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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어린이)를 사랑합시다
  
찬송가 : '어머니의 넒은 사랑' 579장(통 30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9장 13~15절 




말씀 :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바로 미래의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오늘의 어른은 어제의 자녀였습니다. 자녀가 건강하게, 참되게, 바르게 자라야만 내일의 우리의 삶과 환경이, 우리 교회와 나라, 그리고 세계가 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어린 자녀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신 이유입니다. 모세, 삼손, 다윗, 요셉 등 성경의 주요 인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크게 쓰시기 위해 어려서부터 특별히 관리되었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사람의 인격이 어린 시절에 80% 이상이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어린이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어린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인간을 바르게 하는 교육의 틀이기도 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이 병들면 들쳐 업고 병원을 향해 달려가듯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병들었을 때는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둘째. 크리스천들은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장 34절을 보면 예수님도 어렸을 때 시므온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기도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 뒤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눈물 기도가 죽은 아들을 살려냈습니다. 이처럼 부모의 중보기도가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할 때 자녀가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도로 키운 자식은 설사 탕자가 된다 해도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부모는 자녀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어린이는 듣고 배우는 것보다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따라 하곤 합니다. 이 때문에 부모는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우리에게서 어떤 것을 본받을 수 있을까요?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는 모습, 승리 속에서도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되는 대로 키웠다가는 그 자녀들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바로 키우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기도 : 우리의 자녀가 말씀 가운데 잘 양육되게 하소서. 자녀가 부모의 바른 신앙을 본받게 하소서. 부모가 본이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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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듣는 사람
  
찬송 : '내 주 하나님' 469장(통 46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6장 1∼6절 


초대 교회는 오늘날 교회처럼 교인 숫자를 자랑하거나 교회 크기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수를 많이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여 공동체의 힘을 밝히 드러내는 곳입니다. 그럴 때 교회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도록 하고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역할까지 감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명목상 교인을 교회 일꾼으로 세우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돼야 할까요. 

첫째.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세상의 논리와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역자라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사역자의 삶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둘째. 지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진리를 분별할 줄 아는 영적 지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달은 뒤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자기의 기분이나 감정대로 사는 정욕적인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철저히 순종하고 '아멘'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초대 교회의 제자들이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룩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즉 영적 분별력을 갖고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야 합니다(딤전 4:5). 높은 도덕성을 갖추고 인격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이웃으로부터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행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 현실의 삶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이웃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 

초대 교회는 일꾼들을 잘 세워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갔습니다. 우리 가정도 초대 교회처럼 참 그리스도인으로 훈련과 양육에 힘써야 합니다. 가정예배 및 성경공부 모임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고 지혜가 가득 찬 그리스도인이 돼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기도 : 세상의 논리와 구별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게 하소서. 하나님 말씀을 바로 깨달아 영적 분별 속에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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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한 가정 

찬송가 : '내가 매일 기쁘게' 191장(통 42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4장 26절 

말씀 : 기초가 무너지면 전부가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기초가 튼튼해야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름답게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지탱해주는 기초는 '성령'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부활 후 승천하시려는 주님이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남아 핍박과 환난 가운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마음이 근심과 혼란에 있지 말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시면서 강조하는 것은 '보혜사 성령'입니다. 

첫째, 성령은 우리의 가정과 가족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가정 및 가족을 돕는 자와 위로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돕는 자로 보내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위로가 있을 때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우리 신앙은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강한 일꾼으로 만들어주시고 주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 

둘째, 성령은 우리 가정과 가족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호세아 4장 6절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리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저자가 성령이라는 의미입니다. 

셋째, 성령은 우리의 삶을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위협받고 있는 가정들이 건강하게 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게 필요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거룩하게 사는 삶을 원하십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 영혼의 눈이 밝아지면서 죄를 책망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복음의 진리를 확신할 때만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내재하실 뿐 아니라 위로하고 깨닫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는 성도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시고 말씀을 깨닫는 자가 되게 하소서. 매일의 삶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 거듭나고 거룩하게 하소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올바른 가정이 되고 믿음의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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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연휴 가족과 함께 제부도 대부도 해변에서 

10월 가정예배 ( 평안과 만족의 삶 )
 
찬송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2장 22~34절 

말씀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우리 삶의 고민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먹는 것과 입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삶의 절반 이상을 이런 근심으로 허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약속보다 삶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첫째, 염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삶의 너무 많은 부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염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의혹을 품고 탐욕을 부리며 조바심을 내고 우울해합니다. 그러나 정작 염려로 인해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눈과 귀를 왜곡시키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동참하거나 긍휼의 마음을 느낄 수 없게 만듭니다. 염려는 전염병과 같아서 염려하는 사람을 만나면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근심하게 됩니다. 염려는 불안을 극대화하고 불안은 루머를 만들어냅니다. 루머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관계를 분열시킵니다.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고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염려를 향해 단호히 선포하십시오. 

둘째,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성경에서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끈질긴 유혹이며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며, 우리의 삶에 확실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넘겨드리십시오. 시각을 바꿔 감사한 일을 찾고 자신의 장점에 집중해 보십시오. 

셋째,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방법은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 가운데 오는 생각이지만 헌신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와 헌신입니다. 의무와 헌신 후에 오는 것은 '더하시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축복입니다. 무엇으로든지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 : 만복의 근원 되시는 주님,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염려하던 삶이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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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3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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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30일 여의도 공원 코로나19로 공원이 많이 폐쇠도고 한산한 모습 


찬송 :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 500장(통 258장) 

본문: 사무엘상 19장 1~7절 

본문에서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울 왕과 친구인 다윗의 대립 가운데서 난처할 수밖에 없는 '제3자 요나단'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제3자의 입장에 설 때가 많습니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강요받기도 하며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진리의 편에서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첫째, 사울 앞의 요나단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세운 두 번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끝납니다. 사울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던 보이지 않던 죄의 모습은 두 번의 실패로 공공연히 드러나게 되고 급기야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을 죽이려는 그의 노력이 잘못되었음을 직고합니다(3∼5절). 요나단은 자기가 이어받게 될 왕위를 다윗이 차지할 줄 알면서도 그에 대한 우정을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구출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분노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인내를 요구하거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은 이런 상황에서 차분히 사울이 생각을 바꾸도록 돕습니다. 

둘째, 다윗 앞의 요나단은 평화의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과 세상의 욕심에 사로잡힌 사울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단순히 '선택'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고민은 어떤 방법으로 다윗을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초점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생명에 있었습니다. 사울의 음모를 알고 있던 요나단은 다윗에게 찾아가 모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지혜로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두 사람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긍정의 상황을 만들려는 요나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고민하면서도 다윗을 도운 이유는 평화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윗의 생명을 구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사울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운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 앞의 요나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볼 때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며 그를 죽이고자 했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기뻐하며 그를 돕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왕위를 이을 사람처럼 여겨질지라도 그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겸손히 받아들였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가정도 요나단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관계를 회복시키고 평화를 이끌어내는 믿음의 처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말씀을 따라 지혜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평화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의 잘됨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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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행복한 가정을 만듭시다

 
찬송: '어머니의 넓은 사랑' 579장(통 304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디모데후서 1장 3~5절 

말씀: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제도가 가정입니다. 가정은 인간 생존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안식처입니다. 설령 모든 것을 소유했다 해도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우리의 모든 기반이 무너지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시편 128편은 가정의 축복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그중 3절을 보면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고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열매는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자녀의 불행은 가족 전체의 절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무엘상 4장에는 행복했던 제사장 엘리 가문의 몰락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가문의 불행은 평소 믿음으로 훈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사무엘상 2장 27∼34절은 하나님이 엘리 제사장 가문에 대한 책망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사 제물을 먹고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생활이 엉망인데도 그냥 놔두었습니다. 결국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엘리 제사장도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지금 우리 자녀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혹시 엘리 제사장처럼 자녀가 우상이 돼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 가정이 어떠했기에 바울이 이처럼 칭찬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성경 중심의 가정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서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디모데가 철저하게 성경으로 교육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고 성장한 인물은 문제아가 될 수 없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이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7∼9).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어머님이 가르치신 성경 말씀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둘째, 디모데의 집안은 믿음 중심의 가정이었습니다. 본문 5절은 디모데에게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거짓 없는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남겨줄 위대한 유산이 있다면 믿음의 유산일 것입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가정은 행복합니다. 위대한 자녀는 현명한 어머니의 믿음의 결실입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먼저 믿음의 사람이 돼야 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자녀가 주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승리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게 하소서.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자녀들을 디모데처럼 키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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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안과 만족의 삶 
찬송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2장 22~34절 




말씀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우리 삶의 고민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먹는 것과 입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삶의 절반 이상을 이런 근심으로 허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약속보다 삶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첫째, 염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삶의 너무 많은 부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염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의혹을 품고 탐욕을 부리며 조바심을 내고 우울해합니다. 그러나 정작 염려로 인해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눈과 귀를 왜곡시키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동참하거나 긍휼의 마음을 느낄 수 없게 만듭니다. 염려는 전염병과 같아서 염려하는 사람을 만나면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근심하게 됩니다. 염려는 불안을 극대화하고 불안은 루머를 만들어냅니다. 루머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관계를 분열시킵니다.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고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염려를 향해 단호히 선포하십시오. 

둘째,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성경에서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끈질긴 유혹이며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며, 우리의 삶에 확실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넘겨드리십시오. 시각을 바꿔 감사한 일을 찾고 자신의 장점에 집중해 보십시오. 

셋째,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방법은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 가운데 오는 생각이지만 헌신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와 헌신입니다. 의무와 헌신 후에 오는 것은 '더하시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축복입니다. 무엇으로든지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 : 만복의 근원 되시는 주님,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염려하던 삶이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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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사랑하는 주님앞에 연약함을 인정하기

본문 : 다니엘 6장 1∼9절, 24절 


바벨론을 정복한 메대의 왕 다리오는 다니엘을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런 다니엘을 시기한 다른 총리와 방백들이 다리오 왕에게 왕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도록 간청했습니다. 이 간청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믿음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결국 그 일로 사자굴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을 참소했던 사람들을 통해 시기와 질투에 대해 알아봅시다. 

첫째, 질투는 '나'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총리들과 고관들은 자신들보다 다니엘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그를 끊임없이 미워했습니다. 미움은 시기와 질투를 불러왔고 곧 악한 행동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끊임없이 미워하게 만듭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그를 미워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열등감입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 좌절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모든 문제에 있어 '나'는 사라지고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의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해서'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자신의 열등감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 나에게 돌아오는 시기와 질투의 구덩이입니다. 총리들과 고관들은 다니엘이 계속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그물에 걸린 월척을 보는 것처럼 쾌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으라고 명령한 순간, 세상을 얻은 듯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자굴은 무력한 구덩이에 불과했습니다. 그 무력하던 구덩이는 곧 시기와 질투에 빠졌던 자신들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을 낮춘다고 내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을 넘어뜨리고자 하는 자는 자신이 먼저 넘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셋째, 자신의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질투와 시기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생겨납니다. 더 강해지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을 때 모든 잘못을 남에게 넘겨버리며 이유 없이 상대를 미워하게 됩니다. 다니엘을 대하는 총리들과 고관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하는 다니엘의 태도에서 소중한 영적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다니엘은 그 시기와 질투를 피하기 위해 세상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 하나님 앞에 낮아진 자를 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시기와 질투를 느끼고 있습니까? 사자굴을 생각하십시오. 시기와 질투는 자신을 삼켜버립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을 위해 축복하십시오. 

기도 : 하나님,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했던 것을 용서하옵소서. 시기와 질투가 열등감과 교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하오니 우리를 낮아지게 하시고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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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일 

본문 : 사도행전 17장 10∼15절 

말씀 :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베뢰아 사람들의 신실함을 통해 새로운 용기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신사적이며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는 모습이 고상한 그리스도인 아닐까요? 어떤 사람들이 고상한 그리스도인인지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시선이 변해야 합니다. 바울이 베뢰아 사람들에게 신사적이라고 말한 것은 그들의 시선이 세상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진리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상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대로 살아갑니다. 믿음을 바라보고 가는 사람은 믿음대로 가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가는 사람은 긍정으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통해 마음 문이 열리고 하나님 말씀에 수용적인 자세로 나아간 베뢰아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고상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를 발견하여 이를 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행동을 통해 영향을 줄 때 비로소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둘째, 표현이 변해야 합니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표현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잘 표현해야 100% 내 것이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며 사는 인생은 표현이 달라지며 삶이 변화됩니다. 분노를 표현하며 사는 사람은 분노의 사람이 됩니다. 반면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며 사는 사람은 고상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감사와 기쁨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며 표현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백이 풍성한 사람이 고상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셋째, 마음의 방향이 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마음의 방향이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주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임했고, 그들 삶은 강건해져서 어떤 고난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고백하는 우리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표현이 달라져야 합니다. 언제나 말씀에 매어 있는 삶으로 행함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매일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통해 고상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기도 : 하나님,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더욱 거룩해지게 하옵소서.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따르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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