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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성장을 위한 단계별 조건

 

 


1. 승리하는 목회의 조건은 성경말씀과 목회 Tools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씀은 신약과 구약을 말하며, Tools은 전도 ---> 정착 ---> 양육/훈련 ---> 사역의 단계를 거쳐서 교인들을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system은 대그룹인 전체 예배와 소그룹 모임을 통해 이루어진다.

 

2.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교인들의 "가치 전환"을 가져와야 승리하는 목회를 할 수 있다. 세상적 가치관에서 신앙적 가치관으로 전환되도록 목회를 해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난다. 가치관이 바뀌면 아들의 권위(sonship)와 왕권(kingship)이 회복된다.

 

3. 가치 전환이 된 신자들을 통해 재생산(Reproduction)을 할 수 있는 신자를 기르는 system을 구축해야 한다.

4. 첫 단계인 전도는 전하는 자의 언어와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도된 자를 전도자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하고, 양육하여 사역을 감당하는 단계에 이르도록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5. 두번째 단계인 정착을 위한 grouping에만 중점을 두어서 안된다. 100% 정착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정착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른 교인들과의 관계 맺기이다.

 

6. 세번째 단계인 양육에만 중점을 두면 머리만 커지고 열매가 없어진다. 성도들의 마음의 밭을 기경해야 한다. 교인들을 양육할 교육과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교인들의 가치관과 제자로서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7. 네번째 단계인 사역에만 집중하면 "신병훈련소"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전락한다. 사역은 예배 사역과 소그룹 사역, 지역섬김 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새신자에게 사역을 맡기면 빨리 정착하게 된다. 새신자는 다른 교인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원하며 그 조직 내에서 역할을 하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를 원한다. 사역의 목적은 재생산할 수 있는 교인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8. 대그룹 예배는 일방적인 예배이다. 소그룹 예배는 쌍방이다. 이 예배를 통해 성도들이 '은혜'를 받게 된다. 교인들이 은혜를 받게 되면 모든 일에 헌신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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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대해서 
 

 

 

 

예배

'예배'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 '아바드'는 '봉사', '섬김'이란 뜻으로, 영어의 service와 유사한 개념이다. 또 '솨하'는 '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으로, '숭배', '순종', '섬김'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는 '프로스'(~에게)와 '퀴네오'(입맞추다)의 합성어로, 원래는 종이 주인에게 문안할 때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조아리며 발에 입맞추는 것을 가리켰다. 또 '라트레이아'는 '(종으로서) 섬기다'(마4:10)는 뜻을, '레이투르기아'는 예전으로서의 의식(ritual)을 뜻하는 단어이다(행13:2).

한편, 영어로 예배를 나타내는 'worship'은 원래 앵글로색슨어인 'weothscipe'에서 유래한 것으로 'weprth'(worth, '가치')와 'scipe'(ship, '신분')의 합성어인데, '존경과 존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이며,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임을 알 수 있다. 즉,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경외심이 수반된 엄숙한 행위임을 보여 준다(요4:20).

결국 예배란,
① 유일한 예배 대상인 하나님을 의식하며
② 전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경외심을 가지고 경배하고,
③ 하나님의 높으심과 그 은총을 찬양하며,
④ 섬기는 거룩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또한, ⑤ 예배는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가 그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감사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를 찬양하고 기쁘시게 하는 행위'이며,
⑥ '중생한 신자가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 신앙고백, 뜻과 정성이 담긴 헌신과 감사의 예물을 통해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며,
⑦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배하고 섬기며 봉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요4:20; 행16:14; 빌3:13).
또, ⑧ 성경은 '전 인격과 온 삶을 통한 산 예배'를 강조하고 있다(롬12:1).

이상에서 보듯이, 예배의 대상은 거룩하시고 영존하시며 오직 한 분이시고 인격적이시며 영이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대상이시다(출20:3; 신4:35, 39; 사44:6-23; 고전8:4).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소부재하신 분이므로 신자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으나 특별히 성별된 장소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주의 날에 함께 모여 공동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한편, 개혁신학에서는 이 '예배'를 '찬송', '기도', '말씀', '헌상', '성례전'과 더불어 여섯 가지 은혜의 방도 중에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를 구분하는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개혁교회(개신교)에서 예배는, 신자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매우 중요한 의식 중에 하나로 간주한다.

예배는, 정기적으로 혹은 비정기적으로 행해지며, 가정 예배 또는 기도 모임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성직자들의 인도 아래 교회에서 시행된다. 평신도들이 예배를 이끄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만, 교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설교, 축도 등은 목사 등 공식적으로 설교와 축도의 권한이 주어진 성직자가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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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해야하는 이유?

 

 


 

1.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도의 일에 성공하신 비결을 깨닫게 해 줍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1:14,35]

 

2. 기도는 초대 교회의 모범을 따르는 것입니다.

"빌기를 다하며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4:31]

 

3.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고백하게 해줍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40:1,4]

 

4.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도록 해줍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5:14]

 

5. 기도는 환상을 보게 해줍니다.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행11:5]

 

 

6. 기도는 닫힌 문들이 열리게 해줍니다.

"기도를 항상 힘스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골4:2-3]

 

7. 기도는 사단에 대한 승리를 가져다 줍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엡6:12, 18]

 

8.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합니다.

 "이러함으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3:14-16]

 

9. 기도는 담대히 전도할 힘을 가져다 줍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6:18-19]

 

10. 기도는 지혜를 가져다 줍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11. 기도는 염려를 평강으로 바꾸어 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12. 기도는 기쁨이 충만하게 해줍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13. 기도는 과실을 맺게 해줍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5-7]

 

14. 기도는 성도를 성장하게 해줍니다.

"간구할 때 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1:4-6]

 

 

 

15. 기도는 새로운 주의 일꾼들이 일어나게 해줍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 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하라 하시니라" [마9:37-38]

 

16. 기도는 부흥을 가져다 줍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대하7:14]

 

17. 기도는 세상에 영향을 줍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기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라" [시2:8]

 

18. 기도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3]

 

19.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15:8]

 

20. 기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립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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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친밀해지기 위한  방법들 

 

 


이 땅에서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진 인물로 기록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분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열정적으로 닮아 그분과 같이 되길 원하신다.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을 말이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을 닮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최근 하나님과 친밀함을 만들어갈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하나님을 항상 첫번째로 두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눅 2:49)

예수님은 12세 때 이같은 말씀을 하셨다. 어떤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우선하지 않으셨다. 또 우리는 다른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기 전과 하신 후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지셨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기쁨이셨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 14:23)

2. 성경 읽기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 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고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 2:46~47)

12살 된 소년이 모든 성경 교사와 앉은 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틀림없이 성경에 대한 굉장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4장 1~13절에도 주님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마귀의 유혹을 이기신 장면이 나온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신 분이다. 말씀이 육신되신 분이고 말씀을 신실하게 붙드셨던 분이시다.

3. 말씀에 순종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거처에서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말씀이 육체가 되시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신 주님께서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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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12:1~6)


1절 그날에 네가​ 말하기를
4절 그날에 또 너희가 말하기를
이렇듯 반복되이 하는 말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단수가 복수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개인이 그룹으로 바뀐 것입니다.
3절: 구원의 우물들
1절 2절 의 구원의 우물에서
3절 4절의 구원의 우물들로 바뀝니다.

교회에 나오면 초신자나 중진자나 전도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개인이 구원받고 교회로 모여 그룹으로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는 본인이 구원받은 자가 교회에서 공동체가 되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구원의 은혜가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

(첫째) 우리는 조금 타락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거룩한 구석은 조금도 없이 완전히 타락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목숨을 던질 정도는 아니여도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사랑을 주셨으므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답할 수 있다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두번째)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만 하면 당신은 거듭 난것입니까?

체계적 절차적으로 하는 믿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든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확인하는 방법은  중생의 역사가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삶의 방법을 바꿔놓으셨기 때문에 바꾸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고는 하는데 삶의 변화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왜냐하면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바꾸어 놓으셨기에 반드시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개인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각자각자가 분명한 구원의 확신과 믿음위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이를 붙잡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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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구속사의 대혁명이다(요14:12-14)

 

전주시편교회 김영운 목사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일은 구속사의 대혁명이다" 12절 말씀 이는 아버지께로 간다.  이 말씀은 구속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이말은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다이루웠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웠다는 것일까요? 이는 죄인들의 속죄사역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한번의 죽음으로 속죄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세상에 속죄양을 오셔서 더이상 이 땅에 있으실 이유가 없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다는 것은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땅의 모든 것들의 왕이 되는 권세를 위임받게 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 2:9~11 온 우주의 심판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오직 예수님이 행사하신 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중보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예수님 중보자를 의지삼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복음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12절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이 전하는 복음이 더 멀리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홀로 일하셨지만 보헤사로 오신 성령님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감으로 인해서 또하나의 놀라운 일은 기도의 대혁명입니다. 13절 14절오늘의 설고는 기도의 대혁명에 대하여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잇다는것은 우리의 인생사에 대혁명이요. 구속사의 대혁명입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통입니다. 사람끼리의 교통은 대화입니다. 대화라는 것은 격이 맞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격이시고 창조자이시고 절대자이시지만 인간은 인격이고 피조물이니 하나님과 대화를 하려면 격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격을 맞추는 거이 기도입니다. 기도란 격이 낮은자가 높은 격의 하나님을 향하여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대한 낮추어 하나님과의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가 없다면 그나마 기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의 의를 충족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도리어 하나님을 진노를 삽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대신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구속의 모든 마무리를 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모든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할 수 있는 문이 활짝열린 것입니다. 은혜의 대혁명이고 구속사의 대혁명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1.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의 경륜이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나는 악인일지라도 예수님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것입니다.내가 예수님을 믿게되어 나와 연합된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에는 예수님의 중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기도를 중보하기때문에 하나님께 기도가 상달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명예를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잘못하면 이또한 예수의 명예가 우리의 기도에 겸손함이 부족하다면 기도가 예수님의 영광을 해하는 것이므로 기도도 신중하게 충분한 믿음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4. 내기도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새로운 세대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는 것은 내 소망을 내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5.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는사람만이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하는 기도는 허공을 향해서 중얼대는 독백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되기를 축원드립니다. 내이름으로 구하면 반드시 이루리라 아버지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인 예수님 이름으로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잠자고 있는 기도를 일으키고 무릎꿇고  낮은 자세로 엎드려 나는 죄인이고 연약하오나 나의 이 겸손한 마음을 통촉해 주십사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에서 뜻이 이루듯이 땅에서도 이룰수 있기를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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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믿는가? 
 


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믿는가? (신약성경 누가복음 16:19-31)

어느 교회에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초신자가 하루는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정말 있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하지요, 천국과 지옥은 실존합니다.”

그러자 그 성도가 하는 말,
“목사님! 그러면 이제부터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교만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 맞다 했답니다. 그 후 천국과 지옥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설교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설교가 다 중요하지만 그중에 중요한 설교는 구원 설교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설교는 종말론적인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교입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이 지옥과 천국을 알기는 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1년에 한두 번은 반드시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교를 합니다. 올해도 천국 지옥에 대한 설교를 몇 번 언급하는 설교를 하긴 했는데 제대로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때마침 이병철 회장이 질문한 24가지 질문 중 오늘은 14번째 질문을 살펴볼 차례인데 천국과 지옥에 대한 것입니다.

14번째 질문을 다 같이 읽어봅시다.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먼저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두번째는 우리의 양심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죽으면 땅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고 반드시 천국과 지옥 둘 중에 하나로 가게 됩니다. 이것을 이병철 회장님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습니까? 아멘?

천국은 반드시 존재하고 지옥도 반드시 존재합니다. 만약에 천국과 지옥을 부정하거나 어느 한쪽만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단입니다.

“천국이 어디 있어! 이 세상이 천국이고 지옥이지 내세가 있긴 뭐가 있냐?” 하면 그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단입니다. 왜냐하면 천국과 지옥은 성경에 분명히 약속되어 있는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서에서만 18번씩이나 지옥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지옥이 있다는 말을 하면 유치하게 생각합니다. 아예 지옥을 말하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강단에서 지옥과 천국에 대한 설교는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우리 예수님의 입에서 지옥이라는 말이 18번이나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신앙의 핵심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본질과 핵심은 구원에 있고 그 구원의 목적은 천국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죽음 후에 두길 중에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천국에 가시는 것을 믿습니까? 또 불신자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지옥 가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우리 주님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세밀하게 성경에 기록하셨을까요?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을 설펴보면서 천국과 지옥은 어떤 것일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1.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을 보세요.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어느 날 나사로도 죽었고 또 얼마 후 갑자기 부자도 죽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이 세상사람 대부분이 자기가 어느 날 죽을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시간에 사람이 죽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죽고 자년 재해로 죽고 질병으로 죽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하루에 죽는 사람이 수백 명이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오늘 내가 죽을 것이다” 생각하고 죽은 분은 몇이나 될까요?
아마도 몇 명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날이 언제든지 상관없이 떠날 준비하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가난한 나사로가 먼저 죽었습니다.
가난하니 제대로 못 먹고 병들었습니다. 헌데 투성입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란 말입니다. 그런데다 남의 집 대문에 버려진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그의 죽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부자도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가 고혈압 뇌출혈로 죽었는지, 심장질환으로 죽었는지, 암으로 죽었는지, 사인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도 죽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몸에 좋다는 보약, 녹용 등 각종 보약을 많이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죽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옵니다.

문제는 죽음 후가 문제입니다.

나사로는 어찌되었나요?
“이에 그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이것이 중요합니다. 죽었는데 천사들이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라고 했습니다. 둘 다 죽었습니다. 아마도 두 사람의 장례의 모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장례를 치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지옥으로 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머잖아 여러분도 죽고 저도 죽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70년 안에 다 죽습니다. 아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같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90편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좀 길고 짧을 뿐이지 결국은 다 죽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음을 거부할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은 의료 제도가 잘되어 80세, 90세가 넘은 분들이 허다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것은 떠날 준비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9: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육신이 죽으면 심판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심판은 영벌과 영생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거나 대책이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깝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며칠 후에 미국 여행을 간다면 어떻게 하시나요?
여권도 만들고 비자도 내고 가방도 싸고 이것저것 준비하지 않나요?
그런데 머잖아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데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권도 있어야 하고 비자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천국 여권이 있나요? 천국 비자 받으셨나요?

천국 여권과 비자를 내는 것은 교회를 나와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은 항공권을 얻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에 전혀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는 착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는 예수 안 믿어도 당연히 천국 간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이런 사람은 여권과 비자 없이 비행기 타겠다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실제 제가 아는 목사님이 성지 순례를 가려고 공항에 갔습니다. 여행사에서 여권을 꼭 가져 오라해서 서랍에서 여권을 챙겨 갔습니다. 그런데 수속을 밟던 중에 못가게 생겼습니다. 여권을 구여권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유호기간이 지난 여권을 갖고 왔으니 결국 그분은 여행을 못 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주님이 가르쳐 준 방법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면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으로 죄 사함 받아 구원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준비됐나요? 예수님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 바로 여러분을 위한 것임을 믿습니까?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실패, 재물의 많고 적음이 여러분의 내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든 가난한자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공부 많이 한 사람이든 학교 문 앞에도 못 가 본 사람이든 천국 가는 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으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외 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대비하고 믿음으로 천국행을 준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지옥은 인간이 체험하는 최악의 고통이 있는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방송에서 개그 콘서트 같은 것은 있으나 코메디 극장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외국에는 종종 코메디 극장이 있답니다.

유럽의 어느 코메디 극장에 공연 중에 화재가 났습니다. “불이야!” 소리를 지르면 불상사가 벌어질까 염려되어 한 코메디언이 무대로 나와서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극장에서 지금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빨리 질서 있게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자 청중들은 박수를 치면서 참 잘 웃긴다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자 코메디안이 다시 나와서, “아니 여러분, 정말 이 극장에 불이 났으니 빨리 나가셔야 합니다. 이것은 코메디가 아닙니다.” 하고 심각하게 말을 해도 여전히 웃기는 말로만 듣고 좋아하다가 많은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심각하게 들어야 할 설교가 지옥과 천국에 관한 설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 설교하면 농담으로 들으려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실존하고 지옥도 실존합니다. 그러기에 이 설교는 농담이 아닙니다.  

특별히 지옥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불꽃 가운데서 사정없이 고통 받는 곳입니다. 그곳의 고통을 오늘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4절을 보세요.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할까요?  

사람이 제일 고통스러운 고통은 화상의 고통이랍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불꽃가운데 그 화상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지옥에선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사람들이 사우나, 찜질방, 불가마 등에서 워낙 뜨거움에 단련이 돼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온도를 한참 높이기 위해서 보수공사를 한다고 합니다. ㅎㅎ

여러분! 찜찔방 불가마는 뜨거워도 견딜 수 있어요. 왜죠? 힘들면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지옥은 못나갑니다. 한번 들어가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교도소에 구속 수감만 되어도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감옥에서 나오려고 난리를 칩니다. 그래도 세상 교도소는 형벌 기간만 지나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아무리 나오려 해도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뜨거운 고통이 항상 존재하면서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그게 지옥입니다.  

또 하나 지옥이 힘든 것은 그곳에서는 어떤 소원도 이루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기도가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아무리 도와 달라고 해도 안 됩니다. 심지어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찍어 달라는 요청도 거절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는 신자든 불신자든 동일하게 비를 주시고 땅의 열매를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지만 지옥은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응답이 없는 곳입니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그 지옥은 천국을 보면서도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은 비교의 고통입니다. 그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차라리 안 보이면 모르겠는데 눈앞에 천국이 밝히 보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 알던 사람들이 그 천국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가 천국에서 누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단테가 쓴 ‘신곡’이라는 책을 보면 지옥 어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 곳을 들어가는 자는 희망을 버릴지어다”

예수님께서 지옥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옥에 들어가는 인생은 누굽니까? 너무 자기를 모르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어 헛된 것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다 놓고 갈 수밖에 없는 세상 것을 천년만년 누릴 수 있는 것인 줄 알고 죽을 힘 다해 붙잡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준비 됐나요?” “준비 됐나요?” 천국 갈 준비 되셨나요?

여러분 주변에는 아직도 모르고 사는 자들이 많지 않나요? 여러분 부모가 예수 믿나요? 여러분 형제가 예수 믿나요? 여러분 자식들 손자들, 다 예수 믿나요?  

본문에 지옥 간 부자의 호소를 들어보세요.
나사로를 살려서 내 아버지 집에 보내달랍니다. 27~28절을 보세요.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그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형제 다섯을 생각했습니다.

자기 형제들은 아직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니 나사로를 살려 보내어 이 사실을 전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소원도 거절당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교회는 구제 기관이 아닙니다. 복지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영혼구원 기관입니다. 교회는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을 건져내는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지옥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그곳에 가지 못하게 막는 운동이 전도입니다. 믿으면 다행이고 안 믿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시급성과 긴박성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지옥으로 떨어져가는 불신 가족을 하루바삐 건져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언제 세상 떠날지 모르는데 마냥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변에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잖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다면 그렇게 내버려 두었겠습니까?
돌아가시고 난후 후회하면 뭐합니까? 그러니 기회는 지금이고 오늘입니다.
 

3. 천국은 오직 복음을 듣고 믿어야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옥에 간 부자가 요청합니다. 27절~28절을 보세요.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러자 아브라함이 거절합니다. 29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어떻게 하라고요?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났는데도 사람들은 안 믿습니다. 하물며 거지 나사로가 살아난다고 믿겠습니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는 뜻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듣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만이 지옥 갈 사람이 천국갈 수 있게 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도 전해야 합니다.

방법은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찌하든지 일단 듣게 하고 그 말씀이 들려질 때 믿어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들어야 믿습니다. 스스로 믿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믿지 않는 다섯 형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살리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고 오직 복음입니다.

요한복음 3장16절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잊어버리세요.
내가 얼마나 돈이 많은 사람인가 하는 사실을 잊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성공한 사람인가를 잊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건강한 사람인가를 잊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을 준비되어야 합니다.
천국 갈 준비를 하되 나만 아니라 내 주변의 다섯 형제도 준비시켜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상징적인 장소가 절대 아닙니다.
사람들이 죽어서 실제적으로 가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힘써 전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할 곳이 지옥입니다.
그 길과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천국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사람의 풍요가 있습니다.
예수로만 살아가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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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멀면 죄가 가깝습니다

 

 

 

1. 기도가 멀면 죄가 가깝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민족을 위한 기도를 멈추는 것을 죄(삼상 12:23)로 알고
  그 죄를 결단코 범치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않는데 사업이 잘되거나, 기도없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저주일 것입니다.
  요즘 문제되고 있는 청소년 문제까지도 기도의 가뭄이 그 원인이라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기도의 문을 열었으니 주께서
  우리의 갈급한 영적소원과 기도의 문제들 속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2. 소리내어 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부흥회나 기도원 집회시에 은혜를 받았다 하는 간증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 받았다 하는 말속에는 소리내어 하는 이른바 「통성기도」를
  결코 무시할 수 가 없습니다.
  또한 ‘주여 삼창’은 영적 분위기에서의 순종과 화합의 의미가 있고,
  정신을 기도에 쏟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삼위의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호소도
  무시할 수 가 없습니다. 기도는 힘있게 부르짖어야 그 기도가 신선하며,
  그 영이 살고, 믿음의 깨어있는 삶을 갖다 줍니다.

3. 이제 우리의 이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작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면 그 끝도 역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
  입니다.
  그 마음을 잃지 않도록, 아무도 그 마음을 빼앗지 못하도록 기도합시다.
  할 수가 있습니다.

4. 기도는 성결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생활로 하루하루를 살아
  갑니다.
   그러나 반복된 의미없는 나날속에서도 지루함을 갖지 않게 하고
  생활에 진미를 날마다 맛보며 살아가게 하는 비결은 바로 기도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
  도 눈과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하시면서 부르시는 음성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곧 성도들로 하여금 성결한
  삶을 요구하시는 부름으로서 넘어지고 좌절하며 함정에 빠진 추한 모습이 될 때가
  많은 죄인들로 하여금 기도생활을 통하여 깨끗하게 되고, 마치 세탁한 것과 같은
  청결하고 깨끗한 생활로 새롭게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순수하게 하며, 기도는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밝은 빛을 발하고 소금과 같은 역활을 잘 감당하도록 해줍니다.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보다는 실제로 기도하는데 더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생명력 넘치는 의욕과 주님안에서 승리하며,
  회개함으로 성결한 삶을 기도로 이끌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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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견인

 

[최고 최대의 기적] 중에서 이번엔 다섯 번째 글인 "성도의 견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도의 견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성도가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다(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는 칼빈주의적인 교리 중의 하나로,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는 그 어떠한 잘못이 있어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명 '성도의 궁극적인 구원'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견인'이란 성령님이 신자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계시하시어 마침내 그것을 완성하시는 <성령의 계속적 역사>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마지막 영화를 얻을 때까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을 것이며, 언제든지 그러한 사실을 믿음 안에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메시지를 여러 부분(10:28-29; 11:29; 1:6; 살후3:3; 딤후1:12; 4:18; 요일3:9; 5:18)에서 강조합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10:28~29).

 

한편, 이 교리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성도를 거짓 평안과 태만, 방종, 부도덕으로 이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견인 사역에 믿음과 행함과 순종으로 총체적인 협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견인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징계를 가하시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12:6-11)

 

이처럼 하나님의 양자가 된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안 토록 징계를 가해서라도 반드시 아버지에게 돌아오게 하시려고 사랑의 매를 드시는 것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식이 아무리 부모의 뜻을 어겨도 부모는 그 자식을 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타락한 인간도 자식을 버릴 수 없거늘 사랑이 한량없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스스로 택하셔서 양자 삼으신 자식을 버리시지 아니하신다는 약속은 당연 합니다.

단 하나님 아버지는 사람의 부모와 달라서 반드시 그 뜻을 관철하시고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시고 맙니다.

 

이 놀라운 성도의 견인은 단연 최고 최대의 기적임에 틀림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최고 최대의 기적은 다름이 아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믿는다. 는 사실 하나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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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신학] 교회성장과 매스미디어 활용
 최종인

 미래사회의 특징

 미국의 사회학자로 시카고대학과 하버드대학의 교수를 지낸 다니엘 벨(Daniel Bell)은 미래사회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첫째는 소형화이다. 한 예로 컴퓨터를 들었는데, 30년전 에커트(Eckert)와 모취리(Mauchly)가 만든 디지탈전자컴퓨터 애니악(ENIAC, 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은 무게가 30톤이나 되며 1만 8,000개의 진공관을 사용한 이상한 괴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000분의 1로 크기가 줄고 성능은 그대신 1,000는 늘어났다. 동시에 비용도 100분의 1로 줄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 펜티엄급 컴퓨터를 가정에서도 부담없이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1960년대 우주선을 달에 쏘아 인간의 달 착륙을 가능하게 한 컴퓨터는 286급 컴퓨터였다.

미래사회의 두번째 특징은 커뮤니케이션(통신수단)의 발달이다. 이미 우리가 많은 경험을 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지금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통신수단이 발달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일방적 전달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들의 융합으로 커뮤니케이션은 미래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번째는 자동화이다. 지금 기업체 일각에서 진행하는 이른바 '서류없는 사무실(paperless office)'등이 이것을 설명한다. 앞으로 자동화는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혁명적으로 이뤄어 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현대인들의 특징은 욕구와 함께 즉각적으로 처리되야 하기에 점차 자동화의 확산은 가속될 전망이다. 그러면 사회가 자동화 될 때 교회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 하는 점도 우리가 주목할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네번째는 정보의 폭발이다. 인쇄술의 발달로 정보가 소수에서 다수가 공유하게 되었고, 이제는 신문이나 잡지, 서적등을 통해 정보의 대량생산이 가능해 졌다. 아울러 현대의 정보 폭발적 증가는 과학의 확장과 과학과 새로운 기술의 연합, 뉴스, 오락, 실용적 지식의 수요증가등이 빗어낸 결과이며, 앞으로 미래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데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미래 사회의 특징으로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들고 있다. 즉 과거의 사회는 시간과 공간에 구속된 사회로 역사, 전통, 종교, 위계질서등이 지역과 더불어 중요한 사회요소였으나 미래에는 통신과 운송등의 사회간접자본의 확대로 공간은 지구전체로 확장되고 시간개념은 "24시간주기"의 개념을 넘어선다.

다니엘벨의 지적과 함께 필자는 미래사회의 특징을 "매스미디어 사회"라고 정의하고 싶다. 미디어는 새로운 르네상스라 불린다. "현대는 힘이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또 "Cable- Bringing the Future Home"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꿈같은 미래의 행복한 가정을 케이블(Cable)이 주도한다는 캠페인이다. 그만큼 이제 미디어에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느 글에서나 말에서도 미디어란 단어를 쉽게 찾아보게 되었다. 최근 장로교 총회에서 통합측 부총회장으로 선출된 바 있던 정복량 목사는 당선소감에서 현대는 커뮤니케이션 시대이므로 언론 매체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통해 지원하고, 활용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일반 언론에 대해서도 별도의 언론대책위원회를 두어 매스컴 전반에 관한 선교 차원의 대비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총신대의 목회대학원은 96년 겨울학기의 주제를 "정보화 사회와 목회"로 정하여 현실 가운데 부딪히고 있는 정보시대속에서 목회현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다루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미디어의 영향하에 생활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앞으로 몇년내에 지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으리라 예상한다. 컴퓨터와 첨단 통신기술의 결합으로 정보의 생산, 처리, 공급의 괄목할 만한 확대가 가능해 짐으로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새로운 목표와 가치 체계가 요구되고 기대치 않은 충격과 적응에의 긴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마누엘 카스텔스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테크놀로지 시대를 살아가는 특권과 책임감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이처럼 미디어의 유입이 인간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아울러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면 사회의 불균등을 심화하고, 문화의 정체성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차 미디어, 특히 방송과 같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교회 사역을 적극적으로 펼치려 하는 이들은 뉴 미디어의 사용에 따른 긍정론과 부정론을 아울러 숙지함이 좋겠고, 미디어를 통해 교회 사역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매스미디어의 도전

 현대인들은 누구나 지금까지 그래왔거니와 앞으로 계속하여 미디어앞에 노출될 전망이다. 미디어가 싫어서 일부러 산속으로 들어가 살지 않는 이상 누구든지 매스미디어의 도전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현대 어디에서나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매스미디어의 특징을 구분한다면,

1. 실재적이다.(Presence) 다시말해서 과거의 것이 아니라 지금의 것이며, 이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현존하는 것이다.

2. 상호작용한다.(Interactivity) 매스미디어는 미디어 매체끼리 서로 작용한다. 그래서 경쟁적 관계이기도 하고, 또는 서로 피드백하며, 상호보완적 관계이기도 하다.

3. 높은 정보역량을 가진다.(High information density) 매스미디어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없는 혹은 간직할 수 없는 높은 정보역량을 가지고 있어 필요할 때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4. 즉각적이다.(Instantaneity) 매스미디어는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에 얼마든지 정보를 흘려보내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접속매체만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미디어를 접할 수 있다.

5. 흥미롭다.(Conviviality) 매스미디어의 특징은 흥미에 있다. '매스'라는 말이 성립되기 위해 다양한 집단에게 많은 미디어를 흘려보내기 위해 '흥미'를 무시할 수 없다. 현대인들의 관심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 미디어는 매스미디어가 될 수 없다.

6. 다양하다.(Multiplicity) 미디어의 특징은 다양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말과 그래픽, 사운드, 비디오등이 결함되어 다양하게 펼쳐질 때 현대인은 그 미디어를 받아들이게 된다.

7. 넼트웤되어 있다.(Networking) 과거의 미디어가 일방통행적이었다면 매스미디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정보를 과거와 같이 독점할 수 없고 이젠 어디서나 접근하여 정보를 빼내거나 추가할 수 있다.

8. 소비자화되어 있다.(Customization) 매스미디어는 일방적으로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는 각 유저가 원하는 대로 다양하고 많은 계층이 이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런 매스미디어가 펼쳐진 가운데 앞으로 교회가 만날 대상인 새로운 세대들은 먼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꿈을 가진 사람들이며, 인식적이기보다는 감정주의에 치우치며, 격식을 따지기 보다 활달한 사람들이다. 저들은 따라서 과거의 어느 누구보다 매스미디어가 자신들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기꺼이 만나려 한다. 이런 특징을 가진 매스미디어의 도전 앞에서 교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매스미디어의 활용

 기독교는 "책의 종교"라고 불리울 만치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성경 출판 자체도 매스미디어의 부류에 들만큼 교회안에서 매스미디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크다. 여기서는 매스미디어를 교회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매스미디어를 접하는 교회의 입장 역시 다양하고, 또 지도자들 마다 개성이 있고, 이론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통괄적인 방법만을 소개하기로 하고 각 개인의 취향에 맡긴다.

1. 가상공간의 활용
 인터넷의 획기적인 확장으로 이젠 누구든지 가상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교회안에서 이 가상공간을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미국에서만 매일 15,000이 신규가입하고 있는 인터넷만 보아도 본래의 정보교환의 목적과는 달리 음란싸이트나 폭력게임등에의 접속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이 인터넷에 이단들이 깊숙이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얼마전 문제가 되었던 '천국의 문' 사건 여기 저들은 WWW상의 `천국의문'홈 페이지에서 교주 애플화이트(Applewhite)는 예수가 천국으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고 설교했던 것처럼 자신이 바로 2000년전 예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96년 10월부터 `렙'(Rep)이라는 사용자 명으로 자신의 주장을 "신을 위해 죽는 시간?" 이라는 제하의 글에 담아 자살, 우울증, 약물남용과 관련된 인터넷 뉴스그룹들에 집중 배포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다져왔다고 한다. 교회는 하루빨리 이 가상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선교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2. 정보의 획득과 분산
 현대사회에 있어서 정보의 획득은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실례로 현대종합상사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1세기의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으로 "정보수집이 뛰어난 사람"과 "창의적인 사람"을 꼽을 정도이다. 예를들어 선교를 위해서도 정보수집은 필요하고, 교회 전도대상자를 얻기 위해서도 정보를 얻어야 하며, 보다 효율적인 교회의 교육, 훈련과 목회 사역을 위해 정보 수집과 분산등 정보교환은 꼭 필요하다.

3. 복음의 접촉점
 마샬 멕루한은 "미디어가 바로 메시지이다"(The Medium is the Massage)고 주장했지만 교회가 아무리 매스미디어를 복음전달의 도구로 사용한다 해도 미디어가 메시지일 수 없다. 메시지는 바로 복음이요, 성경이다. 교회가 만약 미디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바로 "복음의 접촉점"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복음전파에 있어서 오늘날 매스미디어는 대단한 영향력을 기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와 같이 선교사를 파송하여 일대일선교를 갖는 것보다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한다.

4. 밝은 사회가치관 조성과 기독교문화 전파
 미디어의 특징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힘있는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미디어가 '매스'로 실려질 때 진정한 가치관이나 윤리관에 어긋나는 경제원리, 혹은 정치적 집단의 유익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교회의 매스미디어 활용은 여기에 반해서 사람들의 존엄성을 높여주고, 밝은 가치관을 조성하도록 사회구조를 바꾸도록 노력한다.

이제는 바른 기독교 문화를 생산하도록 교회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한 시민단체를 구성하거나 교단마다 대책위원들을 두어 대책을 마련하고 변화에 대응할 체제를 갖추워야 한다. 타락하기 쉬운 국민정서를 기독교정서로 정화하도록 노력할 때이다. 믿음있고 재능있는 많은 청지기들이 미디어 시장에 참여하고, 교회가 그러한 일들을 적극 후원해야 한다. 양질의 방송, 영화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적극 홍보해야 한다. 미디어는 그 매체 특성상 영화, 음악, 문학, 언론, 출판등 많은 문화 예술의 장르에서 종합되는 종합예술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많은 채널에 공급될 문화예술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가 그러한 문화예술을 장려하고 훗날을 내다보고 인재를 키워낸다면 장차는 상당한 선교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5. 예언자적 도구
 매스미디어는 그 자체속에 과장과 거짓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이야 말로 교회가 교회의 본연의 진실함과 예언자적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교회에서의 매스미디어 활용은 단지 교인들의 훈련과 교육등 제사장적 기능뿐 아니라 세상속에 진리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기능을 훨씬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매스미디어의 문제

 교회가 매스미디어에 접근할 때 매스미디어에는 양면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복음전파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매스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상 부정적 측면도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1. 인간성의 상실

 매스미디어를 누구나 쉽게 말하고 접할 수 있지만 문제점도 많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우선 대표적인 역 기능은 뉴 미디어라고 불리는 과학기술의 결과로 만들어진 미디어의 확산과 정보의 홍수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 창조적 사고의 결핍 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뉴 미디어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말미암아 지금과 같은 면대면(面對面)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자취를 감추게 될 때 그에 따른 소외감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일례로 구태여 은행을 찾지 않아도 모든 업무를 집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이른바 홈 뱅킹(Home Banking) 시스템이 거의 구축되어 있는데도 은행의 창구 직원들과 몇 마디라도 주고받으려고 은행까지 가는 노인들의 경우이다. 그것은 뉴 미디어의 확산으로 야기되는 인간적 소외감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메이어(Meier)라는 사람은 커뮤니케이션 스트레스(Communication Stres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것은 현대인의 생활 환경이 자연적 오염과 업무의 과다로 인해 소비적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데 그 결과 자신과 무관한 정보에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른바 '미디어 소비현상'의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보의 무관성(irrelevance)은 곧 정보 감각의 둔화현상(information-incentive)을 파생시킨다. 사실 현대 미디어가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는 메시지들의 대부분은 그 속성상 선정적이고, 일시적이며, 모조화된 이벤트가 상상하다 는 지적은 교회 지도자들이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러한 미디어 발달로 인해 오히려 현대인들의 인간성의 파괴와 상처는 회복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교회가 무분별하게 미디어를 골라 적용한다고 할 때 역시 이 미디어에 접촉하지 못하는 계층이 있으며, 또 너무나 미디어에 노출된 나머지 미디어에 중독되어 본질적인 교회,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특성을 간과하거나 우선순위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있을 수 있다.

2. 개인정보의 노출

 매스미디어 사회의 두번째 역기능으로는 뉴 미디어의 대대적인 보급으로 정보 통신의 고도화는 역으로 개인의 사생활과 정보가 노출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번 '지존파'살인자 집단들에게 강남의 대형 백화점 고객명단이 제공되어 큰 논란을 빚은 일이 있다. 지난 1990년에 폭로된 보안사의 대민 사찰 전산자료나 전화국 교환대에 설치되었다가 철거된 '블랙박스'가 국민 감시통제 목적으로 악용되어 왔다는 지적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개인에 대한 인구사회학적 정보나 개인의 소비행태에 관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기업의 마케팅 목적으로 남용될 때에 개인의 사생활 침해라는 우려를 낳게 한다.

3. 정보공해

 뉴 미디어의 확산은 사회내의 정보 유통량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특히 활자 미디어의 경우는 그 성장도가 점점 낮아지는 반면, 전자, 통신및 영상계 뉴 미디어의 정보 유통량은 급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막대한 정보 산출량으로 특징 되어 지기도 하는 정보 사회에서 '정보폭증' 또는 '정보공해' 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지는데 이같은 표현은 곧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정보 부하량(information load)에 관한 행동연구에 의하면 정보 투하 량과 그에 대한 행동적 산출 결과 사이에는 ∩ 곡선의 관계로 나타난다. 즉 정보 투입이 늘게 되면 인간이나 조직의 정보 처리능력도 함께 증가되는데 문제는 계속되는 정보 처리능력이 한계점에 달하면 정보 수용및 이해력이 파괴되고 심지어는 예기치 않던 비도덕적인 적응행위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4. 기존의 가치관과 권위의 상실

 또한 뉴 미디어 가운데 영상 미디어의 확산은 권위에 대한 상하 인식을 갈수록 둔화시키게 된다. 기존의 상업 텔레비전은 물론 24시간 계속되는 뉴스 채널이나 전문 정보채널은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자들의 개인 신상은 물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 까지도 소상히 노출시킨다. 이같은 반복되는 노출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권위에 대한 신비를 점차 저하시킨다. 지도자들에게 신비와 기대를 갈구해 오던 대중은 이제 텔레비전 앞에서 그들의 외모나 사생활에 관심을 쏟게 되고, 그들의 스캔들에 관심을 보인다. 따라서 원하던 원치 않던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인물들은 이제 그들의 사생활이 노출됨으로 엄청난 사생활의 피해를 자연히 입게 된다. 물론 일부 정치인이나 인기인들 가운데는 일부러 사생활을 노출하고, 스캔들을 만들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인기작전및 언론플레이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 지도자들의 경우 영상 매체의 위력을 알기에 그 정치적 문제나 현황을 성실히 해결하려는 자세보다는 어떻게 인기를 가져 볼까? 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된다. 나아가 훌륭한 연기력을 인정받기 위해 완벽한 '영상무대'를 연출하기도 하는 것이다. 당장에는 그런 쇼와 연기가 통할 지 모르나 그 결과 정치권 모두의 불신과 지도력의 권위에 대단한 상처를 입게 되고야 만다.

교회의 경우에도 이것은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아무리 언론의 자유를 말하고 정보의 공유를 말한다 해도 재판하는 법정의 모습은 방송되지 않는다. 또한 국가 기밀에 관한 중대한 사항을 다루는 중요한 회의나 정책결정은 비공개로 열리며 언론에 노출시켜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다.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의 신성함이 있고, 그것은 때로 비밀스럽게 보존될 때 세인의 경외심을 받게 된다. 지금은 PC통신을 이용하여 개 교회 목회자의 설교자료가 공개되므로 평신도들도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고, 성도들의 인적인 신상정보나 헌금액수, 가족사항들이 목회자들의 교회 행정 담당자의 부주의로 교회안팍에 노출되고 있다. 물론 설교 집이 출판되어 나오는 때이므로 설교자료가 노출되는 것이 무슨 문제이며, 교인들의 친교 확대로 이미 알만한 것은 다 아는데 무슨 비밀 취급하듯 해야 하나? 하는 질문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목회자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 노출되는 것은 결코 평신도의 신앙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며, 교인들 가운데도 익명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가정정보가 교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때 그것은 무신경하거나 무책임한 질문이 된다.

5. 문화유입과 종속

 뉴 미디어의 확산과 관련되어 논의되고 있는 또 다른 쟁점은 집단간 혹은 사회 계급간의 정보 격차에 대한 우려와 문화 유입현상이다. 뉴 미디어의 주 이용자인 고학력, 고소득층이 뉴 미디어를 통해 정보의 독점과 정보 처리및 소화 능력을 극대화한다면 이들과 서민 대중간의 정보 격차는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뉴 미디어가 문화종속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제3세계국가들의 경제가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지배되듯 제 3세계의 매스 미디어 역시 다국적 정보 기업들의 직, 간접인 압력아래 세계 자본주의의 상업적 영향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TV프로그램을 통해 자국문화를 아시아 각국에 수출하고 있다. 후지 TV와 산요(三洋)전기 등은 대만, 중국, 홍콩은 물론 중동 지역까지 프로그램을 팔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음악, 영화, 패션 등이 제3세계 국가들에 수입되면 해당 지역에 수입국의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른바 선진국가들의 뉴 미디어의 가치관은 기독교적 가치관과 곧잘 대립한다. 오락, 향락, 소비주의등의 문화 패턴은 교회가 갖고 있는 종교적 이미지를 낡고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하기 쉽다. 또 뉴 미디어의 가치관은 성도들이 갖고 있었던 순수한 종교적 심성을 바꾸어 놓고 있다. 주일오전 예배 시간대에 방영되는 오락물을 통해 성도들은 이제 목사의 설교를 통해 성경의 인물들에 대해 듣고 감화를 받거나 성경말씀으로 인격의 고양을 꾀하는 대신에 성공주의, 한탕주의, 쾌락주의, 새로운 스포츠 스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텔레비전의 경우에는 상당한 우려를 갖게 된다. 네트웤마다 주요 방영시간대에 섹스와 폭력물을 방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첨단 미디어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경제, 하이텍크, 과학 등의 정보들은 마치 새로운 종교와 같이 침투력이 대단하여 기존 종교를 대체하여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나 외국의 영화들 가운데는 반 기독교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뉴 에이지 홍보영화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시청하다보면 시청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반기독적 성향에 물드는 것이다. 이처럼 뉴 미디어의 등장과 매스 미디어의 양산은 전통적 공동체사회를 해체시키고 이익사회의 등장으로 대체되며, 개인적 인간관계 역시 이익동기의 인간관계로 바꾸어 놓게 된다. 여기서 종교적 집단은 상당한 영향을 입게 되는데, 개인은 지금까지 사회적 정체성이나, 생활 양식, 그리고 사회적 가치의 기준을 이제는 종교적 집단에서 구하지 않는다. 이제까지의 국가나 지역에서 받아들이던 종족문화를 제치고 대중문화가 들어가 종족문화의 특성을 잠식시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이미 종교는 생활 양식과 질을 바꾸어 놓을 만한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뉴 미디어의 부정적 기능을 꼭 직시했으면 한다.

제언

 이제 마치면서 교단과 교회를 향해 몇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교단 컴퓨터 통신망의 설치

 이미 한국교회는 한국교회네트및 크리스챤네트등 몇개의 기독교정보 통신망과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등 일반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기독교 통신망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자료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이것은 도시의 목회자들보다는 지방의 목회자들에게 호평을 받는데 그 이유는 각종 설교자료나 교육자료, 논문자료, 기독교 정보들을 싼값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얻어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교단내에 이미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컴퓨터를 갖고 있으나 설교작성이나 교적관리등의 범주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활용을 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만약 우리 교단에서 기존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CUG라고 불리우는 패쇄 사용자 그룹 방식의 통신망을 구축하여 교단의 소식은 물론이며, 공지사항, 선교소식, 교회 개척지 정보, 교회성장 정보, 교단 임역원의 화상 회의와 목회자 연속교육이나 세미나등을 위해 활용한다면 지방에서 일부러 서울 총회본부에 까지 올라올 것 없이 지역교회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공지사항을 접수하거나 바로 회의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교단본부에서 수많은 문서를 만들고 배포하는 비용을 줄인다는 예산절감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교회의 특성상 만나야 무언가 공감대가 이루워지고 얼굴과 얼굴을 대해야 일이 풀린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으나 앞으로 점점 심화되는 교통난을 예상할 때 함께 만나는 일은 점점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어 빨리 통신망을 만들어 화상회의와 멀티미디어를 교회 교육과 목회 정보교환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다.

미디어 센터 설립

 통신망구축과 아울러 교단이 할수 있는 정보화 전략으로 미디어 센터를 설립하는 것을 제안한다. 21세기는 분명 미디어세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므로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고 전도전략을 논할 수 없다. 우리 성결교회는 이미 초창기 '활천'의 창간으로 활자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였다. 현재 각 교회는 거의 모두가 주보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교단이 미디어 센터를 만들어 여러가지 교육 도구와 교회소개와 홍보, 새신자가이드, 전도지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을 도와 준다면 개 교회들로서 무척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미디어 센터에서는 멀티 이미지 프레젠테이션(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교회소개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할 수 있을 것이며, 현재 몇몇 교회에서 설교전파용으로 사용하는 오디어, 비디오테잎 제작을 도와주고, 교회의 새신자및 각 기관용 교육 교재를 만들어 보급할 수도 있다. 교회나 교단 역사와 여러가지 회의록, 예산안등을 시디 롬(CD)으로 제작하여 보관하게 한다면 나중에 훌륭한 교회사의 자료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또한 이 미디어 센터를 이용하여 교단신문을 제작하고, 잡지를 만들며, 교단 출판물을 제작 할 수 있겠고, 사진을 보급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젼의 교단 홍보용 프로그램, 혹은 선교용을 제작하여 활용할 수 있다. 또 라디오와 텔레비젼을 통해 자신의 설교를 전파하기 원하는 목회자들을 위해 녹음, 촬영용 스튜디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상당수 대학처럼 그리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훌륭한 시설을 만들어 이용할 수 있다. 우리 교단도 일반 기업들이 예산을 출연하여 대학을 지원하는 이른바 '산학협동'식으로 교단에서 신학교를 지원하여 현재의 신학교 내에 미디어 센터를 설립한다면 학생들의 실습용, 교수들의 연구용과 아울러 교단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작받는 일거이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스미디어 대책위원회 설립

 이미 여러차례 제안한바 있지만 하루라도 빨리 매스미디어 대책위원회를 교단내에 설치하여야 한다. 사회 생활중에서나 혹은 목회현장에서 실감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현재 보여지는 신문, 잡지, 방송등 매스 미디어들과 전화나 컴퓨터 통신을 이용한 음란 퇴폐적인 정보가 어린 청소년들 층에 널리 전파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국민 정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줄 뿐 아니라 필자는 "21세기의 이단은 반 기독교 문화운동이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금 통일교나 여호와의 증인, 혹은 구원파나 몰몬교등을 주목하며 적극 대처하자고 목청놓는 분들이 적지않지만 실은 청소년들과 교회안의 젊은 이들층에 널리 퍼져있는 '반 기독문화'는 이들 이단보다 더 악질적이면서도 방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반 기독문화운동'은 텔레비젼과 라디오, 아이들이 즐겨보는 스포츠 신문, 가수, 모델, 텔렌트등 연예인들과 스포츠 우상들 가운데 널리 확산되어 있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아름답고 순결해야 할 교회 청소년들과 새벽 이슬같은 교회청년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고, 가정윤리를 파괴하며, 기존 도덕과 질서에 대항케 한다. 이들 반 기독문화에 젖은 청소년들은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부모의 권유로 나와도 무관심하거나 이미 교회안의 다른 청소년들에게 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교단에서는 지체하지 말고 매스미디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이들 미디어 매체들을 감시하고 반 기독문화운동의 확산을 저지하며, 이들 매체들이 바르게 활용되도록 격려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21세기를 불과 몇년 남겨둔 지금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자문하길 바라며 위의 세가지 - 컴퓨터통신망설치, 미디어센터 설립, 매스미디어 대책위원회 설립- 등이 하루 속히 이루워져서 알차고 견고한 교단, 모든 목회자가 기뻐 사역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교단, 서울과 지방에 똑같은 정보가 같은 시간대에 전파되는 선진화된 교단, 장래의 문제와 아픔을 예방하고 성도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교단, 미래 한국교회의 지도자를 키우는 아름다운 교단, 그리고 활발하게 부흥되는 교회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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