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ear's Eve Service (송구영신예배 설교)

송구영신예배 설교 (말씀 : 고후5:17)

제목 : 행복한 새해

1.행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나라의 임금님이 큰 병이 들어 나라의 용하다는 의원을 다 불러서 처방을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이고 병은 점점 깊어져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소식을 듣고 한 지혜자가 찾아와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임금님의 병은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전국 방방곡곡에 다니며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대감들의 집을 찾아가 물었으나 누구도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전국에서 이름난 부자집을 찾아다니며 물었지만 이들도 역시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학문이 높은 사람을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역시 자신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권세자, 부자, 지식인 등 행복할 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 다녔지만 제일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며 돌아오며 산길을 걷다가 오두막을 발견하고 거기서 묵게 되어 주인 영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는데 뜻밖에도 이 산골 오두막에 사는 노부부가 자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너무 반가워 그러면 당신들의 속옷을 좀 달라고 하자 노부부는 우리는 너무 가난하여 지금까지 속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행복은 결코 권력이나 지식이나 돈이나 잘 생긴 외모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조건에 관계없이 행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천하를 가지고도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눅17:20,21절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천국은 이 땅위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을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어 우리에게 임할 것인데 그 동안은 그 천국의 임재를 바라보며 그 천국에 합당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천국을 여기서도 앞당겨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분명 우리 안에 있습니다. 천국도 우리 안에서 있습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합당한 마음으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모든 조건에 관계없이 천국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여러분은 이 새롭게 밝아온 새해에는 천국을 누리기에 합당치 않은 모든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절망적이고 불신앙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오직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거룩함과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다가온 이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의 삶이 정말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2.속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하려면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 행복한 마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 죄와 무지속에 있는 옛것을 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죄와 무지속에 있는 그래서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추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기쁨과 감사와 선과 의와 거룩과 진실 등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채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추방하고 우리 주님의 마음인 사랑과 은혜와 진실과 거룩과 의와 선으로 채우면 그 인생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엡4:22-24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마귀의 권세아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버리고 생명과 진리의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심령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해봅시다. 과거의 낡고 가치없고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들은 벗어 던져버려 봅시다. 부정적이고 편협적이고 이기적인 과거의 잔재를 벗어 봅시다. 그거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닙니다. 주님 앞에 엎드리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마음먹고 주님 앞에 간절히 엎드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새 마음으로 살아가면 우리는 얼마든지 상황과 환경과 처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면 가능합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죽어서 썩은 시체가 살아나는데 무슨 환경, 상황, 나이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새해는 정말 하나님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덧입어 과거의 모든 아름답지 못한 잔재들은 다 날려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 아름답고 향기롭고 큰 기쁨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복된 날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삶의 목적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의 목적에 가장 부합되는 존재가 가장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에 어긋난 것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림 받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텔레비전이 아무리 좋게 보여도 화면이 안 나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냉장고에서 시원한 바람이 안 나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다 고물상으로 들어가 폐기되는 길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냥 무의미가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닙니다. 그냥 잘 먹고 잘살다가 가도록 만들어진 존재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사43:7절을 보세요.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인생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욕심쟁이라서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놓고는 가만히 앉아서 자기 혼자 영광을 누리려고 지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에게도 영광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나 자신을 비롯하여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 즉 모든 물질과 시간과 자연과 지헤와 능력과 감정과 영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때 그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되겠습니까? 그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를 갖게 되겠습니까? 얼마나 바르게 사용하겠습니까? 얼마나 이웃에게도 기쁨과 유익을 주겠습니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겠으면 얼마나 풍성하겠습니까?

반면에 그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다보면 결국 재물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고, 나아가 향락에 노예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저 더 많이 소유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자연과의 관계가 깨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깨져서 갈등과 시기와 거짓과 분쟁과 불만과 불평과 원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목적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과 물질과 시간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물질과 권력과 소유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바르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화가 자유가 임합니다.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결코 자기 영광, 자기 만족, 자기 명예를 위해서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삶을 영위할 때에 세상의 모든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 자신도 진정한 자유와 평강과 기쁨 속에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올바른 목적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가능합니다. 예수님 만나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내 영혼 속에 있는 모든 죄악된 것들, 무지한 것들, 거룩하지 못하던 것들, 어둡고 칙칙하고 부정적인 것들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환경, 조건, 상황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안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뿌리를 뽑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격수양이나 과학이나 지식이나 무슨 물리적인 힘으로도 안됩니다. 그러나 예수이름으로는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환경, 상황, 나이 그까짓 것 별거 아닙니다. 주의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 있지만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그러한 것들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소유욕과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주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건강의 복과 자녀의 복과 물질의 복과 형통의 복을 누리시기는 이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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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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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극복하는 방법

  오리건의 엘리자베스 코넬리 여사는 자기의 경험을 이렇게 썼다. "나는 국방성에서 보낸 전보를 받았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조카가 전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슬픔으로 축 늘어졌습니다. 내 마음은 쓰라리고 미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직을 하려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편지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몇 년 전 내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조카가 내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조카는 나를 위로하려 했던 것입니다. '물론 모두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지만 아주머니께서는 특히 더하실 겁니다. 그러나 아주머님은 이겨 나가실 것입니다. 저는 항상 웃으며 모든 일을 남자답게 대하라고 하신 아주머님의 말씀을 늘 기억할 것입니다.' 마치 내 옆에서 '아주머니, 저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해보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 웃으면서 헤쳐 나가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도 보내고 성인 교육반에도 나갔습니다. 과거의 쓰라림은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마치 내 조카가 바랬던 것처럼 매일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발생한 사건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모든 불행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조지 5세는 버킹검 궁전에 있는 그의 도서실에 "저버린 달 때문에, 쏟아진 우유 때문에 울지 않게 가르쳐주소서"라는 좌우명을 걸어놓았다.   

 불행의 변수 

  1950년대에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우수한 문학 지망생들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각자가 쓴 소설이며 시의 결정들을 가차 없이 서로 비평했다. 그것은 그들의 창작에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한편 여학생들이 중심이 된 또 다른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는 혹평은 일절 피하고 좋은 부분만 칭찬했다. 10년 후,그 여학생들 중 대부분이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토록 유망하던 남학생들 중에서는 단 한명의 뛰어난 작가도 나오지 못했다. 사람은 보통 95%의 좋은 점과 5%의 좋지 않은 점을 갖고 있다. 100%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95 %의 좋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5%의 좋지 않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95%를 보고 사는 사람은 자신감 있게 산다.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들 수도 없다. 상대방의 5%쯤은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채워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행복하다. 
[국민일보] 장자옥 목사(간석제일교회)  

 불행한 미국 가정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든 제도가 가정이다. 가정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보금자리요 행복의 안식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세계에서 가장 문명국인 미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하루에 9,077명이 태어나는데 그 중 1,282명은 사생아이고, 하루에 5,962쌍이 결혼하는데 그 중 1,986쌍이 이혼을 한다. 또 하루에 2,740명의 아이들이 가출하고, 하루 69,493명의 십대들이 성병에 감염된다. 강간은 매 8분마다, 살인은 매 27분마다, 강도는 매 78초마다 일어나며, 자동차는 매33초마다 분실된다. 그리고 2,740명의 10대 소녀들이 임신이 된다고 한다. 
 미국의 어느 대학 교수가 가정문제를 연구한 결과 가정의 최대 불행은 75퍼센트가 십계명중의 제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하바드 대학의 피티릿 소로킨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결혼 25건중 1건이 이혼으로 끝나고 있는데 부부가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경우, 1,015건의 결혼 중 단 1건의 이혼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아도 행복한 가정은 주님을 그 가정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를 그 가정에 모시지 않고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불행한 황태자비 다이애나 

  지난 1997년 8월 31일 새벽0시35분(현지시각·한국시각 31일 낮12시35분) 36세로 마감한 '세기의 신데렐라' 다이애나 황태자비, 그녀는 무엇이 부족했겠습니까? 애정입니다. 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도 챨스 황태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을 사랑해 줄 남자를 찾았습니다. 승마교수와 염문, 황태자와 이혼, 그리고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 마지막 남자 도디 알 파예드(42)와 프랑스 남부 생 트로페즈에 있는 파예드의 아버지 소유 별장에서 함께 휴가를 보낸 뒤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안전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메르세데스 벤츠 600. 그러나 도로 중앙 분리대에 한 차례 부딪힌 뒤 다시 터널 벽에 충돌한 벤츠 600은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습니다. 라디에이터가 자동차 앞좌석까지 깊숙이 처박혔고 차량 운전사와 다이애나의 애인 도디는 이미 숨져있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량 속에서 다이애너를 구출, 응급조치를 취하다 새벽2시쯤 파리 동남쪽의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병원으로 후송, 긴급 수술을 받았으나 새벽 4시쯤 결국 폐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현대판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행복과 불행 

  1968년 6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심리학 교수팀은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길거리에 지갑을 떨어뜨린 후 그 속의 신분증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약 45%의 신분증이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6월4일은 단 하나의 신분증도 주인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바로 미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유력했던 로버트 케네디가 괴한에 의해 암살당한 날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한 가지 나쁜 소식이 사람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소식은 전염성이 강해서 금방 전체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든다. 또한 좋은 소식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인간의 삶은 그 출발점을 ‘부정’과 ‘긍정’중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불행과 행복은 항상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탐욕의 종점은 불행과 죽음 

  한 농부가 부지런히 일해 제법 넓은 농지를 갖게 됐다. 그는 항상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괴로웠다. 그런데 일정액의 돈을 내면 자기가 소유하고 싶은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부는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그곳으로 갔다. 과연 그 곳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평야갸 펼쳐져 있었다. 광야의 추장은 농부에게 말했다.“당신이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만큼의 토지를 소유할 수 있소.단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단 한평의 땅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농부는 중얼거리며 마라톤 선수처럼 광야를 질주했다. “내 땅….해가 지기 전에…” 그는 많은 땅을 차지할 욕심에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했다. 태양이 막 대지에 얼굴을 묻을 무렵, 그는 출발점에 도착했으나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탐욕의 종점에는 ‘불행’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불행한 사람들의 몇 가지 공통점 

  불행한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첫째,완벽주의자는 불행하다.그는 모든 걱정을 껴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둘째,항상 남과 비교하려 한다.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경쟁심은 평안을 앗아간다. 셋째,자기 자신만이 가장 옳다고 생각한다.아무도 이런 사람과는 함께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그래서 늘 고독하다. 넷째,작은 일에 신경을 집중시킨다.이런 사람의 표정은 항상 불만과 우울함으로 가득차 있다. 다섯째,매사에 의심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섯째,이웃을 위해 절대로 사랑과 물질을 베풀지 않는다.한번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밖으로 나올 줄을 모른다.
 사람은 더불어 살때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삶의 과정을 통해 참행복을 누린다.행복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다.오늘의 삶이 비록 구차하게 여겨질수 있으나 사실은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숨어 있다.영화의 결론을 알면 무슨 재미가 있는가.인생도 마찬가지다.오늘에 충실한 사람이 행복의 열매를 수확한다.   

 내가 불행한 이유 

  "왜 난 이렇게 불행할까? 릴라가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왜 그녀는 나를 원하지 않는 걸까? 내가 너무 작고 초라해서일 거야. 

그럼 왜 나는 이렇게 작아진 거지? 그거야 내가 불행하니까. 결국 내가 불행한 이유는, 내가 불행하기 때문이군."   

 행복할 때 불행을 생각하라. 

  행복할 때는 타인의 호의를 쉽게 살 수 있고 우정도 도처에 넘친다. 이는 불행할 때를 위해 저장하는 것이 좋다. 그때를 위해 지금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라. 지금은 높이 평가되지 않는 것이 언젠가는 귀하게 여겨지리라. 미련한 사람은 행복할 때 친구를 두지 않는다. 지금 행복할 때 친구를 모르면 불행할 때 친구가 그대를 알지 못할 것이다. 행복할 때 불행을 생각하라.   

불행한 공전 

  자기 꼬리를 붙잡기 위해 빙글빙글 도는 어린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강아지는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자신의 꼬리를 뒤쫓으며 저것만 붙잡으면 뭔가 대단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늙은 개는 강아지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얘야, 너는 행복이 꼬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불행한 공전이다. 너는 꼬리를 잡기 위해 뛰지만 나는 내 할 일을 위해 뛴단다. 내가 마땅히 내 할 바를 좇아가면 꼬리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거든.” 
 자기 꼬리를 붙들기 위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어린 강아지에게서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의 기준은 나입니다. 그런데 행복의 기준을 나로 잡아서는 결코 꼬리를 붙들 수 없는 어린 강아지처럼 아무리 나를 위해 살아도 진정한 행복의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보통 행복을 자신을 하나님처럼 신격화하면서 누리는 즐거움으로 착각하는데 진정한 행복은 창조 목적대로 돌아간 삶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불행을 예술로 승화시킨 베토벤 

  어느 대학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남편은 알코올 중독자로 가구를 내다팔아 술을 마시고 술 마실 돈이 없으면 아내를 심하게 구타합니다.거기다가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가 힘들 정도입니다.그런데 그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이 태아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학생 하나가 재빠르게 손을 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그 아이는 낙태시켜야 합니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다네!” 그 임신된 생명은 바로 베토벤이었다.그를 낳은 어머니는 결국 그가 어렸을 때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했다.어머니를 여읜 베토벤은 11세 때부터 극장을 돌며 구걸예술을 시작했다.베토벤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불행의 터널을 통과한 사람이었다.그러나 그는 그 불행의 조건을 오히려 위대한 음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창조적 조건으로 승화시켰다.시편 기자도 고난의 긍정적인 면을 노래한다.“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불행'과 '사망'의 씨앗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원주민들은 원숭이들이 다니는 길목의 나뭇가지에 열매를 넣은 조롱박을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조롱박에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놓는다. 원숭이는 조롱박에 맛있는 열매가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그런데 원숭이는 조롱박의 구멍이 너무 작아서 열매를 움켜쥔 손을 빼내지 못한다. 사냥꾼들이 몰려오면 자신이 쥐고 있는 과일을 놓고 도망을 가야 하지만 원숭이에게는 그런 자각이 없다. 결국 원숭이는 한 손을 조롱박에 넣은 채 사람들에개 붙잡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사람이 재물을 움켜쥔 손을 놓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재물을 숭배하는 사람은 그 자신도 재물로 변화된다. 진정 행복을 얻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과욕은 ‘불행’과 ‘사망’의 씨앗이다.   

 불행한 가정생활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와 미국의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불행한 가정생활을 했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허물을 깨닫고 자기가 남편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것을 그 자식들 앞에서 자인하고 자기의 행한 일들이 미친 사람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비통하게 고백하였다. 또 아브라함 링컨은 난폭하고 무례한 자기 부인에게 어쩔 수가 없어서 가정을 점점 멀리하고 여관에서 외박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생활을 계속하였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불행한 조건에서도 귀하게 살다 

  유명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는 그 저자 디포가 감옥에 있을 때 쓰여졌다. 하루에 자기의 시력을 5분씩밖에 쓸 수 없었던 나쁜 시력의 프레스코트는 위대한 역사가가 되었다. 거의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고 그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찼던 그때에 베토벤은 위대한 교향곡들을 작곡, 완성했다. 모짜르트도 불치의 병으로 희망 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의 불후의 오페라들을 작곡했다. 존 칼빈은 육신의 병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는 생활 중에서 위대한 신학 저술을 했다. 「천로역정」이라는 영구히 빛나는 책도 그 저자 존 번연이 눈썹에 곰팡이가 슬 정도의 음침하고 습기찬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쓴 것이다. 원수들이 자기의 생명을 노리고 찾아다니는 동안에 발트부르크의 성 안에 숨어 있던 마르틴 루터는 유명한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여 농부나 평민이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드디어 펴낸 것이었다. 평생을 소경으로 살아야 했던 크로스비 여사는 영감이 충만한 수많은 찬송들을 써서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큰 은혜를 끼치고 있다.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불구자였던 헬렌 켈러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내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방을 걸어 다닐지라도, 나의 굽힘 없는 영혼은 저 하늘의 독수리마냥 드높은 창공으로 오릅니다!" 이것은 하늘을 한번 보지도 못했고, 독수리의 소리를 한번 듣지도 못했던 위대한 사람의 말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한탄이나 열등감, 불행한 조건 등에 얽매여 사는 패배자의 생활을 하지 말자. 당신은 축복을 받았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당신은 귀중한 인생이다. 당신은 넉넉한 승리를 거둘 사람이다. 안심하자! 확신하자! 그리고 기뻐하자!(목사, 윤영준)   

철학이 없는 유산은 자녀를 불행하게 한다.

  미국 조지아주 중서부에서 대부호로 명성을 떨친 레스터가(家)가 있었다. 레스터는 이곳에서 담배농사를 지어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는 주변의 농토들을 모두 사들여 담배농사를 지었다. 레스터의 땅을 밟지 않고는 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이 길을 토바코 로드(담배의 길)로 불렀다. 레스터는 후손들에게 엄청난 땅과 돈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런데 레스터의 3대 후손들은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3대손인 지이터가 소작농으로 전락해 유일하게 그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1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5명은 일찍 사망했다. 9명은 가출했다. 이 부부는 고향을 지키며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하루는 지이터 부부가 잡초더미에 불을 놓았는데 그 불이 집에 옮겨붙어 타죽고 말았다.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돈’ 대신 좋은 ‘습관’과 ‘전통’을 유산으로 남겨준다. 철학이 없는 많은 유산은 자녀를 불행의 늪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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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주일예배 대표기도문 

 

할렐루야!

부활하신 우리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희의 죄를 인하여 지신 십자가의 죽음에 
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신 주님을 경배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참된 소망을 주시고, 교회를 굳게 세우셨음에 
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여전히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여 널리 증거하지 못했던 의심 
많은 연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 !

주님이 사랑하시고 친히 세우신 교회도 부활의 소망으로 넘쳐나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 교회를 찾는 자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 
옵소서.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 앞에 드리는 이 예배에 주님이 함
께 하실 줄 믿습니다. 또한 저희로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하게 하심으로 저희가 하 
나님의 영적 군사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기쁨이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
저희를 위하여 단 위에 세워주신 목사님 위에 날마다 새로운 힘으로 축복하시고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하심으로 저희를 위하여 말씀을 준비하실 때에도, 저희를 
위하여 심방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에도 주님의 허락하신 기쁨이 충만 
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를 돕는 손길들을 기억하사 축복하시고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맡기오니 
저희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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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예수님만 바라보라

찬송: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288장(통 204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마태복음 17장 1~8절

말씀: 한국교회가 가진 독특한 것이 있는데 새벽기도와 산기도입니다. 예수님도 새벽기도를 즐겨 하셨고, 산기도도 즐겨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산에 올라가서 졸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깨어서 기도하셨고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변화된 모습이 원래 주님의 모습이요, 장차 하늘에 오르실 모습입니다. 이 영광스런 모습을 보아야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확신과 용기가 생기겠기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되실 때에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었는데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유대인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이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나게 되니 졸던 제자들이 두 눈이 번쩍 뜨여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착각한 것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항상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습니다. 조연은 주연을 빛내주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 자리에 주연은 예수님이고 조연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그동안 주연이신 주님과 함께 다녔으면서도 이러한 감동이 없다가 조연을 만나보고 감동을 한 것입니다. 주연을 잘 모셔야 합니다. 어떤 집은 남편에게는 매일 김치찌개나 해주다가 이웃집이 오거나, 남편의 직장 동료가 오면 메뉴가 바뀝니다. ‘아니 평소에 우리 아내가 저런 것을 만들 줄 알았나’ 할 정도로 신기한 것들을 막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주연이 남편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그렇고, 오늘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구원을 얻는 일인데 이것은 잊어버리고 살다가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이나 명예의 축복을 주시면 감격하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명예는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신 것에 비하면 조연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였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들고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간곳이 없고 예수님만 계셨습니다. 우리가 깊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예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신앙의 깊은 경지를 체험하지 못할 때에 다른 것이 많이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받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일로 시험을 받고 작은 일 때문에 신앙생활에 축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크리스천의 위기는 예수님이 희미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그 가운데 예수님을 똑똑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예수님 외에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법을 전하는 곳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풍랑이 있고 어둡던 세상이 밝아지고 분쟁이 있는 곳에 찬송이 넘쳐나게 되며, 세상에 끌려가던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보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선물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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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 sermon delivered by Pastor John MacArthur in October 21, 2007.
이 설교는 존 맥아더 목사님께서 2007년 10월 21일에 전하신 말씀입니다.

The main text of this sermon is Matthew 7:13-14.
설교 본문은 마태복음 7장 13-14절입니다.

In this age full of cheap grace and cheap gospel, I pray that this sermon would help those who do not confess Jesus as Lord and those who are unsaved but have false assurances of salvation come to the narrow gate which leads to life.
값싼 은혜와 값싼 복음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 설교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나아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19.01.03 - [추천설교/특별설교] - 주일 예배 설교 < 예배의 이유> 존 맥아더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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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4가지 의미
 

오래전에 미국 크리스천포스트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새들백 교회 담임 목사인 릭 워렌 목사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에 나오는 '양식(bread)'의 4가지 의미를 제시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6:11)

워렌 목사는 신명기와 마태복음을 인용해 "양식(bread)는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 즉 일차원적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다"며 양식이 의미하는 4가지를 제시했다.

1. 삶의 필수품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구할 때 이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돈을 주시기만을 가만히 앉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침마다 나가 만나를 거둔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필요한 양식을 위해 일해야 한다.

노동(일) 역시 하나님이 뜻하신 우리 삶의 목적이며, 인격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잠14:23)

2. 하나님의 말씀

양식은 우리의 영적인 양식인 성경을 상징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그들의 삶에 물질적인 양식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진정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 영양분 뿐 아니라 영적인 영양 역시 필요하다.

3. 하나님의 가족과 교제

양식은 또한 하나님의 가족, 즉 교회를 상징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고전10:16)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혈연을 통한 가족을 넘어 하나님은 당신이 영원한 가족의 한 부분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진정한 교제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4. 구원

양식은 구원을 상징한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6-29)

예수님께서 성만찬식의 자리에서 '빵'을 떼어 주시며 그분의 몸이라고 말씀하셨다. 빵은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한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든, 그것이 영적, 물리적, 감성적인 필요가 무엇이든,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을 돌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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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의 비결

마 19:1∼12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6절)

카네기의 인생론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환경을 바꿔라. 그래도 안 되면 관계를 바꿔라. 그래도 안되면 나를 바꿔라.” 인생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요인은 바로 내게 있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가정,그 행복의 비결 역시 내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된 가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확실한 믿음에서 출발하십시오(6절). 부부는 우연히 눈이 맞아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지금의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나의 천생연분임을 믿고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이혼에 관하여 질문을 받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전통이나 시대의 문화로 답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문제를 풀어주십니다(5절). 가정에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서적 가정생활을 위해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정기적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복된 가정은 부부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가정 안에 성소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마치 쉼표와 같아서 우리의 인생과 가정에 쉼과 안식을 줍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부부와 자녀들의 심령에 부어주시는 쉼과 평안,이해와 용서,사랑과 순종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난센스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17장이나 빽빽이 쓴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냈습니다. 봉투에는 이런 경고문이 쓰여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편지를 읽는 자는 죽을 것임.” 하지만 편지를 받은 사람은 호기심에 편지를 읽고 맙니다. 그런데 정말 편지를 다 읽자마자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왜일까요? 17장이나 되는 글에 쉼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깨닫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사업에,그리고 가정에 쉼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쉼표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헉헉거리다가는 곧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예배야말로 우리 가정의 쉼터요,안식입니다. 예배드리는 자에게 안식,평안,강건,자유,승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된 인생,복된 가정을 위해 환경을 바꾸십시오. 안 되면 관계를 바꾸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자신을 바꾸십시오. 무엇보다 인생의 쉼표,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십시오. 가정의 행복은 사랑의 테크닉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시 127:1,2).

기도: 주님,우리의 가정이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확신하고 무슨 일이든 성경에서 해답을 찾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김석년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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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주일예배대표기도문 
   
언제나 저희와 함께 계시는 주님, 
   
오순절 기간을 맞아 성령의 돌보심으로 교회와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오니 그 은혜의 크고도 큼을 새삼 뼛속 깊이 느끼옵니다. 
   
오늘도 주님의 날을 맞이하여 주 앞에 왔사오니 저희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주님, 
   
오늘도 저희는 이 세상의 삶에 취하여 정신없이 살다가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한 주간 동안 저희는 가치 없는 것에는 바삐 왕래하면서도 주님의 나라에는 열망이 없었으며,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세상의 욕심을 더욱 채우려고 힘썼음을 고백하나이다. 
   
오, 주님! 
   
아직도 헛된 것을 좇아 헤매는 저희들을 꾸짖어 주시옵고, 주님의 손으로 선택하신 것들로 바꾸어 잡게 하시옵소서.
   
또한 부족하고 무지한 저희들의 영안을 밝게 하시사 주님의 말씀을 밝히 보게 하시고, 오묘하신 뜻을 깨달아 죽도록 충성하고 순종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라도 순종하고 행할 수 있는 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비하신 주님, 
   
주님의 역사로 이 민족을 연합하게 하여 주시고, 한반도 전체가 주님께로 돌아와 주의 이름을 찬송하고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랜 공산 정권의 압제 하에 영육 간에 기갈에 취한 북한 동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잘못된 정권과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속히 멸하여 주시고, 온 민족 하나로 연합하여 주의 구원과 복을 나누게 하시옵소서.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 주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 몸 된 교회에 성령의 큰 은사와 능력으로 함께하셔서, 주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며, 상한 심령이 위로와 평안을 얻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영혼들이 치료함을 받는 주의 은혜가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특별히 교회를 섬기는 각 기관과 부서의 제직들과 함께하셔서,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붙드시고 지혜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셔서 권세 있는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시고, 귀 기울여 듣는 자 모두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체험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하오니, 주님이 친히 이 예배를 주관하실 것을 믿사옵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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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1
찬송 :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 500장(통 258장) 

본문: 사무엘상 19장 1~7절 

본문에서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울 왕과 친구인 다윗의 대립 가운데서 난처할 수밖에 없는 '제3자 요나단'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제3자의 입장에 설 때가 많습니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강요받기도 하며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진리의 편에서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첫째, 사울 앞의 요나단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세운 두 번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끝납니다. 사울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던 보이지 않던 죄의 모습은 두 번의 실패로 공공연히 드러나게 되고 급기야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을 죽이려는 그의 노력이 잘못되었음을 직고합니다(3∼5절). 요나단은 자기가 이어받게 될 왕위를 다윗이 차지할 줄 알면서도 그에 대한 우정을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구출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분노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인내를 요구하거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은 이런 상황에서 차분히 사울이 생각을 바꾸도록 돕습니다. 

둘째, 다윗 앞의 요나단은 평화의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과 세상의 욕심에 사로잡힌 사울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단순히 '선택'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고민은 어떤 방법으로 다윗을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초점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생명에 있었습니다. 사울의 음모를 알고 있던 요나단은 다윗에게 찾아가 모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지혜로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두 사람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긍정의 상황을 만들려는 요나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고민하면서도 다윗을 도운 이유는 평화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윗의 생명을 구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사울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운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 앞의 요나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볼 때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며 그를 죽이고자 했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기뻐하며 그를 돕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이 왕위를 이을 사람처럼 여겨질지라도 그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겸손히 받아들였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가정도 요나단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관계를 회복시키고 평화를 이끌어내는 믿음의 처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말씀을 따라 지혜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평화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의 잘됨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예배2

찬송 : '주 예수여 은혜를' 368장(통 486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민수기 22장 21~35절 

말씀 : 본문의 국가 간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아모리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했다는 말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모리의 신을 이겼다는 말입니다. 발락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한다면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발람에 관한 말씀을 통해 영적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유혹을 품고 있는 발람입니다. 발락이 보낸 사람들은 먼저 발람을 칭송하는 말과 복채로 그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음성이 너무도 강했기에 다음날 발람은 발락의 사람들을 돌려보내며 발락의 청을 거절합니다. 발락은 더 높은 관료들을 보내 발람을 유혹합니다. 발람은 점차 마음이 흔들려 생각해볼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유혹을 만납니다. 물질과 명예를 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은 어떤 사안에 대해 절대 문제없는 듯 유혹합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이 유혹이며 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죄의 길에 들어선 발람입니다. 발람은 끝내 모압 고관들과 함께 모압왕 발락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유혹을 바로 떨쳐내지 못하면 결국 죄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모압의 고관들이 찾아왔을 때 같은 질문을 다시 하는 발람에게 "함께 가라"고 하신 것은 모든 책임이 발람에게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기도한다" "하나님이 마음을 돌리도록 기도한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그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고 맙니다. 과연 평탄한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그를 태우고 가던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놀라 발을 상하게 됩니다. 영안이 어두운 발람은 나귀가 몸부림쳐 자기를 상하게 한 것에만 분노하였을 뿐 그 원인을 전혀 몰랐습니다. 탐심은 눈을 멀게 합니다. 

욕심이 과하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는 않았지만 후에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 받은 자'(벧후 2장)로 기억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더 좋은 것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결말은 공허함과 멸망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은혜를 누리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 아버지 되신 주여, 세상의 유혹과 죄악의 길에서 참된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늘 승리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물질과 명예에 마음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며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예배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안과 만족의 삶 
찬송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2장 22~34절 


말씀 :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우리 삶의 고민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먹는 것과 입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삶의 절반 이상을 이런 근심으로 허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약속보다 삶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첫째, 염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삶의 너무 많은 부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염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의혹을 품고 탐욕을 부리며 조바심을 내고 우울해합니다. 그러나 정작 염려로 인해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눈과 귀를 왜곡시키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들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동참하거나 긍휼의 마음을 느낄 수 없게 만듭니다. 염려는 전염병과 같아서 염려하는 사람을 만나면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근심하게 됩니다. 염려는 불안을 극대화하고 불안은 루머를 만들어냅니다. 루머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관계를 분열시킵니다.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고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염려를 향해 단호히 선포하십시오. 

둘째,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성경에서 염려의 반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끈질긴 유혹이며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며, 우리의 삶에 확실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넘겨드리십시오. 시각을 바꿔 감사한 일을 찾고 자신의 장점에 집중해 보십시오. 

셋째,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염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방법은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불안 가운데 오는 생각이지만 헌신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와 헌신입니다. 의무와 헌신 후에 오는 것은 '더하시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축복입니다. 무엇으로든지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 : 만복의 근원 되시는 주님,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염려하던 삶이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가정예배 4

 하나님의 풍성하심으로 인한 용서 
 
찬송가 : '예수 앞에 나오면' 287장(통 205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50장 15~21절 


말씀 : 야곱의 장례를 마친 후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와 종으로라도 써달라며 간곡히 부탁하는 것처럼 요셉의 형들도 자신들을 요셉의 종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들에게 다가가 위로합니다. 자신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들에게 그 용서가 진심임을 눈물로써 확인시켜 줍니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속임수로 시작된 이야기가 화해와 위로, 그리고 축복으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죄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용서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들을 애굽 땅으로 인도하신 것일까요? 요셉의 형들은 애굽에서 요셉을 만난 후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요셉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또한 야곱은 아들들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자신 또한 아버지를 속였던 사건(자신을 에서라고 속이고 장자권을 얻어낸 것)을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인간 사회 속에서 '나만 그러는 것도 아닌데'라며 죄악을 쉽게 넘겨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용서받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둘째, 용서는 상호적입니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을 용서했지만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용서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만 자신들을 용서해 주는 척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신들을 처형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이처럼 용서는 상호적입니다. 내가 용서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내 용서를 받아들여야 진정한 용서입니다. 요셉도 과거의 일을 다 잊어버리는 것이 용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의 두려움을 알고 난 요셉은 함께 울며 그들을 위로합니다.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상호 용서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주변에 나의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를 위해 기꺼이 울어 줄 마음을 품으십시오. 

셋째, 용서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내가 잊어버리거나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철저히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풍성하심으로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물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그 모든 것 가운데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용서는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통해 축복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기도 :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도 주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용서로 인해 이웃에게 사랑을 나눠주며 용서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넉넉한 마음을 허락하사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기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예배 5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힘 


찬송가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37절

말씀 : 사랑은 단순히 관념이 아니라 힘을 다하는 행동이며 영혼의 느낌이자 마음의 감정입니다. 사랑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내어주셨듯 우리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과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첫째, 강도 만난 사람과 율법사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평화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살다가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여리고는 ‘향기’라는 뜻입니다. 세상 죄악의 향기, 인간을 유혹하는 향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율법사에게 강도 만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율법사야, 너는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서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내가 네 영혼의 실상을 말해 준다면 너는 바로 이 강도 만난 사람이야. 네 영혼 상태가 하나님 앞에서는 강도 만난 사람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영생을 얻는 방법을 율법을 통해 알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자신이 바로 강도 만난 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둘째, 사마리아 사람과 예수님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예수님은 닮은 곳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피해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자신도 그런 일을 만날까봐 피해가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불쌍히 여기시고 발걸음을 멈추십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길 뿐만 아니라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영혼의 강도를 만나 상처 입은 우리 마음속의 죄악을 피로 씻어주시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씻어진 의로운 마음속에 성령을 부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셋째,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 이 셋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입니까?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 치유를 얻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네 이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참된 이웃입니다. 강도 만난 자가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서 죽어가던 생명이 살아났듯, 죄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의롭게 된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신 예수님을 따라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주님, 세상의 고통과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늘 따르게 하시옵소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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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주일 예배 대표기도문

인생을 생각하사 권고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새해 둘째 주일을 맞이하여 저희를 아버지 앞에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벅찬 감격과 감사로 예배를 드리게 하시며, 회개로 한 해를 열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성결한 심령으로 한 해를 승리하게 하옵소서. 
   
이제껏 성결한 삶을 살기에 게을렀던 저희를 용서하시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님의 영광을 대할 수 있도록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올해에는 늘 새로움으로 거듭나는 한 해가 되게 하옵시고, 저희들 뿐 만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 모든 백성이 겸손히,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땅이 주님의 뜻 안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나라의 모든 위정자들이 주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새해 첫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성도들 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병든 자들, 실직자들, 가난한 이들, 해외에 나간 이들이 어두움의 세력에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한 새해를 맞이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명을 감당할 임원들과 일꾼들이 뽑혔사오니 임명된 모든 일꾼들이 맡은 직임에 충성을 다하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주님의 부르심의 은혜로 일꾼 되었사오니 교만함과 나태함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언행을 주장하시며 열심이 변치 않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서로가 뜨겁게 사랑하고 전도함으로 부흥하는 원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저희에게 새로운 빛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심을 감사하오며 새 다짐과 새 소망으로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영적인 풍요를 내려 주시옵소서. 
   
올 한 해가 아버지께는 영광이 되고 저희에게는 이김이 되는 승리의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 목사님과 함께 하사 성령의 은총을 허락하시고, 성가대의 찬양을 기쁘게 흠향하시고 하늘 문을 열어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세우신 사자를 통하여 저희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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