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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교회성장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41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기 위하여, 합법적 자녀를 가진 인류와 거룩한 씨를 가진 교회의 증가를 위하여, 부정을 막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

일반적으로 교회 성장은 결혼과 거룩한 씨의 출산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소위 교회 성장학이 결혼과 출산의 중요성을 다룬 것을 본적이 없다. 모르는 이웃을 전도하는 것보다 자기 집의 자녀들을 전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진정으로 교회성장을 바란다면 혼인, 유아세례, 입교와 같은 일에 더 관심을 더 가질 필요가 있다. 오늘날 결혼과 출산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교회 성장의 가장 큰 적이다. 교회는 결혼을 어렵게 만드는 모든 사회적 악에 대항하여 싸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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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자녀들을 성인으로 훈련시키기

 

한국 사회에서 성인으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19세 전후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성인으로 간주된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선거권을 갖게 되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어떨까? 놀라웁게도 한국 교회는 교회법상 15세부터 성인으로 간주한다. 입교식은 유아세례를 받은 이가 정식으로 교회의 정식 멤버로 등록되는 예식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법상으로는 한국 사회보다 훨씬 진보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실제 교회 생활 속에서 그들은 전혀 성인으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니 훈련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개혁교회에서 입교식은 "신앙 고백"(confession of faith)라고 불리운다. 원래 이 예식의 기원은 견신례(confirmation)에 있다. 동방교회는 이것을 "기름부음" (Chrismation)이라고 불렀고 대개의 경우 유아 세례 직후에 시행한 반면, 서방교회는 일정한 성인이 된 후에 교리문답의 과정을 거쳐 이 예식을 시행하였다. 서방교회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개혁교회는 이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카톨릭에서 이 예식을 7가지 성례 중 하나로 보는 반면, 개혁 교회에서는 이 견해를 부정하였다.

 

개혁교회가 입교를 성례로 거부하였다고 해서 이 예식을 소홀이 생각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혁교회의 부모들은 아이가 성년이 되면(보통 고등학교 2학년) 입교를 위한 목사가 인도하는 교리문답 교육에 1주일에 한 번씩 참여시킨다. 교육이 끝나면 당회에서 심사하여 교인으로 받을 것을 결정하고 오는 주일날 예배 시간에 입교식을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한국교회와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 교회는 이것이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개혁교회에서는 철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좀 독특한 것은 입교식을 하는 시간에 목사는 당회에 제출된 개인의 신앙고백서를 읽는다는 것이었다. 그 속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 학생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져 있다. 그 학생들은 좌석 제일 앞에 앉는데 이어지는 성찬식에서 가장 먼저 포도주와 잔을 분배 받는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목사와 장로들이 가장 먼저 와서 온교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축하의 악수를 나눈다. 그들이 교회의 정식 회원이 되는 순간이다.

 

개혁교회에서 이렇게 입교식이 끝나면 정말로 교인이 된다. 그것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 학생들이 공동의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공동회의는 보통 주중 저녁에 실시되는데, 아버지(내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없으며 공동의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그 자리에 참석하게 한다. 보통 자녀들은 아버지 옆에 앉는다. 공동의회는 물론 매우 질서정연하게(decently) 이루어진다. 예를 하나들면, 공동의회는 회의실에서 실시되었는데, 1인용 의자가 8개씩(중간에 통로를 남기고) 배열되어 있었고,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착석을 하였다. 따라서 몇명이 참석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갓 입교한 학생들은 개혁교회의 정치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한 번은 노회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놀란 것 중의 하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시간 중 시간을 내어 방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학생들은 이 교단에서 운영하는 기독교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학생들은 자기 노트에 다음 시간에 발표할 내용을 메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보고 배움으로써 책임있는 성년이 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런 훈련들을 어려서부터 받아서 인지는 모르지만, 개혁교회의 고등학생들은 대부분의 경우 (덩치도 크지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정말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나는 한국교회의 정서와 큰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공동의회에 잘 참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겉으로는 참석하라고 광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참가하는 것을 막는 분위기이다. 솔직히 회의문화가 천박한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의 참석을 가급적 막는 분위기이고 이것은 아이들에게 교회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겨주게 된다.

 

우리가 이런 좋은 개혁교회의 전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른들의 뼈를 깎는 자성의 모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보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어른들은 (나의 세대도 마찬가지) 제대로 된 교회 정치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인간들은 원래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르면, 겸손히 성경과 교회의 전통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개혁교회를 참된 모습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자신들의 무식을 인정하고 성경에서 참된 개혁교회의 원리를 연구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연구하여 온 성도들이 함께 훈련을 받는 길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책임있는 성인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고 여기에 개혁교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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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의 기독교

 I. 3 세기의 박해

II. 3 세기 - 변화

1 세기가 "시작"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면, 2 세기는 "박해"로, 3 세기는 "변화"의 세기로 명명될 수 있다.
기독교가 고통을 당하는 기간동안 태도와 교리에서 변화가 생겼다. 변화가 있었던 몇 가지 주요한 영역은 다음과 같다.

A. 교회 직분(Offices)의 변화
2 세기에 목양자와 집사의 성경적 직무에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목양자의 권능과 특성이 커갔다. 그리고 성직자 계급제도를 높이는데 영향을 끼친 성직자직분의 특성이 뒤따랐다.

3 세기 중반에, 성직자 계급이 나뉘기 시작했다. 감독과 장로 사이에 차별이 확립되었다.이후에, 많은 직분(office)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부집사, 성구 낭독자, 또는 성가대, 문지기, 시종직(acolytes)(감독 수종자), 무당(exorcists) 등이다.
오직 감독만이 임명하는 권리를 가졌다. 서방에서는 견진 성사(confirmation)의 개념이
생겼다. 견진례를 베푸는 권리는 오직 감독에게만 주어졌다.

성직을 계승하는 개념이 생겨났다.
요약하면 : 1 세기 - 성직자 없음 : 장로(감독) & 집사
           2 세기 - 평신도 위에 성직자가 등용
           3 세기 - 성직자가 여러 등급으로 나뉨

1. 이레니우스 (115-200 A.D.)
그는 사도직을 존속시키고 캐톨릭 전통을 전하려는 매체로서 감독제도 개념을 감독관구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이단에 대적하여 신앙의 보존자요 보호자로 "사도적 계승(apostolic succession)"을 강조했다.   

2. 키프리안(Cyprian)(200-256 A.D.)
그는 희생 사역의 성직자직분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의 교리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그는 "감독은 교회 안에 있고 교회는 감독 안에 있다. 누구든지 감독과 같이 하지 않으면 그는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B. 교회 행정의 변화
초기부터 성직계급제도의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씨는 1 세기에 뿌려진 것이다. 

1. 교회 성직 계급제도의 출현에 영향을 끼친 요인
다음과 같은 요인의 영향으로 캐톨릭 성직계급제도가 서서히 발전되었다.

a.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모델들
기독교는 로마에 의해 지배받는 세상 안으로 태어났다. 로마는 종교적 의식(sacralist) 사회였다. - 로마의 행정과 종교는 분리할 수 없는 얽혀진 형태였다.
양자가 별개로 나뉘어서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제국의 영토 안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로마 행정의 지배를 받았고 당연히 로마의 다신교를 신봉해야 했다.
 

이 혼합 사회는 결국 로마와 참 기독교 사이에 충돌을 낳았고, 또한 기독교 안에 종교적 의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b. 유대 (구약) 체계
부분적으로는 초기의 유대교적 경향으로 인하여, 부분적으로는 교회 형태의 성직자 직분 개념에 대한 성경적 지지를 얻으려는 방법으로, 신약교회 체제(order)의 모형을 구약의 레위 성직자 직분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원래 종교적 의식 사회였다. 이스라엘 국가에 속한 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어진 종교를 가져야 했다. 
 

구약 체제를 신약 교회의 실행에 적용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구약 성직자직분    →    신약 사제제도
구약 국가              →    신약 카톨릭주의
구약 할례              →    신약 유아세례
구약 유월절           →    신약 만찬
구약 종교적 의식   →    신약의 전례(예배식)


c. "모교회(Mother Churches)"의 승인
사도적 기원을 가진 교회들은 순수한 사도적 전통의 주(主) 매체(媒體)로 존중되었고, 자연히 이들 교회의 감독들은 큰 존경을 받았다.
로마제국은 정치적으로 감독관구로 나뉘어졌고, 각 감독관구는 여러 지방으로 나뉘어졌다. 각 지방에는 수도가 있었다. 수도에 위치한 교회의 감독들은 수도대감독(Metropolitan Bishop)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다른 지방 분구(分區) 주교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졌다.
수도대감독들에게 대주교(Archbishop), 수도대주교(Primates), 총대주교(Patriarchs)의 명칭이 주어졌다. 이 당시 그리스도인에게 영향을 끼친 3 대 중심지는 로마,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였다. 이 도시들은 무역과 여행과 정치적 영향에서도 주요한 중심지였다. 

d. 이단의 출현
이단들의 등장으로 참된 그리스도 교회(Catholic church)는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외적 특성들을 나타내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2. "우주적인 교회(Universal Church)" 

보편적(우주적) 교회 개념은 이 시대의 시대적 발전의 필연적 결과였다.
이 우주적 교회 개념을 조장시킨 이는 "부패한 교회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안(200-258)이다.

신학적으로, 이같은 이상한 개념은 "교회(에클레시아)"와 "왕국(바실레이아)"을 동일시함으로써 정당화되었다. 이 엄청난 오류는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제안한 자들의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믿는이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이며",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이고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 실재(entity)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교회는 그 본성에 있어서 지역적이고 가시적인 것이다. 이 개념은 하나님의 왕국이 구원의 영역이기 때문에 "교회"도 구원의 영역이 된다는 논리적인 결과를 추가로 제안자들에게 제공했다. 키프리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더 이상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
 (250 A.D.)

키프리안의 많은 교리는 그와 노바티안파와의 충돌의 결과로 발전된 것이다. 그는"한 개의 참된 우주적 교회(ONE true universal church)"를 제안하여 계급 제도를 반대하는 자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였다. 

Cunningham은 이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교회 안에 오류와 부패가 진보하게 된 것은 키프리안의 지대한 공헌 때문이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개념을 거부하고 신약 형태를 고집스럽게 고수하였다. 그 결과 제도권 교회들은 이들을 "교회 분리자(Schismatics)" 또는  "이단(heretics)"으로 불렀다.

 

3. 로마 교회
이 교회는 그 당시 큰 교회 중의 하나로서(롬 1:8), 다른 이들에 의해 큰 존경을 받았다.
a.로마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였다.
b.가장 큰 교회 중 하나였다.
c.많은 교회들을 세우는데 활동적이였다.
d.많은 지역을 도왔다. 이 교회는 그들이 베푼 사랑으로 존경을 받았다.
e.로마 제국에 의해 첫 번째로 박해를 받았다.
f.그들의 순교자 명부에는 많은 유명한 순교자가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순교는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g.논쟁이 있을 때에 권위를 가지고 말했다.
h.사도 시대에 세워진 오래된 교회였다.

모든 시선이 이 교회를 향했고, 곧 교회 권위의 가장 상좌(上座)로 여겨졌다.
로마의 감독 빅터는 교리적 문제로 소아시아 교회들을 파문했다.
키프리안은 베드로의 우월성을 가르쳤고, 로마교회 감독직은 사제의 유일성(unity)의 원천인  베드로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교황제도를 옹호하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3 세기에 로마 교회는 단지 교리의 해설자가 아닌 보호자로 여겨졌을 뿐이다. 로마 교회는 명령 또는 통제에 관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무오하다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C. 교회 기율(紀律)의 변화.

성경은 때로는 교회 회원의 자격 박탈을 가르친다(마 18:17).
 

3 세기의 그리스도인 가운데 회개자(Penitent)라는 부류가 생겨났다. 이 부류는 파문되었다가 회개 의사를 표시한 자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도록 특별한 장소에 앉아야 했다. 성직자들이 그들에 대한 벌을 정하였다.
비록 이 당시에는 참된 내적 회개가 강조되었지만, 결국 이 기율은 "고해성사 (Penance)"의 교리로 발전되는 기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 가운데서 용서받을 수 있는 죄와(venial sins)와 용서받지 못하는 죄(mortal sins)가 구별되었다.
(용서받지 못하는 죄는 후에 "밥티스마로 베푸신 은혜"를 상실하는 것으로 주장되었다)

 

D. 교회 예배의 변화

 

1. 금욕주의의 출현

금욕주의는 근본적으로 동양 신비주의의 산물이다. 금식의 날을 정하는 것과 독신주의는 금욕주의의 초기 형태이다. 많은 경우, 수요일과 금요일이 금식의 날인데,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정했다가 후에 교령(敎令)으로 정해졌다.

2. 예배장소

그리스도인들이 모임 장소로 사용한 초기의 건물은 로마의 공회당(basilica)을 모방한
것이다. 이 공회당은 그 당시 재판소와 증권거래소였다. 성찬을 받는 사람(communicants)은 본당에, 회개자는 현관에, 관객은 별석(別席)(gallery)에, 성가대와
감독은 후진(apse)에 모였다.

3. 상징(Symbols)
3 세기말에 사람들은 "십자가의 상징"에 신비한 효능 같은 것을 부여했다.

 

E. 밥티스마(침례) 실행의 변화
3 세기까지, 모든 밥티스마는 성인을 물에 잠그는 것이라고 확실히 공표되었던 것 같다.교회들이 규례에 성례전의 강조 사항을 넣을 경우, 유아들은 밥티스마를 받지 않았으며,
물 뿌리는 양식을 실행하지 않았다.  몇몇 교부들(특히 터튤리안)의 고증을 연구한 결과
밥티스마의 실행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얻을 수 있다.

 

1. 성인에게만 실행되었다.
2. 잠김으로 실행되었다.
3. 통상 긴 가르침이 선행되었다.
4. 자주 장대한 의식으로 거행되었다.

a. 이마와 가슴에 성호.
b. 밥티스마 후보자에게 우유와 꿀을 줌.
c. 소금을 baptizand의 머리 여러 곳에 둠
d. 256년 카르타고 공의회 후 밥티스마 전에 주문을 외우는 의식이 생김
e. 모든 밥티스마 후보자의 대부모(代父母) - 그들의 가르침을 보증

5. 효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짐
3 세기까지 밥티스마는 구원의 과정을 완성시키기 위해 지켜져 왔다. 밥티스마는 원죄를 씻어버린다고 했다.


a, 터툴리안

비록 밥티스트와 유아세례자들이 똑같이 그를 자주 인용하였지만, 터툴리안은 밥티스마와 관련한 많은 반대적인 실행에 대항했다. (터툴리안은 제도권 교회에 속했지만 후에는 회심하고 몬타니스트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할 것)터툴리안은 조기 밥티스마와 대부모의 사용을 반대했다.

b. 키프리안

대조적으로 키프리안은 밥티스마에 성수가 (따라서 성수를 뿌리는 자 -사제) 필요하다고 가르쳤다. "성수는 성령의 깨끗케 하는 에너지를 운반하는 매체가 된다"
또한 키프리안은 편의주의적 실행으로 물을 붓는(pouring) 것을 처음으로 지지하였다.

비록 밥티스마가 여전히 물에 잠그는 것으로 실행되었지만, 초기의 가장 큰 규례의 부패는 아프리카 교회로부터 왔다. 첫 번째 예로 Clinic Baptism을 들 수 있다.
그가 곧 죽을 것으로 여겨지자 노바티안은 Clinic Baptism을 받아들였다. 그가 종이로
자기 몸을 완전히 두룬 후 그 종이를 물에 담그어서 마치 그를 물 속에 잠근 것처럼 생각했다는 것은 주지해야 할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우리는 이 기사로부터 그 당시에는 물에 잠그는 실행을 올바른 양식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2 세기 동안 유아세례가 없었다는 사실은 많은 학식 있는 유아세례자들도 충분히
인정한 것이므로 그들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F. 주님의 만찬의 변화
     

1. "애찬(愛餐)(아가페)" 이는 초기부터 많은 교회들이 지켜 온 애찬(love-feast)이다 - 행 2:46, 유다12박해를 받는 동안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모여서 음식을 나누었다. 때로는 주님의 만찬 후에 애찬이 있었으나 지나쳐서 문제가 발생했다.
 

2. Eucharist
이것은 주님의 만찬에 붙여진 초기의 명칭 중에 하나다. [헬라어 유카리스테로(Eucharisteo) - 감사(thanks)]. 성찬중시주의(sacrementalism)로 인해 주님의 만찬의 단순성과 순결성이 변했다.

 

3. 미사(Mass)

비록 오늘날 실행되는 것과 같은 미사가 얼마 동안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용어는
만찬 때 성찬을 받지 않는 사람들(non-communicants)을 제외시킨 3 세기의 관습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예비 예배(Preliminary Worship) 후에 밥티스마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퇴장시켰다. "퇴장(dismissal)"의 라틴어 "missa"로부터 "미사"가 유래했다. 

 

G.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케 하는 영향력은 3 세기에 극에 달했다. 이는 주로 한 사람,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 학파 출신의 유명한 그리스도인 철학자(골 2:8), 오리겐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1. 오리겐의 생애
a.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복한 그리스도인 부모 밑에서 태어남
b. 젊은 나이에 높이 평가받는 성공적인 교사가 됨
c.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193-211 A.D.)가 일으킨 박해 중, 202년에 생애의 극적인 변화를 맞이함.
그의 아버지가 순교를 당함

그의 가족이 빈곤하게 됨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강제로 도피하자, 203년에 18 세의 나이로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학교의 교장이 됨.
 

d. 그는 천재이며, 광범위한 독서와 저술과 수집을 함. 그노시스주의자 암브로우스의
서재를 가짐

e. 신플라톤주의 창시자인 이교도 암모니우스 사카스(170-243 A.D.)의 문하생이 됨.
f. 극단적인 금욕생활을 함. 맨발로 맨 땅에서 잤으며, 스스로 고자가 됨.
g. 박해에 맞서는 용맹성과 극단적인 인내로 존경을 받음.
h. 213년에 로마를 방문함.
i. 215-219 년 동안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되어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에 거주함.
j. 후에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서 231년까지 머무름. 231년에 알렉산드리아 지도자와
              다툰 후 추방당하여 영구히 알렉산드리아를 떠남.

k. 232년에 가이사랴로 가서 알렉산드리아 학교와 경쟁이 되는 다른 학교를 설립함
l. 데키우스 황제가 일으킨 박해 때 받은 가혹한 박탈과 고문의 결과로 죽을 때까지
계속하여 가이사랴에 머무름. 

 

2. 오리겐의 믿음

오리겐은 일반적으로 위대한 교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지만, 그를 숭배하던
자들조차도 그가 엄밀하게 정통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a. 비록 많은 그노시스파들과 철학적 논쟁을 가졌지만 그는 그노시스파의 신조에
               정통했다.
           b. 플라톤 철학에 몰두했다.
           c. 구약을 신약과 비유하여 알레고리로 해석하며 자주 구약을 신비적인 방법으로
               해석했다.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배운 철학에 따라 문법적 해석에서 자기 의견상
               불합리하거나 불가능한 의미가 도출될 때마다, 문자적인 의미를 벗어났다.

              그는 말하기를 "성경을 기록된 대로 이해하는 자에게 성경은 아무 소용이 없다"
              고 했다.

          d.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의 기사를 부인했다.
          e. 혼이 영원 과거부터 존재했다고 믿었다(혼의 선재).
          f.  어떤 사람의 혼이 죽은 후,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고등 생명이나 하등
             생명으로 귀속된다는 혼의 윤회를 믿었다.
          g. 사악한 자도 형벌(연옥?) 후 결국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 구원을 믿었다.
          h. 육체의 부활을 부인했다.
          I. 별들과 행성이 혼을 가졌다고 믿었다.
          j. 마귀들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k. 목양자를 사제로 언급한 최초의 사람 중에 하나이며 감독은 중대한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말했다.
          l. 밥티스마를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암시를 보였다.
         m.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후천년 견해를 주장했다. 대부분의 초기 교부들은
             전천년주의자(chiliasts)였다.

       3. 오리겐의 작품들
          오리겐을 유력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그의 작품이다. 그의 생애 동안 약 6000권의
          책을 저술했다. 초기 교부들이 작성한 현존하는 신약 인용문의 50 % 가 그가 작성한
          것이다. 7 명의 유명한 교부가 작성한 신약 인용문 목록에서 오리겐이 작성한 것이
          거의 18,000 개다.

          a. 그의 주요 작품들
            · 오리겐은 거의 모든 성경책에 대하여 주석을 썼다.
            · 그의 저서 "제 1 원리(De Principiis)"는 방대한 조직신학이다.
            · 그의 책 "켈수스 이단 반박"은 변증론이자 논쟁이다.

          b. 구약 본문에 끼친 그의 영향 - THE HEXAPLA
              헥사폴라는 6개국어 구약 대조(對照) 성경이다. 6 개의 난으로 구성되었고, 각
              난은 구약 본문의 번역본을 실었다.  
            · 그 크기가 대략 6500 페이지, 50 권의 대형 두루마리에 달한다.
            · 약 250 년에 완성되었다
            · 그는 7 명의 속기사와 7 명의 필경자와 같이 일했다.
            · 첫째 난
               히브리어 본문으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후기 마소라 본문과 실질상
               동일한 것이다.
            · 둘째 난
               히브리어의 그리스어 음역이다
            · 셋째 난
               아퀼라(Aquila)(95-137년)의 그리스어 번역본이다. 아퀼라는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회심한 후에도 점성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문을 당한 후
               다시 유대교로 돌아갔다.
            · 넷째 난
               에비온파였던 심마쿠스(Symmachus)(160-211 년)의 그리스어 번역본이다.
            · 다섯째 난
               오리겐 자신의 작품으로 통상 70 인역(Septuaginst)과 동등시된다. 오리겐은
               히브리어에 대하여 불완전한 지식을 가졌으며, 그가 당시 유포된 그리스어 및
               히브리어 본문을 정열하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 여섯째 난
               또 다른 에비온파 데오도티온(Theodotion)(160-211년)이 만든 그리스어
               번역본이다.
            · 헥사폴라는 가이사랴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이슬람교도들이 침입하여 분실 또는
               파괴될 때까지(638년) 이 곳에 남아 있었다.
            ·  5 번째 난은 오늘날까지 모두 잔존하며, 바티칸 사본(B) 필사본, 시내 사본(K),
                알렉산드리아 사본(A), Ephraemi Rescriptus(C)에서 발견된다.

          c. 신약 본문에 끼친 그의 영향
           오리겐은 자주"추측 교정(Conjectural Emendation)"이라는 본문 비평학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신약 본문을 고쳤다. 추측 교정이란 "당신이 생각하기에 본문을
           고쳐야 한다면 고쳐라!"를 뜻한다.    
                
    H. 교리의 변화
    
         2 세기의 대표적인 이단이 그노시스주의였다면 3 세기는 일위신론(一位神論)
       (단일신론 : Monachianism)이다. 이 이름은 터툴리안이 하나님의 단일성(unity)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호하려는 시도로 계발한 가르침에서 적용한 것이다. 일위신론은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한다

         이 시대에 발달된 또 다른 이단은 "성자종속론(Subordinationism)"이다.

         1. 역동적 일위신론(Dynamic Monachianism)
            이것은 사실상 에비온 이단의 존속으로, 하나님의 단일성을 지지하는 이론이다.
            이 일위신론의 형식은 비잔틴의 데오도투스(Theodotus)가 처음으로 가르쳤으며,
            대부분은 특히 사모사타(Samosata)의 바울이 가르친 것이다.
            사모사타의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 "로고스(Logos)"는 아버지에게
            종속되었으며, 인간의 이성이 사람 안에서 존재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다. 비인간적 권능(로고스)은 사람인 예수 안에
            들어가서 점차적으로 그를 신성화했다. 비록 그가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님으로 간주될
            수 없다 할지라도"사람인 예수가 그렇게 신성화되었기 때문에 그는 신성한 영예
            (honor)를 받기에 합당하다".

            이 이론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기 보다는 사람이 하나님이 되었다고 가르친다.

         2. 양식론적 일위신론(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 :
            Patripassianism/사벨리우스주의 :
            이 이단은 신격의 세 인격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세 양식으로 생각한다.
            이 이론은 스미마의 Prakeas 와 Noetus이 최초에 주장하였다.  가장 잘 알려진
            제안자는 사벨리우스이다. 동부에서 이 교리는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라고
            불린다.
            사벨리우스에 따르면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은 신성한 본질을 스스로 계시
            하는 세 양식(modes)또는 상(phase)의 명칭이다.이 이론은 '아버지가 육체가 되어서
            우리 안에 거하셨다'고 주장한다.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분은 아버지이시다. 따라서
            Patripassian 이라는 용어를 주장했다 (Patri = Father, Passion = suffering)

         3. 성자 종속설(Subordinationism)
            이 견해는 오리겐이 가르쳤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께 종속된 2 위(secondary divinity)
            를 가진 한 신(a god)이지 하나님(the God)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성령은
            아들에게 종속되고 실제로 아들이 창조한 것들 가운데 있다고 가르쳤다.

           "오리겐의 삼위일체 교리는 ....아리우스파에게 디딤돌을 제공했다"
           "아리우스파의 논쟁의 뿌리는 위대한 오리겐의 그리스도론의 모순된 원리(elements)
           에서 부분적으로 발견된다."

    I. 기억해야할 사람들

         1. 오리겐(184-254) - 부패한 성경의 아버지
         2. 키프리안(200-258) - 부패한 교회학의 아버지
         3. 유세비우스(260-339) - 부패한 사학의 아버지
         4. 어거스틴(354-430) - 부패한 신학의 아버지

III. 노바티안

     노바티안은 신약 신앙 및 반열의 노선에서 몬타니스트의 뒤를 잇는 다음 연결점이다. 2 세기의 몬타니스트 운동이 "모든 믿는이의 성직자직분 논쟁"이라면, 노바티안 분파는 "교회 기율 논쟁(church discipline controversy)"으로 불릴 수 있다.  양 운동은 신약교회의 순결과 관련된 것이다. 그들은 영 안에서 밥티스트였고 복음의 진보를 낳았다.

    A. 지도자
         노바티안파란 이름은 지도자 노바티안 때문에 명명되었다.
         노바티안은 250년경에 이교 철학의 배경에서 구원을 받았다.
         그가 병들어 곧 죽을 것으로 여겨지자, 노바티안은 성경적으로 밥티스마를 받지 않고
         "clinic baptism"을 받았다. 회복된 후 그가 다시 올바르게 밥티스마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노바티안은 감독 파비안(Fabian)에 의해 로마교회의 장로(목회자)로 임명되었다.

    B. 노바티안의 분파
         데시우스 트라얀 황제의 칙령으로 교회는 가혹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우상과 황제의 수호신에게 희생물을 드렸던 자들이 교회로 다시 들어오려고
         하자, 심각한 논쟁이 고조되었다. 다음과 같은 두 견해가 주장되었다.

         1. 엄격한 기율
           배교에 대한 본성 때문에 그러한 자들은 결단코 다시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가능성이 거절당한 것은 아니었다)

         2. 엄격하지 않은 기율
            그러한 사람은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유예 기간이 지난 후 교회 일원으로
            복직될 수 있다.

            노바티안파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은 로마인 목양자 Hippolytus(?-235 A.D)이다.
            그는 이레니우스의 제자였으며 티버 강에서 순교 당했다. 그는 엄한 규율의
            주창자였으며, 스스로 로마 교회에서 분리되었다.

            노바티안은 엄격한 규율의 견해를 견고하게 지지했다. 250년에 파비안 감독이
            죽자마자, 그는 공석의 감독직을 가지고 유명한 코르넬리우스와 경쟁을 하였다.
            (코르넬리우스는 엄격하지 않은 규율을 지지했다) 코르넬리우스가 감독으로
            선정되자 노바티안은 교회의 소수 무리와 함께 교회를 떠났다.

           이 분열은 심각한 것이었다. 그를 비난하는 많은 거짓 고소가 유포되었다. 즉, 이 큰
           분열의 원인이 노바티안의 권력에 대한 개인적 야망 때문이며, 그가 당선되지 않자
           악의로 대항하는 교회를 세웠다는 거짓 고소가 유포되었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이
           논쟁은 교회의 기율에 관한 것이며, 노바티안은 실제로 자신이 원했던 바와는 반대로
           분열되어 나온 그룹에 의해 목양자로 뽑혔다.

    C. 노바티안파의 교리

         노바티안파의 교리는 다음을 지지했다.
    
         1. 교회 일원의 순결
            교회는 모든 배교, 불순물,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2. 엄격한 교회 기율

         3. 배교자의 재 밥티스마

         4. 밥티스마
           a. 잠김에 의해
           b. 성인에게
           c. 장대한 의식이 없이
           d. 교회의 권위 위에
 
         이들 교리는 기독교계 가운데서 실제적인 영구한 분열을 낳았다. 노바티안 교회들은
         더 이상 제도권 교회들의 밥티스마를 수용할 수 없었다. 이 분열은 251 년에 발생했다.

    D. 노바티안에 대한 고소

         우리가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항은 노바티안이 성경적으로 밥티스마를 받지
         않았으며 소위 clinic baptism을 받아드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1. 밥티스마에 관한 노바티안의 가르침
            밥티스마는 교회의 권위에 의해 그리고 오직 잠김에 의해 실행되어야 한다고 명확히
            가르쳤다. 그는 제도권 교회로부터 온 모든 자들에게 다시 밥티스마를 베풀었다.
            이 사실은 비록 준비된 증거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가 올바르게 밥티스마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밥티스마는 사람이 아닌 권위가 중요하다.
            비록 노바티안이 성경적으로 밥티스마를 받지 않았지만, 그는 밥티스마에 관한
            권위가 교회와 관련한 것이지 밥티스마를 집행하는 사람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노바티안파의 밥티스마는 유효한 것으로 여겨진다.

    E. 노바티안 운동의 영향
   
        그 이름과 초기 시작은 로마였지만 분열을 일으킨 의견은 널리 퍼졌고, 운동은
        신속하게 확산되었다.

        로마에서 보다 앞서서 250 년에 카르타고에서 유사한 분열이 일어났다. 키프리안이
        감독으로 성급하게 선임되자 노바투스라는 이름의 인자한 목양자와 Felicissimus라는
        이름의 집사가 교회를 떠났다. 그 때 회개자에 대한 논쟁에서 키프리안이 보다 더 엄격한
        견해를 가졌으나, 분열 후 노바투스는 그의 입장을 바꾸고 엄격한 노바티안 운동에
        합류했다.

         254년에 이들의 반대자들은 이들이 프랑스를 이들의 교리로 오염시킨다고 고소했다.

         역사가 샤프는 노바티안파가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인 진지함 덕분에
         동쪽으로 여러 지방에 전파되었고 서쪽으로는 6 세기까지 전래되었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피리기아에서 몬타니스트의 잔류자들과 결합했다.

         "노바티안파는 최초의 재침례교도(Anabaptist)였다 : 반대자들의 사역과 성례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참된 교회가 될 것을 주장하며, 카톨릭 교회로부터
        온 사람들 모두에게 다시 밥티스마를 받을 것을 필수적으로 강요했다. 이 무리는
        소아시아에서 크게 세력을 얻었는데, 거기서 많은 몬타니스트가 합류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노바티안파는 6∼7 세기까지 잔존했다"

        "로빈슨 박사는 그들의 존속이 종교개혁과 재침례교도 운동의 출현때까지라고 밝혀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바티안파의 본을 따랐고  제국 전역에 걸쳐 순결한 교회들이
        세워졌으며, 200 년 동안 번창했다. 후에 가혹한 법 때문에 부득불 희망자를 은밀히
        가입시키고 몰래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만 했을 때, 그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특징을
        이루며 종교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들의 순결한 삶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들을 '순결한'을 뜻하는 카타리(Cathari)라고
        불렀다. Mosheim은 말하기를 "더욱이 그들은 캐톨릭교회에서 온 자들을 다시 밥티스마
        를 베풀었다. 다른 단체에서 온 자들을 다시 밥티스마를 주었기 때문에 재침례교도라고
        불렸다. 제 4 차 라테란 공의회는 이 재침례자들을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는 법령을 포고
        했다. 로빈슨 박사는 그들을 Trinitarian Baptist(삼위일체를 믿는 밥티스트) 라고 했다.
        그들은 교회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존엄과 권위에 관하여 모든 목양자들의 동등성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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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예식  

유아세례 예식문 

세례의 교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회중 여러분,
 거룩한 세례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와 우리의 자녀는 죄악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로 씻는 의식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예식에서 우리의 영혼의 불결함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우리의 정결함과 구원을 우리 밖에서 구하여야 합니다. 

 

둘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인(印)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가 성부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맺어 주심을 선언하시고 인을 쳐 주십니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자녀와 상속자로 삼아 주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내려 주시고 모든 악은 피하게 하여 주시거나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도록 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성자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서 정결케 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시켜 주심을 약속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로부터 해방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신 하나님께서는 이 성례로써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肢體)로 만들어 주실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신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것을 실제로 누리게 하셔서 죄 사함을 얻고 매일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택함 받은 무리 가운데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모든 언약은 약속과 의무라는 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셋째,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새롭게 순종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는 순종할 의무를 짊어집니다. 즉 우리는 이 한 분 하나님, 곧 성부․성자․성신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하며, 그분을 신뢰하고,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버리고 우리의 옛 본성을 죽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죄에 빠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며, 그냥 죄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세례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인이고 온전히 신뢰할 만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의 근거
 비록 우리의 자녀들이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 때문에 이들을 세례에서 배제시켜서는 안 됩니다. 마치 그들이 알지 못하면서도 아담이 받은 정죄에 참여한 것처럼, 그들이 알지 못하여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또한 우리와 우리의 자녀에게도 내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동일한 말씀으로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9)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옛 언약 아래에서는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풀 것을 명령하셨는데, 이것은 언약의 인이고 믿음의 의에 대한 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손을 얹어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새 언약 아래에서는 할례 대신에 세례를 제정하여 주셨으므로 어린아이들도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언약의 상속자로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함을 따라서 부모는 그들의 세례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 알도록 가르쳐 줄 의무가 있습니다.

 

세례 전의 기도
 이 성례를 거행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우리의 믿음이 굳세어지고 교회가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제 주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고 영원하신 하나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의로우신 심판 가운데 믿지 않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으나 믿는 노아와 그의 가족은 주님의 크신 자비로 구원하여 주시고 보존하여 주셨나이다. 주님께서는 강퍅한 바로와 그의 백성은 홍해에 수장(水葬)시키셨으나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곳을 마른 땅으로 걸어 나오게 하심으로써 이미 세례를 예표(豫表)하여 주셨나이다.
 이제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의지하여 기도하오니, 주님의 이 자녀를 은혜로 하감(下鑑)하시사 주님의 성신으로 사랑하시는 아드님 그리스도께 접붙여 주시기를 간구하옵나이다. 이 아이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함께 장사되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아이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에 매일 자기의 십자가를 즐겁게 지고 가게 하여 주시며 참된 믿음과 굳은 소망과 열렬한 사랑으로 그리스도께 붙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삶은 계속되는 죽음일 뿐이지만 이 아이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에서 위로를 받고 이 세상을 하직하게 하여 주시며, 마지막 날에 주님의 아드심이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두려움이 없이 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성부와 성신과 더불어 한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살아 계시고 영원히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부모에게 하는 서약 문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부모 여러분,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을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인을 치려고 제정하신 것임을 그대들은 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성례를 그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며 습관적으로나 미신적으로 행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대들이 그러한 뜻에서 세례를 원하고 있음을 명백히 하려고 이제 몇 가지 질문을 하니 신실하게 대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의 아이들이, 비록 죄악 중에 잉태되고 출생하여서 모든 비참함을 겪고 심지어 영원한 심판까지 받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으며, 따라서 교회의 회원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하십니까?
 둘째, 그대들은 사도신경에 요약되어 있고 여기에 있는 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구약과 신약의 교훈이 구원을 위한 참되고 완전한 교훈이라고 고백하십니까?
 셋째, 그대들은 부모로서 이 아이가 성장함을 따라서 그대들의 힘을 다하여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이 자녀를 교육하고 교육받게 하며, 또한 친히 사람의 본분을 이 아이에게 보이기를 힘쓰며,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약속하십니까?

 그대들은 이 모든 말씀대로 서약하시겠습니까?
 대답: 예, 그대로 서약합니다. (부모가 함께 대답한다.)

 

세례
 예수 믿는 자의 아이 ○○○을(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베풉니다.

 

감사 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와 우리 자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의 성신으로 주님의 독생자의 지체로 삼아 주시고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심을 감사하고 찬송하옵나이다. 또한 이 사실을 세례를 통하여 인을 쳐 주시고 확정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해 비옵나니, 이 아이를 주님의 성신으로 계속 다스려 주셔서 이 아이가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양육을 받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이로 하여금 주님께서 이 아이와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신 아버지와 같은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깨닫고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이로 하여금 우리의 유일한 선생이시요 왕이시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서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시고, 죄와 마귀와 그의 모든 통치에 대항하여서 용감하게 싸우고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아이로 하여금 아버님과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님, 곧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만을 영원히 찬양하고 높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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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례Baptism

세례(洗禮) 또는 세례 성사(洗禮聖事)는 물을 이용하는 정화의식이다. 세례는 기독교, 만다야교, 시크교를 포함하여 여러 종교에서 행해진다. 기독교의 세례는 유대교의 의식인 "미크바"에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영세(領洗)라고 한다.

초기 기독교 예술에서의 침례.

 

기독교의 세례

파울로스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영적(靈的)으로 연합되어 그의 죽음에 동참한다고 설명한다.대부분의 기독교 종파에서는 물을 이용하는 세례 의식을 행하고, 이를 예수께서 성만찬과 더불어 친히 제정한 성사라고 믿는다. 하지만 세례의 의미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세례의 형태 등에 대해서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오순절 교회를 비롯한 몇몇 종파에서는 물에 의한 세례는 성령에 의한 세례로 대체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물에 의한 세례는 기독교 전통에 의해 불필요하게 계승되었다고 보고 있다.

 

세례의 형태

기독교 공동체의 전통에 따라 세례의 예식은 다음과 같다.

침수례 - 몸 전체를 물속에 담그는 방식 (침례라고도 한다.)

살수례 - 물을 머리에 뿌리는 방식

관수례 - 물을 머리에 붓는 방식

이 중 정교회나 침례교, 오순절교회에서는 침수례를, 로마 가톨릭교회는 관수례를 실시하며,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의 개신교 종파는 관수례를 실시한다. 원래 고대에 채택되던 형태는 침수례이나, 살수례와 관수례는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약식으로 제정된 전통이다.

 

세례의 의미와 기능

기독교 내에서도 세례의 의미와 효력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등

세례는 구원을 받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며 성사의 요구조건으로 하고 있다. 한 예로서,마르틴 루터는 1529년에 "The Large Catechism"(대요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세례의 능력과 효과와 유익과 열매는 구원이다. 왕자가 되기 위해 세례를 받는 사람은 없다. 단어 그대로 "구원받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죄와 사망, 사탄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 그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다. ”

 

성공회(聖公會)에서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6:3-4("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이미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과연 우리는 세례를 받고 죽어서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를 근거로 세례성사를 죄의 용서와 구원에 필요한 성사(Sacrament)로 보고 있다. 또한 어른과 어린이 모두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사제가 세례성사를 집전하는 유아세례가 있다.

침례교

침례가 가치있는 관습이긴 하지만 아무런 성스러운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은 보이지 않고 내적인 것이며, 성례전 자체와는 독립적인 것으로서, 침례는 이 능력의 결과를 외적으로 증언하는 행위라는 견해이다. 침례 '의식'이 의미있고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치나, 유아세례는 반대한다.

개혁주의 (개혁교회 및 장로교)

개혁주의는 예수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보며, 세례를 성찬과 더불어 예수가 그의 백성들에게 시행하라고 제정한 성례전으로 본다. 이는 구약의 할례와 유월절 의식이 신약의 교회에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언약 신학의 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기 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라고 본다. 그것을 물로 씻는 형태로 제정된 것은 다른 종파들과 같이 예수의 피흘림으로 죄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라는 의미에서 구약 시대에는 아직 신앙이 확인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도 할례를 시행했는데, 이것을 본받아 개혁주의 역시 유아 세례를 기독교 가정 내에서 시행하는 것을 동조한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회복된 기독교를 자처하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성약의 표시이며, 죄를 회개하여 침수로서의 침례로 물로 장사 지내고 물에서 올라 옴으로서 과거의 옛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표징이며, 하나님의 교회의 백성이 된다는 선언이 되고, 교회 회원이 되는 관문이 된다.

 

침례를 받은 이에게는 성신의 안수례가 주어지며, 매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는 성찬 의식을 행함으로써 침례 성약을 새롭게 한다.

 

유아들(정신박약자 포함)은 죄가 없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의 상속자가 되므로 침례를 행하지 않는다.[1] 어린이에게 복음을 가르쳐서 만 8세 이후에 성약을 맺게하여 침례를 베푼다.

 

침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합당한 절차에 의해 교회에서 승인된 방식에 따라야 함을 믿으며, 신권의 권능을 가진 이로써 지명받은 자라야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줄 수 있다. 침례를 줄 수 있는 신권은 아론 신권이라고도 하는 소신권 중에서 제사 신권이 있고, 대신권으로서 장로나 대제사가 있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침례 요한) 또한 아론 신권을 가진 이었다.

 

1829515일 몰몬경을 번역하던 조셉 스미스와 이를 기록하던 올리버 카우드리가 서스케하나 강변에서 침례 성역에 관해 알고자 기도하던 중에 침례자 요한이 부활한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이들에게 나타나 아론 신권을 안수성임하였는데, 이 교회에서는 매년 이날을 신권회복 기념일로 기린다.

 

합당한 신권소유자는 합당한 회원에게 회원들의 지지하에 안수함으로써 신권을 부여하고 성임하게 된다.

 

침례 받을 사람과 같이 물에 들어가 침례 주는 이가 침례 의식문을 선언하고 침수로서의 침례를 주는데 그 의식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위임을 받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그대를 침례하노라. 아멘"

 

침례를 받은 개종자는 대신권 소유자로부터 성신의 안수례를 받게 된다.

 

Masaccio (14251426), Baptism of the Neophytes (it), Brancacci Chapel, Florence. This painting depicts baptism by affusion, which continues in the East except for infants, but in the West it had dropped almost completely out of use by the 15th century. The artist may have chosen an archaic form for this depiction of baptism by St. Peter.

성 베드로에 의해 침례 묘사

 

세례의 자격 /신자의 세례

 

세례(침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교파마다 다르나, 대개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로서, 글로서 신앙을 고백하거나 공개적으로 신앙을 선언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유아 세례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장로교 등에서 행하는 유아 세례의 경우에는 세례를 받고 신앙고백을 한 부모가 자녀를 대신하여 유아세례의 자격을 받을 수 있다. 유아 세례의 기록은 성서에는 없지만 4세기에 교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에 의해 그 필요성이 기술되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세례가 죄를 씻어주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도 행해져야 하는데, 이는 갓난아기도 원죄에 의해 더렵혀졌으며 따라서 세례를 받기 전에 사망할 경우 죄의 저주를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보다 한 세기 전에 교부인 터툴리안은 믿음으로 받는 세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 "상황과 개인적인 성향, 또한 나이를 고려하여 세례를 늦추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되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라." ”

 

성공회의 종교개혁 전통을 강조하는 저교회파 성공회를 포함한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세례가 "내적인 변화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따라 행해지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께 맡기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을 때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편지 517) 그 내적인 변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례

기독교에서 침례가 교회 공동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일정한 의식이 된 것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가 준 침례를 앞으로 올 메시아에 대해 준비하는 회개의 메시지로 받아들인다.(루가 복음서 33-6, 8) 요한은 죄사함이 있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죄의 얼룩은 지워질 수 있는 것이며, 타락한 행위로부터 돌이켜 주님의 길로 돌아갈 때에 지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세례 의식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세례 요한이 그의 세례가 충분한 것이 아니며, 회개만으로는 죄로부터의 분리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쳤을 것이며,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는 그가 줄 수 없는 더 큰 세례가 필요하다고 가르쳤을 것이라 믿고 있다. 루가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안 되는 높은 분이 오셔서 성령과 불로써 침례를 주실 것이라 말하였다. (루가 복음서 316) 기독교에서는 세례가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려는 노력은, 죄의 대가를 대신 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라틴어: Agnus Dei)에 의해 대체되고 완전해진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열두 제자에게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임무를 맡긴다.(마태오 복음서 2819) 이 구절은 세례의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는데, 실제로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은 갈릴래아의 예수에서 마태오 복음서 2819절을 교회사적으로 해석하였다. 안병무 선생에 의하면 기독교의 성격이 예수운동에서 보편교회로 바뀌면서 직제와 전례를 정하게 되었으므로 예수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로는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만으로 세례를 준 것으로 되어 있다. (사도행전 816, 1048, 195)

 

유대교의 정결 의식

세례는 유대교의 의식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유대교 율법에서 정한 정결의식인 미크바(Mikvah)에서 세례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유대교의 경전과 다른 문서들에는 종교적인 정화를 위한 목욕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제정되어 있는데, 이는 "종교적으로 정결한 상태"를 위한 것이다. 한 예로서, 시체를 만진 유대인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 "오염된 상태"가 되어,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mikvah를 행하여 정결한상태가 되어야 한다.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물에 잠기는 의식이 요구된다. 이러한 의식 전반에 걸쳐, mikvah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정화와 회복을 의미하며, 유대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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