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바른 예배는 과연 어떤 예배인가?

 

이승구교수​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예배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에 철저히 의존하는 예배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성자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의존하여 드려지는 예배가 되는 것이다. 한 순간도 성자의 구속 사역에 의존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가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항상 성자의 구속 사역에 의존하여 드려지는 것이고, 인간의 공로와 힘씀에 의존하여 드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주교회의 종교 행위들과 개신교회의 종교 행위의 근본적 차이가 여기서 나타난다. 천주교회의 신인협력적(神人協力的)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는 그들의 구원론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 행위 전반에 대한 이해에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천주교회에서는 주입된 은혜에 근거한 인간의 종교적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든지 하나님 앞에 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 교회에서는 구원 이해에서 철저히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칭의함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이신칭의적 이해는 구원론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행위들에 대한 개신 교회의 이해에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개신교회에서는 우리의 어떤 종교적 행위, 예배나 기도나 금식이나 그 어떤 종교적 행위도 그것이 하나님께 공로가 되거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라고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상당히 많은 개신교도들이 우리의 종교적 행위가 하나님 앞에 어떤 공로를 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이 소위 개신교도들이 얼마나 개신교의 원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공적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무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것이라고 여겨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가 어떻게 하나님께 받아들여 질 수 있게 되는가? 여기서 다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공로에 대한 의존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처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존하는 우리들은 끝까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영원까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없이는 우리가 도무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 누가 하나님의 사유하심이 없이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있단 말인가? 주께서 죄를 감찰하신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죄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죽음을 자초할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서서 경배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이 온전한 것이 되어 우리를 감싸 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에 의존하여 그것으로 싸여 져서 속함을 얻고 감히 하나님 앞에서 경배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도 그것이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이 먼저 그리스도의 피로 정화되고 거룩해 져야 한다는 것을 칼빈은 강조한다. 우리의 기도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은 중보자의 희생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만이 아니라 우리의 예배 행위 전체가 모두 다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의존하며 그것에 근거해서 드려지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 찬양, 감사, 예배의 모든 것이 종국적인 더 큰 제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존한다는 것을 칼빈은 매우 강조한다(Institutes, 4. 18. 16).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에 의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님께 온전히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우리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가지고 있기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연결시켜 주셔야만 우리가 그 십자가의 공로를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우리를 하나님께로 들어 올려주시는 이 일을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다. 예배의 한 부분인 기도의 경우에도 칼빈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인도해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바르게 기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도만이 아니라 예배 전체가 성령님의 인도와 감화 가운데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서도 우리는 성령님께 철저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성령님께 의존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님에게 의존해서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적용받을 수 있다. 성령과 연결된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된 사람이다. 따라서 참된 영적 예배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존하고 그를 부르며, 자신을 부인하고 순전한 양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방식으로라도 자신과 자신이 하는 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영적 예배를 하는 것이 아니니, 영적 예배는 성령님을 의존함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성자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속에 근거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진정한 경배는 삼위일체적 사건이다. 이런 특성은 설교 전에 하는 조명을 위한 기도에서도 잘 드러나는 바, 칼빈의 설교 전에 한 기도의 한 예를 인용해 보기로 한다:

  

전능하시고 은혜로우신 아버지여! 우리의 구원 전체가 당신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아는 지식에 근거하오니 이제 당신님의성령님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여 주셔서 우리의 마음들이 모든 세상적 생각들과 육체에 집착들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주시어, 우리가 당신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며, 우리들에 대한 당신님의 은혜로운 뜻을 인정하게 하시며,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지한 기쁨과 찬양으로 당신님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시며, 당신님을 영광스럽게 하게 하소서. (Bard Thompson, Liturgies of the Western Church [Philadelphia: Fortress, 1961], 209, Butin, “Preaching as a Trinitiarian Event," 220-21에서 재인용, 강조점은 주어진 것임).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한 후에는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있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행위의 한 부분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속이 열매를 내는 이 삼위일체적 예배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드러나게 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예배신학으로서의 레위기 이해

 

김중은 교수(장신대/구약학)

 

* 본란에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생략되었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목 차

 

1. 신학적인 목회와 신앙적인 삶을 위하여

2. 기독교의 핵심은 예배이다

3. 레위기의 구성과 내용

4. 레위기의 형성사

5. 레위기 신학과 레위기 연구의 의의

1. 신학적인 목회와 신앙적인 삶을 위하여

 

오늘날 교회의 예배현장과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현장이 매우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져 가고 있다. 좀 더 쉽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서 올바른 예배란 무엇인가 올바른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배를 통한 신앙과 생활의 조화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라는 물음을 물을 수 있다면 그것은 "신학적인" 물음이며,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연구하고 대화하며 노력하는 현상을 두고 우리는 "신학을 한다" 또는 "신학이 있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학이 없는 목회자는 불행하다. 목회자가 바른 신앙과 신학을 가지고 있을 때, 목회도 올바르게 하고, 교회 성장도 올바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목회자가 신학이 없기 때문에 이를테면,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속적인 기준에서 성공적인 목회, 성공적인 교회 성장이라는 잘못된 풍조가 만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목회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올바른 신앙과 신학의 기준은 성경이다.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계시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된다. 신구약 성경은 크게 그 주제별로 나누어 보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과 세상에 관해 말하고 있으며, 그 세 영역의 올바른 상관관계와 인간과 세상의 바른 존재양식과 삶의 방식을 하나님 나라(왕국)의 역사관을 통해 펼쳐 보이고 있다.

 

오늘 우리의 신약적인 삶은 천지창조 이래로 종말의 심판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은 말을 바꾸어 보면 그의 나라(하나님의 주권)와 그의 의(하나님과의 계약관계의 성실성)를 구하는 것이며, 이것을 다시 한마디로 고백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2. 기독교의 핵심은 예배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성경적인 인간의 삶의 최고의 표현은 예배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였다. 그런데 예배할 때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함을 본문은 강조하고 있다(요 4:23-24).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요한복음 본문에는 이 질문에 대해 직접 구체적인 설명이 주어져 있지 않다. 여기에 오늘 우리의 예배신학의 과제가 있다.

 

바울사도가 로마서에서 11장까지 예수 믿는 교리를 자세히 설명한 다음, 그리스도인의 삶의 권면에서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롬 12:1)고 한 것도 이와 상통하는 내용이다.

 

몸으로 드리는 "산제사", "합당한 예배"를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며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할 것은,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도록 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예배 드린다고 하나님이 다 받으시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 종교다원주의가 들어와서,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았거나, 기독교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의 사람들도 그들의 종교 생활을 통해 똑같이 구원받는다는 주장이 있으나(말 1:10 이하; 마 7:21 이하 참조), 성경은 이방 사람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전 10:20; 참조. 시 147:19-20; 행 4:12; 요 14:6 등) 어쨌든 잘못된 제사와 예배에 대해서는 예언자들이 그 시정을 촉구하였으며, 특히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인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에 있어서 예배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드러나 있다. 당시 예배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 말씀을 인용해 보자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지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사 1:11-14)

 

이러한 이스라엘의 예배의 타락상은 구약예언의 후기인 제2성전시대 말라기의 예언에서도 볼 수 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노라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7-10)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다른 한편 하나님이 올바른 예배를 얼마나 기뻐하시는 가에 대한 반증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성서신학적으로, 제사 예배 주제에 관한 성경 본문은 레위기와 시편 그리고 신약의 히브리서(7-13장)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레위기는 원리적인 면에서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예배(제사)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은 그와 상응하여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배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레위기와 시편을 함께 읽는 것이 예배 공동체에 유익하다는 말은 옳다. 히브리서에서는 구약의 율법에서 말하는 예배를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히브리서는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권(히 7:11-28)을 내세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단번에 영원한 속죄"의 효력을 분명히 하고 다음과 같이 신약시대의 예배의 이해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1-14)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 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제사를 폐하는 것은(히 10:8-9), 그 제도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배하는 예배의 원리와 예배 그 자체를 폐하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마 5:17; 롬 3:31 참조)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예배의 외형적 방법과 제도는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지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예수님도 모세가 명한 레위기의 율법을 존중하셨으며(마 8:4 참조), 예수님의 부모도 레위 제사법대로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다(눅 2:22-24).

 

예언자들도 잘못된 예배를 공격한 것이지, 예배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이 결코 아니다(욘 2:9; 말 3:3-4; 비교. 시 4:5; 27:6; 50:5 등).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의의 제사",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이해하기 위해서 레위기를 공부하는 것이 유익하며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3. 레위기의 구성과 내용

 

레위기는 27장 859절로 이루어진 5경에서 가장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토라의 중앙에 위치한 핵심적인 책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창 1-11장은 태초역사, 창 12-50장은 족장역사 이야기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전사를 취급하고, 출 1장부터 신 34장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사를 다루고 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지도자 모세와 그의 형 아론이 속한 레위지파의 족보가 소개되면서(출 6:14-27 참조), 야훼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택하여 이스라엘 가정의 모든 첫 아들을 대신하여 제사장 나라의 섬기는 직분을 대신 맡기셨다(출 32:26-29; 민 3:5-13 참조), 그러나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직무는 아론과 그의 직계 아들들이 세습토록 하였다(출 40:12-15). 레위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그 첫 단어를 따라서 "와이크라"(그리고 그가[하나님이] 부르셨다)라고 하며, 레위기라는 명칭은 칠십인역에서 유래하여 불가타와 영어성경역본들을 통해 전해진 이름이다. 그런데 레위기에는 레위 또는 레위인들이란 명칭이 250회 나오는데 비해 "제사장"은 730회가 사용된다. 레위기라는 명칭만 보아서는, 이 책이 레위인들이나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과 그 직계자손의 제사장 직무와 관련된 특별한 전문서적이라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사실은 히브리어의 명칭에 나타난 대로 레위기는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레 1:1)로 시작하여 마지막에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레 27:34)로 마침으로써, 레위기의 내용이 어떤 성직 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연관된 것을 알 수 있다.

 

레위기는 27장 중 절반 이상 되는 17장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로 시작되는 것이 특징이며, 레위기 전체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했다는 점이 무려 56회나 반복 언급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레위기 내용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사명을 나타내는 시내산계약 전통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다(출 20:18-21; 참조. 레 7:38; 25:1; 26:46).

 

이스라엘 민족 형성사는 출애굽에서 가나안땅 정복 직전 모세의 죽음까지 약 400년간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⑴약 400년 동안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통한 이스라엘의 히브리 민족 형성을 배경으로 한 출애굽사건(출 1-13)

⑵홍해를 건너 시내산까지(출 14-18)

⑶시내산 진영에서 시내산 계약과 성막 건립과 예배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자기정체성 확립(출 19-민 10)

⑷시내산 진영 출발로부터 광야 생활을 거쳐 요단 동편 모압평지까지(민 10-36)

⑸지도자 모세의 고별 권면과 죽음, 그리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등장(신 1-34)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레위기의 내용은 시내산계약 전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이미 출애굽기 36장에서 시작하여 출애굽한 지 제2년째 정월 초일일(출 40:1-17) 시내산 진영에서 세운 "성막"(곧 "회막") 건립에 따른 계속된 계시의 역사적 사건 진행의 논리적인 연속성을 보여준다. 민수기 10장 1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 지 제2년 2월 20일에 시내광야를 떠나게 되는데, 그렇다면 레위기의 내용은 성막 건립부터 시내산 진영을 떠날 때까지 약 50일 동안 야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규례와 법도와 계명을 정리한 것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묄러(W. M?ller)는 레위기의 전체 내용이 출애굽기 19:5-6의 시내산 계약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출애굽신학, 즉 출애굽을 통한 야웨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의 의미는 한마디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 8:1; 8:20; 9:1; 10:3)에 집약될 수 있다.

 

이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계약을 통해 야웨 하나님의 백성"이며", 또 그 백성이 "되는" 자유와 해방과 구원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 구원 내용의 핵심은 역시 야웨 하나님을 올바로 "섬김"()에 있다. 시내산계약에서 야웨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일은 곧 하나님이 "소유"()가 됨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약속의 실현은 ⑴"제사장 나라"( )와 ⑵"거룩한 백성"( )으로 가시화된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전체적 구조에서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의 제사예식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법도를 가르치는 "예배의 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야웨 하나님만을 예배함으로써 그의 "소유"가 되는 은혜의 선물을 받게 되고(Gabe), 나아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이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책임과 사명(Aufgabe)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해리슨(R. K. Harrison)은 레위기가 이사야나 다니엘서와 같이 그 내용상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 구조가 유사함을 지적하면서, ⑴레위기 1-16장은 하나님의 소유된 제사장 나라 백성의 죄와 더러움을 제거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 것이 그 주된 내용이며, ⑵레위기 17-27장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백성의 삶의 내용과 지표를 제시한 것이 그 주된 내용이라고 분석하였는데, 묄러는 전자(레 1-17)를 제사장 나라가 되는 길로, 후자(레 18-27)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로 파악하였으며, 이러한 이중적 구조는 십계명의 두 돌판과도 구조적으로 상응하는 것이다.

 

웬햄(G. J. Wenham)도 레위기 내용의 논리적으로 질서정연한 구조를 지적하면서, 그 두 핵심주제는 역시 출애굽기 19:6의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라는 데 동의하며, 전자는 하나님과의 접촉의 친밀성, 후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증거의 삶에 그 초점이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웬햄은 레위기 내용을, ⑴제사를 통한 예배의 원리와 실제를 가르치는 제사법(1:1-7:38) ⑵제사에는 중보자로서의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원리를 가르치는 제사장 제도(8:1-10:20) ⑶영육간에 죄와 더러운 것을 정결케 하는 제사원리를 가르치는 정결규정(11-16) ⑷거룩한 백성의 생활신조와 행동강령을 가르치는 성결규정(17:1-27:34)으로 크게 네 구분하였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을 지도하는 교육 교과서라고 볼 수 있다. 야웨 하나님의 백성이 그 하나님과의 시내산계약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도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제사예배를 통해서라는 점에 우리는 놀라움과 함께 각별히 주목해야 하며, 레위기는 그 제사예배의 올바른 원리와 실천을 가르쳐 준다.

 

한편, 레위기의 내용은 거의 모두 제사와 예식관계의 사항들을 취급하지만, 후반부의 18장 이하 19장은 성결규정의 틀에서 "이웃윤리"를 강조하고 있음이 두드러져 보인다. 특히 19:18절의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말씀하실때(마 22:39) 인용하신 구절로 유명하다(비교. 마 19:19; 막 12:31; 눅 10:27; 롬 13:9; 갈 5:14). 따라서 레위기는 단순히 제사예식규정집이 아니라, 윤리적 내용을 강조하며, 어떤 이방종교들의 경우처럼 마술적-주술적인 힘에 그 근거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레위기의 제사예식행위는 하나님의 백성의 일상생활의 "도덕적 근거"(a moral basis)와 밀접히 연관을 가지는 것에 주목해 보아야 하는데, 레위기 16장의 "속죄일"과 레위기 25장의 "희년"이 그 윤리 도덕성의 관련에서 레위기를 대표하는 특별개념들이라고 볼 수 있다(레 18:1-5!).

 

내용적으로 레위기를 대표하는 신학적 핵심용어는 "거룩"이며, 레위기의 거룩성은 구체적으로 제사의 대속(substitution)원리를 통해 죄를 제거함으로 정결(purity)케 되는 내용과, 정결할 뿐만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의 올바른 삶을 통한 온전성(wholeness)이 중요시된다(비교. 마 5:48).

 

이상에서 논의된 레위기의 내용과 구조를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도표로서 간단히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교회의 특권과 소명

     

평신도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지상 교회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지상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특권만 가진 것이 아니다.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을 함께 가지고 있다. 천상의 교회라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을 필요가 없고,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교회는 지상에 남아 있는 교회이다.

특권과 함께 소명을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특권만 알고 소명을 모르는 절름발이 교회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부름 받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그러면 보냄 받은 소명을 순종해야 한다.“

교역자는 이렇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평신도는 이렇게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 오늘의 교회가 몽롱한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옥한흠- 

제자훈련교제에서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성장하는 교회로 이끌어 가기 위해

 

♣역사적 전통을 꿰뚫고 미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책 조정, 실천능력이 있는지 전문성과 판단력이 분명한지 살펴봐야 한다

♣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생산적인 안건을 내놓는지 봐야 한다

 

♣상호 완전 신뢰가

- 성실성

성실성이란 주화로운 일관성으로 가치관과 말 행동이 일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관성과 더불어 자신의 가치관과 소신에 따라 행동할 용기를 포함하는 것이다.

- 의도

의도는 동기 의제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나는 행동과 관계가 있다. 동기가 솔직하고 상호 이익에 기반을 두고 있을 때 분명해 진다.

- 능력

능력을 성과를 이루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들이다 리더는 자신이 제시한 비전에 걸 맞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 성과

리더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어감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위대한 비전을 품으로 하지만 실현가능한 목표를 세움으로 가시적 열매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찬양 - 예배에 생명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실력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팀원들은 물론이고 리더들도 평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양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전문 사역자들은 조언한다.

예배에 대한 말씀과 내용을 묵상하고 예배의 의미를 기억하는 것은 찬양에배를 준비하는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라는 것이 모엔 목사의 지론이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복주심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간섭하지 않는 에배는 더 이상 예배가 아니다.

CCM 아티스트 스티브 그린 “ 자신을 준비하라 탁월함을 추구하라 경쟁력을 갖추라‘고 조언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고 있는 이 일을 하도록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고 더 큰 비전을 추구하며 미리 준비라’고 강조한다.  깊이가 아니라 영감 있는 찬양이어야 한다.

찬양팀 양육시간에는 예배관이 예배에 대한 바른 이해와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오늘 이 순간에 우리 모임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기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음악이론과 실제 교육 - 코드와 리듬에 대한 이해 그리고 독보나 기보에 대한 훈련이 없으면 반드시 한계가 찾아오게 된다.

독창적이거나 더 뛰어난 팀이 되려면

                    

♣삶의 훈련 -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위탁하는 삶이다. 주 안에서의 지체 의식을 가지도록 양육해야 한다. 준비와 연습을 마쳤지만 여전히 에배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의탁한다. 그리고 에배를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인도해 주시도록 자신을 열어 놓으면 하나님께서는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방법으로 에배를 인도하실 것이다.

 

교인들을 예배당 안에서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그룸 활동에 참여하여 제자도를 형성하게 해 지역 커뮤니티 봉사나 선교에 이르게 하는 특징을 대형교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성장하는 교회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있다.

성장하는 교회는 현재의 에배 순서에 묶이지 않는다. 신선, 간결, 명료, 창의적인 예배,

성장하는 교회에서 목회자는 자신이 강조한 사역을 행동으로 보이려 한다. 직접 참여하고 있다.

성장하는 교회는 어린이 사역을 성인 사역과 같은 비중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걸음걸음을 인도하시며 약속을 이루시며 억울한 일 고난 당한 모든 일들을 아시고 갚아 주십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우리가 힘을 기울여 집중해야할 좋은 교회는

 

눅 12:35-48

청지기는 깨어 주인의 뜻을 실행해야 한다.

 

1.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

 

42절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영락교회의 시그널 ‘진리위에 선 거룩한 교회’ 멋있다.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니다. 왜곡된 자기교리에 세워진 단체들은 모두 지옥불로 가는 집합소이다.

우린 그것을 사이비, 이단이라고 그런다.(말씀 왜곡, 아니면 자의 핵석 덧붙임)

 

◇ 하여간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한다. 난 내가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못 읽는 줄 알았다.그런데 그게 아니라 허튼데 많이 써서 못 읽은 것이었다. 성경읽기 대회를 하고 마지막 스퍼트로 2주 반동안 TV,신문,인터넷을 금했다. 그러니까 하루에 1책 씩도 읽어진다.

 

그리고 많이 읽을 뿐 더러 바로 해석해야 한다.

‘이언령 비언령’이라고 흉악한 의도를 가지고 성경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강단을 기준으로 하고, 애매한 것은 목사님께 자문을 받아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2. 사랑이 넘치는 교회

 

42절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말씀에 바로 선 교회와 성도들의 반응은 바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다.

왜? 결국 말씀의 결론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떡을 떼었다는 말은 날마다 떡 파티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부수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것처럼

성찬의 정신으로 자신의 가진 것을 나누어 아낌 없이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영어로 flowing이라고 한다. 워낙 내 것이 아니니까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 교회 모 권사님께서 어머니 양권사님에게 무엇인가를 주신 일이 있다. 그래서 갚을려고 가져갔더니 내게 줄 일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에게 주세요 하더란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랑이 흐르고 흘러 구석 구석까지 미치면 우리 삶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바로 그리했다. 44,45절 말씀 보니까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너무 이상적이라 말이 안되는 것같이 여겨지겠지만

바로 이 말씀을 이루어 보려고 애썼던 사상이 공산주의이다. 결국 그 핵심이 사랑이요 성령이란 것을 간과해서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도 세계 전역에 미) 레바플레이스, 베다니, 독)부루더호프, 프)떼제 등 이런 공동체의 삶을 실현하는 공동체와 교회들이 많이 있다.

 

우리도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구제 헌금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모 교회 보니까 목사님이 십이조 하시던데,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십일조가 아니라 전부 드리는 것이다.

 

3. 기도하기에 힘쓰는 교회

 

42절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론으로 안된다. 성령으로 된다.

 

말씀이 음식재료라면, 사랑은 양념이고, 기도는 불이다.

기도 안하면 날고기 먹는거다. 사랑 없으면 밍밍한 고기 먹는 거다. 말씀 없으면 말할 것도 없고

◇교회부흥의 비결이 뭡니까 하는 질문에 스펄젼 목사님은 기도실 문을 열어 보여줬다는 말 유명하다.

 

◇19세기 말 부흥운동을 주도하던 스미스 목사님에게 한사람이 찾아와 물었다. 신앙부흥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집으로 돌아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분필로 당신이 앉아있는 마루 둘레에 원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부터 먼저 신앙부흥운동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이러한 당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때 드디어 신앙부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힘으로 능으로 안되고 여호와의 신으로 되는 줄 알고,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선언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그래서 오늘부터 매일 저녁 8시 기도실에서 기도한다.

권사님들이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대성전 강단부여잡고 기도한다.

그리고 27일부터 한주간 영혼구원을 위해 특별 새벽기도한다.

적어도 앞으로 21일간은 새벽에 하든, 저녁에 하든 여하튼 교회에 한번 나와서 기도하라

 

이렇게 한 결과

 

43절 이하가 쏟아진 거다.

 

기사와 표적(43) 유무상통(44,45) 성전, 집에서의 모임 활성화(46)

백성에게 칭송(47) 불신자에게 칭송받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 교회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우리도 이렇게 좋은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는데 모든 힘을 집중하자

그러면 그렇게 소원하는 성전봉헌, 교회부흥은 저절로 될 것이다.

 

기도하자 - 먼저 믿는 이들이 잘해야 한다. 목사님을 비롯한 교역자들, 장로님, 권사님,안수집사님, 목자, 구역장, 교사들을 위해서

우리교회와 각 개개인이 말씀충만, 사랑충만, 기도충만하여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와 성도 되도록 기도하자.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예배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 장흥길 -

 

■ 들어가는 말 

예배자가 예배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의미 있는 예배를 드리게할 뿐만 아니라 예배자의 예배 자세를 결정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감상주의적이거나 무속 신앙적인 예배의 현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때 감격적인 예배를 경험할 수 있으며 경건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 예배의 용어적인 의미


1. 히브리어로 '예배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샤카(shachah)'와 '아바드(abadh)'인데 '샤카'는 엎드려 절하다 또는 경배하다라는 뜻이고(신 26:10 참조) '아바드'는 섬기다 또는 봉사하다(service)라는 뜻이다(출 8:1 참조).즉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숭배, 순종, 봉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2. 헬라어에서는 예배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셋이다.

(1) 프로스퀴네오(proskyneō): 존경의 표시로 "절하다" 또는 "굽혀 엎드리다", "입맞추다"라는 뜻으로, 지상의 통치자에게 신체적으로 굴복 또는 순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2) 라트레이아(latreia): "하나님께 대한 봉사", "거룩한 예배의 수행" 등 이 단어는 예배에 있어 예배자의 봉사를 뜻하는데, 종으로서 자신의 상전을 섬겨야할 신분을 확인시켜 준다.

(3) 레이투르기아(leitourgia): 이는 예배의 의식과 관계 있는 말로 본래는 "백성을 위하여 일하다"의 뜻이나, 기독교에서는 성례전이나 특별한 의식이 행해질 때 예배자들이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봉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3. 요약

용어적인 의미에서 예배는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대한 부복, 순종, 섬김, 봉사를 뜻한다.


■ 예배의 성경적인 의미


1. 구약성경-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예배적 특징을 살펴보면,

(1) 한분이신 야웨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한다(출 20:3).

(2)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형상으로든지 표현해서는 안된다(출 20:4. 5).

(3) 예배에 대한 세심한 제의적 규례가 철저하였다.

(제사, 제사장, 장막에 대한 제사법)

(4)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다(레 1-7장)

(5) 형식에만 치우친 제사를 드릴 때 예언자를 통해 호된 비판과 경고를 받았다(암 5:21-24).


2. 신약성경

(1) 예수님의 가르침(요 4:20-24)

① 특정 지역에서만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요 4:21)

② 확실하게 아는(믿는) 하나님께 예배하라(요 4:22)

③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요 4:23)

④ □□ 과 □□으로 예배하라(요 4:24).

(2) 사도 바울의 가르침(롬 12:1-2)

① 몸으로 영적 예배를 드리라(롬 12:1-2).

②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를 드리라.

③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라.

 

 


■ 예배의 신학적인 의미


1. 기독교 예배는 그 대상과 중심이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창 12:9). 은혜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은 예배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기인한다. 은혜 받기 위함은 예배의 동기나 예배의 결과일 수 있으나 예배의 목적일 수 없다. 은혜 받기 위함이 목적일 때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인간 위주의 예배이다. 은혜 받았기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예배를 드리면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예배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2. 예배 시간에 하나님은 임재하신다.

예배는 예배 드리는 자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함께 있을 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배 순서를 받으실 뿐 아니라 말씀으로 모든 예배자들에게 응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속에서 예배자와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영광을 받으신다.


3. 예배는 계시와 응답이 만나는 지점이다.

예배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자의 응답이다. 인간을 만드시고 타락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용서한 죄인과 만나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림이 곧 예배이다. 인간을 찾아 오시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사모하는 예배자의 만남이 예배요, 그 만남의 광장이 예배당이다.


4.예배의 원동력은 성령이다.

예배의 현장에서 예배를 역동적으로 인도하는 것은 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예배는 형식적인 의식에 불과하다.성령의 교통과 역사 없이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하다.


5. 예배는 공동체적 행위이다.

예배의 공동체는 언제나 단수적인 개념보다는 복수적인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독교 예배는 언제나 예배 공동체인 교회와의 관계에서 형성되었고 교회의 순수성은 예배의 순수성에서 보존되었다.


6. 예배는 순환 구조를 갖는다.

예배의 완성은 축도가 아니라 선교적인 삶 속으로 연장되며 선교적인 삶의 열매를 가지고 다시 예배 드리러 나오는 순환 구조를 갖는다. 예배자는 선교의 사명을 띠고 세상에 파송되며 그 선교의 열매를 가지고 다시금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되는 것이다.

 

■ 맺는 말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예배란 그리스도인들의 삶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직무로서 마음과 말과 행위와 물질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섬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구원 사역에 대한 거듭된 발견으로 인한 감격적인 응답이 곧 예배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으며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깨닫고 앞으로 무엇을 하실 것인가를 기대해야 한다. 그럴 때 예배자의 미래가 오늘처럼 내일도 하나님에 의해 지켜질 것이기에 더욱 기쁨에 찬 감사와 평안의 찬미를 드릴 수 있으며 희망찬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결단과 기도


1. 예배가 무엇인지 적어 보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예배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 세 가지만 열거하라.

①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②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③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예배에 대한 용어적, 성서적, 신학적 이해를 통해 바른 예배관을 정립하고, 바른 예배를 위해 고쳐야할 점을 세 가지만 간추려 적어 보라.

①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②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③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예배란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용어의 의미를 혼동하는 것일 뿐 아니라 ‘예배’가 내포하는 특별한 의미를 놓치는 것입니다. 모든 삶이 기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모든 삶이 기도는 아닙니다. 기도는 특별한 행위입니다....성경읽기가 기도가 찬양이 설교가 예배는 아닙니다. 참된 찬양과 기도와 설교가 예배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예배는 아닙니다.

 

예배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행위이며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그분으로부터 받은 모든 복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하나님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마틴로이드 존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예배 십계명

 

1. 예배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최고의 축복이다 예배 시간보다 귀중한 것이 없으므로 절대 빠지지 말라.(시73:27-28)

2. 예배시간 20분전에 교회에 와서 앞자리부터 의자 안쪽으로 먼저 온 성도순으로 앉아 예배를 정성된 마음으로 드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려라.(요4:24)

3. 먼저와서 기도하고 주보를 보고 중요한 부분은 표시하고 성경본문을 찾아 읽고 믿음으로 예배를 기다리라.(잠15:8)

4. 성령충만 받기 위해 마음 문 열고 찬양 인도자에 따라 찬송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불러 라.(행13:18)

5. 창조적인 예배가 되기 위하여 믿음 안에서 긴장하고 어린 아이들이 예배를 방해하지 않도록 잘 훈련시켜라.(행13:8-12)

6. 예배는 전쟁인 동시에 축제이다. 그러므로 절대 졸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정성껏 드리라. (행20:8-10)

7. 예배는 생명이요 응답이다.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롭게 말씀을 사모하고 고백하는 믿음으로 아멘하라.(호8:6)

8. 신령과 진정된 예배가 되도록 철저히 준비하며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도록 말씀을 들으며 은혜스럽게 아멘으로 크게 화답하라.(고후1:20)

9. 불신자와 세신자에게 매력적인 예배가 되게하며 주님을 사모하게 하고 예배를 생활화 하도록 하라.(시84:10)

10. 통성기도는 믿음으로 손을 들고 크게 부르짖어 간절히 하며 받은 은혜 감사하여 준비된 예물을 봉투에 담아 정성껏 드리고 축복과 승리로 예배를 장식하라.(대상29:10-24)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예배에 관한 6가지 정의

* 영적예배 : 바비 워십리더 *

1. 마음을 다해 갈망하는 것 by Christy Nockels

Watermark(Rocketown의 부부듀엣)의 Christy Nockels는 청소년의 시기에 예배에
대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녀가 성장했던 교회또한 예배를 강조하는 교회였다.
그녀가 경험한 능력있는 예배의 경험을 회상하며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17살 때에 저는 교회활동을 마친 어느날 밤, 친구들과 숲을 거닐다 오래된
십자가를 발견하고는 그 십자가 주위에 둘러앉아 서로의 마음가운데 있는 짐들과
겪어왔던 아픔들에 대해 나누기 시작했어요.
이런 나눔은 어느새 기도가 되었고 눈물이 되었으며 노래가 되었죠.
우리는 모두 신을 벗고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나아갔죠.
그 밤의 경험은 제 일생의 경험 중 가장 큰 능력을 경험한 날중의 하나가 되었죠.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그 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제 일생동안 그분을 마음을 다해 갈망하기 시작했죠."

이 갈망함이 오늘날의 그녀를 만들었다.
"저희 부부는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지음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우리에겐 가장 소중한 일이죠.
그것은 매일매일 행해야 할 일이며 그로 인해 우리가 부르는 예배곡이 바로
우리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2. 친밀함으로 경외하는 것 by Matt Redman

영국의 유명한 워십리더 Matt Redman은 예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함께 노래할 때에 그것이 단지 설교준비를 위해서 하는 것이나 스스로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임을 깨달은 것은
십대 초반이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음악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그분의 귀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신양성서에서 헬라어로 예배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은 "proskuneo"란 말로
이는 문자적으로 "입맞추기 위해 나아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놀랍지 않나요? 이것은 아주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이 단어는 개가 주인의 손을 핥는 것을 표현한 단어이기 때문에
이 단어는 또한 "경외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3. 변화되는 것 by Jason Halbert

2000년도 도브 Praise & Worship앨범상을 거머쥔 Sonicflood의 키보디스트
Jason Halbert는 그의 아내가 텍사스 브라운빌의 예배에 참석했다가 놀랍도록
변화된 것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스스로 영적으로
새롭게 되는 경험과 함께 예배를 위해 음악을 만들겠다는 부르심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더 많이 느낄수록 제 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제 삶가운데의 많은 것들이 변화되기를 더욱더 소망하게 되었죠."

Halbert는 최근 Peter Gabriel과 the Pet Shop Boys의 DVD컨서트에서 예배
가운데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모든 청중들이 손을 들거나 울거나, 혹은 뛰거나 엎드리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그 모든 것이 예배를 통한 경험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경배하기위해 지어졌으며 음악은 우리로 그 경배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 지를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열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 by Mac Powell

Third Day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사랑했던 이들은 그들이 처음으로
Praise & Worship앨범을 내어놓았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는데
이는 Third Day가 오랜기간 컨서트를 통해 예배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갖지 않고 사람들이 왜 손을 들고 찬양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이들이 우리 컨서트에 온다면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을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리드싱어인 Mac Powell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저 또한 처음에 제 주위를 둘러싼 이들이 손을 들고 찬양을
드렸을 때 조금 놀라기도 했었는데 왜냐하면 이전에 그렇게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예배가운데 제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정말 자유한 경험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예배 가운데 빠지게 됨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자유함 가운데에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5. 부족함을 깨닫게 되는 것 by Steve Hindalong

The Choir의 Steve Hindalong과 Derri Daugherty는 1991년 함께
"십자가 아래서(At the Foot of the Cross)라는, 그다지 잘 팔리지 않은
모던 워십앨범을 제작했다. 이에 대해 Hindalong은 이야기하기를
"그 앨범이 얼마나 팔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앨범제작을 통해 저는 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은 제가 있어야 할 자리로 저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Jars of Clay, Sixpence None the Richer, Caedmon"s Call등, 수많은
탑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제작되는 City on a Hill의 제작을 지휘한 Hindalong은
다시 한번 "인간됨"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때 우리가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겸손이죠...
우리는 모두 절망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기뻐할 수 있게 되죠."

6.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by Don Chaffer

Waterdeep의 Don Chaffer는 고등학교시절 불안과 혼동의 때를 겪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원했던 것은 그의 삶이 철저히, 심지어는 종교적 삶까지도
무너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해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붙들 수 있게 되었다. 예배곡 가운데서 그는 자신의 새로운 신앙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발견하였다.

""당신께선 제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당신 안에 있는 저는 누구입니까?" 라고 물으며 당신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그 가운데서 당신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노래에 대한, 혹은 그리스도께 대한 교회의 응답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히 우리 삶의 전혀 다른 국면인 것입니다."

내년 초 워십앨범을 내놓게 될 Waterdeep의 Chaffer에게 있어서 매일
예배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때때로 예배는 숲속에서나 가능한 어떤 영적인 일처럼 생각될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배란 것은 우리가 친구들과 즐겁게 보내는 시간까지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궁극적으로 예배는 진리를 떠올리는 것입니다."라고....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교회’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앞에서는 ‘그 나라’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신약한글성경에 나타나는 교회라는 단어


교회라는 단어가 신약 한글개역성경에 110번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복음서에는 마태복음에만 2번 나오고 있다. 사도행전에 20번, 로마서에 5번, 고린도전서에 20번, 고린도후서에 9번, 갈라디아서에 3번, 에베소서에 10번, 빌립보서에 2번, 골로새서에 5번, 살전에 2번, 살후에도 2번, 딤전 3번, 빌몬 1번, 히브리서 2번, 약 1번, 벧전 1번, 요삼 3번, 계시록에 19번이 기록되어 나오고 있다.


2. 복음서 중에 처음으로 ‘교회’라는 용어


이중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교회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마태복음 16장에서 하셨다. 이때 교회라는 말씀의 배경으로 시몬 베드로에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처음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복음서 중에 마태복음서에만 나오는 교회라는 단어인데 두 번째는 교회 안에 죄 문제가 있을 때 교회에 말하고 라고 했다. 여기서 ’교회에 말’하고 라는 의미는 건물이 아니고 전통적으로 율법에 속한 유대교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3.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물론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사역자들이나 일반 신자들이 표현하는 교회라는 단어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건물에 대해서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면 건물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한곳도 없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 에베소, 골로새, 데살로니가 등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교회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고유명사인 지역명을 따서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신앙지도자를 새워 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바울이나 초대 교회 일곱 집사들 중에 빌립이나 혹은 디모데나 빌레몬 등 사역자로 지역에서 사역하였다는 것을 알 수있다. 예를 들어 에배소 지역에 흩어져 있는 모든 성도들을 교회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도 어느 도시 어느 지역에 흩어진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 교회라고 생각지 않는다. 어느 어는 교회라는 간판을 말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어느 교회 누구에게 세례 받고 누구에게 신앙의 지도를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라는 구조는 건물을 말한 것이 아니고 복음을 받은 성도들을 가리켜서 성전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것을 바울을 고린도교서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즉 성전에 대한 개념이 전혀 다른 것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했다. 


4. 교회는 성도들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래에 더 구체적으로 성전인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을 구분해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역자들과 신자들은 건물을 성전이라는 용어를 생각 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회당’이라는 용어와 같이 현대어로 교회당, 혹은 예배당으로 가르치고 생각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사역자들에게 있지 않은가? 수십 년 전에는 예배당, 혹은 교회당이라는 간판을 보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당(堂)‘이라는 글자가 빠지고 건물을 교회라고 부르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결코 성경적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교회라는 원어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름 받은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하도록 가르치고 있지만 일반 사회인들이 보는 것은 건물이 교회라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거룩한 무리들이 모인 것이 교회다.

 

분명히 교회(church)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셔서 이전과는 달리 구별된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그 근거를 둔 구원의 공동체를 말한다. 그리고 개역성경에 교회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ekklesia)로 ‘부름받아 나온’, ‘부르심’, ‘택함 받은’ 등의 뜻이다. 이 말은 공적인 목적으로 모이는 모임을 가리키기도 했기 때문에 ‘모임’이라고 번역되기도 했다(행 19:32, 41).


6. 교회라는 원어의 뜻


70인 역에서는 히브리어 ‘카할’(qahal)이라는 단어를 에클레시아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주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회중을 의미했다. 때로 ‘쉬나고그’(synagoge)라고도 불렀지만 ‘쉬나고그’는 유대인의 모임이나 건물을 가리키는 회당이라는 의미 때문에 사용되지는 않았다.


신약에서의 교회란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이 말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실 때 처음 사용되었다(마 16:18). 실제로 공동체로서의 새 교회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에 예수님의 보혈에 근거하여(고전 3:11; 엡 2:20-23)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세워졌던 것이다(행 2장). 여기서 교회는 건물이나 기관이 아닌 사람들의 모임인 회중이었다. 이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행 2:42).


7. 신약성경에서 표현된 교회란?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 것’(행 20:28), ‘보이지 않는 교회’(롬 6:3-5; 고전 12:12-13), ‘그리스도 지체로서의 교회’(롬 12:4; 엡 4:3), ‘하나님의 가족’(엡 2:19), ‘하나님의 교회’(딤전 3:15),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한 건물’(고전 3:10-11),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고후 11:2),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하는 양떼’(요 10:11-16), ‘촛대’(계 1:20) 등이라고 했다.


8.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의 모습


또한 바울이 이해한 교회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갈 1:2) 등으로 지역이나 구성원에 따라서 부르거나 ‘아굴라와 브리스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고전 16:19) 등으로 불렀다. 때로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그리스도의 교회’(갈 1:22)라고도 불렀다.


9.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교회관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백성들을 불러내시고 모으셔서(롬 8:3, 29-30) 그 안에 거하시고 다스리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이해했다(고후 6:16-18). 또한 성도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지적하며 성전이 거룩하듯 거룩할 것을 권면했다(고전 3:16-17). 특별히 그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와 그리스도의 모퉁이 돌로 세워진 교회(엡 2:20)를 이루어가기 위해 성도들이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엡 2:21-22).


10. 신약에 나타난 교회에 대한 이름들


신약에 나타난 교회에 대한 특별한 이름들 중에 그리스도의 몸인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의 연합을 강조한 이름이다(고전 12:27; 엡 1:23; 골 1:18).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 대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고후 6:16)이라 불렀고,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엡 2:22)가 되기 위해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했다. 또한 베드로는 신자들이 ‘신령한 집’(벧전 2:5)으로 세워진다고 말했다.


신령한 교회인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교회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도 했다(갈 4:26; 히 12:22; 계 21:2, 9-10). ‘예루살렘’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 장소로 언급되었는데, 신약에서는 교회를 구약의 예루살렘과 유사하게 여겨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으로 여겼다.


그리고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대항하여 진리를 수호하는 곳이라(딤전 3:15)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의 기도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였고,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함께하셨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