’, ‘부르심’, ‘택함 받은’ 등의 뜻이다. 이 말은 공적인 목적으로 모이는 모임을 가리키기도 했기 때문에 ‘모임’이라고 번역되기도 했다(행 19:32, 41).


6. 교회라는 원어의 뜻


70인 역에서는 히브리어 ‘카할’(qahal)이라는 단어를 에클레시아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주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회중을 의미했다. 때로 ‘쉬나고그’(synagoge)라고도 불렀지만 ‘쉬나고그’는 유대인의 모임이나 건물을 가리키는 회당이라는 의미 때문에 사용되지는 않았다.


신약에서의 교회란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이 말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실 때 처음 사용되었다(마 16:18). 실제로 공동체로서의 새 교회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에 예수님의 보혈에 근거하여(고전 3:11; 엡 2:20-23)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세워졌던 것이다(행 2장). 여기서 교회는 건물이나 기관이 아닌 사람들의 모임인 회중이었다. 이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행 2:42).


7. 신약성경에서 표현된 교회란?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 것’(행 20:28), ‘보이지 않는 교회’(롬 6:3-5; 고전 12:12-13), ‘그리스도 지체로서의 교회’(롬 12:4; 엡 4:3), ‘하나님의 가족’(엡 2:19), ‘하나님의 교회’(딤전 3:15),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한 건물’(고전 3:10-11),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고후 11:2),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하는 양떼’(요 10:11-16), ‘촛대’(계 1:20) 등이라고 했다.


8.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의 모습


또한 바울이 이해한 교회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갈 1:2) 등으로 지역이나 구성원에 따라서 부르거나 ‘아굴라와 브리스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고전 16:19) 등으로 불렀다. 때로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그리스도의 교회’(갈 1:22)라고도 불렀다.


9.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교회관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백성들을 불러내시고 모으셔서(롬 8:3, 29-30) 그 안에 거하시고 다스리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이해했다(고후 6:16-18). 또한 성도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지적하며 성전이 거룩하듯 거룩할 것을 권면했다(고전 3:16-17). 특별히 그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와 그리스도의 모퉁이 돌로 세워진 교회(엡 2:20)를 이루어가기 위해 성도들이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엡 2:21-22).


10. 신약에 나타난 교회에 대한 이름들


신약에 나타난 교회에 대한 특별한 이름들 중에 그리스도의 몸인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의 연합을 강조한 이름이다(고전 12:27; 엡 1:23; 골 1:18).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 대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고후 6:16)이라 불렀고,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엡 2:22)가 되기 위해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했다. 또한 베드로는 신자들이 ‘신령한 집’(벧전 2:5)으로 세워진다고 말했다.


신령한 교회인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교회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도 했다(갈 4:26; 히 12:22; 계 21:2, 9-10). ‘예루살렘’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 장소로 언급되었는데, 신약에서는 교회를 구약의 예루살렘과 유사하게 여겨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으로 여겼다.


그리고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대항하여 진리를 수호하는 곳이라(딤전 3:15)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의 기도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였고,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함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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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조직적으로 제도적으로 하나되려고 하기 이전에 말씀으로 자라가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10).

 

여기서 모두가 같은 말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이것저것 세상적인 것으로 교인들을 가르치지 말고 주님으로부터 배운 순수한 복음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사람의 사상을 가르치면 반드시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사이의 분열이 생깁니다아무리 좋은 사상이라고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아무리 심하게 질책을 하고 아무리 분명하게 지적을 해도 놀랍게 하나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기름부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서택 목사 설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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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예수님의 지체가 된 사람들의 연합

 

 

교회는

예수님의 지체가 된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와 살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을 머리로 삼고

각각 손과 발 등으로

한 지체가 된 사람들입니다.

 

누구든 공동체 안에서는

판단할 수도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눈이 코를 판단할 수 없고,

손이 발을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 안에서 죄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교회이며

진정한 한 몸을 이룬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들을 품어서

예수님의 제자로 만드는 공동체가되어야 합니다.


<조정민의 [왜 예수인가?] 중에서>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닌

사람의 생각을 하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향기가 아닌

사람의 냄새를 풍기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자기만 치장하고,

자기들끼리만 즐기는 모임이라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이웃을 사랑할 때

비로소,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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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박 한 응목사                        
본  문 : 로마서 12 : 1 - 3
제  목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Series 1)
찬  송 : 213, 214, 321, 325, 327, 539

        할렐루야!!
        오늘도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만한 은혜를 내려주시려고 오늘 거룩한 날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사를 충만하게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예>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그 교회의 권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저, 목사님 긴히 말씀 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 예, 어려워 마시고 말씀하십시오’ 라고 대답을 하자 그 권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저 목사님, 저 아무래도 권사를 못하겠습니다.’
        ‘아니 권사님,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까지 잘 해오셨잖습니까?’
        ‘일도 많고 너무 바쁘고 해서 집사하고 바꿔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권사는 못하고 집사는 할 수 있습니까?’
        ‘네 가만히 보니까 집사는 심방도 하지 않고, 또 하는 일도 별로 없고, 이름만 가지고 있어도 되잖습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하기야 우리 교인들 중에는 권사라고 해도 심방 한 번 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속장이라고 해도 속회 심방 한번 하지 않는 속장도 있습니다.
        집사, 권사라고 해도 새벽기도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십일조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달에 감사헌금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안 한다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죽으면 따라서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주님 심판대 앞에 가 보아야 합니다. 주님 심판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의 불신앙적인 행동이 나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따라 행하여 함께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이와 같은 불신앙적인 신앙생활이 남에게 믿음의 상처를 준다거나 실족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8: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잘못하는 사람을 본받으려고 하십니까? 기왕이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을 본받아야 합니다. 도둑놈 따라가면 결국 도둑놈 됩니다. 노름꾼 따라다니면 결국 노름꾼 됩니다. 게으름뱅이를 따라가면 결국 게으름뱅이가 됩니다.
       민수기 16:3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가데스바네아에서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더불어 당을 조직하고 모세를 반역하였습니다. 이때 고라를 추종하는 사람이 250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그의 가족들을 땅을 갈라서 생매장을 시켰고 추종하던 250명은 제단에서 불이 나와 모두 타죽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공존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함께 자라지 않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반드시 가라지를 먼저 묶어 지옥 불에 던져 태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3:29-30)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또한 마지막 때가 되면 악한 사람은 더 악해지고 선한 사람은 더 선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세가 가까울수록 믿음 있는 사람은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믿음 없는 사람은 자꾸만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집니다.
        (계22:10-12)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 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뿐만이 아니라 말세에는 사람들이 완악 하여져서 바른 교훈이나 바른 말 듣기를 싫어한다고 하였습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래서 신앙으로 말씀으로 권면을 하여도 듣지 않습니다.
        주일성수를 하여야 하늘의 신령한 영적 축복을 받는다고 하여도,
        새벽기도를 하여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동행하여 주시며 만사를 형통케 하시는 축복을 받는다고 하여도,
        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물질의 축복을 받고 황충을 금하며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는다고 아무리 설교를 하여도 마이동풍이고 권면을 하여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집사, 권사, 속장은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부르기 좋으라고 붙여준 이름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에서 받은 직분은 그 직분이 어떤 것이든 간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신 직분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멘>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런데도 그 직분에 충성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에 반드시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겔16:5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 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지금까지 쌓여만 가던 모든 죄악은 모두 아침 안개의 사라짐같이 빽빽한 구름이 물러감같이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흘리신 보혈로 씻음 받아 거듭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방법론이 제기되겠습니다만 저는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예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사랑이요 은혜이며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아 멘!>
        만약에 우리에게 예배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허락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렇게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선교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다. 그래서 오늘과 다음 주일까지 예배에 대한 말씀으로
        오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
        오늘 저녁예배에는 “예배를 바로 드려야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다”
        다음 주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지 말자”
        그리고 다음 주일 저녁예배에는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이렇게 시리즈로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자”<아멘!>
        우리 ○○교회 성도들은 기왕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1.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건축케 하신 후에 성소에서 만나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 주시는 곳은 성전입니다.
        출30:6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날 것이라” 고 하셨고 왕상 9:3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시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광야가 아닙니다. 세상이 아닙니다. 골방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안방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교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1) 하나님과 만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삭개오는 예수님을 한 번 보기만 하여도 평생소원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였지만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오시고 그로 인하여 그의 온 가정이 구원받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②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는 죽어가면서도 메시아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영혼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③요한복음 4장 5절 이하의 기록된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은 남편을 다섯씩이나 거느린 한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을 받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으며 그리스도를 온 성에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④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일곱 귀신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나고 그의 인생이 변화되어 일평생 주님을 섬기는 생활로 변화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무덤에 장사지낸 지 삼일 째 되는 날 아침 일찍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2) 하나님과 만나고 예수님과 만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출15:26) 고 말씀 하셨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고치셨습니다.
       ② 여리고성의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③ 열 명의 문둥이를 고치셨습니다.
       ④ 거라사 지방의 군대 마귀 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모두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만나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는 곧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병 고침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는 줄로 믿습니다.<아 멘!>

(3) 하나님을 만날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 창21:14절 이하에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쫓겨난 하갈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가지고 온 물과 떡이 모두 떨어지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죽어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방성대곡하여 울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샘물을 주시고 그의 아들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② 요한복음 6장의 말씀에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아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께서 5병2어를 가지시고 저들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병2어를 가지고 남자 장정만 5천명을 먹였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의 역사입니다. 바로 한 소년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③ 왕상 17:8절 이하의 말씀에는 사르밧의 한 과부가 선지자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그 과부는 엘리야 선지자의 요구를 듣고 순종하였을 때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자연적인 기적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2. 예배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 시간입니다.

        (사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분배받아 집을 나간 아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허랑 방탕하여 허비한 후에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어서 아사 상태에까지 되었습니다. 이때 그 아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이 집을 떠난 후로 아버지는 그 아들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서 그 아들을 얼싸 안았습니다.
        아들이 생각하기엔 아버지가 도무지 용서해 줄 것 같지 않아서 아들은 고사하고 그저 품꾼으로라도 받아만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생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는 아들의 지난 모든 일을 묻지도 않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아들로서의 모든 권한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고,
        또 기억치도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렘31:34)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할렐루야!!

 

3. 예배는 하나님과 화목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였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수 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롬5:8-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복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고 하셨고
        (욥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만이 할 수 있습니다.

 

4. 예배는 우리의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적 생명을 공급받는 귀한 시간입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식물들까지도 성장할 수 있는 양식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영적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오직 귀한 시간이 바로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 시간이야 말로 얼마나 귀한 시간인 것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예배를 소홀히 하는 성도가 있어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 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분을 내시며 저들을 책망하여 내쫓으셨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영적으로 기갈이 들으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 갈급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항상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이 시간마다 순간마다 주시는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하나님은 항상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107:9)
         (사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라”
         그런데 문제는 기름진 것이 눈앞에 있는데 먹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심과 두려움과 세상의 재리와 염려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가 되었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나님의 주시는 신령한 영의 양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22;1-14절 말씀에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혼인 잔치를 베푼 왕이 종들을 불러 청한 사람을 모셔오라고 하였지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절하고 사양을 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청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무슨 이유를 대면서 거절하고 사양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심령 상태는 지금 아사(餓死) 상태인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말세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암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 하여 피곤하리라”
        이와 같은 마지막 말세가 가까이 다가오는 이때에 오늘 예배드리는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은혜를 사모하고 간구하여 항상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5.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1) 신령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요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면 오히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2) 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산 예배는 피 흘림이 있는 예배입니다.
        피 흘림이 있는 예배는 희생과 헌신과 감사가 있는 예배를 말합니다.
        희생이 없고 감사가 없고 제물이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단 쌓는 곳에 강림하셨고, 제물 있는 곳에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또 제물 있는 곳에서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9: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3) 새롭게 변화된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를 받는 것” 은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것으로써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세상 것을 다 끊어버리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성령이 역사 하시고 거듭남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며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옷도 아무렇게나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또 지각이나 하고, 와서는 졸기나 한다면 이런 예배를 진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여 부르짖고 찾아서 만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신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렘29:12-14)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막혔던 모든 문제들이 열려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구원의 문이 열려지고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모든 질병도 깨끗하게 고침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아무쪼록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은총과 축복을 충만히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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