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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나는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이태원의 이슬람사원(한국이슬람교중앙회)

 

 

파란하늘빛과 눈부신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태원 이슬람사원의 좌측면이 몽환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파란하늘과 뭉게구름이 어우러진, 그러나 햇살이 무척 뜨거웠던 오늘 27일, 전부터 가보려고 찜해 두었던 이태원의 이슬람사원을 답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인상깊은 장면을 목도했다.

수화로 아기에게 이야기하는 한 젊은 엄마의 모습.

아기는 엄마의 수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루종일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아기가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얼마나 심심할까.

또 아기에게 자신의 사랑을 말로써 적극 전달할 수 없는 이 젊은 엄마는 얼마나 답답할까.

 

 

그러나 수화를 하는 사람들은 말할 수 없기에 오히려 눈빛과 몸짓에 절실한 마음이 더 깊이깊이 담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기도 점점 크면서 엄마의 뜻을 알 수 있겠지.

그나저나 외국어, 신조어 등은 도대체 수화로 어떻게 표현할까.

또 점자책은 어떤 체계로 이루어져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 온전한 신체를 가진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정말 행복한 인간이로구나.

 

이슬람사원을 찾고 나서 일단 나무 아래 벤치에서 좀 쉬웠다가 찍기에 나섰다.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오니 햇살이 정수리에 들이부어졌다.

길 중간중간에 있는 지도판을 보고서도 약간 헷갈려서 헛걸음 좀 쳤다가 '삘'을 받아 소방서 옆길로 들어서니 곧 해답을 찾았다.

골목길에 있는 곳은 찾기가 애매해 답사 초보시절에는 정말 온 동네를 다 휘젓고 다니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 오래 헤매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원숙미?

 

가는길에 무슬림마트, 서점, 옷가게, 식료품점을 지났다. 평일이라 그런지 골목이 한산하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이슬람사원의 독특한 정문. 그런데 앞에 너저분한 전기줄들이 늘어져 있어 약간 성소聖所의 위엄을 흐트러 트리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파란 문양 디자인이 쿨한 느낌을 주었다.

하기야 성과 속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일 테니 이런 모습이 크게 볼썽사나울 것도 없다.

정문에서 쑥 들어간 가운데 흰 벽이 가로막고 그 양 옆으로는 각각 계단과 포장길로 나뉘어 있어 비밀스런 느낌이 들었다.

벽에는 아랍어로 길게 쓰여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위엄어린 말씀이겠지.

'알라(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

 

계단으로 올라서니 이슬람사원의 좌측면 모습이 보였다.

하얀 벽면이 파란하늘 아래 눈부시게(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빛나고 있다. 오, 지중해풍 느낌인데?

땡볕바닥에 카펫들을 말리고 있었는데 똑바로 펴서 널어놓지 않고 그냥 대충 팽개쳐 놓은 듯.

그런데 이렇게 놔야 햇볕과 바람이 뜬 사이로 잘 들어 살균소독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주부 9단 마이 마더의 지혜다.

뭐든지 반듯반듯한 게 다는 아닌 것이다.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로 세워진 이곳은 1976년에 건립되고 1991년에 증축한 한국 최초의 이슬람사원으로 정식명칭은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이다.

한국정부에서는 부지를 내어주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국가들이 건립 및 증축 비용 전액을 내어 세운 뜻깊은 재한 이슬람교 총본산이다.

 

마침내 마주한 사원의 정면. 터키나 이란의 장엄하고 화려한 모스크들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지만 이곳이 한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그리고 한국정부와 이슬람 국가들의 합작으로 지어진 이슬람사원이라고 생각하면 꽤 뜻깊다.

중동으로 많은 근로자들이 파견되던 박통 시절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듯도 하다.

중동에서의 건설사업을 따내기 위해서는 현지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주소는 용산구 한남2동이지만 흔히 이태원 사원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이곳.

이 사원은 단순히 이슬람사원이 아니라 가장 공신력있는 이슬람문화연구소이자 한국 내 무슬림들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쉼터이다.

김선일 사건 때 폭파 위협을 받기도 했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중동, 아랍, 이슬람은 같은 성질로 파악되기 쉽지만 틀렸다.

중동이란 영토욕에 눈이 먼 구미열강들이 임의로 붙여놓은 지역구분으로 사실 동양이란 구분만큼이나 오리엔탈리즘적인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아랍이나 서남아시아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아직까지도 국경, 민족, 종교 문제로 내전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슬람이 과격한 종교여서가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들이 남긴 비극적 유산 탓이다.

 

 

 

사원 기둥 사이로 보는 오늘의 날씨

 

풍부다채로운 문화와 인종만큼이나 아프리카, 아시아는 많은 자원도 가진 나라들이었다.

탐험가라는 자들은 말이 좋지 사실 새로운 땅(자기네들 입장에서)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대박을 터트리려는 환상을 품은 한탕주의자들에 불과했다.

이들의 '발견'을 토대로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마귀 같은 탐욕을 부려 잘 살아가고 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이 멋대로 쪼개지고 인적, 물적 자원이 마구잡이로 약탈당하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지고 분쟁이란 지뢰가 묻어졌다.

 

현재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게 참담한 고통을 당하는 까닭도 그 배후에는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묵인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조지 부시라는 무지막지한 자의 무지막지한 비리행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다큐멘터리 같은 어느 영화를 통해서도 전세계에 폭로된 바 있다.

 

아랍 국가들의 이런 비통한 역사적 사정을 모르고 무작정 이들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본다면 우리는 한국인도 아니다.

일제가 조선을 잔악하게 유린한 것도 제국주의의 단꿈에 빠져 있던 구미열강들의 아주 좋은 시범사례 덕택이다.

우리가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갈 때 죽음을 무릅쓴 고종황제와 칙사들의 애원을 외면하고 일제의 손을 들어준 이들이 누구인가.

그걸 생각할 때 우리는 아랍 국가들에게 동질감을 느껴야 한다. 미국 눈치를 보느라고 싸잡아서 아랍 국가들을 멸시하고 경계해서는 안된다. 그러다가 정말 큰 코 다칠 수 있다.

 

 

 

 

성상이 없이 오직 특이한 제단만 있는 예배실(남성만 출입 가능)과 그 내부의 벽 장식 타일. 나는 이런 파르스름한 문양이 정말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아랍 국가들만 이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전세계 16억명 이상의 신도를 가진 이슬람교는 아랍권에서는 18%, 비아랍권에서는 82%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이슬람은?이라는 책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가까운, 발리섬으로 유명한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로 전국민의 약 90%인 2억명 이상이 이슬람 신도라고 한다.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을 통해 보듯이 우리는 아랍권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영혼까지 무슬림인 아랍권 국가에 선교하러 간 것도 참 밉살스런 행태지만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가 탈레반이 설치는 곳인 것을 모르고 갔다고 하면 귀신이 방귀를 뀌겠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갔으면서, 그리고 한국정부의 위신을 말할 수 없이 추락시켰으면서 지금와서 또 무슨 몰상식한 짓들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국내에 이슬람세계 전문가와 아랍어에 능통한 인재들이 극히 드물어 여러모로 큰 고초를 겪었다는 사실은 한국이 미국만 알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랍 국가들과의 교류는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이슬람문명은 유럽문명이 암흑의 중세에 갇혀 있을 때 찬란한 과학기술과 기록문화를 꽃피워 르네상스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중국과 조선의 천문학(역법, 관측기구), 의학의 발달에도 막대한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고려 때는 황도 개경에 이슬람사원이 있었고 조선 초에만 해도 세종이 공식석상에서 사신 자격으로 참여한 이슬람 성직자가 꾸란(코란)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다고 할 정도였다고.

지금은 원유의 70% 이상을 아랍 국가들에서 들여오는데다 아직도 아랍 국가들에 따낼 가치가 큰 많은 사업권이 있다고 한다.

한국과 아랍 국가들간의 우호친선 관계는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함을 통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말로만 듣던 꾸란을 직접 보는 귀한 기회.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니 눈이 핑~돌았다.

우리는 한국인임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

경전의 표지도 역시 이슬람스럽게 화려하다.

 

 현란 그 자체

 

이 자리에는 한국이슬람을 이끄는 정신적인 지도자 이맘(천주교의 대주교급?)이 앉을 것 같다.

 

 

원리가 정말 궁금한 이 제단. 반드시 메카 방향이라고 한다.

 

장식문양타일만으로도 이렇게 화려하고도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곳도 소박하지만 쿠폴라(돔)이 있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엄숙하고 성스런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출처 보았노라 느꼈노라 썼노라|게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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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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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이슬람

 

하나님은 우리와 무슬림을 모두 사랑하신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만 아직도 무슬림에게 예수는 예언자요 선생일 뿐이다.

 

지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이슬람이 확장되고 있다. 아시아의 2/3가 무슬림이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the poorest unreached people들이 사는 곳(극빈국은 10/4082%가 있다)이다. 10/40에서 이슬람의 인구가 1위를 그 다음이 힌두교이어서 아시아 전체가 복음화의 대상 지역이다.

 

이슬람의 인구는 산아제한이 없어서 연 5천만명이 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때 이슬람 문명의 핵심국이 되었다. 그후로 오늘날까지 이슬람 세계에는 핵심국이 없지만 이슬람은 부흥의 기회를 얻었다. 이슬람의 부흥은 서구화에 대한 반작용이지 근대화에 대한 반작용은 아니다. 지금은 이슬람의 부흥이 이슬람 사회의 중심에 놓인 주제다. 그러나 이슬람의 부흥운동도 어느 시점에 가서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인구증가도 21세기의 20년대와 30년대 사이에는 한풀 꺾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슬람 -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오래전에 한국에 입국한 아시아 사람 수는 200만명이 넘고 있다. 한국의 이슬람은 5개이상의  모스크와 2개의 문화 센터를 두고 약 4만명의 신도들이 현재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원리주의 색채를 가진 학자, 중산층, 지식인으로서 국내대학을 중심으로 중동 이슬람권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20여명의 박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 중동의 원리주의자들이 모두 젊은 청년, 대학 졸업, 전문인 의사, 박사 등이 주류를 이루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들의 대외 활동에는 1989년 서울 지역 중고교 역사 담당 교사들을 초청하여 이슬람 역사 바로 잡기라는 모임을 가졌고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대우재단 지원 󰡐이슬람 세계의 이해󰡑라는 이슬람 연속 강좌를 열었다. 1989년에는 대우 재단 빌딩에서 이슬람학을 선보인다는 명목으로 많은 학자들을 모여 한국 이슬람학회 총회를 가졌고 그 뒤 꾸란 번역을 실시하고 이슬람에 대한 책을 윤독하였다. 현재는 중동 각국 역사의 연구와 이슬람 종파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 이슬람 중앙회측은 1990년대에는 <선교>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이슬람 선교>라는 말을 대외 홍보 책자에 사용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이 책자가 기독교인의 책인지 이슬람교의 책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슬람 세미나 󰡒이슬람과 한국 그리고 세계󰡓(1994), 󰡒이슬람과 평화󰡓(1995), 󰡒이슬람과 다른 이념󰡓(1996), 󰡒동아시아의 이슬람-역사와 문화적 조화(1997)󰡓라는 제목으로 이슬람 세계의 여러 학자들을 초청하였는데 세계 이슬람 연맹과 한국 학술진흥재단이 후원하고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대사관과 대우와 한국 아랍 친선협회가 협찬하였다. 이런 활동은 곧 이슬람이 <배움>을 통해 포교의 기치를 내결었던 이슬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무슬림은 <믿으라>하지 않고 <배우라>고 말한다. 거기에다가 사무엘 헌팅턴의 이론을 빌려 앞으로 21세기에는 이슬람이 새로운 역할을 다방면에서 갖고 그 중심축이 유고 문화권과 이슬람이 만나는 아시아라고 강조한다.

 

금년 한국 이슬람 중앙 연합회는 한국 이슬람 문화 연구소를 개원하고 수석 연구원 1, 책임 연구원 3명이 이슬람에 대한 종합소개서를 발간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연합회측은 이슬람 대학 대학원을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한국에서의 이슬람 선교 방안을 제시한다.

 

이상의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의 활동을 살펴보면서 무슬림에 대한 선교 방안과 대책을 생각해보자.

 

첫째, 이슬람 연구는 단지 이슬람 위주의 연구에서 떠나야 하겠다. 한국의 무슬림은 단지 강의 초청에는 응해 줄 수 있으나 이것이 진정한 화해와 공존의 장이라고 보기에는 미약하다. 더구나 한국인 중에 이슬람을 전공한 기독교인 학자는 극소수다. 이슬람 연구는 앞에서 보았듯이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측과 한국 이슬람 학회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측이 연구해 놓은 자료를 재검토하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성경적 안목과 이를 선교에 유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둘째,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는 한국인들이 이슬람을 오해와 편견으로 바라보고 언론매체가 이를 오도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이에 일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무슬림은 아랍어로 된 꾸란을 정확히 번역하지 않거나 이슬람을 사실적으로 기술하지 않아 앞으로 기독교인 이슬람 학자들의 양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중고등학교에서 이슬람을 과목으로 가르칠 때에도 이슬람 학자들이 호교론적으로 이슬람을 전달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현재 아세아 연합신학대학과 성결 대학교에서만 아랍어가 강의되고 있을 뿐 대부분 신학대학에서는 이슬람권 선교에 대한 강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셋째, 아랍어가 2001년에 중학교에서 생활 아랍어로, 2002년부터는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개설될 계획으로 이미 교육부에서 발표한 바 있고 현재 교재 집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아랍어는 이슬람의 언어이다. 물론 2,000만명의 아랍 기독교인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쓰고 있지만 약 3억이 아랍어를 국어로 쓰고 세계 12억의 무슬림의 예배언어로 쓰이고 있다. 아랍어로만 되어 있어야 꾸란이라 불리고 알라는 아랍어로만 대화할 수 있다하여 아랍어를 천상의 언어로 불린다. 다시 말해서 아랍어를 배우면 이슬람을 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아랍어 학습자들을 이슬람권 선교에 동원한다면 이 또한 극히 소외된 이슬람 지역 복음화에 하나님이 크게 쓰실 것이다. 아랍어 성경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표준아랍어로 되어 있어 아랍인 중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적절하고, 또 하나는 중동 23개국의 각국 방언으로 된 성경이 있는데 각 지역 복음화에 긴요할 것이다.

 

넷째, 1970년대 중동에 갔던 200여만명의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이슬람 포교를 한국 이슬람 중앙연합회가 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지금 한국의 무슬림의 대부분이 당시에 근로자로 갔던 사람들이라는 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또 이슬람 지역으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은 돌아와서 이슬람 중앙연합회에서 일하고 있고 중동 현지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의 활동을 보고하고 있어 보안상의 문제도 신중을 기해야 할 형편이 되었고 최근들어 한국에 입국한 중동 무슬림들이 한국 체류를 위해 한국어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 이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한국인과 만나게되면 한국인 선교사들의 활동이 쉽게 노출될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 입국한 아시아인 무슬림과 국제 결혼도 잦아지고 있어 앞으로 이슬람 가족제도를 전혀 모르는 한국 여성들의 사회 문제도 상당히 우려되는 형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우리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이 계속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보다 훨씬 더 복음에 적극반응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세계를 움직이고 계신다. 이제 하나님이 무슬림들을 어떻게 그리스도 앞으로 부르시는가 이야기해야겠다. 첫째, 정치적 사건을 통해서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엄격한 이슬람법을 시행하게 하였지만 이슬람의 그런 형식이 환멸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 결과 성경을 사러오는 숫자가 늘고 그리스도를 찾으러 교회에 나오는 무슬림 숫자가 늘고 있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 파키스탄에서 지아울 하끄 대통령이 정부에 이슬람법 시행을 강행하자 더 많은 성경이 팔리고 성경통신 강좌에도 더 많은 인원이 등록을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고백 하는 수가 더 많아졌다.

 

북부 이라크의 쿠르드인들이 동료 무슬림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그들 역시 더욱 복음에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이라크는 아랍족(78-80%)과 북부 쿠르드족(15-20%), 그리고 중부 순니(32-37%)와 남부 시아(60-65%)로 이루어져 이라크가 형성될 당시부터 복합적인 집단이었고 이들 각 공동체는 각기 동화되지 않은 채 살기도 했다. 쿠르드족에 대한 이라크 바아스당 정부는 당근과 채찍의 정책을 펴왔다. 쿠르드 문화 복원사업을 적극 지원하면서 쿠르드족 저항 운동만큼은 엄히 탄압하였다. 바아스당은 쿠르드족 분리주의 운동을 용납치 않았고 특히 석유가 많이 매장된 키르쿠크를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통합시킬 수 없었다. 이로써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시행하여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4천개 이상의 마을을 파괴시켜 수백만의 난민을 낳게 했고, 19969월 사담 후세인은 탱크를 비롯한 중화무기를 동원해 쿠르드 지역을 탄압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쿠르드인들이 복음을 갈망하게 되었다.

 

동서냉전의 상징이었던 구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중앙아시아의 여러 공화국에 사는 무슬림들은 70여 년간 무신론 공산주의 치하 이후 영적 갈증으로 복음에 적극 반응하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정치적 상황을 사용하신다.

 

둘째, 자연의 대이변을 든다. 방글라데시가 몇 년간 대홍수로 고생하고 있을 때 기독교 단체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제하였고,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에서 가뭄과 기근으로 허덕이는 아프리카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빵과 양식, 의료와 봉사를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기독교인의 구제와 개발 사역 팀들이 무슬림이 하는 것보다 훨씬 반응이 좋아 무슬림들마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게 되었고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있다.

 

셋째, 사람들의 이주를 든다. 전쟁이나 도시화 등 살 기회를 찾아 이주하는 사람들이다. 구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침입함으로써 아프칸 사람의 1/4를 난민으로 만들었다. 1989년 구소련의 철수후 지난 8년간 계속돼 온 내전이 1997525일 끝났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학생 무장 조직 탈레반(순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 아프간 난민촌 이슬람학교 학생들로 구성됨)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점령한 것이다. 지난 8년간 많은 수가 복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로 이주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찾았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입한 걸프전에서도 많은 난민들이 그리스도인 도움의 손길을 받았고, 그리스도께 향했다.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 등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복음에 대한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들이 소외되었다고 느낄 때 기독교 단체들이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친구가 필요하여 또는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더 열려있는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도 있다. 나중에 이들 중 많은 수가 세속화되고 환멸을 느껴 원리주의 이슬람을 택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께 올 수 있는 창문도 열려 있음을 본다.

 

네 번째는 능력에 대한 갈망이다. 병고에 시달릴 때와 악귀의 두려움으로 무력감을 느낄 때 특히 그러하다.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의 응답으로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고, 심지어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게 되었다. 이것은 곧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의 무슬림 지역에서 교회가 성장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다섯째, 종족의 회생이다. 쿠르드인들이 같은 종교를 가진 후세인에 의해 압제를 당하는 곳에서 하나님이 이것을 어떻게 쓰시나 보게 되었다. 외국의 것이라 느끼지 않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방법을 써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무슬림들을 방글라데시에서 보았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해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강함을 약함 속에서 완전해진다는 사실을 배우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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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와 국제기구

 

아랍경제사회개발기금 經濟社會開發基金

 

Arab Fund for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아랍 여러 나라의 경제사회 개발 증진을 위해 조성된 기금. 1968년 설립하여 72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하였다. 본부는 쿠웨이트에 있고 가맹국은 아랍 21개국이다. 개발계획에 자금을 공급하고 투자를 장려하며 기술 제공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아랍 경제의 공공 및 민간자본 투자를 촉진시킨다.

 

아랍공동시장 共同市場

 

Arab Common Market

 

아랍지역의 역내(域內) 관세 철폐를 위한 경제공동체. 아랍경제통합회의 감독 아래에 있다. 1965년에 발족하였으며, 가맹국은 이집트이라크요르단시리아 등 6개국이다.

 

아랍경제통합회의 經濟統合會議

 

Council of Arab Economic Unity

 

아랍지역 경제의 통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 1957년 아랍연맹 산하 아랍 경제회의의 결정으로 설립되었다. 64년 제1차회의가 개최되었는데, 가맹국은 m0402PLO) 등이었다. 이 가운데 이라크요르단리비아모리타니아시리아 등이 중심이 되어, 자본상품인구의 원활한 국제적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아랍공동시장을 형성하였다.

 

아랍석유수출국기구 石油輸出國機構

 

Organization of Arab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OAPEC)

 

아랍지역 석유산업의 협력을 위해 1968년 설립된 기구. 임기 1년의 의장직은 각 회원국들이 돌아가며 맡고, 매년 4차례 회의를 개최한다. 알제리바레인이라크쿠웨이트리비아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아랍에미리트 등이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있다. 본부는 쿠웨이트에 있다. 국가간의 긴밀한 연대 실현과 회원국들의 이윤 확보를 위해 석유시장의 동행을 유리하게 이끌도록 공동노력을 기울이고, 산업투자에 적합한 환경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사무국은 7개 부서로 나뉘어 각각 관리, 재정, 법률, 경제, 정보 및 홍보, 석유 사업, 문서 관리, 개발 및 생산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아랍아프리카경제개발은행 經濟開發銀行

 

Arab Bank for Economic Development in Africa

 

1973년 각국의 개발계획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은행. 알제의 아랍연맹 정상회담에서 결정하였으며 본부는 수단 카르툼에 있다. 아랍 연맹에 속하지 않은 아프리카 동맹(OAU)의 회원국들도 모두 이 은행으로부터 혜택받을 자격이 있다.

 

아랍연합공화국 聯合共和國

 

United Arab Republic(U.A.R.)

 

195821일 선포된 이집트와 시리아의 정치연합. 전국민적인 투표를 거쳐 친서구적인 아랍연맹에 대항하여 성립되었으나, 시리아가 군사쿠데타에 이어 이집트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61928일 해체되었다.

 

아랍제국 諸國

 

Arab Empire

 

셈어족 계통에 속하는 아랍인이 창설한 나라들. 일반적으로 서쪽 모로코에서 동쪽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중동-북아프리카제국󰡑이라고 총칭하는데, 이 나라들은 아라비아반도 남서부를 발생지로 한다. 이 제국의 정치경제 체제는 아주 다양하여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쿠웨이트 등은 전통적인 왕정을 고수하는 군주제임에 비해, 이집트시리아 등은 토지개혁과 기업국유화 등 사회주의적 제도를 대폭적으로 받아들여 독자적인 혁신노선을 걷고 있다.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오직 언어의 공통성과 아랍민족주의 이념이다.

 

아랍통화기금 通貨基金

 

Arab Monetary Fund

 

아랍연맹 21개 회원국의 자본시장 발전, 국제수지불균형 조정 등을 위해 창설된 기금. 1976년 설립되었다. 구체적으로 이 기금은 차용능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보증서를 발행하고, 통화기관들에 대해 기술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단기 자금을 대부해주기도 한다. 본부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있다.

 

이슬람회의기구 會議機構

 

Organization of Islamic Conference

 

19715월에 창설된 이슬람 기구. 이슬람교를 믿는 44개국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가맹하고 있다. 이슬람교도의 투쟁을 지원하고 이슬람국가의 연대강화,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 등의 분야에서의 협력을 목표로 한다. 국제이슬람통신사이슬람개발은행이슬람결속기금세계이슬람교육센터 등의 사업을 벌였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 解放機構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PLO)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1964년에 결성된 팔레스타인의 정치기구. 74년 국제연합(UN)의 상주 업저버 자격을 얻고, 100개국 이상이 대표부나 사무소 설치를 인정하는 등 준국가의 취급을 받고 있다. 82년의 레바논 분쟁으로 본부와 무장조직을 베이루트에서 철수한 후 PLO 의장 아라파트의 주도 아래 온건한 노선을 취하다가 93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예리고에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설립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445만 명으로 추산되는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통 조직이며, 팔레스타인 해방군(PLA), 입법기관인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NC), 내각에 해당하는 과도 정부 팔레스타인 민족행정기구(PNA), 파타(Fatah) 10여 개의 조직이 소속되어 있다.

 

이슬람원리주의 原理主義

 

Islamic fundamentalism

 

서구적 근대주의를 부정하고 이슬람의 원점으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는 이슬람화 운동. 팔라비왕조를 타도한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철저한 율법 준수, ()외세, 특히 반()서양문명, 반미(反美)를 특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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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선교전략 / 이슬람교 중앙회


2020년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선교전략

 

한국 이슬람화 선교전략은 50주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의 선교활동은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Korea Islamic foundation KIF)를 중심으로 이슬람교 중앙회(Korea Muslim Federation; KMF)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전략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소재한 중앙성원 본부와 산하 부산, 전주, 광주, 안양, 파주, 부평, 제주 등 전국 7개 도시의 지회들과 60여 개의 임시성원을 통해 추진되고 있다.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단계별 한국진출 전략은 다양한 부문에서 전개되고 있다. 첫째는 이주 근로자로 위장하는 선교전략, 둘째는 유학생으로 위장하는 학원 선교전략, 셋째는 주요 전략 도시에 이슬람사원 건축을 통한 지성원 확산전략, 넷째는 이슬람문화센터의 설립과 이슬람문화 행사를 통한 간접 포교전략, 다섯째는 이슬람 대학과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 설립 등 교육기관을 통한 선교전략, 여섯째는 한국기업 및 금융기관에 대한 투자 등의 경제협력을 통한 포교전략 등을 들 수가 있다.

 

1) 이주근로자들을 통한 이슬람화 선교전략


우리나라에 일자리를 찾아 입국한 무슬림 이주근로자들의 숫자는 10만이 넘는다. 이슬람 전문가들은 이 중에 1만3,000-만 명 정도가 이슬람의 포교를 위해 입국한 잘 훈련된 이슬람 선교사라고 보고 있다. 2006년에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입국한 인원이 300명이 넘는다는 인도네시아 출신 목회자의 증언도 있었다. 우려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로현장이 안전지대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의 1차 포교대상자는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친구가 되어 주고 도움을 주면서 그들을 이슬람으로 인도하고 있다. 일단 세력이 구축되면 친구로 삼은 한국인을 다음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확대한다.


이슬람권에서 온 이주근로자들이 합법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체류 동안 교회에 출석하여 그들의 어려움을 교회에 상담하면 최대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음을 이용하고 있다.


교회가 무슬림들을 교회로 받아드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을 섬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이들을 분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무슬림을 사랑하는 소그룹의 LMF(Love Muslims Fellowship)모임을 두어 이들을 말씀으로 훈련하고 사랑으로 섬긴다. 크리스천 기업주나 직장인들은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직장 신우회를 결성, 이들을 섬기도록 한다.

특히 무슬림 개종자와의 결혼 상담 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거짓 개종자에게 속아 결혼하고, 고통을 당하거나 결국 자녀들 때문에 무슬림이 되는 불행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2) 유학생을 통한 학원 이슬람화 전략


서울대에는 현재 수백 명이 넘는 이슬람권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석·박사과정의 학생들이다. 그들이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우수 두뇌집단인 서울대 학생을 목표로 하는 학원이슬람화 전략에 착수하였다. 지난 4월에 ‘서울대무슬림회(SNU Muslim Society)’라는 이름으로 영국에서 무슬림 강사를 초청하여 ‘인생의 목적’이라는 특강을 위한 모임을 가지고 학생들과 그 가족들을 초청한 것이다. 그들 50명과 외부에서 온 300명이 모였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슬람문화연구, 이슬람역사연구, 코란 스터디, 아랍어 동아리 등 다양한 전략들이 나올 것이다. 이들 중에는 ‘선교사’라는 명함을 자랑스럽게 내미는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현재 그들의 예배에 200-400명이나 되는 무슬림들이 참석하고 있는데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학내 무슬림 선교사들이 외부세력들과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우선전파 대상은 외국유학생들이다. 어느 정도 세력이 구축이 되면 다음 전략으로 한국학생들에게 포교한다는 것이다.


사우디의 ‘킹 압둘라 종합대학’에서 서울대 교수들에게 거액의 연구비를 제안하고 있다. 그들에게 10년간 지원할 수 있는 10억 달러의 기금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제 학문적 교류 측면에서 유익한 이런 제안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또 파키스탄에서 한국 내 20여개 대학에 약 1,000명의 유학생을 보낼 것이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국비 장학생들이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이슬람지역의 유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하는 일이 진행될 것이다. 지금 지방대학교에서는 학생 수가 줄어 운영난을 겪고 있는데 해결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는 앞으로 한국의 대학교 이슬람화를 위한 전략적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학원에서도 무슬림사랑모임(LMF) 활동을 통해 이슬람화를 저지하는 연합된 노력이 서울대학교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슬람화를 위한 매스컴 홍보전략

 


이슬람은 특히 한국의 매스컴을 통한 홍보 전략에 힘을 쏟아왔다. 2005년도 이슬람 13부작의 특집을 방송하였다. 1시간짜리를 13회에 걸쳐 방영하여 이슬람에 대한 호감을 갖도록 하는 대대적인 선전 효과를 거두었다.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투자였던 것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후에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호감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후속 특집들이 KBS와 MBC에 의해 각각 방영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가장 최근에 SBS가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이라는 4회 특집이다. 이 특집의 의도는 예수를 신화적 존재로 오도하고 기독교를 폄훼하여 이슬람교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천만 기독교인을 분노케 한 이번 특집이 기독교인이었던 담당 PD가 무슬림으로 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거액의 중동자금이 지원되었다는 후문이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고도의 이슬람 홍보 전략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의 대담하고 적극적인 공세에 놀랄 수밖에 없다.

 

중점 홍보전략 I: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주장

 


첫째로 그들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홍보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이란 단어가 평화라는 의미의 ‘쌀럼’에서 왔다고 주장하면서 이슬람교가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평화가 아니라 ‘복종’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이다. 영국의 한 이슬람전문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코란에서 단 한 구절이라도 평화를 말하는 구절을 찾아볼 수 있는가?” 코란의 내용 중 평화와 반대되는 뜻의 구절이 500-700구절이 넘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결코 평화의 종교라 말할 수 없다.

 

중점 홍보전략 II:알라는 우리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는 주장

 


둘째로 그들은 유일신 알라는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알라는 하나님과 전혀 다른 신이다. 이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교회, 이슬람과 그 정체에 대한 교육 필요

 


이슬람은 이단 중의 이단이다. 2020년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하고, 2080년도까지 세계를 이슬람화하겠다는 엄청난 이단종교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이슬람이 기독교를 와해시키고 우리의 안방을 점령하려고 몰려오고 있는데도 무방비 상태다. 이제는 저들의 전략을 알고 대비해야 한다.

 


교단마다 이슬람대책위원회를 두고 연구하면서 이들의 이슬람화 선교활동을 추적, 감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이슬람전문가들 양성하기 위해 적극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이슬람화를 위해 암약하고 있는 이슬람 선교사들을 찾아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말씀과 뜨거운 사랑으로 그들의 심령을 녹아지게 해야 한다. 저들이 속고 있는 적그리스도의 영인 알라 대신에 참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슬람에서 외치는 “동방에서 이슬람의 횃불을 밝히는 한국!”(쿠웨이트 알아라비 2007 4월호)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동방에서 이슬람을 위한 사랑의 횃불을 밝히는 한국!”이라는 구호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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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슬람교,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슬람은 한국 역사에서 생소한 종교였다.

그러나 역사적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원성왕(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괘릉 옆에 무인석상이 서 있다.

무인석상은 곱슬머리와 곱슬 수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무슬림의 전통 복장인 터번을 쓰고 있다.

그 모습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라의 스님 혜초가 727년에 쓴 왕오천축국전에 의하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를 방문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에 이미 중동 사람이나 중앙아시아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수도인 개경(오늘날의 개성)에 이슬람 사원 격인 예궁(禮宮)이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이슬람 예배가 진행되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역법에는 이슬람력(Islamic calendar)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조선 세조 때에는 투르크-페르시아계 무슬림 거주 지역에서 수출하는 도자기 안료인 회청이 수입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일부는 한국 문화 속에 동화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당시 터키 출신 이맘 두 명이 병사들과 함께 건너와 청진학교를 세우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에 교육으로 이슬람을 소개했다. 이들의 노력 덕에 2년 후 한국인 두 명이 무슬림이 되었다. 1955년 이 개종자를 필두로 현재 한국인 무슬림은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인 무슬림은 무슬림 국가의 재정 원조를 힘입어, 첫 모스크 서울중앙성원(Seoul Central Masjid)을 이태원에 세웠다. 현재 한국 전역에 모스크 10개와 기도처 40개가 있다.


한국인 무슬림이 점차 늘어나자 사회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전체 통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최근 들어 계속 늘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 출신의 무슬림이 한국에 더 들어오고 있다. 2007년까지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 무슬림은 110,000명이었다.
이슬람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가 부족하여, 공장이나 학교에서 무슬림이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한국에 살면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한 예로 한국 정부의 아시아 프로그램 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무슬림 노동자는 불행히도 연수 훈련지를 돼지 사육 농장으로 배정받았다. 한국 측에서 사육용 돼지를 키우는 일이 무슬림에게는 금지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계속적으로 이슬람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약 2만 명의 산업연수생이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때부터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무슬림이 약 25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약 40만 명에 달한다.

이제 이슬람은 한국에서도 중요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2050년에는 한국의 이슬람 인구가 300-400만 명이 될 것이며,

이슬람은 불교, 천주교에 이어서 3번째 큰 종교가 되고 기독교는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과거 중동이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었지만 지금은 이슬람 국가들로 바뀌었고,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유럽이 이슬람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이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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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사원 /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슬람의 한국을 향한 포교전략들 

 

이슬람 인구가 세계 인구의 1/4에 육박하고 17억명에 달하는 무슬림들이 세계 도처에 퍼져 살고 있기 때문에 온 세계가 매일 무슬림들의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이 어느새 한국에 들어와 세력을 형성하여 한국을 이슬람화 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혹자는 무슬림들이 우리 중에 많아지면 우리가 중동으로 나가지 않고도 이웃에서 선교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알라의 이름으로 통일될 때까지 계속 싸우라(꾸란8:39)고 명하고 있으며, 비무슬림을 친구로 삼는 자는 지옥에 갈 위선자들이라고(꾸란4:237-145)한다. 이런 경전의 가르침을 진리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제 정신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에게 평화로운 미래를 물려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슬림들이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첫째는 거짓 홍보선전이다.

 

이슬람에는 타끼야(Taqiyya)라는 교리가 있는데 이는 이슬람에 유익이 된다면 무슨 거짓말이나 맹세를 해도 좋다는 것이다.(꾸란2:225, 꾸란16:106등) 한국 최고의 이슬람 학자라고 하는 학압두 박사는 전주M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에서는 이혼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혼은 두 번까지 허용되며(꾸란2:229), 이혼하는 법을 알려주는 이혼장(꾸란65장)도 있다.

 

꾸란에 불신자들의 목을 치라는 구절(꾸란8:12, 꾸란47:4)들 때문에 열심 있는 무슬림들이 매일 테러를 저지르지만 소위 이슬람학자라는 사람들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며 타끼야 교리를 적용하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심지어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까지 혐오스러운 부분을 숨기고 타끼야를 적용해 미화시켜 한국어로 번역 출판해 놓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KBS를 비롯해서 학생들만 보는 EBS교육방송 뿐 아니라 한국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MBC, SBS등 공중파 방송들이 앞 다투어 이들의 거짓말을 대신 홍보해 주고 있고 순진한 국민들은 별 생각 없이 속고 있다.

 

둘째, 아랍어 공교육화운동이다.

 

이슬람의 언어는 아랍어이다. 1972년 리비아 주재 이슬람 종교성에서 발표한 선교전략 중 두 번째 항에 보면 “아랍어를 공용어를 채택하든지 아니면 아랍어를 각급학교에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도록 하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의 무슬림들은 2005년부터 아랍어를 대학 입학 수능시험과목으로 집어넣는 전략에 성공했다. 한국의 중, 고등학교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아랍어가 수능과목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난이도가 쉬워 아랍어에서만 백점짜리가 쏟아져 나오자 학생들은 쉽게 고득점을 얻기 위하여 8개 언어 중 아랍어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2013년 수능시험 때는 45.8%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무슬림 교수들은 인기 좋은 아랍어를 공교육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고등학교마다 아랍어 교사를 채용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수천 명의 아랍인 무슬림 선교사들을 교육부 재정으로 채용해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들은 성적이라는 칼자루를 잡고 학생들을 손쉽게 이슬람으로 개종시킬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이슬람화는 순풍에 돛단배처럼 급진전 될 것이다.

 

셋째, 한국의 교육제도와 교과서를 통해서

 

이슬람권에서 장학금을 받아 박사학위를 받아 온 한국인 무슬림들이 대학교수로 강단에 서서 젊은이들에게 미화된 이슬람 사상을 주입시킨다. 심지어 모 대학 아랍어과에서는 수강생들 모두에게 아랍어로 꾸란을 암송하는 것을 테스트하는 동영상도 youtube.com에 올라와 있다.

 

또한 한국이슬람교중앙회는 해마다 중, 고등학교 사회 및 역사 교사들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거짓으로 미화된 홍보용 이슬람을 소개하고 가르친다. 그들은 “듣고 보니 좋은 종교군요”하면서 학생들에게 이슬람에 호감을 갖도록 대신 홍보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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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슬람화 실태

 

게다가 이슬람은 지금 체계적인 세계의 이슬람화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전 세계적으로 투쟁(지하드)하고 있다. 이미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각국에서 지대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대로 가면 유럽의 무슬림 숫자는 2025년에 이르면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잇다. )이에 관하여는 을 참고하라).

 

문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데 있다. 최근 한국교계는 2020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 하겠다는 이슬람권의 행보에 고심하고 있다. 투아이즈 네트워크에 따르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이미 중동 국가의 한 언론은 무슬림들이 한국을 이슬람화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한다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고, 이 전략은 200511월 서울에서 개최된 중동 이슬람 지도자 선교대회에서 한국을 2020년까지 이슬람국으로 만들겠다는 소위 비젼 2020전략으로 구체화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는 이슬람권에서 온 많은 유학생들과 근로자들이 그들의 선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잇다. 최근 한국에 들어와 활동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은 45~ 50(2006년 노동부 발표 자료)정도로 추산되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이슬람권에서 입국한 근로자들로 무려 10만 명에 이른다. 그것은 지성의 산실을 표방하는 캠퍼스들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서울대학교와 KAIST를 중심으로 한 무슬림 유학생들 커뮤니티 결성의 움직임은 단순한 교류와 예배를 위한 모임을 넘어선 이슬람 선교를 위한 행보임을 구체화 하였고. 이는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된 본래적 목적이 무엇임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다.

 

다행이 중동선교회, 투아이즈 네트워크, 한국이란인교회와 같은 기관을 중심으로 이슬람의 실체와 한국 이슬람화 계획들이 폭로되고 있다. 그들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이슬람의 한국 침투는 매우 전략적이다. 다음은 지난 2005년도에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에서 출판한 한국이슬람 50년사에 소개된 이슬람의 한국 선교전략을 간추려 본 내용이다.

 

사원 건립 : 현재 있는 서울 중앙성원을 비롯해 9개의 이슬람 성원, 4개의 이슬람 센터와 50여개의 임시 예배처소를 점차적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국제 이슬람학교 설립 : 무슬림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한 교육시설이라는 명목으로 영어로 가르치는 초등학교, 유치원을 만들어 어려서부터 이슬람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슬람대학 건립 : 1970년대 말부터 구체화 되어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이 대학을 통해 최고급 무슬림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들에 침투할 것이다.

 

이슬람 문화센터 건립 : 이를 다와 센터 (Da'wah Center)라고 부르는데, 선교센터라는 말이다. 아랍어와 이슬람 교리강좌, 벨리 댄스 등을 통해서 한국에 이슬람을 뿌리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꾸란 번역 위원회 : 꾸란을 더 완벽하게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서 꾸란 번역위원들의 정기모임이 매주 열리며 비정기적으로 연구토론모임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슬람 서적 출판위원회 : 지금까지 많은 이슬람 서적들이 나와 있으며, 더 많은 책들과 인쇄물들을 만들어 홍보하고자 한다.

 

결혼 및 출산 전략 : 외국인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취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국 여성과 결혼해 가능하면 많은 자녀들을 낳아서 무슬림들의 숫자를 늘리고자 한다.

 

현재까지 한국의 이슬람교의 물리적 형편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중동선교회에 따르면 국내 무슬림 인구는 약 5만여명으로 전체 인구 중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도시들의 이슬람 사원과 기도처 건립은 물론, 위에서 언급한 이슬람의 전방위적 선교활동은 점차 확장 일로에 놓여 잇다. 거기에 온라인을 통한 포교의 노력까지 곁들여 한층 그 힘을 더해가고 잇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사회가 크게 관심하지 않는 사이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슬림들은 한국의 이슬람화 전략을 단계적으로 착착 시행해 나갈 것이라는데 있다.

 

한국에 이슬람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게 되는 날 한국은 테러에서 자유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미 유럽의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슬람은 소수일 때는평화를 강조하지만, 그 사회에 5%만 점하여도 당장 테러는 이슬람 다와의 매우 유용한 도구로 변화된다. 이미이슬람은 테러를 통해 그들의 주장이 효과적으로 멱혀들었던 전례들을 수없이 가지고 있다. 게다가 테러는 알라의 거룩한 멸령이다. 만일 한국에서도 이슬람이 자연스레 인식되기 시작하는 날이 온다면, 때는 이미 늦게 될 것이다. 그 테러의 희생자는 바로 나와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알던 무슬림들은 사람만 좋아보일 뿐 그 속은 무서운 정복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지요.

 

우리가 아는 무슬림 테러집단 뿐만이 아닙니다. 언젠가 모든 무슬림들이 테러집단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MyLoveChina | 글쓴이 : 익명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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